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제국.
이 이름은 이 지역에 정착한 셈의 둘째 아들 앗수르에서 나왔다(창10:22). 성경에서 아시리아는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아시리아 제국 지도 참조(34).
I. 본래의 아시리아.
이것은 티그리스 강 동쪽에 아르메니아와 수시아나 그리고 메대의 중간에 놓인 왕국으로 고대에 여섯 개의 지방을 포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의 수도는 가장 비옥하고 좋은 곳에 위치한 니느웨였으며 따라서 아시리아는 좁은 의미에서 니느웨가 속한 지방을 뜻했다.
II. 대개 아시리아는 바빌론과 메소포타미아를 포함하고 유프라테스까지 뻗어나간 아시리아 왕국을 의미했다.
이사야 대언자는 이 왕국을 사용하여 대언의 말씀을 전하였다(사7:20; 8:7).
III. 아시리아 제국이 무너진 후에 이 이름은 그 전에 아시리아의 통치를 받던 나라들에게 적용되었다.
(a) 바빌론(왕하23:29; 렘2:18), (b) 페르시아(스6:22, 여기서 다리오는 아시리아의 왕이라 불린다).
고대 아시리아의 역사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성경을 통해 이 나라가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이스라엘은 재판관들의 시대에 이 나라의 왕들 중 하나에 의해 정복을 당했고 왕들의 시대에 이 나라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아시리아 왕 불은 므나헴의 통치 기간에 이스라엘을 침범했고 디글랏빌레셀은 아하스를 도와 북쪽의 열 지파와 연합한 시리아 군대를 치게 하였다. 한편 살만에셀은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호세아를 정복하고 그를 봉신으로 삼아 해마다 조공을 바치게 하였지만 호세아는 이 멍에를 벗기 위해 이집트와 연합해서 조공 바치기를 거부했다. 호세아의 계략을 눈치 챈 살만에셀은 다시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사마리아를 멸하고 왕에게 족쇄를 씌우고 그 땅의 백성을 메대로 이주시키면서 북 왕국 이스라엘의 막을 내렸다. 한편 요르단 동쪽에 있던 세 지파는 디글랏빌레셀이 유다의 아하스를 돕기 위해 이스라엘을 침략할 때 이미 포로로 사로잡혀 메대로 끌려갔다. 아시리아의 산헤립은 큰 군대와 함께 히스기야 시대에 유다를 공격했지만 기적적으로 참패를 당하게 되었다. 그의 아들 에살핫돈은 므낫세 왕 시대에 유다를 초토화시켰고 주요 인사들을 묶어서 바빌론으로 데려갔다. 이후에 아시리아는 급격하게 세력을 잃게 되어 마지막 황제인 사르단팔루스 때에 메대 왕국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민24:22).
이곳의 수도는 유명한 니느웨였다. 니느웨 참조.
2009-07-10 01:53:07 | 관리자
느부갓네살의 내시들의 우두머리.
그는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맡았으며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다(단1:3-18).
2009-07-10 01:52:10 | 관리자
창14:5에 나오는 한 지역의 이름.
이곳은 요르단 너머의 바산 왕 옥이 소유한 도시로서 단순히 아스다롯이라 불리기도 하였다(신1:4). 이 이름은 초승달이나 뿔들을 지닌 모습으로 우상화된 아스타르테(아스다롯) 여신에서 유래되었다. 가나안 정복 후 이곳은 레위 사람들의 도시로 므낫세 반 지파의 경계 안에 있었고(수13:31; 대상6:71) 또 브에스드라라 불리기도 하였다(수21:27).
2009-07-10 01:51:45 | 관리자
블레셋의 다섯 개 주요 도시 중 하나.
이곳은 유다에게 지정되었으니 그들은 그곳을 정복하지 못했다(수13:3; 15:47; 삼상5:1; 6:17; 느4:7). 여기에 다곤의 전이 있었으며 에벤에셀에서의 싸움 이후에 여기로 하나님의 궤가 들어왔다(삼상5:1). 그리스 사람들은 이곳을 아소도라 불렀으며 그리스도 시대에 이곳은 유대에 속했다. 여기서 전도자 빌립은 복음을 선포했다(행8:40). 아소도 참조.
2009-07-10 01:51:13 | 관리자
페니키아 사람들이 숭배하던 여신(왕하23:13).
그리스 사람들은 이 여신을 아스타르테라고 불렀으며 이스라엘과 블레셋에도 이 여신을 숭배하는 것이 도입되었는데(왕상11:5, 33; 삼상7:3; 31:10) 보통 이 여신은 바알과 함께 언급된다(삿2:13; 10:6; 삼상7:4; 12:10). 아스다롯 여신 숭배에는 음탕한 행위가 동반되었으며 남자들 중에서 몸을 파는 자들과 창녀 등이 이 여신을 위해 거룩히 구분된 것으로 여겨졌다(왕하23:7; 참조 레19:29; 신23:18). 동방의 신화에서 바알이나 벨이 남성으로 재물의 별이나 주피터를 의미하듯이 아스다롯은 여성으로서 재물의 별이나 비너스를 의미했다. 또한 바알은 태양신을, 아스다롯은 달 신을 의미했다. 바알 참조(렘7:18; 11:13; 44:17-18; 겔16:1-63). 하늘의 여왕 참조.
2009-07-10 01:50:49 | 관리자
이집트의 도시 온의 제사장 보디발의 딸.
파라오는 그녀를 요셉에게 주어 그의 직무에 영광과 존귀를 더해 주었으며 그녀는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낳았다(창41:45; 46:20).
2009-07-10 01:50:23 | 관리자
아시리아 왕.
그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열 지파의 땅에 유프라테스 너머에 살던 사람들을 이주시켰다(왕하17:24; 스4:10). 후자의 말씀에서 에스라는 그를 ‘위대하고 존귀한 자’라고 묘사했다.
2009-07-10 01:49:54 | 관리자
블레셋의 도시.
이곳은 아스돗과 가자 사이의 지중해 연안 도시였다.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에 유다가 이곳을 점령했지만 그 뒤 이곳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속한 다섯 개의 주요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삿1:18; 삼상6:17). 스가랴 대언자의 말씀 즉 “가자에서는 왕이 사라지고 아스글론에는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리라.”(슥9:5)는 예언에 따라 여기에는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다.
2009-07-10 01:49:29 | 관리자
고멜의 아들, 야벳의 손자(창10:3).
그의 후손이 살던 지역도 아르메니아의 민니와 아라랏과 함께 같은 이름으로 불렸는데(렘51:27) 아마도 이곳은 흑해 쪽을 향한 지역일 것이다.
2009-07-10 01:49:06 | 관리자
집합체. ‘아수빔의 집’(대상26:15)은 성전과 관계된 저장고였을 것이다.
2009-07-10 01:48:38 | 관리자
전도자 빌립이 사막에서 이집트 내시에게 복음을 선포한 뒤 성령님께서는 그를 들어 올려서 기적적으로 아소도로 데려가셨다(행8:39-40). 아스돗 참조.
2009-07-10 01:48:13 | 관리자
야곱의 여덟 번째 아들.
그는 실바의 둘째 아들이었다(창30:13; 35:26). 가나안에 들어갈 때 아셀 지파는 순서 상 다섯 번째였으며 그 수는 53,500명이었다. 아셀의 몫은 해안을 따라 있었으며 북쪽에는 레바논과 시돈, 남쪽에는 갈멜과 잇사갈 지파, 동쪽에는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를 경계로 두었고 그들의 땅은 곡식, 포도즙, 기름, 광물 등이 풍부하였다(창49:20; 신33:24-25).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아셀 지파 지도 참조(19, 26). 이들의 영토에 페니키아의 해안이 얼마나 포함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수19:25, 28) 아셀 지파 사람들은 가나안 족속을 정복하지 못했고 부분적으로 그들 가운데 살았다(삿1:31-32). 그들은 다윗과 히스기야 왕의 역사에서 명예롭게 기록되어 있다(대상12:36; 대하30:11).
2009-07-10 01:47:46 | 관리자
작은 숲 참조.
2009-07-10 01:47:17 | 관리자
유다에게 속한 고을.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23킬로미터 남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여호수아와 사울의 이야기에 나온다(수10:10; 삼상17:1). 느부갓네살이 이곳을 점령했으나(렘34:7) 나중에 포로생활 이후에 유대인들이 다시 여기에 거하게 되었다(느11:30).
2009-07-10 01:46:55 | 관리자
I. 다윗 시대의 음악가.
그는 성전 음악을 인도한 사람이며(대상16:5; 25:1-2) 이런 책무는 그의 가족 중에서 대대로 이어진 것 같다(느7:44; 11:22). 그는 또한 선견자라 불리기도 했으며(대하29:30) 그의 이름은 열두 편의 시편에 기록되어 있다(50, 73-83편). 음악 참조.
II. 히스기야 왕의 기록관(왕하18:18; 사36:3).
III. 아닥사스다 밑에서 삼림 관리를 맡은 사람(느2:8).
2009-07-10 01:46:21 | 관리자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아들.
그는 요압의 동생으로 다윗의 서른 용사 중 하나였으며 발이 날랜 사람이었으나 기브온에서의 싸움에서 아브넬에게 죽임을 당했다(삼하2:18-23).
2009-07-10 01:45:48 | 관리자
유다의 왕(왕하15:1-7).
그는 대하26:1-23 등에서 웃시야라고도 불린다. 그는 주전 806년경에 16세에 통치를 시작했으며 그의 통치 전반부는 좋았다. 그러나 후에 그는 스스로 성전에서 향을 드리려 하다가 나병에 걸려서 죽을 때까지 나병 환자로 지냈다(대하26:16-23). 이 이름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흔한 이름이었으며 성경에도 여러 사람이 나온다.
2009-07-10 01:45:17 | 관리자
솔로몬 이후의 유다의 세 번째 왕.
그는 아비얌의 뒤를 이어 주전 951년경부터 41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였다(왕상15:8). 그의 통치 전반부는 평화스러웠고 그는 여러 면에서 형통했다. 그는 순수하게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회복시켰으며 거짓 신들을 섬기고 남색 하는 자들을 내쫓았으며 우상숭배와 관련된 더러운 것들을 예루살렘에서 추방하고 자기 어머니가 작은 숲에 우상을 만들어 우상을 섬기자 그녀에게서 왕비의 직위를 박탈했다. 그의 통치 제11년에 하나님은 이디오피아 왕 세라의 큰 군대를 물리치고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대언자 아사랴는 계속해서 개혁을 하라고 격려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이 이 일을 방해하자 그는 하나님에게서 도움을 구하지 않고 시리아에게서 도움을 구했다. 그의 생애의 끝부분에 그는 발에 병이 있었고 성경은 그가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의원들만을 의지했다고 기록하면서 그를 꾸짖었다(대하16:1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통치는 전반적으로 행복한 통치였으며 유다 사람들은 이를 기뻐했다. 성경은 그가 경건하게 행했다고 여러 차례 말한다(왕상22:43; 대하20:32; 21:12). 그의 장례식은 거창하게 치러졌다. 그는 평생토록 바아사와 갈등을 가지고 살았다(왕상15:6, 16).
2009-07-10 01:44:46 | 관리자
유대인들의 종교력에서 정월.
이 달은 지금의 태양력에서 4월경에 해당되며 ‘아빕’이라는 말 자체는 곡식의 녹색 이삭 혹은 갓 나온 과실을 의미한다. 4월경에 보리가 이삭을 내므로 그 달의 이름이 이렇게 불린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들은 아빕 월 10일에 유월절 어린양을 구별하여 14일 저녁에 죽이고 바로 그 저녁에 그것을 먹었으며 15일부터 21일까지 이레 동안 무교절을 지켰다(출12:1-51; 13:1-22). 이것은 후에 니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달, 유월절 참조.
2009-07-10 01:44:16 | 관리자
동쪽 레바논의 동부 경사 지역에 위치한 지역.
이곳은 다마스커스에서 헬리오폴리스쪽으로 20-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 지역의 이름 자체는 ‘아빌라’라는 도시에서 파생되었고 다른 것들과 구분하기 위해 ‘루사니아의 아빌레네’라 불렸다. 로마의 황제 티베리우스 통치 제15년에 이 지역은 루사니아라는 사분영주가 치리했다(눅3:1). 사분영주 참조.
2009-07-10 01:43:49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