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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10월, 애플 사의 창업자로서, 그리고 최근에는 아이팟과 아이폰 덕분에 IT계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도 매우 친숙한 인물이 된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세상을 떠났습니다(1955~2011. 10. 5.). 그때 전세계 언론의 관심이 그에게 집중되었습니다. - 유복한 집안에서 실패라는 걸 모르고 자라고 지금까지 줄곧 승승장구만 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는 달리, 기복이 심하고 드라마틱했던 인생사- 실패한 프로젝트 때문에 자기가 세운 회사로부터 쫓겨났지만, 다시 경영자로 복귀 후 회사를 기적적으로 회생시킴- 디자인을 좋아하는 학문 융합 기질- 프레젠테이션의 달인- 개인 인격은 상당히 괴팍한 구석이 있으며, 직장 상사로서는 그리 좋은 타입이 아니었다 함- 기독교나 성경과는 거리가 먼 개인 취향과, 다소 동양 철학적인 가치관   이런 사항들이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 조금만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저런 드라마틱하고 인간으로서 불완전한 면모가 대중들로 하여금 그에게 더욱 열광하게 만드는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로부터 1주일 남짓 뒤, 정말 IT계의 전설적인 인물이 세상을 떠났을 때 관심을 보인 언론은 제가 알기로 거의 없었습니다.그 사람은 바로 데니스 리치(Dennis Ritche 1941~2011. 10. 12.).   데니스 리치는 유닉스 운영체제의 개발자 중 하나였고, 무엇보다도 이 운영체제의 개발을 위해 그 이름도 유명한 C언어를 고안한 사람입니다. C는 가히 프로그래밍 언어계의 라틴어이며, 후대의 C++, D, Java, PHP, C#, 심지어 Objective C 등 수많은 파생 언어들의 사상적 근간을 마련했습니다.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소개할 때 Hello, world!라는 문자열을 찍는 예제 코드를 제시하는 관행도 이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데니스 리치의 업적을 알 만한 전산학 전공자는 흔히 Goodbye, world!라는 문구로 그의 죽음을 알리곤 했습니다. 본인 역시 인터넷을 통해 저 문구만 딱 보고는 “혹시 그 사람이 죽었나?” 하는 생각이 곧바로 들더군요.   Windows 운영체제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만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솔직히 스티브 잡스의 영향을 전혀(아니면 최소한 '거의') 받지 않고 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컴퓨터를 다루는 사람치고 어떤 형태로든 데니스 리치의 사상과 연구 결과물을 활용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매킨토시, 맥북 등 애플 사의 솔루션도 다 그것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죠.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더 정확히 말해 대중들의 평판은 이 정도로 차이가 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2.   여담입니다만, '스티브 잡스'와 '데니스 리치'의 공통점과 차이점은본인 같은 KJV 성경 신자에게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란셀롯 앤드류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연상시킵니다.잡스와 리치가 사망 시기가 서로 비슷한 인물이라면, 셰익스피어와 앤드류스는 출생 시기가 비슷한 인물이지요.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박노찬 형제님께서 <두 사람의 재능>이라고 좋은 글을 쓰신 적이 있으므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http://rom1210.net/bbs/zboard.php?id=sharing&no=9   윌리엄 세익스피어와 란셀롯 앤드류스!  이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태어나서 같은 국가에서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의심의 여지없이 천재적 재능의 소유자들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윌리엄 세익스피어를 알고 있다. 그러나 란셀롯 앤드류스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 사람은 창조주로부터 받은 자신의 놀라운 재능을 사용해서 '영원히 하늘에 보존될 하나님의 말씀'을 번역하고, 그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데 그의 능력과 에너지와 열정을 바쳤다. 다른 한 사람은 동일한 창조주로부터 받은 자신의 놀라운 재능을 사용해서 '이 땅이 불탈 때 함께 없어질 이야기들'을 짓는데 자신이 가진 전 재능과 능력과 열정을 바쳤다. 두 사람의 작품 모두 시대를 초월한 명작이 되었지만, 한 사람의 작품은 자신의 창조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한 사람의 작품은 한 줌 흙에 불과한 피조물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데니스 리치가 하나님 보시기에 란셀롯 앤드류스에 필적하는 업적을 남겼다는 뜻은 아닙니다. 과학 기술은 그 자체에 영적인 배후나 선악 이념이 담겨 있지는 않지요. 단지, 어떤 고인에 대한 세속의 평가가 학계 내지 동일 업계 종사자의 평가와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을진대, 하나님의 평가와는 얼마나 차이가 날 수 있을지 우리는 한 번쯤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3.   다음으로 아주 비극적인 사례가 있습니다.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좀 지났는데, 필립 카츠(Phil Katz 1962~2000. 4. 14.)라는 천재 프로그래머가 있었습니다.그는 수학과 전산학의 달인이었고, 그 이론을 바탕으로 데이터 압축 기술을 최초로 컴퓨터계에 보급했습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널리 퍼진 압축 방식인 ZIP 알고리즘을 처음으로 발명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겨우 23세였다고 합니다. (하긴, 그 나이 때 John Carmack은 이미 Doom 게임을 개발해 냈지요.)     네트워크의 트래픽을 줄이고 데이터의 전송 비용을 줄여 주는 획기적인 기술이었죠. 옛날에 도스 시절에 압축 프로그램의 사용법을 익히지 않을 수 없던 계기는 십중팔구 PC 통신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았습니까?PK라는 그의 이니셜은 오늘날 수많은 실행 파일(EXE/DLL)들의 첫머리에 새겨진 MZ와 더불어, 가장 대중적인 파일 포맷을 식별하는 문자열입니다. (MZ는 도스 EXE 파일 포맷을 설계한 엔지니어 Mark Zbikowski의 이니셜)   그는 젊은 나이에 회사를 창업하여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그러나 그는 너무 젊은 나이에 성공하면서 엄청난 부를 감당하지 못했고, 이내 자기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한 방탕한 생활에 빠졌습니다. 술과 여자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그러다 그는 겨우 37세의 나이로 호텔에서 만취 상태로 객사하고 말았습니다. 간은 샛노랗게 변해 있고 췌장에 출혈이 생긴 전형적인 중증 알코올 중독자의 죽음이었습니다. 발견 당시에도 손에는 위스키병을 움켜쥐고 있었다고 합니다.http://kldp.org/node/9816   겨우 복권 당첨 졸부도 아니고, 앞날이 창창한 유능한 컴퓨터 천재의 죽음이었기 때문에 이는 당시 IT계를 큰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그리고 이는 갑작스러운 세상적인 성공 뒤에 숨겨진 채 파괴되어 간 한 인간의 내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에 대해서 더욱 할 말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4.   컴퓨터 쪽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 다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1~3만치 유명한 경우는 아닙니다만, old timer라면 기억하시려나 모르겠군요.   바로 Alley Cat! 저는 초등학생 시절에 많이 해 봤습니다.코드(물론 어셈블리어로 직접 코딩)와 데이터가 겨우 6만 바이트 안에 다 들어가는 이 게임을 만든 Bill Williams (1960~1998)는... 게임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다가 나중에는 이를 그만두고 아예 신학교에 가서 신학 석사 학위를 받은 사람입니다. Naked Before God: The Return of a Broken Disciple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http://www.amazon.com/Naked-Before-God-Return-Disciple/dp/0819217395   1960년생이니 Alley Cat이 개발된 1983~1984년은 pkzip이나 Doom이 만들어졌을 때의 개발자의 나이와 역시 비슷하군요!천재들은 다 20대 중반이 되기 전에 작품으로 이름을 하나 남기는가 봅니다. 이 사람도 필립 카츠와 동일한 30대 후반의 나이로 요절합니다. 지병 때문에, 신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최후를 맞이한 방법이 필립 카츠하고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도 병마와 싸우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그가 고뇌하고 하나님을 발견하고 묵상한 흔적이 <Naked Before God ...>에 녹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저서는, 배경은 예수님 시대이지만 사무엘 깁의 <고통과 함께하는 삶> 같은 자서전적 소설인 것 같습니다. 1980년대 비디오 게임의 선구자라는 이미지와는 영 안 어울리지요?   지금까지 글의 제목이 가리키는 대로, 우리는 스티브 잡스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세상에 있지 않은 몇몇 IT계 거장들의 인생 행로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글에서 언급된 몇몇 소수의 컴퓨터 천재들처럼 똑똑하지도 못하며, 결정적으로 그런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이제는 사회 구조적으로 옛날처럼 그렇게 갑작스렇게 대박을 내고 벼락부자가 되기란 매우,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바른 말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짜 성공하고 참 행복을 얻는 법을 압니다. 하나님은 비범한 사람도 만드시고 그냥 평범한 사람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따르는 의지와 구원 방법은 지적 능력에다 두지 않고 사람의 양심과 믿음에다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두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유명하고 높은 사람이 되든 그렇지 못하든, 재능으로 치면 5달란트를 받든 1달란트를 받든, 금그릇이든 질그릇이든, 세상으로부터 호평을 받든 악평을 받든 절대적인 기준에 따라 흔들림 없이 만족하며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진짜 인생 역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컴퓨터만 해도 거기에 빠져서 중독되거나, 아니면 반대로 무조건 배척만 하는 게 아니라 올바른 목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라도 직함 없이 사람을 이름만으로 부르십니다. 이는 당연한 귀결이지요.나의 모든 내면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뭔가 잘 했다는 칭찬을 받는 행적을 남기고 싶습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목표가 되어야겠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7:2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2-16 13:36:41 | 김용묵
다음은 종말의 시간표를 요약해서 보여 주는 글입니다(종말 시간표).   http://www.biblicist.org/bible/chrono.shtml#judchrist   영어로 되어 있지만 간단 간단하게 되어 있으므로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론 계기가 되면 역시 강해하도록 하겠습니다.   샬롬
2011-12-13 11:37:58 | 관리자
우리는 환난 전 휴거를 믿습니다. 성경을 일관성 있게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이 결론이 나기 때문입니다.   다음 사이트는 환난 전 휴거에 대한 기사들이 들어 있는 사이트입니다. 영어로 되어 있지만 조금 연구하면 쉽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http://www.pre-trib.org/   감사합니다.
2011-12-13 10:58:06 | 관리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우리의 보상은 무엇이 될까요? 당신은 영원한 보상에 관심이 있습니까? 영원한 보상 말입니다.   다음은 우리의 선한 행실을 촉구하는 좋은 글입니다.   http://www.pre-trib.org/data/pdf/Whitcomb-TheJudgementThroneBe.pdf   http://www.jesusplusnothing.com/studies/online/rewards1.htm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대비하면서 살기 바랍니다. 영어로 되어 있어 어려운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추후에 계기가 되면 강해하겠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힘들 때에 장래의 보상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샬롬.
2011-12-13 10:54:59 | 관리자
계시록 19장에 나오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혼인 만찬의 차이에 대한 글이 있어 올립니다. 영어로 되어 있어 어려운 분들도 있겠지만 일단 좋은 자료이므로 올립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강해하도록 하겠습니다.   http://www.pre-trib.org/data/pdf/Ice-TheMarriageSupperoft.pdf
2011-12-13 10:34:33 | 관리자
 김문수 형제님의 글을 보고 댓글을 달다가 글이 길어져서 따로 쓰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이 되면 매번 나누어 주던 전국 초등학생들의 공통 방학숙제였던 탐구생활이란 책이 있었습니다.저는 매년마다 방학식을 하면서 이번에는 반드시 계획을 잘 세워서 보람찬 방학을 보내고 방학숙제도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하겠다는 다짐을 했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그냥 늘어지는 생활을 계속하다가 슬슬 개학날짜가 가까이 오면 급한 마음에 부랴부랴 밀린 숙제들을 뒤적거리면서 대충해가곤 했습니다. 아무래도 그냥 학교에 가기에는 선생님의 숙제검사 시간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죠.   로마시대에 살던 성도들이야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당장 콜로세움에서 사자밥이 될 처지를 걱정해야 했었겠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그러한 핍박 대신에 주변 세상의 달콤하고 즐거운 유혹들이 널려 있습니다.구원을 받은 순간 우리는 혼의 자유함을 얻었습니다만, 초심을 지키며 그리스도의 성품이 되고자 매일 내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평생의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이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섞여서 사는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생기는 나 자신과의 싸움과 주변의 유혹과 조롱을 견디는 게 이 시대 성도들에게 주어진 환난의 길이겠지요.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성령님의 도우심과 통제가 없다면 결코 해낼 수 없는 숙제입니다. 저도 노력을 하려 하지만 아직 매번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저도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 속의 환난과 마지막 날의 대환난을 구별하지 못해 생긴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구원의 확신만 있었고 성화라는 개념은 아예 없었던 몇 년 전 일들 입니다. 제 자신의 모습은 전혀 돌아보지 않고 말세의 징조만 찾고자 했었습니다. 환난의 때가 오고 내가 휴거될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도대체 언제부터인지 알아야 준비를 할게 아닙니까? 매매를 못하게 된다는데 순교당하는 것도 아니고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굶어서 죽으면 억울하잖아요.^^ 언젠가 바코드던 베리칩이던 하여간 그런 비슷한걸 받으라 하면 그것만 받지 않으면 되겠구나,그래도 최대 3년 반은 버텨야 하니까 통조림이나 쌀을 미리 사 놓아야 하지 않을까, 다른 것들도 조금씩 살 수 있도록 가지고 있는 돈을 금으로 좀 바꿔 놓아야 하지 않을까, 미국에 있는 절반의 유대인들은 도대체 언제 본토로 돌아오게 될 것이며 성전은 언제부터 세우게 될까,적그리스도는 과연 누구지 오바마일까 푸틴일까 아니면 2012년에 30세가 되는 윌리엄왕자일까...등등제 자신의 모습은 잊은 채로 본질적으로 나와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걱정들에 빠져서 지냈습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원래 겁이 많고 엄살이 심하니 혹시 나중에 순교되더라도 고문의 고통없이 빨리 죽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한 적도 있습니다^^;그러던 저는 그 후에 목사님의 휴거와 재림과 계시록 관련 설교를 듣고 정신을 차리게 되었지만 아직도 이런 고민들에 휩싸여사는 사람들이 많은 줄로 알고 있습니다.교회 밖에는 이런 환난에 대한 고민들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는 정말로 불쌍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형제님의 글을 읽고 내 자신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쩌면 지난날의 저처럼 당장 이 세상에서 날마다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불편한 다짐과 태도는 마음 한쪽 구석으로 접어 두고, 비록 지금은 내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세상 사람들과 별 차이없이 살고 있지만 언젠가 나중에 본격적으로 온 세상이 다같이 어려운 마지막 진노의 때가 오면 어떻게든 그 동안 밀린 숙제처럼 나의 선한 행위들을 벼락치기로 갚아서 떼우려는 안일하고 육신적인 각오와 바램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위하여 교묘하게 고안된 속임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전에 한 말들을 기억하라.그들이 너희에게 마지막 때에는 자기들의 경건치 아니한 정욕대로 걷는 조롱하는 자들이 있을 것을 일러 주었는데이들은 자기를 분리시키는 자들이며 육체적 감각대로 살고 성령이 없는 자들이니라.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너희 자신을 세우며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고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너희 자신을 지키며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유1:16-21)   이제 저는 예수님의 진노를 기다리지 아니하며 긍휼을 기다립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3:5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2-01 19:06:19 | 유준호
  궁금한 사항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배도 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서 빌리 그래엄 같은 사람들이 예전엔 엄청난 전도자로 알려줬지만   요즘에 보면 다른곳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종교통합을 비롯한)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 믿고 거듭난 사람이 악한 사귐을 통해서 배도를 할 수 있습니까??(부끄러운구원을 받나요??)   아니면 그는 처음부터 가라지 였는데 추수때 알게 되는것입니까????(가라지로 판명 영원한 불지옥입니까??)   그리고 성경에 보면 성령을 훼방하는것과 모욕하는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되있는데   이런엄청난 일에 해당하는일은 어떤것인가요??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도 저버리는 일은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두번밖는 모욕적인(?)일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하는데 이런 사람은 그러면 구원이 취소되나요?   아니면 애초부터 거듭나지 못한사람인가요??   한번 얻은 구원은 취소되지 않으며 지옥을 가는 이유는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자세한 답변좀 부탁드립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3:5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21 20:07:47 | 윤재일
새들백교회가 오는 12월 11일을 Good Neighbor Weekend로 선포하고 주일예배를 드리는 대신에 2만명의 성도가 5시간씩의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3:5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14 17:04:40 | 박종철
-- 또 그분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한국 철도의 역사와 체계를 어디에 비유할까? 혹은 그것을 무엇과 비교할까? (막 4:30 패러디)   1. 영동선 인클라인의 구배   철도는 쇠로 된 궤도 위를 쇠바퀴가 구른다는 특성상 마찰이 작다. 그래서 수송 효율이 우수하여 일반 자동차보다 훨씬 더 길고 무거운 대형 차량이 연료를 적게 들이고도 쉽게 움직일 수 있다.그러나 이런 특성 때문에 철도는 자동차보다 가감속이 더디고, 경사를 오르는 데도 훨씬 더 취약하다.   자동차의 성능을 나타내는 스펙 중엔 등판능력이라는 게 있다. 교통수단의 최대 등판능력은 x축으로 1만큼 진행하는 동안 y축인 위로 얼마만치 오를 수 있는지에 대한 비율로 나타낸다. 기울기, 즉 탄젠트값으로 나타낸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동차의 성능 제원을 보면 등판능력이 0.3~0.4대가 보통인데, 이것을 각도로 환산하면 18도에서 22도 사이가 된다.   그 정도 구배는 1단 기어가 아니면 오르지 못한다. 그리고 사실, 평지에서 너무 가파른 언덕을 갑자기 오르면, 엔진의 힘이 받치기 전에 일단 차 바닥부터가 긁힐 것이다. 군용차 수준의 성능을 자랑하는 일부 사륜구동 차량만이 30도가 넘는 경사를 별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런 차량은 정말 기름 먹는 하마이기도 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자동차는 그렇고, 그럼 철도 차량은 어떨까?1940년에 개통한 강원도 영동선의 통리-심포리역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구간이 있었다. 아래는 현재까지 전해지는 유명한 사진임. 이 정도 경사의 탄젠트가 약 0.27 정도였다고 한다. 각도로 환산하면 15도 정도.이건 자동차로나 간신히 오르지, 철도 차량의 등판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기울기였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기관차+객차형 열차가 무리 없이 버티는 오르막의 기울기는 고작 0.035. 1km당 35m를 오르는 구배를 각도로 환산하면 겨우 2도밖에 되지 않는다!그래서 사실 철도 업계에서는 구배를 나타낼 때 탄젠트값에다 1000을 곱한 퍼밀, 즉 천분율 단위를 즐겨 쓴다. 다루는 값의 범위가 자동차 도로보다 훨씬 더 작기 때문이다.   철도를 요 모양으로 만든 덕분에, 당시 영동선은 결국 이 언덕 앞뒤로 쪼개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철도로 통과할 수 없는 철도 구간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기술과 자원으로는 길을 이렇게밖에 낼 수 없었나 보다.   여기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열차를 모두 쪼개고, 기관차와 각 객차를 하나씩 케이블로 연결하여 별도의 크레인 시설로 끌어올려야 했다. 그 동안 승객은 내려서 1km 남짓한 언덕을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통과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너무 느리고 불편하고...   이 방식을 인클라인이라고 부르는데, 인클라인은 1963년에 진작에 없어졌으며, 1km 거리를 7~8km의 완만한 경사로 빙빙 돌며 우회하는 경로로 바뀌었다. 상식적으로 35퍼밀로 270 퍼밀치 높이를 오르려면 7.7배의 우회가 필요하다는 걸 간단한 계산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영동선 인클라인의 평균 구배인 270퍼밀은 사해의 소금 농도와 비슷한 값이고,35퍼밀은 전세계 바닷물의 평균 소금 농도와 거의 같은 값이라는 것.세계 지리 상식과 철도 기록 사이의 유사점을 찾아 내는 데 성공했다.   2. 역사 속으로 사라진 두 종류의 비둘기   과거에 북아메리카 대륙에는 여행비둘기(Passenger Pigeon)라는 새가 살고 있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개체수가 수십억 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고, 한때 새 가운데 개체수가 가장 많은 녀석으로, 아니 당대의 인구 수보다도 더 많은 날짐승으로 여겨졌다.   어느 탐험가의 1838년도 일기에 따르면, 하늘을 새카맣게 뒤덮은 채 머리 위를 통과하는 여행비둘기 떼가 다 지나가는 데 꼬박 사흘 밤낮이 걸렸으며, 그 동안 주변은 햇볕이 가려져서 낮에도 어두컴컴했다고 한다. 새들이 앉았던 나무는 하얀 새똥으로 온통 뒤덮였고, 잎사귀와 열매는 남아나질 못하고 흔적도 안 남고 사라지곤 했다. 그때는 정말 하늘을 향해 아무 데나 엽총을 쏴도, 우수수 떨어지는 여행비둘기들을 얻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새조차도 인간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인해 씨가 말라 버렸다. 고기와 깃털의 품질이 좋았으며, 무엇보다도 이 새는 절대 멸종하지 않을 거라고 사람들이 확신했기 때문이다. 굳이 식용이 아니라도 포수 한 명이 취미로 여행비둘기를 몇백 마리씩 잡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19세기 말부터 미국 정부는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여행비둘기를 보호하려 애썼으으나, 개체수가 줄어든 이 새는 설상가상으로 작은 집단에서는 번식도 잘 되지 않았다. 야생에서 이게 발견되고 잡혔다는 소식이 마지막으로 전해진 건 1906년.   그 후, 미국 오하이오 주의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겨우 보존 중이던 마지막으로 여행비둘기도 번식에 실패한 채 수컷이 먼저 죽었다. 그리고 1914년 9월 1일 오후 1시 무렵, 최후의 여행비둘기이던 암컷 마사(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영부인의 이름에서 땀)가 죽음으로써... 여행비둘기는 완전히 멸종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날짐승의 종류(kind) 중 하나가 이렇게 지구상에서 없어진 것이다.이제 이 새는 박제된 모습으로만 볼 수 있다.   어째, 대약진 운동 시절 마오쩌둥의 “저 새는 해로운 새다” 해프닝이 떠오르는데, 이 글의 주제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므로 더 언급은 하지 않겠다. 관심 있으신 분은 링크를 따라가 보시라.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39684   한글이 이례적으로 창제자와 창제 목적· 시기가 알려져 있는 유일한 문자인 것만큼이나, 여행비둘기는 인류 역사상 멸종의 정확한 시기와 장소가 딱 알려져 있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느낌이랄까? 한때 대한민국의 최하위 열차 운행 등급이던 비둘기호는 강원도 정선선에 마지막 유일한 노선이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2000년 11월 14일을 끝으로 운행을 중단하였고, 이로써 비둘기호라는 열차 자체가 없어졌다.   똑같이 비둘기라는 단어가 있다니, 게다가 그냥 비둘기도 아니고 여행비둘기!! 영어로는 아예 '승객'이라는 뜻이니까 교통수단과도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비둘기호가 사라진 날은 공교롭게도 2001년도 수능 시험 바로 전날(수능일은 2000년 11월 15일, 14일에 마지막 운행)이었다. 본인은 그때는 아직 철도 덕후가 아니었지만, 그 당시 수능을 앞두고 있던 고등학생 철덕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우리나라 최후의 협궤 열차이던 수인선 디젤 동차도 운행 등급은 응당 비둘기호였다. 1995년 12월 31일에 퇴역했다. 철도 덕후는 열차의 퇴역에 대해 특정 동물의 멸종을 보는 것만큼이나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끼는 법이다. 오늘날 비둘기호 객차는 의왕의 철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다.   비둘기가 사라진 지 4년이 채 지나기 전에, 다음 최하위 등급이던 통일호도 2004년의 KTX의 개통과 함께 사라졌다. 물론, 정화조도 없이 승객의 대소변이 선로로 바로 배출될(비산식) 정도의 구닥다리 열차를 21세기가 되기까지 굴리고 있을 수는 없으므로 어쩔 수 없는 면모가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안타까워했다. 특히 청량리-부전 전역정차 통일호가 마지막 운행을 한 2004년 3월 31일엔 전국 각지에서 철도 덕후들이 모여서 마지막 통일호 열차를 시승하였고, 열차의 퇴역을 아쉬워했다.   Conclusions   - 이 글은 철도의 날 특집으로 올리기엔, 내년 철도의 날까지 기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지금 올립니다. - 성경도 이런 식으로 광산에서 금을 캐듯 fact를 발견하고 유사점과 차이점을 따지고 예표와 패턴을 발견하면서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크리스천들 중에 철도를 사랑하는 분도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0: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05 15:51:42 | 김용묵
생명의 말씀사 홈페이지에서 올해의 책과 올해의 저자, 올해의 출판사를 선정하는 투표가 진행중에 있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킹제임스 흠정역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크게 수고로운 일이 아니니 가능하신 분들은 참여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많이 읽힌 좋은 책들과 저자 분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올해의 저자 부문에는 반가운 이름도 보이네요^^ 올해 여러분의 책장을 빛낸 한권의 책은 무엇입니까? http://www.lifebook.co.kr/final/book/2011book4.asp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0: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04 18:26:35 | 유준호
    이번 주 목사님의 설교(11.10.23, 생각하는 교회)를 듣고 혹시 성화라는 용어가 성경에 나올까 찾아봤습니다. 직접적으로 그 단어가 나오지는 않더군요. 이 개념이 왜 나에게 중요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구원이 우선일까요, 성화가 우선일까요. 물론 구원이 우선입니다.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구원과 성화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으나 오랫동안 교회를 다닌 사람들도 구원과 성화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세상의 모든 종교라 불리는 것들과 대부분의 이단들 속에는 이런 개념이 아예 뒤죽박죽 혼재해 있어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A : 구원을 받고 난 이후에 성화의 길을 걷는다 B :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성화의 길을 걷는다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에는 A와 B가 별 차이가 없습니다. 특히나 종교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그게 거기서 거긴데 왜 말장난을 하느냐 되물을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믿는 우리가 보기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다음에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나게 되지요.   여기에 한 문장을 더 추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A : 구원을 받고 난 이후에 성화의 길을 걷는다. 구원의 길은 하나이며, 오직 예수님 뿐이다.B :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성화의 길을 걷는다. 그 정상은 하나지만, 가는 길은 여러가지다.   이 정도까지 얘기해주면 사람들도 그 차이를 확실히 알아차립니다. 하지만 인정하는 사람은 드물며 대부분의 사람이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고, 기독교는 너무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라고 얘기를 하면서 등을 돌립니다. 이때 당신은 죄인이라는 얘기까지 해주면 더욱 분위기가 훈훈해지지요.   세상에 그런 말은 분명히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 확실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 3: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기초적 진리입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시인하며 진심으로 죄들로부터 돌이켜 회개하고,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유일한 구원자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 다 이루어놓으신 공로의 선물을 그저 공짜로 내가 스스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서론이 길어졌네요, 제가 생각해 본 것은 이다음부터인데요,, 믿고 구원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완전히 구별된 다른 종류의 사람입니다.하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그리스도의 신부로 예비해주신 사람들이며,다른 하나는 사탄과 함께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는 심판을 받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에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았는지 아닌지 확실히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구원을 받은 당사자는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요. 그렇다면 성화는 어떨까요. 이는 인격함양을 위한 개인적 노력을 통한 과정 중에 평소 생각과 마음가짐이 언행을 통하여 겉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므로 어느 정도 알고 지내다 보면 다른 주변 사람들의 눈으로도 분명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성화의 과정은 구원처럼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하고 부지런히 읽고 생각하고 실천하려는 새 사람과 육체 안의 옛사람의 본성과의 싸움이고, 평생을 걸어야 하는 머나먼 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높이에서 보시기에 성화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이거야말로 정말 거기서 거기가 아닐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사람은 다 거짓말쟁이이며, 한낱 인간의 인격이 아무리 훌륭해 보았자 그 역시 더러운 죄인이고, 사람들 사이에서 높이 의롭다 여김을 받는 사람의 의로움도 하나님의 눈높이에서는 모두 형편없는 누더기일 뿐이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성화를 위한 험한 길을 걸어야합니다.   왜 그래야 할까 일주일간 곰곰이 생각해보고 제 나름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교회의 지체가 된 우리 개개인 하나하나의 인격과 평판이 모여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전체의 인격과 평판이 되고, 결국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들의 겉모습을 보고 미루어 판단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려는 세상 사람들의 태도가 절대 옳다 할 수 없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는 아직 몸을 입고 살고 있습니다.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사람들의 눈을 염두에 두어야 할까요.   교회시대의 막바지인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사명이 무엇입니까.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달하는 게 아닌가요.   마셜 맥루언이라는 사람이 쓴 미디어의 이해라는 책 첫 장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저는 이 책이 너무 어려워 첫 챕터도 제대로 못 읽었습니다^^; 이 세상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만큼 읽고 이해하기 쉬운 책도 없습니다.)   "미디어는 메시지다."   미디어의 성격이 메시지의 내용을 지배한다는 뜻입니다. 미디어(매체)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미디어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 먼저 작용한다는 말입니다.같은 메시지라고 하더라도 얼굴을 맞대고 직접 말하는 것과 신문에 나오는 것, 그리고 TV로 방송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으며 결국 매체가 다르면 메시지도 달라지고 수용자가 인식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이것은 아무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의 가사라 하더라도 록 음악을 예배에서 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결코 음악은 중립적이지 않지요.)   기록된 구원의 진리는 분명한 사실이며 전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계시하시지 않으시며 천사들을 통해 복음을 전하시지도 않으십니다.이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없으신 게 아니라 단지 현재 교회시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이 시대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들을 여러 사람들을 통하여 영감으로 기록하시고, 킹제임스성경을 통해 보존하셔서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말씀을 전달하도록 맡기신 것입니다.먼저 믿은 사람들이 나중에 믿을 사람들을 위해 다양하게 선택받은 미디어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화의 길을 걷지 않는 사람이 주변 사람들에게서 열매를 맺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골키퍼가 헤트트릭을 기록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생각합니다.자신이 성화 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주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경우 돌아오는 대부분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너나 잘하세요.   성화를 게을리하면 주변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 또는 더 못한 모습으로 살게 되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복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물론 구원은 하나님의 몫이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역사임은 틀림이 없습니다.제 말은 사람의 능력에 의존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충실히 말씀만 전달하면 나머지 일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그럼에도 성화가 중요한 건 말하는 이도 사람이요, 듣는 이도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내가 복음을 전하지는 못할망정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사람들의 귀를 닫아버리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과격한 표현 죄송합니다...)     끝으로 제 얘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란 사람의 특징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교만함과 허영심, 음욕입니다.이것들은 제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들이고 제 혼이 거듭난 이후에 새 본성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누르고 억제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 몸속에 그대로 남아서 순간순간 튀어나오려 하여 저를 깜짝 놀라게하는 옛 본성입니다.   교만함은 내가 남보다 높아지려는 마음 - 사탄의 대표적인 본성입니다.허영심은 내 본질보다 더 나를 포장하고 부풀려서 꾸미는 마음 - 허세.음욕이야 뭐...가끔 제 눈을 뽑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제가 평생 싸워야 할 저 자신의 모습이자 저의 적들입니다.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속히 오셔서 제가 이 가증한 것들과의 싸움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갈5:22-23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대적할 법이 없느니라.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0: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29 11:00:33 | 유준호
며칠 전에 제가 철도· 항공 과학 상식에 대해서 글을 쓴 것은 저의 취미 내지 부업에 대한 글이었습니다.이번에는 오랜만에 저의 생업 내지 본업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컴퓨터에서 한글을 입력할 때, 한국에서는 두벌식이든 세벌식이든 일단 한국어의 특성에 맞게 한글 자모를 배열한 전용 글자판이 쓰입니다. 제가 개발한 <날개셋> 한글 입력기라는 프로그램은 특별히 세벌식 글자판을 배려한 특수 기능이나 편의 기능이 굉장히 많으며, 입력기의 전반적인 구조가 이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한글이나 한글 글자판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이 한글을 입력할 때 선호되는 입력 방식은 바로 로마자 발음 방식입니다. '한'이라는 글자를 예로 든다면 영문 글자판의 H, A, N을 순서대로 입력해서 입력하는 것이 되겠죠.   비록 오래 빠르게 입력하기에는 그리 능률적이지 못하고 불편하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초기 진입 장벽이 없고 친숙하다는 게 큰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한글을 제외한 일본어나 중국어는 다 로마자 발음으로 입력하는 게 보편적입니다. 그쪽 언어는 문자 입력기가 훨~씬 더 복잡하지요.   로마자 입력 방식은 아래아한글 워드 프로세서는 초창기 버전부터 지금까지 잘 제공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맥 OS도 전통적으로 기본 제공하고 있습니다.그러나 PC 시장의 90%를 넘게 장악하고 있다는 Windows 운영체제는 한글 로마자 입력 방식을 기본 제공한 적이 없습니다.이런 이유로 인해, 국내에서는 제 프로그램이 세벌식 사용자들 위주로 사용되고 있는 반면, 외국에서는 로마자 입력 방식을 지원한다는 점 때문에 차츰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일본 사이트에서는 비록 소수이지만 제 프로그램으로 로마자 입력 방식을 설정하는 방식을 소개한 곳이 몇 곳 있습니다. 아래 사이트의 운영자는 네이버 재팬에서 근무하는 어느 일본인 소프트웨어 개발자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영어권에서도 어느 '네이버 지식인' 같은 Q&A 사이트에서 “Windows용으로 아래아한글 같은 한글 로마자 입력을 지원하는 입력기가 없나요?”라는 질문에 제 프로그램이 소개된 것을 발견했습니다.외국에서는 로마자 입력 방식의 수요가 이 정도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답변을 작성한 사람은 전형적인 금발 백인인 청년이던데, 글을 읽어 보면 제 프로그램의 본질을 잘 알고서 상당히 잘 소개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tremely customizable Korean IME that has romanization input as an option.”한국에서밖에 안 쓰이는 이렇게 마이너한 제 프로그램을 알 정도면, 저 사람은 다른 분야에는 얼마나 박학다식할지 모르겠습니다.저 답변을 받고 문제가 해결되었다며 고맙다고 추가로 리플을 단 일본인(이름으로부터 국적을 유추할 수 있는) 역시 프로그래머입니다.   제 프로그램은 한국어가 아닌 운영체제에서 설치하면 영문 GUI는 제공합니다(대화상자나 에러 메시지). 그러나 대외적으로 영어로 딱히 제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지는 않으며, 무엇보다도 방대한 양의 기능 설명서 겸 도움말을 저 혼자 영작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한국어로만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한국에 관심이 많은 계층을 위주로 외국인 사용자가 차츰 생기고 있는 것은 저로서는 무척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몇 년 안으로 저의 개인 홈페이지도 <날개셋> 한글 입력기 같은 주요 컨텐츠는 영문 페이지를 추가하고, 가능하면 일본어 페이지도 만들려고 합니다. 현실적으로 한국 외에서 제 프로그램이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이 일본이니까.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컴퓨터로 한글을 처리하는 일에 어떤 형태로든 관련되는 기술은 그야말로 모조리 집어넣은 시스템입니다. 대표적인 다른 예로 옛한글 표현이 있습니다. 과거 조합형· 완성형 논쟁이 있었던 것처럼 사실 옛한글을 표현하는 방식도 몇몇 방식이 오늘날 내부적으로 난립하고 있는 게 있는데, 제 프로그램은 그것을 모두 지원하고 텍스트를 상호 변환하는 기능을 제공합니다.   세벌식이든 두벌식이든, 심지어 휴대전화 입력 방식이든, 옛한글이든 현대 한글이든 어쨌든 컴퓨터에서 한글을 입력하고 입력과 관련된 자동화 기능을 구현하려면, 제 프로그램을 거쳐 가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게 목표이며, 어느 정도 그 목표는 달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아무도 이런 스케일로까지 한글 입력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없으니까.   이 프로그램은 저의 고등학교 말기이던 2000년에 처음 개발되어 11년이 지난 지금은 버전 6.0을 넘어섰고, 내년 초를 목표로 6.5 버전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역시 2000년에 첫 발간된 킹제임스 흠정역과 나이가 비슷하다고 예전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을 겁니다. 프로그램에 들어간 아이디어의 일부는 가까운 미래에 저의 석사 학위 논문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박사 가서는 이번엔 입력기 말고 한글과 관련된 다른 새로운 분야를 연구할 생각.)   저는 어지간한 다른 사람들이 경험했을 법한 것을 전혀 경험하지 않은 5無가 있습니다.   1. 수능(대학 입학과 관련된 시험)을 친 적이 없음2. 군대 자대 생활을 한 적이 없음3. 과외를 뛴 적이 없음4. 불신자의 사고방식으로 살아 본 적이 없음 (구원· 복음에 관해서)5. 그리고, 연애 경험도 지금까지 전혀 없음   저런 걸 안 해서 확보된 엄청난 양의 개인 자유시간들이 대부분 프로그램 개발 아니면 글쓰기에 투입되었다고 보시면 정확합니다. 90% 이상의 사용자들이 있는 줄도 모르고 쓰지 않을 기능들을 더욱 가다듬고, 지극히 극단적인 환경에서나 발생하는 미세한 버그를 잡는 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상으로 <날개셋> 한글 입력기 때문에 제 홈페이지를 찾아오고, 이를 계기로 킹 제임스 성경에까지 눈을 뜬 분도 꽤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예비하셔서, 과거에 제가 지금보다 훨~씬 더 과격하게 글을 쓰던 시절에도 시험 들지 않고 진리에 눈을 뜨게 해 주신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_=;; 물론 그런 분들이 지금은 저의 철도 글들에도 엄청 노출되고 있으니, 그 방면으로도 영적 출생을 하는 분이 나오리라 기대해 봅니다.   저로서는 생계 걱정하지 않고 주님 오시는 날까지 이 프로그램의 유지 보수를 계속하는 여건이 마련되면 좋겠고, 특히 수익 기반이 생겨서 GUI의 외국어 번역이라든가 각종 디자인 작업을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한글 타자에 익숙하지 못한데 한글을 입력할 일이 있는 분이라면 이 글의 본디 주제인 한글 로마자 입력 방식을 써 보면 도움이 될 것이고,이미 한국인이라면 세벌식 글자판에 관심을 가져 보셨으면 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0: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28 00:55:58 | 김용묵
--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어리석은 것을 조금 용납하라. 내가 철도를 대신하여 아직도 할 말이 있음을 그대에게 보이겠노라. (고후 11:1, 욥 36:2)   내가 철도를 한 5년만 더 일찍 알았으면 학창 시절에 지리와 물리 공부를 훨씬 더 열심히 했을 것이고, 지금의 국어 정보학 대신 아예 그쪽으로 진로를 선택했지 싶다. 하지만, 그 경우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태어나진 못했을 것이고 본인의 인생과 우리나라의 역사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예수님의 복음이야 인간이 만든 다른 종교와는 레벨이 근본적으로 다른 절대적인 진리이니까 차치하고,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관점에서 나의 종교는 철도이다. 그것도 은사주의 성향이 굉장히 강한 종교이다.나의 종교는 죄, 심판, 지옥 같은 부정적인 이념을 논하지 않는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교통수단이 철도밖에 없다는 과격하고 극단적인 주장을 하지 않으며, 반대로 버스와 철도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지지한다. 이 얼마나 건전하고 좋은 종교인가?   잘못된 은사주의 집회에 가서 '날랄랄따따따' 방언을 하러 애쓰고 사기극인 병고침 받느라 노심초사하지 말라.진짜 은사주의가 뭔지 몰라서 저런 데에 빠진다.철도 성령을 받으면 영어와 일본어 열차 안내방송 방언이 터진다.철도 성령을 받으면 국토 사랑 정신이 생기고, 우리나라 역사와 지리를 보는 눈이 바뀐다. 전철 노선도와 간선 철도, 그리고 우리나라 주요 고속도로와 국도 노선까지 저절로 달달 외우게 된다.우리 애가 철도에 미치더니 사회와 과학, 그리고 예체능 중엔 음악 점수가 급상승했다는 얘기가 나올 것이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저 온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 죽으신 게 아니라 정말 '나의 죄'로 인해 죽으신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철도 성령을 받으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풍미한 철도 차량과 노선, 역사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나의 개인적인 감정과 애증을 담고 표현하는 대상이 될 것이다.   난 이따금씩 식사 전 기도는 빼먹어도, 열차 타기 전에는 “이 땅에 이런 철도와 새마을호 같은 열차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기도 드리는 게 습관이 됐다.이 정도면, 킹 제임스 성경이 세상을 바꿔 놓은 책이라면, Looking for you라는 음악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음악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자, 지금까지 한 얘기는 고차원적인 반어법과 역설이 섞여 있으니 알아서 분별해서 받아들이시고..;;어쨌든 이 철도 덕분에 본인은 철도 말고 주변의 교통수단에 대한 관심도 집요하게 늘었다.'철도'와 비교했을 때 기계 메커니즘부터 시작해 엔진 소리와 승차감에 이르기까지,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 분석하기 위해서이다. 이 글에서는 특별히 중장거리 교통수단으로서 철도와 비교되곤 하는 비행기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본인은, 달리는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면 바퀴에 작용하는 원심력과 관성 등으로 손쉽게 설명할 수 있으며 느낌으로 완전히 이해도 한다.쇠로 만들어진 집채 만한 선박이 물에 뜰 수 있는 이유 역시 부력으로 설명 가능하며 본인은 그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 그건 어디서나 예상과 측정과 재연이 가능한 과학일 뿐, 물 위를 걸은 예수님의 기적(마 14:25-27) 같은 현상은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기가 어떻게 하늘에 뜨는지는... 머리로 공식은 알고 있으나, 그 자연 현상을 100% 직관적으로 이해는 못 하겠다. 어렵다. 하긴, 이건 18~19세기까지만 해도 저명한 물리학자들조차도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던 것이다. 비행기의 발명은 참으로 인류의 어마어마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A4 용지를 한 장 준비해서 직사각형의 네 변 중 짧은(21cm짜리) 변을 이루는 두 꼭짓점을 손으로 잡고 입가로 가져간다. 잡고 있지 않은 맞은편 두 꼭짓점은 아래로 축 늘어질 것이다.이 상태로 종이의 윗부분(아랫부분 말고)을 힘껏 훅~ 불어서 바람을 만들면...;; 놀랍게도 늘어졌던 종이가 벌떡 위로 펴질 뿐만 아니라 더욱 위로 올라가려 하면서 펄럭거리기까지 할 것이다.   종이의 아랫부분을 훅 불면, 아래로 쳐져 있던 종이가 바람을 직접 받아서 위로 펴지는 게 이해가 되겠다만, 종이가 닿지 않는 윗부분에 바람이 부는데 왜 아래의 종이가 붕 뜨게 될까?? 바로 이것이 오늘날 고정익 항공기가 하늘로 뜨는 이론적 배경이라고 한다. 부력(buoyancy)을 설명하는 게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라면, 양력(lift)을 설명하는 건 베르누이의 원리이다.   호스에서 시간당 같은 양의 물이 흘러나오는데 호스 끝부분을 눌러 좁히면 물이 더 빠르고 세차게 나오는 것, 빠르게 통과하는 열차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곁의 사람까지 열차 쪽으로 빨려 들어가서 인명 사고가 나는 것과 정확히 같은 이치이다.   비행기의 날개는 폼으로 있는 게 아니라 주변 공기의 흐름을 교묘하게 바꿔 압력차를 만듦으로써, 아까 저 종이와 같은 양력을 만들어서 비행기를 띄우기 위해 존재한다. 날개 표면이 이물질로 인해 조금만 울퉁불퉁해지기만 해도, 생성되는 양력이 크게 떨어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잘 이해는 안 되지만, 뭔가.. 냉장고와 에어컨의 동작 원리만큼이나 신기하다.   그런데 공기의 흐름부터 만들어야 이로부터 양력이고 자시고가 생길 것이므로, 이를 위해서는 비행기 자체가 무진장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비행기의 엔진이 하는 일이다. 비행기의 엔진은 공기를 뒤로 뿜음으로써 추력을 만들지, 자동차의 엔진처럼 피스톤을 회전시켜 바퀴를 굴리는 방식은 아니다.   이 메커니즘 때문에 고정익 항공기는 이륙을 위해 긴 활주로가 필요하며, 반대로 사뿐히 내려앉기 위해서도 활주로가 필요하다. 자동차의 고급 옵션 중 하나인 터보차저(turbocharger)라든가 ABS 브레이크는 원래는 이런 항공기에서 쓰이던 기술이 자동차에도 덩달아 도입된 걸로 잘 알려져 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주변의 컨테이너나 소형 승용차마저 팬에 빨려들어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괴력으로 주변 공기를 빨아들인다. 그래서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웽~’하는 엔진 내지 팬 소리보다도 ‘쿠르르릉!’하는 박진감 넘치는 바람 가르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이다. 군사 시설 중에서도 비행장만은 그 특성상 지하화해서 덮을 수 없고, 규모도 워낙 크다 보니, 위성 사진으로 노출되는 게 불가피하다.   그럼, 고정익 항공기 말고 다른 비행체는 어떨까?   1. 헬리콥터   가벼운 바람개비를 빠르게 돌려 놓고 손에서 떼면, 이것도 잠시나마 하늘에 살짝 떴다가 떨어지는 걸 알 수 있다. 고정익 항공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발상으로 만들어진 이런 부류의 회전익 항공기는 비록 수송력과 경제성은 크게 떨어지지만, 한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초고속 이동을 해야만 양력이 유지된다는 한계에 매여 있지 않다. 그래서 긴 활주로 없이도 손쉽게 이· 착륙을 할 수 있으며, 공중에서 3차원 여섯 방향으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공중에서 정지해 있을 수도 있다.   헬리콥터의 로터는 개념상 날개이지 프로펠러가 아니다. 회전익 항공기라는 개념은 수백 년 전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상상을 했을 정도이지만, 이것이 실제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로터를 그 정도로 빠르게 회전시킬 수 있는 가벼우면서도 출력이 굉장히 좋은 고성능 엔진이 먼저 발명되어야만 했다.   2. 비행선   물에 적용되는 배, 아니 어찌 보면 잠수함의 원리를 공기에다가 접목-_-한 것이다. 비행체의 밀도가 공기보다도 가벼워지도록 어마어마하게 큰 부피의 수소나 헬륨을 적재한다. 고도 조절은 잠수함이 심도를 조절하는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하며, 엔진은 방향과 속도 조절용으로만 쓴다.   비행선은 매우 저렴한 동력비로 하늘에 조용하고 우아하게 뜰 수가 있고 심지어 엔진이 꺼져도 곧바로 추락하지는 않으나..... 역시 수송력이 열악하고 주행 속도가 매우 느리며(빨라 봤자 100~150km/h대. 자동차급밖에 안 됨), 비행 고도도 오늘날의 항공기보다 훨씬 낮은 데다가 덩치까지 엄청 크다 보니 보안에도 매우 취약한 게 흠이다.     비행선은 양력이 아니라 부력으로 뜨기 때문에 날개는 없다.그런데, 공기보다 밀도를 낮추기 위해 비행선이 얼마나 덩치가 커야 했냐 하면.. 위의 그림과 같은 정도이다. 우주에서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를 집어넣었는데도! (그림은 과거 독일의 수소 비행선 힌덴부르크 호, 보잉 747, 그리고 여객선 타이타닉 호) 그래 봤자 저 비행선의 승객 정원은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와 비슷한 겨우 100여 명 안팎으로, 무려 450명 가까이나 탈 수 있는 747의 1/4 수준도 안 됐다.   3. 로켓   다른 항공기들은 하늘로 떠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게 목적인 반면, 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하늘 위로 최대한 높이 뜨는 것 자체만이 목적이다. 유체고 양력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오로지 작용· 반작용의 법칙만을 이용해서 나아가므로, 날개도 필요 없고 오히려 유체의 저항이 없는 진공이 유리할 것이다. 연료 소모가 매우 심하고 유인 로켓의 승무원은 발사 직후에 어마어마한 압력에 짓눌려야 하지만, 지구의 육중한 중력 가속도를 뚫고 수백 km 이상의 고도로 우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것만이 현실적으로 유일한 방법이다.   지구 중력의 탈출 속도는 초속 11.2km가량 된다. 지표면에서 이 정도 속도로 공을 던지면 지구로 되돌아오지 않을 경지에 이른다는 뜻. 하지만 이 속도는 음속의 무려 40배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공기와의 저항과 마찰, 그리고 엔진 기술의 한계 때문에 지표면에서 결코 낼 수 없는 속도이다. 성층권에서 겨우 마하 2.x 정도로 비행한 콩코드만 해도 소닉 붐 같은 충격파에, 공기 마찰 때문에 열받아서 수백 도로 벌겋게 달아오른 기체의 유지 보수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로켓은 그 탈출 속도보다는 당연히 훨씬 느리게 뜬다. 하지만 발사 후에도 연료 배기 가스를 뿜어서 동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그 밑천으로 지구 대기권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4. 끝으로, 새들   비행기를 연구하고 설계한 사람들이 새의 날갯짓을 매우 세밀히 관찰하고 벤치마킹 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 공중의 날짐승들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일러 주리라.” (욥 12:7b) 새들은 인간이 만든 비행기처럼 주변 공기를 다 빨아들이지도 않으며, 헬리콥터처럼 날개에 이물질이 닿는다고 해서 바로 박살이 나지도 않는다. 항공계의 영원한 골칫거리인 조류 충돌(bird strike)이나 연료 폭발 같은 건 더욱 없다. 새의 놀라운 비행 원리에 대해, 이런 거야말로 진화의 산물로 점진적으로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으며 지적 설계와 창조의 증거라고 연구하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응당 일리가 있는 말이다. 사람이 만든 날개와 하나님이 만든 날개의 차이이다.   ..   증기 기관은 아직 효율이 낮고 성능에 비해 너무 크고 무거웠기 때문에, 자동차나 배는 굴려도 비행기를 띄울 수는 없었다.터보 프롭이든 터보 팬이든 램 제트든, 비행기의 엔진은 내연 기관의 원리가 확립되면서 발명될 수 있었다.   비행기가 쓰는 항공유는 휘발유와 등유 중에서 등유에 가까운 정도의 연료이다. 비행기의 엔진은 공기라는 가벼운 유체의 흐름을 교란하는 게 목적이니 터빈에 의한 빠른 회전력이 필요할 뿐, 자동차 엔진처럼 큰 무게 부하가 직접적으로 걸리는 건 없으므로 특별히 저속 회전에서 토크가 큰 출력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통수단들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경유· 중유급의 연료가 쓰이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겠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동력 비행에 성공했다고 알려진 미국의 라이트(Wright) 형제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고 한다.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39   그리고 해로(seaway)라는 것을 발견한 매튜 머리도 시 8:8에서 연구의 영감을 얻은 크리스천이었다.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798오늘날은 해로도 모자라서 비행기의 순항 고도에도 기류라는 게 있어서 이를 잘 타면 연료를 아끼고 효율적인 비행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것처럼, 철도를 개척한 선구자 중에 혹시 크리스천 과학자· 엔지니어가 있진 않았는지(리처드 트레비식, 제임스 와트?) 난 정말 궁금하다.그리고 혹시 성경에서 좌측통행이나 우측통행에 대한 언급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성전· 성막이나 천년왕국 때의 관습에 대한 묘사에서 힌트가 될 만한 정보가 있을지?   오늘날 세계의 대세는 우측통행이나, 영국이 대영제국 시절에 영어와 표준궤 철도와 더불어 전세계에 퍼뜨린 것은 좌측통행이다. 여객기는 승객 탑승구가 진행 방향 기준 왼쪽에 달려 있으며, 전세계의 공항들도 그 기준으로 건설되어 있다. 이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사람의 사진을 아무거나 찾아보기 바란다. 이는 과거에 선박의 관행을 물려받은 것이다.   승객이 왼쪽으로 타니 화물은 오른쪽으로 싣고, 비행기의 시동을 걸 때도 오른쪽 엔진부터 켜는 게 항공업계의 관행이다. 이는 과거에 프로펠러기 시절에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 언제부턴가 생긴 불문율이나, 오늘날 같은 제트기 시대엔 큰 의미는 없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0: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25 14:58:31 | 김용묵
구원에 대한 영원한 보장과 관련된 구절들   거듭난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아 새롭게 태어난 다음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들은 그가 죄로부터 혼이 영원히 구원받았다는 것, 몸 안에 죽은 것과 같은 상태에 있던 영이 성령님에 의해 거듭났다는 것, 그리고 육체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지옥형벌을 받지 않고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결코 사라지거나 취소될 수 없는 보장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던 죄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어 죄사함을 받고 회심하고 거듭났다면 그의 몸 안에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영께서 거하시게 되며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오게 것입니다. 구원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이후의 행위로 인하여 절대로 중도에 취소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므로 그분의 약속을 지키십니다.   (갈 2:16)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되는 줄 알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것은 우리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자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6:37)『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10:27-30)『<27>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 <29> 그들을 내게 주신 내 아버지는 모든 것보다 크시매 아무도 내 아버지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느니라. <30>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시니라.』   (로마서 8:35,38-39)『<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으리요? 환난이나 곤경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벌거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창조물이라도 능히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하리라.』   (히브리서 13:5)『너희의 행실을 탐욕이 없게 하고 너희가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7:25)『그러므로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심을 보건대 그분은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1:6)『너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것 바로 그것을 확신하노라.』   (히브리서 10:12-14)『<12> 오직 이 사람은 죄들로 인해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뒤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사 <13> 그 이후부터 자기 원수들이 자기 발받침이 될 때까지 기다리시느니라. <14> 그분께서는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의 헌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1:7-9)『<7> 이로써 너희가 어떤 선물에서도 뒤쳐지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나니 <8> 그분께서 또한 너희를 끝까지 견고하게 하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너희가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시리라. <9> 너희를 부르사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신실하시도다.』   (고린도전서 5:1,5)『<1> 너희 가운데 음행이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알려졌는데 그런 음행은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거론되지 않는 것으로 곧 누가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는 것이라. <5> 그런 자를 사탄에게 넘겨주어 육체를 멸하게 하려 하였으니 이것은 영이 주 예수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에베소서 4:30)『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에베소서 1:13-14)『<13>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들은 뒤에 그분을 신뢰하였고 너희가 믿은 뒤에 또한 그분 안에서 약속의 저 거룩하신 영으로 봉인되었느니라. <14> 이 영께서는 값 주고 사신 그 소유물이 구속을 받기까지 우리의 상속 유업의 보증이 되사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시느니라.』   (엡 2:8,9) 『<8>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11:28-29)『<28> 복음에 관하여는 그들이 너희로 인해 원수 된 자들이지만 선택에 대하여는 그들이 조상들로 인해 사랑받는 자들이니 <29> 하나님의 선물들과 부르심에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느니라.』   (디모데후서 2:13)『우리가 믿지 아니하여도 그분은 항상 신실하시니 자신을 부인할 수 없느니라.』   (민수기 23:19)『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는도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은즉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시리요? 그분께서 이르셨은즉 그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시리요?』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1-11-14 17:41:2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23 01:21:12 | 이충현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이곳에 글을 쓰게 되어 먼저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서울 용산에 사는 1979년 11월 16일 생 서른 셋 청년이고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를 믿고 구원을 받았으며 사랑침례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어제 저녁에 어떤 사이트에서 채팅으로 나눈 대화입니다. 얘기로만 듣던 여호와의 증인과 갑자기 처음 맞닥뜨리게 된 와중에 바른 말씀의 위력을 새삼 실감한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화면을 그대로 올렸습니다. 저 분이 저 많은 자료들을 어디서 미리 준비해놓고 빨리 복사해서 가져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는 성경에 쓰여 있는 단 한 구절을 소개했을 뿐입니다.             한글 흠정역의 존재를 모를 듯싶어 영어 킹제임스를 찾아보라 하였고, 더 길게 얘기를 나누지 못하고 흠정역 성경을 소개해주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아쉽습니다. 진심으로 저 분이 마음에 의심을 가지고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어 잘못된 길에서 돌아오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대한민국에 더 많이 알려져서 개역성경을 밀어내고 보편적이고 대표적인 한국어 성경이 되어 이단교리들이 발을 못 붙이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저도 한 주간 세상 속의 바쁜 일상 속에서 세상일에 치여 살다가 이 땅에 바른 성경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것을 공부하고 알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순간순간 잊고 지내게 됩니다만 이 일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느끼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칼보다도 날카롭고 단단한 명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내가 필요할 때 사용할 줄 모른다면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앞으로도 평소에 부지런히 검술을 익히고 닦아서 언젠가 또 만나게 될 갑작스런 싸움에서 칼도 못 빼는 일은 없도록 열심히 성경을 읽고 연구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0: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22 18:10:05 | 유준호
국민일보에 킹제임스흠정역성경이 광고되어 참 기쁜데 즐겁지 않은 이야기를 올리려니 마음 좀 그렇네요! 한편으로는 이런 소망없는 세상에 한줄기 빛이이라도 비출수 있는 킹제임스흠정역성경을 알리고 읽도록 권하는 것은 바른 믿음의 여정을 걷고 있는 우리들의 소망이 아닐까 생각해 보며 글을 올립니다.     중국에서 10월 13일(지난주 목요일)에 일어났던 사건을 다룬 기사 입니다.      시장 안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지나던 트럭이 어린 아이를 발견하고도 귀찮은 듯 그냥 치고 천천히 시장통을 빠져나간다. 뒤이어 사람들이 지나지만 치여서 쓰러진 아이에겐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러다 다른 트럭이 다가온다. 이 트럭도 쓰러진 아이를 바퀴로 깔고는 그냥 지난다. 사람들은 쓰러진 아이를 힐끔 볼 뿐 그냥 피해간다.이런 상황은 7분간 계속됐다. 그동안 아이를 지나친 사람만 18명이다. 이 아이는 엄마에게 발견돼 병원에 긴급 후송될 때까지 7분 동안 차에 치이고,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됐다.중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15일 중국 HITVS가 당시 현장(광둥성 포산시)에 있던 폐쇄회로 TV(CCTV) 화면을 입수해 보도했다.13일 찍힌 이 CCTV 영상에는 시장 내 골목에서 어린 여자 아이가 부모를 찾는 듯 혼자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담겨있다. 이 때 정면에서 시속 20㎞정도로 달려오던 흰색 승합차가 아이가 앞에 있는 것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아이를 치었다. 운전자는 잠시 멈칫하는 듯 했으나 이내 서서히 차를 전진시켰다. 그리곤 그대로 현장에서 사라졌다.    충격적인 장면은 계속된다. 아이가 의식을 잃은 채 피를 흘리며 길에 쓰러졌지만 지나는 사람들이 힐끔 쳐다보고는 지나치는 것이다. 사고 이후 무려 18명의 보행자가 쓰러져있는 아이의 곁을 지나갔지만 그저 쳐다만 보고 아이를 피해갈 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한 트럭은 오히려 아이를 다시 한번 밟고 지나갔다.한 여성이 다가와 아이를 쳐다보더니 길가로 옮겼다. 옮기는 도중 아이는 축 늘어진 채 미동 조차 없었다. 후속 조치는 없었다. 잠시 후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달려와 아이를 안고 어디론가 사라졌다.현재 아이는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병원측은 이미 뇌사판정을 내렸다. 아이의 아버지인 왕모씨는 눈물을 쏟으며 무책임한 시민들의 반응에 울분을 토했다. 이 아이는 겨우 두살배기였다.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자 왕양을 치고 달아났던 운전기사 2명은 공안에 자수를 했다.실제로 중국인들은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다 자칫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놓일까 두려워한다. `남의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비에관센스(別管閑事)`가 중국에선 일반적인 풍조로 통한다고 합니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1.10.17 09:27에 올라온 기사를 보면서 마음이 아프고 분노와 슬플이 느껴졌습니다.  저도 위의 두살베기 여자아이와 같은 두살배기 아들을 키우고 있어서 그런지 이 기사를 읽는데 마음이 참 많이 아팠습니다.        중국에서 일어난 사건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이런 사건들은 참으로 슬프고 비통한 이야기인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북한에서도 굶주림과 질병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도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본능적인 행동들을 보이는 동영상들이 떠올라 참 슬펐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존귀히 여기고 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사건들은 너무도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같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패륜과 참담한 사건들이 일어나 우리를 슬픔과 분노에 치를 떨게 하지만 매스컴에 보도되지 않은 사건들 또한 얼마나 많겠습니까?      내게 이런 억울한 일들이 생기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도하는 것으로 선을 그을 지도 모르겠지만 주님은 전 세게에서 일어나는 이런 비인간적인 일들과 이런 악한일을 저지르는 사람들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생각해 봅니다. 참으로 소망없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을 독생자로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위 말씀처럼 주님은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죽어 주셨습니다. 사람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 신뢰가 무너졌을때 오는 배신감과 모욕을 죽는 순간까지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뿐입니까? 하나님의 죄에 대한 공의까지 어린양의 속재물로써 감당해야 했으니 주님의 마음을 정말 헤아리기가 어려울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고 계시겠죠?     2000년 전에 예수님이 값비싼 댓가를 치루어 주셨는데 사람들의 모양은 여전히 소망없는 모습들입니다.     사랑의 반대말이 무관심이라고 들었습니다.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관심을 가지고 서로 돌아보고 위로하는 믿음의 실천이 우리에게 있어지기를 바래봅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0: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18 04:23:59 | 노영기
   노아 홍수 이야기를 조화롭고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강추 합니다.   "창세기 대홍수로 세상은 이렇게 달라졌다!"지구의 역사와 대홍수의 증거를 찾기 위해 지질학의 성지 그랜드캐니언을 탐사하는 영화배우 엄지원.지층과 화석을 통해 드러나는 엄청난 진실!진화론의 패러다임에서 단지 신화로 여겨졌던 노아 홍수의 기록은 단 한 줄도 빠짐없이 정확한 과학적 사실로 밝혀지는데창조와 심판의 흔적 그랜드캐니언을 통해진리로 자유를 누리고 신앙을 한층 업그레이드하세요!   http://www.cgntv.net/CGN_Player/player.htm?pid=3031&vno=22[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5:2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15 20:45:13 | 허광무
1. 강산도 빼어났다 배달의 나라 / 긴 역사 오랜 전통 지녀 온 겨레거룩한 세종대왕 한글 펴시니 / 새 세상 밝혀 주는 해가 돋았네한글은 우리의 자랑 문화의 터전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2. 볼수록 아름다운 스물 넉 자는 그 속에 모든 이치 갖추어 있고누구나 쉬 배우며 쓰기 편하니 세계의 글자 중에 으뜸이도다한글은 우리의 자랑 민주의 근본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3. 한 겨레 한 맘으로 한데 뭉치어 힘차게 일어나는 건설의 일꾼바른 길 환한 길로 달려 나가자 / 희망이 앞에 있다 한글 나라에한글은 우리 자랑 생활의 무기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이 노래는 제목이 그냥 <한글 노래>이다.즉, 한글날과 관계가 있다기보다는 한글 자체에 대한 찬가라는 점에서, 제헌절 노래나 삼일절 노래, 6· 25 노래 등과는 위상이 좀 다르다. 한글 노래는 언제 들어도, 눈물이 나올 정도로 참 감동적이다. 몇 학년인지도 가물가물한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동요 테이프에서 이 노래를 들은 것을, 본인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사 장조인 것, 여자 어린이 독창인 것, 그리고 구간별 반주의 코드(chord)까지 말이다. 잘 알다시피, 이 노랫말을 지은 분은 외솔 최현배 박사(1894-1970)이다. 많고 많은 국어학자 중에 그분 정도로 한글을 진정 사랑한 분만이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수준의 역동적인 가사를 쓸 수 있었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1절은 한글 창제의 감격을 묘사했다.외솔의 동지이자 조선어 학회 사건 당시의 fellowprisoner (롬 16:7, 골 4:10, 몬 23)이었던 석인 정태진 선생이 1949년 <한글날을 맞이하여>라고 발표한 논설을 보면 비슷한 표현을 볼 수 있다.   “과연 그 날이야말로 우리 배달민족이 길고 긴 어두움에서 새로운 빛을 보던 날이었고, 그 날이야말로 과연 우리 민족이 오래오래 죽음의 길을 걷던 발길을 돌려서 영원의 삶의 길로 나아오던 바로 그 날이었던 것입니다.”   영생의 길.. 가히 종교적인 수준의 찬사인걸? (단, 너무 기쁨에 겨웠는지, 글 중엔 한글과 우리말을 그렇게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은 표현도 좀 나오며, 6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기엔 다소 구태의연한 권면도 없지는 않음) 내 신앙관과 짬뽕을 하자면, 그야말로 성경에 나오는 의의 태양(말 4:2) 같은 심상이다.주찬양 선교단 7집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의 2번 트랙 <빛>을 BGM으로 깔면 적절할 것 같다.   2절은 한글의 우수성이 묘사되어 있다.외솔의 저서 <한글갈>에 있는 문장을 보면, 노래 가사는 저서의 요약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한글은 그 짜임이 가장 과학스럽고 그 자형이 정연하고 아름다우며, 그 글자 수가 약소하고도 그 소리가 풍부하며, 그 학습이 쉽고도 그 응용이 광대하여 글자로서의 모든 이상적인 조건을 거의 다 갖추었다 할 만하니, 이 글자를 지어낸 세종대왕 한 사람 당대의 밝은 슬기가 능히 천고만인의 슬기를 초월하였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 글자를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찬탄을 금치 못하게 하니 이는 고금이 다름없고 안팎이 한가지이다.”   한글을 ‘민주의 근본’이라고 칭한 것도 단어를 아무렇게나 선택한 게 아니다. 외솔의 평소 지론이 담겼다.배우기 쉽고 편리한 글자로 문맹을 퇴치하고 국민들을 똑똑하게 만들어야만 민주주의도 실현된다는 그분의 철학은, 유고작인 <한글만 쓰기의 주장>을 읽어 보면 더욱 실감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3절로 가자.전통적인 기독교 찬송가를 보면, 앞부분은 예수님이나 크리스천의 삶에 대해서 노래하다가도 마지막 절은 재림, 천국, 내세 같은 거시적인 주제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코레일의 사가 Oh Glory Korail도 보라. 마지막 절은 한국 철도가 대륙을 넘어 세계로 뻗어간다고 스케일이 확 커지지 않던가?   그런 맥락에서 한글 노래의 마지막 3절은, 한글을 통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가 1980년대에 한글 문화권에 대해서 글을 썼듯이 말이다.   물론 21세기가 된 지금, 현실은 시궁창이다. 굉장히 시궁창이다.외국어는 범람하고 국어 문법은 갈수록 잡-_-탕이 돼 간다.그리고 미래가 안 보이는 경제 불황과 영적 배도와 타락, 그리고 막장으로 치닫는 사회 시스템 앞에서는... 한글이고 나발이고 답이 없다. -_-나도 솔직한 심정으로는 한글 문화권 나부랭이 따위를 바라느니(교리적으로 다분히 후천년주의적이기도 하다ㅋㅋㅋ), 차라리 하늘나라를 바라고 말겠다.   허나, 그래도 한국보다 더 못 사는 나라들로부터 이민자는 꾸준히 유입되고 있고,생업을 위해서든 한류 열풍 때문이든, 오늘날은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도 비록 진짜 메이저급 언어의 학습자에 비할 바는 못 되더라도 은근히 ‘많다’.신토불이니,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이다” 식의 구태의연한 드립을 동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에 끼인 우리나라가 우리만의 개성을 내세워서 세계에 얼굴을 내밀려면 미우나 고우나 한글을 들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한글이 ‘생활의 무기’란다. 최현배 박사는 공병우 한글 세벌식 타자기의 가치를 알았고, 문자를 다루는 기술을 기계화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던 사람이다. 그랬기 때문에 ‘무기’라는 단어를 썼다. 자, 이 정도로 풀이하니 한글 노래의 가사가 정말 외솔스럽다는 게 와 닿으시는지?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 주시경 선생은 그 옛날에 불모지이던 국어학의 기초를 닦고 한글 맞춤법의 근간을 마련해 놓았다.최현배 박사를 비롯한 조선어 학회의 학자들은 언어학의 결정체인 국어사전을 만들었다.공병우 박사는 기계와 사람의 편의성을 기가 막히게 조화시킨 전대미문의 한글 타자기를 발명했다.그리고 훗날 아래아한글을 만들어 낸 프로그래머들도 있고.. 본인은 그 ‘한글탑’ 위에다가 벽돌 한 장 정도 올려놓은 수준은 되면 좋겠다.(연세 대학교는 문과 대학 강의동의 이름이 '외솔관'이고, 캠퍼스 안엔 연세 한글탑이 있다.)   9월 18일 철도의 날과 10월 9일 한글날은 딱 3주 간격이며, 둘은 같은 요일이다.고로 올해는 철도의 날과 한글날이 모두 일요일이다.이 사실을 발견하고는 본인, 무릎을 쳤다.철도와 성경이 만나듯, 철도와 한글 쪽도 이렇게 만날 필요가 있다. ㅋㅋㅋㅋ[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5:2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08 22:30:48 | 김용묵
'진화론에 세뇌당한 것은 아닙니까?"에 이어 '같은 종류의 두 사람'이라는 제목의 만화 전도지를 올립니다. 패드 등에 넣어서 보고 알려주어도 좋을 것입니다. 작업을 해 주신 한기만 형제님과 신실한 한 형제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2011-10-07 15:13:08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