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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수고로움에 감사드립니다. 제 생각에도 흠정역을 소지한 사람들을 위주로 성경공부반을 만드시는 것에 대해 먼저 목사님께 상의드리고 하시는 것이 육신적으로도 예의이고 영적으로도 유익하리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그렇게 하시리라 생각됩니다만,,,,,전에 제가 형제모임에 있을 때에 킹제임스 위주로 성경공부반을 만들려는 마음에서 소그룹&개인적으로 킹제임스성경을 청년들과 함께 읽기 시작했는데 목사님으로부터 심한 태클이 들어와서 소그룹공부도 킹제임스를 알릴 기회도 모두 잃어버렸던 안타까운 경험이 있어서 염려되는 마음에 한 말씀 드렸습니다.
2010-05-12 18:18:23 | 김형식
와~ 반가운 소식이네요. 이제 볼티모어를 떠나려고 집을 정리하는데 떠날 즈음이 되니 좋은 소식이 들려서 마음이 든든하지요.이곳에 있으며 아예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다보니 막상 이곳의 교민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구요. 그러나 제가 말을 하다보면 왠지 더욱 사이는 멀어지는 것 같아 차라리 조용히 있고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랐는데 기회는 저절로 오지 않는군요. 전에 김문수형제님이 표현했듯이 우리는 예수님의 변호자가 아니라 증인이라고 하셨는데 그런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요. 아님 저에게 주어진 임무가 아닐지도 모르고요. 그래서인지 형제님의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그곳에 저희를 아는 분들도 더러 있어요. 지휘하는 자매와 원집사님(권사님 ?)... 우리가 전하는 것보다 형제님이 전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네요. 언제 박준호형제님과 함께 이번에는 꼭 만나요.^*^ 베델교회에도 씨가 떨어졌으니 좋은 결실이 있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2010-05-12 12:45:14 | 정혜미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많이 수고하시네요. 저 역시 대부분의 교인들이 개역을 가지고 있기에 낭독은 개역으로 하고, 본문 강해할 때에는 흠정역을 사용하여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그렇게 번역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하나씩 풀어서 설명합니다. 왜 개역의 번역이 이렇게 되었을까에 대해 이해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기회가 되면 성경 번역의 역사에 대해서, 사본의 계열에 대해서 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료실에 이미 음성/영상 자료들이 있으며, PPT/PDF 파일도 등록되어 있습니다.
2010-05-12 11:22:43 | 김문수
와~ 참 반가운 이야기군요. 크고 작은 노력들이 모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리라 믿습니다. 들으시는 분들이 납득을 해 주시니 참 다행이네요~. 좀더 본격화되면 태클(?)이 들어올 수 있으니 지혜롭게 잘 전하시길 기대합니다.^^
2010-05-12 10:42:33 | 김재욱
저는 장로교회에 출석하기 때문에 공공예배 시에는 개역성경을 가지고 가지만 집에서는 늘 흠정역으로 묵상을 해왔습니다. 벌써 꽤 오래 되었네요. 이런 식으로 두 개의 성경책을 가지고 따로따로 사용해 온지 벌써 몇 년이 되었으니까요.몇 주 전에는 흠정역 한영대역 관주 성경을 다섯 권 주문해서 교회 도서관에 비치해 놓고 성경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소개하면서 한 권씩 구입하도록 했습니다만 아직까지는 그저 미미한 수준입니다. 그저 틈나는대로 기회되는대로 소개하면서 선물로도 드리고 구입하도록 하기도 할 계획입니다.며칠 전에는 제가 흠정역으로 빌립보서를 묵상하면서 1:9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기에 주일날 교회의 소그룹 모임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공공예배를 위해서 개역성경을 가지고 갔는데 빌 1:9 말씀을 개역성경으로 읽었다가 적쟎이 당황했습니다. 개역성경에는 그 내용이 완전히 반대로 번역이 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흠정역 성경: 내가 이것을 기도하노니 곧 너희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판단에서 더욱더 풍성해지고개역성경: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개역성경을 따르면 지식과 총명으로 사랑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밖에는 이해할 수가 없지요. 그러나 사실 사도 바울이 하려는 말씀은 지식과 모든 판단/분별 등에 사랑이 넘쳐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해야 사랑을 풍성하게 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기 위한 말씀이 아닌데도 개역성경은 전혀 엉뚱하게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그래서 소그룹 모임에서 제가 나누려던 내용을 일단 뒤로 미루고 개역성경의 번역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는 것부터 설명을 해야 했는데 이런 경우에 참으로 난감합니다. 아직까지는 개역성경을 훨씬 더 신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개역성경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설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저는 다행히도 항상 영한대역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NASV 라도 영어로 보여주면서 개역성경이 잘못 번역된 것이라고 설명해 주고나서야 제가 원래 나누려던 내용을 나눌 수가 있었습니다.어떤 분은 개역성경에 이렇게 오역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어 버리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왜 그런지 이해시키기가 쉽지는 않지요...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기회가 되는대로 이렇게 명백하게 오역임이 드러나는 구절들을 통해서 설명을 해주면 서서히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끼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 아주 쉽게 받아들이기도 하고요.그래서 처음 다섯 권은 다 나갔습니다 - 한 권이 남았는데 제가 이번 주일에 어느 집사님에게 선물로 드리려고 하거든요. 그리고 일주일 후쯤에 다섯 권을 다시 구입해서 도서관에 비치해 놓고 한 사람씩 소개해서 구입하도록 권면하든지 아니면 선물로도 드리려고 합니다.그래서 흠정역을 소지한 사람들 위주로 성경공부반을 만들고 흠정역으로 성경공부하는 그날을 꿈꾸고 있기도 합니다... 그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면서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날이 빨리 오겠지요. 샬롬~~[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24:1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12 10:30:26 | 이재연
                해 아래서 하는 일은 바람을 잡는 일인가? (전 1:14)     개역: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 1:14)   흠정역: 내가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을 보았노니,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   KJV: I have seen all the works that are done under the sun; and, behold, all is vanity and vexation of spirit.   전도서 1:14의 바람(개역), 영(흠정역)은 모두 히브리어 "루아흐"를 번역한 것입니다. 루아흐라는 단어에는 바람, 숨, 영 등과 같이 여러가지 뜻이 있기 때문에 어느 번역이 옳은지를 가리기 위해 원어 성경을 살펴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 본문의 전후 문맥을 통해서 해 아래서 사람들이 행하는 일이 바람을 잡는 일인지, 영을 괴롭게 하는 일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표현은 전도서 1:14을 포함하여 전도서에 모두 9번 등장합니다.   (1) 전도서 1:14   이 구절의 바로 앞에 나오는 13절을 살펴보면, 하늘 아래에서 이루어진 일이 하나님께서 주신 쓰라린 해산의 고통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일들이 고통, 괴로움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둡시다.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에 관하여 찾아보고 탐구하려고 내 마음을 쏟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이 쓰라린 해산의 고통을 주사 그것으로 단련 받게 하셨느니라(전 1:13).   (2) 전도서 1:17   전도서 1:17에도 지혜를 찾는 일, 미친 것과 어리석은 것을 알기 위해 마음을 쓴 일이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다음에 나오는 18절에서는 그렇게 지혜와 지식을 늘리는 것이 슬픔을 늘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전 1:18). 즉, 영을 괴롭게 하는 것(바람을 잡으려는 것)이 고통, 괴로움 뿐만 아니라 슬픈 일이라고 합니다.   또 내가 지혜를 알기 위해, 미친 것과 어리석은 것도 알기 위해 내 마음을 주었으나 이것도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지혜가 많으면 근심도 많나니 지식을 늘리는 자는 슬픔을 늘리느니라(전 1:17-18).   (3) 전도서 2:11,17,26   전도서 2장 11절, 17절, 26절에서도 동일한 표현이 나옵니다. 그런데 2장 17절에서도 해 아래서 이룩한 일이 "내게 몹시 괴롭기 때문이라"고 자세한 설명을 달아놓았습니다. 이것은 그런 수고가 바람을 잡는 노력이라는 뜻이 아니라 영을 괴롭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11] 그때에 내가 내 손이 이룩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하여 행한 모든 수고를 바라보았는데,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요, 해 아래에는 아무 유익이 없었도다. [17] 그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으니 이는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므로 해 아래에서 이룩한 일이 내게 몹시 괴롭기 때문이라(전 2:11,17).   전도서 2:26은 그 앞에 나오는 22절과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22절에는 "자기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the vexation of his heart)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6절에서는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을 vexation of spirit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로 보아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일은 "바람을 잡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마음과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할 수 있습니다.   [22] 사람이 해 아래에서 수고하며 행한 자신의 모든 수고와 자기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으로부터 무엇을 얻으리요? [26] 하나님께서 자신의 눈앞에서 선한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기쁨을 주시거니와 죄인에게는 모으고 쌓는 해산의 고통을 주사 그가 하나님 앞에서 선한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이것도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전 2:22,26).   (4) 전도서 4:4,6,16   전도서 4장 4절, 6절, 16절에도 같은 표현이 나오는데, 4절과 6절에서는 "해산의 고통"이라는 표현이 함께 사용되어 있어 이것이 고통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내가 모든 해산의 고통과 모든 옳은 일을 다시 깊이 살펴보니 이것으로 인하여 사람이 자기 이웃에게 시기를 받는도다. 이것도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 [6] 한 손에 가득하고 평온한 것이 두 손에 가득하고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보다 더 나으니라. [16] 모든 백성의 끝이 없으며 심지어 그들 전에 있던 모든 자들의 끝도 없도다. 뒤에 오는 자들도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분명히 이것도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전 4:4,6,16).   (5) 전도서 6:9   전도서 6:9에서는 눈으로 보는 것이 욕망으로 인해 헤매는 것보다 낫기는 하지만, 결국 이것도 헛되다고 했습니다. 욕망으로 헤매는 것보다는 눈으로 보는 것이 조금 낫긴 하지만 결국은 별 차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욕망으로 인해 방황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곧 영을 괴롭게 하는 것과 의미가 통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욕망으로 인해 헤매는 것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전 6:9). 전도서에는 이처럼 "영을 괴롭게 하는 것"(개역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으로 번역함)이라는 표현이 아홉 번이나 나오는데, 그 구절들을 살펴본 바에 의하면 이 말씀은 사람이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일들이 "뜬구름 잡는 것과 같다"(우리말성경)라고 하며, 인생무상을 노래한 것이 아닙니다. 전후 구절들을 살펴본 결과, 사람이 하나님 없이 자기를 위해 수고하며 행하는 모든 일들은 인생에게 참다운 만족을 주지 못하고, 고통스럽고, 슬프고, 사람을 몹시 괴롭게 하고, 자기 마음을 괴롭게 하며, 욕망으로 인해 방황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즉 그런 수고는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영을 괴롭게 하는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원어로는 이 구절이 바람으로도, 영으로도 번역이 가능하겠지만,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이런 전도서 전체의 흐름을 읽고, 또한 그런 표현이 등장하는 각 구절들 속에서 그 말씀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고려하여 이를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고 옮겼는데, 이는 문맥의 흐름과 일치하는 적합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2010-05-11 20:28:17 | 관리자
형제님, 반갑습니다. ^^ 네, 그 사이트를 만들기는 제가 만들었지만, 계정이 있던 곳은 대전 반석 침례 교회입니다. 최근에 홈페이지를 새로 만들기도 해서 계정을 없애려는지, 자세한 사정을 잘 모르겠습니다. 목사님께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 본 후 정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2010-05-11 15:00:10 | 김용묵
안녕하세요? 형제님! 저는 미국에 유학중인 박준호라고 합니다. 2008년 여름 한국에 잠시 들렸다가, 흠정역 성경을 구입하면서 부터 킹제임스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올해 2월경에 정동수 목사님께서 미국 오셨을 때 사모님과 함께 만나뵜었습니다. KeepBible 홈페이지에서 형제님이 올리신 글들 잘 읽고 있구요, 저도 글 하나 올렸던 것이 있긴합니다만 아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분발해야겠죠. 그리고, 형제님께 글을 남기게 된 것은요, http://tjbbc.cafe24.com/bible/ 이 성경검색 페이지를 형제님께서 운영하고 계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맞겠죠? 이게 검색이 안되고 있는데요, 혹시 다른 곳으로 서비스를 옮기셨는지 궁금합니다. 1년도 넘게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었거든요... 댓글로 알려주셔도 되구요, 혹시 이메일로 알려주시고 싶으시면 woda@naver.com 박준호 입니다. 감사합니다.
2010-05-11 11:22:44 | 박준호
계시는 점진적으로 임했다.   1타: 2003-05-31 오후 6:30:00 서울-대전 새마을호2타: 2003-06-26 오후 6:30:00 서울-경주 새마을호3타: 2003-08-11 오전 10:38:00 대전-서울 새마을호   2003년 중반, 본인은 100일 남짓한 시간 동안 평소보다 상대적으로 자주 시종착역에서 새마을호를 이용해 보면서, 어떤 미지의 음악에 의한 임팩트를 꾸준히 받기 시작했다.   1타: 어? 뭔가 음악이 나오네?2타: 음 전에도 새마을호 타면 출발 전에 뭔가 음악이 나왔던 거 같은데, 인상이 웬지 좋다. 무궁화호엔 그런 게 없었는데.3타: 아 맞아 바로 이거야! 무슨 곡인지는 모르겠지만 은근히 중독성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정체불명의 새마을호 음악에 슬슬 중독되어 간 것이다. 멜로디는 전혀 기억 안 나고 그냥 느낌만 기억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미지가 뭔가 <엉뚱한 상상>(지누) 같기도 하고, 당시 히트 치던 거북이의 <Come on>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나름 했었다.   그러다 2004년 초엔 철도 동호회를 통해 이 곡의 음원과 작곡자 정보까지 입수하게 됐다. 일본의 재즈 색소포니스트가 연주한 Looking for you 라는 곡. “그래 바로 이거였어!” 이미 2004년엔 작정하고 이 음악 들을 준비를 하고 새마을호 탑승을 시작했다. Finish blow는 바로 4타였다.   4타: 2004-01-31 오전 10:38:00 대전-서울 새마을호   게다가 이 열차는 KTX 개통 직전에 마지막으로 운행하던... 무려 대전-서울 무정차 열차였다. 소요 시간은 1시간 32분.드디어 종착역에서, 새마을호 객실에서 실제로 들은 감격의 Looking for you!!!가슴이 터질 것 같은 리듬과 박진감 넘치는 박자. 심장을 녹여버릴 것 같은 당김음과 현란한 불협화음!   http://www.youtube.com/watch?v=T0EWzcQY280http://www.youtube.com/watch?v=8elu7pv1W6M(2006년경, 본인이 현장에서 직접 녹화. 우리나라 어느 철도 동호인도 이 장면을 기록으로 남기지는 않았다)   그 Looking for you에 압도되어 나는 열차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편안한 인테리어, 기내지, 영상 서비스에 덧붙여 흘러나온 이 음악! Oh my goodness!!! 이건 정말 일종의 oracle이었다. 황홀경에 빠졌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 “나는 네가 사랑하는 철도이니라. 학생 신분으로 비싼 새마을호 골라 타기가 네게 고생이라.”“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나이까?” /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네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듣게 되리라.” (행 9:5-6)   그날을 계기로 나는 철도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다. 철도를 만난 간증이 생겼다.본인은 평생 TV, 연예, 스포츠, 드라마, 영화 따위와는 가히 극단에 가까운 수준으로 담을 쌓고 살았다. 2002년 우리나라 월드컵조차 전혀 관심이 없어서 신경 끄고 지낼 정도였다. 그렇게 지내 오던 차에 나의 육신의 모든 광기가 철도로 한데 폭발한 것이다.   정말 세상이 확 달라져 보였다. 뇌 구조가 바뀌었다. 우리나라 지리와 역사를 보는 눈이 철도를 중심으로 확 바뀌었다. 새마을호가 한국 철도 전체에 대한 색안경을 씌워 놓은 것이다.그렇다. 영국에서 킹 제임스 성경이 출간되고 표준시가 제정되었다면, 영국에서 응당 철도도 세계 최초로 발명되었으며 오늘날 전세계가 채택해서 쓰고 있는 1435mm 표준궤도 영국에서 제정된 것이다!   민물과 바닷물을 모두 왕래하는 ‘연어’ 하면 이제 서울 지하철 1호선을 운행하는 직류/교류 겸용 전동차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엘리야가 상대했던 바알 대언자 450명과 작은 숲 대언자 400명, 총 850명이라는 인원은 객차가 18칸이나 있는 KTX 한 편성을 거의 다 꽉 채울 수 있는 인원이다. (KTX 설계 정원은 935명) 이런 식이다.   아기가 본능적으로 필사적으로 엄마 젖을 빨려고 애쓰듯, 갓 거듭난 영적 아기는 본능적으로 나를 구원한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고 성경을 찾아 읽고 싶어지는 게 정상인 법이다. 그래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는 베드로전서 2:2 같은 구절도 있으며 이는 KJV 이외의 성경에서 변개된 걸로도 유명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철도 성령이 임한 직후, 그야말로 한국 철도의 모든 분야 지식을 빨아들이려고 혈안이 되고 전국 모든 철도역과 노선을 답사하고 싶어서 안달 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노선, 역사, 시설, 차량, 건설 공법, 각 도시의 지하철 구조, 우리나라 지형, 도시 계획 이 모든 것들을!! 닥치는 대로 미친 듯이 찾아보고 외웠다. 아가서 내용이 그럭저럭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새마을호의 모든 것이 그저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한 뒤부터이다.   철도는 신앙관에도 영향을 끼쳤다! <열차 운행에 비유한 성경 통독 요령>, <철도 성경 침례 교회>라는 글을 쓰고 전철 노선도에 빗댄 <성경 노선도>를 만들었다. <구원 열차>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린이 찬양이 됐다. “나는 새마을호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빵빵”   (경부선 밀양 철교를 통과하는 새마을호 PP 열차. 본인 컴퓨터의 배경 그림. 본인이 찍은 사진은 아님.)   성경 지도를 꺼내서 광역전철 노선도를 구상한다.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까지 이런 식. 훗날 천년왕국 때 전세계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경배하러 올 건데 지하철을 타고 빠르고 편하게 성전으로 간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ㅋㅋㅋㅋㅋ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고등학교 동기, 회사 동료, 교회 사람 등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새마을호의 추억에 대해 늘어놓고 철도 얘기만 잔뜩 하여 숫제 철도 에반젤리스트가 됐다. 본인은 영어로 다른 건 몰라도 복음 전하는 것과 우리나라 철도/지하철에 대해 떠벌리는 건 아주 유창하게 할 수 있다.   나는 철도에 대해 보고 들은 것을 누구에게든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사도행전 4:20이 이런 의미인 것이다. 실제로 우리 교회에 외국인 선교사가 오셨을 때, 교회 인근의 경부선 선로의 구조에 대해서 강의(?)를 한번 해 드린 적이 있다. 내 속에 있는 철도의 소망의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는 언제라도 대답할 것을 예비하되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했다. (벧전 3:15)   Looking for you는 고등학교 시절 이래로 본인의 음반 차트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던 주찬양 선교단까지 밀어내고 지금까지도 수천 번 이상 듣는 곡이 됐다. (내가 한때 주찬양 선교단에도 각 앨범의 곡 순서와 가사, 멜로디를 다 줄줄 외울 정도로 심취해 있었다) 그야말로 하늘나라에서 들을 멜로디이며, 어쩌면 이제 Looking for you가 내가 죽을 때까지 1위를 고수하는 곡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이 사건을 계기로 특히 음악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졌다.도대체 음악이란 게 어떤 존재여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당김음과 불협화음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음정이란 게 뭔지, 왜 음악이 지금과 같은 음계로 만들어졌는지, 이 전동차의 구동음 첫음은 D인지 D#인지... 왜 교회에서 세상적인 음악을 수용해서는 안 되는지.. 이런 것까지 다 주파수 파동 만들어 들어보면서 연구를 했다. 정말 그땐 상상을 초월하는 미친 짓 정말 많이 했다. =_=;;   십수 년 째 안 쳐서 까먹고 있던 피아노도 덕분에 감각이 얼추 되살아났다.게다가 Looking for you는 수십, 수백 번 들으면서 아예 청음해서 악보/미디를 만들어 버렸다! 다른 철도 동호인들마저 경악했다. 지금은 그 좋던 새마을호의 각종 서비스들이 거의 전부 다 KTX에 밀려 없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이건 마치 초대 교회 시절의 각종 표적과 은사들이 오늘날엔 유효하지 않은 것쯤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달관의 경지에 올랐다. 교회에서는 친구들이 장난삼아 “형제님 철도냐 주님이냐 둘 중 하나만 선택하세요. 앞으로 하나님에게서 호되게 징계 받고 나서 제가 철도를 주님보다 더 사랑했다고 자백하고 회개할 날 온다구요”라고 가정이 잘못된 질문을 하면, 그에 대해서 본인은 “형제님이 철도도, 철도의 권능도 알지 못하므로 잘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해 준다.   나는 단순히 철도를 그냥 좀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다. 완전 뼛속까지 자타가 공인하는 덕후이다. 그러나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철도 신앙(?)과 기독교 신앙은 서로 대립하고 제로썸 게임을 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돕고 보완하면서 상대방을 세워 주고 발전시키는 선순환-_-을 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3: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08 23:53:40 | 김용묵
우리는 완전한 존재가 아닙니다 .형제님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요 귀한 간증을 교훈삼아 앞으로 반복되는 슬픔(?)이 없도록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형제님의 고백이 말로는 쉽지 정말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그리 쉽지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비슷한 경험들이 있는 사람들은 형제님의 마음을 100% 공감할것 입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2010-05-08 10:35:21 | 송재근
흠... 어디까지가 “이단인 자는 한두 번 훈계한 후에 거절하라”이고, 어디까지가 형제 자매인지... 참 헷갈림을 느낍니다. 어째 거기에 그런 식으로 방해의 손길이 뻗치는지...;;; 형제님, 늘 좋은 글과 소식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0-05-08 10:23:32 | 김용묵
  내 양들을 먹이라.  (요21:15-17) 사역자에 있어서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사역은 네 것, 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주님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역을 하다보면 주님의 것으로 만들기보다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할 적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자주 생각나는 형제분이 있는데 그 형제님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내가 저지른 잘 못됨에 돌이켜 보게 됩니다. 그 형제님은 제가 거듭나기 전에 저희 교회에서 집사로 있었는데 후에 큰 시내로 돈벌이 나가서 한 십년동안 소식이 없던 형제였습니다. 그런데 십년이 넘은 어느 날 저를 찾아왔고 또한 그 형제와 교제를 나누었는데 그 형제가 그때 구원을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 형제님은 제가 사는 곳이 길림성인데 길림성 성소재지인 장춘시에서 돈벌이를 하면서 종교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 형제님이 구원을 받고 너무 기뻐했고 그 형제님이 구원을 받음으로 인하여 형제님 아내도 구원을 받았고 또한 장춘시에 여러 사람이 연결이 되어서 약 열 명 정도가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아 작은 모임이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그 형제님이 구원을 받고 제가 자주 장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전했는데 정말 그곳에 갈 적마다 복음을 전할 혼들이 연결이 되었고 또한 교제가 참 잘 되어 주님께 감사가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물질 면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님이 번마다 채워주는 경험을 하면서 참 좋았습니다. 장춘시에 형제님이 구원을 받고 여러 형제자매님이 구원을 받으면서 자연적으로 모임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장춘시는 제가 사는 곳에서 약 3시간 반 정도 차를 타고 가야하고 제가 자가용도 없기에 매주 다니며 말씀을 전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못가는 주일 모임 때는 그 형제님에게 들을 말씀 씨디를 주어서 듣게 했고, 또한 제가 설교한 것을 타자로 해서 모임 때마다 형제님이 그것을 놓고 모임을 가지군 했습니다. 이렇게 지내다가 제가 킹 제임스 성경을 알게 되었고 킹 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독립침례교회들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형제님도 킹 제임스 성경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모임에서 함께 킹 제임스 성경으로 모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 형제님은 가정생활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형제님이 인간적인 생각이 들어갔나 봅니다. 후에 장춘에 어떤 자매님을 통해서 그 형제님이 저 아닌 한국에서 구원파라고 하는 그쪽 목사님들을 모시고 말씀을 들었고 또한 돈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형제님에게 인차 전화를 했더니 그 형제님이 절대 아닌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 후부터 그 형제님과의 교제를 끊게 되었고 그 일로 말미암아 장춘에 형제자매님들과 교제가 끊기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그 일을 생각해보면 제가 너무나도 잘못 했단 마음이 듭니다. 저는 내 편을 만들려고 했지 주님의 편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가 가정 형편이 어렵다 보니 인간적인 생각이 들어서 돈을 받고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그때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그 형제의 잘 못됨을 용서해주고 인내로 기다리면서 말씀을 계속 전해주었다면 아마 그 형제님을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 일로 그 형제님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렇게 사역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배반할지를 미리 알았고 베드로가 세 번 자신을 부인할 것까지도 미리 알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끝까지 제자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주님을 배반하고 도망간 제자들을 향하여 또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용서가 결국 제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생명을 바쳐서 복음의 일을 하게 하는 훌륭한 능력의 일군들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를 찾아와서 [내 양들을 먹이라.]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참된 목자는 양을 헤치는 사나운 이리가 오면 양을 버리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싸워 양을 지키는 목자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내 양들을 먹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양은 주님의 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형제자매님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온전한 양을 우리에게 맡기지 않았습니다. 양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목자가 필요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형제자매님을 맡겨주었다면 우린 끝까지 그 형제자매님들을 돌봐줘야 합니다. [내 양들을 먹이라]는 것은 섬겨주라는 것입니다. 내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섬겨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부족함이 있지만 그 부족함을 끌어안고 내가 섬김으로 주님의 편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는 것이 참된 사역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이 다시 묵상이 되면서 제가 전도를 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이 제가 맡겨준 형제자매님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끝까지 섬겨주는 것이 참된 사역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게 되었고 또한 그 형제님과 그곳에 형제자매님들을 버린 제 잘 못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3: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07 21:03:15 | 시님사람
형제님 역시 디자인에 일가견이 있으신 분이니 그쪽 사정을 잘 아시는군요. ^^;; 네, 산돌의 설립자는 목사를 겸직하는 분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대단합니다. 사명부터가 너무 노골적이지 않으면서 은근히 기독교적인 냄새가 나잖아요. 이름을 무척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체'도 산돌이니까 만들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안에 흠정역도 초창기에는 머리말에 "이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주축이 되어 세워진 산돌 커뮤니케이션의 서체를 사용했으며"란 문구까지 있었답니다. 3판부터는 다 윤명조로 바뀌었지만 말이죠. 문화바탕과 문화돋움만으로 문서를 만들어 보면 중후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이 나는 건 좋은데, 말씀하신 것처럼 한 197, 80년대 문서 같고 심지어 북한-_- 삐라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나름 중앙 정부 명의로 배포된 서체인데 널리 쓰이지도 않고 더구나 여증들의 전속 서체로 전락하니 더욱 이질감이 커지고 있어서 안습입니다. =_=;; 아울러 저는 코레일 전속 서체가 등장하기 전 우리나라 간이역 역명판에서 쓰이던 그 특유의 둥근 고딕을 좀 디지털 서체로 만들고 싶은 부담을 품고 있기도 합니다.
2010-05-06 18:59:09 | 김용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