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제님, '대개 자기 의가 가득한 사람들' 이라고 하신 관리자님의 말씀은
말 그대로 '대개' 라고 하셨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고해주시기 바랍니다.
결코 전부를 가리킨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저 또한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이라
환난 전 휴거와 환난 후 휴거에 관한 주장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저의 경우를 보더라도, 환난 후 휴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확연하게는 아니어도 은연중에 자기 의를 드러내는 분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분들은 신앙생활에도 열심이 있고, 환난 후 휴거에 관하여도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극심한 환난의 때가 오기 전
차라리 죽기를 구하였던 저와는 확연히 다르게 말입니다.^^;
정 형제님께서 환난 후 휴거를 주장하신다면
또 그렇게 믿기를 원하신다면, 그렇게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로 말입니다.
그리고 킵바이블의 글들을 자주 접하는 분이라면,
관리자님이 정동수목사님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도 '관리자로 올리지 말고 개인ID 이용이 좋겠다' 고 하심에는
아무래도 감정적인 문제가 이입이 되었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마치 관리자님께서 일부러 실명을 거론하지 않으신 게 아니냐는 듯이 느껴져서
오히려 읽고 있는 제가 더 불쾌합니다.
아니라면 용서하세요. 샬롬.. ^^
2010-01-04 18:18:32 | 이은희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계속 논란이 되는 것은 원치 않으나...
제가 환난통과 교리를 배우고 굳게 믿을 때도 환난전휴거 교리 비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양쪽의 의견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왜 지금은 환난 전 휴거를 믿게 되었을까요?
저는 무슨무슨 교리가 중요하지 않고, 말씀을 제대로 보았을 때 설득되고 이해한 것 뿐입니다.
또한 이곳은 교리가 맞는 이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늘 논란이 되는 '하나님의 왕국'은 천국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실제 왕국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들이 거부했으므로 환난을 통과해서 가게 됩니다.
사도행전의 부분은 그런 내용일뿐 휴거 시점과 관련이 없고, 우리의 해당 사항도 아닙니다.
또한 계시록 16:15가 왜 휴거시점에 관한 결정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도둑은 언제 올지 알 수 없지만, 깨어 있는 사람은 그가 온 뒤에 알게 됩니다.
잠자는 자들은 그분이 왔다 가셔도 모를 것입니다.
처소를 예비하러 간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데려가시고 하늘에서 7년간 혼인잔치가 벌어집니다.
모든 것은 성경적으로 풀리는 것이며 창세기의 소돔의 이야기도 예표로서 그것들을 푸는 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나고...." (살후 2:3)
이후에 그리스도의 날이 임하는데, 떨어져 나가는 일은 휴거 자체와 배교로 볼 수 있으며
주님이 지상에 재림하실 때는 세상에서 믿음을 볼 수 없다고 했으므로 성도들은 이미 휴거된 이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해당 자료들을 들어 보시고, 원점에서 자세히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 끔찍한 기간에 들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원이 '조건이 붙지 않는' 하나님의 완전하고 안전한 선물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기쁩니다.
2010-01-04 16:34:22 | 김재욱
감사합니다.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판단되어 윗 부분을 고치고 아래에 이름을 밝혔습니다. 결정타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제게는 그 구절이 전혀 결정타가 아닙니다. 이 글이 자꾸 문제가 되면 나누고 싶은 글 목록에서 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01-04 14:49:38 | 관리자
"관리자" 님의 "환난 통과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 의가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라는
댓글은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글로 느껴집니다.
이런 댓글을 달때는, "관리자" 로 올리지 말고 개인ID 이용이 좋을 것 같습니다.
2010-01-04 13:44:40 | 정원배
아멘!
2010-01-04 13:43:56 | 송재근
킹제임스 관련 사이트를 주중에 한두번씩 방문하는 성도입니다.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이 환난 전이냐, 후냐의 주장인것 같습니다.
이곳 성도들은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는 교회에 모인 성도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글들이 인정도 받고, 댓글 반응도 좋아 보이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환난통과를 믿고 있습니다.
이유는 계시록 16장 15절에서 환난의 절정 중에도 주님이 '도적같이 오신다' 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느 분이 (우연치 않게 오늘 제가 읽은 창세기 19장) "소돔을 심판하시기 전, 롯에게 하신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새기고 싶습니다" 라고 댓글을 달았는데,
저는 얼마전 사도행전 14:22 "...많은 환난을 거쳐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야 하리라..."
가 와닿더군요.
바른 말씀을 찾아 keepbible.com 까지 찾아오신 여러분들은 정말 귀하신 분들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2가지 입니다.
1. 이미 해당 교리를 지지하는 그룹 안에서, 해당교리에 대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자칫 또다른 가능성을 놓칠 수 있을 것 같구요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 겠죠)
2. 교리적인(성경적인) 결정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계시록 16장 15절은 환난통과의 결정타가 아닌가요? 아무리 많은 이유를 대도 결정타가 중요한 것입니다. 천주교의 마리아 숭배도 그들 나름대로의 근거성경구절도 있지만, 결정타는 없습니다. 위 댓글에 창세기 19:22 말씀이나 제가 언급한 사도행전 14:22 말씀이나 자칫 귀에 걸면 귀걸이, 코게 걸면 코걸이가 될 수 있습니다.
2010-01-04 13:11:34 | 정원배
새롭게 디자인된 팜플렛을 파일로 첨부했습니다(2010년 2월 10일).
예수 그리스도의 ‘내 교회’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I will build my church, 마16:18)는 웅대한 선언과 함께 예수님께서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교회라는 유기체를 세우셨다. 미래형으로 기록된 이 획기적인 선언 속에는 교회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교회의 소유주가 예수님 바로 그분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그러면 교회란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예배당을 교회로 알고 있지만 사실 교회 곧 ‘에클레시아’(ekklesia)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을 뜻한다. 즉, 구원받아 천국 백성이 된 성도들 자체가 교회이다. 구약의 이스라엘과 달리 신약 교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구원받은 성도라면 누구나 다 제사장이 된다는 것이다(벧전2:5,9).
그러나 주후 1세기가 지나가기도 전에 구약의 제사장 계급 체제로 돌아가 성도들 위에 군림하려는 무리가 교회 안에 생기기 시작했고 이들은 예수님의 신약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했다(계2:15). 그 이후의 교회 역사는 창조주시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기독교’(Christianity)와 창조물인 교회를 따르는 ‘교회교’(Churchianity) 사이의 심한 갈등과 반목의 역사이다. 즉 교회 역사는 ‘국가교회’(State church)인 ‘교회교’가 ‘자유교회’(Free church)인 ‘기독교’를 심히 핍박하고 박해해 온 역사이다.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참된 교회와 바른 교회사에 근거하여 ‘성도들의 피 흘린 발자취’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있을 말세의 배도가 바로 교회라 불리는 곳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큰 오해
많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천주교에서 나온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천주교가 아니라 유대교에서 시작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포함하여 구약 성도들, 열두 사도들, 첫 순교자 스데반, 첫 선교사 바울 등 대부분의 초대 교회 성도들은 천주교인이 아니라 유대인이었으며 성경의 대부분이 유대인에 의해 기록되었다. 천주교에서 초대 교황이라고 주장하는 베드로 역시 유대인이었다. 사실 베드로나 바울은 천주교를 알지도 못했다. 신약의 복음 또한 로마에서 시작되지 않았고 예루살렘에서 시작되고 확산되어 땅 끝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처럼 참 교회는 시작부터 천주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가 천주교에서 나왔다는 거짓말을 믿게 된 이유는 단 한 가지 때문이다. 그것은 곧 기독교회사가 필립 샤프 같은 자유주의자 즉 천주교의 영향을 받은 교회사가들에 의해 철저히 왜곡되었고 이처럼 ‘왜곡된 교회사’ 즉 엄밀한 의미에서 천주교회사를 ‘천주교에서 나왔으나 천주교와 같은 뿌리를 갖고 있는 프로테스탄트들’이 자기들의 교회와 신학교에서 여과 없이 가르쳐 왔기 때문이다.
고귀한 무리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시민으로 국가의 법에 순응하였으나 카이사르(가이사)가 자기를 주 하나님으로 선언하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카이사르는 자기를 신이라 부르면서 자기에게 경배와 희생을 드릴 것을 요구했으나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단호히 거부하였고 이에 따라 그들에 대한 무서운 핍박이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도덕이나 가치관뿐 아니라 심지어 황제의 법도 주 하나님의 법에 우선할 수 없다고 믿었고 결국 자기를 신으로 선언한 황제의 눈 밖에 나게 되었다.
한편 카이사르는 기독교와 바빌론 신비 종교를 혼합해서 자신을 우두머리로 하는 국가교회인 천주교를 구축하기 시작했고 많은 교인들이 천주교라는 배도의 넓은 길을 따라갔다. 한편 이것을 거부하는 참 성도들은 맹렬한 핍박을 받으며 맹수들의 밥이 되면서도 결코 국가교회의 일원이 되려 하지 않았다. 이런 고귀한 무리들은 자기 속에 영원토록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로 신앙 양심을 따라 국가교회가 아닌 자유교회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냐, 카이사르냐?
주후 313년, 대음모자 콘스탄틴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기독교를 로마의 국가 종교로 공인했다. 그 이후로 이 타락한 국가교회는 이교도들의 풍습에 근거한 마리아 숭배, 성인 숭배, 각종 우상 숭배, 제사장 체계, 교황, 추기경, 교부, 연옥, 면죄부, 유아 세례 등 도저히 그리스도인들이 용납할 수 없는 가증한 것들을 강제로 교회에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국가교회는 자기들의 범주 안에 거하려 하지 않는 자유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여 참 성도들을 화형이나 수장 등 각종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시켰다. 이단이란 말은 참으로 무서운 말이다. 중세암흑시대에 천주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 받으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피 흘린 발자취
예루살렘 교회에서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교회는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로 퍼져나가 1세기 후반에는 그 당시의 온 세상에 퍼지게 되었다. 또 국가교회의 모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짊어지고 도시를 떠나 산지에서 계곡에서 유랑하며 꾸준히 순례의 행보를 이어갔다. 주후 2세기에는 처음으로 소아시아에서 몬타니스트들이 사도 교회의 순수성을 외치면서 믿는 성도만이 교회의 회원이 됨을 주장했으며, 스스로 믿음을 고백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에게 베푸는 유아세례는 전적으로 비성경적임을 선언하고 재침례를 행했다.
주후 3세기에는 전 로마제국에서 노바티안들이 일어났다. 이들 역시 유아세례의 죄악을 폭로하며 교회의 순수성을 외쳤다. 이들은 그 순수성으로 인해 후에 ‘순수한 자들’이라는 뜻을 지닌 카타리들이 되었다. 그 뒤 4세기 초에는 아프리카에서 도나티스트들이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외치며 일어났다. 또한 7세기경에는 타우루스 산지에서 폴리시안들이 초대 자유교회의 맥을 이으며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선교하기 시작했는데 이들 역시 구원받은 성도들만의 침례와 그런 성도들만의 교회 회원권을 주장했다.
그 뒤 자유교회는 12세기경의 왈덴시스들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들은 알프스 계곡에서 바른 성경을 붙들고 오직 성경만이 최종 권위임을 외치면서 천주교회와 분리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불가리아와 보스니아에서는 보고밀이라는 이름의 자유교회가 천주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받으면서 급속히 퍼지기 시작했다. 한편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는 폴리시안의 뒤를 이은 알비겐시스들이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들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프로테스탄트/개신교
주후 1517년 천주교회의 사제였던 마틴 루터는 교황과 천주교회에 대항하며 ‘항거자’ 즉 프로테스탄트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신약성경의 자유교회에서 출발하지 않았기에 천주교회에서 완전히 분리되는 것보다는 그 안에 남아 있으면서 개혁을 이루고자 했다. 그 결과 루터교회는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핵심 교리를 제외하고는 천주교회의 악습과 전통을 거의 그대로 물려받아 생명이 없는 국가교회로 전락하고 말았고 결국 1998년 6월에는 다시 천주교회와 하나가 되기로 공식적으로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장로교회의 아버지 칼빈 역시 유아세례 등의 악습을 타파하지 못하고 제네바에서 국가교회를 구축하면서 재침례교도 같은 자유교회 무리들을 핍박하였다. 천주교회에서 나온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들은 교회가 다스리는 세상이 곧 그리스도의 왕국이라는 천주교회의 신념을 그대로 수용하여 한결같이 무천년주의나 후천년주의를 따랐고 성경 말씀 준수 측면에서 자유교회와 큰 차이를 보였다.
근대 자유교회
한편 종교개혁 시대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교회는 재침례성도, 메노나이트 등의 이름으로 온 유럽에 등장하여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회중 통치를 가르치며 믿는 자들만의 교회 회원권, 전 성도 제사장 직분, 국가와 교회의 분리, 양심의 자유 등을 외치기 시작했고 급기야 이민의 물결을 따라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17, 18세기 영국과 미국에서는 자유교회의 전통을 이어 받은 침례교인들(Baptists)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고 존 번연, 찰스 스펄전, 윌리엄 캐리, 아도니람 저드슨 같은 걸출한 인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도 처음에는 국가교회를 형성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침례교인들이 이것을 강력히 반대했고 결국 이들로 인해 국가와 교회의 분리,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이 헌법에 명시되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누구든지 양심에 따라 종교를 택할 수 있게 되었고 수많은 영혼들이 국가교회의 탄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현대 국가들의 대부분이 미국 헌법을 기초로 하여 이러한 자유들을 허락하게 되어 결국 전 세계 시민들이 자유교회의 투쟁으로 인한 인권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말세의 배도
지금 온 세상은 정치와 경제와 종교의 통합을 원하고 있다. 정치는 UN 주도 하에, 경제는 WTO 등을 통해 이미 통합이 시작되었으며, 종교는 1960년대의 제2차 바티칸 공회 이후 천주교회의 주도 하에 급속도로 통합되고 있다. 그 결과 WCC, NCC, 오순절은사주의, 뉴에이지 운동, 록음악, NIV, Living Bible 등의 타락한 성경, ECT(복음주의자와 천주교도의 연합) 등이 모두 천주교회의 통제를 받으며 기독교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제 머지않아 천주교회가 주축이 된 사상 최대의 국가교회가 우리 앞에 출현하여 다시 한 번 성도들을 핍박하게 될 것이다. 이 같은 말세의 배도에 대하여는 이미 사도 바울이 자신의 서신서들에 여러 차례 기록해 놓았다! ‘어떻게 루터로부터 출발한 프로테스탄트 루터교회가 천주교회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해 할 필요가 없다. 뿌리를 성경에 두지 않으면 누구나 배도의 길로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여!
당신은 지금 어느 길에 서 있는가? 배도한 교회와 철저히 분리된 사람들이 성경을 따라 피를 흘리며 남겨 준 발자취를 따를 때에만 배도의 거센 물결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과거 이스라엘에서는 아합 왕의 극심한 우상 숭배 속에서도 칠천 명의 남은 자들이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믿음을 지켰다. 당신도 그런 남은 자 중에 있는가? 성경대로 믿는 자가 구원을 받고 후에 주님께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크기를 보지 말고 내가 속한 무리가 순결한 자들인가 살펴보기 바란다. 부디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내가 과연 맹목적으로 ‘교회교’의 전통을 따르고 있지는 않은가 점검하기 바란다. 사랑하는 성도여! 지금 당신은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신 그분의 ‘내 교회’에 속해 있는가?
참고문헌 「천주교는 기독교와 완전히 다릅니다」「천주교의 유래」
「성경 바로 보기」「마틴로이드존스의 천주교 사상 평가」「오순절 은사운동 바로 알기」
「킹제임스 성경의 역사」「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출판사 그리스도 예수안에)
‘성경 지킴이’ 그리스도 예수안에032-872-1184, www.KeepBible.com
‘진리를 선포하는’ 사랑침례교회032-664-1611, www.cbck.org
2010-01-04 12:48:59 | 관리자
오늘 아침에 어느 분이 다음의 글을 올려 달라고 부탁해서 올립니다.
글의 저자는 현재 의사라고 합니다.
내용이 너무나 성경적이고 합당하여 올리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손기철 장로의 치유집회에 대하여
손기철 장로의 책은 읽어본 일이 없습니다만 그가 진행하는 치유집회의 동영상이 갓피플 메인화면에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손장로가 행하는 설교의 내용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만 이 글에서는 치유 부분에만 집중해 보려 합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곳에서 정말로 치유가 일어나고 있는지 커다란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1. 신유는 오늘날도 일어나는가?
손기철 장로의 치유 행위를 분석하기에 앞서 보다 근본적인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습니다. 바로 신유(faith healing)가 오늘날도 일어나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답하기 전에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신유의 은사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과 “오늘날에도 신유가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은 전혀 다른 내용을 묻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풀어 설명하면 “하나님이 지금도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셔서 어떤 사람의 병을 직접적으로 낫게 하시는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내용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별 어려움 없이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며 성경에서도 그 근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약 5:16). 하지만 첫 번째 질문은 대답이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사도 시대와 마찬가지로 병자에게 병 낫기를 명할 수 있고, 그 결과 실제로 병의 치료가 일어나며,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언제 하나님이 병고침을 행하실지 정확하게 예측하여 얘기해 줄 수 있는 그런 은사를 가진 사람이 여전히 존재하는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이와 같이 전혀 다른 내용을 묻는 질문임에도 ! 불구하고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날 신유 은사의 지속 여부에 의문을 제기하면 다음 순간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의 가능성, 더 나아가 성경에 기록된 각종 이적의 사실성까지 의심하는 사람이라는 부당한 비난을 받게 됩니다. 저는 첫 번째 오늘날에도 신유의 은사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아니다”라고 대답하며, 두 번째 오늘날에도 신유가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에는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입니다. 첫 번째 입장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이 입장에 대해 이미 많은 책들이 출판되어 있기 때문이며, 이 문제에 저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오늘 다룰 내용과는 큰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문제, “오늘날에도 신유가 일어나는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부연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첫째, 신유라는 용어는 대단히 부적절한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이 용어는 하나님의 이적적 병고침이 마치 우리의 믿음 여부, 혹은 믿음의 강도에 달려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실제로 오늘날의 자칭 신유 은사자들은 병고침이라는 결과가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고 얼마나 능력 있는 사역자를 만나느냐에 달려있는 듯이 가르칩니다. 성도가 병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약 5:14), 그가 병에서 회복될 것인지, 그 병을 가지고 살아가며 연단을 받을 것인지(고후 12:8-9), 아니면 죽음을 통해 주님과 함께 거하는 복을 누릴 것인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신유라는 말 대신 로이드 존스가 사용한 이적치유 (miraculous healing)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이적치유 사건은 일반적인 생각보다 훨씬 적은 빈도로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것이 제가 이 글에서 힘주어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2. 이적치유의 진실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나에게 이적적인 치유가 일어났어요”라는 간증을 들었을 때 그 말의 진실성을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말은 그 간증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의 말에는 진정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진정을 담아 말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가 실제로 그 질병이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정말로 치료가 되었는지 판단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프랭클린 페인 주니어라는 의사이자 기독교 의료윤리 연구가가 이 문제를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의료의 성경적 접근>, 한국누가회출판부). 로이드 존스 목사도 그의 책 <의학과 치유> (생명의 말씀사)에서 이 문제를 언급합니다. 이 내용들을 제가 조금 변형해 인용하며 설명해 보겠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이적치유 사건을 간증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에게 정말로 그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게 만드는 몇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 세상에는 심인성질병 (psychosomatic illness)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심인성질병이란 환자는 증상을 호소하지만 신체에 실재적인 이상은 발견되지 않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만성적인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서 아무리 CT나 MRI 등을 찍어보아도 디스크나 골절은 발견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꾀병과 다릅니다. 꾀병은 실제로는 증상이 없으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심인성질병은 환자 자신은 실제로 증상을 느낍니다. 심인성질병의 증상은 매우 다양해서 가벼운 통증 호소로부터 신체 일부의 마비증세까지 폭넓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카리스마 넘치는 의사가 당신은 나았다는 암시를 강하게 줄 때 극적인 반응을 보이며 씻은 듯이 낫는 것도 특징입니다. 같은 일이 이적치유집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많은 사람이 신뢰하는 이적치유자의 한 마디에 몇 년을 알아오던 증상이 씻은듯이 사라지는 경험.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신체적 질병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환자와 의사 사이에는 심각한 의사소통 장애가 흔히 존재한다는 점입니다.환자와 의사 사이의 의사소통은 많은 의사들의 고민거리입니다. 의료현장에서 의사가 설명하는 내용이 환자에게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의사측의 원인도 있지만 자기 몸의 질병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환자가 선택적으로 듣는다는 사실도 매우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 나온 신유은사 간증집에 기도로 녹내장을 치유받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과에 가서 안압을 측정해 보고 녹내장을 진단 받았으나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다음날 가서 다시 검사했더니 녹내장이 씻은듯이 나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의사의 상식으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처음 보는 환자를 당장 녹내장으로 진단했다는 것도 이상하고 또 다음날 당장 완치를 선언했다는 것은 더 이상합니다. 아마도 첫날에 의사는 “안압이 높으시네요. 녹내장일 가능성이 있으니 검사를 해 보아야겠습니다.”라고 했을 것이고, 둘째 날에는 “오늘은 안압이 정상으로 나오셨네요”라고만 했을 것입니다. 이 의사는 녹내장이라고 진단한 적도 없고, 녹내장의 치유를 선언한 적은 더더욱 없는데 환자는 두 가지를 다 경험했다고 믿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경우는 암입? 求? 의사 입에서 ‘암’이라는 단어가 나오기만 한 것으로도 환자는 자기가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이적치유 집회에 다녀오면 엄청난 간증거리가 생기게 됩니다.
셋째는 그 유명한 위약효과(placebo effect)입니다.
가짜 약을 먹은 사람도 그것이 약이라고 믿으면 실제로 질병이 낫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잇습니다.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잠을 못자던 환자에게 매우 값비싸고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 진통제를 처방해주겠다고 말하고 진지한 자세로 생리식염수(소금간한 맹물입니다) 10cc를 링거액에 섞어주면 거짓말같이 통증이 사라지고 잠도 잘 자는 현상은 거의 모든 의사가 경험하는 일입니다. 위약효과는 너무나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약이 개발되어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밀가루로 만든 가짜 약을 먹은 사람들과 대조해 보아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이적치유 은사자의 강력한 암시는 가장 좋은 위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넷째, 질병의 자연사를 모르면 오해가 발생합니다.
어떤 병을 치료하지 않고 그냥 방치했을 때 어떤 경과를 밟는지 관찰한 것이 질병의 자연사(natural course)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는 것이 감기의 자연사라면 평생을 두고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는 것은 아토피, 류머티스 관절염 등의 만성질환의 자연사입니다. 질병의 자연사를 아는 것은 치료 효과를 판정하는데 필수적인 전제조건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예를 두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심한 감기로 개인병원을 찾아 일주일 치 약을 먹었으나 차도가 없는 사람이 참다 못해 대학병원을 방문합니다. 대학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먹자 거짓말같이 독한 감기가 떨어지고 이 사람은 대학병원의 교수가 역시 용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번에도 비슷한 증상의 심한 감기가 발생하자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용한 교수를 찾아가기로 마음 먹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번에 받아온 약은 효과가 없습니다. 일 주일 내내 고생하고서야 감기가 떨어져 나갑니다. 첫 번째 경우에 대학교수가 용한 의사로 인정받은 이유는 단지 환자가 감기에 걸린 지 일 주일이 지난 후에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 흔한 예는 아이들의 아토피입니다. 몇 년 동안 고생하? ?아토피가 이름 모를 풀을 다려먹고 씻은듯이 낫습니다. 하도 신기해 주변의 다른 집에도 추천해 주었는데 이번에는 효과가 그다지 신통치 않습니다. 왜일까요? 아토피는 수 개월~수 년을 주기로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는 자연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호전되려는 찰나 우연히 먹게 된 풀뿌리가 치료의 주인공으로 오인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아토피가 발생할 것입니다. 의학에는 우연을 감별하기 위한 연구방법론이 많이 개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적치유에서는 이런 효과를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다섯째, 검사의 특성 및 한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오해가 발생합니다.
질병을 진단하기 위해 행하는 검사에는 선별검사(screening test)와 확진을 위한 검사가 있습니다. 선별검사란 많은 사람들 가운데 특정 질병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가려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검사입니다. 선별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는 것은 그 질병에 걸렸을 확률이 다른 사람보다 높으므로 확진을 위한 검사를 시행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지 그 자체가 질병을 확진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CT나 MRI 촬영은 대표적인 선별검사입니다. CT/MRI에서 폐에 종양으로 의심되는 덩어리(종괴)가 발견되었을 때 조직검사로 확진되기 전까지는 말 그대로 ‘의심’ 단계이지 폐암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자 그 종괴가 없어졌다면 애초에 폐암이 아닌 폐렴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신유 간증들이 선별검사만 받은 상태에서 확진을 받은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섯째, 불가항력적 오진이 존재합니다.
현재로서 암을 진단하는 가장 확실하고 믿을만한 방법은 조직검사입니다. 극소수의 경우이긴 하지만 조직검사까지 시행하고도 심한 염증과 암을 확실하게 구별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장 흔한 것이 위궤양과 위암의 구분입니다. 둘 다 위벽에 움푹 파인 구덩이가 만들어집니다. 내시경을 통해 모양을 보는 것만으로는 둘의 구분이 안 되기 때문에 조직검사를 하여 확실히 구분하는데 아주 드물게 조직검사를 하여도 진단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대학병원급에서는 일 년에 몇 차례 나타납니다. 이런 경우는 검사를 반복하며 환자를 계속 관찰하며 조심스럽게 판정합니다. 하지만 경험 없는 병리학자가 이런 예를 접했을 때는 성급하게 위암으로 진단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평신도 성경공부 교사로 유명한 어떤 분의 간증을 읽어보니 중국에서 위암으로 진단 받고 이적치유를 경험한 내용이 나옵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분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일곱째, 통계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해가 생깁니다.
어떤 사람이 암에 걸렸을 때 병기(1기, 2기, 3기, 4기)가 결정되면 의사는 지금까지 알려진 5년 생존율을 말해 줄 수 있습니다. 4기(말기)의 5년 생존율이 20%인 암에 걸린 환자를 가정해 봅시다. 이 사람이 5년 후에도 살아 있을 확률이 20%라는 말이며 바꾸어 말하면 이 암의 말기 상태에서 발견된 환자 5명 중 4명은 5년 안에 사망한다는 말입니다. 10명의 그리스도인이 이 암의 말기 상태에서 치유집회를 찾았습니다. 치유 은사자는 그들이 모두 나았다고 선언했고 5년 후에 보니 그 중 2명은 실제로 살아있습니다. 이 두 명이 정말로 이적치유를 경험한 것일까요? 이 치유집회가 정말로 효력을 발휘한 것일까요? 환자수가 100명으로 늘어난다면 어떻겠습니까? 예를 들어 23명이 살아있고 97명이 사망하였다면 치료효과를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검증하는 것이 통계학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들어본 기억이 나십니까? 95% 유의수준에서 치유집회를 가든 안 가든 생존율은 똑같다는 귀무가설을 기각하기 위해서는, 즉 p값이 0.05보다 작게 나오기 위해서는 몇 사람이 생존해야 하는 것일까요? (조금 사잇길로 빠진 이야기지만, 이런 통계학적 검증을 거치! 지 않은 모든 치료행위는 그 주체가 의사이든 한의사이든 관계없이 사이비 의료행위입니다. 태반주사니, 봉침이니 아무리 이론적으로 그럴듯하게 떠들어도 그 효과가 통계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습니다. 이런 얘기하면 개원가의 의사들은 의대교수가 자기들의 어려움을 모른다고 볼 맨 소리를 합니다. 마치 신학자들이 알파코스의 신학적 오류를 지적하자 일선 목회자들이 교회성장을 위한 전도프로그램일 뿐인데 뭘 그리 시비냐고 투덜대는 것과 똑 같은 양상입니다.)
여덟째, 치유 간증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적지 않은 수의 경우 진단이 의사가 아닌 환자 자신이나 치유자에 의해 붙여진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간증 전체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게 됩니다. 최근에 타드 벤틀리라는 사람이 집회를 하자 주변 지역에서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군요. 인터넷에서 그 간증들을 찾아 읽어 보십시오. 제가 본 증례들은 객관적으로 사망이 증명된 경우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이적치유의 진실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정확한 진단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치료 효과의 검증이 필수적입니다. 치유집회에 참석하기 전에 그가 확실히 병이 있었음을 증명해주는 확진검사 결과(조직검사)가 있어야 하고, 집회 후에도 그에 준하는 검사를 시행해 병이 사라졌음을 환자의 증언에 의해서가 아닌 객관적인 방법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3. 손기철 장로 사례에 대한 분석
위에서 설명한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 2008년 7월 11일에 www.godpeople.com 메인 화면에 올라온 치유집회 동영상을 대상으로 손기철 장로의 사례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이 날 집회 동영상에서 손장로가 치유했다고 선언한 질병 혹은 상태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축농증 2) 갈비뼈 이상 3) 눈꺼풀 내려옴4) 어깨결림 5) 오른다리 마비 6) 영안을 열어줌7) 회한의 날이 끝나고 독수리 날개 치듯…8) 간경변 9) 자녀의 아토피 10) 등이 굽어진 사람11) 각기병 12) 악몽 13) 밤눈 어두움14) 위궤양 15) 담즙 이상 16) 왼쪽 폐 이상17) 고환이 부은 사람 18) 생리통 19) 오른쪽 골반 휜 사람20) 흑암의 세력에 묶인 자 21) 오른 엄지 발가락 발톱의 문제22) 왼쪽 대장 폴립 23) 4살 남자 아이 팔과 목의 아토피24) 심근경색 25) 악성 림프종 26) 골절
참석자들은 다음의 질병이 나았다고 간증하였습니다.27) 혹(?,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음) 28) 갑상샘의 1.8cm의 혹이 사라짐29) 성대결절 (성악가) 30) 기립성 저혈압
손기철 장로는 매 집회 때마다 성령님이 자신에게 직접 말씀하신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오늘 집회에서 OOO 명이 치유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기 오른쪽에 OO 환자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적어도 손장로의 진단에는 오류가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의사로서 위의 목록을 보고 있노라면 의심스러운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가장 좋은 확인 방법은 위의 환자들 중 몇 사람을 추적해 확진 검사를 해 보는 것이겠지만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항목들은 진실일 가능성이 극히 낮아 보이는 것들도 있음이 사실입니다. 하나씩 설명해 보겠습니다.
1) 축농증축농증은 손장로 집회의 단골 메뉴입니다. 제가 본 것만 벌써 세 번째 사례입니다. 왜 축농증이 자주 언급될까요? 환자가 현재 느끼는 뚜렷한 증상이 존재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치료 여부를 판단할 만한 뚜렷한 변화도 없는 만성질환이기 때문입니다. 주관적으로 나는 이제 나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그렇지 않음을 증명할 증상이 없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한 가지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짐작하건대 손장로 집회 도중 축농증이 치유되었다고 손 들고 나온 사람들은 코가 뻥 뚫리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간단히 실험해 봅시다. 콧구멍을 한 쪽씩 번갈아 막고 숨을 쉬어 보십시오. 평소엔 느끼지 못했지만 한 쪽 코는 막혀있지 않습니까? 30분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한 번 해보면 이번에는 아까와 반대편 코가 막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코 속 혈관의 팽창과 수축에 의해 일어나는 정상적인 생리현상입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양 콧구멍을 번갈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이 변화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열정적인 집회로 인해 눈물 콧물 범벅이 되고 양쪽 코가 모두 막혀버린 상? 꼬【??한 쪽 콧구멍이 열리는 순간이 평소보다 더 과장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자신을 축농증 환자라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은 이 순간을 축농증이 치유되는 순간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2) 갈비뼈 이상진단이 환자 자신과 치유자에 의해 붙여진 경우입니다.
3) 눈꺼풀 내려옴안검하수(ptosis)라 부르는 현상입니다. 제가 병이라 하지 않고 현상이라고 한 이유는 눈꺼풀이 내려오는 것 자체는 나이 들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간혹 암 등의 심각한 질병이 신경을 침범하여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손장로가 치유했다는 것은 이 중 어느 경우일까요? 단순히 노화 현상을 역전시킨 것이라면 치유집회가 아니라 성형집회일 것이고, 암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꺼풀이 문제가 아니라 암 치료를 선언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4) 어깨 결림어깨가 불편해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도 여러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 관절에 이상이 생겨 움직임이 제한된 사람도 있고, 관절에는 무리가 없는데 주변 근육이나 인대의 통증 때문에 실제 움직일 수 있는 범위보다 작은 범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후자는 사실 ‘무서워서’ 못 움직이는 경우입니다. 이 사람들은 치유자가 확신을 주며 움직이라고 하면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습니다.
5) 오른 다리 마비하지가 마비된 경우 실제로 심한 디스크나 종양 때문에 척추 신경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지만 팔 다리의 마비가 심인성 질환의 대표적인 증상인 것도 사실입니다. 이럴 경우 치유집회에서 증상이 사라질 확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특히 양쪽 다리가 아니라 한 쪽 다리가 마비된 경우 심인성 질환일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6)~7)은 질병이 아니니 지나가겠습니다.
8) 간경변간경변을 진단하거나 치료 효과를 판정하기 위해서는 초음파와 조직검사를 시행해야 합니다. 이 집회에서 나았다고 선언한 사람들은 반드시 병원에 가서 확인해야 합니다. 간경변 역시 환자 자신이 느끼는 증상의 변화가 거의 없는 병이기에 치유 은사자들의 단골 메뉴로 등장합니다.
9) 자녀의 아토피위에서 말했듯이 아토피는 언젠가는 저절로 좋아지는 병입니다. 오늘 이 집회의 참석자 중 자녀에게 아토피가 있는 사람들은 100% 효과가 나타납니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나중에 다시 나빠지면 부모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날 설교의 주제가 바로 이것 아닙니까?)
10) 등이 굽어진 사람가까이서 잡은 화면이 아니기에 이분의 정확한 상태는 모르겠습니다만 흔히 이야기하는 꼽추 수준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분별할 수 있습니다. 우선 진단이 환자와 치유자에 의해 붙여졌고, 설사 척추 측만증이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치유 여부는 방사선 사진을 찍어본 후에야 판정할 수 있습니다.
11) 각기병교과서에는 비타민 B 부족에 의해 생기는 병으로 항상 등장합니다만 우리나라 현역 의사 중 이병에 걸린 환자를 경험해 본 이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날에 혹시 각기병이 생긴다면 만성 알코올 중독자 정도에서 간혹 발생할 것입니다. 그런데 비타민 보충이라는 가장 확실한 치료법이 있는 각기병을 왜 치유집회에 나와서 치료 받으려 하는 것일까요? 혹시 각기병으로 인해 생겨난 마비 증상이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는 후유증을 남긴 경우라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12) 악몽 – 지나가겠습니다..
13) 밤눈 어두움 (야맹증)각기병과 더불어 교과서에 비타민 A 결핍에 의한 질환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11)에서와 마찬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손장로가 각기병과 야맹증을 동시에 언급한 것으로 보아 오늘 치유 받을 질환의 목록을 성령님이 불러주셨을 가능성 보다는 의학책을 뒤적이다 눈에 뜨이는 진단을 죽 적어왔을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4) 위궤양위내시경을 해보기 전에는 진단도 치유 판정도 불가능합니다. 속쓰림 증상의 존재여부로는 아무 것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속이 쓰린 이유는 궤양으로 인해 상처가 난 상태에서 위산이 과다분비되는 것인데, 위산의 분비량은 심리상태에 크게 영향 받기 때문입니다.
15) 담즙 이상진단이 환자 자신에 의해 붙여진 경우입니다. ‘담즙 이상’이란 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16) 왼쪽 폐 이상진단이 치유자와 환자 자신에 의해 붙여진 경우입니다.
17) 고환이 부은 사람‘부었다’라는 말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이 날 집회에 모인 남성의 대부분이 자신의 고환이 부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음낭수종’을 말한 것이라면 이것 역시 확실한 치료법이 있는데 왜 치유집회에 왔는지 궁금합니다.
18) 생리통평소 생리통이 있으나 이 날 생리를 하지 않던 여성들은 어떻게 치유를 판단합니까? 다음 생리일에 다시 통증이 발생하면 이 또한 자기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게 된 것이지 않습니까?
19) 오른쪽 골반 휜 사람저는 이게 무슨 병인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이런 병도 있나 싶습니다. 평소 자세가 틀어진 것을 말한 것이라면 치유집회 와서 기도하기 전에 생활 속에서 바른 자세를 취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 아니겠습니까?
20) 흑암의 세력… -그냥 지나갑니다.
21) 오른 엄지 발가락 발톱의 문제‘문제’라는 것이 엄지 발톱의 무좀인지, 살을 파고드는 발톱인지, 사고로 절단된 발톱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떨어져 나간 발톱이 순식간에 다시 자라난 경우라면 이적치유로 인정할 만 합니다만 그게 그렇게 심각한 질환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22) 왼쪽 대장 폴립이것처럼 치유 효과 판정이 명쾌한 경우도 없을 것입니다. 치유를 선언 받은 환자는 당장 병원에 가 대장 내시경을 다시 한 번 해야 합니다. 최근에 보였던 폴립이 사라져 버렸다면 이적치유입니다. 하지만 오늘 손기철 장로의 설교 내용으로 볼 때 폴립이 그냥 그대로 있다면 환자의 믿음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3) 남자아이 아토피 – 9)와 같은 내용입니다.
24) 심근경색집회 장소까지 스스로 오신 것으로 보아 당장 생명의 위협이 있는 단계는 지나고 후유증으로 심장 기능이 저하된 환자일 것입니다. 이 또한 환자가 자각하는 증상이 없고, 치유 여부를 판정할 뚜렷한 변화도 없는 상태입니다. 치유를 확인하려면 병원에 가서 심장 초음파를 비롯해 여러 검사를 해 보아야 합니다.
25) 악성 림프종통계의 문제를 말씀드렸습니다. 악성 림프종은 진행된 정도에 따라, 그리고 조직학적 종류에 따라 생존율이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그 생존율보다 통계학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만큼 더 많은 사람이 5년 후에도 생존해 있어야 합니다.
26) 골절오늘 나오신 환자가 석고붕대를 얼마 동안 감고 있었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습니다. 하루 전에 확실한 골절이 일어났던 환자가 오늘 동영상처럼 걷는다면 이적치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한두 달 전에 일어났던 골절이라든지, 완전한 골절이 아니라 그냥 금이 간 정도였다면 아무 의미 없는 사례입니다.
27) 혹? – 잘 듣지 못해 지나가겠습니다.
28) 갑상샘의 혹갑상샘의 1.8cm 혹을 어떻게 진단 받았을까요? 초음파 검사를 했을 것입니다. 갑상샘이라는 장기는 두꺼운 캡슐에 싸여 있기 때문에 혹이 만들어져도 어지간한 크기가 되기 까지는 밖에서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습니다. 1.8cm 크기라면 아직 손으로 만져봐서 판단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닙니다. 진단을 초음파로 받았다면 치유 판정도 초음파로 해야 합니다.
29) 성대결절본인은 성대결절이 사라졌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을 하는 목소리가 왜 그리도 허스키하신 것일까요?
30) 기립성 저혈압누워 있다 일어났을 때 혈압이 떨어지는 병입니다. 체위의 변화에 혈압 조절 기능이 더디게 따라가는 상태이지요. 오늘 나오신 할아버지가 집회장소에서 누워 계셨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랜 시간 앉아 계시는 동안 몸은 이미 적응을 끝마쳤을 것입니다. 누워 있다 일어나는 것과, 의자에 앉아 있다 일어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동영상에 포함된 것은 아니지만 제 머리속에 강하게 남아있는 장면이 있는데 5월 2일자 갓피플 메인 화면에 올라온 동영상 중에 나오는 휠체어에 앉은 사람들이 걷는 장면입니다. 그 동영상에는 네 사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성큼성큼 걸어나온 사람. 이 사람은 애초에 못 걷는 사람이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증거는 없습니다만 한 번 직접 보십시오). 두 번째 부축 받아 나온 사람. 이 사람은 아마도 중풍의 후유증으로 팔, 다리의 마비가 온 사람인 듯 합니다. 양편에서 부축하여 억지로 걸어가는 것처럼 하였습니다만 이 사람이 정말 치유되어 걸은 것일까요? 동영상을 다시 보십시오. 그의 오른 팔이 어떤 상태인지. 치유가 일어났다면 다리야 체중을 지탱할 만큼 완전히 힘이 돌아오지 않았을 수 있다 하더라도 팔이 그렇게 축 늘어져 있을 수는 없습니다. 세 번째 사람도 비슷한 경우인 듯 하지만 자세히 보여주지 않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네 번째 사람은 아마도 태어나면서부터 뇌성마비를 앓아온 환자 같습니다. 이 사람도 억지로 일으켜 세우지만 걷게 하는 모습은 끝까지 보여주지 않고 편집하였더군요. 더 보여주었더라면 장애? ?인권단체에 학대로 고발해도 될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두 번째와 네 번째 사람은 전혀 치유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박수 치며 할렐루야를 외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동영상만 보고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손기철 장로가 훨씬 불리한 입장에 서 있습니다. 스스로 이 일이 성령님이 가르쳐 주신 것이라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단 하나의 예라도 거짓임이 입증되면 전체 사역이 무너지게 됩니다. 간증하러 나왔던 환자들이 제가 지적한 자료들이 포함된 의사의 진단서를 제출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리라 생각하지만 이런 일이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가톨릭에는 프랑스의 루르드라는 지역이 소위 ‘성모발현’과 이적치유로 유명합니다. 루르드 치유기적은 워낙 역사가 장구한 예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어난 치유 사건에 대해 의학적으로 분석한 논문들도 몇 개가 존재합니다. 이곳에서 치유를 경험했다는 환자들을 추적하여 검사한 것이지요. 그 결과는 참으로 처참합니다. 손장로의 치유집회에 대해 이런 검증을 시도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3. 보다 근본적인 질문 : 왜 치유 받으려 하는가?
다음 글이 이 문제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는 쉽게 무시해 버리지만 사실상 건강과 질병의 메커니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매우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범주 속에 나는 “신앙”을 포함시키고자 합니다. 내가 말하는 신앙이란 모든 종류의 신앙을 의미합니다. 만일 이 견해가 옳다면 그 어떤 종류의 신앙도 이러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 기독교적인 신앙 뿐만 아니라 카리스마적인 신앙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신앙, 심리학적인 요소, 강한 감정, 충격, 악령의 역사 등 수많은 요소들이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
진실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참된 기적들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기도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적을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또한 그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이적이란 부분적으로는 인간의 일반적인 영성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달려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달려 있습니다.
환자들은 가능한 한 빨리 질병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 하나님 뿐만 아니라 그 어느 곳에라도 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온전함”에 대해서는 좀처럼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들의 주된 관심은 질병의 증상이나 그에 따른 즉각적인 무기력감으로부터 벗어나서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다시금 사회에서 그들의 지위를 되찾는 데 있습니다.” (로이드 존스, 의학과 치유)
로이드 존스 목사는 자신이 임종하기 전 이 말의 진실성을 스스로 입증하였습니다. 대장암 말기로 더 이상 희망이 없어 항암치료를 중단한 후 치유를 위한 기도를 하는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지 말라. 내가 영광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
손장로의 치유 집회에 매달리는 많은 환자들이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09:0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04 12:17:31 | 관리자
아멘!.. 할렐루야!.. never.. 100%..!!
창 19:22 말씀을 묵상하니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2010-01-02 22:31:44 | 김상희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부터 나온 과감한 결단과 행동을 할 수 있으려면, 하나님과의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잘 알고 그 분과 연합된 자만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겠지요.
2010-01-02 19:00:04 | 김문수
지금까지 환난 통과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는데 그들은 대개 자기 의가 가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언가 나도 했다는 것이 은연중에 그들의 말과 행실에 들어 있고 그래서 그들은 줄곧 다른 사람을 판단하더군요.
“나는 무언가를 했는데 너는 왜 그러냐?”
“나는 산에 가서 도피하며 어렵게 사는데 너는 왜 도시에서 일하면서 편하게 사냐?” 등등
그러나 저는 내세울 '내 의'가 전혀 없어서(전무함)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환난 전에 올라가는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복된 소식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진노에 이르도록 정하지 않았습니다.
영어로는 'Never'입니다.
이번에 올린 재림과 휴거 음성 파일과 자료를 잘 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환난 전 휴거는 100% 진리입니다.
결코 사람을 두렵게 하는 자들의 말에 넘어가지 맙시다.
복음은 말 그대로 복된 소식입니다.
불구덩이, 지진, 해일, 전쟁, 핵무기, 마귀들이 들끓는 환난기는 진정 복된 소식의 시간이 아니지요. 그렇지요. 거기는 준지옥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가기 원하는 사람만 가면 됩니다.
우리의 의를 더러운 걸레로 여기고 예수님만 신뢰하는 사람은 다 그 전에 들려 올라갑니다.
도시에 살든, 시골에 살든, 운전 중이든, 잠자는 중이든 전혀 문제가 없지요.
북반구에 있든, 남반구에 있든, 남녀노소 흑백황색 인종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나 다 갑니다.
나팔소리가 나면 눈깜짝할사이에 몸이 순식간에 변화되어 올라가지요!
너무 기쁘네요.
아멘!
할렐루야!
정동수
2010-01-02 15:52:07 | 관리자
저도 오래전 감리교에서 환난통과 교리로 배웠었습니다.
휴거가 1회적인 사건이므로 환난 전에 올라가는 일은 없다는 논리였는데 공중 재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성경을 자세히 보지 않은 탓이었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것을 가르친 분의 논리는 이 엄청난 마지막 때의 알곡을 구분해내는 추수사건을
그리 싱겁게(?) 끝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환난을 통해 참 믿음을 가려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었는데
지금 돌아 보면 은혜에 '자기 의'를 보태서 구원받으려는 교만의 결정판이었습니다.
환난 통과를 주장하는 이들의 글을 보니 keep은 누가 보아도 '지키다'라는 뜻인데,
이는 환난에 들지 않게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환난 속에서 지켜주시는 것이다... 라고 썼더군요.
성경을 해석하는 일에서도 '신념'이 그 뜻을 달리 보게 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지 성경 전체를 통해 원리를 깨닫는다면 그런 신념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너는 속히 거기(소알 땅)로 도피하라. 네가 거기에 이르기까지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노라..." (창 19:22)
소돔을 심판하시기 전, 롯에게 하신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새기고 싶습니다.
2010-01-02 15:05:14 | 김재욱
장강 선생님!
합당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재림과 휴거에 대해 음성 파일 3개를 올렸습니다.
메인 화면의 나누고 싶은 글 8번을 참조하세요.
세미나 자료와 함께 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조만간 사랑침례교회에서 다시 강의해서 동영상으로도 올려놓겠습니다.
주님의 재림의 소망으로 인해 - 결코 두려워 하지 말고 - 기뻐하기 바랍니다. 샬롬.
정동수
2010-01-02 11:18:58 | 관리자
구원받은 성도에게 하나님은 나의 구원자이기도 하고 아버지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며, 어떤 면모가 가장 부각되어 보이는가?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 의지를 존중한다. “넌 이제부터 내 것이니, 닥치고 찌그러져서 내 말만 듣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 안 그랬다간 뒈지는 줄 알아라”가 절대 아니다. 하나님이 그저 이런 분인 줄로 알고 하나님에 대해서 쓴 뿌리를 품었던 사람이 바로 창세기의 이브, 그리고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다.
“주인이여, 당신은 엄한 사람이라 뿌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내가 알았으므로” (마 25:24)
하나님은 한편으로는 두렵고 엄격하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자신과 대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사랑하신다.우리를 자상하게 대하신다. 시스템 구조적으로 안 할 수가 없어서, 의무적으로, 안 하면 벌 받을까봐 무서워서 행하는 게 아니라, 정녕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나의 모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자발적으로 성경대로 살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심히 담대하여 네게 합당한 일을 명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사랑으로 인해 네게 간청하노라. (몬 8-9a)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으며 또한 내가 말하는 것 이상으로 네가 행할 줄을 아노라. (몬 21)
빌레몬서를 읽어보면 바울의 필체에서 하나님의 저런 성품을 한결 엿볼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성품을 잘 이용하여 ‘효율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는 뻘짓을 안 하고 높은 기도 응답률을 달성하면, 정말 하나님도 기쁘고 나도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일석이조이다. “아브람의 잃어버린 13년”(창 16:16-17:1) 같은 일이 우리에겐 없어야 된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상에 눈이 멀어서 살아야 한다. 그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겨냥해야 하는 대상이며, 욕심이나 교만이 절대 아니다. “저 형제는 어떻게 해서 저런 상황에서 감사가 나올 수 있을까? 어째서 기도 응답률이 높을까? 저 사람은 평소에 성경 읽기와 기도 생활을 어떻게 진행할까?” 이런 것을 벤치마킹하고 경쟁하는 것은 아무리 지나쳐도 나쁘지 않으며, 모두에게 유익이 될 뿐이다.
이런 것에 제법 능숙해지고 나면 기도도 하나님의 입장에서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동족을 멸망시켜 버리면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게 됩니다.” (모세. 출 32:11-13) “내가 한없이 불쌍하고 가련해지면 하나님께서 그 성품상 내게 긍휼을 안 베푸실 수가 없을 것이다” (다윗. 삼하 16:12) “내가 연보를 받아서 기쁜 게 아니라, 너희가 내게 연보를 함으로써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보상이 쌓일 걸 생각하니 기쁘다” (바울. 빌 4:17)
이런 게 바로 수준 높은 기도이다.특히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놀고(play) 재롱을 부릴 줄 알았고(삼하 6:21), 징계를 받을 때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직접 떨어지길 원했다(삼하 24:14). 흔히 하나님과 친밀했던 인물로 아브라함이나 모세 같은 인물만 거론되지만 사실 다윗도 얼마나 하나님과 친밀했는지, 하나님과 마음과 일치하는 자라는 평(행 13:22)이 결코 빈말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과의 외교 테크닉이 능수능란해지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담대한 믿음이 동반된 집요한 간구는 물론이고 심지어 엉뚱한 돌발행동으로 인해 하나님을 놀래거나 감격스럽게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신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50명의 의인 조건을 10명으로 줄인 아브라함, 백부장의 믿음의 답변,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킨 모세, 누가복음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 천장을 뜯어서 마비병 환자를 예수님 곁으로 내려다놓은 친구들처럼, 성경에서도 그 좋은 예들을 찾을 수 있다.
당연히... 돌발 행동도 평소에 늘 하나님의 교제가 친밀하고 그분의 뜻과 사고방식이 일치가 돼 있는 사람이 해야 먹히지,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던 부류가 육신적인 기도 제목을 놓고 ‘뗑깡’을 부려 봤자 그런 식으로는 기도 응답은 어림도 없는 일일 것이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외교 수완을 생각해 본다. 그의 국내 통치 행적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여러 엇갈린 평가가 존재하며, 공과 과가 공존한다. 하지만 그는 외교 하나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탁월한 정치가였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6 25 당시, 남북이 분단된 채로 그냥 휴전해 버리고 적당히 전쟁을 끝내려던 강대국에 대항하여 감행한 반공 포로 석방은, 영국의 처칠조차 “저 영감쟁이가 노망이 들었다”고 빈정댔을 정도였다.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한미 연합 수색대를 만들어야 하는데 미국 대사관이 국군을 믿을 수 없다며 요청을 거부하자, 그는 차를 돌진시켜 주한 미국 대사 사무실에다 꼬라박겠다고 을러댄 끝에 요구사항을 관철시켰다. ( http://www.carlife.net/bbs/board.php?bo_table=information&wr_id=3651 )
그 외에도 이 사람은 워낙 머리 좋고 고집불통이었던지라, 전해지는 무용담(?)이 수도 없이 많다. 이 때문에 미국 정치인들마저 이승만 앞에서는 쩔쩔맸으며, 미국 내부에서는 골칫거리인 그를 몰래 축출할 음모마저 나돌았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지금과는 비교도 못 할 정도로 국력이 약하고 위태롭던 그 시절에도 이승만은 미국으로부터 정말 많은 국익과 외교성과를 얻어 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미국 대통령, 나중엔 맥아더 장군이 아니면 콧방귀도 안 뀌었던 놀라운 콧대의 한국인이다. 40년을 미국에서 독립 운동 하면서도, “우리나라는 독립할 것이고 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사람이다. 미국 시민권 따윈 없어도 된다”고 불편하게 살며 버텼던 사람이다. 갈 5:1을 영적으로 적용하여, 우리 민족이 앞으로 다시는 어느 방면에서는 다른 민족으로부터 속박의 멍에를 메어서는 안 됨을 염원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하나님과 저런 식으로 지낼 수 있을까? 물론 미국이 하나님과 같을 수야 없으며, 무모한 배째라 행동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계산적인 거래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런 식으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훗날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 사람이다. 천년왕국 때 최하 10개 도시를 다스릴 사람이다. 그러니 이런 세상적인 타협 따위는 할 필요 없다”처럼...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건전한 영적 귀족 의식(교만이 아닌)도 좋고,
우리가 하나님과 너무나 친밀한 나머지 그분을 믿고서, 세상에서 받은 시험에 대해 가끔은 저렇게 과감한 배짱을 행사하는 것도 신앙생활에서 좋은 추억으로 남을 거라 생각한다. 단, 육신에서 나온 욱하는 행동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이다.
또한 성경은 실제로 신앙생활을 그런 상거래에다 비유하기도 한다. 어떤 일을 벌이기 전에 비용을 따지고 수지가 맞을지 생각을 해야 한다. 사복음서 중에 이런 분위기를 가장 잘 읽을 수 있는 책이 단연 누가복음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몸과 머리 중에서 특히 머리를 나의 영적 유익을 위해 최대한 지혜롭게 동원해 보자.
(발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역이용하여 잔머리를 굴렸고, 그 대가로 신약 성경에서까지 두고두고 악인의 대명사로 불리게 됐음도 기억하라)
하나님의 성품과 신앙생활의 본질을 가끔은 이런 방면에서 묵상하는 것도 나의 신앙을 더욱 성숙하게 하고, 능동적이며 다이나믹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거라 생각한다. ^^
* * * * *keepbible 가족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09:0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02 10:52:45 | 김용묵
한자는 어렵다라는 선입견 때문에 쉽사리 읽혀지지 않는 글이었는데, 오늘 이렇게 다시 와서 읽어보니 신기하고 새롭고 놀랍기까지 하네요. ^^* 한자에 관한 새로운 사실은 물론 한자가 성경과 이렇게나 가까운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줄은 그동안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정말 흥미롭네요. 고맙습니다~ ^---^*
2010-01-02 01:48:22 | 이은희
마냥 좋은 글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것이 있어 보입니다.
가령 성경 어느부분에 신약성도가 휴거되는지에 대한 부분의 설명 말입니다.
그런글이 같이 올라 있다면 참 좋은 글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니까 그럴 것이다가 아니고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라는 것을 원하니 다음번에는 그 부분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시면 어떨까요. 정확히 알고 싶어서 그런거니까 가르침 부탁합니다. 잘 몰라서....^.^;;
2010-01-01 21:29:41 | 장강
keep from 에서 from 을 따로 떼어내어 "그 때부터 지켜준다"로 해석하느냐,
keep from 을 붙여서 "~로부터 지켜주다"로 해석하느냐를 가지고 의견이 갈립니다.
그런데 이런 논의는 별 의미가 없답니다. from 을 뭐라고 해석하건 간에
keep 이라는 단어 속에 이미 "~로부터 지키다"라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이지요.
2010-01-01 08:30:29 | 김문수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마틴 로이드-존스조차도 무천년주의를 지지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하나님의 모든 비밀을 알 수는 없겠고 또 각자 강점과 약점이 있겠지만 로이드-존스 목사님이 무천년주의를 지지했었다는 사실에는 좀 실망(?) 했었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샬롬~~
2009-12-31 12:47:47 | 이재연
휴거 얘기를 만나는 주변 친한 사람들에게는 거의 다 합니다. 얘기를 듣는 사람들 대부분이 흘려듣거나,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냐며 반문하거나... 어쨌든 난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정신병자 소리도 듣지요. 그러나, 안 할 수가 없어서 계속 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후로도 어느 정도 대화가 오가는 사람들에게라면 또 전하게 되겠지요. 하긴 예수님 믿는 것 만으로도 난 이미 주변사람들에게 이해 못 할 인물로 찍혀 있으니..휴거 얘기를 더 한다고 한들... 뭐. . 그 이미지는 그대로 있겠지요.
2009-12-31 07:21:17 | 백화자
거침없이 하이킥 하시는 용묵형제님 화이팅! ^^
2009-12-30 20:58:43 | 송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