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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가볼리의 주요 도시. 이곳은 예수님 당시에 상당히 중요한 도시였으며 그리스 사람이 여기에 많이 거하였다. 가다라 사람들의 지역은 요르단 강과 갈릴리 바다(호수)까지였으며 마8:28; 9:1; 막5:1-20; 눅8:26-39에 기록된 기적은 호수 주변의 경계에서 일어났다. 군대 마귀들은 마귀 들린 두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 그것들을 숨 막혀 죽게 했다. 게르게스 사람들 참조.   
2009-04-22 01:47:02 | 관리자
  하나님은 신구약시대에 가난한 자를 배려하라고 지시하였으며(시12:5; 41:1-3; 출23:6; 잠14:31) 특히 복음 시대에는 이것이 더 강조되었다(마25:42-45; 약2:5). 그래서 하나님은 가난한 자가 조금 드린 헌물을 부자가 많이 드린 것과 동일하게 받으셨다(레5:7-13; 막12:41-44). 또한 유대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밭의 곡식과 올리브와 포도 등을 일부 남겨 두어야만 했다(레19:9; 신24:19; 룻2:2). 또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에 저절로 자란 것은 모두가 거저 가질 수 있었고(레25:7) 희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갔던 가난한 자들의 상속물이 다시 그들에게로 돌아왔다(레25:1-55; 신24:1-22). 그래서 구약시대의 대언자들은 그들을 무시하고 학대하는 것을 크게 책망하였다(사10:2; 렘5:28; 암2:6).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큰 미덕이었다(마6:2-4; 눅10:33-35; 19:8; 행9:36-39; 10:2; 11:29-30).  
2009-04-22 01:46:26 | 관리자
가나안의 후손들. 그들은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 급속하게 불어났으며 무역과 전쟁을 통해 많은 재물을 불리고 지중해 연안 지역과 여러 섬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들이 우상숭배와 가증한 행위로 그 땅을 영적으로 극도로 황폐하게 만들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곳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넘겨주셨고 여호수아가 궁극적으로 그곳을 정복했다. 주요 가나안 족속은 다음과 같다. 가나안 족속들 지도 참조(16).   I. 히위 족속은 가나안 땅의 북쪽 헤르몬 산 기슭에 살았으며(수11:3)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을 당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완전히 그들의 소유지에서 쫓아내지 못했다(삿3:3; 삼하24:7; 왕상9:20). 또한 팔레스타인 중부에도 히위 족속이 있었다(창34:2; 수9:1, 7; 11:19).   II. 제한적 의미의 가나안 족속은 지중해 연안의 평야에 거주했다(민13:29; 수11:3).   III. 기르가스 족속은 가나안 족속과 여부스 족속 사이에 거했으며 이것은 그들이 언급될 때의 순서에 의해서도 알 수 있다(수24:11).   IV. 여부스 족속은 예루살렘과 그 근처의 언덕 지역을 소유했으며 사실 예루살렘의 이전 이름은 여부스였다(수15:8, 63; 18:28). 이곳을 배정받은 베냐민 사람들은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않았고(삿1:21) 오랜 시간 뒤에 다윗이 처음으로 여부스의 성채를 빼앗았다(삼하5:6).   V. 아모리 족속은 아브라함의 시대에 사해의 서쪽 예루살렘 남쪽 지역에 거주했고(창14:7) 그 후에는 가나안 땅의 동남부를 형성한 산지의 여러 지역에 퍼져 살았다. 그래서 그 지역은 ‘아모리 족속의 산’ 그리고 후에는 ‘유대의 산’ 등으로 불리게 되었다(민13:29; 신1:19-20; 수11:3). 그들은 또한 모세 이전에 요르단 동쪽으로 북쪽의 바산 왕국과 처음에 얍복 강을 경계로 둔 다른 왕국을 남쪽에 건설했다. 그 뒤 그들은 시혼의 통치 하에서 얍복 강을 건너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으로부터 얍복과 아르논 사이의 지역을 빼앗았고 그 결과 아르논 강이 아모리 족속의 남쪽 경계가 되었다(민21:13-26; 32:33, 39; 신4:46-47; 31:4).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후에 시혼과 싸워 이겨서 이곳을 그에게서 빼앗았다. 아모리 족속 참조.   VI. 헷 족속은 정탐꾼들의 보고에 의하면 헷의 후손들로서(민13:29) 남부의 산간 지역(후대에는 유다의 산으로 불림)에서 아모리 족속들 사이에 살았다. 아브라함 당시에 그들은 헤브론을 차지했고 그는 그들로부터 막벨라의 굴을 사서 돌무덤을 만들었다(창23:1-20; 25:9-10).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에 그들은 북쪽으로 이동했으며 벧엘 근처의 지역은 ‘헷 족속의 땅’으로 불렸다(삿1:26). 헷 족속 참조.   VII. 브리스 족속은 가나안의 여러 지역에서 살았는데 이 이름은 평야의 거주민들을 뜻한다. 창13:7에 따르면 그들은 가나안 족속과 함께 벧엘과 아이 사이에 살았고 창34:30에 따르면 그들은 세겜 근처에서도 살았다. 브리스 족속 참조.   이 족속들 외에도 가나안 북부에는 기원이 같은 다른 족속들 즉 알가 족속, 아르왓 족속, 하맛 족속, 스말 족속 등이 살았다(창10:15-20). 또 가나안 땅에는 기원이 다른 여러 족속이 있었으나 이들은 나중에 이스라엘에 의해 파멸되었으며 여기에는 아낙 족속, 아말렉 족속, 르바 족속 등이 포함된다.  
2009-04-22 01:45:33 | 관리자
  가나안 사람의 부인이나 가나안 족속 여인(대상2:3; 마15:22). 시므온과 가나안 여인 사이에 사울이 태어나고(창46:10; 출6:15) 유다와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 사이에 엘, 오난, 셀라가 태어났으며(대상2:3)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인 창녀 라합 역시 가나안 여인이었다. 이것을 통해 이스라엘 여러 지파에는 가나안 사람의 피가 섞였음을 알 수 있다. 신약시대에도 가나안 족속이 있었으며 예수님은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그녀의 소원을 들어 주셨다(마15:22). 수로보니게, 페니키아 참조.
2009-04-22 01:44:51 | 관리자
  여러 사람들이 가나안 정복과 이스라엘 백성이 그곳의 거주민들을 멸절시킨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많은 이유를 제시한다:   (1) 이 땅이 홍수 후에 셈과 그의 아들들에게 배정되었으나 함의 아들들이 그것을 빼앗았다.   (2) 그곳의 거주민들이 유대인들을 먼저 공격했다.   (3) 아브라함이 그들보다 먼저 그곳을 소유했다.   (4) 가나안 족속들은 이집트 사람들과 거의 같은 부류로서 히브리 사람들을 압제했다. 이런 이유들이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합당한 근거는 될 수 있지만 성경이 말하는 참된 이유는 아니다. 유대인들이 가나안을 정복한 이유는 주님의 특별 명령 때문이었다. 성경은 이 민족들의 사악함이 곧 그들의 형벌의 원인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쳤다(창15:16; 레18:24-30; 20:22-24). 사실 하나님은 오랫동안 그들의 사악함을 참으셨으며 이것은 그들을 향한 또 우상숭배를 하고 각종 악한 죄를 짓는 인류에 대한 경고였다. 유대인들은 바로 이런 죄들을 미워하고 종결시켜야만 했고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를 수행하는 자들로 일했으며 결코 자기들의 이득을 위해 혹은 자기들의 만족을 위해 이 일을 하지 않았다. 가나안 정복의 이야기는 다음에 나와 있다(민1-4; 수1-24; 삿1:1-36). 가나안 정복 지도 참조(17).   가나안 족속들은 모두 멸망되지 않았고 살아남은 자들 중 일부는 다른 땅으로 도망갔으며 일부는 유대 땅에 남아 이스라엘의 치리를 받았지만 결국 그들의 발의 올무와 옆구리의 가시가 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곳을 떠나야 한다고 분명히 통고해 주셨지만 그들이 그것을 거부했으므로 그 결과는 그들이 감당할 몫이 되고 말았다.    
2009-04-22 01:43:32 | 관리자
   I. 함의 아들, 노아의 손자(창9:18). 그의 후손들은 시돈을 점령하고 시리아와 가나안에 퍼졌다(창10:15-19; 대상1:13-16). 유대인들은 그가 노아의 수치스런 사건에 그의 아버지와 함께 연루된 것으로 믿으며(창9:20-27) 이 일로 인해 그와 그의 후손들은 영원히 저주를 받았다(수9:23, 27; 대하8:7-8).   II. 가나안과 그의 후손들이 살았던 땅. 이곳은 후에 히브리 사람들에게 주어졌는데 이 지역은 거기 사는 사람들이나 주변 환경 등에 의해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1) ‘가나안 땅’은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서 유래되었는데 그는 이 땅을 자기 아들들에게 주었고 그들은 여러 부족의 조상이 되어 결국 다른 민족과 구분되는 특징을 가진 백성이 되었다(창10:15-20; 11:31). 처음에는 요르단 동부의 땅이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2) ‘약속의 땅’(히11:9)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 땅을 차지하리라는 약속에 근거한 이름이다(창12:7; 13:15). (3) ‘이스라엘 땅’은 여기에 정착한 이스라엘 사람들 즉 야곱의 후손에서 나온 말로서 구약성경에 자주 나온다. 이것은 요르단 동부와 서부의 모든 지역 즉 하나님께서 히브리 사람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한 모든 땅을 말하지만 후에는 이스라엘 열 지파의 땅을 가리키는 것으로 의미가 축소되기도 했다(겔27:17). (4) ‘유다의 땅’은 원래 유다 지파에게 배분된 땅만을 의미했으며 솔로몬의 왕국이 분열되며 열 지파가 떨어져 나간 뒤에는 유다와 베냐민에게 속한 땅 즉 유대라 불리는 땅만을 의미했다. 유대 땅은 두 번째 성전이 서고 로마 사람들이 통치하던 때까지 그렇게 불렸다. (5) ‘거룩한 땅’(성지)은 바빌론 포로 생활 이후에 유대인들이 새롭게 부른 이름이다(슥2:12). (6) ‘팔레스타인’은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나온 이름인데(출15:14) 그들은 가슬루힘에게서 나와서(창10:14)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곳의 거주민들을 축출하고 지중해 연안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이 그 지역의 일부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름이 결국 그 지역의 이름이 되고 말았다.   가나안의 서쪽 경계는 지중해이고 북쪽은 레바논 산과 시리아, 남쪽은 에돔과 신과 바란 광야, 동쪽은 아라비아 데제르타(사막)이다. 이 땅의 남북 최장 길이는 300킬로미터, 동서의 평균 너비는 100킬로미터이다. 다윗 시대에는 주변의 여러 지역이 조공을 바치면서 가나안 땅에 부속되었는데 여기에는 동쪽으로 아라비아 데제르타와 북쪽으로 유프라테스에 있는 딥사와 시리아 전 지역, 남쪽으로 에돔과 에시온게벨의 홍해까지 포함되었다.   가나안 땅은 여러 번 분배되었다. 여호수아는 열두 지파에게 이곳을 고루 분배하였는데 르호보암 때에는 이곳이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로 나뉘었고 그 뒤에 이곳은 바빌론, 그리스, 시리아, 로마 사람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주 예수님 시대에 이곳은 로마의 지배를 받아 다섯 지방으로 나뉘었다: 갈릴리, 사마리아, 유대, 페레아, 이두매아. 이 중에서 페레아는 또 다시 일곱 개의 소지역으로 나뉘었다: 아빌레네, 드라고닛(드라고니티스), 이두래, 가울라니티스, 바타네아, 페레아, 데가볼리. 신약시대의 땅 지도 참조(39).   가나안 땅에는 산과 평야와 강과 골짜기가 많다. 주요 산으로는 레바논, 갈멜, 다볼, 길르앗, 헤르몬, 올리브 산 등을 들 수 있다. 팔레스타인의 산들 지도 참조(53). 지중해(대해)와 여리고 평야에서는 여러 가지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다. 주요 강으로는 요르단, 아르논, 시홀, 얍복, 기손 강을 들 수 있고 호수로는 디베랴 혹은 갈릴리, 메롬 호수 등을 들 수 있다.   이곳의 북쪽에는 레바논 산과 헤르몬 산지가 있으며 거기의 봉우리 중에는 높이가 3,000미터가 넘는 곳도 있다. 헤르몬 산 밑에는 요르단으로 들어가는 여러 지류가 있으며 요르단 강은 메롬 호수와 갈릴리 바다를 지나면서 마지막으로 사해로 들어간다. 요르단의 계곡은 매우 깊고 발원지로부터 사해까지 가면서 600미터나 아래로 떨어진다. 요르단과 지중해 사이의 지역은 고원을 형성하며 여기에는 언덕과 골짜기가 많고 이 사이로 강이 흐른다. 갈릴리의 고원은 지중해로부터 약 300미터 정도 위에 있다. 갈릴리의 아래에는 갈멜 산에서 다볼과 길보아 그리고 요르단까지 이르는 아름다운 평야가 있으며 이 평야의 끝에서 남쪽으로 가면서 다시 땅이 높아져서 그리심 산은 해발 700미터, 예루살렘은 720미터, 헤브론은 780미터나 된다. 지중해 해안의 갈멜 산 밑에는 비옥한 평야가 있으며 이것은 아래로 가면서 넓어져서 바란 광야로 이어진다. 요르단 너머의 지역은 산지이며 비옥하고 좋은 초장이 있고 이곳을 더 넘어서면 아라비아 데제르타(사막)의 황폐한 고원이 있다. 팔레스타인 땅의 동서남북 단면도 선도 참조(49).   가나안의 토양은 아주 좋은 편으로 햇볕은 그리 뜨겁지 않고 기후는 온화한 편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연간 평균 강수량과 온도 선도 참조(50). 팔레스타인에서는 우리가 일 년의 사계절에 경험하는 햇볕과 비와 구름 등을 비가 오는 겨울에만 볼 수 있다. 10월 말에 비가 내리고 곧바로 밀과 보리를 심으며 그 뒤 12월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그 후에는 가끔씩 내리면서 4월 말까지 이어진다. 겨울은 그리 춥지 않으며 땅도 얼지 않는다. 눈도 가끔 30센티미터 이상 내리기도 하지만 겨울에는 특히 우박이 많이 내린다. 보리는 보통 밀보다 2주 정도 먼저 수확하고 곡물 수확은 4월부터 6월에 걸쳐 이루어지며 그 이후에는 날씨가 건조하고 뜨거우며 그래서 모든 사람이 비가 내리는 계절을 바라게 된다. 유대인들의 달력 선도 참조(67).   과거의 가나안의 토양은 아주 기름져서 생산성이 높았다. 또한 지역마다 땅의 고도가 많이 변하고 기후의 변화도 다양해서 사람들은 포도, 올리브, 무화과 등을 재배하고 언덕에서는 소와 양들을 기르며 골짜기 평야에서는 곡식을 재배했다. 그곳은 성경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모세가 기록한 말씀(신8:7-9)과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역사를 통한 기록은 현재의 황폐함과는 대조를 이룬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불순종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 지역에서의 오랜 전쟁과 파괴 등이 땅을 망가뜨려 놓았고 그래서 고급 곡물과 포도, 올리브, 무화과 등으로 덮여 있던 아름다운 언덕들은 현재 황폐한 바위덩이로 변하고 말았다. 한때 저수지에 보관되어 여러 곳에 물을 대던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대부분 바다로 그냥 흘러들어가고 있다. 또한 나무가 없는 산들은 강렬한 태양 아래 그대로 놓여 있다. 그러나 땅을 잘 가꾼 곳에서는 지금도 3미터가 넘는 옥수수가 자라고 에스골 골짜기의 포도같이 큰 포도가 자라고 있다.  
2009-04-22 01:41:59 | 관리자
I.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간 대언자. 갈대아 사람들은 그를 벨드사살이라 불렀는데 그는 다윗의 왕가에 속한 사람으로 주전 606년경 여호야김의 통치 제4년에 젊었을 때에 바빌론으로 갔다. 그는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와 함께 선택을 받아 느부갓네살의 뜰에 거하며 교육을 받고 갈대아 사람들의 과학을 이해하게 되었으나 왕의 상에서 나오는 음식물을 먹음으로 자신을 오염시키는 것을 거부했다. 그 이유는 그런 음식들이 유대인들에게 의식적인 면에서 부정했고 또 우상숭배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3년간 교육을 받은 뒤 다니엘과 그의 동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되어 왕의 일을 할 수 있는 높은 지위를 갖게 되었고 이때에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의 신상의 꿈을 해석하여 대언자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바빌론의 총독이 되며 학자들과 제사장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는 자기의 세 친구가 용광로에 들어가 시련을 겪을 때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자리에 없었던 것 같고 그 후에 다시 느부갓네살의 또 다른 꿈을 해석하고 벨사살 왕의 환상도 해석했다. 그 결과 그는 그때까지의 모든 직무보다 더 뛰어난 직무를 행할 수 있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단5:29; 8:27). 메대와 페르시아 사람들이 바빌론을 점령한 후에도 그는 죽을 때까지 높은 자리를 유지하며 이 왕들의 호의를 입었다. 물론 이 기간에 그는 다른 사람들의 시기를 받아 사자 굴에 빠지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무 해도 입지 않고 구출되었다. 이때에 그는 기도와 금식을 하며 유대인들의 귀환을 위해 노력했고 약속의 시간이 가까이 왔음을 알게 되었다(단9:1-27). 그는 유대인들이 돌아가라는 칙령이 발표되는 것과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돌아가는 것을 살아서 보았으나 그 스스로 예루살렘을 다시 방문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는 고레스의 제3년에 약속된 메시아 구속자가 올 때까지의 유대인들의 상태에 대하여 몇 차례 환상을 보았고 마지막으로 자기가 평안한 삶을 마치고 부활해서 이스라엘의 땅에 서 있을 것을 약속받았다(단12:13). 칠십 이레 참조. 다니엘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거의 흠이 없는 인물이다. 그는 자기의 젊은 때와 늙은 때를 다 하나님을 위해 사용했으며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신실함과 성실함을 잃지 않았고 우상을 숭배하던 동방 사람들 속에서 순수하게 고결한 삶을 살았다. 그는 우상을 숭배하는 통치자들 앞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고백했고 기적이 아니었더라면 순교자가 되었을 것이다. 특별히 젊은이들은 기도하는 심정으로 그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매우 중요하며 가치가 있다. II. 다윗의 둘째 아들. 그는 길르압이라고도 불렸다(대상3:1; 삼하3:3). III. 이다말의 후손. 그는 에스라와 함께 바빌론에서 유다로 돌아온 우두머리 중 하나였으며 이후의 개혁에서 중요한 일을 맡았다(스8:2).
2009-04-03 15:04:15 | 관리자
  블레셋 사람들이 경배하던 물고기 신. 가자와 아스돗 등에 이 신을 위한 신전이 있었고(대상10:10) 가자의 신전은 삼손에 의해 파괴되었다(삿16:21-30). 아스돗의 신전에서는 다곤이 하나님의 궤 앞에서 기적적으로 두 번이나 넘어졌으며 두 번째 넘어질 때는 머리와 손이 잘려나가 몸뚱이 부분만 남았다(삼상5:1-9; 참조 수15:41; 19:27).  
2009-04-03 15:01:53 | 관리자
웃사가 하나님의 궤를 만졌기 때문에 죽은 타작마당의 이름 혹은 그 소유주의 이름(삼하6:6). 대상13:9에는 이것이 기돈으로 되어 있다.
2009-04-03 14:59:48 | 관리자
달팽이 같은 연체 복족류의 튀어나온 숨 문 뚜껑 등을 태워 만든 향 재료. 이것은 주님을 위한 거룩한 기름의 제조에 쓰였다(출30:34).
2009-04-03 14:59:11 | 관리자
I.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나눈 시내. 이것은 욥바의 북쪽에서 지중해로 나아갔다(수16:8; 17:9). II. 아셀 지파에게 속한 마을(수19:24, 28). 가나 참조.
2009-04-03 14:57:07 | 관리자
나다나엘의 출생지. 이곳은 갈릴리의 가나라 불리며 나사렛에서 11킬로미터 북쪽에 있다. 신약시대의 땅 지도 참조(39). 여기서 우리 주 예수님은 처음으로 물로 포도즙을 만드는 기적을 행하시고 또 여기서 29킬로미터 떨어진 가버나움에 있는 귀족의 아들을 기적으로 고치셨다(요2:1-11; 4:46-54; 21:2).
2009-04-03 14:56:09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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