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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어느 분이 다음의 글을 올려 달라고 부탁해서 올립니다. 글의 저자는 현재 의사라고 합니다. 내용이 너무나 성경적이고  합당하여 올리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손기철 장로의 치유집회에 대하여  손기철 장로의 책은 읽어본 일이 없습니다만 그가 진행하는 치유집회의 동영상이 갓피플 메인화면에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손장로가 행하는 설교의 내용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만 이 글에서는 치유 부분에만 집중해 보려 합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곳에서 정말로 치유가 일어나고 있는지 커다란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1. 신유는 오늘날도 일어나는가? 손기철 장로의 치유 행위를 분석하기에 앞서 보다 근본적인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습니다. 바로 신유(faith healing)가 오늘날도 일어나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답하기 전에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신유의 은사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과 “오늘날에도 신유가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은 전혀 다른 내용을 묻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풀어 설명하면 “하나님이 지금도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셔서 어떤 사람의 병을 직접적으로 낫게 하시는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내용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별 어려움 없이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며 성경에서도 그 근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약 5:16). 하지만 첫 번째 질문은 대답이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사도 시대와 마찬가지로 병자에게 병 낫기를 명할 수 있고, 그 결과 실제로 병의 치료가 일어나며,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언제 하나님이 병고침을 행하실지 정확하게 예측하여 얘기해 줄 수 있는 그런 은사를 가진 사람이 여전히 존재하는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이와 같이 전혀 다른 내용을 묻는 질문임에도 ! 불구하고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날 신유 은사의 지속 여부에 의문을 제기하면 다음 순간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의 가능성, 더 나아가 성경에 기록된 각종 이적의 사실성까지 의심하는 사람이라는 부당한 비난을 받게 됩니다. 저는 첫 번째 오늘날에도 신유의 은사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아니다”라고 대답하며, 두 번째 오늘날에도 신유가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에는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입니다. 첫 번째 입장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이 입장에 대해 이미 많은 책들이 출판되어 있기 때문이며, 이 문제에 저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오늘 다룰 내용과는 큰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문제, “오늘날에도 신유가 일어나는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부연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첫째, 신유라는 용어는 대단히 부적절한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이 용어는 하나님의 이적적 병고침이 마치 우리의 믿음 여부, 혹은 믿음의 강도에 달려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실제로 오늘날의 자칭 신유 은사자들은 병고침이라는 결과가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고 얼마나 능력 있는 사역자를 만나느냐에 달려있는 듯이 가르칩니다. 성도가 병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약 5:14), 그가 병에서 회복될 것인지, 그 병을 가지고 살아가며 연단을 받을 것인지(고후 12:8-9), 아니면 죽음을 통해 주님과 함께 거하는 복을 누릴 것인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신유라는 말 대신 로이드 존스가 사용한 이적치유 (miraculous healing)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이적치유 사건은 일반적인 생각보다 훨씬 적은 빈도로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것이 제가 이 글에서 힘주어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2. 이적치유의 진실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나에게 이적적인 치유가 일어났어요”라는 간증을 들었을 때 그 말의 진실성을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말은 그 간증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의 말에는 진정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진정을 담아 말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가 실제로 그 질병이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정말로 치료가 되었는지 판단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프랭클린 페인 주니어라는 의사이자 기독교 의료윤리 연구가가 이 문제를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의료의 성경적 접근>, 한국누가회출판부). 로이드 존스 목사도 그의 책 <의학과 치유> (생명의 말씀사)에서 이 문제를 언급합니다. 이 내용들을 제가 조금 변형해 인용하며 설명해 보겠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이적치유 사건을 간증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에게 정말로 그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게 만드는 몇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 세상에는 심인성질병 (psychosomatic illness)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심인성질병이란 환자는 증상을 호소하지만 신체에 실재적인 이상은 발견되지 않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만성적인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서 아무리 CT나 MRI 등을 찍어보아도 디스크나 골절은 발견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꾀병과 다릅니다. 꾀병은 실제로는 증상이 없으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심인성질병은 환자 자신은 실제로 증상을 느낍니다. 심인성질병의 증상은 매우 다양해서 가벼운 통증 호소로부터 신체 일부의 마비증세까지 폭넓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카리스마 넘치는 의사가 당신은 나았다는 암시를 강하게 줄 때 극적인 반응을 보이며 씻은 듯이 낫는 것도 특징입니다. 같은 일이 이적치유집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많은 사람이 신뢰하는 이적치유자의 한 마디에 몇 년을 알아오던 증상이 씻은듯이 사라지는 경험.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신체적 질병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환자와 의사 사이에는 심각한 의사소통 장애가 흔히 존재한다는 점입니다.환자와 의사 사이의 의사소통은 많은 의사들의 고민거리입니다. 의료현장에서 의사가 설명하는 내용이 환자에게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의사측의 원인도 있지만 자기 몸의 질병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환자가 선택적으로 듣는다는 사실도 매우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 나온 신유은사 간증집에 기도로 녹내장을 치유받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과에 가서 안압을 측정해 보고 녹내장을 진단 받았으나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다음날 가서 다시 검사했더니 녹내장이 씻은듯이 나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의사의 상식으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처음 보는 환자를 당장 녹내장으로 진단했다는 것도 이상하고 또 다음날 당장 완치를 선언했다는 것은 더 이상합니다. 아마도 첫날에 의사는 “안압이 높으시네요. 녹내장일 가능성이 있으니 검사를 해 보아야겠습니다.”라고 했을 것이고, 둘째 날에는 “오늘은 안압이 정상으로 나오셨네요”라고만 했을 것입니다. 이 의사는 녹내장이라고 진단한 적도 없고, 녹내장의 치유를 선언한 적은 더더욱 없는데 환자는 두 가지를 다 경험했다고 믿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경우는 암입? 求? 의사 입에서 ‘암’이라는 단어가 나오기만 한 것으로도 환자는 자기가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이적치유 집회에 다녀오면 엄청난 간증거리가 생기게 됩니다.   셋째는 그 유명한 위약효과(placebo effect)입니다. 가짜 약을 먹은 사람도 그것이 약이라고 믿으면 실제로 질병이 낫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잇습니다.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잠을 못자던 환자에게 매우 값비싸고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 진통제를 처방해주겠다고 말하고 진지한 자세로 생리식염수(소금간한 맹물입니다) 10cc를 링거액에 섞어주면 거짓말같이 통증이 사라지고 잠도 잘 자는 현상은 거의 모든 의사가 경험하는 일입니다. 위약효과는 너무나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약이 개발되어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밀가루로 만든 가짜 약을 먹은 사람들과 대조해 보아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이적치유 은사자의 강력한 암시는 가장 좋은 위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넷째, 질병의 자연사를 모르면 오해가 발생합니다. 어떤 병을 치료하지 않고 그냥 방치했을 때 어떤 경과를 밟는지 관찰한 것이 질병의 자연사(natural course)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는 것이 감기의 자연사라면 평생을 두고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는 것은 아토피, 류머티스 관절염 등의 만성질환의 자연사입니다. 질병의 자연사를 아는 것은 치료 효과를 판정하는데 필수적인 전제조건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예를 두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심한 감기로 개인병원을 찾아 일주일 치 약을 먹었으나 차도가 없는 사람이 참다 못해 대학병원을 방문합니다. 대학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먹자 거짓말같이 독한 감기가 떨어지고 이 사람은 대학병원의 교수가 역시 용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번에도 비슷한 증상의 심한 감기가 발생하자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용한 교수를 찾아가기로 마음 먹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번에 받아온 약은 효과가 없습니다. 일 주일 내내 고생하고서야 감기가 떨어져 나갑니다. 첫 번째 경우에 대학교수가 용한 의사로 인정받은 이유는 단지 환자가 감기에 걸린 지 일 주일이 지난 후에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 흔한 예는 아이들의 아토피입니다. 몇 년 동안 고생하? ?아토피가 이름 모를 풀을 다려먹고 씻은듯이 낫습니다. 하도 신기해 주변의 다른 집에도 추천해 주었는데 이번에는 효과가 그다지 신통치 않습니다. 왜일까요? 아토피는 수 개월~수 년을 주기로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는 자연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호전되려는 찰나 우연히 먹게 된 풀뿌리가 치료의 주인공으로 오인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아토피가 발생할 것입니다. 의학에는 우연을 감별하기 위한 연구방법론이 많이 개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적치유에서는 이런 효과를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다섯째, 검사의 특성 및 한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오해가 발생합니다. 질병을 진단하기 위해 행하는 검사에는 선별검사(screening test)와 확진을 위한 검사가 있습니다. 선별검사란 많은 사람들 가운데 특정 질병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가려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검사입니다. 선별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는 것은 그 질병에 걸렸을 확률이 다른 사람보다 높으므로 확진을 위한 검사를 시행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지 그 자체가 질병을 확진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CT나 MRI 촬영은 대표적인 선별검사입니다. CT/MRI에서 폐에 종양으로 의심되는 덩어리(종괴)가 발견되었을 때 조직검사로 확진되기 전까지는 말 그대로 ‘의심’ 단계이지 폐암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자 그 종괴가 없어졌다면 애초에 폐암이 아닌 폐렴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신유 간증들이 선별검사만 받은 상태에서 확진을 받은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섯째, 불가항력적 오진이 존재합니다. 현재로서 암을 진단하는 가장 확실하고 믿을만한 방법은 조직검사입니다. 극소수의 경우이긴 하지만 조직검사까지 시행하고도 심한 염증과 암을 확실하게 구별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장 흔한 것이 위궤양과 위암의 구분입니다. 둘 다 위벽에 움푹 파인 구덩이가 만들어집니다. 내시경을 통해 모양을 보는 것만으로는 둘의 구분이 안 되기 때문에 조직검사를 하여 확실히 구분하는데 아주 드물게 조직검사를 하여도 진단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대학병원급에서는 일 년에 몇 차례 나타납니다. 이런 경우는 검사를 반복하며 환자를 계속 관찰하며 조심스럽게 판정합니다. 하지만 경험 없는 병리학자가 이런 예를 접했을 때는 성급하게 위암으로 진단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평신도 성경공부 교사로 유명한 어떤 분의 간증을 읽어보니 중국에서 위암으로 진단 받고 이적치유를 경험한 내용이 나옵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분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일곱째, 통계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해가 생깁니다. 어떤 사람이 암에 걸렸을 때 병기(1기, 2기, 3기, 4기)가 결정되면 의사는 지금까지 알려진 5년 생존율을 말해 줄 수 있습니다. 4기(말기)의 5년 생존율이 20%인 암에 걸린 환자를 가정해 봅시다. 이 사람이 5년 후에도 살아 있을 확률이 20%라는 말이며 바꾸어 말하면 이 암의 말기 상태에서 발견된 환자 5명 중 4명은 5년 안에 사망한다는 말입니다. 10명의 그리스도인이 이 암의 말기 상태에서 치유집회를 찾았습니다. 치유 은사자는 그들이 모두 나았다고 선언했고 5년 후에 보니 그 중 2명은 실제로 살아있습니다. 이 두 명이 정말로 이적치유를 경험한 것일까요? 이 치유집회가 정말로 효력을 발휘한 것일까요? 환자수가 100명으로 늘어난다면 어떻겠습니까? 예를 들어 23명이 살아있고 97명이 사망하였다면 치료효과를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검증하는 것이 통계학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들어본 기억이 나십니까? 95% 유의수준에서 치유집회를 가든 안 가든 생존율은 똑같다는 귀무가설을 기각하기 위해서는, 즉 p값이 0.05보다 작게 나오기 위해서는 몇 사람이 생존해야 하는 것일까요? (조금 사잇길로 빠진 이야기지만, 이런 통계학적 검증을 거치! 지 않은 모든 치료행위는 그 주체가 의사이든 한의사이든 관계없이 사이비 의료행위입니다. 태반주사니, 봉침이니 아무리 이론적으로 그럴듯하게 떠들어도 그 효과가 통계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습니다. 이런 얘기하면 개원가의 의사들은 의대교수가 자기들의 어려움을 모른다고 볼 맨 소리를 합니다. 마치 신학자들이 알파코스의 신학적 오류를 지적하자 일선 목회자들이 교회성장을 위한 전도프로그램일 뿐인데 뭘 그리 시비냐고 투덜대는 것과 똑 같은 양상입니다.) 여덟째, 치유 간증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적지 않은 수의 경우 진단이 의사가 아닌 환자 자신이나 치유자에 의해 붙여진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간증 전체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게 됩니다. 최근에 타드 벤틀리라는 사람이 집회를 하자 주변 지역에서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군요. 인터넷에서 그 간증들을 찾아 읽어 보십시오. 제가 본 증례들은 객관적으로 사망이 증명된 경우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이적치유의 진실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정확한 진단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치료 효과의 검증이 필수적입니다. 치유집회에 참석하기 전에 그가 확실히 병이 있었음을 증명해주는 확진검사 결과(조직검사)가 있어야 하고, 집회 후에도 그에 준하는 검사를 시행해 병이 사라졌음을 환자의 증언에 의해서가 아닌 객관적인 방법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3. 손기철 장로 사례에 대한 분석 위에서 설명한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 2008년 7월 11일에 www.godpeople.com 메인 화면에 올라온 치유집회 동영상을 대상으로 손기철 장로의 사례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이 날 집회 동영상에서 손장로가 치유했다고 선언한 질병 혹은 상태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축농증 2) 갈비뼈 이상 3) 눈꺼풀 내려옴4) 어깨결림 5) 오른다리 마비 6) 영안을 열어줌7) 회한의 날이 끝나고 독수리 날개 치듯…8) 간경변 9) 자녀의 아토피 10) 등이 굽어진 사람11) 각기병 12) 악몽 13) 밤눈 어두움14) 위궤양 15) 담즙 이상 16) 왼쪽 폐 이상17) 고환이 부은 사람 18) 생리통 19) 오른쪽 골반 휜 사람20) 흑암의 세력에 묶인 자 21) 오른 엄지 발가락 발톱의 문제22) 왼쪽 대장 폴립 23) 4살 남자 아이 팔과 목의 아토피24) 심근경색 25) 악성 림프종 26) 골절 참석자들은 다음의 질병이 나았다고 간증하였습니다.27) 혹(?,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음) 28) 갑상샘의 1.8cm의 혹이 사라짐29) 성대결절 (성악가) 30) 기립성 저혈압 손기철 장로는 매 집회 때마다 성령님이 자신에게 직접 말씀하신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오늘 집회에서 OOO 명이 치유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기 오른쪽에 OO 환자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적어도 손장로의 진단에는 오류가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의사로서 위의 목록을 보고 있노라면 의심스러운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가장 좋은 확인 방법은 위의 환자들 중 몇 사람을 추적해 확진 검사를 해 보는 것이겠지만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항목들은 진실일 가능성이 극히 낮아 보이는 것들도 있음이 사실입니다. 하나씩 설명해 보겠습니다. 1) 축농증축농증은 손장로 집회의 단골 메뉴입니다. 제가 본 것만 벌써 세 번째 사례입니다. 왜 축농증이 자주 언급될까요? 환자가 현재 느끼는 뚜렷한 증상이 존재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치료 여부를 판단할 만한 뚜렷한 변화도 없는 만성질환이기 때문입니다. 주관적으로 나는 이제 나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그렇지 않음을 증명할 증상이 없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한 가지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짐작하건대 손장로 집회 도중 축농증이 치유되었다고 손 들고 나온 사람들은 코가 뻥 뚫리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간단히 실험해 봅시다. 콧구멍을 한 쪽씩 번갈아 막고 숨을 쉬어 보십시오. 평소엔 느끼지 못했지만 한 쪽 코는 막혀있지 않습니까? 30분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한 번 해보면 이번에는 아까와 반대편 코가 막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코 속 혈관의 팽창과 수축에 의해 일어나는 정상적인 생리현상입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양 콧구멍을 번갈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이 변화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열정적인 집회로 인해 눈물 콧물 범벅이 되고 양쪽 코가 모두 막혀버린 상? 꼬【??한 쪽 콧구멍이 열리는 순간이 평소보다 더 과장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자신을 축농증 환자라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은 이 순간을 축농증이 치유되는 순간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2) 갈비뼈 이상진단이 환자 자신과 치유자에 의해 붙여진 경우입니다. 3) 눈꺼풀 내려옴안검하수(ptosis)라 부르는 현상입니다. 제가 병이라 하지 않고 현상이라고 한 이유는 눈꺼풀이 내려오는 것 자체는 나이 들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간혹 암 등의 심각한 질병이 신경을 침범하여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손장로가 치유했다는 것은 이 중 어느 경우일까요? 단순히 노화 현상을 역전시킨 것이라면 치유집회가 아니라 성형집회일 것이고, 암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꺼풀이 문제가 아니라 암 치료를 선언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4) 어깨 결림어깨가 불편해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도 여러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 관절에 이상이 생겨 움직임이 제한된 사람도 있고, 관절에는 무리가 없는데 주변 근육이나 인대의 통증 때문에 실제 움직일 수 있는 범위보다 작은 범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후자는 사실 ‘무서워서’ 못 움직이는 경우입니다. 이 사람들은 치유자가 확신을 주며 움직이라고 하면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습니다. 5) 오른 다리 마비하지가 마비된 경우 실제로 심한 디스크나 종양 때문에 척추 신경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지만 팔 다리의 마비가 심인성 질환의 대표적인 증상인 것도 사실입니다. 이럴 경우 치유집회에서 증상이 사라질 확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특히 양쪽 다리가 아니라 한 쪽 다리가 마비된 경우 심인성 질환일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6)~7)은 질병이 아니니 지나가겠습니다. 8) 간경변간경변을 진단하거나 치료 효과를 판정하기 위해서는 초음파와 조직검사를 시행해야 합니다. 이 집회에서 나았다고 선언한 사람들은 반드시 병원에 가서 확인해야 합니다. 간경변 역시 환자 자신이 느끼는 증상의 변화가 거의 없는 병이기에 치유 은사자들의 단골 메뉴로 등장합니다. 9) 자녀의 아토피위에서 말했듯이 아토피는 언젠가는 저절로 좋아지는 병입니다. 오늘 이 집회의 참석자 중 자녀에게 아토피가 있는 사람들은 100% 효과가 나타납니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나중에 다시 나빠지면 부모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날 설교의 주제가 바로 이것 아닙니까?) 10) 등이 굽어진 사람가까이서 잡은 화면이 아니기에 이분의 정확한 상태는 모르겠습니다만 흔히 이야기하는 꼽추 수준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분별할 수 있습니다. 우선 진단이 환자와 치유자에 의해 붙여졌고, 설사 척추 측만증이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치유 여부는 방사선 사진을 찍어본 후에야 판정할 수 있습니다. 11) 각기병교과서에는 비타민 B 부족에 의해 생기는 병으로 항상 등장합니다만 우리나라 현역 의사 중 이병에 걸린 환자를 경험해 본 이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날에 혹시 각기병이 생긴다면 만성 알코올 중독자 정도에서 간혹 발생할 것입니다. 그런데 비타민 보충이라는 가장 확실한 치료법이 있는 각기병을 왜 치유집회에 나와서 치료 받으려 하는 것일까요? 혹시 각기병으로 인해 생겨난 마비 증상이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는 후유증을 남긴 경우라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12) 악몽 &#8211; 지나가겠습니다.. 13) 밤눈 어두움 (야맹증)각기병과 더불어 교과서에 비타민 A 결핍에 의한 질환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11)에서와 마찬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손장로가 각기병과 야맹증을 동시에 언급한 것으로 보아 오늘 치유 받을 질환의 목록을 성령님이 불러주셨을 가능성 보다는 의학책을 뒤적이다 눈에 뜨이는 진단을 죽 적어왔을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4) 위궤양위내시경을 해보기 전에는 진단도 치유 판정도 불가능합니다. 속쓰림 증상의 존재여부로는 아무 것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속이 쓰린 이유는 궤양으로 인해 상처가 난 상태에서 위산이 과다분비되는 것인데, 위산의 분비량은 심리상태에 크게 영향 받기 때문입니다. 15) 담즙 이상진단이 환자 자신에 의해 붙여진 경우입니다. ‘담즙 이상’이란 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16) 왼쪽 폐 이상진단이 치유자와 환자 자신에 의해 붙여진 경우입니다. 17) 고환이 부은 사람‘부었다’라는 말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이 날 집회에 모인 남성의 대부분이 자신의 고환이 부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음낭수종’을 말한 것이라면 이것 역시 확실한 치료법이 있는데 왜 치유집회에 왔는지 궁금합니다. 18) 생리통평소 생리통이 있으나 이 날 생리를 하지 않던 여성들은 어떻게 치유를 판단합니까? 다음 생리일에 다시 통증이 발생하면 이 또한 자기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게 된 것이지 않습니까? 19) 오른쪽 골반 휜 사람저는 이게 무슨 병인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이런 병도 있나 싶습니다. 평소 자세가 틀어진 것을 말한 것이라면 치유집회 와서 기도하기 전에 생활 속에서 바른 자세를 취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 아니겠습니까? 20) 흑암의 세력… -그냥 지나갑니다. 21) 오른 엄지 발가락 발톱의 문제‘문제’라는 것이 엄지 발톱의 무좀인지, 살을 파고드는 발톱인지, 사고로 절단된 발톱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떨어져 나간 발톱이 순식간에 다시 자라난 경우라면 이적치유로 인정할 만 합니다만 그게 그렇게 심각한 질환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22) 왼쪽 대장 폴립이것처럼 치유 효과 판정이 명쾌한 경우도 없을 것입니다. 치유를 선언 받은 환자는 당장 병원에 가 대장 내시경을 다시 한 번 해야 합니다. 최근에 보였던 폴립이 사라져 버렸다면 이적치유입니다. 하지만 오늘 손기철 장로의 설교 내용으로 볼 때 폴립이 그냥 그대로 있다면 환자의 믿음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3) 남자아이 아토피 &#8211; 9)와 같은 내용입니다. 24) 심근경색집회 장소까지 스스로 오신 것으로 보아 당장 생명의 위협이 있는 단계는 지나고 후유증으로 심장 기능이 저하된 환자일 것입니다. 이 또한 환자가 자각하는 증상이 없고, 치유 여부를 판정할 뚜렷한 변화도 없는 상태입니다. 치유를 확인하려면 병원에 가서 심장 초음파를 비롯해 여러 검사를 해 보아야 합니다. 25) 악성 림프종통계의 문제를 말씀드렸습니다. 악성 림프종은 진행된 정도에 따라, 그리고 조직학적 종류에 따라 생존율이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그 생존율보다 통계학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만큼 더 많은 사람이 5년 후에도 생존해 있어야 합니다. 26) 골절오늘 나오신 환자가 석고붕대를 얼마 동안 감고 있었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습니다. 하루 전에 확실한 골절이 일어났던 환자가 오늘 동영상처럼 걷는다면 이적치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한두 달 전에 일어났던 골절이라든지, 완전한 골절이 아니라 그냥 금이 간 정도였다면 아무 의미 없는 사례입니다. 27) 혹? &#8211; 잘 듣지 못해 지나가겠습니다. 28) 갑상샘의 혹갑상샘의 1.8cm 혹을 어떻게 진단 받았을까요? 초음파 검사를 했을 것입니다. 갑상샘이라는 장기는 두꺼운 캡슐에 싸여 있기 때문에 혹이 만들어져도 어지간한 크기가 되기 까지는 밖에서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습니다. 1.8cm 크기라면 아직 손으로 만져봐서 판단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닙니다. 진단을 초음파로 받았다면 치유 판정도 초음파로 해야 합니다. 29) 성대결절본인은 성대결절이 사라졌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을 하는 목소리가 왜 그리도 허스키하신 것일까요? 30) 기립성 저혈압누워 있다 일어났을 때 혈압이 떨어지는 병입니다. 체위의 변화에 혈압 조절 기능이 더디게 따라가는 상태이지요. 오늘 나오신 할아버지가 집회장소에서 누워 계셨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랜 시간 앉아 계시는 동안 몸은 이미 적응을 끝마쳤을 것입니다. 누워 있다 일어나는 것과, 의자에 앉아 있다 일어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동영상에 포함된 것은 아니지만 제 머리속에 강하게 남아있는 장면이 있는데 5월 2일자 갓피플 메인 화면에 올라온 동영상 중에 나오는 휠체어에 앉은 사람들이 걷는 장면입니다. 그 동영상에는 네 사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성큼성큼 걸어나온 사람. 이 사람은 애초에 못 걷는 사람이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증거는 없습니다만 한 번 직접 보십시오). 두 번째 부축 받아 나온 사람. 이 사람은 아마도 중풍의 후유증으로 팔, 다리의 마비가 온 사람인 듯 합니다. 양편에서 부축하여 억지로 걸어가는 것처럼 하였습니다만 이 사람이 정말 치유되어 걸은 것일까요? 동영상을 다시 보십시오. 그의 오른 팔이 어떤 상태인지. 치유가 일어났다면 다리야 체중을 지탱할 만큼 완전히 힘이 돌아오지 않았을 수 있다 하더라도 팔이 그렇게 축 늘어져 있을 수는 없습니다. 세 번째 사람도 비슷한 경우인 듯 하지만 자세히 보여주지 않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네 번째 사람은 아마도 태어나면서부터 뇌성마비를 앓아온 환자 같습니다. 이 사람도 억지로 일으켜 세우지만 걷게 하는 모습은 끝까지 보여주지 않고 편집하였더군요. 더 보여주었더라면 장애? ?인권단체에 학대로 고발해도 될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두 번째와 네 번째 사람은 전혀 치유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박수 치며 할렐루야를 외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동영상만 보고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손기철 장로가 훨씬 불리한 입장에 서 있습니다. 스스로 이 일이 성령님이 가르쳐 주신 것이라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단 하나의 예라도 거짓임이 입증되면 전체 사역이 무너지게 됩니다. 간증하러 나왔던 환자들이 제가 지적한 자료들이 포함된 의사의 진단서를 제출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리라 생각하지만 이런 일이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가톨릭에는 프랑스의 루르드라는 지역이 소위 ‘성모발현’과 이적치유로 유명합니다. 루르드 치유기적은 워낙 역사가 장구한 예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어난 치유 사건에 대해 의학적으로 분석한 논문들도 몇 개가 존재합니다. 이곳에서 치유를 경험했다는 환자들을 추적하여 검사한 것이지요. 그 결과는 참으로 처참합니다. 손장로의 치유집회에 대해 이런 검증을 시도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3. 보다 근본적인 질문 : 왜 치유 받으려 하는가? 다음 글이 이 문제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는 쉽게 무시해 버리지만 사실상 건강과 질병의 메커니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매우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범주 속에 나는 “신앙”을 포함시키고자 합니다. 내가 말하는 신앙이란 모든 종류의 신앙을 의미합니다. 만일 이 견해가 옳다면 그 어떤 종류의 신앙도 이러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 기독교적인 신앙 뿐만 아니라 카리스마적인 신앙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신앙, 심리학적인 요소, 강한 감정, 충격, 악령의 역사 등 수많은 요소들이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   진실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참된 기적들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기도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적을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또한 그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이적이란 부분적으로는 인간의 일반적인 영성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달려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달려 있습니다.   환자들은 가능한 한 빨리 질병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 하나님 뿐만 아니라 그 어느 곳에라도 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온전함”에 대해서는 좀처럼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들의 주된 관심은 질병의 증상이나 그에 따른 즉각적인 무기력감으로부터 벗어나서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다시금 사회에서 그들의 지위를 되찾는 데 있습니다.” (로이드 존스, 의학과 치유)   로이드 존스 목사는 자신이 임종하기 전 이 말의 진실성을 스스로 입증하였습니다. 대장암 말기로 더 이상 희망이 없어 항암치료를 중단한 후 치유를 위한 기도를 하는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지 말라. 내가 영광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   손장로의 치유 집회에 매달리는 많은 환자들이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09:0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04 12:17:31 | 관리자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부터 나온 과감한 결단과 행동을 할 수 있으려면, 하나님과의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잘 알고 그 분과 연합된 자만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겠지요.
2010-01-02 19:00:04 | 김문수
지금까지 환난 통과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는데 그들은 대개 자기 의가 가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언가 나도 했다는 것이 은연중에 그들의 말과 행실에 들어 있고 그래서 그들은 줄곧 다른 사람을 판단하더군요. “나는 무언가를 했는데 너는 왜 그러냐?” “나는 산에 가서 도피하며 어렵게 사는데 너는 왜 도시에서 일하면서 편하게 사냐?” 등등 그러나 저는 내세울 '내 의'가 전혀 없어서(전무함)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환난 전에 올라가는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복된 소식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진노에 이르도록 정하지 않았습니다. 영어로는 'Never'입니다. 이번에 올린 재림과 휴거 음성 파일과 자료를 잘 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환난 전 휴거는 100% 진리입니다. 결코 사람을 두렵게 하는 자들의 말에 넘어가지 맙시다. 복음은 말 그대로 복된 소식입니다. 불구덩이, 지진, 해일, 전쟁, 핵무기, 마귀들이 들끓는 환난기는 진정 복된 소식의 시간이 아니지요. 그렇지요. 거기는 준지옥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가기 원하는 사람만 가면 됩니다. 우리의 의를 더러운 걸레로 여기고 예수님만 신뢰하는 사람은 다 그 전에 들려 올라갑니다. 도시에 살든, 시골에 살든, 운전 중이든, 잠자는 중이든 전혀 문제가 없지요. 북반구에 있든, 남반구에 있든, 남녀노소 흑백황색 인종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나 다 갑니다. 나팔소리가 나면 눈깜짝할사이에 몸이 순식간에 변화되어 올라가지요! 너무 기쁘네요. 아멘! 할렐루야! 정동수
2010-01-02 15:52:07 | 관리자
저도 오래전 감리교에서 환난통과 교리로 배웠었습니다. 휴거가 1회적인 사건이므로 환난 전에 올라가는 일은 없다는 논리였는데 공중 재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성경을 자세히 보지 않은 탓이었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것을 가르친 분의 논리는 이 엄청난 마지막 때의 알곡을 구분해내는 추수사건을 그리 싱겁게(?) 끝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환난을 통해 참 믿음을 가려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었는데 지금 돌아 보면 은혜에 '자기 의'를 보태서 구원받으려는 교만의 결정판이었습니다. 환난 통과를 주장하는 이들의 글을 보니 keep은 누가 보아도 '지키다'라는 뜻인데, 이는 환난에 들지 않게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환난 속에서 지켜주시는 것이다... 라고 썼더군요. 성경을 해석하는 일에서도 '신념'이 그 뜻을 달리 보게 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지 성경 전체를 통해 원리를 깨닫는다면 그런 신념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너는 속히 거기(소알 땅)로 도피하라. 네가 거기에 이르기까지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노라..." (창 19:22) 소돔을 심판하시기 전, 롯에게 하신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새기고 싶습니다.
2010-01-02 15:05:14 | 김재욱
장강 선생님! 합당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재림과 휴거에 대해 음성 파일 3개를 올렸습니다. 메인 화면의 나누고 싶은 글 8번을 참조하세요. 세미나 자료와 함께 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조만간 사랑침례교회에서 다시 강의해서 동영상으로도 올려놓겠습니다. 주님의 재림의 소망으로 인해 - 결코 두려워 하지 말고 - 기뻐하기 바랍니다. 샬롬. 정동수
2010-01-02 11:18:58 | 관리자
구원받은 성도에게 하나님은 나의 구원자이기도 하고 아버지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며, 어떤 면모가 가장 부각되어 보이는가?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 의지를 존중한다. “넌 이제부터 내 것이니, 닥치고 찌그러져서 내 말만 듣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 안 그랬다간 뒈지는 줄 알아라”가 절대 아니다. 하나님이 그저 이런 분인 줄로 알고 하나님에 대해서 쓴 뿌리를 품었던 사람이 바로 창세기의 이브, 그리고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다.     “주인이여, 당신은 엄한 사람이라 뿌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내가 알았으므로” (마 25:24)   하나님은 한편으로는 두렵고 엄격하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자신과 대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사랑하신다.우리를 자상하게 대하신다. 시스템 구조적으로 안 할 수가 없어서, 의무적으로, 안 하면 벌 받을까봐 무서워서 행하는 게 아니라, 정녕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나의 모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자발적으로 성경대로 살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심히 담대하여 네게 합당한 일을 명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사랑으로 인해 네게 간청하노라. (몬 8-9a)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으며 또한 내가 말하는 것 이상으로 네가 행할 줄을 아노라. (몬 21)   빌레몬서를 읽어보면 바울의 필체에서 하나님의 저런 성품을 한결 엿볼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성품을 잘 이용하여 ‘효율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는 뻘짓을 안 하고 높은 기도 응답률을 달성하면, 정말 하나님도 기쁘고 나도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일석이조이다. “아브람의 잃어버린 13년”(창 16:16-17:1) 같은 일이 우리에겐 없어야 된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상에 눈이 멀어서 살아야 한다. 그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겨냥해야 하는 대상이며, 욕심이나 교만이 절대 아니다. “저 형제는 어떻게 해서 저런 상황에서 감사가 나올 수 있을까? 어째서 기도 응답률이 높을까? 저 사람은 평소에 성경 읽기와 기도 생활을 어떻게 진행할까?” 이런 것을 벤치마킹하고 경쟁하는 것은 아무리 지나쳐도 나쁘지 않으며, 모두에게 유익이 될 뿐이다. 이런 것에 제법 능숙해지고 나면 기도도 하나님의 입장에서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동족을 멸망시켜 버리면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게 됩니다.” (모세. 출 32:11-13)  “내가 한없이 불쌍하고 가련해지면 하나님께서 그 성품상 내게 긍휼을 안 베푸실 수가 없을 것이다” (다윗. 삼하 16:12)  “내가 연보를 받아서 기쁜 게 아니라, 너희가 내게 연보를 함으로써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보상이 쌓일 걸 생각하니 기쁘다” (바울. 빌 4:17)   이런 게 바로 수준 높은 기도이다.특히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놀고(play) 재롱을 부릴 줄 알았고(삼하 6:21), 징계를 받을 때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직접 떨어지길 원했다(삼하 24:14). 흔히 하나님과 친밀했던 인물로 아브라함이나 모세 같은 인물만 거론되지만 사실 다윗도 얼마나 하나님과 친밀했는지, 하나님과 마음과 일치하는 자라는 평(행 13:22)이 결코 빈말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과의 외교 테크닉이 능수능란해지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담대한 믿음이 동반된 집요한 간구는 물론이고 심지어 엉뚱한 돌발행동으로 인해 하나님을 놀래거나 감격스럽게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신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50명의 의인 조건을 10명으로 줄인 아브라함, 백부장의 믿음의 답변,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킨 모세, 누가복음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 천장을 뜯어서 마비병 환자를 예수님 곁으로 내려다놓은 친구들처럼, 성경에서도 그 좋은 예들을 찾을 수 있다. 당연히... 돌발 행동도 평소에 늘 하나님의 교제가 친밀하고 그분의 뜻과 사고방식이 일치가 돼 있는 사람이 해야 먹히지,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던 부류가 육신적인 기도 제목을 놓고 ‘뗑깡’을 부려 봤자 그런 식으로는 기도 응답은 어림도 없는 일일 것이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외교 수완을 생각해 본다. 그의 국내 통치 행적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여러 엇갈린 평가가 존재하며, 공과 과가 공존한다. 하지만 그는 외교 하나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탁월한 정치가였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6 25 당시, 남북이 분단된 채로 그냥 휴전해 버리고 적당히 전쟁을 끝내려던 강대국에 대항하여 감행한 반공 포로 석방은, 영국의 처칠조차 “저 영감쟁이가 노망이 들었다”고 빈정댔을 정도였다.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한미 연합 수색대를 만들어야 하는데 미국 대사관이 국군을 믿을 수 없다며 요청을 거부하자, 그는 차를 돌진시켜 주한 미국 대사 사무실에다 꼬라박겠다고 을러댄 끝에 요구사항을 관철시켰다. ( http://www.carlife.net/bbs/board.php?bo_table=information&wr_id=3651 )   그 외에도 이 사람은 워낙 머리 좋고 고집불통이었던지라, 전해지는 무용담(?)이 수도 없이 많다. 이 때문에 미국 정치인들마저 이승만 앞에서는 쩔쩔맸으며, 미국 내부에서는 골칫거리인 그를 몰래 축출할 음모마저 나돌았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지금과는 비교도 못 할 정도로 국력이 약하고 위태롭던 그 시절에도 이승만은 미국으로부터 정말 많은 국익과 외교성과를 얻어 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미국 대통령, 나중엔 맥아더 장군이 아니면 콧방귀도 안 뀌었던 놀라운 콧대의 한국인이다. 40년을 미국에서 독립 운동 하면서도, “우리나라는 독립할 것이고 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사람이다. 미국 시민권 따윈 없어도 된다”고 불편하게 살며 버텼던 사람이다. 갈 5:1을 영적으로 적용하여, 우리 민족이 앞으로 다시는 어느 방면에서는 다른 민족으로부터 속박의 멍에를 메어서는 안 됨을 염원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하나님과 저런 식으로 지낼 수 있을까? 물론 미국이 하나님과 같을 수야 없으며, 무모한 배째라 행동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계산적인 거래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런 식으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훗날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 사람이다. 천년왕국 때 최하 10개 도시를 다스릴 사람이다. 그러니 이런 세상적인 타협 따위는 할 필요 없다”처럼...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건전한 영적 귀족 의식(교만이 아닌)도 좋고, 우리가 하나님과 너무나 친밀한 나머지 그분을 믿고서, 세상에서 받은 시험에 대해 가끔은 저렇게 과감한 배짱을 행사하는 것도 신앙생활에서 좋은 추억으로 남을 거라 생각한다. 단, 육신에서 나온 욱하는 행동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이다.   또한 성경은 실제로 신앙생활을 그런 상거래에다 비유하기도 한다. 어떤 일을 벌이기 전에 비용을 따지고 수지가 맞을지 생각을 해야 한다. 사복음서 중에 이런 분위기를 가장 잘 읽을 수 있는 책이 단연 누가복음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몸과 머리 중에서 특히 머리를 나의 영적 유익을 위해 최대한 지혜롭게 동원해 보자. (발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역이용하여 잔머리를 굴렸고, 그 대가로 신약 성경에서까지 두고두고 악인의 대명사로 불리게 됐음도 기억하라) 하나님의 성품과 신앙생활의 본질을 가끔은 이런 방면에서 묵상하는 것도 나의 신앙을 더욱 성숙하게 하고, 능동적이며 다이나믹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거라 생각한다. ^^   * * * * *keepbible 가족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09:0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02 10:52:45 | 김용묵
한자는 어렵다라는 선입견 때문에 쉽사리 읽혀지지 않는 글이었는데, 오늘 이렇게 다시 와서 읽어보니 신기하고 새롭고 놀랍기까지 하네요. ^^* 한자에 관한 새로운 사실은 물론 한자가 성경과 이렇게나 가까운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줄은 그동안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정말 흥미롭네요. 고맙습니다~ ^---^*
2010-01-02 01:48:22 | 이은희
마냥 좋은 글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것이 있어 보입니다. 가령 성경 어느부분에 신약성도가 휴거되는지에 대한 부분의 설명 말입니다. 그런글이 같이 올라 있다면 참 좋은 글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니까 그럴 것이다가 아니고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라는 것을 원하니 다음번에는 그 부분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시면 어떨까요. 정확히 알고 싶어서 그런거니까 가르침 부탁합니다. 잘 몰라서....^.^;;
2010-01-01 21:29:41 | 장강
keep from 에서 from 을 따로 떼어내어 "그 때부터 지켜준다"로 해석하느냐, keep from 을 붙여서 "~로부터 지켜주다"로 해석하느냐를 가지고 의견이 갈립니다. 그런데 이런 논의는 별 의미가 없답니다. from 을 뭐라고 해석하건 간에 keep 이라는 단어 속에 이미 "~로부터 지키다"라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이지요.
2010-01-01 08:30:29 | 김문수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마틴 로이드-존스조차도 무천년주의를 지지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하나님의 모든 비밀을 알 수는 없겠고 또 각자 강점과 약점이 있겠지만 로이드-존스 목사님이 무천년주의를 지지했었다는 사실에는 좀 실망(?) 했었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샬롬~~
2009-12-31 12:47:47 | 이재연
휴거 얘기를 만나는 주변 친한 사람들에게는 거의 다 합니다. 얘기를 듣는 사람들 대부분이 흘려듣거나,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냐며 반문하거나... 어쨌든 난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정신병자 소리도 듣지요. 그러나, 안 할 수가 없어서 계속 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후로도 어느 정도 대화가 오가는 사람들에게라면 또 전하게 되겠지요. 하긴 예수님 믿는 것 만으로도 난 이미 주변사람들에게 이해 못 할 인물로 찍혀 있으니..휴거 얘기를 더 한다고 한들... 뭐. . 그 이미지는 그대로 있겠지요.
2009-12-31 07:21:17 | 백화자
ㅎㅎ 형제님의 글에선 박력이 느껴집니다.^*^ 그렇습니다. 요즘 로마서를 공부하고 있는데요, 하나님의 '의' 에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다는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전도의 관건이라는 것이죠. 사도 바울의 전도 방법처럼.. 감사합니다. 샬롬.
2009-12-30 20:49:37 | 김상희
아멘! 비밀이라 하시더니 드디어 올리셨군요. 잘 읽었습니다.^*^ 제 주위에서도 예수님의 재림이 너무 무섭다고 하는 착실한 교인(?)으로 여겨지는 한 청년을 만난적이 있지요. 세상에 미련이 있어서라면 이해할 수도 있겠다 생각되지만.. 순간 놀래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반문을 했지요. 뭘 크게 잘 못 알고 있는거라고.. 환난전 휴거에 대해 잠깐은 설명할 수 있었지만 귀담아 듣는것 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긴 얘기를 진지하게 나누지 못한채 상황을 벗어나게 됐죠.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한 채.. 좋은 글 감사합니다. 형제님^*^
2009-12-30 19:54:01 | 김상희
제가 좋아하고 친했던 한 자매님도 결국 이 문제 떄문에 다른 모임의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는데 환란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삶이 헤이하며 방자하다 여기시는 것 같지요. 사람들끼리 서로 자로 재며 저마다 누가 더 경건한가를 따지다가 결국엔 말씀까지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성경적인란 말로 판단하는데 예수님은 우리를 구속하러 오셨다는 기쁜소식을 무색케 하는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2009-12-30 15:03:19 | 정혜미
드디어 목사님께서 실명을 거론하시며 칼(?)을 빼드셨군요 ^^; 목사님 청지기님 글도 올려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이글로 인해 순복음교회와 성락교회 온누리 교인들이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겠네요^^;
2009-12-30 11:10:15 | 송재근
오늘날 예수님을 자신의 구원자로 영접한 거듭난 그리스도인 중에 확고한 교리 기반이 서지 못해, 잘못된 교리의 바람에 흔들려 밀려다니는(엡 4:14) 위태로운 처지에 있는 지체들이 적지 않습니다.  종말론이 그런 분야 중 하나이며 그 안에서도 대환란이 대표적인 걸림돌입니다.예수님의 전천년 재림을 믿긴 하는데, 그 전에 신약 교회가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대환란을 겪는 걸로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른바 교회 환란 통과 내지 환란 후 휴거 교리입니다. 예수님을 만날 날만 바라며 지내도 시원찮을 판에, 그보다 먼저 적그리스도를 만날 날부터 대비한답시고 벌벌 떨고 불안해하며 ‘저는 주님을 사랑하지만 적그리스도로부터 고문을 견딜 자신은 도저히 없으니, 제발 단칼에 목숨이 끊어지게 도와주십시오’ 같은 기도나 한다면, 과연 정상적인 신앙생활이 가능하겠습니까? (과거에 실제로 저렇게 기도를 한 분이 있었음) 교회 대환란 통과 교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인해 생겨난 오류입니다. 첫째, 성경을 바르게 나누지 않아서입니다. 특히 교회와 유대인을 구분하지 않고 성경을 잘못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계 4:1의 ‘이리로 올라오라’, 렘 30:7의 ‘야곱의 고난’, 마 24:13의 ‘끝까지 견디는 자’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은 환란 성도의 부활과 휴거에 대해서도 언급은 하고 있으나 그들은 신약 교회 성도가 아닙니다. 둘째, 구원의 영원한 보장 교리를 믿지 않아서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짐승의 표를 받았다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지옥불로 떨어지니 이걸 받지 않기 위해서는 교주가 시키는 대로 해야 된다는 논리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정면으로 부정하며, 저주받을 행위 구원 교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셋째, 기초 영어 지식에 무지해서입니다. 성경에는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서 특정 교리를 교묘하게 지지하는 뉘앙스가 들어갈 수 있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 그런 예를 다 다룰 수는 없지만, 종말론과 관련하여 가장 논란이 많은 예는 계 3:10의 ‘keep from’입니다. 이 구절의 의미는 각 단어를 모아서 해석하든 따로 해석하든 환란의 시각 ‘그 자체를 맞닥뜨리지 않도록’ 지켜서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하는’ 것입니다. from은 out of도 아니고 since도, during도 아닙니다. 끝으로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허락 하에 일상생활에서 겪는 박해(딤후 3:12)나 환란(행 14:22)을, 하나님의 진노인 그 전후무후한 대환란과 분간을 못 해서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대환란을 거쳐서 정화된 후 주님을 만나게 된다는 식의 교리까지 나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원래 지기로 돼 있는 십자가가 뭔지를 모르니까 남이 지는 십자가를 만들어서 지겠다는 발상과 다를 게 없습니다.환란 전 휴거는 그리스도인이 환란과 시험을 겪지 않는다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환란 통과론자들이 제일 잘못 알고 있는 부분입니다. 현 세상 정부와 공권력이 아무리 악하다고 한들, 최소한 성육신한 사탄 마귀 적그리스도의 직통 정부는 아니기 때문에 로마서에서도 크리스천 역시 가능한 한 순종하고 따르고, 특히 군대 징집에도 순종하라고 명령이 돼 있습니다. 그러나 대환란은 그리스도인들을 시험하고 연단하기 위해 있는 기간이 아닙니다! 이 차이를 아셔야 합니다. 대환란 때 순교하겠다고 버틸 믿음이 있으면, 그 믿음으로 이 세상에서나 사회생활 착실히 잘 하고, 술자리 같은 것 단호히 거부하고 특히 이 어려운 저출산 시대에 애도 셋 이상 듬뿍 낳아서 키우라고 하세요. (대환란은 우리 주님도 출산과 육아가 재앙이라고 인정하신 때임) 세상 경륜을 나누시고, 구원 받은 성도들을 건전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대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앞으로 세상이 아무리 타락하고 제정신으로 못 살겠고 주변에 혹세무민하는 유언비어나 교리가 나돌더라도 어떤 경우에도 동요하지 맙시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자신의 진노를 집행하기에 앞서, 구원 받은 우리를 남김없이 안전하게 데려 가십니다. 아멘!우리는 지하 벙커나 비상식량 따위는 전혀 준비할 필요가 없으니, 그 마지막 순간까지 각자 사회의 자기 위치에서 성실하게 믿음으로 삽시다. 하나님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이런 든든한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09:0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12-30 11:04:40 | 김용묵
인간의 모든 행위는 어느 영에서 유래되었냐에 따라서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네가 누구에게 말을 하였느냐? 누구의 영이 네게서 나왔느냐? (욥 26:4)  그분께서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어떤 영에 속해 있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눅 9:55.. KJV에만 제대로 적혀 있음)  또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계 20:12)A. 악한 행위 (마귀의 영)남이 잘 되는 걸 시샘하고 잘못 되는 걸 고소해하는 것, 남을 괴롭히는 걸 즐기는 것, 어떤 형태로든 살인자와 간음자의 성품, ‘나 하나쯤이야’ 하는 심보, 내게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남의 것을 부당하게 빼앗고 착취하고 싶어하는 심보, 배신, 변절 등...정상적인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나쁜 짓이라고 알 수 있는 일체의 행위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나쁜 짓은 전혀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할 줄 안다. 쇳덩어리가 제아무리 노력해도 물에 뜰 수 없듯, 사람이 원래 이런 근성이 있는 걸 어찌하겠는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B. 겉보기로 악하지는 않으나, 죽은 행위 (인간의 영)그런데 사람은 타락해서 죄를 짓는다고 해도, 죄가 죄라는 것과 죄의 결과가 나쁘다는 걸 인지조차 못 할 정도로 타락하지는 않았다. 살인이나 불효가 나쁘다는 것 정도는 예수 안 믿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안다. 사람이 너무 타락해서 죄에 대한 책임을 질 능력조차 없다면,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고 지옥에 보낼 수가 없으며, 실제로 선과 악을 스스로 분간을 못 하는 어린아이는 죽어서 지옥이 아닌 하늘로 무조건 간다.모든 사람들이 A처럼 살았다간 인류는 자멸할 게 뻔하기 때문에 인간들은 나름대로 죄를 억제하고 ‘제어’하는 여러 장치들을 고안해 냈다. 세상 정부와 법률, 군대, 교육 제도 같은 시스템을 만들고 각종 사상, 철학, 도덕, 교양, 인격, 예절, 명예 같은 개념을 생각해 냈다. 시스템 중에는 하나님도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의 입장에서 그 필요성을 인정한 것도 있다.이것을 가장 강조하는 조직 중 하나는 군대이다. 국가가 공인하는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인 만큼 군기와 규율, 명예를 목숨처럼 강조함으로써 그 잠재적 야만성을 감추고 포장한다.B는 ‘내가 대접 받고 싶은 만큼 남을 먼저 대접하라’는 황금률 정도는 알고 있다. B만으로도 언뜻 보기에 대쪽 같은 지조와 절개가 나올 수 있고 애국자, 열녀, 열사, 성인군자, 사상가, 독지가, 심지어 순교자가 나올 수 있다. B는 자부심과 자기 의를 강조하며 지극히 긍정적이다. 내게 돈만 있으면, 좋은 환경과 여건만 갖춰진다면 내 힘으로 의로워지고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내 개똥철학에 따라 내 소신껏 최선을 다해 선하게 살았다고 말한다.하지만 B는 선행에 대한 진짜 동기를 장담할 수 없다. 나중에는 십중팔구 가식과 위선으로 빠진다. 예를 들어, 이게 진짜 겸손인지 또 다른 형태의 교만인지 분별하기 어렵다. 황금률은 ‘어차피 난 더 잃을 게 없는데 이판사판이다’(안 주고 안 받기)란 사고방식이 왜 잘못됐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며, ‘긴 병 앞에 효자 없다’ 같은 한계도 드러낸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적인 선과 악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판별하지 못한다.또한 죄를 제어한답시고 인간이 만든 모든 시스템은 결국 또다른 허점을 만들어 낼 뿐이다. 가령, ‘종교가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적당하게 하나 있는 게 사람 인성에 좋다’고 무심코 내뱉기에는 종교 때문에 벌어지는 폐해, 부작용도 얼마나 큰가?제 아무리 교육을 많이 받고, 아무리 산업화가 진행되고 아무리 정치 제도가 왕정에서 민주주의로 바뀌어도 사람의 본성은 변함이 없다.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더라도, 그나마 B라도 있어서 A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사람을 독려하셨다. 남들보다 B의 비중이 월등히 더 높은 사람을 우리는 훌륭한 위인으로 떠받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B는 하나님의 앞에서 죽은 불완전한 행위일 뿐이며, 하나님 앞에서 결코 합격 판정을 받을 수 없다. 그저 A와 B 비율만 가지고 옥신각신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도토리 키 재기일 뿐이다.성경은 우리의 죄악이 더러운 누더기와 같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의 의조차 더러운 누더기 같다고 말하며(사 64:6), 최선의 상태에서라도 헛될 뿐이라고 말한다(시 39:5).C. 바른 믿음에서 나온 진짜 선한 행위 (하나님의 영)C는 B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하나님의 법은 우리더러 애써 지키라고 주어지기에 앞서, 우리 깜냥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룬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으라고.. 하나님 앞에서 항복하라고 주어졌다는 것을 인지한다. 나에 대해서 긍정적인 게 아니라 지극히 부정적이다.우리는 우리 힘으로 도저히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며, 우리를 죄에서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음을 믿는다. 천지에 그분의 이름 외에 구원의 통로가 없음을 믿고, 내 자아는 십자가에서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행동을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주관하도록 함으로써 하나님의 선을 아주 쉽고 자연스럽게 이루도록 한다.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고 나는 그분의 선을 유통하는 사람일 뿐이다. 위선이고 가식이고가 있을 수 없다.‘그런 식으로 살았다간 눈 뜨고 코 베인다. 바보 병신 신세 되고 사회 생활 제대로 할 수가 없어진다’고 주위에서 막 빈정거리지만... 그런 빈정거림에 성질을 내던 내 옛사람은 어차피 죽었으니 거기에 반응할 필요가 없다. 진짜로 사회 생활 제대로 못 하는지, 굶어죽는지는 그건 생산자인 하나님이 책임질 일이고, 난 성경에 기록된 대로만 자발적으로 잘 행하면 된다. 게다가 이 세상은 어차피 내 진짜 집이 아니며, 잠시 머물러 가는 곳일 뿐이다. 진짜 좋고 영원한 집은 하늘에 따로 있다!그러니 남이 알아주든 말든, 내가 손해를 보든 말든, 심지어 다른 동료 성도가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다. 성경만 있으면 세상 트렌드가 어떻든 제아무리 똑똑한 지성인이 코멘트를 하든 절대적인 선과 악의 구분은 뚜렷하다. 사도들 중에 누구는 순교하고 누구는 탈옥한 게 하나님 마음대로였듯이. 그리고 환경과 여건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북한에 살든 남한에 살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보상도 못 챙길 정도로 너무 열악한 환경이란 없다.당연히 예수쟁이라 해도 로봇이나 좀비가 아니며, 자유 의지와 감정이 있고 육신이 있다. 늘 저런 모드로 사는 게 아니다. 육신이 자꾸 살아난다. 제일 수준이 낮은 A의 영향을 받을 일이야 잘 없겠지만(전혀 없다는 건 아님), 겉보기로 그럴싸하고 번드르한 B와 그렇지 못한 C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려는 유혹이 늘 찾아온다. 그럴 때 실수로 육신에게 기회를 또 줘 버리면(롬 13:14) 앗차 실수하는 것이며, 기도와 믿음으로 극복하면 이기고 영적 능력과 경험치가 상승하며, 예수님의 형상으로 좀더 다가가게 된다. 정신 건강에 이로운 건 부수적인 소득일 뿐이다....그렇다.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허락한 이 악한 세상 하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의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경영 방식에 순응하여 믿음으로 한 선행만이..바로 하나님이 인정하고 훗날 놀라운 보상으로 되갚아 주실 진짜 선행인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서 C의 양만을 평가하신다. C만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금은보화로 드러난다(고전 3:12). 믿으려면 이런 걸 믿어야 한다. ‘주여 믿습니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 주십시오’라고 간구하면 그분께서 믿음을 북돋워 주신다. (막 9:24)세상에서 직싸게 고생하고 노력해서 B를 잔뜩 축적했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허사가 될 것이다. 차라리 히틀러처럼 나쁜 짓 깽판 실컷 부리고 나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면 모를까, 저건 선행 하느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서 이거 무슨 낭패란 말인가! 그런데 따지고 보면 B는 어차피 세상 사람들로부터 이미 좋은 평판으로 보상을 받아 버린 경우가 많기 때문에(마 6:1-2 같은. 눅 16:15, 요 12:43도 참고), 하나님이 참작하셔야 할 이유가 더욱 없다.그리고 C 게이지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보상은 고사하고 구원도 못 받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인간 중에 악한 성품인 A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A를 벗어나고자 끈질기게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A의 대안으로 일컬어지는 B의 한계에 맨날 좌절하곤 한다. 그럴 때 신을 원망하지 말고 오히려 이 현실을 참 하나님을 찾는 기회로 삼아라. 하나님이 어설프고 불완전한 B라는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정말 놀랍도록 의롭고 공정한 C라는 잣대를 누구에게나 제시하셨음을 받아들이기 바란다. 이 사실은 아직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에게는 구원으로의 초대가 될 것이고, 이미 구원 받은 성도에게는 영적 각성을 촉구하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다.   * * * * * * “예수 안 믿고 착하게 사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 다 지옥 가나?” “평생 나쁜 짓만 하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 믿기만 하면 천당 가냐?” 부류의 복음과 관련된 온갖 유치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될 것입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09:0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12-30 01:10:43 | 김용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