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1장 5절의 그것(which)의 의미
살후1:4-5를 보겠습니다.
4 그러므로 너희가 겪고 있는 너희의 모든 핍박과 환난 속에서 드러난 너희의 인내와 믿음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들에서 친히 너희를 자랑하노라. 5 그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의 명백한 증표이니 이것은 너희가 하나님의 왕국에 합당한 자로 여겨지게 하려 함이라. 그 왕국을 위해 너희도 고난을 당하고 있느니라.
4 So that we ourselves glory in you in the churches of God for your patience and faith in all your persecutions and tribulations that ye endure: 5 Which is a manifest token of the righteous judgment of God, that ye may be counted worthy of the kingdom of God, for which ye also suffer:
영어 성경을 보면 5절의 which is는 이탤릭체로 되어 있습니다(역자들이 추가함).
5절의 그것(which is)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의 명백한 증표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대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악인들을 심판해 주시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성경은 4절의 앞부분 전체(영어로는 후반부 전체)를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의 명백한 증표로 보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의 증표는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믿음과 사랑의 활력과 성장이 아니라 그들이 핍박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있었습니다. 그러한 핍박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실질적인 표시였습니다.
그 목적은 그들이 하나님의 왕국에 합당한 자로 여겨지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 왕국을 위해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바울은 고난과 핍박을 당하는 것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표로 보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고난을 당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빌1:27-30도 동일한 것을 말합니다.
27 오직 너희 행실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하라. 이것은 내가 가서 너희를 보든지 떠나 있든지 너희에 대한 일들 곧 너희가 한 영 안에 굳게 서서 복음의 믿음을 위해 한마음으로 함께 싸우며 28 어떤 일에도 너희의 대적들로 인해 무서워하지 아니한다는 것을 내가 듣고자 함이라. 그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명백한 증표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표인데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29 이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해 고난당하는 것도 그분을 위하여 너희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라. 30 너희가 내 안에서 보았고 지금도 내 안에 있다고 듣고 있는 그 동일한 싸움이 너희에게도 있느니라.
17-18세기의 성경적인 주석은 다음에서 언제든지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이트의 주석은 거룩하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보물 창고입니다.
Bible Hub 주석 사이트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모든 자는 핍박을 받을 것이나 악한 사람들과 유혹하는 자들은 점점 더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리라(딤후3:12-13).
샬롬
패스터
2023-08-15 07:53:10 | 관리자
집사들과 연로한 여자들은 약간의 술(포도주)은 먹어도 되나? 디모데전서 3장 8절, 디도서 2장 3절
디모데전서 3장에 기록된 지역 교회의 감독(목사 혹은 장로)과 집사의 자격에 관한 바울의 지시는 음주 및 금주에 관해 오해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감독은 "자신을 술에 내주지 말아야 하며"(딤전3:3) 집사는 "자신을 많은 술에 내주지 말아야 합니다"(딤전3:8).
감독: 자신을 술에 내주지 말아야 하며, Not given to wine
집사: 자신을 많은 술에 내주지 말아야 하며, Not given to much wine
그러면 목사들은 철저히 금주해야 하지만 집사들은 약간의 술을 먹어도 될까요?
딤전3:3절의 ‘자기를 술에 내주지 아니하며’라는 문구는 두 개의 그리스어 단어(me paroinos)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포도주 옆에 가지 아니함 혹은 술자리에 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Vine, 1966, p. 146; Robertson, 1934, p. 613).
이 문구는 목사들에게 금주를 명령하고 있으며 심지어 술을 먹는 사람과 함께 어울리거나 술을 먹는 장소에 가지도 말라는 명령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목사들에게 금주를 요구하는 것은 같은 요구 목록에 사용된 다른 용어들과 일치합니다.
1. 네팔리온(nepalion, 딤전3:2):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원래 술 취하지 않은 상태를 뜻함)과 “포도주를 절제하는 것”(Perschbacher, 1990, p. 284)
2. 소프로나(sophrona, 딛1:8): “맑은 정신을 갖는 것”(Perschbacher, p. 400), “정신 상태가 맑은 것”(Moulton and Milligan, 1930, p. 622), “자제하는 것”(Arndt and Gingrich, 1957, p.810).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 것도 역시 술 취하지 않는 데서 생깁니다.
목사들은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술을 삼가야 하며 그것을 사용하는 장소에 가지도 말고 술 마시는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말아야 합니다.
8절에서 이 점에 대해 집사의 자격을 규정하기 위해 사용된 네 단어, 즉 ‘me oino pollo prosechontas’는 문자 그대로 "아니다, 술(포도주), 많은, 사로잡히다"로 번역됩니다(참조, Perschbacher, p. 352; Spain, 1970, p. 64).
여기 사용된 “많은”(much)이라는 말은 집사들이 적당한 양의 포도주를 마셔도 좋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성경의 언어 사용과 그것의 의미를 보여 주는 사례들을 몇 개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전도서 7장 17절을 보겠습니다.
너는 지나치게 사악하게 되지도 말고 어리석게 되지도 말라. 네가 어찌하여 네 때가 오기도 전에 죽으려 하느냐?
솔로몬은 "지나치게 사악한 자가 되지 말라."라고 말했는데 그러면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으면 적당히 사악해도 된다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그 다음 구가 보여 주듯이 지나치게 사악하면 어리석은 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4절을 보겠습니다.
이 점에서 그들이 너희가 자기들과 함께 달음질하여 동일하게 과도한 방탕에 이르지 아니함을 이상히 여기며 너희를 비방하나(벧전4:4)
베드로는 여기서 기독교인들이 “과도한 방탕”에 가담하지 않는 이유를 이교도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 이 말을 하면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온건한 방탕에 이르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하였을까요?
사실 이런 구절들의 말은 과도한 방종이나 탐욕에 의한 행동이 적은 양이나 적은 정도면 허용된다는 것을 암시하지 않으면서도 과도한 방종이나 탐욕이 정죄에 이르는 죄라고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따라서 이렇게 표현된 성경 말씀들을 읽으면서, 과도하면 불법인 것이 적당하면 합법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간통 같은 행위를 적당히 행하는 것이 합법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도 그 사람의 간통 행위는 불법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이 구절은 감독과 집사에 대한 자격을 규정한 디모데전서 3장을 문맥에서 잘 읽음으로써 이해될 수 있습니다. 즉 감독의 자격 중 하나인 금주는 동일하게 집사에게도 적용됩니다. 감독의 자격이 나열된 이후에 집사의 자격을 나열하는 3장 8절이 ‘이와 같이’라는 말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반드시 신중하며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아니하고 자기를 많은 술에 내주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고(딤전3:8)
그러므로 ‘자기를 많은 술에 내주지 아니하며’는 ‘자기를 적은 술에는 내주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레10:9에서 모세 율법은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섬길 때에 절대로 술을 먹으면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
너나 너와 함께하는 네 아들들이 회중의 성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이것은 너희가 죽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 그것은 너희 대대로 영원한 법규가 될지니라(레10:9).
그 목적은 10-1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0 그러면 너희가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아니한 것,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 사이에 구별을 두고 11 이로써 주가 모세의 손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한 모든 법규들을 그들에게 가르칠 수 있으리라.
즉 하나님의 직무를 맡은 사람이 술에 취하면 그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바울은 신약 시대의 모든 성도들(감독과 집사를 포함한 모든 성도들), 즉 영적 제사장들이 약간의 술은 먹어도 된다고 기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반즈 주석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습니다. “여기서 사도가 이 주제를 언급하는 방식은 그가 어떤 의미에서든 교회의 직무 수행자들이 술을 마셔도 좋다는 것을 장려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음을 우리에게 공정하게 알려 준다”(1977, p. 144).
다음 글에서 보듯이 전체 성경은 술을 금하고 있습니다.
포도주, 새 포도즙 1
포도주, 새 포도즙 2
집사들 중에는 장로가 되려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어떻게 집사들이 적당하게 술을 마실 수 있었을까요?
그러므로 집사가 적당히 술을 마시는 것은 성경의 규정에 전혀 맞지 않습니다.
A. 집사의 아내들은 술을 먹으면 안 됩니다(딤전3:11).
이와 같이 그들의 아내들도 반드시 신중하며 헐뜯지 아니하고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일에 신실한 자라야 할지니라.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는 술 취하지 말라는 것과 동일한 말입니다.
B. 연로한 남자들 역시 술에 취하면 안 됩니다.
연로한 남자들이 맑은 정신을 가지며 신중하고 절제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 면에서 건전하게 하고(딛2:2)
‘맑은 정신을 가지며’는 술 취하지 말라는 것과 동일한 말입니다.
C. 연로한 여자들은 술에 취하면 안 됩니다.
연로한 여자들도 그와 같이 거룩함에 합당하게 처신하도록 하며 거짓으로 비난하지 말고 자기를 많은 술에 내주지 말며 선한 것들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게 하라(딛2:3).
딛2:3의 ‘자기를 많은 술에 내주지 말며’ 역시 연로한 여자들이 적당히 술을 마시면 된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연로한 남자나 연로한 여자 모두 술을 마시지 말고 맑은 정신을 유지해야 합니다.
결론
그러므로 이런 형태의 말 즉 ‘자기를 많은 술에 내주지 말며’는 ‘느슨한 형태의 말’(loose form of speech) 사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말은 집사들도, 연로한 여자들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참고 문헌 1
참고 문헌 2
2023-08-14 15:05:48 | 관리자
네 위장을 위해 포도즙을 조금 쓰라: 디모데전서 5장 23절
알코올성 포도주를 마시는 것을 옹호하는 많은 기독교인들은 디모데전서의 한 구절을 지지 구절로 사용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더 이상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잦은 병을 위해 포도즙을 조금 쓰라.”(딤전5:23)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네 위장을 위해 ‘wine을 조금’ 쓰라고 지시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울이 이 구절에서 사회적 교제를 위해 음주를 해도 좋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는 "더 이상 물만 마시지 말고 - 중동 지방을 여행한 사람이라면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은 물을 얻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을 알고 있다. - 네 위장과 잦은 병을 위해 포도즙을 조금 쓰라."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바울이 어떤 종류의 wine에 대해 말했든(발효된 포도주든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이든), 그가 디모데에게 조언한 목적이 그의 위장병 때문이라는 것은 지극히 명백합니다.
wine에 대한 바울의 조언은 사회적 사교로 인한 기쁨이 아니라 약으로서의 사용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어떤 종류의 wine을 추천했을까요? 사도는 우리에게 잠23:3, 29-31 등이 말하는 포도주를 적당히 사용하라고 말했을까요?
“너는 포도주가 붉거나 잔에서 제 빛깔을 내거나 스스로 똑바로 움직일 때에 그것을 바라보지 말라.”(잠23:31)
“재난이 누구에게 있느냐? 슬픔이 누구에게 있느냐? 다툼이 누구에게 있느냐? 재잘거림이 누구에게 있느냐? 까닭 없는 상처가 누구에게 있느냐? 붉은 눈이 누구에게 있느냐? 오랫동안 포도주에 머무는 자들에게 있고 섞은 포도주를 구하러 다니는 자들에게 있느니라.”(잠23:29-30)
포도주(술)는 조롱하게 하는 것이며(잠20:1) 뱀같이 물고 독사같이 쏘며 낯선 여자들을 바라보게 하고 비뚤어진 일들을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잠23:32-33).
그는 절대로 포도주를 쓰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wine이라는 단어는 알코올이 든 발효 포도주와 발효되지 않은 포도 주스를 가리킬 때 사용합니다. 이사야서 65장 8절에 따르면 새 포도즙은 포도송이에서 발견되며 그 안에는 복이 있습니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포도송이에서 새 포도즙이 발견되었으므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것을 멸하지 말라. 그것 안에 복이 있느니라, 하는 것같이 나도 내 종들을 위해 그와 같이 행하여 그들을 다 멸하지는 아니하리라(사65:8).
새 포도즙은 분명히 발효되지 않은 '갓 짜낸 포도 주스'입니다. 주의 만찬에 사용된 wine을 가리키며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 포도나무 열매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 왕국에서 너희와 함께 새롭게 마시는 그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26:29).
여기서 ‘포도나무 열매에서 난 것'은 새 포도즙을 말합니다.
누룩으로 인한 발효는 죄의 표시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순결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피를 나타내는 주의 만찬의 wine은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이어야 합니다(미국의 다수의 침례교회들은 주의 만찬에서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 주스를 사용함).
디모데전서 5장 23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의 위장을 위해 wine, 즉 포도즙을 조금 사용하라고 권면합니다. 발효되지 않은 포도 주스에는 몸에 좋은 특성이 있습니다. 참으로 갓 짜낸 새 포도즙에는 복이 있습니다.
성경은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서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조언은 분명히 '정신을 차리라'(be sober)고 말하는데 여기에 사용된 ‘sober’라는 말은 술 취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당신이 술 취해서 빈틈을 보이고 제정신이 아닐 때 사탄은 당신을 유혹하고 속일 수 있습니다.
최신 연구는 포도주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동일한 혜택을 포도 주스에서도 얻을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보라색 포도 주스는 포도주와 마찬가지로 플라보노이드라고 불리는 동일한 강력한 질병 퇴치 항산화제를 함유하고 있어서 심장병 예방에 도움을 줍니다. 포도 주스의 플라보노이드는 포도주의 플라보노이드와 마찬가지로 소위 나쁜 콜레스테롤 LDL 또는 동맥벽에 플라크 형성을 유발하는 저밀도 지단백질의 산화를 방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포도주에서 발견되는 알코올이 실제로 사람에게 해롭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위스콘신 대학교 연구원인 폴츠 박사(John Folts, Ph.D)는 "포도 주스를 사용하면 알코올에 취할 염려 없이 충분히 마실 수 있어서 이런 혜택들을 누릴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게다가 알코올이 든 포도주는 포도 주스처럼 혈관 내막의 세포 기능을 개선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알코올은 실제로 혈관 조직에 손상을 줄 수 있는 활성 산소, 불안정한 산소 분자를 생성하여 적포도주 항산화제가 제공할 수 있는 이점을 약화시킵니다.
'포도 주스'(grape juice)라는 단어는 1896년 웹스터 사전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고대 문헌에서 와인은 발효된 포도주와 발효되지 않은 포도 주스의 이중 의미를 가졌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wine이라고 불렀던 달콤한 포도 음료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그것은 보통의 포도주처럼 취하게 만들지 않으므로 포도주의 효과가 없다.” 카토(Marcus Cato)는 "아직도 포도에 매달려 있는 와인(즉 포도즙)"에 대해 묘사합니다.
wine은 발효되거나 발효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본문에서 히브리어 야인 또는 그리스어 오이노스의 의미를 항상 명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wine'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발효된 포도주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가정할 수 없습니다. 신중한 성경 연구생으로서 우리는 문맥을 잘 보고 그것이 포도주인지 포도즙인지 바르게 판단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다만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 함이지만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게 하고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술(포도주)을 사용하면 예수님의 사역의 목적과 정반대로 우리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종종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파괴하는 일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그분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성경이 절도 있는 알코올 사용을 지지한다는 일반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금주의 표준을 세우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포도주(술) 대신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의를 구하고 아는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술(포도주) 취하지 말라. 그것에는 과도함이 있나니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할지니라.”(엡5:19)
“그러나 모든 것의 끝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벧전 4:7)
여기서도 ‘정신을 차리고’(be sober)는 술 취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 본 글의 출처
Wine For Thy Stomach's Sake
와인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성경의 와인
2023-08-14 11:26:3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성경의 wine 관련 글은 다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wine
샬롬
2023-08-14 10:16:49 | 관리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사도행전 2장 38절 등에서 행위 구원을 가르치는가?
결코 아니다!
신약 성경의 전체 주제는 사람이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엡2:8-9).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도다(롬5:1).
그런데 성경에는 마치 행위(특별히 물 침례나 세례)가 있어야 구원을 받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구절이 몇 군데 있습니다.
1. 마가복음 16장 16절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막16:16).
그냥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믿는 것과 구원 사이에 침례를 받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물 침례가 되겠지요.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걸려 넘어져서 앞의 ‘믿고’를 읽지 않거나 신경을 쓰지 않고는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이 구절의 뒤에는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침례를 받고 안 받고’가 후반부에는 빠져 있습니다.
분명히 마가복음 16장 16절에는 물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맨 앞에 “믿고”가 들어 있습니다.
이 구절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믿음, ② 침례, ③ 구원
성경 전체와 이곳의 요점은 ① 믿음, 이 하나가 ② 침례와 ③ 구원의 근거이지 ① 믿음과 ② 침례, 이 두 개가 ③ 구원의 근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이후에 침례를 받는 것과 구원이 뒤따라옵니다.
이런 구절을 접할 때 우리는 통합적으로 성경을 보고 해석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당연히 구원을 받고 구원에 대한 증언으로 물 침례도 받을 것입니다.
한편 이것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무엇이든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하시니라. 아멘.
여기서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민족들을 가르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물 침례를 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사람이 물 침례 받으면 구원을 받을까요? 당연히 아니지요. 가르침을 받아 믿음을 갖게 되어 구원받은 사람들만 침례를 받을 것입니다.
이런 것이 마16:16, 마28:19-20에 함축되어 들어 있습니다.
2. 사도행전 22장 16절
바울과 관련된 구절을 하나 더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아나니야의 말입니다.
이제 네가 왜 주저하느냐? 주의 이름을 부르며 일어나 침례를 받고 네 죄들을 씻어 버리라, 하더라(행22:16).
여기도 뒷부분만 보면 침례를 받아 죄들을 씻는 것으로 오해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맨 앞에 “주의 이름을 부르며”라는 주요 조건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부르면 그는 구원을 받습니다. 여기에는 믿음과 회개가 다 들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
이 구절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 ② 침례, ③ 죄들의 사면
성경 전체와 이곳의 요점은 ①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 이 하나가 ② 침례와 ③ 죄들의 사면의 근거이지 ①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② 침례, 이 두 개가 ③ 죄들의 사면의 근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 이후에 침례와 죄들의 사면이 있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침례를 받는 것 이 두 가지를 해야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경에는 모순이 없습니다. 이런 구절들을 대하면서 신약 성경의 구원관이라는 차원에서 전체 문맥에 맞게 이해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3. 사도행전 2장 38절
이와 관련해서 사도행전 2장 38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Then Peter said unto them, Repent, and be baptized every one of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for the remission of sins, and ye shall receive the gift of the Holy Ghost.
여기도 자세히 보지 않고 대충 보면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침례교회의 여러 선한 목사님들 중 어떤 분들은 왜 이렇게 번역해서 물 침례를 통해 구원받는 것처럼 만들었느냐고 이의를 제기합니다.
이렇게 번역한 이유는 이것이 올바른 번역이기 때문입니다.
여기도 세 가지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이 구절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회개, ② 침례, ③ 죄들의 사면
실제로 그리스어 구조를 보면 “회개하라”가 주동사로 되어 있고 “침례를 받아"라는 보조 동사로 되어 있으므로 죄들의 사면이 “회개하라”에 걸려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두 구절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① 회개(물론 믿음이 동반된), 이 하나가 ② 침례와 ③ 죄들의 사면의 근거이지 ① 회개와 ② 침례, 이 두 개가 ③ 죄들의 사면의 근거가 아닙니다.
즉 회개하고 나서 그 뒤에 침례와 죄들의 사면이 뒤따라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회개 + 물 침례’가 죄들의 사면의 근거가 아닙니다.
이런 구절들을 대하면서 신약 성경의 구원관이라는 차원에서 전체 문맥에 맞게 이해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 행2:38을 오역이라고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므로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회개하고 죄들의 사면으로 인해(죄들의 사면 때문에)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얼핏 보면 이것이 침례교 교리에 맞는 것 같지만 그리스 말이나 영어의 구조와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for the remission of sins’라는 구는 신약 성경에 총 5회 나오며 동일한 그리스어 ‘에이스’(eis)가 ‘for’로 번역된 4구절, 즉 마26:28; 막1:4; 눅3:3; 행2:38을 보면 여기의 ‘for’가 모든 곳에서 동일하게 ‘위하여’의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어와 원어를 무시하면서 침례교 교리를 지키려고 하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입니다.
대개 피터 럭크만과 그의 추종자들(대개는 킹제임스 성경의 이중 영감을 믿는 사람들)이 ‘죄들의 사면으로 인해’라고 번역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을 그런 식으로 번역하려면 다음처럼 해야 더 정직한 것입니다.
죄들의 사면으로 인해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러나 이렇게 하면 구원 교리가 깨지므로 안 됩니다. 회개하지도 않았는데 죄들의 사면이 있다고 하면 말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다 보니 '죄들의 사면으로 인하여'로 하려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죄들의 사면으로 인하여'로 하려고 예수님을 슬쩍 집어넣어 해석합니다.
그러나 38절에는 '너희 각 사람이'라는 말이 나오므로 여기에 예수님을 넣으면 안 됩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즉 ① 회개, ② 침례, ③ 죄들의 사면, 이 세 가지는 모두 개개인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① 회개, ② 침례만 개개인에게 해당되고 ③ 죄들의 사면은 예수님이 하신 것이라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절들을 대할 때 가장 좋은 선택지는 그리스어, 영어 등에 있는 것처럼, 지금 흠정역 마제스티 번역처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번역하고 이런 구절들을 통합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구절을 가지고 물 침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누가 주장하면 잘 설명해 주고 그래도 믿지 않으면 그런 분에게서 조용히 물러나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오해될 수 있는 성경의 증거 세 가지를 보여 주어도 안 믿기로 작정한다면 그 이상 무슨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특정 교리나 교파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문맥에 벗어나게 번역하는 일은 결코 할 수 없습니다. 알면서도 그리하면 그것에 관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대적하는 어떤 일도 할 수 없고 진리를 위해서만 할 수 있노라(고후13:9).
샬롬
패스터
2023-08-12 13:44:22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영어와 원어의 차이 그리고 이로 인한 단수 복수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며칠 전에 외국에 사시는 한 분이 디도서 1장 1절 번역에 대해 질문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의 믿음에 따라, 하나님의 성품을 따르는 진리를 인정함에 따라
Paul, a servant of God, and an apostle of Jesus Christ, according to the faith of God's elect, and the acknowledging of the truth which is after godliness;
질문의 핵심은 the faith of God's elect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습니다.
God’s elect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단수)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복수)이냐?
이분은 James Knox 목사님의 설교를 듣곤 하며 최근에는 그분이 소개한 다른 미국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는데 이분은 the faith of God's elect의 elect가 단수이며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고 하면서 그분의 설교가 맞는 것 같다고 하며 질문하였습니다.
즉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갈2:20과 매칭이 되게).
사실 영어로는 elect라는 단어가 단수인지 복수인지 구분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어 공인 본문을 사용하는 슈퍼바이블에 가서 원어 분해를 보았습니다.
elect: 1588 ejklektov" eklektos {ek-lek-tos'}
1586에서 유래;‘뽑힌’, (함축적으로)‘마음에 드는’, 택함을 받은, 선출된 <막 13:20>형. chosen; 남성 복수
즉 elect라는 말은 남성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택하신 자들이 되어야 맞습니다.
이런 데가 히브리서 12장 23절에도 있습니다.
총회와 하늘에 기록된 처음 난 자들의 교회와 모든 것의 [심판자] 되시는 [하나님]과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들과
To the general assembly and church of the firstborn, which are written in heaven, and to God the Judge of all, and to the spirits of just men made perfect,
저 역시 킹제임스 성경을 지지하는 어떤 목사님이 이 구절의 the firstborn을 처음난 자들(복수)이 아니라 처음난 자(단수)로 보아야 하며 처음난 자 혹은 처음난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역시 슈퍼바이블의 공인 본문을 가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firsrborn: 4416 prwtotovko" prototokos {pro-tot-ok'-os}
4413과 5088의 대체어에서 유래; 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먼저 태어남’(일반적으로 먕사로서), 처음난 <롬 8:29; 골 1:15>형. firstborn; 남성 복수
이 단어 역시 남성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2011년 400주년 기념판과 2021년 마제스티 에디션은 단복수에 관한 이런 점에서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마제스티 에디션에서는 영어로 볼 때 단수 복수가 애매모호한 단어들을 모두 원어로 가서 확인하여 원어가 단수면 단수, 복수면 복수로 표기하였습니다.
영어는 원어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단수 복수를 구분하기 어렵다고 해도 영어 번역은 완벽합니다. 그렇게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나 미국 독자들이 영어만 가지고 단복수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강해를 하면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을 가지고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2011년 400주년 기념판: 그런즉 자녀들은 살과 피에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의 일부를 취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Forasmuch then as the children are partakers of flesh and blood, he also himself likewise took part of the same; that through death he might destroy him that had the power of death, that is, the devil;
여기에는 살과 피가 나옵니다. 그런데 영어 중간에 the same이 나옵니다. 이것을 400주년 기념판에서는 ‘같은 것’이라고 단수로 번역하였습니다.
원어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the same: 846 aujtov" autos {ow-tos'}
불변사 au<아무>【아마 일정한 ‘방향없는’바람의 개념으로 109의 어간과 유사】(‘뒤편’)에서 유래;(재귀대명사)‘자신’, 3인칭(홀로 혹은 1438과 합성어로)으로 사용, 역시 기타 인칭(본래적 의미로는 인칭대명사와 함께)으로 사용, 848과 비교 <마 3:11;눅 3:23;행 10:26>대. self, him, it, her, the same; a)강조적 용법 ;자신(self) b)인칭대명사의 3인칭 ;그, 그녀, 그것c)한정적인 용법 ;동일한, 바로 그 (the same), 중성 복수
즉 여기의 the same은 중성 복수로서 살과 피 두 개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복수로 표현하였습니다.
마제스티 에디션: 그런즉 자녀들은 살과 피에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친히 같은 것들에 참여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베드로전서 3장 18절도 마찬가지입니다.
400주년: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로운 자(단수)로서 불의한 자(단수)를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가려 하심이라.
For Christ also hath once suffered for sins, the just for the unjust, that he might bring us to God, being put to death in the flesh, but quickened by the Spirit:
영어로만 보면 the just, the unjust가 단수인지 복수인지 구분하기 어렵지만 원어로는 분명하게 전자는 남성 단수, 후자는 남성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제스티 에디션에서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마제스티: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해 한 번 고난받으사 의로운 자(단수)로서 불의한 자들(복수)을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령에 의해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 데려가려 하심이라.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보다는 ‘성령에 의해’가 더 뜻이 명확해서 그렇게 고쳤습니다.
이번 마제스티 에디션에서는 이런 식으로 the에 형용사가 붙어 있는 명사들을(시편 잠언 등 시가서에 매우 많음, the wise, the rich, the poor, the wicked 등등) 일일이 확인하여 가능한 한 단수와 복수를 구분해서 표현하였습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우리가 보기에 영어로 단수와 복수 구분이 어려워도 영어 번역은 완벽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어만 보고 번역하거나 설교하다 보면 단수와 복수로 인한 혼동이 생길 수 있으므로 원어의 도움을 받아야 이런 부분을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가능하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마제스티 에디션은 가능한 한 단수 복수를 명확하게 표기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가 풍성히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3-08-05 17:30:26 | 관리자
불콩들로 만든 죽과 팥죽: 어이없는 표준킹제임스의 난센스
불콩들로 만든 죽이라?
성경에는 lentiles라는 말이 총 4회 나옵니다.
창25:34, 삼하17:28, 삼하23:11, 겔4:9
창25:34
Then Jacob gave Esau bread and pottage of lentiles; and he did eat and drink, and rose up, and went his way: thus Esau despised his birthright.
표준: 그때 야곱이 빵과 불콩들로 만든 죽을 에서에게 주었더니, 그가 먹고 마신 다음에 일어나서 자기 길을 갔더라. 이와 같이 에서가 자기 장자권을 멸시하였더라.
혹시 여러분 가운데 불콩들로 만든 죽이 무엇인지 아는 분 있습니까?
흠정역: 이에 야곱이 빵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그가 먹고 마신 뒤 일어나 자기 길로 갔더라. 이같이 에서는 자기의 장자권을 업신여겼더라.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게 하려면 개역이나 흠정역, 한킹처럼 한국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말로 번역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창25:30이 말해 줍니다.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지쳤으니 원하건대 바로 그 붉은 죽을 내가 먹게 하라,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에돔이라 하였더라.
And Esau said to Jacob, Feed me, I pray thee, with that same red pottage; for I am faint: therefore was his name called Edom.
창세기 25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서가 에돔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 배경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즉 에돔 혹은 에서라는 이름이 나오면 붉은색이 연상되어야 합니다.
창25:25
처음에 나온 자(에서)는 붉고 온몸이 털옷 같아서 그들이 그의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자, 불콩들로 만든 죽을 통해 붉은색을 연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말 팥죽은 당연히 붉은색을 연상시킵니다.
표킹 번역자는 창세기 25장 34절에 나오는 lentiles는 콩이고 팥은 콩이 아니라는 뉘앙스로 설명합니다.
그럴까요?
사전으로 팥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팥: 콩과의 한해살이풀.
성경이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은 lentiles는 콩과 식물이고 붉은색을 띠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즉 콩이냐, 팥이냐가 주제가 아니라 붉은 색의 콩과 식물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당연히 팥입니다.
영어 사전에 가서 lentiles를 살펴보면 렌틸콩 혹은 렌즈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표킹 번역자는 이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렌틸콩을 한 번만이라도 검색해 보면 렌틸콩, 즉 렌즈콩은 색깔이 붉은 것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렌틸콩: lentils
렌틸콩은 색상에 따라 크게 노란색, 붉은색, 초록색, 갈색, 검은색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생산지에 따라서 얼룩이나 반점이 생기는 등 조금씩 다른 색깔의 품종이 전해지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 북아프리카에서 널리 심고 있지만 그 기원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며 서반구에서는 거의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표킹 번역자는 대다수 한국 사람들이 알지도 듣지도 못하는 불콩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 이유는 콩의 하나로 알려진 불콩이 붉은색을 띤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저나 여러분 모두 불콩이라는 말을 여기서 처음 들어 봤을 것입니다.
히브리어 사전에 가서 팥에 해당하는 말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팥: 스트롱 5742 아다쉬 `adash {aw-dawsh'} 창 25:34
불확실한 뜻을 가진 사용하지 않는 어근에서 유래;‘(렌즈) 콩’:렌즈콩, 팥
원문은 ‘불확실한 뜻을 가진 사용하지 않는 어근’에서 이 말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불확실한 뜻을 가진 어근에서 유래했다고 하지만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Old Latin Vulgate에는 이것이 lentis라고 옮겨져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우리가 보고 있는 수정체, 즉 '눈, 렌즈'에서 나온 어원입니다. 왜 이렇게 되어 있을까요? 콩이 렌즈처럼 동그랗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구 라틴 벌게이트'에서 보존되어 온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lentis라는 어근을 기초로 lentiles라는 단어를 넣게 된 것입니다. 즉 렌틸콩이라서 넣은 것이 아니라 어근을 따라 영문으로 옮겨 놓은 것을, 표킹 번역자는 lentiles라는 영문만 보고 지금 시대의 그냥 불콩(렌틸콩)이라고 번역을 했으니 이 얼마나 황당합니까?
창세기 25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의 색이 붉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콩 종류로 만든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말의 팥이 여기에 해당하는 가장 적합한 말입니다.
여기서 표킹 번역자의 난센스를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팥들로 만든 죽, 혹은 팥들로 만든 빙수라고 말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나요?
다 팥죽, 팥빙수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팥죽, 팥빙수에는 팥이 하나만 들어 있을까요?
그래서 굳이 불콩을 쓰려고 하면 불콩죽이라고 해야지 ‘불콩들로 만든 죽’이라고 하면 이미 해설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굳이 번역자는 불콩들로 만든 죽이라고 했을까요?
영 킹제임스 성경이 lentiles라고 복수로 했기 때문입니다. 표킹 번역자는 킹제임스 성경의 이중 영감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영어 그대로 복수로 해야 한다고 저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 중간에 있는 만든은 영어 어디에 있습니까? 당연히 없지요. 번역자가 그냥 슬그머니 넣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난센스라고 부릅니다.
헛된 말장난으로 성도들을 유혹하는 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로마서 16장
17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18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단순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
2023-07-19 11:58:51 | 관리자
여인은 옥합을 산산조각 나게 깨뜨렸을까? 표준킹제임스의 어처구니없는 추측 오류
마가복음 14장 3절에는 한 여인이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기사가 있습니다.
And being in Bethany in the house of Simon the leper, as he sat at meat, there came a woman having an alabaster box of ointment of spikenard very precious; and she brake the box,
and poured it on his head.
그분께서 베다니에 계시면서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음식 앞에 앉으셨을 때 한 여자가 매우 귀한 나드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깨뜨려 그분의 머리에 부으매
표준킹제임스는 여기의 alabaster box를 설화석고 함으로 번역해야만 하는데 다른 성경들이 이것을 옥합으로 오역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옥합은 금강석처럼 단단하여 깰 수가 없고 석고처럼 단단하지 않아야만 깰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 귀중한 향유를 담는 용기는 그리스어 알라바스트론(alabastron)에서 나왔는데 이것은 이집트의 테베,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소아시아의 갑바도기아 등지에서 생산되는 반투명 고급 대리석 알라바스터(alabaster)로 만든 호리병 모양의 고급 향수병이나 화장품 병 혹은 꽃병 등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의 알라바스터는 푸석푸석한 석고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또한 옥합이라고 할 때 옥은 경옥 즉 딱딱한 옥이 있고 연한 옥 즉 연옥이 있습니다. 이런 연옥은 석회석이 굳어서 만들어지는 대리석 계통의 광물이고 이런 것을 다듬으면 액체를 담을 수 있는 용기가 됩니다.
그러니까 영어 KJV의 alabaster는 표킹 번역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깁스 할 때 사용하는 푸석푸석한 석고가 아니라 액체를 담을 수 있는 단단한 용기, 즉 연옥이나 부드러운 대리석 등으로 만들어진 용기입니다.
그런데 왜 표킹 번역자는 그 용기가 딱딱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을까요?
마가복음 14장 3절에서 그 여인이 옥합을 깼다고 성경이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에 맞추기 위해 그 용기가 깁스처럼 생긴 석고여야만 여인이 깰 수 있지 대리석 용기를 어떻게 여인이 깰 수 있느냐는 것이 번역자의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표킹 번역자는 상자를 깨는 것에만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여기의 초점은 예수님의 죽음과 장사를 위해 그 여인이 그분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박스를 깨다(break the box)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표킹 번역자의 생각대로 여인이 석고 통을 부셨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석고 통이 산산조각 나면서 그 안의 향유가 다 바닥으로 쏟아졌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여인은 황급히 걸레를 달라고 해서 바닥에 쏟아진 기름의 일부를 모읍니다. 그러고 나서는 먼지와 뒤범벅이 된(유대인들은 신발을 신고 다님) 그 지저분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
여러분, 마가복음 기사가 이런 것을 연상하게 합니까? 이것은 아수라장이 아닙니까?
모두가 조용한 가운데 여인이 옥합을 깨고 향유를 손에 담아서 그분의 머리에 붓고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지는 것이 연상됩니까?
자, 그러면 표킹 번역자의 착각은 무엇일까요? 많은 목사들이 그 여인이 옥합이든, 석고 통이든 들어서 바닥으로 내던져 산산조각 낸 것으로 이해하고 설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런 옥합의 나드 향유는 가격이 1년 치 봉급 정도가 되는 매우 비싼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향유가 새어 나가면(액체로든 기체로든) 안 되므로 이런 향유 병은 봉인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만 향유를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와인 병도 코르크 등으로 봉인되어 있듯이).
그러므로 상자를 깨다(break the box)는 상자를 들어서 바닥에 내던지는 것이 아니라 상자의 봉인을 떼는 것을 말합니다. 그 여인은 옥합의 봉인을 떼고 기름의 일부를 손에 담아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말이 아닙니다.
가장 유명한 주석가 중 하나인 앨버트 반즈와 아담 클라크도 그렇게 말합니다.
반즈
여인이 박스를 부수었다: 이것은 그녀가 상자의 "봉인"을 부수어 부을 수 있도록 했다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 향유 상자는 종종 밀봉되거나 왁스로 고정되어 향수가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한다. 깨는 것이 불필요하고 또 초유의 비상사태가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상자 자체를 부수지는 않았을 것이다. 깨진 상자나 깨진 병에서 그녀는 그분의 머리에 쉽게 향유를 부을 수 없었을 것이다.
[And she brake the box] This may mean no more than that she broke the "seal" of the box, so that it could be poured out. Boxes of perfumes are often sealed or made fast with wax, to prevent the perfume from escaping. It was not likely that she would break the box itself when it was unnecessary, and when the unguent, being liquid, would have been wasted; nor from a broken box or vial could she easily have "poured it" on his head.
(from Barnes' Notes, Electronic Database Copyright ?1997, 2003, 2005, 2006 by Biblesoft, Inc. All rights reserved.)
클라크
오히려 그녀는 봉인을 뜯었다. - 이것은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번역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1. 그 자체로 매우 귀중한 상자가 내용물을 꺼내기 위해 깨질 가능성은 없다.
2. 깨진 조각이 우리 주님의 머리와 여인의 손에 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해도 그 일은 매우 부적절했을 것이다(파편이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것을 고려하면).
3. 부서진 조각들에서 기름을 효과적으로 분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4. 향수를 담고 있는 병을 밀랍으로 밀봉하는 것이 동방 국가들의 관습이었다. 그래서 그런 상자나 병의 내용물에 접근하기 위해 봉인을 뜯는 것 이상의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바로 그 일을 이 여자가 한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봉인을 깼을 때 그녀는 액체 연고를 자기 손에 쏟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병이나 상자를 깨뜨렸다면 그녀가 그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She brake the box] Rather, she broke the seal.-This is the best translation I can give of the place; and I give it for these reasons:
1. That it is not likely that a box exceedingly precious in itself should be broken to get out its contents.
2. That the broken pieces would be very inconvenient if not injurious to the head of our Lord, and to the hands of the woman.
3. That it would not be easy effectually to separate the oil from the broken pieces. And,
4. That it was a custom in the eastern countries to seal the bottles with wax that held the perfumes; so that to come at their contents no more was necessary than to break the seal, which this woman appears to have done; and when the seal was thus broken, she had no more to do than to pour out the liquid ointment, which she could not have done had she broken the bottle.
(from Adam Clarke's Commentary, Electronic Database. Copyright ?1996, 2003, 2005, 2006 by Biblesoft, Inc. All rights reserved.)
사람을 속이는 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여자가 에수님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값비싼 향유를 그분의 머리에 부어 최상의 일을 했다는 것이고 우리 주님은 이것을 칭찬하십니다.
이런 핵심은 내던져 버리고 옥합을 바닥에 던져서 산산조각 깨는 것에 주안점을 두면 주객이 전도되는 것입니다.
이런 유치한 논쟁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딤후2:15-17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너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16 그러나 속되고 헛된 말장난들을 피하라. 그것들은 커져서 더욱더 하나님의 성품에 위배되는 것에 이르리라.
17 그들의 말은 궤양처럼 파먹을 터인데 그들 가운데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2023-07-18 12:51:16 | 관리자
고린도전서 15장 29절은 몰몬교의 대리 침례(Proxy baptism)가 아니다
안녕하세요?
어떤 사람들이 고전15:29를 이용하여 흠정역 성경이 몰몬 교리를 가르친다는 거짓 주장을 편다고 하기에 간략히 글을 올립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9절은 성경에서 가장 난해한 구절들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고전15:29
Else what shall they do which are baptized for the dead, if the dead rise not at all? why are they then baptized for the dead?
흠정역: 그렇지 아니하여 만일 죽은 자들이 결코 일어나지 아니한다면 죽은 자들을 대체하여 침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그렇다면 그들이 무슨 이유로 죽은 자들을 대체하여 침례를 받느냐?
어떤 사람들은 사도 바울 당시에 이교도들이 이미 죽은 자들을 대신해서 침례를 받는 풍습(proxy baptism)이 있었고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도 이런 풍습을 행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죽은 자들을 대체하여’라고 번역하지 않고 ‘죽은 자들을 위하여’ 혹은 ‘죽은 자들을 대신하여’라고 번역합니다.
대체와 대신도 모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는 흠정역이 몰몬 교리를 지지한다고 어리석은 주장을 폅니다.
이 글을 읽으면 대체하다가 얼마나 합당한 말인지 알 것입니다.
‘대신하여’ 혹은 ‘위하여’라는 말은 어떤 사람이 구원받지 않아 침례를 안 받았는데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 죽은 자를 위해 대신 침례를 받으면(대리 침례) 구원받을 수 있음을 뜻합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바울이 이런 이단 교리를 지지하였단 말이 됩니다.
지금 바울이 고전 15장 전체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부활, 그것도 구원받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것인데 바울이 부활 교리를 증명하려고 이런 이교도들의 사상을 인용하고 있을까요?
현재 몰몬 교도들은 이런 이교도 사상을 그대로 답습하여 지금도 대리 침례(proxy baptism)라는 것을 행하고 있습니다.
위키백과
말일 성도 교회(몰몬)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이 대리인 역할을 하며 이미 사망한 동성(남성은 남성대리인,여성은 여성대리인) 사람을 대신하여 침수 세례를 받습니다. 죽은 자를 위한 침례는 몰몬교 성전에서만 행해지는 교회 의식이며,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침례가 필요하다는 믿음에 근거합니다.
In the practice of the LDS Church, a living person, acting as proxy, is baptized by immersion on behalf of a deceased person of the same sex. Baptism for the dead is an ordinance of the church, performed only in temples, and is based on the belief that baptism is required for entry into the Kingdom of God.
우리는 결코 이런 것을 믿지 않으며 성경이나 사도 바울도 이런 것을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또한 그 당시에 그런 풍습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 거의 확인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을 대체하여 침례를 받는 것의 의미
자, 그러면 baptism for the dead는 무슨 뜻일까요?
어떤 사람의 주석이나 해석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우리는 문맥에 의거하여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앞뒤 문맥을 보면 의미를 알 수 있으므로 30-32절을 보겠습니다.
30 또 우리가 무슨 이유로 매시간 위험 속에 서 있느냐?
31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지고 있는 기쁨 즉 너희로 인한 기쁨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사람들의 방식대로 에베소에서 짐승들과 싸웠거든 만일 죽은 자들이 일어나지 아니한다면 그것이 내게 무슨 유익을 주겠느냐? 내일 우리가 죽을 터이니 우리가 먹고 마시자.
29-32절 전체는 예수님을 믿다가 순교까지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왜 그들이 죽기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믿을까요? 몸의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29절만 따로 떼어 내어 몰몬 교리를 가르치면 안 됩니다.
29절의 이 말은 흠정역 성경이 말하듯 죽은 자들(믿음을 가지고 살다가 순교한 그리스도인들)을 대체하여(그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침례를 받는 자들을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군대에서 순교자가 많이 나와도 그리스도의 군대는 계속해서 구원받은 새 성도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들이 이런 순교의 길을 갈까요? 몸의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기의 for는 ‘대신하여’, ‘위하여’가 아니라 ‘대체하여’입니다.
표준킹제임스는 ‘대신하여’, ‘위하여’를 피하기 위해 억지로 ‘인하여’로 번역하였는데 여기의 ‘for’에는 ‘인하여’라는 뜻이 전혀 없습니다. 자기 뜻대로 성경을 왜곡하는 것은 범죄 행위입니다.
1. 스코필드 성경의 증언
죽은 자들을 대체하여 침례를 받는 사람들은 이미 죽은 신자들이 비워 둔 물리적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29절의 생각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함에 따라 그들의 자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설 준비가 된 새로운 개종자들에 의해 계속해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주석가는 이것을 "그들이 보는 앞에서 방금 살해당한 동료들을 대체하여 전투에 나서는 병사들의 대열"에 비유합니다(The Works of the Rev. P. Doddridge, Vol. 9, Leeds, 1805, p. 99).
C. I. 스코필드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의역했습니다. “죽음 이후의 삶이 없다면 왜 삶을 위험에 빠뜨리고 이 삶의 혜택을 상실합니까?” (The Scofield Study Bible III, NKJV,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p. 1,593).
Those
baptized for the dead are those who are taking the physical place left vacant by believers who have already died. The idea of 1 Corinthians 15:29 is that, as Christians are martyred, their places are continually being filled by new converts, ready to take a stand for Christ. One commentator likens this to “ranks of soldiers that advance to the combat in the room of their companions who have just been slain in their sight” (The Works of the Rev. P. Doddridge, Vol. 9, Leeds, 1805, p. 99). C. I. Scofield paraphrased the verse this way: “Of what value is it for one to trust Christ and be baptized in the ranks left vacant by the believing dead, if there is no resurrection for believers? Why place life in jeopardy and forfeit the benefits of this life, if there is no life after death?” (The Scofield Study Bible III, NKJV,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p. 1,593).
2. Biblical Illustrator라는 세계 최대 고전 주석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신학 박사 P. J. Gloag, D.D.)
고린도전서 15장 29절 주석
I. 구절의 연결
이것은 20절과 연결되어 있다. 21-28절은 중간 구절이고 괄호에 해당된다. 바울은 부활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허무함에 대해 말했다(19, 20절). 그런 다음 ‘첫 열매’라는 단어가 시사하듯 부활의 순서에 대해 설명한 후에 그는 자기의 주장을 재개한다. "그렇지 아니하여"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죽은 자들을 대체하여 침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이 구절은 앞의 구절들(21-28)과 분리되어 있는 반면에 뒤따르는 구절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30절).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분을 믿는 우리의 인내하는 고난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II. 사도의 생각
1. 그의 주요 주장은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파생된 것이다.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이다." 따라서 "너희 믿음이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너희 죄 가운데 있다"고 증언하면서 "우리가 거짓 증인이 된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증거요 보증이다.
2. 부활이 없다면 죽은 신자들은 멸절되었고(18절) 그들의 기독교는 고통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인간 실존의 비참함을 증가시켰을 뿐이다(19절). 그러나 이것은 인정할 수 없는 결과이다(20절).
3. 이와 유사하게 사도는 부활이 없다면 믿는 자들의 모든 시련(고통과 고난)이 헛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의 관행이 아니라 에피쿠로스의 관행이 더 합리적이다(30-33절). 이제 이 29절 본문은 바로 이것에 대한 논증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을 대체하는 침례는 신자들의 고난과 연결되어야 한다.
III. 따라서 29절 본문은 죽은 자들의 자리를 채우기 위한 침례를 의미한다.
1. 사도는 다른 기독교인들을 계승하는 한 무리의 그리스도인들을 보여 준다. 죽음으로 그들의 행렬(대열)이 줄어들었을 때 다른 사람들(새로운 신자들)이 그들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급히 들어왔다. 그러나 부활이 없다면 왜 그들이 그렇게 하겠는가? 왜 그들은 믿음을 위해 이와 같은 고난을 자진하여 감수하는 것인가? 이러한 해석은 다음과 잘 일치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얼마나 고귀한 생각을 주는 것인가? 새로 구원받은 자들은 이전에 침례 받은 자들이 싸우다가 죽자 그들의 대열의 뚫린 틈을 메워 가며 "대열을 채우고 동료들이 쓰러진 전투에서 싸운다. 이것은 박해의 시대에 듣던 말 즉 "순교자들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다."라는 말을 중명해 준다.
2. 이 해석은 우리에게 침례의 본질에 대한 놀라운 견해를 제공한다. 그것은 침례 받은 산 자들(새로 믿은 자들)과 침례 받은 뒤 죽은 자들(순교한 자들)을 연합시킨다. 그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큰 군대에 입대하는 의식이다. 그것은 교회의 영속성을 보장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지니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계승을 교회에 제공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봉사에 대한 엄숙한 헌신이며, 우리의 선조들이 수행했던 의무를 우리에게 부과하며, 그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보상을 우리가 기대할 수 있게 한다.
얼마나 대단한 말인가?
헛된 말로 속이는 자들을 조심하고 피해야 한다.
로마서 17장
17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18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단순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
Baptism for the dead: --
I.
THE CONNECTION OF THE PASSAGE. It is connected with ver. 20, the intervening verses being a parenthesis. Paul has been speaking of the vanity of the Christian life apart from the resurrection (vers. 19, 20), and then after a digression on the order of the resurrection, suggested by the word "first-fruits," he resumes his argument. "Else," if Christ be not risen, "what shall they do that are baptized for the dead?" But whilst the passage is thus disconnected from what precedes, it is directly connected with what follows (ver. 30). If Christ be not risen, what is the use of our enduring sufferings for our faith in Him?
II. THE APOSTLE'S TRAIN OF THOUGHT.
1. His chief argument is that derived from the resurrection of Christ. "If there be no resurrection of the dead, then is not Christ risen," consequently "your faith is vain, ye are yet in your sins," and in testifying to it "we are found false witnesses." But we have the most convincing proofs, from numerous and unquestionable witnesses, of Christ's resurrection, which is a proof and pledge of ours.
2. If there be no resurrection, then dead believers are annihilated (ver. 18), and their Christianity, as it is inseparably connected with suffering, has augmented the misery of human existence (ver. 19). But this is a consequence that cannot be admitted (ver. 20).
3. And analogous to this the apostle argues that if there be no resurrection, all the trials of believers are useless; not the practice of the Christians, but that of the Epicureans, is reasonable (vers. 30-33). Now it is evident that it is to this argument that the text belongs; therefore, baptism for the dead must be connected with the sufferings of believers.
III. The text therefore means BAPTISM TO FILL THE PLACE OF THE DEAD.
1.
The apostle represents one set of Christians succeeding another: when their ranks were thinned by death others rushed in to supply their place. But why so if there be no resurrection? Why do they voluntarily submit to like suffering for their faith? Such an interpretation agrees well with what follows. And what a noble idea does this give of Christians. They fill up the ranks and fight in the battle in which their companions have fallen. And what a touching scene it must have been in times of persecution to see the baptized, like soldiers, occupying the breach which death had made in their ranks, thus verifying the observation that "the blood of the martyrs is the seed of the Church."
2. This interpretation gives us a striking view of the nature of baptism. It unites the baptized living with the baptized dead; it is the ceremony for our enrolment into the great army of the living God; it ensures the perpetuity of the Church, and supplies it with a constant succession of those who bear the name of Jesus; it is a solemn consecration to the service of Christ, and imposes upon us the duties which our predecessors performed, and enables us to look forward to those rewards which they now enjoy. P.J. Glagg, D.D.
(from The Biblical Illustrator Copyright ?2002, 2003, 2006 Ages Software, Inc. and Biblesoft, Inc.)
2023-07-18 11:30:39 | 관리자
host를 천체, 군사들, 만군으로 마음대로 번역한 표준킹제임스의 표준 오류 또 하나
창세기 1장이 끝난 뒤 2장 1절에는 처음 6일 동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습니다.
창2:1
Thus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host of them.
흠정역: 이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가 완성되니라.
옥스퍼드 사전에 가서 host를 보면 이 단어의 뜻이 군대임을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고 히브리어 사전으로 보면 스트롱 번호 6635 'tsaba'는 전쟁을 위해 조직된 무리 즉 근대를 뜻합니다.
출12:41을 보면 host가 군대임을 모든 역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흠정역: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때에 바로 그날 주의 모든 군대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왔으므로
And it came to pass at the end of the four hundred and thirty years, even the selfsame day it came to pass, that all the hosts of the LORD went out from the land of Egypt.
개역: 사백삼십 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표킹:주의 모든 군사들
한킹: 주의 모든 군대
결론
스트롱 번호 6635의 host 혹은 hosts는 구약 성경 전체에서 다 군대들을 뜻합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데 흠정역을 제외한 다른 성경들은 창2:1을 다 다른 식으로 번역합니다.
흠정역: 이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가 완성되니라.
개역: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한킹: 그리하여 하늘들과 땅이 완성되었고 하늘들의 군상들도 그러하니라.
표킹: 이와 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천체가 완성되었더라.
창2:1의 ‘all the host of them’의 ‘그것들’(them)은 하늘들과 땅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의 host는 천체들이나 군상들이 아니고 하늘들과 땅에 창조된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을 말합니다.
성경은 그것들을 군대라고 부릅니다.
삼상1:3에 처음 등장하는 LORD of hosts는 ‘군대들의 하나님’입니다.
‘여호와 사바오쓰’(Jehovah Sabaoth)는 ‘군대들의 주’(The LORD of hosts)입니다.
기존 개역성경에서는 이를 ‘만군의 여호와’로 표현하였는데 사실 만군이 무엇이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이 말의 ‘군대들’에는 하늘의 군대인 천사들과 일월성신 군대, 즉 천체들과 땅의 군대들과 심지어 메뚜기, 까마귀, 메추라기, 자벌레 같은 창조물 군대도 모두 포함됩니다(창2:1).
주님께서는 이 모든 군대를 치리하며 조절하셔서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신약과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 즉 하나님의 군대의 대장이십니다(삼하6:2; 시24:10; 롬9:29; 약5:4).
Gill 주석
and
all the host them, of the heavens and the earth(그것들의 모든 군대는 하늘들과 땅의 모든 군대를 말한다.); the host of heavens are the sun, moon, and stars(하나님의 군대에는 해, 달, 별들 등이 있다), often so called in Scripture, and also the angels; see Luke 2:13 wherefore this may be considered as a proof of their creation within the above space of time, probably on the first day, though the Jews commonly say on the second; for if all the host of heaven were made at this time, and angels are at least a part of that host, then they must be then made, or otherwise all the host of heaven were not then and there made, as here affirmed: and the host of the earth, or terraqueous globe(땅의 군대에는 식물, 채소, 나무, 날짐승, 물고기, 짐승, 사람이 있다), are the plants, herbs, and trees, the fowls, fishes, animals, and man; and these are like hosts or armies, very numerous, and at the command of God, and are marshalled and kept in order by him; even some of the smallest of creatures are his army, which are at his beck, and he can make use of to the annoyance of others, as particularly the locusts are called, Joel 2:11.
https://biblehub.com/commentaries/genesis/2-1.htm
대다수 주석가들도 비슷하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표킹처럼 host를 천체, 군사들, 만군 등으로 번역하면 안 됩니다. 특히 창2:1의 그것들은 땅과 하늘들을 가리키므로 그것들의 천체라고 하면 땅도 천체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됩니다.
또는 군상으로 해도 안 됩니다.
군상: 떼를 지어 모여 있는 많은 사람.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게 하려면 스트롱 번호 6635에서 나온 host를 처음부터 끝끼지 군대로 번역해야 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17 15:34:3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그것은 썩는 것 가운데서 뿌려지고 썩지 않는 것 가운데서 일으켜지며 수치 가운데서 뿌려지고 영광 가운데서 일으켜지며 연약함 가운데서 뿌려지고 권능 가운데서 일으켜지며(고전15:42-43)
So also is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It is sown in corruption; it is raised in incorruption:
여기의 그것은 몸을 말합니다.
샬롬
2023-06-27 10:51:28 | 관리자
안녕하세요?
그런즉 이와 같이 그것은 원하는 자에게서 나지도 아니하고 달리는 자에게서 나지도 아니하며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롬9:16).
So then it is not of him that willeth, nor of him that runneth, but of God that sheweth mercy
여기의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샬롬
2023-06-27 10:48:29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 주여, 우리 불법들이 우리를 대적하여 증언할지라도 주께서는 주의 이름을 위해 그것을 행하소서. 우리의 타락이 많으며 우리가 주께 죄를 지었나이다(렘14:7).
O LORD, though our iniquities testify against us, do thou it for thy name's sake: for our backslidings are many; we have sinned against thee.
여기의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것, 청원하는 것' 즉 하나님이 비를 내려주시는 것을 뜻합니다.
샬롬
2023-06-27 10:45:52 | 관리자
안녕하세요?
요즘 한 분이 히3:14절의 시제 문제에 대해 물어서 잠시 글을 드립니다.
개역: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흠정역: 이는 우리가 우리의 확신의 시작을 끝까지 확고히 붙들고 있으면 우리가 그리스도께 참여한 자들이 되었기 때문이니라.
개역은 끝까지 붙들고 있으면 구원받는 자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흠정역은 이미 참여한 자들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영어 KJV와 NIV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KJV: For we are made partakers of Christ, if we hold the beginning of our confidence stedfast unto the end;
NIV: We have come to share in Christ if we hold firmly till the end the confidence we had at first.
슈퍼바이블의 원전 분해(그리스어 분석 사전)을 보면 영어 KJV의 ‘are made’는 완료형 동사입니다. 즉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NIV 등도 모두 완료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NASB는 have become이라고 NIV보다 더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NASB: For we have become partakers of Christ, if we hold fast the beginning of our assurance firm until the end,
그러므로 흠정역의 번역이 당연히 맞습니다.
그러면 신학적으로 이 두 번역은 어떤 차이를 가져올까요?
개역의 번역은 우리의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끝까지 버텨서 끝까지 가야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이것은 천주교의 믿음 + 행위 구원 교리(과정 신학)를 지지합니다.
반면에 그리스어 원어나 KJB는 지금 우리가 지키고 있다면 이미 우리의 구원은 끝이 났다는 것을 뜻합니다.
바로 위에 있는 히3:6은 흠정역이 올바름을 확인해 줍니다.
흠정역: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집을 다스리는 아들로서 신실하셨으니 우리가 확신과 소망의 기쁨을 끝까지 굳게 붙들면 우리가 그분의 집이니라(히3:6)
But Christ as a son over his own house; whose house are we, if we hold fast the confidence and the rejoicing of the hope firm unto the end.
우리는 이미 그분의 집입니다. 즉 우리의 구원은 끝이 났습니다. 이것을 집이 될 것이라고 하거나 되고 있다고 하면 성경의 구원관에 큰 혼란이 생깁니다.
한편 말씀보존학회도 흠정역과 비슷하게 번역하였지만 이미 끝난 것이 아니라 진행되고 있다고 번역하였습니다.
한글킹: 이는 우리가 처음의 확신을 끝까지 확고하게 붙들면 그리스도께 참여한 자가 되기 때문이라.
이렇게 된 데는 are made가 완료형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현재형으로 번역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면 천주교의 과정 신학 구원이 생기게 됩니다.
1611년 KJV는 이미 완료되어 이루어진 것을 are made, am come 등으로 표현합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을 보기 바랍니다.
흠정역: 내가 율법이나 대언자들의 글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나는 폐하러 오지 아니하고 성취하러 왔노라.
KJV: Think not that I am come to destroy the law, or the prophets: I am not come to destroy, but to fulfil.
이런 부분을 현재형으로 생각해서 “...페하러 오고 있는 줄로 생각하지 말라”로 번역하면 안 됩니다.
여기의 am come도 그리스어 단어 분석 사전을 보면 당연히 완료형입니다.
무엇이 옳은지는 여러분이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샬롬
2023-04-10 10:54:45 | 관리자
안녕하세요?
요즘 일반 교회에 다니는 분께서 킹제임스 성경을 읽으면서 잠21:12의 번역이 역본들마다 왜 서로 다르냐고 묻기에 잠시 답을 드립니다.
개역: 의로우신 자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환난에 던지시느니라
흠정역: 의로운 사람은 사악한 자(단수)의 집을 지혜롭게 깊이 살피나 하나님께서는 사악한 자들(복수)의 사악함으로 인해 그들을 거꾸러뜨리시느니라.
개역은 의로우신 자를 하나님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면에 흠정역은 앞부분은 사람, 뒷부분은 하나님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원어의 문제가 아니라 번역의 문제입니다.
영어 KJV와 NIV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KJV: The righteous man wisely considereth the house of the wicked: but God overthroweth the wicked for their wickedness.
NIV: The Righteous One takes note of the house of the wicked and brings the wicked to ruin.
영어 KJV는 앞부분은 사람, 뒷부분은 하나님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면에 NIV는 The Righteous One을 하나님으로 보고 앞과 뒤 전체를 하나님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런 문제 역시 이전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주석을 보면 좋습니다.
https://biblehub.com/commentaries/proverbs/21-12.htm
KJV는 앞부분에서 man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하나님은 아닙니다. 의로운 사람은 악한 자들의 조속한 멸망 등을 유심히 보고 판단하면서 살고 하나님은 그들을 멸절시킨다는 뜻입니다. 대개 Gill 그리고 그 위의 Poole 등의 주석은 성경을 자기 뜻대로 고치지 않고 해석하려고 합니다. 이들은 성경 변개가 이루어지기 전인 약 300년 전에 살던 분들이니 이분들의 주석을 참조하시면 많은 경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문제가 생길까요?
영어 KJV를 보면 man과 God이 이탤릭체로 되어 있습니다. 즉 이 두 단어는 히브리 성경 본문에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에 능통했던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히브리 문장의 구조를 파악하여 man, God이 있어야만 뜻이 통함을 보고 이 단어들을 넣은 뒤 이탤릭체로 정직하게 표기하였습니다.
한편 말씀보존학회도 흠정역과 비슷하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단수와 복수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한글킹: 의로운 사람은 악인들(복수)의 집을 현명하게 숙고하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함을 인하여 악인들(복수)을 넘어뜨리시느니라.
무엇이 옳은지는 여러분이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샬롬
2023-04-10 10:30:5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요즘 일반 교회에 다니는 분께서 킹제임스 성경을 읽으면서 잠16:1의 번역이 역본들마다 왜 서로 다르냐고 묻기에 잠시 답을 드립니다.
개역: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흠정역: 사람이 마음으로 예비하는 것과 혀로 대답하는 것은 주로부터 오느니라.
개역은 앞부분은 사람이 하고 뒷부분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흠정역은 둘 다가 주님으로 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원어의 문제가 아니라 번역의 문제입니다.
영어 KJV와 NIV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KJV: The preparations of the heart in man, and the answer of the tongue, is from the LORD.
NIV: To man belong the plans of the heart, but from the LORD comes the reply of the tongue.
영어 KJV는 둘 다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되어 있고 NIV는 개역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영어 주석들이 들어 있는 Biblehub로 가서 Benson, Gill 등의 주석을 보면 킹제임스 성경대로 둘 다가 주님으로부터 온다고 보는 것이 맞음을 알 수 있습니다.
Benson: The preparations of the heart in man, &c. — As we read this verse, it teacheth us a great truth, that we are not sufficient of ourselves to think, or speak, any thing of ourselves, that is wise and good, but all our sufficiency is of God, who is with the heart and with the mouth, and works in us both to will and to do, Php 2:13; Psalm 10:17. But most read it otherwise, namely, thus: The preparation of the heart is in man, he may contrive this and the other; but the answer of the tongue — Not only the delivering of
이 구절은 우리에게 다음을 가르쳐 준다: 우리 사람은 심지어 지혜롭거나 좋은 것 등을 스스로 생각하거나 말하기도 어려운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의 완전함 혹은 충분함은 하나님에게서 온다. 빌2:13을 보라. “자신의 선한 기쁨에 따라 너희 안에서 일하사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우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그대로 번역하였습니다.
한편 말씀보존학회는 개역처럼 번역하였습니다.
한글킹: 사람이 마음으로 준비하여도 그 혀의 대답은 주께로부터 나느니라.
무엇이 옳은지는 여러분이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샬롬
2023-04-10 10:04:11 | 관리자
안녕하세요,
한 분이 다음과 같은 것을 문의하였기에 간단히 답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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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최근 킹제임스흠정역 읽기에 열심인 학생입니다.
킹제임스 흠정역이 원전에 충실한 번역이라고 해서 원전은 못 읽으니 킹제임스 흠정역을 읽으면서 원전을 읽는 듯한 경험을 하고 있답니다.
간혹 무슨 뜻인지 의아할 때는 히브리어 원전을 검색해 보고 있는데요,
그러다가 히브리어랑 다른 뜻을 가진 단어들을 몇 개 찾고 왜 이렇게 번역된 건지 궁금한 점이 생겨서 문의를 드리게 됐습니다.
에스겔 16장 38절에는 "또 내가 혼인을 깨고 피를 흘리는 여자들을 심판하는 것같이 너를 심판하여 격노와 질투 속에서 네게 피를 주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혼인'은 히브리어 원전에서 '나아프'라고 되어 있더라구요, 나아프는 간음이란 뜻을 갖는 단어인데 왜 킹제임스 흠정역에서는 ‘혼인을 깨다’라고 번역이 된 건지 궁금합니다.
KJV에서 'break wedlock'이라고 번역되어 있어서 '혼인을 깨다'라고 한 것 같은데 다른 부분에서는 나아프를 간음이라고 번역했더라구요.
왜 여기에서는 ‘혼인을 깨다’로 번역된 건지 궁금합니다.
다른 주석도 찾아 읽어 보고 다른 성경들도 읽어 봤는데 대부분 간음이라고 번역되어 있더라고요. 너무 궁금합니다. 꼭 좀 답변 부탁드립니다.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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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말씀하신 대로 그 단어는 히브리어 스트롱 번호 5003이고 나아프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이 단어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본 어근;‘간음을 범하다’; 상징적으로 ‘배교하다’: -간음자(여자), 간음을 범하다, 혼인이 파기된 여자들(복수)
이 단어는 31회 사용되었으며 대다수가 ‘간음하다’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유의할 것이 있습니다.
단순히 간음했다고 하면 혼인이 깨진 것이 아닙니다. 간음하면서도 얼마든지 혼인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혼인이 깨졌다는 것은 간음 등의 이유로 이혼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에스겔 대언자가 말하는 유다의 상태는 이미 간음을 수도 없이 범해 ‘혼인이 깨진 상태’에 있으므로 KJV는 이 단어를 ‘혼인을 깨다’(break wedlock)로 바르게 번역하였습니다.
항상 KJV는 옳고 다른 성경들은 거기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냥 기계적으로만 번역하면 안 됩니다.
모든 히브리/그리스 단어에는 몇 가지 뜻이 있고 그중에서 가장 합당한 것을 찾아 번역해야 합니다. 그 점에서 KJV는 완벽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02-02 13:31:57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영어와 원어의 차이 그리고 이로 인한 단수 복수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며칠 전에 외국에 사시는 한 분이 디도서 1장 1절 번역에 대해 질문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의 믿음에 따라, 하나님의 성품을 따르는 진리를 인정함에 따라
Paul, a servant of God, and an apostle of Jesus Christ, according to the faith of God's elect, and the acknowledging of the truth which is after godliness;
질문의 핵심은 the faith of God's elect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습니다.
God’s elect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단수)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복수)이냐?
이분은 James Knox 목사님의 설교를 듣곤 하며 최근에는 그분이 소개한 다른 미국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는데 이분은 the faith of God's elect의 elect가 단수이며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고 하면서 그분의 설교가 맞는 것 같다고 하며 질문하였습니다.
즉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갈2:20과 매칭이 되게).
사실 영어로는 elect라는 단어가 단수인지 복수인지 구분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어 공인 본문을 사용하는 슈퍼바이블에 가서 원어 분해를 보았습니다.
elect: 1588 ejklektov" eklektos {ek-lek-tos'}
1586에서 유래;‘뽑힌’, (함축적으로)‘마음에 드는’, 택함을 받은, 선출된 <막 13:20>형. chosen; 남성 복수
즉 elect라는 말은 남성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택하신 자들이 되어야 맞습니다.
이런 데가 히브리서 12장 23절에도 있습니다.
총회와 하늘에 기록된 처음 난 자들의 교회와 모든 것의 [심판자] 되시는 [하나님]과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들과
To the general assembly and church of the firstborn, which are written in heaven, and to God the Judge of all, and to the spirits of just men made perfect,
저 역시 킹제임스 성경을 지지하는 어떤 목사님이 이 구절의 the firstborn을 처음난 자들(복수)이 아니라 처음난 자(단수)로 보아야 하며 처음난 자 혹은 처음난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역시 슈퍼바이블의 공인 본문을 가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firsrborn: 4416 prwtotovko" prototokos {pro-tot-ok'-os}
4413과 5088의 대체어에서 유래; 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먼저 태어남’(일반적으로 먕사로서), 처음난 <롬 8:29; 골 1:15>형. firstborn; 남성 복수
이 단어 역시 남성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2011년 400주년 기념판과 2021년 마제스티 에디션은 단복수에 관한 이런 점에서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마제스티 에디션에서는 영어로 볼 때 단수 복수가 애매모호한 단어들을 모두 원어로 가서 확인하여 원어가 단수면 단수, 복수면 복수로 표기하였습니다.
영어는 원어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단수 복수를 구분하기 어렵다고 해도 영어 번역은 완벽합니다. 그렇게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나 미국 독자들이 영어만 가지고 단복수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강해를 하면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을 가지고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2011년 400주년 기념판: 그런즉 자녀들은 살과 피에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의 일부를 취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Forasmuch then as the children are partakers of flesh and blood, he also himself likewise took part of the same; that through death he might destroy him that had the power of death, that is, the devil;
여기에는 살과 피가 나옵니다. 그런데 영어 중간에 the same이 나옵니다. 이것을 400주년 기념판에서는 ‘같은 것’이라고 단수로 번역하였습니다.
원어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the same: 846 aujtov" autos {ow-tos'}
불변사 au<아무>【아마 일정한 ‘방향없는’바람의 개념으로 109의 어간과 유사】(‘뒤편’)에서 유래;(재귀대명사)‘자신’, 3인칭(홀로 혹은 1438과 합성어로)으로 사용, 역시 기타 인칭(본래적 의미로는 인칭대명사와 함께)으로 사용, 848과 비교 <마 3:11;눅 3:23;행 10:26>대. self, him, it, her, the same; a)강조적 용법 ;자신(self) b)인칭대명사의 3인칭 ;그, 그녀, 그것c)한정적인 용법 ;동일한, 바로 그 (the same), 중성 복수
즉 여기의 the same은 중성 복수로서 살과 피 두 개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복수로 표현하였습니다.
마제스티 에디션: 그런즉 자녀들은 살과 피에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친히 같은 것들에 참여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베드로전서 3장 18절도 마찬가지입니다.
400주년: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로운 자(단수)로서 불의한 자(단수)를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가려 하심이라.
For Christ also hath once suffered for sins, the just for the unjust, that he might bring us to God, being put to death in the flesh, but quickened by the Spirit:
영어로만 보면 the just, the unjust가 단수인지 복수인지 구분하기 어렵지만 원어로는 분명하게 전자는 남성 단수, 후자는 남성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제스티 에디션에서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마제스티: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해 한 번 고난받으사 의로운 자(단수)로서 불의한 자들(복수)을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령에 의해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 데려가려 하심이라.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보다는 ‘성령에 의해’가 더 뜻이 명확해서 그렇게 고쳤습니다.
이번 마제스티 에디션에서는 이런 식으로 the에 형용사가 붙어 있는 명사들을(시편 잠언 등 시가서에 매우 많음, the wise, the rich, the poor, the wicked 등등) 일일이 확인하여 가능한 한 단수와 복수를 구분해서 표현하였습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우리가 보기에 영어로 단수와 복수 구분이 어려워도 영어 번역은 완벽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어만 보고 번역하거나 설교하다 보면 단수와 복수로 인한 혼동이 생길 수 있으므로 원어의 도움을 받아야 이런 부분을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가능하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마제스티 에디션은 가능한 한 단수 복수를 명확하게 표기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가 풍성히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3-01-23 09:52:02 | 관리자
즉 아브라함은 데라가 130세 되던 해에 출생하였습니다.
https://apologeticspress.org/how-old-was-terah-when-abraham-was-born-758/
2022-11-02 06:50:58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 대해 잠시 설명하려고 합니다. 여기에는 '설득하다'는 말이 나오므로 앞뒤 문맥상 왜 이 말이 나오는지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사실 얼핏 보면 왜 이런 말이 나오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내가 지금 사람들을 설득하느냐, 하나님을 설득하느냐? 혹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를 구하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For do I now persuade men, or God? or do I seek to please men? for if I yet pleased men, I should not be the servant of Christ.
갈라디아서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복음에 율법주의를 가미하여 복음을 변개하려는 '갈라디아 교회의 침입자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1-12절 요약
1. 1-5절 요약
나 바울은 너희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가서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을 선포하였고 너희가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을 선포하였는데 너희는 다 이 복음의 메시지를 수용하였다.
2. 6절
그런데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하나님]을 너희가 이렇게 속히 떠나 다른 복음으로 옮겨 가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긴다.
3. 7절
그것은 다른 참 복음이 아니며 다만 너희를 어지럽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 하는 어떤 자들이 있다.
Which is not another; but there be some that trouble you, and would pervert the gospel of Christ.
[너희 안에 침입한 자들은 자기들이 전하는 것이 내가 전한 것과 같다고 너희가 믿기를 원하지만 그들이 전하는 것은 내가 전한 복음과는 다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고 있다.]
여기서 영어 another의 의미를 설명하려 한다. 나는 200개의 찬송이 들어 있는 찬송가를 가지고 있다(A 찬송가). 내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찬송가를 하나 내게 가져오라고 부탁하니 그 사람이 150개의 찬송이 들어 있는 찬송가를 내게 가져왔다(B 찬송가). 이 두 개는 다 찬송가이지만 같은 찬송가는 아니다.
영어에서 another로 표현되는 그리스어는 2개가 있다.
1. 하나는 완전히 다른 것을 말한다. 위에 있는 예처럼 찬송가는 찬송가인데 A와 B는 완전히 다른 찬송가이다. 혹은 그 사람이 잡지책을 가져 왔으면 그것 역시 완전히 다른 것이다.
2. 그런데 옆에 있는 사람이 자기가 소유한 찬송가 즉 200개의 찬송이 들어 있는 찬송가 다시 말해 내가 가진 것과 동일한 내용과 표지가 있는 찬송가를 내게 가져 왔다면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다른 찬송가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모든 면에서 동일한 찬송가이다. 이럴 때 쓰이는 another는 내 것이 아니므로 분명히 다르지만 내 것과 비교해서 모든 면에서 완전히 같은 것을 뜻한다.
바울은 여기서 침입자들이 전하는 복음은 자기가 전하는 것 즉 참 복음과는 동일하지 않은 다른 복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것은 다른 [참 복음]이 아니다.
개역성경은 이것을 ‘다른 복음은 없나니’라고 번역하였는데 사실 이것은 오역이다.
부가 설명: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은 참 복음이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의 침입자들이 주장하는 '믿음+행위'로 구원받는다는 것도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구원을 가져다준다고 하므로 복음이라 불릴 수 있지만 바울이 전하는 참 복음과 같은 복음은 아니다. 그래서 그것은 '다른(another) 참 복음'이 아니다.
4. 8-9절
이제 나는 이 침입자들로 인해 마음이 편치 않으며 그래서 두 번이나 강력하게 이들에 대해 경고하려 한다.
나 바울은 내가 전하는 메시지가 100% 진실임을 알고 있고 그래서 사람이든 천사든 그것을 단 한 글자라도 바꾸면 안 된다. 그래서 8-9절에서 나는 2번이나 연거푸 그런 일을 하는 자에게 저주가 있기를 바람을 기술하였다.
8 하지만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다른 어떤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한 것같이 그렇게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가 받아들인 것 외에 다른 어떤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5. 10절
자, 그러면 내가 지금 왜 이렇게 확신 있게 말하는지 그 이유를 말하겠다.
내가 지금 사람들을 설득하느냐, 하나님을 설득하느냐? 혹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를 구하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10).
For do I now persuade men, or God? or do I seek to please men? for if I yet pleased men, I should not be the servant of Christ.
영어를 보면 10절 맨 앞에 for가 있다. 그러므로 10절은 앞에서 말한 것에 대한 이유이다. 즉 우리는 그 이유를 앞에서 찾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여기에 사용된 ‘설득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1) 내가 사람들을 설득하려(persuade) 하고 있느냐?
(2) 내가 하나님을 설득하려 하고 있느냐?
(3) 혹은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please) 하고 있느냐?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아니다’이다. 이제 이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먼저 ‘설득하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설득하다: 상대편이 이쪽 편의 이야기를 따르도록 여러 가지로 깨우쳐 말하다(표준국어대사전).
예를 들어 어떤 직원이 월급을 올려달라고 사장에게 이야기해서 월급 인상을 받으려면 세세히 이유를 밝혀 그를 설득해야 한다. 그래서 직원이 모든 물가가 올랐고 자기의 판매 실적 혹은 회사에서의 성적이 좋다는 증거를 가지고 가서 월급을 올려달라고 하면 사장이 그 말에 설득되어 월급을 올려 줄 것이다. 이것이 설득하다의 의미이다.
10절에는 갑자기 ‘설득하다’가 나오지만 바울이 무엇을 설득하는지 그 내용이 주어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 ‘설득하다’가 쓰인 용례를 살펴보고 갈1:10도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고린도후서 5장 10-11절을 보겠다.
이는 우리가 반드시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라.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서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고후5:10).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공포를 알고 있기에 사람들을 설득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밝히 드러났고 또 너희 양심에도 밝히 드러났음을 나는 또한 확신하노라(고후5:11).
고후5:11절에도 무엇에 관해 사람들을 설득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지만 우리는 바로 앞 구절인 10절 즉 하나님의 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는 말씀을 통해 바울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1. 우리가 주의 공포를 알고 있기에 [거룩하게, 의롭게 살아서 하나님의 공포의 심판을 피해야 한다고] 사람들을 설득하지만
마찬가지로 갈1:10의 ‘설득하다’도 앞에 나오는 어떤 내용과 연결되어야만 한다.
그러면 바울이 설득하려는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8-9절에 있는 대로 “내가 전하는 복음 이외의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다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복음을 믿으라고 사람들과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10절은 다음과 같이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1. [내가 전하는 복음 이외의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다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믿으라고] 내가 지금 사람들을 설득하느냐?
대답: 아니다. 나는 그것을 믿으라고 사람들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
2. 혹은 하나님을 설득하느냐?
대답: 아니다. 나는 그것을 믿으라고 하나님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
즉 바울은 [자기가 전하는 복음 이외의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다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믿으라고] 사람들을 설득할 필요도 없고 하나님을 설득할 필요도 없다.
사람들을 설득한다고 하면 그것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시도이다. 그래서 다음이 나온다.
3. 혹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를 구하느냐?
대답: 아니다. 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를 구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6. 11-12절
그러면서 11-12절이 나오는데 그 핵심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너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이 메시지를 내게 주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내가 자의로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확실히 알리노니 내가 선포한 복음은 사람을 따라 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그것을 사람에게서 받지도 아니하고 배우지도 아니하였으며 다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해 주어졌느니라(11-12절).
‘설득하다’를 다른 성경들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개역) 혹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랴?’(말보) 혹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고’(바른, 공동) 등으로 번역했지만 이런 말들은 다 의역에 지나지 않는다. 영어 persuade someone은 항상 무엇을 하라고 ‘누구를 설득하다’의 뜻이다. 그리스 말도 동일하다. 영어 KJB 성경에 나오는 persuade someone은 다 이런 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번역하고 앞에 있는 ‘무엇을 하라고‘를 문맥에 맞게 생각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 another에 대한 설명 참조
그리스어에도 두 단어가 있다. 알로스(7절)와 헤테로스(6절)가 있는데, 보통 전자는 같은 종류의 다른 것, 후자는 전혀 다른 것을 말한다.
https://maranathamedia.com/article/view/is-allos-another-of-the-same-heteros
2022-08-17 15:56:39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