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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에게나 그리스인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이시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니라. - 고전1:24 -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사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성별과 구속이 되셨으니 - 고전1:30 - 우리 크리스찬들의 지혜는 사람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 곧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내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요 죽는 것이 이득이니라. - 빌1:21 -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사실때 진정한 지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2012-03-31 15:26:17 | 우영운
지혜와 지식의 관계에 대한 분별력 있는 글에 대해 감사합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순수하고 다음으로 화평하며 부드럽고 간청을 잘 들어주며 긍휼과 선한 열매로 가득하고 차별과 위선이 없나니(약3:17)
2012-03-31 01:07:39 | 김문수
잠언은 말하기를,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 의로운 길을 가는 자, 부지런한 자, 겸손한 자”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을 단 한마디로 압축하여 표현 한다면, “지혜로운 자는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된다. 왜냐하면 순종은 이 모든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제 잠언에 기록된 내용을 한 말씀 한 말씀씩 따라가 보면서 지혜와 지식, 그리고 명철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잠언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결국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더 나아가 명철과 지식조차도 그 분의 입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2:6). 그런데, 지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얻을 수 있으며 (9:10), 그것을 얻게 되는 자들에게 생명나무가 된다 (3:18). 여기서 하나님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곧 ‘순종’을 의미하며, 이로써 ‘순종’하는 자가 ‘생명나무’를 얻게 됨이 자명 해진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아담은 이에 대하여 실패하였고, 예수님은 순종의 모범을 보이셨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로운 자가 되리라.”(롬 5:19)   결국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요, 순종하는 자이며, 생명나무를 얻게 되는 자이다. 그러기에 잠언 기자는 계속해서 지혜가 으뜸가는 것이고 (4:7) 사람이 원하는 모든 것이 그것과 비교될 수 없다고 (4:11) 말하고 있다.   잠언에서 명철은 지혜와 거의 동등하게 사용되어져 나온다. 예를 들면 잠언 3장 13절에 “지혜를 찾는 자와 명철을 얻는 자는 행복하니”라고 되어 있고, 계속하여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고, 네 마음을 명철에 쏟으며” (2:2),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4:5), “지혜가 외치지 아니 하느냐? 명철이 자기 음성을 내지 아니하느냐?” (8:1), 그리고 심지어 하나님께서도 직접 “지혜로 땅의 기초를 놓으셨으며 명철들로 하늘들을 굳게 세우셨도다” (3:19)라고 전하고 있다. 따라서 지혜와 명철은 그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로 봤을 때는 거의 동의어처럼 바꿔 사용하여도 크게 무리는 없어 보인다. 한 가지 더 주목하여 볼 부분은, 우리가 우리 자신이 세운 명철을 의지하거나 (3;5), 자신의 눈에 지혜로운 자, 즉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자가 되는 어리석음을 주의하라고 (3:7) 잠언 기자는 주의를 주고 있다. 역시 같은 맥락에서 거의 동의어처럼, 그러나 다른 뉘앙스로 반복과 강조의 효과를 위하여 사용되어 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지식은 지혜와 어떤 관계일까? 지혜로운 자는 학식 (혹은 지식)을 더하게 된다 (1:5). 지혜는 재치 있는 창안물들에 대한 지식을 찾아낸다 (8:12). 지혜로운 자들은 (그 지혜로 말미암아) 지식을 쌓게 된다 (10:14).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의 입을 가르치게 되고 그 결과 그의 입술에 학식을 더하게 된다 (16:23).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분별 있는 자라 불릴 것인데 (16:21), 분별 있는 자 즉, 지혜로운 자는 그 마음에 지식을 얻고 그 귀는 지식을 구하게 된다 (18:15). 이와 같이 지혜로운 자가 지식도 얻거나 구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 즉, 지혜의 시작을 이루는 것 (9:10) - 이 이제는 잠언 기자가 적은 것처럼 지식의 시작이 된다고도 말할 수 있게 되는 까닭이 되기도 한다 (1:7).   결국 이 모든 말씀이 가르치는 바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로) 지혜로운 자가 되면 그 지혜로 말미암아 지식을 얻게 됨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진정한 지혜,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꺼이 순종하기 원하는 그 지혜가 있으면 지식은 자연스럽게 그 안에 포함되는 것이며 세상적인 지식 - 꼭 구원과는 직접 관계없더라도 우리가 세상을 살아 나가는데 있어 유용한 지식들을 말함 - 조차도 필요하다면 자연스럽게 더 얻게 될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흔히 오해 하듯이 세상적인 방법으로 지식을 얻고, 수행이나 명상이나 선한 행위를 통하여 명철(깨달음)을 얻어, 점차적으로 지혜에 이르게 됨이 아님을 유의 할 필요가 있다. 흥미롭게도 뉴에이지와 세상의 모든 종교와 철학은, 우리가 지식에서 명철로, 명철에서 지혜의 순으로 단계별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가르친다. 프리메이슨의 대표적인 상징의 하나인 '호루스의 눈'은, 우리들이 수양과 참선과 선행을 통하여 최고의 경지에 오르면 그들이 말하는 ‘지혜’를 얻게 된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 지혜를 그들은 ‘광명’이라고 부르며, 거기서 소위 ‘일루미나티 (Illuminati)’라는 단어가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성경은 단호하게 말한다.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우리가 그 지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순종’을 택하는 것이라고! 우리의 노력으로 얻게 되는 지식과 깨달음 가지고는 하늘의 지혜를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지혜를 받게 되면 (말씀에 순종을 의미) 우리는 오히려 지식에도 풍성해 질 수 있다. 이것이 비밀이요 세상과 믿는 자를 구분 짓는 척도가 되는 것이다.   이제 내용을 정리해 보자. 지혜는 위에서 내려온다. 그 지혜는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며, 우리가 진정 지혜롭다 칭함을 듣는 것은 바로 순종을 이룰 때이다. 그리고 그때 지혜는 우리에게 생명나무가 된다. 지식은 지혜를 얻으면 더 얻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지식은 아무리 많더라도 위에서 부어 주는 은혜가 없이는 결단코 지혜에 이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이 지혜의 근본이시면서도 스스로 종의 형체를 입어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그 결과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 오는) 구원의 방법을 택하셨던 것이다! (빌립보서 2:5-11 참조).   이제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만이 영원한 생명으로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오직 말씀에 순종함으로만 그 생명을 같이 누릴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지혜이다. 아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00:2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3-30 19:57:26 | 김정훈
안녕하세요? 제기하신 문제는 성경을 조금 더 자세히 읽어보시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사료되옵니다. 다른 문제는 이미 위에 다른 두 형제님들께서 답변을 해 주셨으니 저는 한 가지 문제(1번 질문)에 대해서만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성경에서는 사탄과 '마귀'(the devil)가 따로 나올 수도 있고, 혹은 같이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에는 사탄 = 마귀라고 명확하게 선언해 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 큰 용 즉 저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세상을 속이는 자가 내쫓기더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계12:9) 마귀요 사탄인 그 용 곧 저 옛 뱀을 붙잡으니라. 그가 그를 붙잡아 천 년 동안 결박하여(계20:2)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샬롬~
2012-03-30 10:15:07 | 소범준
글을 읽어 보고 생각해 보니 문득 이 구절들이 떠올라서 조심스레 적어봅니다. ... 우리의 신앙 고백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자.(히3:1)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해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멸시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저는 요새 그런 일을 잘 안겪어봐서 그런지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지만, 저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저도 어렸을 때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과의 문제로 억울한 일을 당한 적이 있었기에 그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도 그 문제에만 붙들렸을 땐 그런 일이 몸서리치도록 싫기도 했지만, 주님이 당하신 이해할 수 없는 온갖 고초와 고난을 생각하고 지금에 끼친 유익을 생각하면 그런 사건도 웃어넘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억울함의 문제, 우리 주님을 생각하면 쉬운데, 문제는 우리가 당한 억울함에 너무 매달려서 순간 주님께서 당하신 고초마저 잊어버릴 때가 많다는 데 있습니다. 늘 뵙고 싶은 주님을 그럴 때마다 떠올리는 것이 정말 간절해집니다. 이런 글로 오히려 저도 위로를 받게 됩니다. 형제님, 힘 내시고 자매님과 안좋았던 거 모두 주님 안에서 풀어내시길 바랍니다. 샬롬^^
2012-03-30 00:20:07 | 소범준
저도 주님의 긍휼과 은혜로 그분의 창조를 믿지만, 이 글은 이미 하나님의 특별 창조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창조 사역 과정을 여러 가지 자세한 설명을 통해 새롭고 더 명확히 보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분의 모든 것을 과학으로 풀이할 수 없으니 하나님은 과학자 이상이시라고 할 수 있겠지만요.^^; 과학자로서, 특별히 교수님이시라고 한 것 같은데, 많이 바쁘실 텐데도 많은 성도님들께 이렇게 신앙을 세우는 데 유익한 글을 써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주님 안에서 성령으로 충만하여 믿음의 여정을 신실하게 달려나가시길 바랍니다. 샬롬~
2012-03-29 17:34:39 | 소범준
그 부분으로 말씀드리자면, 형제님 글에 문제가 있다는 말씀이 아니라, 모든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교리적인 분별에 너무 집중해서 관점의 차이로 인한 문제를 줄이기 위하여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모호함을 일으켰다면 형제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평소에 수고에 많이 감사드립니다. 주님 안에서 성령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샬롬^^
2012-03-29 17:05:33 | 소범준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바르게 나누고 난 이후에는 문맥과 어긋나지 않는 한 말씀을 보는 여러가지 관점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조심스레 제시해 봅니다."는 말씀은 저에게 그렇게 하라는 뜻인지, 아니면 형제님이 그렇게 해야겠다고 느낀 것인지가 좀 모호합니다. 어떤 뜻인지 정확히 알려 주시면 참고가 될 것 같군요..
2012-03-29 11:40:40 | 김정훈
형제님 안녕하세요? 가끔씩 킵바이블을 들릴 때 요새 형제님 글이 많이 올라와서 이따금씩 읽고, 사색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본 글을 읽었을 땐 조금 파격적(이 말은 형제님 글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조금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이 있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으로 와닿기도 했지만, 계속 읽어보니 제가 성경을 좁은 시야로 보고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계시록 13장 문맥은 대환란의 상황을 나타내고 있긴 하지만요. 말씀을 볼 때에는 교리적인 오류가 발생되지 않도록 바르게 나누는 것도 필요하지만, 바르게 나누고 난 이후에는 문맥과 어긋나지 않는 한 말씀을 보는 여러가지 관점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조심스레 제시해 봅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2012-03-28 23:30:05 | 소범준
형제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금의 형제님 인상을 딱 봐도 옛날 중세 시대에 매치시키면 그 역할이 좀 어울려보인다라는~~^^; 썰렁한 제 추측도 해봅니다. 형제님 옛날 글 보면 솔직히 마음 터 놓고 접하기가 부담이 좀 되는 면도 있긴 했는데 정말 많이 부드러워지셨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2-03-28 22:53:14 | 소범준
우주가 얼마나 작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우주가 얼마나 크고 넓은 가를 한번 체험해보시죠 자녀들과 공부하기도 좋습니다. http://uploads.ungrounded.net/589000/589217_scale_of_universe_enhanced.swf 위(위주소를 클릭)의 곳으로 들어가시면 우측하단에 영어로 된 start 버튼을 클릭하시고 화면이 변경되면 마우스의 가운데 스크롤바를 움직여 보십시요 하나님의 권능이 놀랍지 않나요?
2012-03-23 12:08:47 | 길준남
과학이 발전하여 우주을 관찰하고 극소 세계를 들여다 본 결과...... 인간의 보고 관찰 할 수 있는 한계가 너무 제한적 임을 느낄 수 박에 없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무한 하심과 그 기묘하심에 경탄을 할 수 박에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성경의 말씀처럼 (시 139:14) 내가 주를 찬양하리니 내가 두렵고도 놀랍게 만들어졌나이다. 주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놀라우니 내 혼이 그것을 매우 잘 아나이다 라는 간증만이 나올 뿐 입니다.
2012-03-23 11:19:13 | 허광무
차음 올렸던 글 가운데서 일부 내용은 아직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는 부분이 있어 필자가 판단 하기에 좀 더 연구를 할 필요성이 대두되어 해당 부분만 일부 자진 삭제하고 수정된 글로 다시 올림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앞서 먼저 댓글을 남겨 주셨던 양희석, 홍승대 형제님께도 감사와 함께 양해를 구합니다.
2012-03-22 18:03:34 | 김정훈
현대를 가리켜 과학 시대라고 부르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 과학의 영향을 입지 않은 것을 찾아보기 어려울이 만큼, 우리는 눈부시게 발전하는 과학의 혜택을 과거의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많이 누리고 살고 있다. 집집마다 전기를 이용하여 생활의 편리를 추구하며, 비행기를 타면 지구상의 아무리 먼 곳이라도 단 하루면 다다를 수가 있다. 인공위성은 안방에 앉아서 전 세계를 볼 수 있게 해주며, 컴퓨터는 인간의 생각까지 대신하여 준다. 그런가 하면, 사시사철 언제라도 원하는 과일을 먹을 수 있고, 병원에 가면 심장도 새 것으로 바꾸어 준다. 그야말로 작은 것에서 큰 것에 이르기 까지 과학은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과학이 우리 앞에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과학이 갖고 있는 학문적 방법의 특수성에 그 원인이 있다. 즉, 과학은 어떤 자연 현상에 대하여, 반복되는 관찰과 실험을 통하여 그 현상 배후에서 작용하는 원리를 찾아내고 이 원리를 다시 사물에 적용함으로써, 결국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한다. 그러므로 과학적이라는 말은 좁은 의미에서 실험적이라는 말로 환원될 수 있으리만큼, 과학에서 실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다. 물론, 실험을 하지 않고 단지 이론만으로도 과학적 활동을 전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론이 소위 ‘과학적’ 이라는 권위를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험적으로 입증이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본질상 그 성격이 다른 과학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창조론이나 진화론 같이 기원에 관한 문제를 연구하는 과학이다. 기원에 관한 연구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과학과는 달리 현재가 아닌 ‘과거’를 다루며, 따라서 과학적 방법의 고유한 성격인 관찰과 실험을 적용할 수가 없다는 근본적 차이가 있어, 엄밀한 의미에서는 소위 ‘과학적’ 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어렵지만, 현재 알고 있는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가장 합리적인 이론을 추론해 내고 그 이론의 타당성을 또한 새로운 이론에 맞추어 점검해 볼 수 있으므로, 과학이라는 이름을 쓰고는 있다. 이와 같은 성격의 차이점을 고려하여, 미국 Dallas 신학교의 Norman Geisler 교수는 기원의 문제를 연구하는 과학을 ‘기원과학 (origin science)’으로, 그리고 우리에게 생활의 편리함을 느끼도록 문명의 혜택을 제공해 주는 일반과학을 ‘기능과학 (operation science)’이라는 이름으로 구별하여 부를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여기서는 편의상 ‘기원과학’과 ‘실험과학’이라고 구분하여 부르기로 한다.   결국, 기원과학은 실험과학과는 달리 실험적으로 증명될 수 없으며, 따라서, 기원의 문제는 과학적 연구의 전유물이 될 수 없고, 과학은 단지 그 이해를 돕는 한 방편이 될 뿐이다. 따라서 진화론자가 무슨 ‘과학적’ 주장을 하더라도 그 배후에 들어 있는 본질적인 문제 접근의 해결 방식의 한계성으로 말미암아 그것은 실험과학과 같은 권위를 갖기는 어렵다. 물론 이것은 창조론자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학적으로 기원에 관한 문제를 절대 ‘증명’하려 드는 것이 아니라, 단지 ‘증거’를 논할 수 있을 뿐임을 십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주를 말씀으로 창조하시었다고 선포한다. 과학의 눈으로 보아도 우주의 기원을 창조주에게서 발견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결론이다. 정직한 과학은 성경과 모순이 없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을 도저히 우리들이 변명할 수 없도록 분명히 보이게 하며 깨달아 알게 하고 있으니 (롬 1:20),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가 과학을 공부하고 피조세계를 알아간다는 것은 참 흥미로운 일이다. 기원과학적인 접근을 통해서도 우주와 인간의 기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올 수 밖에 없음을 깨달아 발견할 수 있음이 하나의 커다란 감격이 될 뿐만 아니라, 실험과학의 영역에서 발견되는 세세한 과학적 사실들을 통하여도 남다른 즐거움을 얻게 된다. 과학을 모르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모양으로, 어떤 성질로, 그리고 어떤 기전으로 그것들을 움직이게 만드셨는지를 알 수 있는 특권은 과학적 통찰을 통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고 모르고가 구원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일단 하나님을 가까이 알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솜씨를 같이 느끼며 가까이서 대화하는 것 같아서 얼마나 재미가 있는지 모른다. 우리 하나님이야말로 최고의 ‘과학자’가 아니신가~!   과학은 분명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다. 물론 그것은 말씀에 기초한 바른 신앙 안에서 발견되고 사용되어져 갈 때에 한하여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세계의 법칙을 드러내주는 과학적 발견들을 통하여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채우고 정복해 갈 뿐만 아니라 (창 1:28),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도구로 그것들을 사용할 수 있다면, 어찌 이 또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 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02:3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3-22 17:54:05 | 김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