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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보속 카톨릭 주의가 신자들에게 요구하는 선행 시리즈 중 또 다른 하나는 보속이라는 것입니다. 용서는 죄를 없애 주지만 죄의 결과로 생긴 모든 폐해를 고쳐 주지는 못한다(트리엔트 공의회:DS 1712). 죄에서 다시 일어선 사람은 완전한 영적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죄를 갚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더 실행하여야 한다. 적절한 방법으로 죄를 ‘보상’하거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갚음을 ‘보속’(penance)이라고 부른다[제2편 p.534 #1459].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수 억의 카톨릭 교인들은 이러한 선행들이 자기들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 그리고 ‘완전한 영적 건강의 회복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라고 믿으면서 지금도 이러한 보속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된 성경 말씀은 이러한 행습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 사역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드는 또 하나의 사람들의 전통임을 밝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그리스도께서는 갈보리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값을 완전히 지불하셨습니다. 선행이 어떤 사람의 ‘완전한 영적 건강’을 회복시키는 데 필요하다고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과 신뢰를 두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러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또, 내가 그들의 죄들과 불법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라. 이제 이것들을 사면하셨은즉 다시는 죄로 인하여 헌물을 드릴 필요가 없느니라(히10:17-18).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죄들을 절대로 기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통해서 일단 죄를 용서받으면 더 이상 죄로 인하여 희생을 드려야 할 필요가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도 교리 문답서는 사람이 만든 종교적 규정을 계속해서 떠들어댑니다. 고해 사제는 고해하는 사람에게 보속을 줄 때 그 사람의 개인적인 상황을 고려하고 그의 영적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 보속은 가능한 한 지은 죄의 경중과 특성에 맞아야 한다[제2편 p.534 #1460]. 교리 문답서는 심지어 보속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선행들이 무엇인지도 정의해 놓았습니다. 보속은 기도일 수도 있고 헌금, 자선 행위, 이웃을 위한 봉사, 자발적인 절제, 희생이 될 수도 있으며 특히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인내로 받아들이는 일일 수도 있다[제2편 p.535 #1460].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아무런 선행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이는, 주여, 주께서 선하시고 기꺼이 용서하시며 주를 부르는 모든 자에게 긍휼이 풍성하시기 때문이니이다(시86:5).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게 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선행을 통해서가 아닙니다.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되는 줄 알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것은 우리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자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될 육체는 하나도 없느니라(갈2:16). 바울은 만약 선행을 통해서 사람이 의롭게 될 수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이 헛되이 죽으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의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온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음이라(갈2:21). 심지어 교리 문답서는 이러한 전통을 확대시켜 보속이 죽은 자들도 도울 수 있다고 합니다. 또 교회는 죽은 이들을 위한 자선과 대사(大赦)와 보속도 권고한다[제1편 p.390 #1032]. 콘크리트 벽 위의 시멘트 덩어리처럼 그들은 계속해서 전통의 꼭대기 위에 전통을 쌓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세 가지 질문 이러한 카톨릭 주의의 교리는 적어도 세 가지 이상의 질문을 유발합니다. ∙이러한 비성경적인 교리들이 사람들을 카톨릭 교회에 묶어두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요? ∙어째서 카톨릭 주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격하시키고 그분의 희생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카톨릭 교인들은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그들 자신의 희생을 더 치러야 한다고 반복해서 주장하는 것일까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당신은 이 문제에 대해 누구 편에 서시겠습니까? 사람들의 전통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결  론 성경은 분명하게 사람의 행위가 없어도 전적으로 우리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음을 가르칩니다. 이제 일하는 자는 품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하지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느니라(롬4:4-5). 이제 여러분은 누구의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사람입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결론을 내리노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되느니라(롬3:28).
2009-07-09 14:58:26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카톨릭의 기도 카톨릭 주의는 기도에 대해 무어라고 말할까요? 그들의 말을 직접 들어 봅시다. 기도는 내적인 충동이 자연발생적으로 분출되어 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곧 기도하자면 먼저 기도하려는 원의가 있어야 한다. 성서가 기도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니 기도하는 방식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살아 있는 전승인 성전(聖傳)을 통해서 ‘믿고 기도하는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신다[제4편 p.903 #2650]. 위의 교리 문답서 인용문에서 우리는 심각한 논쟁의 여지가 있는 두 가지 진술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로, 교리 문답서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기도는 내적인 충동이 자연발생적으로 분출되어 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성경에 의하면 그 반대입니다! 성경에는 자연발생적으로 분출한 기도의 예가 수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모든 기도를 들으십니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주께 부르짖으매 그분께서 자신의 거룩한 산에서 내 말을 들으셨도다. 셀라(시3:4) 오 주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주께서 나를 고치셨나이다(시30:2). 내가 고통 중에 주께 부르짖었더니 그분께서 내 말을 들으셨도다(시120:1). 백성들아, 너희는 언제나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 놓으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피난처시로다. 셀라(시62:8). 카톨릭 주의의 기도는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마음을 쏟아놓는 것이 아니라 쓰여 있는 단어들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이교도들이 하는 행습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러한 기도 방법을 금하셨습니다. 오직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교도들과 같이 헛된 말을 되풀이하지 말라. 이는 그들이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기 때문이라(마6:7). 둘째로, 교리 문답서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성서가 기도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니 기도하는 방식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살아 있는 전승인 성전(聖傳)을 통해서 ‘믿고 기도하는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신다. 여기서 교리 문답서는 성경이 여러분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에게 카톨릭 교회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카톨릭 교회가 있기 오래 전에도 사람들은 기도했고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그의 여종들을 치료하사 자녀들을 낳게 하셨으니(창20:17).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주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민11:2). 시리아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그가 주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이 사람들을 치사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니 그분께서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을 치사 눈을 어둡게 하시니라(왕하6:18) 이러한 사람들은 카톨릭 교회의 도움 없이도 자발적으로 자기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이렇게 초청하십니다. 고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연 발생적인 감정의 표현을 인정하실 뿐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격려하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속  박? 이러한 카톨릭 주의의 교리가 신자들을 보다 더 카톨릭 교회의 속박 안에 가두게 만든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요? 여러분이 생각해 보고 결정하셔야 할 문제입니다. 결    론 우리는 서로의 입장이 팽팽한 두 개의 주장에 직면해 있습니다. 성경은 카톨릭 주의의 기도법을 정죄하고 카톨릭 교회는 성경적인 기도법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분명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과 그분의 거룩한 말씀 편에 서시겠습니까, 아니면 사람들의 전통 편에 서시겠습니까?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건짐을 받고 주를 신뢰하여 당황하지 아니하였나이다(시22:5).
2009-07-09 14:55:16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성경 해석 과연 카톨릭 신자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해도 될까요? 문답서의 말을 들어 봅시다. 하느님의 말씀을 권위 있게 해석하는 책무는 오직 교회의 교도권 즉 교황과 그와 일치하는 주교들에게만 주어졌다[제1편 p.46 #100]. 오직 교황과 카톨릭 교회의 지도자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까? 성경으로 달려가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한 가르침에 대해 무어라 말하고 있는지 알아봅시다. 바울과 실라가 베레아에서 전도했을 때 그 사람들의 태도는 이러했습니다. 베레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고귀하여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과연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탐구하므로(행17:11). 다시 말해 그들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해서 스스로 성경 말씀을 해석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능도 알지 못하므로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막12:24) 만일 사두개인들이 성경 말씀을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다면 어째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성경을 알지 못한다고 질책하셨을까요? 어째서 카톨릭 주의의 초대 ‘교황’이라는 베드로가 다음과 같이 선언한 것일까요?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 기록의 대언 중 어떤 것도 사적인 해석에서 난 것이 없나니(벧후1:20). 만일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수 없다면 어째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성경을 연구하라고 강하게 권유했을까요?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2:15). 예수님께서도 유대인들에게 충고하셨습니다. 성경을 탐구하라. 이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이니 성경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거하느니라(요5:39). 과연 그분께서는 유대인들이 성경을 해석할 수 없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것을 요구했다는 말입니까? 누가 성경을 해석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특정한 무리의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성경 말씀을 해석하실 것이며 또 그들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실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다 기억나게 하시리라(요14:26).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듣는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실 것임이라(요16:13). 사도 바울은 성령님께서 자기를 가르치신 분임을 인정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 영을 받았으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우리가 이것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가 가르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님께서 가르치시는 말로 하나니 곧 영적인 것은 영적인 것으로 비교하느니라(고전2:12-13).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그것들을 암기하도록 명하셨을까요?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 속에 숨겼나이다(시119:11). 내 아들아, 내 말들을 지키며 내 명령들을 네게 쌓아 두라. 내 명령들을 지켜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그것들을 네 손가락에 묶으며 네 마음판에 기록하라(잠7:1-3). 경고의 말씀 다음의 성경 구절들은 자신들을 위해서 성경을 해석해 줄 교회가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너희를 유혹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그러나 너희에게는 그분에게서 받은 기름부음이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 기름부음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며 또 그것이 진리요 거짓이 아닌즉 그 기름부음이 너희를 가르친 대로 너희가 그분 안에 거하여야 하리라(요일2:26-27). 하나님의 입장이 이보다 더 분명할 수 있습니까? 결    론 어째서 카톨릭 교회는 당신을 위해서 성경 말씀을 해석해 주기로 결정한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당신을 통제하고 카톨릭 주의에 계속해서 묶어 두려는 의도가 아닙니까? 그들은 혹시 당신이 스스로 성경을 읽고서는 카톨릭 주의의 교리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된다는 것을 발견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요? 당신은 카톨릭 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카톨릭 교회가 그들을 위해서 성경을 해석해 줄 필요를 느끼면서 영적인 무지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습니까? 당신은 카톨릭 교회의 성경 해석권이 사람의 전통에 불과하다는 것을 마음속에 새겨 두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당신이 결정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누가 당신을 위해서 성경 말씀을 해석해 줄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님입니까, 아니면 로마 카톨릭 교회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당신의 대답은, 당신이 누구에게 복종할 것인가? 그리고 마침내는 당신이 영원을 어느 곳에서 보내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그 법이 종일토록 나의 묵상이 되나이다. 주의 명령들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주께서 그것들을 통해 나를 내 원수들보다 지혜롭게 하셨나이다. 주의 증거들이 나의 묵상이 되므로 나의 모든 스승보다 더 많은 명철이 내게 있으며 내가 주의 훈계들을 지키므로 노인들보다 잘 깨닫나이다(시119:97-100).
2009-07-09 14:46:41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면죄부 살아 있는 자들과 연옥에 있는 자들을 다 포함해서 로마 카톨릭 신자들의 죄는 대사(大赦)즉 면죄부를 통해서 용서받을 수 있다고 카톨릭 교리 문답서는 말합니다. 신자들은 대사(大赦)로써 자신들과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죄의 결과인 잠벌 즉 일시적인 벌을 면제받을 수 있다[제2편 p.545 #1498]. 다음은 대사에 관한 교리 문답서의 정의 내용입니다. 대사란 이미 용서되어 소멸된 죄 때문에 받아야 할 일시적인 벌(잠벌)을 하느님 앞에서 면제해 주는 것인데 선한 지향을 가진 신자가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교회의 행위를 통해 얻는 것이다. 교회는 구원의 분배자로서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보속의 보물을 자신의 권한으로 나누어주고 적용한다[제2편 p.539 #1471] 이제 참으로 중요한 것이 나오지만 지면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대사 즉 면죄부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단지 이런 것들은 선행에 대한 복잡한 체재를 의미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대사에 관한 모든 규정들 역시 사람들의 전통이라는 점 또한 언급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것들 중 단 하나도 성경에서 발견되지 않습니다. 죄의 종류? 교회의 이러한 교리(대사)와 관습을 이해하려면 죄는 두 가지 결과를 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제2편 p.539 #172]. 그러나 성경은 모든 죄의 결과는 동일하다고 일관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한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니라(롬6:23).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완료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우리가 어떤 특별한 죄는 소죄라고 생각한다 해도 죄의 최종적인 결과는 언제나 죽음입니다. 카톨릭 교인들은 대사를 통해서 죄 값을 지불하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이미 모든 죄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이는 나 역시 전해 받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니 그것은 곧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고전15:3).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이 선행 즉 선한 행위를 하기를 원하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행위들이 구원받는 데 필요한 조건은 아닙니다. 그것들은 구원받은 이후의 결과로 나타나는 행동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이는 너희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우리가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위하여 창조된 자들이기 때문이니 하나님께서 이런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8-10). 사람이 한 번 은혜에 의해 구원받으면 선한 행위가 뒤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선행이 구원을 위한 필요 조건은 결코 아닙니다. 또한 그것이 구원받은 이후에 죄를 용서받기 위한 필요 조건도 아닙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시는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선행을 요구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요? 카톨릭 주의는 또한 대사(면죄부)가 이미 죽은 자들을 도울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정화 중에 있는 죽은 신자들도 성도들과 통공을 이루는 같은 지체들이므로 우리는 그들을 위한 다른 도움과 더불어 특히 그들의 죄로 인한 잠벌을 면하게 하는 대사로써 그들을 도울 수 있다[제2편 p.541 #1479]. 그러나 이것 역시 사람이 만든 전통에 지나지 않으며 사람을 짓누르는 또 하나의 짐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에 관한 어떠한 가르침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당신의 죄들을 용서받을 수 있는 기간은 당신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뿐입니다. 세 가지 주제 이 교리에서도 또 세 가지 주제가 반복되어 부각되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의 신성이 또 한번 과소평가 됩니다.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역만이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카톨릭 주의는 일개 카톨릭 교인의 선행을 통해서도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2. 대사 즉 면죄부는 사람들을 카톨릭 교회에 계속해서 붙잡아 두는 것입니다. 카톨릭 신자들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하나님께로 가기보다는 카톨릭 교회가 부과하는 선행을 실천하면서 부단히 힘쓰고 애써야만 합니다. 카톨릭 주의가 말하는 선행과 성경이 말씀하신 선행은 큰 차이가 있다는 점에 주의하십시오. 성경적인 선행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행하는 일들입니다. 반면에 카톨릭 주의의 선행은 주로 교회의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는 것 즉 미사, 묵주 기도, 카톨릭 기도문, 촛불 밝히기 등에서 맴돕니다. 선행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는 사람들을 교회의 노예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려는 것입니다. 3. 대사 즉 면죄부는 영적인 공갈 협박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가령 신자들이 카톨릭 교회에 충실하게 붙어 있지 않으면 언젠가 그들의 죽은 가족들이 천국으로 옮겨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식입니다. 결    론 이러한 선행 제도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주제에 관해 자신의 거룩한 성경 말씀에 무엇이라고 적어 놓으셨는지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나서 스스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 또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 주셨으니(딛3:5).
2009-07-09 14:43:49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고해성사 죄의 용서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먼저 두 가지 중요한 교리를 검토해야 합니다. 첫째로, 모든 죄는 사제에게 고백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하느님과 교회와 화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진지하게 양심을 성찰해서 기억해 낸, 아직 고백하지 않은 모든 대죄를 사제에게 고백해야 한다[제2편 p.544 #1493]. 사제에게 하는 고백은 고해성사의 핵심적인 부분의 하나이다[제2편 p.532 #1456]. 이 성사를 고백 성사라고 부르는 것은 사제 앞에서 죄를 자인하고 고백하는 것이 이 성사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제2편 p.522 #1424]. 카톨릭 주의는 신자들로 하여금 사람에게 그들의 죄를 고백하도록 지시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난 사람은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왕좌로 직접 나아갈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범죄들을 주께 고백하리이다, 하고 주께 내 죄를 시인하며 내 불법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주께서 내 죄의 불법을 용서하셨나이다. 셀라(시편 32:5)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다윗은 기도할 때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했습니다. 내 불법에서 나를 완전히 씻기시며 내 죄에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이는 내가 내 범죄들을 시인하기 때문이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51:2-3). 다음 구절은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왕좌까지 직접 다가갈 수 있는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게 되었나니(히10:19).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려 주신 정결한 피로 인해 우리는 죄를 용서받기 위해 하나님의 왕좌로 직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습니다. ‘초대 교황’의 모범 사도행전을 보면 시몬이라는 사람이 소위 초대 교황이라 일컬어지는 베드로에게 와서 성령님의 능력을 돈 주고 사기를 원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러한 죄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던가요? 시몬더러 바로 그곳에서 자신에게 죄를 고백하라고 종용했나요? 아닙니다. 베드로는 그에게 회개하고 그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해 주시도록 간청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행8:18-22 참조). 사제들이 죄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이 교리의 두 번째 측면은 카톨릭 사제들이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권위자에게 사죄권을 받은 신부들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할 수 있다[제2편 p.544 #1495]. 여기서도 역시 카톨릭 교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가 됩니다.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신성 모독하는 말을 하느냐?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 누가 능히 죄들을 용서하겠느냐? 하더라(막2:7). 카톨릭 주의는 사제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라고 가르칩니다(교리 문답서 #1456 참조). 그러나 성경은 오직 한 분의 중재자만을 인정합니다. 이는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기 때문이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딤전2:5). 다시 한번 교리 문답서는 이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가르침이 아니고 사람들의 전승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교부들은 이 성사를 ‘은총을 잃은 난파 후 얻는 구원의두번째 구명대’라고 소개한다(테르툴리아누스의 참회론 4,2 ; 트리엔트 공의회:DS 1542)[제2편 p.530 #1446]. 가중되는 속박의 굴레 교회의 계명에 따라 ‘모든 신자는 사리를 분별할 나이에 이른 후에는 매년 적어도 한 번 자기의 대죄를 성실히 고백할 의무가 있다’(교회법 제989조;DS 1683; 1708조)[제2편 p.533 #1457]. 의무라는 말이 또 한번 등장했습니다. 교부들(Church Fathers)이 사람들을 카톨릭 교회로 묶어 놓는 또 하나의 전통을 고안해 낸 것입니다. 이것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카톨릭 교인들을 얽어매기 위해 카톨릭 교회가 사용하는 매우 강력한 무기입니다. 본질적으로 이 교리는, 만일 당신이 카톨릭 교회를 떠나면 죄를 용서받을 수 없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당신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디 기억하십시오. 이것들 중 어떤 것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협박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고 깨달음을 주셔서 여러분이 붙잡고 있는 이 종교가 얼마나 단단히 여러분을 얽어매고 있는지 알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더 이상 이 종교에 사로잡혀 있을 필요가 없음을 보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자유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결    론 수천만 명의 신실한 카톨릭 신자들이 신부가 자기 죄를 용서해 줄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믿으면서 눈먼 채 고해소 앞에 줄지어 서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죄를 용서받기 위해 당신은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사람이 만든 종교인 카톨릭 주의가 요구하는 대로 한 사람의 죄인에 불과한 사제에게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시겠습니까? 오 주여, 내가 깊음들 속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나의 음성을 들으시고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주의 귀를 기울이소서. 오 주여, 주께서 불법들을 지켜보실진대 누가 능히 서리이까? 그러나 용서가 주께 있사오니 이것은 주를 두려워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시130:1-4).
2009-07-09 14:40:34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견진성사 교리 문답서는 견진성사가 구원에 필요한 여러 가지 성사(聖事) 중 하나가 될 뿐 아니라 카톨릭 신자들에게 여러 가지 다른 유익을 준다고 말합니다. 견진성사는 세례성사의 은총을 완성한다. 견진성사는 하느님의 양자로서 더 깊이 뿌리내리게 하고 그리스도와 더 굳게 결합하며 교회와 유대를 더욱 튼튼하게 하고 교회의 사명에 더욱 깊이 참여케 하며 말과 실천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거하도록 돕는 성사이다[제2편 p.485-486 #1316]. 문답서는 견진성사가 카톨릭 신자들을 그리스도께로 보다 견고히 연합시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한 교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 있든지 그렇지 않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보다 견고히 연합시킨다는 가르침은 없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5:17). 여러분이 일단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나면 여러분을 그 위치에서 제거시킬 수 있는 사람이나 사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능히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놓지 못할 것임이니라(롬8:38-39).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께 보다 견고히 연합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견고히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 곧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이제는 전에 멀리 떨어져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2:13). 영적인 표시라고요? 견진성사의 이른바 또 다른 유익이라고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례성사와 마찬가지로 견진성사도 그리스도인의 영혼에 영적인 표지 즉 지워지지 않는 인호를 새겨 준다[제2편 p.486 # 1317]. 여러분이 아무리 성경을 뒤져 봐도 그리스도인의 영혼에 영적인 표시를 새기는 것에 대해서 설명하는 구절은 없을 터인데 그 이유를 교리 문답서가 우리에게 잘 설명해 줍니다. 카톨릭 전승은 안수를 견진성사의 기원으로 당연히 인정하였으며[제2편 p.476 #1288]. 견진성사는 성경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들의 전통 곧 카톨릭 신자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평생 동안 행해야 할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죽을 위험에 있는 신자들에게는 아무 사제라도 견진을 주어야 한다(교회법 제883조 3항). 왜냐하면 교회는 그 자녀들 중의 누구라도 아주 어린아이까지라도,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충만한 선물로 완전해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제2편 p.485 #1314]. 견진성사의 숨은 의도 이러한 종교 예식의 실제적인 결과는 사람들을 카톨릭 교회로 보다 깊숙이 끌어들여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리 문답서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견진성사로 신자들(세례 받은 자들)은 더욱 완전히 교회에 결합되며[제2편 p.475 #1285].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유하게 하시려고 오셨음이 분명한데 어째서 신자들이 카톨릭 교회의 종교 예식에 구속되고 싶어하거나 또는 그럴 필요를 느껴야 한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롭게 되리라(요8:36).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그 안에 굳게 서고 다시는 속박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결    론 사람이 만든 카톨릭 교회의 전통인 견진성사가 구원에 필요할까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은 단호히 “아니오!”라고 말씀합니다. ∙카톨릭 교회는 성경을 무시하고 “예!”라고 주장합니다.   누구를 믿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의 명령입니까? 사람들의 명령들을 교리로 가르치니 내게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마15:9).
2009-07-09 14:37:15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성상들 교리 문답서는 모든 카톨릭 신자들에게 그리스도나 혹은 마리아 및 기타 다른 사람들의 성상이나 성화들을 공경하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성당과 집에 있는 성화상은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우리의 신앙을 일깨우고 기리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원 사업에 관한 성화상을 우리가 소중히 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흠숭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어머니와 천사와 성인들의 성화상을 소중히 하면서 그분들을 공경한다[제2편 p.448 #1192]. 성상들이 무슨 의도로 만들어졌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셨을 때 두 번째 명령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너는 너를 위하여 어떤 새긴 형상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20:4-5). 하나님께서는 또한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습니다. 너는 주 네 하나님을 위하여 쌓은 제단 곁에 어떤 나무로든지 작은 숲을 심지 말며 너를 위하여 어떤 형상도 세우지 말지니 주 네 하나님께서 그것을 미워하시느니라(신16:21-22). 성경은 어떠한 형태의 조각된 상이든지 그것을 만들거나 소유하는 사람은 부패한 사람이라고 결론짓습니다. 주께서 호렙에서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아무 모습도 보지 못하였으니 그런즉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두렵건대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너희를 위해 새긴 우상 곧 어떤 형상의 모습이든지,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든지, 땅 위에 있는 어떤 짐승의 모습이든지, 공중에 나는 어떤 날짐승의 모습이든지, 땅 위에 기어다니는 어떤 것의 모습이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물고기의 모습이든지 만들까 하노라(신4:15-18).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입장을 다시 한 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이는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맺은 언약을 잊어버리고 네 주 네 하나님께서 금하신 새긴 형상이나 어떤 것의 모습을 만들까 염려함이라(신4:23).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사람들이 새긴 형상에 경배드리는 것을 명백히 금하는데 사실 이러한 행위는 카톨릭 교회에서 늘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것들입니다. 교황이 마리아 상 앞에서 절하는 모습을 보실 때마다 여러분은 이러한 성경 말씀에 관해 깊이 생각하셔야 할 것입니다. 너는 너를 위하여 어떤 새긴 형상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이는 나 곧 주 네 하나님이 질투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니 나는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손들에게 벌하여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20:4-5).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토록 우상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하시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은 무엇이며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은 무엇이냐? 그러나 내가 말하건대 이방인들이 희생물로 드리는 것은 마귀들에게 드리는 것이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마귀들과 교제하는 자 되는 것을 원치 아니하노라(고전10:19-20). 모든 우상의 배후에는 글자 그대로 마귀가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누구도 마귀와 교제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상(우상)의 사용을 금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너희는 우상들에게로 돌이키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부어 만든 신들을 만들지 말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니라(레19:4).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를 혐오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이제 너희에게 쓰는 것은 만일 형제라 일컬음 받는 자가 음행하는 자이거나 탐욕을 부리는 자이거나 우상 숭배하는 자이거나 욕설하는 자이거나 술 취하는 자이거나 강탈하는 자이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하는 것이라(고전5:11). 너희가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을 일삼는 자나 부정한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결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왕국에서 아무 상속도 받지 못하리라(엡5:5).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자는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다음 구절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아무도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는 이러한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자녀들 위에 임하기 때문이니(엡5:6). 카톨릭 교회가 당신을 헛된 말로 속이고 있습니까? 여러분 스스로 그것을 판단하십시오. 이러한 교리의 기원은 무엇일까요? 카톨릭 주의는 이러한 교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 양 가장조차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우리 교부들의 가르침과 카톨릭 교회의 전승에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확실하고도 명확하게 결정한다. 그림으로 그려졌거나 모자이크로 만들어졌거나 또는 다른 적절한 재료로 만들어진 유서 깊고 거룩한 그림들과 귀중하고 생명을 다시 주는 십자가상은 하느님의 성당과 제기들과 제의에, 벽과 화판에, 그리고 집안과 거리에 모셔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나, 천주의 지극히 거룩하신 모친이신 동정 마리아의 성화상이나 거룩한 천사들과 모든 성인들의 성화상도 마찬가지이다(제2차 니케아공의회)[제2편 p.438 #1161]. 이러한 교리는 교부들과 카톨릭 교회의 전승(전통)으로부터 유래한 것입니다. 카톨릭 주의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이러한 교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모독하도록 거룩하게 영감 받았다고 믿도록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시편 기자가 이 주제에 관해 우리에게 조금 더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교도들의 우상들은 금과 은이요, 사람들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그것들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그들의 입에는 아무 호흡도 없나니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도 우상들과 같으며 우상들을 신뢰하는 자들도 다 그와 같도다(시135:15-18). 다시 말해 우상은 벙어리요 귀머거리이기 때문에 우상을 만들거나 그것들을 신뢰하는 자들은 모두 지각이 없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강력한 경고인 것입니다. 결    론 카톨릭 교회는 '성상들(우상들)이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여러분의 신앙을 일깨우고 고양시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들의 사용을 엄격하게 금합니다. 누구에게 순종하시겠습니까? 너희는 너희를 위하여 우상들이나 새긴 형상을 만들지 말고 서 있는 형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돌로 된 형상을 세우고 그것에게 절하지 말라. 이는 내가 주 너희 하나님이기 때문이니라(레26:1). 너희가 하나님의 명령을 버리고 사람들의 전통을 지키고 있으니 곧 단지나 잔을 씻는 것과 너희가 행하는 바와 같은 다른 많은 일들이라(막7:8).
2009-07-09 14:32:24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 과연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돕기 위해 기도할 수 있을까요? 카톨릭 교리에 따르면 그것이 가능합니다. 죽은 이들과의 일치.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 전체의 이 같은 교류를 명백히 인식한 지상 여정의 교회는 그리스도교의 초기부터 대단한 신심으로 ’죽은 이들을 기억하였다‘, ’죽은 이들이 죄의 사함을 받도록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은 장하고도 경건한 생각이었기‘ 때문이다(교회헌장 50항). 그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그들을 도울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한 그들의 전구(intercession)를 효과 있게 할 수도 있다[제1편 p.364 #958]. 여기서 세 가지 진술이 성경과 모순됩니다. 하나씩 살펴볼까요? 1. 죽은 이들이 죄의 사함을 받도록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은 장하고도 경건한 생각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장하지도 경건하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가르침을 받습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 치고 죽은 자를 위해서 그들의 죄가 용서되도록 기도한 예는 단 한번도 없습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사람들의 전통일 뿐입니다. 2. 죽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그들이 죄에서 해방되도록 도울 수 있다. 여기 하나의 전통 위에 세워진 또 하나의 전통이 있습니다. 성경은 결코 이러한 진술이 참된 것이라고 암시조차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미 배운 대로 사람들이 구원받으려면 죽기 전에 그들의 죄로부터 해방되어야만 합니다. 3. 그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우리를 위한 그들의 전구(intercession, 중보)를 효과 있게 할 수도 있다. 블록을 쌓듯이 그들은 아무런 성경적 기초도 없이 전통 위에 전통을 얹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절정에 다다랐습니다. 이제 우리의 기도는 다음과 같은 것이 가능한 지경에까지 온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그들의 전구(중보)를 효과 있게 할 수도 있다. 이제 명백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어째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많은 중재자들이 필요한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로 하여금 우리를 위해 중재하시도록 한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요? 과연 우주의 창조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신다는 말입니까? 이 무슨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을 훼손시키는 태도입니까? 카톨릭 주의의 입장은 하나님 아버지를 마음대로 설득할 수 있는 그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무능하고 무기력한 방관자로 예수님을 묘사함으로써 우리의 주님을 모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버지께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을 내게 주셨느니라(마28:18). 여기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또 다른 묘사가 있습니다. 그분(하나님)께서 그 권능을 그리스도 안에서 발휘하사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시고 하늘의 처소들에서 자신의 오른편에 앉히시고 모든 정사와 권능과 강력과 통치와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 일컬음을 받을 모든 이름보다 훨씬 뛰어나게 하시고 또 모든 것을 그분의 발 아래 두시고 그분을 교회에게 주사 모든 것 위에 머리가 되게 하셨느니라(엡1:20-22). 주 예수님을 권위와 능력이 부족한 영적 무기력자로 격하시키려는 카톨릭 주의의 입장은 성경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습니까? 친애하는 카톨릭 친구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느 누구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임무를 혼자서도 잘 해내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나니 그 까닭은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시기 때문이라(히7:25). 여러분이 사랑하는 죽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기 전에 부디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이 모두 인간이 만든 종교적 규정이라는 점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여러분에게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요구하시지도 않으셨을 뿐더러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떤 유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약속하신 적도 없습니다. 제가 젊어서 카톨릭 신자였을 때 늘 저는 어쨌거나 이 모든 종교 규정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성경을 읽고 확인해 보십시오. 카톨릭 교리 문답서는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사람들의 전통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들 이제 여러분께서는 예수님께서 또 한 번 심각하게 좌천을 당하게 된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오른편에 계시던 유일하고 신성한 중재자의 위치로부터 쫓겨나 죽은 인간들의 무리 속으로 내몰렸고 결국 많은 중재자 중 하나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왜 카톨릭 종교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계속해서 이러한 못된 짓을 하는 걸까요? 결    론 다시 한 번 여러분은 몇 가지 중요한 질문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 사람들의 전통인 것을 알면서도 죽은 이들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를 하시겠습니까? ∙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격하시키는 교리를 고수함으로써 교회의 전통을 드높이겠습니까? ∙당신은 모든 것을 다 알면서도 사람이 만든 전통을 따르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시겠습니까?   이것들이 바로 여러분께서 결정하셔야 할 것들입니다. 결정하실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사람들의 명령들을 교리로 가르치니 내게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마15:9).
2009-07-09 14:27:39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성인들에게 드리는 기도 교리 문답서는 신자들로 하여금 선행으로 인해 교회가 성인(saints)으로 선포한 사람들에게 기도하라고 권고합니다. 우리보다 앞서 하늘나라에 간 증인들 특별히 교회가 ‘성인’으로 인정하는 이들은 그들의 모범적인 삶과 전해 오는 그들의 글 그리고 그들의 기도를 통해서 오늘도 살아 있는 기도의 전통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지상에 남아 있는 이들을 끊임없이 돌보아 준다. 그들은 주님의 ‘기쁨’에 동참함으로써 ‘많은 일을’ 맡게 되었다. 그들의 전구는 하느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그들의 봉사 중 가장 고귀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와 온 세상을 위해 간구해 주도록 그들에게 기도할 수 있으며 또 해야 한다[제4편 p.914-915 #2683]. 이번 장에서는 먼저 ‘성인’(saint)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내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카톨릭 주의는 성인이란 살아 있을 때 행한 선행들로 인해서 죽은 후에 성인으로 공포된 ‘엄선된 소수의 사람들’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는 어떤 신자들을 시성(諡聖, canonize)함으로써 즉 그 신자들이 영웅적으로 덕행의 길을 닦고 하느님의 은총에 충실히 살았음을 장엄하게 선언함으로써 교회 안에 강력히 작용하는 성령의 힘을 인정하고 그 신자들을 다른 신자들에게 모범과 전구자로 세워 줌으로써 그들의 희망을 북돋아 준다(교회헌장 40;48-51항)[제1편 p.322 #828]. 하지만 성경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성인(saint) 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모든 성인들(성도들) 즉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성도(saints)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롬1:7). 많은 다른 성경 구절도 똑같은 진리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saints) 가운데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나로 하여금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이방인들 가운데 선포하게 하시고(엡3:8). 아담으로부터 일곱번째 사람인 에녹도 이들에 대하여 대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자신의 수만 성도(saints)와 함께 오시나니(유14). 그분께서 더러는 사도로, 더러는 대언자로, 더러는 복음 전도자로, 더러는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것은 성도들(saints)을 완전하게 하며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엡4:11-12). 이 외에도 행9:13, 32, 41; 26:10; 롬8:27, 12:13, 15:25, 15:26, 15:31, 16:15; 고전6:1; 고후1:1; 엡 1:1과 기타 신약성경의 많은 구절을 참조해 보십시오. 왜 이러한 거짓 교리를 가르치는 것일까요? 간략하게 말해서 이들이 꾸며낸 각본은 다음과 같습니다. 카톨릭 주의는 ‘성인’(성도)에 대한 성경의 정의를 던져버리고는 새로운 것을 고안해 냈습니다. 그런 다음에 신자들로 하여금 이러한 비성경적인 ‘성인들’(성자들)에게 기도하도록 가르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도를 듣고 응답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데 왜 우리가 다른 누군가에게 기도해야만 하는가? 성인들(성자들)이 중재자라고요? 카톨릭 주의는 소위 성인들(성자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사이를 중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중재자 곧 중보자가 되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따라서 이에서 벗어나 딴 소리를 하는 것은 사람이 만든 전통일 뿐입니다. 성인들에 관한 흥미 있는 내용이 교리 문답서에 있습니다. 지상 여정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일치가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켜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인들과의 일치’(our communion with the saints)가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켜 주는 것이니[제1편 p.363 #957]. 카톨릭 교회에 따르면 성인들에게 기도하는 것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보다 가까이 인도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러한 교리 역시 성경에서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이나 예수님께서 전혀 가르친 바 없는 또 하나의 사람들의 전통인 것입니다. 사실 이처럼 죽은 자들과 접촉하는 행습은 접신술에 가까운 것으로 위험 천만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와 비슷한 행위를 강력히 정죄했습니다(신명기 18:10-12을 보십시오). 결    론 여러분이 대답해야만 하는 끈질긴 질문은 이것입니다. 어째서 카톨릭 교회는 신자들로 하여금 살아 계시고 능력이 막강하시고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하나님 대신 죽어 있는 사람들에게 기도하도록 만드는 것일까요? 이러한 사람들의 전통이 사실이 아니라면 당신이 ‘성인들’에게 드리는 모든 기도는 쓸모 없이 지껄이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하지만 당신이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당신은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놀라운 약속들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2009-07-09 14:24:08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연옥 카톨릭 주의는 죽음 이후에 일부 사람들은 연옥이라 불리는 장소로 가서 천국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좀더 정화된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나라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기 위해 죽은 후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제1편 p.389 #1030]. 교회는 선택된 이들이 거치는 이러한 정화를 ‘연옥’이라고 부르는데…[제1편 p.389 #1031]. 과연 이 위험한 교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일까요, 아니면 또 하나의 사람들의 전통일까요? 여기 정확히 카톨릭 교리 문답서로부터 나온 대답이 있습니다. 교회는 연옥에 관한 신앙 교리를 특히 피렌체 공의회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확정하였다…[제1편 p.389 #1031]. 사람들이 이러한 이단 교리를 정립하기 위해 내세에 관한 정보를 어디에서 얻었는가를 물어 보는 것이 과연 부당한 일입니까? 로마 카톨릭 신자 여러분, 만약 여러분께서 연옥에 있다고 믿는 여러분의 사랑하던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면 그들이 그곳에 있다고 말해 준 분이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 일단의 종교 지도자들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주의 제자들 중 어떤 이는 세상 여정에 남아 있고 어떤 이는 죽어 단련을 받고 어떤 이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뵈오며’ 영광을 누리고 있다(교회헌장 49항)[제1편 p.362 #954]. 여러분이 고통을 당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선물이 될 수 없습니다 이 교리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은 성경이 전혀 그러한 장소가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은 죽은 후에 좀더 정화를 거치는 것이 천국 가는 데 필요하다고 지적하지도 않습니다. 그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라고 선언합니다.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한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니라(롬6:23).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심판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정죄에 이른 것같이 한 사람의 의로 말미암아 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생명의 칭의에 이르렀나니(롬5:18).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정직하고 사랑 많으신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로서 영원한 생명을 제시하시고는 나중에 그것을 얻기 위해서 당신이 고통을 당하도록 하신다는 말입니까? 더욱이 그분이 성경 말씀 안에서 거짓말을 하신다는 말입니까? 이는 너희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성경대로 믿는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은 좀더 정화되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에 의해 의롭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은즉 더욱더 그분을 통하여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으리니(롬5:9).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롬3:24). 사도 바울도 이러한 관점을 분명히 해두었습니다. 전에는 너희 가운데 이 같은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이제는 너희가 우리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김을 받고 거룩히 구별되어 의롭게 되었느니라(고전6:1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정화된 것입니다. 이는 그리하였더라면 그분께서 반드시 창세 이래로 자주 고난을 당하셨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세상 끝에 단 한 번 나타나사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죄를 제거하셨음이니라(히9:26).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죄값을 지불하고 사셨으므로 구원받기 위해 고통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음이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 그 값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였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모든 양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먹이게 하셨나니(행20:28). 결    론 이 문제에 관해서 성경이 이토록 분명한데 어째서 카톨릭 교회는 신실한 신자들을 설득해서 그들의 사랑하는 죽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를 드리고 미사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돈을 바치도록 하는 것일까요? 여러분 스스로 대답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최소한 연옥이라는 교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마음속에서 부화되어 나온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 곧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2009-07-09 14:20:33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미사 교리 문답서를 그대로 믿는다면 천주교 미사를 행할 때마다 십자가 위에서 행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이 현재화되고 우리의 대속 사역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십자가 제단 위에서 한 번 당신 자신을 피 흘려 바치신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미사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이 희생 제사에 피흘림 없이 계시고 제헌되신다(트리엔트 공의회)[제2편 p.502 #1367]. 성찬례를 거행할 때 교회는 그리스도의 파스카(Passover, 유월절)를 기억하며 이 파스카는 현재화된다. 그리스도께서 단 한번 십자가 위에서 드리신 희생 제사는 항상 현실적인 것으로 존속한다. 우리 파스카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신 십자가의 제사가 제단에서 거행될 때마다 우리의 구원 사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제2편 p.501 #1364]. 그러나 성경은 대속 사역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을 때 단 한번에 완성된 행위임을 계시해 줍니다. 이는 그리하였더라면 그분께서 반드시 창세 이래로 자주 고난을 당하셨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세상 끝에 단 한 번 나타나사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죄를 제거하셨음이니라(히9:26). 바로 이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모든 사람을 위해 드려짐을 통해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히10:10).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를 흘리셨을 때 그 단 한 번의 행위로 말미암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영원한 대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오직 자기 피를 힘입어 단 한 번 거룩한 곳에 들어가사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대속을 얻으셨느니라(히9:12). 성경은 이러한 희생 제사를 날마다 드려야 할 필요가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저 대제사장들과 같이 먼저 자기 자신의 죄들로 인하여 날마다 희생물을 드리고 그 다음에 백성의 죄들로 인하여 희생물을 드릴 필요가 없으시니 이는 그분께서 자신을 드리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행하셨기 때문이요(히7:27). 이럼에도 불구하고 교리 문답서의 입장은 완고합니다. 이 신비가 거행될 때마다 ‘우리의 구원 사업이 이루어지고’…(교회 헌장 3항)[제2편 p.517 #1405].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역시 단호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 한번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단 한 번 헌물로 드려지셨으며 또 자신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죄 문제와 상관없이 두번째 나타나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리라(히9:28). 오직 이 사람은 죄들로 인하여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뒤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사(히10:12).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사람들의 구원을 이루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을 끝내셨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더 이상 필요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누가 영광을 받아야 합니까?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에서 카톨릭 교회가 어떤 역할을 맡고 있다고 교리 문답서는 주장하는데 사실 이 같은 주장은 갈보리에서 성취하신 일로 인해 주 예수님께서 홀로 받으시기에 합당한 영예를 그분으로부터 도적질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한번에 영원히 모든 것을 끝내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희생으로서 신성한 행위였습니다. 그것은 단 한번 일어났으며 다시는 반복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리 문답서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희생 제사와 성찬례 즉 미사라는 희생 제사는 유일하고 동일한 제사이다[제2편 p.502 #1367]. 이러한 발언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임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종의 종교적 의식을 수행하는 사제가 예수님께서 겪으셨던 고통스러운 죽음에 어떤 기여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신성 모독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카톨릭 교회의 종교 의식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과 연관시키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입니다. 카톨릭 교회는 대속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사역에 아무런 역할도 한 것이 없으며 따라서 아무런 영예도 받을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카톨릭 주의는 강제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빼앗아 카톨릭 교회와 나누어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결    론 독자께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카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전통 중에서 어느 쪽을 신뢰할지 신중히 결정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리심을 받으사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3:18).  
2009-07-09 14:17:02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마리아 : 천지의 여왕 카톨릭 주의는 마리아가 죽을 때 주님께서 그녀를 하늘로 끌어올리시고 그녀에게 ‘천지의 모후’ 혹은 ‘만물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주셨다고 주장합니다. 마침내 티 없이 깨끗하며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았던 동정녀(마리아)는 지상 생활을 마친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에로 부르심을 받아 주님께로부터 천지의 모후(Queen over all things)로 추대받았다[제1편 p. 366 #966]. 여기서 다시 한 번 카톨릭 교리와 하나님의 말씀은 정면 충돌을 일으킵니다. 성경 말씀은 전혀 그런 교리를 가르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가르침을 책망합니다. 예레미야서 44장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배도하여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으로 알려진 거짓 여신에게 예배하는 행습을 보게 되며 이것이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불러일으켰음을 알게 됩니다. 너는 그들이 유다의 도시들과 예루살렘의 거리들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보지 못하느냐? 자녀들은 나무를 모으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여인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과자를 만들어 하늘의 여왕에게 바치고 다른 신들에게 음료 헌물을 부음으로 나의 분노를 일으키느니라(렘7:17-18). 어째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늘의 여왕이라 불리는 거짓 여신에게 예배했을까요? 사실 그것은 그들에게 전해 내려온 사람들의 전통이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우리 입에서 나간 것을 반드시 이행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행하던 대로 곧 우리와 우리 조상들과 우리 왕들과 우리 통치자들이 유다의 도시들과 예루살렘의 거리들에서 행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여왕에게 음료 헌물을 부으리라. 이는 그때에는 우리에게 양식이 풍부하고 넉넉하여 아무 재난도 보지 아니하였으나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여왕에게 음료 헌물 붓는 일을 그만 둔 뒤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으로 진멸을 당하였음이니라, 하며 또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여왕에게 음료 헌물을 부을 때에 어찌 우리 남자들의 허락도 없이 그 여왕에게 과자를 만들어 경배하고 음료 헌물을 부었으리요? 하니라(렘 44:17-19). 카톨릭 주의는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이교도들의 그 동일한 종교 의식을 물려받은 것이 아닙니까? 이방 종교 본서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호기심 있는 카톨릭 교인들은 ‘하늘의 여왕’을 섬기는 많은 거짓 종교들을 연구함으로써 카톨릭 주의와 그것들 간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이 사실에 매혹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 여신들을 지칭하는 데 그토록 자주 사용되었던 이름을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주셨다고 말하는 카톨릭 주의의 주장은 참으로 놀랄 만한 것입니다. 누가 높임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카톨릭 주의는 마리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높입니다. 오 하나님이여, 주께서 하늘들 위로 높임을 받으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보다 위에 있기를 원하나이다(시57:5). 주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어다(시18:46). 주여, 주의 능력으로 인하여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이와 같이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양하리이다(시21:13).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인 줄을 알지어다. 내가 이교도들 가운데서 높임을 받고 땅에서 높임을 받으리로다(시46:10). 땅의 방패들이 하나님께 속하였으므로 백성의 통치자들이 함께 모였으니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라. 그분께서 크게 높임을 받으시리로다(시47:9). 주는 높임을 받으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높은 곳에 거하시며 공의와 의로 시온을 충만하게 하시기 때문이라(사33:5).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라는 이름은 943회 나오며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533회 그리고 주 예수라는 이름은 115회 나옵니다. 신약성경의 처음 네 권의 책은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죽음과 부활을 기록하고 있고 신약의 나머지 책들도 그분을 주요 테마로 삼고 있습니다. 반면에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저 손에 꼽을 정도로 등장하며 결코 어떤 것의 여왕으로 언급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들로 하여금 다 예수라는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빌2:9-10). 그들이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께서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시도다, 하더라(계5:12). 누가 모든 영광을 받아야만 하겠습니까? 바로 하나님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광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만일 누가 말하려거든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섬기려거든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것은 모든 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분께 찬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벧전4: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들의 용서를 주시려고 자신의 오른손으로 그분(예수님)을 높이사 통치자와 구원자가 되게 하셨느니라(행5:31). 무슨 일이 반복되는지 아시겠지요?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려고 힘쓰는 반면 카톨릭 주의는 예수님을 끌어내리고 마리아를 높이려고 애씁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시고 십자가에서 끔찍한 고통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찌해서 그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한 여자에 의해 대치되고 무시당하는 것입니까? 결    론 카톨릭 주의는 주님께서 마리아를 ‘천지의 여왕’(Queen of all things)의 반열로 드높이셨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격노케 한다고 선언하십니다. 당신은 어느 쪽을 신뢰하시겠습니까? 사람들의 전통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들로 하여금 다 예수라는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또 모든 혀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
2009-07-03 14:08:55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마리아 : 기도의 응답자 카톨릭 교리는 신자들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기도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청함으로써 우리가 불쌍한 죄인임을 깨달으며 또한 지극히 거룩하신 분 즉 ‘자비의 어머니’께 호소한다. 마리아는 우리가 죽을 때도 함께 계실 것이며 우리가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시간에 우리의 어머니로서 우리를 맞아들여 천국에 계신 당신의 아드님 예수께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비는 것이다[제4편 p.912-913 #2677]. 여러분은 이러한 주장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그저 사람들의 전통에서 나온 것인지 반드시 아셔야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주장 하나 하나를 면밀하게 검토할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기를 청원하는 것 : 성경적 근거가 없는 사람들의 전통 ∙자비의 어머니 : 또 하나의 사람들의 전통 ∙마리아를 지극히 거룩하신 분으로 높이는 것 : 사람의 전통. 우리는 이미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심을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가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시간에 마리아가 우리를 맞아들임 :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사람들의 전통 ∙마리아가 우리를 예수님께 인도함 :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의 전통 카톨릭 신자 여러분, 부디 눈을 뜨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들 중 어느 하나도 결코 말씀하신 바가 없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초기 카톨릭 지도자들의 머리 속에서 고안된 전통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실 복된 동정녀는 오랜 옛적부터 ‘천주(하나님)의 모친’(Mother of God)이란 칭호로 공경받고 신자들은 온갖 위험과 아쉬움 중에 그의 보호와 도움을 청한다[제1편 p.368 #971].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마리아에게 기도할 수 있다는 가르침은 과거의 카톨릭 지도자들이 조작해 내어 오늘날의 카톨릭 교인들에게까지 전해 내려온 또 하나의 사람들의 전통일 뿐입니다. 예수님이나 성경의 어느 누구도 결코 마리아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기도해야 할까요? 성경은 사람들이 오직 하나님 한 분께만 기도하도록 명령함으로써 카톨릭 교리 문답서를 즉각 반박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 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고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환난이 닥쳐올 때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마리아가 아닙니다. 오 주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주의를 기울이소서.  나의 고난의 날에 내가 주를 부르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시86:6-7). 그가 나를 부르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고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시91:15). 참으로 수백 구절의 성경 말씀이 우리의 인생 길에서 어려움이 닥칠 때 하나님께 도피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단 한 구절도 마리아에게 기도하라고 우리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의로운 자의 구원은 주께로부터 오나니 그분은 고난의 때에 그들의 힘이 되시리로다(시37:39). 오 주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니 주는 아침마다 그들의 팔이 되시오며 고난의 때에 또한 우리의 구원이 되시옵소서(사33:2). 가난한 자를 배려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주께서 고난의 때에 그를 건지시리로다(시41:1). 여러분은 여러분의 근심 걱정, 무거운 짐을 마리아에게 의탁하시겠습니까? 네 짐을 주께 던져서 맡기라. 그분께서 항상 너를 붙드시고 의로운 자의 흔들리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55:22). 다윗 왕은 온종일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기도하고 크게 부르짖으리니 그분께서 내 음성을 들으시리로다(시55:17).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주께서는 자신을 부르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자신을 부르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계시는도다(시145:18). 신약성경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누구에게 기도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카톨릭 주의는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다시금 여러분은 어째서 카톨릭 교회의 교리 문답서가 예수님을 격하시키고 마리아를 격상시키는지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카톨릭 교회는 신자들이 무엇을 구하기 위해 예수님께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초대장을 쓰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마11:28). 성경이 틀렸거나 아니면 여러분이 필요로 할 때 여러분을 기꺼이 만나 줄 준비가 되어 있는 분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카톨릭 주의가 막고 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결    론 이제 당신은 또 하나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합니다. 당신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카톨릭 전통을 따라 마리아에게 기도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거룩한 성경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겠습니까? 나로 말하건대 나는 하나님을 부르리니 주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시55:16).
2009-07-03 14:05:40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마리아 : 또 다른 중재자 많은 신실한 카톨릭 교인들은 마리아가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신자들을 위해서 중재하는 중보자라고 믿으면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열렬히 기도합니다. 그때문에 교회에서는 복된 동정녀를 변호자, 보조자, 협조자, 중재자라는 명칭으로 부른다(교회헌장 62항)[제1편 p.367-368 #969]. 위의 헌장에는 마리아에게 부여된 네 개의 특별한 칭호가 있습니다. 과연 그녀는 그런 칭호들을 모두 성취했을까요? 하나씩 살펴보기로 합시다. 변호자 마리아가 하나님 앞에서 신자들의 변호자라는 믿음은 성경이 지지하지 않는 전통 즉 인간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전통에 불과합니다. 더욱이 성경은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님의 유일한 변호자라고 선언함으로써 카톨릭 교리를 일축해 버립니다.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범죄하여도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계신 변호자가 계시니 곧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2:1). 보조자 다신 한번 성경은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님 홀로 초자연적인 협조자라고 선언함으로써 카톨릭 주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요, 주는 내 혼을 붙들어 주는 자들과 함께하시는 이시로다(시54:4).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분이시니 사람이 내게 무엇을 행하든지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하노라(히13:6). 의로운 자는 고난이 많을지라도 주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그를 건지시는도다(시34:19). 협조자 여기 또 하나의 사람들의 전통이 있습니다. 성경은 마리아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쌓아 둔 은혜를 나누어줄 수 있는 협조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중재자 성경은 결코 마리아를 신자와 하나님 사이의 중재자로 끌어올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예수님을 유일한 중재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기 때문이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딤전2:5). 이런 까닭에 그분께서는 새 상속 언약의 중재자이시니 이것은 죽음을 통하여 첫 상속 언약 아래 있던 범죄들을 대속하시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 하여금 영원한 상속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9:15). 참된 중재자 중보자나 변호자의 역할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재하는 것입니다. 카톨릭 주의의 전통은 이 지위를 마리아에게 부여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중재자로 드높이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는 손으로 만든 거룩한 처소들 곧 참된 것의 모형들 안으로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늘 그 자체 안으로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눈앞에 나타나시기 때문이라(히9:24).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나니 그 까닭은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시기 때문이라(히7:25). 성경은 참된 중재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더없이 분명합니다. 죽으신 분은 그리스도시요, 참으로 다시 일어나신 분도 그리스도시니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또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느니라(롬8:34).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니라(롬8:27). 성경은 아버지께 다다르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아가야 한다고 밝히 말씀합니다. 이는 그분을 통하여 우리 둘이 한 성령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감을 얻게 되었음이라(엡2:18).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작정하신 영원한 목적에 따른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담대함을 가지고 확신 있게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엡3:11-12). 사실 마리아는 성경 어디서도 중재자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반복되는 예수님의 위상 격하 성경은 절대적으로 명확합니다. 예수님께서만 유일한 변호자시요, 돕는 분이시요, 중보자이시며 중재자이십니다. 그런데도 카톨릭 교회의 전통은 이러한 네 개의 칭호를 그분으로부터 강탈해서 마리아의 무릎에 갖다 바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째서 그들은 매번 예수님을 끌어내리려 하는 걸까요? 어째서 카톨릭 주의는 성경이 예수님께 부여한 모든 지위를 그분으로부터 빼앗아서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어떤 것에게 바치는 것일까요? 과연 마리아가 그렇게 고귀하다면 어째서 사도 바울 같은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이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을까요?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음이라(고전2:2). 결    론 이제 여러분은 성경과 카톨릭 전통의 입장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영광을 마리아에게 돌리시겠습니까, 아니면 사람들의 전통을 거부하고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께 돌리시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그분께서 더욱 뛰어난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또한 그분께서 더 나은 약속들 위에 세우신 더 나은 언약의 중재자이시기 때문이라(히8:6).
2009-07-03 14:02:17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마리아 : 성덕의 근원 교리 문답서는 동정녀 마리아가 성덕 즉 거룩함의 본보기요 근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에서 성덕(holiness)의 모범을 배우며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 마리아 안에서 성덕의 본보기와 근원을 알아보고[제1편 p.706 #2030]. 우리가 또 하나의 모순점에 봉착했다고 해도 이제 독자께서는 이제 과히 놀라지 않으실 것입니다. 앞 장에서 논의한 대로 성경은 마리아 역시 구원자를 필요로 하는 한 사람의 죄인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녀가 하나님의 아드님을 낳는 축복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이 그녀를 거룩함의 근원으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마리아는 스스로에 대해 언급하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내 영이 하나님 곧 내 구원자를 기뻐하였나니 이는 그분께서 자신의 여종의 낮은 처지를 돌아보셨음이라(눅1:47-48). 성경이 말씀하는 거룩함(성덕)의 근원 성경은 반복적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거룩함의 모범이 되심을 단언합니다. 오 주여, 누가 주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이는 오직 주만 거룩하시기 때문이니이다. 주의 심판들이 드러났사오매 모든 민족들이 나아와 주 앞에 경배하리이다, 하더라(계15:4). 너희는 주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의 발받침 앞에서 경배할지니 이는 그분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이로다(시99:5). 그들로 하여금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양하게 하소서. 이는 그 이름이 거룩하기 때문이니이다(시99:3). 너희는 주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의 거룩한 산에서 경배할지니 이는 주 우리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이로다(시99:9). 그들이 서로 크게 외쳐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사6:3). 성경에서 거룩 또는 거룩함이라는 단어는 600번 이상 사용되었지만 그것이 마리아를 의미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거룩한 것처럼 우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리아가 거룩한 것처럼 우리도 거룩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같이 너희도 온갖 행실에서 거룩할지니 이는 기록된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음이니라(벧전1:15-16). 이는 내가 주 너희 하나님이기 때문이라. 그런즉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너희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레11:44). 로마 카톨릭 교회에 속해 있는 여러분, 여기에서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이 따라야 할 거룩함의 본보기와 근원으로서 우주를 다스리시는 영원하신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라고 반복적으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카톨릭 주의는 “아니야, 하나님을 바라보지 말고 여기 덧없는 인간에 불과한 한 여인을 의지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맞섭니다. 이것은 지독한 신성 모독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 카톨릭 교회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당연히 계셔야 할 권좌에서 그분을 몰아내고는 그 자리에 마리아를 앉히려고 할까요? 왜 카톨릭 주의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 대신에 마리아를 거룩함의 모범으로 삼기를 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광과 존귀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게다가 그분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서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우리를 상기시켜 주십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곧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리니 어찌 내 이름을 더럽히리요?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8:11). 결     론 누가 당신의 거룩함의 본보기가 되어야 할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죄 있는 한 여인입니까? 카톨릭 주의는 여러분이 그 여자를 바라볼 것을 요구합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거룩함의 모범이 될 자격이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이는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음이요, 또 모든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음이니이다, 하더라(계4:11). 나는 주 곧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사43:15).
2009-07-03 13:59:00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마리아: 평생 동정녀 교리 문답서는 마리아가 평생 동안 처녀로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과연 사실인가 확인해 봅시다. 마리아는 동정으로 당신의 아드님을 잉태하고, 동정으로 그분을 낳고, 동정으로 그분을 길렀으며, 동정으로 당신의 젖을 먹였고 항상 동정이었다(성 아우구스띠노 설교집 186,1.)[제1편 p.191 #510]. 교회 전례는 마리아를 ‘평생 동정녀’로 찬미한다(교회헌장 52항)[제1편 p.188 #499]. 마리아가 평생 동안 처녀로 지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에 대해 여러분이 취하게 될 입장은 여러분이 어느 것을 믿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의 전통과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말입니다. 성경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 후에도 다른 자녀들을 낳았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 그의 동생들은 야고보와 요세와 시몬과 유다라 하지 아니하냐? 그의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데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났느냐? 하고(마13:55). 이는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세와 유다와 시몬의 형이 아니냐? 그의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그분으로 인하여 실족하니라(막6:3). 바울 사도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는 다른 사도들을 보지 아니하였노라(갈1:19). 이 구절들이 카톨릭 교리에 너무나 명백하게 모순이 되기 때문에 교리 문답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종종 성서가 예수님의 형제 자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이를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는 항상 이 대목들이 동정녀 마리아의 다른 자녀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이해해 왔다. 사실 ‘예수의 형제들’(마13:55) 야고보와 요세는 ‘다른 마리아’(마28:1)라고 명시된 예수님의 제자 마리아의 아들들이다[제1편 p.188 #500]. 다른 마리아라고요? 왜 성경 기록을 왜곡합니까? 이 구절들은 정확하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카톨릭 교회는 의도적으로 신자들을 속이고 있는 걸까요? 이러한 교리는 마리아가 남편 요셉과의 정상적인 부부 관계를 초월한 신성한 존재라는 것을 퍼뜨리기 위한 것이 아닌가요? 또한 이 교리는 마리아가 독신 생활을 하는 지금의 신부들 및 수녀들과 비슷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것은 아닌가요? 스스로 이 질문에 대답하셔야 합니다. 이교도들의 풍습 도대체 무슨 이유로 카톨릭 교회는 마리아를 이처럼 ‘영원한 처녀’의 상태로 끌어올리려는 것일까요? 이 책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로마 카톨릭 주의의 마리아와 구약 시대에 숭배되던 이교도의 여신들 사이에는 놀랄 만한 유사점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종교가 숭배하는 마리아가 성경에 나오는 마리아보다는 이교도들의 여신과 한층 더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모든 카톨릭 신자들이 크게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렘44:17-19). 결    론 마리아는 신비하게 ‘평생토록 처녀’였을까요? 이 문제 역시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사람들의 전통을 취하시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된 그대로 믿으시든지 말입니다. 주의 말씀은 처음부터 진실하시오니 주의 의로우신 모든 판단은 영원히 지속되리이다(시119:160).
2009-07-03 13:55:33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마리아 : 무염시태 카톨릭 주의는 마리아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구원받았고 전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단언합니다(무염시태 교리).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일생 동안 어떠한 죄도 범하지 않았다[제1편 p.185 #493]. 마리아는 전혀 죄에 물들지 않고 온전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받아들였으며 아드님의 인격과 사업에 당신 자신을 주의 종으로 온전히 바쳤다[제1편 p.185 #494]. ‘은총이 가득한’ 그 이(마리아)는 ‘구속의 가장 빼어난 열매’(전례헌장 103항)이다. 그 이는 잉태되는 순간부터 원죄에서 완전하게 보호되고 일생 동안 죄에 물들지 않았다[제1편 p.190 #508][#722 참조]. 여러분께서는 혹시 이 교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있지 않을까 하고 한 가닥 희망을 가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성경에 없습니다. 교리 문답서는 그것이 또 하나의 카톨릭 교회의 전통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역사 안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마리아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구속된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제1편 p.184 #491].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님이 죄 없는 분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성경은 예수님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다 죄가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사람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 다 길에서 벗어나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롬3:10-12). 잘 보십시오. 이 구절 중 어느 한 구절도 “모두가 죄를 지었다. 마리아만 빼고.”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두었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하심이라(갈3:22). 마리아도 자신이 구원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마리아 스스로 자기가 죄인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는 결코 자기에게 구원자가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내 혼이 주를 드높이고 내 영이 하나님 곧 내 구원자를 기뻐하였나니(눅1:46-47). 하지만 여전히 카톨릭 교회는 자기 회원들로 하여금 마리아를 숭배하도록 요구합니다. 복된 동정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신심은 그리스도교 예배의 본질적 요소다(마리아 공경 56항)[제1편 p.368 #971].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고귀하게 높이셨나요? 어느 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분을 뵙기를 청했을 때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자기에게 말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냐? 누가 내 형제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자기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을 보라! 이는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 곧 그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기 때문이라, 하시더라(마12:48-50). 예수님께서는 어서 이 축복 받은 여인을 모셔들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분께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마리아와 다름없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마리아를 특별히 받들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마리아를 떠받들려 할 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나요? 한 여자가 예수님께 와서 마리아를 칭송하려 했을 때 주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셨는지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것들을 말씀하실 때에 무리 중의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이 빤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거늘 그분께서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눅11:27-28).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이들이 자신의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보다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훗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는 교회의 전통을 따르려는 자들이 있을 것을 미리 아시고 이 구절들을 성경 기록에 넣어 두셨나 봅니다. 반복되는 현상 이 책 전체를 통해서 우리는 똑같이 반복되는 어떤 현상을 접하게 되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홀로 받기에 합당하신 영광과 존귀를 누군가가 자꾸 강탈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카톨릭 주의는 예수님을 죄 없는 유일한 분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고 성경 말씀을 일축하고는 마리아 역시 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결    론 과연 마리아는 태어날 때부터 죄가 없었습니까? 카톨릭 전통은 여러분이 그렇게 믿어 주기를 바라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를 믿으시겠습니까? 이는 선을 행하고 범죄하지 않는 의인이 땅 위에 하나도 없기 때문이로다(전7:20).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롬5:12).  
2009-07-03 13:52:48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마리아 : 또 다른 구원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인류의 구원에 어떤 역할을 할까요? 교리 문답서의 대답을 들어 봅시다. (마리아는) 하늘에 올림을 받은 후에도 이 구원의 역할을 그치지 않고 계속하여 여러 가지 전구로써 영원한 구원을 위한 은혜를 우리에게 얻어 준다[제1편 p. 367 #969]. 성 이레네오의 말씀대로 동정녀 마리아는 순명함으로써 자신과 인류 전체를 위한 구원의 원인이 되신 것이다[제1편 p.185 #494]. 마리아는 순명과 믿음과 희망과 불타는 사랑으로써 영혼들의 초자연적인 생명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구세주의 구세 사업에 비길 데 없는 협력을 해 드렸다. 이 때문에 은총의 세계에서 우리의 어머니가 되었다[제1편 p.367 #968]. 과연 이 교리가 성경적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마리아는 인류의 구원 사역의 전 과정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 기록은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 사람들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기 때문이니라, 하였더라(행4:12). 예수님께서는 직접 자신만이 천국으로 이르는 길이심을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내가 곧 문이니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 들어가고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10:9). 그러나 교리 문답서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아들의 구세 사업과 끊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는 하느님의 모친 복되신 마리아를…[제2편 p.442 #1172]. 여러분은 성경과 교회의 전통 중에서 어떤 것을 믿을지 다시 한 번 결정하셔야 합니다. 성경은 이 점에 대해 단 한 점의 혼동도 없이 분명합니다. 나 곧 나는 주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사43:11). 그러나 나는 이집트 땅에서부터 주 네 하나님이니라.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알지 말지니 이는 나 외에 구원자가 없기 때문이니라(호13:4). 내가 신뢰하는 나의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주께서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삼하22:3).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전에 한 천사가 그분께서 구원자가 되실 것을 전했습니다.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임이라, 하니라(마1:21).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천사가 그것을 반복했습니다. 이 날 다윗의 도시에 너희를 위하여 구원자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2:11).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우리는 예수님만이 구원자이신 것을 읽게 됩니다. 그들이 그 여자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 때문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 그리스도이신 줄 알기 때문이라, 하였더라(요4:4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들의 용서를 주시려고 자신의 오른손으로 그분을 높이사 통치자와 구원자가 되게 하셨느니라(행5:31).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에게 구원자를 일으키셨으니 곧 예수님이시라(행13:23). 이제는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드러났으니 그분께서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을 통하여 생명과 죽지 아니함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딤후1:10). 공통된 믿음을 따라 나의 친아들 된 디도에게 내가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곧 우리의 구원자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을지어다(딛1:4). 또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 주셨으니(딛3:6).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노니(요일4:14). 카톨릭 주의가 첫번째 교황으로 인정한 베드로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우리와 더불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얻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벧후1:1). 또 이같이 하면 주께서 우리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존하는 왕국에 들어감을 너희에게 풍성히 베푸실 것임이라(벧후1:11). 만일 그들이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통하여 세상의 오염에서 벗어난 뒤에 다시 그 안에 말려들어 지게 되면 그들의 나중 결과가 처음보다 더 나쁘리니(벧후2:20). 명백히 베드로는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구원자이신 것을 알았으며 그래서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님을 구원자로 찬양했습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토록 그분께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벧후3: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구속 받은 것은 금이나 은같이 썩을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1:18-19) 의심의 여지없이 예수님께서 구원자이십니다. 마리아가 아닙니다. 결    론 이번 주제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로 인해 또 다시 대답을 요하는 몇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왜 카톨릭 교회는 사람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 예수님 대신에 마리아에게 의지하기를 원하는 것일까요? ∙어째서 카톨릭 교회는 예수님께로부터 그분의 영광을 훔쳐서는 마리아에게 주는 것일까요? ∙마리아가 구원에 한 몫을 한다면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기록된 말씀 가운데서 그렇다고 일러 주시지 않았을까요?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당신은 당신의 구원을 누구에게 위탁하시겠습니까? 카톨릭 교회의 전통이 가르치는 마리아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예수님입니까? 이는 우리의 생활권이 하늘이기 때문이라. 우리가 또한 거기로부터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3:20).
2009-07-03 13:48:36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죽은 자들에게도 유익한 성체성사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것은 아직 살아 있는 카톨릭 신자들이 죽은 자들을 도와 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성찬례의 제사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지만 아직 완전히 정화되지는 못한’(트리엔트 공의회) 죽은 신자들을 위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빛과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바치는 것이기도 하다[제2편 p.504 #1371]. 성찬례는 그리스도인의 죽음이 지닌 파스카적 의미의 핵심이 된다. 이때 교회는 죽은 이와 이루는 효과적인 통공을 표현한다[제2편 P.608 #1689]. 참으로 구미가 당기는 이 교리는 카톨릭 신자들이 규칙적으로 성체성사에 참석하게 되면 이미 고인이 된 사랑하는 그들의 가족이나 이웃이 보다 빨리 천국으로 옮겨진다는 믿음을 심어 줍니다. 만일 이러한 교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여러분은 그것에 순종해야 하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사람들을 교회에 묶어 두기 위해 사람이 고안한 전통이라면 그것은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한 잔인하고도 무자비한 방법인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이것에 대해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살펴봅시다. 어떠한 근거도 없는 교리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리 샅샅이 살펴봐도 성체성사 즉 미사가 죽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내용은 단 한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어느 누구도 이미 고인이 된 자기의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성체성사를 드렸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이미 짐작하신 대로 이러한 카톨릭 주의의 전통은 하나님의 말씀에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놓고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 각 사람이 언젠가는 자신의 삶에 관해서 하나님 앞에서 진술하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자신에 관하여 하나님께 회계 보고를 하리라(롬14:12).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선하신 사역 곧 ‘그분의 선행’으로 말미암아 천국에 들어갑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이지 결코 우리의 의나 친구들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하는 의의 도움으로 얻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죽음 그 다음은 심판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죽은 후에 심판 받기 위해 하나님을 대면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살아 있더라도 이미 지옥형을 선고받은 것입니다. 그를 믿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아니하거니와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요3:18). 하나님의 진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죽은 사람들 위에 임합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으며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성경은 누군가가 이미 고인이 된 자기의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성체성사를 드렸다고 해서 하나님의 진노가 누그러지지 않음을 밝히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정죄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또 그는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요5:24). 결    론 자 또 다시 여러분의 답변을 요하는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한 카톨릭 교회의 전통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그토록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는 것일까요? ∙어째서 카톨릭 교회는 자기 회원들이 죽은 자들을 위한 종교 의식을 수행하기 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그 같은 행습을 쓸데없는 짓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도 말입니다. ∙이러한 교리는 사람들을 카톨릭 교회에 계속해서 붙들어 두려는 또 하나의 수단이 아닌가요?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조심하라. 이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을 따르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골2:8).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  
2009-07-03 13:27:47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죄로부터 보호해 주는 성체성사 과연 성체(聖體)성사에 참여하는 것이 카톨릭 교인들을 과거의 죄로부터 깨끗하게 해 주고 미래의 죄로부터 보호해 주는 능력을 부여할까요? 그러므로 성체성사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키는 동시에 우리가 전에 지은 죄를 정화하고 앞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준다[제2편 p.513 #1393]. 성체성사는 우리 안에서 불러일으키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미래의 죽을 죄(死罪)에서 보호한다(제2편 p.514 #1395]. 다시 한번 하나님의 말씀과 카톨릭 전통은 크게 어긋납니다. 과거의 죄를 깨끗하게 하는 것에 대해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모든 죄가 씻겨 없어졌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걸으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1:7).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자들 중에서 처음 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로부터 우리를 씻으시고(계1:5). 예수님 한 분만이 사람들의 죄를 깨끗하게 하시기에 합당하심에도 불구하고, 교리 문답서는 그리스도로부터 그러한 자격을 빼앗아서 제병(祭餅)이라고 불리는 성체 즉 얇은 과자로 하여금 그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왜 자꾸 그들은 예수님을 끌어내리려는 것입니까? 전에는 너희 가운데 이 같은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이제는 너희가 우리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김을 받고 거룩히 구별되어 의롭게 되었느니라(고전6:11). 앞으로 지을 죄로부터의 보호? 빵 조각을 먹는 것이 누군가를 앞으로 짓게 될 죄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라는 카톨릭 주의의 주장에 대한 성경적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이러한 교리가 갖고 있는 단 한 가지 실제적인 기능은, 회원들로 하여금 성체성사가 자신들을 죄로부터 보호해 주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성체를 받기 위해 카톨릭 교회로 되돌아오도록 하는 것뿐입니다. 사실 사람들을 교회의 굴레에 붙들어놓는 것 외에는 이 같은 성사가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러한 행습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뒷받침해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카톨릭 주의는 그것이 참으로 여러분을 죄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다고 부추기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 속에 숨겼나이다(시119:11). 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할 따름이니이다(시119:9).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죄로부터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성경을 읽고 암기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것을 권하십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카톨릭 지도자들은 여러분이 도움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기보다는 교회에서 무엇인가를 기대하도록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주께서 너를 보존하사 모든 악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혼을 보존하시리로다(시121:7) 주는 나의 은신처시오니 고난에서 나를 보존하시고 구원의 노래들로 나를 에워싸시리이다. 셀라(시32:7).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또 자신의 하늘 왕국에 이르기까지 보존하시리니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딤후4:18). 결    론 여러분을 과거의 죄로부터 깨끗하게 하고 미래의 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카톨릭 주의는 여러분이 빵 조각에 기대를 걸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같은 사람들의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이해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카톨릭 교리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룩한 성경말씀을 거부해야만 합니다. 어떻습니까? 과연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이제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넘어지지 아니하게 하시고 너희로 하여금 자신의 영광이 있는 곳 앞에 흠 없이 넘치는 기쁨으로 서게 하시는 분 곧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 구원자께 영광과 존엄과 통치와 권능이 이제와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유24-25).  
2009-07-03 13:25:01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