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면 사람이 없는 시간은 아닐꺼 같은데 한낮의 더위를 피해서 저녁에 물뜨러 오지 않을까요 하지만 6시는 해넘어가는 어두워 지는 시간이라 꼭 그렇다고 보기 애매하기도 하고 보통 설교때 이 여인이 결혼을 많이한 여자라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물뜨러 다닌다고 많이들 말씀하셔서 낮 12시로 많이 알려진듯해요 성경에는 여자가 사람들 피해댕긴다는 말씀이 없는거 같은데 어디서 나온 근거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저는 오후 6시로 알고 있을래요 어쨋든 12시든 6시든 밥먹을시간인거는 분명함 예수님도 배고프실 시간ㅎㅎ 밥먹고 합시다~!!
2010-06-09 13:11:53 | 변경진
그렇군요.
저는 여전히 재판 부분 외에는 정황적 증거밖에 없다고 알고 있는데, 요한복음이 로마 시간이냐 유대 시간이냐를 놓고 여러 의견이 있는 것 같더군요. 로마 시간이라는 주장은 좀 이상한 교단에서 주장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서 다소 거부감을 가졌었는데, 어느 쪽을 믿든 교리적 문제를 불러오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시간을 언급한 네댓 군데의 기록 중 빌라도의 재판에 관한 6시는 로마시간으로 아침 6시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만 다른 부분은 사건의 정황을 해석하기에 따라 로마 시간에 적합한 부분이 있고 유대 시간에 적합한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그중 수가의 여인 사건을 저녁 6시로 본다면 그곳에 사람이 많았을 것이므로 정오로 판단해 인적이 드문 시간이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지만 그렇다 해도 시간을 들어 극적인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음은 물론입니다.
양 형제님께 제가 혼란을 드린 것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2010-06-09 11:52:48 | 김재욱
백두산기행단은 취소되었습니다. 중국교회를 돌아보러 개인적으로 갑니다. 원하시는 성도들 개별참여 가능합니다.
2010-06-09 11:42:22 | 김재근
비교적 최근 작품인 (그래 봤자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만 빼고 나머지는 다 20년 가까이 전, 제가 무려 초등학교 저학년 나이일 때 만들어지고 방영된 광고입니다.
사물에 대한 고정 관념과 편견이 형성되기 전, 어렸을 때 접한 영상물이 정말 평생 가더군요.
그래서 성경이 아직 애의 사고의 틀이 유연할 때 올바른 자녀 교육(특히 의로 양육하기)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6번 은 굉장히 잘 만들었죠. 20년 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건 몰라도 이걸 기억하는 분들은 꽤 계시네요. 제가 아는 게 맞다면 무슨 국제 광고 페스티벌에서도 입상했다고 합니다.
어젯밤 잠자리에서 떠오른 아이디어: 성경 구절이 하나씩 싹둑싹둑 잘려나가는 걸 CG로 아주 살벌하게 묘사하면서 당신이 읽는 성경은 본문이 온전합니까? 이런 광고는?? ㅋㅋㅋ
2010-06-08 09:59:58 | 김용묵
머리가 나쁜건가 ? 6,7번빼고는 잘 모르는 광고인데요...^^
김용묵 형제님, 글들을 보면 사고의 틀이 참 특이하신 것 같습니다.(좋은 말입니다.)
글 감사히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2010-06-08 08:43:33 | 김학준
저는 4, 6, 7 번 광고가 기억이 나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예전의 광고들은 정말 다소의 살벌함이 가미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또한 저 광고문구들에 이런 것을 넣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 '편안하다. 안전하다' 방심하고 계십니까?
당신이 졸며 자는 사이, 예수님이 오실지도 모릅니다."
2010-06-08 01:33:37 | 이은희
잘 보았습니다.
2010-06-07 21:44:17 | 시님사람
연길에 사시는 성도님들의 사진을 보니 마음이 더 확장되는 것 같습니다.
그 분들도 우리의 모습을 보고 반가워했음 좋겠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이 ..??
이번 여름 중국여행이 성사되면 뵐 수 있을텐데... 좋고 편리한 것만 추구하던 이 세상에서
벗어나 뒤를 돌아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2010-06-07 14:02:28 | 정혜미
참으로 귀한 소식이네요.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이 정말 우리의 '지체'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06-07 13:21:04 | 김재욱
기억력이 참 좋으시군요. 몇 가지는 생각 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기억 못할 옛날이지만, 초창기 공익광고의 압권은 역시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가 아닐까요...
이젠 덮어놓고 낳으라고 아우성인 세상으로 어느새 바뀌었지요.^^
2010-06-07 13:19:46 | 김재욱
저도 처음 킹제임스 성경을 알면서 양동현님과 똑같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전의 요한복음 성경공부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정오에 오게되며
그 정오에 예수님께서도 만나주셨다는 것을 매우 매우 강조하여 배우고 또 가르쳤기 때문에 말이죠.
저는 요한복음이 당연 로마시간으로 쓰여졌다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오히려 꼭 유대인의 시간일 이유는 없으며
예수님의 재판시간으로 볼때 너무 쉽고 단순하게 풀린다고 생각합니다.
요한복음이 쓰여진 시기는 예루살렘이 망한 뒤인 AD90년 경이라 알고있는데
다른 세개의 공관복음과 달리 로마시간으로 쓰여진 것이 더 자연스럽게 생각됩니다.
암튼 유대 시간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양동현님처럼
우리가 사실로 배우고 극적인 감동을 받고 있었던 것이
작은 것에 대한 오해로 말미암아 그저 보태어 생각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배운 계기였었죠.
2010-06-07 11:17:57 | 김선희
형제님 소식을 이곳에서도 접할 수 있어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2010-06-07 00:11:07 | 김용묵
1. 주제: 공중도덕파란 정장 차림의 한 남성이 갑자기 털이 북실북실 나면서 원숭이로 변한다. 그리고는 새치기, 운동 경기장에서 난동 등 갖가지 추한 행동을 다 한다.거의 1990년대 초반에... 엄청 옛날에 본 광고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옛날엔 그러고 보니 전화기도 다이얼이요, TV도 채널 바꾸는 다이얼이 있었구나.사람 얼굴이 원숭이 얼굴로 바뀌는 CG가 하도 엽기적이고 흉악했던지라, 초등학교나 그 이전에 봤을 장면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다.
2. 주제: 환경어느 아날로그시계가 물속에 빠져서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그런데 시계 바늘은 째깍거리면서 점차 자정으로 다가가고, 물은 점점 흐려지고 더러워져서 시계를 볼 수가 없게 된다. 아마 시계도 고장 나서 작동을 멈췄지 싶다. 어린 나이에 보기에 은근히 무서운 인상을 받았다.
3. 주제: 환경남녀 어린이들이 하얀 세트장에서 놀고 있는데, 바닥 곳곳이 시꺼멓게 변하고, 그런 구역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이 있을 수 있는 공간도 갈수록 좁아진다. 애들은 겁에 질리고...이것도 보기 무서웠다.
4. 주제: 과소비새까만 세트를 배경으로 어느 중년 남성과 여성이 번갈아가면서 풍선을 분다. 부풀어 오르는 그 풍선에는 외제차, 고급 양주, 보석 등의 사진이 번갈아가며 오버랩된다. 그러다 나중에 풍선은 펑! 터지고 “과소비는 나라 경제를 어렵게 만듭니다”라는 무거운 멘트가 나간다.닥치고 근검 절약 국산품 애용하자고 한창 밀어붙이던 5공스러운 이념이 좀 담긴 공익 광고이긴 하나, 오늘날도 곱씹을 가치는 있는 내용이다.
“국민 소득 4천 $. 소비 수준은 2만 $.” 와.. 정말 언제적 멘트냐..;;옛날 <과학의 노래>에서 수출 100억 $, 국민 소득 1천 $.. 이랬지 싶은데.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는 아직 국민 소득 2만 $에는 도달 못 해 있다. 흠좀무.
5. 주제: 에너지 절약다른 건 기억 안 나는데, 나중에 석유 드럼통이 견디질 못하고 옆으로 쿵! 쓰러지는 장면이 나온다.
6. 주제: 음주 운전사고로 처참하게 부서진 차 옆에 운전자가 바깥까지 튕겨나간 채 죽어 있다. 그런데 카메라의 역방향 재생이 시작된다. 차가 다시 원래 형태로 돌아오고 운전자가 다시 운전석으로 쓰윽 돌아온다. 차는 비틀거리면서 한없이 후진을 반복하는데... 재생이 끝나는 곳은, 바로 운전자가 술잔을 거하게 짠~ 부딪치는 지점.나름 참신하게 잘 만든 광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름은 되돌릴 수 있어도 생명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술 마시고 나서 '필름 끓겼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니 무척 잘 만든 광고 카피이다. 마치 “5분 먼저 가려다 50년 먼저 갑니다”처럼 말이다.
요즘은 음주 운전뿐만 아니라 '운전 중 전화질'도 안전을 아주 위협하는 요소로 등극한지라, 외국에서는 Don't text and drive라고 교통사고 장면을 꽤 노골적으로 잔인하게 묘사한 공익 광고가 만들어지기도 했다.그나저나 음주 운전 단속은 꽤 엄격하게 하는 걸로 아는데, 우리나라는 성 범죄는 여전히 왜 이리도 술에 관대한 걸까?
7. 주제: 언어 순화앵무새가 “저 녀석! 저 녀석!” 이라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학습한 말을 흉내 내는 게 나온다.평소에 앵무새 주인이 말을 험악하게 하다 보니, 말을 조심해야 할 곳에서 앵무새가 자기 주인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나름대로 시간 순으로 배열했다. (1 oldest, 7 latest)기억에 남는 공익 광고들을 나열해 보니까 은근히 많네... 혹시 이런 것들 기억하는 분은 없으신지?...
저기까지 쓰고 났는데,http://www.kobaco.co.kr/ 에서 위의 공익 광고 방송들을 다 열람해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참 대단하다. -_-;; 그래도 내 기억도 상당히 정확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1990 늑대인간 (원숭이가 아니었네. ^^)1989 생활하수1990 런칭1989 풍선1990 스위치1991 필름역회전1995 앵무새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점이 있다.옛날의 공익 광고들은 요즘 광고보다 정말 훨씬 더 무섭고 섬뜩한 게 많다는 것!!
이건 단순히 본인이 나이가 들고 감수성이 무뎌져서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다.(이 글은 처음엔 그냥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다가만 꿍쳐 놓으려고 했는데, 이 점 때문에 뭔가 영적으로 나눌 게 있음을 발견하고 이곳에다가도 올린다)
마약이나 환경 오염 내지 안보가 주제인 것들... 지금 다시 봐도 정말 무섭다..
반대로 요즘 광고들은 노골적인 공포감과 혐오감, 동정심 조장하는 장면은 싹 사라지고, 메시지가 더욱 implicit(간접· 암시적)해졌다.
가령, 옛날 광고에서는 무질서 난동 부리는 나쁜놈을 저렇게 원숭이로 묘사하여 노골적으로 깠다면, 요즘은 마치 서울 메트로 광고처럼 럭비 선수에다 비유해서 “님들은 럭비 선수가 아닙니다. 지하철 탑승을 그렇게 하는 건 반칙입니당*^^*”이라고... 재치를 동원하는 식.
환경을 소재로 한 광고만 해도, 옛날에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하게 주변 환경이 시꺼매지고 더러워지는 모습, 폐수 버리는 모습, 물고기들이 몰살 당해 물에 떠오른 사실적으로 묘사한 반면, 1996년도 광고를 보면 그냥 민속 그림을 CG로 애니메이션화해서 보여주면서 “그 (물이 깨끗하던) 시절이 정말 그립습니다”라고 표현의 수위가 한결 누그러져 있다. (1996년, 맑은 물이 그립습니다)
헌혈을 장려하는 공익 광고를 만든다면 어땠을까?198, 90년대에는.. 막 피 부족해서 죽어가는 애들 내지 병원의 무시무시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피가 부족합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런 식으로 광고를 찍었을 것이다.그러나 2008년도 작품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표정>을 보면.. “헌혈을 위한 1초의 찡그림(주사 바늘 꽂히니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표정입니다. 당신의 얼굴은 잠깐 찡그려지지만 누군가의 얼굴은 평생 활짝 피어납니다.”뭔가 진지하거나 심각한 뉘앙스를 찾을 수 없다. 딱 긍정적인 심상만 집어넣은 것이다.
유머와 위트, 재치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니지만..수십 년간 영상 문화가 인류의 문명 사회를 지배하면서, 그 패턴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그저 육신적으로 즐겁고 재미있게 하는 쪽으로만 치달아 왔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요즘은 심지어 비행기 안에서 방영되는 안전 수칙 안내 동영상도 사람들이 따분해서 잘 안 보니까, 애니메이션, CG, 아역 배우까지 동원해서 최대한 재미있게 만들려고 난리라고 한다.
이런 영적 상태가.... 심판, 지옥, 죄, 사망, 복음 이런 것을 그것도 선포라는 어리석은 방법으로 전하는 것과는 도저히 어울릴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 전세계가 아예 무슨 북한 같은 기독교 박해 상황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사람들은 기독교가 전혀 아닌 것을 기독교인 줄로 알고 그걸로 마음이 굳어져 있다. 그래서 더욱 영적으로 암울한 건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광고 작가이고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30초 동안 증거하는 영상물을 만들게 되었다면 어떻게 기획하겠는가? 혹은 크리스천들을 대상으로 어떤 교리를 권면, 계몽하는 영상 공익 광고를 만들다면 무슨 소재로 어떻게 만들겠는가? 잠시 생각을 해 보자. ^^;;
광고 카피로 들어갈 만한 멘트 내지 성구들:
“그곳에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습니다”“육신으로는 결코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이래도 은혜에서 떠나 율법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당신의 진주를 개· 돼지에게 던지시겠습니까?”
“바로 이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각 멘트에 대응하는 영상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1:57:3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6-07 00:09:53 | 김용묵
귀한 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함께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샬롬!
2010-06-06 22:51:35 | 송재근
바른 성경에서 바른 교리가 나옵니다. 제가 이전에 개역성경을 사용할 적에 귀신론을 주장하는 목사를 만났는데 그 목사가 성경에는 마귀, 사탄, 귀신 이란 세가지가 나오는데 마귀와 사단과 귀신이 다 다르기 때문에 성경에 그렇게 기록을 했다는 것입니다. 귀신은 국어 사전에서도 죽은자들의 넋으로 되어 있는데 귀신이란 이름을 성경에 사용한 것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죽어서 귀신이 되어서 사람들 속에 들어와서 병을 주는 것이 맞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들이 말이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반박할 힘이 없었습니다.
방언 같은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바른 번역의 성겨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일이지요.
2010-06-06 11:55:06 | 시님사람
5월 30일날 저녁 기차를 타고 연변 지역에 가서 형제자매님들과 함께 지내다 왔습니다.
주일 저녁 9시 15분에 기차를 탔는데 이틑날 아침 8시반에 연길에 도착했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이번에 또 주님이 어떻게 일을 하실지 기대가 되었고 기도가 되었습니다.
특히 이번에 작년봄에 복음을 전해서 구원을 받은 백자매님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 자매님이 그 후로 연결이 되지 않아서 답답했는데 이번 연길 모임에 오셔서 참 기쁘고 감사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다는 모이지 않았지만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고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저 외에 7명이 모였는데 정말 감사가 되었습니다.
31일날 모임에서 제가 마태복음 8:1-15 에 말씀을 가지고 [믿음으로]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었는데 말씀을 전하는 저에게도 더욱 은혜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재미가 있는 것은 연길에 형제자매님들이나 제가 다 불구자나 몸이 좋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들이 구원을 받았고 또한 킹제임스 성경으로 모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운 은혜었습니다.
조선화 자매님은 거의 소경인데 자신이 소경이 되지 않았다면 절대 구원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간증하면서 자신을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모습을 보니 또 감사가 되고 김순금 자매님은 젊은 나이지만 당뇨로 힘들어 하고 있지만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는 모습을 보니 참 감사가 되었습니다.
김길동 형제님도 직장생활에 힘들게 살고 있지만 우정 시간을 내서 모임에 끝까지 참석하고 갔습니다.
저는 지금 고전1:26-29 말씀이 생각이 나는데 참으로 성경에 말씀처럼 [어리석은 것들, 약한 것들, 천한 것들, 멸시받는 것들.......]이러한 우리를 불러서 구원해 주셨다는 마음이 들면서 감사가 됩니다.
이번에 연길에 형제자매님들을 에게 식당에 데리고 가서 식사도 사드리고 왔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한국에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열심히 선교헌금을 보내주시는 목사님들과 형제자매님들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여러부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아래에 연길에 가서 형제자매님들과 찍은 사진을 보여드립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3: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6-06 11:30:24 | 시님사람
우리가 쓰는 찬송가도 본래는 미국에서 쓰던 복음성가였다는 사실이 알아주시길...
2010-06-06 07:12:38 | 신금호
지금부터 약 500년 전에 칼빈에 의해 만들어진 칼빈주의 사상들은 세계 곳곳의 많은 교회에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이것은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신정정치를 신약시대에 구현하기 위해 고안된 신학 체계입니다.
칼빈주의의 해악 중 가장 큰 성경을 성경으로 풀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부분에 가면 영해를 할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 시스템은 말세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 말씀의 위로를 주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을 다시 저 중동 땅에 데려오신 하나님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입니다.
바로 그분이 환난 전에 우리를 하늘로 채어 올리십니다.
그리고 이 땅에 천년왕국을 세우십니다.
그런데 칼빈주의는 이런 것을 반대합니다.
칼빈주의는 어거스틴에게서 나옵니다.
어거스틴은 연옥을 창시한 사람입니다. 천주교의 모든 교리 체계를 확립한 사람입니다.
이런 뿌리에서 나왔기에 칼빈주의는 비성경적입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것을 바로 알고 성경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2010-06-04 12:40:22 | 관리자
게시물 옮겨봅니다 - 저도 새롭게 알게 되네요
질문: 느브갓네살인가요, 느브갓레살인가요? 왜 킹제임스 성경은 동일 인물의 이름을 달리 표기합니까?
대답: 성경에서 느브갓네살이라는 이름은 왕하24:1에 처음으로 나오며 느브갓레살은 렘21:2에 처음으로 나옵니다.
여호야김 시대에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 동안 그의 종이 되었다가 그 뒤에 돌이켜 그를 배반하였더니(왕하24:1).
바빌론 왕 느부갓레살이 우리를 치려고 전쟁을 일으키니 원하건대 우리를 위하여 주께 물으라. 주께서 자신의 모든 놀라운 일들에 따라 우리를 다루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 올라가리라, 하니라(렘21:2).
킹제임스 성경을 보면 동일 인물에 대해 느브갓네살은 60회, 느브갓레살은 31회 나옵니다. 흥미 있는 것은 느브갓레살이 예레미야와 에스겔에만 나온다는 점입니다. 한편 느브갓네살은 열왕기하, 역대기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다니엘에 나오며 예레미야에도 10회나 나옵니다. 이 이름들은 바빌론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서 유다를 포로로 잡아간 인물의 이름입니다.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은 부주의하게 느브갓네살이라는 이름만을 사용하지만 영어 KJV 번역자들은 두 종류의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신실하게 히브리말을 보존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같은 사람에 대해 두 이름을 사용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핸슨 교수(James N. Hanson)가 가장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그분은 지난 몇 백 년간의 주석서들을 비교하고 각각의 이름이 나올 때의 문맥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뒤 그는 느브갓네살은 ‘고귀한 보호자’를, 느브갓레살은 ‘고귀한 종’을 뜻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다시 말해 느브갓레살은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수행하는 도구로 쓰일 때 사용되었고 느브갓네갈은 단순히 그의 역사적 행보를 기록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자세히 분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느브(Nebu) : 느보를 가리키며 바빌론의 태양신처럼 고귀한 존재를 나타냄.
갓(chad) : 갈대아를 줄인 말로 바빌론의 제사장 계급을 뜻함.
네(nez) : 보호자
레(rez) : 종
살(zar) : 왕(러시아의 짜르, 카이사르 등이 같은 어원임)
2010-06-03 08:33:55 | 정재훈
성경공부 - 성경Q/A - 열왕기하에 있는 게시물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느브갓네살인가요, 느브갓레살인가요?"
2010-06-03 00:14:59 | 김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