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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침례자 요한.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달려간 사람으로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아들이고 예수님보다 여섯 달 먼저 태어났다(눅1:26). 구약의 여러 성경 구절이 침례자 요한에게서 성취되었다(사40:3; 마3:3; 말3:1; 4:5; 마11:14). 천사 가브리엘은 그의 아버지 사가랴가 성전에서 섬기는 동안 그의 출생과 이름과 직무에 대하여 예언하였고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할 때에 그리고 요한의 출생과 이름을 짓는 일에서 나타났다(눅1:1-80). 그는 초기에 동부 유대에서 지냈고 30세쯤에 주님의 대언자로 나타났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제사장이었고 또 엄격하게 나사르 사람으로 살았으므로 그의 모습은 구약시대의 엘리야와 거의 비슷하였다. 무리들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바 자기들의 죄를 정죄하는 말씀을 듣기 위해 사방에서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히 드러나기 위해 필요한 회개의 침례를 기쁘게 받았다.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나아와 침례를 받고 모든 의를 성취하셨다. 이때에 그는 이미 정해진 표적 즉 성령님께서 비둘기같이 내려와 그분 위에 앉는 것을 보고 그분이 주님의 그리스도인 줄 확실히 알게 되었고 곧바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모든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포하였다(요1:29; 갈3:24). 요한은 그 당시에 큰 명성이 있었으며(눅3:15) 산헤드린 공회는 그에게 물어 보기 위해 사자들을 보냈고(요1:19-28) 헤롯 왕 역시 그에게 듣기를 기뻐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모든 것을 구원자 예수님의 발 앞에 내려놓았다(요1:27; 3:30). 그에게는 제자들이 있었으며(마9:14; 눅5:33; 요4:1) 그의 영향력은 후에도 지속되었다(행18:25; 19:3). 그는 사람들을 개혁하기 위해 신실하게 수고하였으며 그 뒤에 이 일로 인하여 헤롯 안디바에 의해 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옥에서 자기의 두 제자를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그분이 선생님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물었다(마11:3). 바로 이때에 우리 주님은 요한이 대언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는 메시아의 대언자들 중에서 오직 그만 모든 사람이 보기 원하던 그분의 일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왕국에서 가장 작은 자보다도 작았는데 그 이유는 우리 주님의 죽음과 부활로 인한 왕국의 확립을 그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의 지상 사역은, 헤롯이 그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헤로디아가 자기 남편이 점점 더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것을 보고 우려를 표명함으로써 끝나게 되었다. 그녀의 딸 살로메는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한 뒤 그의 목을 요구함으로써 요한은 옥에서 목이 잘려 죽었고 그의 제자들은 그의 몸을 가져다가 묻고 예수님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마14:3-12). II. 사도 요한.   그는 세베대와 살로메의 아들로서 갈릴리의 벳새다 출신이었다. 세베대와 그의 아들들은 어부였으며 좋은 환경에 있었던 것 같다(막1:20; 15:40; 요18:15; 19:27). 요한의 성격에는 온유함과 강력함이 혼합되어 있었다. 성경은 그가 매력적이며 평온하고 겸손하며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사랑 많고 조용히 묵상할 줄 아는 성격 속에는 강인함과 결정력이 들어 있었다(눅9:54). 유순해 보이지만 그는 확고하고 두려움이 없었으며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서 그분과 함께 하였다(요19:35). 그는 예수님의 무덤에 일찍 갔으며 그분의 승천 이후에 예루살렘에서 옥에 갇히고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였다(행4:13). 그는 주님께 헌신한 사람이었고 또 야망도 있었으므로 그분의 오른편에 앉게 해 달라고 간구하기도 하였다(마20:20-24). 그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적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처음에 침례자 요한의 제자였으나 예수님께로 인도되어 즉시 그분을 따르다가 잠시 갈릴리로 돌아와 어부 생활을 하였으며 다시 부름을 받아 주님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눅5:5-10). 우리 주님은 사랑스럽고 열정이 넘치는 이 제자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요13:23; 19:26; 20:2; 21:7). 마지막 만찬에서 그는 주님 옆에 누웠으며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그에게 부탁하였다. 그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함께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을 보았고 또 겟세마네에서의 고통을 보았다. 야고보 참조.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그는 예루살렘에 거하면서 거기 교회의 기둥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갈2:9). 주후 65년경에 그는 에베소로 가서 소아시아에 복음을 선포한 것으로 보이며 사도 바울이 죽은 이후에 거기에서 많은 영향을 미쳤다. 주후 95년경에 그는 밧모 섬으로 유배되어 갔고 거기에서 계시록의 환상을 보았으며 그 뒤 에베소로 돌아와 아주 늙도록 살면서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는 제자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언제나 “어린 자녀들아, 서로 사랑하라.”는 권면의 말씀을 주었다. 그는 요한복음과 계시록 그리고 세 서신서를 기록하였다. 요한일서는 일반 서신으로 요한복음의 동반서이며 그 당시 유행하던 영지주의의 오류들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 그는 특히 은혜와 진리 가운데 교회를 세우기 위해 애썼고 특히 거룩한 사랑을 강조하였다. 요한이서는 경건함에서 뛰어난 크리스천 부인에게 보내는 서신이었으며 요한삼서는 신실함과 충성심이 강한 라틴 사람 가이오에게 보내는 서신이었다. 계시록과 세 서신서는 주후 76-98년경에 기록되었으며 신약성경의 책 중에 가장 늦게 기록된 책들이다. 영지주의, 계시록 참조. III. 마가라는 이름을 가진 요한. 마가 참조.        
2009-07-19 17:42:59 | 관리자
  가레아의 아들. 그는 예루살렘이 파괴된 이후에 유대인들을 이끈 우두머리 대장이었다. 그는 총독 그달리야의 권위를 인정하고 이스마엘의 음모를 그에게 알렸으나 그것은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는 그달리야의 원수를 갚았으나 후에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남은 사람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갔다. 예레미야는 그들이 반역하고 우상숭배하는 것을 막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심판이 이집트에 내려간 사람들에게 임할 것을 예언하였으며 그것은 후에 성취되었다(왕하25:23-26; 렘40-44).      
2009-07-19 17:41:57 | 관리자
열두 명의 소 대언자 중 하나. 그에 대하여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는 유다 왕국에 살았는데 그 당시에는 성전에서의 경배가 여전히 지속되었다(욜1:14; 2:1, 15, 32). 그는 웃시야의 통치 기간에 대언한 것으로 보인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과 관련해서 많은 이들이 욜2:28-32와 행2:17-21을 인용하며 방언과 기적, 이적 등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요엘서의 말씀은 근본적으로 이방인들과 상관이 없으며 천년왕국이 시작되기 전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이적이 부어지는 것을 보여 준다. 실제로 사도행전 2장에서 사도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신 것을 보여 주며 민족적인 회개를 촉구하고 그로 인해 그리스도가 재림하기를 바랐다(행3:19-26). 실제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선포된 것은 이로부터 근 10여 년이 지난 뒤였다.  
2009-07-19 17:40:55 | 관리자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아들. 그는 아비새와 아사헬의 형이었으며 다윗의 통치 기간에 그의 군대의 대장이었다(삼하2:13, 28; 10:7; 왕상11:15). 그는 용맹스런 무사였으며 능력 있는 장군이었고 압살롬을 대적한 일이나 인구 조사에서 선하게 행하였다(삼하18:1-33; 19:1-42; 24:1-25). 그러나 그는 동시에 오만하고 복수심에 불타며 양심이 없는 사람으로 아브넬과 자기 사촌 아마사를 비열하게 죽이고(삼하3:27; 20:9-10) 다윗에게 오만하게 행동하며(삼하3:39; 19:5) 우리야를 죽이는 일에 가담하고 솔로몬 대신 아도니야를 왕으로 만들려는 음모에 가담하였다. 이런 악행으로 인하여 그는 결국 솔로몬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다(왕상2:1-46).    
2009-07-19 17:40:21 | 관리자
그리스도 당시에 그분을 섬긴 신실한 여인 중 하나. 그녀는 그분의 무덤에 향품을 가지고 갔으며 그녀의 남편 구사는 헤롯 안디바의 청지기였다(눅8:3; 24:1-10).    
2009-07-19 17:39:37 | 관리자
I. 기드온의 아버지. 그는 므낫세의 아비에셀 가계에 속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바알을 섬겼으나 자기 아들 기드온이 우상숭배를 타파하자 그를 따라 주님의 편에 섰다(삿6:11, 25-32). II. 아합이 시리아 사람들과 전쟁을 하러 갈 때 대언자 미가야를 지킨 관원(왕상22:26; 대하18:25). III. 유다의 여덟 번째 왕. 그는 아하시야의 아들들 중에서 유일하게 자기 할머니 아달랴의 손을 피해 숨어서 목숨을 유지하였다. 그는 자기 고모 여호세바의 도움으로 구출되어 6년 동안 성전에서 숨어 지내다가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도움으로 일곱 살에 왕이 되었다.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 그는 번창하였으며 우상을 제거하고 성전을 수리하였다. 그러나 그가 죽은 뒤에 그는 잘못된 권고를 따랐고 그 결과 우상숭배가 부활되고 대제사장 스가랴가 백성의 죄를 꾸짖자 자기 은인의 아들인 스가랴를 버려 돌에 맞아 죽게 하였다. 그 뒤부터 재난이 따르기 시작하여 그는 시리아 사람들에게 패배를 당하고 성전의 보화를 내주며 가증한 병에 걸려 자기 신하들의 음모에 빠져 죽고 말았고 죽어서도 왕의 돌무덤에 들어가지 못했다(왕하11:1-21; 12:1-21; 대하23:1-21; 24:1-27). 요엘 대언자가 그의 시대에 대언하였다. IV.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겸 왕위 계승자. 그는 칭찬할 점이 많이 있다. 우선 그는 엘리사를 존중하였고 그가 죽을 때에 그를 찾아갔으며 거기서 시리아를 세 번 쳐서 이길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들었다. 그는 유다의 아마샤 왕과 싸워 이겼으며 이스라엘에서 가장 좋은 왕 중 하나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그의 통치 때에도 금송아지 숭배는 여전히 계속되었다(왕하13:9-25; 14:1-8; 대하25:1-28).    
2009-07-19 17:38:58 | 관리자
  아삽의 아들로 히스기야 왕의 기록관. 그는 아시리아 왕이 히스기야 왕을 치러 와서 항복을 권고할 때 왕을 대신하여 아시리아 군대에 갔던 사자 중 한 사람이다 (왕하18:17-35).    
2009-07-19 17:38:12 | 관리자
아몬의 아들, 히스기야의 손자. 그는 경건한 왕으로 성전 예배를 개혁하고 유다 민족의 종교를 대부분 개혁하였다. 어떤 왕도 그만큼 그 땅에서 우상을 제거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그들의 죽은 제사장들의 무덤에서 캐낸 뼈를 벧엘에 있던 우상들의 제단들에서 태움으로써 그것들을 더럽게 하였는데 이것은 300여 년 전에 이미 예언된 것이었다(왕상13:2). 그의 명령에 따라 성전을 깨끗이 하고 수리하는 중에 제사장들은 율법서를 발견하였는데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이것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심지어 요시야 왕도 신명기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크게 감명을 받은 것으로 보아 그 전에는 그것을 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거기 기록된 심판들을 되돌리기 위하여 그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백성이 회개하게 하였다. 또한 그는 백성이 주님과 언약을 다시 세우도록 하고 처음에 유월절이 제정되던 때와 같이 엄숙하게 유월절을 지키게 하였다. 백성의 회개는 형식적이었고 하나님의 심판은 되돌려지지 않았지만 요시야는 미리 죽음으로써 다가오는 재앙을 피하였다. 그는 아시리아 왕을 치려고 오는 이집트의 파라오느고를 대적하다가 부상을 입고 죽었으며 그가 죽자 예레미야 대언자를 포함한 모든 백성이 그를 위해 비통한 애가를 부르며 애곡하였다(슥12:11). 그는 여덟 살에 즉위하여 31년 동안 통치하였다(왕하22:1-20; 23:1-37; 대하34:1-33; 35:1-27).      
2009-07-19 17:37:32 | 관리자
I. 요셉과 라헬의 아들. 그는 메소포타미아에서 라헬에게서 태어났으며(창30:22-24) 하나님께서는 그를 감옥에서 건져 내어 이집트의 총리가 되게 하셔서 놀라운 섭리를 베푸시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게 하셨다. 그의 이야기는 성경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교훈을 주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이것은 너무나 아름다우므로 줄일 필요가 없고 반복해서 읽어도 질리지 않으며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잘 보여 준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보호하시는 것을 잘 드러낸다. 특별히 젊은이들은 자신을 조절하고 거룩한 삶을 삶으로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창37, 39-50). 요셉은 110세에 죽었으며 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를 떠나면서 그의 유언대로 그의 뼈를 가져다가 세겜에 묻었다(출13:19; 수24:32). II.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의 남편. 그의 가계는 위로 다윗과 유다와 아브라함에게까지 이른다(마1:1-15). 그는 갈릴리의 나사렛에 거하면서 목수의 일을 하였고 예수님도 같은 직업을 가졌다(막6:3). 마리아와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로 보아 그는 매우 경건하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열두 살이었을 때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눅2:41-51) 그 이후에는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예수님이 죽을 때에 자기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요셉은 그분의 십자가 처형 전에 죽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는 유대인들 가운데 잘 알려진 것 같다(막6:3; 요6:42). III. 아리마대 사람.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때에 예루살렘에 거하였으며 의심의 여지없이 메시아를 믿고 하나님의 왕국을 기다렸다. 그는 유대인들의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었으며 그들이 주님을 정죄하는 것을 반대하였다(눅23:51). 그는 주님의 처형이 끝난 뒤에 담대히 빌라도에게 가서 그분의 몸을 요구하고 니고데모와 함께 그분의 몸을 향품 등으로 싸서 새로 만든 자신의 돌무덤에 안치하였다(막15:43-46; 요19:38-42). IV. 유스도라고도 하고 바사바라고도 하는 예수님의 제자. 바사바 참조(행1:23).    
2009-07-19 17:36:42 | 관리자
유대의 제사장, 역사가(주후 37-100년). 그는 예루살렘의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고 16세 때에 광야에 나가 3년간 지내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뒤 유대교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로마의 통치를 받아들이려 했던 바리새파에 가입하였다. 주후 66-73년에 유대교 민족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로마 총독을 내몰고 예루살렘에 새로운 정부를 세우자 그는 유대 군대의 갈릴리 지휘관으로 싸웠으나 67년 로마 군대가 갈릴리의 유대 군대를 물리치자 베스파시아누스에게 투항하고 그 뒤 그의 황제 즉위를 예언하여 풀려난 뒤 이름을 플라비우스로 바꾸고 로마군에 협력하였다.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그는 로마로 가서 시민권을 받고 책 쓰는 일에 몰두하여 75-79년에 ‘유대 전쟁사’를 기술하고 93년에는 유명한 ‘유대 고대사’를 기술하였는데 이 안에는 창조로부터 반란 전까지의 유대 역사와 유대교의 율법과 제도의 합리성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창조 시점을 주전 4000년경으로 믿는다는 것과 또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을 천사들로 믿음을 밝혔다. 그의 저서에는 특히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에 관한 많은 자료가 들어 있다.    
2009-07-19 17:35:55 | 관리자
  I. 예수님의 형제 중 하나(마13:55; 막6:3). 그분의 형제들은 처음에 그분을 믿지 않았으나 그분의 부활 이후에 그분의 제자들 가운데 거하였다 (요2:12; 7:5; 행1:14). II. 글로바와 마리아의 아들(마27:56). III. 바나바(행4:36).    
2009-07-19 17:35:21 | 관리자
팔레스타인의 주요 강. 요르단 강 지도 참조(51). 이것은 남북으로 흐르면서 그 땅을 둘로 나누는데 서쪽의 땅이 더 크고 중요하다. 디베랴 바다와 사해 사이에는 요르단의 골짜기 혹은 평야가 있다(왕하25:4; 대하4:17). 이 강의 평균 너비는 20-70미터이며 직선 길이는 96킬로미터이지만 구불구불 흐르므로 실제 길이는 320킬로미터나 된다. 디베랴 바다와 사해는 지중해의 높이보다 각각 90미터와 390미터 낮으므로 요르단 강은 남쪽으로 흐르면서 높이가 약 100미터 정도 떨어진다. 요르단의 물은 갈릴리 바다와 마찬가지로 시원하고 그 안에는 고기가 많다. 여기에는 나루들과(삿3:28; 12:5; 삼하17:22-24) 배가 있었다(삼하19:17-18, 39). 바다 참조.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요르단이 범람할 때에 그것을 건넜는데(수3:15) 이때에 강물이 멈추어 서서 그와 그의 백성은 젖지 않고 건널 수 있었고 그 이후에도 엘리야와 엘리사는 요르단을 가르고 그곳을 지났다(왕하2:8, 14). 바로 여기에서 우리 주님은 침례자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으셨다(마3:13).    
2009-07-19 17:33:55 | 관리자
  I.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그는 자기 형 아하시야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고 12년 동안 통치하였다. 그는 바알 숭배를 멈추었지만 여로보암의 죄를 따랐다. 그의 통치 때에 모압 족속이 반역을 일으켰으나 요람은 유다 왕 여호사밧의 도움을 받으며 후에 큰 살육으로 모압 족속을 패주시켰다. 그러나 곧바로 그는 시리아의 벤하닷과 그의 뒤를 이은 하사엘과 싸움을 하였고 바로 이때에 사마리아는 기적적으로 포위와 기근에서 벗어났으며 엘리사는 나아만의 기적을 포함하는 여러 기적을 베풀었다. 요람은 하사엘과의 싸움에서 부상을 당하고 라못길르앗의 외곽에서 자기의 군대 대장 예후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그의 시체는 예스르엘에 있는 나봇의 밭에 던져졌고 이로써 주님의 말씀대로 아합의 집은 완전히 멸절되었다(왕상21:18-29; 왕하1:17; 3:1). II.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그는 자기 아버지의 뒤를 이어 8년 동안 통치하였다. 그는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와 결혼하였으며 그 결과 그의 영토에 저주가 임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 형제 다섯을 다 죽이고 그들의 소유를 빼앗았으며 유다에 페니키아 사람들의 우상을 도입하였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에돔, 블레셋, 아라비아 사람들의 침략을 받았다. 그의 영토와 도시와 집안은 황폐하게 되고 그는 창자에 병이 나서 고통을 받았으며 결국 죽어서도 왕들의 돌무덤에 들어가지 못했다 (왕하8:16-24; 대하21:1-20).    
2009-07-19 17:33:16 | 관리자
I. 기드온의 막내아들. 그는 아비멜렉이 자기 형들을 죽일 때에 도망하여 목숨을 건지고 후에 가시나무와 다른 나무들의 비유를 통해서 세겜 사람들을 비난하며 예언적으로 저주하였다. 그는 브엘로 도피하여 거기서 자기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보았다(삿9:1-57). 아비멜렉 참조. II. 유다 왕 웃시야의 아들. 그는 나병에 걸린 웃시야가 죽기까지 얼마동안 대리 왕으로 지냈으며 25세에 왕위에 올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중에 16년을 통치하였다. 왕하15:5-38; 대하26:21; 27:8은 지혜롭고 번영을 누리며 여러 가지 유익한 일을 한 이 왕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      
2009-07-19 17:32:33 | 관리자
I.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그는 교활하고 원칙이 없는 사람으로 다윗의 아들 암논의 친구였다(삼하13:3-5). 그는 압살롬이 자기 누이 다말로 인하여 암논을 죽이려 하는 것을 오랫동안 알고 있었지만 자기 친구가 암살되자 당연한 일이라고 변명하였다(삼하13:32-35). II. 겐 족속 레갑의 아들. 그는 모세의 장인 호밥의 후손으로 예후 시대에 레갑 족속의 우두머리로서 그들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명령을 주었다(왕하10:15; 대상2:55; 렘35:6-10). 레갑 족속 참조.    
2009-07-19 17:31:52 | 관리자
I. 게르솜의 아들 레위 사람. 그는 므낫세의 손자였으며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 경건치 못하게 미가의 제사장이 되었고 후에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었다. 그의 후손은 포로가 될 때까지 거기에서 그의 뒤를 이었다(삿17:1-13; 18:1-31). 대부분의 현대 역본은 이 요나단이 모세의 손자라고 기록하지만 사사기의 연대는 그가 모세의 손자가 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물론 그의 아버지 게르솜은 모세의 아들이 아닌 다른 게르솜이다. 재판관들의 연대 선도 참조(4). II. 사울의 큰 아들. 그는 구약에서 가장 사랑스런 인물 중 하나이다. 믹마스에서의 그의 용감한 이야기는 그의 믿음과 용맹을 잘 보여 준다(삼상13:1-23; 14:1-52). 백성은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래서 사울의 어리석은 맹세에 따라 그가 죽지 않게 하였다. 그는 다윗을 마치 자신의 혼처럼 사랑하였다(삼상18:1-4; 19:2; 20:1-42). 비록 자기 친구가 왕좌를 차지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의 야망을 버리고 자기 친구를 위해 수고하며 자기 아버지와 화해를 시도했다. 그는 길보아 산에서 블레셋 사람들과의 싸움에서 사울과 함께 죽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한 다윗의 시는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사랑과 애틋한 마음을 담고 있다(삼하1:1-27). 후에 다윗은 그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내어 그에게 은혜를 베풀었다(삼하9:1-13). III.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점령 후 유대인 가운데 남은 자들의 지도자들 중 하나(렘40:8).    
2009-07-19 17:31:10 | 관리자
열두 명의 소 대언자 중 하나. 그는 스불론의 가드헤벨 사람이며(왕하14:25) 여로보암 2세 때에 니느웨에 대해 대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니느웨와 반대편에 있는 다시스로 가기 위해 욥바에서 배를 탔다. 그러나 폭풍을 만나서 사람들이 그를 바다로 내던지자 그는 고래의 뱃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거기서 죽은 채 밤낮 사흘 동안 지냈는데 이것은 우리 주님이 땅의 심장부에서 밤낮 사흘을 지낸 것을 나타낸다. 그 뒤에 그는 부활하여 해변에 토해졌고 주님의 말씀을 다시 받아 순종하며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다. 니느웨 참조. 이 대언자의 경고에 따라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하고 파멸은 연기되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요나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말씀하심으로 그것이 역사적으로 사실임을 확증해 주셨다(마12:39-41; 16:4; 눅11:29-32).    
2009-07-19 17:30:25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