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무엇을 주셨나요?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요한일서 4장 13절이 이상하다고 하여 잠시 답을 드립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영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이로써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4:13).
Hereby know we that we dwell in him, and he in us, because he hath given us of his Spirit.
질문은 “그분께서 자신의 영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셨으므로”에 대한 것이며 초점은 하나님이 무엇을 주셨는지 목적어가 없다는 것입니다.
네, 맞습니다. 이 구절에는 목적어가 없습니다.
그러면 영어는 어떤가요?영어에도 “because he hath given us of his Spirit.” 목적어가 없습니다.
이것을 “그분께서 자신의 영을 우리에게 주셨다”로 번역하면 안 됩니다 그러려면 영어 ‘of his Spirit’에서 ‘of’를 빼내야 하는데 원어에도 ‘of’가 들어 있으므로 빼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생략된 목적어는 성령님의 은혜, 영향력, 열매, 은사(선물) 등 그분의 영이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또한 7절 이후부터 보면 그분의 영이 주신 것 중 하나가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는 줄 압니다.
주님의 큰 평안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7-07-26 10:54:07 | 관리자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인가요?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자기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확실히 믿지만,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냐고 누가 물으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기에 간단히 답을 드립니다.
답: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아주 간단한 예를 두 개만 들겠습니다.
1. 이사야서 6장 1-13절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또한 내가 보니 [주]께서 높이 들린 왕좌에 앉으셨는데 그분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고 2 그것 위에는 스랍들이 저마다 여섯 날개를 가진 채 서 있더라. 그가 두 날개로는 자기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자기 발을 가리며 두 날개로는 날더라. 3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외쳐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그 외치는 자의 음성으로 인해 문기둥들이 흔들리며 그 집이 연기로 가득하더라. 여기서 이사야는 [주](Lord) 즉 여호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이사야가 자기의 부정한 상태를 고백하자 주님은 그를 정결하게 해 주셨습니다(5-8절).
그리고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9 ¶ 그분[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말하기를, 참으로 너희가 듣되 깨닫지 못하고 참으로 너희가 보되 알지 못하느니라, 하며 10 이 백성의 마음을 우둔하게 하고 그들의 귀를 둔하게 하며 그들의 눈을 닫을지니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기에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매 그분께서 대답하시되, 도시들이 피폐하게 되어 거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땅은 완전히 황폐하게 되며 12 또 {주}가 사람들을 멀리 옮겨서 이 땅 한가운데에 버림당하는 일이 심히 많을 때까지니라.
12절의 {주}(LORD)와 1-11절의 [주](Lord)는 같은 분입니다.
이 구절들에는 신약 성경에 자주 언급되는 매우 유명한 구절이 나옵니다.
9 ¶ 그분[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말하기를, 참으로 너희가 듣되 깨닫지 못하고 참으로 너희가 보되 알지 못하느니라, 하며 10 이 백성의 마음을 우둔하게 하고 그들의 귀를 둔하게 하며 그들의 눈을 닫을지니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기에
자, 이에 대해 우리 주 예수님은 수난 당하기 1주일 전 쯤에 요한복음 12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37 ¶ 그러나 그분[예수님]께서 이렇게 많은 기적들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여전히 그분을 믿지 아니하였으니 38 이것은 대언자 이사야의 말씀이 성취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말하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39 그러므로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하였으니 그 까닭은 이사야가 다시 말하였기 때문이라. 이르되, 40 그분께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으니 이것은 그들이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더라. 41 이것들은 이사야가 그분[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에 대해 말하였을 때에 이른 것이더라. 39-40절에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한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들은 바로 이사야서 6장 9-10절입니다.
여기서 41절은 참으로 굉장한 이야기를 보여 줍니다.
사도 요한은 39-40절이 이사야가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에 대해 말한 것이라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구약의 이사야는 그 당시 누구를 보았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그분이 곧 예수님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구절은 신구약의 여러 군데에서 발견됩니다.
예수님은 재림 시에 올리브 산에 오실 것입니다. 행1:11-12를 보기 바랍니다. 11 또 그들이 이르되,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바라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니라. 12 그때에 그들이 올리벳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안식일에도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더라.
스가랴서 14장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강림이 기록되어 있습ㄴ다.
1 보라, {주}의 날이 이르리니 사람들이 네게서 노략한 물건들을 네 한가운데서 나누리라. 2 내가 모든 민족들을 모아 예루살렘을 대적하여 전쟁하게 하리니 그런즉 그 도시가 함락되며 집들이 강탈을 당하고 여인들이 강간을 당하며 그 도시의 반이 포로가 되려니와 백성의 남은 자들은 그 도시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3 그때에 {주}께서 나아가사 그 민족들과 싸우시되 전에 전쟁의 날에 싸우신 것 같이 하시리라. 4 ¶ 그 날에 그분의 발이 예루살렘 앞 동쪽에 있는 올리브 산 위에 설 것이요, 올리브 산이 거기의 한가운데서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지므로 심히 큰 골짜기가 생길 것이며 그 산의 반은 북쪽으로, 그 산의 반은 남쪽으로 이동하리라.
4절을 보면 {주}(LORD) 곧 여호와 하나님이 올리브 산에 강림하시며 주의 날(재림)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과 비교해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여러 구절들을 모아서 교리를 만드는 것을 우리는 조직 신학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큰 평안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7-07-26 10:36:09 | 관리자
안녕하세요?
성경 번역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원어, 영어의 많은 단어들이 복수의 뜻을 가진 경우가 많아 기계적인 번역이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성경 전체가 말하는 바는, 우리의 구원이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이 오직 우리 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거기서 그분께서 흘려주신 고귀한 피를 믿는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부활 믿음도 추가될 수 있으나 요점은 우리의 구원이 사람의 행위와 100% 전혀 상관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예배 출석, 새벽기도, 철야, 헌금, 구제, 선교, 전도, 침례(세례), 주의 만찬(성만찬) 같은 사람의 행위가 전혀 우리의 구원에 일조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이런 것들은 구원받은 이후에 주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자발적으로 하는 것들이며,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이에 대한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은 이것을 잘 보여 줍니다. 8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0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디도서 3장 역시 이를 잘 보여 줍니다.
3 우리도 한때는 어리석고 불순종하며 속임을 당하고 여러 가지 정욕과 쾌락을 섬기며 악의와 시기 가운데 살고 증오하며 서로 미워하였으나 4 사람을 향한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의 친절과 사랑이 나타난 뒤에 5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 6 예수 그리스도 곧 우리의 [구원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 주셨으니 7 이것은 우리가 그분의 은혜로 의롭게 되어 영원한 생명의 소망에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데 성경에는 마치 침례 같은 행위가 사람의 구원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구절이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교파/교단은 이런 구절을 사용해서 반드시 물 침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미국의 캠벨파 그리스도의 교회).
이런 분들이 이를 위해 사용하는 구절은 사도행전 2장 38절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베드로의 말만 떼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여기서 뒷부분만 보면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받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물 침례가 구원의 수단 혹은 구원에 일조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신약성경의 전체적인 구원관과 전적으로 배치됩니다.
베드로의 말을 다시 보겠습니다.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여기서 중간에 들어 있는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를 빼 보면 어떨까요?
“회개하여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이렇게 하면 말이 됩니다. 참된 회개와 믿음은 항상 같이 다니므로 믿음으로 회개하여 죄들의 사면을 받는 것은 신약성경의 구원관과 일치합니다.
실제로 그리스어 구조를 보면 “회개하라”가 주동사로 되어 있고 “침례를 받아”는 보조동사로 되어 있으므로 죄들의 사면이 “회개하라”에 걸려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데가 여기만 있을까요? 아닙니다. 적어도 두 군데가 더 있습니다.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으려니와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막16:16).
여기도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맨 앞에 “믿고”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간에 침례를 받는다는 것은 구원 받는 믿음 이후의 일이지 ‘믿는 것’과 ‘침례를 받는 것’, 이 두 가지가 구원의 조건이 아님을 누구라도 알 수 있습니다.
바울과 관련된 구절을 보겠습니다. 아나니야의 말입니다. 이제 네가 왜 주저하느냐? [주]의 이름을 부르며 일어나 침례를 받고 네 죄들을 씻어 버리라, 하더라(행22;16).
여기도 뒷부분만 보면 침례를 받아 죄들을 씻는 것으로 오해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맨 앞에 “[주]의 이름을 부르며”라는 주요 조건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부르면 그는 구원을 받습니다. 여기에는 믿음과 회개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도 중간에 낀 “일어나 침례를 받고”를 빼면 자연히 말이 됩니다.
이런 구절들을 대하면서 신약성경의 구원관이라는 차원에서 전체 문맥에 맞게 이해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 행2:38을 오역이라고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므로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회개하고 죄들의 사면으로 인해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이것을 얼핏 보면 침례교 교리에 맞는 것 같지만 그리스말이나 영어의 구조와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for the remission of sins’라는 말은 다른 데서 모두 “죄들의 사면을 위해”로 번역되었습니다. 이것을 그런 식으로 하려면 다음처럼 해야 더 정직한 것입니다.
죄들의 사면으로 인해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러나 이렇게 하면 구원 교리가 깨지므로 안 됩니다. 회개하지도 않았는데 죄들의 사면이 있다고 하면 말이 안 됩니다.
가장 좋은 길은 그리스말, 영어 등에 있는 것처럼, 지금 흠정역 번역처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번역하고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구절을 가지고 물 침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누가 주장하면 설명해 주고 그래도 믿지 않으면 벗어나면 됩니다. 우리는 어떤 특정 교리나 교파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문맥에 벗어나게 번역하는 일은 결코 할 수 없습니다.
위의 세 가지 예를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큰 평안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7-06-22 13:03:12 | 관리자
안녕하세요?
수원 기쁨침례교회의 한 형제님께서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을 요약한 사복음서 하모니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자료라고 생각되어 알려드립니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6399
샬롬
패스터
2017-06-08 16:44:25 | 관리자
안녕하세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이며 이를 조금 더 풀면 즉 지나침은 부족함과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예 1: 영어습득과 학습적응에서 유학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는 믿음에 갓 초등학생에 입학한 어린아이까지 머나 먼 유학길에 오르더니 이젠 태아들도 덩달아 유학(?)을 떠나고 있다. 실로 ‘과유불급’이다.
예 2: 아무리 학생들의 사기를 높여주는 뜻이라 해도 지나친 칭찬은 자제하십시오. 과유불급입니다.
이런 종류의 과유불급의 예가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발견됩니다.
우리 성경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성경의 모든 단어를 영감으로 주시고 섭리로 보존해 주셨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경 무오성이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 기록의 대언은 결코 어떤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아니하였나니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자기들을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벧후1:20-21).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모든 단어들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지나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보다 더 위에 두면 과유불급이 됩니다.
이런 종류의 과유불급을 유발하게 하는 유명한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편 138편 2절입니다.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보다 더 크다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주의 거룩한 전을 향해 경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진리로 인하여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니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로 크게 하셨나이다(시138:2).
I will worship toward thy holy temple, and praise thy name for thy lovingkindness and for thy truth: for thou hast magnified thy word above all thy name.
이것을 아무 생각 없이 읽고 또 말씀을 높이려는 선한 의도를 지닌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들으면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하나님의 모든 이름 위로 크게 만드셨다고 이해하게 됩니다.
물론 이들이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이름은 구약의 여호와나 신약의 예수입니다. 그 결과 이들은 성경의 모든 단어들 혹은 성경 자체가 여호와 하나님보다 혹은 예수님보다 크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해석과 결론이 이렇게 나면 이것은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말씀을 해석하였다고 해도 심각한 과유불급입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근본주의자들이 이런 예를 사용하곤 합니다.
일단 이것은 말이 안 됩니다. 문장의 구조를 보기 바랍니다.
말씀을 이름보다 위로 더 크게 만든 분이 있으니 당연히 그분은 말씀과 이름보다 크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하나님 지체보가 더 크다는 것은 문장 자체가 허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하나님과 동일하게 놓거나 그 이상으로 놓는 것은 과유불급이요, 합당한 해석이나 처사가 아닙니다.
자, 그러면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로 크게 하셨나이다’의 뜻은 무엇일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이름의 용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름은 어떤 존재를 다른 존재에게 알리는 데 사용되는 수단입니다. 예를 들어 정동수라는 이름을 말하면 저의 모든 것(집안, 학력, 직업, 가족 관계, 행한 일, 하고 있는 일, 성품)이 이름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138:2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것과 그분의 성품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삼하8:13을 봅시다.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시리아 사람 만 팔천 명을 치고 돌아올 때에 이름을 떨치니라.
이럴 때 다윗의 이름은 그가 소금 골짜기에서 시리아 사람 만 팔천 명을 치고 승리한 후 얻은 명성을 뜻합니다. 성경에는 이런 식으로 이름이 사용된 예가 많습니다.
다음 예는 이름이 주님의 성품 즉 거룩한 성품을 표현한 것입니다.
높고 높으며 영원에 거주하고 이름이 거룩함인 이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겸손한 영을 지닌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것은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들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사57:15).
For thus saith the high and lofty One that inhabiteth eternity, whose name is Holy;
그러므로 시편 138편 2절은 다음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해 또 인류를 향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계시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자신에 대해 알리고자 했던 모든 현현, 발표, 행위, 자신의 성품보다 명확성과 중요성 등에서 훨씬 더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창조 세상이나 여러 가지 기적들도 다 주님의 이름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 그분의 완벽함에 대해, 그분의 목적에 대해 성경보다 더 확실하게 드러내 주는 것이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을 시편 19편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1 하늘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고 궁창이 그분의 손으로 행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낮은 낮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보이니 3 그것들의 음성이 들리지 않은 말이나 언어가 없도다. 4 그것들의 줄이 온 땅에 두루 나갔고 그것들의 말들이 세상 끝까지 이르렀도다. 그분께서 해를 위하여 하늘들 안에 장막을 세우셨으므로 5 해는 자기 침소에서 나오는 신랑 같고 경주하려는 힘센 자 같이 기뻐하는도다. 6 해가 하늘 끝에서부터 나아가며 그것의 순환 회로는 하늘 끝들에까지 이르나니 해의 열기에서 숨을 것이 없도다.
7 {주}의 율법은 완전하여 혼을 회심시키고 {주}의 증언은 확실하여 단순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주}의 법규들은 올발라서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의 명령은 순수하여 눈을 밝게 하는도다. 9 {주}의 두려움은 깨끗하여 영원토록 지속되고 {주}의 판단들은 진실하고 전적으로 의로우니 10 그것들은 금보다, 참으로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해야 할 것들이며 또 꿀과 벌집보다 더 달도다. 11 주의 종이 또한 그것들로 경고를 받나니 그것들을 지킬 때에 큰 보상이 있나이다.
12 누가 능히 자기 잘못들을 깨달으리요? 주께서는 은밀한 허물에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13 또 주의 종을 지키사 고의로 짓는 죄들에서 떠나게 하시고 그 죄들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곧바르게 되어 큰 범법에서 벗어나 무죄하리이다. 14 오 나의 힘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주}여, 내 입의 말들과 내 마음의 묵상이 주의 눈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1-6절은 창조 세상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 즉 그분의 이름입니다.
7-11절은 하나님의 말씀들이며 이 구절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들이 창조 세상보다 큼을 보여 줍니다. 사람의 혼을 회심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실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그 결과가 12-14절입니다.
시편 138편은 특히 하나님께서 다윗의 혈통을 메시아 혈통으로 삼고 그의 왕좌를 메시아 왕좌로 삼으실 것에 대해 다윗이 감사의 찬송을 드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삼하7 참조).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모든 것 즉 그분의 이름을 드러내는 모든 것보다 그분의 메시아 왕국에 대한 말씀이라는 계시가 더 크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138:2에서 기초는 하나님의 이름 즉 하나님의 모든 명성과 성품이고 그 기초 위에 놓인 것은 즉 약속의 말씀을 그분께서 친히 지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말한 시138:2의 의미입니다.
여기의 이름은 예수나 여호와가 아니고 여기의 말씀은 성경책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심각한 과유불급이 됩니다.
샬롬
패스터
2017-05-31 16:25:12 | 관리자
안녕하세요?
시편 49편 5절에는 조금 이상한 말이 있습니다.
5 내 발꿈치의 불법이 나를 에워쌀 그 악한 때에 내가 어찌하여 두려워하랴?
Psalm 49:5 Wherefore should I fear in the days of evil, when the iniquity of my heels shall compass me about?
다른 성경들은 이것을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개정: 죄악이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에워싸는 환난의 날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바른: 나를 속이는 자의 악이 나를 둘러쌀 때에 어찌 내가 재앙의 날들을 두려워하랴?
공동: 악을 꾸미는 자들이 나를 뒤쫓고 노려보아도 이 곤경에서 나 어찌 두려워하리.
킹제임스 성경은 히브리어 성경에 있는 대로 발꿈치(스트롱 번호 6120)를 그대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직역해 놓으니 조금 이상하지 않느냐고 묻는 분이 있어 글을 씁니다.
일단 1-5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너희 모든 백성들아, 이것을 들으라. 세상의 모든 거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이라. 2 낮은 자나 높은 자나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함께 들을지어다. 3 내 입이 지혜를 말하리니 내 마음의 묵상은 깨달음에서 나리로다. 4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하프를 타며 나의 은밀한 말을 열리로다. 5 내 발꿈치의 불법이 나를 에워쌀 그 악한 때에 내가 어찌하여 두려워하랴?
먼저 요약을 하고 설명하겠습니다.
요약: 하나님 앞에서 내 죄들이 처리된 이후에 성도는 다시는 그것들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15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5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혼을 무덤의 권능에서 구속하시리니 그분께서 나를 받아 주시리로다. 셀라.
중요 단어: 불법(iniquity, 즉 내가 부당하게 행한 것), 발꿈치: 발의 뒷부분
설명: 내가 불법을 저지른 뒤 거기서 도망가면 내 불법은 내 뒤에(발꿈치) 있습니다. 그럼에도 내 죄들은 어느 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나를 찾아낼 것입니다. 내가 뒤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 내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5절의 compass라는 단어의 뜻) 나를 에워쌌고 나는 과거의 죄들에 의해 에워싸이게 되었으므로 그 죄들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1-2절에 있듯이 이 일은 모든 사람에게 일어납니다.3-4절 역시 같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즉 우리는 우리의 죄들이 우리 뒤에 있고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내(시편 기자) 비유 혹은 가르침은 그것이 틀림을 입증합니다. 모든 사람은 다시 자기 죄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내가 이 죄들을 대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 모두는 다 이 죄들을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이 죄들을 다 해결하였습니다.
49편 5절: 내가 그날이 오는 것을 두려워해야만 할까요?49편 6-11절: 이 세상의 재물 등은 이것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49편 15절: 오직 하나님께서 내 혼을 구속하실 것입니다.49편 16절: 그러므로 재물이 많은 부자들이 심판 날에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잠언 11장 4절을 보기 바랍니다.
재물은 진노의 날에 유익을 끼치지 못하나 의는 사망에서 건지느니라.
이런 것을 기억하면서 시편 49편을 쭉 읽어 보기 바랍니다. 특별히 발꿈치의 불법이 우리를 에워쌀 때에도 주님이 우리의 변호자가 되심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큰 평안이 있을 줄 믿습니다.
샬롬
패스터
시편 49편
1 너희 모든 백성들아, 이것을 들으라. 세상의 모든 거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이라. 2 낮은 자나 높은 자나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함께 들을지어다. 3 내 입이 지혜를 말하리니 내 마음의 묵상은 깨달음에서 나리로다. 4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하프를 타며 나의 은밀한 말을 열리로다.
5 내 발꿈치의 불법이 나를 에워쌀 그 악한 때에 내가 어찌하여 두려워하랴?
6 자기 재물을 신뢰하고 자기의 많은 부를 자랑하는 자들 중에 7 어떤 방법으로든 자기 형제를 구속하거나 그를 위해 [하나님]께 대속물을 바쳐서 8 (그들의 혼을 구속하는 일은 귀중하며 그것은 영원토록 멈추어 있도다.) 9 그가 여전히 영원토록 살게 하며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할 자는 아무도 없도다.
10 지혜로운 자들이 죽고 어리석은 자와 짐승 같은 자도 그와 같이 멸망하여 자기 재물을 남들에게 남기는 것을 그가 보는도다. 11 그들은 속으로 자기들의 집은 영원히 지속되며 자기들의 거처는 모든 세대에 이를 줄로 생각하는도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기들의 이름을 따라 자기들의 땅을 부르는도다. 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귀함 가운데 거하는 사람이 계속 머무르지 못하나니 그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도다. 13 이처럼 그들의 길이 곧 그들의 어리석은 일이로되 그들의 후손은 여전히 그들의 말에 찬동하는도다. 셀라. 14 그들이 양같이 무덤에 놓였은즉 사망이 그들을 먹을 것이요, 곧바른 자들이 아침에 그들을 지배하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이 그들의 거처를 떠나 무덤에서 소멸되리로다.
15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혼을 무덤의 권능에서 구속하시리니 그분께서 나를 받아 주시리로다. 셀라.
16 사람이 부하게 되고 그의 집의 영광이 늘어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17 그가 죽을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며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하리라. 18 그가 비록 살면서 자기 혼을 축복하였을지라도 네가 네 자신에게 잘 행하면 사람들이 너를 칭찬하리로다. 19 그가 자기 조상들의 세대에게로 가리니 그들이 결코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20 존귀함 가운데 거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도다.
2017-05-23 14:24:48 | 관리자
안녕하세요?
2017년 고난 주간에는 우리 주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깊이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글과 성경 구절을 읽고 맨 밑의 애니메이션을 보기 바랍니다.
십자가 고통의 의미; 세 개의 못과 망치 소리
1. 못의 길이 18센티미터2. 망치로 중추 신경이 지나가는 손목 부근, 복숭아 뼈 아래에 못을 박음3. 몸무게에 의해 팔은 15센티미터 늘어나고 어깨는 탈구됨, 팔에 힘이 빠지고 고통과 경련, 호흡 곤란
“그때 그 무리들이 예수님 못 박았네, 녹슨 세 개의 그 못으로, 망치소리 내 맘을 울리면서 들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4. 그 날 그들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처형함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다만 우리는 신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감추어진 지혜를 말하노니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상 통치자들 중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였으니 만일 그들이 그것을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2:7-8).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가서 [하나님]의 증언을 너희에게 밝히 말할 때에 말이나 지혜의 뛰어난 것을 가지고 나아가지 아니하였나니 나는 너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느니라(고전2:1-2).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갈2:20).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그러나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어떤 것도 자랑할 수 없나니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있고 나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이를 위해 간단한 애니메이션을 링크합니다.내려치는 망치 소리와 함께 주님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The Crucifixion of Christ
http://www.gieson.com/Library/projects/animations/walk/walk_korean.html
2017-03-27 11:11:33 | 관리자
안녕하세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보면 같거나 비슷한 부분들이 책마다 기록되어 있습니다.영어에서는 이런 부분들을 맞추는 것을 보통 Harmony라고 부릅니다. 구글로 가서 Harmony of Gospels라고 치면 여러 사람이 만들어 놓은 하모니가 나옵니다. 대개는 마태복음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인생을 연대기적으로 기록한 하모니가 많습니다. 제가 찾아보니 한 분이 아주 편하게 테이블로 이런 하모니를 만들어 놓았기에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신약성경을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참조하세요. 또 다른 사람의 링크도 있으니 참조하세요.
http://www.lifeofchrist.com/life/harmony/
샬롬
패스터
2017-03-08 15:24:45 | 관리자
안녕하세요?
구약성경 사무엘기, 열왕기, 역대기를 보면 같거나 비슷한 부분들이 책마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어에서는 이런 부분들을 맞추는 것을 보통 Harmony라고 부릅니다.
구글로 가서 Harmony of Samuel, Kings and Chronicles라고 타이핑을 치면 여러 사람이 만들어 놓은 하모니가 나옵니다.
제가 찾아보니 한 분이 아주 편하게 테이블로 이런 하모니를 만들어 놓았기에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구약성경을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참조하세요.
샬롬
패스터
2017-03-08 15:07:25 | 관리자
출2:18의 르우엘과 민10:29의 라구엘은 같은 이름입니다. 히브리어로 רְעוּאֵ֣ל 동일한데, 민수기의 라구엘은 영어로 번역하는데서 르우엘(출2:18의 사람 이름과 같음)을 라구엘로 번역한 것입니다. 두 단어 모두 strong number 7467로 같습니다. 역대상1:35절의 르우엘과도 정확히 동일한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참고하시기바랍니다.
2017-02-07 11:29:45 | 황규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주번역자인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입니다.
오늘은 한 분이 앗수르와 아시리아에 대해 문의하기에 간단히 답을 드립니다.
http://cafe.naver.com/kjbtruth/122
샬롬
패스터
2017-01-17 07:21:25 | 관리자
안녕하세요?
지옥에 대하여 알기 원하는 분들은 참조하기 바랍니다.
실존하는 지옥과 그곳의 위치http://cafe.naver.com/kjbtruth/102
또한 매일 묵상의 글을 킹흠사모 카페에 올리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따르고 싶은 리더의 조건 01(존 맥아더)http://cafe.naver.com/kjbtruth/101
킹제임스 흠정역: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샬롬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주번역자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공학박사
2017-01-09 10:41:4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최근에 이 기사와 관련해서 다음 글을 썼으니 참조하세요.
http://cafe.naver.com/kjbtruth/56
샬롬
패스터
2016-12-29 11:03:47 | 관리자
안녕하세요?
최근에 이 기사와 관련해서 다음 글을 썼으니 참조하세요.
http://cafe.naver.com/kjbtruth/75
샬롬
패스터
2016-12-29 11:02:24 | 관리자
안녕하세요?
최근에 이와 관련해서 다음 글을 썼으니 참조하세요.
http://cafe.naver.com/kjbtruth/62
샬롬
패스터
2016-12-29 10:59:31 | 관리자
오오오오 제가 기도 관련해서 궁금한게 많았는데
캬~ 피디에프로 딱! 보기 편하게 나와있네요
형님 감사합니다
2016-12-27 19:54:52 | 한이
인정~합니다~
굿
2016-12-27 19:50:03 | 한이
하아..인도....
이거만 알면 딱 사는데 문제 없을텐데요
하아..
2016-12-27 19:42:28 | 한이
트럼프 각하 만세~
2016-12-27 19:34:03 | 한이
안녕하세요?
사람의 구원과 관련해서 우리는 먼저 사람의 구조에 대해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triune God)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역시 영, 혼, 몸으로 구성된 삼중적 존재triune being)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은 사람이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음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구절인데 기존 성경들은 여기에서도 전 세계 모든 성경과 달리 특이하게 번역을 하여 잘못된 정보를 주고 있습니다.
개역/개정: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킹제임스 흠정역: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보여 주고자 하는 바는 사람이 몸(흙)과 영(생명의 숨)이 합쳐진 혼이라는 것인데 기존 성경은 이것을 제대로 전하지 못합니다.
이런 성경을 쓰다 보니 영이 없는 사람(창세기 1장)이 있고 영이 있는 사람(창세기 2장)이 있다는 ‘이중 아담론’이라는 이단 교리도 나와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산 영’(living spirit)이면 결코 죽지 않는데 그러면 도대체 무슨 부활이 필요하며 ‘살려 주는 영’(quickening spirit)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개역/개정: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혹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15:45)
킹제임스 흠정역: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느니라.
KJB: And 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was made a living soul; the last Adam [was made] a quickening spirit.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은 창세기 2장 7절을 인용합니다. 그런데 고전15:45에서 개역/개정에서 ‘산 영’(생령)으로 번역된 그리스말 ‘푸스케’(yuchv0, psuche {psoo-khay'})는 그리스어를 조금만 공부해도 누구나 ‘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역/개정성경은 이미 창세기 2장 7절에서 ‘살아 있는 혼’을 ‘산 영’(생령)이라고 번역하였으므로 틀린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고전15:45를 ‘산 영’(생령)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이후에 나온 개정성경도 과거 개역성경을 쓰던 성도들의 반발이 두려워서인지 이 실수를 고치지 못하고 그대로 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NIV, ASV, NASB, 바른 성경, 현대인의 성경 등도 바르게 번역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창세기 2장 7절
NIV: the LORD God formed the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the man became a living being.
ASV: And Jehovah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바른: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현대인: 그때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티끌로 사람을 만들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산 존재가 되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
NIV: 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being"; the last Adam, a life-giving spirit.
ASV: So al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soul. The last Adam (became) a life-giving spirit.
바른: "첫 사람 아담은 생명체가 되었다." 라고 기록된 것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었다.
현대인: 성경에 `첫 사람 아담은 산 존재가 되었다.' 라고 쓰여 있으나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
성경에는 혼이라는 단어가 535회 나오는데 대부분의 우리말 성경은 히브리서 4장 12절 같이 꼭 혼이 나와야만 말이 되는 구절에서만 혼을 혼으로 번역했습니다.
개역/개정: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그리고 이런 곳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혼을 영혼이나 자(者) 등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개역/개정/공동: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출12:15) 바른: 누구든지 첫날부터 칠일까지 누룩 넣은 빵을 먹는 사람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이다. 킹제임스 흠정역: 누구든지 누룩 있는 빵을 먹는 혼은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개역/개정: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아픔을 인하여 말하며 내 영혼의 괴로움을 인하여 원망하리이다(욥7:11)
킹제임스 흠정역: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이 번민 중에 말하며 내 혼이 고통 중에 불평하리이다.
바른: 그러므로 내가 내 입을 다물지 않고 내 영의 고통 때문에 말하며, 내 혼의 쓰라림 때문에 탄식합니다(바른 성경은 바르게 번역함).
위의 욥기를 보면 영과 혼이 명백히 구분되어 있지만 개역/개정성경은 이것을 전혀 구분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영혼’으로 처리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정확성이 떨어지므로 이런 성경으로는 바른 교리를 정립하기가 어려우며 영어로 쓰인 기독교 관련 서적을 번역할 때 저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자기 교회로 사람을 데려오는 것을 전도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미국 사람들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전도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에 나와 있는 진짜 전도입니다. 이 경우에 그들은 ‘혼을 구원한다’는 뜻을 가진 ‘soul winning’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나가서 사람의 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사도행전에서 처음 교회가 세워질 때에 하나님께서 많은 혼을 구원한 사실을 잘 보여 주지만 기존성경은 이런 것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 그때에 그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인 자들이 침례를 받으매 바로 그 날에 삼천 혼 가량이 그들에게 더해지니라(행2:41).
개역/개정: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바른/현대인/공동번역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혼은 사람 자체를 말합니다. 흙으로 빚은 몸에 영이 들어가니 사람이 완전한 인격체가 된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혼이라는 단어는 거의 다 사람 자체를 가리킵니다. 이런 차원에서 NIV, 바른 성경, 현대인의 성경은 등은 의역을 하여 혼이라 쓰지 않고 ‘살아 있는 존재’, ‘생명체’, ‘산 존재’등으로 표기하였습니다. 다음에는 혼의 용례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히브리어, 그리스어 성경의 모든 단어를 있는 그대로 번역한 ‘믿을 수 있는 성경’입니다.
샬롬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주번역자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공학박사
2016-12-19 10:35:26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