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과 댓글에 감사합니다.
샬롬.
2010-05-22 21:29:43 | 관리자
과거에 저도 과학을 맹신한 적이 잇었읍니다.
이제와서 생각하니 과학의 한계가 눈에 보입니다.
키보드는 사람 손가락보다 작아질수 없읍니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서 작게 만들 수 있다하더라도 사용할 수 없읍니다.
작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용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음성인식으로 컴퓨터가 알아서 해줄 것 같지만 키보드보다 못합니다.
사람 말은 오류가 많아서 정확하게 적기가 힘이 들고, 글로쓰는 것은 열시간이고 할 수 있지만,
말하는 것은 힘이 들어서 한시간만 말하면 지쳐서 할 수가 없읍니다.
컴퓨터가 발달하고, 인터넷이 발달하면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정보량이 너무 많아지면 사람이 받아들일 수 없고, 사람은 건망증으로 대응하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문명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지만, 자원은 한계를 보이고 있읍니다.
현대문명은 부품과 부품을 조립한 것이라 부품이 한개만 없어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석유는 단순히 에너지만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화학물질을 제공하여 태양열이나
원자력이 에너지를 대신하여도 현대문명은 석유가 없어지면 무너집니다.
차가 있어도 아스팔트가 없으면 도로가 없고, 도로가 없으면 차는 무용지물입니다.
전기차가가 미래를 대신할 수 있나요? 도로가 없는데?
모든 과학문명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창조가 아닌 발견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과학을 특별한 무엇인가로 여기지 않고, 생활의 편의를 위한 것 내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발견하는 도구 정도로 저는 생각합니다.
2010-05-22 18:13:25 | 홍승대
재미 있늘 글 입니다.
금 시대에 과학의 발달 속도가 너무 급속하여
이시대에 태어 난 것이 좋기도 하면서 또한 앞으로의 발달될 세상을 살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게 생각된 적이 있었는데.
성경을 좀더 알고 부터는 과학발달에 대하여 신기하긴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고
주 관심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끌어 나가는 섭리가 어떤 것인가의 의문이 있을 따름 입니다.
복재 양 돌리가 탄생 되었을 때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복재 인간이 연상되어 바로 말세에 대하여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고
목사님에게 저의 심각한 마음에 대해 물어 보아도 별스런 대답이 없어 실망했던 기억이...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2010-05-22 17:00:39 | 허광무
※ 초과 달성
1.“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마차보다 두 배나 빠른 교통수단이라니?” (잉글랜드 계간 리뷰, 1825년 3월호)
2.“에니악 컴퓨터가 19000개의 진공관을 사용하고 무게가 30톤인 걸로 봐서 미래의 컴퓨터는 1000개 정도의 진공관으로 구성되고 무게는 1.5톤 정도 나갈 것이다.” (Popular Mechanics, 1949년 3월호)
3.“공기보다 무거우면서 하늘을 나는 기계는 제작 불가능하다.” (영국의 수학자· 물리학자 켈빈, 1895. 절대 온도 단위 이름이 붙은 그 과학자임)-- 육군(army), 해군(navy)과는 달리, 가장 늦게 생긴 공군만이 자신만의 고유명사가 없이 영어로도 air force이다. 그리고 항공 여객업계의 용어 역시 상당수가 선박 용어를 답습하고 있기도 하다. cabin, boarding 등.
(위 1~3의 출처: http://ropas.snu.ac.kr/~kwang/memo/skeptics.html )
4.과거에는 SF(공상 과학 소설) 작가들이 둥그런 브라운관 모니터로 얼굴을 보면서 통화하는 텔레비전 전화를 상상했으며 손목 텔레비전, 휴대용 전자 사전, 심지어 일종의 정보 검색 서비스 같은 것도 상상했었다. 하지만 그때 어느 누구도 전국민이 주머니에다 전화기를 넣어 갖고 다니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으며 인터넷, 블로그, 유튜브, 스마트폰 같은 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5.옛날 사람들은 진짜로 인간의 과학 기술 능력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을 수 있지만, 기술과는 별개로 거대 자본과 정치력에 의한 기술의 대중화와 생활 패턴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밤에는 잠이나 잘 것이지 전깃불 같은 게 있어서 뭐 하게?”“컴퓨터 메모리는 640KB면 충분하고도 남는다”“텔레비전 같은 건 만들어도 상업적으로 아무 실용성이 없다”
같은 예측이 그때는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이렇게 바뀐 게 다 하늘로부터 온 건전한 지혜에 의해서만 된 건 아니라는 것도 알 필요가 있다!
인간이 언제까지나 예상을 뛰어넘는 발전만 해 왔으며 세상을 뒤바꿔 놓은 과학자나 IT 거장들의 예측이 언제나 적중만 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아래의 예들을 잘 생각해 보자.
※ 목표 미달
1.1970년대에 인류가 이미 달까지 갔다 오는 데 성공했으니, SF에서는 그로부터 2, 30년쯤 뒤엔 인간이 응당 달에 식민지도 만들고 달 여행 관광 상품 정도는 개발되어 있는 게 정상이라고 다들 상상했다.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 같은 영화를 기억하시는가?
그러나 2001년으로부터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우주 개발은 요원하며, 오히려 그 옛날에 인간이 정말로 달에 갔다 오긴 했는지가 역으로 의심을 받고 있을 정도이다.
2.우주 개발이 갓 시작되었던 시절에 과학자들은 금성은 지구 다음으로 생명이 살기 좋은 행성일 거라 예상해 왔다. 적도 지방은 태양과 가까워서 좀 더울지 몰라도, 특히 극지방 정도면 심지어 마이애미 해변 수준일 거라고 말이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에서는 금성인과 화성인은 필수 요소였다.
그러나 금성에 처음으로 도착한 탐사선이 착륙한 지 단 90초만에 고온 고압과 강산(acid) 세례를 못 버티고 짜부러지면서, 현실은 이상과 달라도 극단적으로 너무 다르다는 게 곧 밝혀졌다. 지구에서 샛별이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금성은 사실 태양계에서 손꼽히는 지옥 행성이었던 것이다. (90분이 아니라 ‘초’다. 그 반면, 화성에 착륙한 탐사선은 수 개월~수 년간 활동하기도 했음)
3.천문· 우주 분야는 그렇다 치더라도 컴퓨터 쪽만 해도 그런 미신은 엄청 많다. 영화나 매스미디어가 컴퓨터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대중들에게 굉장히 많이 주입하기 때문이다.10년쯤 전에 Y2K 문제, 소위 말하는 밀레니엄 버그 때문에 세상이 얼마나 시끄러웠었는지 기억하시는 분? 그러나 현실은 극소수 일부 컴퓨터에서의 사소한 오동작을 제외하면 달라진 게 없었고 오히려 지금은 2012년 종말설이 또 나돌고 있는 중이다. ^^;;
4.무어의 법칙과 황의 법칙도 이제 끝났다. 물론 컴퓨터 성능의 향상 자체가 멈춘 것은 아직 아니지만, 반도체의 집적도와 클럭 속도 경쟁은 한계에 도달하여 무의미해져 있다. 개인용 컴퓨터는 6~7년 전이나 지금이나 3~4GHz를 넘는 녀석을 찾기가 힘들다. 1990년대에는 상상도 못 하던 일. 이제 과거에 386, 486처럼 컴퓨터가 급격하게 바뀌지는 않고 있다.
5.1990년대 말, 인텔 사에서 Itanium (IA64)이라는 64비트 아키텍처를 처음으로 만들어 냈을 때, 당시 IT 전문가들은 가까운 미래에 전세계의 컴퓨터계가 확 뒤집힐 거라고 온통 설레발을 쳤다. 과거에 PC 환경이 16비트에서 32비트로 넘어갈 때 워낙 변화가 컸기 때문이다. 윈도우 3.1에서 윈도우 95로 넘어갔을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10년 후 지금은?? 여러분이 이 글을 보기 위해 사용 중인 웹브라우저조차 90% 이상은 여전히 32비트 x86 아키텍처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일 것이다. ^^;; 16비트에서 32비트로 넘어간 변화는 정말 급격했지만, 32비트에서 64비트로의 변화는 아주 원만하고 느리다.
아래 그래프는 IA64 아키텍처를 개발한 인텔이 이 CPU로 인해 예상되는 매출을 연도별로 예측한 것이다. 처음 1997년에는 IA64가 앞으로 21세기에 기하급수적으로 돈다발을 갈퀴로 긁어모을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그 예측은 기하급수이던 게 이내 산술급수로 격하되었으며, IA64의 실제 매출은... 무려 주황색 선에 그치고 말았다...!! 진짜다. 그리고 지금 저 아키텍처는 완전히 망했으며, 오늘날은 IA64 대신 x86-64라는 기존 32비트 x86과 완전히 호환되는 다른 64비트 아키텍처가 그나마 32비트와 64비트 사이를 중재하고 있다.
...
‘거짓되이 과학이라 불리는 것’을 크리스천이 더욱 경계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과학 기술 자체야 철저하게 가치 중립적인 도구일 뿐이며, 그것과 관련된 공상만으로는 역시 나쁠 게 없다. 그러나 그것을 맹신하느라 그것이 진실을 가리고 영적 안목을 가릴 정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회적인 사건이었던 것처럼, 휴거와 예수님의 재림 역시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단원이 될 것이다. 1· 2차 세계대전과 컴퓨터, 인터넷, 우주 개발까지 다 겪고서야 세상이 그렇게 끝날 것이다. 그동안 종말이 온다면 몇 번이고 왔을 수도 있었으나 세상은 아직까지 건재하다. 하나님 보시기에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존재하는 이 시대는 말세에 아주 잠깐 흥왕하다가 곧 사라질 보잘것없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신문과 성경을 균형 있게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과학 기술이나 세상 정세에 너무 섣불리 반응할 필요는 없다. 귀가 얇아서 뭐 하나 과학 기술이 개발됐다거나, 뭐 교황 내지 미국 대통령이 바뀐 걸 보고서 “이제 종말이 왔네, 이게 짐승의 표 666이네” 식으로 쉽게 동요해서도 안 되겠지만, 세상은 언제까지나 이렇게 그대로 유지된다는 느슨한 믿음도 성경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크리스천의 삶의 역설이란 게 이런 면모가 아닐까?
마지막 시대를 사는 크리스천들은 과거의 오류 사례들로부터 뭔가를 배워야 할 것이다. 정보가 넘쳐나고 혼돈스럽기 그지없는 이 시대에 절대적인 기준을 갖고서, 선악은 정확하게 분별하되 성경이 언급하지 않은 주제에 대해서는 지나친 추측이나 확대 해석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것과 주님의 다시 오심은 서로 별 관련이 없다는 맑은 정신과 건전한 믿음을 주변에 일관되게 증거해야 하지 않나 싶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0:2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22 16:23:29 | 김용묵
기독교계에는 여러 가지 교파들(카톨릭, 그리스 정교회, 루터교, 장로교, 성공회, 침례교, 성결교 등)이 있습니다.
(*) 참고로 기독교(Christianity)와 기독교계(Christendom)는 다릅니다.
기독교계는 그리스도를 주장하는 모든 종파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천주교, 몰몬교 등도 기독교계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아닙니다.
독자께서는 이런 교파들의 기원과 창시자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가장 성경적인 모임은 어떤 곳일까요?
상식을 위해서라도 알아두시면 좋을 것입니다.
정수영 목사님의 교회사 강좌는 이 문제를 잘 다루고 있습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사 41
교회사 42[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0:2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21 10:24:21 | 관리자
기독교계에는 여러 가지 교파들(카톨릭, 그리스 정교회, 루터교, 장로교, 성공회, 침례교, 성결교 등)이 있습니다.
(*) 참고로 기독교(Christianity)와 기독교계(Christendom)는 다릅니다.
기독교계는 그리스도를 주장하는 모든 종파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천주교, 몰몬교 등도 기독교계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아닙니다.
독자께서는 이런 교파들의 기원과 창시자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가장 성경적인 모임은 어떤 곳일까요?
상식을 위해서라도 알아두시면 좋을 것입니다.
정수영 목사님의 교회사 강좌는 이 문제를 잘 다루고 있습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사 41
교회사 42
2010-05-21 10:20:06 | 관리자
이글은 오직 김용묵 형제만이 쓸수있는글입니다, ㅋㅋ
2010-05-20 18:59:14 | 송재근
그래서 우리말이긴 하지만 문법과 어법을 정확하게 지켜가며 사용하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우리말은 단순히 단어의 배열만으로 문장의 의미가 결정되는 게 아니라, 조사, 보조 용언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배우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흠정역 성경을 번역할 때에도 참 힘이 들었을 겁니다. 원칙대로 하자면 단어 대 단어, 형식적 일치기법을 사용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나 접속사까지 일일이 다 번역할 수도 없거든요. 룻기를 읽어보면 대부분의 절에서 and, then 이 나오는데 이걸 글자 그대로 다 번역하자면 오히려 혼란스러울 겁니다. 또 그리스어나 영어와 같이 어순을 바꾸어서 도치문으로 쓸 경우 한국어의 어순과 맞지 않아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한국어와 같은 교착어가 아니라, 영어를 통해서 보존하신 것도 이런 이유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2010-05-20 17:29:35 | 김문수
ㅎㅎ 아주 재미있습니다.
짜장이 자장이면 짬뽕은 잠봉이냐... 이렇게 따지는 사람들도 있죠.
맛있다, 멋있다...도 마디따, 머디따..로 제대로 하는 경우가 아나운서 일부 외에는 이제 없지요.
광고도 모두 마시따, 마시따 하니까 이제 마디따...하면 맛이 없어 보일 정도이고...
그러면 맛없다..도 마덥따가 아닌 마섭따... 해야 하는데.....ㅎㅎ
아무튼 언어라는 것, 약속이라는 것.. 참 어려운 숙제지요.
감사합니다. 샬롬~!
2010-05-20 11:30:21 | 김재욱
언어는 살아있는 유기적 생물 같으니 자꾸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을 듯 싶네요 전 김:밥 으로 앞에 김이 장음이라 밥이 빱으로 소리 내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있지만 현대어는 거의 장음이 사라지고 말이 빨라지는 경향으로 된소리나 경음화 된다고 배웠습니다. 된소리가 많은것은 사회적 현상이라고 보는 경향도 있더군요 외세 침략도 많고 사회가 각박해지면 더욱 심화 된다고 하더라구요 국어 연구나 이런글 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어렵습니다. 저부터도 알면서 잘 못 쓰기도 하니까요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05-20 11:28:30 | 변경진
정말 복잡한 국어네요. 짜장면이 왜 자장면으로 바뀌었는지 뭐로 써야할지 궁금하다가
잊어버리곤 했는데 유익한 국어 시간이었어요.허나 솔직히 50%도 소화하지 못했어요.
주부대학 다지니 않아도 이렇게 집에 앉아 다양한 공부할 수 있어서 좋네요.
오늘은 특별 강의 시간었습니다.^*^
2010-05-20 01:50:55 | 정혜미
솔로몬이 유전자 감식이나 CCTV를 통해서 진짜 애엄마를 찾아낸 게 아니라,
모성을 이용하여 참 드라마틱하게 진짜 애엄마를 찾아낸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훈훈한 기사네요!
2010-05-20 00:49:06 | 김용묵
1. 어지간하면 이제 좀 ‘짜장면’을 표준어로 삼자
‘짜장면’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논리가 뭔지 본인은 잘 알고 있다. ‘자장’은 원래 중국어에서 유래된 외래어이고 우리말 맞춤법은 외래어 표기를 할 때 극히 일부 듣보잡 언어를 제외하면 된소리를 쓰지 않고 있는데, 된소리로 발음된다고 다 된소리를 써 버리면 버스도 뻐스로, 게임도 께임으로 바꿔야 되기 때문이다.(i)
그런데 짜장이 과연 버스나 게임 같은 급의 생소한 외래어일까? 짜장이 외래이어이면 빵, 가방, 담배, 구두 같은 단어도 몽땅 외래어이다.
물론 순우리말 ‘짜장’이라는 단어는 부사로, ‘참, 과연’.. 즉 영어로 치면 yea나 indeed 같은 뜻이 별도로 있긴 하다. 쉽게 말해서 창 3:1의 Yea, hath God said를 “하나님께서 짜장 그렇게 말씀하시더냐?” 처럼 옮겨도 된다!하지만 이제 그 짜장과 저 짜장은 한국어에서 동음이의어가 되어 버린 지 오래이고 오히려 후자의 뜻이 훨씬 더 영향력이 있다. 게다가 짬짜면 같은 응용(?)까지 있다.
이제 와서 너무나 비현실적인 단어로 전락한 ‘자장면’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자장면에다가 외래어 표기법을 갖다 붙이는 건, ‘먹거리’라는 말이 조어법에 어긋난다거나 셈씨(數詞) 뒤에다가 님 붙인 형태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틀렸고 ‘하느님’이 맞다는 식의 비약인 것 같다. 고유명사를 만드는 건데 부르기 쉽고 최소한의 어원적 근거만 있으면 됐지, 그런 것 따질 필요까지는 없다.(ii)
주)i. 거의 같은 형태의 외래어인 ‘버그’라든가 ‘게이’는 음절 첫소리가 절대로 된소리로 바뀌지 않는다! 께이라고 안 부른다. 그냥 의미상 동음이의어를 비껴 가려고 본능적으로 경화 여부가 결정된다. 이것도 정말 신기한 노릇.
ii. 사실, 고유명사 중에 쌍용도 틀린 말이다. 청룡, 황룡 할 때처럼 쌍룡이 맞다. ^^ 하지만 고유명사인데 뭔들 어떠하겠는가. 오뚝이인들 어떻고 오뚜기인들 어떠하리?
2. ‘석/서/세’, ‘넉/너/네’ 구분하지 말고 그냥 ‘세’, ‘네’로 통일하자
‘종이 세 장’이라는 표현은 틀렸다는 걸 아는가? ‘석 장’이라고 해야 맞다.정말 아무 쓰잘데기 없고 의미 없는 구분이다. 괜히 사람 헷갈리게 만들고 한국어를 더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다. ‘서너’(3 or 4) 같은 예외만 인정하고, 뒤에 단위(말, 개, 장 등등)에 따라 숫자의 표현이 바뀌는 일이 없게 하는 게 더 낫겠다.
3. ‘째’와 ‘번째’ 좀 구분해서 쓰자
‘째’는 영어로 치면 정확하게 n-th(순위, 서열, 차수)에 대응하며 (첫째, 둘째, ..., 열한째, 열두째),‘번째’는 n-th time(반복되는 일의 횟수)에 대응한다고 보면 정확하다. 즉, 쓰임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한다.
- 이 선수가 둘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2등)- 이 선수가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두 바퀴째)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쓰임이 굉장히 문란해져서 둘 다 무조건 ‘번째’가 쓰이며, 순위인지 횟수인지는 그냥 문맥으로 대충 구분되는 중이다. ^^;;;; '째'는 명사형으로 "첫째(아이)를 낳았다" 정도에서나 쓰는 것 같다.
4. ‘기존’을 제발 오· 남용하지 말자
이 단어의 쓰임을 완전히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은 곳은 본인이 보기에 IT 업계이다. 하도 새로운 기술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다 보니 자꾸 옛날 것과 비교를 해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기존’은 말 그대로 ‘이미 존재하는’이란 뜻이다. ‘현존’이나 ‘실존’처럼 ‘하다’를 붙여 용언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은 기존이 ‘이전’, ‘예전’ 같은 뜻으로 막 남발되고 있고, 오히려 ‘기존하다’라고 용언으로는 거의 안 쓴다. 기존이 무슨 뜻인지 안다면 “기존에 있던 것은 버리세요” 같은 문장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알 수 있다.
5. ‘커녕’은 조사(토씨)이다
커녕은 ‘도’, ‘조차’와 동일한 조사이다. “사람커녕 쥐새끼 한 마리 없다”라고 해도 원래 맞다. 커녕을 강조하기 위해서 쓰이는 표현이 ‘는(은)커녕’이다.그런데 요즘 쓰이는 양상은? “사람은 커녕 쥐새끼 한 마리 없다”라고 커녕을 거의 부사처럼 습관적으로 띄어서 써 주고 있다. ^^;;
6. ‘다르다’와 ‘틀리다’를 제발 구분해서 쓰자
“ ‘다르다’는 ‘틀리다’와는 의미와 쓰임이 다른 단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르다’라고 써야 할 곳에 ‘틀리다’라고 쓰면 틀립니다(틀렸습니다).”
말 그대로 different와 wrong의 차이이다.‘틀리다’는 보통 ‘틀렸습니다’라고 과거형으로 많이 쓰이다 보니, 현재형에다가 ‘다르다’라는 의미가 자꾸 들어가려는 모양이다.
7.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실은 ‘더 이상’도 ‘덜 이하’가 잘못된 것만큼이나 아주 잘못된 표현이다. 김 모 화백의 만화 대사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이 표현은 ‘더는’이나 ‘더’라고 군더더기를 빼거나, 혹은 하다못해 ‘그 이상 (더)’라고 써야 맞다.
8. ‘김밥’의 표준 발음은 ‘김빱’이 아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할 것이다. 본인도 지금까지 김밥을 ‘김밥’이라고 그대로 발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곰국, 비빔밥은 다 국과 밥이 된소리로 변하는 반면 짜장밥, 보리밥, 볶음밥은 예사소리 그대로이다. 곰국이 곰고기로 만든 음식이 아니듯이, 재료가 아니라 조리 방법을 나타내는 단어는 된소리이고 단순 재료 합성일 때는 예사소리인가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비빔밥과 볶음밥의 관계를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볶음밥은 단순히 둘째 음절이 '끔' 된소리여서 셋째 음절이 예사소리로 유지된 것일 뿐이다.
즉, 된소리로 바뀌는 건 거의 랜덤인 듯하다. 이러면 사람들에게 왜 굳이 김빱이 아니라 김밥이라고 발음해야만 하는지를 설득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하나 덧붙이자면 햇님도 잘못된 말이고 해님이 맞다. 우리말에서 사이시옷은 정말 울트라 캡숑 어려운 개념이며, 단어 구분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주범이다.
9. ‘쩜’과 ‘짜’
이미 국어에서 별도의 변별 요소로 널리 쓰이고 있는 ‘짜’(특정 글자를 강조하는 접미사)와 ‘쩜’(소수점의 명칭)이 별도의 표기로 필요하다고 생각함. ‘자’는 단어의 끝에 등장하면 字보다는 者의 의미로 훨씬 더 강하게 쓰이며, ‘점’은 point보다는 score의 의미로 더 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서 님짜는 존칭을 나타내는 접미사라기보다는 완전한 단어의 일부입니다.”“저희 어머니의 성함은 김 순짜 애짜입니다.”“저 선수의 점수는 이십오쩜 오점입니다.”
10. ‘여덟’
8을 뜻하는 ‘여덟’은 먼 미래엔 아예 ‘여덜’로 철자가 바뀔지도 모르겠다. “열에 여덟은” 할 때 ‘여덜븐’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이 있는가? 비슷한 예로 ‘돐’이라는 단어가 맞춤법이 바뀌는 과정에서 아예 ‘돌’로 퇴화가 확정된 적이 과거에 있었다.
북한에서 인명의 ‘희’를 아예 ‘히’로 바꿔 버렸듯이 말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의’를 제외하면 ㅢ를 ㅡ+ㅣ로 발음하는 경우 자체가 사실상 사라졌다. ‘띄어쓰기’만 해도 그렇다.
* * * * *
본인의 그렇게 문학 소년이라든가 토박이말 순수주의자가 아니며, 일본식 한자어라든가 일본어· 영어 번역 말투를 무조건 배격하자 주의도 아니다.한국어에서 잘 쓰이지 않는 용법이라 하더라도, 학문적으로 객관적이고 정확한 표현을 위해서는 피동형이나 수동태식 표현도 필요하고 이중 과거가 필요할 때도 있다. 번역투 표현 안 쓰고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 같은 표어를 짤막하게 번역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말 순화 운동가들이 저런 현실적인 면모를 대체로 간과하는 경향이 있어서 좀 아쉬운 점이 있다.
단지, 번역투를 전혀 쓸 필요가 없는 문장이 번역투 때문에 길어지고 장황해지고, 우리말 어법이나 정서에 안 맞게 되는 걸 보면 못 참는 스타일이다. 부모도 가지고(have), 행사도 가진다고(have) 번역하는 건 잘못됐다. ‘-하기’, ‘-함’ 등 용언을 명사로 만드는 다른 방법도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문법 책에 나오는 ‘-하는 것’(동명사^^)만 지나치게 남발하는 것 역시 전형적인 어색한 번역투이다.
어휘로 화제를 옮겨 보면,오랫동안 정착해 버린 외래어들을 무리하게 순화하는 것에 대해서 본인은 좀 회의적이다. 하지만 이미 있는 토박이말부터 좀 잘 활용해 쓰고, 그걸 ‘영한사전’이 제발 잘 반영해 줬으면 좋겠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요즘은 영어로 쏟아지는 지식과 정보가 하도 많다 보니, 우리말에도 국어사전보다 영한사전이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reliable을 너무 길게 ‘신뢰할 수 있는’ 대신에 ‘미더운’이라고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faithful에 대응하는 말로는 ‘미쁘다’가 있다. 이건 개역성경에서도 볼 수 있는 단어이지만 우리 흠정역에서는 사라졌다.hurl을 ‘세게 내던지다’에 앞서 ‘내박치다’라고 풀이하면 훨씬 더 좋다.
본인이 보기에는 셈틀, 무른모, 누리꾼 같은 것보다 당장 사전에 올라 있는 저런 실용적이고 검증된 말들부터 살려 쓰는 게 훨씬 더 중요하며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언어의 사회성에 너무 거스르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성경도 그런 걸 감안해 준다면?
본인은 작년쯤에 교회에서 내는 소책자를 하나 번역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인간의 의의 한계에 대해서 설명하는 대목에서 ‘깜냥’(i)이라는 단어를 별 생각 없이 집어넣었었는데, 책이 출간된 후 깜냥이 뭐냐는 문의가 꽤 들어왔다.. ^^;;‘깜냥’은 비속어가 전혀 아니며 정상적인 순우리말이다. 본인 역시 10년쯤 전, 중고등학교 시절의 국어 교과서에서 이 단어를 처음 접했을 정도이다.
영어 원문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인간이 자기 힘으로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 문맥에서 깜냥이라는 단어는 지금 생각해도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래처럼 말이다. 하지만 독자들이 못 알아들으면 뭐...;;;
성경은 인간이 자기 깜냥으로 스스로 의로워지고 구원받는 방법은 바이없다(ii)고 말한다.
끝으로,
“교장 선생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는 틀렸지만, “처음에 말씀이 계셨습니다”는 말이 되는 표현이다. ^^;;;
주)i. 스스로 일을 헤아려 해내는 얼마간의 힘.ii. 어찌할 도리나 방법이 전혀 없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0:2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20 00:40:51 | 김용묵
아버지가 그리운 시대라고 하신 사모님의 마음이 깊이 공감이 되네요..
그곳에서도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2010-05-19 17:07:05 | 이은희
단순 법대로가 아닌 의미있는 판결이네요 진짜 문제의 핵심을 판결하는게 어려운 법인데 훌륭한 판사님이시네요 마음 따뜻한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05-19 10:24:56 | 변경진
그래요... 자기 역할에 충실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닌 가 싶네요.
야단맞기 쉬운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먼저 이해해 주는 분위기가 그립기에
우리는 이런 장면에 감동을 받지요.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에게 만명의 스승이 있다해도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내가 너희를 낳았느니라 "고전 4장 15절
아버지가 그리운 시대입니다....
2010-05-19 04:54:46 | 정혜미
선진국 먼나라 이야긴줄 알았습니다.
조금이나마 우리나라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을것이라는생각을 해봤네요.
마음따뜻해지는 글 감사합니다.
2010-05-19 01:55:34 | 이청원
연희자매님!
이곳에서 만나니 더 반갑네요. 함께 기도해 주고,격려해 주는
든든한 믿음의 동역자가 되어 주셔서 저 역시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2010-05-18 10:33:44 | 진미희
정말 감동적인 따뜻한 이야기네요.
저 역시 용서의 사람, 위로와 격려자가 되고 싶습니다.
감사드립니다.
2010-05-18 10:29:12 | 진미희
가슴이 따뜻해지는 위의 기사를 읽으며
주님의 깊으신 사랑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10-05-18 00:23:12 | 이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