미국의 어떤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평생을 신앙으로 살아오던 한 어머니가
네 명의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게 됐다.
그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들들을 쳐다보며
작별인사를 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첫째, 둘째, 셋째아들에게는 차례로
“얘야, 엄마에게 굿나잇 키스를 해다오” 라고 했는데
막내아들 앤디에게 만은 “앤디야, 엄마에게
굿바이 키스를 해다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막내아들은 이상해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왜 형들에게는 굿나잇 키스를 하게하고,
나에게는 굿바이 키스를 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 어머니는 가슴속 깊이 묻어뒀던 말을 했다.
“앤디야, 너희 형들은 이제 머지않아 저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제 너와는 영원한 이별을 하는구나.
이 엄마는 너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진리를
여러 번 간곡히 가르쳤지만 너는 끝내 거절하고 말았어.
다시는 천국에서 너를 만날 수 없기에
너와는 굿바이 키스를 하는 거란다.”
어머니의 이 유언 같은 말은 결국 앤디로 하여금
굿나잇 키스를 하도록 만들었고
구원의 길인 예수를 영접하게 했다.
추신: 얼마전에 어느 낡은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이 예화가 삽화까지 곁들여 많이 인용되고 있네요
여러모로 시사하는바가 많은 것 같습니다.
당신은 굿나잇인가? 굿바이인가?
혹시 주님편에서는 굿바이인데 굿나잇이란 신념속에서
살지는 않는지 내 자신부터 뒤돌아보게 됩니다.
주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한 지체된 한기만 형제
그분의 백성에게 그들의 죄들의 사면을 통하여
구원을 얻게하는 지식을 주리니(눅1:77)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니라.
내가 이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위에 뿌려 너희 혼을 위해 속죄하게 하였나니
피가 혼을 위해 속죄하느니라. (레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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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3 12:57:19 | 한기만
공개해주신 그림자료 유용하게 사용하며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사용하면서 2~3개의 파일로 나뉘어진 연대기 도표같은 경우는 조금 아쉽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부족한 실력이지만 하나의 연결된 긴 도표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컬러프린터로 A4용지에 출력해서보니 전체적인 윤곽을 이해하기도 좋더군요.
기존에 만드신 분이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몰라서 이곳에 올립니다.
저작권 문제가 있겠지만, 개인적인 용도외에는 사용않으려구요.
(추가)
도표 수정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성경에 대해 좀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면서 좀더 성경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에 도움이 되어 다른 분들께도 혹시 도움될까 싶어 올립니다.
추가된 첫번째 그림은 구약시대의 왕들과 대언자들, 그리고 구약성경 각 책의 목록을 한 도표에 정리한 것입니다.
한눈에 요약되었고 시기별로 이해하는 데 도움되는 것 같습니다.
두번째 추가 그림은 유대인들의 달력 파일이 조금 깨어진 것을 수정했고, 명절과 헌물제도를 하나로 합쳤습니다.
A4 용지에 출력해서 한눈에 보니 도움되더라구요...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42:2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7-13 11:57:47 | 김태현
TR원어에는 고전 6:9 이 이렇게 되어있지 않죠. 그런데 "한편으로 신약 성경에서 로마서 1장과 더불어 성 문란 행위에 일침을 가하는 구절은 단연 고전 6:9이다. 그런데 ‘남자와 더불어 자신을 욕되게 하는 남자’가 언급되는 이 구절이 킹 제임스 성경만치 확실하고 단호하게 번역되어 있는 성경 역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구절은 단어를 풀이하여 성경을 번역한 것이군요.. 이것을 정확한 성경이라 맹신하지 말아야 됩니다.
" 원어성경 TR에는 알세노코모이스 인데 뜻은 1. 남색하는 자. 2.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욕되게 하는 자인데 개역성경이 1로 번역해놓으면 그 의미가 뚜렷해지지 않는단 것입니까? 그런 비판은 근거가 없습니다.
2010-07-07 13:06:55 | 이용원
김 형제님의 발랄함과 신랄함에 공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너무 젊을 때는 그런 강한 표현이나 특정 세대의 용어 등이 입이나 글에서 잘 안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도 개성을 잃는 것 같아서 될 수 있는 한 놓고 싶지 않았지요.
지금은, 많은 독자들의 연령과 기준의 편차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고 넓고 크기 때문에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한층 더 자제해야 어느 정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는 곳마다 글의 특성이나 수위를 달리 할 필요는 없지만 사이트의 특성과 함께 나누는 이들도 배려해야겠지요.
몇몇 기독 까페 기독교인들의 지나친 비판 글들을 접할 때면 안티 기독인들의 필치가 연상되는 경우도 있더군요.
"오직 너희 마음속에서 주 하나님을 거룩히 구별하고 너희에게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하며." (벧전 3:15)
이런 말씀이 있는 이유가 분명 있다고 생각됩니다.
옳지 않은 세력을 공격하거나 할 경우에도 정제된 용어를 사용할 때 더 힘이 있고 역공의 빌미를 주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모두가 김 형제님이 큰 재목이 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만 보신 분들은 이미 이 분이 50대 목사이거나 한 자리(?) 하는 분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군요.ㅋㅋ
(노영기 형제님도 간증 때 만나서 깜짝 놀랐다나요...)
아무튼 앞으로도 좋은 글로 뵙기를 원합니다. 이번 청년 모임도 합력하여 잘 치르시기를...^^
2010-07-07 10:11:55 | 김재욱
대학입학이라는 것이 원하는 성적이 나와서 원하는 학교에 합격을 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학입학 현실은 점수로 인해서 입학이 간절한 학생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처음 대학에 지원을 할 때에는 학교의 성향과는 상관없이 '우선 합격만 시켜주신다면' 뭐든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합격해서 학교에 다니다보면 무조건 참석해야 하는 채플이 힘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2010-07-06 22:20:06 | 박신웅
저에게도 자폐증을 앓는 조카가 한 명 있습니다.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안타까왔던 것은
그 부모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구원은 커녕, 교회에도 나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선악을 분별할 힘이 없는 그 아이가
저러다 죽어 지옥에 간다면 얼마나 안타까울 가를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저 또한 정동수목사님의 설교를 통하여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지적 장애인들은
죄과여부를 막론하고 죽어 천국에 간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때에 얼마나 마음이 가벼워지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말할 수 없이 기뻤었지요.
자매님의 마음.. 저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0-07-06 14:30:51 | 이은희
형제님의 젊은 필체는 지나가는 세대들에게는 좀 생소합니다.
(사실 읽기에 불편한 면도 있습니다 )
그러나 그 단호한 태도는 높이 사지요.
앞으로 좀 더 부드럽고 온유한 믿음의 글을 기대합니다.
2010-07-06 13:17:41 | 정혜미
정말 박수를 치며 축하드리고 싶은 아름답고 따뜻한 간증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합리성은 사람에게 참 자유와 위로와 평안을 주지요.
저도 얼마 전에 주변 분들과 이런 주제의 이야기를 하는데, 아직 아장아장 걷는 아기가 있는 아이 엄마가 유심히 듣더군요.
그래서 그분한테 물었습니다.
"자매님은 지금 당장 휴거가 일어나길 바라실 수 있나요?"
우물쭈물 하시더군요. 이 문제가 정리가 안 되면 세상의 모든 아기 엄마들은 아이가 빨리 커서
정신 차리고 스스로 믿어 구원받을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면 안 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원리를 설명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 염려 말고 휴거를 소망하세요. 하나님 그런 분 아니십니다^^."
ㅠㅠ 그래도 미심쩍은 눈길... 우리 목사님이 맞는 거야, 저 사람 말이 맞는 거야... 하는 표정.
그 마음을 눈치 채고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성경이 맞는 겁니다~."
2010-07-06 10:05:14 | 김재욱
몇년전 20대중반 지적2급장애인아들을 둔 엄마가 자신이 죽기전에 아들이 구원받았으면 해서 교회선생님을 집에 초대해 몇달을 성경공부를 시켰답니다. 그런데 아들이 구원의 확신이 있는지 도무지 알수 가 없다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불안해 했었습니다.
제 아들준혁이도 뇌병변 1급장애아인데 나도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이 되었는데, 교회선생님께서 수련회후 준혁이가 예수님을 영접했슴이 확실하다고 하셨지만, 무언가 석연치가 않았습니다 인지능력이 12개월정도박에 안되는데 어떻게 영접할 수 있고 그걸 또 선생님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구원에 대한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더해져갔습니다.
그러던중, 얼마전 정동수 목사님의 설교중에 위의 글과 같은 말씀을 듣고 안도할수 있었습니다 짓누르던 무거운 돌을가슴에서 내려놓는 심정이였습니다. 자세한 설명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2010-07-05 14:59:12 | 박경애
평소에 궁금해하다가도 하나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공의로 하시겠는가 하고 넘어갔었는데 잘 알게 되었습니다.
2010-07-05 12:50:19 | 송혜민
* 지난번 사랑 침례교회에서 간증으로도 잠시 언급했던 내용을 글로 풀이한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구원받은 자, 구원받지 못한 자”라든가, “유대인, 교회, 이방인” 같은 방법으로 분류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잣대를 적용하기에 앞서서 “선과 악을 스스로 분간할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라는 필터링이 먼저 이루어진다.
이 웹사이트의 글을 읽을 정도의 지적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전자에 속한 사람이다. 늘 선하게만 사는 건 아니지만(그건 이 글을 쓰는 본인도 마찬가지), 최소한 선과 악을 분별하여 죄가 죄라는 것과 죄의 결과가 나쁘다는 것,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인지하는 사람이다.
후자는 그럼 어느 부류에 속하냐고? 그런 걸 인지 못 하는 아주 초등학생나 그 이하 나이급의 철없는 어린애들과 아기, 아니면 두뇌 성장이 멈춰 버린 지적 장애인/장애아들이다.
이 죄로 가득 찬 세상에서는 어른들의 잘못이나 불의의 사고로 인해, 그런 후자에 속하는 어린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죽는 일이 엄청 많다. 소말리아 급의 막장 국가에서 굶어죽는 어린애들, 그리고 선진국에서는 낙태로 죽는 애들을 생각해 봐라. 그들은 죽어서 어떻게 될까? 이것은 사형 제도에 대한 견해만큼이나, 하나님의 성품 내지 구원 계획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특히 기독교는 환생이나 윤회 같은 것도 단호히 부정하므로, 이런 게 더욱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구원받는다. 죽어서 무조건 하늘로 간다.단, 세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걔들이 티없이 순수하고 맑고 착해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다.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간에게는 신학 용어로 흔히 원죄라고 불리는 죄성이 당연히 있다.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스스로 선과 악을 분별 못 하는 어린아이와 지적 장애아에게는 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님을 스스로 영접하지도, 스스로 거부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기본 구원 계획이 그대로 적용되어 바로 하늘 행.
세속 법조차도 너무 어린 애새끼들은 죄를 지어도 그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못한다). 그것과 똑같은 맥락이다. 그것이 바로, 그런 지적 장애아도 창조하고 심지어 죄의 여파로 인해 어린아이의 죽음까지 일단 허락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 보이는 일말의 배려이다.모든 인간은 불가항적이고 선천적으로 죄인으로 태어나지만, 하나님 역시 불가항적이고 선천적인 이유만으로 죄인을 지옥에 보내지도 않는다! 지옥에 가는 사람들은 전부 자발적으로 제 발로 지옥에 간 것이다.
어린애들이 죽으면 예수 안 믿었기 때문에 지옥 간다고 말하는 목사, 신학자가 주변에 꽤 있어서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을 잘못 전하고 성경의 하나님을 완전 캐잔인한 새디스트로 왜곡하고 있다. 그런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떡실신시키는 본인의 비장의 무기를 공개하겠다. “그럼,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예수님이 태어난 덕분에, 헤롯 왕에게 학살당한 동년배기 두 살 이하 아기들은 다 지옥으로 떨어졌겠군요?”
성경은, 어린아이에게 어떤 권리가 없는 대신 어떤 의무도 없는지를 논리적으로 명백하게 규정해 준다. 아울러, 어린아이의 구원에 대한 이 교리가 추가로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유아 세례는 정말 비성경적이고 잘못되고 불필요하고 악한 교리이다. 유아는 예수님을 영접할 능력이 없으며, 죄에 대해서도 저렇게 면책 사유가 저절로 인정된다. 유아의 구원에 대해서 우리는 어차피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걱정할 필요 없으며, 오히려 그 점으로 인해 위로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유아 세례를 받아야만 뭐가 어떻게 되고 교회 소속이 되고 구원길이 열리고... 이건 사람의 혼을 담보로 죄질이 굉장히 나쁜 종교적 사기 행위이다. 제정신 박힌 그리스도인이라면, 과장 좀 보태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까지 분개해야 하지 않을까? “난 어렸을 때 유아 세례 받았으니 괜찮겠지” 이러다 죽어서 지옥 간 사람이 모르긴 몰라도 엄청 많다.스스로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자란 사람이, 자기 스스로 구원을 간증하고 고백할 때 침례를 주는 것만이 성경적이다. 변개된 성경에서 행 8:37이 괜히 삭제된 게 아니다.
둘째, 아직 선과 악을 분간 못 하는 어린아이가 아예 죽어 버렸을 때의 구원만큼은, 즉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해서만큼은 하나님께서 책임을 져 주신다.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 그 아이의 교육에 관한 한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가히 절대적인 권위를 위임하신다. 잠언에 애새끼 줘 패라는 말이 얼마나 자주, 그것도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지 모른다. 시쳇말로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놔서라도, 머리 굵어지기 전에 죄와 벌에 대한 관념을 각인시켜 놓고 애를 의로 양육하라는 소리이다. 부모가 그럴 자격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성경의 명령이다. (물론 감정적인 폭행은 금물. 히 12:10 참고)
초등학교 들어가기도 전에 천자문 줄줄 외우고 미적분 문제를 푸는 ‘지적 영재’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 들어가기도 전에, 엄마가 매를 들고 키우지 않아도 저절로 남을 먼저 생각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고 믿음을 고백하는 ‘영적 영재’가 있다는 말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본인은 못 들었다. 성경은 그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성경은... 당연한 말이지만, 어떤 경우에도 결혼과 출산이 바보짓이라고는 절대 안 그런다. 성 문란, 음행과 간음을 ‘천하의 개쌍놈짓’(i)으로 규정하는 만큼이나, 반대로 결혼한 부부끼리의 사생활이라든가 자녀 계획 같은 건 뭘 어떻게 하든지간에 하나님도 절대로 간섭 안 하신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만큼이나 그걸 존중(히 13:4; honourable)해 주신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래도 처자식이 딸린 것보다는 홀몸이 대환란 때 도피하고 생존하는 데 더 유리하겠지?”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할 게 아니라, 대환란 따위를 버틸 믿음이 있다면 반대로 그 믿음으로 믿음의 후세를 많이 양성하고 휴거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신실하게 살아야 한다.
본인은 이런 걸 보면서 성경 교리라는 게 정말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건전하고 체계적’이라는 걸 느꼈다. 딱딱 맞아떨어진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뭐랄까, 인간이 처한 환경이 인간의 구원과는 전혀 무관하기 때문에 하나님 역시 인간에게 이렇게 극단적으로 다른 환경도 허락하고, 죄의 여파가 의인에게 미치는 것까지 일시적으로 허락하시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리적으로도 남한과 북한 같은 극단이 존재하거니와, 시간적으로도 크리스천들이 콜로세움에서 인간 횃불이 되어 순교하던 시절과 오늘날 인터넷과 megachurch가 존재하는 시절도 양 극단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착한 사람, 의인이 구원받고 하늘로 가는 건 맞는데, 그 의의 기준이란 게 인간이 언뜻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이 생각하는 게 꽤 차이가 날 뿐이다. 또한 반대로 지옥에도 미친놈, 변태, 흉악범(구원받지 못하고 죽은)만 있는 게 아니라 너무 착해서 구원도 못 받은 성인군자도 많고, 무엇보다도 비참하고 불쌍하게 살다 죽은 사람도 엄청 많이 가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영적 싸움은 “똑같이 힘들다.” 우리가 초대 교회 내지 일제 강점기의 순교 사화 같은 걸 듣고서 놀라워하는 만큼이나, 그 선배들도 21세기 오늘날의 이 절망적인 라오디게아 시대, 영적 불모지를 보고서는 까무러칠 것이다. 성경을 꼭꼭 숨기고 도망 다니느라 바빴던 그 사람들이 성경 역본 논쟁을 경험했겠는가, 여자 목사· 동성애자 목사를 봤겠는가, 창조· 진화 논쟁을 해 봤겠는가(불신자조차도 생명 자연 발생설 따위는 믿지 않던 시절! ㅋㅋ), 에큐메니컬 운동이란 걸 알았겠는가? 자기네들 목숨이 당장 위태롭던 시절인데 사형제도 폐지가 잘못됐다고 비판할 일이 있었겠는가?
우리는 마지막 시대여서 그 어느 시대보다도 지식과 정보와 성경 계시를 많이 얻었다. 실탄을 많이 지급받은 만큼 옛날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이상한 시대에 듣보잡(ii) 적군들과 영적 전투 중이다. 우리도 하늘나라 가서 먼저 가 있는 선배들에게 해 줄 재미있는 무용담이 잔뜩 있다. 영적 사육신까지는 못 돼도 생육신은 충분히 될 수 있다. 그러니 자부심을 갖고 살자. ^^
* * * * * *i) 2005년 여름엔 인디 밴드 카우치가 생방송 도중에 성기 노출 방송사고를 저질렀다. 이를 빗대어 어느 네티즌이, 북한에서 “남조선 소식”이랍시고 “천하의 개쌍놈들”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카우치를 까는 상황을 “가정”한 뉴스 화면을 합성해서 올렸다. 이게 히트 쳐서 인터넷 유행어가 되었다. 합성 그림은 http://humor.openblog.com/dongam/frmView.aspx?id=3193 에서 볼 수 있다.
ii) 듣도 보도 못한 잡것/잡스러운[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28:5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7-05 10:54:05 | 김용묵
대불대학교.. 저도 몰랐네요.ㅎㅎ
서강대와 제수이트의 관계도 정수영 목사님 강의 때 처음 알게 됐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앞세워 시위를 했던 강우석인가 하는 친구 생각이 나네요.
군대 폐지를 주장하며 알몸시위까지 했던...
스스로 지혜로운 척 해도 그런 생각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생각해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지요.
오늘도 형제님의 발랄한(?) 글에 감사드립니다~.
2010-07-04 14:02:13 | 김재욱
대불은 목포에 있는 지명입니다. 이 대통령 당선자가 "목포 대불공단의 전봇대 때문에 트럭이 커브를 돌기 어려운데 현장성 없는 탁상행정으로는 전봇대 하나 못 뽑는다"고 언급한 곳이 바로 저 곳이지요. (그 전봇대가 어느 전봇대를 말하는지는 현장 관계자들도 모른다고 합니다만...)
2010-07-03 15:29:33 | 김문수
정말, 원광대에 신학과나 동국대 신학과가 생겼으면 하네요.
대불대가 기독교 계열이라니, 창립자께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
자주 많이 목포에 갈 일이 있었어요. 그 때마다 대불대를 보곤하면서 불교대학이라고 생각을 해왔는데...
연세대는 이미 연세가 드신 분들이 가면 좋은 대학이 되어버린 것 같군요. 젊은 그리스도의 제자를 길러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군요.
2010-07-03 08:46:05 | 신대준
본인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류 중 하나를 꼽자면,특정 종교 계열에 속하는 사립 대학교에 자기가 제 발로 가 놓고는, 거기서 부과하는 채플이나 종교 의식이 ‘종교의 자유 침해’라면서 딴지 거는 애들이다.
종교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종교별로 다양한 건학 이념도 존재하며, 그 학교에 간 학생이라면 일단 그걸 존중은 해 줘야 하지 않는가? 자기가 거기에 신념상 동의는 안 하더라도 말이다! 그게 사회 생활의 기본 질서와 예의이지 않은가 말이다.
연세대: 대표적인 장로교 계통동국대: 불교서강대: 천주교원광대: 원불교
(우리나라 국군이 인정하는 4대 주류 종교이다)동의할 수도, 존중할 수도 없다면, 그럼 그 학교엔 애초에 가지 말아야 한다. 본인은 동국대나 서강대 같은 학교는 안 갔을 것이다. KJV 믿는 지역 교회가 주변에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런 오지에 있는 학교조차 꺼려지는 마당에, 하물며 건학 이념이 대놓고 타 종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학교엘 가겠는가?
오히려 기독교 학교라고 불리는 학교들조차도 내가 보기에는 지금은 완전히 세속화할 대로 세속화해서 진짜 성경대로 믿는 교리는 거의 찾을 수 없으며 껍데기만 남았다. 그러면서 불신자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만 심어 주고 있다.
포항에 있는 한동대는 대표적인 기독교 사학이란 걸 독자 여러분도 잘 아실 것이다. 연세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종교 성향이 더 노골적이다.
그런데 몇 년 전(한 2007년?)엔 여기에 어느 무슬림 학생이 갑툭튀(i) 유학 왔다. 물론, 입학 전에 한동대의 종교적 이념에 동의한다는 각서도 다 쓰고 말이다. 공부 잘하고 아주 똑똑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이 친구... 한동대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이슬람을 포교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개독들처럼 빨간 조끼와 붉은 십자가의 이슬람 버전으로? 아니, 천만의 말씀이다. 아주 정중하고 다소곳하고 예의 바르게, 교칙 전혀 안 어기면서... 주변 친구들에게 무려 성경을 펴서 논리정연하게 이슬람을 전했다. (이슬람의 극단적인 두 얼굴을 명심하라) 그러면서 교내 기도실에서는 혼자 메카를 향해 알라 신에게 꼬박꼬박 기도를 했다.
포교는 “봐라, 성경에 이런 구절도 있는데 어떻게 예수가 하나님일 수 있느냐? 예수는 하나님의 대언자일 뿐이지 삼위일체는 잘못됐다.” 아마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기독교 안티질을 한 것도 아니다. 아니 그랬는데, 룸메이트를 포함한 상당수의 주변 학생들이 그 포교에 넘어가서 신앙 정체성을 잃고 교회를 떠났다고 한다. 교수들조차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을 정도. 그 골수 기독교 학교에 들어간 그 많은 학생들이 이슬람 학생 겨우 한 명을 신앙 논리로 못 이긴 것이다. (마 17:17 같은 주님의 탄식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래 놓고 백 날 음주가무만 금지하고 종교 생활만 율법적으로 강요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금연 금주 금녀는 종교색이 전혀 없는 사관학교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규칙이다.
주님께서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신 것처럼(눅 16:8), 저 이슬람 학생도 지옥 자식으로서는 임무를 정말 잘 수행했다. 작정하고 타 종교인을 계몽(?)할 목적으로 나와 종교가 다른 학교에 일부러 들어갔다면, 차라리 저 이슬람 학생처럼 행동해라! 합법적으로 노력해서 당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괜히 종교의 자유 운운하면서 인권위 진정 내지 1인 시위, 소송 따위나 하지 말고 말이다.
또한 반대로, 허접한 한국 기독교회와 교인들도 반성해야 할 게 무진장 많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며 사용하시는 도구는 기독교 정부, 기독교 국가, 기독교 군대, 기독교 학교, 기독교 기업이 아니라 성경대로 믿는 지역 교회라는 것도 곱씹을 점이다.
끝으로 한 마디.
전라남도에 있는 대불대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는 달리 불교 계열이 전혀 아니며, 오히려 기독교 계열이라고 한다. 가히 충공그깽(ii).
* * * * * *
i) 갑자기 툭 튀어나와/튀어나온
ii) 충격과 공포다 그지깽깽이들아 (Shock and awe, losers!). 호머 심슨의 17시즌 8화 The Italian Bob에 나오는 대사인데, 이걸 누가 원문 의미를 초월하는 실감나는 단어로 번역해 준 덕분에 인터넷 유행어로 히트 치게 됐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28:5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7-03 08:05:19 | 김용묵
여러분들이 이렇게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또한 위로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주님이 절 구원해 주시고 또한 우리 식구들을 구원해주시고 이렇게 좋은 교회를 만나게 해주셔서 저는 정말 감사가 됩니다. 또한 이런 인터넷 공간이 있어서 서로 멀리서라도 이렇게 교제를 나누게 된 것에 대해서 정말 감사가 됩니다.
2010-06-26 20:50:52 | 시님사람
요일5:7에서 "세 증언"이 하나라고 하지 않고,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신데 그 "세 분"이 하나라고 했습니다. 세 분은 인격체를 말하는 것이지 증언의 내용이 아닙니다.
2010-06-26 18:48:44 | 김문수
요일 5:7 말씀의 "이 세 분은 하나이시라"는 부분을 존재론적 기술로 이해해야 할지 아니면 증언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지 사실 좀 애매한 점이 있지 않나요?
존재론적 기술로 이해해서 이 구절이 삼위일체에 대한 근거가 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문맥적으로 보면 증언의 관점이 우선일 수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증언이 하나로 일치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2010-06-26 09:49:32 | 이재연
" 고생과 수고가 다 지난 후 광명한 천국에 편히 쉴 때
주님을 모시고 나 살리니 영원히 빛나는 천국일세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
은혜로 주 얼굴 뵈옵나니 지극한 영광 내 영광일세 "
구원받고 천국으로 가신 형님의 이야기를 올려주셔서
다시한번 복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2010-06-26 09:10:17 | 정혜미
삼위일체도 일체삼위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 분(one person) 밖에 없다는 겁니다.
한 분 뿐인데, 그 한 분이 어떤 때는 성부로, 어떤 때는 성자의 모습으로, 또 다른 때는 모습만 바꾸어서 성령으로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 양태론입니다. 이것은 삼위일체가 아닙니다.
2010-06-25 20:09:20 | 김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