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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네덜란드의 밴 브루겐 박사(Dr. Jacob Van Bruggen)가 지은 신약성경의 고대 본문(The Ancient Text of the New Testamen)라는 유명한 책을 올립니다. 이것은 사본학에서 늘 언급되는 중요한 책입니다.         15년 전 쯤에 신학을 공부하러 펜사콜라 크리스천 대학에 갔을 때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은 방대한 양의 도서였습니다. 특히 킹제임스 성경과 관련된 수없이 많은 자료를 직접 대할 수 있어서 매우 행복했고 많은 자료들을 복사해서 읽곤 하였습니다. 자료를 찾으니 펜사콜라 대학 도서관 직인이 보여 그때가 그리워집니다. 국내에도 이제는 이런 자료들이 있으면 좋은데 사실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 사이트 상단 녹색 메뉴 중 킹제임스 성경 메뉴에 KJB 사본학이라는 분류를 만들어 사본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비록 영어로 되어 있지만 아무래도 문제의 근원을 보여 주는 자료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일을 그만 두더라도 누군가가 이어서 하기 위해서는 이런 자료들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주님의 평안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6-05-13 10:19:0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마덴(D.K.Madden)이 지은 뉴킹제임스 성경 분석 자료를 올립니다.         15년 전 쯤에 신학을 공부하러 펜사콜라 크리스천 대학에 갔을 때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은 방대한 양의 도서였습니다. 특히 킹제임스 성경과 관련된 수없이 많은 자료를 직접 대할 수 있어서 매우 행복했고 많은 자료들을 복사해서 읽곤 하였습니다. 자료를 찾으니 펜사콜라 대학 도서관 직인이 보여 그때가 그리워집니다.   국내에도 이제는 이런 자료들이 있으면 좋은데 사실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 사이트 상단 녹색 메뉴 중 킹제임스 성경 메뉴에 KJB 사본학이라는 분류를 만들어 사본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비록 영어로 되어 있지만 아무래도 문제의 근원을 보여 주는 자료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일을 그만 두더라도 누군가가 이어서 하기 위해서는 이런 자료들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주님의 평안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6-05-13 10:11:58 | 관리자
죽은 키텔이 어떻게 성경을 내나?   NIV, NASV 등 현대 역본들의 구약성경 번역 대본은 보통 루돌프 키텔(Rudolf Kittel, 1853-1929)의 히브리어 성경 즉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3판(Biblia Hebraica)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위키 백과에 있는 대로 키텔은 독일의 튜빙겐 대학에서 공부하고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구약학 교수로 지내다가 1929년에 죽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Rudolf_Kittel   처음에 그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구약 본문 번역에 사용된 ‘벤 카임 마소라 본문’(Ben Chayyim Masoretic Text)을 사용하여 1906년에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1판을 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비평 장치’(critical apparatus)를 각주 형태로 모든 페이지의 하단에 도입하여, 전통 히브리어 마소라 성경 본문과 배치되는 이문(異文)들을 삽입함으로써 신학자들이 전통 구약성경 자체를 의심하고 고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각주라 하지 않고 비평 장치라고 하여 무언가 그럴듯하게 만들었지만 그 내용은 본문을 의심하게 하는 난외주입니다(다음 사진에서 각주를 보기 바람, 이런 각주가 페이지마다 10개 정도 됨).       키텔은 1913년에 1판을 수정하여 2판을 냈습니다. 그리고 1929년에 라이프치히에서 사망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Biblia_Hebraica_(Kittel)   그런데 보통 ‘키텔 성경 3판’이라 불리는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3판은 그가 죽은 지 8년 만인 1937년에 나왔습니다. 어떻게 이미 죽은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불리는 성경을 낼 수 있을까요? 실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키텔이 죽은 뒤 독일의 위템베르크(Württemberg) 성서 공회는 그의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1, 2판 저작권을 산 뒤 칼레(Paul. E. Kahle, 1875-1964)를 시켜 ‘벤카임 전통 마소라 본문’을 ‘벤 아세르 마소라 본문’(Ben Asher Masoretic Text)으로 바꾸고는 마치 키텔이 편찬한 것처럼 그의 이름으로 불리는 1937년 판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3판으로 출간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1935년에 독일의 라이프치히 대학교는 레닌그라드 코덱스(Codex Leningradensis)라 불리는(주후 100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사본을 2년 동안 칼레 등에게 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레닌그라드 코덱스는 ‘벤 아세르 마소라 본문’(Ben Asher Masoretic Text)으로 많은 부분이 변개된 사본입니다.   히브리어 성경 출판자들은 키텔의 이름을 사용해야만 성경이 더 팔릴 것으로 확신하고는, 그 일을 주도한 칼레 대신 이미 8년 전에 죽은 키텔의 이름을 붙여 1937년에 키텔 성경을 출간한 것입니다. 그 이후로 키텔의 이름으로 불리는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3판(BHK)은 현대 학자들이 현대 역본들의 구약성경 번역을 위해 사용하는 표준 히브리어 본문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쉽게 아마존 등에서 키텔의 이름이 붙은 1937년 판 히브리어 키텔 성경을 구할 수 있습니다.   http://www.amazon.com/BIBLIA-HEBRAICA-HEBREW-BIBLE-Kittel/dp/B000ODLV5Q/ref=sr_1_3?ie=UTF8&qid=1462959108&sr=8-3&keywords=kittel+hebraica   이것은 사실상 사기 행각입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이름의 책을 낼 수 있단 말입니까? 더욱이 이름은 키텔 성경이지만 그 3판은 본문 자체가 ‘벤 카임 마소라 본문’에서 ‘벤 아세르 마소라 본문’으로 바뀌었으니 히브리어 구약성경 본문의 부패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웨이트 박사는 칼레의 본문 바꿔치기와 키텔의 비평 장치를 통해 구약성경 전체에서 20,000~30,000 군데의 부패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1967년과 1977년에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키텔의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3판을 개정한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투트가르트」(BHS)가 출간되었는데 이 마소라 성경 역시 레닌그라드 사본에 기초한 ‘벤 아세르 마소라 본문’을 사용한 것입니다.     NIV, NASV, NKJV 같은 현대 역본들의 구약성경은 키텔의 히브리어 성경 3판 혹은 BHS 등에서 비평 장치를 동원하여 번역되었으므로 킹제임스 성경과는 자연히 많은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 출간되는 성경들에 대한 광고를 보면 NIV, NASV의 역자들도 자신들이 ‘전통 마소라 본문’을 사용하여 구약성경을 번역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이 내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순진한 독자들은 이들도 KJB의 ‘전통 마소라 본문’을 사용한 것으로 믿게 됩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소라 본문에도 두 종류가 있으며 KJB의 ‘마소라 본문’과 NIV, NASV 등 현대 역본의 ‘마소라 본문’이 매우 다릅니다. 이들이 ‘마소라 본문’을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독자들을 현혹시켜 KJB를 보지 못하게 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비평 장치를 도입하여 구약성경 부패를 가져온 키텔의 아들 게하르트 키텔(Gerhard Kittel, 1888-1948)은 자기 아버지로부터 반유대주의 사상을 물려받아 나치 히틀러를 돕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전쟁 관련 소송에 회부되어 수백만의 사람들을 죽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Gerhard_Kittel   역사의 이런 진실을 보면서 이제는 그리스도인들이 깨어 분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의 번역과 출간 과정에 다시는 이런 속임수가 없어야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2016-05-12 10:53:19 | 관리자
안녕하세요?   요즘 어떤 분이 킹제임스 성경의 오류를 지적한다는 책을 짓고는 그 안에서 본문과는 거의 상관없는 동전 이야기로 페이지를 채우는 것을 보고 한마음 미션의 한 분이 <산토끼, 놋, 이스터> 책에 들어 있는 무어맨 박사님의 글 <페니와 데나리온>을 번역해 주셨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manus&write_id=104   물론 킹제임스 성경의 우수성을 아는 분도 잘 모르면 이런 부분을 오해할 수 있지만, 악의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쓴 글을 보면서 ‘우물 안 개구리’라는 우리말 속담이 떠올랐습니다. 영어와 영어의 역사에 대해 바르게 알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 모든 독자를 위한 글입니다. 무어맨 박사님은 현재 영국 런던에 살고 계시니 아마도 그분의 말은 믿어도 좋을 것입니다.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하니까요. 성경 변호를 위한 좋은 자료이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페니와 데나리온>   질문: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그리스어 ‘데나리온’을 ‘페니’로 번역한 것은 독자들에게 완전히 잘못된 인상을 심어 주었습니다. 어떻게 페니가 (데나리온과 마찬가지로) 하루 임금과 동등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단 말인가요? 참고로 우리말 성경들은 대개 그리스어를 그대로 살려 ‘데나리온’이라고 번역했는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페니’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흠정역도 그렇게 번역했는데 어떻게 영어 킹제임스에서 단어 대 단어로 옮겼다고 할 수 있나요? And When he had agreed with the labourers for a penny a day, he sent them into his vineyard (마태복음 20 장 2절). Shall we go and buy two hundred pennyworth of bread, and give them to eat? (마가복음 6장 37절) Why was this waste of the ointment made? For it might have been sold for more than three hundred pence, and have been given to the poor (마가복음 14장 4-5절). … he took out two pence, and gave them to the host, and said unto him, Take care of him; and whatsoever thou spendest more, when I come again, I will repay thee (누가복음 10장 35절). A measure of wheat for a penny, and three measure of barley for a penny (요한계시록 6장 6절). 답변: 영국식 화폐 시스템인 파운드, 실링, 그리고 페니(혹은 복수형인 펜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1971년 전까지 페니가 ‘d’(데나리온의 두문자어)를 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깜짝 놀랄지도 모릅니다. 그 당시 50페니는 ‘50d’라고 쓰였습니다. 물론 여기에 쓰인 ‘d’는 데나리온을 뜻합니다. 로마의 데나리온에 기반을 두는 영국의 페니는, 잘 알려지지 않은, 앵글로색슨족에 속한 두 명의 켄트 왕에 의해 은 동전(페니)으로 8세기에 도입되었고, 막강했던 머시아의 오파 왕에 의해 보급되었다. 상승하는 은 가격과 통상 무역의 증대로 필요한 동전의 수가 급증하면서 은 페니의 크기는 꾸준히 줄어들었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1558-1603)에 사용되던 페니의 무게는 윌리엄 1세 시대에 사용되던 것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았고, 금속의 품질도 많이 저하되었다. 왕권의 최초 카퍼(구리) 페니는 1797년이 되어서야 발행되었다. (“Coin”: 1989 Year Book). 영국이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영국의 페니는 로마 제국의 데나리온으로부터 직계로 전해 내려온 것이었는데 이 데나리온은 신약시대 로마 제국의 주요 동전이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시대에는 은 1파운드에서 평균 곡물 60알(8분의 1온스) 정도의 무게가 되는 84데나리온이 나왔다. 네로 황제는 이러한 체계를 1파운드에서 96데나리온을 빼내는 것으로 만들어 표준 무게를 곡물 52알 정도로 줄였다. 그러나 그 기간에 사용된 주화들을 살펴보고 확인한 결과, 그것은 표준에 정확하게 충실하지는 않은 것이었다. 신약시대 팔레스타인 지역 화폐 연구 결과를 보면, 데나리온이 주로 은 화폐 체계를 형성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포도원의 품꾼 비유를 통해 데나리온이 그 당시 통상적인 하루 임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Ungers Bible Dictionary, 724 페이지). 수세기에 걸쳐 은 페니(d)는 영국에서 사용된 주요 동전 혹은 유일한 동전이었습니다. 페니가 반으로 나뉘고(반 페니), 4분의 1(파딩 – 구 페니의 4분의 1에 해당하던 영국의 옛 화폐)로 나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시 페니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페니는 위조되기까지 했습니다.   “은 재료에 박아 넣은 위조 페니는 폴라드라고 불렸고 에드워드 1세 통치 기간 동안 유럽에서 수입되었다” (1272-1307) (“Coin”). 페니의 구매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750년경, 런던 노동자의 평균 주급은 10실링 (12페니가 1실링)이 조금 안 되었고 농장 일꾼들의 주급은 7실링 정도였습니다(Chambers 백과사전의“Wages and Salaries” 참고). 반면에 킹제임스 성경이 보급되기 이전 시대로 돌아가 보면, 농업 노동자들은 숙박을 제공 받고 주급으로 1실링(12페니)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마태복음 20장에 나와 있는 대로 하루에 1페니를 받는 임금 제도에 상당히 가까이 다가간 편입니다. [즉 이전 시대로 돌아가면 갈수록 노동자의 임금은 하루에 1페니 수준이 됨]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에 쓰인 ‘페니’는 특정 시대에 통용된 페니의 가치에 대한 문제로 보는 것보다 더 넓은 문맥에서 이해하여야 합니다. 14세기에 ‘페니웨이트’(은 페니의 무게)는 트로이 시스템에서 귀중한 금속이나 동전의 무게를 달 때 사용되던 측정 단위가 되었습니다. 트로이 시스템의 무게 형량(금, 은, 보석 등에 쓰이는 형량)에서 1파운드에는 12온스가 함유되어 있다(참고로 현재는 1 파운드에 16 온스이다). 1 온스는 20 페니웨이트와 동등하고 1페니웨이트는 24개의 곡물 낟알과 동등하다. (“Troy Weight,” World Book Encyclopedia). 더 나아가, 단어 ‘페니’는 어떤 면에서는 일반적으로 무게 단위를 표현하는 용어였습니다. 옥스퍼드 사전(OED)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은 페니가 수백 년 동안 유통되던 주요 동전 혹은 유일한 동전이었다는 사실을 참고해 볼 때, 페니라는 이름 자체가 크게는 ‘동전’ 혹은 ‘돈의 구성단위’의 동의어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OED) 그러므로 1611년 이후로 물가 상승률이 페니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와는 상관없이 화폐 단위로서의 페니의 중요성은 오랫동안 확립되었고 이러한 사실은 킹제임스 성경 번역본에 정확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   참고로 옥스퍼드 사전은 정확하게 페니가 성경적 용례로는 데나리온을 나타낸다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Penny: B.I.2.a Rendering L. denarius (see denarius); also occasionally argenteus (‘piece of silver’), and nummus (= nummus sestertius, sesterce). Chiefly, now only, in Biblical use and allusions thereto.   옥스퍼드 사전에 가서 데나리온(denarius)을 살펴보니 다음과 같이 정의가 내려져 있습니다.   그리스의 드라크마에 해당하는 은 동전, 영어에서는 페니이고 짧게는 ‘d’로 표기한다.3.3 The weight of the silver denarius used as a measure of weight, nearly equivalent to the Greek drachma. ¶In English monetary reckoning used for ‘penny’, and abbreviated d.; see D III. 1.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말 그대로 1611년에 다시 영국인들을 위해 번역된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번역자들은 그 당시의 페니가 로마의 데나리온을 그대로 반영하므로 데나리온 대신 페니를 사용한 것입니다. 지금도 그들의 사전 자체가 페니의 성경적 용례가 무엇인지 정확히 보여 주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영국인 혹은 미국인 가운데 1페니를 10원, 20원으로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 본문을 반대하는 영미권의 학자들도 이런 것을 들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틀렸다고 하면 웃음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말의 경우는 다릅니다. 우리는 페니 같은 시스템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것은 원어 그대로 데나리온이라고 번역하는 것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하였다고 하면서 왜 페니를 데나리온으로 번역했느냐고 누가 묻거든 다음과 같이 대답하면 됩니다.   “영국 사람들에게는 페니가 데나리온을 뜻하므로 그리 번역한 것에 문제가 없지만 우리나라에는 데나리온과 동일시되는 화폐 단위가 없어서 원어 그대로 음역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김재근 목사님께서 글을 써 주셨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3925   파운드 단위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07   데나리온으로 음역할 것인가, 페니로 번역할 것인가는 수용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의 역사 및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돈이나 무게 등의 단위는 수용 언어가 원어를 그대로 반영하면 수용 언어의 단위로 바꾸는 것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단위 문제로 본문 비평을 하는 것은 시간낭비입니다.   우리는 ‘NIV, NASV 같은 현대 역본들의 신약성경에 왜 13구절이 통째로 빠졌는가?’ 등과 같은 근본적인 본문 문제에 시간을 써야 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개역성경 역시 13구절이 빠져 있습니다. 성경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이런 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 쓸데없는 동전 문제로 본질을 흐리는 것은 바른 일이 아닙니다.     존귀하신 창조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의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위로자 성령님의 큰 평안이 임할 줄로 확신합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Heaven and earth shall pass away, but my words shall not pass away.  6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7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6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as] silver tried in a furnace of earth, purified seven times. 7 Thou shalt keep them, O LORD, thou shalt preserve them from this generation for ever. 
2016-05-12 10:02:50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다수 본문'이라는 주제를 잠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신약성경의 경우 지금까지 5800개의 그리스어 사본이 발견되었고 이 중에서 99%는 서로 일치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Biblical_manuscript#New_Testament_manuscripts   서로 일치하는 사본이 다수이기 때문에 그런 사본들은 대개 다수 사본이라 불리고 자연스레 나머지는 소수 사본이라 불립니다(천주교 바티칸 사본, 시내 사본 등).       이런 두 종류의 사본들을 통합하면 두 개의 본문이 나오고 자연스레 우리는 이 둘을 다수 본문, 소수 본문이라 부릅니다. 루터 성경, 킹제임스 성경, 올리베땅 성경 등은 다수 사본(본문)에서 번역되었고 그 본문의 이름은 ‘공인 본문’(Textus Receptus, TR)으로 온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공인’은 1세기 이후로 대다수 교회와 성도들이 이 본문만을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며 사용했다는 의미의 공인이지 누가 공적으로 인정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102   그런데 1970년대 이후로 미국에서 성경 논쟁이 벌어지던 때에 미국 댈러스 신학교의 핫지스(Zane C. Hodges)와 파르스태드(Arthur L. Farstad)는 공인 본문과 천주교 소수 본문의 중간 쯤 되는 하이브리드 본문 즉 ‘다수 본문’이라는 또 다른 본문을 내놓았습니다. 이들의 ‘다수 본문’은 영어로 ‘The Majority Text’로 불립니다.   원래 이들이 낸 책의 제목은 <The Greek New Testament According to The Majority Text>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이 책을 보면 이들의 ‘다수 본문’이 공인 본분의 또 다른 이름인 줄로 생각할 독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들은 바로 이렇게 교묘한 술수를 써서 공인 본문을 무너뜨리려 하였습니다. 사실 이들은 5800개 사본들 중 다수인 99% 사본들(약 5742개) 가운데 소수인 1800개 정도의 사본만 추려서 자신들의 본문을 만들고는 그 이름을 ‘다수 본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본문은 5742개 사본들의 다수인 약 4000개 사본들과 비교할 때 1500 군데나 차이가 납니다. 물론 공인 본문을 기반으로 한 킹제임스 성경과도 그 정도의 차이를 보입니다.   최근에 킹제임스 성경을 지지한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교묘히 핫지스와 파르스태드(Arthur L. Farstad)의 ‘다수 본문’(The Majority Text)을 이용하여 실제로 킹제임스 성경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으므로 대단히 조심해야 합니다. 이번에 올리는 이 자료는 무어맨 박사님께서 킹제임스 성경과 핫지스 등의 ‘다수 본문’의 차이가 무엇인지 연구해서 만든 책입니다. 요즘 이런 저럼 사람들이 여러 모양으로 교묘히 성경을 공격하기에 이 자료를 올리니 필요한 독자들은 다운받아 읽고 사용하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2016-05-09 11:56:21 | 관리자
안녕하세요? <8,000개의 차이> 저자이신 무어맨 박사님(Dr. Jack Moorman)께서는 장기간 NIV 등 여러 개의 현대 역본들과 KJB를 비교한 뒤 <산토끼, 놋, 이스터>라는 제목의 설명 책자를 내셨습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manus&write_id=3 46쪽 책자에는 산토끼, 놋, 이스터, 마귀, 작은 숲, 페니 등 20여 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들어 있습니다.   다른 분들이 물을 때 잘 대답하는 것도 중요하므로 공부하면 좋을 것입니다. 영어로 되어 있어 대단히 죄송하지만 참고 자료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6-05-06 15:22:16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떤 역본이 성경인가?>의 저자이신 존즈 박사님(Dr. Floyd N. Jones)께서는 <70인 역>(Septuagint)에 대해 장기간 연구하신 뒤 그 결과를 <70인 역>(Septuagint)이라는 책자로 내셨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19   76쪽 책자에는 아마도 <70인 역>(Septuagint)에 대한, 가장 객관적이고도 정확한 분석이 들어 있습니다. 영어 책이지만 사본학적 증거를 위해 구체적 자료를 원하시는 분들은 파일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6-05-06 15:12:36 | 관리자
안녕하세요? <8,000개의 차이> 저자이신 무어맨 박사님(Dr. Jack Moorman)께서는 장기간 NIV 등 여러 개의 현대 역본들과 KJB를 비교한 뒤 <NIV 등 현대 역본들의 365개 교리 문제>라는 비교 책자를 내셨습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manus&write_id=3   108쪽 책자에는 마태복음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현대 역본들의 365개의 교리 문제들이 정리되어 들어 있습니다. NIV 등의 현대역본들과 KJB의 이런 차이는 기존의 한글 성경들과 흠정역 사이에도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현대역본들의 본문(소수 본문)과 KJB의 본문(다수 본문)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 지극히 당연한 결과입니다. 성경들 간의 구체적 비교를 원하시는 분들은 파일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6-05-06 15:04:50 | 관리자
안녕하세요?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 저자이신 웨이트 박사님(Dr. Donald D. Waite)께서는 장기간 영어 NASB와 KJB를 비교한 뒤 1990년 11월 1일에 비교 책자를 내셨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2   194쪽 책자의 15쪽에는 요약이 있고 그 뒤로는 사례 요약이 있으며 21쪽에는 결론이 있습니다. 그 뒤로는 신구약 전체에서 발견되는 총 4232군데의 차이가 구체적으로 비교되어 들어 있습니다. NASV와 KJB의 이런 차이는 기존의 한글 성경들과 흠정역 사이에도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현대역본들의 본문(소수 본문)과 KJB의 본문(다수 본문)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 지극히 당연한 결과입니다. 성경들 간의 구체적 비교를 원하시는 분들은 파일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자료는 구약과 신약 모두를 포함하여 방대하므로 본 사이트의 글에서 파일로 첨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어로 된 이 자료를 보고 사용하기 원하는 분들은 본 사이트 우측 상단의 웹하드로 가셔서 다운받기 바랍니다.PDF 파일 명은 <NASV_KJB>이고 2016년 5월 6일에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6-05-06 14:49:44 | 관리자
안녕하세요?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 저자이신 웨이트 박사님(Dr. Donald D. Waite)께서는 장기간 영어 NIV와 KJB를 비교한 뒤 1996년 4월 26일에 비교 책자를 내셨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2   286쪽 책자의 17쪽에는 요약이 있고 그 뒤로는 사례 요약이 있으며 23-24쪽에는 결론이 있습니다. 그 뒤로는 신구약 전체에서 발견되는 총 6653군데의 차이가 구체적으로 비교되어 들어 있습니다. NIV와 KJB의 이런 차이는 기존의 한글 성경들과 흠정역 사이에도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현대역본들의 본문(소수 본문)과 KJB의 본문(다수 본문)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 지극히 당연한 결과입니다. 성경들 간의 구체적 비교를 원하시는 분들은 파일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자료는 구약과 신약 모두를 포함하여 방대하므로 본 사이트의 글에서 파일로 첨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어로 된 이 자료를 보고 사용하기 원하는 분들은 본 사이트 우측 상단의 웹하드로 가셔서 다운받기 바랍니다. PDF 파일 명은 <NIV_KJB>이고 2016년 5월 6일에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6-05-06 12:38:39 | 관리자
안녕하세요?   한 형제님이 다음과 같이 매우 의미 있는 덧글을 남겼기에 간단히 글을 씁니다.   --------구글 번역기를 통해서 하고 싶은 문장을 넣고 번역을 해 보면 기계적 번역의 한계가 무엇인지 금방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어머님의 사랑은 긴 장마 끝에 비치는 아침 햇살과 같다.”는 문장의 번역을 의뢰하였는데, 그 번역하시는 분이 그것을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넣어 “어머님의 사랑은 아주 특별하고 소중하다.”라고 번역을 하면 전달하려는 내용은 비슷할지 모르나 제가 어머님께 드리려고 했던 말은 아닙니다. 진짜 하나님이 하셨던 말씀들을 듣고자 하시는 분은 이것이 무엇인지 금세 이해하시리라 생각됩니다. --------   NIV, 리빙 바이블, 메시지 같은 성경들(?)과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차이가 바로 이것입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어머님의 사랑은 긴 장마 끝에 비치는 아침 햇살과 같다.”NIV, 리빙 바이블, 메시지 등: “어머님의 사랑은 아주 특별하고 소중하다.”   그래서 형식적 일치와 문맥을 보고 동일한 단어를 잘 구분해서 번역하는 일이 성경 번역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축자 영감, 축자 보존, 축자 번역” 여기의 축자는 ‘모든 단어’를 뜻합니다.   성경 번역을 전혀 해 보지도 않고 단어 몇 개 들먹이며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 살 수 있으나 곧 그 마음이 떠납니다. 지난 400년의 데이터와 역사를 이기지 못하니까요.   “왕의 말씀이 있는 곳에 권능이 있나니 누가 왕에게 이르기를, 왕께서 무엇을 하시나이까? 할 수 있으랴?”(전8:4)   이 왕의 말씀이 고스란히 킹제임스 성경에 들어 있습니다.   할렐루야!   이 점을 기억하며 다음의 글을 유심히 주의 깊게 다시 읽어보기 바랍니다.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 즉 일대일 번역의 의미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manus&write_id=52 동일 원어를 기계적으로 일치시키면 졸역이나 오역이 나온다!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manus&write_id=59   번역과 반역 사이에서: 기계적 일치 번역은 안 된다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12 원어를 과도하게 의지하면 안 되는 이유(원어 소프트웨어)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9   원어, 좋은 것이지만 정도를 벗어나면 독약이 된다!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466   ‘킹제임스 성경에 관한 불편한 진실’에 대하여: 난외주와 대소문자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64   -------- 존귀하신 창조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의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위로자 성령님의 큰 평안이 임할 줄로 확신합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Heaven and earth shall pass away, but my words shall not pass away.  6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7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6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as] silver tried in a furnace of earth, purified seven times. 7 Thou shalt keep them, O LORD, thou shalt preserve them from this generation for ever. 
2016-04-25 12:22:24 | 관리자
안녕하세요?   최근에 ‘단어 대 단어’, 즉 ‘word for word’라는 말이 경우에 따라 형식적 일치(formal equivalence)를 의미할 때도 있고 기계적 일치를 의미할 때도 있음을 보여 드렸습니다. 또한 성경 원어를 번역할 때 그것을 모두 기계적으로 일치시키면 졸역이나 오역이 된다는 것도 아랫글을 통해 보여 드렸습니다.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 즉 일대일 번역의 의미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manus&write_id=52   1. 단어 대 반어 번역의 의미 재확인   이와 관련해서 어떤 분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나오는 ‘God forbid’라는 말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해서 잠시 글을 씁니다.        ‘God forbid’는 킹제임스 성경에 구약에 9번, 신약에 16번 나옵니다. 이에 해당하는 단어가 구약은 스트롱 번호 2486, 신약은 3361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구약의 예를 보겠습니다.   백성이 사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안에서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어야 하리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이다. 그가 이 날 [하나님]과 함께 일하였나이다, 하여 백성이 이렇게 요나단을 구출하였으므로 그가 죽지 아니하니라(삼상14:45).   And the people said unto Saul, Shall Jonathan die, who hath wrought this great salvation in Israel? God forbid: [as] the LORD liveth, there shall not one hair of his head fall to the ground; for he hath wrought with God this day. So the people rescued Jonathan, that he died not.   여기서 ‘God forbid’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습니다. ‘2486  hl;ylij;   chaliylah  {khaw-lee'-law}  or chalilah  {khaw-lee'-law}또는   chalilah,   하리라;    2490에서 유래한 지시형; 문자적으로‘신성을 더럽히는’것에 관하여 ;(감탄사)‘결단코 아니다!’로 사용 :- 멀리하다, 결코 아니다   일단 이것은 히브리어로 한 단어인데 영어에서는 두 단어로 번역되었습니다. 흠정역은 세 단어로 번역되었습니다(이것은 개역 등도 마찬가지임).   이를 통해 보듯이 형식적 일치란 히브리어/그리스어가 한 단어이면 수용 언어가 꼭 한 단어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어떤 사람이 원어 한 단어를 반드시 수용 언어 한 단어로 번역하는 것을 일대일 대응 번역, 즉 단어 대 단어 번역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는 번역의 기초조차 모르는 사람일 겁니다.   물론 대명사, 수동/능동태, 시제 등은 동일하게 번역되어야지요.   신약으로 가서 로마서 6장 15절을 보겠습니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를 지으리요?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What then? shall we sin, because we are not under the law, but under grace? God forbid.   여기서 ‘God forbid’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두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1. 3361  mhv   me {may}제한된 부정을 나타내는 기본  불변사(반면에 3756은 절대적인 부정을 나타낸다);(부사)‘아니’,(접속사)~않도록, 또한(부정적 대답【반면에 3756은 확실한 것을 기피한다】을 함축하는 의문사로서)‘~인지 아닌지’, 어느, 그러나, 참다,  하나님이 금하다, 결핍하다, ~입다, ~도 아니다, ~없이, 종종 본질적으로 같은 관계에서 복합적으로 사용된다, 3362, 3363, 3364, 3372, 3373, 3375, 3378을 보라. <마1:19;막4:5;눅18:1;요15:2>불. no, not; 2. 1096  givnomai   ginomai  {ghin'-om-ahee}기본동사의 연장형과 중간태;(‘발생하게’)‘되는 원인이 되다’, 즉 (재귀형)‘되다’(‘되기 시작하다’), (문자적으로, 상징적으로, 강조의미로) 아래와 같이 폭넓게 사용됨;일어나다, 모이다, 되다, ~에 일어나다, 스스로 행하다, (지나가기 위해)가져오다, (지나가기 위해)오게 되다, 계속하다, 나뉘다, 되었다, 끌어내다, 끝맺게 되다, 떨어지다, 끝내다, 따르다, 발견되다, 이루어지다, 하나님이 금하시다, 자라다, 일어나다, 가지다, 지키다, 만들다, 결혼하다, 되도록 정해지다, 착수하다, 지나다, 수행되다, 출판되다, 요구하다, 보이다, 취해지다, 변화하다, 사용하다, ~이 되다,~일 것이다, ~할 작정이다, 쓰여졌다 <마5:45;눅1:8;롬3:19>동. to cause to come  being into;   이 두 단어를 영어는 두 단어로, 흠정역과 개역 등은 네 단어와 세 단어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말이 바뀌면 형식적인 요소는 유지되어도 단어의 수까지 같게 할 수는 없음을 보게 됩니다. 히브리어 및 그리스어의 사례들이 이를 잘 보여 줍니다.   그러면 이것은 옮긴 단어의 개수가 다르니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 방식의 번역이 아닐까요? 아니지요. 당연히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의 번역입니다. “결코 그럴 수 없다”는 원어의 뜻 그대로 형식적 일치를 이루었으니까요. 그러나 기계적으로 단어 수를 맞춘 것은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탁월한 번역, 훌륭한 번역을 지향하는 사람은 결코 그런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졸역을 지향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나 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희한한 번역(?)으로 잠시 우리에게 실소(失笑)를 선사하는 구글 번역기 정도나 할 일이지 지혜 있는 사람들이 할 일이 결코 아닙니다.   이를 설명하니 또 다른 분이 이렇게 묻습니다.   “영어에는 ‘God’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데 원어에는 없지 않습니까? ‘God’은 어디에서 왔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맞습니다. God은 성경 원어에는 원래 없습니다. 그러면 왜 들어갔을까요?   일단 ‘God forbid’를 직역하면 “하나님께서 금하시느니라” 혹은 “하나님께서 금하시기를 원하노라”입니다. 이를 적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를 지으리요? “하나님께서 금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금하시면 결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즉 영어에서는 ‘God forbid’라는 표현이 가장 강하게 금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이렇게 표현해야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결단코 죄를 지을 수 없다”는 의미가 최고의 강도로 표현됩니다.   흠정역 역시 이를 잘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개역(개정)처럼 단순히 “그럴 수 없느니라”로 하면 ‘결코’가 빠지므로(스트롱 3361) 번역한 문장의 힘이 쭉 빠져 본래의 뜻을 온전하게 전달하지 못합니다.   롬6:16를 다른 영어 성경들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KJB: God forbidNKJV: Certainly notNASB: May it never beNIV: By no meansAMP Bible: Certainly notASV: God forbid   다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강력한 표현은 KJV와 ASV의 God forbid입니다. 다른 것은 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과 관련된 표현입니다.   우리말 흠정역은 우리말로 가장 강력하게 원어와 영어를 표현하였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에 대해 “왜 하나님께서 금하시느니라”로 번역하지 않았느냐고 말합니다. 그것은 영어에서는 가장 강력한 표현이지만 우리말에는 그런 용례가 없습니다. 번역 시 번역자는 자기 말을 잘 알고 자국민들의 정서에 가장 부합되게 번역해야 합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그렇게 했고, 우리말 흠정역도 그렇게 했습니다.   2. 현대 사본학자(서기관들)들을 조심하라.   킹제임스 성경이 기계적 일치 번역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현대 사본학자가 바로 메츠거(메쯔거)입니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였고 마르티니, 알란드 등과 함께 로마 교황청을 위해 일한 사람입니다.   예수회 출신 카톨릭 추기경과 UBS(연합성서공회)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4614   메츠거가 사용하는 유명한 예가 있는데 그것은 rejoicing과 boasting입니다. 그는 이 두 단어가 동일한 그리스어에서 나왔으므로 기계적으로 동일하게 boasting 혹은 pride로 번역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러 곳에 있지만 현상이 동일하므로 일단 고전15:31, 고후2:12를 보겠습니다.   개역(개정), NIV 등 현대 역본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boasting)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흠정역: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로 인한 기쁨(rejoicing)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개역(개정), NIV 등 현대 역본들: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boasting or pride)이라(고후2:12)   흠정역: 우리가 세상에서 생활할 때에 단순함과 하나님께 속한 진실함으로 하였고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였으며 또 너희를 향하여는 더욱더 그리하였노니 이것이 우리의 기쁨(rejoicing)이요 또 우리의 양심이 증언하는 바라.   자, 원어를 보지 않아도 양식 있는 독자라면 바울이 이런 데서 자신을 자랑하고자 했는지, 그들로 인해 기뻐하고자 했는지 금세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어에는 두 뜻이 다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런 뜻 가운데 앞뒤 문맥상 이런 부분은 자랑이 아니라 기쁨이 되어야 하기에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기쁨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연이어 나오는 고후1:14를 보시면 명확해질 것입니다.   개역(개정), NIV 등 현대 역본들: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   흠정역: [주] 예수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기쁨이 되는 것 같이 우리도 너희의 기쁨이 되는 것이라.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서로에게 기쁨이 되어야지 자랑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수 있습니까?   히3:6을 보기 바랍니다.   개역(개정), NIV 등 현대 역본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흠정역: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집을 다스리는 아들로서 신실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기쁨을 끝까지 굳게 붙들면 우리가 그분의 집이니라.   과연 우리가 끝까지 붙잡을 것이 ‘자랑’일까요? 이 둘은 완전히 다르지 않습니까?   여기에 해당하는 그리스말은 스트롱 번호가 2745나 2746입니다.       스트롱 번호 2745를 가진 고전5:6; 9:15-16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흠정역: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5:6) 흠정역: 그러나 내가 이런 것들을 하나도 사용하지 아니하였고 또 내게 이같이 해 달라고 이것들을 쓰지 아니하였나니 내가 죽는 것이 누가 나의 자랑하는 것을 헛되게 만드는 것보다 나으리라. 내가 복음을 선포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나니 이는 필연적으로 내가 해야 하기 때문이라. 만일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아니하면 참으로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고전9:15-16)   이런 데는 당연히 자랑하는 것을 표현하므로 흠정역도 자랑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물론 개역, NIV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해 흠정역은 앞뒤 문맥을 신실하게 살피고 같은 단어를 기쁨 혹은 자랑으로 바르게 나누어 번역하였고 다른 역본들은 기계적으로 다 자랑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 결과 다른 역본들은 바울과 성도들을 자기 자랑만 일삼는 교만한 자들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역본을 쓰는 성도들은 자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마땅할까요? 성경의 어느 곳에서는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했는데, 또 다른 구절에서는 자랑하라고 되어 있으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바로 이런 이유 때문데 모든 단어를 기계적으로 일치시키는 것은 번역을 망치고 심지어 성도의 생활에까지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3. 영광인가,칭찬인가?   하나만 더 예를 들겠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는 예수님 당시 지도자들 중에서도 예수님을 인정하고 다르고 싶었으나 하지 못한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흠정역: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두머리 치리자들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믿되 바리새인들로 인해 회당에서 쫓겨날까 염려하여 그분을 시인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사람들의 칭찬(praise)을 [하나님]의 칭찬(praise)보다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더라(요12:42-43).   이들은 사람들에게서 칭찬받는 것을 하나님에게서 칭찬받는 것보다 더 중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현대 역본들은 이를 달리 표현하였습니다.   개역(개정), NIV 등 현대 역본들: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그들은 사람의 영광(glory)을 하나님의 영광(glory)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여기서도 동일한 현상이 생깁니다. 칭찬과 영광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스트롱 번호 1391입니다. 1391  dovxa   doxa {dox'-ah}1380의 어간에서 유래;(매우 ‘분명한’)폭넓은 적용으로(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목적어 혹은 주어)‘거룩’, 위엄, 거룩(한) 영예, 찬양, 경배 <롬1:23;고후6:8>여명. radiance, glory;   번역자들은 ‘칭찬’과 ‘영광’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앞뒤 문맥상 어느 것이 적합할까요? 당연히 ‘칭찬’입니다.   이런 예는 성경에 수천 군데나 나옵니다.   2-3개의 뜻 가운데서 어느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 교리가 변하고 마음가짐과 태도가 변합니다.   해 아래서 하는 일은 바람을 잡는 일인가?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304 십일조를 3일 만에 드릴까요, 3년 만에 드릴까요?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84>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37   4. 결론   1. 부디 여러분과 가족의 영적 안위를 위하여 번역을 해 보지 않은 자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들은 원어 사전으로 세뇌된 채 망상 속에서 본인들도 알지 못하는 말을 쏟아냅니다.   2. 특히 누가 메츠거, 알란드 등을 언급하거나 혹은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주는 글’ 등을 인용하면서 이런 종류의 험담을 옮기거든 이 글을 보여 주고 속히 그들 쳐놓은 영적 올무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   속지 말라. 악한 사귐은 선한 습성을 부패시키느니라(고전15:33)   내가 이것을 아노니 곧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너희 가운데로 들어와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요, 또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내어 자기들을 따르게 하려고 왜곡된 것들을 말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리라. 그러므로 깨어서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이제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의 말씀에 맡기노니 이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워 거룩히 구별된 모든 자들 가운데서 너희에게 상속 유업을 주리라(행20:29-32).   3.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오류가 없는 완전한 성경입니다. 창세기 1장부터 계시록 22장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100% 정확하고 순수하게 들어 있습니다. 읽고 비교하고 확신을 갖기 바랍니다.   4. 우리말 흠정역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말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성실하게 번역한 성경입니다. 원어와 영어를 몰라도 됩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 성경으로 충분합니다.   원어를 과도하게 의지하면 안 되는 이유(원어 소프트웨어)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9 영어를 못하면 성경을 이해하기 어렵다고요?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17   존귀하신 창조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의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위로자 성령님의 큰 평안이 임할 줄로 확신합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Heaven and earth shall pass away, but my words shall not pass away.   6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7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6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as] silver tried in a furnace of earth, purified seven times. 7 Thou shalt keep them, O LORD, thou shalt preserve them from this generation for ever. 
2016-04-21 13:26:17 | 관리자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 즉 일대일 번역의 의미‘형식적 일치’와 ‘기계적 일치’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오늘 한 분이 전도서 3장 10절의 travail에 대해 질문하셔서 잠시 답을 드립니다.   또한 동시에 성경 번역 시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의 일대일 번역의 의미가 무엇인지 즉 ‘형식적 일치’와 ‘기계적 일치’의 뜻이 무언인지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1. 동일 단어 번역 문제   ---------저는 얼마 전부터 흠정역과 영어 KJB를 같이 읽고 있습니다. 흠정역 전도서 3장 10절[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해산의 고통을 주사 그 안에서 단련 받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KJB 3장 10절I have seen the travail, which God hath given to the sons of men to be exercised in it. 두 구절을 비교했을 때, 흠정역 성경에 ‘해산의 고통’이라고 번역 되었는데 해산이라는 뜻이 KJB의 어디에 해당하는지 궁금해서 문의를 드립니다.   참고로 지금까지 제가 읽은 ‘그리스도예수안에’의 킹제임스 흠정역 400주년 기념판은 뜻이 정확하고 가장 KJB와 가깝다고 여겨집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고를 했을까 생각하니 감사의 마음이 절로 밀려옵니다. 번역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며 중요한 일인지 알기 때문에 정말 조심스럽게 질의해 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이, 사람 앞이 아니라 하나님께 그 수고를 인정받으면 최고의 기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좀 더 성경을 구체적으로 배우고 알아가며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 또한 성도의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문의하신 분은 아마도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인 것 같습니다.   개역성경(개역개정 포함)은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개역: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사전을 보니 ‘노고’는 ‘힘들여 수고하고 애씀’을 뜻합니다.   일단 제가 주로 아래아 한글을 쓰므로 거기 내장 사전(도구 항목의 사전 모음)에 있는 travail의 정의를 찾아보았습니다.   ᛜtrav·ail [trǝvéil, trǽveil] n. 산고(產苦), 진통; 고생, 노고; 곤란; (흔히 pl.) 노작(勞作).   travail에 대해 옥스퍼드 사전은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1. 육체적 정신적 수고 또는 아픔, 고생되는 일, 이런 것들의 결과2. 해산의 고통   라이프성경사전은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립니다.   travail: 해산의 고통, 아이를 낳을 때 산모가 겪는 고통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397249&cid=50762&categoryId=51387 이것들을 종합해 보면 travail은 ‘노고’도 되고 ‘해산의 고통’도 됩니다.   그러므로 둘 중 하나로 번역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인생의 쓰라린 고통을 이야기하는 전도서의 관점에서 travail이 그냥 ‘힘들여 수고하고 애씀’보다 해산할 때 산모가 겪는 고통에 가깝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이를 좀 더 잘 설명하기 위하여 전도서 1장 13-14절을 보겠습니다.   13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에 관하여 찾아보고 탐구하려고 내 마음을 쏟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이 쓰라린 해산의 고통을 주사 그것으로 단련 받게 하셨느니라. 14 내가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을 보았는데,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   13절의 ‘쓰라린 해산의 고통’(sore travail)과 14절의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 서로 매칭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개역성경은 이와는 전혀 문맥이 다릅니다.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4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3절의 수고와 14절의 바람을 잡는 것이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해 아래서 하는 일은 바람을 잡는 일인가?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304   흠정역은 창38:27, 사23:4, 요16:21 등에서는 travail을 ‘해산의 고통’이라는 의미로 번역하였습니다. 앞뒤 문맥이 아기 낳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출18:8, 민20:14 등에서는 고난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번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번역이란 창문을 열어 빛이 들어오게 하는 작업이다. 번역은 껍질을 까서 우리가 열매를 먹도록 해주며 휘장을 젖혀서 우리가 지성소를 들여다보게 해준다. 번역은, 야곱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굴려내고 물을 길어 그것으로 라반의 양떼들에게 물을 주었던 것처럼(창29:10), 우물의 뚜껑을 열어 우리가 물로 나가게 해 준다. 참으로 보통 사람들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지 않는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두레박이나 물길을 그릇이 없이(요4:12) 야곱의 그 (깊은) 우물 옆에 서 있는 아이들과 같고 이사야서에 언급된 사람, 즉 봉인된 책을 넘겨받아 읽을 것을 요구받는 사람과 같을 것이다. ‘원하건대 이것을 읽으라, 하면 그가 이르기를, 그것이 봉인되었으므로 내가 읽을 수 없노라, 할 것이요’(사29:11).   따라서 어떤 단어를 어떤 단어로 번역하느냐는 문맥에 의해 결정되며 그 결과는 위에 보여 드린 ‘해 아래서 하는 일은 바람을 잡는 일인가?’의 예처럼 판이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같은 단어라도 번역자가 문맥을 잘 파악하여 번역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2.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히브리어 원어 성경을 단어 대 단어로 즉 형식적 일치를 이루도록 번역한 성경이다.   전도서 1장 13절을 보면 ‘sore travail’(쓰라린 해산의 고통)이 나옵니다. 이것은 히브리어 ‘ra’(스트롱 번호 7451)와 ‘inyan’(6045)을 번역한 것입니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이런 것이 잘 드러나지 않게 의역하였습니다. 알 수가 없습니다.   또한 ‘travail’이라는 명사는 전도서에 8번 나옵니다(1:13; 2:23, 26; 3:10; 4:4, 6, 8; 5:14). 흠정역은 이것을 모두 ‘해산의 고통’으로 번역하며 일관성을 유지하였습니다. 반면에 개역성경은 수고, 노고, 재난 등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지만 같은 책에서 같은 단어를 일관성 있게 번역해야만 원 저자가 의도한 그 책의 뜻을 더 잘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8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흠정역: 누구의 빵이든 거저먹지 아니하였으며 너희 중의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수고와 해산의 고통 속에서 밤낮으로 일하였나니   KJB: Neither did we eat any man's bread for nought; but wrought with labour and travail night and day, that we might not be chargeable to any of you:   개역: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여기에는 ‘labour and travail’이 나옵니다. 흠정역은 이것을 ‘수고와 해산의 고통’으로 번역하였고 개역은 ‘수고하고 애써’로 번역하였습니다. 역시 둘 다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산의 고통’으로 번역하면 사도 바울의 사역이 산고처럼 힘든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뜻과 함께 그가 사람들을 구원시키는 일이 아이를 낳는 고통을 수반한다는 뜻을 다 포함합니다. 사람을 구원받게 하는 일은 말 그대로 해산의 고통을 통해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이를 travail로 표현하였습니다.   3. 형식적 일치와 기계적 일치의 큰 차이   번역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 번역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든 단어를 기계적으로 일치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는 그것이 ‘단어 대 단어’의 일치 번역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는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주는 글’ 등을 뜻을 왜곡한 채 인용합니다. 즉 그 서문에서 번역자들이 기계적 일치를 하지 않았다고 기술하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단어 대 단어를 번역한 성경이 아니라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이것은 'word for word'라는 영어 말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무지의 결과입니다.   킹제임스 영어 성경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본의 모든 단어를 영어로 ‘일대일 대응’이 되게 번역한 성경 즉 형식적 일치를 이룬 성경입니다. 즉 주어, 목적어, 단수, 복수, 수동태, 능동태, 시제 등이 원본과 같습니다. 다만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을 하면 반드시 추가해야 할 부분이 있어서 그런 부분은 이탤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이것을 영어로는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 번역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의미의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는 형식적 일치를 뜻합니다.   성경 번역 기법: 형식적 일치 vs 동적 일치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84   그런데 이 경우도 히브리어/그리스어의 한 단어가 영어에서는 두 단어로 혹은 히브리어/그리스어의 두 단어가 영어에는 한 단어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원어와 수용 언어가 다르므로 번역에서 당연히 생길 수 있는 일입니다. 즉 히브리어가 5단어라고 해서 영어로 꼭 5개가 되라는 법은 없습니다. 다만 주어, 동사, 목적어, 수동태, 도치 등은 원래대로 유지되며 4개나 6개 혹은 7개 단어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을 단어 대 단어의 번역 즉 형식적 일치의 번역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은 히브리어/그리스어의 같은 단어를 기계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게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단어를 기계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게 번역하는 것을 영어로는 ‘word for word equivalence’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word for word’ 라는 말도 형식적 일치인지 기계적 일치인지 잘 구분해야만 합니다. 기계적 일치는 구글 번역기와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하는 일이고 그것은 심지어 번역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한 단어에는 몇 가지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번역자들은 앞뒤 문맥을 보고 같은 단어라도 달리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래야만 제대로 된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히브리어/그리스어의 같은 단어를 기계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게 번역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위키 백과에도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번역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에 예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King_James_Version         위 그림에서 보듯이 명사 travail은 신구약 성경에 총 31회 나옵니다(구약 26회, 신약 5회). 여기서 맨 오른쪽의 숫자는 스트롱 번호입니다. 구약의 경우 3205, 8513, 60045, 5999, 2342, 2470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다 다른 원어입니다. 그런데 이 원어들에는 다 해산의 고통, 수고, 노고 등의 뜻이 있으므로 번역자들은 그중에서 문맥을 보고 원어는 달라도 다 travail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킹제임스 성경이 ‘단어 대 단어’의 일대일 번역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이거나 알면서도 마치 약점인 것처럼 부각시키려는 의도입니다. 만일 그런 단어들을 삭제했다면 그것은 ‘단어 대 단어’의 일대일 번역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즉 형식적 일치를 이루지 않는 번역입니다. 하지만 그런 예는 킹제임스 성경에 단 하나도 없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이 세상의 모든 성경 중에서 ‘단어 대 단어’의 일대일 번역을 가장 많이 이룬 성경입니다.   전도서만 보더라도 travail에 해당하는 원어는 6045와 5999입니다. 전3;10의 6045의 원어 사전 뜻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6045  @y:nÒ[i   `inyan  {in-yawn'}6031에서 유래;‘노고’, 즉(일반적으로)‘고용’, 또는(특히)‘용무’:-사무, 고생   전4:4의 5999의 원어 사전 뜻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5999  lm;[;   `amal  {aw-mawl'}5998에서 유래;‘수고’, 즉 ‘진저리나는 노력’;따라서(신체적이건 정신적이건)‘걱정하다’:-불만, 통한, 사악, 고역, 과실, 불쌍한, 불행, 고통, 아픈, 완고함, 슬픔, 노고, 고생, 싫증나는, 사악함   보시다시피 이 둘은 다 엄청난 수고와 고통을 뜻합니다. 그래서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이것을 해산의 고통과 같은 의미로 보고 ‘travail’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단어 대 단어의 일대일 대응을 기계적 일치로 보면 번역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번역과 반역 사이에서: 기계적 일치 번역은 안 된다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12   4. 단어 대 단어를 기계적 일치로 여기면 번역을 망친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 루아흐(스트롱 번호 7307)를 봅시다. 이것은 영, 바람 등으로 번역됩니다. 창세기 1:2; 6:3 등의 영(靈)이 바로 루아흐입니다. 출10:13, 19에는 동풍과 서풍이 나옵니다.   모세가 이집트 땅 위로 자기 막대기를 내밀매 {주}께서 그 땅에 동풍(東風)을 가져오사 그 온 낮과 그 온밤에 불게 하시니 아침이 되어 동풍이 메뚜기들을 몰아오매   자 이런 부분을 단어 대 단어의 기계적 일치를 위해 동영(東靈), 서영(西靈)이라고 하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모든 영어 성경은 물론 개역성경까지도 이를 다 동풍, 서풍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단어 대 단어의 기계적 일치를 일대일 대응 번역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결코 제대로 된 번역이 아닙니다.   자 그러면 우리말 성경으로 이런 예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spirit은 대개 ‘영’으로 번역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기 5장 1절의 spirit은 영으로 하면 말이 안 됩니다.   흠정역: 요르단 서쪽에 있던 아모리 족속의 모든 왕과 바닷가의 가나안 족속의 모든 왕이 우리가 건널 때까지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요르단의 물들을 마르게 하신 것을 들었을 때에 그들의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더 이상 정신이 없었더라.   KJB: And it came to pass, when all the kings of the Amorites, which were on the side of Jordan westward, and all the kings of the Canaanites, which were by the sea, heard that the Lord had dried up the waters of Jordan from before the children of Israel, until we were passed over, that their heart melted, neither was there spirit in them any more, because of the children of Israel.   흠정역 맨 끝의 “정신이 없었더라”의 정신은 영어로 spirit(스트롱 번호 7307, 루아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영이 없었더라”라고 번역하면 말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영어에서는 spirit이 두 가지 의미를 다 가지고 있으므로 독자가 알아서 판단하면 되지만 우리말에서는 spirit의 또 다른 뜻인 정신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개역성경 역시 이것을 정신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개역: 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  5. 우리말 흠정역 성경은 형식적 일치를 이루려고 노력한 성경이다.   흠정역과 개역은 뜻이 비슷하지만 흠정역은 단어 대 단어의 형식적 일치를 이루었고 개역은 단어를 삭제하였습니다. 영어의 끝 부분은 ‘neither was there spirit in them any more’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any more’를 보기 바랍니다. 이것은 히브리어 오데(스트롱 번호 5750)이며 뜻은 앞의 neither와 합쳐지면서 말 그대로 ‘더 이상’입니다. 이런 단어는 이미 중학교 영어 시간에 다 배우는 말입니다.   단어 대 단어의 형식적 일치를 이루려면 반드시 any more를 표현해야 합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세심하게 그것을 놓치지 않았고, 우리말 흠정역도 같습니다. 그러나 개역은 그 단어를 삭제함으로써 형식적 일치를 벗어났습니다. 흠정역의 표현은 ‘여리고 사람들이 그 이후로 계속 정신이 없었다’는 뜻(다 죽었으니까요)이고 개역은 ‘그 당시만 (일시적으로) 정신을 잃었다’는 뜻이 됩니다.   이런 것을 통해 우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단어 대 단어를 일대일 대응이 되게 번역한 성경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한 구절만 그런 것이 아니라 100% 모든 구절이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어로 완벽히 보존된 성경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흠정역 성경은 이 성경을 우리말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로 신실하게 번역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원어를 보지 않아도 됩니다. 심지어 대부분의 성도들은 영어를 보지 않아도 됩니다. 저처럼 번역을 하거나 목사로서 설교를 하거나 성경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다른 용례를 살펴보기 위해 원어나 영어를 참조하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도 이미 컴퓨터로 누구나 다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가장 좋은 도구는 슈퍼바이블입니다. 이것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원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딜럭스바이블도 있습니다(아마도 이것은 슈퍼바이블에서 나온 것으로 보임, 형태가 거의 같음). 다만 이것은 몇 년 전에 업데이트를 하면서 소수 본문 원어를 사용하므로 킹제임스 성경과 다른 데가 많습니다. 즉 개역성경이나 NIV와 비슷합니다. 그래도 위에서 제가 보여 드린 것들은 동일함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원어를 과도하게 의지하면 안 되는 이유(원어 소프트웨어)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9   그래서 심지어 영어에 능통하지 못하더라도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다면 우리말 흠정역 성경을 성실히 연구하고 성경 소프트웨어 등을 잘 활용하여 뛰어난 설교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다음의 글도 참조해 주십시오.   영어를 못하면 성경을 이해하기 어렵다고요?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17   6. “이렇게 원전분해가 다 되어 있는데 왜 번역을 해야 할까요?”   원전 분해와 원어 사전은 말 그대로 원어의 뜻을 나열한 것입니다. 이것을 번역자가 앞뒤 문맥을 보고 신학적으로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여 문장으로 만들어야 성경이 나옵니다. 이 일을 이루려면 시적인 감각, 수용 언어(자국어) 실력, 문법, 맞춤법 등을 모두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위클리프 이후로 완벽한 영어 성경이 1611년에 나오기까지 무려 230여 년이 걸린 것입니다(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짐).   알렉산더 스커비가 낭독하는 영어 성경을 들어보기 바랍니다. 말 그대로 웅장함과 시적 아름다움의 극치가 드러나 있습니다.   Alexander Scourby의 영어 킹제임스 성경 낭독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41   그래서 1611년 킹제임스 성경 반포 이후에는 괄목할 만한 다른 역본이 나오지 않았고 1970년까지 약 360년 동안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이 성경으로 구원받고 신학을 정립하고 경건 생활을 하였던 것입니다. 지난 40년 동안 천주교 소수 본문에 근거를 둔 여러 가지 현대 역본들이 나왔지만 여전히 영국, 미국, 캐나다, 아프리카, 중동, 인도 등 영어권에서는 킹제임스 성경이 독보적 성경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글을 마치면서 다시 한 번 우리는 번역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번역이란 창문을 열어 빛이 들어오게 하는 작업이다. 번역은 껍질을 까서 우리가 열매를 먹도록 해주며 휘장을 젖혀서 우리가 지성소를 들여다보게 해준다. 번역은, 야곱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굴려내고 물을 길어 그것으로 라반의 양떼들에게 물을 주었던 것처럼(창29:10), 우물의 뚜껑을 열어 우리가 물로 나가게 해 준다. 참으로 보통 사람들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지 않는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두레박이나 물길을 그릇이 없이(요4:12) 야곱의 그 (깊은) 우물 옆에 서 있는 아이들과 같고 이사야서에 언급된 사람 즉 봉인된 책을 넘겨받아 읽을 것을 요구받는 사람과 같을 것이다. ‘원하건대 이것을 읽으라, 하면 그가 이르기를, 그것이 봉인되었으므로 내가 읽을 수 없노라, 할 것이요’(사29:11).   그리고 인터넷에 떠도는 유언비어나 한두 사람이 망상 속에서 그런 유언비어들을 모아서 기록한 허접한 책의 부정확한 주장 – 심지어 ‘영어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드리는 글’ 등을 자기들 편의대로 곡해한 말 - 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독보적 아름다움을 손상시키려는 사람들의 선동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망상이란 말 그대로 ‘1. 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된 생각 즉 망념(妄念)이며 2. 근거가 없는 주관적인 신념. 사실의 경험이나 논리에 의하여 정정되지 아니한 믿음으로, 몽상 망상ㆍ체계화 망상ㆍ피해망상ㆍ과대망상 따위가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하나님이 존귀하게 보존해주신 말씀을 100% 담고 있는 킹제임스 성경의 놀라운 영광을 폄훼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400년이 넘는 검증을 거친 킹제임스 성경의 위용은 그러한 산들바람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존귀하신 창조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의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위로자 성령님의 큰 평안이 임할 줄로 확신합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Heaven and earth shall pass away, but my words shall not pass away.   6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7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6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as] silver tried in a furnace of earth, purified seven times. 7 Thou shalt keep them, O LORD, thou shalt preserve them from this generation for ever.   
2016-04-19 15:57:28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저는 ‘성경 사본학과 학식의 깊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83   여기서 저는 다음을 언급하였습니다. ---------- 영국 런던에서 사역하시는 무어맨 박사님은 수용 본문(TR)과 네슬레-알란드 본문의 모든 단어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비교하고 다 세어 보았습니다. 그 결과 네슬레-알란드 본문의 단어가 수용 본문보다 무려 2,886개나 부족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은 웨스트코트‐호르트 본문이 삭제한 단어보다 934개가 더 많음을 뜻합니다. 삭제된 2,886개의 그리스어 단어들을 영어 단어로 환산하면 베드로전후서와 맞먹는 분량이 됩니다.   무어맨 박사님의 이 연구는 최종적으로 2002년에 <8,000개의 차이>라는 제목의 책(524쪽)으로 출판되었습니다. http://www.amazon.com/Differences-Between-Greek-Modern-Versions/dp/1568480547/ref=sr_1_1?s=books&ie=UTF8&qid=1459413487&sr=1-1&keywords=8000+differences 무어맨 박사님의 치열한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보여 드리기 위해 마태복음이 시작되는 1쪽과 계시록 마지막 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   오늘은 이 귀한 책 전체를 무료 PDF 파일로 올립니다.   성경이 얼마나 다른지 눈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출간한 <박사성경>은 이 8,000개 차이의 많은 부분을 킹제임스 흠정역 신약 성경 본문에 표기하였습니다. 이것 역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1   존귀하신 창조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의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위로자 성령님의 큰 평안이 임할 줄로 확신합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Heaven and earth shall pass away, but my words shall not pass away.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as] silver tried in a furnace of earth, purified seven times. Thou shalt keep them, O LORD, thou shalt preserve them from this generation for ever. 
2016-04-18 14:27:36 | 관리자
안녕하세요?    이 글은 한마음 미션의 고정인 자매님께서 다음 글을 번역해 주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Is Psalm 12:7 a promise that God would preserve his words? http://www.kjvtoday.com/home/does-the-second-them-in-psalm-127-refer-to-gods-words   ---------- 시편 12편 6-7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말씀들을 보존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6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7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시편 12:6-7 킹제임스 흠정역)   시편 12편 6-7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영원히 보존하시겠다는 놀라운 약속을 제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현대 번역본들은 이 놀라운 약속은 감히 누락시켰습니다. 같은 구절이 ESV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6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like silver refined in a furnace on the ground, purified seven times. 7 You, O LORD, will keep them; you will guard us from this generation forever. (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7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   NIV와 NLT 역시 ‘그들’ (5절에 언급된 학대받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보호 (보존)해 주시는  대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영어에서 남성 대명사는 일반적으로 인간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의 경우는 아니지만) NASB는 인간을 선행사로 나타내는 ‘him’을 사용했습니다. 문제는 7절에 나오는 2인칭 대명사가 ‘them’(그것들)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them’ (그것들)이 ‘words of the LORD’(주의 말씀들)을 가리키는지의 여부입니다.   사전적인 분석 단어 ‘지키다’ (שׁמר)와 ‘보존하다’ (נצר)는 성경의 다른 부분들에서 사람과 말씀 둘 다 관련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지키다’ (שׁמר)는 신명기 17장 19절, 시편 119장 57절, 그리고 잠언 7장 1절에서 말씀과 관련되어 사용되었고, ‘보존하다’ (נצר)는 (‘지키다’로도 번역 됨) 시편 105장 45절, 시편 119장 33-34절, 그리고 잠언 3장 1절에서 말씀과 관련되어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단어의 용법을 분석하는 것이 한 이론이 다른 이론보다 옳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주제 분석시편 12장의 주제는 사람들의 헛된 말과 하나님의 지속되는 말씀의 대비에 관한 것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시편 12장 전체 구절들을 ‘말씀’ 혹은 ‘말’과 관련된 부분들에 밑줄을 그어  아래에 인용해 보겠습니다.   1 (스미닛에 맞추어 악장에게 준 다윗의 시) {주}여, 도우소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끊어지고 신실한 자들이 사람들의 자녀들 가운데서 없어지나이다.2 그들이 저마다 자기 이웃과 더불어 헛것을 말하며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나이다.3 {주}께서 아첨하는 모든 입술과 교만한 것들을 말하는 혀를 끊으시리니4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혀로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누가 우리를 주관하리요? 하였도다.5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자의 학대받는 것과 궁핍한 자의 탄식하는 것으로 인하여 이제 내가 일어나 그를 향해 우쭐대는 자로부터 그를 떼 내어 안전하게 두리라, 하시는도다.6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7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8 가장 비열한 자들이 높여질 때에는 사악한 자들이 사방에서 활보하는도다.   7절은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대명사 ‘them’ (그것들) (대명사가 ‘them’ (그것들)이어야 한다고 잠시 가정해 보았을 때)은 6절에 나와 있는 ‘주의 말씀들’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시편 12편이 주의 ‘말씀들’의 우수성에 초점을 두기 때문입니다. 일부 비평가들의 말들과는 달리 이 시편의 주요 초점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보호하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보호하신다는 내용이 중요한 이슈이기는 하지만, 주제는 아닙니다. 시편 12편의 진정한 주제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짓는 죄가 ‘말씀’과 관련된 행동에 제한된다는 점을 보면 명백해집니다. 만약 주제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보호하시는 것이라면, 신체적 폭력과 같은 경건하지 않은 또 다른 악덕들도 언급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시편 12편은 의도적으로 오로지 언어적 행위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편의 주제는 인간의 헛된 말들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들의 승리입니다.   구문 분석문장구성을 보면 7절에 나온 ‘them’이 ‘the words of the LORD’ (주의 말씀들)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함을 보여 줍니다. ‘the words of the LORD’ (주의 말씀들) 혹은 비유로 제시된 ‘silver’ (은)는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명사이고 그렇기 때문에 선행사일 가능성이 큽니다.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으므로 선행사가 될 가능성이 적습니다.   논리적 분석논리적으로 분석해 보았을 때, ‘주의 말씀들’의 귀중함을 은에 비유한 후 그것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논제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주께서 백성들을 보존해 주신다고 강조하기 위해 주의 말씀들의 귀중함에 대해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요? 주의 말씀들의 귀중함과 백성들을 보존하심은 논리적으로 연관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의 말씀들의 귀중함과 하나님께서 귀중한 그것들을 보호해 주시려는 의도는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신학적 분석시편은 시이기 때문에 비유적인 언어가 자유롭게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자적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문자적으로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억압받는 자들을 영원히 보존하시겠다는 해석보다 그분의 말씀들을 보존해 주시겠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신학적으로 더 말이 되고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말씀들이 영원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 기록 어디에서도 하나님께서 억압받는 자들을 영원히 보존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나 증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주신 혼들을 보존해 주시겠다는 비유적인 생각까지 고려하여 ‘억압받는 자들’이 그저 아무런 억압 받는 자들이 아니라 믿는 자들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them’을 억압받는 자들과 연관시키는 해석은 훨씬 더 많은 추측할 거리들을 남깁니다.   문법적 분석비평가들은 시편 12장 7절에 나오는 ‘보존하다’의 대명사가 ‘them’으로 번역되었지만, 히브리어 문법을 따르면 그것은 ‘them’이 아니라 3인칭 남성단수여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NASB 같은 번역본들은 그 구절을 "You will preserve him from this generation forever."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가 남성단수대명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킹제임스 성경 번역가들이 남긴 난외주에는, ‘히브리어:  그(he). 즉  그것들 각각 모두’ (KJV 1611)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킹제임스 성경 난외주를 참고하면 성경 원어인 히브리어가 정확히 어떤 의미와 용법으로 쓰였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단수는 복수를 참조하여 배분적으로 사용됩니다. 번역가들은 그 대명사가 문법적으로 단수여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알았습니다. 하지만, 문법적으로 단수 대명사인 이 단어는 의미적으로는 복수를 뜻합니다. 영어에도 그러한 대명사가 존재합니다. ‘everyone’이라는 영어 단어는 문법적으로는 단수이지만 뜻은 복수입니다.   “I love everyone. I love them.”   ‘Everyone’은 문법적으로는 단수인 단어입니다. 우리는 “Everyone is here”이라고 말하지, “Everyone are here.”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everyone’이라는 단어를 지칭하는 대명사는 복수 대명사인 ‘them’입니다. ‘Everyone’은 복수의 뜻을 가지고 있는 문법적 단수 단어 입니다.   마찬가지로 시편 12장 7절에 쓰인 히브리어 대명사가 문법적으로는 단수의 형태를 띤다고 해도, 그 의미는 복수입니다. 복수 ‘them’ (…keep them…)과 distributive singular (복수의 관념을 개별적으로 배분하여 가리키는 단수형) ‘him’ (…preserve them…)의 조합은 ‘each and every’ 즉 각각 그리고 모든 단어가 유지되고 보존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확실하게 해 줍니다. 번역 과정에서 ‘him’을 ‘them’으로 변환시키는 것은 영어단어 ‘silver’나 ‘words’가 남성 인칭대명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유재량적이며 용인됩니다.   성별의 일치에 관하여 남성 대명사 접미사 ‘them’ (תשׁמרם)/’him’ (תצרנו)"과 여성 대명사 접미사인 ‘words’ (אמרות)의 문법적 성별 불일치는 남성적 형태인 ‘אמר’ (emer)로 종종 쓰이는 ‘words’가 남성 의미론적 방향을 가지는 걸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시편 12장 6절에서 construct state (성별과 관련하여 아프로아시아어에서 발생하는 명사 형태)로 쓰인 ‘אמרות יהוה ‘(words of the LORD)에서의 ‘words’는 남성적 특성을 띠기 때문에 ‘words는 의미론적으로 남성적 방향을 나타냅니다.   캠벨 모르간의 증언 시편 노트: 시편 12편 기자는 6-7절에서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들에 탄성을 지르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지키시고 보존해 주실 것을 선포한다. 7절의 ‘them’은 6절의 ‘말씀들’ 즉 주님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이다. 전 세계적인 부흥이나 개혁이 일어나 전 성도들이 보존되는 약속은 성경에 없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소수의 남은 자들의 구원과 자신의 말씀들의 보존이다.   http://prophets-see-all.tripod.com/46587.htmDr. G. Campbell Morgan agreed with the rendering found in the King James Bible. He writes, "The psalmist breaks out into praise of the purity of His words, and declares that Jehovah will keep them and preserve them. The them here refers to the words. There is no promise made of widespread revival or renewal. It is the salvation of a remnant and the preservation of His own words which Jehovah promises." (Notes on the Psalms, Revell Comp., p.32).   요한 웨슬리의 증언 다음 링크에는 요한 웨슬리 목사님의 시편 12;7 노트가 있는데 그분도 분명히 6-7절은 말씀 보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biblehub.com/commentaries/wes/psalms/12.htm 끝으로 시편 12편에 대해서는 음영진 목사님께서 가장 자세히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게 잘 설명하셨으므로 다음 링크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firstbaptist.or.kr/default/product/01.php?com_board_basic=read_form&com_board_idx=15&top=3&sub=0&&com_board_search_code=&com_board_search_value1=&com_board_search_value2=&com_board_page=&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04-20 11:20:06 KJB 사본학_old에서 이동 됨]
2016-04-18 10:23:13 | 관리자
안녕하세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처음 접한 분들이 가끔 제게 묻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샀는데 앞표지부터 뒤표지까지 모두 다 하나님이 보존해 주셨나요?”   아마도 다음과 같은 글에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읽고 뜻이 너무나 명확하기에 이 성경을 깊이 사랑하다 보니 이렇게 순진하게 질문하는 분들이 있어 한영대역 성경을 가지고 답을 드립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4519   킹제임스 흠정역 한영 대역 성경을 펴면 맨 앞에 ‘성경전서 타이틀’,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 ‘제임스 왕께 드리는 글’, ‘성경 개관’, ‘성경전서목차’ 그리고 ‘일러두기’까지 총 16쪽이 나옵니다. 이것들은 모두 사람의 글이므로 당연히 하나님이 보존하지 않습니다.   그 뒤에 창세기를 펴면 맨 위에 창세기 요약 표가 나옵니다. 이것도 역시 모두 사람의 글입니다. ‘제1장’, ‘하나님의 6일 특별 창조(창2:4-9; 욥38:4-11)’ 등의 제목도 다 사람의 것입니다. 1절 에 보면 ‘처음에’에 관주 a가 붙어 있습니다. 이런 관주도 다 사람의 것입니다.   출애굽기 등도 다 이런 식으로 구분하면 됩니다.   이렇게 해서 1397쪽으로 가면 말라기 4장 끝 부분이 나옵니다. 거기에 ‘대언서들의 끝’, ‘The End of The Prophets’가 나오는데 이것들도 다 사람의 것입니다. 그 밑의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다음 장에 가면 <구약과 신약 사이의 400년>이라는 2쪽짜리 글이 나옵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그 400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요약해서 알려주는 유익한 정보이지만 역시 사람의 글입니다.   그 다음에 ‘신약전서 타이틀’이 나오는데 이것도 사람의 것입니다.   마태복음부터 계시록까지는 위에서 설명한 창세기 부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서신서로 넘어가면 맨 끝에 추신 즉 편지 끝에 덧붙여 말한 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301쪽의 로마서 16장 끝에는 ‘로마 사람들에게 고린도에서 써서 겐그레아에 있 교회의 종 뵈베 편에 보내다’가 나오는데 이것 역시 사람의 것입니다.   481쪽은 계시록의 끝입니다. 여기에 있는 ‘끝’과 ‘Finis’ 그리고 그림도 다 사람의 것입니다.   그 이후에 나오는 부록의 모든 글과 지도 등도 다 사람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보존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들(단어들)은 창세기 1장 1절부터 계시록 22장 21절까지의 1,189장, 31,102절의 단어들뿐입니다. 이 외에는 심지어 장 번호 및 절 번호도 다 사람의 것이므로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 보존 약속에 의해 영원토록 보존되는 부분은 아닙니다.   이것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서도 동일합니다.   1611년 오리지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보면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총 1504쪽으로 구성된 오리지널 킹제임스 성경은 다음에서 모두 볼 수 있습니다. 모든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볼 수 있도록 편리하게 되어 있으니 유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https://www.originalbibles.com/the-original-king-james-bible-1611-pdf/  1. 구약성경 타이틀(1쪽)2. 왕께 드리는 헌사(3쪽)3. 역자들이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11쪽)4. 달력(12쪽)5. 39년의 연감(1쪽)6. 이스터를 찾는 방법(1쪽)7. 아침과 저녁 기도에서 읽을 시편과 교훈들(4쪽)8. 구약과 신약의 책 이름들(1쪽)9. 성경 인물들의 족보(약40쪽): 1-9까지가 총 76쪽임 10. 구약 성경(77쪽부터 1004쪽까지 총 928쪽)11. 외경(1005쪽부터 1216쪽까지 총 212쪽)12. 신약성경(1217쪽부터 1504쪽까지 총288쪽)13. 한 쪽에 5개 정도씩 들어 있는 난외주(밑의 그림 참조)14. 관주(9,000여 개, 밑의 그림 참조) 15. 장 요약(밑의 그림 참조)   1-15번까지의 목록에서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시는 ‘말씀들’(단어들)은 오직 10번의 구약성경과 12번의 신약성경뿐입니다(파란색). 이외의 모든 것은 다 사람의 것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는 있으나 신뢰할 필요도 없고 영원히 보존되지도 않는 것들입니다.         또한 15번 즉 성경의 각 장마다 맨 위에 있는 몇 줄의 장 요약(설명)도 마찬가지로 사람의 것입니다.         11번의 외경은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 있는 <구약과 신약 사이의 400년>이라는 글과 마찬가지로 100% 사람의 글이므로 역사적 상황을 참고할 수 있는 자료로 쓸 수 있다는 점 외에는 다른 가치가 없는 글입니다. 여기에 다른 의미를 두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은 외경이 들어 있어서 건전하지 못한 성경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 역시 괜한 트집을 잡으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분명하게 오리지널 성경에서 총 212쪽을 차지하는 외경의 모든 페이지에 ‘외경’(Apocrypha)라고 아주 크게 표시해 두었습니다. 즉 그들은 이것이 지도와 같은 참조 자료(사람의 글)이지 성경이 아님을 확실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도 거룩한 성경 기록을 존중하듯이 외경을 존중하지 않았다. 번역자들이 상대적으로 외경을 경시한 것은 제네바 성경에서처럼 명백하게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1611년도에 발행된 초판에서 번역자들이 보여 준 방법에서 잘 드러난다. 그들은 천주교회의 성경들처럼 외경을 구약성경 안에 넣지 않고 대신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사이에 넣었고 표제지에 전혀 외경을 언급하지 않았다. 표제지는 간단하게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포함하는 거룩한 성경’이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목차에서도 그것들은 단지 ‘외경이라 불리는 책들’이라 기록되었고 그것들을 아예 구약과 신약성경에서 떼어 놓았다.   게다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시작하는 첫 페이지에 정교한 조각 그림을 가지고 있지만 외경은 그렇지 않다. 정경에는 각 페이지의 내용을 요약하는 부분이 윗부분에 난외 표제로 있었지만 - 예를 들어 창세기, ‘인간의 창조’, ‘첫째 안식일’, ‘결혼 관습’ 등 - 외경에는 처음 페이지부터 끝까지 단지 ‘외경’이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더 나아가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자기들이 외경에서 했던 방식으로 정경의 성경책들을 헐뜯지 않았다. 예를 들어 외경 에스드라 전서(1 Esdras) 5장 5절을 보면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말 즉 ‘이곳은 부패되었다’는 것과 같은 말이 난외 공간에 기록되어 있다. 에스더기의 경우 천주교회의 것은 지금 구약성경에 있는 9장 말고 몇 장이 더 첨가되어 있다. 킹제임스 성경의 외경 부분에서 이 장들의 제목에는 ‘에스더기의 부가적인 이 장들은 히브리어나 갈대아어로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킹제임스 성경의 영광, 토마스 홀랜드 지음, 73-74쪽)   <킹제임스 성경의 영광 무료 PDF>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4&page=5   13번 난외주도 마찬가지입니다(첫번째 그림 참조). 하나님은 한 번도 난외주를 인정하신 적이 없으며 그 안의 단어들을 보존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존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난외주가 아니라 지난 400년 동안 온 세상 사람들이 손에 들고 읽은 킹제임스 성경 본문입니다. 그래서 난외주는 1611년 성경이 출간된 이후 곧바로 사라져서 아무도 여기에 가치를 두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정확하게 판단해서 알아야 할 것은 난외주란 소수의 다른 견해가 있었다는 정황을 정직하게 알리는 것이 목적일 뿐 난외주 자체가 본문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20세기 최고의 본문 비평 학자로 알려진 에드워드 F. 힐즈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번역자들이 킹제임스 성경에 첨가한 난외주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수고를 섭리[돌보심]로 인도하셨음을 보여 준다. 스크리브너(1884)는 외경이 포함된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에 8,422개의 난외주가 있었다고 말한다. 스크리브너는 구약성경의 난외주들 가운데 4,111개는 히브리어나 아람어 원문에 좀 더 문자적인 의미를 제공해 주며 2,156개는 달리 번역할 수 있는 예들이고 67개는 이문들이라고 말한다. 또한 신약성경의 난외주들 가운데 112개는 그리스어의 문자적 번역을 제공해 주며 582개는 달리 번역할 수 있는 예들이고 37개는 이문들이다. 이러한 난외주들은 번역자들이 그들의 사고 과정 속에서, 모든 가능성을 가늠하면서 자기들이 보기에 가장 최상의 것으로 보이는 번역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섭리로 인도를 받았음을 보여 준다. <킹제임스 성경 변호 213쪽> <킹제임스 성경 변호 무료 PDF>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3&page=5 이분은 곧 번역자들은 자신들의 부족함과 연약함으로 인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다 살펴보았음을 난외주에 표기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겸손함을 보시고 섭리 즉 돌보심으로 그들이 본문의 단어들 - 난외주가 아니라 - 을 선택하는 것을 인도해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들의 겸손함에 대해 힐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난외주들이 보여 주듯이,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자신들의 작품인 그 성경을 완전한 것 혹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고 다만 그 성경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들을 신뢰할 만하게 재현한 것으로 여겼으며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도 그것을 그렇게 추천했다. (214쪽) 그리고 힐즈는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주는 글>의 마지막을 소개합니다. "우리가 이미 서문의 분량을 초과하지 않았다면 다른 많은 것들을 온유한 독자인 당신에게 경고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더 확실히 세울 수 있는 하나님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영에게 당신을 맡기는 일만 남았다. 그분은 우리의 눈에서 비늘을, 우리의 마음에서 베일을 벗기신다. 또 우리가 자신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우리의 지혜를 열어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넓히시며 참으로 우리의 성정을 고치신다. 그 결과 우리는 금과 은보다 더 그것[말씀]을 사랑할 수 있으며 참으로 끝까지 그것을 사랑할 수 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 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분께서 우리 앞에 자신의 말씀을 놓으실 때에 그것을 읽는 것, 그분께서 자신의 손을 뻗으시고 부르실 때에 ‘오 하나님이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는 당신의 뜻을 행하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 [바로] 그것은 복된 일이며 우리를 결국 영존하는 복으로 인도할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알고 그분을 섬기도록 주님께서 돌보심과 내적 의식으로 우리 안에서 일하실 것을 구한다. 이로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우리는 그분께 인정을 받을 것이다. 성령님과 더불어 그분께 모든 찬양과 감사가 있기를 원한다. 아멘."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주는 글> 만약 난외주가 하나님의 말씀이면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본문으로 넣으셨을 것입니다. 난외주는 역자들이 자신들도 실수할 수 있는 사람임을 인정하면서 소수 의견을 존중하기 위해 집어넣은 사람의 글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겸손한 사람들을 들어서 완전한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모세나 다윗, 솔로몬 같은 불완전한 사람을 써서 완전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난외주를 성경의 본문 수준으로 승격시켜야 한다거나 난외주의 번역이 맞는다는 주장은 억지이며 역사가 인정하지 않는 무지의 소산입니다. 지난 400년 동안 모든 신학과 교회 교리는 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으로 이루어졌으며 난외주와 외경 등은 고려할 가치가 없는 ‘인간의 산물’입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64   어떤 사람들은 또한 3번 즉 ‘번역자들이 독자들에게 주는 글’에 무궁무진한 보화가 숨겨져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저를 비롯해서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를 고수하는 자들이 일부러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대담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3번 역시 역자들이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은 것들을 요약한 것으로 100% 사람의 글입니다. 3번은 킹제임스 성경의 본문과는 달리 일반 대중이 알 수 없는, 1611년경의 최고 지성인들만 알 수 있는 현학적 형태로 기술되었습니다. 따라서 3번은 현시대의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읽기가 심히 난해한 글입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성경을 주시려는 하나님께서 과연 그토록 진귀한 보물을 소수의 학자들만 볼 수 있도록 감추어 놓았을까요? 성경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하시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고 일찌감치 사문(死文)으로 만들어 폐기처분하신 것으로 본문을 뒤집으려고 하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입니다. 심지어 킹제임스 성경 반대 진영의 학자들도 이런 일은 안 합니다. 우스갯거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글을 통해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 50여 명의 학식과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고 이런 놀라운 학식과 지성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킹제임스 성경을 가장 간결하면서도 우아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번역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참고로 우리가 3번 즉 ‘번역자들이 독자들에게 주는 글’과 같이 진귀한 보배를 나쁜 의도를 가지고 몰래 숨기고 있다고 말하는 분들이 더러 있나 봅니다. 그런데 3번은 이미 오래 전에 – 아마도 10여 년 전에 – 윤여성이라는 분이 영어(왼쪽)와 한글(오른쪽) 대역으로 80쪽 분량의 소책자로 완역했기에 킹제임스 성경 진영에서 성경에 관심 있는 분들은 대개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이미 숨기려야 숨길 수도 없는 것입니다. 급한 마음으로 무엇을 지적하고 비판하기 전에 먼저 사실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본적인 양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추후에 정리해서 글을 올릴 것입니다.   샬롬   패스터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04-19 14:54:55 KJB 문서에서 복사 됨]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04-20 11:20:06 KJB 사본학_old에서 이동 됨]
2016-04-06 19:28:5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도 어떤 분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 번역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답을 해 달라고 해서 간단히 글을 올립니다. 성경 번역에는 두 가지 기법이 사용됩니다. 하나는 ‘형식적 일치’(Formal equivalence) 기법이고 다른 하나는 ‘동적 일치’(Dynamic equivalence) 기법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저명한 성경 사본 학자인 웨이트 박사님께서 잘 설명해 주셨으므로 일단 그 글을 소개하려 합니다. 그런데 그 글이 상세해서 조금 길므로 오늘은 먼저 결론을 말씀드린 뒤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성경 번역 기법 결론: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위에서 보셨듯이 킹제임스 성경은 형식적 일치(Formal equivalence)를 이룬 성경입니다. 이것을 미국 사람들은 ‘단어 대 단어 번역’(Word for word translation)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더 풀어 쓰자면 킹제임스 영어 성경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본과 주어, 목적어, 단수, 복수, 수동태, 능동태, 시제, 심지어 문장의 도치 등이 같습니다. 이것은 성경 사본 학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다음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성경 변증 학자 중의 한 사람인 로데스 박사님(Dr. Ron Rhodes)의 글입니다. http://www1.cbn.com/churchandministry/the-story-behind-the-king-james-version 여기서 그분은 글의 첫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611년에 처음 발간된 킹제임스 역본은 단어 대 단어(형식적 일치) 번역본이다. The King James Version (KJV) is a word-for-word (formal equivalence) translation that was first published in A.D. 1611.   여기서 이분이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 번역을 '형식적 일치'라고 한 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로데스 박사님은 공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지 않는 분입니다. 다만 공인으로서 정직하게 사실을 기술하였습니다. 로데스 박사님이 얼마나 유명한가 알아보려면 아마존에서 그분의 이름(Ron Rhodes)을 쳐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분이 지은 수십 권의 베스트셀러 책들이 나올 것입니다. http://www.amazon.com/Ron-Rhodes/e/B001HCZ24O/ref=sr_ntt_srch_lnk_1?qid=1459489113&sr=8-1   이래도 믿지 못하는 독자들이 있기에 위키 백과를 소개합니다. 위키 백과에는 아예 'Dynamic_and_formal_equivalence' 항목이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Dynamic_and_formal_equivalence   여기로 들어가면   1)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들, 2) 형식적 일치와 동적 일치를 같이 사용한 성경들, 3) 동적 일치로 의역된 성경들, 4) 완전 의역 성경들의 리스트가 나옵니다. 먼저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들 리스트에는 킹제임스 성경이 있습니다. 둘째로 형식적 일치와 동적 일치를 같이 사용한 성경들 리스트에는 NASB와 NIV가 있습니다. 셋째로 의역 성경들 리스트에는 귯뉴스 바이블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완전 의역 성경들 즉 저자가 쓰고 싶은 대로 쓴 성경들(?)의 리스트에는 리빙 바이블과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Message)가 있습니다. 사실 메시지는 성경이 아니라 MSG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5   구체적으로 성경 사본학과 학식의 깊이에 대해 알기 원하면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83   구체적 증거 자료 다음은 웨이트 박사님의 책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그리스도예수안에 발행) 책에서 발췌했습니다(78-90쪽).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2   -------- 인용 시작 ---------   B. 번역 기법의 우수성 1.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문자적 일치’(Verbal equivalence) 곧 ‘형식적 일치’(Formal equivalence) 번역 기법을 채택하였다.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 기법이 우수한 까닭은 번역자들이 소위 ‘문자적 일치’ 혹은 ‘형식적 일치’라 불리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대 역본들의 이른바 ‘동적 일치’(Dynamic equivalence) 방법을 채택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가지고 ‘말씀의 그 순수한 젖을 사모하여 그것으로 자라가길’ 원하신다. 이것은 우리와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의 공통된 믿음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들이 필요하다. 나는 부록 A에 이 ‘하나님의 말씀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몇몇 구절들을 실었다. 한 번 유심히 읽어 보기 바란다. 성경을 번역할 때도 사람의 말들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들’(단어들)이 필요하다.   설교자나 교사가 도움을 줄지는 몰라도 우리가 첫째로 필요로 하는 것은 순수한 말씀의 젖이다. 우리는 그것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랄 것이다. 베드로는 “은혜 안에서 자라고 우리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서 자라라.”고 말한다(벧후3:18). 영적 성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할 때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들을 알고 붙들고 믿고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고 양식으로 삼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이로써 우리는 자라나고 성장하며 증언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다. 이제 킹제임스 역본을 제외한 다른 번역본들(NIV, NASB, NKJV 등)의 문제점 특히 번역상의 문제점을 살펴보겠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문자적 일치, 형식적 일치 번역 기법을 거부했다. 대신 그들은 번역에 있어 동적 일치 방법을 도용하였다. ‘동적’(Dynamic)이란 단어는 ‘변하다’ ‘움직이다’는 뜻을 내포한다.   현대 역본 번역자들은 일종의 관용적 표현을 사용하여 히브리어를 영어로 번역했다. 관용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들이 히브리어 혹은 그리스어의 단어들을 영어로 일대일로 대응하는 방식(의미가 잘 통하는 경우에도)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본래 있는 내용에 더하거나 본래 있는 내용을 바꾸거나 빼버리는 방식으로 말을 맞추었다. 그들은 이런 일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것은 다른 말로 ‘의역’(Paraphrase)이라고도 하는데 시중에 나와 있는 ‘리빙 바이블’은 의역에 관한 한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2.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동적 일치 번역 방식을 거부하였다. 나는 동적 일치 기법이 본질적으로 마귀에 속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채택한 문자적 일치, 형식적 일치 방법은 그리스어나 히브리어 단어를 가능한 한 그대로 살려 영어로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문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어에는 동사가 있고 형용사, 전치사, 분사 등이 있다. 히브리어 문장을 구조와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영어로 옮길 수 있다면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그렇게 했다. 가령 동사가 있으면 그것을 명사나 다른 품사로 바꾸지 않고 동사로 옮겼다.   영어에는 ‘변형 생성 문법’(Transformational Grammar)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모든 것이  바뀌는 문법을 말한다. 바로 여기에서 소위 동적 일치라 불리는 기법이 나왔다. 동적 일치가 적용되면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원래 단어의 모습을 잃게 된다.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 기법의 우수성은 역자들이 이런 동적 일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들(단어들)을 고스란히 가져오는 문자적 혹은 형식적 일치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a. 동적 일치는 마귀의 것이다. 동적 일치라는 주제를 살펴보자. 우리가 동적 일치를 마귀의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믿기로 그것의 근원이 사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매우 분명한 방법으로 말씀을 보여 주시고 믿게 하신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every word)  중요하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마4:4) 우리는 그 말씀들 즉 그 단어들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동적 일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믿지 않는다. 나는 다시 한 번 이 책 뒷부분에 있는 부록 A를 참고하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의 말씀들이 얼마나 중요한가 보여 주는 구절들을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b. 동적 일치의 연대기 사탄이 시작한 동적 일치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살펴보자. 동적 일치는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시작한 것이다. 창세기 3장 1절을 보면 사탄은 뱀을 통해 이브와 아담을 차례로 넘어뜨리려 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하면서 소위 동적 일치 방법을 사용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대충 의역해서 이브와 아담에게 제시한 것이다. (b.1) 마귀의 삭제 법칙 동적 일치의 첫째 법칙은 삭제 법칙이다. 즉, 하나님을 말씀에서 빼는 것이다. 창세기 3장 1절 : 이제 뱀은 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들의 어떤 짐승보다 더 간교하더라. 그가 여자에게 이르되,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니 뱀을 통해 사탄은 이브에게 물었다. “그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 말을 있는 그대로 본다면 그것은 곧 “너희가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았느냐?”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의 다른 부분을 빼버렸다. 창세기 2장 16-1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 자, 여기까진 좋다. 사탄은 이 부분까지 인용했다. 그러나 이후 17절의 말씀이 이어진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16절과 17절을 다 말씀하셨다. 하지만 사탄은 3장 1절에서 말씀을 이런 식으로 인용했다. “자, 너희가 모든 나무에서 먹을 수 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냐?”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탄은 뭔가를 빼버렸다. 즉, 17절을 삭제하고 말한 것이다. 동적 일치가 마귀적인 것은 그것이 하나님을 말씀을 삭제하고 없애버리는 마귀의 방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록 B에 지난 1992년까지 612년 동안 존재했던 영어 성경전서들과 신약성경전서들의 목록을 실었다. 거기에는 영어 성경전서 135권과 영어 신약성경전서 293권이 올라와 있다. 합치면 총 428권이 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에게 더 이상의 영어 성경전서 혹은 영어 신약성경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428권이면 차고도 넘치지 않는가? 이 책에서 우리는 현재 근본주의자들과 복음주의자들이 주로 보는 역본들을 중심으로 내용을 진행하되 다른 역본들도 언급할 것이다. 우리는 우선 NASB, NIV, 그리고 NKJV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역본들은 모두 의역본들이다. 나는 여러 가지 실례를 통해 그 실체를 규명해 보이겠다. 우리에게는 NKJV와 원문(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을 컴퓨터로 비교 분석하여 출력한 자료가 있다. 거기에 보면 편집자들이 의역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고 빼고 변개한 곳만 2,000군데가 넘는다[B.F.T. #1442]. NASB도 똑같이 분석해 보았는데 이것에는 4,000군데가 넘었다.   NIV는 어떨까? NIV에는 이것들 중 가장 많은 6,653군데의 첨가, 삭제, 변개가 이루어졌다[B.F.T. #1749‐P]. 이 방법은 사탄 자신이 에덴동산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방법이다. 우리가 이것을 마귀의 것이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도 자신의 말씀을 함부로 바꾸길 원치 않으신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첨삭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하나님께서 그런 권한을 주신 일이 없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말씀하시면 우리는 그것을 정확히 따라야 하며 좌로나 우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   (b.2) 마귀의 변개 법칙 둘째 법칙은 변개 법칙 곧 하나님을 말씀을 바꾸는 것이다. 삭제도 바꾸는 것이긴 하지만 여기서 변개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삭제하지 않고 그분의 말씀들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창세기 3장 4절에는 이런 변개의 사례가 분명히 나타나 있다. 이 경우 변개는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의 것을 만들었다. 창세기 3장 4절을 읽어 보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창세기 2장 17절에서 하나님은 이같이 말씀하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변개된 내용이 보이는가? 본래 하나님의 말씀을 보자. 불순종의 형벌은 죽음 곧 육적 죽음과 영적 죽음이었다. 이 죽음은 불순종의 결과였다. 첫 사람을 죽인 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아니었다. 그것은 불순종이었다.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은 것이 바로 불순종이다. 그러나 창세기 3장 4절에서 마귀는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너희가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창2:17).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한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말씀하신 것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동적 일치이다. 동적 일치는 말씀을 뺄 뿐 아니라 말씀을 말씀이 아닌 것으로 바꾼다. 이것은 마귀의 것이다. (b.3) 마귀의 첨가 법칙 마지막으로 우리가 동적 일치 방법을 마귀의 것이라고 하는 셋째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 5절에서 뱀은 이브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하니라. 자, 이것이 첨가의 예이다. 과연 하나님께서 그들이 눈이 열릴 것에 관한 말씀하신 적이 있는가? 창세기 2장 17절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하나님은 단지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을 뿐이다. 창세기 3장 2‐3절을 보자.여자가 뱀에게 이르되, 우리가 동산의 나무들의 열매는 먹어도 되나 동산의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에 관하여는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그것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염려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매 [자, 이젠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그것을 만지지도 말라.”는 말을 첨가했다.] 위에서 언급된 삭제, 변개, 첨가는 동적 일치 번역 기법의 핵심이다. 그것의 본질은 옮기는 것이 아니라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의역에 불과하다. c. 동적 일치의 역사 동적 일치의 현대사는 니다(Eugene Nida)와 함께 시작되었다. 니다는 위클리프 성경 번역회, 미국 성서 공회, 연합 성서 공회에서 일했던 사람이며 동적 일치 방법을 전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시킨 장본인이다. 니다가 동적 일치라는 독약을 소개한 이후로 이 방법을 채택한 역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변개된 역본이 되었다. 그는 성경 변개의 전문가이다. 여기서 변개는 동적 일치를 말한다. 나라와 언어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거나 바꾸는 것은 근본적으로 마귀의 일이다. 심지어 성경을 믿는다는 근본주의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번역하지 않고 대신 이 동적 일치를 수용했다. 다음은 니다와 또 동적 일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책들이다. (1) 1947년, 「성경 번역」(Bible Translation), 니다 저, 런던의 연합성서공회출간 (2)  1950년, 니다는 ‘번역 또는 의역’이라는 글을 ‘성경 역자’(The Bible Translator)지에 실음 (3)  1952년, 「성경 해석의 새로운 방법론」(A New Methodology in Biblical Exegesis),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출간 (4)  1955년, 「성경 번역 문제」(Problems in Translating the Scriptures),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출간 (5)  1959년, 「성경 번역의 예를 통해 본 번역의 원칙」(Principles of Translating As Exemplified by Bible Translating),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출간 (6)  1960년, 「메시지와 미션」(Message and Mission), 니다 저, Harper Brothers 출간 (7)  1961년, 「번역자들을 위한 새로운 도움」(New Help for Translators),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간. 이 책은 도움은커녕 훼방과 치욕을 가져오는 책이다. (8)  1964년, 「번역을 위한 과학」(Toward a Science for Translating), 니다 저, 네덜란드에 있는 E. J. Brill사 출간 (9)  1966년, 「성경 번역자들의 수용 언어 본문 사용」(The Bible Translator's Use of Receptor Language Texts),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출간 (10) 1969년, 「번역의 이론과 실행」(Theory and Practice of Translation), 니다 저, 네덜란드에서 출간 (11) 1966년, 「현대인을 위한 복음」(Good News for Modern Man) 출판 (또는 「Today's English Version – 의역 성서 중 하나). 이것은 동적 일치 번역 기법을 적용한 대표적 변개 역본 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현대인을 위한 복음」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피’ - 그리스어로는 ‘haima’ - 를 전체 103번 중 36번 빼버렸는데 그중 16번은 그리스도의 피를 가리킨다. 그들은 동적 일치를 통해 그리스도의 ‘피’를 빼고 대신 ‘죽음’ 혹은 ‘희생’ 등의 단어를 넣었다. 그러나 그리스어 ‘haima’는 분명히 ‘피를 뜻한다. 다른 해석의 여지는 없다. 베드로전서 1장 18-19절을 보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너희의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구속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썩을 것들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Today's English Version」은 이것을 그저 ‘값비싼 희생’(Costly sacrifice)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피’를 빼고 ‘희생’이란 단어를 넣었다. 오늘날 유명한 모 성경 해설가[존 맥아더]도 같은 것을 주장한다. 즉, 피는 단지 죽음을 뜻하는 것이므로 그렇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피가 본질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 말은 곧 우리가 구원 받고 깨끗하게 된 것이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피와 존 맥아더의 이단 교리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정보는 B.F.T Brochure #5에 나와 있으며 현재 여기의 리스트에는 150개가 넘는 책자들이 있다.] (12) 1975년, 나이로비에 있는 WCC(세계 교회 협의회) 역시 동적 일치 방법을 채택했다. WCC는 배도한 단체로 공산주의자들과 현대주의자들과 이단들이 득실대는 곳이다. 지금도 그들은 아프리카와 다른 지역에서 살인, 약탈, 고문을 자행하는 테러리스트들을 돕고 있다. 이런 WCC가 동적 일치를 번역의 방법으로 받아들였다. 이로써 WCC는 사탄의 계보를 이었다. 또한 니다와 연합성서공회 그리고 미국성서공회의 계보를 이었다. (13) 1978년, 신국제역(NIV)이 출시되었는데 이것 역시 동일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들이 자랑스럽게 내놓은 이 역본은 마귀의 동적 일치 방법이 낳은 또 하나의 산물이었다. (14) 1983년, 세계 복음주의 침례교 연합[ABWE]이 「말씀으로」(By the Word)를 출판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선교사들 중 몇몇은 이 위원회 소속일 것이다. 출간 당시 ABWE 본부는 뉴저지 주, 체리힐 근처에 위치해 우리와 가까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일 년 내에 펜실베이니아로 옮겨갈 예정이라고 한다. 「말씀으로」는 실버네일(Lynn Silvernale)이 쓴 책이며 다른 말로 「성경 번역의 우선순위와 방법」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녀는 니다를 수없이 언급했다. 그런데 니다는 성경의 무오성을 믿지 않는 배도자이다. 그녀는 이러한 글을 남겼다. 나는 번역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 읽기 시작했다. 거기서 나는 번역 양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마다 나름대로의 분류 방법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비크맨(John Beekman)의 분류가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는 번역 특히 성경 번역에 있어 두 가지 기본적인 접근 방법을 제시했다. 하나는 문자적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관용적 접근이었다. 이것은 다시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양식으로 세분된다: 엄격한 문자적 번역, 한정적 문자적 번역, 관용적 번역, 그리고 자유 번역. [실버네일의 책, 13쪽] 실버네일의 문제는 번역 기법론에 관한 책들을 잘못 선택한 데 있다. 비크맨과 캘로우(John Callow)는 「하나님의 말씀 번역」(Translating the Word of God)이란 책을 쓴 사람들이다. 이들은 전 세계에 동적 일치 번역 기법을 알리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오늘날 근본주의 진영의 성경을 믿는 선교 단체들은 자신들의 선교 지역에 보급할 성경을 번역할 때 이 마귀적인 동적 일치 방법을 사용한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실버네일과 ABWE는 공히 관용적 번역 기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하는 동적 일치 방법을 선호하며 사용한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어떤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실버네일은 이 일을 33쪽에 언급해 놓았다. 번역 일을 시작한 지 [그녀는 방글라데시에 있으면서 벵골 성경을 번역했다] 몇 해가 지날 무렵이었다. 당시 우리 안에는 상당한 거리낌이 있었다. 성경의 여러 부분을 조정하면서도 [그녀가 말하고 있는 ‘조정’은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을 빼고 더하고 바꾸는 일을 말한다.] 마음 한 편으로는 끊임없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본문을 너무 자유롭게 번역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들이 벌이고 있는 일로 인해 양심이 움직인 것이다.] 내 동료는 특별히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의 경고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실버네일의 책, 33‐34쪽] 성경에는 동적 일치 접근법에 대한 저주가 직접적으로 나와 있다. 이어서 실버네일은 말했다. 그때 우리는 벵골 성경의 충실한 번역을 위해서는 그것에 맞는 조정 [즉, 첨가, 삭제, 변경] 양식을 선택한 뒤 일관성 있게 적용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괄호의 말은 저자의 것임] [실버네일의 책, 34쪽] 이처럼 늘 내용을 조정하는데 어찌 충실한 번역이 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빼고 하나님을 말씀을 변경한다면 충실한 번역이 나올 수 없다. 결국 우리는 그러한 조정 양식들을 담은 31개의 원칙을 목록으로 만들었다. 이 원칙들은 우리 지역 협회 전체의 인가를 받았고 이로써 공중 앞에 널리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실버네일의 책] 그래서 그들은 방글라데시 현장의 모든 ABWE 선교사들로부터 이 모든 조정 사항들을 인정받았고 이로써 그들은 자기들의 양심의 고소에서 벗어났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자기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번역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자, 수십억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고 빼고 바꿀 것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여전히 죄(罪)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다루지 않는다. 이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그녀는 죄(罪)에 대한 동의를 구하려고 그토록 애썼던 것이다. d. 동적 일치의 역사 요약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시작했고 니다(Eugene Nida)가 계승했던 이 동적 일치 ‘바이러스’는 급기야 1983년 급물살을 타게 된다. 배도한 WCC 내에서 얼마간 활동하던 이 바이러스가 소위 [거룩함의] 분리를 외치는 근본주의 진영에도 침투한 것이다. 불과 몇 달 전 우리는 ‘Bible International’에서 나온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그들이 동적 일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Bible International’은 오하이오 주 소재 근본주의 선교 기관 중 하나인 침례교 중간 선교회(Baptist Mid-Missions)의 지부이다. 나는 여러 해 동안 그곳의 전직 회장 중 한 사람을 알고 있었다. 사실 그는 오하이오 주 베레아에서 있었던 나의 목사 임직식 때 심의위원회의 일원이었다.   우리는 BIBLE FOR TODAY의 뉴스 보고서에서 ‘Bible International’에서 사용하는 동적 일치의 문제를 담은 두 편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변개에 대한 여러 통의 질의서가 이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침례교 중간 선교회는 내게 이 두 가지 보고서를 주문해 왔다. 나는 내 뉴스 보고서에 그것들을 올려놓고 사람들이 읽어 보도록 했다. 결국 침례교 중간 선교회가 사람을 보내어 이것을 수령해 갔다. 나는 부디 그들이 내용을 읽고 동적 일치로 인해 생긴 잘못들을 수정하기를 바란다. 현재 기독교 진영은 동적 일치가 만연한 상태이다. 이미 그것은 두 곳의 침례교 근본주의 선교회에 침투해 들어갔다.   동적 일치는 더 이상 배도한 진영(신복음주의, 현대주의 등)의 전유물이 아니다. 근본주의, 분리주의 진영도 예외가 아니며 오히려 이곳에서 더 위험하고 마귀적이며 치명적이다. 다를 것이 없다. 진실은 진실이고 오류는 오류다. 마땅히 더 잘 알고 있어야 할 사람들이 마귀의 방법으로 소위 ‘번역’이라는 일을 하고 있으니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뿐이다. (d.1) 동적 일치대로 한다면 어떤 본문을 쓰든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동적 일치와 본문의 관계를 알아보자. 앞서 밝혔듯이 킹제임스 성경은 가장 정확하고 바른 구약성경 히브리어 본문과 신약성경 그리스어 본문을 사용한다. 가장 좋은 본문이라도 원문의 단어나 형식이 고스란히 영어로 옮겨질 때 의미가 있다. 즉 문자적 일치, 형식적 일치의 형태로 번역될 때 좋은 본문이 살아나는 것이다. 하지만 동적 일치 방법을 사용해서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 일단 동적 일치에서는 본문상의 단어나 본문 간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언제든지 원할 때 바꿀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입맛에 맞게 더할 수도 있고 뺄 수도 있으며 바꿀 수도 있다. 그러할진대 본문의 종류가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본문이 정확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번역자가 누구면 어떠하겠으며 그의 자질을 따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들을 더하고 빼고 바꾸는 데 무슨 학위나 교육이 필요하겠는가? 사탄이 그렇게 했으니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동적 일치 방법으로 번역하는데 누가 올바른 본문에 신경 쓰겠으며 올바른 번역자를 구하겠는가? 그저 마음대로 바꾸는 일만 남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현대 역본들의 현실이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현실이다. 그들에게는 마소라 본문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다고 시리아 역본이나 ‘70인역’, 라틴 벌게이트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가정과 추측만 있으면 된다. 본문은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입맛에 맞는 대로 사용하면 된다. 자, 보시다시피 동적 일치 문제는 우리가 앞서 논의했던 본문 문제보다 더 심각하다. 우리가 킹제임스 성경을 표준으로 삼는 이유는 킹제임스 성경이 우수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그것이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본문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일은 역자들이 동적 일치 방법을 거부했기에 가능했다. (d.2) 여러 역본에 대한 4년간의 검증 나는 근본주의 진영에서 사용되는 여러 역본들을 4년 이상 검토하고 비교해 보았다. 연구의 목적은 이 역본들이 킹제임스 성경 및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과 얼마나 다른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d.2-1) 1611년 KJB 분석 첫 해는 1611년에 출간된 킹제임스 성경 - 넬슨 출판사가 재출간한 초판 킹제임스 성경 - 을 가지고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킹제임스 역본과 비교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 25쪽 분량의 보고서가 완성되었다[B.F.T. #1294]. 이 보고서에는 초판과 현재 판 사이에는 종종 철자나 구두법의 차이가 있지만 바뀐 곳은 오직 421군데뿐이며 그것도 모두 소리(귀로 듣는 차이)와 관련된 차이뿐임이 명시되어 있다. 바뀐 곳은 모두가 사소한 내용들이다. 원한다면 이 내용을 요약한 소책자를 구할 수 있다[B.F.T. #1495]. (d.2-2) NKJV 분석 다음은 NKJV와 KJV를 카세트로 들으며 비교해 보았다. 테이프에 녹음된 성경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상당히 유용한 자료이다[B.F.T. #777/1‐43]. 일단 차이점이 발견되면 해당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본문을 찾아보고 어느 번역이 더 본문에 가까운지 확인해 보았다. 물론 킹제임스 성경이 원문에 가장 충실했다. 그래서 나는 전보다 더 킹제임스 성경을 신뢰하게 되었다. 이 연구에 대한 보고서는 95페이지(큰 페이지)의 컴퓨터 출력물로 남아 있다[B.F.T. #1442]. 이 보고서에는 2,000군데가 넘는 동적 일치의 사례들(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이루어진 첨가, 삭제, 변경)이 올라와 있다. 이 보고서의 요약판 역시 소책자 형태로 나와 있다[B.F.T. #1465]. 또한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의 변개에 관한 설명을 곁들인 카세트 녹음본(2시간짜리 9개)도 있다[B.F.T. #1367/1‐9]. (d.2-3) NASB 분석 이듬해 나는 NASB를 킹제임스 성경과 비교한 다음 KJB의 근간인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과도 비교해 보았다. NASB도 앞서 NKJV에 대해 한 것처럼 그렇게 진행했다. 이번에도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에 가장 충실한 번역은 킹제임스 성경이었다. 차이가 나는 부분을 확인한 결과 본문과 동떨어진 쪽은 NASB였다. 연구 결과는 187쪽짜리 컴퓨터 출력물로 남아 있다[B.F.T. #1494‐P]. 이 보고서에는 4,000군데가 넘는 동적 일치의 사례들(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이루어진 첨가, 삭제, 변경)이 명시되어 있다. 이것의 요약판 역시 소책자로 구할 수 있으며[B.F.T. #1518]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의 변개에 관한 설명을 곁들인 카세트 녹음본(2시간짜리 11개)도 있다[B.F.T. #1494/1‐11]. (d.2-4) NIV 분석 이후 2년 8개월 동안 같은 식으로 NIV를 분석했다. 킹제임스 성경과 비교 후 차이점을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과 대조해 보았다. 이 보고서 역시 컴퓨터 출력물로 남아 있다[B.F.T. #1749‐P]. NIV는 온통 의역과 동적 일치 방법으로 가득했고 그 분량은 일일이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 찾아보자면 몇 년은 더 걸렸을 것이다. 보고서에는 6,653군데가 넘는 동적 일치의 사례들(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이루어진 첨가, 삭제, 변경)이 소개되어 있다. 차이점을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과 비교했을 때에도 역시 킹제임스 성경이 항상 정확했다.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의 변개에 관한 설명을 곁들인 카세트 녹음본(2시간짜리 16개)이 있는데 여기에는 4,600개의 사례가 수록되어 있다[B.F.T. #1749/1‐16]. 이것의 제목은 ‘NIV의 결함들’이다[B.F.T. #2054]. (d.3) 일반 사람들은 새 역본들의 위험성을 실감하지 못한다. 성경 역본들을 원문과 직접 비교해 보지 못한 일반 사람들은 어느 역본이 바른지 알지 못한다. 그저 차이가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NIV가 말하는 게 다르고, KJV가 말하는 게 다르다. 히브리어도 모르고 그리스어도 모르는데(대부분 그렇다) 아는 언어 즉 영어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킹제임스 성경을 표준으로 삼으라. 그리스어, 히브리어 원문이 이 역본에 고스란히 번역되어 있다.   킹제임스 성경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사전을 찾아보라. 아니면 영국의 ‘트리니테리언 성경공회’가 간행한 소책자를 참고해도 좋다[B.F.T. #1060]. 이 소책자에는 일반 사람들에게 생소한 618개의 단어가 간략한 의미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물론 좋은 사전 한 권을 가지고도 이 단어들의 뜻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가령 ‘Habergon’은 방패 혹은 쇠사슬 갑옷을 뜻하며 ‘Ouches’는 주머니 또는 행낭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그런 영어 단어들이 정확한 히브리어, 그리스어 번역이라는 점이다.   초반부에 언급한 대로 우리는 1611년 이후로 의미가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는 단어들의 정의를 담은 킹제임스 성경을 준비해 왔다. 그리고 BIBLE FOR TODAY는 이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제목은 「The Defined King James Bible」이다. 이것은 12포인트의 큰 활자로 인쇄되었다. 싱가포르의 토우(S. H. Tow) 박사는 이 성경 4,000권을 구입해서 세계 여러 곳에 배포했다. 원하는 사람은 전화로 주문 가능하다. (d.4) 앞으로 연합성서공회는 오로지 동적 일치 기반의 의역 성경만을 출간할 것이다. 연합성서공회(United Bibel Society, UBS)는 더 이상 성경전서(창세기‐계시록)를 출간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의역본 및 관용 번역본만을 출간할 것이며 그것도 성경전서가 아닌 쪽 성경만을 내놓을 것이다. 1962년 연합성서공회는 성경 선집(쪽 성경) 또는 소책자 3.5권당 성경 한 권을 출판했고, 1969년에는 18.5권당 성경 한 권을, 1974년에는 쪽 성경 33권당 한 권의 성경전서를 출간했다. 선집이나 쪽 성경에 비해 성경전서 발행 횟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성경전서를 출판하는 경우는 성경 출판 자금이 어디서 들어왔을 때뿐이다.   성경공회는 늘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 그나마 있는 자금은 성경 선집을 출판할 때나 쓰인다. 이 내용은 BIBLE FOR TODAY에서 출간된 「성경의 미래」(The Future of the Bible)’에서 확인할 수 있다[B.F.T. #1246]. 성경의 미래는 어떤가? 연합성서공회가 연루되어 있는 한 성경의 미래는 없다. 이것이 우리가 킹제임스 성경을 더 붙들어야 하는 이유이며 킹제임스 성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이유이다. (d.5) ‘동적 일치’에 대한 간략한 정의 동적 일치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자. 동적 일치의 개념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이 ‘동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1b. Of or pertaining to dynamics; active; opposed to static; Pertaining to change or process(1b. 역학적인; 동적인; 정적의 반대; 변화하는) [웹스터 사전, Webster’s New Collegiate Dictionary, 1949년, 257쪽] 다시 말해 ‘동적’이란 말은 ‘움직이는’을 뜻한다. 동적 일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길 원하는 사람들이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도 이와 같은 이론에 바탕을 둔다. 즉, 운동(movement), 변화(change), 역동(dynamics)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바꾸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기 원치 않는다. 있는 그대로 간직하기 원한다. 나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Thus saith the Lord)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말씀을 주셨고 우리는 그것을 믿고 거기에 붙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변화를 가하거나 다른 것으로 바꿔서는 안 된다. 나는 부록 A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이 그 어떤 인간의 사상이나 관념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성경 구절을 제시하였다. ‘동적’(dynamic)이라는 단어에서 ‘역학’(dynamics)이라는 용어가 나왔다. ‘역학’의 정의를 웹스터 사전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That branch of mechanics treating of MOTION of bodies(kinematics) and the action of forces in producing or CHANGING their motion(kinetics). 2. The MOVING MORAL, as well as physical, forces, or any kind, of the laws relating to them 1. 물체의 움직임이나 그 움직임을 일어나게 하거나 바꾸게 하는 힘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 2. 움직이는 어떤 것 ‐ 물리적인 힘, 윤리, 법 모든 동적인 과정은 변하는 과정이고 진화하는 과정이며 사탄이 에덴동산에서 만들어 낸 과정이다. 힘이든 물이든 무엇이든 그것은 움직이는 것이다 – 강물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하염없는 은혜, 흐르는 강물같이 넘치네!”라고 찬송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흐른다’, ‘움직인다’, ‘유동적이다’라는 식의 개념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고정된 어떤 것이어야 하며 이로써 우리는 그 위에 확고히 설 수 있다. 우리 하나님은 ‘바위’(a Rock) 곧 거대한 바위산과 같으시다. 산은 움직이지도 흔들리지도 요동하지도 않는다. 우리 주님은 우리 삶의 기초가 되신다.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전3:11). 이제 관련 단어인 ‘일치’ 혹은 ‘동등함’(equivalence)에 대해 웹스터 사전을 살펴보자 State of being equivalent, equality of worth, meaning, or force: 가치나 의미나 힘에 있어 같은 혹은 동등한 상태 여기서 ‘equivalent’(같은, 동등한, 일치하는)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obs. Equal in force or authority. 2. Alike in significance. 3. Equal in value, esp. for exchange. 4. Virtually or in effect identical; tantamount; as, his remark was equivalent to an insult 1. 사어(死語). 힘이나 권위에 있어 같은 2. 의미나 비중이 같은 3. 가치 특히 교환 가치가 같은 4. 내용상으로 혹은 결과적으로 같은 어떤 면에서 ‘equivalent’는 좋은 용어이다. 하지만 위의 정의 중 ‘내용상으로 혹은 결과적으로 같은’이란 부분은 어떤 범위를 한정짓기 어려운 의미이다. 이런 의미라면 나는 ‘동등’(equivalent)이란 개념을 선호할 수 없다. 나는 실제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원한다. 왜 동등한 것 혹은 일치하는 것이 필요한가? 독자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서 이제는 영어로 된 하나님의 말씀을 원하지 않는가? 나도 그렇다. 나는 단지 어떤 동등한 것, 일치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진짜를 원한다. 킹제임스 성경이 우리에게 바로 그 진짜를 보여 준다. 그것은 바른 본문, 우수한 번역자, 우수한 팀 작업, 우수한 번역 기법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렇게 단어들의 정의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idiom’(숙어, 관용어법) 혹은 ‘idiomatic’(관용적인, 관용어법을 사용한)이란 용어이다. 이 용어들은 번역이나 역본에 대해 말할 때 동적 일치와 유사한 의미의 단어로 쓰인다.   ‘관용적인 번역’(idiomatic translation)에서 ‘관용어’(idiom)란 이런 뜻을 지닌다(웹스터 사전). 1. The language peculiar to a people(a tongue)’, or to a district, community, or class(a dialect). 2. The Structural form peculiar to any language. 3. An expression in the usage of a language, that is peculiar to itself either in grammatical construction or in having a meaning which cannot be derived as a whole from the conjoined meanings of its elements(as, the more the merrier) 1. 특정 민족 혹은 지역이나 단체 및 계급 고유의 언어 2. 특정 언어 고유의 구조 3. 일반적인 문법 구성이나 각 단어의 단순한 결합에서 나올 수 없는 뜻을 가진 독특한 언어 표현, 가령 다다익선 같은 표현] 여기서 우리의 초점은 바로 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 그리스어에 있는 고유한 표현 곧 관용어이다. 원어를 알고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말씀의 정확도에 훼손을 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이 ‘관용어들’은 결코 번역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킹제임스 성경은 이런 관용적이고 동적인 일치가 아닌 ‘문자적, 형식적 일치’를 기반으로 번역되어 우리 손에 있다. 그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 인용 끝 ---------   결 론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위에서 보셨듯이 킹제임스 성경은 형식적 일치(Formal equivalence)를 이룬 성경입니다. 이것을 미국 사람들은 ‘단어 대 단어 번역’(Word for word translation)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더 풀어 쓰자면 킹제임스 영어 성경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본과 주어, 목적어, 단수, 복수, 수동태, 능동태, 시제, 심지어 문장의 도치 등이 같습니다. 이것은 성경 사본 학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다음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성경 변증 학자 중의 한 사람인 로데스 박사님(Dr. Ron Rhodes)의 글입니다. http://www1.cbn.com/churchandministry/the-story-behind-the-king-james-version 여기서 그분은 글의 첫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611년에 처음 발간된 킹제임스 역본은 단어 대 단어(형식적 일치) 번역본이다. The King James Version (KJV) is a word-for-word (formal equivalence) translation that was first published in A.D. 1611.   여기서 이분이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 번역을 '형식적 일치'라고 한 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로데스 박사님은 공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지 않는 분입니다. 다만 공인으로서 정직하게 사실을 기술하였습니다. 로데스 박사님이 얼마나 유명한가 알아보려면 아마존에서 그분의 이름(Ron Rhodes)을 쳐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분이 지은 수십 권의 베스트셀러 책들이 나올 것입니다. http://www.amazon.com/Ron-Rhodes/e/B001HCZ24O/ref=sr_ntt_srch_lnk_1?qid=1459489113&sr=8-1   이래도 믿지 못하는 독자들이 있기에 위키 백과를 소개합니다. 위키 백과에는 아예 Dynamic_and_formal_equivalence 항목이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Dynamic_and_formal_equivalence   여기로 들어가면   1)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들 2) 형식적 일치와 동적 일치를 같이 사용한 성경들 3) 동적 일치로 의역된 성경들 4) 완전 의역 성경들의 리스트가 나옵니다. 먼저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들 리스트에는 킹제임스 성경이 있습니다. 둘째로 형식적 일치와 동적 일치를 같이 사용한 성경들 리스트에는 NASB와 NIV가 있습니다. 셋째로 의역 성경들 리스트에는 귯뉴스 바이블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완전 의역 성경들 즉 저자가 쓰고 싶은 대로 쓴 성경들(?)의 리스트에는 리빙 바이블과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Message)가 있습니다. 사실 메시지는 성경이 아니라 MSG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5   형식적 일치의 중요성을 보려면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24 구체적으로 성경 사본학과 학식의 깊이에 대해 알기 원하면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83   존귀하신 창조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의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위로자 성령님의 큰 평안이 임할 줄로 확신합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Heaven and earth shall pass away, but my words shall not pass away.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as] silver tried in a furnace of earth, purified seven times. Thou shalt keep them, O LORD, thou shalt preserve them from this generation for ever.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04-19 14:54:55 KJB 문서에서 복사 됨]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04-20 11:20:06 KJB 사본학_old에서 이동 됨]
2016-04-01 15:07:09 | 관리자
안녕하세요?   킹제임스 성경을 읽다 보면 어떤 부분에 괄호가 나옵니다.이런 괄호는 킹제임스 성경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도 발견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주어진 원어 성경에는 콤마, 세미콜론, 물음표, 느낌표, 마침표, 이탤릭 체 글자 등이 없습니다. 이 모든 부호들은 역자들이 독자들에게 뜻을 잘 전달하기 위해 넣은 것입니다.   괄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들은 괄호 안의 내용은 원래 없었는데 역자들이 첨가한 것이 아닌가 궁금해 합니다. 아닙니다.   다른 성경은 몰라도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경우 괄호 안의 모든 단어는 원래 히브리어, 그리스어 성경에 있던 것입니다. 다만 역자들이 강조하며 정확히 뜻을 전달하기 위해 물음표, 느낌표처럼 넣은 것입니다.   예1, 요7:50(그들 중의 한 사람 곧 밤에 예수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Nicodemus saith unto them, (he that came to Jesus by night, being one of them,)   예2, 마6:32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혹은,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혹은, 우리가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나니)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  (For after all these things do the Gentiles seek:) for your heavenly Father knoweth that ye have need of all these things.   예3, 마24:15그런즉 대언자 다니엘을 통해 말씀하신바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너희가 보거든 (누구든지 읽는 자는 깨달을지어다.) When ye therefore shall see the abomination of desolation, spoken of by Daniel the prophet, stand in the holy place, (whoso readeth, let him understand:)   괄호를 치면, 예1처럼 괄호 안의 내용이 다음 구절을 수식하기도 하고, 예2처럼 괄호의 내용이 바로 전 구절의 내용을 반복해서 보여 주기도 하며, 예3처럼 괄호이 내용이 명확하게 독자에게 경고를 주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목적을 가지고 괄호가 사용되었습니다.   다음 기사를 보면 영어 KJB에는 223개, NASB에는 240개, ESV에는 269개의 괄호가 있다고 합니다. https://www.thisisyourbible.com/index.php?page=questions&task=show&mediaid=2828   그러므로 앞으로 킹제임스 성경을 읽다가 괄호를 접하면 역자들이 그것을 사용하여 무언가를 강조하고 있음에 유의하면 될 것입니다. 괄호는 물음표, 느낌표 등과 같이 문장을 명확히 하려는 목적으로 역자들에 의해 사용된 문장 부호입니다.   샬롬   패스터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04-19 14:54:55 KJB 문서에서 복사 됨]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04-20 11:20:06 KJB 사본학_old에서 이동 됨]
2015-11-16 15:09:42 | 관리자
  안녕하세요?   마가복음 16장 9-20절에 대한 시내 사본 조작 사진을 올리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ㅇ 개역/개역개정 성경의 마가복음 16장 9절을 보면 “어떤 사본에는 9-20절까지 없음”이라는 각주가 붙어 있다. 다른 설명에는 “9-20절 단락은 아주 오래된 사본들에는 빠져 있으며 이 부분은 2세기에 덧붙여졌음”이라고 되어 있다.   ㅇ 이 현상은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제외한 NIV, NASB 등 모든 현대 역본들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ㅇ 현대 역본들의 주장이 사실이고 따라서 마가복음 16장이 8절에서 끝난다면, 예수님의 무덤에 갔던 여인들은 떨며 놀라서 급히 도망하고 두려움에 잠겨 숨어 지낸 셈이 된다. 그러면 이게 과연 ‘복된 소식’ 즉 복음일까?   ㅇ 현존하는 그리스어 사본들 가운데 마가복음 16장을 포함하는 사본은 약 1,800개이고 이 중에서 1,797개가 9-20절을 포함한다. 즉 현존하는 그리스 사본들의 99.8%인 절대다수가 마가복음 16장 9-20절을 포함한다. 이쯤 되면 심지어 세상 법정에서도 절대다수의 증거가 채택되어 마가복음의 마지막 12구절을 담은 성경이 바른 성경으로 인정될 것이다.   ㅇ 그런데 현대 역본 지지자들이 마가복음 16장 9-20절이 원래 없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바로 위의 사진에 있는 시내 사본이다. 이 사진에 보면, 마가복음 16장 9-20절은 분명히 원래 사본에 있었는데 누군가가 그것들을 지우고 그 위에 무언가를 기록하였다. 이런 엉터리 자료를 가지고 온 세상 모든 성도들에게서 마가복음 16장 9-20절을 빼앗아가려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마귀의 앞잡이가 아닌가?   (이 사진은 영어 Google에 가서 ‘Sinaiticus Mark 16’이라고 치면 이미지 섹션에서 누구라도 즉시 쉽게 찾을 수 있다).   샬롬  다음은 이에 대한 영어 기사이다.   마가복음 16장 마지막 12구절   내용:    Furthermore, there is abundant manuscript evidence supporting the authenticity of Mark 16:9–20. E F Hills wrote, “They [Mark 16:9–20] are found in all the Greek manuscripts except Aleph [i.e. Sinaiticus], and B [i.e. Vaticanus], … And more important, they were quoted as Scripture by early Church Fathers who lived one hundred and fifty years before B and Aleph were written, namely, Justin Martyr (c. 150), Tatian (c. 175), Irenaeus (c. 180), Hyppolytus (c. 200). Thus the earliest extant testimony is on the side of these last twelve verses.” 또한 마가복음 16:9-20의 진위를 뒷받침하는 풍부한 사본 증거가 있습니다. E F 힐즈는 “그것[마가복음 16:9-20]은 알레프 [즉, 시나이투스]와 B [즉, 바티칸우스]를 제외한 모든 그리스 사본에서 발견되며, ... 더 중요한 것은 B와 알레프가 기록되기 150년 전에 살았던 초대 교회 교부들, 즉 저스틴 마티어(150년경), 타티안(175년경), 이레네우스(180년경), 히폴리투스(200년경)가 성경으로 인용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증언은 이 마지막 열두 구절이 있어야 한댜는 것을 지지합니다..”         다음 링크를 보세요. 시내 사본 문제
2015-08-08 14:05:38 | 관리자
안녕하세요?   지난 몇 달 동안 종종 주변의 몇몇 형제/자매님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갑자기 이상한 이메일을 받았다고 하며 혹시 제가 그것에 대해 아느냐고 묻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메일의 제목은 ‘킹제임스 성경에 관한 불편한 진실’로 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비방 글들의 링크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이메일을 무차별 살포하는 분은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특히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 대해 매우 분개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적어 놓은 비방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미 지난 400년 동안 영어 세상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던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허무맹랑한 이야기일지라도 막상 이런 이야기를 처음 접하면 당혹스러워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아 오늘은 그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올리려고 합니다.   그 글을 적은 분인지 아니면 그분의 추종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얼마 전에는 자정이 넘은 시각에 동일한 글을 킵바이블 사이트에 올렸기에 관리자 형제가 즉시 삭제하였습니다. 관리자들이 신경을 쓰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는 야심한 시간을 이용해 짧은 순간 게재되었던 글임에도 그 글을 읽고 놀란 마음에 어찌 된 일이냐고 질문의 메일을 보낸 형제님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수천 군데 심각한 오류가 있어서 많은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개역(개정판)성경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시비를 걸지 않으면서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그 저의가 상당히 의심스럽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뿐인 귀중한 인생을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하는 데 허비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에 오늘은 매우 안타까운 심정으로 글을 씁니다.   이들이 차라리 현대/자유주의자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아예 틀렸고 인간 저자들이 임의대로 쓴 기록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면 차라리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께서 원어로 성경을 보존해 주셨다고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온 시간과 에너지를 오직 킹제임스 성경을 공격하는 데만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메일과 카톡 등을 통해 ‘킹제임스 성경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글을 무차별적으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이들의 헛된 주장에 넘어가서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보존해주신 성경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거나 잃어버리는 연약한 지체들이 있어 오늘은 어쩔 수 없이 간단히 글을 씁니다.   이들은 한동안 원어를 가지고 사람들을 선동하더니 요즘 들어서는 주로 킹제임스 성경의 난외주와 대소문자를 가지고 성도들을 홀리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성경의 원어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는 한 단어가 여러 개의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번역자는 앞뒤 문맥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그 여러 개 뜻 가운데서 가장 합당한 하나를 정해 성경을 번역하게 됩니다.   또한 성경에 쓰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는 원래 대소문자 구별이 없습니다. 위클리프 이후 킹제임스 성경에 이르기까지 약 230년 동안 영어 성경의 번역자들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어에서 같은 영(그리스어의 경우 프뉴마)이라도 하나님의 영으로 확실히 판단되는 데는 대문자 Spirit으로, 하나님의 영이나 혹은 다른 영으로 두어도 문제가 없는 데는 소문자 spirit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문맥에 따라 독자가 판단해서 이해하면 됩니다.   오늘은 이런 사람들이 사용하는 난외주와 대소문자 비방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려 합니다.   1. 난외주   과거에 영어 성경이 나올 때에는 번역하면서 특정 단어나 절에 대해 번역자들 간에 만장일치로 깔끔하게 의견이 통일되지 않는 경우 난외주에 소수의 의견을 표기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난외주가 가장 많았던 성경은 킹제임스 성경 바로 전에 나온 제네바 성경이었습니다. 제네바 성경 안에는 칼빈의 개혁주의(장로교) 사상이 너무 많이 들어갔기에 제임스 왕은 성경을 새로 번역하라고 명령하면서 특별히 난외주를 최소화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11년에 출간된 킹제임스 성경을 보면 평균 한 페이지에 5-6개 정도의 난외주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정확하게 판단해서 알아야 할 것은 난외주란 소수의 다른 견해가 있었다는 정황을 정직하게 알리는 것이 목적일 뿐 난외주 자체가 본문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20세기 최고의 본문 비평 학자로 알려진 에드워드 F. 힐즈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번역자들이 킹제임스 성경에 첨가한 난외주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수고를 섭리[돌보심]로 인도하셨음을 보여 준다. 스크리브너(1884)는 외경이 포함된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에 8,422개의 난외주가 있었다고 말한다. 스크리브너는 구약성경의 난외주들 가운데 4,111개는 히브리어나 아람어 원문에 좀 더 문자적인 의미를 제공해 주며 2,156개는 달리 번역할 수 있는 예들이고 67개는 이문들이라고 말한다. 또한 신약성경의 난외주들 가운데 112개는 그리스어의 문자적 번역을 제공해 주며 582개는 달리 번역할 수 있는 예들이고 37개는 이문들이다. 이러한 난외주들은 번역자들이 그들의 사고 과정 속에서, 모든 가능성을 가늠하면서 자기들이 보기에 가장 최상의 것으로 보이는 번역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섭리로 인도를 받았음을 보여 준다. <킹제임스 성경 변호 213쪽>   <킹제임스 성경 변호 무료 PDF>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3&page=5   이분은 곧 번역자들은 자신들의 부족함과 연약함으로 인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다 살펴보았음을 난외주에 표기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겸손함을 보시고 섭리 즉 돌보심으로 그들이 본문의 단어들 - 난외주가 아니라 - 을 선택하는 것을 인도해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들의 겸손함에 대해 힐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난외주들이 보여 주듯이,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자신들의 작품인 그 성경을 완전한 것 혹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고 다만 그 성경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들을 신뢰할 만하게 재현한 것으로 여겼으며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도 그것을 그렇게 추천했다. (214쪽)   그리고 힐즈는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주는 글>의 마지막을 소개합니다.   "우리가 이미 서문의 분량을 초과하지 않았다면 다른 많은 것들을 온유한 독자인 당신에게 경고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더 확실히 세울 수 있는 하나님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영에게 당신을 맡기는 일만 남았다. 그분은 우리의 눈에서 비늘을, 우리의 마음에서 베일을 벗기신다. 또 우리가 자신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우리의 지혜를 열어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넓히시며 참으로 우리의 성정을 고치신다. 그 결과 우리는 금과 은보다 더 그것[말씀]을 사랑할 수 있으며 참으로 끝까지 그것을 사랑할 수 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 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분께서 우리 앞에 자신의 말씀을 놓으실 때에 그것을 읽는 것, 그분께서 자신의 손을 뻗으시고 부르실 때에 ‘오 하나님이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는 당신의 뜻을 행하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 [바로] 그것은 복된 일이며 우리를 결국 영존하는 복으로 인도할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알고 그분을 섬기도록 주님께서 돌보심과 내적 의식으로 우리 안에서 일하실 것을 구한다. 이로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우리는 그분께 인정을 받을 것이다. 성령님과 더불어 그분께 모든 찬양과 감사가 있기를 원한다. 아멘."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주는 글>   난외주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1611년 초판 발행 이후에 킹제임스 성경이 정착되면서 난외주들은 성경 자체에서 곧 사라졌다는 겁니다.   외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경은 구약과 신약 사이의 역사를 보여 주는 역사서로 부록으로 추가되었습니다. 카톨릭 교회를 가장 크게 미워하던 사람들이 만든 제네바 성경에도 외경이 들어 있었지만 후에는 난외주와 함께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외경이나 난외주에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것은 킹제임스 성경 본문이지 난외주나 외경이 아닙니다.   바로 그 성경 본문이 온 세상에 퍼져나가 거기 담긴 복음을 듣고 확신하는 사람을 구원시키고 성화시키는 일을 하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시고 사용하시는 것은 킹제임스 성경의 본문입니다.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준 글’이나 ‘제임스 왕에게 바친 헌정문’이나 난외주나 외경이나 금박 표지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철저하게 인간들의 산물일 뿐입니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요한계시록 22장 21절까지의 본문!   하나님은 바로 이 성경 본문을 영감으로 주시고 섭리로 보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1611년의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순수한 이 본문을 정확하게 일대일 대응이 되게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로 번역하여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보존하였습니다.   바로 그 킹제임스 성경 본문을 사용해서 지난 400여 년 동안 복음이 선포되고 성경의 모든 교리가 확립되었습니다. 난외주나 외경 심지어 원본이 아닙니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이 반포된 지 400년이 이미 지난 이 시점에서 난외주가 본문보다 옳다고 주장하며 교묘하게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또 그들의 말에 속아 넘어가는 분들이 있기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6 이러한 부류 중에 슬그머니 집으로 들어가 미련한 여자들을 포로로 사로잡는 자들이 있는데 이런 여자들은 죄들로 눌려 있고 여러 가지 욕심에 이끌려 7 항상 배우나 결코 진리를 아는 데 이르지 못하느니라. 8 그런데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이들도 진리를 거역하나니 이들은 마음이 부패한 자들이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받은 자들이니라. 9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하리니 이는 저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난 것 같이 그들의 어리석음도 모든 사람에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라(딤후3:6-9).   항상 배우나 결코 진리를 아는 데 이르지 못하는 자들이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결국은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터인데 그때 가서 후회하면 너무 늦을지도 모릅니다.   이들의 수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이들은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 복사본(팩시밀리)을 하나 구한 뒤 거기에 기록된 난외주만 열심히 찾습니다.   http://www.honortheson.com/1611_King_James-Bible_Version-Scanned.pdf   그리고는 자신의 마음에 흡족하며 이슈를 만들 만한 단어가 나오면 손뼉을 치면서 킹제임스 성경이 틀리고 난외주가 맞는다고 소리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성경의 본문이 틀렸다고 주장하며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 과연 성경 신자일까요?   이런 예 중 유명한 것이 바로 이사야서 14장 12절의 루시퍼입니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은 분명히 에스겔서 28장의 ‘타락한 그룹’이 루시퍼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난외주에는 ‘daystar’ 즉 샛별(계명성)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접할 때는 “과거에 이 단어를 샛별로 본 사람들도 있었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그 이상의 가치를 두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봐라, 루시퍼가 아니라 샛별이 맞다”고 주장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단 한 번도 ‘샛별’을 본문으로 인정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1611년 이후로 지금까지 산 사람들의 수를 생각해 볼 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적어도 100억 권 정도 인쇄되지 않았을까 추정해 봅니다. 그 100억 권에 무어라 되어 있습니까? 루시퍼지요.   바로 이 본문을 가지고 1611년 이후의 모든 신학교가 세워지고 신학 서적들이 저술되었습니다. 즉 교리가 세워졌습니다. 이런 역사적 증거와 현실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1611년 킹제임스 성경 본문에 기록된 루시퍼가 아니라 난외주의 샛별이 맞는다고 주장하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일까요? 과연 성경의 하나님께서 그렇게 모호하게 일하신 적이 있습니까?   대부분의 신약 성경 사본들은 공개적으로 여러 대륙의 거의 모든 성도들 가운데서 보급되었습니다. 반면에 모든 현대 역본들의 모체가 되는 천주교회의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은 아무도 보지 못하게 바티칸 도서관과 동방 정교회 수도원에 고이 간직되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예수님 승천 후 1850년이 지난 시점에 이 둘이 공개되면서 이것들이 참으로 진실한 사본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그 이전의 1850년 동안 성도들은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도 없이 믿음 생활을 했단 말인가요?   성경을 보존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시12:6-7) 부인하는 현대 역본 역자들의 이런 주장과 난외주를 가지고 본문을 대체하려는 사람들의 시도는 거의 동일한 것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자신의 순수한 본문이 보편적으로 자신의 백성들 가운데서 보급되고 유통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의 난외주, 외경 그리고 천주교 소수 사본 등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2. 대문자/소문자 spirit/Spirit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몇 구절에서는 Spirit/spirit이 여전히 통일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1:12(ACTS 11:12). “And the spirit bade me go with them, nothing doubting. Moreover these six brethren accompanied me, and we entered into the man’s house.”여기의 소문자 spirit은 1611년과 1769년 판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11:28(ACTS 11:28). “And there stood up one of them named Agabus, and signified by the spirit that there should be great dearth throughout all the world: which came to pass in the days of Claudius Caesar.” 여기의 소문자 spirit은 1611년, 1638년 그리고 1769년 판에 있습니다.   요일 5:8(1 JOHN 5:8). “And there are three that bear witness in earth,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se three agree in one.”   1611년 판에는 대문자 Spirit으로 되어 있지만 동시에 그다음에 나오는 Water와 Blood도 대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1638년과 1769년 판에는 이것이 소문자 spirit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영(spirit)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 spirit/Spirit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적 존재(a spirit being), 사람의 영, 성령님, 정신 등   2. 성경에서는 소문자 spirit이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사례들이 있다(출31:3; 욥27:3; 고전2:12).   3. 소문자 spirit은 성령님의 일을 묘사할 때도 쓰인다. 예를 들어 동일한 말씀이 요엘서 2장 28에는 소문자로(pour out my spirit), 사도행전 2장 17절에는 대문자로(pour out of my Spirit) 표기되어 있다.   그러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여러 판에서 행11:12, 행11:28, 요일5:8에 소문자 spirit이 쓰인 것은 앞뒤 문맥으로 살펴볼 때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이런 부분에서 누군가가 대문자 Spirit이 쓰여야 합당하다고 주장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영이 하는 일은 다시 태어난 사람의 영과 하나님의 영의 공동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이런 구절들에서 spirit/Spirit이 통일되어 있지 않으므로 킹제임스 성경은 오류가 없는 최종 권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스 단어 프뉴마는 대문자 소문자 구별이 없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프뉴마를 있는 그대로 ‘스피릿’(대문자든 소문자든)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원어의 영감/보존에도 문제가 없으며 번역되면서도 보존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영어 성경의 역자들은 영어 단어 스피릿에 그리스 단어에 없는 대소문자의 구별이 있으므로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신실하게 대소문자 spirit/Spirit을 구분해 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 인쇄술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식자공이 일일이 모든 단어의 알파벳(성경 전체를 보면 수십만 개 혹은 수백만 개)을 찾아서 조판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 조판공들은 대소문자 spirit/Spirit에서 실수를 하였습니다.   조판공의 이런 실수 예는 여럿 있습니다.   이 중에 유명한 것은 사악한 성경(Wicked Bible)으로 알려진 1631년 판입니다. 이 판에서는 출20:14 말씀 즉 “너는 간음하지 말라”가 “너는 간음하라”로 되어 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Wicked_Bible   즉 “Thou shalt not commit adultery”라고 조판해야 하는데 꼼꼼함을 요하는 작업 때문에 몸이 매우 피곤했던 식자공은 그만 여기서 중간의 ‘not’을 넣지 못했고 결국 그 성경은 “너는 간음하라”라고 명령하는 ‘사악한 성경’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성경의 대부분은 즉시 회수되어 폐기되었고 몇 개만 희귀본으로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초판의 이런 실수 등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20   그래도 spirit/Spirit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분들은 리플링거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http://www.ourkjv.com/KJB.pdf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 구절에서는 spirit/Spirit에서 선택의 자유를 독자들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앞뒤 문맥을 보고 독자가 결정하면 될 일이지 성경의 보존이나 최종권위의 문제가 아닙니다.   끝으로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 성경에서 스펠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1611년의 초판을 참고하려 합니다. 그러나 1611년 초판에는 식자공의 이런 실수가 여럿 있습니다. 그러므로 1611년 초판이 최종적인 권위가 아닙니다.   위에서 언급한 요일5:8의 경우 1611년 초판에는 대문자 Spirit으로 되어 있고 동시에 그다음에 나오는 Water와 Blood도 대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Water와 Blood도 신성을 가진 존재일까요?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로마체가 쓰이지 않았고 고딕체가 쓰였습니다. 고딕체의 경우 이런 사례에서는 종종 같은 구절에서 몇 단어를 연거푸 대문자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독일어의 영향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요일5:8에서 반드시 대문자 Spirit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그다음의 Water와 Blood도 대문자로 써야 합니다. 그러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결론을 드립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서너 군데는 spirit/Spirit이 통일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영감/보존/번역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 역자들은 최선을 다해 신실하게 번역하였으나 식자공의 실수로 이런 데가 있습니다. 이런 식자 문제들은 역자들이 살아 있던 시대에 대부분 곧바로 교정되었으나 역자들이 죽은 이후에도 처리되지 않은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서너 군데의 spirit/Spirit이 이 경우입니다.   그래서 철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옥스퍼드 판과 케임브리지 판이 나왔고 지금 존재하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둘 중의 하나를 쓰고 있습니다. 다만 토마스 넬슨 출판사 판은 자기들 마음대로 킹제임스 성경의 여러 단어를 임의로 수정하였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판들의 역사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리플링거의 글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ourkjv.com/KJB.pdf   (*) 참고로 리플링거의 글은 매우 훌륭하지만 100% 옳지는 않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안내해 드린 것입니다.   저희가 처음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초판을 낼 때에는 영어 성경 파일 자체를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특히 이탤릭체를 살린 파일을 찾기는 더더욱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미국 Bible For Today의 웨이트 박사님이 주신 영어 파일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여러 소스를 알게 되었고 2011년에 400주년 기념판을 출간할 때에는 Pure Cambridge Text로 알려진 영어 본문을 사용하였습니다.   www.bibleprotector.com   물론 앞으로도 저희는 영어 본문의 경우 Pure Cambridge Text를 사용할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번역의 초기 세대들이 어쩔 수 없이 함께 감당해야 하는 짐입니다. “왜 처음부터 pure text를 쓰지 않았느냐?”고 질책해도 소용이 없고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소모적 논쟁만 불거지게 됩니다.   영어 성경도 1611년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나오기까지 약 230년의 담금질 과정을 겪었습니다. 이런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혹시 본문, 번역 등에 의문이 있으면 대안과 함께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이메일을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이메일의 내용은 제안이어야지 독단적인 주장은 수용할 수 없습니다. 본문 난외주, 대소문자, 외경, 이역 등을 가지고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확신을 깨뜨리려는 사람들을 조심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강한 확신 속에 킹제임스 성경 신자들의 어리석음과 답답함(자기들이 보기에)을 깨뜨리기 위해 ‘킹제임스 성경의 불편한 진실’ 같은 글을 쓰는 분들은 부디 앞으로는 그 귀중한 시간을 올바른 데 투자해서 ‘개역(개정판) 성경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글을 써서 수백만 성도들을 살리는 데 매진하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값진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보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제발 눈을 열어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많은 오류로 인해 고생하며 종교  시스템의 포로가 되어있는 신자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20여 년의 역사를 통해 킹제임스 성경 사역이 거의 다 완성된 시점에 뒷북을 치며 나타나 이미 킹제임스 성경의 한국어 번역사(史)가 증명한 일에 시비를 거는 것은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못할 일입니다. 더욱이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모여 예배를 드릴 때에는 우리가 펴낸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쓰고 있다니 이 얼마나 기막힌 아이러니입니까?   세상에는 다 때와 순서가 있습니다.   수많은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건설된 고속도로가 자기 마음에 안 드니 내가 바로 옆에 새롭게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는 사람은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이미 건설된 고속도로에 결함이 있다면 지혜를 모아 보수하고 다듬어 더 완성도 높은 도로가 되도록 하면 됩니다. 이렇게 이미 놓인 고속도로를 마음껏 이용해 상품을 나르고 이동하며 사업을 일구는 사람이 굳이 바로 옆에 길을 다시 만들겠다는 어리석은 고집쟁이를 한참이나 앞서가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금은 킹제임스 성경을 새로 번역할 때가 아니라 함께 지혜를 모아 이미 나와 굳건히 자리 잡은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잘 다듬고 최선을 다해 복음을 선포해서 죽어가는 혼들을 구원해야 할 때입니다.   성경을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2015년에도 우리 주 예수님의 큰 평강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영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개정 신화>에서 저자인 리건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20   여러분은 이제 확신을 가져도 된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손에 있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결코 ‘개정된 것’이 아니라 ‘정화된 것’이다.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이 성경이 우리를 위해 ‘영어로 보존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의 정확성에 대한 권위는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의 초판 인쇄본에 있지도 않고 제임스 1세의 인품에 놓여 있지도 않으며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 문학의 뛰어난 업적에 있지도 않고 심지어 그리스어 「공인본문」에 있지도 않다. 영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KJV)이라는 절대 무오한 말씀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하신 약속과 그분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 시간에 그분의 말씀이 있다.   ‘킹제임스 성경의 불편한 진실’ 같은 글로 혹세무민하는 동일한 사람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 다음에 있으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1. 원어로 너스레떠는 목사들 격퇴하기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9   2.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 이야기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464   3. 딱정벌레 이야기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1985   4. 스크리브너의 TR 이야기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22   5. 영감과 보존: 원본, 사본, 역본의 관계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7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04-19 14:54:55 KJB 문서에서 복사 됨]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04-20 11:20:06 KJB 사본학_old에서 이동 됨]
2015-01-07 18:08:10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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