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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킹제임스 성경 옹호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리플링거 자매님이 1611년 이후의 킹제임스 성경 성경 본문 변천에 대해 다루면서 영어 KJV를 출간하는 출판사들이 부주의하게 인쇄하는 과정 중에 만든 인쇄상 실수를 지적하면서 성경 출판사들이 단어 하나하나의 조판에 신경을 쓸 것을 주문하는 글을 썼습니다.   그 팸플릿의 제목은 <Settings of the King James Bible>입니다. 구글에 가서 Settings of the King James Bible Riplinger로 검색하면 몇 쪽으로 된 PDF 파일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 신자 중 한 분이 이 글을 읽고 리플링거가 한 말을 그대로 가져다가 번역하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   여기서 리플링거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The 1769 edition, done by Blayney, also had its own typos. The name '1769' is frequently and wrongly applied to digital editions on the internet, which are simply a digitization of the Cambridge Concord edition, a singular variety of the Cambridge text. No one has digitized the actual 1769 and it would be pointless to do so. The '1769' banner is a straw man, created by KJB critics, and unwisely adopted by KJB users." - Settings of the King James Bible, G. A. Riplinger 블레이니가 편집한 1769년판에도 오자가 있었습니다. '1769년판' 이라는 이름은 인터넷의 디지털 판에 종종 잘못 적용되는데, 이는 케임브리지 본문의 단일 변종인 케임브리지 콩코드 판을 디지털화한 것에 불과합니다. 아무도 실체 '1769년판'을 디지털화하지 않았고 그렇게 하는 것도 무의미합니다. '1769년판' 이라는 깃발은 KJB 비평가들이 잘못된 의도로 만든 것인데 KJB 사용자들이 어리석게 채택한 허상일 뿐입니다. - G. A. 리플링거 (저자, 뉴에이지 성경 역본들) 해설: 킹제임스 성경의 판본들 중 1769년 옥스퍼드판이 표준판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사실상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 판에도 오자가 있으며 이후에 더 수정되었습니다. 또한 지금 1769년 케임브리지 스탠다드판(표준킹제임스 주장)이라 불리는 것은 사실 여러 케임브리지판 중에 하나인 케임브리지 콩코드판을 디지털화한 것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공격하는 비평가들(배교자들)은 주로 킹제임스 성경의 특징한 판을 들어 다른 판들을 공격하는 자료로 사용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1769년판만 내세우며 강조하는 것도 바이블 빌리버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지역 교회를 분열시켜 자신들만을 따르게 하기 위한 미혹에 불과합니다.   리플링거 웹사이트  ----------------------- 이미 잘 알려진 대로 표준킹제임스 역자는 자기가 저본으로 삼았다는 소위 1769년 케임브리지 표준 에디션(이런 에디션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이라 불리는 영어 본문을 스스로 self 제조하였다고 실토하였습니다. 그 안에는 이미 46개의 명백한 오류들이 있습니다.   표준 킹제임스 역자의 거짓말 이실직고   로마서 16장 17-18절   17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18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단순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          
2023-07-17 16:18:10 | 관리자
표준킹제임스처럼 영어 단어를 단순히 영한사전에서 찾아서 번역하면 치졸한 번역이 된다. 우리는 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영어를 배운다. 그래서 영한사전만 있으면 쉽게 영어 문장을 번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특히 영어 성경을 번역하는 일에 미숙한 사람들이 영한사전으로 번역하다가 졸역을 만드는 사례들이 많다. 근래에 나온 표준킹제임스라는 것이 그런 졸역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1. 약속인가, 약속하신 것인가?   중고등학교에 가면 promise라는 단어를 배운다. 누구나 다 그것이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히11:13은 영어로 이렇게 되어 있다. These all died in faith, not having received the promises, but having seen them afar off, and were persuaded of them, and embraced them, and confessed that they were strangers and pilgrims on the earth.   흠정역: 이들은 다 믿음 안에서 죽었고 약속하신 것들을 받지 못하였으나 멀리서 그것들을 보고 확신하며 끌어안았고 또 땅에서는 자기들이 나그네와 순례자임을 고백하였으니   여기에 보면 그들이 promises를 받지 못한 것으로 되어 있다.   표킹: 이들 모두가 그 약속들을 받지 못한 채 믿음 안에서 죽었으나 아득히 떨어져 있는 그것들을 보았고 한킹: ...그 약속들... 개역: 약속... 카톨릭: 약속된 것(Good)   표준역처럼 영어 번역의 초짜가 만든 책들은 이런 것을 번역하면서 ‘그들이 그 약속들을 받지 못하였다.’고 번역한다. 그러고는 이것이 직역으로 가장 우수한 번역이라고 주장한다.   히11:39에도 promise를 받지 못했다는 동일한 말씀이 있다. And these all, having obtained a good report through faith, received not the promise:   흠정역: 이들은 다 믿음을 통해 좋은 평판을 얻었으나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하였으니   표준역은 여기도 역시 그들이 그 약속을 받지 못하였다고 오역을 하였다.   표킹: 그리하여 이들 모두가 믿음을 통하여 하나의 좋은 평판을 얻었으면서도 그 약속을 받지는 못하였느니라. 한킹: 그 약속, 개역: 약속 카톨릭: 약속된 것(Good)   반즈 주석 등이 말하는 것을 보자. [Not having received the promises] That is, not having received the "fulfillment" of the promises. The promises themselves they "had" received. The word "promise" is used by metonymy "for the thing promised.“ 이 말은 약속들의 성취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약속들 그 자체는 이미 받았다. 여기의 ‘약속’은 ‘약속된 것들’을 뜻하는 수사학적 환유 표현이다. 그러므로 흠정역처럼 번역해야 올바른 것이다. 흠정역: 이들은 다 믿음 안에서 죽었고 약속하신 것들을 받지 못하였으나 멀리서 그것들을 보고 확신하며 끌어안았고 또 땅에서는 자기들이 나그네와 순례자임을 고백하였으니  눅24:49; 행1:4; 히11:33, 39 등의 promise도 같은 식으로 ‘약속하신 것‘으로 번역해야만 한다. 그러나 표준역은 이 모든 곳을 다 약속으로 번역하여 오역을 하였다. 눅24:49; 행1:4 등에서는 약속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야 한다. 2. 정죄인가, 정죄의 근거인가? 요3:19에는 condemnation이라는 말이 있다. And this is the condemnation, that light is come into the world, and men loved darkness rather than light, because their deeds were evil.   흠정역: 정죄의 근거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이 자기 행위들이 악하므로 빛보다 오히려 어둠을 사랑한 것이니라.   단순하게 영한사전에 가서 condemnation을 찾으면 뜻이 그 뜻이 정죄로 되어 있다. 구글 번역기도 당연히 이렇게 번역한다. 그래서 표준역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그런즉 이것이 정죄니 곧 빛이 세상 속으로 왔으나 그런데도 사람들이 그들의 행실들이 악하므로 빛보다는 어두움을 사랑한 것이라. 표킹에 있는 대로 읽으면 정죄란 그들이 빛보다는 어두움을 사랑한 것이 되고 만다. 이러면 말이 꼬이고 앞뒤 연결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영어 초짜가 1차원적인 번역을 한 것이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가서 condemnation을 찾으면 세 번째 뜻으로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3.3 The ground or reason for condemning. 정죄의 근거 혹은 이유  즉 이런 경우의 condemnation은 정죄가 아니라 정죄의 근거 혹은 이유로 번역되어야 한다. 흠정역은 그렇게 번역하였다. 그들이 빛이 아니라 어둠을 사랑한 것이 정죄의 근거이다. 흠정역: 정죄의 근거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이 자기 행위들이 악하므로 빛보다 오히려 어둠을 사랑한 것이니라. 3. 수고인가, 수고의 열매인가? 잠언, 전도서 등에는 labour라는 말이 여러 차례 나온다. 역시 영한사전으로 이 말을 찾아보면 뜻이 수고, 애씀, 노동 등으로 나와 있다. 그러므로 labour를 모두 수고로 번역하면 역시 졸역이 된다. 전2:18을 보자. Yea, I hated all my labour which I had taken under the sun: because I should leave it unto the man that shall be after me. 표준역은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표준: 내가 나의 모든 수고를 증오하였도다. 이는 내가 내 뒤를 이을 사람에게 그것을 남겨 주어야만 하기 때문이라“   이대로 읽으면 수고를 남겨 준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어떻게 수고를 남겨 줄 수 있는가?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가서 labour을 찾으면 네 번째 뜻으로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4.4 The outcome, product, or result of toil. 수고의 결과, 산물, 열매 등 그러므로 같은 labour라도 전2:18 같은 데서는 흠정역처럼 번역해야만 한다.   흠정역: 참으로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한 내 모든 수고의 산물을 미워하였으니 이는 내가 그것을 내 뒤에 올 사람에게 남겨야 하기 때문이라. 카톨릭 성경, 공동 번역도 이런 부분을 제대로 번역하였다. 카톨릭: 나는 또 태양 아래에서 내가 애써 얻었건만 내 뒤에 오는 인간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내 모든 노고의 결실을 싫어하게 되었다. 이런 데가 잠언 전도서 등에는 여러 차례 나온다.    신28:33을 한 번 더 보자. 여기에도 labour가 나온다. The fruit of thy land, and all thy labours, shall a nation which thou knowest not eat up; and thou shalt be only oppressed and crushed alway: 표준역은 네 모든 수고들을 다른 민족이 먹어 치울 것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사람들이 수고를 먹어 치울 수 있는가? 흠정역처럼 되어야 마땅하다.   흠정역: 네 땅의 열매와 네 모든 수고의 산물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고 너는 항상 억눌리고 짓밟힐 뿐이리니 카톨릭: 너희 땅의 소출과 너희가 일하여 얻은 모든 것을 너희가 알지도 못하는 백성이 먹어 버리며, 너희는 언제나 억압을 받고 짓밟히기만 할 것이다. 그래서 영한사전만 있으면 성경을 쉽게 번역할 수 있다고 오해하거나 착각하면 안 된다.    또 그런 초짜들의 꾐에 속아 넘어가서도 안 된다.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면 그 자들의 배만 불려 주고 본인은 패가망신할 뿐이다.   로마서 16장 17-18절   17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18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단순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   어떤 사람이 보내 준 글을 공유합니다.   어떤 분이 쓴 덧글입니다. <하나님과 표준 번역자의 대화 유머> 표킹 번역자 :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 : 그런 적 없는데... 내가 영감을 준 것은 처음 자필 원본뿐인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내가 영감을 불어 넣은 원본을 신실하게 옮긴 사본들에서 영어로 정확하게 번역한 것이지 영감을 준 것은 아닌데…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 그거 내가 한 말 맞니? 너만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니? 표킹 번역자 :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신학도 공부하며 주님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표준역으로 받는 고난 또한 주님께서 주신 것이라 생각하고 감내하겠습니다. 하나님 : 그래 나도 알아. 근데 지금 네가 받는 고난은 스스로 자초한 거야. 멋드러진 간증과 또 고난이라는 힘들고 어려운 길을 홀로 걸어간다는 감성 컨셉으로 내 자녀들을 선동하고 현혹시키지 말렴. 표킹 번역자 : 저는 사람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만을 보고 걷는 사람입니다... 신실하게 영어 그대로 옮겨서 까마귀가 남자가 되고 개미가 여자가 되었습니다 ㅠㅠ 억울합니다... 하나님 : 너 말고도 내 영광을 위해 걷는 사람 많아. 내 영광을 빌미로 너의 무지함과 몰상식함을 덮으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심판석에서 보자...    
2023-07-17 15:54:00 | 관리자
사람을 살해하는 섬뜩하고 살벌하고 공포스러운 하나님: 표준킹제임스의 또 다른 표준 오류 도저히 하나님께 쓸 수 없는 단어들을 사용하여 신성모독을 범하는 오류의 표준, 표준킹제임스의 사례들 1. 사람을 살해하는 하나님, 살해는 친족 살해, 영아 살해, 존속 살해 등 반인륜적인 살인을 말할 때 사용되는 말    창38:7 그런데 유다의 첫 태생인 엘은 주의 목전에 사악하였더라. 그리하여 주께서 그를 살해하셨더라. 창38:10 그러자 그가 행한 그 일이 주를 불쾌하게 하였더라. 이러한 이유로 그분께서 그 역시 살해하셨더라. 출13:15 그런즉 파라오가 우리를 전혀 가게 하려 하지 않았을 때 이러한 일이 있었으니, 주께서 이집트 지역 가운데서 첫 태생들을 모두 살해하셨는데 사람의 첫 태생과 짐승의 첫 태생을 모두 살해하셨도다. 민14:16 ‘주께서 이 백성에게 맹세한 지역으로 그분이 그들을 데리고 들어갈 수 없었기에 그분이 그들을 광야 가운데서 살해하셨도다.’ 하리이다. 대상10:14 그런데 주께는 여쭙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므로 그분께서 그를 살해하셨고 왕국을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로 돌이키셨더라. 시78:31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 위에 임하였고 그들 중 가장 살진 자들을 살해하셨고 이스라엘 가운데 선택된 사람들을 쳐서 쓰러뜨리셨도다. 2. 섬뜩한 하나님, 살벌한 주의 날 섬뜩하다: 갑자기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고 끔찍하다. 등골이 섬뜩하다. 장소나 소리가 섬뜩하다고 하는 경우는 없다. 더욱이 섬뜩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우리말에서 찾아볼 수 없다. 창28:17 그러고 나서 그가 무서워하여 말하기를, “이 얼마나 섬뜩한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곳은 하늘의 대문이로다.” 하였더라. 욥15:21 한 섬뜩한 소리가 그의 두 귀에 있도다. 번영 속에서 멸망시키는 자가 그의 위에 임하리라. 단9:4 그리고 나는 주 나의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의 자백을 드리며 이같이 말씀드렸더라. “오, 주여, 위대하시고 섬뜩하신 하나님, 곧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와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는 자들에게 언약과 자비를 간직하시는 분이여, 살벌하다: 행동이나 분위기가 거칠고 무시무시하다. 분위기가 살벌하다. 하나님의 이름이 살벌하다거나 주의 날이 살벌하다거나 사람들이 살벌하다는 것은 우리말이 아니다. 말1:14 그러나 자기 양 떼 가운데 수컷이 있는데도 서원한 뒤에 부패한 것을 주께 희생 제물로 바치는 자, 바로 그 속이는 자는 저주받기를 바라노라. 이는 내가 한 위대한 왕이요, 나의 이름이 이교도들 가운데서 살벌하기 때문이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말4:5 보라, 위대하고 살벌한 주의 날이 오기 전에 내가 예언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겠노라. 합1:7, 그들은 공포스러우며 살벌하도다. 그들의 심판과 그들의 위엄이 그들 자신에게서 표출되리라 3. 공포스럽다는 말 차제가 우리말에 없다. 하나님이 공포스러운가? terrible, 총52회 신1:19 그러고 나서 우리가 호렙에서 출발하였을 때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가 목격한 그 거대하고 공포스러운 광야를 아모리족들의 산길로 다 거쳐 갔느니라. 그런 다음에 우리가 카데시바네아에 왔느니라. 신7:21 너는 그들에게 겁먹지 말지니라. 이는 주 너의 하나님, 곧 막강하고 공포스러우신 한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 계시기 때문이라. 신10:17 이는 주 너희 하나님께서는 신들의 하나님이시요, 주들의 주시요, 한 위대한 하나님이시요, 한 막강한 분이시요, 한 공포스러운 분이시요, 외모들을 유념하지 아니하시고 보수를 받지도 아니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라. 합1:7 그들은 공포스러우며 살벌하도다. 그들의 심판과 그들의 위엄이 그들 자신에게서 표출되리라. 히12:21 그런즉 그 광경이 이처럼 공포스러웠기에 모세도 말하기를, “내가 극도로 두렵고 전율하노라.” 하였느니라.
2023-07-17 15:00:46 | 관리자
영감과 보존과 번역, 그리고 원본, 사본, 역본의 관계   오늘은 영감과 보존과 번역, 그리고 원본, 사본, 역본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영감과 보존과 번역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정의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을 보겠습니다.   1647년에 제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1조 성경편’의 8항(이것은 런던 침례교 신앙 고백에도 100%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음).   우리는 1. 하나님께서 원어 성경기록들을 영감으로 주시고, 2. 사상 유례없는 보호와 섭리로 순수하게 보존하셨음을 믿으며 3. 또한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도록 바르게 예배드리기 위해 정확하게 원어 성경기록들을 번역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이것이 성경 신자들의 성경에 대한 바른 견해라고 믿고 이것을 설명하려 합니다.   영감이란 무엇인가?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   성경대로 믿는 신자라면 누구나 성경의 영감을 믿을 것입니다.    영감이란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성경을 문자들을 써서 단어들로 기록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그리스 말로 영감(inspiration)은 ‘숨을 불어 내어 쉬다’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감’은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 내어 쉬셨음’을 뜻합니다.    영어 ‘inspiration’에서 중간에 있는 ‘spir’는 영을 뜻하는 ‘spirit’에서 나왔습니다. 또 앞의 ‘in’은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감은 ‘하나님의 영(숨)이 직접 들어갔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무엇에 숨(혹은 영)을 불어 넣으셨을까요?    그분은 ‘모든 성경기록’에 그리하셨습니다. 여기서 성경기록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그라페는 기록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은 완전한 성경기록의 모든 단어에 자신의 숨을 불어 내심으로써 그 단어들이 살아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이것 없이는 아무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단어)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그분의 눈앞에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창조물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그분의 눈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느니라(히4:12-13).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단어)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4:4).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영감은 몇 차례 있었나?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영감 과정이 과거에 몇 차례 있었느냐, 또 지금도 있느냐는 것입니다.   영감이 과거에 한 차례만 있었을까요, 여러 차례 있었을까요?   즉, 원본의 단어들만 단 한 차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을까요? 아니면 사본의 단어들도 여러 차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을까요? 혹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나 우리말 흠정역 성경은 어떤가요? 그것들도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을까요?   즉 하나님의 성경 영감 과정이 과거에만 있었을까요, 아니면 현재에도 있을까요?   바로 이것이 여러 사람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여기서 잘못 나가면 럭크만주의의 킹제임스 성경 이중영감설(double inspiration)이 나옵니다.    일단 분명한 것은 딤후3:16에 나오는 영감이 자필 원본의 단어들을 기록할 때에 사용된 영감이라는 점입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히브리 말(약간의 아람어)로, 신약 성경은 그리스 말로 나왔습니다. 그 단어들을 인간 기록자들이 기록하였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기록의 대언은 결코 어떤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아니하였나니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에 의해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자기들을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벧후1:20-21).   분명한 점은 처음에 자필 원본 성경기록들이 주어질 때 영어나 우리말로 단어들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단 한 차례 자필 원본의 단어들만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습니다(기록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섭리를 통해 자신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을 보존하십니다. 이렇게 치밀하게 완벽하게 보존되면 그 성경은 사본이든 역본이든 자필 원본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며 하나님의 숨(영감)이 살아서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읽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1647년에 제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1조 성경편’의 8항을 보기 바랍니다.   우리는 1. 하나님께서 원어 성경기록들을 영감으로 주시고, 2. 사상 유례없는 보호와 섭리로 순수하게 보존하셨음을 믿으며 3. 또한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도록 바르게 예배드리기 위해 정확하게 원어 성경기록들을 번역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문제를 잘 이해하지 않거나 잘 표현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영감과 보존 설명   이제 우리가 잘 아는 영어와 한국어를 가지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일단 하나님의 입에서 영어로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나와서 인간 기록자가 완벽하게 기록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자필 원본: I am a boy.   자, 시간이 지나면서 ‘I am a boy.’가 담긴 자필 원본이 해어져서 어쩔 수 없이 사본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이것을 정확하게 다른 사본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사본: I am a boy(필사자와 필체는 다르지만 네 단어는 정확하게 같음).   이 문제의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로 말하자면 자필 원본의 ‘I am a boy.’는 딤후3:16의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습니다. 그 이후에 자필 원본의 모든 단어를 정확하게 그대로 옮겨 놓은 사본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보존에 의해 주어진 것입니다.    다만 둘이 정확히 일치하므로 원본과 사본은 동일한 효력을 가지며 하나님의 숨(영감)이 동일하게 살아서 움직입니다.   과거의 유대인들은 피땀 흘려가며 구약의 히브리 성경을 처음의 원본과 동일하게 기록하였습니다.   1960년, 밀러(H. S. Miller)가 지은 「일반 성경 입문」(General Biblical Introduction)에는 유대인들이 구약 시대 회당에 있던 두루마리들을 복사하면서 지킨 여덟 가지 준수 사항이 있습니다.   (1) 양피지는 정결한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되 오직 유대인만이 만들 수 있으며 정결한 짐승으로부터 만든 끈으로 묶어야만 한다.   (2) 두루마리의 각 난에는 48줄에서 60줄이 들어가야만 한다.   (3) 잉크는 반드시 검은색이어야만 하고 특별한 방법으로 제조해야만 한다.   (4) 어떤 단어나 글자도 머리로 외워 적어서는 안 된다. 서기관은 반드시 자기 앞에 정통 복사본을 놓고 기록하기 전에 먼저 각 단어를 큰소리로 읽고 발음해야 한다.   (5)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기 전에 그는 반드시 두려운 마음으로 펜을 닦아야만 하며 여호와(Jehovah)라는 이름을 적기 전에는 그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온 몸을 씻어야만 한다. 이 단어는 영어 성경에서 주(主) 즉 전체가 대문자로 된 ‘LORD’로 번역되었는데 따라서 그는 필사 과정에서 수도 없이 많이 몸을 씻어야만 했다.   (6) 글자의 형태, 글자와 단어 사이의 간격, 펜을 사용하는 방법, 양피지 색깔 등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한 규례들이 있었다.   (7) 두루마리를 수정하려면 그것이 완성된 후 30일이 지나기 전에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두루마리는 무효가 된다. 또한 한 장에 단 한 개의 실수라도 있으면 그 장은 버려야만 했으며 전체 필사본에서 세 개의 실수가 발견되면 전체를 버려야만 했다. 다시 말해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다 기록했는데 그중에 단 세 개의 실수가 나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창세기부터 필사해야 한다. 이런 것을 통해 우리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일에 어느 정도 신중을 기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그들은 자기들이 필사하는 말씀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들임을 믿었으며 따라서 이런 철저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들을 완전하게 보존해 왔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본문에서 빼거나 본문에다 첨가하거나 본문을 바꾸거나 하는 NIV, NASB, NKJV 등의 현대 역본 기록관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런 치밀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완전하게 보존해 오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회당에서 친히 읽으신 말씀이 자필 원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스스럼없이 성경이라고 부르셨다.   (8) 그들은 글자와 단어 수를 세었으며, 만일 글자가 삭제 혹은 첨가되었거나 다른 글자와 붙어 있으면 필사한 사본 전체를 버렸다.   이 같은 규칙들을 소개한 뒤 밀러는 이렇게 덧붙여 말합니다.   이런 규칙들이 좀 부조리하거나 너무 극단적인 것이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것들은 유대인들이 얼마나 성경을 거룩하게 여겼는지 잘 보여 준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읽으셨던 성경, 즉 처음에 하나님께서 영감을 불어넣으신 성경을 지금 이 시간에 우리손 안에 가지고 있다고 확신해도 된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자신이 읽은 성경 말씀이 비록 자필 원본의 말씀이 아니고 필사본의 말씀이었지만 그것을 100%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하시며 기록된 필사본에 권위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단 한 번도 우리 주님은 사본 탓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손에 있는 필사본 두루마리가 곧 원본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every word)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4:4).   분명히 위 구절에 있는 구약 성경 말씀은 주전 1500년경에 모세가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기록된 바’(it is written)라고 현재형으로 말씀하신 것을 보면, 모세의 자필 원본이 아니고 모세로부터 예수님 시대까지 약 1,500년 동안 필사되어 보존된 성경(사본)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과거의 원본만 옳았다면 ‘it was written’으로 과거 시제로 기록되었어야 합니다.    참고로 여기의 현재형은 예수님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을 뜻하는 현재형입니다.   또한 ‘모든 말씀’(every word)이란 것은 말 그대로 모든 말씀(단어)이 보존되지 않는 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즉,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의 손안에 들어 있는 필사본 성경이 자필 원본과 똑같음을 증명해 주셨으며 그 필사본에 권위를 부여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려면 이 외에도 다른 구절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마5:17-18; 눅24:27; 눅24:44 등). 번역본의 영감 문제 자, 그러면 번역본은 어떨까요? 자필 원본을 그대로 동일하게 베껴 쓴 사본의 ‘I am a boy.’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이 될 것입니다.   번역본: 나는 소년입니다(참고로 우리말은 존칭이 있으므로 ‘나는 소년이다’, ‘저는 소년입니다’도 다 맞는 번역임).   하나님의 입에서는 분명히 처음에 ‘I am a boy.’가 나왔고 인간 기록자는 그것을 원본에 기록하였으며 이 네 단어는 사본에 그대로 정확하게 보존되었습니다. 이 보존된 사본에서 정확하게 ‘나는 소년입니다.’라는 역본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 역본도 최초에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원본과 동일한 효력을 지닐까요? 물론입니다. 정확하게 번역된 역본에는 하나님의 진리가 100% 살아서 숨 쉬고 있습니다(영감이 보존되어 있음). 그래서 이 역본의 단어들 역시 사람을 살리며 하나님의 사람을 완전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예수님 십자가 사건 이후 신약 성경이 완성된 뒤로 실제로 이방 사람들을 구원한 것은 다 역본이었습니다. 즉 AD 100년 이후에는 원본이나 사본의 시대가 아니라 역본의 시대가 왔습니다. 그리고 역본들을 통해 이방인들이 구원받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손에 들린 성경(역본)에 하나님의 숨(영감)이 없다면 그것으로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번역 성경의 단어들이 딤후3:16의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영감은 단 한 차례, 자필 원본이 기록될 때만 하나님이 사용하신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요약하면, 자필 원본의 단어들만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원본이 정확하게 필사되었고 그 필사본에서 지금의 역본이 정확하게 나왔으면, 지금의 역본에도 하나님의 모든 단어가 동일한 효력을 갖습니다(영감이 보존되어 살아 있음). 우리는 이것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자, 이제 원본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비교해 봅시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단어는 원본을 정확하게 보존한 사본의 원어들에서 나왔습니다. 신약 성경의 경우 이러한 사본에는 성경기록 필사본, 성경기록을 담고 있는 성구집 등이 포함됩니다. 물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사본의 모든 단어를 가능하면 1대1 대응이 되게 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심지어 원어의 문장의 구조까지도 영어로 그대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언어로 번역하면 당연히 언어의 차이로 인해 무언가를 첨가해야만 합니다. 번역을 해 본 사람이면 누구라도 이것을 잘 압니다.   예를 들어 다시 딤후3:16을 보도록 합시다.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   여기서 우리는 두 개의 is가 이탤릭체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역자들이 번역을 위해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is가 없어도 말이 되지만, 영어에서는 is가 없으면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역자들이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리고 역자들은 정직하게 이것을 이탤릭체로 표시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이것은 원래 원본에 없었으나 번역을 위해 첨가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두 개의 is를 제외하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본(사본)을 있는 그대로 영어의 구조 안에서 가능한 한 1대1 대응이 되게 정확하게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형식적 일치’ 번역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번역되었기에 우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온전히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성경을 들고 “이것은 하나님의 ‘오류가 없는 완전한 말씀’입니다.”라고 외칩니다.   세상에 수많은 성경이 있지만 이런 식으로 거의 완벽한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611년 이래로 이 성경에 복을 주셔서 이 세상 모든 교회와 신학교의 교리, 신앙신조 등을 정리하며 5대양 6대주에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성경을 쓰셨습니다. 온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여러 나라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수백 개 나라 성경의 번역 대본으로, 표준 잣대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럭크만주의자들 - 무조건 피터 럭크만을 따르는 자들 - 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우수성을 너무 과장한 나머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본에서 향상된 계시’ 혹은 ‘원본보다 더 좋은 계시’ 혹은 ‘영감을 받은 성경’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원본보다 더 좋은 역본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향상된 계시’가 아닙니다. 이것은 완전하게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들(단어들)을 형식적 일치를 통해 정확하게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로 옮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향상된 계시’나 ‘영감을 받은’ 성경이 아니고 ‘정확하게 보존되어 영감이 살아 있는 성경’입니다.   1647년에 제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1조 성경'편의 8항을 다시 보기 바랍니다.   우리는 1. 하나님께서 원어 성경기록들을 영감으로 주시고, 2. 사상 유례없는 보호와 섭리로 순수하게 보존하셨음을 믿으며 3. 또한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도록 바르게 예배드리기 위해 정확하게 원어 성경기록들을 번역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전 세계 모든 성경 신자들은 이런 고백에 따라 영감과 보존, 그리고 정확한 번역을 구분하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온전하게 보존된 사본들에서 정확하게 영어로 번역된 완벽한 영어 성경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미국(영국) 사람들은 킹제임스 성경을 'inspired words of God'라고 부릅니다. 이런 데 사용되는 'inspired'라는 말은 최초의 영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초의 자필 원본의 단어들만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이런 데 사용되는 'inspired'라는 말은 '영감이 보존되어 그대로 살아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을 잘못 이해하면 이중영감설이라는 오류에 빠집니다. 물론 우리말로 번역할 때는 '영감을 받은' 정도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최종 권위 그런데 왜 우리는 원본이 아니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최종 권위라고 부를까요? 다음의 예를 보겠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향상된 계시’의 한 예로 행12:4를 드는 분들이 있습니다.   헤롯이 베드로를 붙잡아 감옥에 넣고 군사가 넷씩인 네 소대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으니 이것은 이스터가 지난 뒤에 그를 백성에게 끌어내려 함이더라(행12:4).   And when he had apprehended him, he put [him] in prison, and delivered [him] to four quaternions of soldiers to keep him; intending after Easter to bring him forth to the people.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다른 성경들은 여기의 ‘이스터’를 유월절로 번역하였습니다. 루터 성경같이 바른 본문에서 나온 성경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전 세계 성경 중에 유일하게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 이것을 ‘이스터’라고 바르게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정도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우수하므로 이 성경은 원본을 뛰어넘으며 그래서 ‘향상된 계시’라고 주장하거나 영어 성경의 단어들도 딤후3:16의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다는 ‘이중영감설’을 펴는 이들이 있습니다. 여기의 대표적인 사람이 피터 럭크맨(Peter Ruckman)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주장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이거나 이중 영감을 받으려면, 원본에 없던 무엇인가가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있어야만 합니다.   자, 그러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이스터’라고 번역한 그리스말이 원어에 있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그것이 없는데 영어 성경이 그것을 번역해서 집어넣었다면 그것은 첨가이고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스터’에 해당하는 그리스말은 ‘파스카’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말 '파스카'는 명절의 경우 크게 둘을 뜻합니다.    하나는 유월절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터’(이교도들의 부활절 축제)입니다.    파스카는 Oxford English Dictionary에도 정확하게 이 두 개의 명절로 나옵니다. 그러므로 파스카는 이 둘 중 하나로 번역될 수 있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행12장의 때가 이미 무교절 기간이라 유월절은 지났으므로 무교절 다음에 오는 이교도들의 부활절인 ‘이스터’로 바르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원어 없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향상된 계시’나 딤후3:16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성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가 100% 보존된 바른 사본의 단어들을 정확하게 번역한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는 처음에 원본이 주어졌을 때와 동일하게 하나님의 진리가 살아서 숨 쉬고 있습니다(영감이 그대로 살아 있음).   이것이 바로 1647년에 제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1조 성경편’의 8항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1. 하나님께서 원어 성경기록들을 영감으로 주시고, 2. 사상 유례없는 보호와 섭리로 순수하게 보존하셨음을 믿으며 3. 또한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도록 바르게 예배드리기 위해 정확하게 원어 성경기록들을 번역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단어 중 원어들을 담은 사본에서 나오지 않은 단어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향상된 계시나 이중 영감을 받은 성경이 아닙니다.   만일 킹제임스 성경의 이중 영감이 사실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구약과 신약 성경의 자필 원본을 주신 뒤(BC 1500-AD 100년) 약 1,500-3,000년이 지난 뒤인 1611년에 영어로 또 다시 원본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전도서에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선포자 솔로몬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흠정역: 내가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을 보았노니,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전1:14).   킹제임스 성경은 분명하게 “모든 것이 헛되어 영을 괴롭게 한다.”(vexation of spirit)고 전도서에서 무려 10번이나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역성경, NIV를 포함한 대부분의 현대 역본은 이것을 전적으로 달리 표현하고 있습니다.   개역: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영을 괴롭게 하는 것’과 ‘바람을 잡는 것’(grasping of the wind)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영’ 혹은 ‘바람’에 해당하는 히브리말은 ‘루아흐’입니다. 이 경우 킹제임스 성경이나 개역성경의 대본이 된 원어 성경의 원어가 동일하므로 이 같은 차이가 생긴 데 대해 원어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이 예를 통해 우리는 성경 번역자가 같은 단어를 문맥에 따라 어떻게 번역하는가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전도서의 문맥상 어느 번역이 맞을까요? 우리는 전도서 기자가 말하려는 요점이,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이 번역한 대로,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어 우리의 영을 괴롭게 하는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결국 전도서 기자는 마무리를 하면서 12장 13절에서 ‘사람의 온전한 의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즉, 이 모든 것이 영의 문제지 결코 뜬구름 잡는 것 같이 바람을 붙잡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번역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한 의미를 제대로 전달해 주는 번역이라고 믿으며 이런 의미에서 킹제임스 성경이 옳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이것 역시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임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까? 아닙니다. 다만 킹제임스 성경이 원어를 정확하게 번역했음을 보여 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결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원본보다 낫다는 주장을 펴서는 안 됩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보존해 주신 사본들의 모든 단어를 정확하게 번역해서 하나님의 이 단어들을 이방인들의 공통 언어인 영어로 보존한 성경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그런 진술을 수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반대편 진영에서 무식하다고 조롱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원어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원어가 최종 권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시간에 우리가 원본의 모든 단어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들이 바르게 번역되지 않으면 최종 권위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파스카’, ‘루아흐’, ‘하데스’ 등의 원어들은 다 여러 개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의도대로 번역되지 않으면 원어들만으로는 최종적인 표준 잣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섭리(providence)라는 돌보심을 통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을 인도하셔서 각각의 원어 단어가 뜻하는 바를 정확하게 영어로 번역하게 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본의 모든 단어들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번역되어야만 맞는다고 믿습니다.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를 택하셔서 지난 400년 동안 하나님이 하신 일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현대 역본들의 역자들은 원본의 원어들의 뜻을 이 세상 문학가나 철학자의 글을 통해 전달하려고 합니다. 원어 사전들의 저자들 가운데는 불신자가 많으며, 심지어 쎄이어(J. H. Thayer) 같은 유니테리안 이단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언어는 성경의 언어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지금의 번역본 시대에 하나님의 원어 단어들을 100% 정확하게 영어로 옮긴 보존된 성경입니다.   그러면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어떨까요? 우리말 흠정역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말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1대1 대응이 되게 형식적 일치를 유지하면서 정직하게 번역한 성경입니다. 그래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교리와 특징이 우리말의 테두리 안에서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말 흠정역 성경에 하나님의 모든 진리가 담겨 있다고 당연히 주장하며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물론 딤후3:17의 진리가 흠정역 성경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7).   우리말 번역의 문제   한편 ‘I am a boy.’를 ‘나는 소년입니다.’로 하지 않고 ‘나는 아이입니다.’로 하면 반만 맞습니다. 아이에는 남자아이, 여자아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1대1 대응을 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나는 한 소년입니다.’로 하면 우스운 번역이 됩니다. 한국 사람은 아무도 이런 말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표준역의 치졸한 부정관사 a 번역   비둘기, 나귀, 개미를 그녀로 번역한 우스꽝스러운 표준역   이런 주장을 펴는 이들은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earth’(창1:1)라는 말씀을 ‘그 시작 안에서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라고 번역하고는 이 외의 다른 번역은 다 틀렸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무지에서 나오는 만용입니다.   ‘In the beginning’은 관용구로서 ‘처음에’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그 처음(시작) 안에서’로 번역하는 것은 영어와 우리말을 망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머릿속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다는 생각(이중 영감론)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이므로 그 안에 있는 정관사, 부정관사, 하이픈, 세미콜론, 콜론, 콤마를 번역할 때 수용 언어(한국어)의 용례를 무시하고 단어 대 단어로 번역해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극단을 피해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향상된 계시’가 아니며, 이중 영감을 받은 성경이 아닙니다. 원본의 모든 단어들을 하나님이 의도하신 그대로 형식적 일치를 취하면서 정확하게 번역하여 그대로 보존한 성경, 이것이 바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진리가 처음에 원본이 주어질 때와 마찬가지로 100% 그대로 살아 있는 성경입니다.    결코 100%를 넘을 수는 없습니다.   원본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비유로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7-11절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분을 알고 또 보았느니라, 하시니라.    8 빌립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그러면 우리에게 족하겠나이다, 하니    9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도 네가 아직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는데 어찌 네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들은 내가 스스로 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 곧 그분께서 그 일들을 하시느니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내 말을 믿으라. 그러지 못하겠거든 바로 그 일들로 인해 나를 믿으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가시기 전에 빌립은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그러자 우리 주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비록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다른 인격체이지만 성육신 하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 행동, 생각이 아버지 하나님과 100%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주님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을 통해 알지 않은 아버지 하나님은 다 거짓이라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특징입니다.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우리는 원본과 킹제임스 성경으로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꾸 원본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혹은 원본이 우월하다고 하거나 그런 주장에 세뇌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들을 통해 보거나 아는 아버지만이 참 하나님이듯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보는 원어의 뜻만이 옳은 뜻입니다. 이 외에는 다른 데서 옳은 뜻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아버지보다 우월하지 못합니다. 요10:30에서 아들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셨듯이 원본과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모든 이방인들에게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온전히 전해 주시려고 하나님께서는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로 원본의 원어들을 정확하게 번역한 ‘완전한 성경인 킹제임스 성경’을 주셨습니다. 이 성경을 본문으로 해서 지난 400년간 수백 개의 성경이 번역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바른 교리를 깨달으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 배도의 때에 마귀가 세상 무대에 등장해서 성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는 뜻이나 단어가 변경된 성경의 등장이 필수 요건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마귀라 가정한다 해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경에 무언가 변경을 가져오는 일일 것입니다. 마귀는 과거에 이집트에서부터 이 사악한 일을 주도하였고 주후 200년을 넘기면서 그 일은 카톨릭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 역본들은 한결같이 카톨릭 교회의 사본들만을 번역의 대본으로 쓰고 있습니다.     현대 신학자의 안타까운 주장   성경대로 믿고자 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감과 보존, 원본과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바른 개념을 정립하여 다른 성도들에게 비방의 빌미를 주지 않으면서 지혜롭게 바른 성경을 전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성경 신자들을 많이 불러주시고 이들로 하여금 바른 교회를 세우게 하셔서 많은 혼들을 수확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13 15:19:25 | 관리자
표준킹제임스의 극심한 내로남불: 산당과 높은 곳 안녕하세요? 요즘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에도 언급될 정도로 이 말은 온 세상에 널리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내로남불   특히 조국, 추미애 등 좌익 세력의 내로남불은 도를 넘어 대한민국 국민과 전 세계 사람들의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성경은 옳은 것(right)을 추구하라고 말합니다. 즉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아 그분의 의(righteousness, 올바름)가 전가되어 정치관, 세계관, 인생관 등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오른쪽(Right)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마귀와 그에게 속한 자들은 여전히 왼쪽을 사랑하지요(낙태, 동성애, 트랜스젠더, 무상 급식, 무상 의료, 사회주의, 공산주의 주창자들에게 표를 던지는 무지한 자들).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 비유를 잘 보기 바랍니다. 34 그때에 왕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오라,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아, 너희는 세상의 창건 때부터 너희를 위해 예비된 왕국을 상속받으라.  41 그때에 그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르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   전도서 10장 2절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의 오른쪽에 있으나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그의 왼쪽에 있느니라(전10:2). A wise man's heart is at his right hand; but a fool's heart at his left. 그런데 표준역 번역자 역시 내로남불의 극치를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실상을 보여 드리려 합니다. high place 산당 성경에는 high place라는 말이 단수로 22번, 복수로 98번 총 120번 나옵니다. 영어 high place는 단순하게 높은 곳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 high place를 단순하게 높은 곳으로 번역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전혀 뜻이 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다수 우리말 성경들은 높은 산에 있는 high place는 산당(山堂)으로 번역하였고 실제로 거리 등에 있는 높은 곳은 높은 곳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레26:30을 보겠습니다. And I will destroy your high places, and cut down your images, and cast your carcases upon the carcases of your idols, and my soul shall abhor you. 말씀드린 대로 제가 살펴보니 한국의 거의 모든 역본들(개역, 카톨릭, 공동, 한킹, 바른, 현대어, 쉬운 등)은 이것을 흠정역처럼 산당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흠정역: 내가 너희 산당들을 헐고 너희 형상들을 베어 넘어뜨리며 너희 사체를 너희 우상들의 사체 위에 던지고 내 혼이 너희를 혐오하리라. 그런데 유독 표준역은 이것을 높은 처소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의 높은 처소들을 멸망시키고 너희의 형상들을 절단하여 쓰러뜨리며 너희의 사체들을 너희의 우상들의 사체들 위에 던지겠노라. 그런즉 나의 혼이 너희를 혐오하리라.  사전들의 정의 넬슨 사전 등은 high place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교도들의 신을 섬기기 위해 마련된 높은 곳의 장소 혹은 언덕에 있는 장소 Elevated or hilltop sites dedicated to worship of pagan gods. Ancient peoples often built their shrines on hilltops.  사실 이것은 히브리 사람들이나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산당의 의미로 이미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위키 백과도 동일한 것을 말합니다. 산당(山堂, high place)은 성경 문맥에서 항상 "예배의 장소"를 의미한다. 이것은 마을보다 높은 곳에 있는 작은 산이나 언덕에 놓여 있었다. 그러므로 이교도들이 산이나 언덕 등의 높은 곳에 마련한 예배 처소를 그냥 ‘높은 처소’ 혹은 높은 곳으로 번역하면 ‘이교도들의 예배 처소’라는 개념이 우리말에서는 전혀 들어오지 않습니다. 영어에서는 당연히 기독교인들이 그런 의미로 그 단어를 사용하므로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장소를 단순히 높은 곳 혹은 높은 처소로 번역하면 세상에 있는 모든 높은 집이나 건물이 다 해당됩니다.   그러나 레위기를 비롯한 성경의 문맥은 high place의 대다수가 당연히 이교도들의 산당(山堂)을 의미하지 세상에 있는 모든 높은 곳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대다수 성경들이 이것을 산당(山堂) 즉 ‘산에 있는 집’이라고 정확한 의미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표준역 번역자는 산당이 산신을 모시는 집이므로 이곳에서는 하나님께 경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산당에서 바알과 아스다롯 등을 섬겼지 산신을 섬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자, 이것은 꼬투리를 잡기 위한 심히 부당한 주장입니다.  문자 그대로 산당(山堂)은 ‘산에 있는 집’입니다. 어떤 한글 성경도 사람들이 산당에서 산신을 섬겼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두산백과, 동아 프라임 영한사전 등도 산당은 종교에서 high place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은 산당에서 하나님께 경배할 수 없습니다. 해서는 안 됩니다. 표준역 번역자는 이런 당연한 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산당에서 바알과 아스다롯 등을 섬겼지 산신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표준역 번역자는 이런 당연한 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산당에서 산신을 섬겼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표준역처럼 자기들 마음대로 상상해서 추측한 뒤 남을 비방하면 안 됩니다. 표준역 번역자의 심각한 내로남불 이렇게 산당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된다고 거품을 물고 이야기하던 표준역 번역자는 자기가 high place를 산당으로 번역해 놓은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번역자는 자가당착에 빠졌고 요새 말로 우리는 이런 것을 내로남불이라고 말합니다. 겔16:24-25, 31을 보겠습니다. 24 That thou hast also built unto thee an eminent place, and hast made thee an high place in every street. 25 Thou hast built thy high place at every head of the way, and hast made thy beauty to be abhorred, and hast opened thy feet to every one that passed by, and multiplied thy whoredoms.  31 In that thou buildest thine eminent place in the head of every way, and makest thine high place in every street; and hast not been as an harlot, in that thou scornest hire; 표준역:  24 너는 너에게 한 우뚝 솟은 처소를 지어 두었고, 모든 거리마다 너에게 산당을 만들어 두었도다. 25 너는 너의 높은 처소를 모든 길머리마다 지었고 너의 아름다움을 혐오스러운 것으로 만들었으며 지나가는 모든 이에게 저마다 너의 발들을 벌려 너의 행음들을 가중시켰도다. 31 네가 모든 길머리마다 너의 우뚝한 처소를 건축하고 모든 거리마다 너의 높은 처소를 지으면서도 네가 화대를 경멸하니, 여느 창녀 같지 아니하였도다. 표준역 번역자는 24절에서 high place를 분명히 산당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밑의 25절과 31절에서는 이것을 높은 처소로 번역하였습니다.    24, 25, 31절의 high place는 히브리말, 영어 모두 같은 말입니다. 이제 번역자는 솔직하게 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산당이 맞습니까? 높은 처소가 맞습니까? 이렇게 부조리한 번역, 즉 앞뒤가 맞지 않는 번역을 하고는 다른 사람들이 가장 올바르게 번역한 것을 죄다 오역이라고 하는 내로남불이 어디에 있습니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high place가 산당인지, 단순히 높은 처소인지 120번을 모두 올바르게 구분하여 번역하였습니다. 맞지 않는 데가 있으면 알려 주기 바랍니다. 흠정역 24절: 네가 또한 너를 위해 우뚝 솟은 처소를 짓고 모든 거리에 너를 위해 높은 처소를 만들었도다. 개역 24절: 너를 위하여 누를 건축하며 모든 거리에 높은 대를 쌓았도다 표준역 번역자는 제발 수천 군데 오역을 하고 다른 성경들을 비방하는 일을 멈추기 바랍니다. 표준역의 수천 군데 오역 사람들은 잠시 잠깐 속일 수 있어도 진실 앞에서는 어둠이 빛 앞에서 물러가듯이 표준역은 슬금슬금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서 이런 부조리 내로남불을 가져다가 성경 신자들을 속이려 합니까? 다음 블로그를 늘 보시기 바랍니다. 표준역의 거짓들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표준역 내로남불, 오역 퇴치 블로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장난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보답해 주실 것입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13 10:57:42 | 관리자
부정 관사 a를 ‘한’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하나님을 그릇되게 표현한 표준 킹제임스의 치명적 오류   안녕하세요? 표준역 번역자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등이 무려 10,000-20,000개 정도를 영어에서 삭제하였다고 주장합니다. 실상 그들이 말하는 삭제란 영어의 부정 관사 a 등을 번역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번역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기에 발생하는 무지한 일입니다. 1. My father is a farmer. 제 아버지는 농부입니다(한 농부입니다는 오역 내지는 졸역(아무도 이런 말 쓰지 않음). 2. My brother is a wrestler. 제 형은 레슬링 선수입니다(한 레슬링 선수는 오역 내지는 졸역(아무도 이런 말 쓰지 않음). 3. “It is a book about Korean history.”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그것은 한국 역사에 대한 책이다.”가 됩니다. “그것은 한국 역사에 대한 한 책이다.”로 하면 이것은 우리말이 아닙니다. 우리말에서는 ‘그것’이라는 말에 이미 단수를 뜻하는 ‘한’이 들어가 있습니다. 즉 우리말은 대부분의 경우 부정관사를 글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4. It is a rose. 그것은 장미이다. “그것은 한 장미이다.”는 오역입니다. 말이 안 되는 번역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는 부정 관사 a(an)가 수만 번 나오는데 표준역은 부정 관사 a의 다수를  ‘한’으로 번역하는 난센스를 범하고는 그 번역이 영어 단어를 거의 다 빼지 않고 다 번역한 것이니 가장 좋은 번역이라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표준역은 부정 관사 ‘a’의 다수를 ‘한’으로 번역하여 치졸한 짓을 하였습니다. 창1:18 And the LORD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n help meet for him. 그런 다음에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남자가 홀로 있게 되는 것이 좋지 않도다. 내가 그를 위하여 한 돕는 배필을 그에게 만들어 주겠노라.” 하셨느니라. 창3:24 So he drove out the man; and he placed at the east of the garden of Eden Cherubims, and a flaming sword which turned every way,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fe. 그렇게 하여 그분께서 그 남자를 몰아내셨으며, 그분께서 에덴의 동산의 동쪽에 그룹들과 각각의 모든 길로 회전하고 불타오르는 칼 한 자루를 배치하셨으니,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려 하심이라(임의로 자루 추가). 요1:7   The same came for a witness, to bear witness of the Light, that all men through him might believe. 바로 그가 빛에 관하여 증거하기 위해 한 증인으로 왔으니, 그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믿게 하려 함이라. 요1:32 And John bare record, saying, I saw the Spirit descending from heaven like a dove, and it abode upon him. 그리고 요한이 확증하며 이같이 말하였더라. “내가 한 비둘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는 성령님과 그 영 이 그분 위에 거하신 것을 보았노라. 보시다시피 이런 식으로 성경을 번역하면 우리말이 됩니까? 그런데 부정 관사 a를 다 번역한 것도 아닙니다.   딤후2:3 Thou therefore endure hardness, as a good soldier of Jesus Christ. 그러므로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인으로서 어려움을 견디어 내라(한 훌륭한 군인으로 안 함). 여기도 그들의 주장대로 하려면 훌륭한 군인이 아니라 한 훌륭한 군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여기의 good는 좋은 군사 혹은 좋은 군사가 되어야지 훌륭한 군인은 아닙니다. 딤후2:9 Wherein I suffer trouble, as an evil doer, even unto bonds; but the word of God is not bound.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마치 악을 행하는 자처럼 심지어 결박들을 당하기까지 곤란을 감내하고 있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느니라. 여기도 악을 행하는 자처럼이 아니라 한 악을 행하는 자처럼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표준역은 일관성 없게 부정 관사 a를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심각한 오류 표준역은 하나님과 관련해서 심각하고도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창17:7 And I will establish my covenant between me and thee and thy seed after thee in their generations for an everlasting covenant, to be a God unto thee, and to thy seed after thee. 표준: 그리고 내가 하나의 영원한 언약으로 나와 너와 너의 뒤를 잇는 너의 씨 사이에 그들 대대로 나의 언약을 확립하겠으니, 너에게 그리고 너의 뒤를 잇는 너의 씨에게 한 하나님이 되고자 함이라. 그들은 a God을 한 하나님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요4:24    God is a Spirit: and they that worship him must worship him in spirit and in truth.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은 반드시 영과 진리 안에서 그분께 경배해야만 하느니라.” 그들은 a Spirit을 한 영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렇게 부정 관사 a를 ‘한’으로 하다 보니 진짜로 ‘한’을 써야 할 데 가서는 ‘한’을 쓸 수 없으므로 ‘유일한’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신6:4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is one LORD: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유일하신 주로다. 표준역은 ‘a God’을 ‘한 하나님’이라고 번역하고는 ‘one LORD’는 '유일하신 주'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이 말이 됩니까? 여기의 one(히브리어 에카드)은 하나를 뜻하는 말이지 결코 성경 어디에서도 유일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유일하다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의 경우에 사용됩니다. 1. 그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나와 동갑내기였다. 2. 그 할아버지께는 철이가 유일한 혈육이다. 유일하다는 절대로 성경의 one LORD를 표현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기초적인 조직 신학, 히브리어를 공부하지 않은 데서 발생하는 무지입니다. 우리의 삼위일체 하나님은 영어로 three persons in one God입니다. 즉 여기의 one은 복수가 하나가 되는 것을 표현하는 에카드입니다. 창2:24를 보겠습니다. Therefore shall a man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shall cleave unto his wife: and they shall be one flesh. 표준역: 그러므로 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자기 어머니를 떠날 것이요, 자기 아내와 결합하리라. 그리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되리라.   여기서 표준역은 one flesh를 한 육체로 바르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의 one을 ‘한’으로 번역해야 함을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즉 남자와 여자(복수)가 한 육체(one flesh)가 되는 것을 표현할 때 히브리어 에카드가 사용되었습니다.    신명기 6장 4절의 에카드도 여기에 쓰인 에카드와 동일합니다. 이런 식으로 한 하나님 안에 세 인격체가 있음을 보여 주는 one LORD의 one을 ‘유일한’으로 번역하는 것은 번역이 아니라 반역 그 자체입니다. 개역 개정이 이렇게 하였습니다. 개역 개정: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한글 킹제임스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좋아하는 번역이 되게 하였습니다,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분 주시니 하나님은 한 분이 아닙니다. 한 하나님입니다. 참으로 신학 지식의 무지가 하늘을 찌릅니다. monotheism은 대개 유일신을 믿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것은 우주 공간에 한 하나님(one God)만 존재한다는 믿음입니다.    이렇게 심각한 오역을 하고는 그것을 표준이라고 주장하니 오호통재라!  유일하다는 절대로 성경의 one LORD, one flesh 등을 표현하는 말이 아닙니다. 표준역은 a God을 이미 한 하나님으로 했으므로 one LORD의 one과 a를 구분하려다 보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치명적인 오류를 창출하였습니다. 이런 곳들을 모두 고치려면 사실 몇 년 동안 다시 번역하는 것이 더 빠를 것입니다.   영한사전은 one에 대해 다음과 같이 첫 번째 용례를 말합니다.   one ① ⦗흔히 한정⦘ a) 한 사람의, 하나의, 한 개의(single) ┈┈• ~ pound 1파운드 ┈┈• ~ dollar and a half 1달러 50센트《~ and a half dollars보다 일반적》 ┈┈• ~ or two days 하루나 이틀, 극히 짧은 날수(=a day or two) ┈┈• ~ man ~ vote 1인 1표(제) ┈┈• ~ man in twenty 20인에 한 사람 ┈┈• No ~ man can do it. 누구든 한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 ┈┈• One man is no man. 《속담》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 보시다시피 one은 명백히 하나를 표현해야 할 때 쓰는 말입니다. 더욱이 영한사전은 다음의 중요한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 ‘1’의 뜻을 강조할 때에는 부정 관사 a, an을 쓰지 않고 one을 씀     또 위에서 언급한 창17:7의 끝부분을 보겠습니다. to be a God unto thee, and to thy seed after thee.   표준: ‘너에게 그리고 너희 뒤를 잇는 너의 씨에게 한 하나님이 되고자 함이라.’  이것 역시 우리말의 구조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번역입니다. 마치 외국인이 우리말을 배울 때 문법을 몰라서 저지르는 실수와 비슷합니다. 매끈한 우리말 번역은 ‘너와 너의 뒤를 잇는 너의 씨에게 한 하나님이 되고자 함이라.’이다. and를 살린다고 이런 식으로 번역하면 치졸한 번역이 됩니다. ‘와’가 곧 ‘and’이며 ‘에게’는 끝에 한 번만 붙여야 합니다.   and의 바른 번역    “대통령께서는 내무부 장관과 외무부 장관과 내각의 모든 관료들에게 이런 지시를 내렸다.” 이것을 다음과 같이 하면 얼마나 치졸한 말이 될까요? 더욱이 이런 말은 한국 사람 누구도 쓰지 않습니다. “대통령께서는 내무부 장관에게 그리고 외무부 장관에게 그리고 내각의 모든 관료들에게 이런 지시를 내렸다.” 이런 식의 번역으로 혹세무민하는 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자들은 돈이나 명예를 얻기 위해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도둑질합니다. 그 결과 그들의 꼬임에 빠져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만 비참하게 됩니다. 번역이란 수용 언어의 구조와 용례에 맞게 번역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표준역의 이런 식 번역은 번역이 아니라 반역입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12 13:36:08 | 관리자
And를 거의 다 ‘그리고’로 번역해야 한다는 표준 킹제임스의 부적절한 주장 안녕하세요? 표준역 번역자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등이 무려 10,000-20,000개 정도의 영어 단어를 번역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듣고 귀가 얇은 분들은 우르르 몰려가서 결국 신세를 망치는데 실상 그들이 말하는 삭제란 영어의 And와 콤마 등을 번역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표준역은 이미 수천 군데에서 번역 오류를 보이고 있습니다.   표준역의 수많은 오류   또한 영어 본문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자가 수제 본문입니다.   표준역 영어 본문의 실체   이것은 번역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기에 발생하는 무지한 일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말한 번역의 정의를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번역이란 창문을 열어 빛이 들어오게 하는 작업이다. 번역은 껍질을 까서 우리가 열매를 먹도록 해주며 휘장을 젖혀서 우리가 지성소를 들여다보게 해준다. 번역은, 야곱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굴려내고 물을 길어 그것으로 라반의 양 떼들에게 물을 주었던 것처럼(창29:10), 우물의 뚜껑을 열어 우리가 물로 나가게 해 준다. 참으로 보통 사람들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지 않는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두레박이나 물길을 그릇이 없이(요4:12) 야곱의 그 (깊은) 우물 옆에 서 있는 아이들과 같고 이사야서에 언급된 사람, 즉 봉인된 책을 넘겨받아 읽을 것을 요구받는 사람과 같을 것이다. ‘원하건대 이것을 읽으라, 하면 그가 이르기를, 그것이 봉인되었으므로 내가 읽을 수 없노라, 할 것이요’(사29:11).   이처럼 번역은 글에 생명을 불어넣고 그것을 남에게 전달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번역을 통해 글에 생명력을 넣으려면 문맥에 따라 단어들의 뜻을 잘 고려해서 합당하고 적절하게 번역해야 합니다.   번역은 원어에서 수용 언어로 옮기는 것이므로 수용 언어답게 번역해야 합니다. 1. That is a flower. 저것은 꽃이다(저것은 한 꽃이다. 라고 하면 오역 내지는 졸역).   2. That is a beautiful lily. 저것은 아름다운 백합이다(저것은 한 아름다운 백합이다. 라고 하면 오역 내지는 졸역).   3. 오늘 갯벌에는 백로들이 많다, 그녀들이 얼마나 희고 아름다운지(오역).    실제로 저는 어제 갯벌에 갔습니다. 거기에는 백로의 일종인 왜가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표준역 표현대로 하면) 그녀들 가운데 하나는 그녀의 머리를 그녀의 몸속으로 숨기고 그녀의 두 발을 모은 채 홀로 서 있어서 아무도 그녀가 새인지 잘 몰랐습니다.     4. 예수님께서 한 병든 소년을 불러(오역 내지는 졸역) And의 용례 접속사 And는 뜻이 여러 가지입니다. 그것을 거의 다 ‘그리고’로 번역하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영한사전 용례를 보면 and가 적어도 15개의 뜻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① ⦗나란히 어·구·절을 이음⦘ …와 ─, … 및 ―, …이나 ―; 그리고, …또(한) ┈┈• John ~ Mary are great friends. 존과 메리는 아주 친하다〔단짝이다〕. ┈┈• He is a novelist ~ poet. 그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② a) ⦗동시성을 나타내어⦘ (…와 동시에) 또, …하면서 ┈┈• We walked ~ talked. 우리는 걸으면서 이야기했다. b) ⦗앞뒤의 관계를 보여서⦘ …하고 (나서), 그고 나서 ┈┈• He took off his hat ~ bowed. 그는 모자를 벗고 인사를 했다. ③ [보통 ən] ⦗하나로 된 것; 단수취급⦘ …와 ―이 (합하여 일체가 된 것) ┈┈• bread ~ butter [brédn-bʌ́tǝr] 버터 바른 빵 ┈┈• a carriage ~ four 사두(四頭)마차 ④ a) ⦗반복·중복⦘ …(한) 위에 또 ―, …이고 (―이고), 더욱더; 씩(짝을 지어) ┈┈• again ~ again 몇 번이고, 재삼재사 ┈┈• for ever ~ ever 영원히 b) ⦗비교급과 함께 써서⦘ 점점 더, 더욱더 ┈┈• more ~ more 점점 (더) ⑤ ⦗강조⦘ 더구나, 그뿐이랴 ┈┈• He, ~ he alone can do the work. 그 사람, 그것도 그만이 그 일을 할 수가 있다. ⑥ ⦗의외·비난⦘ 더욱이, 더구나 …인데〔…한 터에〕, …한데 ┈┈• How could you talk like that, ~ your father present? 아버지도 계신데 어떻게 그와 같이 말할 수 있었는가? ⑦ ⦗이유·결과⦘ 그래서, 그러자 ┈┈• He is very kind, ~ I like him very much. 그는 대단히 친절해서, 나는 그를 매우 좋아한다. ⑧ ⦗명령법 또는 그 상당어구 뒤에서⦘ 그렇게 하면, 그러면 ┈┈• Turn to the left, ~ you will see the post office. 왼편으로 돌면 우체국이 나올 것입니다. ⑨ a) ⦗대립적인 내용을 보여⦘ …이긴 하나, …인〔한〕데도, …이면서도 ┈┈• He promised to come, ~ didn’t. 그는 오겠다고 약속을 했으면서도 오지 않았다. b) ⦗추가적으로 덧붙여⦘ 그것도, 게다가 ┈┈• He did it, ~ did it well. 그는 그것을 했다, 그것도 썩 잘. ⑩ ⦗부정사의 to 대신⦘ 《구어》 …하러, …하기 위해 ┈┈• Come (~) see me. 만나러 오시오. ⑪ ⦗두 개의 형용사를 연결하여 앞의 형용사를 부사적으로 함; 종종 단순한 강조⦘ ┈┈• It is nice ~ cool. 기분 좋을 만큼 시원하다. ⑫ ⦗두 개의 동사를 이어서 뒤의 동사가 현재분사적인 뜻을 나타내어⦘ …하면서 ┈┈• He sat ~ looked at the picture for hours. 그는 몇 시간이나 그 그림을 보면서 앉아 있었다. ⑬ ⦗도입적⦘ 그리고 (또), 그뿐 아니라〔게다가〕 또; 그런데; 그래 ┈┈• How are you?―Fine, thank you. And (how are) you? 안녕하십니까.―네, 잘 있습니다. 당신은? ⑭ ⦗and를 사이에, 같은 명사를 반복하여⦘ 여러 (가지) ┈┈• There are books ~ books. 책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⑮ ⦗수사를 연결하여⦘ …과, …에 더하여 ┈┈• Two ~ two make(s) four. 2 더하기 2는 4 이것을 머릿속에 넣고 이제 창세기 1장의 몇 구절을 보겠습니다.   1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2 And the earth was without form, and void; and darkness was upon the 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 of the waters. 3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4 And God saw the light, that it was good: and God divided the light from the darkness. 5 And God called the light Day, and the darkness he called Night.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rst day. 표준 창1:1-4 1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2 그리고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였으며 어둠이 깊음의 표면 위에 있었더라. 그리고 하나님의 영께서 물들의 표면 위에 움직이셨더라. 3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셨느니라. 그러자 빛이 있었더라.  4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셨으니, 그것이 좋았더라. 그런즉 하나님께서 그 빛을 어둠에서 나누셨더라. 5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빛을 낮이라 부르셨으며 표준역은 이런 식으로 그리고를 수천 번 성경에 넣고는 자기들이 본문을 그대로 번역했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자기들 성경만이 온전히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했다고.    그러고 나서는 ‘그리고’를 뺀 성경은 영어 성경대로 안 했으니 오역이나 부실한 것이라고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폅니다. 우리는 혹세무민하는 이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말은 구조가 다 다릅니다. 그래서 번역은 수용 언어의 구조를 최대한 살려서 수용 언어를 읽는 일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번역해야 합니다.    즉 번역의 글은 초중고 학생들이 읽는 교과서의 문법에 맞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그 나라의 표준을 갖춘 성경이 될 수 있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다는 것을 주장하는 다수의 럭크만주의자들의 착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영어의 모든 단어가 하나님의 입에서 나왔다. 그래서 영어에 있는 그대로 번역해야 한다.” 그러니까 창세기 1장의 예처럼 2-4절의 and를 다 ‘그리고’로 번역해야 한다. 심지어 하이픈, 세미콜론, 콜론까지. 이것은 듣기에 매우 좋은 말 같지만 여기에 큰 속임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번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런 주장에 쉽게 현혹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and에 해당하는 히브리말, 접속사 와우(혹은 바우)는 명사와 붙어 있고 영어는 이런 접속사를 거의 다 and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히브리어와 영어는 접속사 와우나 and를 수천 번 넣었을까요? 그렇게 and를 넣어야만 이 두 말은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말은 and를 그리고로 다 번역하면 심히 이상한 말이 됩니다. 말이 안 됩니다. 우리말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오늘 나는 오전에 서울에 가서 몇몇 친구들을 만나 함께 스파게티 점심을 하고 5시에 인천으로 돌아왔다. Today I went to Seoul in the morning and met some friends and had spaghetti lunch together and I came back to Incheon at five o’clock. 보시다시피 영어는 글을 만들려면 반드시 중간에 and와 주어(주어는 매번 들어가는 경우도 많고 안 들어가는 경우도 있음)가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말은 그렇게 하면 다음과 같이 심히 이상하게 됩니다. 오늘 나는 오전에 서울에 갔다. 그리고 나는 몇몇 친구들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함께 점심을 했다. 그리고 나는 5시에 인천으로 돌아왔다. 그러면 이제 창세기 1장 1-5절에서 절 번호를 빼고 문장을 다시 보기 바랍니다.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는 절 번호가 없었으므로 다음과 같은 구조로 됩니다.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And the earth was without form, and void; and darkness was upon the 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 of the waters.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And God saw the light, that it was good: and God divided the light from the darkness. And God called the light Day, and the darkness he called Night.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rst day. 그러면 보시다시피 1-5절은 계속해서 and로 연결되는 보통의 평범한 영어 문장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데를 다 ‘그리고’로 번역하면 말이 안 됩니다. ‘그리고’는 대개 같은 주어가 이어지면서 어떤 일이 끝난 뒤에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보여 주는 데 사용됩니다. 표준역의 1절과 2절을 보기 바랍니다. 1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2 그리고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였으며 어둠이 깊음의 표면 위에 있었더라.  1절은 주어가 하나님이고 2절은 주어가 땅과 어둠입니다. 이처럼 1절과 2절이 주어가 다를 때 and를 ‘그리고’로 번역하면 말 자체가 안 됩니다. 그러면 이제 흠정역으로 1-2절을 보겠습니다.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2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더라.   1절 끝의 마침표와 2절의 ‘고’, ‘며’가 우리말에서는 이미 and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사실 1절은 하나님께서 우주 공간과 그것의 센터인 지구를 무에서 유로 창조하셨다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2절에 ‘그리고’가 나오면 말이 꼬이게 됩니다. 예를 들어 황영조 선수가 올림픽 마라톤에서 1등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신문 기사에 이런 제목과 글이 뜹니다. 제목: “황영조 마라톤 경주에서 세계를 제패하다”   기사: 우리나라의 황영조 선수가 자랑스럽게도 올림픽에서 다른 모든 유명한 선수들을 제치고 2시간 몇 분의 기록으로 1등을 하였습니다... 이 경우 제패한 것은 이미 과거의 일이지만 ‘제패하다’로 써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현재를 묘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는 현재 시제가 아니라 제목처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현재 시제가 되려면 ‘하시느니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어 단어들이 다 영감을 받았으니 그대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은 난센스 중의 난센스입니다. 우리말답게 번역해야 합니다.   사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히브리어를 그대로 살려서 가장 영어답게 정확하게 번역한 것입니다. 영어는 and가 없으면 말이 안 되니까 계속해서 and가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말은 대부분의 경우 and를 그리고로 번역하는 것이 불필요하고 번역하면 오히려 졸역이 됩니다. 우리말에서는 이미 ‘고’, ‘며’, 마침표 등에 and가 다 들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 And Jesus entered and passed through Jericho. 2 And, behold, there was a man named Zacchaeus, which was the chief among the publicans, and he was rich. 3 And he sought to see Jesus who he was; and could not for the press, because he was little of stature. 4 And he ran before, and climbed up into a sycomore tree to see him: for he was to pass that way. 표준역 1 이후에 예수님께서 예리코로 들어가시어 그곳을 지나가셨더라. 2 그리고 보라, 삭개오란 이름으로 불리는 한 남자가 있었으니, 세리들 사이에서 우두머리인 자였고 그가 부유하였더라. 3 그리고 그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그분을 보고자 하였더라. 그런데 인파로 인하여 볼 수 없었으니, 그의 키가 작았기 때문이라. 4 그러자 그가 앞으로 달려가서 그분을 보려고 뽕나무 하나에 올라갔더라. 표준역은 1절 시작의 and를 ‘이후에’라고 임의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리고 2절 시작의 and를 ‘그리고'로 번역하였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1절과 2절의 주어가 다르기 때문에 2절의 and는 ‘그리고’로 하면 안 됩니다. 우리말로 굳이 하지만 ‘그런데’ 정도가 가능할 것입니다.   또 2절 중간에 세리들 사이에서 앞에는 which가 있으므로 이것을 '그가'로 번역해야 두 번째 문장의 주어가 있게 됩니다.    '세리들 사이에서 우두머리인 자였고 그가 부유하였더라.'로 하면 우리말이 아닙니다.   3절 첫 부분의 ‘그리고’도 심히 어색함을 누구라도 느낄 것입니다. 표준역 번역자는 뒤에서 그런데를 자기 마음대로 추가하였습니다.    4절 첫 부분에서 and를 그들은 ‘그러자’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자’는 어떤 일을 하고 나니까‘의 뜻입니다. 그런데 3절 끝은 삭개오의 키가 작다는 상태를 보여 주므로 여기서 ’그러자‘는 문맥 맞지 않는 접속사입니다. 그리고 표준역은 4절 중간의 콜론(:)을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영어 그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그리고, 그러자를 자기들 마음대로 넣고 말이 안 되니까 그런데를 마음대로 추가하면 이것은 올바른 성경 번역이 될 수 없습니다.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이것을 읽고 이게 무슨 뜻인지 머릿속에 들어올까요? 흠정역을 보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거기를 지나가시더라. 2 보라, 삭개오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리들 가운데 우두머리요 또 부자더라. 3 그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려고 애쓰되 키가 작으므로 밀려드는 무리로 인해 볼 수 없어서 4 앞으로 달려가 그분을 보려고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그분께서 그 길을 지나셔야 하기 때문이더라. 흠정역처럼 1절 처음의 and는 그 전의 18장 마지막 절의 마침표로 이미 번역이 된 것입니다.   2절 처음의 and도 1절 끝의 마침표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which를 미리 살려서 '그는'이 먼저 나오므로 주어가 살아서 온전한 문장이 됩니다.   3절 첫 부분의 and도 2절 마침표로 번역이 되었고 4절 첫 부분의 and는 3절 끝부분에 ‘볼 수 없어서’로 알맞게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and를 위의 15가지 용례에 맞게 번역해서 우리말답게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도 sycomore tree는 뽕나무가 아니라 돌무화나무가지요. 결론 영어 성경의 and를 거의 다 그리고로 번역하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그렇게 하면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졸역 내지는 오역이 나옵니다. 우리말 번역 시 and는 마침표, ‘고’, ‘며’, ‘과’(혹은 와, 사과와 배, 사과 그리고 배 No!)와 위의 15가지 용례 중 하나로 우리말답게 번역해야 합니다. 말도 안 되는 번역을 하고는 단순한 사람들을 미혹에 빠지게 하는 일을 하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습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12 11:41:08 | 관리자
킹제임스 흠정역의 퓨어 케임브리지 영어 본문은 미국 최대 성경 출판사가 쓰는 베스트 본문이다   안녕하세요? 요즘 표준역이란 역본이 나와 자기들이 1769년 케임브리지 표준 본문을 쓰고 있다고 하며 흠정역같이 다른 본문을 쓰는 역본들은 오류가 많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거짓말이 오래가면 결국 탄로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드디어 표준역 번역자는 자기가 스스로 영어 본문을 제조해서 1769년 케임브리지 표준 본문이라고 했음을 실토하였고 적어도 45개의 오류가 있음을 시인하였습니다. 표준 킹제임스 번역자의 이실직고 사실 킹제임스 성경의 영어 본문을 이야기하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 본문은 시간이 지나며 철자법이 고정되면서 그에 따라 올바르게 교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troden이 trodden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개정이 아닙니다. 또한 한 군데(대하33;19)에서 all his sins가 all his sin으로 교정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sin이 원어에 단수이기 때문입니다. His prayer also, and how God was intreated of him, and all his sin, and his trespass, and the places wherein he built high places, and set up groves and graven images, before he was humbled: behold, they are written among the sayings of the seers. 이런 것들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 본문 개정이 아니라 교정(정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영어 본문 변천 과정은 다음을 보기 바랍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 본문에 대하여 현재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퓨어 케임브리지판의 영어 본문 거의 99.9% 동일하고 다음 기사에서 보듯이 12구절에서 심히 단순한 차이들만 있습니다(대소문자, a냐 e냐, and냐 or냐 등).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12구절의 미세한 차이들 다시 말씀드립니다. 1. 표준역이 주장하는 <1769 표준 케임브리지 에디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자가 제조한 것입니다. 2.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퓨어 케임브리지 판은 거의 동일하고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자들이 이런 것을 가지고 논쟁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의심만 불러일으키는 악한 행위입니다. 위의 글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12구절 미세한 차이들>에서 저자는 맨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형제들이여, 당신이 요한일서 5장 8절에서 대문자나 소문자 's'에 대해 논쟁할 때 학자들과 KJV 비평가들이 메모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당신의 말이 감시되고 기록되고 당신 자신의 의심과 질문이 성경 불가지론자들에게 미래에 당신에게 불리하게 사용될 더 좋은 자료를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당신과 KJV에 대해 당신 자신의 주장을 사용할 때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지켜보고 기록하고 시험하고 계십니다. 그러한 사소한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그분과 그분의 인도를 구하십시오. 당신이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스스로 찾아보기 바랍니다. 진리를 찾고자 하는 당신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 본문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 본문이 1909년경에 나와 가장 최근의 철자법 등을 반영하고 미국 최대 성경 출판사가 그것을 사용하기에 영어 본문으로 채택하였습니다. 표준역처럼 수제 본문을 마음대로 제조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것 말고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이에 대해 표준역 진영 사람들은 “그것은 1인이 만든 것이다.”, “그것은 은사주의자가 만든 것이다.” 등의 말을 하면서 비방을 합니다. 하나님은 불신자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 얼마든지 쓰십니다.    1. 대표적인 예가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였는데 유다 사람들을 그들의 땅으로 돌려보내는 위대한 일을 하였습니다. 2. 또 에라스무스는 킹제임스 성경의 저본인 그리스어 공인 본문을 만들어 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개종하지 않고 평생 천주교도로 살았습니다. 그가 천주교도라는 것이 공인 본문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3. 1760년 케임브리지판은 파리스가 홀로 만들었습니다(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모름). 4. 1769년 옥스퍼판 본문도 블레이니가 홀로 만들었습니다(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모름). 5. 1884년 스크리브너판은 스크리브너가 홀로 만들었습니다(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모름). 그는 심지어 킹제임스 성경을 반대하면서 영어 개역 성경 번역 위원회의 위원으로 일한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는 번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번역 이후 철자법의 변화에 따른 교정을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영어 본문은 대개 개인이 홀로 시간의 변화에 따른 철자법 등을 고친 것에 불과합니다. 1909년경의 pure cambridge edition 본문도 역시 한 개인이 전체적인 교정 일을 하였습니다(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모름). 그리고 교정의 양도 얼마 안 됩니다. 이미 스크리브너까지 오면서 거의 다 교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후대의 것이니 당연히 1769년 옥스퍼드판보다 철자법 등 모든 면에서 향상이 되었습니다. 누가 혹은 몇 명이 일을 했느냐갸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작업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실수가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나서 여러 사람들이 지금까지 그것을 쓰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세상에는 지금 여러 종류의 영어 킹제임스 성경 본문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다 1769년 옥스퍼드판에서 나온 것이고 거의 다 동일합니다. 요일5:8의 s, S 정도의 차이를 빼고.   미국 최대 성경 출판사 퓨어 케임브리지 본문 사용   그러면 pure Cambridge edition 본문을 누가 사용해서 지금까지 성경을 출간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현재 미국 홀맨 성경 출판사(Holman Bible Publisher)는 pure Cambridge edition의 KJV를 출간합니다. 이 출판사는 미국 남침례교 소속 출판사(Lifeway의 자매 회사)이고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경 출판사로서 1743년부터 영어 성경을 출간해 오고 있습니다(위 그림 오른쪽 설명 글). Holman Bibles is the oldest Bible publisher in North America dating back to 1743 and is committed to publish Bibles and reference products of the highest quality that are trustworthy, accessible, and useful for the pursuit of lifelong discipleship. Just a few of our resources include: 이들은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홀맨 출판사의 이 킹제임스 성경은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을 사용하는데 이 에디션은 킹제임스 성경의 정확한 판들 중 가장 널리 인정된 판들 가운데 하나이다(위 그림 왼쪽 설명 글). This Bible uses the Pure Cambridge Edition, which is one of the most widely recognized accurate editions of the KJV.    홀맨 출판사 킹제임스 성경  아마존에 가서 ‘pure cambridge edition king james version’으로 검색하면 여러 출판사들이 지금도 여전히 pure cambridge edition KJV를 출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미국에서 가장 큰 성경 출판사와 다른 출판사들이 퓨어 케임브리지판을 써서 성경을 출간할까요?    그것이 공신력 있는 베스트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 역시 자기들의 본문을 사용해서 성경을 출판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 답변: 우리가 현재 출간하는 킹제임스 성경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소소하게 업데이트된 것들을 포함한 1769년판’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Our KJV is based on the 1769 albeit with some minor updates over the year. 케임브리지 대학 답변에서 1769년판이란 표준역 번역자가 말했듯이 당연히 1769년 옥스퍼드판입니다. 그러면 흠정역 성경의 퓨어 케임브리지 본문과 케임브리지 출판사의 본문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제가 알기로는 요한일서 5장 8절의 영이 대문자(the Spirit)냐, 소문자(the spirit)냐 밖에 없습니다. 다음 편지를 보면 심지어 케임브리지 출판사도 1985년 6월 3일 이전까지는 요일5:8에 소문자 spirit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가 이 편지를 받고 그 이후 출간되는 성경부터 대문자 Spirit으로 임의로 바꾼 것 같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미국에서 훨씬 더 많이 사용되므로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 성경보다는 홀맨 출판사 성경이 더 많이 출간되고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 성경은 최고급 재질로 만들어져서 매우 비싸며(평균 100-150달러) 홀맨 출판사 성경은 보통 재질로 만들어져서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입니다(평균 40-50달러).    차이는 요한일서 5장 8절의 대소문자 spirit 정도입니다.      요한일서 5장 8절의 진실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보기 바랍니다. 요한일서 5장 8절의 진실 결론   표준역 영어 본문에는 오류가 적어도 46개 됩니다. 흠정역 영어 본문에는 오류가 없습니다(혹시 있으면 알려 주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킹제임스 성경 영어 본문을 가지고 성도들을 우롱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마귀를 돕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선물로 주신 것은 1611년에 인쇄된 본문, 1769년에 인쇄된 본문, 1909년에 인쇄된 본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1611년에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담은 킹제임스 성경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판 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존된 말씀인 킹제임스 성경이라는 선물의 의미에 어떤 것도 더하지 못합니다. 1611년 성경 발행 이후의 본문 변화는 인간의 언어(철자법)가 변하거나 인쇄 기술이 변하면서 이것을 교정한 것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아포스트로피, 하이픈, 대소문자 등은 원래 원문에 없던 것들이며 이런 것들이 설사 판별로 미세하게 몇 부분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에 어떤 문제를 결코 가져오지 않습니다. 리건 박사의 다음 글이 모든 문제의 결론을 이야기해 줍니다. 여러분은 이제 확신을 가져도 된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손에 있는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개정된 것’이 아니라 ‘정화된 것’이다.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이 성경이 우리를 위해 ‘영어로 보존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의 정확성에 대한 권위는 1611년판 ‘킹제임스 성경’의 초판 인쇄본 – 여기다 더하면 1760년판, 1769년판, 1909년판, 케임브리지판 혹은 옥스퍼드판 - 에 있지도 않고 제임스 1세의 인품에 놓여 있지도 않으며,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 문학의 뛰어난 업적에 있지도 않고 심지어 그리스어 ‘공인 본문’에 있지도 않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KJV)이라는 절대 무오한 말씀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하신 약속과 그분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우리 손에는 그분의 완전한 말씀이 있다.
2023-07-11 17:05:40 | 관리자
한국에서 표준 1769 케임브리지 에디션(Standard 1769 Cambridge Edition) 만들기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표준 킹제임스의 자체 영어 본문 제조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주어서 올립니다,  표준역의 주장  표준역은 표준 1769 케임브리지 에디션(Standard 1769 Cambridge Edition) 본문을 써서 오류가 없고 다른 역본들(예를 들어 흠정역 성경)은 열등한 영어 본문을 써서 오류가 많다.       표준역 번역자가 영어 본문을 만든 과정  1. 1769 옥스포드 에디션을 입수한다. 2.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케임브리지 에디션(?)과 비교하면서 옥스포드 에디션의 영어 단어들을 바꾼다. 3. 이때 아포스트로피(‘) s는 실수로 남겨 둔다. 4. 그러면 '약간 오류는 있어도' 표준 1769 케임브리지 에디션이라고 우길 수 있는 표준 영어 본문이 세상에 나온다. 5. 그래도 몇 가지 오류가 더 발견된다면 다음 판 한영대역 재인쇄 전에 그 영어 단어도 바꾸면 된다. 그렇게 표준 1769 케임브리지 에디션은 완성된다.   ※ 위 제조 과정에서 거짓말이나 진실 여부, 영어 단어를 고치는 일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표준 1769 케임브리지 에디션을 스스로 만들어서 이미 킹제임스성경을 믿고 읽고 신앙 생활하지만 무지한 성도를 일깨워줘야 하니까~~~~   그런데 잠시 잠깐 무지한 사람들을 속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거짓이 온 천하에 드러난다.   그들이 만든 영어 본문에는 최소 46개의 오류가 있다. 얼마나 많은지는 아무도 모른다.   표준역 영어 본문의 오류   이 46개 오류 말고 지금까지 흠정역 영어 본문과 다른 데는 요한일서 5장 8절뿐이다.   그런데 요한일서 5장 8절도 그들의 부당한 주장임이 드러났다.   요한일서 5장 8절의 진실   그러면 어느 영어 본문이 맞는가?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영어 본문이 맞는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영어 본문에서 틀린 데를 지적하기 바란다.   아마도 없을 것이다(만의 하나 혹시 있다 해도 우리말 번역에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일 것이다).   샬롬   패스터   
2023-07-11 15:21:53 | 관리자
요일5:8에서 소문자 spirit은 오류이고 신성을 약화시키는가? 표준 킹제임스 역본의 부당한 주장 킹제임스 성경의 표준을 제시하겠다며 나온 표준역은 킹제임스 흠정역 등의 영어 본문이 오류가 많다고 주장하더니 결국 표준역의 영어 본문은 거짓으로 드러났고 심지어 그 안에 적어도 46개의 오류가 있음이 판명 났습니다. 자기들 것이 케임브리지 출판사 표준 본문이라고 주장하다가 잘못하면 케임브리지 출판사에서 판권 문제로 시비를 걸 가능성까지 생겼습니다. 표준 킹제임스 번역자의 이실직고: 표준역 영어 본문은 1769년 케임브리지판이 아니다 표준역 진영 사람들이 자기들 영어 본문만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킹제임스 흠정역 영어 본문에서 오류라고 하며 찾아낸 것이 지금까지 고작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요한일서 5장 8절의 spirit에 대한 것입니다. 설명을 위해 요한일서 5장 7-8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7절: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 8절: And there are three that bear witness in earth,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se three agree in one. 흠정역: 7절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8절 땅에 증언하는 셋이 있으니 영과 물과 피라. 또 이 셋은 하나로 일치하느니라. 흠정역 성경은 8절의 the spirit을 소문자로 표기했고 표준역은 그것을 대문자 the Spirit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이것을 놓고 표준역 진영 사람들은 흠정역 성경이 소문자 spirit을 썼으므로 하나님의 신성을 약화시키거나 모독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하나님의 영을 무조건 대문자 Spirit으로 표기해야만 할까요? 그래야만 하나님의 신성을 높이는 것이 될까요? 성경 이슈에 대해 잘 모르는 대다수 사람들을 이런 쓸데없는 주장으로 현혹하여 넘어지게 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항상 영어 대문자 S로 표기되어야만 하는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God), 성령님(Holy Ghost), 말씀(Word), 성령(Spirit) 등이 대문자로 표현된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은 이 단어들의 원어인 히브리어, 그리스어 단어들도 대문자로 표기된 줄로 압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소문자 spirit과 대문자 Spirit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대문자 Spirit은 하나님의 영 혹은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님을 나타냅니다.   구약의 경우 소문자 spirit과 대문자 Spirit은 다 스트롱 번호 7307인 ‘루아흐’로 되어 있습니다(창1:2의 하나님의 영, 창45:27의 야곱의 영 참조). 신약의 경우 소문자 spirit과 대문자 Spirit은 다 스트롱 번호 4152인 ‘(프)뉴마’로 되어 있습니다(마3;16; 4:1의 성령, 마5:3; 22:43의 사람의 영, 마12:43의 부정한 영 등). 즉 동일한 ‘루아흐’ 혹은 ‘(프)뉴마’를 번역하면서 영어 성경 역자들은 그것이 성령님을 뜻한다고 동의한 경우 대문자 S를 쓰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대개 소문자 s를 썼습니다. 그런데 이 규칙은 100% 항상 이렇지는 않습니다. 시편 51편 11절을 보겠습니다. 나를 주의 얼굴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주의 거룩한 영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Cast me not away from thy presence; and take not thy holy spirit from me. 시51:11에서 소문자로 기록된 ‘거룩한 영’(holy spirit)은 당연히 성령님이지만 소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6절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므로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이것에 의해 우리가 진리의 영과 오류의 영을 아느니라. We are of God: he that knoweth God heareth us; he that is not of God heareth not us. Hereby know we the spirit of truth, and the spirit of error.     요일4:6에서도 소문자로 기록된 ‘진리의 영’(the spirit of truth)은 성령님입니다. 이 진리의 영은 요한복음 14:17; 15:26; 16:13 등에서는 대문자 Spirit으로 되어 있습니다. 요14:17 Even the Spirit of truth; whom the world cannot receive, because it seeth him not, neither knoweth him: but ye know him; for he dwelleth with you, and shall be in you. 이 외에도 마태복음 12장 18절처럼 하나님께서 내 영(my spirit)을 누구에게 준다고 할 때도 다 소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내가 택한 나의 종, 내 혼이 매우 기뻐하는 자 곧 내 사랑하는 자를 보라. 내가 내 영을 그 위에 두리니 그가 이방인들에게 판단의 공의를 보이리라(마12:18). Behold my servant, whom I have chosen; my beloved, in whom my soul is well pleased: I will put my spirit upon him, and he shall shew judgment to the Gentiles. 위에서 제시한 시51:11; 요일4:6; 마12:18의 경우 영을 소문자 spirit으로 써도 누구나 그것이 하나님의 영인 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문자 spirit은 다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 큰 잘못입니다. 요한일서 5장 8절 설명 요한일서 5장 7-8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7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8 땅에 증언하는 셋이 있으니 영과 물과 피라. 또 이 셋은 하나로 일치하느니라. 7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 8 And there are three that bear witness in earth,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se three agree in one.   일단 문맥을 보면 7절은 하늘과 관련되어 있고 8절은 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먼저 8절의 영이 대문자 Spirit이 아니라 소문자 spirit으로 되어 있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거기에 정관사 the가 붙어 있으므로 7절을 보고 앞뒤 문맥상 그 영(the spirit)이 성령님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 그림은 1611년 초판의 요일5:8을 보여 줍니다.   보시다시피 요일5:8의 경우 ‘영’은 1611년 초판에는 대문자 Spirit으로 되어 있고 동시에 그다음에 나오는 Water와 Blood도 대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Water와 Blood도 첫 글자가 대문자이므로 신성을 가진 존재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로마체가 쓰이지 않았고 고딕체가 쓰였습니다. 고딕체의 경우 이런 사례에서는 종종 같은 구절에서 몇 단어를 연거푸 대문자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독일어의 영향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요일5:8에서 반드시 대문자 Spirit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그다음의 Water와 Blood도 대문자로 써야 합니다. 그러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따라서 1611년 당시 식자공의 실수로 Water와 Blood가 대문자로 되었으므로 이것들을 소문자로 교정하면 당연히 Spirit도 소문자로 교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무 위키에서 ‘식자’를 찾으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습니다. 프린터나 복사기가 없었던 옛날에는, 문서를 여러 부 인쇄하려면 목판이나 활판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활판을 만들려면, 우선 인쇄할 문단 모양의 틀을 준비한 뒤, 문서의 글자 하나하나에 해당되는 활자를 틀에 끼워 넣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틀에 활자를 끼워 넣는 과정을 글자(字)를 심는다(植)고 해서 식자(植字)라고 합니다. 활판 인쇄의 식자는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10포인트 크기의 글자 1천 자가 들어간, A4 종이 1페이지 분량의 문서를 인쇄한다고 해 봅시다. 단 1페이지 분량의 이 문서를 인쇄하기 위해, 활판 인쇄에서는 1천 개의 활자를 일일이 끼워 넣는 식자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게다가 글자 간격이나 행 간격을 조절하고 싶다면 활자를 일일이 이동시켜 줘야 했고, 폰트 크기를 바꾸려면 다른 크기의 활자를 준비해서 끼워야 했습니다. 게다가 활자들은 도장처럼 좌우가 뒤집혀 있기 때문에, 작업자가 숙련되지 않았다면 실수하기 십상이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사람 손을 엄청나게 타는 일이었고, 때문에 옛날에는 식자 작업만 담당하는 식자공(植字工)이라는 직업이 있었습니다. 1611년 킹제임스 성경을 찍을 때는 무려 500만 개의 활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소문자 s의 경우 요일5:8과 같이 실수로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의 s, w, b를 다 대문자 활자를 썼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명백한 실수이므로 나중에 모두 소문자로 바뀌었습니다. 한편 어떤 판에는 s는 대문자로 두고 w와 b는 소문자로 두었습니다. 사실 s가 대문자든 소문자든 앞뒤 문맥으로 보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누구나 알 수 있으므로 이런 것을 가지고 문제를 삼는 사람들은 킹제임스 성경 진영에 거의 없습니다. 다만 킹제임스 성경을 믿지 않는 James White 등이 꼬투리를 잡기 위해 이런 것 몇 가지를 지적할 뿐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완전성을 주장하는 럭크만 박사 등도 이런 문제를 말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여호수아 19장 2절 등이 오역이냐, 아니냐를 판별하는 기준입니다. And they had in their inheritance Beer-sheba, or Sheba, and Moladah(수19:2),    케임브리지판에는 ‘Beer-sheba, or Sheba’로 되어 있는데 다른 판에는 ‘Beer-sheba, and Sheba’로 되어 있습니다. 즉 같은 킹제임스 성경이라도 or와 and 즉 두 개의 번역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or가 맞는다고 믿습니다. 어떤 사람이 케임브리지 판대로 본문을 or로 취했다면 당연히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야 합니다. 흠정역: 그들이 차지한 상속재산은 브엘세바 혹은 세바와 몰라다와(수19:2) 그런데 표준역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표준역: 그리하여 그들이 그들의 유산으로 얻은 것은 베르셰바, 곧 셰바와 몰라다와(수19:2)   참고로 표준역의 영어 본문은 ‘Beer-sheba, or Sheba’입니다. 누구나 알듯이 or는 일차적으로 ‘혹은’이지 ‘곧’이 아닙니다. 어떤 번역이 오류인지는 독자들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출간되는 어떤 영어 킹제임스 성경들에는 이 구절의 Beer-sheba를 하이픈이 없이 Beersheba로 적었습니다. 저희는 당연히 하이픈이 있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번역에서는 하이픈이 있고 없고가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영어권에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읽는 사람들도 하이픈의 유무가 성경 번역의 오류/무오류를 결정하는 요소로 보지 않습니다.   심지어 ‘Beer-sheba, or Sheba’든 ‘Beer-sheba, and Sheba’든 의미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하도 표준역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자기들만의 특별한 진리라고 주장하기에 예로 언급하였을 뿐입니다. 이처럼 하이픈이 있어야만 바른 번역이라고 생각하면 한국어 번역도 브엘-세바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성경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이픈, 쉼표, 콜론, 세미콜론 등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우리 것이 번역을 위한 올바른 저본이다, 아니다를 논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입니다. 물론 히브리어, 그리스어에도 하이픈, 쉼표, 콜론, 세미콜론 등이 없습니다. 이것들은 번역자들이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자기들 나라(영국)의 문법에 맞게 추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말 성경 번역에서는 거의 모든 경우 하이픈, 쉼표, 콜론, 세미콜론을 번역하지 않습니다.  표준역이나 한글 킹제임스 성경 등은 인용문에 따옴표(“...”)를 수천 군데 집어넣었습니다. 그러나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는 따옴표(“...”)가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문장에서는 누가 말하였는지 구분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어떤 것들을 추구하고 어떤 것들은 빼고 하는 것은 번역자의 의도에 달려 있지 번역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요소가 아닙니다. 다만 번역 시에는 다음과 같이 일관성이 전혀 없는 ‘이상한 번역’을 하면 안 됩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마25;23: His lord said unto him, Well done, good and faithful servant; thou hast been faithful over a few things, I will make thee ruler over many things: enter thou into the joy of thy lord. 흠정역: 그의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잘하였도다. 선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것에 신실하였으므로 내가 너를 많은 것을 다스릴 치리자로 삼으리니 너는 네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라, 하니라. 여기에는 lord가 2번 나옵니다. lord는 종의 주인을 가리키니 당연히 주인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그런데 표준역은 이 두 번을 다 소유주라고 번역합니다. 표준역: 그의 소유주(lord)가 그에게 말하기를...너의 소유주(lord)의 즐거움에 참여하라. 그런데 22, 24절에도 동일한 lord가 나옵니다. 표준역: 이 달란트 받은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Lord), 주께서 내게 이 달란트를 맡기셨는데, 보소서, 내가 그것들 외에 이 달란트를 더 벌었나이다, 하매(22, 24) 그런데 표준역은 이것을 ‘소유주여’라고 번역하지 않고 ‘주인이여’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같은 장면에서 동일한 말 lord를 주인으로 하고 동시에 소유주로 하면 될까요?    22, 24절의 Lord는 대문자 Lord니 주인으로 번역한다고 하면 안 됩니다. 사실 모든 구절에서 동일한 lord인데 22, 24절에서는 문장이 시작되는 부분에 lord가 있으니까 대문자로 했을 뿐입니다. 서로 다른 lord가 아닙니다.   영한사전을 찾아보면 lord의 1차 뜻이 주(주인)임을 초등학교 아이들도 알 수 있습니다. 소유주라고 하는 경우는 landlord로 되어 있습니다. 표준역에는 번역자가 마음대로 추가하고 바꾼 이런 사례들이 매우 많습니다.  로마서 5장 2절을 보겟습니다. By whom also we have access by faith into this grace wherein we stand, and rejoice in hope of the glory of God. 표준역: 또한 우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하여 이 은혜 안으로 다가갈 수 있는 권한(right)을 가지느니라. 권한이라는 말이 영어 본문에 어디 있습니까? 흠정역: 우리가 또한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에 믿음으로 들어감을 얻었고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을 기뻐하느니라. 이처럼 자기 마음대로 단어를 추가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이탤릭 표시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하튼 우리는 이런 이유로 인해 요일5:8에서 소문자 spirit이 맞는다고 믿습니다. 즉 하늘에 있는 것들을 말하는 7절에는 다 대문자, 땅에 있는 것들을 말하는 8절에는 다 소문자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7(하늘)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  8(땅) And there are three that bear witness in earth,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se three agree in one. 그러나 누가 8절의 영이 대문자 Spirit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도 큰 문제를 삼지 않습니다. 그것이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나 하나님의 신성과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선물로 주신 것은 1611년에 인쇄된 본문, 1769년에 인쇄된 본문, 1909년에 인쇄된 본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1611년에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담은 킹제임스 성경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판 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존된 말씀인 킹제임스 성경이라는 선물의 의미에 어떤 것도 더하지 못합니다. 1611년 성경 발행 이후의 본문 변화는 인간의 언어(철자법)가 변하거나 인쇄 기술이 변하면서 이것을 교정한 것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아포스트로피, 하이픈, 대소문자 등은 원래 원문에 없던 것들이며 이런 것들이 설사 판별로 미세하게 몇 부분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에 어떤 문제를 결코 져오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침례교 성경 출판사인 홀맨 성경 출판사를 포함해서 다수의 출판사가 흠정역 성경의 영어 본문인 퓨어 케임브리지 본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홀맨 출판사 킹제임스 성경  아마존에 가서 ‘pure cambridge edition king james version’으로 검색하면 여러 출판사들이 pure cambridge edition KJV를 출간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부당한 주장이나 혹은 거짓 주장으로 순진한 성도들을 유혹해서 넘어지게 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11 14:36:52 | 관리자
<표준 킹제임스 역본의 수많은 번역 오류 표준> 킹제임스 성경의 표준을 제시하겠다며 나온 표준역은 오류들도 표준으로 만드는 심각한 오류의 표준을 세우고 있습니다.   오류도 표준인가?   비둘기를 그녀로 번역한 난센스를 보고 어떤 분이 이런 시구를 보내 주었습니다. “오늘은 비둘기들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아름다운 그녀들을 보니 아침이 매우 상쾌하다. 그녀들의 아름다운 날개...”   비둘기는 여자인가? 표준역에는 영어 본문은 물론이고 번역에도 수없이 많은 오류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다 고치느니 차리라 다시 번역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1. Children, 자녀들, 아이들, 자손들, 자식들 출1:1을 보겠습니다. Now these are the names of the children of Israel, which came into Egypt; every man and his household came with Jacob. 표준역: 1 이제 이것들이 이집트로 들어온 이스라엘 자녀들의 이름들이니, 모든 남자가 저마다 그의 집안과 더불어 야곱과 함께 왔더라. 2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요, 3 잇사칼과 스불룬과 베냐민이요, 4 단과 납탈리와 갓과 아셸이라. 여기에는 이스라엘 즉 야곱의 아들들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녀(子女)라는 말은 아들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출1:1-4 어디에 여자가 있습니까? 1절 끝은 분명히 모든 남자라고 기록하고 2-4절은 모두 남자들 이름만 나옵니다. 표준역은 Children of Israel을 모두 이스라엘 자녀들로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출1:7, 이후에 이스라엘 자녀들이 다산하고 풍성히 증가하며 번성하고 지극히 막강해졌더라. 출1:9, 그리고 그가 그의 백성에게 이같이 말하였더라. “보라, 이스라엘 자녀들의 백성이 우리보다 많고 막강하도다. 창36:31, 그런즉 아직 어떤 왕도 이스라엘 자녀들을 통치하기 전에 이들은 에돔 지역 가운데 통치하던 왕들이라. 여기서 children에 해당하는 히브리말은 ‘벤’(스트롱 번호 1121)이며 히브리어 사전을 찾아보면 분명하게 남성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children이 무려 1,803회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표준역 번역자는 1,803회 전부를 일일이 살펴보고 자녀들로 해서는 안 되는 남성 복수 children을 모두 바꾸어야 합니다. 창10:21을 보기 바랍니다. Unto Shem also, the father of all the children of Eber, the brother of Japheth the elder, even to him were children born. 표준역은 여기의 children을 자녀들이라고 하기도 하고 자식들이라고도 하였습니다.  10:21 에벨의 모든 자녀들의 조상이며, 형 야펫의 동생인 솀에게도, 곧 그에게도 자식들이 태어났더라. 표준역은 이런 것들을 모두 고쳐야 합니다. 2. 표준역은 새들과 같이 명백한 중성 명사들의 대명사인 they를 그들로 번역하였습니다.   욥38:41은 다음과 같습니다. Who provideth for the raven his food? when his young ones cry unto God, they wander for lack of meat. 표준역: 누가 까마귀를 위하여 그의 양식을 제공하느냐? 그의 어린 짐승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울고 그들이 음식의 부족으로 인하여 방황할 때... 여기의 they는 까마귀 새끼들을 가리키므로 당연히 그것들이지 그들이 아닙니다. ‘They’를 ‘그들’로 번역한 것으로 보아 표준역에는 짐승, 날짐승, 나무 같은 것들의 대명사 They를 ‘그것들’이 아니라 ‘그들’로 한 데가 여기 말고도 많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영어 성경에서 they는 무려 5,000번이나 나옵니다. them, theirs 등도 모두 보아야 하므로 적어도 10,000번 이상 나오는 대명서 they를 일일이 보고 교정해야 할 것입니다. 3. 잉태된 분 No! 마1:20은 다음과 같습니다. But while he thought on these things, behold, the angel of the LORD appeared unto him in a dream, saying, Joseph, thou son of David, fear not to take unto thee Mary thy wife: for that which is conceived in her is of the Holy Ghost. 그러나 그가 이런 일들을 생각하는 동안, 보라, 주의 천사가 그에게 한 꿈속에 나타나서 이같이 말하였더라. “너, 다윗의 자손 요셉이여, 너의 아내 마리아를 네게로 데려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그녀 안에 잉태된 분은 성령님으로 된 것이기 때문이라. 표준역은 뒷부분에서 ‘for that which is conceived in her’ ‘그녀 안에 잉태된 분’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여기의 that은 그리스어 원문을 보든지 영어를 보든지 중성 단수입니다. 교리적으로 이것은 ‘씨’를 뜻합니다. 즉 창세기 3장의 ‘여자의 씨’를 가리킵니다. 창3:15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it shall bruise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개심을 두리니 그 씨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런 오역들 속히 고쳐야 합니다.   4. He, 그인가? 그분인가? 고후9:9는 다음과 같습니다. (As it is written, He hath dispersed abroad; he hath given to the poor: his righteousness remaineth for ever). 표준역: 그분께서 널리 흩으시고 친히 가난한 자들에게 주셨으니, 그분의 의가 영원토록 남아 있음이라. 하였도다. 이것은 거의 모든 주석자들이 동의하듯이 시112:9를 이용한 것입니다. 즉 여기의 그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베푸는 선한 사람을 말하지 하나님을 뜻하지 않습니다.   주석들 5. 번역 누락 겔1:24는 다음과 같습니다. And when they went, I heard the noise of their wings, like the noise of great waters, as the voice of the Almighty, the voice of speech, as the noise of an host:  표준역: 그리고 그들이 갈 때면 나는 그들의 날개들의 소음을 들었는데 많은 물들의 요란한 소리와도 같고, 전능하신 분의 음성과도 같으며, 어느 군의 요란한 소리와도 같았더라.  영어에는 중간에 the voice of speech가 있는데 표준역은 이것을 누락하였습니다. 흠정역: 그들이 갈 때에 내가 그들의 날개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은 큰물들의 소리와도 같고 전능자의 음성 곧 말하는 음성과도 같으며 군대의 떠드는 소리와도 같더니 이처럼 수많은 오류들을 가진 것을 표준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마 어불성설일 것입니다. 어불성설(語不成說): 말이 말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사리(事理)에 맞지 않아서 말 같지 않은 이야기라는 뜻의 만불성설(萬不成說)과 말이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뜻의 어불근리(語不近理)와 같은 말로 줄여서 불성설(不成說)이라고도 한다. 말이 하나의 일관된 논의로 되지 못하여 이치에 맞지 않아 말이 안 되는 것을 가리킨다. 하는 말이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않아서 말이 되지 않을 경우에 쓰이는 성어(成語)로 말이 사리와 이치에 전혀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샬롬 패스터
2023-07-11 11:18:15 | 관리자
표준킹제임스 번역자의 이실직고: 표준역 영어 본문은 1769년 케임브리지판이 아니다!  안녕하세요? 요즘 표준킹제임스 역본이라는 것이 나와서 여러 가지 이상한 것들을 주장하기에 몇 가지 반박의 글을 썼습니다. 어떤 사람이 선한 목적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거짓말까지 써서 무리한 것을 주장하면 결국 거짓말이 드러나게 됩니다. 표준역 번역자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경우 ‘1769년 케임브리지판’이 표준 본문이라고 주장하며 자기가 이 본문을 사용하였으므로 자기 역본의 이름이 표준 역본이고 이 본문을 사용하지 않은 다른 역본들(예를 들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는 오류가 많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의 글을 써서 이 주장이 거짓임을 반박하였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 본문에 대하여: 오류도 표준인가?> 이 글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표준 킹제임스 역본의 영어 성경 본문은 1769년 케임브리지판이 아닙니다. 1769년 케임브리지판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표준 킹제임스 역본의 영어 성경 본문에는 오류들이 있고 그 외의 다른 부분들은 거의 다 흠정역 성경이 채택한 퓨어 케임브리지 본문과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표준 킹제임스 역본 번역자들은 그것의 영어 성경 본문이 1769년 케임브리지판임을 제시하기 바랍니다. 즉 어디에서 영어 성경 본문을 구했는지 독자들에게 알려주기 바랍니다.  그러자 표준역 번역자로 알려진 분은 해명 동영상을 올렸는데 그 안에서 그분은 다음과 같이 직접 자기 말로 명백하게 자기가 거짓말을 했음을 시인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러고도 여전히 1769년 케임브리지판이 있다고 주장을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이 그분의 영상과 영상의 그 부분 녹취록을 보내 주셔서 여기에 녹취 부분을 증거로 제시합니다. 영상 링크는 밑에 있습니다. <영상 내용 녹취록> 자 이건 오류일까요? 아니에요. 정말 1769년판에 요렇게 되어 있습니다. 근데 1769년판 옥스퍼드판에 그렇게 되어 있어요. 볼게요. 실제로 옥스퍼드 딕셔너리에 theirs를 치면요. 이 예시로 19세기에 썼던 것들을 보여 주는데요. 그때는 소유 대명사를 Their's라고 어포스트로피 s('s)로 썼다라는 것을 예시로 들어 줍니다. 그래서 1769년판 나올 당시에는 오류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안 쓰니까 캠브리지에서 업데이트해서 어포스트로피 s('s)를 뺐죠. 자 이게 왜 이렇게 된 건지는 제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케임브리지판은 케임브리지는 텍스트를 잘 안 줘요. 그래 가지고 그냥 인터넷에 있는 걸 자꾸 긁어야 되는데 너무 오래 걸립니다. 삼만 천백두 구절, 삼만 번을 못하기 때문에 1769년판 텍스트는 있어요. 옥스퍼드판. 그래서 그 텍스트를 가지고 입력해서 이 케임브리지판에 맞춰서 수정할 부분을 다 수정했어요. 그런데 하나 제가 간과했던 게 어퍼스트로피 s('s)를 빼는 거였네요. 이거는 잘 찾아 주셨습니다. 3판 나올 때 빼겠습니다. 그런데 이건 오류가 아니라 원래 이 19세기의 문법이다. 오류가 아닙니다.   위에서 보듯이 표준역 번역자는 자기가 ‘1769년 옥스퍼드판’을 구해서 그 안의 영어 단어들을 자기 마음대로 고쳤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1769년 케임브리지판’이 아닙니다. 더욱이 케임브리지 출판사는 영어 본문을 주지 않는데 무엇을 근거로 1769년 옥스퍼드판을 고칠 수 있을까요?  표준역 번역자는 자기의 영어 본문이 완전하다고 주장하더니 결국 45군데나 아포스트로피를 틀리게 표기하였습니다. 그러고도 오류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본문의 나머지에 다른 오류가 있을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자기가 스스로 본문을 고쳤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표준역 번역자는 급하게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에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랬더니 거기에서 온 답변은 2023년 현재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가 만드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본문은 <1769년 옥스퍼드판 + 자기들이 고친 것들>이라고 글을 보냈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 답변: 우리가 펴내는 킹제임스 성경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소소하게 업데이트된 것들을 포함한 1769년판’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Our KJV is based on the 1769 albeit with some minor updates over the year. 케임브리지 대학 답변에서 1769년판이란 표준역 번역자가 말했듯이 당연히 1769년 옥스퍼드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반박하였듯이 표준역 번역자가 주장하는 1769년 케임브리지판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표준역 번역자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심각한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더욱이 표준역 번역자는 케임브리지 대학 답변에 있는 명단, 즉 ‘시간이 경과하면서 소소하게 업데이트된 것들의 명단’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본인이 이야기했듯이 그 출판사에서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본문을 고치다가 45군데나 오류를 남겨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표준역 영어 본문이 다른 오류들을 담고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표준역의 명백한 오류   그 예로 여호수아기 19장 19절을 들 수 있습니다. 표준역은 And Haphraim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표준역은 이를 마치 a가 있는 것처럼 ‘하파라임’으로 번역하였습니다(영어에는 a가 없는데...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반면에 바른 성경들은 And Hapharaim으로 표기하여 중간에 a가 있습니다. - 1611 오리지널 에디션, Hendrickson - 1611 오리지널 에디션, Zondervan - 케임브리지 에디션, Trinitarian 성경공회 - The Defined KJB, D. A 웨이트 - 1769 케임브리지 에디션, http://www.churchesofchrist.net/bibles/KJV/kjvindex.htm - 퓨어 케임브리지 - 킹제임스 흠정역 한영대역 물론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Hapharaim으로 표기하고 하바라임이라고 바르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 위의 글에서 결론을 내렸듯이 표준역 킹제임스 영어 본문은 우리가 사용한 퓨어 케임브리지판보다 훨씬 열등한 본문이고 어디에 오류들이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본문입니다.   결론 아무리 선한 일을 한다고 해도 거짓말을 동원하여 사람들을 속이면 안 됩니다. 사람들은 잠시 잠깐 속아 넘어갈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 서면 모든 것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표준역 번역자는 이런 거짓말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사람들에게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 표준역 내지의 The Standard 1769 Cambridge Edition-Crown Copyright을 사실대로 고치지 않으면 판권 문제로 케임브리지 출판사에 의해 고소당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판권은 보통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표준역 번역자 해명 영상   (영상 38분 43초-39분 45초)  
2023-07-10 18:58:09 | 관리자
칭의는 ‘정당함을 입증받는 것’이 아니다(표준 킹제임스역의 심각한 교리 문제). 안녕하세요?    한 분이 표준역의 심각한 교리 문제를 알려 주셔서 몇 자 적습니다.   표준 킹제임스 성경은 justify, justified 등을 ‘정당함을 입증하다’, ‘정당함을 입증받다’로 번역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로마서 5장 1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Therefore being justified by faith, we have peace with God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표준: 그러므로 믿음으로 정당함을 입증받은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을 갖느니라(롬5:1).   표준역에 따르면 우리는 믿음으로 정당함을 입증받습니다. 국어사전을 보면 ‘입증하다’는 ‘어떤 증거 따위를 내세워 증명하다.’를 뜻합니다. 또 ‘정당하다’는 ‘이치에 맞아 올바르고 마땅하다’를 뜻합니다. 따라서 표준역처럼 justify를 ‘정당함을 입증하다’로 번역하면 ‘죄인이 원래 이치에 맞아 올바르고 마땅하다는 것을 하나님이 증거를 내세워 증명하다’는 뜻이 됩니다. 즉 그러므로 표준역식의 justify는 죄인인 사람이 원래 정당하다는 것을 하나님이 증명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칭의 사역을 완전히 뒤집는 것, 즉 정반대로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의 칭의는 죄가 있는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명백한 신학적 정의이며 전 세계 영어권 사람들의 표준 사전인 옥스퍼드 사전 역시 동일하게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즉 사람이 원래 죄가 없다고 그의 정당성을 하나님이 증명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원래 죄가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것이 칭의입니다. 칭의(옥스퍼드 사전):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은 칭의란 하나님의 은혜의 행동인데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사람의 어떤 장점(선행 등)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를 통해 사람을 의롭다고 간주하신다. 이것은 믿음에 의해 이루어진다.    Justification(옥스퍼드 사전),  4.4 Theol. The action whereby man is justified, or freed from the penalty of sin, and accounted or made righteous by God; the fact or condition of being so justified. Protestant theologians regard justification as an act of grace in which God accounts man righteous, not owing to any merit of his own, but through imputation of Christ's righteousness, as apprehended and received by faith.  라이프성경사전의 칭의[稱義, justification] ‘의롭다고 간주하다’는 뜻. 자연인은 누구든지 죄인이므로(욥 9:2; 롬 3:10)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고 죽음의 형벌을 면할 수 없다(롬 3:10, 23; 6:23).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 죄인을 대신하여 죄값을 치르게 하셨고(롬 3:25) 또 그 피 공로를 믿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죄 없다고 선언하셨다(롬 3:24-26; 4:3). 이것이 곧 칭의다. 칭의에는 예수로부터 전가된 의로써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용서받는 소극적 요소가 있고(사 44:22; 롬 5:21; 히 10:14), 또한 하나님의 자녀되고 영생하는 적극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요 1:12-13; 롬 8:15-16; 벧전 1:4). → ‘의’를 보라. 칭의의 교리는 구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칭의를 사람이 원래 정당한 존재임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입증받은 것이라고 하니 이런 주장은 어느 면에서 심각한 이단 교리입니다. 대체 이런 사상이 어디서 왔는지 표준역 번역자들은 밝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시느니라(롬5:8).   샬롬   패스터
2023-07-06 14:09:07 | 관리자
여자들의 연설(?), 돕는 배필(?), 학관(?)이라 (표준 킹제임스역의 문제) 1. 여자들의 연설(?)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표준역의 이상한 부분을 알려 주며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서 적습니다. 고전14:34는 다음과 같습니다. Let your women keep silence in the churches: for it is not permitted unto them to speak; but they are commanded to be under obedience, as also saith the law. 교회들 안에서 너희의 여자들을 잠잠하게 하라. 이는 그들에게 연설하는 것이 허락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율법도 말씀하시는 것처럼 다만 그들은 순종 아래 있으라는 명령을 받았느니라 그분이 말하는 요지는 지금까지 개역성경, 흠정역 성경 등이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잘못 번역해서 교회에서 여자들이 말을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흠정역: 너희의 여자들은 교회들에서 잠잠히 있을지니 이는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허락되지 아니하였고 율법도 말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순종하도록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라. 개역: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표준역을 번역한 사람들은 여자들의 이 답답함을 해결해 주려고 34절의 speak라는 말을 연설하다로 번역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영어 사전을 보면 speak가 speech 즉 연설하다는 뜻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성경 번역이 이 정도 되면 이것은 궤변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타 언어(방언)를 말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어로 이것은 ‘speak in tongues’라고 말합니다.   27-28을 보면 타 언어는 남자들만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27 만일 어떤 남자가 알지 못하는 타 언어로 말하거든(If any man speak in an unknown tongue,) 두 남자나 많아야 세 남자가 순서대로 하고 한 남자는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남자가 없으면 그는 교회 안에서 잠잠히 있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니라. 두 남자(two), 세 남자(three) 등을 그리스어로 가서 보면 모두 남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기서 여자들이 타 언어로 말하면 안 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자매님들도 얼마든지 말(say)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의 문맥은 남자들 위에(혹은 앞에) 서서 말로 남자들을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어떤 특정 사례를 해결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하면 성경의 교리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여기의 핵심은 여자들이 연설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타 언어를 말하면서 남자들을 가르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딤전2:11-12가 이를 잘 알려 줍니다. 여자는 전적으로 복종하며 잠잠히 배울지니라. 더욱이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여자는 잠잠히 있을지니라. 그래서 미국 침교회에는 여자 목사가 없습니다. speak를 연설하다로 바꾼다면 성경에 하나님 혹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라는 말이 매우 많이 나오는데 이것들도 모두 ‘연설하여 이르시되’로 바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의 말씀하다는 모두 speak이니까요. 창8:15,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여(연설하여?) 이르시되 And God spake unto Noah, saying, 2. 합당한 조력자인가, 돕는 배필인가? 창세기 2장 18절과 20절에는 help meet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And the LORD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n help meet for him.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께서 남자를 위해 help meet를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영어를 자세히 보면 이것은 helpmeet, helpmate처럼 한 단어가 아니라 help meet라는 두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표준역을 번역한 사람들은 help meet helpmate로 설명하고 그런 식으로 번역을 하고는 그것이 맞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그들만의 억지입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으로 가서 helpmeet 찾으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helpmeet(ˈhɛlpmiːt)  이것은 창2:18, 20에 나오는 두 단어 용어인 ‘help meet’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 뜻은 ‘그를 위해 합당한 도움을 주는 자’로 번역되고 19세기경에 가서야 helpmeet라는 한 단어로 굳어졌다.      A compound absurdly formed by taking the two words help meet in Gen. ii. 18, 20 (‘an help meet for him’, i.e. a help (help n. 2) suitable for him) as one word. Already in the 17th c. the Scripture phrase is found with the two words improperly hyphened; which led the way to the use of help-meet, helpmeet, without ‘for him’. But its recognition as a ‘word’ is chiefly of the 19th c.: it is unknown to Johnson, Todd, Richardson, and to Webster 1832. In the 17th c. they used more grammatically meet help, meet-help: cf. sweet heart, sweetheart. 뜻: 적합한, 합당한 조력자, 대개 아내나 남편에게 적용됨 A fitting or suitable helper; a helpmate: usually applied to a wife or husband.  용례: 이것은 같은 구절에서 1382년의 위클리프 성경, 1535년의 카버데일 성경, 1611 킹제임스 성경에 용례가 있다.  [1382 Wyclif Gen. ii. 18 Make we to hym help like hym. [1388 an help lijk to hym silf].    Ibid. 20 an helper like hym.    1535 Coverd. ibid. an helpe, to beare him company.    1611 Bible ibid. I will make him an helpe meet for him (marg. Hebr. as before him).    1885 (R.V.) an help meet for (or answering to) him.] 이런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돕는 배필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개역 성경이나 NIV를 그대로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역: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한편 한글 킹제임스는 ‘합당한’을 빼고 돕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한킹: 또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자를 지으리라." 하시며 심지어 카톨릭 성경이 이런 것들보다 훨씬 더 바르지 않습니까? 이것은 아주 정확히 번역하였습니다. 카톨릭: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내 생각을 버리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있는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야 거짓말을 피하게 됩니다. 안 그러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자꾸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3. 학관이 무엇인가?   대하 34장 22절에는 college라는 말이 나옵니다. And Hilkiah, and they that the king had appointed, went to Huldah the prophetess, the wife of Shallum the son of Tikvath, the son of Hasrah, keeper of the wardrobe; (now she dwelt in Jerusalem in the college:) and they spake to her to that effect. 표준역은 college를 학관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리고 힐키야와, 왕이 임명한 자들이 여예언자 훌다에게로 갔는데, 그녀는 샬룸의 아내로, 샬룸은 의례복의 관리인이자 하스라의 자손이요, 틱왓의 아들이었더라. (이때 그녀가 예루살렘에 있는 학관 안에서 기거하였더라.)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요지로 그녀에게 말하였더라. 학관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어서 표준국어대사전에 가서 학관이 무엇인지 보니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습니다. 학관(學館): ‘학교’를 달리 이르는 말. 그러니까 표준역에 따르면 훌다는 학교에 기거한 셈이 됩니다. 이것은 college를 지금 식으로 대학교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온 발상입니다. 옥스퍼드 사전에 가서 college를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종교적인 섬김을 위해 함께 모여 사는 성직자들의 공동체 3.3 A community or corporation of clergy living together on a foundation for religious service, etc. Now chiefly Hist.    영한사전에서 college를 보면 ⑧ 집합, 떼가 있습니다. ┈• a college of bees 벌떼. 이 구절에 나오는 college는 예복을 관리하는 성직을 맡은 자들이 거하는 공동체 혹은 구역을 뜻합니다. college는 결코 학교가 아닙니다.  흠정역: 힐기야와 또 왕이 지정한 자들이 여대언자 훌다에게 갔는데 그녀는 하스라의 손자이자 디그바의 아들로서 예복을 관리하는 자인 살룸의 아내였으며 (당시 예루살렘에서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 구역에 거하였더라.) 그들이 그녀에게 그런 취지로 말하매 옥스퍼드 사전을 보면 대학을 말할 때의 college도 공부하려는 같은 목적으로 모인 집합체를 말합니다. 학교가 아닙니다.   college of cardinals, 추기경들의 모임(추기경 대학이 아니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17세기 영어 그대로 번역하려고 모두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영어 옥스퍼드 사전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없이 현대 영한사전을 가지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오역을 무마하거나 변명하기 위해 자꾸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06 12:44:55 | 관리자
무덤인가, 음부(陰府)인가? 표준 킹제임스역의 문제 표준 킹제임스역이라는 불리는 번역본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무덤(grave)으로 표기된 단어들 가운데 상당수를 ‘성경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공간’인 음부(陰府)라는 불교 용어로 번역하였습니다. 참고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grave는 단수로 67회, 복수로 21회, 총 88회 나옵니다. 사실 grave라는 단어는 중학교 아이들도 무덤으로 알고 있는 쉬운 말입니다. 일단 음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음부에 대해 이렇게 정의합니다. 음부(陰府) :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 저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저승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승이 이생[此生]에 어원을 두고 있듯이 저승은 차생[彼生]에서 유래하였다. 저승은 후생(後生) · 타계(他界) · 명부(冥府) · 음부(陰府) · 명도(冥途) · 명토(冥土) · 황천(黃泉) · 유계(幽界) · 유명(幽冥)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가운데 명부와 음부는 이승의 관부(官府, 정부나 관철)와 같은 개념을 저승에 상정한 것이다. 저승에 극락과 지옥이 있다는 관념은 도교와 불교의 저승관이 한국에 도입된 이래 통용된 것이고, 극락과 지옥은 저승의 하위 개념이 된다. 종교마다 나름의 저승관을 갖고 있다. 한국 종교는 다종교 공존의 특성을 지닌다. 여러 종교가 동시에 함께 사회에 존재하면서 신앙되기에 한국에는 여러 종류의 저승이 공존하는 셈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저승 즉 우리말에서 음부는 죽은 뒤에 모든 사람의 혼이 가서 사는 것으로 알려진 불교의 저승을 말합니다. 다음 표에서 보듯이 음부는 개역성경(개정), 카톨릭 성경 등에 주로 사용된 단어인데 표준역 역시 이런 성경들과 궤를 같이 하며 음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말씀보존학회 한글 킹제임스 성경도 표준역과 거의 동일하게 30여 차례나 음부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한글 킹제임스 창37:35, 그러자 그의 모든 아들들과 그의 모든 딸들이 일어나서 그를 위로하나 그가 위로 받기를 거절하고 말하기를 "내가 내 아들을 애도하며 음부로 내려가리라." 하며 그의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왜 grave를 무덤으로 하지 않고 이렇게 음부로 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종교 개혁 이전에 카톨릭 교회는 사후 세계(공간)를 천국, 지옥, 연옥의 셋으로 구분하였습니다. 그런데 종교 개혁과 함께, 특히 영어가 만국의 공용어로 발전하며 1611년 킹제임스 성경이 나오면서 사후 세계는 유대인들의 성경 개념대로 천국과 지옥, 단 두 곳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이 두 개의 장소 말고 죽은 사람의 혼이 가는 데는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후 세계입니다. 개역성경의 음부는 샤머니즘(불교) 전통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사후 세계를 셋으로 구분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창세기 42, 44장에는 야곱과 그의 아들 베냐민에 대한 기사가 있고 야곱이 베냐민이 죽을까 봐 염려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창세기 42장 38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if mischief befall him by the way in the which ye go, then shall ye bring down my gray hairs with sorrow to the grave. 표준: 만일 너희가 가는 도중에 그에게 위해가 가해진다면 그때 너희는 나의 백발들을 슬픔으로 무덤에 끌고 내려가리라. 표준역은 여기서 grave를 무덤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44장 29절에는 동일한 내용을 두고 grave를 음부라고 번역하였습니다.  And if ye take this also from me, and mischief befall him, ye shall bring down my gray hairs with sorrow to the grave. 표준: 그런데 만일 너희가 이 아이마저 나에게서 빼앗고 그에게 위해가 가해진다면 너희는 나의 백발들을 슬픔과 함께 음부까지 데리고 내려가게 하리라.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표준 킹제임스 번역자들은 grave가 무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창세기 42장 38절에서만 이것을 무덤으로 번역하고 다른 데서는 음부로 번역하였습니다. 아니면 부실한 번역으로 인해 같은 단어를 통일시키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야곱이 의인이며 분명히 구원받은 성도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표준역에 따르면 의인인 야곱은 음부로 갑니다. 다윗이 기록한 시편 31편 17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Let me not be ashamed, O LORD; for I have called upon thee: let the wicked be ashamed, and let them be silent in the grave. 표준: 오, 주여, 제가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이는 제가 당신을 불렀기 때문이니이다. 사악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그들이 음부 가운데 잠잠히 있게 하소서. 표준역에 따르면 여기에서 다윗은 구원받지 못한 사악한 자들이 음부에 거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의인과 악인 즉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가 동시에 거하는, 음부라는 공간이 있단 말입니까? 이런 데는 성경에 없습니다.   특히 표준역 시편 31편 17절을 그대로 읽으면 천주교의 연옥 교리가 되지 않습니까?    표준: 오, 주여, 제가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이는 제가 당신을 불렀기 때문이니이다. 사악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그들이 음부 가운데 잠잠히 있게 하소서.   한글 킹제임스: 오 주여, 나로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내가 주를 불렀나이다. 악한 자들로 수치를 당하게 하시고 음부에서 잠잠케 하소서.   개역: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로 부끄럽게 마시고 악인을 부끄럽게 하사 음부에서 잠잠케 하소서   카톨릭: 주님, 제가 당신을 불렀으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악인들이나 수치를 당하여 말없이 저승으로 사라지게 하소서. 결론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처럼 gave를 다 정직하게 무덤으로 통일해서 번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성경 내장 사전(Concordance)이 작동을 하면서 무덤의 의미가 무엇인지 누구라도 스스로 공부할 수 있습니다. 같은 단어 grave를 무덤과 음부로 번역자가 자의적으로 나누면 성경이 스스로 성경을 해석하게 하는 일이 불가능해집니다. 이것은 특별히 사후 세계 같이 교리적으로 중요한 단어들에 대해 번역자가 일관성 있게 지켜야 하는 번역의 원칙입니다.  물론 무덤은 죽은 사람이 묻히는 장소이지만 은유로는 사망 등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grave를 그대로 무덤으로 번역하고 독자들이 앞뒤 문맥을 통해 스스로 이런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의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06 11:25:30 | 관리자
<비둘기, 나귀, 개미 등은 여자이고 등잔대, 언약궤, 까마귀 등은 남자인가? 표준역의 문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해서 출간하는 것도 자유이고 읽는 것도 자유입니다. 그런데 영어 킹제임스 성경 번역본을 출간하면서 보통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로 번역을 하면 모든 사람에게 킹제임스 성경 자체가 우스갯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번역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 말로 된 원문을 우리말로 번역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일종의 서비스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말이 안 되게 번역하고 이것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글자 그대로 번역한 것이니 다른 번역은 틀리고 자기들 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면 대다수 성경 신자들을 조롱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서문에서 번역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명문을 남겼습니다.   번역이란 창문을 열어 빛이 들어오게 하는 작업이다. 번역은 껍질을 까서 우리가 열매를 먹도록 해주며 휘장을 젖혀서 우리가 지성소를 들여다보게 해준다. 번역은, 야곱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굴려내고 물을 길어 그것으로 라반의 양 떼들에게 물을 주었던 것처럼(창29:10), 우물의 뚜껑을 열어 우리가 물로 나가게 해 준다. 참으로 보통 사람들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지 않는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두레박이나 물길을 그릇이 없이(요4:12) 야곱의 그 (깊은) 우물 옆에 서 있는 아이들과 같고 이사야서에 언급된 사람, 즉 봉인된 책을 넘겨받아 읽을 것을 요구받는 사람과 같을 것이다. ‘원하건대 이것을 읽으라, 하면 그가 이르기를, 그것이 봉인되었으므로 내가 읽을 수 없노라, 할 것이요’(사29:11).   이처럼 번역은 글에 생명을 불어넣고 그것을 남에게 전달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번역을 통해 글에 생명력을 넣으려면 문맥에 따라 단어들의 뜻을 잘 고려해서 합당하고 적절하게 번역해야 합니다. 이번에 표준 킹제임스 성경이라는 역본이 나왔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신경 쓰지 않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번역이 너무나 비상식적인 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늘은 한 가지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비둘기, 나귀, 개미 등은 여자이고 등잔대, 언약궤, 까마귀, 돌출 단 등은 남자인가? 표준역의 문제> 창세기 8장에는 노아가 방주 밖으로 비둘기를 내보내는 것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표준역은 비둘기를 그 여자 즉 그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표준역: 이윽고 저녁 때 비둘기가 그에게 돌아왔더라. 그리고 보라, 그녀의 입안에는 뜯겨진 올리브 잎사귀 하나가 있더라(창8:11). And the dove came in to him in the evening; and, lo, in her mouth was an olive leaf pluckt off: so Noah knew that the waters were abated from off the earth. 표준역은 이 비둘기가 암컷이었다고 주장하며 그래서 ‘그녀의 입안에는’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표준역만이 보여 주는 진리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에 대해 지적을 하면 이것이 의인화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표준역은 이런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민수기 19장 25절에는 붉은 암송아지로 정결례를 행하는 것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표준역은 암송아지를 그 여자(그녀)로 번역하였습니다. 2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일러 그 위에 결코 멍에를 메지 아니였고, 점도 없고 흠도 없는 붉은 암송아지 한 마리를 그들이 너에게 데려오게 하라. 3 그리하면 너희는 제사장 엘르아잘에게 그녀를 주어 그가 그녀를 진영 밖으로 데려가게 하고, 한 명이 그의 얼굴 앞에서 그녀를 도살하게 할지니라.  4 그러고 나서 제사장 엘르아잘은 그의 손가락으로 그녀의 피를 취하고, 회중의 앞을 향하여 똑바로 그녀의 피를 일곱 번 뿌릴지니라. 5 그런 다음에 한 명이 그 암송아지를 그의 목전에서 태울지니, 그는 그녀의 가죽과 그녀의 고기와 그녀의 피를 그녀의 똥과 함께 태울지니라. 민수기 22장에는 발람의 나귀가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표준역은 나귀를 그 여자(그녀)로 번역하였습니다. 25 그런즉 나귀가 주의 천사를 보자 그녀가 자신을 벽에 밀어붙여 발라암의 발을 벽에 맞대어 뭉갰더라. 이에 그가 그녀를 다시 쳤더라. 27 그런즉 그 나귀가 주의 천사를 보자 그녀가 발라암 아래에서 엎드렸더라. 이에 발라암의 분노가 타오르기 시작하였으니, 그가 그 나귀를 한 지팡이로 쳤더라. 과연 아이들과 함께 이런 성경으로 같이 성경을 읽을 수 있을까요? 성경 번역은 한글을 읽을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작업입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초등학교 중학교 아이들이 한글로 읽어서 이해한 내용이 성경에 기록된 바로 그 내용이라야 합니다.  비둘기, 나귀, 암송아지 등을 다 그 여자(그녀)로 번역하고 이것만이 옳고 ‘그것’으로 번역하면 틀리다고 말하는 것은 혹세무민(惑世誣民) 즉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이는 일입니다. 다음은 등잔대 등을 그 남자(그)로 번역한 사례입니다. 출애굽기 25장 31절을 보면 표준역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31 다음으로 너는 순금으로 등잔대 하나를 만들지니라. 그 등잔대는 두들겨 펴진 작업물로 만들어져야 하리라. 그의 대와 그의 가지들과 그의 대접들과 그의 꽃받침들과 그의 꽃들을 같은 것으로 이루어지게 할지니라.   And thou shalt make a candlestick of pure gold: of beaten work shall the candlestick be made: his shaft, and his branches, his bowls, his knops, and his flowers, shall be of the same. 등잔대가 어떻게 그 남자(그)가 될 수 있습니까? ⚫ 킹제임스 성경 문법 초급 내용: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his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his와 its. 즉 his는 남성 대명사의 소유격이거나 중성 대명사의 소유격입니다. 셰익스피어(킹 제임스) 시대 영어에는 아직 its가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는 구약 성경 레위기 25장 5절에 단 한 번 its가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 등잔대를 가리키는 his는 수컷(남자)을 의미하는 his가 아니라 중성 대명사 it의 소유격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밑에서 설명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꽃들”이 아니라 “그것의 꽃들”로 해야 합니다.  에스겔서 43장 17절도 동일합니다. 표준역: 그리고 그 단은 길이가 십사 큐빗이요… 그리고 그것의 바닥은 주위가 일 큐빗이 되리라. 그리고 그의 계단들은 동쪽을 바라보리라. And the settle shall be fourteen cubits long and fourteen broad in the four squares thereof; and the border about it shall be half a cubit; and the bottom thereof shall be a cubit about; and his stairs shall look toward the east. 여기서도 ‘his stairs’는 돌출된 단이 수컷(남자)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thereof 또는 his는 둘 다 중성 대명사의 소유격이며 따라서 “그것의 바닥…그것의 계단들”로 번역해야 합니다. 즉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하거나 개인적으로 읽을 때 우리는 그 안에 5,001번 나오는 his, 1,994번 나오는 her가 남성 대명사나 여성 대명사의 소유격인지, 중성 대명사의 소유격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옥스퍼드 사전의 증거 영어 옥스퍼드 사전은 his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his는 대명사 he와 그것(it)의 소유격이다. [OE. his (hys), genitive of personal pron. he and it.    (위의 그림(옥스퍼드 사전) 오른쪽 박스에서 세 번째 줄을 보면 파랗게 He와 It이 표시되어 있음)   또 his의 용례를 보면 생명이 없는 물체의 중성 명사를 언급한다고 하고 구체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의 출39:33을 예로 듭니다. 3.B.3 Referring to neuter nouns or things inanimate.     (위의 그림(옥스퍼드 사전)에서 밑에서 다섯 번째 줄 1611 Bible Exod 39:33을 보기 바람)   출39:33 And they brought the tabernacle unto Moses, the tent, and all his furniture, his taches, his boards, his bars, and hiss pillars, and his sockets, 즉 출39:33의 his는 그 남자의(그의)가 아니라 ‘그것의’라고 옥스퍼드 사전 자체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번역된 표준역은 오역입니다(사실 있을 수 없는 번역임). 천막과, 그의 모든 용구와, 그의 걸쇠들과, 그의 판자들과, 그의 가로대들과... her에 대해서도 옥스퍼드 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것은 해, 혼, 책, 사랑 등과 같이 문법적으로 여성인 것들에 적용된다. 또 땅, 달, 나라, 도시, 배, 교회, 대학, 학교처럼 여성으로 언급되는 명사에 사용된다. Used of things whose names were grammatically feminine, e.g. sun, soul, book, shire, love. Obs. c.2.c Of things personified or spoken of as female; esp. the earth, the moon, countries, cities, ships, the Church, a university, a school, the arts, sciences, passions, virtues, vices.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로 옥스퍼드 사전은 1534년의 틴데일 성경 눅14:34와 1535년의 커버데일 성경 대하5:7을 보여 줍니다.        틴데일 눅14:34 Salt is good: but if salt have lost her saltnes what shall it be seasoned therewith? 커버데일 대하5:7 And the priests brought the ark of the covenant of the LORD into her place,    틴데일 성경과 커버데일 성경의 her는 다음에서 보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KJV에서는 모두 his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구절들의 her나 his는 그 여자나 그 남자가 아니라 그것입니다.   KJV 눅14:34 Salt is good: but if the salt have lost his savour, wherewith shall it be seasoned? KJV 대하5:7 And the priests brought in the ark of the covenant of the LORD unto his place,  그러므로 눅14:34의 his savour를 그의 맛으로 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표준역은 여기서는 '자기 향미'라고 썼습니다. 또한 대하5:7의 경우 표준역처럼 “제사장들이 주의 언약궤를 그의 위치로 들였다”고 번역하면 오역입니다. 또한 옥스퍼드 사전은 성에 상관없이 고양이, 토끼, 쥐 등에 대해서는 her를 사용한다고 기록하며 그 예로 1535년 커버데일 성경의 잠언 6장 6절을 보여 줍니다. Of animals regarded as feminine, irrespectively of sex; e.g. a cat, hare, rabbit, mouse, etc.  영어 킹제임스 성경, 잠6:6  Go to the ant, thou sluggard; consider her ways, and be wise: 이것도 표준역처럼 “개미에게 가서 그녀의 길들을 숙고하라”로 하면 오역입니다.   이렇게 사실을 이야기해도 이미 확증 편향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이것들이 의인화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혹세무민입니다. 이것은 의인화가 아니라 치명적인 오역입니다. 확증 편향: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란 자신의 견해 또는 주장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그것의 사실 여부를 떠나) 선택적으로 취하고,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말한다. 다른 말로 자기 중심적 왜곡(myside bias)이라 부르기도 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요? 히브리어와 영어(또는 우리말)는 구조가 많이 다릅니다. 1. 히브리어는 자음(22)만으로 글자가 구성된다(영어는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된다). 2. 히브리어는 관사(the)는 있지만 부정관사(a, an)가 없다(영어는 정관사와 부정 관사 모두 있다). 3. 히브리어는 대문자 소문자 구별이 없다(영어는 대문자와 소문자 구별이 아주 중요하다. 뜻이 달라진다. God와 god. 그러나 히브리의 ‘엘로힘’은 대소문자 구별이 없기 때문에 두 가지 뜻이 모두 포함된다). 4. 히브리어는 “be” 동사가 없고 다만 “존재하다”는 특별 동사가 있다(영어는 be 동사가 없이 문장을 구성할 수 없다. Ex) I am Ruth. Be 동사가 없기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은 am, are, is를 이탤릭체로 처리하였다. 그러나 존재의 의미를 표현해야 할 때에는 그대로 사용했다. ex) I AM THAT I AM. 5. 히브리어에는 현재형이 없다. 오직 “완료”와 “미완료”밖에는 없다. 엄밀하게 말해서 “시제” 자체가 없다. 동작의 속성이나 성질에 따라서 완료와 미완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실제로 “I AM THAT I AM”은 현재형을 나타내는 “am”이 아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히브리어의 완료와 미완료를 영어로 완벽하게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영어는 12가지 시제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리되지만 히브리어의 시제는 동작의 상태나 속성에 따라 분류되기 때문이다. 6. 히브리어는 소유(have) 동사가 없다. 그래서 항상 누구누구에게 속했다는 표현을 쓴다. 7. 히브리어는 단어의 기본형은 항상 3인칭이다. 8. 히브리어의 명사에는 남성과 여성은 있지만 중성이 없다. 9. 히브리어에는 복수 대명사도 남성과 여성이 구별되어 있다(영어로 they는 남성인지 여성인지 모르지만 히브리어로는 알 수 있다). 10. 히브리어에는 하나의 접속사밖에 없다. 그 하나가 “and”도 되고 “but”도 되고 “therefore”도 된다. 문장의 상황에 따라서 접속사의 의미가 달라진다. 11. 히브리어는 형용사가 발달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명사 안에 2차적인 뜻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 ex) 코는 단순히 코가 아니라 분노를 나타내는 말로도 쓰인다. 여기서 8번 항목을 유의해서 보기 바랍니다. 다음 링크에서 보듯이 히브리어 명사는 격이 없으므로 따라서 문맥에서 판독해야 합니다. 또한 성과 수만 있는데 성은 중성은 없고 남성과 여성만 있고 명사 자체가 성을 타고납니다.    참고로 격이란 문장 속에서 체언이나 체언 구실을 하는 말이 서술어에 대하여 가지는 자격을 뜻하며 주격, 서술격, 목적격, 보격, 관형격, 부사격, 호격 따위가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특징 표준역은 자기들이 성을 모두 살렸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위에 있는 것처럼 히브리어를 모르기 때문에 나온 발상입니다. 혹시 안다고 해도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영감을 받았기에 무조건 그대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난센스때문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깁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영감을 받은 원어의 단어들을 그대로 정확하게 영어로 번역한 성경입니다. 영감은 자필 원본에만 한 차례 주어졌고 그 뒤에는 보존이 됩니다.   그래서 표준역에서는 위에서 보여 준 대로 비둘기, 나귀, 개미 등은 그 여자(그녀)가 되고 등잔대, 둘출 단 등은 그 남자(그)가 됩니다. 창8:11에서서 표준역은 이 비둘기가 암컷이었다고 주장하며 그래서 ‘그녀의 입 안에는’으로 번역하였고 바로 이것이 표준역만이 보여 주는 진리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성경으로는 하나님이 내보내신 비둘기가 암컷임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위(창8:7)에는 하나님께서 먼저 까마귀를 내보내는 내용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보면 여기의 까마귀는 남성 단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남자(수컷)를 보내셨을까요?    8:6 사십 일이 끝날 때에 노아가 자기가 만든 방주의 창을 열고 8:7 까마귀를 내보냈는데 그 까마귀가 물들이 땅에서 떠나 바싹 마를 때까지 이리저리 나다녔더라. 까마귀(스트롱 번호 6158)는 구약 성경에서 단수로 6회, 복수로 4회 나옵니다. 물론 모두 남성입니다.    자, 그러면 다음을 보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수컷 까마귀에게만 먹을 것을 주실까요? 욥38:41, Who provideth for the raven his food? when his young ones cry unto God, they wander for lack of meat. 표준역: 누가 까마귀를 위하여 그의 양식을 제공하느냐? 그의 어린 짐승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울고 그들이 방황할 때... 표준역에서 '그 남자'를 뜻하는 '그의'는 오역입니다.    그리고 어린 짐승들이 영어 본문 어디에 나옵니까? 까마귀는 날짐승입니다. 더욱이 맨 뒤의 they는 그것들이지 그들이 아닙니다.   ‘They’를 ‘그들’로 번역한 것으로 보아 표준역에는 짐승, 날짐승, 나무 같은 것들의 대명사 They를 ‘그것들’이 아니라 ‘그들’로 한 데가 여기 말고도 많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번역한 것이 옳습니다. 우리말의 모든 성경이 이런 식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흠정역: 까마귀 새끼들이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 헤맬 때에 누가 까마귀를 위해 그것의 먹을 것을 마련해 주느냐? 창세기 8장 말씀에서는 까마귀나 비둘기의 성을 알려주는 것이 초점이 아닙니다. 까마귀라는 새와 비둘기라는 새를 방주 밖으로 내보냈다는 것이 초점입니다.    창1:21의 고래들을 보기 바랍니다. 고래들은 히브리 말로 남성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수컷 고래들만 창조하셨단 말인가요? 1:24절에 보면 '땅은 살이 있는 모든 창조물'을 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의 '창조물'은 여성 단수입니다. 그러면 땅은 암컷들만 내어야 할까요?    1:24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땅은 살아 있는 창조물을 그것의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그것의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1:24, And God said, Let the earth(여성 단수) bring forth the living creature(여성 단수) after his kind(남성 단수), cattle(여성 단수), and creeping thing(남성 단수), and beast(여성 단수) of the earth after his kind(남성 단수): and it was so.   마지막 부분을 보기 바랍니다.    여기서 짐승은 여성 단수인데 그것의 소유격은 남성 단수(his)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의 his kind는 표준역처럼 '그의 종류'가 되면 안 됩니다. 그것은 명백한 오역입니다. '그것의 종류'로 해야 맞는 번역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성은 중성이 없고 남성과 여성만 있으며 명사 자체가 성을 타고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영어 킹제임스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의 이런 특성을 최대한 반영하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잘한 것이고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다른 말로 번역할 때는 히브리어의 특징 및 히브리어를 제대로 반영한 영어의 특징을 고려해서 번역해야 합니다. 구약 성경에 시온, 이스라엘, 바빌론 등은 여성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바빌론이라는 국가는 다 여자들로만 구성되어 있단 말인가요?  다음 구절을 보기 바랍니다. 여기에는 이미 제물이 숫양(Ram)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6절의 his blood는 ‘그것의 피’로 번역되어야지 ‘그의 피’로 번역하면 명백한 오역입니다. 우리말은 ‘그’(남자)와 ‘그것’의 차이가 명백하므로 ‘그의 피’를 ‘사람의 피’로 읽을 확률이 거의 100%입니다. 그러면 그의 피의 ‘그’는 누구인가요? 앞에 있는 아론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아론의 피를 뿌린단 말입니까? 15 Thou shalt also take one ram; and Aaron and his sons shall put their hands upon the head of the ram. 16 And thou shalt slay the ram, and thou shalt take his blood, and sprinkle it round about upon the altar. 표준역: 15 너는 또한 숫양 한 마리를 취할지니라. 그리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그 숫양의 머리 위에 그들의 손을 얹을지니라. 16 그런 다음에 너는 그 숫양을 도축할지니, 너는 그의 피를 취하여 그것을 제단 위 둘레에 뿌릴지니라(출29:15-16).   결론 그래도 표준역 같은 번역이 옳다고 하고 그것을 따라가면 누가 그것을 막겠습니까? 그 사람의 자유인데...   하지만 과연 이런 번역을 가지고 아이들과 같이 성경을 읽을 수 있을까요? 강단에서 이것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같이 낭독할 수 있을까요? 이런 것에 현혹되어 넘어가도 어쩔 수 없지만 63세를 먹은 제가 그런 분들과 그분들의 아이들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면 그냥 앞이 캄캄합니다.   이런 것들은 다 헛된 말장난입니다.   그러나 속되고 헛된 말장난들을 피하라. 그것들은 커져서 더욱더 하나님의 성품에 위배되는 것에 이르리라(딤후2:6) 영어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의 말이 무엇입니까? “참으로 한 나라의 보통 사람들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어야만 한다.” 표준역처럼 어처구니없는 번역만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완전하게 번역한 것이라고 누가 주장한다면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고린도전서 14장 23절 말씀처럼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자들이 다 미쳤다고 하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한 곳에 함께 모여 모두 타 언어들로 말하면 배우지 못한 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가 미쳤다고 하지 아니하겠느냐? 끝으로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형제들아, 이해하는 일에는 아이가 되지 말라. 오히려 악한 일에는 너희가 아이가 되더라도 이해하는 일에는 어른이 되라(고전14:20). 모든 것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할지니라(고전14:40).
2023-07-05 12:10:16 | 관리자
<영어 킹제임스 성경 본문에 대하여: 오류도 표준인가?> 안녕하세요? 요즘 표준 킹제임스 성경이라는 역본을 만든 사람들이 자신들 번역의 저본으로 사용한 영어 킹제임스 성경 본문에 대해 옳지 않은 것을 전달하기에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사실을 알리는 글을 적습니다. 영어 세상에서는 James White, D. A. Carlson 등 킹제임스 성경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주로 영어 성경 본문을 가지고 이슈를 삼아 왔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사무엘 깁(Samuel Gipp) 박사가 리건(David F. Reagan) 박사의 글 <1611년 킹제임스 성경, 초기 개정 신화>(The King James Version of 1611, The Myth of Early Revisions)을 인용하여 잘 설명하였습니다.   깁 박사의 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1611년에 탄생된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를 심하게 흔들려는 비평가들의 최후 배수진 가운데 하나는 소위 개정(改正)이라는 문제로 시비를 거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대적들 곧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신자들이 역사적 사실과 사본학적 증거와 성령님께서 이루신 명백한 증거들을 내보이며 자기들의 빈약한 주장을 뒤엎어 버리자 궁극적인 패배를 맛보지 않으려고 그럴듯해 보이는 이 요새로 도피한다. 일단 이 요새에 들어서면 그들은 자기들의 대적들에 대해 자신만만해하고 다음과 같이 묻는다. “여러분은 어떤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십니까? 1611년판입니까, 1629년판입니까? 아니면 1769년판입니까?”   이 같은 공격에 대해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신자들이 충격을 받고 잠시 어리둥절해하면 그들은 이 혼란한 틈을 타서 재빨리 도망쳐 버린다. 그러나 불행히도 자기들의 성안에 들어가 성문을 걸어 닫는 순간 그들은 자기들의 요새가 리건(David F. Reagan) 박사라는 사람에 의해 이미 조직적으로 파괴되어 완전히 허물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리건 박사는 미국 테네시주 낙스빌에 있는 트리니티 침례교회의 목사이다. 그는 「1611년 킹제임스 성경, 초기 개정 신화」(The King James Version of 1611, The Myth of Early Revisions)라는 책자를 저술하여 ‘킹제임스 성경’의 초기 수정판에 얽힌 신화 즉 꾸며 낸 이야기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폭로했다. 다시 말해 리건 박사는 ‘킹제임스 성경’ 비평가들의 마지막 피난처를 파괴하는 일을 훌륭히 수행해 냈던 것이다. 이에 필자는 그가 발견한 것을 좀 더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할 이유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으므로 그의 허락을 받아 그의 소책자 전편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리건 박사의 원본 글은 이 기사 밑에 있는 PDF 파일을 다운받으면 되고 이것을 번역한 글은 다음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리건 박사 글 번역본 즉 영어 킹제임스 성경 본문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은 마치 영어 성경 본문이 정말로 개정되었다고 주장하기 위해 이 이슈를 꺼냅니다. 그러나 리건 박사가 보여 주듯이 1611년, 1629년, 1645년, 1760년, 1769년판 등은 본문 개정이 아니라 철자법, 인쇄술이 바뀜에 따라 17세기의 영어를 18, 19세기의 영어로 바꾼 것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1900년대 초반에 조선을 Corea로 표기하다가 후에 Korea로 바꾼 뒤 지금은 모두가 Korea라고 쓰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또 이것은 조금 더 압축하면 영어 성경 본문이 옥스퍼드판이냐, 케임브리지판이냐는 문제로 귀결됩니다. 이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여러 사람들이 글을 썼고 적어도 킹제임스 성경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옥스퍼드판이냐, 케임브리지판이냐를 두고 설전을 벌이지는 않습니다. 사무엘 깁, 피터 럭크맨, D. A. 웨이트 등 킹제임스 성경 진영 내에 알려진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2023년도에 출간된 표준 킹제임스 성경 진영의 사람들은 본인들이 1769년 케임브리지판을 영어 저본으로 썼고 이것이 가장 확실한 영어 본문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다음 블로그 링크를 보기 바랍니다. 반면에 흠정역 성경은 1909년경에 발표된 퓨어 케임브리지 본문을 쓰고 있는데 그래서 이들은 영어 본문 차이로 인해 번역상의 엄청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표준 킹제임스 저본의 출처가 어딥니까?>        먼저 이에 대해 결론을 내리고 글을 전개하겠습니다. 표준 킹제임스 역본의 영어 성경 본문은 1769년 케임브리지판이 아닙니다. 1769년 케임브리지판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표준 킹제임스 역본의 영어 성경 본문에는 오류들이 있고 그 외의 다른 부분들은 거의 다 흠정역 성경이 채택한 퓨어 케임브리지 본문과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표준 킹제임스 역본 번역자들은 그것의 영어 성경 본문이 1769년 케임브리지판임을 제시하기 바랍니다. 즉 어디에서 영어 성경 본문을 구했는지 독자들에게 알려 주기 바랍니다.  1611년판 킹제임스 영어 성경 교정 역사 1611년판 킹제임스 영어 성경 교정은 주로 세 가지 이유에서 이루어졌습니다. 1. 시간의 변화에 따른 철자법의 변화(리건 박사의 글에서 인용함)   고딕체 s는 단어의 첫머리나 단어의 중간에서 소문자 s로 쓰일 때는 마치 f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also는 alfo가 되고, set는 fet가 된다. 또 다른 변화는 독일체 v와 u에서 발견된다. 고딕체 u가 로마체 v처럼 보이지만 고딕체 v는 로마체 u처럼 보인다. 이것은 우리가 왜 w를 ‘더블브이’라 하지 않고 ‘더블유’라고 부르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좀 혼란스러워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익숙해지면 괜찮다. 따라서 1611년판을 보면 love는 loue로, us는 vs로, 그리고 ever는 euer로 쓰여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사실 철자상의 변화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이것은 단순히 활자체의 변화일 뿐이다.  2. 인쇄상의 명백한 오류들 교정 당시에는 활판 인쇄를 위해 식자공이 일일이 모든 단어의 알파벳, 콤마, 하이픈, 마침표, 물음표 등을 손으로 심어야 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경우 약 500만 개의 활자가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식자공이 500만 개 활자를 심다가 실수할 수 있습니다. 대문자를 소문자로 할 때도 있고 not을 넣어야 하는데 넣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Wicked bible로 알려진 1631년판입니다.      원래 출애굽기 20장 14절은 “너는 간음하지 말라”이고 영어로는 “Thou shalt not commit adultery”입니다.   그런데 식자공의 실수로 not가 빠지면서 “Thou shalt commit adultery.”가 되어 “너는 간음하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1631년판은 나오자마자 모두 폐기되었고 인쇄소는 많음 벌금을 내게 되었습니다.     Wicked Bible 그러나 인쇄상의 이런 실수들은 너무나도 명백한 것들이라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모두 교정되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성경을 개정한 것이 아닙니다. 3. 시간이 지나가면서 영어 단어들이 좀 더 정교하게 고정됨   영어 위키 백과 King James Version 항목에 가면 중간에 ‘1769년 표준 본문’(Standard text of 1769)이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바로 이 부분이 이에 대해 잘 설명을 합니다.    위키백과 King James version 항목  먼저 이 부분의 제목을 잘 보아야 합니다. 이 제목은 ‘1769년의 표준 본문’이라고 말하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표준 본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가지고 1769년의 본문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표준 본문이라고 주장하면 안 됩니다.    곧 보게 되겠지만 1769년 이후에도 철자법과 아포스트로피 등이 변하면서 지금 인쇄되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들은 1769년 본문 그대로가 아닙니다. 참고로 아파스트로피는 하나 이상의 문자 생략 (이를테면 do not과 don't)이나 소유격의 표시 (이를테면 cat's whiskers) 등에 사용되는 부호입니다. 위키백과의 이 부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케임브리지판은 파리스(Francis Sawyer Parris)라는 사람에 의해 편집되어 1760, 1762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앞으로 편집이란 말은 본문 개정이 아니라 철자법, 인쇄상 실수 등을 고친 것을 뜻합니다.   반면에 옥스퍼드판은 1769년에 블레이니(Benjamin Blayney)에 의해 편집된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1769년 본문이란 옥스퍼드판 본문을 말하는 것이며 1769년에 출간된 케임브리지판 본문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표준 킹제임스 성경 제작자들은 자기들이 말하는 ‘1769년 케임브리지 영어 본문’이 어디에 있는지 밝혀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기간은 모름)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는 1769년에 블레이니가 만든 옥스퍼드판을 쓰기로 하였는데 그것을 그대로 100% 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군데를 고쳐서 쓰기로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블레이니가 만든 1769년판에서도 역시 원어와 비교하였을 때 단복수 문제(예를 들어 (대하33:19) sin, sins), 철자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위키 백과는 마태복음 5장 13절을 한 예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1760년 케임브리지판: Ye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if the salt have lost his savour, wherewith shall it be salted? it is thenceforth good for nothing but to be cast out, and to be troden under foot of men. 1769년 옥스퍼드판: Ye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if the salt have lost its savour, wherewith shall it be salted? it is thenceforth good for nothing but to be cast out, and to be trodden under foot of men. 이 둘의 차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1760 케임브리지판: lost his savour, troden 1769 옥스퍼드판: lost its savour, trodden 그러면 표준 킹제임스 성경의 영어 본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표준: lost his savour, trodden 이것을 보면 표준 킹제임스 성경은 그들의 주장대로 1769년판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lost his savour는 케임브리지판, trodden은 옥스퍼드판을 따르고 있습니다. 반면에 흠정역은 lost his savour, trodden으로 되어 있어 표준역과 동일하고 이것은 troden을 trodden으로 고친 1909년경의 퓨어 케임브리지판을 따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표준역은 케임브리지판도 아니고 옥스퍼드판도 아니며 정확하게 흠정역이 사용한 퓨어 케임브리지판을 따르고 있습니다.  표준역은 오류도 표준으로 만드는가? 표준역을 만든 사람들은 자기들의 영어 본문이 완전하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아포스트로피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표준역에는 you, we, they의 소유대명사가 your's, our's, their's로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6장 20절과 고린도전서 1장 2절을 보겠습니다.   표준역 눅6:20, And he lifted up his eyes on his disciples, and said, Blessed be ye poor: for your‘s is the kingdom of God. 표준역 고전1:2, Unto the church of God which is at Corinth, to them that are sanctified in Christ Jesus, called to be saints, with all that in every place call upon the name of Jesus Christ our Lord, both their's and our's: 표준역에는 분명히 눅6:20에 your‘s, 고전1:2에 their's, our's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명백한 오류입니다. 이것들은 당연히 yours, theirs, ours로 표기되어야 합니다.   표준역은 이런 데가 적어도 45군데나 있습니다. 창15:13의 their’s, 창26:20의 our’s, 신11:24의 your’s 등.    물론 흠정역 성경은 당연히 이런 단어들을 yours, theirs, ours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맞는지는 독자 여러분이 판단하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1769년판에서 창15:1의 their’s, 창26:20의 our’s, 신11:24의 your’s 등을 1769년판 원본 성경에 가서 보면 theirs(33쪽), 창26:20의 ours(45쪽), 신11:24의 your’s(201쪽)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표준역은 실제로 1769년판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1769년판에는 여전히 your’s 같은 오류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표준역 번역자들은 1769년 옥스퍼드 에디션(Benjamin Blayney)을 저본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의 원본은 다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위의 구절 옆의 쪽 번호를 넣으면 누구나 금세 확인할 수 있습니다. <1769년 옥스퍼드 에디션> 원본   표준역은 정말로 1769년 옥스퍼드(케임브리지?)판을 저본으로 사용했는가? 킹제임스 성경을 사랑하는 어떤 독자께서 표준역 지지자들이 영어 성경 저본을 꺼내 문제를 일으키자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1769년 옥스퍼드판과 1909년 퓨어 케임브리지판을 비교하였습니다. 흠정역은 케임브리지 에디션을 정화해서 1909년경에 출간된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을 저본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의 원본은 다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1909년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 원본  다음 표에는 몇몇 구절에 대한 비교가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각각 사용된 저본의 원문과 한영대역 성경의 영어 본문이 같을 때는 녹색으로 되어 있고 다를 때는 노란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흠정역은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을 사용했다고 했고 실제 비교해 보면 이것이 맞음을 알 수 있습니다(녹색). 반면에 표준역은 1769년 옥스퍼드(케임브리지?) 에디션을 사용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을 주로 사용하고 있고 일부 구절에서만 옥스퍼드 에디션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주로 노란색). 참고로 이 표에서 원본 성경을 보여 주는 위의 두 링크로 들어가서 각각의 성경 보기에서 이 표의 원문 페이지 번호를 넣으면 원래 본문을 볼 수 있습니다. 오래된 성경들이라 스캔서 성경을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표준역 번역자들은 1769년 옥스퍼드판 영어 성경이 표준이요, 저본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퓨어 케임브리지판을 쓰고 있으니 이 어찌된 일입니까? 그려므로 이제 표준 킹제임스 성경을 만든 사람들은 대체 어떤 영어 성경 본문을 썼는지 밝히기 바랍니다. 부디 오류를 표준으로 만드는 일을 하지 말기 바랍니다. 1769년 이후로도 1884년에 스크리브너(F. H. A. Scrivener)는 「권위역 영어 성경(1611), 그 이후의 재판(再版)과 현대판들」(The Authorized Edition of the English Bible(1611), Its Subsequent Reprints and Modern Representatives)이라는 제목으로 킹제임스 성경 영어 본문 교정에 대해 책을 저술하였고 1769년판에서 찾아내지 못한 것들을 찾아내어 분류하였습니다. 사실 파리스, 블레인, 스크리브너 등은 이 모든 일을 수작업으로 하였으니 얼마나 고된 시간을 보냈을지 짐작이 갑니다. 이런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인쇄되어 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킹제임스 성경 에디션 변화를 자세히 기록한 400쪽의 책 <A Textual History of the King James Bible Illustrated Edition>이 나왔으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이 책의 뒤에는 각각의 판에서 변화된 내용들이 분류되어 있습니다.   <A Textual History of the King James Bible Illustrated Edition> 그리고 2011년에는 킹제임스 성경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옥스퍼드 출판사에서 1611년판을 인쇄하되 명백한 오류들(철자, 인쇄 등)을 교정하여 인쇄한 성경이 나왔습니다. 이것은 1611년판 거의 그대로라고 보면 되고 뒤에는 역시 G. Campbell이라는 저자가 에디션 변화에 대해 쓴 글이 있으며 1611년판의 철자 오류 등의 리스트가 있습니다. <King James Bible (text only) 400th anniversary ed edition by G. Campbell>    결론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선물로 주신 것은 1611년에 인쇄된 본문, 1769년에 인쇄된 본문, 1909년에 인쇄된 본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1611년에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담은 킹제임스 성경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판 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존된 말씀인 킹제임스 성경이라는 선물의 의미에 어떤 것도 더하지 못합니다. 1611년 성경 발행 이후의 본문 변화는 인간의 언어(철자법)가 변하거나 인쇄 기술이 변하면서 이것을 교정한 것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아포스트로피, 하이픈, 대소문자 등은 원래 원문에 없던 것들이며 이런 것들이 설사 판별로 미세하게 몇 부분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에 어떤 문제를 결코 져오지 않습니다. G. Campbell은 400주년 기념판 성경의 뒤에 쓴 글에서 킹제임스 성경의 본문 변화 등을 다 설명한 뒤 이렇게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다른 역본들 – 이 중 어떤 것들은 정말로 좋은 역본일 수 있다 – 이 지금까지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지만 킹제임스 성경은 끝까지 존속할 것이다.” "Other translations, some of them very good indeed, have come and will go, but the King James Version will endure."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리건 박사가 지은 글의 끝맺는 말이 그 이유를 잘 보여 줍니다.   여러분은 이제 확신을 가져도 된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손에 있는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개정된 것’이 아니라 ‘정화된 것’이다.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이 성경이 우리를 위해 ‘영어로 보존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의 정확성에 대한 권위는 1611년판 ‘킹제임스 성경’의 초판 인쇄본 – 여기다 더하면 1760년판, 1769년판, 1909년판, 케임브리지판 혹은 옥스퍼드판 - 에 있지도 않고 제임스 1세의 인품에 놓여 있지도 않으며,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 문학의 뛰어난 업적에 있지도 않고 심지어 그리스어 ‘공인 본문’에 있지도 않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KJV)이라는 절대 무오한 말씀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하신 약속과 그분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우리 손에는 그분의 완전한 말씀이 있다.
2023-07-03 15:23:55 | 관리자
<근본역의 부실 번역과 한자어 사용, 노력 부족>  안녕하세요? 성경을 번역하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집중해서 읽고 읽고 비교하고 비교해야 합니다. 15년에 걸쳐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했다는 근본역을 이번에 잠시 살펴보니 몇몇 목사들이 그 긴 기간에 무슨 일을 했는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1. 명백한 오역 호세아서 14장 9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흠정역: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들을 깨닫겠느냐? 누가 분별이 있어 그것들을 알겠느냐?  KJV: Who is wise, and he shall understand these things? prudent, and he shall know them?  근본역: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것들을 깨닫겠느냐? 누가 분별이 있어서 그가 그것들을 깨닫겠느냐?  여기에는 앞에 ‘understand’가 나오고 그 뒤에 ‘know’가 나옵니다. 이런 단어들은 중학생도 다 아는 것들입니다. 흠정역, 개역, 카톨릭 성경 등 모든 성경이 앞의 ‘understand’는 ‘깨닫다’로 뒤의 ‘know’는 ‘안다’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15년 이상 번역했다는 근본역은 둘 다를 ‘깨닫다’로 번역하였습니다. 참으로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이런 구절에서는 앞의 ‘who’와 그 다음의 ‘he’가 같은 존재이므로 ‘he’를 ‘그가’로 번역하면 오히려 뜻이 이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흠정역처럼 번역해야 합니다. 그런데 근본역은 앞은 흠정역처럼 하고 뒤 역시 동일한 형태의 글인데도 ‘그가’를 넣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역자들이 영어 구문을 전혀 대조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말 운율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앞에는 ‘있어’, 뒤에는 ‘있어서’로 해서 통일성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나누어서 번역한 뒤 제대로 여러 사람들이 여러 차례 돌아가며 읽지도 않고 통일을 하지 않고 그냥 모아서 출간한 것 같습니다. 2. 수많은 한자어 근본역에는 수도 없이 한자어를 많이 사용하고 한글 옆에 한자어를 병기하였습니다. 마27:27을 보면 common hall이란 말이 나옵니다. 흠정역은 ‘공동 집회장’이라고 쉽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근본역은 개역과 동일하게 관정이라고 하였습니다. 중고등학교 아이들 중에 관정을 알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데 관정의 한자어도 제대로 쓰지 않았습니다. 개역: 관정(官庭), 이 官庭은 ‘관가의 뜰’이라는 뜻입니다. 근본역: 관정(官廷), 이 官廷은 ‘고을의 수령’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근본역에 따르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고을의 수령에게 데려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외에도 어려운 한자어는 수도 없이 많으며 다음은 몇 가지 예입니다.    행27:19: 배의 삭구 유다서 7: 응벌 출25:30 등: 진설 빵 수20:5, 9: 불식간, 부지 중 사9:6: 기묘자 겔4:3:공성퇴 학1:4: 판벽하여 꾸민 집 피조물: 국립국어연구원 사전에도 안 나오는 말, 올바른 말은 창조물이다. 3. 기타 문법에 맞지 않는 것들 형용사와 동사를 구분하지 못한 사례들: 그들이 잠잠하였다(행11:18). ‘잠잠하다’는 형용사라 이렇게 동사처럼 쓸 수 없음 크레테가 아니라 크레타가 표준말이다(딛1:5).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4:5), ‘가까이 계시느니라’는 돼도 ‘가까우시니라’는 이 경우 우리말이 아니다.   ‘힙입다’ 앞에는 ‘를’이 아니라 ‘에’가 와야 합니다. ‘여러분의 성원에 힙입어...’ 이런 식으로(‘성원을 힘입어’가 아니라) 막3:22 통치자를 힘입어, 이런 것은 우리말에 맞지 않는다. 병행 구절인 눅11:19를 가서 보면 ‘말미암아’로 썼다. 이것은 4복음서 대조를 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내가 주께로부터 남자를 얻었다(창4:1). “...께로"부터라는 말은 우리나라 말이 아니다. 개역성경 부실 공사의 잔재이다. ‘주로부터’, ‘주에게서’로 써야 한다. 4. 결어 이제 이 정도로 하고 나중에 다른 분들이 정리해서 올릴 것입니다. 성경을 번역하는 것은 자유지만 중고등학교 학생들도 알 수 있게, 문법에 맞게 번역해야 합니다. 에라스무스, 틴데일, 루터 등 성경 번역자들의 소원은 아이들도 성경을 읽고 구원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성경을 내기 위해 평민들의 글로 쉽게 성경을 번역하였습니다. 다음은 에라스무스의 말입니다. 나는 매우 연약한 여인이라도 복음서와 사도 바울의 서신서를 스스로 읽고 깨닫기를 바라며 … 그런 말씀들이 모든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사람뿐만 아니라 터키 사람이나 이슬람 사람들이 읽을 수 있었으면하고 바란다. 나는 또한 쟁기질하는 소년이 쟁기질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노래하고, 옷을 짜는 사람이 옷 짜는 기계 소리에 맞추어 이 말씀들을 흥얼거리며, 여행하는 사람이 이 말씀들을 통해 여행의 무료함을 달랠 수 있기를 바란다 … 우리는 다른 공부를 한 것으로 인해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음이 다가올 때 성경 말씀을 읽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이 귀한 말씀은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시고, 병을 고치시고, 죽으셨다 다시 일어나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여 주며, 그분이 바로 우리 옆에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Famine in the Lord」, Norman Ward, p.38). 무슨 책이든 번역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번역이 오히려 반역이 됩니다.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서문에서 번역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명문을 남겼습니다.   번역이란 창문을 열어 빛이 들어오게 하는 작업이다. 번역은 껍질을 까서 우리가 열매를 먹도록 해주며 휘장을 젖혀서 우리가 지성소를 들여다보게 해준다. 번역은, 야곱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굴려 내고 물을 길어 그것으로 라반의 양 떼들에게 물을 주었던 것처럼(창29:10), 우물의 뚜껑을 열어 우리가 물로 나가게 해 준다. 참으로 보통 사람들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지 않는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두레박이나 물길을 그릇이 없이(요4:12) 야곱의 그 (깊은) 우물 옆에 서 있는 아이들과 같고 이사야서에 언급된 사람, 즉 봉인된 책을 넘겨받아 읽을 것을 요구받는 사람과 같을 것이다. ‘원하건대 이것을 읽으라, 하면 그가 이르기를, 그것이 봉인되었으므로 내가 읽을 수 없노라, 할 것이요’(사29:11).   하나님의 은혜와 화평이 성경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강력하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3-04-17 12:52:45 | 관리자
한 분의 댓글:    약 15년 전 근본역 이슈가 초기 붉어질 때 그 당시 KJB 믿음을 가진 초신자였지만 분별하고 그 교회를 떠나 우리 교회로 온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 같습니다.   그 시간 동안 근본역에 참여했던 교회들이 각자 내실을 다지고 복음 전파에 더욱 힘을 쏟았더라면...   성경 번역을 했다는 타이틀을 얻고자 많은 것을 잃어버렸지만 근본적으로 KJB 성경 번역을 개악으로 했다는 불명예까지 얻게 된것 같습니다.   근본적으로 문제가 된 근본역이 되어버렸네요 ㅠㅠ
2023-04-13 14:40:02 | 관리자
<킹제임스 성경을 근본적으로 개악(改惡)한 근본역>   얼마 전에 어떤 사람들이 킹제임스 성경 번역이라고 하면서 ‘근본역’이라는 것을 냈다고 합니다.   지인 중에 한 분이 이것을 알려주시면서 번역의 수준을 보니 학생들을 사용하여 번역한 것 같다는 평을 주면서 그 예로 다음 몇 가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1. 예수님의 고향을 가버나움으로 바꾸어 버림(눅4:23)   근본역: 이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분명히 의사여, 너 자신을 고치라, 한 이 격언을 내게 말하며, 우리가 들어왔던 것을 무엇이든 네 고향인 이곳 가버나움에서도 행하라, 하고 내게 말할 것이라, 하시더라.   지금 이것은 눅4:16이 기술하듯이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위에서 보듯이 근본역은 예수님의 고향을 가버나움으로 근본적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다음에서 보듯이 이 세상의 모든 성경은 그분께서 가버나움에서 한 모든 일을 여기 즉 그분의 고향인 나사렛에서도 하라고 말합니다.   KJV: And he said unto them, Ye will surely say unto me this proverb, Physician, heal thyself: whatsoever we have heard done in Capernaum, do also here in thy country.   NIV: Jesus said to them, "Surely you will quote this proverb to me: 'Physician, heal yourself! Do here in your hometown what we have heard that you did in Capernaum.'"   개역: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카톨릭: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흠정역: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분명히,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이 격언을 내게 말하며 이르기를, 네가 가버나움에서 행하였다고 우리가 소문으로 들은 모든 것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행하라, 하리라, 하시고   2. 포도주 혹은 포도즙(wine)을 포도 음료(grape drink)로 바꾸어 버림   흠정역, 개역, 공동 등 이 세상 모든 성경(창9:20-21): 노아가 농부가 되기 시작하여 포도원을 세우고 포도주(wine)를 마신 뒤 취해 자기 장막 안에서 덮지 않은 채 있었더니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였습니다. 너무나 상식적인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술을 금합니다.   그런데 근본을 자랑하는 근본역은 이것을 통째로 포도 음료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근본역: 그가 포도 음료를 마시고 취하여, 그가 자기 장막 안에서 몸을 덮지 않고 있었더라. 포도 음료를 마시고 취하는 사람이 있나요?   구글이나 네이버에 가서 포도 음료로 검색하면 어떤 것이 나오나요? 썬키스트, 델몬트 등 물에다 포도 주스를 섞은 제품들이 나오지 않습니까?      음료는 마실 수 있는 모든 액체를 뜻하지만 그 앞에 명사나 형용사가 붙으면 뜻이 한정됩니다.   청량 음료, 탄산 음료, 오렌지 음료, 사과 음료, 포도 음료 등 앞에 명사가 붙으면 모두 알코올 성분을 함유하지 않은 음료가 됩니다.   성경은 보편적인 상식을 가지고 번역해야 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들도 알 수 있는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근본역은 술을 먹지 말라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 주는 잠20:1도 바꾸어 버렸습니다.   흠정역, 개역 등 모든 성경(잠20:1): 포도주는 조롱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날뛰게 하는 것이므로 누구든지 그것들에 의해 속는 자는 지혜롭지 아니하니라.   근본역: 포도 음료는 조롱하게 하는 것이요,...   포도 음료를 마시면 사람을 조롱하게 될까요?   근본역은 잠31:4도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근본역: 포도 음료를 마시는 것이 왕에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왕이 포도 음료를 마시는 것이 왜 합당하지 않을까요?   이 세상의 모든 성경들은 왕이 포도주(즉 술)를 마시지 말라고 합니다. 정신을 흐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잠23:31도 마찬가지입니다.   흠정역: 너는 포도주가 붉거나 잔에서 제 빛깔을 내거나 스스로 똑바로 움직일 때에 그것을 바라보지 말라.   이것은 포도주가 발효되면서 거품이 올라가는 것을 묘사합니다. Gill 주석: sparkles in the glass, sparkle의 뜻: 거품이 일다.   그런데 근본역은 이런 것을 전혀 보여 주지 않습니다.   근본역: 너는 포도 음료가 붉을 때...그것이 스스로 똑바로 움직일 때 쳐다보지도 말지어다. 포도 음료는 영원히 두어도 발효하지 않으므로 스스로 똑바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것은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발견됩니다. 이것은 근본역 부실 공사의 끝판 왕입니다. 흠정역, 개역 등 모든 성경: 술 취하지 말라. 그것에는 과도함이 있나니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할지니라.   근본역: 포도 음료를 과하게 마시지 말라. 거기에는 과도함이 있나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   KJB: And be not drunk with wine, wherein is excess; but be filled with the Spirit;   포도 음료를 과하게 마시지 말라는 말씀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은 성경 번역이 아니라 반역입니다.   그들은 또한 ‘과하게’라는 말을 임의로 추가하였습니다. 영어든 원어든 어디에 ‘과하게’라는 말이 있습니까? 이렇게 단어를 임의로 추가하는 것은 마귀가 하는 일이 아닐까요?   또 그들은 ‘충만하라’라는 말을 썼는데 이것은 우리말 문법에 맞지 않습니다. ‘충만하다’는 형용사이므로 ‘충만하라’의 형태로 쓸 수 없습니다.   “너 예뻐라”라고 하면 말이 될까요?   이것은 명령문이므로 우리말에서는 ‘…ㄹ지니라’를 쓰면 동사, 형용사 모두 명령문으로 쓸 수 있습니다.   이들은 분명히 wine이라는 단어가 1차적으로 포도즙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의 특정 신학을 유지하기 위해 고의로 포도 음료라고 번역한 것 같습니다.   winepress라는 단어를 보기 바랍니다.   흠정역: 그분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므로 그분께서 그 검으로 민족들을 치시고 친히 쇠막대기로 그들을 다스리시며 또 친히 전능자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즙 틀(winepress)을 밟으시리라(계19:15).   근본역: …그분께서 전능자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즙 틀(winepress)을 밟으시느니라.   근본역도 분명히 winepress를 포도즙 틀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고는 다른 모든 곳에서 wine을 포도 음료(grape drink)로 했으니 이것은 심각한 오역이고 더욱이 음료를 임의로 추가한 것입니다.   근본역은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하나님의 경고를 사람들에게 선포할 근거를 다 제거해 버렸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개역, 카톨릭 성경만도 못하지 않습니까?   3. 대언, 대언자를 예언, 예언자로 바꾸어 버림   근본역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단어 중 하나인 ‘대언하다’(prophecy), ‘대언자’(prophet)를 ‘예언하다’, ‘예언자’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대언하다’, ‘대언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및 그리스어는 ‘누구를 위해 대신 말하다’를 뜻합니다.   성경이 성경 단어의 뜻을 알려 주므로 성경을 보겠습니다.   흠정역: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를 파라오에게 신이 되게 하였으니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라(출7:1).   이 부분은 개역성경도 똑같습니다.   개역: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하나님은 이미 출4:16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백성을 향해 네 대변인(spokesman)이 되리니 그가 곧 그가 너에게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을 대신하리라.   앞뒤 문맥상 출4:13-16을 보기 바랍니다.   여기에 대변인(spokesman)이 나옵니다. 청와대나 백악관에서 대통령을 위해 대신 말하는 사람이 바로 대변인(spokesman)입니다. 그래서 prophet은 대언자이지 예언자가 아닙니다.   그러면 이제 출7:1을 근본역으로 보기 바랍니다.   근본역: ...네 형 아론은 너의 예언자가 되리라.   아론이 모세의 예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 근본역은 고린도전서 14장의 대언하는 선물을 모두 예언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러면 교회에서 예언해야 할까요? 산 기도 가고 예언받으러 가야 할까요?   이런 번역은 옳지도 않고 한마디로 성경의 뜻을 변개하는 것입니다.   영어 옥스퍼드 사전이 무어라고 말합니까?   대언자(Prophet)의 첫 번째 의미는 ‘하나님을 위해(혹은 대신해서) 말하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OED: I.1.a One who speaks for God or for any deity, as the inspired revealer or interpreter of his will; one who is held or (more loosely) who claims to have this function; an inspired or quasi-inspired teacher.   이 외에도 근본역에서는 오역과 부실함이 수도 없이 발견됩니다.   고후13:1, 내가 이제 세(3) 번째 너희에게 가려 하노라. 고후13:2, 내가 두(2) 번째 미리 말하노라.   우리나라 책들에서 ‘두(2) 번째’, ‘세(3) 번째’라고 쓴 글을 본 적이 있습니까? 이것은 우리말이 아닙니다.   히3:10, 그들이 항상 잘 못 행하고   ‘잘 못 행하다’라니 이게 무슨 말이고 문법입니까? 초등학교 아이들도 이렇게 쓰지 않을 것입니다.   저에게 이런저런 자료들을 보내고 몇 가지를 분석해 준 분의 총평은 다음과 같습니다.   “근본역 번역자들에게서는 understanding(명철, 이해력)이 사라져 버렸다.”   여러분도 원하시면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통일성이 없고 읽힘성이 떨어져서 쭉쭉 읽어나갈 수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글이 막히니...   끝으로 그들이 흠정역 성경을 그대로 복사한 것을 보기 바랍니다(딤후3:16-17).   흠정역: 모든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근본역: 모든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들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카피했다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들은 ‘모든 일’ 대신 ‘모든 일들’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우리말에서는 ‘모든 일’이 읽기에 더 좋습니다.   두 구절을 이렇게 똑같이 번역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정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순수한 공적 번역’이라는 미명하에 순진한 사람들을 홀리는 사람들이 다시는 이 땅에 나타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15년 이상 번역했다는 것이 이 정도니 참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샬롬
2023-04-13 10:52:11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