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과 혼을 구분하지 못하면 이런 오류에 빠집니다.
벧전3:19에는 영들(spirits)이라고 했지, 혼들(souls)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2010-04-27 10:30:47 | 김문수
창세기 6장 전반부, 베드로후서 2장을 찬찬히 읽어보시고, 지옥 선도 찾아서
보시면 벧전3:19절의 "영"에 대한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2010-04-27 10:23:25 | 김학준
카톨릭 교리가 잘못된 것이고 성경이 옳습니다.
개역: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벧전3:19)
흠정역: 그분께서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는데
복음을 전한 것(유앙겔리조)이 아니라 선포(케륏소)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죽은 자들에게 복음을 들을 기회를 다시 준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옥에 있는 영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방적으로 선포하셨다는 것입니다.
2010-04-27 10:18:00 | 김문수
노아당시 불순종하던 자들이 감옥에 있는데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다고
되어있는데 잘 이해가 안되서요.
이구절을 카토릭에서 로사리오기도나 다른 행위를 열심히 하면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진다는 근거로 설명하던데요.
이 구절은 사도신경과 함께 설명하면 좋을 것입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5632
영어와 원어 그리고 카톨릭 교회의 사도신경에는 ‘He descended into hell’이 있지만 개신교 사도신경에는 이 부분이 삭제되어 없습니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그분께서 저승에 갔다고 버젓이 신성모독을 하고 있습니다. - 원조(元祖)들이 죄를 지은 후부터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는 천당 문이 닫혀 있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계명을 받들어 착하게 산 구약의 성조(聖祖 - 예컨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등)들은, 천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천당 문을 열 때까지 어떤 곳에서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곳을 고성소(古聖所)라 한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그의 육신은 땅에 묻히시고 그의 영혼은 고성소에 가시어 그때까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구약의 성인들을 위로하셨다.-
원래대로라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지옥에 다녀오셨다.”고 번역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말로 그대로 번역하면 카톨릭주의에서 주장하는 연옥 - 카톨릭 교리에서 연옥은 천국으로 가기에는 자격이 부족하지만 지옥으로 갈 정도의 큰 죄를 짓지 않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머무르는 곳이다. 영혼들은 연옥에서 보내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해 이승에서의 죄를 씻고 정화한다. 연옥이 정죄계(淨罪界, 깨끗함과 죄 사이의 경계)나 정화소(淨化所, 깨끗해지는 장소)로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화의 방법으로는 ‘정화하는 불(purgatorius ignis)’이 알려져 있는데, 이는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3장에 나오는 ‘심판의 날에 내려질 불’에 근거하고 있다(두산백과사전)- 과 림보 - 카톨릭 교회가 말하는 지옥의 변방: 지옥과 천국 사이에 있으며 그리스도교를 믿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착한 사람 또는 세례를 받지 못한 어린이·백치 등의 영혼이 머무는 곳을 가리킨다(네이버 영어 사전) - 등의 개념과 연관되기 때문에 아마도 개신교에서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고 교회의 교리에 따라 해석하려고 해서 생긴 문제입니다. 마태복음 12장 40절에 보면 예수님은 요나와 같이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중심부)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 27절에서 시편 16편 8-11절을 인용하며 “주께서 내 혼을 [예수님의 혼을] 지옥에 남겨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시리라.”고 말하면서 우리 주님 - 엄밀하게는 그분의 혼 - 이 지옥에 갔다가 부활했음을 보여 줍니다. 물론 우리말 성경은 이런 부분의 지옥을 모두 불교 용어인 ‘음부’라고 번역해서 바른 뜻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약속하신 대로 낙원에 즉 지하세계의 지옥 부분에 내려갔다가 올라오셨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에베소서 4장 8-1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8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포로로 잡힌 자들을 포로로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도다, 하시느니라. 9(이제 그분께서 올라가셨은즉 그것은 곧 그분께서 또한 먼저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내려가신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내려가신 그분께서 또한 모든 하늘들보다 훨씬 위로 올라가신 바로 그분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자,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사실을 천주교회에서 굳이 밝히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개신교회에서는 이것을 막으려고 할까요? 천주교회에는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관례가 있고 실제로 천주교인들은 땅에 있는 사람들이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들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천주교회는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사실과 벧전3:18-20을 묶고는 그분께서 죽은 자들에게 다시 복음을 선포하셨다고 주장합니다.
18…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가려 하심이라. 19그분께서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는데 20이 영들은 노아의 날들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곧 하나님께서 한 번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불순종하던 자들이라.
이 구절에 대해 논의하기 전에 먼저 과연 사람이 죽은 뒤에 또 다시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는지 여부를 살펴봅시다. 히브리서 9장 27절은 이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
성경은 명백하게 사람이 죽은 뒤에는 심판이 있고 다시는 구원의 기회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벧전3:19는 무엇을 뜻할까요?
먼저 ‘감옥에 있는 영들’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이 영들은 분명히 노아 시대에 불순종하던 자들입니다. 창세기 6장에는 노아 시대에 하나님께 불순종한 세 부류의 존재가 나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아들들’로 표현된 천사들입니다. 벧후2:4와 유6은 이 천사들이 자기들의 처음 신분을 버리고 죄를 지어 지옥에서 영존하는 사슬에 묶여 어둠 속에 거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둘째는 노아 당시에 죄를 지어 대홍수로 멸망 받은 모든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천사들과 사람들 사이에 태어난 하이브리드 거인 종족입니다(창6:4). 물론 이들도 대홍수에 휩쓸려 다 멸절되었습니다. 이 세 부류가 벧전3:19에 있는 ‘감옥에 있는 영들’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영은 가지고 있지만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영이라 불린 적이 없으므로 여기의 영들은 천사들과 그들이 낳은 하이브리드 거인 종족을 뜻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다시 복음을 선포해서 구원의 기회를 주셨을까요? 여기에서 ‘선포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복음을 선포하다는 의미의 ‘유앙겔리조’가 아니라 선언하셨다는 의미의 ‘케륏소’입니다. 그러므로 벧전3:19는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힘입어 그들에게 가셔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승리’와 ‘그들의 정죄’를 선언하셨음을 보여 줍니다.
사람에게는 죽음 이후에 심판 외에 다른 것이 없으며 복음을 듣고 회개할 기회는 결코 다시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절을 가지고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또 다시 선포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교도들의 비성경적인 믿음입니다.그런데 안타깝게도 최근 들어 개신교회 안에서도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도신경의 이 부분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이런 무의미한 논쟁을 보면서 뿌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합니다.
2010-04-27 09:30:06 | 이정순
샬롬^^ 동감입니다... 주안에서~ 힘내세요. 홧팅!!!
2010-04-26 16:56:21 | 하두환
자유를 악용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많은 교회나 단체가 처음부터 과도한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유를 주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 생활에 억압의 요소가 있으면 그것은 주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 특히 한국 사람들이 - 억압받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기쁨과 평안과 자유를 주러 오셨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 자유를 방종의 도구로 삼지 않아야 합니다.
좋은 글에 감사합니다.
2010-04-26 16:55:48 | 관리자
구원받지 못한 가족과 친지들로 인해 저도 늘 마음이 무거운 사람 중 하나입니다.
심지어 꿈에서까지 그들이 보이고, 그들로 인해 마음이 매우 괴롭습니다.
곳곳에서 재난소식이 들려올때마다, 주님의 날이 가까이 왔음을 확신할때마다
마음은 더 무겁고 조바심이 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입도 뻥긋 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전화로라도 믿음의 말을 하려하면, 대번에 화제를 바꾸어버리니까요.
주변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에게 바른성경을 말하면, 굳이 그렇게까지 파고 들 필요가 있느냐며
오히려 저를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이러면 안되는 걸 알면서도, 가슴에는 안타까움만 가득한 채로
점점 더 입을 다물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2010-04-26 16:37:49 | 이은희
솔직하게 쓰신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오래 전 청년부 수련회에서 한 자매가 서로의 구원받지 못한
가족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힘쓰자며 권면해 주었던 기억이 갑자기 나네요.
홍승현 형제님(목사님 이신듯^^)을 비롯한 이 게시판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든 분들의 아직 구원받지 못한 가족들(적어도 직계가족만이라도)이 꼭! 꼭! 모두 구원받아
함께 천국에서 만나길 간절히 간절히 바랍니다.
2010-04-26 15:51:50 | 김대용
저 역시 선교단체에 있으면서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리더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리더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순종이 안 되면 복종이라도 해라. 휴일이나 방학에도 집에 가지 말고 선교단체에 남아서 함께 교제해야 한다." 그렇게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인간적인 정을 끊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주님의 제자가 되는 길이요, 영적으로 성장하는 길이라고 가르쳤으니까요. 그런 강한 훈련을 받으면서 뭔가 뿌듯한 마음을 느꼈지만 그것 역시 나중에 생각해보니 사람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요, 내가 뭔가 했다는 자기 의를 내세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이,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주의 종을 섬기는 곳이다."라고 합니다. 종이라면 성도들을 섬겨야지 왜 성도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들이 "주의 종에게 순종하고 주의 종을 섬겨야 복 받는다"고 생각하니 문제지요. 우리는 사람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따르며, 주의 종에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2010-04-26 13:34:15 | 김문수
마태복음 6장을 읽다가 .......
저는 최근에 주일모임에서 마태복음을 차례대로 함께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까지 마태복음 5장을 끝마치고 다음 주 나눌 말씀이 마태복음 6장이라 오늘 아침에 6장 말씀을 읽게 되었는데 마태복음 6장에는 외식에 관한 것을 주님이 말씀해 주셨는데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 예전에 다니던 그 교회들에서 있었던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일들이 믿음이 아니라 정말 외식된 것이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고 그런 외식적인 교단을 떠나 이제 바른 교회들을 만나서 참된 신앙생활과 바른 성경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정말 감사가 됩니다.
저는 89년도부터 나름대로 하나님을 열심히 믿으려고 노력하다가 계속해서 짖는 죄 때문에 갈등하다가 95년도 1월달에 어떤 교단 교회들을 만나서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머리로만 알던 십자가 사건이 그때 마음으로 믿어졌고 주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구주로 마음속에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해 5월달부터 제 1기 선교학생으로 뽑혀서 저는 저의 아내를 데리고 선교학교라는 곳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선교학교라는 것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그냥 훈련을 시켜 하나님의 일군으로 세우는 곳이라는 것만 들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어제까지 다들 저를 부를 적에 [집사님]하고 불렀는데 오늘 선교학교라는 곳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똥집사]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래도 거듭나지 못했을 적에 집사는 하나님이 세운 집사가 아니기에 똥집사라는 것도 맞다 싶어서 그 말이 이해가 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선교학교 개학 첫날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돈을 일전한푼 남기지 말고 다 바치라 해서 저는 일전도 남기지 않고 다 바쳤습니다.
이유는 이제부터 주님으로부터 받아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저희 부부는 이제 태어 난지가 얼마 안되는 어린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 우리 부부의 주머니에 돈이 한 푼 없다고 생각하니 두렵기는 하지만 이것이 신앙생활이고 믿음을 배우는 길이라면 그래도 그렇게 믿음생활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삶은 참으로 고되고 힘들었습니다.
새벽 4시반에는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있다가 새벽 5시부터는 새벽예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5시부터 5시반까지 약 반시간 가량 기도하고 성경 읽다가 5시반부터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십니다. 그리고 6시반에 새벽 예배를 끝마칩니다.
그리고 형제님들은 부지런히 방을 치우고 세수를 하고 자매님들은 밥을 지어야 합니다.
아침 식사는 7시반에 시작됩니다.
그리고 아침 8시반부터 모여 각자 기도하고 성경을 읽다가 8시반부터 오전 11시까지 목사님이 오셔서 아침 성경강의를 하십니다.
그리고 12시에 밥 먹고 오후 1시부터 각자 짝을 지어서 시내에 나가서 전도를 하러 갑니다.
각자 전도를 하다가 오후 5시가 되면 무조건 학교에 들어와야 합니다.
오후 6시에 저녁 식사가 있고 좀 쉬었다가 저녁 7시부터 저녁 모임이 시작됩니다.
약 반시간 가량 각자 기도를 하고 성경 읽다가 7시반부터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고 이런 저런 말을 나누다 보면 10시에 성경 공부가 끝납니다.
그리고 잠간 쉬었다가 선교학교 학생들이 둘러앉아 기도모임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기도모임 시간까지 다 끝마치면 밤 11시가 넘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아이를 엎고 저희 부부가 자는 숙소에 돌아와서 빨래도 좀 하고 이런 저런 일을 좀 하다 보면 12시에 자기가 보통입니다.
정말 고단한 훈련이었습니다.
더욱이 힘들었던 것은 저의 아내 문제었습니다.
선교학교에서는 훈련을 시킨다고 밥을 배불리 주지 않습니다.
작은 공기로 살짝 한 공기 주는데 저희도 배가 부르지 않는데 아이이게 젖을 먹이는 저의 아내로서는 너무나도 부족한 양이었습니다.
더 먹으려 해도 더 먹을 밥이 없었습니다.
반찬도 조금 해놓기 때문에 조금만 늦게 밥을 씹는 사람은 나중에 먹을 반찬이 없었습니다.
저녁 모임을 끝마치고 숙소에 와 잠을 자려하면 아내가 너무 배가 고파 힘들어 합니다.
잘 먹지 못할지라도 배는 부르게 먹어야 하는데 배까지 곯다보니 아내가 젖까지 얼마 나오지 않아서 딸 아이가 자지 않고 웁니다.
아내는 밤새 나오지 않는 젖을 아이에게 물리면서 아이를 달래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합니다.
그리고 아침에는 같은 시간에 일어나 제 시간이 선교학교에 달려가야 합니다.
때론 아내가 아이 때문에 선교학교에 도착하는 시간이 조금 늦습니다.
때론 일분 이분 차이로 늦기도 합니다.
그래도 조금도 봐주지 않고 그날 아침 늦었다는 이유로 선교학교에서 아내에게 아침 금식을 시킵니다.
그것을 보는 저는 정말 눈물이 나왔고 목구멍이 밥이 안 넘어갔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믿음생활인가 싶어서, 또한 훈련과정이라 싶어서 참고 참았습니다.
선교학교에서는 모임시간이 결정되어 있고 밥을 먹는 시간이 결정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시간을 일분이라도 어기면 그날 금식을 해야 합니다.
혹 누구라도 말 대구를 한다면 한끼 더, 또 한끼 더 ......이렇게 금식을 시킵니다.
그곳에서 사랑이란 조금치도 없습니다.
모두들 금식당하지 않기 위해서 시간을 지켰고 먹을 것이 있으면 남을 나누어 주려고 하기보다 자기 입에 들어가기 바빴습니다.
모임시간이 아이가 울면 때려서 다른 외딴방에 가두어 놓습니다.
젖먹는 어린 애기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는 중에서도 달마다 선교학교 생활비를 바쳐야 합니다.
손에 있는 돈을 다 털어버리고 선교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 생활비를 벌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해서 바치라고 하는데 사실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전도하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얻어낼까 연구를 합니다.
자주 무전전도 여행을 나가기도 합니다.
사실 선교학교에 돈이 있지만 전도를 나갈 적에는 한쪽 차표만 사주고 올 차비는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전전도 여행을 나가려면 두려움에 싸입니다.
무전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간증을 하는 것을 보면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한번은 목사님이 간증을 하는데 목사님이 어느곳에 가려고 차표를 샀는데 표값이 90원이어서 자기가 백원짜리 인민페 한 장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판매원이 10원을 돌려줘야 하는데 판매원이 자신에게 90원을 돌려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이 준 것이라 생각이 되어서 속으로 감사합니다 라고 하고 기쁨으로 그 돈을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이 간증을 들으면서 제 속으로 그것이 어찌 하나님이 주었느냐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목사님이 하는 간증이라 이해가 안 되지만 그냥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 교회들에서 늘 말씀을 하는 것이 우린 [종]의 말을 들어야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가 있고 [종]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우린 정월초하루 설명 절이 되면 학생들을 집에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선교학교에 모여서 정월초하루 아침에 금식을 합니다.
정월 초하루 아침에 밥을 먹으면 세상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날 육신을 쳐서 영에 복종하는 훈련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곳에서는 부모형제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몇몇 성경 구절을 인용해서 말을 해주기 때문에 아니라 생각이 되면서도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후에 이 교회들에서 가르치는 것이 너무나도 잘 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 말들이 맞아보였습니다.
늘 깨어져야 한다, 부서져야 한다고 가르쳤고 종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 교회들에서 가르쳤던 것들이 너무나도 외식적인 것이었고 우상적인 것들이었습니다.
말씀을 바로 모르면 이런 엉터리 교리에도 반박할 말씀을 찾지 못하고 넘어갑니다.
박옥수 목사나 북한에 김정일이나 똑 같은 그 쪽에서는 만민의 태양입니다.
그들을 섬기고 따르는 것만이 믿음생활이라 가르칩니다.
오늘 마태복음 6장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외식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고 이전에 선교학교에 있었던 일과 그쪽 교단들에서 있었던 끔직한 일들을 생각하면서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배워야 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고 바른 성경이 있어야 바른 교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더욱 느끼게 됩니다.
얼마전에 그리스도안에서의 자유에 대한 정동수 목사님이 전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쪽 킹제임스 성경 교회들에 와서 많은 목사님들 말씀을 들으면서 바른 믿음의 생활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고 은혜를 입고 있습니다.
믿음은 누가 강박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
오늘 마태복음 6장을 읽다가 이전에 선교학교에 있었던 일들이 생각나서 좀 적어보았는데 성경적인 판단은 여러분들이 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오늘 하루도 주안에서 복된 시간을 가지시길 바라면서 ...........
안녕히 계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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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6 12:00:28 | 홍승현
마음의 무게가 더 늘어 난 기분입니다.
가족에 관한 문제는 참 해결이 쉽지 않습니다.
2010-04-26 11:46:43 | 한용희
가족을 전도하는 것이 생각외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나중에 형님께서 주님을 제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생각을 하시면서 말씀을 전하시면 한결 힘도 덜 드실 것 같습니다. 힘내세요.
2010-04-26 08:27:29 | 김학준
귀한 간증 감사합니다. "남과 다른 재주없고 세상 명예도 없는 나 주님께서 자녀 삼으심 감사하네" 라는 찬양이 생각납니다. 목사님 힘내세요 샬롬!
2010-04-25 07:53:54 | 송재근
큰 형님을 찾아갔다가...
저는 사남일녀 중 막내입니다.
위에 두 형님이 있고 위에 누님 한분이 있습니다.
저의 형제들 중 둘째 형님이나 누님이나 저는 다 고중도 졸업하지 못했지만 유일하게 큰 형님만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만나서 편한 생활을 했습니다.
저의 큰 형님은 많이 배운 덕에 우리 형제들 중 제일 똑똑한 사람으로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의 큰 형님이 저를 보았을 적에 늘 저는 막둥이 어리광이이고 늘 자기보다 못한 [자신에게 은혜 입을 자]인 것입니다.
저도 세상지식으로는 큰 형님과 비하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형님의 말이라면 무조건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구원을 받고 그 다음 아버지 어머님, 그리고 둘째 형님과 누님이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유독 큰 형님만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큰 형님이 보았을 적에 저희는 무식해서 하나님을 믿고 자신은 똑똑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알고 구원을 받고 난 후에 큰 형님을 보니 세상 적으로 똑똑한 것이 똑똑한 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똑똑한 자가 바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자가 바로 제일 똑똑한 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2000년도에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돌아 가시기전 저보고 녹음테이프로 아버지 말씀을 녹음하라고 해서 아버지가 큰 형님을 향하여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니 꼭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유언을 녹음을 해서 남겨놓았는데 그 녹음테이프를 큰 형님에게 들려드렸더니 큰 형님이 아버지 미쳤다고 콧방귀를 뀝니다.
우리 가족식구들은 늘 저의 큰 형님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봄에 형님 회사에서 신체검사를 했는데 신체검사에서 형님의 간에 암이 생긴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형님은 암을 고치기 위해서 좋다는 것은 다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병원에 다니면서 수많은 의원을 만나 치료를 해보았지만 병은 고치기는커녕 점점 더 중해갔습니다.
이제는 암 말기라 간에 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 전이가 되었고 심지어 뼈에 까지도 암이 전이되었습니다.
저는 형님을 보면서 열두해 혈루증을 앓던 여자가 생각났습니다.
[열 두해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던 어떤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가 많은 의사에게 많은 일들로 고통을 받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니 조금도 좋아지지 않고 도리어 더 심해지던 차에](막5:25-26)
형님은 많은 병원을 찾아다녔고 많은 의원을 만나서 치료를 했지만 오히려 병만 더 키웠고 있던 돈도 다 말아먹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 나오는 여자는 다행히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큰 형님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자주 형님집에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어데 있느냐고 펄펄 뛰더니 이제는 병이 점점 중해지면서 마음이 점점 낮아지면서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는데 그것도 단번에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조금 조금 받아들입니다.
어제는 이즈음이면 마음을 낮추고 복음을 받아들이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데 자신이 죄가 많아서 천국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복음을 듣겠지 해서 복음을 전해주려 했는데 도저히 지금 듣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참 여전히 교만에 꽉 차 있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 용서받지 못할 죄가 어데 있습니까?
죄가 많아서 천국 못간 다고 하면서 복음을 듣지 않겠다고 하니 이것 또한 지극히 교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형님을 볼 적에 참 불쌍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기도가 되었습니다.
저는 저의 큰 형님을 보면서 자녀들에게 세상적으로 많이 공부를 시키고 출세를 시키려 하기보다 많은 공부를 시키지 못하고 세상적인 출세를 시켜주지 못했지만 자녀들에게 진짜 가르쳐 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고 신앙을 배워주는 것이 진정 자녀를 복되게 하는 것이란 것을 더욱 느끼게 됩니다.
저는 큰 형님처럼 배운 것도 적고 아는 것도 적지만 저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저는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내가 정말 똑똑한 자고 내가 정말 복된 자라는 것을 저는 형님을 보면서 더욱 느끼게 됩니다.
몇 일 있다 또 형님에게 가서 하나님 말씀을 전해 주려 합니다.
오늘 형님을 찾아갔다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들어지는 마음을 이렇게 순서없이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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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4 22:13:10 | 홍승현
제가 추가 댓글을 달겠습니다. 오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
아시다시피, 청교도, 개혁주의 목회하시는 분은 대부분 칼빈주의이십니다.
그러나 오목사님도 칼빈주의이시만 저희와 공통으로 로마카톨릭에 대해서 거의 목숨걸고 반대하고 계십니다. 저도 자유의지와 칼빈예정론에 대해서 오인용목사님 사이트에서 갑론을박을 했었던 경험이 있고, 칼빈의 예정론을 지지하는 곳이라 제가 약간 경고를 받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도 오인용 목사님덕에 상처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오목사님이 장로교이시지만, keepbible 일부 책과 흠정역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셔서 주변에 추천하시는 분이시기도 하니, 이런 점들을 두루 참조하여 좋다고 판단되시는 부분만 받아들이시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0-04-24 06:39:41 | 김학준
좋은 자료네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그런 "난제"에 대해 전혀 고민도 하지 않고, 문제의식도 없고, 관심도 없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저런 문제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고민이라도 하는 사람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올바른 진리를 깨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 때는 성경에 나오는 난제 풀이에 도전한 적도 있습니다. 아직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하나,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이것이 옳다는 믿음만 있으면 대부분의 난제는 다 해결이 된다고 봅니다. 물론, 가장 큰 전제조건은 올바른 성경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지요.
2010-04-24 00:15:50 | 김문수
귀한글 감사합니다. 샬롬!
2010-04-24 00:11:44 | 송재근
답글을 달아주신 형제님들과 자매님의 댓글에 공감을 가집니다.
마음한편에 남아있는 것이 있어 몇자 적습니다.
비록 지금은 많이 변하고 다르게 간 부분도 있지만 사실 저도 그러한 행사나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자였기에 지금의 교회현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아이들이 큰 행사나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 할때면 그 준비하는 아이들이 그일들로 인해서 예수의 피 흘림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기를 눈물어린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할때가 많았고 그 행사나 프로그램들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주께 나아와 그들의 영혼에 구원의 길이 열리기를 눈물 뿌려가며 기도도 하였습니다.
새로 등록하는 아이들을 향해 축복송을 불러 줄때면 저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저들에게 긍율을 베풀어 달라고 속으로 흐느끼기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때론 칼빈주의나 오순절, 기성교회들의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문제들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것 저런것 모르고 오로지 그것을 믿는 맘으로 지금도 살고 있는 형제,자매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첫사랑을 잃어버린 교회와 교인들이 점점더 많아 지는 것을 보면서 지금 우리형제 자매님들이 같이 바라보는 이 문제가 가장 주요한 이유와 원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2010-04-23 23:51:11 | 노영기
네, 칼빈은 주의해야지요.
칼빈의 사상은 로마카톨릭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성경적이지 못하고, 그릇된 부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10-04-23 10:02:40 | 이은희
칼빈과 루터의 책을 읽게 하고 위대한 스펄젼와 마틴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읽도록 지도하라 - 칼빈이라....
칼빈에 대해서는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을겁니다.
2010-04-23 08:24:52 | 윤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