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네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한 곳에 기드온이 제단을 쌓고 거기에 붙인 이름(삿6:24).
2009-07-19 02:48:58 | 관리자
에스겔이 미래에 도래할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게 붙인 이름(겔48:35).
2009-07-19 02:48:30 | 관리자
모세가 아말렉을 멸한 뒤 제단을 쌓고 거기에 붙인 이름(출17:15).
2009-07-19 02:47:59 | 관리자
히브리 사람들이 감히 발음하지 못한 하나님의 신성한 이름.
이 이름의 앞에는 결코 관사가 쓰이지 않았고 이것은 또한 복수의 형태로 쓰이지 않았다. 마소라들에 의하면 여호와를 뜻하는 4자음 문자 즉 YHWH는 여호와로 발음된다. 마소라 참조. 이 이름의 뜻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며 따라서 이 이름은 스스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불멸하고 무한한 존재를 가리킨다(출3:14; 6:3). 하나님 참조.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자 하나님의 이름으로는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 여호와로는 나를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다.”(출6:3)는 말씀은 비록 그분께서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지셨으나(창4:26)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그런 특별한 방식으로는 혹은 자신의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보여 주는 방식으로는 나타나지 않았음을 뜻한다.
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시면서 “너는 주 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지 말라. 주가 자신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20:7)고 말씀하셨다. 이 명령을 매우 두렵게 생각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에서 그분의 이름 YHWH를 대할 때마다 눈으로 이름을 확인하고 정작 읽을 때는 주(主)를 의미하는 아도나이로 읽었다. 그러므로 이런 전통을 따라 전 세계의 대부분 성경이 여호와를 주로 번역하고 있다. 다만 기존의 우리말 성경은 주님의 거룩한 이름 여호와를 그대로 음역하여 많은 사람들이 무려 6,400회 이상이나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함부로 취하게 해 놓았고 그 결과 마땅히 경외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할 그분의 거룩한 이름이 종종 아무 의미 없이 헛되이 취해지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여호와를 주로 번역하기 원하는 것은 성경의 용례를 통해 명백히 드러난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을 가리켜 주(主)라고 하셨음을 보여 주신다.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받침으로 삼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느냐?(마22:44). 이 구절은 다윗이 기록한 시110:1을 마태가 인용한 것이며 성경에 여러 군데 나오는 중요한 구절로서 우리 주 예수님의 신성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말로 신약성경을 주시면서 구약성경의 여호와를 주로 번역하라고 이런 용례를 남기셨다. 왜냐하면 성도 마태는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여호와를 분명히 주로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신성한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원치 않으심을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롬10:13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기록했는데 여기서 그가 언급한 주는 분명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런데 사실 이 구절은 구약의 대언자 요엘이 기록한 말씀과 같다(욜2:32). 이를 통해 바울 사도는 신약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곧 구약의 주 하나님임을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이다.
2009-07-19 02:47:23 | 관리자
대제사장.
그는 왕권을 찬탈한 아달랴로부터 어린 왕자 요아스의 생명과 왕권을 보호했으며 그의 지혜와 경건함으로 인해 그가 죽을 때까지 유다 왕국은 복을 받았다. 그는 130세에 죽어서 왕들이 받는 명예를 받고 무덤에 묻혔다(왕하11:1-21; 대하23:1-21; 24:1-27).
2009-07-19 02:46:40 | 관리자
요시야 왕의 둘째 아들.
그는 엘리아김이라고도 불렸으며 이집트의 파라오에 의해 자기 형제 여호아하스의 뒤를 이어 유다의 왕이 되었다. 그는 11년 동안 왕으로서 사치와 방탕과 우상숭배로 점철된 나날을 보냈다. 그의 통치 제3년에 느부갓네살이 그의 통치자들과 재물 중에서 일부를 바빌론으로 가져갔고 그 뒤 1년이 지나서 그와 연합한 이집트가 유프라테스에서 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레미야 대언자의 경고를 멸시하고 그의 책을 불태웠으며 마침내 느부갓네살을 배반하고 싸움에서 패하여 죽임을 당하였다(왕하23:34; 24:6; 대하36:4-8; 렘22:1-30; 26:1-24; 36:1-32).
2009-07-19 02:46:08 | 관리자
유다의 여호야김 왕의 아들.
그는 석 달 동안 통치하고 바빌론으로 끌려가 36년 동안 옥살이를 하다가 에빌므로닥 왕의 호의를 입어 풀려났다(왕하24:6-16; 25:27; 대하36:9-10). 그는 고니야 혹은 여고니야로 불리며(대상3:16; 렘27:20; 37:1) 렘22:30 말씀은 그의 아들 중 누구도 왕위에 오르지 못함을 의미한다(대상3:17-18; 마1:12).
2009-07-19 02:45:34 | 관리자
I. 이스라엘 왕 예후의 아들 겸 왕위 계승자.
그는 17년 동안 통치하였으며 그와 그의 백성의 죄로 인하여 시리아의 하사엘과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였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출 때에 그의 아들 요아스의 손으로 구원이 이루어졌다(왕하13:19, 25).
II. 살룸이라고도 불린 왕(대상3:15).
그는 유다의 요시야 왕의 셋째 아들로 왕위를 계승하고 예루살렘에서 석 달 동안 통치하였으며 이집트 왕에 의해 폐위되었다(왕하23:30-34; 대하36:1-4; 렘22:10-13 참조).
2009-07-19 02:45:01 | 관리자
요아스 참조.
2009-07-19 02:44:20 | 관리자
I. 눈의 아들.
그는 모세의 후계자로 히브리 사람들을 가나안으로 이끈 훌륭한 지도자였다. 그는 처음에 호세아로 불렸으며(민13:8, 16)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라 불렸다(행7:45; 히4:8). 여호수아와 예수는 둘 다 구원자 혹은 구출자를 뜻한다. 예수 참조. 여호수아는 요르단을 건너가서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가나안 족속들을 정복하며 이스라엘 지파에게 땅을 나누어 주었다. 그는 르비딤에서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칠 때에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언급된다(출17:8-16; 민14:6 참조). 요르단을 건널 때에 그는 84세였으며 그 뒤 26년 동안 딤낫세라에서 이스라엘을 재판하였다. 그는 세겜에서 이스라엘을 모으고 그들에게 하나님만을 경배할 것을 엄숙하게 당부하였다. 그는 평생 동안 주님만을 신실하게 섬겼다. 그는 어떤 사람보다도 더 하나님의 기적들을 많이 보았고 참된 약속의 땅으로 자신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우리 주님과 비슷한 점이 많이 있다.
II. 여호사닥의 아들. 예수아 참조.
2009-07-19 02:43:58 | 관리자
유다 왕 요아스의 고모.
그녀는 아합의 딸 아달랴의 계략으로부터 왕자 요아스의 생명을 구해 냈다(왕하11:1-3). 여호야다 참조.
2009-07-19 02:43:26 | 관리자
유다의 경건한 왕.
그는 유다의 선한 왕 아사의 아들로서 그의 뒤를 이어 35세에 왕이 되어 25년 동안 통치하였다. 그의 이야기는 왕상15:24; 22:1-53; 대하17-20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참된 신앙을 가지려는 열정과 하나님께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유명하며 온 땅에서 우상숭배를 멸하고 하나님의 규례들을 회복시키며 백성을 위하여 종교적 교훈들을 제공하였다. 그의 정부는 국내와 국외에서 번영하였으나 그는 사악한 아합 왕과 동맹을 맺어 큰 위험을 초래하였으며 그 결과 아합의 딸 아달랴는 유다 왕국을 위협하고 후에는 여왕이 되어 온 유다를 통치하였다. 여호사밧은 아합의 유혹에 넘어가 시리아 사람들과 전쟁을 하다가 죽을 고비를 넘겼고 그 이후에도 종교 개혁을 수행하였다. 아하시야와의 무역 협정에서 실패한 이후에 그는 다시 그 일을 수행하지 않았지만(왕상22:48-49) 그의 뒤를 이은 요람과 연합하여 모압과 전쟁을 하였다. 그 결과 그는 모압 사람과 암몬 사람과 에돔 사람과 시리아 사람들의 큰 군대의 습격을 받았지만 다시 한 번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그는 60세에 죽었다.
2009-07-19 02:42:53 | 관리자
하나님의 심판의 골짜기.
이곳은 천년왕국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의 원수들을 무찌르시는 곳이다(욜3:2, 12). 이곳은 예루살렘과 올리브 산 사이에 있으며 주후 3-4세기부터는 기드론 시내가 있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고 근래에는 유대인들이 이곳을 매장지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여호사밧은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을 무찔렀으며(대하20:1-37) 그래서 이곳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예루살렘, 여호사밧 참조.
2009-07-19 02:42:22 | 관리자
요람 참조.
2009-07-19 02:41:56 | 관리자
성경은 여인들을 남자의 종이 아니라 사랑 받는 조력자로 묘사한다(창2:23-24).
여자는 남자를 완전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남자를 돕고 남자에게 순종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창3:16; 고전11:3-9; 14:34-35; 딤전2:11-14). 남자와 여자는 본질상 하나라 할 수 있으며 서로 연합된 한 몸이 되기 위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다른 이교도들의 책과는 달리 여인들을 존중히 여기며 여러 가지 아름다운 여성상을 담고 있다. 특별히 기독교는 여인들을 노리개로 생각하던 이교주의와는 달리 여인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고 결혼을 귀중히 여김으로 여인들을 고귀하게 생각한다. 기독교는 남자가 한 여인 이상과 결혼하는 것을 금하며 음행의 이유 외에는 이혼하는 것도 금한다(마5:32; 19:3-9). 천국에서 남자와 여자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 같이 장가가거나 시집가지 않는다(마22:30). 사람의 타락 때에 여자는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갔지만 남자는 의지적으로 죄를 지었고 후에 여자는 구원자를 낳은 영광을 얻게 되었다. 또한 우리 주님의 지상 사역 때에 그분을 따라다니며 끝까지 충성한 사람들도 거의 대부분 여인들이었다. 또 대부분의 교회에서 여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고대 동방에서 여인들은 거의 은둔 생활을 했다. 그들은 밖에서 얼굴에 베일을 두른 채 다녔고 일반 사회와 잘 어울리지 않았으며 자기 남편이나 형제를 찾아온 남자들에게도 얼굴을 가렸다. 특별히 이런 일은 시골보다 도시에서 더 심하였으며 이교도들보다 유대인들 사이에서 더 심하였다. 그래서 여인들은 주로 밀가루 만드는 일, 빵 굽는 일, 옷 만드는 일, 바느질 등의 집안일을 하였다(잠31:1-31). 가난한 여인들은 수확 후에 남은 것을 거두었고 족장의 딸들은 자기 아버지의 양떼를 돌보았으며(창29:9; 출2:16) 집안의 여자들은 가족을 위해 물을 길어 어깨에 메고 먼 거리를 날라야 했다(창24:15-20; 요4:28).
2009-07-19 02:41:31 | 관리자
팔레스타인에는 여러 종류의 여우가 있었는데 여우는 보통 영리하고 탐욕스럽고 해악을 끼치는 존재였다(겔13:4; 눅13:32). 그곳의 여우는 포도를 좋아하며 그래서 포도원에 해를 많이 끼친다(아2:15). 삼손의 이야기에도 여우들이 등장한다(삿15:4-5).
2009-07-19 02:41:00 | 관리자
강이나 바다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
2009-07-19 02:40:34 | 관리자
왕의 부인 혹은 스스로 권력을 행사한 여자 군주.
세바의 여왕(왕상10:1), 이디오피아 여왕 간다게(행8:27), 와스디와 에스더(에1-2) 등이 왕비로 언급된다. 열왕기에는 유다 왕비의 어머니의 이름이 늘 언급되어 있다(왕상15:1-2). 한때 아달랴는 왕위를 찬탈하여 6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다(대하22:1-23:21). 이집트로 들어간 유다의 남은 자들은 하늘의 여왕을 숭배하였다(렘7:18).
2009-07-19 02:40:02 | 관리자
스라엘을 가리키는 시적 표현.
이것은 ‘곧바르다’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며 구약시대 하나님 즉 이스라엘 백성의 불법을 보지 않는 분의 백성이 그분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함을 보여 준다(신32:15; 33:5, 26; 사44:2).
2009-07-19 02:39:36 | 관리자
유다 지파를 대표하여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온 갈렙의 아버지(민13:6).
2009-07-19 02:39:09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