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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으로 번역된 말은 대개 ‘눈’, ‘모습’, ‘모양’ 등을 뜻했으며(레13:55) 이것은 색을 다른 물건과 비교해서 표현했음을 보여 준다. 성경은 색에 대해 많은 설명이 없는데 아마도 그 까닭은 새긴 형상이나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 때문일 것이다(출20:4). 그래서 히브리 사람들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알려지지 않았고 성경에도 색 자체에 대한 언급보다는 색의 밝음과 어둠 등이 강조되었다. I. 파란색 - 상처나 상처 자체를 묘사하는 색(잠20:30). 성막의 앙장(출26:1)과 성전의 현수막에도 이 색이 쓰였고(대하2:7) 왕가의 치장을 위해서도(에1:6; 8:15) 부자의 옷에도 쓰였다(렘10:9; 겔23:6). II. 갈색 - 진한 색깔을 묘사하는 색(창30:32-40). III. 검은색 - 성경에서 가장 흔히 사용된 색. 검은색은 한밤중의 어둠을 나타내며(잠7:9) 죽은 피부(욥30:30), 건강한 머리털(아5:11; 마5:36), 죽은 사람의 얼굴(애4:8), 하늘(렘4:28), 해와 달이 어둡게 되는 것(욜2:10), 말(슥6:2, 6; 계6:5) 등을 나타내며 종종 기근과 죽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IV. 회색 - 회색은 노인의 머리털을 표현하는 데만 쓰이며(창42:38) 우리말 성경에서는 이것을 회색머리가 아니라 흰머리로 표현했다. V. 녹색 - 녹색을 나타내는 말은 보통 어떤 종류의 식물을 가리킨다. 이 말은 푸른 초장(시23:2), 채소(왕하19:26), 대부분의 나무(신12:2; 눅23:31; 계8:7), 상징적 의미로 침대(아1:16), 갈대와 같은 위선자(욥8:16), 풀(막6:39) 등을 나타낸다. 나병으로 인한 자국도 녹색으로 표현되었다(레13:49; 14:37). VI. 붉은색 - 에서(창25:25), 야곱의 죽(창25:30), 유다의 눈(창49:12), 희생물 암송아지(민19:2), 술 취한 자의 눈(잠23:29), 포도주(잠23:31), 용(계12:3)은 붉은색으로 묘사되었다. 진홍색은 성전에 사용되었고(대하2:7, 14; 3:14) 또 죄를 표현하는 데도 사용되었다(사1:18). 주홍색은 성막에서 많이 사용되었고(출25:4) 창녀 라합은 이것을 창문에 걸어두었다(수2:18). 이것은 또한 번영의 상징이다(삼하1:24; 잠31:21). 계시록의 짐승과 창녀도 이 색으로 표현되었으며(계17:3-4) 피 색깔인 붉은 색은 종종 생명이나 전쟁을 나타냈다. 주홍색 참조. VII. 흰색 - 짐승(창30:35), 만나(출16:31), 옷(전9:8; 단7:9), 의로운 자들의 옷(계19:8), 말(슥1:8; 계6:2; 19:11), 용서받은 죄(시51:7; 사1:18), 남은 자들(단11:35; 12:10), 계란의 흰자(욥6:6), 천사의 옷(계15:6), 변화산의 그리스도(마17:2), 머리털(마5:36), 심판의 왕좌(계20:11) 등이 흰색으로 묘사되었다. 흰색은 종종 순결, 의, 기쁨, 승리 등을 나타냈다. VIII. 노란색 - 금(시68:13), 나병으로 인한 털(레13:30, 32) 등이 이 색으로 표현되었다. IX. 자주색 - 고대에 가장 고귀한 색. 주님은 성막의 휘장, 현수막 등에 자주색을 쓰게 하셨고(출26:1; 27:16) 성전에도 이것은 필수품이었다(대하2:14). 자주색은 고위층의 권력자들과 부자들의 색이었다(삿8:26; 잠31:22; 눅16:19). 자주색 참조.    
2009-06-14 00:12:52 | 관리자
  모세는 짐승과 마찬가지로 새도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나누었으며 따라서 정결한 것은 먹을 수 있었으나 부정한 것은 먹을 수 없었다. 규칙을 보면 대개 곡식이나 씨를 먹는 새는 정결했고 고기를 먹는 새는 부정했다. 산비둘기, 집비둘기, 그리고 몇몇 새들은 모세의 율법에서 희생 예물로 지정되었다(레5:7-10; 14:4-7; 눅2:24). 모세는 인정을 가르치기 위해 어미 새와 새끼들을 발견한 경우 어미 새는 놓아주고 새끼들만 취하라고 명령했다(신22:6-7). 구약성경에는 노래를 부르는 새들이 있는 새장과(렘5:27) 새를 잡는 올무도 나오고(잠7:23; 전9:12) 육식성 새들은 파멸의 상징물로 등장한다(사46:11; 렘12:9; 겔32:4; 계19:17-19). 우리 주님은 자신의 백성을 구하기 위해 독수리처럼 빨리 날아오시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사31:5).    
2009-06-14 00:12:09 | 관리자
  이것은 하나님께서 건축하고 만드신 도시 곧 기초들이 있는 도시로서(히11:10)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장막들이 있는 거룩한 처소이며(시46:4) 신구약 성도들이 가기를 바란 천국이다. 만물의 회복 선도 참조(94). 새 예루살렘은 네모반듯하게 놓여 있으며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만 이천 스타디온으로 같다(계21:16). 지금의 척도를 따르면 이 도시는 대략적으로 길이, 높이, 너비가 각각 약 2,240킬로미터 정도 된다. 여기에는 (1) 아버지 하나님(계4:2-3; 단7:9), (2) 아들 하나님(계5:6), (3) 성령님(계1:4; 4:5; 22:17), (4) 거룩하고 선택받은 천사들(히12:22; 계5:11), (5) 스물네 명의 장로들(계4:4), (6) 교회(히12:22-23; 계19:1, 7-8; 21:1, 9-11), (7) 구원받은 이스라엘(히11:16) 등이 거한다. 이 도시의 성벽은 열두 개의 기초석 위에 놓여 있고 거기에는 신약시대 열두 사도의 이름이 있다(계21:14). 새 예루살렘 성벽의 높이는 약 65미터이며 벽옥으로 되어 있다(계21:17-18). 물론 이 성벽은 방어를 위한 것이 아니고 아름다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약 2,240킬로미터 높이의 도시에 약 65미터 높이의 성벽을 쌓는 것은 마치 63빌딩에 2센티미터 높이의 담을 친 것이나 같다. 이 도시에는 각 면에 세 개씩 열두 문이 있으며 각각의 문에는 이스라엘 지파 중 한 지파의 이름이 있고 또 각각의 문은 한 개의 큰 진주로 되어 있다(계21:12-14). 한편 새 예루살렘에는 왕좌가 있고(계4:2, 3, 6) 생명수의 강이 있으며(계22:1; 시46:4) 생명나무가 있다(계22:2). 창세기에서 사람의 타락 이후에 사라진 그 생명나무는 역사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새 예루살렘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부활한 몸을 입고 새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들의 특성은 고전15:44에 기록되어 있다. 고전15:39-41에서 바울 사도는 영에 속한 새 몸은 본성에 속한 옛 몸보다 훨씬 더 우수함을 보여 준다. 이런 몸은 주 예수님의 영화로운 몸과 같고(빌3:21; 요일3:1-3) 살과 뼈로 되어 있으며(눅24:39-40) 중력과 시간의 법칙에 지배를 받지 않는다(눅24:31, 36; 요20:19). 그런데 이런 몸은 다른 사람이 알아 볼 수 있는 몸이며(마8:11; 눅16:23; 고전13:12) 영원한 몸이고(고후5:1) 영이 지배하는 몸이다(고전15:44, 49). 천국은 찬양하는 장소로서(사44:23; 히2:12; 계14:3; 계15:3) 신자들은 “오 신실하신 주!”, “다 같이 예수님 이름의 능력을 찬양하세!” 등과 같은 찬송을 부를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행하신 두 가지 큰 일 즉 창조와 구원을 찬양하는 노래들도 계속 부를 것이다(계4:11; 5:9). 한편 천국은 교제의 장소이다. 실로 하늘에서는 실제적이며 영원한 교제가 진행될 것이다. 우리는 다른 성도들과 함께 복된 교제를 나눌 것이며 사실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땅에서는 할 수 없었던 아주 친밀한 방법으로 주 예수님을 알게 된다는 점이다(계2:17; 3:21; 7:17; 19:8). 또한 천국은 간증하는 장소이고(시107:2-3; 막5:19) 섬기는 장소이다(계22:3). 천국에는 바다와(계21:1) 눈물과 죽음과 아픔이 없고(계21:4) 해와 달이 없으며(계21:23) 불안이나 밤이 없고(계21:25) 죄가 없으며(계21:27) 병이나 저주가 없다(계7:16). 끝으로 천국에는 영광과(요17:24; 롬8:18) 거룩함과(계21:27) 아름다움과(시50:1-2) 하나님의 빛과(사60:1-20) 하나 됨과(엡1:10) 완전함과(고전13:10) 기쁨과(시16:11) 영원한 생명(요3:15)이 있다.    
2009-06-14 00:11:39 | 관리자
  고대에 많은 나라의 상품은 대개 여러 종류의 상인들에 의해 교환되었다(창23:16; 사21:13). 그들은 무리를 져서 적당한 계절에 한 시장에서 다른 시장으로 옮겨 다니며 교역을 하고 이로 써 부를 축적하였다(창37:25, 28). 사도 야고보는 그들에게 인생의 불확실성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이야기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약4:13). 이집트나 페니키아 사람들은 배를 통해 교역하였다(사23:2; 겔27:28).    
2009-06-14 00:10:33 | 관리자
  이것은 솔로몬의 통치 때 왕국을 장식하는 대목에서 언급되었다(시45:8). 솔로몬은 인도에까지 무역을 했으며 거기서 코끼리와 상아를 가져왔고(왕상10:22; 대하9:21) 상아로 장식한 왕좌에 앉아서 다스렸는데 이것은 그의 영광의 극치를 보여 주는 것이다(왕상10:18).         
2009-06-14 00:10:05 | 관리자
  팔레스타인에서는 여섯 종류 이상의 상수리나무가 발견된다(사2:13; 슥11:2; 참조 창35:8; 사44:14; 암2:9). 이 나무는 좋은 그늘을 제공하였으므로 많은 공중 행사가 여기에서 이루어졌다(수24:26; 삿6:11, 19; 9:6).    
2009-06-14 00:09:38 | 관리자
  신약이란 ‘새로운 언약’을 뜻하는데 이때의 언약은 영어로 Covenant가 아니고 Testament이다. Testament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주의 만찬을 제정하신 마26:28에 처음 나오며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막14:24, 눅22:20 등에도 나온다. “이것은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린 나의 피 곧 새 상속 언약의 피니라.” 여기서 ‘새 상속 언약’은 New testament이며 이 구절은 곧 주님께서 ‘옛 상속 언약’ 즉 구약을 폐하고 신약을 여심을 뜻한다. Testament는 그냥 언약이 아니다. Testament와 Covenant에 해당하는 원어는 동일한 ‘디아테케’인데 Covenant는 주로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는 특별 약속을 뜻하며 구약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총 295회 나온다. 반면에 Testament는 증언이나 ‘증언하다’와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로 일차적 의미는 ‘증거로 주는 언약’이란 뜻이며 신약성경에만 총 14차례 기록된 독특한 말이다. 성경은 이런 단어의 뜻을 알려 주기 위하여 내장(內藏) 사전을 제공한다. “이런 까닭에 그분께서는 새 상속 언약의 중재자이시니 이것은 첫 상속 언약 아래 있던 범죄들을 구속하시려고 죽으심으로써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영원한 상속 유업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상속 언약(Testament)이 있는 곳에는 또한 반드시 상속 언약하는 자(Testator)의 죽음이 필이 있어야 하나니 상속 언약은 사람이 죽은 뒤에라야 효력이 있고 상속 언약하는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무 힘이 없느니라”(히9:15-17). 먼저 15절에서 히브리서의 저자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구약시대 성도들의 죄가 구속되고 부르심을 받은 모든 성도들이 영원한 상속의 약속을 받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출34:7). 완전한 희생 헌물이신 예수님의 완전하신 단번 속죄로 말미암아 신구약 성도들의 죄 문제가 깨끗이 해결되었고 이때에 그분께서는 우리 모든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상속의 언약을 주셨으므로 새 상속 언약의 중재자이시다. 여기서 Testament를 상속 언약으로 번역해야 하는 근거를 찾을 수 있으며 16, 17절이 이를 확증해 준다. 16, 17절에서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상속 언약하는 자의 죽음이 있어야 상속 언약이 유효함을 보여 주므로 새 상속 언약의 중재자 즉 새 상속 언약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있기 전까지는 새 상속 언약이 유효하지 않다. Testament와 Testator는 바로 이런 점을 설명해 주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율법 아래에서 나셔서 율법을 완성하시고 신약시대를 여신 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가 되시기 위하여 율법의 끝마침이 되시느니라”(롬10:4; 참조 갈4:4).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예수님이 태어난 순간부터 신약시대가 아니라 십자가 사건 이후부터가 신약시대이다. 기존의 우리말 성경은 Testament를 유언으로 번역하였으나 이것은 결코 유언이 아니다. 유언은 ‘죽음에 이르러 남기는 말’로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며 또 언약하고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 주님은 죽음을 통해 새 상속 언약시대 즉 신약시대를 여셨으나 영원히 살아 계신 분이다. 그분은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며(계13:8) 그래서 아직 피를 흘리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피가 이미 흘려졌다고 말씀하신다(눅22:20).    
2009-06-14 00:09:08 | 관리자
  모압의 마을. 이곳은 아모리 족속에게 빼앗아서 르우벤에게 배정한 곳으로(수13:20) 바알브올 숭배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이 근처의 골짜기에서 모세는 율법을 다시 반복해서 알려주었고 주님께서 손수 그를 묻으셨다(신4:44-46; 34:6).    
2009-06-14 00:07:51 | 관리자
  미스바 근처에 있던 단 지파의 마을. 이곳은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멸하고 에벤에셀 돌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삼상7:11).    
2009-06-14 00:06:41 | 관리자
  I. 다마스커스 시리아의 왕. 그는 유다 왕 아사의 요청으로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전쟁을 하였고 납달리의 큰 지역을 초토화시켰다(왕상15:18-22). II. 위의 벤하닷의 아들. 그는 2년 동안 계속해서 큰 군대를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아합과 싸웠지만 골짜기와 평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참패를 당했다(왕상20:1-43).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합은 하나님의 명령과 달리 그를 용서하고 화친하였으나 그의 화친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 3년 뒤에 생긴 전쟁에서 죽임을 당했다(왕상22:1-53). 그 뒤 9년 뒤에 벤하닷은 다시 이스라엘을 침략하였고 엘리사는 그의 계략을 물리쳤으나(왕하6:8-23) 그는 또 전쟁을 일으켜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극심한 기근에 빠지게 하였다. 그러나 주 하나님께서 갑자기 밤에 그의 군대에게 두려움을 보내자 그들은 도망갔다(왕하6:17; 7:6; 잠28:1). 죽기 전에 그는 아픈 상태에서 하사엘을 엘리사에게 보내어 무엇이 문제인지 묻게 했으며 이에 대언자는 그 병이 죽을병은 아니지만 그가 죽을 것이라고 말했고 결국 하사엘이 침상에서 자기 주인을 목 졸라 죽임으로써 그의 예언은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왕하8:7-15). III. 위에 나온 하사엘의 아들. 그의 아버지는 이스라엘을 극도로 학대하고 압제했으나 그는 요아스에게 세 번 패함으로 자기 아버지가 모은 것을 다 잃게 되었다(왕하13:1-25).    
2009-06-14 00:05:42 | 관리자
  욥40:15-24에 묘사된 대형 짐승. 이것은 소처럼 풀을 먹으며 꼬리가 백향목 같고 뼈가 쇠막대기 같이 강한 짐승으로 하나님의 길들 중에서 으뜸이며 - 즉 땅에서 가장 크고 힘이 센 짐승이며 - 강을 들이마실 정도로 큰 짐승으로 브론토사우루스 같은 공룡으로 볼 수 있다. 용 참조.    
2009-06-14 00:04:58 | 관리자
  고대 동방의 여인들의 얼굴 가리개. 그들은 자기 남편과 가까운 친족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고 이를 위해 베일을 사용했으며 따라서 베일을 걷어 올리는 것은 모욕하는 것이었다(창24:65; 아5:7; 고전11:5, 10). 그러나 아브라함과 이삭의 시대에는 모든 여인이 베일을 하지는 않은 것 같다(창12:14-15; 24:16, 창38:14-15; 잠7:13 비교). 아비멜렉 참조.    
2009-06-14 00:04:22 | 관리자
  벨릭스의 뒤를 이은 유대의 총독. 그는 주후 60년경에 유대의 총독으로 와서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의 주요 인사들로부터 그를 정죄하라는 탄원을 받았으나 로마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도 않고 그 사람을 정죄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말하며 가이사랴에서 그들의 고소를 듣겠다고 말했다. 닷새 뒤에 바울의 말을 듣고 그를 고소하는 내용을 알게 된 그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산헤드린 앞에서 재판 받을 것을 제안했으나 바울은 카이사르에게 갈 것을 구하여 유대인들의 박해와 베스도의 나쁜 의도를 피했다. 베스도는 그 뒤에 그의 총독 부임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아그립바 왕에게 이 일을 설명하고 그 앞에서 다시 한 번 청문회를 열어 그를 로마로 보내는 이유를 적고자 했다.    
2009-06-14 00:03:29 | 관리자
  가나안의 도시. 한때 아도니베섹이 이곳의 왕이었으며 유다가 이곳을 점령하는 이야기는 삿1:1-8에 나온다. 사울은 야베스길르앗을 포위하러 가기 전에 여기서 자신의 군대를 점검했다(삼상11:8).    
2009-06-14 00:02:32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