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핵심 부인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무엇인가? 개역성경처럼 그냥 죄인들을 부르러 오신 것인가?
개역: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9:13)
이것은 결코 복음이 아니다. 예수님은 단지 죄인들을 부르러 오시지 않았다.
흠정역: 나는 의로운 자들을 부르러 오지 아니하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노라, 하시니라.
이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회개’이다. 이것이 빠지면 예수님의 메시지가 아무 효력도 갖지 못한다. 이렇게 중요한 부분을 개역성경은 자꾸 삭제한다.
개역: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촌으로 가시니라(눅9:55-56).
흠정역: 그분께서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어떤 영에 속해 있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생명을 멸하러 오지 아니하고 구원하러 왔느니라, 하시니라. 그들이 다른 마을로 가니라.
2009-05-13 14:43:38 | 관리자
하늘들인가, 하늘인가?
우리말에서는 하늘의 복수형인 ‘하늘들’ 같은 표현을 잘 쓰지 않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복수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개역: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창2:1)
흠정역: 이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가 완성되니라.
개역성경은 참으로 간결해 보이지만 많은 면에서 내용은 부실하다. 이런 구절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늘이 하나가 아니고 여럿임을 보여 주시기 위해 복수를 쓰셨다. 고린도후서 12장 2절을 보면 성경에는 최소한 첫째, 둘째 셋째 하늘이 있으며 다른 영어 역본들도 이것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흠정역: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알았노니 그 사람은 십사여 년 전에 셋째 하늘로 채여 올라갔느니라. (몸 안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며 몸 밖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후12:2).
그러나 개역성경은 이런 신학을 무시한 채 대부분의 중요 복수 단어를 간략하게 표현하고 있다. 많은 경우 개역성경의 간결성은 성경의 정확성을 희생하면서 얻은 결과이다. 성경이 이처럼 부실하니 그 부실한 기초 위에서 부실한 기독교가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2009-05-13 14:41:41 | 관리자
순교하고 약속도 받지 못하는가?
히브리서 11장에 있는 믿음의 전당에 들어간 사람들은 순교하고 아무 약속도 받지 못하였는가?
개역: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히11:13)
믿음을 따라 죽는 것이 순교가 아닌가? 그런데 아무 약속도 받지 못했단 말인가? 여기서도 개역성경은 오역을 했다(히11:39 참조).
흠정역: 이 사람들은 다 믿음 안에서 죽었으며 약속하신 것들을 받지 못하였으되 멀리서 그것들을 보고 확신하며 받아들였고…
2009-05-13 14:38:15 | 관리자
십일조를 삼 일만에 바치는가?
개역성경은 NASB 등과 같이 십일조를 삼 일만에 바치라고 요구한다.
개역: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 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암4:4)
과연 성경에 십일조를 삼 일마다 드렸다는 기록이 있는가? 신명기 14장 28절과 26장 12절 등은 분명히 삼 년마다 드리는 십일조가 있다고 말한다.
흠정역: 너는 삼 년이 끝날 때에 그 해 소출의 십일조를 다 가져다가 네 성문 안에 저축하여(신14:28)
그러므로 아모스 4장 4절은 킹제임스 성경처럼 되어야 한다.
흠정역: 벧엘에 가서 죄를 짓고 길갈에서 범죄를 크게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물을, 삼 년 뒤에 너희 십일조를 가져오고
2009-05-13 14:36:39 | 관리자
정반대를 기록함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대적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인해 눌림을 당한다고 말씀하시는데 개역성경은 다른 현대 역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그들을 누른다고 기록한다. 앞뒤 문맥을 보면 너무 이해하기 쉬운 일 아닌가?
흠정역: 12 그러나 너희가 나사르 사람들에게 포도즙을 주어 마시게 하고 대언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대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13 보라,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눌림같이 내가 너희 밑에서 눌렸나니 14 그러므로 빠른 자도 도주하지 못하고 강한 자도 자기 힘을 강하게 하지 못하며 힘센 자도 자신을 건지지 못하고(암2:12-14)
개역: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 내가 너희 자리에 너희를 누르리니(암2:13)
아무 뜻도 없는 번역
개역: 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이 없음이 아니냐(암5:20)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인지 알 사람이 있는가? 뜻을 모르고 번역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흠정역: 주의 날은 어둠이 아니겠느냐? 그것은 빛이 아니니라. 심지어 너무 어두우므로 그 날에는 밝음이 없지 아니하겠느냐?
다음은 신약성경에서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구절 중 하나이다.
개역: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벧후1:3)
여기서 ‘신기한’으로 번역된 단어는 ‘divine’이며 이는 ‘하나님의 신성을 띠다’를 뜻한다. ‘영광과 덕으로써’는 어떤 수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영광과 덕에 이르도록’을 뜻한다. 킹제임스 성경은 다음과 같다.
흠정역: 우리를 부르사 영광과 덕에 이르게 하신 분을 아는 것을 통해 그분의 신성한 권능이 생명과 하나님의 성품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도다.
2009-05-13 14:35:04 | 관리자
아멘을 무시함
아멘이란 말은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는 말이다. 그래서 모두가 기도한 뒤 ‘아멘’ 한다. 성경에는 아멘이 총 78회 나오는데 개역성경은 이 중에서 20회 이상을 삭제하고 50여 회만 적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멘이 아니란 말인가?
흠정역: 나는 살아 있는 자라. 전에 죽었으나, 보라, 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아멘. 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계1:18).
개역: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흠정역: 어린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들을 멀리하라. 아멘(요일5:21).
개역: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2009-05-13 14:32:56 | 관리자
여인들을 무시함
성경은 남녀가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평등함을 보여 준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NIV 같은 현대 역본들과 마찬가지로 여인들에게만 무거운 짐을 지워 준다.
개역: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주고 교회로 짐지지 말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주게 하려 함이니라(딤전5:16)
흠정역: 만일 어떤 믿는 남자나 여자에게 과부들이 있거든 그들이 그들을 구제하게 하고 교회에게 짐을 지우지 말라. 이것은 교회가 참 과부인 자들을 구제하게 하려 함이라.
또한 현대 역본들은 한결같이 여인들에게만 죄를 뒤집어씌우고 남자들에게는 면죄부를 주려 한다.
개역: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약4:4)
흠정역: 너희 간음하는 남자들과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아버지 없는 아이와 고아
하나님은 인자하시며 긍휼이 풍성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도우라고 특별히 명령하셨다.
개역: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출22:22)
그런데 개역성경은 이런 구절에서도 번역을 잘못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가리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고아’를 가리켜 ‘부모를 여의거나 부모에게 버림받아 몸 붙일 곳이 없는 아이’로 정의하고 있다. 즉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는 아이만이 고아인 것이다. 개역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어머니 둘 다 없는 아이에게만 긍휼을 베풀라고 하신 것처럼 기록하지만 하나님의 의도는 이와 다르다.
흠정역: 너는 과부나 아버지 없는 아이를 괴롭히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버지가 없는 아이에게 긍휼을 베풀라고 말씀하신다. ‘고아’와 ‘아버지 없는 아이’는 완전히 다르며 이것을 통해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긍휼이 개역성경에 드러난 긍휼보다 더 큼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킹제임스 성경은 부모가 아니라 아버지만 없어도 긍휼의 손길을 베풀라고 하므로 약자를 더 많이 위로하는 성경이다. 이렇게 ‘아버지 없는 자’를 ‘고아’로 표현된 구절은 자그마치 50 여 군데나 된다.
이 모든 부패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본에서 나왔으므로 NIV나 NASB 그리고 공동번역과 표준새번역 같은 현대 역본도 내용이 동일하다.
2009-05-13 14:31:26 | 관리자
하나님의 진노는 누구를 향한 것인가?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진노하시는가? 개역성경은 이 점이 명확하지 않다.
개역: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3:5-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것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흠정역: …이것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자녀들에게 임하느니라.
이것은 사실 에베소서 5장 6절과 짝을 이루는 말씀이다.
흠정역: 아무도 헛된 말들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자녀들에게 임하나니
하나님의 진노와 관련해서 개역성경은 또 다시 오류를 범한다.
개역: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히3:16)
개역성경은 모세를 따라 이집트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격노하게 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흠정역: 이는 어떤 자들이 듣고 격노하게 하였기 때문이라. 그러나 모세로 말미암아 이집트에서 나온 자가 다 그리하지는 아니하였느니라.
민수기 14장 29-32절을 보면 여호수아와 갈렙과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어린것들은 하나님을 격노하게 하지 않았으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개역성경은 거짓을 진술하고 있다.
2009-05-13 14:29:14 | 관리자
보편적 구원을 가르침
새 예루살렘에는 누가 들어가는가? 개역성경은 어떤 민족이나 누구든지 들어간다고 기록한다.
개역: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계21:24)
개역성경이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이단 교리 즉 ‘보편적 구원’(Universal salvation)을 가르치지만 킹제임스 성경은 구원받은 자들만이 거기에 들어간다고 가르친다.
흠정역: 구원받은 자들의 민족들이 그 도시의 빛 가운데서 다니겠고 땅의 왕들이 자기들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엄청난 차이가 아닌가? 과연 하나님께서 이렇게 오류가 넘치도록 원본 성경을 주셨을까? 아니다. 마귀의 사주를 받은 서기관들이 자기 뜻대로 이 모든 것을 변개한 것이다. 하나님은 오류가 전혀 없는 한 성경만을 쓰셨다.
2009-05-13 14:27:20 | 관리자
그리스도는 창조된 신인가?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이분을 제대로 알 때에야 비로소 올바로 구원받아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개역: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요1:18)
흠정역: 아버지 품 속에 계신 독생자
여기서 ‘독생하다’는 말은 영어로 ‘only begotten’이며 이는 ‘유일하게 낳은’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개역성경은 예수님이 ‘아버지께서 유일하게 낳은 하나님’임을 보여 주며 이로써 또 다시 ‘예수님은 창조된 하나님’이라는 여호와의 증인들 교리를 지지한다.
성경은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라고 하는데(요일2:22) 그렇다면 요한복음 1장 18절에서 ‘아들’(Son)을 제거해 버린 개역성경과 다른 현대 역본들은 성경의 증거에 따라 다 적그리스도인 것이다. 실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며 아버지와 같이 영존하시는 분임을 믿고 있다.
그리스도와 관련된 ‘나신’(begotten)이라는 단어는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흠정역: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KJV: And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the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요한복음 1장 18절은 원래의 문맥에서 변개되어 지나간 역사 속에서 이리들의 밥이 되고 말았다. 가장 먼저 이 일을 시작한 자들은 영지주의자들이었다.
종교와 윤리학 사전은 요한복음을 가리켜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에 대항하는 근본적인 반론’이라고 칭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역사는 발렌티누스라는 이집트의 영지주의자가 요한복음의 ‘독생하신 즉 유일하게 나신 아들’ 즉 ‘독생자’를 ‘유일하게 나신(독생하신) 하나님’으로 변개시킴으로써 요한의 일격을 봉쇄하려 했음을 보여 준다. 발렌티누스는 파피루스 72와 66 같은 것에도 영향을 주어 자신이 주장하는 ‘독생하신 하나님’의 개념을 사람들이 수용하게 했다.
이러한 투쟁은 4세기까지 지속되어 오리겐의 학생인 아리우스에게 전해 내려왔고 그는 ‘유일하게 나신 아들’ 즉 독생자를 신조로 삼는 아타나시우스 등과 싸워 예수님을 ‘독생하신 하나님’으로 십자가에 못 박았다. 사실 아리우스는 예수님을 ‘하나의 신’으로, ‘창세 전에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자’로 여겼다. 이러한 아리우스 주의가 대중에게 지지를 얻자 아리우스 주의를 내심 추종하던 유세비우스는 주후 325년에 ‘예수가 모든 시대 전에 하나님께로부터 나사 모든 창조물 중 처음이 되신 분’이라고 콘스탄틴의 교회 칙령에다 첨가했다.
아리우스 주의의 영향이 점점 더 강성해짐에 따라 주후 330년에 콘스탄틴은 소극적 아리우스 주의자였던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를 아리우스 주의 신봉자인 니코데미아의 유세비우스로 대치시켰다. 그는 또한 주후 335년에 아타나시우스를 추방시켰는데 그 이유는 그가 ‘유일하게 나신 아들’을 강력하게 옹호했기 때문이었다. 콘스탄틴이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을 만들도록 명령한 것도 바로 이런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요한복음 1장 19절을 ‘유일하게 나신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분명히 정치적 목적을 띤 것이었다.
사실 ‘독생자’ 즉 ‘유일하게 나신 아들’이라는 용어는 대다수의 사본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요한복음 1장 18절에 대해 현존하는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인 주후 180년의 터툴리안의 기록도 이 용어를 증거하고 있다. 심지어 연합성서공회(UBS)의 그리스어 신약성경 편집자인 위크렌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요한복음의 저자가 ‘유일하게 나신 하나님’이라고 기록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많으며 이것은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전통 안에서 발견되는 초보적인 실수로 필사 시에 이루어진 실수일 것이다.
그러나 연합성서공회가 발행하는 그리스어 신약성경의 비평 장치는 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 클레멘트, 오리겐, 아리우스 등을 동원해 가면서 비록 이 증거들이 교리적으로 비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유일하게 나신 하나님’이 옳다고 말한다.
이런 것을 통해 예상할 수 있듯이 이처럼 ‘창조된 하나님’은 개역성경을 비롯한 현대 역본들의 여러 구절에서 발견된다.
흠정역: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네가 유다의 수천 중에서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에서 치리자가 될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아오리니 그의 나아감은(whose goings forth) 옛적부터 있었으며 영원부터 있었느니라(미5:2).
개역: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whose origins) 상고에, 태초에니라
우리 주 예수님에게는 기원이 없다. 오직 창조물에게만 근본이 있으며 예수님은 창조주이시므로 근본이 없다.
2009-05-13 14:19:21 | 관리자
개역성경에서 하나님을 삭제한 구절들
개역성경은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을 삭제했다. 다음은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을 삭제한 몇 예를 보여 준다.
(a) 흠정역: 그들이 꿈에 하나님으로부터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경고를 받고(마2:12)
개역: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b) 흠정역: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마6:33).
개역: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c) 흠정역: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마21:12)
개역: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d) 흠정역: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눅4: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e) 흠정역: 이들은 다 풍족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헌물로 넣었거니와 그 과부는 빈궁한 가운데서 자기가 가진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눅21:4).
개역: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f) 흠정역: 능력 있는 표적들과 이적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의 권능으로 이루신 그 일들 외에는 그 어느 것도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리라. 이로써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다니며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충만히 선포하였노라(롬15:19).
개역: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g) 흠정역: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나를 구별하시고 자신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갈1:15)
개역: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h) 흠정역: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는 논쟁의 여지가 없이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 성령 안에서 의롭게 되시고…(딤전3:16)
개역: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i) 흠정역: 그들의 입에서 교활함을 찾을 수 없었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왕좌 앞에서 잘못이 없도다(계14:5)
개역: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j) 흠정역: 또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리라(계21:4).
개역: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d) 용례에서 볼 수 있듯이 개역성경은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삭제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그 이유는 번역의 근간이 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본들이 사람들의 전통을 교리로 삼으려는 자들에 의해 변개되었기 때문이다.
(h) 용례에서 우리는 개역성경이 ‘하나님’(God)께서 육체 안에 오셨음을 보여 주는 성육신 교리마저 부인하려 함을 볼 수 있다(딤전3:16).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장 강하게 증명하는 구절로 디모데전서 3장 16절 말씀을 인용한다. 도대체 개역성경의 ‘그’(he)는 누구란 말인가?
디모데전서 3장 16절을 포함하고 있는 300여 개의 그리스어 사본 중에서 오직 다섯 개의 사본 - 9, 12, 13세기의 후대 사본 - 만이 ‘하나님’(God)을 삭제하고 있다. 시내 사본 등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God’으로 혹은 ‘who’로 추측할 수 있도록 변개되었다. 한편 주후 265년경의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 등과 같은 초기의 증인들도 이 구절에 ‘하나님’이 포함되어 있음을 지지한다. 이와 더불어 주후 110년의 이그나티우스 등도 이 구절에 ‘하나님’이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주후 400년 이전에는 배교자요 이단인 오리겐만이 여기서 ‘하나님’을 삭제했다.
한편 이탈리아의 디오다티 성경, 스페인의 발레라 성경, 포르투갈의 알메이다 성경, 루터의 독일어 성경 등 세계 전역에서 사용되어온 역본들이 모두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셨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개역성경에서 ‘하나님’이 빠진 것은 1881년의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수정 그리스어 본문 - 이것은 연합성서공회가 발행하는 그리스어 본문의 근간이 되는 본문이다 - 에서 이 단어를 삭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삭제는 압도적인 사본들의 증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1881년 영국 성경 개정 위원회의 교리적 입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위원회에는 스미스(V. Smith)와 쎄이어(J. H. Thayer)라는 이름의 유니테리언 교도 두 사람이 있었는데 이들의 영향으로 이 구절에서 ‘하나님’이 삭제되었다. 다음은 이들의 증언이다.
성경 개정자들은 - 스미쓰와 쎄이어 - 고대 사본들 중에서 이 구절에 ‘하나님’이라고 기록된 사본들을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단지 겸손한 선생에 불과하던 예수를 육신으로 나타난 하나님으로 바라보려 했던 초기 기독교 시대의 경향이 확대됨에 따라 자연스레 파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단 교리를 수용한 쎄이어는 지금도 대부분의 신학 대학에서 그리스어 시간에 참고 문헌으로 많이 사용하는 「쎄이어의 그리스어 어휘사전」(Thayer's Greek Lexicon)의 저자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신학생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이런 이단 교도가 지은 사전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영국에서는 이런 유니테리언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심지어 성경 개정 위원회와 성서 교회에도 이들이 침입하여 성경을 변개시키는 일이 발생하자 더 이상 이것을 방관할 수 없어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뜻있는 사람들이 트리니테리언 성경공회를 조직하여 유니테리언들에 의해 훼손되지 않은 킹제임스 성경을 보급하고 있다. 이 정도로 이단의 활동은 무섭고 집요하다. 유명세를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면 속기 쉽다. 그의 사상이 어떠한가를 먼저 살펴보고 그가 이단 사상을 지녔으면 사도 요한의 가르침처럼 단호히 인사도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이 교리를 가지지 아니한 채 너희에게 오거든 그를 너희 집에 받아들이지 말고 그에게 축복 인사도 하지 말지니 그에게 축복 인사를 하는 자는 그의 악한 행위들에 참여하는 자니라(요이10-11).
2009-05-13 14:14:50 | 관리자
그리스도의 신성 경시
다음에서 개역성경은 아주 교묘하게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가리고 있다.
개역: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아들에 관하여는(about the Son)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히1:5, 8)
흠정역: 그분께서 어느 때에 천사들 가운데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이 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셨느냐?…아들에게는 이르시기를(unto the Son he saith), 오 하나님이여, 주의 왕좌는 영원무궁하오며 주의 왕국의 홀은 의의 홀이니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면 어떻게 아버지께서 그분에게 “오 하나님이여!” 하고 말 할 수 있겠는가? 개역성경은 NIV 같은 현대 역본들과 보조를 같이하며 ‘아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아들에 관한 것’으로 바꾸어 예수님의 신성을 가리고 있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빌립보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흠정역: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을지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도 있던 마음이라.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빌2:5-6)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位格)이므로 자신이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사실을 -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므로 - 도둑질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다시 말해 그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과 자신이 동등함을 당연히 여기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이것을 얼버무려 무슨 뜻인지 잘 알 수 없게 만들었으며 잘못 보면 마치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게 만들었다.
개역: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는 ‘무소부재’ 즉 어느 곳에나 계신다는 것이다. 사람 중에서 무소부재를 주장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무소부재하시며 그래서 과감하게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흠정역: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가지 아니하였느니라(요3:13).
그러나 개역성경의 번역자들은 이런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무난하게 번역하고 있다.
개역: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여기서 핵심 구절은 ‘하늘에 있는’이며 이것은 우리 주 예수님의 무소부재를 증명해 주는 단서가 된다. 이 모든 변개의 원인은 불신이다. 믿지 못하면 삭제하는 것이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본을 필사한 서기관들의 관습이었다.
2009-05-13 14:00:06 | 관리자
그리스도를 격하시킴
마태복음 4장 10절은 경배의 대상이 오직 한 하나님뿐임을 명백히 보여 준다.
흠정역: 이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너는 여기서 물러가라. 기록된바, 너는 주 네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길지니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4:10).
이런 이유 때문에 베드로는 고넬료가 자기에게 경배하려 하자 단호히 거절했고 바울 역시 이교도들이 자기에게 경배하려 하자 즉각 거절했으며 천사도 요한이 경배하려 하자 단호히 거절했다.
흠정역: 그때에 그(천사)가 내(요한)게 이르기를, 나는 네 동료 종이요, 대언자들인 네 형제들과 이 책의 말씀들을 지키는 자들 가운데 속한 자니 너는 주의하여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계22:9).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언제든지 사람들에게서 경배를 받으셨다.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흠정역: 그런데, 보라, 한 나병 환자가 와서 그분께 경배하며 이르되, 주여, 주께서 원하시면 나를 정결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매(마8:2)
그런데 개역성경은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고 대신 절하게 한다.
개역: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이곳 외에도 예수님께 경배한다는 구절이 나오면 개역성경은 대개 다 절하는 것으로 바꾸었다(마9:18; 14:33; 15:25; 18:26; 20:20 등). 그런데 흥미 있게 계시록 13장 4절에서 개역성경은 동일한 그리스어를 ‘경배하다’로 바르게 번역하고 있다.
개역: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계13:4)
예수님께는 절하게 하고 짐승에게는 경배하게 하는 번역이 과연 논리적으로 옳은가? 이것이 바로 성경 부패 뒤에 숨겨진 알렉산드리아 철학의 핵심 내용인 것이다.
2009-05-13 13:58:12 | 관리자
그리스도의 성육신 부인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그 영이니라.”라고 말했다(요일4:3). 여기서 밑줄 친 부분은 참으로 적그리스도를 시험하기 위한 중요한 시금석이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
개역: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개역성경은 ‘그리스도’와 ‘육신 안에 오셨다’는 구절을 삭제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으며 따라서 사도 요한이 말한 ‘적그리스도의 영’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속이는 자들에게 동조하는 자들은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속임수로 인해 고통을 자초할 것이다.
속이는 자들이 세상에 많이 들어왔나니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느니라. 이런 자가 속이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 너희 자신을 살필지니 이로써 우리가 이룬 그것들을 우리가 잃지 아니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죄를 지으며 그리스도의 교리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이 없으며 그리스도의 교리 안에 거하는 자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느니라. 어떤 사람이 이 교리를 가지지 아니한 채 너희에게 오거든 그를 너희 집에 받아들이지 말고 그에게 축복 인사도 하지 말지니 그에게 축복 인사를 하는 자는 그의 악한 행위들에 참여하는 자니라(요이7-11).
지금까지 우리는 개역성경이 무려 12번 이상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지워 버린 것을 살펴보았는데 이제 개역성경은 한발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육체에 오신 것’도 삭제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부인
한편 알렉산드리아의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창조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분의 신성을 공격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마저도 공격한다.
개역: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눅2:33)
흠정역: 요셉과 아이의 어머니는 그가 아이에 관하여 말한 그것들로 인해 놀라워하더라.
요셉은 결코 예수님의 아버지가 아니다. 그가 예수님의 아버지라면 예수님은 타락한 인간의 피를 받고 태어난 죄인이 되고 만다.
그리스도의 신성 부인
또한 마귀의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려고 무척이나 애쓴다.
개역: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마5:22)
흠정역: 누구든지 아무 까닭 없이 자기 형제에게 화를 내는 자는 심판의 위험에 처하게 되고
예수님께서 분명히 서기관들에게 노하셨는데 만일 이런 구절에서 ‘아무 까닭 없이’가 빠진다면 과연 예수님은 어떻게 될까?
그리스도의 피 부인
또한 개역성경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예수님의 피를 무시한다.
개역: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1:14)
흠정역: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
2009-05-13 13:55:29 | 관리자
그리스도의 주(Lord) 되심 부인
신약성경에서 누군가가 예수님을 가리켜 ‘주’(Lord)라고 할 때 이것은 그분이 곧 구약성경의 ‘주’ 곧 만물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여러 곳에서 우리 예수님이 ‘주’라는 것을 삭제하여 그분이 마땅히 취하셔야 할 영광과 존귀를 찬탈하고 있다. 다음은 ‘주’를 삭제한 구체적인 예이다.
(a) 흠정역: 그 아이의 아버지가 곧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지 아니함을 도와주소서, 하더라(막9:24).
개역: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b) 흠정역: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 원하느냐? 하시니 그 눈먼 사람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내가 시력을 받게 해 주옵소서, 하매(막10:51)
개역: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c) 흠정역: 예수님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주의 왕국으로 들어오실 때에 나를 기억하옵소서, 하매(눅23:42)
개역: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d) 흠정역: 그가 떨며 심히 놀라 이르되,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나이까? 하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도시로 들어가라. 그러면 네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듣게 되리라, 하시니(행9:6)
개역: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e) 흠정역: 우리가 항상 주 예수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님의 생명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
개역: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f) 흠정역: 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주 예수님의 자국들을 지니고 있느니라(갈6:17).
개역: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g) 흠정역: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 앞과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곧 친히 나타나실 때에 자신의 왕국에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분 앞에서 네게 명하노니(딤후4:1)
개역: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h) 흠정역: 이 일들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많은 사람들의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존귀와 권능이 주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계19:1).
개역: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마귀 들린 아이의 아버지도, 눈먼 사람도, 십자가에 달리 강도도, 구원받기 전의 사울도 다 예수님을 ‘주’(Lord)로 인정하고 그분을 구원자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중요한 부분을 삭제하거나 ‘선생님’ 등으로 바꾸는 것은 주 예수님의 신성을 격하시키는 것이다.
2009-05-13 13:52:51 | 관리자
개역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잘못 가르친다
예수님의 재림은 인류 역사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할 중요 사건이며 그리스도인들의 최대의 소망이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잘못 가르치고 있다.
흠정역: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이 오는 그 날도 그 시각도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
개역: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흠정역: 이르되, 오 주 하나님 전능자여,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앞으로 오실 주께 우리가 감사를 드림은 주께서 친히 주의 큰 권능을 취하시고 통치하셨기 때문이니이다(계11:17).
개역: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예수님의 재림 전에는 많은 거짓 그리스도 즉 ‘뉴에이지 그리스도’가 올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이들은 다 자기들이 그리스도라고 말할 것이다. 힌두교에서 도를 닦아 부처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구루(선생)들과 짐 존스 같이 집단 자살을 일으킨 이단 교주들이 다 자기를 그리스도라고 부른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이것을 감추려고 노력한다.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막13:5-6)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개역성경과 마찬가지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본에서 나온 NIV 등도 이와 똑같이 “I am he.”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은 분명하게 거짓 그리스도를 보여 주고 있다.
흠정역: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시되, 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라, 하며 많은 사람을 속이리라.
2009-05-13 13:50:45 | 관리자
개역성경은 그리스도를 부인함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메시아 즉 그리스도로 받아들일 때에야 비로소 그리스도의 영이 그 사람 안에 거하며 그는 그리스도인이 된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거짓말하는 자라고 명확히 선언하고 있다(요일2:22).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그리스도를 개역성경은 여러 곳에서 삭제했으며 다음은 구체적인 예를 보여 준다.
(a) 흠정역: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불리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한 분 곧 그리스도이니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23:8).
개역: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b) 흠정역: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눅4:41)
개역: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c) 흠정역: 이는 우리가 직접 그분의 말을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 그리스도이신 줄 알기 때문이라, 하였더라(요4:42).
개역: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d) 흠정역: 우리는 주께서 그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확신하나이다, 하매(요6:69).
개역: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e) 흠정역: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것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롬1:16).
개역: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f) 흠정역: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밑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롬16:20).
개역: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g) 흠정역: 그런즉 나의 보상이 무엇이냐? 진실로 내가 복음을 선포할 때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값없이 선포하고 이로써 복음 안에 있는 나의 권리를 남용하지 아니하는 것, 그것이로다(고전9:18).
개역: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h) 흠정역: 영원무궁토록 찬송 받으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내가 거짓말하지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고후11:31).
개역: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i) 흠정역: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확정하신 그 언약을 사백삼십 년 뒤에 생긴 율법이 취소하지 못하며…(갈3:17)
개역: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j) 흠정역: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개역: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k) 흠정역: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환희의 관이 무엇이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 앞에 있을 바로 너희가 아니냐?(살전2:19)
개역: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l) 흠정역: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타오르는 불로 징벌하실 때에(살후1:8)
개역: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m) 흠정역: 그 일을 위하여 내가 복음 선포자와 사도로 임명을 받았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하지 아니하노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이방인들의 교사가 되었노라(딤전2:7).
개역: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e), (g) 용례에서 보듯이 우리가 전하는 것은 단순히 복음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요약해 준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내가 또한 받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그것은 곧 성경 기록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성경 기록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시고(고전15:3-4).
(i) 용례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그리스도 안에서’ 확정된 것임을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다. (j) 용례도 매우 중요하다. 킹제임스 성경은 우리를 강하게 하시는 주체가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보여 주지만 개역성경은 그냥 불특정 인물이 우리를 강하게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인물이 누구인가에 따라 본문의 내용이 달라지지 않겠는가? 킹제임스 성경은 그리스도를 높이는 일에서도 개역성경보다 훨씬 더 낫다.
2009-05-13 13:48:38 | 관리자
천사인가, 사자인가?
천사는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존재이다. 지금처럼 뉴에이지 사상이 득세할 때에는 특별히 천사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천사는 성경에 295회 나오는데 개역성경은 이 중 177회를 천사로, 67회를 사자(使者)로 번역했다. 천사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의 천사’(the angel of the LORD)인데 개역성경은 이것을 다 사자로 번역했다.
구약의 ‘주의 천사’는 다른 천사와 달리 특별한 경우에만 나타나는 중요한 인물이며 성육신 이전의 예수님으로 이해되고 있는데 이런 중요한 개념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으면 교리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개역성경은 마귀의 천사들 역시 사자들로 번역하여 마치 마귀에게는 그를 추종하는 천사들이 없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소위 ‘배교의 결정판’이라 하는 NIV 등도 주의 천사와 마귀의 천사들을 제대로 번역했다.
개역: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마25:41)
흠정역: 너희는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
뉴에이지는 아기 천사, 여자 천사 등을 가르치지만 성경의 천사는 모두 남자이며 아기 천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천사를 다루는 부분의 ‘man’ 혹은 ‘men’은 반드시 남자로 번역해야만 한다.
개역: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창19:5)
흠정역: 네게 온 남자들이 어디 있느냐?… 우리가 그들을 알리라.
여기 나오는 ‘남자들’은 바로 천사들이며 소돔 사람들은 바로 이 남자들(천사들)과 성적 접촉을 갖고자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유다서는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흠정역: 이것은 소돔과 고모라와 그것들의 주변 도시들이 같은 방식으로 자기들을 음행에 내주고 낯선 육체(strange flesh)를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로 보복을 당하여 본보기가 된 것과 같으니라(유7).
소돔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른 ‘낯선 육체’를 추구했다(물론 그들은 다 남성으로 나타났음).
그러나 개역성경은 여기서도 이상하게 번역을 하여 이런 것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개역: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과연 이런 번역을 가지고 천사들과의 성적 접촉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래서 영어에서는 동성연애를 ‘sodomy’, 동성연애자를 ‘sodomite’라 부르는 것이다.
끝으로 성경의 천사는 항상 젊은 남자로 나타나므로 사람이 알아보지 못한다.
흠정역: 나그네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어떤 자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천사들을 대접하였느니라(히13:2).
2009-05-13 13:45:54 | 관리자
루시퍼인가, 계명성인가?
21세기 뉴에이지 시대에 하나님을 내버리고 인본주의를 삶의 모토로 삼은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신 마귀에게 새로운 일거리가 생겼다고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흠정역: 그들이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지 아니하고 마귀들에게 드렸으니 곧 자기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너희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신들, 새로이 일어난 새로운 신들에게 드렸도다(신32:17).
사탄은 이 세대 속으로 침투하여 많은 영혼들을 제물로 삼기 위해 온갖 힘을 쏟으면서 이제는 노래를 통해 ‘메탈 음악 시장’으로부터 평범한 ‘중류 음악 시장’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손아귀에 넣었고 심지어 CCM이라는 신복음성가 장르를 만들어 마귀를 찬양하는 리듬과 가사를 유행시키고 있다. 이제 반(反) 문화의 창시자들이 최근에 나온 새 역본들 안에까지 신비주의 지하 조직의 철학들을 집어넣음으로써 반(反) 문화의 대중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우리 눈앞에서 기독교회의 전체적인 배교가 일어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 영향은 우레와 같이 엄청난 것이다.
흠정역: 12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민족들을 약하게 만든 자야, 네가 어찌 끊어져 땅으로 떨어졌는가! 13 네가 네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내가 하늘로 올라가 내가 하나님의 별들 위로 내 왕좌를 높이리라. 또 내가 북쪽의 옆면들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내가 구름들이 있는 높은 곳 위로 올라가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이 되리라, 하였도다. 15 그러나 너는 끌려가 지옥으로 곧 그 구덩이의 옆면들로 내려가리로다. 16 너를 보는 자들이 너를 자세히 살펴보고 너에 대해 깊이 생각하여 이르기를, 이 자는 땅을 떨게 하고 왕국들을 흔들며 17 세상을 광야같이 만들고 거기의 도시들을 멸망시키며 자기 죄수들의 집을 열지 아니한 자가 아니냐? 하리로다(사14:12-17).
루시퍼의 자만에 찬 외침 즉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이 되리라는 외침 속에는 단어 단어마다 그의 불만이 무겁게 깔려 있다. ‘기름 부음 받은 그룹’(Cherub)인 루시퍼는 스스로 자신의 신분을 변경하기를 원했다. 그는 모든 창조물이 지극히 높으신 분이 아니라 자기에게 경배를 드리기를 갈망했다. 마태복음 4장 9절에 기록된 대로 그가 예수 그리스도께 “네가 내 앞에 엎드려 경배하면…”이라고 말한 것을 보아도 그의 욕망이 경배 받는 것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계시록 13장 4절이 사람들이 용에게 경배했다고 기록하듯이 불행하게도 그의 야망은 곧 성취될 것이며 바로 그 환난기가 뉴에이지의 절정기가 될 것이다.
계시록 12장 9절은 ‘큰 용이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자’라고 분명히 기록하면서 우리에게 그의 정체를 밝히 보여 주고 있다. 21세기의 일반 대중이 사탄에 대해 느끼는 나쁜 이미지를 바꾸어 경배 받기에 합당한 좋은 이미지로 바꾸기 위해 대중 매체는 그럴듯한 선전을 동원하고 있다. 그 내용은 가히 놀랄 만한데 그 핵심은 그의 정체를 바꾸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사야서 14장은 성경에 기록된 루시퍼에 대한 유일한 일대기로서 이곳이야말로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불법의 신비’(살후2:7)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우리는 12절에서 루시퍼가 하늘에 있음을 알 수 있고 15절에서 그가 지옥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하늘에서 지옥으로 가는 동안 그는 무려 다섯 번이나 “내가…하리니”(I will…)라고 외치면서 하나님과 같게 되려는 욕망을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런 외침 하나 하나는 루시퍼를 하늘에서 지옥으로 이끌고 가는 계단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성도들은 이 구절을 통해 마귀의 자만심의 본질이 무엇인지 바르게 볼 수 있다.
위의 성경 구절은 사탄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확실히 보여 주므로 지금까지 사탄의 증오의 대상이자 저항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 구절들은 그의 오만(13-14절), 세상의 불행에 대한 그의 책임(17절), 그리고 그의 파멸(15-16절)을 한 점 의혹도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마귀의 일대기는 에스겔서 28장에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나 거기에서 그의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고 그는 다만 ‘기름 부음을 받은 그룹’이라고 언급되어 있다(겔28:14).
루시퍼의 야망은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이 되는 것’인데 이 구절은 그의 정체를 훤히 드러내 줌으로써 그의 꿈을 산산조각 내고 있다. 사탄에게 아부하지 않는 정결한 말씀으로부터 ‘루시퍼’라는 단어가 확실히 제거되어 그를 ‘지극히 높은 자’로 만드는 말씀 속으로 삽입될 때까지 그가 자신의 이름 ‘루시퍼’에 대해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이다. 사실상 이 묘한 속임수는 개역성경을 비롯한 현대 역본들에서 이미 완성되었고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이 부패되지 않은 채 말씀의 순수성을 유지하며 루시퍼의 일대기를 보여 주고 있다.
개역: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사14:12)
NIV: How you have fallen from heaven, O morning star, son of the dawn! You have been cast down to the earth, you who once laid low the nations!
현대 역본들은 한결같이 ‘루시퍼’란 이름을 제거했고 이로써 성경 전체에서 유일하게 타락 전 사탄의 이름을 보여 주는 부분은 본문에서 삭제되어 성도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결과 ‘루시퍼’라는 단어는 이제 시인들과 신화 작가들의 영역으로 넘어가 버렸고 그는 더 이상 성경에서 유래되어 확인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 신화적 인물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성경을 변개시킴으로써 루시퍼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갖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가리켜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성경이 변개되었으므로 사탄은 자신이 원하는 어떠한 특성도 스스로 취할 수 있게 되었다.
개역성경을 비롯한 현대 역본들에 나타난 이 같은 변화는 히브리어 원문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고찰해 보면 ‘루시퍼’란 단어 대신 ‘계명성’ 혹은 ‘새벽별’(morning star)을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누구나 쉽게 깨달아 알 수 있다. 이 구절의 히브리어는 ‘halel, ben, shachar’로서 이것을 정확히 번역하면 개역성경처럼 ‘계명성’이 아니라 킹제임스 성경처럼 ‘아침의 아들 루시퍼’가 된다. 그런데 NIV와 NASB 등의 새 역본들과 개역성경은 마치 이 구절이 히브리 원본에 ‘shachar, kokab, ben, shachar’ 즉 ‘아침의 아들, 새벽별’이라고 쓰여 있는 것처럼 번역했다.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별’(kokab)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으며 또 ‘아침’ 혹은 ‘새벽’이란 단어도 개역성경을 비롯한 현대 역본들에 있듯이 두 번 나오지 않고 킹제임스 성경에 있듯이 한 번만 나온다.
개역성경이나 NIV의 역자들은 ‘kokab’(스트롱 번호 3556)이라는 히브리어를 다른 곳에서는 수십 번씩이나 ‘별’로 번역했으며(창1:16부터 나3:16까지 약 40번) ‘아침’ 혹은 ‘새벽’이란 단어도 마찬가지다. 또한 개역성경의 편집자들은 ‘새벽별’(boger kokab)이 욥기 38장 7절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흠정역: 어느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이 기뻐 소리를 질렀느냐?(욥38:7)
따라서 만일 하나님께서 ‘루시퍼’라는 단어를 ‘새벽별’ 혹은 ‘계명성’으로 전달하고자 하셨다면 욥기에 나오는 동일한 단어를 이사야서에서도 반복해서 사용하셨을 것이다. 킹제임스 성경에서 이곳을 제외하고는 ‘루시퍼’란 단어가 나오지 않듯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halel’이란 단어 즉 ‘루시퍼’를 뜻하는 히브리 단어도 이곳 말고는 히브리어 구약성경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 진정한 새벽별은 누구인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역성경 번역자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본과 역본을 따라 이사야서 14장에 등장하는 ‘루시퍼’ 대신 ‘새벽별’ 혹은 ‘계명성’을 삽입함으로써 예수님께 대한 가장 결정적인 신성모독을 범하고 말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후서 1장 19절, 계시록 22장 16절 등에서 ‘새벽별’이라 불린다.
흠정역: 나 예수는 내 천사를 보내어 교회들 안에서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요 빛나는 새벽별이라, 하시더라(계22:16).
그러나 사탄은 서기관들을 이용해서 조용히 자리를 떠나 교활하게 무대 밖으로 빠져 나왔다. 그리고 그는 이사야서 14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비난의 대상 혹은 타락의 대상으로 만듦으로써 ‘고소하는 자’(계12:10)라는 호칭에 걸맞게 행동하고 있다. 참고로 NASB 같은 현대 역본은 이사야서 14장 12절 옆에 “벧후1:19를 보라.”는 관주를 붙임으로써 이 구절이 ‘루시퍼의 타락’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타락’을 지칭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현세대 신학자들의 변절과 배교가 있기 전에는 믿는 성도들 모두가 오직 그리스도만이 ‘새벽별’이요, ‘계명성’이요, ‘샛별’이라는 데 동의했다. 이미 오래 전에 재미슨(Robert Jamieson)은 그의 저서 ‘주석: 구약 비평과 설명’에서 뉴에이지 시대에 그리스도에 대한 이름 놀이가 있을 것을 예고했다.
샛별: 진실로 그리스도께 속한 칭호로서 장차 적그리스도가 이 명칭을 사칭할 것으로 사료됨.
1913년도에 발행된 저 유명한 스펜스(H.D. M. Spence)의 ‘풀핏 주석’ 이사야서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샛별(새벽별)이란 칭호는 참으로 그리스도의 칭호이지만 후에 적그리스도가 이것을 찬탈할 것이다. 그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바빌론의 실체이며 신약성경의 신비 바빌론의 선두주자이다. 후에 사탄은 이 칭호를 마치 자신의 것으로 주장할 것인데…. 그는 이방 세상 권세 바빌론에게 활기를 주고 있으며 현재는 배교의 길을 걷고 있는 교회를 부추기고 있고 결국에는 세속적인 적그리스도와 … 그리고 그의 챔피언인 거짓 선지자를 선동하게 될 영이다.
사탄 마귀는 계시록12장에서 그 정체가 용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성경에는 용이 35회 등장하는데 개역성경은 용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여러 구절을 뱀(신32:33), 이리(욥30:29), 시랑(시44:19) 등으로 처리해 버렸다.
흠정역: 그들의 포도주는 용들의 독이요, 독사들의 지독한 독이라(신32:33).
개역: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악독이라
사탄 마귀를 나타내는 ‘리워야단’(Leviathan, 스트롱 번호 3882)은 성경에 다섯 차례 나온다(욥41:1; 시74:14; 104:26; 사27:1에 두 차례). 그런데 개역성경은 이사야서를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그를 악어로 번역해서 그 뜻을 완전히 가려 버렸다.
흠정역: 네가 낚시 바늘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혹은 늘어뜨리는 줄로 그의 혀를 끌어낼 수 있겠느냐?(욥41:1)
개역: 네가 능히 낚시로 악어를 낚을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
참고로 성경의 용(dragon)은 중국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 상상하는 용과 다르다. 예를 들어 에스겔서 29장 3절의 용은 강 한 가운데 누워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고 계시록 12장의 용은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다시 말해 성경의 용은 보통 우리가 ‘공룡’이라 하는 짐승과 비슷하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영어에서 용의 용례를 찾아봐야 한다. 영어에서 용은 공룡과 같은 큰 괴물을 지칭하는 데 쓰였다.
dragon: a mythical monster, represented as a huge and terrible reptile, usually combining ophidian and crocodilian structure, with strong claws, like a beast or bird of prey, and a scaly skin; it is generally represented with wings, and sometimes as breathing out fire. The heraldic dragon combines reptilian and mammalian form with the addition of wings(옥스퍼드영어사전).
우리가 공룡을 지칭할 때 쓰는 ‘dinosaur’라는 단어는 1841년에 처음으로 문헌에 나오며 그 전에는 그런 괴물을 모두 ‘용’으로 불렀다.
dinosaur: A member of an extinct race of Mesozoic Saurian reptiles (group Dinosauria, typical genus Dinosaurus), some of which were of gigantic size; the remains point to an organism resembling in some respects that of birds, in others that of mammals(옥스퍼드영어사전).
그래서 영국의 전래 동화 등에서 나오는 용은 대개 모습이 ‘공룡’ 혹은 ‘공룡의 새끼’처럼 생긴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성경에 나오는 ‘용’을 우리가 알고 있는 ‘공룡’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2009-05-13 13:43:50 | 관리자
주인가, 여호와인가?
한국 성도들에게는 ‘여호와’라는 단어가 매우 친숙한 단어이다. 이 단어는 ‘4자음문자’(Tetragrammaton)라고 널리 알려진 히브리어 ‘JHVH’에서 왔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의 종살이를 끝내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처음으로 이 이름을 계시해 주셨다(출3:13-16; 6:2-8). 또한 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엄중히 명령하셨다(출20:7).
흠정역: 너는 주 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지 말라. 주가 자신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이 명령을 매우 두렵게 생각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에서 그분의 두려운 이름 ‘JHVH’를 대할 때마다 눈으로 그 이름을 확인하고 정작 읽을 때는 주(主)를 의미하는 ‘아도나이’(Adonai)로 읽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영어의 ‘Jehovah’는 히브리어 4자음문자 ‘JHVH’에 ‘아도나이’의 모음을 넣어 만든 ‘YaHoVaH’를 음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그들의 영향을 받은 현대주의자들은 ‘여호와’가 아니라 ‘야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전통 마소라 본문은 모음 부호를 통해 그분의 이름이 ‘여호와’임을 명백하게 보여 준다. 한편 개역성경의 ‘여호와’는 영어의 ‘Jehovah’를 우리말로 음역한 것이다. 사실 대한성서공회 역시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구약의 마소라 본문 자체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네 글자를 ‘주’(아도나이)라 표기했고 신약의 사도들이 신약을 기록할 때도 그 이름을 ‘주’(큐리오스)라고 기록했으며 루터의 독일어 성경도 이 이름을 ‘주’(헤르)로, 그리고 대부분의 영어 성경도 이 이름을 ‘주’(로드)라 번역했고 개역성경 신약도 이 거룩한 이름 네 글자를 ‘주’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대한성서공회가 개역성경의 구약을 번역함에 있어 신약을 번역할 때와는 달리 주님의 거룩한 이름 ‘여호와’를 그대로 음역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약을 읽으면서 무려 6,400회 이상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함부로 취하게 해 놓았다는 점이다. 그 결과 많은 성도들이 마땅히 경외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할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아무 때나 아무 의미 없이 취함으로써 그 이름의 위엄과 존엄성을 떨어뜨리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기도할 때 심각하게 나타난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 주요 원인은 개역성경의 구약이 영어 성경 중 유일하게 ‘JHVH’를 ‘주’(LORD, 전체 대문자)로 표기하지 않고 ‘여호와’로 표기한 미국표준역(ASV, 1901)에 근거하여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이 미국표준역은 여호와의 증인들의 신세계역과 마찬가지로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로마 카톨릭 소수본문에서 나온 것으로 20세기 초반에 여호와의 증인들이 자기들의 교리를 확증하기 위해 가장 선호하고 애용한 성경이다. 참고로 이런 문제가 발생하자 그 이후에 나온 신미국표준역(NASB, 1971)은 급히 이것을 수정하고 다시 원래의 성경 전통으로 돌아가 ‘여호와’ 대신 ‘주’(LORD)를 쓰고 있다. 참고로 NIV, NKJV, RSV 등 대부분의 영어 성경과 주요 유럽어 성경이 모두 ‘여호와’를 ‘주’로 번역하고 있다. 다음은 구체적인 예를 보여 준다.
흠정역: 땅과 하늘들이 창조된 때 곧 주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만들고…(창2:4)
개역: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KJV: These are the generation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they were created, in the day that the LORD God made the earth and the heavens,
ASV: These are the generation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they were created, in the day that Jehovah God made earth and heaven.
개역성경은 킹제임스 성경에서 ‘LORD’로 번역한 단어(스트롱 번호 3068)를 다 여호와로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그 단어의 변형인 ‘여호비’(스트롱 번호 3069)도 대개 여호와로 번역했는데 이것 역시 미국표준역(ASV)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이 단어는 특히 예레미야서와 에스겔서 등에 많이 나오며 킹제임스 성경은 이것을 다 대문자 ‘GOD’로 표현해서 사람이 무의식중에라도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할 수 없게 만들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흠정역: 그들은 뻔뻔하고 마음이 뻣뻣한 자손들이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하라(겔2:4).
개역: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KJV: For they are impudent children and stiffhearted. I do send thee unto them; and thou shalt say unto them, Thus saith the Lord GOD.
ASV: And the children are impudent and stiffhearted: I do sent thee unto them; and thou shalt say unto them, Thus saith the Lord Jehovah(ASV).
유대인들은 이런 경우에 ‘여호비’를 ‘엘로힘’으로 읽었는데 그 이유는 ‘여호비’ 앞에 대개 ‘주’를 의미하는 ‘아도나이’가 오므로 ‘여호비’를 다시 ‘아도나이’로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유대인들의 전통대로 ‘여호비’를 피하기 위하여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조심스레 이것을 대문자 ‘GOD’로 표현했는데 이렇게 표현된 ‘GOD’은 성경에 309번 나온다. 이런 것을 통해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성경을 바르게 번역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며 그래서 유대인들의 구약성경이 주는 의미와 맛을 표현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의도가 ‘여호와’를 ‘주’로 번역하라는 것은 다음의 용례를 통해 명백히 드러난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주’(그리스어 큐리오스)라고 번역해야 함을 친히 보여 주신다.
흠정역: 주(LORD, 그리스어 큐리오스)께서 내 주(Lord, 그리스어 큐리오스)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받침으로 삼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마22:44)
개역: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이 구절은 다윗이 기록한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한 것이다.
흠정역: 주(LORD, 히브리어 여호와)께서 내 주(Lord, 히브리어 아도나이)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받침으로 삼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110:1).
개역: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말로 신약성경을 주시면서 구약성경의 ‘여호와’를 ‘주’로 번역하라고 이런 용례를 남기셨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여호와’를 ‘큐리오스’ 즉 ‘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의도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분께서는 ‘여호와’라는 자신의 신성한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이 구절은 성경에 여러 군데 나오는 중요한 구절로서 우리 주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는 구절인데 개역성경은 여기서 ‘여호와’를 ‘주’라 번역하지 않아 하나님의 의도를 알 수 없게 했다. 또한 마태복음과 시편 구절을 동일하게 번역하지 않았고 또 ‘발받침’(footstool)을 그냥 ‘발’로 바꾸었으며 ‘원수들’이라는 복수를 ‘단수’로 바꾸었다. 이렇게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면 성경의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 문제는 또한 교리적으로도 중요한 차이를 가져온다. 구약의 ‘주’(LORD)를 ‘여호와’로 표현하면 성경의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주의 날’ 즉 재림에 관한 개념이 변하게 된다. 다시 말해 동일한 날을 구약에서는 ‘여호와의 날’로 하고 신약에서는 ‘주의 날’로 하면 그것들이 동일한 날을 가리키고 있음을 독자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예로 사도행전 2장 20절을 살펴볼 수 있다.
흠정역: 저 크고 주목할 만한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둠이 되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려니와
개역: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이것은 성도 누가가 요엘서 2장 31절을 인용한 것이다.
흠정역: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둠이 되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려니와
개역: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개역성경을 본문으로 한 관주 성경을 보면 사도행전 2장 20절의 관주가 분명히 요엘서 2장 31절로 되어 있는데 거기에 가서 보면 ‘주의 날’이 아니라 ‘여호와의 날’로 되어 있으므로 독자는 이런 구절을 잘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영어 성경에는 모두 ‘주의 날’로 되어 있으므로 관주가 제대로 관주 역할을 한다. 그래서 한국 성도들에게는 대언자 이사야의 글로부터 줄기차게 언급되고 있는 ‘크고 두려운 주의 날’ 즉 이스라엘 백성을 연단하기 위한 ‘야곱의 고난의 때’(렘30:7)에 대한 개념이 없으며 따라서 교회의 환난 전 휴거와 우리 주님의 전천년 재림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다. 이런 개념이 제대로 있으면 행2:20, 살전5:2, 벧후3:10 등에 나오는 ‘주의 날’이 유대인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구약의 ‘주의 날’ 즉 다니엘의 70 이레의 마지막 한 이레인 7년 환난기를 가리킴을 금방 알 수 있고 따라서 교회가 환난을 통과한다는 자기 학대의 믿음과 행위 중시 믿음에서 떠나 복된 소망인 환난 전 휴거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장 13절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기록했다. 여기서 그가 언급한 주는 분명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런데 사실 이 구절은 구약의 대언자 요엘이 기록한 말씀과 같다.
흠정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출을 받으리니(욜2:32)
개역: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를 통해 바울 사도는 신약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곧 구약의 주 하나님임을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요엘서의 ‘주의 이름’을 개역성경처럼 ‘여호와의 이름’이라고 하면 성경의 일관성이 깨지면서 성령님께서 요엘과 바울 두 사람의 기록을 통해 주의 깊게 의도하셨던 바를 독자들이 전혀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최근에 출간된 표준새번역은 개역성경과는 달리 전 세계 대부분의 성경처럼 바른 전통을 따라 구약에서 ‘JHVH’를 ‘주’로 옮겼는데 이는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다.
2009-05-13 13:39:56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