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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오랜동안 의문을 가지고 찜찜해하던 마음이 시원해졌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성경을 좀 더 집중해서 봐야할것 같습니다. 모두다 읽어보았던 구절들이지만 의문을 풀 수 있도록 서로서로 연결시키진 못 했네요.^^;;
2010-05-30 08:23:35 | 김대영
침례교라고 하는 것입니까? 저는 재세례파라고 생각합니다. 단일화된 교파는 아니지만 가장 초기 교회에 가깝다고 여겨집니다. 위에서 예로 언급된 교파들 중에는 그래도 침례교가 제일 나아 보이긴 합니다.
2010-05-30 00:12:06 | 금운호
다녀보면... 이런 글에 대단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글쓴이의 본의와 상관없이 굳이 뭔가를 알리려 애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자신의 관점이 대단히 옳은 것처럼 .. 당신이 잘 몰라서 그런다는 식으로 말이죠.. 사실은 상대적인 것인데도 말이죠. 항상 그렇습니다. 어디나 예외가 없는 것 같더군요. 개인적으로 저 또한 이승만 전대통령에 대해서는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10-05-29 23:05:03 | 박종철
저는 "필라델피아" 영화를 보고 동성애도 이젠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의 일부로 알았고 "브로큰백 마운틴"을 보면서 "정말 세상이 막장까지 왔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거의 "이루어질수 없는 아름다운 사랑" 이라고 미화시킨 동성애 그들의 말로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끔찍한 일입니다.
2010-05-28 17:12:50 | 송재근
여기 올라온 글은 단편적이 이야기 인데 너무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말았으면 하네요. 물론 저도 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좋게 보지는 않습니다만, 사람에게 공과는 분명있는 거니까요 그러나 여기 올라온 글에 그 사람의 모든 걸 판단하거나 아니면 부정적인 면을 덮어서 생각하는건 아니라고 봅니다. 김용묵형제님이 여기에 글 쓰신 이유가 저는 분명하다고 본다면 어떠한 의도가 있는 글은 아니라고 보니까요. 우리 모두 때론 객관적으로 나의 생각보단 사물을 보는 것도 좋을 때가 있다 생각합니다. 전 고 박정희 전 대통령보다 더 싫어하는 인물이지만 이글에서 어떠한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05-28 11:30:48 | 변경진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공로와 과실에 대한 평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 그를 평가할 것인가, 한 크리스천으로서 그를 볼 것인가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을 겁니다. 그 동안 이승만 대통령이라고 하면 당장 떠오르는 것이 "독재자"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이 글이 이승만이라는 정치인을 높이고자 하는 글이 아니라,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다른 측면을 조명하는 글이기에 제게는 별다른 거부감이 없습니다. 결국 그 모든 것은 우리 주님께서 종합적으로 판단하시겠지요.
2010-05-28 11:28:16 | 김문수
이승만 대통령의 공 과는 누구나 인정하는 바 입니다. 저도 전에는 좋지 않은 감정이 많이 있었는데 나이를 들면서 존경하는 마음이 더 들어감니다. 커밍아웃? 요즘 정말 부끄럽고 나타낼 수 없는 분들이 커밍아웃하여 박수 받고 용기있는 일이다 칭찬받기도하고 그 후로는 당당하게 대중앞에 나서는 것을 볼때면 그걸 보는 사람이 부끄러워 지기도 합니다. 그걸 본 청소년들은 그런걸 당연한 일로 여길거고....................
2010-05-28 10:38:30 | 허광무
안식일(한 주週의 마지막 날)은 이방인과 상관 없는 날이고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셨기때문에 그 이상 더 지킬 이유도 없는 날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은 토요일 저녁시간 때(6시경) 유대력으로 한 주週의 첫째날(창조의 첫째날과 같은 개념) 입니다. 오늘날의 시간 개념으로 일요일에 부활 하신게 아닌 토요일 오후6시경이라는 걸 아셔야합니다. 주主님이 일요일에 부활해서 일요일에 주일主日 성수해야 한다는 개념은 잘못된겁니다. 다만 유대시간으로 토요일 오후 6시경 부터는 한주週의 첫째날(주週의 첫날)이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그날을 주일(主日) 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근데 보통 주의날(主日)로 이해 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그럼 개념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일요일에 예배드리는거는 주일(主日)이라는 개념보다는 그날이 모이는데 쉽기 때문입니다. 원래 카톨릭에서 태양신에게 일요일에 해가 가장 높이 뜨는 시간인 11~12시 사이에 우상숭배하는 풍습이 몰래 들어온것이 훗날 개신교에서도 그냥 받아들인데서 유래한 것일뿐 아무 의미 없는 것이죠. 주일성수도 안식일도 아닌 일요일이 다른 어떤 날보다 모이기 쉽기때문에 그날 예배를 드리는 것일뿐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면 안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하루 일과가 끝나고 새 날이 시작되는 저녁에 모여서 만찬과 말씀교제를 한 것을 본다면 매일 모이면 좋겠으나 그게 어려우니 공식적으로 쉬는 날인 일요일에 모이는 것일뿐입니다. 다만 주週의 첫날이라는 개념으로 볼때 주主의 부활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날이 일요일이 아니라 유대력의 주週의 첫날이니 시간개념이 잘못되면 엉뚱하게 되어버리죠 분명 부활은 일요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외 자세한것은 여기 사이트에 도움되는 글을 참고하시고 위에 형제님들이 쓰신 내용을 이해하신다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2010-05-28 10:35:43 | 변경진
그래서 성경에 약 3:1 같은 구절이 있는 걸겁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가 더 큰 정죄를 받을 줄 아노라."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정교 일치주의자가 당연히 아닙니다. 제가 무슨 "크리스천은 무조건 크리스천 정치인에게 표 줘야 된다. 우리나라 국교를 기독교로, 목사를 공무원으로 만들어야 한다" 같은 주장을 하는 걸로 받아들이는 분이 제발 없길 바랍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크리스천은 정치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도 아닙니다. 저는 여기에 그렇게 자주 글을 올리는 것도 아닌데, 휴게실...까지도 아니구요. 진짜 제 개인 공간에다가는 이것보다 훨씬 더 덕후스러운 분야를 다루는 글을 훨씬 더 과격한-_-;; 표현도 가미해서 쓰고 지냅니다. 아무쪼록 형제님의 첨언을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05-28 10:08:48 | 김용묵
이승만 전 대통령을 생각할 때 마다 믿음의 사람의로서 시민 정부의 중책을 맡는 것이 그리 복된 일만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세상의 권세를 얻게 된 자가 감당해야 할 시험과 유혹이 얼마나 예리하고 컸으면 다윗 같은 신실한 대언자도 솔로몬 같은 지혜자도 모두 때로 범죄하고 그릇된 길로 갔겠습니까. 솔직히 저도 과거 친구들과 역사 얘길 하면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허나 골방에서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 격동의 시대 그 자리에서 이 전대통령이 겪었을 갈등과 고민이 얼마나 엄청난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위 글은 부족한 제가 봤을때는 정치적인 의견은 거의 없이 이승만 전대통령과 프란체스카 도나 여사의 만남을 신앙적 관점에서 잔잔하게 서술한 글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사실 글 자체로만 보고 지나치면 좋은데 댓글로 쟁점이 점화되다 보니 정치적 논란이 불거지게 되었네요. 아궁이의 불은 음식도 조리하고 방 안을 따뜻하게도 하지만 아궁이 밖으로 나와 여기 저기 불이 번지면 온 집을 다 태울 만큼 재앙의 씨앗이 됩니다. 똑같은 불인데 말이지요. 많이 아둔한 사람이지만 제 생각엔 글과 의견도 때론 너무 확대해서 논란을 일으키기보다 그 자체로만 보는 것이 좋겠다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 가지만 더 첨언 하자면 평소 김용묵 형제님의 글을 읽으며 마치 keepbible게시판의 휴게실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신앙과 성서의 심도깊은 고민들 속에서 때론 김 형제님의 글처럼 다양한 세상의 일들을 신앙적 관점에서 생각하며 또 다른 교훈을 얻는 것이 나쁘다는 생각은 안 했었습니다. 관현악단에서 현악기만 진짜 관현악이다 하고 관악기나 타악기는 물러가라고 하면 어떻게 관현악단이 완성될까요? 물론 전자바이올린 같은 놈이 은근슬쩍 들어오는 것은 철저히 걸러내야 할 것입니다. 김용묵 형제님께서 성서적 분리주의의 소중한 전통 아래서 심사숙고하여 글을 올리신다면 앞으로도 이 사이트에 소중한 유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귀한 글과 댓글들 잘 읽었습니다!
2010-05-28 09:39:10 | 김대용
감사합니다. ^^ 나름 크리스천에게 유익이 될 만한 재미있는 공통점을 찾아서 글로 정리해 본 건데, 여전히 소화하는 데 거북함을 느끼는 분도 계시는군요. 좀더 상대방을 생각해서 글 쓰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2010-05-28 09:36:48 | 김용묵
반대 의견을 내려면 좀 제대로 된 반대 의견을 내야 합니다. 형제님도 크리스천이시니 우리식 비유를 들자면... 오늘날 퍼져 있는 이승만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과 비방의 상당수는 "구약의 야훼는 가나안 민족들 다 학살하라고 한 잔인하고 변태 같은 신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수준입니다. 그런 데에 크리스천까지 동조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 글이 정치적이라고 여기는 것은 형제님의 생각일 뿐입니다. 이 글이 다루지도 않은 주제를 공연히 끄집어내서 문제삼을 필요는 없습니다. 제 글 어디에도 그리스도인의 죄까지 다 무마하고 합리화하자는 말 없습니다. 성경 구절 인용은 역사상 문맥과 분위기가 서로 상당히 일치한다고 판단되고 인용 가치가 있는 곳에 적절하게 했습니다. 부적절한 exploit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개인 취향을 드러내는 표현은, 제가 이 사이트에서 이제 충분히 친해지고 관계자들과 얼굴까지 아는 사이가 되고 알 만한 분은 이미 다 아는 만큼, 글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넣은 것입니다. 남에게 제 성향 강요한 적도 없습니다. 평소에 다른 소재로도 늘 그런 방식으로 부담 없이 글을 써 왔는데 유독 이 글에서 문제를 삼는 게 글 내용 때문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첫 문단의 초록색 글씨는... 원래는 없는 문구였다가, 글 올리기 직전에 형제님 같은 분의 반응을 예상하고 나름 배려해서 넣은 건데.. 1타로 바로 그런 반응이 올라올 줄은 몰랐네요. 앞으로 가능한 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글은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서 자제하겠으나, 부디 왜곡된 역사는 바로잡혔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05-28 09:36:17 | 김용묵
저의 댓글은 형제님의 역사의식과 많은 차이가 있었던거 같습니다. 이승만의 업적이나 역사 평가는 지금 여기서 댓글로 내가 맞다거나 김용묵 형제님의 의견이 맞다고 결론 내릴 순 없습니다. 그게 또 우리 신앙생활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도 아닐뿐 더러...본문 내용이 이승만이 역사적으로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글 첫머리에 쓰셨네요 '비판의 여지가 존재합니다' 라고) 그저 좋은 부분만 드러낸거 같아 김용묵형제님과 반대의 의견이 있음을 알리고 싶었고 또한 지금 형제님의 글을 읽는 많은 형제 자매님들 역시 이승만에 대해서 형제님처럼 호의 적이거나, 저처럼 좋지 않게 보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형제님처럼 호의적인 분들이야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저같은 사람은 이승만에 대해서 마냥 애국자라는 논리에 거부감을 느끼고 호의적이지 않은 분들에게 문제가 되겠지요. 형제님 댓글의 첫문장 "...평생을 성경적으로 믿고도 말년에 타락하거나 안 좋은 결말을 맞이한 사람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판단하는 것은 굉장한 어폐가 있습니다..." 형제님께서는 정치인 이승만으로서 본받아야한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을 그리스도인 이승만으로서 연계해서 확대해석하신게 아닌가 합니다. 정치인으로 본받아야할 부분은 형제님글 첫머리에 써있네요 비판의 여지가 존재한다고...말년이 좋지못한 그리스도인들을 우리가 본받을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다윗이 우레아의 아내를 간음한것 처럼, 성경의 여러 인물들이 하나님께 죄를 범한 것을, 인간이니깐 그럴수 있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로 합리화하여 따를 수는 전혀 없습니다. 형제님이 제게 쓴 댓글 두번째 문장대로 '...그저 주워들은 몇몇 편파적이고 일일이 반박하기에도 민망한 지식만으로, 자기보다 훨씬 더 애국자였고 훨씬 더 검소하고 훌륭하게 살았던 사람을 증오하는 것은...' 까지는 제가 형제님 글의 전형적인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대단히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이승만을 비판한다는 자체가 넌센스 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의 잘못된 역사적 판단으로 피해를 보신 분들을 생각한다면 저의 무지함과 저의 모자람이 차라리 더 좋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제가 원래 쓰고 싶었던 댓글은 이승만에 대한 비판이나 형제님 댓글에 대한 방어나 공격 이런 수준 낮은 내용의 글이 아니였는데 쓰다 보니 또 그렇게 된것같네요 김용묵 형제님!! 형제님은 이 keepbible 사이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물론 형제님 처럼 지식의 한편에서는 해박하신 분들의 글로 인해 저 처럼 많이 모자란 사람이 이 사이트를 통해 신앙 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형제님의 글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의 드라마틱한 크리스천 커플...'이 과연 이사이트의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는지 다시한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사이트는 개인적인 역사관이나 성향, 성경관등을 표출하고 사이트가 아닙니다. 형제님의 글을보면 “...오빠~ 나도 철도 덕후예요. 한국은 새마을호라는 엄청 멋진 열차가 다니는 나라 맞죠?...” 형제님의 직장이 철도 관련업에 종사하시거나 아니면 최소한 취미가 철도 여행이거나 철도와 관련된 분이라는건 알겠습니다. 또한 '동네 교회에서 청년부의 남학생 대표와 여학생 대표를 각각 맡던 사이였다' 이부분에 진하게 칠해진 것으로 보아 청년부 회장을 하고 계신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이런 이승만이 20세연하 여자를 만나 결혼했다는 내용이 과연 이 사이트의 취지와 목적과 맞는지 다시한번 의문을 가지지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마치 개인의 연애관처럼 글들이 읽혀지니 별로 마음이 좋지 못합니다. 형제님의 keepbible.com을 사랑하고 아끼시는 마음은 알겠습니다. 물론 형제님 처럼 많은 세상적, 성경적 지식으로 저처럼 무지한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줌으로서 사이트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저처럼 그냥 묵묵히 사이트의 글을 읽고 가끔 댓글을 쓰므로서 이 사이트의 애정을 표현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글의 내용은 전혀 성경적이지도, 이사이트의 목적과 취지와도, 신앙생활하는 다른 형제 자매님들께도 유익이 되는 교제도 되지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의 무지함과 좁은 성경지식으로 이렇게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성경구절의 인용을 자신의 개인적 취미를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성호는 동네 드럼이 아닙니다. 저는 keepbible.com의 자유게시판이 신앙생활에 아무 유익없고 개인의 정치적 색채를 지닌 이런 다툼의 소지를 가지고 있는 글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변색되어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김용묵 형제님께 마음의 상처가 되신다면 사과 드리겠습니다. 근무중 글을 쓰다보니 가게 일을 하나도 못했네요 그럼 이만 ^^;
2010-05-28 03:46:37 | 김경석
사람의 일생을 논함에 있어서 누구에게나 양면성이 있게 마련이지요.^^* 어찌되었든, 두 형제님 모두 프란체스카여사나 최용신씨처럼 훌륭한 베필들을 만나서 결혼하게 되기를 바래요. 오늘도 지식을 더하여 주시는 멋진 글에 감사드립니다. 샬롬.. ^__^*
2010-05-28 02:03:25 | 이은희
평생을 성경적으로 믿고도 말년에 타락하거나 안 좋은 결말을 맞이한 사람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판단하는 것은 굉장한 어폐가 있습니다(성경에서 아사 왕 등등등~~). 행실이 안 좋다고 구원도 못 받은 사람이고 단정짓는 거죠. 다윗이 제아무리 훌륭한 왕이었다고 해도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여럿 있었지요. 그리고 우리야의 유족이라든가, 그의 실책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7만 명의 백성들의 유족(삼하 24:15)이라면 다윗 왕을 충분히 증오했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그저 주워들은 몇몇 편파적이고 일일이 반박하기에도 민망한 지식만으로, 자기보다 훨씬 더 애국자였고 훨씬 더 검소하고 훌륭하게 살았던 사람을 증오하는 것은.. 영적으로 시므이의 후예(삼하16:7-9) 정도라고 생각하면 정확할 것 같습니다. 3 15 부정 선거, 보도연맹, 부산 정치 파동 같은 걸 줄줄 외우는 사람들이 평화선, 반공 포로 석방, 원자력 협정 같은 건 얼마나 아는지 궁금합니다.
2010-05-28 00:19:05 | 김용묵
이승만이 그리스도인 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끼친 많은 악영향을 생각하면 같은 그리스도인 이라는 사실이 정말 부끄럽습니다. (제 주변에 역사를 공부하는 믿지않는 친구들한테는 절대로 비밀로 해야겠네요)독립운동가들의 분열, 남북분단의 빌미를 제공,정적의 살해 등등등. 성경에는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본받아야할 많은 대언자들과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절대 본받지 말아야할 그리스도인들도 많습니다. 이승만이 진짜 믿음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였는지도 의심 스럽지만 만약 진짜 그리스도인 이였다면 절대 본받지 말아야할 사람이였다는 사실은 분명한거 같습니다. 그가 진짜 성격적으로 믿는 또 그런 신앙생활 했다면 최소한 말년이 그렇진 않았겠죠
2010-05-27 23:36:18 | 김경석
※ 이승만 - 프란체스카 도나   --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는 대통령으로서의 행적은 비록 실책과 과오도 있고 한 가치관을 사수하기 위해 다른 가치관을 희생시키고 부작용을 남긴 것 등 비판의 여지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는 40여 년간 미국에서 미국 시민권 없이 지내면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확고하게 믿었으며, 미국을 일본이 아닌 한국의 친구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바친 독립 운동가입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 주세요.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골수 외교파이더니만 여자하고의 외교(사교?)도 귀재였던 모양이다. 그는 젊은 시절에 미국으로 건너가 혈혈단신으로 고학으로 공부하고 독립 운동 하느라 연애를 할 시간이 없었다. 대학원 시절엔 교수 인맥으로 예쁜 백인 처녀와 사귈 수도 있었으나 그럴 여건이 안 됐다. 그러다 그는 무려 환갑이 얼마 안 남은 나이가 돼서야, 자기보다 20살도 더 어린 거의 딸 같은 오스트리아 여자와 연애를 하고 미국에서 결혼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이 박사도 워낙 천재여서 ‘능력’(?)이 있었고, 프란체스카 역시 보통 여자가 아니었다. 그러니 부잣집 엄친딸에서 웬 듣보잡 나라의 가난한 독립 운동가의 반려자로 자기의 일생을 과감히 바쳤고, 결국은 남편이 초대 대통령이 되는 덕분에 영부인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 정도면 정말 인생 역전??   운명 같은 만남이 시작된 것은 1933년, 제네바에서 국제 연맹 회의에 참석했을 때였다. 이승만은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고 일제의 학정과 침략 음모를 알리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다른 강대국들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하던 시절. 의기소침한 채로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했는데 자리가 없어서 프란체스카 모녀가 앉아 있던 4인용 식탁의 빈자리로 합석을 하게 된다.   어느 동양인 노신사가 떡 합석을 했는데, 이때 프란체스카가 “오~ 아저씨 혹시 조선인이세요? 거기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불리는 곳 맞죠? 신문에서 조선 독립을 호소하는 어떤 사람 인터뷰와 논평을 본 적이 있는데 그분이시군요!” 이런 식으로 아는체를 했던 모양이다. 이게 이승만에게 나로 치면 “오빠~ 나도 철도 덕후예요. 한국은 새마을호라는 엄청 멋진 열차가 다니는 나라 맞죠?” 처럼 들렸던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   프란체스카는 처음에는 이 박사의 팬(?)으로 만났는데 그게 차츰 발전하여 연인 사이가 됐다. 집도 잘 살고 수학의 달인에다 영어 통역사 자격증까지 있던 서양 여자를 이승만이 정말 잘 낚았다. 여자 쪽은 가족의 반대, 남자 쪽은 교포 동지들의 반대가 극심하였으나 둘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뉴욕에서 한 목사의 주례를 받으며 1934년에 곧장 결혼해 버렸다. (그래도 애는 입양해서 키웠고, 혼혈아를 만들지는 않았다) 폐백이던가 결혼 비용은 프란체스카가 부모 몰래 자기가 거의 다 댔다는 후문. 둘 다 영어는 겁나게 잘 했기 때문에 언어 문제는 없었다.   참고로 이승만과 프란체스카는 따지고 보면 둘 다 이혼 경력이 있다. 이승만은 당시 조선의 풍습이 그랬듯이 부모의 강요로 한국 여자와 한번 결혼했었지만, 그의 유학 시절에 그가 낳았던 아들도 병으로 죽고 여차여차 떨어져 살다 보니 첫 결혼 생활은 흑역사가 됐다. 여자도 옛날에 카레이서와 결혼한 적이 있었으나 자식 없이 3년만에 이혼. 그렇잖아도 카레이서와 산 적이 있었는데, 이승만 역시 미국에서 직접 운전할 때는 살인적인 난폭 운전으로 돌변해서 아내를 겁나게 만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마치 모세가 이방인 여자와 결혼한 것 때문에 동족으로부터 비방거리가 되었듯이(민 12:1), 이승만의 이런 행보는 당시 교포 사회에서 곧장 트집거리가 되었다. “당신, 명색이 독립 운동가라면서 동족 중에 여자가 없어서 그 나이에 웬 외국 여자와 결혼을 하다니.. 미친 거 아냐?” 식. 비아냥거리는 의미에서 사람들은 프란체스카를 호주댁이라고 불렀는데... 그건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_-도 구분 못 한 교포들의 무지의 소치였다. 뭐야 이건...-_-;;   그녀는 이 박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데 두려운 게 무엇이냐?’란 말을 입버릇처럼 한 독실한 크리스천이었고, 어지간한 한국인보다 대한민국을 더 사랑한 분이었으며, 성질 급한 이 박사의 돕는 배필 역할을 정말 신실하게 해냈다.   남편이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독립 운동하느라 피곤해 있을 때 운전도 도맡아 하고, 그가 훗날 <Japan Inside Out>이라는 책을 쓸 때에도 타이핑도 전부 해 줬다. 1945년 우리나라가 독립을 되찾은 날, 이 박사는 미국 신문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아내의 지혜와 용기, 인내와 슬픔, 노력이 나로 하여금 오늘 이 날을 맞게 했다”고 아내의 공을 높게 치하했다.   그러고 보니 왕년에 태평양을 배와 비행기로 모두 건너 본 사람도 참 흔치 않은 것 같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1992년에 세상을 떠났고 서울 현충원에 이 승만과 나란히 묻혀 있다. 그녀의 유언은 남편이 생전에 독립 운동 하면서 사용하던 태극기를 관에다 넣어 달라는 것이었다.   ※ 김학준 - 최용신   소설 <상록수>의 실제 인물이다. 이 승만 커플이 international이라면 이 커플은 철저하게 domestic.이들은 원래 함경남도 원산에서 집도 이웃 사이이고, 동네 교회에서 청년부의 남학생 대표와 여학생 대표를 각각 맡던 사이였다. 둘 다 브레인이었고 훗날 존경스러운 애국자로 성장했다. 이러던 차에 남자가 여자의 가치를 알아봤다. 최용신은 자기보다 연상이고 사진을 보면 별로 미녀형도 아닌 데다, 어렸을 때 마마를 한번 앓아서 곰보이기까지 해서 외모의 매력은 정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은 최에게 무려 10대 중반의 나이로 결혼하자고 프러포즈를 했다. ㅎㄷㄷㄷ...그녀의 다부지고 야무진 인품, 육신의 나이를 훨씬 웃도는 정신 연령, 애국심과 기독교 신앙에서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최용신은 외모에 자신이 없을 뿐더러 자기는 앞으로 독신으로 살면서 농촌 계몽에만 헌신하려고 결단하고 있었던지라, 청혼 요청을 매번 거절했다. 하지만 김도 그냥 차 버리기에는 아까운 훌륭한 남자인 걸 알았기 때문에.. 고민 끝에 그녀는 일단 약혼만 하고 결혼은, 각자 공부도 더 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뭔가 업적도 남기고 나서 무려 10년쯤 뒤에 하자고 합의를 봤다.   그녀는 이념을 초월하여 농촌을 정말 진심으로 사랑한 분이었다. “중등교육을 받은 우리가 화려한 도시 생활만 동경하며 일신의 영달만 도모한다면 저 버림 받은 농촌 아이들의 까막눈은 누가 뜨게 해 줄 것인가?”“교육을 받은 신여성을 필요로 하는 일에는 저 말고도 더 뛰어난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농촌을 위해 일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농사를 지으면 1년 먹을 수확을 얻지만, 사람을 가르치면 백 년치 수확을 얻습니다. 아는 게 힘입니다. 배워야 삽니다”   그 결혼 유예 기간 동안 남자친구는 도쿄로 유학을 떠나고, 그녀는 자기 신념대로 발 벗고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거기가 지금의 안산 상록수 전철역 일대인 샘골이다. 그때 그녀가 지주와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 학교를 세우고 운영하느라 겪은 고난과 역경, 그리고 행동으로 실천한 초인적이고 헌신적인 사랑과 헌신에 대해서 이 글에서 일일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나중엔 사람들이 집안 부부싸움의 중재까지 최용신에게 맡길 정도로 그녀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좋은 간증을 듬뿍 얻었다.   그렇게 몇 년을 있다가, 그녀는 자기도 중도에 그만뒀던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일본에 있는 신학교로 유학길에 나섰다. 아직 유학 중이던 남자친구도 그때 일본에서 만났다(이게 마지막 만남이 됨). 그러나 3개월도 안 돼 지병 때문에 유학을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이 소식을 들은 샘골 사람들은 “최 선생님, 선생님은 우리의 정신적 지주이니.. 그냥 자리에 누워 있기만 하더라도 제발 우리 곁에 있어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결국 샘골로 돌아왔는데... 최용신이 거기서 가만히 요양만 했겠는가? 또 옛날 버릇이 살아나서 몸 버려 가며 일했다. 결국 극심한 영양실조 때문에 창자가 꼬여서 음식물 대신 소화되고 썩어 들어가는 병에 걸렸다. 1935년 1월,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도 학교 운영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어린 제자들을 하나씩 부르면서 감을 수 없는 눈을 감고 말았다. 서른도 채 못 된 나이에, 결혼 유예 기간을 1년도 채 안 남기고 말이다.   마을은 울음바다가 됐다. 평소에 샘골 학원을 감시하고 인원 수 줄이라고 최용신에게 딴지만 걸던 일제 형사도 고인의 장례식에서는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약혼남이던 김학준 역시 허겁지겁 달려왔다.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을 장면이었다. 애인의 죽음 때문에 그 후 그는 삶의 목적을 상실한 채 정말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같이 죽을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지만 신앙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고, 여친이 못 이룬 꿈을 내가 이뤄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는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함흥 영생여고에서 교사가 되었다. 훗날 정태진 등과 더불어 조선어 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은 김학준이 저 김학준이다! 그는 교회 인맥을 통해 알게 된 다른 여자와 결혼(재혼이 아님)하여 가정을 꾸렸다. 최용신에 대한 첫사랑 기억은 그렇게 가슴 속에만 묻어놓고 새 삶을 개척한 것이다. 그러다 1961년에 신상옥 감독의 영화 <상록수>가 개봉하던 당시 “내가 심훈의 소설에 나오는 박동혁의 실제 인물이오!”라고 대담한 커밍아웃을 하여 당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자기 아내조차도 그때까지는 그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해방 후엔 조선대 교수 등을 역임하면서 우리나라의 격변의 역사를 체험하다가 1975년에 세상을 떠났다. 죽으면서 “나는 꼭 최용신의 무덤 곁에 묻어 주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미망인인 부인은 이를 수락했다고 한다.     -- 최용신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거기 일대에는 수인선 협궤 철도가 건설되었습니다(1937). 사실, 제가 소설 <상록수>를 다시 찾아보고 최용신의 삶에 대해서 공부하게 된 것은, 지하철 역들을 막 암기하다가 안산선에 상록수라는 역이 있는 걸 발견하고부터였지요. 철도가 저의 정서에 얼마나 선한 간증과 긍정적인 영향을 남겼는지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 더 중요한 것: 올여름 추진 계획 중인 청년부 연합 MT(가칭) 위해서, 그리고 21세기 한국의 킹 제임스 교회 내부에도 저런 커플들 많이 나오도록(?) 기도 부탁합니다. ㅎㅎㅎ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0:2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27 21:53:35 | 김용묵
신약 교회의 일요일 예배는... 율법이 아니라 사도들이 전해 준 "좋은 전통"에 근거하여 시행되어 오고 있습니다. 즉, 벧전 1:18 같은 나쁜 전통이 아니라, 살후 2:15 같은 건전하고 좋은 전통이라는 말이죠. 정 부득이하다면 꼭 일요일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굳이 일요일을 기피해야 할 필요도 없지요. 크리스마스나 이스터 같은 것과는 뿌리가 다르므로 안심하셔도 됩니다. ^^
2010-05-27 21:12:48 | 김용묵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의 계약이므로 우리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로 내 안식일을 지킬지니라. 그것은 너희 대대로 나와 너희 사이에 있을 표적이니 이것은 내가 너희를 거룩히 구별하는 주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니라(출31:13).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키되 그들의 대대로 안식일을 준수하여 영속하는 언약으로 삼을 것이니라. 안식일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에 있을 영원한 표적이니 이는 주가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며 상쾌하게 되었기 때문이니라, 하라(출31:16,17). 위 말씀들에 의하면 안식일이 누구와 누구 사이의 표적이라고 했습니까? "나와 너희", 곧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표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그 뒤에 나오는 구절에서도 하나님은 재차 이 안식일 계명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에 맺은 언약이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첫날에 제자들이 빵을 떼려고 함께 오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려고 그들에게 말씀을 선포하며 계속해서 한밤중까지 말을 하니라(행20:7). 주의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 대로 자기 곁에 모아 두어 내가 갈 때에 모으는 일이 없게 하라(고전16:2). 위 구절에서 보듯이 신약 교회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여 주의 첫날에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말씀을 선포하고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요일(주의 첫날)에 모여 예배드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일성수라는 율법적 개념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듯이 주일에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등의 규칙을 만들어 놓고 그 법규를 준수하거나, 그 주일성수 규칙을 어기면 천벌을 받을까봐 두려워하여 의무감에서 그것을 지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일에 모여 예배드리고 교제를 나누며 쉼을 얻고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2010-05-27 17:08:15 | 김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