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기사를 보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목적으로 한국에서 WCC를 개최하려고 하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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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5 09:11:03 | 관리자
국가, 민족, 인종, 종교를 초월하여 전세계를 하나로 묶으려고 하는 로마카톨릭의 모습은
뉴에이지사상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원래부터 같은 것들을 하나로 묶고 연합하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없습니다만, 서로 다른 것들을 저렇게 통합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그리스도와 벨리알을 어떻게 하나로 묶을 수 있겠습니까?
(고후 6:14-15) 너희는 믿지 않는 자들과 더불어 공평하지 않게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의와 불의가 어찌 사귀겠느냐? 빛과 어둠이 어찌 친교를 나누겠느냐?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일치하겠느냐? 혹은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무슨 몫을 나누겠느냐?
2009-09-05 00:56:05 | 김문수
이미 작고한 버논 매기 목사님의 책을 보니 '배교(떠나감)'는 두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더군요. 참 교회는 휴거로 이 땅에서 떠나고, 명목상의 교회는 진리로부터 떠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믿음을 보겠느냐"는 말씀을 충족시킬 것이라는 이야기지요. 정말 그런 마지막 때가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이 사진들, 잊을 만하면 접하게 되는 뉴스들인데 크리스천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료들이지요. 이렇게 한 곳에 모으니 더욱 그 음모가 드러나 보이네요. 좋은 자료들 감사드립니다.
맨 위 사진은 정진경이 아니고 정진석 추기경이네요~.
2009-09-05 00:05:52 | 김재욱
앙크 십자가는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이용하여 오시리스(T)와 이시스(O)를 상징하는 것일 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태양신 숭배자인 콘스탄틴 황제가
사용한 문장이기도 하고, 타로카드에서는 메이저 4번 카드, 세속적 권력을 지닌 황제가
손에 들고 있는 상징물이기도 하지요.
저 상징물을 보면 로마카톨릭이라는 단체는 우상을 숭배하는 이교도들의 종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2009-09-04 17:42:58 | 김문수
사람이 죽은 사람을 성인으로 만들고 그들과 마리아와 천사들에게 기도하여 연옥에서 죄를 경감받는 것이 천주교 구원의 핵심이다.
다음은 2009년 9월 4일 조선일보에 실린 성인들 기사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9/03/2009090302145.html?srchCol=news&srchUrl=news1
원본 자료의 사진을 보면 여의도에 설치된 천주교 제단 앙크 십자가로 된 것을 알 수 있디. 하얀 십자가만 보지 말고 그 하얀 십자가 주변의 큰 앙크 십자가를 보기 바란다. 앙크 십자가는 이집트 이교 종교의 심볼이고 뉴에이저들의 심볼이다. 천주교는 어떤 단체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지난 1984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한국에 도착한 일성(一聲)으로 이같이 말했다. 그가 당시 방한한 목적은 김대건 신부 등 한국의 천주교 순교자 103(位)에 대한 시성식(諡聖式)을 집전하기 위해서였다. 그해 5월 6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100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시성식에서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93명의 한국인 천주교 순교자와 한국에서 순교한 10명의 외국인이 천주교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9월은 한국천주교회가 〈순교자 성월(聖月)〉로 기리는 달이다. 한국 천주교는 9월 한 달 동안 순교 성인 103위 시성 25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통해 신앙 선배들의 자취를 기린다. 올해는 특히 최양업 신부와 순교자 124명 등 125위에 대한 시복시성(諡福諡聖) 심사를 교황청에 청원해 놓은 상태여서 순교자 현양에 더욱 관심이 모이고 있다.
서울대교구(교구장 정진석 추기경)는 19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화해·나눔·증거의 축제〉를 연다. 가톨릭심포니오케스트라 등의 문화행사와 함께 헌혈, 장기·골수 기증 등록운동을 벌이고 오후 3시부터는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25주년 기념 장엄미사〉가 정진석 추기경과 사제단의 공동집전으로 마련된다. 또 25년 전 시성식 당시 제단이 설치됐던 자리에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 표석〉을 설치하고 축복식도 갖는다.
▲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하는 가운데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103위 성인 시성식’. 한국 천주교는 올해 순교자 시성 25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를 마련했다./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지방 교구별 현양행사도 다양하다. 대전교구는 지난 1일 교구장 유흥식 주교와 110여명의 교구 사제, 2500여명의 수도자와 신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충남 당진 신리성지~합덕성당~솔뫼성지의 약 8㎞ 거리를 도보로 순례하는 행사를 가졌다. 대전교구는 또 11일 오후 7시30분부터 해미성지에서 〈제등행렬 십자가의 길 기도 및 미사〉를 갖고 오랏줄에 묶여 끌려가 생매장당했던 순교자들의 넋을 기린다. 부산교구는 12일 삼랑진 김범우 토마스 묘소에서 죽림굴~살티~언양성당~오륜대 순교자기념성당까지 123㎞에서 〈성지 이어달리기〉 행사를 갖는다.
서울 절두산성지에 있는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도 전시실을 재정비하고 5일부터 11월 22일까지 재개관기념전을 개최한다. 성 김대건 신부가 그린 독도가 포함된 조선지도와 프랑스 신부들이 사용한 기도서·미사경본(經本) 등 미공개 소장품 79점이 전시된다.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회장 한홍순)는 9일 오후 2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1층 강당에서 최양업 신부 서품 160주년 기념 학술포럼을 연다. 포럼에는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가 〈최양업 신부의 신앙과 삶〉을 주제로 기조강연한다. 또 가톨릭신문사는 12일 서울 새남터성지에서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25주년 청소년 백일장〉을 개최한다.
▲ '103위 성인의 탄생이야기'(사진 왼쪽)와 '꽃이 되어 가신 님, 빛이 되어 오시네'(사진 오른쪽). 한국의 聖人과 聖地에 관한 새책
■103위 성인의 탄생이야기(윤민구 신부 지음)=103위 성인에 대한 시성(諡聖) 청원인으로 시성 수속을 담당했던 저자가 당시의 뒷이야기를 백서처럼 털어놓았다. 그의 고백을 들으면 한국의 103위 성인 시성은 그 자체가 '기적'이다. 한국천주교는 시성 절차에 대한 지식과 자료준비 등이 부족했고, 교황청이 요구하는 기적에 대한 증거도 불충분했다. 그러나 새로 뽑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호의와 김수환 추기경 등의 노력으로 난관을 극복했다. 저자는 "한국의 103위 성인들의 시성은 가불(假拂)과도 같았다"고 말한다. 신자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추진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제라도 103위 성인과 현재 시복시성이 추진되는 125위에 대해서 신자들이 제대로 알고 공경해야 한다고 말한다. 푸른역사, 1만8000원.
■꽃이 되어 가신 님, 빛이 되어 오시네(이충우 지음)=국내 71곳의 천주교 성지를 사진과 함께 간략하게 정리한 핸드북. 일간신문에서 출발하여 평화방송 보도국장, 평화신문 편집국장을 역임한 원로 가톨릭 언론인인 저자는 《피어라 순교의 꽃》 《신앙유산 답사기》 등 저서를 통해 순교자들과 성지를 소개해왔다. 이번 저서에서는 〈해미-죽음보다 배교가 더 두려웠다〉 〈미리내-인가 불빛, 냇물과 어우러진 은하수〉〈배티-옹기조각에 숨은 사연〉 등 각 성지의 특징을 포착한 짧은 글로 성지순례에 나설 이들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들숨날숨, 7000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8:12:27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09-04 15:00:11 | 관리자
사람이 죽은 사람을 성인으로 만들고 그들과 마리아와 천사들에게 기도하여 연옥에서 죄를 경감받는 것이 천주교 구원의 핵심이다.
다음은 2009년 9월 4일 조선일보에 실린 성인들 기사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9/03/2009090302145.html?srchCol=news&srchUrl=news1
원본 자료의 사진을 보면 여의도에 설치된 천주교 제단 앙크 십자가로 된 것을 알 수 있디. 하얀 십자가만 보지 말고 그 하얀 십자가 주변의 큰 앙크 십자가를 보기 바란다. 앙크 십자가는 이집트 이교 종교의 심볼이고 뉴에이저들의 심볼이다. 천주교는 어떤 단체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지난 1984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한국에 도착한 일성(一聲)으로 이같이 말했다. 그가 당시 방한한 목적은 김대건 신부 등 한국의 천주교 순교자 103(位)에 대한 시성식(諡聖式)을 집전하기 위해서였다. 그해 5월 6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100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시성식에서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93명의 한국인 천주교 순교자와 한국에서 순교한 10명의 외국인이 천주교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9월은 한국천주교회가 〈순교자 성월(聖月)〉로 기리는 달이다. 한국 천주교는 9월 한 달 동안 순교 성인 103위 시성 25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통해 신앙 선배들의 자취를 기린다. 올해는 특히 최양업 신부와 순교자 124명 등 125위에 대한 시복시성(諡福諡聖) 심사를 교황청에 청원해 놓은 상태여서 순교자 현양에 더욱 관심이 모이고 있다.
서울대교구(교구장 정진석 추기경)는 19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화해·나눔·증거의 축제〉를 연다. 가톨릭심포니오케스트라 등의 문화행사와 함께 헌혈, 장기·골수 기증 등록운동을 벌이고 오후 3시부터는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25주년 기념 장엄미사〉가 정진석 추기경과 사제단의 공동집전으로 마련된다. 또 25년 전 시성식 당시 제단이 설치됐던 자리에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 표석〉을 설치하고 축복식도 갖는다.
▲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하는 가운데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103위 성인 시성식’. 한국 천주교는 올해 순교자 시성 25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를 마련했다./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지방 교구별 현양행사도 다양하다. 대전교구는 지난 1일 교구장 유흥식 주교와 110여명의 교구 사제, 2500여명의 수도자와 신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충남 당진 신리성지~합덕성당~솔뫼성지의 약 8㎞ 거리를 도보로 순례하는 행사를 가졌다. 대전교구는 또 11일 오후 7시30분부터 해미성지에서 〈제등행렬 십자가의 길 기도 및 미사〉를 갖고 오랏줄에 묶여 끌려가 생매장당했던 순교자들의 넋을 기린다. 부산교구는 12일 삼랑진 김범우 토마스 묘소에서 죽림굴~살티~언양성당~오륜대 순교자기념성당까지 123㎞에서 〈성지 이어달리기〉 행사를 갖는다.
서울 절두산성지에 있는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도 전시실을 재정비하고 5일부터 11월 22일까지 재개관기념전을 개최한다. 성 김대건 신부가 그린 독도가 포함된 조선지도와 프랑스 신부들이 사용한 기도서·미사경본(經本) 등 미공개 소장품 79점이 전시된다.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회장 한홍순)는 9일 오후 2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1층 강당에서 최양업 신부 서품 160주년 기념 학술포럼을 연다. 포럼에는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가 〈최양업 신부의 신앙과 삶〉을 주제로 기조강연한다. 또 가톨릭신문사는 12일 서울 새남터성지에서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25주년 청소년 백일장〉을 개최한다.
▲ '103위 성인의 탄생이야기'(사진 왼쪽)와 '꽃이 되어 가신 님, 빛이 되어 오시네'(사진 오른쪽). 한국의 聖人과 聖地에 관한 새책
■103위 성인의 탄생이야기(윤민구 신부 지음)=103위 성인에 대한 시성(諡聖) 청원인으로 시성 수속을 담당했던 저자가 당시의 뒷이야기를 백서처럼 털어놓았다. 그의 고백을 들으면 한국의 103위 성인 시성은 그 자체가 '기적'이다. 한국천주교는 시성 절차에 대한 지식과 자료준비 등이 부족했고, 교황청이 요구하는 기적에 대한 증거도 불충분했다. 그러나 새로 뽑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호의와 김수환 추기경 등의 노력으로 난관을 극복했다. 저자는 "한국의 103위 성인들의 시성은 가불(假拂)과도 같았다"고 말한다. 신자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추진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제라도 103위 성인과 현재 시복시성이 추진되는 125위에 대해서 신자들이 제대로 알고 공경해야 한다고 말한다. 푸른역사, 1만8000원.
■꽃이 되어 가신 님, 빛이 되어 오시네(이충우 지음)=국내 71곳의 천주교 성지를 사진과 함께 간략하게 정리한 핸드북. 일간신문에서 출발하여 평화방송 보도국장, 평화신문 편집국장을 역임한 원로 가톨릭 언론인인 저자는 《피어라 순교의 꽃》 《신앙유산 답사기》 등 저서를 통해 순교자들과 성지를 소개해왔다. 이번 저서에서는 〈해미-죽음보다 배교가 더 두려웠다〉 〈미리내-인가 불빛, 냇물과 어우러진 은하수〉 〈배티-옹기조각에 숨은 사연〉 등 각 성지의 특징을 포착한 짧은 글로 성지순례에 나설 이들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들숨날숨, 7000원.
2009-09-04 14:56:53 | 관리자
이번에 한국에 개최되는 WCC와 관련해서 교황과 관련된 사진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아래 사진들을 보시면 현재 및 앞으로 진행될 세상일들에 대해 많은 것들을 유추하실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들을 쭉보면 한편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데요.....
이번에 WCC를 개최하는데 앞장서신 김삼환 목사입니다.
사진으로만 보면 "뭐 만나서 인사하는게 어때서 ?"라고 생각하실분도 있으시겠지만, 저런 지도자급들이 서로 인사를 한다는 것은 단순한 인사를 뛰어넘는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함부로 인사하기도 쉽지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일반인들이 서로 인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WCC은 여러 종교의 연합협의체입니다. 배후는 로마 카톨릭이구요.
이제 한국의 개신교도 로마 카톨릭이 그들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8:12:27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09-04 08:16:46 | 김학준
사울에게 나타난 영의 정체는? (삼상 28:11-14)
(삼상 28:13-14, 개역) [13] 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신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14]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 모양이 어떠하냐 그가 가로되 한 노인이 올라 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줄 알고 그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
(삼상 28:13-14, 킹흠정) [13] 왕이 그녀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하니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신들이 땅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하매 [14] 사울이 그녀에게 이르되,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 하니 그녀가 이르되,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하니라.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자기 얼굴을 숙여 땅에 대고 절하니라.
(삼상 28:13-14, KJV) [13] And the king said unto her, Be not afraid: for what sawest thou? And the woman said unto Saul, I saw gods ascending out of the earth. [14] And he said unto her, What form is he of? And she said, An old man cometh up; and he is covered with a mantle. And Saul perceived that it was Samuel, and he stooped with his face to the ground, and bowed himself.
사무엘상의 마지막 부분을 읽다보면,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둔 사울이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부리는 영을 지닌 여인에게 찾아가서 묻는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여인은 사울에게서 사무엘의 영을 위로 데려오라는부탁을 받고 영을 불러 올립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나타나서 사울에게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하게 될 것과그와 그의 아들들이 죽게 될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사무엘의 모습을 한 영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저 역시 한 때는 이것이 무척 궁금했고,그와 관련된 토론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듣고 보기에 이와 관련한 의견은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됩니다.
첫째, 죽은 사무엘의 귀신(혼령)이다. (귀신이라는 용어는 제가 쓰는 말이 아니라 베뢰아측 주장을 옮긴 것임)둘째, 하나님이 사무엘의 영을 보내어 사울에게 말하게 하셨다.셋째, 마귀가 사무엘의 행세를 하는 것이다.
1. 사무엘의 귀신이 소환되었다는 주장
주로 베뢰아 측(김기동을 중심으로 한 성락교회)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일본 귀신론 책자를 거의 베끼다시피한그들은 귀신을 죽은 자의 영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인간 수명은 120세인데, 불신자가 제 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죽으면 남은 기간 동안 귀신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인간 수명이 120세라는 그들의 주장은, 창세기 6장 3절에 나오는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는말씀에서 인용해 온 것인데, 이 구절은 인간의 수명과는 관계가 없는 말씀입니다.
정말로 인간 수명이 120세로 정해져 있다면, 장수마을에서 사는 120세 넘은 노인들은 모두 하나님의 주권을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들일 겁니다.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까지도 관여하시는분이시므로(마 10:29), 사람이 "제 명을 못 채우고 죽는다"는 일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믿는 대언자 사무엘이 (그들의 주장대로 하더라도) 귀신이 될 리가 없지요.킹제임스성경을 보면, 개역성경이 말하는 "귀신들"이란 바로 "마귀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줄 알고"(삼상 28:14)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사울이 그가 사무엘이라는 것을분명히 알아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 구절에서의 "알고"라는 단어는 perceive (지각하다) 입니다. 이 말씀은 사울이 그가 사무엘이라는 것을 분별해냈다는 뜻이 아니라, "지각했다"라는 뜻입니다.
부리는 영을 지닌 여인이 "노인"이라는 단서와 "겉옷"이라는 단서를 던져주니까,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심정으로 찾아온 사울은 덥썩 그것을 받아들여 그를 "사무엘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인간이 perceive 할 때, 거짓의 아비 사탄이 개입하여 deceive 하면, 얼마든지 지각의 혼란을 일으켜 속아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사울이 이렇게 속아넘어가서 그에게 절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그 영이 주도권을 잡고 당당하게 사무엘의행세를 하게 됩니다.
현대어역과 GNT는 베뢰아측의 주장처럼, 사울이 "죽은 사람을 불러내어 물었다"고 하지만, 킹제임스성경은사울이 부리는 영을 지닌 자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그 영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대상 10:13, 현대어)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를 배반한 죄 때문이었다. 그는 여호와의 가르침은 따르려하지 않았다. 심지어 무녀를 찾아가 죽은 사람을 불러내어 물어 보기는 하면서도
(1Ch 10:13, GNT) Saul died because he was unfaithful to the LORD. He disobeyed the LORD's commands; he tried to find guidance by consulting the spirits of the dead (대상 10:13, 킹흠정) 이같이 사울은 그가 주께 범한 범죄로 인해 죽었더라. 그가 주의 말씀을 거역하여 지키지 아니하였으며 또 부리는 영을 지닌 자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그 영에게 묻고 (대상 10:13, KJV) So Saul died for his transgression which he committed against the LORD, even against the word of the LORD, which he kept not, and also for asking counsel of one that had a familiar spirit, to enquire of it;
2. 하나님이 사무엘의 영을 보내셨다는 주장
죽었던 사무엘이 사울에게 나타난 사건을 두고, 많은 분들이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영을 그에게 보냈다고해석을 합니다. 물론 저는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눈 사건(눅 9:30)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삼상 28장에서 나타난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무엘의 영이 아닙니다.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그것은 땅 속에서 올라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상 28:13, 킹흠정) 왕이 그녀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하니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신들이 땅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하매
대언자 사무엘이라면 죽어서 하나님께 가 있을텐데,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영을 보내시려면 하늘로부터 나타나야지 "땅 속에서" 올라올 리가 없습니다.
둘째로, 킹제임스성경은 그것을 "신들"이라고 복수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삼상 28:13, KJV) And the king said unto her, Be not afraid: for what sawest thou? And the woman said unto Saul, I saw gods ascending out of the earth.
개역성경은 이 부분을 "신"이라고 단수형으로 표현하지만, 킹제임스성경에는 분명히 "gods", "신들"이라고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이라면 한 사람이므로 단수형이지, 복수형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성경에 나오는소문자로 된 복수형 "gods"는 우상들, 이방신들, 마귀들을 의미하지 사람이나 사람의 영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이 일에 대해 사울이 범죄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상 10:13, 킹흠정) 이같이 사울은 그가 주께 범한 범죄로 인해 죽었더라. 그가 주의 말씀을 거역하여 지키지 아니하였으며 또 부리는 영을 지닌 자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그 영에게 묻고
하나님께서는 역대상 10:13에서 "부리는 영을 지닌 자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그 영에게 물은 것"을 사울이 주께 범죄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영을 보내어 그에게 말씀하신것이라면, 이 사건에 대해서 주께서 사울에게 책임을 물으실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무엘을보내어 그에게 말하게 했다고 기록하지 않고, 사울이 "그 영에게" 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귀와교제하고 그에게 절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울이 그가 범한 죄 때문에 죽었다고 말씀하십니다.
3. 마귀가 사무엘의 행세를 한 것이라는 주장
성경 말씀을 살펴보면, 우리는 사무엘상 28장에 나타난 영적 존재가 사무엘이 아니라 사무엘의 행세를 하고있는 마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영은 여인의 부름에 응하여 "땅 속에서" 위로 올라왔으며, 그것의 정체는 단수가 아니라 "신들(gods)"이라고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울이 그 영과 접촉하여 자문을 구한 것이 엄중한 죄라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로서 거짓말을 잘 하고 사람을 잘 속입니다(요 8:44). 사울이 영적인 분별력을 잃은상태였기 때문에 그를 속이기는 쉬웠습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내가 사무엘이니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여인이 일러주는 용모(노인, 겉옷)를 통해서 사울은 그가 사무엘인 줄로 알고, 그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자, 그 때부터 마귀가 당당하게 사무엘 행세를 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가 도망하지만, 우리가 마귀를 두려워하거나 빈틈을 보이거나 하면 그는 어김없이 강하게 공격을 해 옵니다.
(약 4:7, 킹흠정)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에게서 도망하리라.
4. 사울은 여인에게 물었는가, 영에게 물었는가?
저는 사무엘상 28:11-14을 이해하는 단서를 역대상 10:13에서 발견했습니다. 역대상 10:13은 사울이 만난 것이사무엘이 아니라 마귀이며, 그가 마귀와 접촉하여 그 영에게 물은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중대한 범죄라고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역대상 10:13을 여러 번역본으로 읽으면서 아주 미묘한 번역의 차이를 발견했습니다.그것은 사울이 부리는 영을 지닌 여인에게 물었느냐, 그 여인이 불러낸 영에게 물었느냐 하는 겁니다.
(대상 10:13, 개역)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대상 10:13, 킹흠정) 이같이 사울은 그가 주께 범한 범죄로 인해 죽었더라. 그가 주의 말씀을 거역하여 지키지 아니하였으며 또 부리는 영을 지닌 자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그 영에게 묻고 (대상 10:13, 한글킹) 그리하여 사울이 죽으니라. 이는 그가 주께 범한 죄 때문이었으니, 그가 주의 말씀을 거역하여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조언을 구하여 그것을 묻고
(1Ch 10:13, NIV) Saul died because he was unfaithful to the LORD; he did not keep the word of the LORD and even consulted a medium for guidance, (대상 10:13, KJV) So Saul died for his transgression which he committed against the LORD, even against the word of the LORD, which he kept not, and also for asking counsel of one that had a familiar spirit, to enquire of it;
개역성경: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였다한글킹제임스역: 신접한 자에게 조언을 구하여 그것을 묻고킹제임스흠정역: 부리는 영을 지닌 자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그 영에게 묻고NIV: consulted a medium for guidanceKJV: for asking counsel of one that had a familiar spirit, to enquire of it
개역성경에는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한 것으로 되어 있고, 강신술에 심취한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부패한 사본에 기초하여 번역된 NIV는 영매(medium)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영매에게 가르침을 청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한글킹제임스역은 "신접한 자에게 조언을 구하여 그것을 묻고" 라고 했는데, 킹제임스흠정역은 "부리는 영을 지닌 자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그 영에게 묻고"라고 번역했습니다.
다른 역본들은 모두 사울이 "부리는 영을 지닌 자에게 조언을 구한 것"만 언급하고 있는데, 오직 KJV와 킹제임스흠정역만이 "사울이 그 영에게 물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같은 KJV를 기초로 하고 있는 한글킹제임스역과 킹제임스흠정역이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바로 "enquire of it" 이라는 구절의 번역입니다. 여기서 it을 물어본 내용으로 번역할 것인가, 물어본 대상으로 번역할 것인가의차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만약 한글킹제임스역과 같이 enquire of it에서 it 을 물어본 내용으로 간주하여 "그것을 묻고"라고 하려면, it 이라는 대명사가 지시하는 내용(예컨대, 사울이 물어본 그의 운명이나 전쟁의 승패 같은 것들)이 나와야 하는데 본문에는 사울의 질문 내용은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대명사라면 명사를 대신하여 받는 것인데그 대명사가 지칭하는 명사가 나와 있지 않다는 겁니다.
네이버 영어사전에서 enquire를 찾아보면 inquire를 찾아보라고 되어 있고, "inquire of …에게 묻다" 라는 숙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enquire of 가 들어가는 예문을 성경에서 찾아보면 아래와 같은 표현들이 많이 나옵니다.
(출 18:15, 킹흠정) 모세가 자기 장인에게 대답하되, 백성이 내게로 와서 하나님께 여쭈려 하기 때문이니이다.(출 18:15, KJV) And Moses said unto his father in law, Because the people come unto me to enquire of God:
이처럼 enquire of 는 "~에게 물어보다" 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따라서 "그것을 묻고"가 아니라,
"그것(spirit)에게 묻고"와 같이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한 가지 문제는 사울에게 나타난 것은 마귀였는데, 통상 마귀라면 he, 즉 enquire of him 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enquire of it 의 it 이 앞에 나오는 spirit 을 받는 대명사가 될 수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KJV의 내장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민 11:17, 킹흠정) 내가 내려와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 위에 있는 영을 취해 그들 위에 있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그것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라.(민 11:17, KJV) And I will come down and talk with thee there: and I will take of the spirit which is upon thee, and will put it upon them; and they shall bear the burden of the people with thee, that thou bear it not thyself alone.
(민 11:25, 킹흠정) 주께서 구름 가운데 내려오사 그에게 말씀하시고 모세 위에 있던 영을 취해 칠십 명의 장로들에게 주시니 그 영이 그들 위에 머물 때에 그들이 대언을 하고 멈추지 아니하였더라.(민 11:25, KJV) And the LORD came down in a cloud, and spake unto him, and took of the spirit that was upon him, and gave it unto the seventy elders: and it came to pass, that, when the spirit rested upon them, they prophesied, and did not cease.
(사 34:16, 킹흠정) 너희는 주의 책에서 찾아 읽어 보라. 이것들 가운데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자기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내 입이 그것을 명령하였고 그의 영이 그것들을 모았기 때문이라.(사 34:16, KJV) Seek ye out of the book of the LORD, and read: no one of these shall fail, none shall want her mate: for my mouth it hath commanded, and his spirit it hath gathered them.
(눅 8:29, 킹흠정) (이는 그분께서 이미 그 부정한 영에게 명령하사 그 사람에게서 나오게 하셨기 때문이라. 그 영이 자주 그를 사로잡으므로 그를 사슬과 족쇄에 묶어 두었으나 그가 묶은 것을 끊고 그 마귀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눅 8:29, KJV) (For he had commanded the unclean spirit to come out of the man. For oftentimes it had caught him: and he was kept bound with chains and in fetters; and he brake the bands, and was driven of the devil into the wilderness.)
(눅 9:39, 킹흠정) 보소서, 한 영이 그를 붙잡아 갑자기 소리를 지르게 하고 또 쥐어뜯어 다시 거품을 흘리게 하며 그를 상하게 하면서 좀처럼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나이다.(눅 9:39, KJV) And, lo, a spirit taketh him, and he suddenly crieth out; and it teareth him that he foameth again, and bruising him hardly departeth from him.
(요일 4:3, 킹흠정)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그 영이니라. 그것이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그것이 지금 이미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3, KJV) And every spirit that confesseth not that Jesus Christ is come in the flesh is not of God: and this is that spirit of antichrist, whereof ye have heard that it should come; and even now already is it in the world.
위 말씀들에서 보듯이 분명히 spirit 을 대명사로 나타낼 때에는 it 을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KJV의 enquire of it 을 "그 영에게 묻고" 라고 옮긴 킹제임스흠정역의 번역은 옳습니다.
KJV에는 분명히 "사울이 그 영에게 물었다"라고 되어 있는데, 왜 NIV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고 "영매에게가르침을 청하였다"라고 번역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NIV가 기초하고 있는 사본들이 바로 강신술에 심취한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변개한 사본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역대상 10:13에서 사울이 마귀와 접하여 그 영에게 묻는 (enquire of it) 죄를 엄중히 다루셨는데, 이들 강신술 숭배자들은 성경이 자기들의 죄를 지적하는 것이 못마땅하고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역대상 10:13의 enquire of it 은 사람이 마귀와 접하여 그에게 묻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무서운 죄라는 것을
지적하는 중요한 말씀이므로, 이 부분을 번역에서 누락시키거나, "그것을 묻고"와 같은 바르지 못한 번역으로 it 이 그 여인이 불러낸 영(spirit)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사울이바로 이 죄(그 영에게 물은 죄) 때문에 죽었다고 우리에게 경계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글
김용묵
이건 성경에서 대표적으로 논쟁거리인 주제로 알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형제님처럼 '가짜'일 것이었다.. 이다가 지금은 '진짜'일 것이다.. 에 조~금 무게가 더 실려 있습니다.
첫째, 구약 성도들은 어차피 아직 지하 낙원에 있기는 마찬가지. 이 문제가 해결된 게 결정적으로 작용했구요. 굳이 진짜 사무엘이라고 해서 하늘로부터 내려와야 할 필요가 없어졌죠. (애초에 승천한 에녹, 엘리야나, 훗날 주님께서 부활시키신 모세는 제외)
둘째, 그 여자 무속인은.. 마술을 걸다가 갑자기 "아니, 사울 왕이시군요 왜 저를 속이셨습니까!" ... 하면서 화들짝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자기는 평소에 하던 대로 눈속임수 가짜 영을 소환하려고 했는데(gods), 평상시와는 다른 진짜 거물이 걸려들어서 뭔가 눈을 떠서 놀란 게 아닐까요? http://www.chick.com/reading/tracts/5012/5012_01.asp "YAAAAH! He's not one of us! It's really Samuel! And he's no stranger! That's King Saul!" 물론 칙 전도지에도 이따금씩 비성경적인 각색이 없지는 않지만(날개 달린 천사처럼), 이 장면이 저는 설득력이 있다고 여깁니다. 사무엘도 있고 gods도 있습니다. ^^;;
셋째, 진짜 사무엘이 나타나 줬다고 해서 대상 10:13이 모순될 필요가 없다는 것.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영을 보내어 그에게 말씀하셨다고 해도 사울이 잘못한 건 잘못한 거 맞죠. 형제님의 말씀대로, enquire of it의 it은 부리는 영을 가리키는 게 명백합니다. 우림과 둠밈과 대언자로도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없자, 사울은 마지막 카드를 꺼내어 영적 배교의 최고조로 치닫습니다. 사울은 대상 10:13이 말하는 대로, 부리는 영에게 물으려고 무속인을 찾아갔는데 ... 하나님의 최후의 최소한의 자비인지 배려인지... 마귀 대신 진짜 사무엘이 뿅 나타나서 쓴소리 한 마디 해 준 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넷째, 좀 사소한 이유로는.. 성경에서 마귀가 무슨 뱀도 아니고 아주 의로운 인물로, 아무 힌트도 안 주고서 둔갑했다는 예가 없고요. '빛의 천사' 같은 구절이 있긴 합니다만, 직접적인 예는 아니죠.
또한 설령 저게 가짜였다고 할지라도, 사울에게 해 준 말이, 어차피 진짜 사무엘이 했을 말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내일 전쟁 결과에 대한 예언도 다 적중했구요. 더구나 그 사무엘은 사울에게 "내일 너와 내 아들들은 나와 함께 있으리라"(19절)라는 말까지 했는데... 요나단뿐만 아니라 사울도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사무엘이 그 당시 있던 곳은 낙원입니다. 그러니 저건 마귀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며, 최소한 마귀의 입장에서 거짓말로라도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입니다.
아무쪼록 저의 간단한 의견을 피력해 보았습니다. 저게 진짜 사무엘이었든 가짜 사무엘이었든 교리가 달라지는 게 아니며, 우상 숭배나 접신 행위가 나쁜 건 변함없습니다. ^^;;
휴거가 언제쯤 일어날 것 같나? 그때 침례 받은 교회 성도뿐만 아니라 아기들도 다 휴거될까? 휴거될 때 피는 다 쏟아놓고 올라갈까? 급의 상상의 날개를 펴는 질문이니 가볍게 그냥 재미로 봐 주셨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아, 저의 영문 닉이 사무엘입니다. 성경의 인물이고 새마을호와 발음이 비슷해서 지은 이름이죠. ㅎㅎ 이건 성경에서 대표적으로 논쟁거리인 주제로 알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저는 처음에는 형제님처럼 '가짜'일 것이었다.. 이다가 지금은 '진짜'일 것이다.. 에 조~금 무게가 더 실려 있습니다.
첫째, 구약 성도들은 어차피 아직 지하 낙원에 있기는 마찬가지. 이 문제가 해결된 게 결정적으로 작용했구요. 굳이 진짜 사무엘이라고 해서 하늘로부터 내려와야 할 필요가 없어졌죠. (애초에 승천한 에녹, 엘리야나, 훗날 주님께서 부활시키신 모세는 제외)
둘째, 그 여자 무속인은.. 마술을 걸다가 갑자기 "아니, 사울 왕이시군요 왜 저를 속이셨습니까!" ... 하면서 화들짝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자기는 평소에 하던 대로 눈속임수 가짜 영을 소환하려고 했는데(gods), 평상시와는 다른 진짜 거물이 걸려들어서 뭔가 눈을 떠서 놀란 게 아닐까요?http://www.chick.com/reading/tracts/5012/5012_01.asp"YAAAAH! He's not one of us! It's really Samuel! And he's no stranger! That's King Saul!"물론 칙 전도지에도 이따금씩 비성경적인 각색이 없지는 않지만(날개 달린 천사처럼), 이 장면이 저는 설득력이 있다고 여깁니다. 사무엘도 있고 gods도 있습니다. ^^;;
셋째, 진짜 사무엘이 나타나 줬다고 해서 대상 10:13이 모순될 필요가 없다는 것.하나님께서 사무엘의 영을 보내어 그에게 말씀하셨다고 해도 사울이 잘못한 건 잘못한 거 맞죠.형제님의 말씀대로, enquire of it의 it은 부리는 영을 가리키는 게 명백합니다. 우림과 둠밈과 대언자로도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없자, 사울은 마지막 카드를 꺼내어 영적 배교의 최고조로 치닫습니다. 사울은 대상 10:13이 말하는 대로, 부리는 영에게 물으려고 무속인을 찾아갔는데 ... 하나님의 최후의 최소한의 자비인지 배려인지... 마귀 대신 진짜 사무엘이 뿅 나타나서 쓴소리 한 마디 해 준 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넷째, 좀 사소한 이유로는..성경에서 마귀가 무슨 뱀도 아니고 아주 의로운 인물로, 아무 힌트도 안 주고서 둔갑했다는 예가 없고요. '빛의 천사' 같은 구절이 있긴 합니다만, 직접적인 예는 아니죠.
또한 설령 저게 가짜였다고 할지라도, 사울에게 해 준 말이, 어차피 진짜 사무엘이 했을 말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내일 전쟁 결과에 대한 예언도 다 적중했구요.더구나 그 사무엘은 사울에게 "내일 너와 내 아들들은 나와 함께 있으리라"(19절)라는 말까지 했는데... 요나단뿐만 아니라 사울도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사무엘이 그 당시 있던 곳은 낙원입니다. 그러니 저건 마귀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며, 최소한 마귀의 입장에서 거짓말로라도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입니다.
아무쪼록 저의 간단한 의견을 피력해 보았습니다.저게 진짜 사무엘이었든 가짜 사무엘이었든 교리가 달라지는 게 아니며, 우상 숭배나 접신 행위가 나쁜 건 변함없습니다. ^^;;
휴거가 언제쯤 일어날 것 같나? 그때 침례 받은 교회 성도뿐만 아니라 아기들도 다 휴거될까? 휴거될 때 피는 다 쏟아놓고 올라갈까? 급의 상상의 날개를 펴는 질문이니 가볍게 그냥 재미로 봐 주셨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아, 저의 영문 닉이 사무엘입니다. 성경의 인물이고 새마을호와 발음이 비슷해서 지은 이름이죠. ㅎㅎ 김문수 대답
저도 그럴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랍니다.
하지만, 마귀가 여인까지 속여넘겼을 수도 있고(그 여인에게 자기가 죽은 자를 불러낼 수 있는 능력을 마귀에게서 받았다고 믿게 함), 그 여인이 마귀와 한 패거리라서 일부러 놀라는 척 했을 수도 있습니다. 무당이나 점쟁이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 놀라는척, 무서운 척 합니다.
그리고, 여인이 부리는 영(마귀)이 그 여인에게 "널 찾아온 사람이 실은 사울이다"라고 말해줘서 여인이 깜짝 놀랐을 수도 있습니다. 놀랄 수 밖에 없지요. 사울이 마술사들과 부리는 영을 지닌 자들을 죄다 죽였는데(삼상 28:9), 이제 자기가 영을 부린다는 것을 사울 앞에서 직접 보여줬으니 이젠 꼼짝없이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죽는구나 생각하고 깜짝 놀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마귀는 이미 사울이 무슨 고민이 있는지 알고 있고,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라고 사울이 요구했는데, 이 정도 정보라면 사울이나 그 여인을 속이기는 아주 쉽지요. 겉옷 입은 노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만 해도 머리를 조아리게 되어 있습니다.
삼상 28:15과 대상 10:13을 대조해보면 사무엘의 모습을 한 것의 정체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삼상 28:15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위로 데려가려고 나를 요동시키느냐? 하니 사울이 대답하되, 내가 심히 곤궁하나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를 치려고 싸움을 일으켰고 하나님은 내게서 떠나사 다시는 대언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행할 일을 당신이 내게 알려 주도록 하기 위해 내가 당신을 불렀나이다, 하니라.
분명히 사울은 삼상 28:15에서 "사무엘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대상 10:13에 의하면, 사울은 "그 영에게" 물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대상 10:13, 킹흠정) 이같이 사울은 그가 주께 범한 범죄로 인해 죽었더라. 그가 주의 말씀을 거역하여 지키지 아니하였으며 또 부리는 영을 지닌 자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그 영에게 묻고 (대상 10:13, KJV) So Saul died for his transgression which he committed against the LORD, even against the word of the LORD, which he kept not, and also for asking counsel of one that had a familiar spirit, to enquire of it;
같은 구절 내에서 "그 영(it)"은 여인이 "부리는 영(a familiar spirit)"입니다. 그 여인이 평소 점치고 마귀들과 교제할 때 부리는 영은 "사무엘의 영"이 아닙니다. 어쩌다가 하나님의 대언자인 사무엘의 영이 이런 무속여인에게 걸려들어 부림을 받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영이 이런 여인에게 부림을 받게 하셨을 리가 없지요.
여러 다른 의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사울은 분명히 사무엘에게 물었다. 성경은 사울이 "그 영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영은 여인이 부리는 영이었다. 여인이 부리는 영은 마귀들이지 사무엘의 영이 아니다. 따라서 사울은 마귀들에게(gods) 물었다. 마귀들을 불러내어 그들에게 묻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무서운 죄다. 즉, 사울에게 나타난 것은 사무엘이 아니라 사무엘 행세를 하는 마귀들이다.
제가 성경에서 발견한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래서 여기까지만 믿고, 나머지 그 자세한 정황이나 과정 등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서 하나님께나 사무엘에게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오늘 하루도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그럴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랍니다.
하지만, 마귀가 여인까지 속여넘겼을 수도 있고(그 여인에게 자기가 죽은 자를 불러낼 수 있는 능력을 마귀에게서 받았다고 믿게 함), 그 여인이 마귀와 한 패거리라서 일부러 놀라는 척 했을 수도 있습니다. 무당이나 점쟁이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 놀라는척, 무서운 척 합니다.
그리고, 여인이 부리는 영(마귀)이 그 여인에게 "널 찾아온 사람이 실은 사울이다"라고 말해줘서 여인이 깜짝 놀랐을 수도 있습니다. 놀랄 수 밖에없지요. 사울이 마술사들과 부리는 영을 지닌 자들을 죄다 죽였는데(삼상 28:9), 이제 자기가 영을 부린다는 것을 사울 앞에서 직접 보여줬으니 이젠 꼼짝없이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죽는구나 생각하고 깜짝 놀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마귀는 이미 사울이 무슨 고민이 있는지 알고 있고,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라고 사울이 요구했는데, 이 정도 정보라면 사울이나 그 여인을 속이기는 아주 쉽지요. 겉옷 입은 노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만 해도 머리를 조아리게 되어 있습니다.
삼상 28:15과 대상 10:13을 대조해보면 사무엘의 모습을 한 것의 정체를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삼상 28:15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위로 데려가려고 나를 요동시키느냐? 하니 사울이 대답하되, 내가 심히 곤궁하나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를 치려고 싸움을 일으켰고 하나님은 내게서 떠나사 다시는 대언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행할 일을 당신이 내게 알려 주도록 하기 위해 내가 당신을 불렀나이다, 하니라.
분명히 사울은 삼상 28:15에서 "사무엘에게" 물었습니다.그런데 대상 10:13에 의하면, 사울은 "그 영에게" 물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대상 10:13, 킹흠정) 이같이 사울은 그가 주께 범한 범죄로 인해 죽었더라. 그가 주의 말씀을 거역하여 지키지 아니하였으며 또 부리는 영을 지닌 자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그 영에게 묻고(대상 10:13, KJV) So Saul died for his transgression which he committed against the LORD, even against the word of the LORD, which he kept not, and also for asking counsel of one that had a familiar spirit, to enquire of it;
같은 구절 내에서 "그 영(it)"은 여인이 "부리는 영(a familiar spirit)"입니다. 그 여인이 평소 점치고 마귀들과 교제할 때 부리는 영은 "사무엘의 영"이 아닙니다. 어쩌다가 하나님의 대언자인 사무엘의 영이 이런 무속여인에게 걸려들어 부림을 받게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영이 이런 여인에게 부림을 받게 하셨을 리가 없지요.
여러 다른 의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사울은 분명히 사무엘에게 물었다. 성경은 사울이 "그 영에게 물었다"고 한다.그런데 그 영은 여인이 부리는 영이었다. 여인이 부리는 영은 마귀들이지사무엘의 영이 아니다. 따라서 사울은 마귀들에게(gods) 물었다.마귀들을 불러내어 그들에게 묻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무서운 죄다.즉, 사울에게 나타난 것은 사무엘이 아니라 사무엘 행세를 하는 마귀들이다.
제가 성경에서 발견한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래서 여기까지만 믿고, 나머지그 자세한 정황이나 과정 등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서 하나님께나 사무엘에게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오늘 하루도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최형규
저도 예전에는 당연히 사무엘로 가장한 마귀의 속임수로 생각했지만 아래 포천교회 홍목사님의 글을 보고 그게 아니란 것을 알고 깨달았던게 있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알고 문자적으로 단순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써진 그대로 잘 믿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경우들은 킹제임스 성경을 알기전 가지고 있던 편견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킹제임스 성경에서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도 눈뜬 장님처럼 못본다는 사실을 말이죠.
삼상28장 15절 16절에서 분명 성경은 사무엘이 말했다고 합니다. 20절은 사무엘의 말이라고 합니다. 그냥 겉 옷 입은 노인이라고만 성경이 언급되어 있다면 여러가지 추정이 가능하겠지만 여기서는 전혀 추정이 필요 없습니다. 사무엘같은 노인이 말했다가 아닙니다. 너무도 분명하게 하나님은 성경에서"사무엘이 이르되"라고 기록하셨습니다.
여기서 사무엘의 혼인지 영인지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혼은 분명한데 구약시대 성도가 죽은 뒤 몸은 무덤에 있고 영이 혼과 함께 지하 낙원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삼상 28: 11과 12절 사이에 보면 사울이 여인에게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라고 요구하지만 12절에서는 바로 여인이 사무엘을 알아챈 것이 나옵니다. 즉 이 사이에 사무엘이 여인이 부리는 영의 힘으로 올라온 것인지의 기록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올라온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이 사건이 다른 영매들이 정말 다른 경우에도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 내는 것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아니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이 순간에만 사무엘의 영혼이 올라오도록 허락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인이 신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고 하는데 누가복음 나사로의 죽음에서 나사로가 천사들에 의해 낙원으로 옮겨졌다고 하듯 사무엘이 올라올 때 하나님의 허락으로 천사들이 사무엘과 동행하여 데려온 것이라고 저는 생각됩니다.
또 사울에 대해 대상 10:13에서 말한 것이 꼭 이번 사건이 아닐 수도 있고 이번 사건이라해도 사울은 부리는 영으로 점을 치라고 요구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이와 비슷한 제 다른 경우는 입다의 딸 사건으로 제가 여전히 개역성경식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김문수님의 글을 보고서야 최근에 처음으로 알았지요.
킹제임스 성경으로 "처녀됨을 인해 슬퍼했다고" 다시 읽었지만 그것이 입다의 딸이 불에 타 죽었다는 것을 슬퍼했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무심코 읽고 넘어가면서 입다의 딸이 당연히 불에 타 희생되었으리라 생각했었지요.
아래 홍목사님 글을 퍼 왔습니다. 참고 하시길...
광주에서 김선희 자매 --------------------------------------------------------------------------------- 조회 : 102 이름 : 홍성율 작성일 : 2002/02/14 오전 1:56:15
질문 : 삼상28장에 보면 초신자가 사무엘의 혼을 불러내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부분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한번 죽은 혼, 영은 주의 권세아래서 다시 어떤 무언가의 힘에 이끌려 나올 수 없다고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답변 : 삼상 28장은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지 않고 좋은 것들은 살려두므로서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었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꿈이나, 우림이나, 대언자로도 사울에게 대답하시지 않자 답답해진 사울은 부리는 영을 지닌 여인을 찾아가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고 합니다. 그에 따라 부리는 영을 지닌 여인은 사무엘이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부리는 영을 지닌 여인이 어떤 방법으로 사무엘을 불렀는지, 주문을 외웠는지, 말만 했는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기에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하 낙원에 있던 사무엘이 올라온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올라와 사울에게 하나님께서 사울의 원수가 되셨으며, 사울의 왕국을 빼앗아 다윗에게 주셨으며 사울은 내일 자신과 함께 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무엘의 말대로 다음 날 사울은 길보아산 전투에서 죽습니다.
이 부분을 이해하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전인 구약시대 성도들은 죽은 후 간 곳이 어느 곳인지 바르게 알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재 신약 성도들은 죽으면 혼이 셋째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의 성도들은 셋째 하늘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 지하 낙원으로 내려갔습니다. 지하 세계에 대한 것은 누가복음 16장에서 어떤 부자와 나사로의 죽음에서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서 어떤 부자와 나사로의 기록은 거의 대부분의 학자나 목사는 비유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비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 기록은 지하세계인 낙원과 지옥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해 줍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어떤 부자와 나사로의 상황을 사실 그대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떤 부자와 나사로의 상황은 율법이 적용되는 구약시대의 상황입니다. 이처럼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죽은 후에 지하의 낙원이나, 지옥에 간 것입니다.
어쨌든지 삼상28장에서 죽은 사무엘이 다시 나타났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을 불러 올릴 수 없다는 법을 세워 놓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다시 사울앞에 올려 보내신 것은 법을 어긴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는 것처럼 한번 죽은 혼, 영은 주의 권세아래서 다시 이끌려 나올 수 없다고 알고 있을지라도 성경의 기록은 한번 죽은 사무엘이 다시 나타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성경의 기록보다 더 믿을 만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성경의 기록을 믿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은 손바닥을 보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옳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믿는 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저도 예전에는 당연히 사무엘로 가장한 마귀의 속임수로 생각했지만아래 포천교회 홍목사님의 글을 보고 그게 아니란 것을 알고 깨달았던게 있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알고 문자적으로 단순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써진 그대로 잘 믿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경우들은 킹제임스 성경을 알기전 가지고 있던 편견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킹제임스 성경에서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도 눈뜬 장님처럼 못본다는 사실을 말이죠.
삼상28장 15절 16절에서 분명 성경은 사무엘이 말했다고 합니다.20절은 사무엘의 말이라고 합니다.그냥 겉 옷 입은 노인이라고만 성경이 언급되어 있다면 여러가지 추정이 가능하겠지만여기서는 전혀 추정이 필요 없습니다.사무엘같은 노인이 말했다가 아닙니다.너무도 분명하게 하나님은 성경에서"사무엘이 이르되"라고 기록하셨습니다.
여기서 사무엘의 혼인지 영인지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혼은 분명한데 구약시대 성도가 죽은 뒤 몸은 무덤에 있고 영이 혼과 함께 지하 낙원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삼상 28: 11과 12절 사이에 보면사울이 여인에게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라고 요구하지만12절에서는 바로 여인이 사무엘을 알아챈 것이 나옵니다.즉 이 사이에 사무엘이 여인이 부리는 영의 힘으로 올라온 것인지의 기록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올라온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이 사건이 다른 영매들이 정말 다른 경우에도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 내는 것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아니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이 순간에만 사무엘의 영혼이 올라오도록 허락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인이 신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고 하는데누가복음 나사로의 죽음에서 나사로가 천사들에 의해 낙원으로 옮겨졌다고 하듯사무엘이 올라올 때 하나님의 허락으로 천사들이 사무엘과 동행하여 데려온 것이라고 저는 생각됩니다.
또 사울에 대해 대상 10:13에서 말한 것이 꼭 이번 사건이 아닐 수도 있고 이번 사건이라해도사울은 부리는 영으로 점을 치라고 요구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이와 비슷한 제 다른 경우는 입다의 딸 사건으로 제가 여전히 개역성경식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김문수님의 글을 보고서야 최근에 처음으로 알았지요.
킹제임스 성경으로 "처녀됨을 인해 슬퍼했다고" 다시 읽었지만 그것이 입다의 딸이 불에 타 죽었다는 것을 슬퍼했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무심코 읽고 넘어가면서 입다의 딸이 당연히 불에 타 희생되었으리라 생각했었지요.
아래 홍목사님 글을 퍼 왔습니다.참고 하시길...
광주에서 김선희 자매 ---------------------------------------------------------------------------------조회 : 102 이름 : 홍성율 작성일 : 2002/02/14 오전 1:56:15
질문 : 삼상28장에 보면 초신자가 사무엘의 혼을 불러내는 내용이 나옵니다.이부분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요.한번 죽은 혼, 영은 주의 권세아래서 다시 어떤 무언가의 힘에 이끌려 나올 수 없다고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답변 : 삼상 28장은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지 않고 좋은 것들은 살려두므로서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었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하나님께서 꿈이나, 우림이나, 대언자로도 사울에게 대답하시지 않자 답답해진 사울은 부리는 영을 지닌 여인을 찾아가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고 합니다. 그에 따라 부리는 영을 지닌 여인은 사무엘이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부리는 영을 지닌 여인이 어떤 방법으로 사무엘을 불렀는지, 주문을 외웠는지, 말만 했는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기에 모르겠습니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하 낙원에 있던 사무엘이 올라온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올라와 사울에게 하나님께서 사울의 원수가 되셨으며, 사울의 왕국을 빼앗아 다윗에게 주셨으며 사울은 내일 자신과 함께 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무엘의 말대로 다음 날 사울은 길보아산 전투에서 죽습니다.
이 부분을 이해하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전인 구약시대 성도들은 죽은 후 간 곳이 어느 곳인지 바르게 알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현재 신약 성도들은 죽으면 혼이 셋째 하늘로 올라갑니다.그러나 구약 시대의 성도들은 셋째 하늘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 지하 낙원으로 내려갔습니다.지하 세계에 대한 것은 누가복음 16장에서 어떤 부자와 나사로의 죽음에서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서 어떤 부자와 나사로의 기록은 거의 대부분의 학자나 목사는 비유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비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 기록은 지하세계인 낙원과 지옥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해 줍니다.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어떤 부자와 나사로의 상황을 사실 그대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떤 부자와 나사로의 상황은 율법이 적용되는 구약시대의 상황입니다. 이처럼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죽은 후에 지하의 낙원이나, 지옥에 간 것입니다.
어쨌든지 삼상28장에서 죽은 사무엘이 다시 나타났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을 불러 올릴 수 없다는 법을 세워 놓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다시 사울앞에 올려 보내신 것은 법을 어긴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는 것처럼 한번 죽은 혼, 영은 주의 권세아래서 다시 이끌려 나올 수 없다고 알고 있을지라도성경의 기록은 한번 죽은 사무엘이 다시 나타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성경의 기록보다 더 믿을 만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성경의 기록을 믿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은 손바닥을 보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옳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믿는 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김문수 대답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의견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렸고, 저 역시 산 자와 죽은 자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신다면, 사무엘의 영을 보내어 사울에게 말씀을 전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삼상 28:14, 킹흠정) 사울이 그녀에게 이르되,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 하니 그녀가 이르되,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하니라.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자기 얼굴을 숙여 땅에 대고 절하니라.
위 말씀을 보면 사울은 "땅 속에서 올라온 신들(gods)"의 모습을 볼 수가 없고, 그 여인이 전해준 정보를 통해서 그를 사무엘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사울은 부리는 영을 가진 여인을 매개로 해서 그 신들(gods)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의 영을 직접 보내어 사울을 책망하신다면 사울이 확실히 알아볼 수 있도록 사무엘의 모습을 보여주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삼상 28:15, 킹흠정)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위로 데려가려고 나를 요동시키느냐?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보내셨다는 이야기는 없고, 그 땅속에서 올라온 사무엘이라는 존재는 사울이 그를 "위로 데려가려고"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심을 받은 사무엘이라면, "주께서 나를 보내사 너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느니라"라고 했을텐데, 오히려 그는 "왜 나를 bring up 했느냐"고 합니다. 이는 그가 자의로 올라오거나 혹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서 온 게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삼상 28:16, 킹흠정) 이에 사무엘이 이르되, 주께서 너를 떠나 네 원수가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삼상 28:16은 사울이 "사무엘에게" 물었다고 했고, 대상 10:13은 사울이 "그 영" = "부리는 영"에게 물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진짜 사무엘의 영은 그 여인이 부리는 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삼상 28:17-18 말씀은 이미 사무엘이 살아있을 때 사울에게 경고했던 내용이며, 마귀도 그 내용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 사무엘이 하는 말의 내용은 옳고 또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고 그 영을 진짜 사무엘이라고 섣불리 단정하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마귀도 가끔 맞는 말을 합니다. 부정한 영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으며(막 3:11), 점치는 영에게 사로잡힌 소녀도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을 구원의 길을 보여주는 자라고 널리 선전해 주었습니다(행 16:16-17).
성경은 "사무엘이 이르되"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주의 말씀이니 믿어야겠지요. 창세기 3:1에서 뱀이 여자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와가 만난 것은 뱀이고, 그녀는 뱀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저 뱀"의 정체가 용, 사탄, 마귀라고 합니다(계 12:9). 이것과 마찬가지로, 삼상 28:16은 사무엘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대상 10:13은 사울이 물어본 그 대상의 정체는 "부리는 영"이었다고 합니다.
일단, 하나님께서 진짜 사무엘의 영을 보내셔서 말씀하셨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의 주권 가운데서, 여인이 마귀를 불러 올려 사울을 미혹하게 하는 사건에 개입하셔서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사용하여 사울에게 경고를 주셨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는 하고자 하신다면, 나귀의 말도 사용하시고, 발람을 통해서도 복을 선포하시고, 믿지않는 대제사장의 말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양을 희생물로 바치려면, 그 희생물이 주께 바치기에 적합한 지 제사장이 판정을 내려줘야 합니다. 요 11:49-52에서 가야바는 "백성들을 위하여 예수를 죽여야 한다"고 선언했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민족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죽기에 합당한 희생물임을 대제사장의 입으로 공식적으로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부리는 영을 지닌 여인과 마귀들도 주께서 그 분의 절대주권 가운데서 이렇게 사용하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역대상 10:13의 번역에 대한 문제는 옳고 그름의 문제이지만, 삼상 28장에 나오는 사무엘의 영에 대한 부분은 저의 의견으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2009-09-03 15:41:40 | 관리자
8월 28일 북수원교회에 다녀왔습니다.
김승학안수집사라는 분의 발표가 있었는데
이분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왕자 주치의로 15년간 있었고 거의 20년간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고, 이 분이 현지에서 조사한 결과 현재 시내산의 위치가 잘못 지정되어 있고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는 자발 알 라우즈산이 실제의 시내산이라고 합니다.
http://www.sinaimount.com/index.html
에 가보면 자세한 내용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일부를 퍼왔습니다.
시내광야와 시내산
시내광야와 시내산(N28'35"42/E35'20"05)으로 간주되는 지역에는 산 아래 시내 산에서부터 흐르는 물줄기가 세 갈래로 흐르고 있으며 산 아래 광야에는 사우디 정부에서 고고학지역(N28'34"53/E35'23'46)이라는 간판과 함께 110x50m의 철망으로 감싼 금송아지를 올렸던 단이 있다. 그 단에는 애굽신 하토르가 12마리나 암각되어있다. 또한 765m의 철망으로 산 전면을 고고학 간판과 감싸고 그 안에는 성막을 쳤을 것으로 확실시되는 성막터(N28'35"03/E35'22"44)와 그 주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날 때 하나님의 명령으로 12지파를 기념하는 12개의 돌기둥이 아직도 뒹굴고 있다.
시내산 봉오리 아래에는 호렙동굴이라 할 수 있는 동굴이 산 아래를 내려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특히 희생제를 드린 곳에는 성경말씀처럼 들어가는 입구가 동으로 향하고 동물들을 불태워 재를 모아 둔 곳과 불에 그은 흔적들이 역력하다. 단순하게 쌀을 쌀이라 하고 콩을 콩 이라하자 는 단순한 논리일 것뿐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더 큰 사진으로 상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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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이 애굽의 시나이반도가 아니라 미디안이라는 증거
1.출2:15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머물며 2.출3:1미디안 제사장 양 무리를 치더니 광야 서편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3.출3:12 내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4.출4:18 애굽에 있는 네 형제들에게로 5.출4:19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생명을 찾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6.갈4:25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은 지금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시내산이 시나이반도의 부적합성
고센땅에서 자발무사(시내산)까지 애굽땅이다. 가까운 곳에서 11개월5일간 지낼 수 없다. 시나이반도는 미디안 광야가 아니고 애굽 땅이었다, 시나이반도는 침범당하여 남의 땅이 된 적이 없는 애굽 땅이다. 모세는 주위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6일 전쟁 후 15년간 조사 착수 후 관련증거 없음. 르비딤과 호렙산 사이 48km는 비성경적이다.(출17:6) 시내산 앞에는 2만명도 앉을 자리가 없다. 홍해를 건넌 자리가 없다.
시내산에 있어야할 것들
엘리야동굴: 왕상19:9
산주위지경: 출19:12
성막친 장소: 출26
12돌 기념기둥: 출24:4
바위틈: 출33:22 시94:22,왕상19:11
산에서 흐르는물: 신9:21
금송아지단: 출32
참고문헌
References and Bibliography 1.The British Museum (1997)
2.The Louvre (1990) Egyptian Antiquities Editions Scala Christiane Ziegler -General Curator in charge of the Department with the collaboration of Marie-Helene Rutshowscaya
3.Off-Road in the Hejaz (1997) Patric Pierard and Patrick Legros
4.Prehistoric Rock of Northern Saudi Arabia (1993/1414) Majeed Khan Ministry of Education Department of Antiquities and Museums Kingdom of Saudi Arabia
5.THE ROCK ART OF ARABIA (2000) SAUDI ARABIA OMAN, QATAR, THE EMIRATES & YEMEN DR. MUHAMMED ABDUL NAYEEM Department of Archaeology and Museology College of Arts, King Saud University Riyadh HYDERABAD PUBLISHERS
6.이집트 (1997) 아바스 칼라바이 한국어판 BONECHI
7. STORIES OF THE PROPHETS FROM ADAM TO MUHAMMAD (1997) (PEACE B UPON THEM) By- AHMED BAHGAT Translated by: Sheikh Muhammad Mustafa Gemea'ah Office of the Grand Imam, Sheikh Al-Azhar By- Islamic Home Publishing and Distriution
8.Gods and Pharaohs of Ancient Egypt (1998) Ancient Cultures Published by Grange Books
9.Desert Treks From Jeddah (1996) Patricia Barbor Stacey International
10.The Gold Of Exodus (1998) Coronet Books Hodder and Soughton Howard Blum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8:07:1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08-31 11:11:38 | 허광무
여자가 긴 머리를 하면 집회에서 굳이 너울이나 모자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고전11:15). 긴 머리가 덮는 것을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개역성경이 '덮다'(cover)를 '쓴다'(put on)로 번역한 데서 나옵니다.
다음의 성경 구절을 편견 없이 그냥 읽어 보기 바랍니다. 15절을 보세요.
천주교나 성공회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교회만 무엇을 쓰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에는 그런 풍습이 없습니다(16절). 여자는 적당히 머리를 길게 하면 그게 곧 머리를 덮는 것입니다. 이제는 무엇을 입고 안 입고로 영적인 자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그런 것이 철폐되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예의를 지키기 위해 단정하게 하고 예배를 드릴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시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니라.
4 머리를 덮은 채 기도하거나 대언하는 남자는 다 자기 머리를 욕되게 하거니와
5 머리를 덮지 않고 기도하거나 대언하는 여자는 다 자기 머리를 욕되게 하나니 그것은 그녀가 머리를 민 것과 전적으로 같으니라.
6 만일 여자가 머리를 덮지 않거든 또한 깎을 것이로되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수치가 되거든 덮을지니라.
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영광인즉 참으로 자기 머리를 덮지 않는 것이 마땅하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창조되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창조되었나니
10 이런 까닭에 여자는 천사들로 인하여 마땅히 자기 머리 위에 권능을 두어야 하느니라.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안에서는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고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아니하니
12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또한 여자로 말미암아 났느니라.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13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덮지 않은 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합당하냐?
14 만일 남자가 긴 머리를 가지면 그것이 그에게 수치가 되는 것을 본성 그 자체도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 그러나 여자가 긴 머리를 가지면 그것이 그녀에게 영광이 되나니 여자의 머리는 덮는 것으로 주어졌느니라.
16 그러나 어떤 사람이 논쟁하려 할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교회들에는 그런 풍습이 없느니라.
2009-08-25 18:05:23 | 관리자
성경을 읽다가 여자들의 머리에 쓰는것에 대한 구절을 접하고, 궁금해서 질문드립니다...
신약성경을 읽다가 여자들의 머리가 긴것은 영광이 되고,
수건은 긴머리를 대신하여 쓰는것이라고 나와있는데,
현제, 예배나 기도시간에 머리에 수건을 쓰는 교회가 있는것으로 아는데,(신약교회인가? )
그렇다면, 그들은 성경을 그대로 지키는것이 될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않는 교회, 성경 그대로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는 교회
어느게 더 성경적이 되는건지 알고 싶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8:09:3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08-25 15:34:44 | 윤혜정
글쓰기 세미나라도 한 번 개최하면 어떨지요. 살아 있는 글쓰기.
2009-08-17 08:04:14 | 김재근
사람은 짐승과 달리 글로 자기의 모든 것을 표현합니다. 어려서부터 글을 잘쓰는 연습을 하면 평생토록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저는 기계쟁이로 교육을 받아 글을 잘 못 씁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글의 묘미와 힘을 많이 느낍니다. 우리 근본주의 성도들 가운데서도 글을 잘 써서 하나님의 진리를 통괘하게 전달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면 좋겠습니다. 특히 우리의 아이들이 좋은 글을 잘 쓰면 너무 좋겠습니다.
며칠 전에 제가 보는 전문 잡지에 다음의 글이 실렸습니다. 글쓰기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면서 한 번 읽어 보면 좋을 것 같아 허락을 받고 올립니다.
포스와 내공
강신호: 한전KPS(주) GT정비기술센터 고온부품팀장
요즘 흔하게 쓰는 말 중에 ‘포스가 느껴진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포스’는 선과 악의 균형을 다스릴 수 있는 강력한 힘의 대명사로서 영화 스타워즈 중 대사에 등장한다. 말 그대로 외부로 발산되는 독특한 기운(氣運)이나 힘을 의미한다. 또 개성이나 의지, 심지어는 추구하고자 하는 것에의 열망 등을 함축해서 사용할 수 있는 말이다. 기존에 널리 쓰이던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대신하여 사용되기도 하지만, 카리스마가 지배구조의 수직성이나 권위로부터 나오는 힘이라면 포스는 수평적인 관계에서의 힘마저도 표현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다양하고 보편적이다. 비슷하게 쓰일 수 있는 말로 무협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공력(功力) 이나 내공(內功)이라는 단어도 생각할 수 있다. 공력이 안과 바깥 모두로부터 발휘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면 내공은 안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즉 실체를 알 수 없는 힘을 통칭하면서 ‘수양과 단련의 깊은 정도’를 표현하는 말일 게다.
갑자기 뜬금없이 영화나 무협지에서나 나오는 단어들을 나열하고 있으니 글머리의 분위기가 다소 경직되는 듯도 하지만, 사실 진짜 의도는 언어를 통해 주고 받을 수 있는 의미들의 발랄함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싶어서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 중에는 굳이 ‘포스’나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의사소통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 ‘제법인데’라거나 좀 더 구체적으로는 ‘힘이 있네’ 라고만 해도 충분히 느낌을 표현할 수도 있고 알아들을 수도 있는데, 우린 굳이 색다른 단어를 찾아내어 쓰고야 만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포스는 외국영화를 통해서 알려진 단어이다. 공력이니 내공이니 하는 말도 무협소설을 통해서나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작품을 즐겼던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고 되새김되던 단어들이 언제부터인가 유행을 타면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대중들에게 단어가 주는 의미 이상의 상상력을 제시하고 있다. 대부분은 보편성과 일상적인 것으로부터의 탈피가 주는 즐거움과 통쾌함을 느끼게 해준다. 너무나 잘 알려진 어휘밖에 쓸 수 없다면 얼마나 따분하고 식상할 것인가.
사람들 사이의 대화가 서로 할 말만을 주고받는 행위일 뿐이라면 그런 관계는 너무 건조할 것이다. 마치 기계나 로봇 시스템을 제어할 때처럼 명령어 몇 줄 입력해주면 되는 식의 관계라면 그건 제대로 된 인간관계가 아니다. 다행히 인간의 지적 감성적 능력은 상대방의 혀끝으로 발음되는 몇 가지 단어들로도 많은 정보를 상상하고 받아들일 수가 있다. 단지 상대방의 발음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구사한 단어들의 의미와 느낌으로부터 밝고 어두운 측면, 기쁘고 슬픈 측면, 선하고 악한 측면 등을 가려낸 뒤, 대응하기 위한 단어들을 찾아내기 시작한다. 극도로 짧은 반응시간 내에 자신이 판단한 내용을 근거로 적절한 단어들을 조합해내고 얼굴 표정과 몸짓, 목소리의 톤을 바꾸어가면서 자신의 의도와 감정으로 표현한다. 이때 대화를 윤택하고 부드럽게 해주는 요소들을 얼마나 많이 담고 있느냐에 따라 대화의 질과 깊이가 달라진다. 다양하고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담은 적당한 용언들을 분위기나 상태에 따라 제때에 사용할 수 있다면 그는 진정한 언어의 마술사이다. 그저 의미만을 전달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쉬우면서도 짧은 말로써 듣는 사람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다면 더 바랄나위가 없다. 그렇다고 무슨 시구처럼 미사여구를 섞어야 한다거나 은유법과 같은 기교를 부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진부하거나 사무적인 분위기로 흐르기 쉬운 대화 도중에 신선하면서 톡 튀는 단어로 상대방의 감성을 자극한다면 대화의 과정이나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자주 보는 TV 드라마들은 배우들을 통해 의도한 내용을 전달하는데, 화려한 대사로 시청자들을 웃게도 울게도 만든다. 유창하고도 논리 정연한 대화들이 오가면서 감정이 빠르게 전달되다보면 보는 이들은 어느새 극중 상황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배우들의 연기능력에 따라 감동의 깊이는 더해진다. 웃기는 장면에서는 기발한 대사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드라마나 개그프로그램 등을 통해 세상에 소개되는 유행어들은 시대적 상황을 담거나 대중 정서와도 일치할 때 더욱 반향이 크고 수명이 길어진다. 다양한 신조어나 줄임말의 등장과 활용 또한 사회적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를테면 핸드폰과 컴퓨터가 폭 넓게 보급되어 다양한 통신매체로서의 구실을 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러한 통신매체들은 온전한 문장을 주고받을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 속성을 지녔다. 시간과 비트(bit) 수를 제한하고 쓴 것만큼의 비용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환경 속에서 기존의 질서가 갖는 헤게모니는 무의미하다. 만일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격식과 맞춤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못 박는다면 당장 컴퓨터와 핸드폰의 활용이 위축될 것이다. 때문에 현명한 유저들은 신조어나 줄임말과 같은 대안을 만들어 내었다. 가장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단어와 감정을 전달하게 위한 온갖 궁리의 결과인 것이다. 이는 톡톡 튀는 창의력이나 감성의 순발력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며, 당시의 문화와 정서에 동화되어 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혹자는 인터넷 속어나 신조어가 난무하는 문화적 현상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어법을 무시하면서 만들어진 만큼 우리말의 존속 자체가 위협받는다는 위기의식 때문이기도 하다. 충분히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조어와 유행어가 담고 있는 재치와 새로운 정서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왜냐면 언어란 감정을 담는 그릇과도 같기 때문이다. 어떤 그릇을 만들어서 어떻게 쓸 것인가는 사회적 수요층의 공감대에 의해 결정되어진다. 물론 수요층이 다양한 만큼 모두의 공감을 얻지 못한 상태로 생겨난 그릇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그릇들은 밑이 좁거나 깊이가 얕아 많이 담지 못하는 그릇이다. 즉 그릇의 생김과 크기에 따라 담기는 감정의 양과 전달되는 형식이 달라질 것이고 대화와 교류의 성격도 달라질 것이다. 그럴 바에야 이왕이면 재미있고 식상하지 않은 그릇들이 많은 편이 사회를 밝게 만드는데 기여하는 게 아닐까. 여유와 재치가 넘치는 사람과의 대화가 좀 더 즐겁듯, 밝은 표정으로 늘 진지한 사람과의 만남이 더욱 기다려지듯이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만 그럴 것이 아니라 나 또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나의 재치와 유머 수준 자체가 동떨어져 있어서는 통할 수 없는 노릇이다. 상대방에 집중하는 총기 있는 눈빛과 매너를 통해서 만남을 유쾌하게 만들려는 진지한 의지가 마구 발산되어야 한다. 최소한 이 정도의 ‘포스’와 ‘내공’도 없이 남들이 그래주기만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2009-08-15 12:02:30 | 관리자
방언...
저도 아직 못하고 있습니다만,,,
헤븐리터치 사이트의 손기철 장로의 치유집회시의 방언과 예언을 보면서
결정을 보류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심사숙고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009-08-14 12:23:00 | 박준화
율법주의를 부수는 것은 결코 무법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예수 그리스도의 신약 교회에 대한 확신과 신약시대에 성행하는 율법주의로 인한 페단 등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우리의 과거와 율법주의를 부수자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고 글도 쓰고 책들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저 사람이 혹시 완전히 무정부주의자 혹은 세상이 말하는 자유주의자가 된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스러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의 자유는 결코 무정부 상태나 무법주의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른 것을 가르쳐 주면 꼭 반작용으로 무정부 상태나 무법주의가 생겨납니다.
예를 들어 구약의 신정 정치 하에서의 십일조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가르치면 꼭 헌금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만 따서 말을 전하거나 퍼뜨립니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목사들이 성도들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었으므로 우리가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개의치 않고 노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증거 구절로 내민 것은 이사야서 54장 9-10절이었습니다.
9 이것이 내게는 노아의 물들과 같으니라. 내가 다시는 노아의 물들이 땅을 덮지 못하게 할 것을 맹세한 것 같이 네게 노하지 아니하며 너를 꾸짖지도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나니 10 산들이 떠나가고 작은 산들이 움직일지라도 내 친절이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내 화평의 언약도 움직이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주}가 말하노라.
구원받으면 우리가 죄를 져도 하나님이 근심하지도 않고 노하지도 않는다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이것은 극도의 방종으로 사람을 몰아넣는 마귀의 교묘한 가르침입니다.
자, 지금 하나님이 누구에게 이 말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지금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의 너는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앞뒤 문맥을 보면 신약시대가 지나 주의 날이 이르러(즉 재림이 이르러) 이스라엘이 완전히 회복된 시점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서 이스라엘이 천년왕국 속으로 들어가는 내용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비록 과거의 오래 기간에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을 당했지만 이제 온 민족이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들인 뒤에는 더 이상 그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구절을 인용해서 구원받은 사람은(교회는) 죄를 지어도 더 이상 하나님이 근심하거나 노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있으니 얼마나 답답한지 모릅니다. 신약과 구약을 바로 나누어야 한다고 열렬히 외치는 자들이 이렇게 성경을 오용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엡4:30).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이런 말씀을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았어도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영이 슬퍼하고 근심합니다.
이것은 부모의 심정과도 같은 것입니다.
왜 성도들이 이런 것을 가르치는 협잡꾼들에게 넘어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율법주의를 배격합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것들은 율법주의가 아닙니다.
1. 구체적인 하나님의 명령들에 순종하는 것(요일2:3-4). 십계명의 대부분(안식일 제외)2. 주님을 섬기기 위해 거룩한 삶을 사는 것(살전4:3, 7), 술, 담배 안하고 청결하게 사는 것 등3. 예수님을 위해 자신을 분리하고 세상의 풍조에 따르지 않는 것(롬12:2), 록 음악, 옷, 세상 문화4. 지역 교회에서 성령님의 인도 하에 지도자들이 정한 규례를 따르는 것(행15:29), 방언 안하고 교회에 깨끗하게 옷입고 가는 것 등 5. 형제를 위해 내 권리를 포기하는 것(롬14:21)6. 인륜을 지키는 것
구원받았으니 규칙도 없고, 헌금도 없고, 인륜도 없고, 교회 모임도 없고 모든 것에서 자유롭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속히 그들에게서 멀리 떠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방종에 이르도록 우리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물을 흐려놓으니 예수님 안에서의 참 자유를 이야기해도 다 이상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곧 교회니 "교회에 가자"는 말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교회에 가자"고 할 때의 교회는 교회 모임을 말하지 "예수님의 몸"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 같은 말의 유희를 가지고 사람을 속이려 드는 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신약 성경의 자유는 결코 무법주의가 아닙니다.
자유하기 때문에 오히려 금하고 가릴 것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속된 것과 거룩한 것을 바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성장합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릅시다.
이런 협잡꾼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합시다.
2009-08-12 12:08:06 | 관리자
예수님이 곧 오실 징조들
지금으로부터 꼭 1천년전인 1009년, 이집트를 중심으로 하는 당시의 이슬람권을 지배하고 있던 파티마 왕조의 괴짜 왕(칼리프) 알 하킴은 느닷없이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에 있는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er)와 그 부속 건물들의 파괴를 명한다. 성묘교회는 그로부터 30년 후 복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훗날 약 2백년간 지속된 십자군 원정의 빌미가 된다.
지난 6월 12일 이란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가히 부정선거의 백미였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이 선거 아닌 선거의 후폭풍으로 테헤란을 비롯한 이란의 곳곳에서는 수백만의 인파가 거리로 몰려나가 연일 시위를 벌였고, 극심한 유혈사태로까지 치달았다. 1979년, 친미 절대군주였던 팔레비를 쫓아내고 백발의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를 최고지도자로 옹립했던 이슬람 혁명 이래 최대의 민중봉기였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 지난 30년간 지구 위에 가져온 변화는 돌이켜보면 정말 커다란 것이었다. 무슬림들은 모하메드 사망 직후부터 거의 천년 동안이나 유럽을 압도하는 세계적인 패권과 찬란한 문화를 누렸던 과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서는 서구의 식민통치 아래서 기를 펴지 못한 채 지내왔다. 그 결과로 오늘날 많은 비이슬람권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슬람의 이미지는 ‘미개한 아랍 유목민들의 종교’ 정도로 격하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그런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미국을 몰아내고 수백년 만에 외세의 도움이 없이 순수한 이슬람만의 이름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한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어떤 영향을 미쳤겠는가? 아마도 전 세계 10억 무슬림들에게 신선한 충격 그 자체이자, 집단 카타르시스 이상의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이란에서 일어났던 그 해 말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다. 소련군 역시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자헤딘이라는 이슬람 전사들에게 끊임없이 시달리다가 결국은 10년 만에 피눈물을 머금고 철수를 하였고, 이는 간접적으로 구소련의 붕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후 아프가니스탄에도 이란의 신정체제 못지않은 이슬람 근본주의 정부인 탈레반 정권이 들어섰음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바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한 줌도 안 되는 이슬람 전사 무자헤딘에 의해 막강한 무력을 자랑하던 소련군이 쫓겨나고 급기야는 무신론을 신봉하던 소련제국이 통째로 무너지는 계기가 된 이 사건은 앞서 이란의 이슬람 혁명보다 더 큰 반향을 전 세계 무슬림들의 영혼 속에 불러왔다. 우리가 잘 아는 알 카에다나 오사마 빈라덴은 바로 이 사건이 빚어낸 부산물들이다.
결국 이 두 사건을 축으로 하여 지난 30년간 세계는 미·소간의 냉전체제에서 기독교 혹은 서구문명과 이슬람 문명 간의 충돌로 패러다임이 바뀌어버렸다. 지난 수백년간 깊은 잠을 자고 있던 이슬람이 드디어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는 오일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돈을 전 세계적으로 뿌리며 수없이 많은 마드라사 신학교를 세계 방방곡곡의 가난한 무슬림 지역에 지어주고 있다. 이 마드라사 신학교에서는 일반 교양과정은 거의 가르치지 않고, 대신 가장 보수적인 이슬람 교리 가운데 하나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즘을 어릴 적부터 집중적으로 주입시킨다. 이러한 추세는 그 추구하는 이상으로 볼 때 와하비즘의 행동부대라고 할 수 있는 알 카에다와 오사마 빈라덴의 등장으로 지난 20년간 더욱 가속화되어왔다.
그 덕에 오늘날 이슬람은 외형적으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종교일 뿐만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가장 강력하게 결속되고 있는 집단이 되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그 성숙도마저 무르익어 이슬람 혁명 후에 태어난 30세 이하 인구가 70퍼센트에 달한다는 이란에서는 그 이슬람 신정체제를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보다 많은 자유를 갈망하는 욕구가 하루에 2백만이나 되는 인파를 테헤란 거리로 내보내게까지 된 것이다. 이 사건을 두고 성급한 서방 언론에서는 풀뿌리 차원의 민주화 운동이 시작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보다 더 현실적인 시각은 아마도 이슬람 혁명 30년 만에 보수와 개혁으로 분리된 두 대표 세력 간의 내부투쟁이 본격화된 것으로 보는 ‘이란 이슬람 혁명의 제2 단계론’일 것이다.
어떤 시각이 더 정확한 것인지는 몰라도 이 사건으로 분명해진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그동안 보수·강경화 일변도로만 치닫던 이슬람 문명의 확장 가도에 앞으로 큰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음을 이번에 이란의 젊은 무슬림들이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와하비즘과 알 카에다로 상징되는 폭력적, 퇴행성 이슬람주의에 맞서 이슬람 안에서도 폭넓은 자유와 공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진취적인 기운이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싹트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서구인들이 이슬람에 대해 거의 무지한 것에 비하면 오늘날 중동의 많은 젊은이들은 할리우드에 푹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서구지향적인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중동판 베이비부머라고 할 수 있는 30세 혹은 25세 이하의 젊은 층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상 때문이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강퍅해진 사람들의 마음 밭을 갈아 옥토로 만들기 위한 준비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순수한 이슬람 신앙심마저 퇴색해가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 간의 충돌이 오늘날의 역사현실을 대변해 주는 화두라면 이슬람을 아는 일이야말로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당면한 숙제 중의 숙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막상 이슬람에 대해 너무도 아는 바가 없다. 이슬람과 기독교 간에 다른 점들을 열거하기에 앞서 공통된 부분들을 먼저 열거해보면 이슬람은 놀라울 정도로 우리와 가까운 영적 집단이다. 이 때문에 초기에는 이슬람을 기독교의 이단 교파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우선 그들은 아브라함(이브라힘―이하 괄호 안은 기독교 용어의 코란식 표기)을 믿음의 조상으로 알고 있으며, 아담(아담), 이브(하와), 노아(누후), 욥(아윱), 야곱(야쿱), 모세(무사), 아론(하룬), 다윗(다웃), 솔로몬(술레이만), 요나(유누스), 엘리야(일리야스), 엘리사(알야사), 스가랴(자카라), 에스겔(둘키플), 세례요한(야히야), 예수(이사) 등 모든 신·구약 인물들을 인정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로 기록된 5가지 거룩한 책을 인정하는데 유실된 아브라함서, 구약(토우라), 시편(자불), 신약(인질), 그리고 천사 가브리엘(지브릴)을 통해 하나님이 모하메드에게 암송하도록 명한 코란이 그것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유대교, 기독교와 더불어 유일신을 믿는 종교인 이슬람에서 말하는 알라는 하나님, 즉 God이라는 뜻의 아랍어로 히브리어의 엘, 엘로힘과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이다. 예수님에 대해서는 그가 메시야(마식)이자 하나님의 말씀이셨음, 동정녀 탄생, 복음서의 기적들, 승천하셨음과 지금은 하나님 곁에 계심을 믿는다.
그러나 물론 이슬람에는 기독교와 크게 다른 점들이 있다. 철저한 유일신 신앙인 이슬람이 기독교에 대해 가장 크게 반발하는 부분은 삼위일체론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고 신격화하게 되면 유일신 신앙을 저버리는 결과가 된다는 논리에서이다. 이를 두고 어떤 기독교 학자들은 모하메드가 살아있을 당시 존재했던 ‘성부, 성모, 성자의 삼위일체론’에서 유래된 이단의 오류가 코란에 반영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즉 예수님을 하나님과 마리아가 육체적인 관계를 맺어 태어난 아들로 보는 관점이 삼위일체론으로 오해된 채 이슬람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독교 학자들의 주장이지 이슬람권에서도 인정받는 이론은 아니다. 그러나 코란에서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말씀이시자,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라고는 한다.
또 한 가지 크게 다른 점은 코란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그런 것처럼 보인 것일 뿐이며, 실제로는 결코 사람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시지 않았다고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그 후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셨고 하나님 가까이에 계시다가 다시 이 세상에 오신다고 되어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이슬람이 인간의 원죄와 죄사함의 필요성을 교리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음과 일맥상통한다. 이슬람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하늘나라의 낙원에서 사탄(이블리스)의 유혹에 빠져 죄를 짓고 난 후 하나님께 자복하고 용서를 받은 다음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이 땅 위에 보내심을 받아 내려왔다고 믿는다. 따라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에 절대 복종함으로써 평화를 누리고, 사탄을 따라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마지막 날 인류 전체에 대한 심판이 있을 때에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이슬람의 구원론이다.
여기에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함께 믿고 기다리는바 궁극적인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슬람에서도 마지막 날 심판이 있을 것이며, 그 때에 예수님이 심판주로 재림하실 것을 굳게 믿는다는 점이다.
우리 주변에는 지난 2~3년간 예수님이 곧 오실 징조들이 부쩍 많이 눈에 띄고 있다. 유대인들은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자신들이 지었던 죄를 애통해 할 것으로 성경은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이 신약성경의 완성 이후에 생겨난 종교인만큼 무슬림들이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성경에 언급이 되어있지 않다. 과연 무슬림들은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어떤 마음을 가질까? 그때 우리는 그 무슬림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무엇보다 중요하기로는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무슬림과 우리들을 각각 어떻게 보실까? 곧 오실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한번쯤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이다.
(필자는 최근 방글라데시에 다녀왔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무슬림에게 보내심을 받고 이슬람권으로 나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2009-08-12 12:01:26 | 관리자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성경 말씀을 주신 것은
검증과 분석을 위해서가 아니라, 믿고 순종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킹제임스성경을 알고 나서 깨달은 점들과 다른 번역본과 차이점을 비교하면서
분석하는 것 역시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고, 그 분의 뜻대로 순종하기 위함이랍니다.
2009-08-08 21:48:18 | 김문수
균형있는 생각과 삶에 대해 무게를 주는 글이네요.
은혜와 진리 ...끊임없이 추구해야할 과제인 것 같아요.
2009-08-08 17:10:16 | 정혜미
우연히 남편의 책상에서 이 책을 보고 읽게 되었는데, 제 자신을 돌아보며 많은 부분 자극을 받게 되었습니다. 신앙과 삶의 일치를 추구하는데 있어 조나단 에드워즈의 일생은 많은 부분 도전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무더운 여름을 이기시는데 있어서 한 번 쯤 읽어 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되어 올려봅니다.
2009-08-08 13:44:22 | 김경민
에드워즈는 자신의 64번째 결심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바울 사도가 말하는 '말할 수 없는 탄식'과 시편 기자가 시편
119장 20절에서 말하는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하는 마음' 이 내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있는 힘을 다하여 이것
들을 향상시키도록 하자. 또한, 나의 소원을 아뢰기 위해 간절히 노력하는 것이 약해지지 않도록 그리고 그러한 열심을
반복적으로 내는 것이 약해지지 않도록 하자."
말하자면, 애드워즈는 하나님에대한 지식을 계발하는 만큼이나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열정을 개발하는 것에 힘을 기울
였습니다. 에드워즈는 진리만이 아니라 더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서 자신의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 결심문 30번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주보다 신앙과 은혜를 실천하는 삶이 더 나아지도록 매주 노력하자."
그리고 에드워즈에게 있어서 이러한 진보는 아주 실제적인 것이었습니다. 에드워즈는 성도들에게 자신이 추구했던 바
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수갈채를 받거나 다른 사람과의 논쟁 능력을 기르기 위해 지식의 성장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반대로 여러분의 영혼의
유익을 위해 그리고 실천......
여러분이 가진 지식에 맞게 실천하기 위해 추구하십시오. 시편 119장 100절에 의하면 이것이 더욱 지식을 얻는 방법입니
다.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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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존 파이퍼의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 & 조나단 에드워즈의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 - 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출판사 부흥과 개혁사)[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8:08:2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08-08 13:34:39 | 김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