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검색
  • 전체게시글 검색

검색결과

  • 사이트검색
검색결과 약118개
천주교 소수 사본들의 부패와 현대 역본들의 오류   1. 사본 알레프와 B의 실체: 고서학자들이 거부한 이유 신약 성경 본문 비평에서 바티칸 사본(B)과 시내 사본(알레프)은 종종 “가장 오래된 사본”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장 좋은 사본”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두 사본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부패를 내포한 문서들이라는 사실이 다수 고서학자들에 의해 밝혀져 왔다. 1) 위조 흔적과 물리적 훼손 고대 문헌 감정에 사용되는 vidicon 광전도 저속 카메라를 통한 조사에 따르면, 바티칸 사본 B는 최소 두 명에 의해 훼손되었고, 그중 한 명은 12세기경 인위적 수정을 가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2) 본문 언어의 이질성 바티칸 사본 B의 그리스어는 신약 성경이 기록된 코이네 그리스어가 아니라, 훨씬 더 고전적이며 플라톤식 그리스어에 가깝다. 이는 본문이 실용적 기록이 아니라, 문학적으로 편집된 흔적을 보여 준다. 3) 정경 부정과 외경 삽입 바티칸 사본 B는 신약 성경의 정경 일부(요한계시록,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9:14~13:25)를 성경에서 제외하였고, 대신 유디스, 토비트, 벨과 용, 바나바 서신과 같은 외경을 삽입하였다. 이 사본은 외경을 마치 정경처럼 취급하였던 것이다. 4) 오리겐 사본과의 교리적 일치 B 사본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관련된 여러 구절을 의도적으로 생략하였고, 이는 오리겐의 헥사플라(6난 성경)와 많이 일치한다. 이는 교리적 변개가 의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2. 사본 간의 불일치: 일치보다 불일치가 많다 버건(Burgon)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알레프와 B 사본은 두 개의 연속 구절에서 서로 일치하는 경우보다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The Revision Revised』, p. 12) 이는 이들 사본 서로 간에도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며, 비평 본문의 일관성 주장을 무너뜨리는 핵심 증거가 된다. 3. 사복음서에서의 변개 수치 사복음서에 한정하여 살펴보았을 때,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수치들이 드러난다: B 사본(바티칸): 삭제 2,877개 단어, 추가 536개 단어, 대체 935개 단어, 치환 2,098개 단어, 부분 개조 1,132개 단어. → 총 7,578개 변개. 알레프 사본(시내): 삭제 3,455개 단어, 추가 839개 단어, 대체 1,114개 단어, 치환 2,299개 단어, 부분 개조 1,265개 단어. → 총 8,972개 변개. D 사본: 삭제 3,704개 단어, 추가 2,213개 단어, 대체 2,121개 단어, 치환 347개 단어, 부분 개조 1,772개 단어. → 총 13,281개 변개. 요약: 세 사본은 사복음서에서만 총 29,831개의 변개를 포함하고 있다. 특히 D 사본은 사복음서 대부분이 누락되었음에도 변개 수치가 가장 많다. 4. 어형 변화와 이문들(특이한 본문들) 사복음서에서의 어형 변화 수는 다음과 같다: A 사본: 842회 C 사본: 1,798회 B 사본: 2,370회 알레프: 3,392회 D 사본: 4,697회 이문(특이한 본문들)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A 사본: 133개 C 사본: 170개 B 사본: 197개 알레프: 443개 D 사본: 1,829개 이 모든 수치는 정통 공인 본문(TR)에서 얼마나 이탈했는지를 명백히 보여 준다. 5.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의 삭제 수 마가복음(총 11,646개 단어 기준): A 사본: 138개 삭제, B 사본: 762개, 알레프: 870개, D 사본: 900개 누가복음(총 19,942개 단어 기준): A 사본: 2,018개 삭제, B 사본: 757개, 알레프: 816개, D 사본: 1,552개 이처럼 특정 복음서 안에서 대량의 단어 삭제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필사자의 실수 수준을 넘은 계획적인 본문 훼손임을 시사한다. 6. 누가복음에서의 특이한 변개 사례 누가복음에서 전통 공인 본문과 비교했을 때, 다음과 같은 변화가 감지된다: B 사본: 757개 단어 삭제, 309개 단어 교체, 131개 단어가 특이 본문의 영향받음, 654개 단어 치환 알레프: 816개 단어 삭제, 115개 단어 교체, 215개 단어가 특이 본문의 영향받음 D 사본: 1,552개 단어 삭제, 1,006개 단어 교체, 4,090개 단어가 특이 본문의 영향받음   이 수치는 이 세 사본이 본문을 조작하여 만들어진 본문임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7. 결론: 현대 역본들이 올바를 수 없는 결정적 이유 이처럼 알레프, B, D 사본은 가장 오래되었지만 동시에 가장 부패한 사본들이다. 이들은 단순한 필사 오류를 넘어, 계획적인 삭제, 대체, 조작, 외경 삽입, 교리적 변개 등의 특징을 지닌다. 호르트조차도 이 사본들에서 동일한 구절을 삭제한 사례가 마가복음에서 단 4회, 누가복음에서 단 3회, 총 7회밖에 없다고 인정했다. 이는 이 사본들이 서로도 일치하지 않으며, 공통된 전승이 아닌 독립적이고 불안정한 편집본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 부패한 사본들을 기반으로 한 현대 역본들(NIV, ESV, 개역개정 등)은 필연적으로 신약 성경의 본질적 진리를 왜곡할 수밖에 없다. 성경의 권위는 가장 오래된 사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 역사 속에서 보존해 주신 공인 본문(Textus Receptus)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B 사본, 알레프 사본, D 사본은 신약 성경 본문 사본들 가운데 가장 수치스럽게 부패된 사본들이다. 이 사본들을 기반으로 한 현대 역본들은 결코 하나님의 올바른 말씀일 수 없다.
2025-05-24 20:08:53 | 관리자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의 부패: 왜 가장 오래되었지만 가장 신뢰할 수 없는가?   성경 본문 비평의 세계에서 가장 격렬한 논쟁 중 하나는 어떤 사본이 신약 성경의 가장 정확한 본문을 담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19세기 후반 웨스트코트(Westcott)와 호르트(Hort)는 당시 새롭게 재발견된 바티칸 사본(B)과 시내 사본(알레프, ℵ)을 "가장 오래되고, 가장 신뢰할 만한 사본"으로 간주하고, 이 두 사본에 기반한 비평 본문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들 사본은 실제로는 신약의 원래 본문과는 거리가 먼, 의도적으로 편집되고 부패된 사본들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1.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가장 진실한 본문"이라는 주장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1882년 출간한 『그리스 원어 신약 성경 개론(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 in the Original Greek)』에서 이렇게 주장하였다: “알레프 사본과 바티칸 사본은 모든 증거 자료보다 훨씬 우수하다… 그것들은 순수하고, 탁월하며, 부패로부터 자유롭다.” (pp. xxii, 210, 220, 225, 239)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뻔뻔한 과장과 잘못된 정보라는 반론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2. 사본 비평가들의 반론: 가장 오래된 사본이 가장 좋은 것은 아니다 ▷ 호스키어 경(Sir Herman Hoskier) 19세기 말 사본 전문가 호스키어 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본문은 실제적으로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에 불과하다.” (『어떤 성경인가?(Which Bible?)』, D. O. Fuller, pp. 135-136) 그는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은 이단적 흐름에 따라 초기 100년 안에 이미 부패되었으며, 사본 전체 중 1%도 안 되는 43개 사본들과 함께 정통 본문에서 벗어난 계열이라고 단언하였다. ▷ 드와이트 웨이트(D. A. Waite) 웨이트 박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그 사본들이 가장 오래된 것일 수는 있어도 결코 최고의 사본들은 아니다.” (『킹 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Defending the King James Bible)』) 즉, 연대가 빠르다고 해서 진리가 보존되어 있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3. 버건과 메츠거: 사본의 부패를 실증하다 ▷ 존 버건(John W. Burgon) 19세기 교회사 학자 버건은 자신이 수집한 방대한 사본 자료를 근거로 이렇게 말한다: “알레프와 B 사본은 가장 부패된 본문이다. 그것들은 진리를 왜곡하고 조작하여 모아 놓은 창고이며, 위조된 본문으로서 창피할 정도로 훼손되어 있다.” (『개정된 개역(The Revision Revised)』, pp. 16, 318, 520) ▷ 브루스 메츠거(Bruce Metzger) 비평 본문의 대표 편집자였던 브루스 메츠거 역시 바티칸 사본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바티칸 사본에 비잔틴 본문이 없다는 사실은 필사자들이 의도적으로 본문을 단순화했음을 보여 준다.” (Jacob van Bruggen, 『신약의 고대 본문(The Ancient Text of the NT)』, pp. 30-31) 이는 바티칸 사본이 중립적인 전승을 따른 결과가 아니라, 의도적인 편집과 생략의 산물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4. 편집된 이집트 본문: P75의 영향을 받은 사본들 ▷ 고든 피(Gordon Fee) 피 박사는 바티칸 사본(B)과 시내 사본(알레프)이 P75와 같은 훼손된 파피루스를 바탕으로 필사되었으며, 이 본문은 알렉산드리아에서 편집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작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는 케년(Kenyon)의 결론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이집트 본문은 편집된 본문이며, 고대 교회가 실제로 사용한 본문과는 다르다.” (『신약 연구의 새 양상(New Dimensions in NT Study)』, R. Longenecker & M. Tenny, p. 23) 5. 피커링과 호스키어: 역사의 반증 ▷ 윌버 피커링(Wilbur Pickering) 피커링 박사는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알레프와 B 사본은 고대의 비정상적 계열을 반영하는 본문이며, 현대 역본들이 이들에 의존한다는 사실은 본문 전승에 대한 역사적 반증이다.” (『신약 성경 본문의 정체(Identity of the NT Text)』, pp. 120, 136, 145) 즉, 이들 사본은 오히려 교회에 의해 버려졌던 비정상적인 전승의 잔재로 평가된다. ▷ 호스키어 박사의 연구 결론 호스키어 박사의 방대한 비교 연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제시한다: “현대 역본 편집자들은 과학적 사실을 무시하고, B 사본과 알레프 사본을 ‘불완전한 증거 자료’에 기반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오리겐(Origen)이 주후 200~400년 사이 안디옥 본문(공인 본문, KJV 계열)을 개정하여 만든 이집트 본문들이 후에 방치되었다가 1881년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고 평가하였다. (『어떤 성경인가?(Which Bible?)』, Fuller, pp. 134–143) 6. 결론: 오래된 것이 곧 참된 것은 아니다 바티칸 사본(B)과 시내 사본(알레프)은 분명 고대의 사본이지만, 내용의 부패, 의도적 생략과 삽입, 교리적 왜곡으로 인해 신뢰할 수 없는 본문임이 여러 사본 학자들에 의해 명확히 드러났다. 특히 이들 사본은 성경 본문의 보존이라는 하나님의 섭리보다 인간적 편집의 산물이라는 증거가 풍부하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그리고 그 이후 현대 역본 제작자들이 이러한 사본들에 의존해 만들어 낸 성경은, 결국 비정상적인 본문을 정통인 것처럼 둔갑시킨 역사적 오류라고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참된 말씀은 부패된 사본이 아닌,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보존하신 공인 본문(Textus Receptus)과 그 열매인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발견되어야 한다.
2025-05-24 20:06:03 | 관리자
킹제임스 성경의 역사: 하나님의 말씀 보존의 발자취 1. 배경: 앵글로색슨 시대의 번역 시도들 종교 개혁 이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자국어로 이해하려는 시도들은 이어져 왔다. 영국의 기독교 선구자 베다(Bede, 주후 672–735년)는 요한복음을 앵글로색슨어로 번역했고, 앨프레드 대왕(Alfred the Great, 주후 848–901년)은 십계명과 시편을 자국어로 옮겨 백성들에게 성경의 도덕률을 알리려 했다. 이러한 시도들은 성경 말씀을 라틴어에서 해방시키려는 초기 개혁적 움직임의 발판이 되었다. 2. 초기 개혁자들의 번역: 말씀을 자유케 하다 1) 존 위클리프 (John Wycliffe, 1329–1384) 라틴 벌게이트에서 영어로 번역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권리가 있다.”라고 주장하며 성경을 백성의 언어로 풀어낸 선구자였다. 그의 번역은 필사본 형태로 널리 유포되었고, 후에 ‘위클리프 성경’으로 불리게 된다. 2) 윌리엄 틴데일 (William Tyndale, 1494–1536) 틴데일은 그리스어 원문으로부터 직접 영어로 번역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 교육받았고, 루터의 종교 개혁 정신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1524년, 잉글랜드 내의 박해를 피해 유럽으로 건너가 비텐베르크에서 신약 성경을 번역했다. 1525~1528년 사이 유럽 전역에서 인쇄된 그의 신약 성경은, 무려 18,000권이나 비밀리에 영국으로 들여오게 되었다. 틴데일은 1530년경부터 구약 성경의 일부도 히브리어 원문에서 번역하였으며, 1536년 ‘친구’의 배신으로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그의 마지막 기도는 “주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였다. 킹제임스 성경(KJV)의 90% 이상이 틴데일의 번역에서 왔다는 사실은 그의 사역이 얼마나 지대했는지를 보여 준다. 3) 마일스 커버데일 (Miles Coverdale, 1535년) 틴데일이 번역하지 못한 부분을 라틴어, 루터 성경 등에서 보완해 전체 성경을 영어로 출판하였다. 그는 이후에도 여러 번 성경을 개정하며, 성경 번역 역사에 중대한 기여를 했다. 4) 존 로저스 (John Rogers, 1537년) 틴데일의 제자였던 그는 '토마스 매튜'라는 필명으로 매튜 성경(Matthew's Bible)을 출판하였다. 이 성경은 틴데일의 번역과 커버데일의 번역을 결합한 형태로, 영어권 최초의 ‘합성 성경’이었다. 3. 국교회의 공식 성경들 1) 그레이트 성경 (Great Bible, 1539년) 커버데일이 매튜 성경을 개정하여 만든 것으로, 크기가 커서 ‘큰 성경’이라 불렸다. 헨리 8세 치하에서 영국 국교회의 공식 성경으로 지정되었다. 2) 제네바 성경 (Geneva Bible, 1560년) 메리 여왕의 박해를 피해 제네바로 피신한 개신교인들이 제작한 성경이다. 반가톨릭적 각주가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청교도들이 애용한 성경이었다. 3) 비숍 성경 (Bishop's Bible, 1568년) 제네바 성경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영국 국교회가 주도하여 만든 성경으로, 이후 KJV의 직접적 전신이 되었다. 4.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 (1611) 1603년, 제임스 1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청교도들은 국교회 내의 가톨릭적 잔재를 제거하고자 새로운 영어 성경 번역을 요청했다. 1604년 햄프턴 궁정 회의에서 청교도 대표 존 레이놀즈(John Reynolds)가 이를 제안했고, 제임스 왕은 이를 수락하였다. 총 54명의 학자가 선발되었고,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웨스트민스터 세 지역의 여섯 개 그룹으로 나뉘어 성경 각 부분을 나누어 번역하였다. 모든 번역은 상호 검토를 거쳐 6인의 위원회에서 최종 교정을 거쳤다. 사용된 주된 원문: 에라스무스의 공인 본문(Textus Receptus), 마소라 히브리어 본문, 틴데일/커버데일의 번역본. 1611년 인쇄 당시 외경(Apocrypha)은 부록으로 포함되었으나, 영감받은 정경과는 구분되었다. 번역자들은 외경이 성경이 될 수 없는 이유 7가지를 명확히 제시하였다. 5. 후속 개정과 표준화 1629년, 1636년: 간단한 철자 및 교정 수정 1762년, 1769년: 현대 철자와 문장 부호를 반영하여 표준화된 판이 정착되었다. 번역자들의 특징: 모두 성경 언어(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에 정통한 학자였고, 천주교인이나 유대인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6. 오늘날의 현대 역본들과의 비교 20세기 이후 등장한 개정표준역(RSV), 현대 역본(NIV, ESV 등)은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비평 본문에서 파생된 것으로, 로마 가톨릭 추기경 카를로 마르티니(Carlo Martini)가 관여한 연합성서공회(Nestle-Aland)의 본문을 따르고 있다. 미국 국회 기록(1960년 3월 3일)은 RSV 번역자 95명 중 25명이 공산주의 지지를 표명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번역들은 종종 예수님의 신성, 복음의 핵심 요소, 반로마 교리 등 중요한 구절들을 삭제하거나 약화시켰다. 이것은 17세기의 종교 개혁 정신과 정반대인 20세기 에큐메니즘 운동의 산물이다. 7. 결론: 왜 킹제임스 성경인가? 킹제임스 성경은 단순한 역사적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와 믿음 위에 세워졌고, 헬라어와 히브리어 원문에 근거하여 탁월한 신학자들에 의해 번역되었으며, 본문 비평학의 혼란 이전에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의 순수성과 권위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 보존되었으며, 그 결정체가 바로 흠정역(King James Bible)이다.
2025-05-24 20:03:10 | 관리자
초기 파피루스들과 공인 본문: 비잔틴 본문의 고대 기원에 대한 증거   웨스트코트(Westcott)와 호르트(Hort)가 살던 19세기 후반에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초기 파피루스들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이 파피루스들을 입수할 수 있었다면, 그들이 세운 신약 성경 본문 비평 이론은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H. A. 스투르즈(H. A. Sturz)는 자신이 입수할 수 있는 모든 파피루스들을 조사한 결과, 총 885곳의 심각한 이문(異文) 중에서 주후 300년 이전의 초기 파피루스들이 ‘비잔틴 본문’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The Byzantine Text-type and New Testament Textual Criticism (1972, Biola College Bookstore)에 정리하였다. 현재 우리가 가진 파피루스는 신약 전체 본문의 약 30% 정도를 포함한다. 그러나 이 제한된 자료만으로도 중요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가령, 만일 신약 전체를 포함하는 최소 세 개의 초기 파피루스를 갖고 있다면, 비평 본문에 의해 무시되거나 삭제된 5,000개 이상의 비잔틴 본문들은 정당하게 옹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 주요 파피루스들과 그 일치성 체스터 비티 파피루스 – P45, P46, P47 (주후 225~275년) 이들 초기 파피루스는 1933–37년에 출판되었고, 놀랍게도 전통적인 비잔틴 계열의 공인 본문과 자주 일치하고 있다. 쥰츠(G. Zuntz)는 P46에서 후대의 것이라 여겨졌던 다수의 비잔틴 본문들이 발견되었다고 하였고, 동일한 현상이 P45에서도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태복음 26:7, 사도행전 17:13 등에서 그 예를 들었다. 보드머 파피루스 – P66, P72, P74 1956~1962년에 발표된 이들 파피루스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난다. 버드샐(Birdsall)은 P66(주후 200년)이 상당량의 비잔틴 본문과 일치한다고 인정했다. 브루스 메츠거(B. Metzger)는 P45, P46, P66에서 다른 본문 계열과는 배치되며 비잔틴 본문과 일치하는 23개 사례를 나열하였다. P75(주후 200년경) 역시 적어도 12곳 이상에서 공인 본문과 일치하고 있다. 주요 본문 예시 (비잔틴 본문과 파피루스의 일치) 다음은 초기 파피루스들(주후 100~300년경)이 비잔틴 본문, 즉 킹제임스 성경(KJV)의 본문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18가지 예시이다. 이들은 KJV가 후대의 개작된 본문이 아니라, 매우 이른 시기부터 존재해 온 본문임을 입증해 준다. 마가복음 9:29 –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에 의하지 않고서는 나갈 수 없느니라.” – P45, 알렉산드리누스(A), 비잔틴 본문과 일치. 현대 비평 본문(B, NIV, 개역)은 “금식”을 삭제. 요한복음 13:2 – “식사가 끝날 무렵에” – P66, A, 비잔틴 본문. 반면 B와 시내 사본(ℵ)은 “식사 중에”로 변개. 요한복음 16:27 –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느니라” – P5, ℵ, A, Θ 본문 일치. 개역은 “하나님” 삭제.   사도행전 10:30 – “내가 금식하며 기도하고…” – P50, C, D, 비잔틴, 성구집들이 지지. 비평 본문은 삭제. 사도행전 23:12 – “유대인들 중의 어떤 자들” – P48, 벌게이트, 비잔틴과 일치. 알파벳 사본들에서는 삭제. 로마서 15:19 – “하나님의 영” – P46, ℵ, 비잔틴. B 사본에서는 “하나님의”를 생략. 고린도전서 10:9 – “우리는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말자” – P46, B, 비잔틴 지지. 비평 본문은 “주”로 대체. 고린도전서 14:38 – 명령법 능동 “알지 못하게 둘지니라” – P46, B, 비잔틴 본문. 알파벳 사본은 직설법 사용. 갈라디아서 1:3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 P46, P55, B 지지. ℵ과 A 사본은 일부 생략. 갈라디아서 1:8 – “복음 외에” – P51, 비잔틴, 벌게이트 지지. ℵ은 “복음” 삭제. 에베소서 1:14 – 관계대명사 중성 “그것이 보증이 되사” – P46, A, B 본문 일치. 비평 본문은 남성형으로 변경. 에베소서 5:9 – “성령의 열매” – P46, D, 비잔틴. 다른 사본들은 “빛의 열매”. 빌립보서 1:14 – “말씀을 말하게 되었느니라” – P46, 비잔틴 지지. 비평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 골로새서 1:7 – “너희를 위한 신실한 사역자” – P46, ℵ, A, B 일치. C는 “우리를 위한”으로 변경. 히브리서 11:11 – “사라가 씨를 수태하는 힘을 받아” – P13, ℵ, A, K, 비잔틴 지지. P46은 삭제. 히브리서 11:37 – “시험을 받기도 하고” – P13, A, D, K, 비잔틴, 벌게이트 포함. P46은 생략. 베드로전서 1:22 – “순수한 마음으로” – P72, ℵ, C, K, 비잔틴 지지. A, B에서는 “마음으로” 삭제. 베드로후서 2:4 – “어둠의 사슬” – P72, K, P, 비잔틴 본문. ℵ은 “침울한 구덩이”. 결론: 비평 본문 이론에 대한 반박 이와 같은 파피루스 증거들은 호르트가 주장한 바, “비잔틴 본문은 주후 250년 루시안에 의해 창안된 후대의 개정본”이라는 이론을 결정적으로 반박한다. 오히려 비잔틴 본문은 주후 200년 혹은 그 이전부터 이미 존재했고, 전 세계 다양한 지역의 사본들과 공통 조상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지난 100년간 성경 본문 비평이 ‘진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어 온 방향은 잘못되었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이론이 현대 본문 비평학에 끼친 영향은 지대한 반면, 실제 존재하는 수많은 파피루스 증거는 철저히 무시되어 왔다. 본문 비평의 초석으로 여겨졌던 많은 작업들이 지금은 오류로 드러나고 있다. 주후 350년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공인 본문(KJV)의 본문들은 원래의 신약 성경 본문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으며, 위에 제시된 18개의 파피루스 기반 증거들은 공인 본문의 정당성과 고대성을 분명하게 입증하고 있다.
2025-05-24 19:59:13 | 관리자
라틴 벌게이트와 공인 본문의 일치성에 대한 역사적 고찰 라틴 벌게이트(Vulgate)는 초대 교회 시대 이후 서방 교회에서 오랜 기간 표준 성경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 번역은 제롬(Jerome, Hieronymus)에 의해 주후 384년경에 작성되었으며, 그는 기존의 구 라틴역(Old Latin)과 자신이 소유한 구 그리스 사본들(Greek manuscripts)을 참고하여 신약 성경을 개정하였다. 제롬은 라틴어 개정역을 만들며 여러 사본을 비교하였고, 이 과정에서 공인 본문(Textus Receptus)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상당 부분 수용하였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공저 『The New Testament in the Original Greek』 제2권 152쪽에 따르면, 제롬이 참고한 그리스 사본 중 하나는 알렉산드리누스 사본(A)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사본이었으며, 이는 공인 본문과도 일치하는 본문을 다수 포함하고 있었다. 실제로 알렉산드리누스 사본은 라틴 벌게이트와 여러 독특한 구절에서 일치하고 있으며, 이는 제롬이 사용한 그리스 사본이 A 사본과 공동의 원본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히 라틴 벌게이트는 아래와 같은 중요 구절들에서 공인 본문과 일치하는 본문을 유지하고 있다: 누가복음 22:43–44 – 예수님의 피땀 흘리며 기도하신 장면. 벌게이트는 이 구절을 포함하고 있으나, 파피루스 75(P75)와 바티칸 사본(B)은 이를 생략한다. 누가복음 23:34 –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라는 말씀. 벌게이트는 포함하나, P75와 B 사본에서는 삭제되어 있다. 누가복음 24:51 – 예수님의 승천 장면. 벌게이트는 "하늘로 올려지시니라"는 구절을 포함한다. 이 외에도 케년(F. G. Kenyon)은 그의 저서 『The Text of the Greek Bible』(1937, pp. 216–218)에서 라틴 벌게이트가 공인 본문과 일치하는 24개 복음서 구절 중 22개를 목록으로 제시하여, 그 일치성을 문서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더 나아가,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공인 본문에서 ‘합성된 본문(conflate text)’이라고 주장한 8개 본문 중 무려 4개가 벌게이트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벌게이트가 단순히 라틴어 성경의 역할을 넘어, 그리스어 전통 본문(공인 본문)의 중요한 증거 자료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라스무스가 16세기 초 신약 그리스어 본문을 편집하면서 참고한 사본 중에는 일부 라틴 벌게이트가 보존하고 있는 공인 본문 계열의 구절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에라스무스는 이를 통해 자신이 만든 공인 본문(Textus Receptus)의 결손 부분을 보완하기도 했다. 이는 라틴 벌게이트가 비록 라틴어 번역본일지라도, 일정 부분 공인 본문 계열의 진리를 보존하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사례다. 결론 라틴 벌게이트는 제롬의 주도 하에 그리스어 사본들과 구 라틴역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나, 그리스어 사본들 중에는 공인본문과 일치하는 내용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벌게이트는 단순한 번역본 이상의 가치가 있으며, 특히 신약 성경의 본문 비평에서 공인본문의 정당성과 고대 전승의 일관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 자료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 사실은 현대 비평 본문 이론, 특히 웨스트코트-호르트 이론의 일방적인 주장에 대한 반론이 되며, 공인본문이 단순히 16세기 인쇄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초기 교회 시기부터 널리 사용되고 전수된 본문임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2025-05-24 19:56:48 | 관리자
고대 사본들과 역본들 역시 공인 본문(KJV 계열)의 고대성과 보편성을 증언하고 있다   교부들의 인용 외에도, 고대 사본들과 역본들 역시 공인 본문(KJV 계열)의 고대성과 보편성을 증언하고 있다. 다음은 그 주요한 예들이다. 첫째, 사본 W(Codex W 또는 Washingtonianus)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모두 포함한 복음서 사본으로, 1906년 아랍 상인이자 수집가였던 C. L. Freer에 의해 이집트 카이로 근처에서 구입되었다. 이 사본은 학자들에 의해 4세기 후반 또는 5세기 초반에 필사된 것으로 평가되는데, 특히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후반부에서 순수한 비잔틴 본문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주장한 바와 같이 비잔틴 본문이 4세기 안디옥 학자들에 의해 새로이 편집된 것이라는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고고학자 그렌펠(Grenfell)은 사본 W의 연대를 시내 사본과 비슷하게 주후 350년으로 추정하였다. 이 사본은 바인드레서 수도원(제3 피라미드 부근)에 소장되어 있었다는 사실로부터, 공인 본문이 이미 4세기 이전에 이집트에 존재했음을 입증한다. 다시 말해, 만일 비잔틴 본문이 안디옥에서 4세기에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어떻게 그 본문이 곧바로 이집트까지 퍼져서 사본 W와 같은 고대 사본으로 남겨졌겠는가? 그것은 시간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는 『The Washington Manuscript of the Four Gospels』(H. C. Sanders, pp. 41, 134)에서도 명확히 지적되고 있다. 둘째, 사본 A로 알려진 알렉산드리누스 사본(Codex Alexandrinus, 02)은 5세기 초, 즉 주후 410년경에 필사된 것으로 평가되며, 한때 가장 오래된 신약 사본으로 간주되었다. 이 사본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였던 키릴 루카르(Cyril Lucar)에 의해 영국 국왕에게 헌정되었고, 현재는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복음서 본문은 전반적으로 공인 본문과 일치하며, 이는 KJV 계열 본문의 고대성과 신뢰성을 지지한다. 알렉산드리아 사본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이 사본의 필사 장소는 알렉산드리아가 아니라 콘스탄티노플이나 그 인근, 혹은 이집트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레고리(1907년)와 케년(Kenyon, 1937년)의 판단에 따르면 이 사본은 이집트에서 필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5세기 초에 이미 공인 본문이 이집트에 존재했다는 또 하나의 확증이다. 셋째, 고트 역본은 주후 341년경에 울필라스(Ulfilas)에 의해 번역되기 시작한 성경이다. 그는 고트족의 사절로 비잔티움 제국을 방문하였고, 니코메디아의 감독 유세비우스에 의해 고트 지역의 감독으로 안수받았다. 울필라스는 사역지에 성경을 보급하기 위해 고트어 성경을 번역했는데, 이는 바티칸 사본이 작성된 350년보다 앞선 시기에 이루어졌다. 이 고트어 성경은 사복음서와 바울 서신을 포함한 아홉 개의 사본으로 현존하며, 그리스어 비잔틴 본문(KJV 계열)을 번역의 기반으로 삼았다. 케년(F. G. Kenyon), 알란드(Kurt Aland) 등 많은 본문학자들에 따르면, 고트 역본은 당시의 비잔틴 전통 본문에서 거의 그대로 번역되었으며, 현대 그리스어 다수 사본과 본문상 차이가 거의 없다. 선교사였던 울필라스는 회심한 이들에게 가장 정확하고 신뢰할 만한 성경을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최고의 본문을 바탕으로 번역했음이 틀림없다. 이러한 사실은 『Handbook to the Textual Criticism of the NT』(Kenyon, 1912, p. 240)에 기록되어 있다. 넷째, 타티안(Tatian)이 작성한 디아테싸론(Diatessaron, 사복음서 조화)은 주후 170년 무렵에 집필되었다. 그는 사복음서의 내용을 하나의 이야기 흐름으로 통합하면서 복음서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재배열하였다. 그런데 타티안이 사용한 복음서 본문은 오늘날의 KJV 본문과 거의 일치하며, 이는 그의 사본이 다수 전통 본문에 속한 것이었음을 보여 준다. 타티안은 시리아에 거주하였으므로, 복음서의 자필 원본이나 그에 가까운 초기 사본들에 접근할 수 있었던 환경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디아테싸론은 코이네 헬라어 전통의 성경 본문이 2세기 중반에 이미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었음을 증언한다. 다섯째, 페시타 시리아 역본(Peshitta)은 주후 170년경에 번역되었으며, 현존하는 사본이 350여 개에 이른다. 이 역본은 당시 시리아 지역 대부분의 교회에서 사용된 표준 성경이었다. 페시타의 본문은 그리스어 다수 사본, 곧 KJV 계열의 공인 본문과 본문상 큰 차이가 없으며, 이는 페시타가 초기 코이네 헬라어 전통에 기반하였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이 역본이 5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주장하였고, 에데사의 감독 라불라(Rabbula)가 주후 411년에 이 역본을 편찬했다고 상정하였다. 그러나 이는 아무런 역사적 증거 없이 세워진 가설에 불과하다. 오히려 다음 두 가지 이유로 페시타는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이 역본은 주후 440년경에 발생한 시리아 교회의 분열 이전에 두 분파 모두에게 수용되었기에, 그 이전에 권위를 확립했음이 분명하다. 둘째, 페시타에는 그보다 훨씬 앞선 ‘구 시리아어 역본’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역본은 전통 코이네 계열 본문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페시타가 2세기 후반까지 소급될 수 있으며, 이는 KJV 본문이 초기부터 존재했음을 입증한다. 여섯째, 시내 시리아 사본(Sinaitic Syriac)은 4복음서를 포함하고 있으며, 시내산의 성 캐더린 수도원에서 루이스 여사와 깁슨 여사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 사본의 연대는 대략 3세기 초로 추정된다. 버키트(Burkitt, 1904)는 이 사본이 알렉산드리아 본문이나 서방 본문과 일치하지 않으며, 오히려 공인 본문과의 일치가 훨씬 많다는 점을 밝혔다. 예컨대 눅 2:14에서 이 사본은 “사람들을 향한 선하신 뜻”이라 번역하고 있는데, 이것은 KJV 본문과 일치하고, 서방 본문 및 알렉산드리아 본문과는 차이를 보인다. 알란드(Kurt Aland)는 『신약 성경 본문』(p. 194)에서 이 사본이 디아테싸론처럼 복음서 내용을 통합하는 특성을 지녔다고 언급하였으며, 디아테싸론이 코이네 본문을 따랐으므로 이 사본 역시 같은 전통을 반영한다고 판단된다. 이처럼 고대 사본들과 초기 역본들, 특히 그 지역과 시기를 달리하는 다양한 문헌들조차 공인 본문, 곧 킹제임스 성경의 헬라어 근간 본문과 깊이 일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공인 본문이 단지 중세 이후에 인위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2세기부터 4세기까지도 널리 사용되었고 보존되어 왔다는 분명한 역사적 증거인 것이다.
2025-05-24 19:54:35 | 관리자
고대 초기 교부들은 공인 본문을 인용한다   주후 300년 이전의 초기 기독교 저술가들(흔히 '교부들'이라 불리는 이들)은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던 고대 성경 사본들로부터 공인 본문, 곧 킹제임스 성경(KJV)의 헬라어 근간이 되는 공인 본문(Textus Receptus)의 본문을 인용하고 있었다. 이 사실은 단순한 추정이 아니라, 방대한 역사적 자료와 문헌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19세기 말 본문 비평의 거두였던 존 윌리엄 버건(Burgon)은 『The Revision Revised』(pp. 244–245)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당신들은 고대성(Antiquity)을 말하지만, 정작 2세기부터 5세기의 자료들만 들고 나온다. 그것이 고대성의 증거가 되는가? 왜 디디무스(Didymus),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바실(Basil), 크리소스톰(Chrysostom), 티오도레트(Theodoret), 그레고리(Gregory), 키릴(Cyril) 등은 인용하지 않는가? 공인 본문은 비평 본문보다 초기 교부들로부터 더 풍부한 지지를 받는다." 버건은 주후 350년 이전의 저술가들이 총 86,489개의 신약 구절을 인용하고 있음을 통계로 제시했다. 이 방대한 인용 자료는 당시의 성경 본문이 공인 본문 계열, 즉 오늘날 킹제임스 성경의 본문과 같은 전통에 속했음을 명백히 입증한다. 에드워드 밀러(Edward Miller)는 『The Traditional Text of the Holy Gospels Vindicated and Established』(pp. 90–122)에서 이 인용구들을 추적, 확인하며 버건의 결론을 강화하였다. 그는 특히 니케아 공의회(AD 325) 이전의 모든 교부 문헌을 철저히 조사했고,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주장했던 것처럼 공인 본문이 AD 400년 이후에야 형성되었다는 이론이 완전히 허구임을 폭로했다. 밀러는 이렇게 말했다: "호르트는 자신의 주장이 더 이상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음을 알게 된 순간, 이론을 포기하거나 고치기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조작해 이론에 끼워 맞추었다. 25년 동안 아무도 루시안의 개정 작업이 실재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나는 AD 100~400년 사이의 기록들을 통해 고대 역본들과 교부들의 문헌이 바로 우리 편임을 입증하였다." (pp. 93–94) 그렇다면 누가 이 공인 본문을 인용했는가? 주후 100년부터 350년 사이, 대표적인 교부들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 있었다: 1세기 말~2세기 초: 이그네티우스, 디다케, 저스틴 마터, 디오그네투스 2세기 중반: 이레니우스, 타티안, 헤게시푸스, 클레멘트 3세기 초: 터툴리안, 오리겐, 히폴리투스, 노바티안 3세기 후반: 키프리안, 타우마투르구스의 그레고리, 디오니시우스 4세기 초: 아타나시우스, 예루살렘의 키릴, 디디무스, 유세비우스, 바실, 크리소스톰, 힐라리, 에피파니우스 등 이들 저술가들은 자신의 설교, 변증문, 논박문, 교리서 등에서 성경을 수시로 인용하였는데, 그 인용구들의 대부분이 KJV 본문과 일치한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5장 44절에서 KJV는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고 악의를 품고 너희를 다루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라고 되어 있으나, NIV와 현대 역본들은 이를 대폭 축약하거나 삭제하였다. 그러나 디다케, 사도들의 규범, 폴리캅, 저스틴 마터,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아테노고라스, 루시퍼, 터툴리안, 카르파수스의 필로, 파시아누스, 안디옥의 테오필루스, 힐라리, 클레멘스 알렉산더, 오리겐, 암브로스, 유세비우스, 아프라아테스, 아타나시우스, 묵시록 행전 등 최소 20명의 초기 저술가들이 이 전체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읽고 있던 성경이 바로 KJV 본문이었다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또한 마가복음 16장 9절부터 20절까지의 부활 후 예수님의 사역과 명령은 많은 현대 비평가들이 의심하거나 각주로 처리하지만, 파피아스, 저스틴 마터,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클레멘틴스, 히폴리투스, 필라티 행전, 유세비우스, 암브로스, 예루살렘의 키릴, 시리아 역본, 디디무스, 마카리우스 마그네스, 아프라아테스, 에피파니우스, 니싸의 그레고리 등 최소 21명의 교부들이 이 본문을 인용하거나 언급하였다. 요한복음 1장 18절에서 KJV는 독생하신 아들(the only begotten Son)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현대 역본들은 “독생하신 하나님(the only begotten God)”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이레니우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터툴리안, 예루살렘의 키릴, 디디무스, 히폴리투스, 아타나시우스, 세노두스 안티케나, 아르켈라우스, 보스트라의 티투스, 유세비우스, 알렉산더, 힐라리, 니싸의 그레고리, 암브로스, 유스타티우스, 파우스티누스, 빅토리어스 아페르, 오리겐, 바실 등 20명에 달하는 교부들이 ‘독생하신 아들'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 외에도 디다케는 마태복음 6장 13절의 송영(“왕국과 권능과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니이다. 아멘.”)을 포함하고 있으며, 바나바와 이레니우스, 오리겐은 마태복음 9장 13절의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라는 구절을 명확히 인용하였다. 마태복음 18장 11절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것을 구원하려고 왔느니라.”라는 구절은 오리겐, 타티안, 터툴리안, 힐라리, 암브로스, 바실, 크리소스톰 등에 의해 증언된다. 이처럼 교부들의 저작은 단순한 신학적 수단이 아니라, 그 시대에 사용되던 성경 본문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역사적 증거물이다. 이들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설교하기 위해 자신들이 실제로 손에 쥐고 있던 성경을 인용한 것이며, 그 내용은 현대 비평 본문이 아니라 킹제임스 성경이 근거한 공인 본문과 일치한다. 이러한 증거들을 고려할 때, 비평 본문은 고대성, 사용 빈도, 교회사적 증거 면에서 KJV 본문을 결코 능가할 수 없다. 오히려 초대 교회 시대의 신실한 목회자들과 신학자들, 곧 '교부들'의 손과 입술에서 인용되었던 성경은 KJV 본문이었다. 에드워드 밀러와 같은 학자들이 밝혀낸 역사적 사실은 이러하다: 비잔틴 본문은 단지 후대의 것이 아니다. AD 300년 이전에 이미 공인 본문이 존재했으며, 초기 교회는 이 본문을 성경으로 받아들이고 설교하며 기록 속에 남겼다. 결국 웨스트코트–호르트 이론과 현대 비평 본문은 이들 고대 증언을 무시하거나 왜곡하며 등장한 '새로운 학문'에 불과하고, 역사와 실제 사료는 여전히 킹제임스 본문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은 단순한 17세기 번역본이 아니라, 초대 교회의 사본 전통과 교부 문헌에 뿌리를 둔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2025-05-24 19:51:33 | 관리자
킹제임스 성경(KJV)의 본문은 후대의 몇몇 사본에 불과한가? 왜 이 성경이 지금도 가장 우수한 성경인가?   사본의 역사는 무엇을 말하는가? KJV 반대자들은 흔히 이런 주장을 내세운다: “KJV는 단지 4~5개의 비교적 늦은 시기의 사본에 근거해 만들어졌다. 현대에는 더 오래되고 더 정확한 사본들이 있으니, KJV보다 더 나은 성경 번역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KJV는 단지 ‘몇 개’의 사본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전체 사본 전통에서 가장 풍부하고 널리 퍼진 다수 본문(majority text)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이것이 초대 교회의 실제 사용과 보존의 결과임을 역사와 학문이 증거하고 있다. 1. 고대 사본의 실제 증거들 p66, p75, p45 등 초대 교회 시기 파피루스 p66 (주후 200년경): 요한복음을 포함하는 이 파피루스는 KJV 계열의 본문과 상당히 높은 일치율을 보인다. p75 (주후 200년대 초반):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포함하며, 종종 알렉산드리아 계열과 연결되긴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KJV와 더 가까운 독립적인 전통도 나타낸다. p45 (주후 250년경): 복음서와 사도행전 본문을 담고 있으며, 복합적 양상을 보이나 역시 KJV 본문과 많은 유사성을 가진다. 이것은 KJV의 본문이 후대의 인위적인 편집물이 아니라, 초대 교회 시기부터 사용되던 전통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2. 사본 수의 압도적 우세 전 세계적으로 보존된 그리스어 신약 성경 사본은 약 5,800개 이상이며, 이 중 약 99%가 KJV 본문 계열(다수 본문, Byzantine text)과 일치한다. 반면, 현대 역본의 기초가 된 소수 본문(minority text, 알렉산드리아 계열)은 전체의 1% 미만에 불과하다. 단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선택되었다는 이 알렉산드리아 사본들(예: 바티칸 사본 B, 시내 사본 ℵ)은 매우 제한적인 지역(이집트 지역)에서 보존된 것이며, 상호간에도 심각한 이문(異文) 차이를 보인다. 예: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은 서로 다음과 같은 차이를 보인다. 복음서에서만 3,000개 이상의 차이점 수많은 생략, 첨가, 재배열 이러한 사본들이 ‘더 정확하다’라는 주장은 지역적 편중과 학문적 독단에 불과하다. 3. 본문 비평의 문제점과 킹제임스 본문의 안정성 현대 성경 번역자들은 대부분 사본 자체를 연구하지 않는다. 루이스 포스터(Lewis Foster)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신약 성경 번역자들은 사본들 자체를 다루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현대 그리스어 본문(UBS/NA)만 가지고 간접적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Selecting a Translation of the Bible, pp. 14–15) 즉, 이들은 몇 명의 비평가들이 구성한 본문을 의심 없이 받아들일 뿐, 진지하게 사본을 비교하거나 본문 역사 전체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킹제임스 번역자들은 당대 최고의 헬라어, 라틴어, 시리아어, 고트어, 독일어, 프랑스어 번역들을 비교하고, 가장 널리 사용된 본문을 채택하였다. 그 결과물이 바로 Textus Receptus(공인 본문)이다. 4. 파피루스 발견은 KJV 본문의 정당성을 입증했다 호르트(W. H. Hort)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KJV 본문은 루시안(Lucian)이 주후 300년경 여러 본문을 합성하여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아무런 실증적 근거가 없다. 오히려 현대에 발견된 파피루스들이 KJV 본문과의 일치를 보여줌으로써, 이 주장은 완전히 무너졌다. 1937년 케년(Kenyon)조차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만약 루시안 이전의 시기에 KJV 계열의 본문이 존재했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호르트 이론의 핵심은 무너진다.” (The Text of the Greek Bible, pp. 203–212)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바로 그것이 입증된 시대에 살고 있다. 초기 파피루스들이 보여주는 KJV 본문의 존재는 호르트 이론뿐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만든 현대 역본의 정당성까지 뿌리째 흔들어 놓는다.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말씀 킹제임스 성경은 단지 고대 사본들과 일치하는 정도를 넘어서,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수세기 동안 성도들의 손에 들려진 성경이었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 시편 12:6–7 (흠정역) 하나님은 단지 영감(inspiration)만이 아니라, 보존(preservation)도 약속하셨다. 이 말씀을 가장 충실히 보존해 온 성경이 바로 킹제임스 성경이며, 그 기반이 된 Textus Receptus는 그 보존의 산물이다. 5. 결론: KJV는 단순히 ‘좋은 번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보존된 말씀 사본의 수적 증거: 약 99%가 KJV 본문 계열. 고고학적 증거: 초기 파피루스에서 KJV 본문 확인. 역사적 사용: 1,600년대 이후 전 세계 성도들의 공용 성경. 학문적 신뢰성: 혼합본이 아니라 통일된 전통을 기반으로 함. 신학적 확실성: 하나님의 말씀 보존 약속을 성취함. 킹제임스 성경은 단지 오래된 번역이 아니라, 말씀 보존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유일한 기준이었다. 오늘날 성도들이 신뢰하고 읽어야 할 유일한 영어 성경, 그리고 한글로 번역된 흠정역 성경은, 바로 이 영광스러운 전통 위에 서 있다.
2025-05-24 19:43:14 | 관리자
마가복음 16장 9–20절: 성경에서 삭제되어야 하는 구절인가? 현대 역본들 가운데 대표적인 NIV(New International Version)는 마가복음 16장 8절과 9절 사이에 다음과 같은 주석을 삽입하고 있다: "[가장 신뢰할 만한 고대의 사본들과 다른 증거들에 의하면 막16:9-20은 없다.]" 이러한 주석은 독자들로 하여금 마가복음 16장의 마지막 12절이 성경에 없어야 할 구절이라는 인식을 갖게 만든다. 본문 비평학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이 12구절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이 일종의 학문적 유행이 된 듯하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9–20절을 마가복음 본문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몇몇 그리스어 사본(실제로는 바티칸 사본 B와 시내 사본 א 뿐)과 일부 초기 저술가들이 이 구절들을 포함하지 않는다. 9–20절의 문체와 어휘가 마가복음의 다른 부분들과 다르다. 누군가가 이 구절들을 후대에 첨가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진짜 상황은 정반대다. 실제로 존재하는 증거들은 마가복음 16장 9–20절이 100%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보여 준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사본의 증거 19세기의 한 학자에 따르면, 마가복음 16장 9–20절은 600개 이상의 소문자 사본과 20개 고대 대문자 사본 중 18개 사본에서 발견된다. 즉, 총 618개의 그리스어 사본이 이 구절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고대 대문자 사본 중 알렉산드리아 사본(A), 에프래미 사본(C), 베자 사본(D) 등은 9–20절을 포함하고 있으며, 반대로 이를 생략하는 사본은 **바티칸 사본(B)**과 시내 사본(א) 단 두 개뿐이다. 그런데 이 두 사본은 본문 전체에서 심각한 훼손과 부주의한 누락을 보이는 신뢰할 수 없는 사본들이다. 실제로 바티칸 사본은 사복음서 전체에서 1,490회 이상 단어나 구절을 삭제하고 있으며, 시내 사본은 반복, 누락, 부정확한 필사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특히 시내 사본의 마가복음 마지막 부분을 보면, 막 16:9–20이 들어갈 수 있는 빈 공간이 남겨져 있으며, 이는 이 구절이 본래 포함되어 있었으나 고의로 지워졌거나 빠졌음을 보여 준다. 데이비드 L. 브라운 목사는 직접 대영박물관에서 이 사본을 관찰한 후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막 16:9-20 말씀이 누락되어 있었고, 그 부분에 무언가가 있었으나 지워졌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다." 2. 초기 교회 저술가들의 증거 초대 교회의 18명의 저술가들이 마가복음 16:9–20절을 인용하고 있으며, 그 중 일부는 상세한 주석까지 남겼다. 이들은 다음과 같다: 파피아스 (주후 100년) 터툴리안 (145–220년) 저스틴 마터 (151년) 타티안 (150년) 이레니우스 (180년) 히폴리투스 (190–270년) 빈센티우스 (256년) 어거스틴 (400년) 니고데모 복음서 (250년경) 사도들의 헌장 (300년경) 유세비우스 (325년) 아프라아테스 (337년) 암브로스 (374–397년) 크리소스톰 (400년) 제롬 (331–420년) 네스토리우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 (410년) 안디옥의 빅터 (425년) 빅터는 유세비우스의 의심을 인용하면서 반박하였고, 자기가 가진 팔레스타인 사본에도 9–20절이 있었다고 증언하였다. 이처럼 고대의 다양한 지역과 시기에 걸친 일관된 증거는 이 구절이 초대 교회에서 성경으로 인정받았음을 보여 준다. 3. 고대 역본들의 증거 고대 세계의 13개 주요 성경 역본들이 9–20절 말씀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는 그 대본이 되는 그리스어 사본들이 본래 이 구절을 포함하고 있었음을 입증한다: 2세기: 구 라틴역, 페시타 시리아역 3세기: 콥트역, 사히드역, 보하이르역, 파이움역, 큐레톤 시리아역 4세기: 제롬의 라틴역, 고트역 5세기: 아르메니아역, 이집트역, 필록세니아나 시리아역 6~7세기: 그루지아역, 에티오피아역 4. 성구집의 증거 교회 공예배에서 성경을 낭독할 때 사용하던 성구집(Lectionaries) 들도 마가복음 16:9–20을 포함한다. 대표적으로 60, 69, 70, 185, 547, 1761번 사본 등에서 확인된다. 당시 관습에 따라 낭독 시작 지점에는 '아르케'(시작), 종료 지점에는 '텔로스'(끝) 라는 단어를 표기했는데, 마가복음의 한 필사자는 8절 후에 있는 '텔로스'를 오해하여 거기서 복음서가 끝났다고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사본 24번은 8절 후에도, 20절 후에도 각각 '끝'이라는 표시를 모두 가지고 있어 9–20절이 정식 본문으로 포함되어 있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5. 신학적·문학적 일관성 마가복음이 16장 8절에서 다음과 같이 끝난다면: "그들은 무서워 떨며 도망하였고,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이는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마가복음의 전체 흐름, 곧 예수님의 부활과 승리의 메시지와 전혀 맞지 않는다. 또한 다른 세 복음서들의 결말과 조화를 이루지도 않는다. 마가는 독자들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과 믿음을 남기고자 했으며, 이 절정은 바로 9–20절을 통해 성취된다. 결론 마가복음 16:9–20은: 618개의 그리스어 사본에 포함되어 있고 18명의 초기 교회 저술가들이 인용하고 주석하였으며 13개 고대 성경 역본들이 이 구절을 포함하고 있고 성구집과 교회 예배 전통 속에서 사용되었으며 문학적, 신학적으로도 복음서의 완전한 결말을 제공한다. 반면, 이 구절을 제외한 사본은 오직 두 개뿐이며, 그마저도 신뢰하기 어려운 부패된 사본이다. 당신은 무엇을 믿을 것인가? 618개의 일관된 사본들과 초기 교부들의 역사적 증언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두 개의 손상된 사본과 일부 현대 비평가들의 주장을 믿을 것인가? 마가복음 16장 9–20절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
2025-05-23 19:35:48 | 관리자
신약 성경 본문 역사와 관련해서 다수 본문이 모든 사본의 98%를 차지한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오늘날 신약 성경 본문과 관련된 가장 중대한 사실 중 하나는, 전체 현존 사본들 가운데 약 98%가 '다수 본문'(Majority Text) 계열에 속한다는 점입니다. 이 본문 계열은 킹제임스 성경(KJV)의 원문이 되는 ‘공인 본문’(Received Text, Textus Receptus)과 거의 일치하며, 1,000년 이상에 걸쳐 동방 교회와 정통 신자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낭독되고 복사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현대 역본들(NIV, NASB, ESV 등)의 기초가 되는 소수 사본들(예: 바티칸 사본, 시내 사본)은 전체 사본의 불과 1~2%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수 사본이 오늘날 학계와 출판사에서 더 “신뢰받는다”고 주장되는 것은 과연 타당한 일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논점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1. 다수 본문은 원본에서 나왔다 다수 본문이 전체 사본의 98%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단순한 수의 문제가 아니라, 본문 보존의 흐름과 그 기원을 가리키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초대 교회는 사도들의 서신과 복음서를 신중하게 복사하고 전달했으며, 각 지역 교회들 간에 말씀을 교환하고 낭독하였습니다. 사본의 대다수가 동일한 본문을 담고 있다는 것은, 그 공통된 원형이 있다는 것이며, 바로 그것이 **자필 원본(original autographs)**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믿는 자들에 의해 신실하게 보존되었으며, 이 보존의 결과물이 바로 다수 본문입니다. 2. 루시안 개정 이론: 호르트의 허구 19세기 본문 비평학자인 **호르트(Hort)**는 다수 본문의 압도적 존재를 불편하게 여겼고, 그래서 이를 설명하기 위해 **‘루시안 개정설’**이라는 이론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주후 250년경 **안디옥의 루시안(Lucian)**이라는 인물이 신약 성경을 고의적으로 "수정"하여 다수 본문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이론은 단 하나의 역사적 증거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루시안이 실제로 그런 작업을 했다는 기록은 고대 교부들 가운데 누구도 남기지 않았고, 그에 대한 논쟁이나 반박, 혹은 교회 회의에서의 언급조차 없습니다. 만일 루시안이 신약 성경 전체를 ‘개정’하고 그것이 전체 교회에 퍼졌다면, 교부들 사이에서 분명히 격렬한 반발이나 논쟁이 있었어야 합니다. 초기 교회는 성경의 권위에 극도로 민감했기 때문에, 고의적인 변개는 결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시안 개정설은 아무도 저항하지 않았고, 아무 기록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는 호르트의 이론이 단지 다수 본문을 제거하기 위한 조작된 가설에 불과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 이론은 학문적으로 폐기되었습니다. 3. 다수 본문 내부의 일치성과 소수 본문의 불일치 다수 본문은 사본의 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본문 자체의 일치율도 매우 높습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다수 본문 사본들은 놀라울 정도로 본문의 내용이 일관되며, 구절의 존재 여부나 구문의 위치, 문장 구조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습니다. 반대로, 소수 본문들은 사본 간 차이가 너무도 심각합니다. 바티칸 사본(B), 시내 사본(א), 알렉산드리아 사본(A)은 서로 다른 수천 개의 이문들을 지니며, 동일한 구절조차 서로 다르게 기록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따라서 소수 사본들끼리도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것들이 결코 ‘원본’에 가까운 계열이 아님을 입증합니다. 4. 역사적으로도 다수 본문에 대한 저항이 없었다 다수 본문은 자발적이고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으며, 교회 전체가 이를 사용해 왔습니다. 만일 다수 본문이 루시안이나 다른 어떤 개인에 의해 고의로 만들어진 결과였다면, 그 과정에서의 논쟁, 교회적 저항, 문서 기록이 반드시 남아 있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클레멘트(주후 96년)**는 이미 신약의 27권 중 16권에서 인용하고 있으며, **베드로(주후 70년 이전)**는 바울의 서신을 “다른 성경기록”으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신약 성경 본문이 일찍부터 정리되고 전승되어 왔음을 보여줍니다. 5. 실제 사본 증거: 마가복음 16장 삭제 사건 소수 사본이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보여주는 한 가지 예는 마가복음 16장 9–20절의 삭제 사건입니다. 시내 사본(Codex Sinaiticus)은 이 구절이 빠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본을 직접 확인한 데이비드 L. 브라운(David L. Brown) 목사는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나는 대영 박물관에 가서 시내 사본을 직접 확인했으며, 마가복음 16장 9–20절이 누락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구절이 있었던 자리에 빈 공간이 남아 있고, 지워진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의도적으로 그 구절을 제거한 것임을 보여준다.” 출처: logosresourcepages.org/Versions/uncials.htm 이는 단순한 필사 실수가 아닌 고의적 변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결론: 다수 본문이 98%를 차지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섭리와 교회의 신실함 때문이다 결국 다수 본문이 전체 사본의 98%를 차지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증명합니다. 본문의 기원이 자필 원본에서 시작되었음을 입증한다. 교회가 이 본문을 신실하게 받아 보존해왔음을 보여준다. 변개된 소수 사본은 중심에서 밀려나 변두리로 사라졌음을 드러낸다. 현대 본문 비평학은 때로 다수 본문을 무시하고 소수 사본을 절대시하지만, 이것은 논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매우 취약한 입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신다는 약속(시 12:6–7; 마 24:35)은 다수 본문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다수 본문은 우연히 많아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교회의 신실한 사본 보존 역사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 성경의 진정한 본문을 찾으려 할 때, 킹제임스 성경이 기반한 전통적 다수 본문 계열을 신뢰해야 하며, 알렉산드리아의 소수 사본과 그에 기초한 현대 역본들에 대해 경계해야 합니다.
2025-05-23 18:21:21 | 관리자
신약 성경 본문 역사와 관련해서, 만일 신약 성경 사본들의 전달 과정이 정상적이었다면 살아남은 사본들은 어떤 모습이 될까?   이 질문은 매우 본질적인 문제를 다룹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진 이후, 교회 역사 속에서 그 말씀이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고 보존되었는지를 이해하려면, 사본들의 흐름과 특징을 바라보는 것이 결정적입니다. 만일 신약 성경의 전달 과정이 정상적이었다면, 즉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보존하신 원리대로 교회가 말씀을 신중하게 보존했다면, 살아남은 사본들은 어떠한 형태를 이루고 있어야 할까요? 1. 다수와 중심: 큰 물줄기의 형상 정상적인 전달이란, 처음부터 진리를 받은 사람들이 정직하게 사본을 필사하고, 이 사본들이 신속하게 널리 퍼져나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흐름이 있었다면, 우리는 하나의 굵은 본문 전통이 중심이 되고, 그 주변에 비교적 작고 흩어진 변개된 사본들이 존재하는 구조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큰 강이 한 방향으로 흐르며 중심 물줄기를 이루고, 그 주변에 일부 잔물결이나 소용돌이가 가장자리에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즉, 사본의 다수는 중심의 본문을 반영하고, 그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일부 사본들만이 오류나 변개를 담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구조는 성경 본문 역사에서 실제로 그대로 관찰됩니다. 우리가 보는 **다수 사본(Majority Text)**은 거의 동일한 형태로 수많은 사본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며, 이 본문이 전통적으로 ‘공인 본문(Received Text)’ 혹은 ‘텍스투스 레셉투스’라고 불려온 것입니다. 이는 정통 교회들이 사용해온 본문이며, 하나님께서 섭리로 보존하신 말씀의 흐름이기도 합니다. 2. 역사적 근거: 다수 사본의 압도적 우위 실제 전해진 신약 성경 사본들 가운데 95% 이상이 이 다수 본문 계열에 속해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 아시아 소아시아, 시리아, 동방 교회들에 의해 보존된 본문들로, 킹제임스 성경(KJV)과 루터 성경, 종교개혁자들이 사용했던 성경들이 모두 이 본문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반면, **변개된 소수 사본들(예: 시내 사본 Codex Sinaiticus, 바티칸 사본 Codex Vaticanus)**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지역에서 주로 등장하며, 전체 사본 중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이들은 주류에서 벗어난 본문을 담고 있으며, 구절 생략, 단어 변경, 의도적인 왜곡이 빈번하게 발견됩니다. 이는 이미 정상적인 전달 과정에서 벗어난 흔적들입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초대 교회가 사도들의 권위를 따르며 본문을 신중하게 전파했던 지역에서는 이러한 사본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교회가 신속히 거부하거나 사용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신학적 분별: 살아남은 사본은 교회의 선택을 반영한다 본문 보존은 단지 기술적 필사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교회의 분별이라는 신학적 틀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안에서 말씀을 보존하셨고, 교회는 성령님의 조명을 따라 진리를 분별해왔습니다. 정통 교회는 다수 사본의 본문을 채택하고 이를 낭독과 설교의 중심으로 삼았으며, 신자들도 이 본문을 통해 구원을 얻고 신앙을 지켜왔습니다. 반면, 변개된 소수 사본은 초기부터 교회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고, 이단들이나 불신자들의 철학적 해석을 더 잘 반영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결국 어떤 사본이 ‘살아남는가’라는 문제는, 단순한 종이의 수명이나 환경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본문과 교회의 선택이라는 요소가 결정짓는 것입니다. 살아남은 사본이 다수 본문 중심이라는 사실은 이 선택과 섭리를 강력하게 반영합니다. 4. 변개 사본은 왜 주변부에 머무는가? 역사적으로도 변개된 본문이 중심을 차지하지 못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초대 교회는 원본과 일치하지 않는 사본을 적극적으로 거부했다. 폴리캅과 같은 초대 교부들은 여전히 원본 구절을 확인할 수 있었고, 기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 지역과 소아시아의 교회들은 원본에 충실한 사본을 신속히 확산시켜 다수 사본군을 형성했다. 부패한 사본들은 필사자들과 독자들에 의해 신뢰를 얻지 못했고, 시장성도 없었기에 점차 사멸되었다. 결론: 정상적 전달의 본 모습 따라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만일 신약 성경의 전달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정상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면, 살아남은 사본들은 다수로 존재하며, 본문은 대체로 일관되고 안정적이어야 하며, 일부 변개된 사본들이 주류의 바깥쪽에서 제한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오늘날 우리가 가진 사본의 분포와 본문들의 차이는 바로 이런 모습을 보여 줍니다. 킹제임스 성경과 전통 본문(공인 본문)은 이러한 중심적 흐름의 정점에 서 있으며, 알렉산드리아 본문 계열과 그 기반 위에 세워진 현대 역본들은 본문의 주변부에 존재하는 소용돌이에 불과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정상적 본문 전달 과정이 이루어졌다는 가장 확실한 외적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혼란 속에 묻히지 않았으며, 역사의 강물 속에서 섭리적으로 보존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보존된 말씀 위에 우리의 신앙과 삶을 세워야 합니다.
2025-05-23 18:17:57 | 관리자
신약 성경 본문은 누구에 의해, 어디에서 가장 충실히 전달되었는가?   신약 성경의 본문은 수 세기를 거쳐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모든 지역의 교회들이 동일한 위치에서 이 본문을 전승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역사적 증거는 자필 원본을 소유한 지역들이 본문 전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는 본문의 보존과 정통 신앙의 유지를 논할 때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자필 원본의 보관 지역 신약 성경의 자필 원본은 전 지역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소아시아 지역에는 총 12권의 자필 원본이 있었다: 요한복음,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빌레몬서, 베드로전서, 요한1서, 요한2서, 요한3서, 요한계시록. 그리스에는 6권: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도서(크레타 포함). 로마에는 2권: 마가복음, 로마서. 소아시아 또는 로마에는 4권: 누가복음, 사도행전, 베드로후서, 유다서. 소아시아 또는 팔레스타인에는 2권: 마태복음, 야고보서. 로마 또는 팔레스타인에는 1권: 히브리서. 이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소아시아와 그리스: 18권에서 24권의 자필 원본 소유 로마: 2권에서 7권 팔레스타인: 3권 이집트(알렉산드리아): 0권 결국, 자필 원본의 수가 가장 많은 곳은 소아시아와 그리스, 가장 적은 곳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였던 것입니다. 신약 시대의 가장 초기에, 가장 신뢰할 만한 사본들은 자필 원본이 존재하던 이 지역들, 즉 소아시아와 그리스 지역에서 가장 많이 보급되었고,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본문 보존에 있어 최악의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 사본의 즉각적인 필사와 확산 신약 성경이 기록되자마자 사본 제작은 즉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의 교회들은 원본에서 정확하게 필사된 사본을 원했을 것입니다. 주후 96년경 클레멘트는 신약 27권 중 16권의 말씀을 인용하였으며, 이는 신약 성경 사본들이 그 시기까지 널리 보급되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또한, 사도 베드로는 주후 70년 이전에 바울의 서신들을 ‘다른 성경기록들’로 간주하며 그 권위를 인정했습니다(벧후 3:16). 원본을 소유하고 있던 지역의 성도들은 다른 지역의 성도들을 위해 원본에서 충실히 복사한 사본들을 마치 수증기처럼 분출해 냈습니다. 초기에 필사된 사본들은 원본과 직접 대조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변개 없이 정확히 복사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컨대 에베소 교회는 주후 200년경에도 요한복음의 자필 원본이나, 최소한 아주 좋은 상태의 초기 사본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수 사본군의 형성과 변개 방지 좋은 상태의 사본들이 초기에 널리 퍼지면서 ‘다수 사본군’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다수 사본군은 이후 수 세기에 걸쳐 신약 성경의 본문 전통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사본들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변개된 본문들이 넓게 수용되는 것을 막았고, 전통 본문의 권위가 굳건하게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초창기의 견고한 형성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지속되었고, 결국 공인 본문(Received Text)이 탄생하게 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비정상적인 본문 전달과 이단들의 시도 그러나 모든 본문 전통이 신실하게 전수된 것은 아닙니다. 일부 사람들은 악한 동기로 성경 본문을 의도적으로 변개하였습니다. 신약 성경과 초기 교부들은 이러한 변개자들에 대해 강하게 경고하였습니다. 이들은 성경의 단어들을 자기들 교리에 맞추어 고쳐 쓰며, 경솔한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려 했습니다. 주후 200년까지의 심각한 변개 성경 본문이 가장 심각하게 부패한 시기는 신약이 기록된 지 100년 이내였다고 스크리브너(Scrivener)는 말합니다(『신약의 비평학에 대한 명백한 개론』, 4판, vol. 2, p. 264). 킬패트릭(Kilpatrick)은 체스터 비티 파피루스와 보드머 파피루스(p45, p66, p75 등)가 요한복음의 70구절에서 서로 73번이나 다른 이문들을 보인다고 지적하였습니다(『The Bible Translator』, 1958년 7월호, pp. 128–129). 쥰츠(Juntz)는 “현대 본문 비평학은 2세기경, 즉 성경 본문을 제멋대로 고치는 시기가 되기 전에 멈추고 만다.”고 말합니다. 킬패트릭은 “새로운 이문들을 만드는 작업은 주후 200년경에 끝났다”고 말하는데, 이는 성경 독자들이 잘못된 사본들을 더 이상 구입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리겐 같은 사람도 마태복음 19장 19절을 변개하려 했으나, 이는 단 한 개의 사본에만 영향을 미쳤을 뿐 다수 사본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3세기 이후로는 본문을 변개하는 자유도 제한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단들과 그들의 실패 가이우스는 주후 190년경에 네 명의 이단들을 지목하며, 이들이 자기 사본의 원본을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변개한 사실을 부인하지 못했다고 증언했습니다(버건, 『The Revision Revised』, p. 323). 만약 가이우스 역시 자신의 원본을 제시할 수 없었다면, 그의 고발은 공허한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변개 시도들이 광범위하게 퍼지지 못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폴리캅은 주후 150년에도 여전히 원본 구절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자필 원본이 존재했기 때문에, 부패한 사본들에 대한 비교 기준이 있었습니다. 다수 사본군이 이미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사본이 더 많이 유통되었습니다. 시리아어 역본이나 구라틴역 같은 고대 번역본들이 다수 사본과 일치했기 때문에, 전통 본문을 뒷받침했습니다. 초기 교부들이 이단이나 불신자들의 공격에 맞서 성경을 광범위하게 인용한 것이, 전통 본문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결론 신약 성경의 본문은 단지 우연이나 혼란스러운 필사 전통으로 전승된 것이 아닙니다. 자필 원본이 보관되었던 지역에서 정확하고 신실하게 사본이 제작되었고, 초기 교회는 변개된 본문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그것을 분별해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증거들은 다수 사본군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실제로 자필 원본과 가까운 본문을 보존한 신실한 전통임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이 귀중한 본문을 통해 오늘날도 하나님의 변개되지 않은 말씀을 손에 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결론 신약 성경의 본문은 단지 우연이나 혼란스러운 필사 전통에 의해 전해진 것이 아닙니다. 자필 원본을 보유했던 소아시아와 그리스 지역의 교회들은 본문 전달에 있어 중심적인 위치에 있었으며, 정확하고 신실한 사본들을 적극적으로 제작하고 널리 퍼뜨렸습니다. 이들은 본문을 보호하고 정통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실제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며, 다수 사본군의 형성과 전통 본문의 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반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자필 원본을 단 한 권도 보관하고 있지 않았던 지역이었으며, 이곳에서 만들어진 사본들—대표적으로 Vaticanus와 Sinaiticus—은 본문 변개가 심각하게 이루어진 흔적들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들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본문이 삭제되고, 구절이 생략되며, 왜곡된 문장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음이 확인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사본들은 후에 로마 가톨릭의 영향 아래에서 **소수 사본(textus corruptus)**으로 보존되었고, 19세기 서구 비평학자들(웨스트코트, 호르트 등)에 의해 재등장하면서 현대 역본들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결국, 소수 사본의 정체는 자필 원본과 거리가 멀고, 초기 교회의 보편적 전통에서도 배제되었으며, 천주교적 전통과 연결된 이질적 본문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결국, 우리가 신뢰해야 할 본문은 **다수 사본들(전통 본문, 공인 본문)**이며, 이 본문은 자필 원본과 가까운 사본들을 기반으로 형성되었고, 교회사 전반에 걸쳐 성령님의 섭리 아래 교회가 받아들여 온 본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킹제임스 성경(KJV)**과 그 전통은 바로 이 다수 사본군에 기초해 있으며, 신실한 본문 보존의 열매인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최악의 본문 전통이며, 이것을 기초로 삼은 현대 역본들은 진리를 온전히 보존하고 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성경관은 반드시 ‘어떤 본문인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하며, 진리의 말씀을 보존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는 성경관 위에 서야 합니다.
2025-05-23 18:14:04 | 관리자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신약 성경 본문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신약 성경 본문과 관련하여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이론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본문 보존에 무관심했고, 성경의 순수성을 유지할 능력도 없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역사적 증거에 비추어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구약 성경을 경건히 여겼던 유대인 출신들이었으며, 그들이 가진 신중함과 경외심은 신약 성경 본문 보존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성경 보존에 대한 경외와 분별 유대인들은 구약의 일점일획도 소중히 여겼고 철저하게 보존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러한 전통 속에서 형성된 자들로, 정직성과 지적 능력 면에서 오늘날의 우리보다 결코 뒤지지 않았다. 바울, 요한, 아볼로, 누가 같은 사도들과 교사들은 그 시대 최고의 지식과 경건을 갖춘 인물들이었다. 이들이 이끈 교회는 무엇이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인지 분별할 수 있었으며, 본문 비평학자 없이도 진리를 보존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책임감을 지니고 있었다. 사도들은 거짓 교사들의 출현을 경계하라고 여러 차례 경고하였다.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3장 16절에서 무식하고 불안정한 자들이 바울의 서신과 다른 성경기록들을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가감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남기고 있다. 이러한 말씀들은 초기 성도들이 본문 보존에 대해 부주의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초기 교부들과의 증언 이그나티우스와 폴리캅 이그나티우스(주후 30–107년)는 교회들 간의 활발한 소통을 기록하면서, 교회 간의 결속과 함께 이단에 대한 상호 경계를 강조했다. 이는 초기 교회들이 분명한 정체성과 진리 보존 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폴리캅은 “누구든지 주님의 말씀을 변개하는 자는 사탄의 맏아들이다”(제1권, p.34, 7장)라고 단호히 경고하였다. 이처럼 초기 교부들은 본문 변개에 대해 심각하게 여겼고, 그러한 일에 대한 경고도 아끼지 않았다. 마르시온의 도전과 교회의 대응 이단 마르시온이 신약 성경 본문을 변개하자, 믿음의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하였다. 그들은 신약 정경을 규정하고 말씀들을 간수함으로써, 성경 본문의 순수성을 지키는 데 앞장섰다. 이는 변개 시도에 대해 교회가 수동적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디오니시우스와 고린도 교회 고린도 교회의 감독이었던 디오니시우스(주후 168–176년)는 거룩한 성경기록들이 훼손된 것에 대해 불평하며 이를 문제 삼았다. 이는 당시 교회가 본문 변조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터툴리안의 증언 터툴리안(주후 145–220년)은 자신이 말씀의 원래 소유자들로부터 직접 전해받은 확실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자신을 사도들의 상속자라 말하며, 그 유언장과 언약들을 신중하게 간수하고 있다고 하였다. 특히 주후 208년에는 자필 원본들이 여전히 낭독되고 있었음을 이렇게 기록한다: “그들(이단들)은 사도들의 자리가 아직도 으뜸가는 자리로 남아 있고, 거기서 그들의 진실한 기록들이 낭독됨을 보게 될 것이다... 당신들은 에베소, 고린도, 빌립보, 데살로니가, 심지어 로마에까지 이를 수 있으며, 거기서 사도들 자신의 권위를 손에 쥘 수 있다.” 이러한 언급은 자필 원본 또는 초기 사본들이 오랫동안 교회 안에서 보존되며 사용되었음을 나타낸다. 이는 같은 시기인 주후 200년경에 등장한 변개된 파피루스 사본들(p46, p66, p75)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폴리캅 –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캅은 사도 요한과 개인적으로 교제한 인물로서, 요한계시록의 원본에서 직접 필사된 사본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레니우스는 폴리캅을 매우 존경했으며, 그가 전한 말씀들을 받아들였다. 교회 전반의 사본 확산 저스틴 마터와 이레니우스는 주후 177년경에 교회들이 이미 전 지역에 퍼져 있었음을 언급한다. 이는 수많은 교회들이 신약 성경의 사본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며, 초기부터 많은 사본들이 존재했다는 증거다. 경제적 여건이 되는 개인들도 사본을 소유할 수 있었고, 이는 신약 성경 말씀이 교회와 개인을 통해 널리 보급되었음을 시사한다. 결론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주장한 바와 달리,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신약 성경 본문 보존에 있어 무관심하거나 무능력한 자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구약 성경을 보존하던 유대인의 전통을 이어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며 신중히 다루었다. 사도들과 초대 교부들, 그리고 각 지역 교회는 본문을 왜곡하려는 시도에 맞서 경계했고, 이단에 대응하며 정경을 수호했다. 초기 교회가 보여준 이러한 본문 보존의 노력은 오늘날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공인 본문’의 신뢰성을 강하게 뒷받침해 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무지나 방심으로 훼손되지 않았고, 성령의 인도 아래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 충실히 보존되어 왔다.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이 단지 오래된 문서가 아니라, 역사를 관통해 보존된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다시금 증명해 준다.
2025-05-23 18:07:52 | 관리자
신약 성경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졌는가?   신약 성경 본문의 역사와 권위에 대해 현대 학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이론이 존재하지만, 웨스트코트(Westcott)와 호르트(Hort)의 이론은 본문 전달(transmission)에 있어 역사적 증거의 부재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이들은 신약 성경 본문을 평가함에 있어 ‘공인 본문’(Received Text)보다는 소수 고대 사본들에 더 무게를 두었지만, 실상 본문 전통의 증거는 전혀 그들을 지지하지 않는다. 신약 성경의 본문은 숫자적으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공인 본문에 의해 강하게 지지되고 있다. 통상적으로 오래된 본문일수록 사본으로서 생존할 가능성이 높고,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자필 원본(original autograph)이다. 자필 원본은 그것 자체의 권위와 신빙성 때문에 더 널리 복사되고 전파될 수 있었고, 따라서 그로부터 유래한 다수의 사본이 원본에 가장 가까운 텍스트임을 기대할 수 있다. 공인 본문은 전체 사본의 98%에 이르는 압도적인 증거를 지니고 있으며, 이것은 바로 그 본문이 원본을 대변하고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오히려 소수의 사본에 근거한 본문이 나중에 등장하여 더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대 학자들과 로마 카톨릭의 주장 현대 역본 지지자들은 신약 성경의 책들이 초기에 곧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식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로마 카톨릭교회 역시 같은 입장을 취하는데, 이는 성경과 그 해석을 교황과 교회의 권위 아래 두려는 시도와 무관하지 않다. 이들은 신약 성경 본문이 초기에는 부주의하게 필사되었고, 그 결과 본래의 말씀이 손실되었다고 주장한다. 콜웰(Colwell)은 이렇게 말했다. “현재 출판되고 있는 거의 모든 교본들과 핸드북(내 것 포함)들은, 본문들에서 이렇게 다양한 이문들이 발견되는 것은 신약 성경의 책들이 초기에 아직 ‘성경’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날 수 있었던 부주의한 취급으로 말미암은 열매였다.” (What is the Best NT?, p. 53) 호르트 역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본문의 순수성은 현존하는 문서들을 근거로 판단해 볼 때 별로 큰 관심거리가 될 수 없었다... 모범 사본들을 신중히 필사한 증거는 전혀 없다.” (Westcott and Hort, p. 9)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과는 달리, 초대 교회와 사도들, 그리고 그 제자들의 기록은 신약 성경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받았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사도들과 초대 교회의 증언 사도 바울의 인식 고린도전서 14장 37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기록한 글이 주의 명령임을 분명히 한다. 골로새서 4장 16절에서는 자신의 서신이 여러 교회에서 읽히기를 명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드러낸다. 디모데전서 5장 18절에서는 신명기 25장 4절과 누가복음 10장 7절을 동일한 ‘성경기록’으로 언급하며 신약 복음서의 말씀을 구약과 동등한 권위로 인용한다. 사도 베드로의 인식 베드로후서 3장 2절은 사도들의 명령을 구약 대언자들의 말씀과 동등하게 언급한다. 이어지는 15–16절에서는 바울의 서신을 ‘다른 성경기록들과 같이’ 동일한 수준의 말씀으로 간주하며, 바울의 글들이 곧바로 사도적 권위를 가진 성경으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준다. 로마의 클레멘트 (주후 96년) 그는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신약과 구약의 말씀을 ‘거룩한 말씀’으로 인용하며, 바울의 서신을 ‘참된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명시한다. 그는 신약 성경의 27권 중 16곳에서 성경 구절을 인용하고 있으며, 이 역시 신약 성경이 이미 권위를 가진 말씀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바나바 서신 (주후 100년경) 마태복음 22장 14절을 “기록된 바”라고 하며 인용하는데, 이는 고대 문헌에서 성경기록을 인용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폴리캅 (주후 115년)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그는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신약 성경 18권을 인용하며 70여 곳에서 그 구절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했다. 기타 초기 기독교 문헌들 「디다케」, 「허마스의 목자」,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서신」, 저스틴 마터의 「트리포와의 대화」 등도 신약 성경의 말씀을 권위 있는 성경기록으로 인정하였다. 파피아스 (주후 70–155년) 요한복음 14장과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을 인용하며, 사도 요한과의 교제를 통해 신약 성경의 권위를 전승하였다. 저스틴 마터 (주후 150년경) 그는 일요일에 교회들이 모여 ‘사도들의 글’과 ‘대언자들의 글’을 함께 읽었다고 증언하였다. 이는 신약과 구약을 동일한 권위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이레니우스 (주후 185년) 그는 사도들이 구약과 신약 모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쳤다고 말하며, 신약 27권 중 빌레몬서와 요한삼서를 제외한 모든 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용한다. 터툴리안 (주후 208년) 로마교회를 언급하며, “율법과 대언서들과 복음서, 사도들의 글들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는 성경의 정경이 이른 시기에 이미 확립되었음을 보여준다. 결론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이론은 신약 성경 본문의 역사성과 권위를 평가함에 있어 중대한 결함을 드러낸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신약 성경은 초기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되었으며, 사도적 권위와 교회 내 낭독, 기록, 인용 등을 통해 정경으로 자리 잡았다. 수많은 역사적 증거는 공인 본문이야말로 원본에 가장 가까운 텍스트임을 말해주며, 신약 성경의 권위는 인간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성령에 의해 보존되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2025-05-23 18:03:55 | 관리자
지옥(Hell) 삭제 문제 – NKJV와 킹제임스 성경(KJV)의 차이와 신학적 함의 1. 서론: ‘지옥’이라는 단어를 제거한 성경 번역의 심각성 오늘날 많은 현대 역본들, 특히 **New King James Version(NKJV)**은 **‘지옥(Hell)’**이라는 단어를 점점 제거하거나 ‘하데스(Hades)’, **‘스올(Sheol)’**이라는 원어를 음역하여 남겨두는 방식으로 대체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원문에 충실해 보일 수 있지만, 이 같은 번역은 실제로 지옥의 고통과 형벌에 대한 명확한 경고를 희석하거나 감추는 결과를 낳고 있으며, 이는 성경 전체의 교리와 문맥, 그리고 복음의 핵심을 왜곡하는 중대한 오류이다. 2. KJV는 ‘지옥’을 명확히 경고하지만, NKJV는 무력화시킨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hell’(지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거부한 자들이 죽은 후에 당하게 될 불과 고통의 장소를 명확하게 경고한다. 반면 **NKJV는 구약의 ‘스올’(Sheol), 신약의 ‘하데스’(Hades)**라는 단어를 그대로 남겨두거나 음역하여 번역을 회피한다. 그 결과 독자들은 해당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지옥의 실체, 형벌, 경고를 느끼지 못하거나 모호하게 받아들일 위험에 빠진다. 3. 하데스(Hades)와 스올(Sheol)의 성경적 개념 신구약 성경에서 하데스와 스올은 ‘지하 세계’를 의미하며, 일시적으로 구원받은 자들이 머무는 낙원과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고통을 당하는 지옥의 두 영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이후, 낙원의 영역은 천국으로 옮겨졌고(엡 4:8–10), 이제 하데스(지하 세계)에는 지옥 곧 불과 고통의 장소만 남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하데스”라고 할 때는 곧바로 “지옥”을 의미하게 된다. 그런데도 NKJV는 여전히 하데스를 지하 세계 전체로 번역하지 않고 남겨둠으로써, 마치 중립적 공간이 남아 있는 것처럼 왜곡한다. 4. 구절별 비교를 통한 왜곡 사례 분석 욥기 26:6에서는 KJV는 “Hell is naked before him”이라고 하여, 지옥이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없는 실재임을 명확히 하였다. 반면 NKJV는 이를 “Sheol is naked before Him”으로 하여, 독자가 경각심을 느낄 수 없게 만든다. 시편 18:5, 86:13, 116:3 등에서는 KJV가 **“sorrows of hell”, “lowest hell”, “pains of hell”**이라고 하여 고통과 형벌의 장소로서의 지옥을 강조한 반면, NKJV는 “sorrows of Sheol”, **“depths of Sheol”**로 번역하여 지옥의 실제 고통을 희석시킨다. 이사야 5:14, 14:15에서는 반역한 자들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KJV는 “hell hath enlarged herself”, “brought down to hell”로 명확히 표현했지만, NKJV는 이를 “Sheol”로 둠으로써 죄와 심판의 결과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흐리게 한다. 마태복음 11:23, 16:18, 누가복음 16:23, 요한계시록 1:18, 6:8, 20:13–14 등 신약에서도, KJV는 일관되게 “hell”로 번역하여 죽은 후 지옥에 떨어지는 실재와 예수님의 심판 권세를 경고하지만, NKJV는 “Hades”로 둠으로써 지옥을 실제적 심판이 아닌 모호한 개념으로 전락시킨다. 5. 신학적 위험과 영적 무력화 이처럼 NKJV가 반복적으로 ‘지옥’이라는 표현을 제거하고 ‘하데스’ 혹은 ‘스올’로 남겨둠으로써 발생하는 신학적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첫째, 죄인이 회개해야 할 강력한 동기, 즉 지옥에 대한 두려움과 형벌의 경고가 사라진다. 둘째, 독자는 하데스를 중립적 지하 공간으로 오해하거나, 지옥과는 관계없는 장소로 착각할 수 있다. 셋째,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도 지옥의 실체를 힘 있게 설교하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복음은 영적 위력을 잃게 된다. 6. 결론: ‘지옥’을 제거한 성경은 경고의 기능을 상실한다 NKJV의 번역자들은 현대 독자들의 감정과 기호에 맞춰 ‘지옥’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제거하거나 완화하여, 말씀의 권위와 경고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위험한 선택을 하였다. 하지만 복음은 본질적으로 생명과 사망, 구원과 심판, 천국과 지옥 사이의 영원한 갈림길을 말해주는 하나님의 메시지이다. 따라서 우리는 KJV처럼 지옥을 정확히 “hell”로 번역하고, 죄와 심판에 대한 분명한 경고를 유지하는 성경만이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보존하고 전달하는 성경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타협하지 말고, 지옥을 경고하지 않는 번역(NKJV)은 거절하라. 검증되고 거룩한 킹제임스 성경(KJV)을 붙들라.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리와 경고, 그리고 구원의 확신이 온전히 담겨 있다.
2025-05-23 17:57:22 | 관리자
안녕하세요?   잘 알고 있듯이 여호와의 증인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지지하기 위해 신세계 역본이라는 자신들 고유의 역본을 출간해서 사용한다.   우연히 오늘 여호와의 증인들 사이트에서 자기들의 역본 번역을 위해 사용한 그리스어 본문이 무엇인지 보게 되었다. 여호와의 증인 신세계 역본의 그리스어 본문   "네스틀레-알란트 그리스어 본문 이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그리스어 본문 학술판은 노붐 테스타멘툼 그라에케(그리스어 신약)라는 라틴어 이름으로 발행되었다. (학술판 성경 참조) 이 학술판의 초판은 1898년에 발행되었으며 에버하르트 네스틀레가 편집한 것이었다. 나중에는 그의 아들 에르빈 네스틀레가 편집을 맡았으며, 그 후에는 쿠르트 알란트와 바르바라 알란트가 편집자로 합류했다. 가장 최근에 나온 것은 제28판으로 2012년에 발행되었다. 초기 판들의 편집자들은 다른 학자들이 펴낸 본문들을 대조하여 그리스어 본문을 구성했다. 이후 판들의 편집자들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원문에 최대한 가까운 본문을 만들기 위해 입수할 수 있는 고대 사본들을 조사하고 분석했다. 그들은 차이가 나는 본문 표현들 가운데 어느 것이 오래된 것이고 어느 것이 나중의 것인지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네스틀레-알란트 그리스어 본문은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고 인정받는 그리스어 본문 중 하나이다. 이 학술판에는 고대 사본들에 사용된 다른 표현들을 알려 주는 각주도 실려 있다. 이러한 정보는 그리스어 본문이 여러 세기에 걸쳐 어떻게 보존되어 왔는지 학자들이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신세계역 성서 번역 위원회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처음 번역할 때 웨스트콧과 호트의 그리스어 본문(1881년 초판 발행)을 기초로 작업했다. (호트, 펜턴 존 앤서니; 웨스트콧, 브룩 포스 참조) 이 위원회는 2013 개정판을 준비하면서 네스틀레-알란트 그리스어 본문 제28판과 세계 성서 공회 연합회의 본문을 비롯한 여러 학술판들과 그 밖의 자료들을 참고했다. 그러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본문에 어떤 표현을 사용할지 결정했다. 한 가지 유의할 만한 점은 웨스트콧과 호트의 본문, 네스틀레-알란트 본문, 세계 성서 공회 연합회의 본문, 이 세 학술판에서 발견되는 표현상의 차이는 대부분 의미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매우 사소한 것이라는 점이다.—부록 가3 참조." 이들이 끝 부분에서 인정한 것을 다시 한번 기술한다.   신세계역 성서 번역 위원회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처음 번역할 때 웨스트콧과 호트의 그리스어 본문(1881년 초판 발행)을 기초로 작업했다. (호트, 펜턴 존 앤서니; 웨스트콧, 브룩 포스 참조) 이 위원회는 2013 개정판을 준비하면서 네스틀레-알란트 그리스어 본문 제28판과 세계 성서 공회 연합회의 본문을 비롯한 여러 학술판들과 그 밖의 자료들을 참고했다. 그러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본문에 어떤 표현을 사용할지 결정했다. 한 가지 유의할 만한 점은 웨스트콧과 호트의 본문, 네스틀레-알란트 본문, 세계 성서 공회 연합회의 본문, 이 세 학술판에서 발견되는 표현상의 차이는 대부분 의미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매우 사소한 것이라는 점이다.—부록 가3 참조. 이 말은 여호와의 증인들의 신세계역본이나 네슬레 알란드 판에서 나온 NIV, 개역성경이나 거의 다 같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성경 번역의 대본인 본문이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역본들은 이름만 다르지 사실 신약 성경에서 13구절이 통째로 빠진 것이라든지 요한일서 5장 7절이 없다는 것, 요한복음 1장 18절에서 예수님을 창조된 신으로 만드는 것 등이 모두 동일하다.   이 모든 것은 천주교 사본인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 등의 소수 사본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사본, 본문 문제에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본 문제 네슬레 알란드 28판   시내 사본 마가복음 16장 마지막 12구절 사기 조작   세상이 천주교로 단합되고 있다(단일 세계 종교).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너희는 그녀에게서 나와 그녀의 죄들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고 그녀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이는 그녀의 죄들이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께서 그녀의 불법들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라(계18:4-5).
2024-08-15 15:10:54 | 관리자
안녕하세요?   여러 성경에서 요7:53-8:11을 보면 다음과 같은 각주가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본에는 요7:53-8:11까지 없음"   그런데 요7:53-8:11의 기사는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을 우리 주님께서 용서해 주시는 매우 귀한 내용입니다. 이렇게 귀한 이야기가 원래 성경에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게 어찐 된 일일까요? 사본들의 증거는 무어라 말할까요?   바티칸 사본, 시내 사본 등 천주교 알렉산드리아 소수 사본들만 이 말씀을 삭제하였고 다수의 사본들은 이 이야기를 다 담고 있습니다.   다음은 20세기 최고의 본문 비평학자로 알려진 장로교 출신의 에드워드 힐즈의 설명입니다. 참고로 힐즈 박사의 약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드워드 힐즈 박사는 ‘라틴 피 베타 카파’라는 특별 명예를 인정받고 예일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또한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에서 신학사 학위(Th.B.)를 받았고 컬럼비아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 학위(Th.B.)를 받았다. 그는 시카고 대학에서 신약 성경 본문비평 분야의 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하버드 대학에서 최종적으로 그 프로그램을 마쳐 이 분야에서 신학박사(Th.D.)가 되었다. 그는 또한 「믿음의 성경 연구」(Believing Bible Study)를 저술했다.   주님의 평안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   4.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요7:53-8:11)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 - 이것은 보통 ‘Pericope de adultera’라고 불린다 - 는 현대 영어 역본들에서 상당히 가혹한 취급을 받아 왔다. RV와 ASV는 이것을 괄호로 묶었고 RSV는 각주로 내려 보냈으며 NEB는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를 따라 원래의 자리에서 모두 들어내어 기원을 알 수 없는 독립된 단편 조각으로 취급하며 요한복음의 맨 마지막에 두어 출판했다. 심지어 NEB는 이 기사에 ‘성전에서의 한 사건’이라는 새로운 이름까지 붙여 주었다. 하지만 버건이 오래 전에 우리에게 상기시켰던 것처럼 이들이 이 귀중한 구절들을 이렇게 일반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a)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에 대한 역사적인 증거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는 과거에도 문제 거리였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본문으로 인해 곤란을 겪었다. 그리스도께서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신 것은 간음에 대한 처벌이 매우 엄해야 한다는 그들의 신념과 충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암브로스(374)가 밀라노의 주교로 있던 바로 그 시기에도 요한복음의 이 부분에 대해 여전히 그러한 의심을 느꼈던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었다. 이것은 암브로스가 다윗의 죄에 대해 설교한 내용을 살펴보면 분명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읽은 복음서의 가르침은 순진한 사람들을 적지 않게 화나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복음서에서 여러분은 간음한 여인이 예수님께 끌려왔다가 정죄 받지 않고 돌아간 것을 봅니다…그리스도께서 공정하게 재판을 하지 않은 과오를 범한 것입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Vienna, vol. xxxii, pp. 359-360).   어거스틴(c. 400)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일부 신약 성경 사본이 이 본문을 생략하는 이유는 바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에 대한 이러한 도덕주의적인 혐오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 같은 용서의 행위는 어떤 나약한 신자들이나 불신자들과 기독교 신앙의 적들의 마음에 충격을 준다. (내 생각에) 자기 아내에게 [간음] 죄로 인한 형벌을 주지 않은 뒤에 그들은 자기들이 소유한 그 복음서 사본으로부터 우리 주님이 간음을 행한 그 여인을 용서하셨다는 부분을 떼어 냈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주께서 말씀하신 것은 사실 죄를 지으라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Vienna, vol. xxxxi, p. 387).   또한 10세기의 니콘이라는 그리스 사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해롭다는 이유로…간음한 여인이 예수님께 어떻게 끌려왔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그 기사를 빼버린” 아르메니아 교도들을 비난했다(S. S. Patrum . . . J. B. Cotelerius, Antwerp, 1698, vol. i, p. 235).   초기 그리스어 사본들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은 5세기의 그리스어 사본인 D에 그것이 있다는 사실로 입증된다. 구 라틴 코덱스 b와 e에 그것이 실제로 나타난다는 것은 초기 라틴어 사본들 또한 그것을 포함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그리고 이러한 두 가지 결론 모두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기록된 많은 사본들의 요한복음에는 고소당해 주님 앞에 끌려온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다.”는 제롬(c. 415)의 진술에 의해 확증된다(MPL, vol. 23, col. 579.).   제롬의 진술의 정확성을 의심할 이유는 전혀 없다. 특히 마가복음의 종결 부분에 어떤 첨가가 이루어졌다는 제롬의 진술은 W 사본에서 첨가된 부분이 실제로 발견됨으로써 옳았다는 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롬이 개인적으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를 참 본문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라틴 벌게이트에 그것을 포함시켰다는 사실로서도 알 수 있다. 초기 그리스어 사본들의 요한복음에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있었다는 또 다른 증거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뜻하는 디다스칼리아와 또 이 디다스칼리아의 기초가 된 ‘사도들의 헌장’에 이것이 인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 죄를 범한 여인을 처리하신 것처럼 하리라.…장로들이 그녀를 주님 앞에 데려와 주님의 손에 심판을 맡기고 떠나가니 마음을 감찰하시는 주님께서 물어 이르시되, ‘딸아, 장로들이 너를 정죄했느냐?’ 하시니 여인이 그분에게 이르되, ‘아닙니다. 주님’, 하매 주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가거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노라.’”(Didascalia Apostolorum, trans. by R. Hugh Connolly, Oxford: Clarendon Press, 1929, p. 76. Funk, Didascalia et Constitutiones Apostolorum, vol. 1, p. 92).   (각각 3세기와 4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두 개의 문서에서 감독들은 회개하는 죄인에게 용서를 베풀도록 권유를 받고 있다. 이러한 청원을 강조하기 위해 많은 성경 구절이 인용된 후 하나님의 긍휼의 최상의 모범 즉 그리스도께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에게 보여 주신 동정심에 이르러 절정에 다다른다. 티센도르프는 이 인용문이 요한복음으로부터 나왔음을 인정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비록 ‘사도들의 헌장’이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의 기록자가 요한이라고 실제로 거론하지는 않지만 누구든지 이 이야기의 유래를 다른 출처에서 찾으려 한다면 헛수고를 하게 될 것이다.”(Tischendorf, N. T. Graece, vol. 1, p. 829).   코놀리(1929) Didascalia Apost., p. li.)와 그 밖의 다른 최근의 비평가들은 이 부분이 정경인 요한복음이 아니라 위경인 ‘히브리 복음’(Gospel according to the Hebrews)에서 인용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사실 거의 믿을 수 없는 것 같다. 논의의 전 과정 동안 신약과 구약의 정경 구절들만 증거로 제시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과연 이 두 책의 기록자들이 회개하는 사람을 용서해 달라는 청원의 절정부에 이르러서는 결국 정경 성경을 버리고 어떤 위경서나 뒤적거릴 거라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에 관한 또 다른 중요한 증거로서 유세비우스(c. 324)의 증언이 있다. 유세비우스는 자신의 「교회사」에서 히에라폴리스의 감독인 파피아스(150) 가 쓴 ‘주님의 말씀 해석’이란 제목의 옛 논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유세비우스는 다음과 같은 말로 파피아스의 기록들에 대한 자신의 논의를 끝맺는다.   “그 동일한 기록자는 요한일서와 또 베드로의 서신에서 나오는 인용문들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는 ‘히브리 복음’에 들어 있는 이야기 즉 여러 가지 죄로 인해 주님 앞에서 고소당한 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도 상세히 설명했다.”(LCL, Ecclesiastical History, Eusebius, vol. 1, p. 298.)   유세비우스의 이러한 진술을 근거로 자연주의적 비평가들은 유세비우스가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를 파피아스의 글과 ‘히브리 복음’에만 나오는 한 가지 이야기로 알고 있었지 그것이 정경인 요한복음의 일부분인 것은 알지 못했다고 추론했다. 그러나 반드시 이러한 결론이 나올 필요는 없다. 유세비우스는 도덕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와 파피아스의 관련성 때문에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에 적대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유세비우스는 파피아스나 그의 글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의 책들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그는[파피아스] 지성적인 사람이 아니다.”라고 유세비우스는 주장한다(동일 저자, vol. 1, p. 296).   파피아스를 경멸했기 때문에 유세비우스는 파피아스의 이야기가 요한복음을 담고 있는 일부 사본들에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기를 주저했다. 어찌됐든 유세비우스의 글에 기초해서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이 가짜라고 주장하는 것은 단지 그가 그 부분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 근거한 ‘침묵의 주장’이며 사실 이런 침묵의 주장은 늘 설득력이 없다. 유세비우스의 침묵 부분을 강조하기보다는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사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매우 오래된 이야기라는 그의 긍정적인 증언을 강조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일 것이다. 또한 스페인 교부인 파시안(370)은 지나치게 혹독한 징벌에 반대하는 항의를 할 때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에 호소했다. 그는 물었다. “복음서에서 주님도 죄를 자백한 여인 즉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셨다는 것을 그리고 어떤 사람도 그녀를 정죄하지 않았다는 것을 읽어 보지 않겠습니까?”(MPL, vol. 13, col. 1077).   (b) 역사적 사실들의 증거 역사 기록들은 일반적으로 초기 기독교의 몇 세기동안 모든 교회가 간음을 설사 용서받는다 해도 혹독한 고행 후에만 용서받을 수 있는 그런 심각한 죄로 간주했음을 보여 준다. 예를 들어 키프리안(250)은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자기 이전의 어떤 감독들은 간음한 자들은 다시 깨끗하게 될 수 없으며 혼인 상태의 부부가 부정을 저지를 경우 결코 회개의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Vienna, vol. iii, p. 638). 따라서 간음하다가 붙잡혀서 그리스도께로 끌려온 여인의 이야기는 분노를 자아냈다. 너무 쉽게 용서를 받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초기 기독교회의 금욕적인 견해와 크게 충돌을 일으키는 이 이야기가 정경이 아닌 다른 출처에서 나와 요한복음에 첨가된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보다는 지나치게 열성적인 금욕주의자들이 이 이야기를 요한복음에서 삭제했다고 믿는 것이 분명히 더 합리적이다. 이것을 삭제하고자 하는 어떤 강한 동기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것을 첨가하고자 하는 동기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기사에 대한 적대적인 편견은 이것이 복음서에 삽입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을 것이다. 보수주의자들뿐만 아니라 명확한 사고력을 지닌 급진적인 학자들 역시 역사적인 증거를 살펴볼 때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요한복음에 첨가되었다기보다는 삭제되었다고 믿는 것이 맞는다고 인식했다. 힐겐펠드(1875)는 “초기에 특히 동방 교회에서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복음서를 과감하게 제시한 것은 틀림없이 매우 불쾌한 것으로 비춰졌을 것이다.”라고 말한다(Einleitung, p. 782). 따라서 힐겐펠드는 그 본문이 너무 세심한 서기관들에 의해 삭제되었다는 어거스틴의 진술을 ‘불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스텍(1893)은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요한복음이 처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전에 이미 요한복음 본문에 있었다고 제안했다. “그것이 후에 도덕적인 정숙함에 밀려 삭제되었다는 것은 쉽게 이해된다.”라고 결론짓는다(T Z aus der Schweiz, vol. 4, p. 98).   해리스(1891)는 2세기에 번창했던 금욕주의 기독교의 한 종파인 몬타니스트들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를 잘 알고 있었다고 확신했다. “몬타니스트들의 교회들은 이것이 본문에 더해졌다는 것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아니면 이것을 삭제했다. 그러나 동시에 서방에서도 사람들이 이 구절을 더할 나위 없이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사도행전의 라틴어 주해자가 사도행전 5장 18절의 한 부분에서 몇 단어를 차용했기 때문이다.”(Codex Bezae, TS, vol. 2 (1891), p. 195). 사도행전 5장 18절은 “[지도자들이] 사도들에게 손을 대어 붙잡아다가 일반 감옥에 가두었다.”로 되어 있다. 이 구절에 대한 D 사본의 라틴어 부분에는 “이에 그들이 각각 자기 집으로 떠났다.”라는 구절이 첨가되어 있다. 해리스의 주장처럼 명백히 이 첨가 부분은 모여 있던 사람들이 해산하는 모습을 기술한 요한복음 7장 53절에서 가져온 것이다. 만일 몬타니스트들이 사도행전 5장 18절에 이 말을 첨가했다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는 틀림없이 원래 요한복음의 일부였을 것이다.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이 그 복음서 본문에 첨가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연주의 학자들은 많은 사실들을 무시함으로써 즉 고대의 기록자들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에 대해 말한 것들은 무시하고 단지 다른 고대 기록자들이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만을 강조함으로써 자신들의 입장을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호르트가 자신의 「본문비평개론」(1881)에서 행한 일이다. 이 책에서 그는 암브로스와 어거스틴의 증언을 거의 언급하지 않으며 아르메니아 사람들에 대한 니콘의 진술은 단지 잘못 인용된 것으로 간단히 처리해 버린다(N. T. In The Original Greek, vol. 2, Appendix, p. 82). 실제 증거와는 상충되게 호르트는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초기 교회에 거슬리는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고대에 몬타니스트들과 노바티안들을 제외하고는 이 부분을 고민거리로 여긴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동일 저자, p. 86). 그러나 호르트의 이런 대략적인 진술이 함축하고 있는 바에 대해 해리스는 동의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분명히 호르트 박사는 몬타니스트들에 의해 본문이 많이 변경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그들의 본문 변개는 매우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쳤다.”(Codex Bezae, TS, vol. 2 (1891), p. 195.) 오늘날 대부분의 자연주의 학자들은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이 원래 본문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어서 이 문제를 더 논의해 봤자 얻을 것이 없다고 여긴다. 그들은 (아직도 이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반 성도들을 위해) 이 문제를 다룰 때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노선을 따른다. 그들은 이 구절에 대한 고대의 증언은 모순된 것으로 던져버리고 ‘침묵의 주장’에만 의존한다. 그러므로 콜웰(1952)은 어거스틴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삭제된 것에 대해 설명한 것을 조소했다.   그는 단언했다. “초기 그리스어 사본들의 출처들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생략’은 이런 방식으로 거의 설명될 수 없다. 일부 그리스 서기관들은 틀림없이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요한복음에서 이 이야기를 삭제한 서기관들이 누가복음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큰 동정심을 유발시킬 수 있는 기사는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남겨 놓았다는 증거를 두고 판단할 때 어거스틴의 주장을 지지할 수 없다.”(What Is The Best New Testament? By E. C. Colwell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opy1952 by the University of Chicago, p. 82.)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콜웰이 어거스틴을 비난한 것은 타당성이 없다.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와 ‘주님의 발에 기름을 붓고 죄 사함을 받은 여인의 이야기’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에서는 그 여인의 회개와 믿음이 강조되고 있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뚜렷하게 언급되지 않는다.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율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외견상 하나님의 율법이 파기된다. 또한 누가복음에서는 죄를 지은 여인이 창녀였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여인은 간음한 여인이었다. 따라서 요한복음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에 대한 반대 의견들을 누가복음의 창녀 이야기에 적용시킬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또 예를 들어 터툴리안이 누가복음의 이야기는 언급하면서도 요한복음의 이야기는 말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 (c) 현대 번역본들의 잘못된 각주들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에 대한 현대 역본들의 각주들은 완전히 사람들을 오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개역표준역(RSV)은 각주에서 “대부분의 고대의 권위 있는 사본들은 7장 53절~8장 11절을 생략하거나 이것을 요한복음 7장 52절 다음에 혹은 요한복음의 맨 끝에 또는 누가복음 21장 38절 뒤에 변화된 본문의 형태로 삽입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신영국성경(NEB) 역시 고대의 권위 있는 사본을 언급하며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고대 신약 성경 사본들에서는 고정된 자리에 있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각주들은 원래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독립된 이야기로 여러 가지 형태로 유포되었고 나중에 서기관들이 신약 성경에 첨가하려고 할 때 이것을 넣어야 할 자리에 대해 자기들끼리도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없어 어떤 서기관은 이곳에 또 다른 서기관은 저곳에 삽입하였음을 암시한다. 폰 소덴(1902)은 오래 전에 이러한 각주들이 암시하는 견해가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보여 주었다. 비록 그가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이 참 본문이라는 것을 부인했지만 그럼에도 이 본문에 대한 자신의 기념비적인 연구에서 그는 사실들을 제시할 때 뛰어난 공정성을 보여 주었다. 폰 소덴은 이 부분이 때로는 요한복음의 마지막에서 발견되며 때로는 요한복음 7장 52절 근처의 여백에 있거나 어떤 사본 군(群)에서는(Ferrar group) 누가복음 21장 38절 뒤에 삽입되어 있다고 말한 후 연이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본들에서는 이 본문이 7장 52절과 8장 12절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주시할 점은 이런 사본들 가운데 적어도 절반 정도에서 난외에 이 본문에 대한 삭제 기호가 있었다는 점이다.”(Die Schriften des Neuen Testaments, von Soden, Goe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 Teil, 1. Abt., p. 486). 따라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는 통상적으로 요한복음 7장 52절과 8장 12절에 위치했다. 그러므로 다른 부분에 이 본문이 놓인 사본들은 이 같은 규칙을 벗어난 예외의 경우이다. 메츠거(1964)는 말한다.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는 명백히 서방 교회의 어떤 지역에서 유포되었던 한편의 구전이다. 그 후에 그것은 여러 곳에서 여러 사본들 속에 삽입되었다.”(Text Of The New Testament, Metzger, p. 224).   그러나 폰 소덴이 오래 전에 자신의 조심스러운 학문적 연구를 통해 논증했던 것처럼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메츠거의 해석은 틀린 것이다. 폰 소덴은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의 통상적인 위치가 신약 성경 본문에서 이 구절들의 원래 위치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때로 이 본문이 다른 자리에 있거나 그 안에 이상스러울 정도로 많은 다른 이문이 포함된 것은 이것이 신약 성경의 일부가 된 후에 전개된 일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많은 형태의 본문 이문에도 불구하고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여러 곳에서 혹은 다양한 형태로 사복음서에 억지로 끼어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하게 입증되었다. 그런 가설은 이 본문이 이미 확고하게 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의해 반박되었다. 소위 ‘페라 군’(Ferrar group)이라 불리는 것들의 공통 조상 사본의 입장이 예외이지만 그것은 사실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그런 가설과는 반대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분명한 시기에 명확한 곳에서 맨 처음 사복음서의 본문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온갖 반대 공격에 연승을 거둠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야 한다.”(Die Schriften des Neuen Testaments, 1. Teil, 1 Abt., p. 500).   그리고 그 뒤에 폰 소덴은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의 본문 형태를 재구성하여 제시하는데 이것은 실질적으로 공인 본문과 킹제임스 성경에 있는 형태와 다르지 않다.   또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의 시작을 알리는 구절들(요7:53-8:2)은 신약 성경에서의 이 기사의 원래 위치가 요한복음 7장 52절과 8장 12절 사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이러한 서론 구절들이 문맥에 가장 잘 들어맞는 위치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이 구절들 가운데 첫 구절(요7:53)은 바로 이전에 논쟁을 벌였던 사람들의 해산을 묘사하고 있다. 다음의 두 구절(요8:1-2)은 예수님께서 그 동안에 그리고 그 이후에 무엇을 하셨는지를 말해 준다. 이 후에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로 전환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신영국성경(NEB)이 제시하는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의 위치에서는 이 같은 서론 구절들이 전혀 뜻이 통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런 것을 제공하는 사본들에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의 위치가 잘못되었음을 입증한다. 오래 전에 딘 버건은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의 위치가 잘못되어 있는 이러한 사본들이 얼마나 신뢰할 수 없는 것들인가를 지적했다.   “비평가들은 4개의 초서체 복사본들(페라 군)에서 문제의 이 구절들이 누가복음 21장의 끝에 덧붙여져 있다는 것을 열심히 지적한다. 그런데 그들은 ‘이 4개의 코덱스들이 공통의 원형에서 유래되었고’ 따라서 하나의 동일한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한 마디 더 덧붙인다면 그 조상이 부패한 복사본이라는 것을 잊었단 말인가? 나는 그 비평가들에게 동일한 4개의 그 코덱스들에서 ‘그리스도의 고뇌와 피땀’(눅22:43-44) 기사가 마태복음에 삽입되어 26장 39-40절 사이에서 발견된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싶다. 가드에 살던 어떤 사람이 손가락과 발가락을 하나씩 더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가지고 사람의 손은 어떤 손이나 손가락이 다섯 개며 발가락 또한 다섯 개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복음서들 가운데 발견되는 단 한 개의 파격적인 예가 이 구절들이나 혹은 다른 구절들의 올바른 위치에 영향을 줄 수 없다.”(The Causes Of The Corruption Of The Traditional Text, Burgon, p. 250). (d) 그리스 교부들의 침묵 설명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의 순수성에 반대하는 자연주의 비평가들의 주장은 주로 과거에 아무도 이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것 즉 침묵에 근거한 주장이며 이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은 그리스 교부들이 이것에 대해 침묵했다는 것이다. 메츠거(1964)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를 언급하신 후 1000년 동안 그리스 교부들 중에 오리겐, 크리소스톰, 논누스(운율을 맞춘 자신의 의역에서)처럼 한 구절 한 구절 전 복음서를 다뤘던 사람들을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더욱 중요하다. 12세기 초반에 살았던 지가베누스는 그 구절들에 대해 논평을 한 최초의 그리스 저자이다. 심지어 그는 복음서의 정확한 복사본들이 그 구절들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단언한다.”(Text Of The New Testament, Metzger, p. 223).   그러나 메츠거의 이 주장은 자신이 의도했던 것만큼 그렇게 설득력이 없다. 첫째로, 버건이 오래 전에 지적했던 것처럼 우리는 메츠거가 그토록 불길하게 말하는 1000년이란 기간에서 적어도 300년은 빼버려야 한다. 티센도르프가 그 구절들의 통상적인 위치에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를 포함하고 있는 9세기의 사본 9개와 8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본 1개를 사본들의 목록에 싣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000년의 이 기간 중에서 마지막 300년 동안 그리스 교부들이 침묵한 것은 그들이 다수의 신약 성경 사본들에서 지금의 위치에 기록되어 있는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을 포함하고 있는 사본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리가 없다. 후대의 그리스 교부들이 이 구절들에 대해 논평을 하지 않았던 것은 초기의 그리스 교부들이 그랬기 때문이었다. 또 오리겐(c. 230)과 크리소스톰(c. 400) 그리고 논누스(400) 같은 초기 그리스 교부들의 침묵 역시 이러한 고대 성경학자들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요한복음의 일부분이었음을 알지 못했다는 것을 반드시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언급했던 도덕적 편견이나 자기들에게 알려진 사본들 중에 일부가 그것을 생략하고 있다는 것에 의해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버건은 초기의 이 교부들이 이 부분에 대해 강해를 하지 않은 또 다른 매우 합당한 이유를 언급하고 있다. 그들의 논평은 주로 그들의 설교와 관련된 것이었고 그들의 설교는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교회의 옛 오순절 성경 일과에서 생략되어 있다는 사실에 의해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처음으로 크리소스톰과 키릴이 요한복음을 대중들에게 강해하면서 7장 52절에서 곧바로 8장 12절로 넘어갔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물론 실제로 그들은 그렇게 했다. 회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낭송되지도 않는 부분을 왜 그들이 강해해야 하는가? - 어떻게 할 수가 있었겠는가? 아폴리나리우스와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르가 (유명한 주석 ‘Scholium’에서) 그랬던 것도 마찬가지다. 오리겐 역시 그랬든 안 그랬든 상관없지만 - 비록 반대 입장의 비평가들이 요한복음의 그 부분에 대한 그의 주석이 빠진 것을 알고 그 설명을 요구할 권리는 없지만 - 어찌되었든지 오리겐의 이름도 역시 동일하게 그렇게 한 사람들의 명단에 첨가될 수 있다.”(The Causes Of The Corruption Of The Traditional Text, p. 257). 초기에는 오순절 날에 온 교회가 요한복음 7장 37절~8장 12절을 낭송하는 것이 관례였었다. 이 성경 일과는 성령 강림을 기념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대명절에 매우 잘 어울리는 구절인 요한복음 7장 37-39절부터 시작했다.   37 마지막 날 곧 명절의 그 큰 날에 예수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 기록이 말한 것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라. 39 (그러나 이것은 그분께서 자기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더라.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아니하셨으므로 아직 성령님께서 주어지지 아니하였더라.)(요7:37-39).   그런 후에 이 성경 일과는 요한복음 7장 52절까지 계속되며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을 생략하고 요한복음 8장 12절로 끝을 맺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하시니라(요8:12).   따라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오순절 날에 공개적으로 낭송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초기의 그리스 교부들이 이것에 대해 강해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였다.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왜 오순절의 성경 일과에서 생략되었을까? 분명히 그 부분이 오순절의 중심 사상과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평가들의 설명은 다르다. 그들은 그 본문이 오순절의 성경 일과가 선정될 당시에 요한복음의 일부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버건이 지적한 것처럼 이렇게 주장하면 이 본문이 요한복음 7장 52절 다음에 놓이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진다. 어떤 서기관이 무슨 이유로 오순절의 성경 일과의 한가운데에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를 소개하려 했을까?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생각이 났을까? 비록 그리스 교부들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에 대해 침묵하고 있지만 교회는 침묵하지 않았다. 요한복음 8장 3-11절이 매년 10월 8일, 성 펠라기아의 날에 공개적으로 낭송되는 성경 일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이 이것을 입증한다. 버건은 이러한 역사적 상황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동방 교회는 큰 목소리로 이 주제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한다. 모든 동방 교회의 교직(敎職)에서 교회의 관례에 관한 문서 기록들을 추적해 올라가면 - 그것들은 이 구절들에 대한 교부들의 침묵이 문제를 난감하게 만든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교부들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 동방 교회들은 10월 8일을 위한 특별 성경 일과로 이 12구절 중에서 9구절을 선정했다.”(동일 저자, pp. 259-260).   (e) 내적 증거 자연주의적인 비평가들은 내적 증거라는 근거를 들어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의 순수성에 반대하는 주장을 힘차게 펼쳐왔다. 예를 들어 콜웰(1952)은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는 문맥에 어울리지 않고 거기에 사용된 어휘와 어조는 요한복음의 나머지 부분과 다르다고 주장한다(What Is The Best New Testament?, p. 81). 그러나 이렇게 주장함으로써 비평가들은 단지 자기들에게 새로운 어려움을 만들 뿐이다. 그 이유는 만일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삽입된 것이고 그것이 문맥과 그리고 요한복음의 나머지 부분과 그렇게 뚜렷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왜 그것이 현재의 그 위치에 지금껏 자리를 잡고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이것은 오래 전에 스텍(1893)이 물은 질문인데 지금까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전혀 없었다(T. Z. aus der Schweiz, p. 98.) 그러나 사실 이러한 비난에는 실속이 하나도 없다. 문체를 트집 잡아 그런 것을 주장하는 것은 나약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문체를 트집 잡는 것은 온갖 것들을 입증하기 위해 사용됐다. 오래 전에 버건은 이 본문에서 요한복음의 독특한 표현들을 지적했다. “우리는 8장 6절의 작은 설명 부분 즉 ‘그들이 그분을 시험하며 이렇게 말한 것은 그분을 고소하려 함이더라’에서 요한의 문체가 어떻게 온전히 드러나는지 주목한다. 게다가 우리는 6절과 8절에서 그분께서 쓰셨다는 사실이 강조된 것 - 이것은 요한복음의 기록자의 다른 부분과 일치한다 - 에 의해 놀라게 된다.”(The Causes Of The Corruption Of The Traditional Text, p. 241).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 버건은 사실은 전혀 그 반대임을 보여 준다.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생략되면 그것은 즉시 고칠 수 없는, 크게 벌어진 상처를 남긴다. “수수께끼 같은 B 사본과 알레프 사본에서는 7장 52절의 ‘갈릴리에서는 대언자가 나오지 못한다’는 말씀이 8장 12절의 ‘그러므로 다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로 바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이 본문의 순수성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갖고 있는 모든 비평가들은 그 복음서 기자의 영감 받은 자필 원본에 그 부분이 그렇게 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그렇게 믿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며 유혹한다.”   “그러나 그것은 믿을 수 없다. 7장 37절과 52절 사이에 포함되어 있는 말씀을 다시 살펴보고 다음에 주목하라. (a) 서로 적대적인 두 무리가 성전 안뜰에 운집했다(40-42절). (b) 일부는 우리 주님을 폭력을 써서라도 잡아오는 것에 찬성을 했다(44절). (c) 논쟁에 참석한 산헤드린은 죄인인 주님을 잡아오지 못한 것에 대해 관원들을 비난하고 서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45-52절). 이러한 상황에서 복음서 기자가 어떻게 ‘그러므로 다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계속해서 기록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요한이 그 말을 기록했을 때 그의 의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동일 저자, pp. 237-238).   분명히 버건은 제대로 핵심을 집었다.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을 거부하면 7장과 8장 사이의 연결이 빠져버려 아주 이상해진다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독자는 산헤드린 공회의 회의장에서의 논쟁의 한 복판에 서 있다가 단 한 마디 설명도 없이 성전에 계신 예수님께로 이끌려간다. 이와 같은 인상적인 기록은 기교를 많이 부린 현대의 일부 책들에서는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성한 성경책에서는 그런 기교가 통할 수 없다.   (f) 사본들과 역본들의 부정적인 증거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파피루스 66과 75, 알레프(시내 사본), B(바티칸 사본), W, L 등에서 생략되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못된다. 그 이유는 이 모든 사본들이 습관적으로 생략하기를 좋아했던 알렉산드리아 전통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몬타니스트들이나 혹은 어떤 다른 극단적인 집단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를 자기들의 요한복음 복사본들에서 제거하기 시작하자 초기 교회의 금욕적인 경향들과 맞물려 그러한 관행은 빠르게 퍼져 나갔고 특히 이집트에서 그랬다. 그 결과 우리가 그리스어 사본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최근에 발견된 보드머 파피루스 Ⅲ을 포함하여 많은 콥트어(이집트어) 역본들의 사본들이 같은 이유로 이 본문을 생략한다. 시리아 역본과 아르메니아 역본 또한 그렇다. 이것은 이런 모든 역본들이 거슬리는 구절을 생략해 버리는 경향을 반영한다. 그리고 그 부분이 대단히 광범위하게 생략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후대의 서기관들은 비평가 노릇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현존하는 사본들에서 이 구절에 대한 엄청난 수의 다른 형태의 본문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많은 서기관들은 이 부분의 난외에 삭제 기호를 표시했다. 이런 현상들 중 어느 것도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참 본문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다. 단지 이 본문에 대한 편견이 초기 교회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입증할 뿐이다. 이러한 편견이 있는 상황에서 이런 편견 때문에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요한복음의 본문에 첨가되었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요한복음의 본문에서 생략되었다고 가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것을 첨가하고자 하는 동기보다는 생략하고자 하는 어떤 더 큰 동기가 있었을 것이다.    ------------ 이 글은 에드워드 힐즈의 <킹제임스 성경 변호> 149-158쪽에 있음 <킹제임스 성경 변호>는 다음에서 무료 PDF를 다운받을 수 있음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80 
2017-11-02 17:55:13 | 관리자
사본들의 압도적인 증거: 99%가 전통 다수 본문 지지   최근에 어떤 분이 신약성경 사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킹제임스 성경의 모체인 전통 본문(Traditional text, 공인 본문)을 지지하는 사본이 전체 사본의 99%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려달라고 해서 오늘은 이에 대해 글을 적습니다.   사본(manuscript)이라는 말은 손으로 베껴 쓴 책이나 문서를 말하며 어떤 경우에는 필사본이라고도 부릅니다. 신약성경의 경우 고대 번역본(라틴어 역본 10,000개, 다른 역본 9,300개)을 포함해서 약 25,000개의 사본이 현존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신약성경 비평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은 그리스어로 기록된 사본들이며 이 경우 신약 성경 사본의 수는 현재 약 5,800개 정도 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Biblical_manuscript   이런 사본들 가운데 신약성경 전체를 다 포함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사본들이 발견됨에 따라 사본의 수는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그리스어 사본은 크게 4종류로 나뉩니다.   1. 파파루스 사본 2. 그리스어 대문자(엉셜) 사본 3. 그리스어 소문자(커시브) 사본 4. 성구집 사본   여기서 파피루스 사본과 대문자 그리고 소문자 사본은 성경의 본문을 연속적으로 이어서 기록한 ‘연속 본문 형태의 사본’입니다. 반면에 성구집은 성구 묵상집으로서 매일 혹은 매주 읽어야 할 성경 본문이 적혀 있는 ‘비연속 본문 형태의 사본’입니다. 그리스어의 경우 초기에는 대문자만 쓰이다가 7-8세기경에 소문자가 정착되면서 9세기 이후에는 소문자가 대문자를 대체하게 됩니다.   성구집의 경우 초기 것은 대문자로, 9세기 이후의 것은 소문자로 기록되었지만 이 둘을 모두 합쳐 그냥 성구집 사본이라고 합니다.   대문자 사본과 소문자 사본은 대개 벨럼이라 불리는 양피지 가죽에 책(codex)의 형태로 기록되었기에 코덱스(codex) 사본이라고 합니다. 성구집을 설명하면서 이야기했듯이, 양피지에 기록된 사본들의 경우도 대개 대문자 사본은 초기의 것이고 소문자 사본은 후기의 것입니다.   한편 파피루스 사본은 4세기 이전의 초기에 기록된 대문자 사본입니다. 그럼에도 이것은 기록 재질이 다르므로 대문자 사본이라 하지 않고 그냥 파피루스 사본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파피루스 사본은 이집트에서 발견되었고 영지주의 색채가 배어 있습니다.   무어맨 박사님(Dr. Jack Moorman)의 연구에 따르면 2009년 8월까지 발견된 사본들의 수는 5,555개입니다(아래 있는 <현대 성경들에서 사라진 것들>(Missing in Modern Bibles) PDF 파일 참조, 35쪽 이하).   1. 파피루스 124개2. 대문자 280개3. 소문자 2808개4. 성구집 2343개   현재는 이보다 조금 늘어났고 이것들의 최근 명단은 다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파피루스 사본 리스트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New_Testament_papyri   2. 대문자 사본 리스트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New_Testament_uncials   3. 소문자 사본 리스트https://en.wikipedia.org/wiki/Lists_of_New_Testament_minuscules   4. 성구집 리스트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New_Testament_lectionaries   그런데 5500개 중에서 현대역본들의 모체가 되는 비평 본문(Critical text, 소수 사본)을 지지하는 것들은 약 40개에 불과합니다. 이것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이며 사실 나머지는 여러 부분에서 이 둘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알란드(알란트)와 같이 비평 본문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아주 적은 증거에서 많은 증거를 만들어 내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꾸준히 늘 인용되는 증거들’(The constantly cited witnesses)이라는 용어를 가지고 자신들을 지지하는 증거들을 늘립니다.   네슬레/알란드 그리스어 신약성경 27판 혹은 28판에 보면, 알란드는 자신의 비평 본문을 지지하는 사본들의 수를 늘리기 위해 1등급, 2등급, 3등급 증거 사본들을 제시합니다. 그는 신약 성경의 27권 책들에 대해 1등급 증거들 즉 ‘꾸준히 늘 인용되는 증거들’이라는 사본들의 명단을 제시합니다.       이 그림은 2016년 3월, 대한성서공회에서 펴낸 <네스틀레 알란트 그리스어 신약성서 한국어 서문판>의 한국어 서문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한 책에 대해 1등급으로 분류된 사본은 다른 책에 대해서는 1등급 증거가 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본이 마태복음에서만 전통 본문과 10% 정도 다르고 – 10%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름 - 다른 책들에서는 전통본문과 같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사본의 경우 마태복음에서만 전통본문과 10% 정도 다르므로 사본 전체로 보면 전통 본문과 다른 부분이 1% 미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알란드는 이런 사본을 마태복음에 대한 1등급 증거라고 분류합니다.   이런 식으로 그는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등 총 27권에 대해 1등급 증거를 분류합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이런 방식을 따라서 자기들의 비평 본문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본들의 수를 늘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풀려서 그들이 얻은 1등급 증거의 수는 총 40개 정도입니다(단편 사본 말고 웬만한 양을 담고 있는 증거들).   여기서 한 가지 더 부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들은 각 책에 대해 한 사본이 전통 본문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야 1등급이 되는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과정은 그들만의 리그로 운영이 됩니다.   알란드 등이 이런 방식으로 1등급 증거 사본들을 분류한 결과, 마태복음이 이런 증거 사본들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네슬레 알란드 그리스어 신약성경 27판의 경우 그 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파피루스 (18개)2. 대문자 42개3. 소문자 19개 4. 성구집 0개   여기서 파피루스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문자 사본 42개와 소문자 사본 19개 역시 어떤 기준으로 – 전통 본문에서 몇 퍼센트 벗어나야 1등급 증거 자료가 되는지 여부 - 선정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위에서 알려드린 성구집 리스트(위키 백과)를 보면 알지만 성구집은 거의 100% 전통 본문을 지지합니다. 그런데 알란드 등은 이런 자료를 다 무시합니다.   결론적으로 알란드 등이 ‘꾸준히 늘 인용되는 증거들’ 기번을 사용해서 부풀려 만든 1등급 증거는 겨우 40-50개 정도이고 이는 전체 사본의 1%가 채 안 되는 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주교 소수 본문을 지지하는 증거 사본들이 전체 사본의 1%가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알란드의 기법에 대해 저 자세히 알기 원하는 분들은 2016년 3월, 대한성서공회에서 펴낸 <네스틀레 알란트 그리스어 신약성서 한국어 서문판>을 사서 한국어 서문을 읽어보기 바랍니다.   네스틀레 알란트 그리스어 신약성서 한국어 서문판           그리고 한 가지 더 알려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소수 사본 지지자들이 추앙하는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은 자기들끼리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수두룩합니다. 이것은 이미 사본 학계에 공공연하게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러니 누가 어떤 것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시내 사본 조작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기 바랍니다.   시내 사본 사기 조작   반면에 4-50개의 소수 본문을 제외한 99%의 안디옥 계열 사본들은 어느 것을 보아도 본문이 일정합니다. 바로 여기서 킹제임스 성경과 루터 성경 등이 나왔고 이러한 다수 사본 성경들이 전 세계의 신학과 교리와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할렐루야!   샬롬   패스터  
2016-06-23 16:34:53 | 관리자
성경보존에 대해 불신하는 세력들이 이런 문제를 걸고 넘어질때 대답할 수 있는 확실한 무기가 생겨서 너무너무 기쁩니다. 신실한 성경신자들을 곳곳에 예비하셔서 우리의 믿음을 더욱 확고해 지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2016-05-24 10:20:22 | 오광일
First Prev Back 1 2 3 4 5 6 Forward Next L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