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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안 덕분에, 예수님을 믿은 덕분에,   나는 내가 왜 태어났고 왜 이런 세상을 살며, 죽고 나면 어떻게 될지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죽는 그 과정과 고통은 인간적으로 두려울지 모르나, 죽음 그 자체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소망이 생겼습니다.죄로 가득 찬 세상에 대한 쓸데없는 비관/좌절/피해 의식이 없어졌습니다. (우리나라 교육 제도, 정치인, 재벌, 강대국 헐뜯기 등 -_-;;) 이 세상이 무슨 운석 충돌이나 지구 온난화 따위로 망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일제도 북한도 무너뜨리지 못한 이 나라 역시 결국 죄와 욕심과 불의 때문에 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문제의 본질인 죄를 볼 줄 알기 때문에, 겨우 죄가 초래한 최말단의 그 나쁜 ‘결과’만 어떻게든 척결하려 애쓰고 우왕좌왕하는 인본주의적인 사회/정치 단체, 각종 모임 등에 별로 관심이 없어졌습니다.특히, 죄를 근절하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한 ‘필요악’이 나쁘다고 없애자고 드는 정말 무지몽매하고 어리석은 생각에 결코 동조하지 않게 됐습니다. (체벌, 사형 제도, 군 복무, 공권력 등) 귀신, 초능력, 불가사의, 이상한 공상 과학 내지 음모론 쪽 얘기를 들어도 현혹될 일이 없어졌으며, 온갖 미신적인 관행들에 관심이 싹 사라졌습니다.남이 안 알아 주고, 남처럼 안 했다간 나만 바보 되고 손해 보는 상황에서도 선행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마련됐습니다. (이걸 알면, 예수만 안 믿고 착하게 산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됨) 우리를 창조한 절대자의 성품을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라는 말씀이 그냥 기독교 경전이니까 상투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문구가 아니라 진짜 객관적으로 맞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예수님이 겨우 입에 발린 탁상공론으로 종교놀이나 하러 이 땅에 오신 게 절대 아님을 알게 됐습니다.   이런 식으로 쓸 거리는 얼마든지 더 생각해 낼 수 있습니다. 이 가치관이 딱 잡힘으로써 제가 얻은 영적, 물질적 복과 정신 건강상의 이득,그리고 그 덕분에 다른 쓸데없는 이상한 이념이나 사상, 집단, 이단 종파, 혹은 연예/오락 쪽에 심취하지 않고 사고 안 쳐서 절약된 돈과 시간은 제겐 정말 추정조차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걸 모르고 매주 꼬박꼬박 교회 가는 데 드는 돈과 시간만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제가 보기엔 정말 바보입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33:3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23 01:57:06 | 김용묵
킹제임스 성경을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핍박과 조롱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어느 목사가 지은 예수님의 일대기 책만을 들고 왔다. 그분의 삶을 조명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가 주는 글이 있다. 짧지만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위로가 되기를 원한다.   2010년 1월 24일 미국의 고향 볼티모어에서   진실(진리)을 말하는 사람들을 위한 네 가지 영원한 교훈   악과 싸우는 무기 중에 진리의 검에 견줄 만한 것은 없다. 누구든지 용감한 사람은 언제라도 이 검을 쥘 수 있지만 그런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럴 만도 하다. 이처럼 강력한 도구를 휘두르는 특권에는 다른 사람들의 오해, 거짓 고소, 관계의 단절, 외로움, 좌절 등 큰 대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옳은 편에 서면 무서운 자기 회의와 심지어 자괴감이 자주 도진다. 진실의 손잡이를 잡기로 선택하면 영광스런 승리를 맛볼 때도 있지만 악의 역공이 놀랍도록 흉포하게 찾아와 오랜 파괴를 남길 때가 많다.   진리의 검을 들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의 모본에서 찾을 수 있는 네 가지 교훈을 나누고 싶다.   첫째, 자신의 사명을 알면 계속 목표에 집중할 수 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명확히 아셨고 인기나 성공이나 박해나 위협이나 심지어 측근들의 불화 때문에 곁길로 빠지지 않으셨다. 그분은 주변 사람들을 적절히 돌보시면서도 올곧게 그 사명에 집중하셨다. 그분은 진리를 밝히려 노력하셨고 진리를 받아들이라는 초대를 되풀이하셨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실패 때문에 궤도를 벗어나시는 일은 절대 없었다.   둘째, 악을 상대하려면 싸워야 한다. 싸움을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지만 진실 편에 서서 악에 맞서려면 싸움이 불가피하다. 때로는 꼭 해야 할 말인데, 말하기도 어렵고 상대방 쪽에서 듣기도 어렵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심한 질책이 필요한 싸움은 극히 드물다. 어쩌면 평생에 한 번일 것이다. 악이 클수록 싸움도 강해야 한다. 대체로 이렇게 권하고 싶다. 친절한 접근이 무책임해지지 않는 한 친절로 대하되 솔직한 발언을 희생한 친절은 절대로 안 된다. 진실을 솔직히 말할 각오를 하라.   셋째, 고결한 싸움에서 담대함은 가치 있는 모험이다. 진리 편에 서려면 담대해야 한다. 반감을 품을 사람들이 있을 것이므로 방식에 대해 비난이 가해질 것을 예상하라. 상대방은 내용에 흠잡을 게 없으면 방식이라도 문제 삼는다. 나아가 담대하려면 강한 발언에 뒤따르는 강한 행동이 요구될 수 있다. 당신은 직장을 그만 두거나, 관계를 끝내거나, 강적과 대결하거나 두려움을 수습하거나 위협에 대항하거나 심지어 어떤 패배에 직면해야 할 수도 있다. 물러서지 말라. 당신이 진리 위에 서 있다면 소심함은 나중에 후회가 되어도 담대함은 절대로 후회되지 않을 것이다.   넷째, 진실(진리)을 말한다고 승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의 법대로 움직이는 곳이 아니다. 현 세상 제체는 선행을 벌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상을 준다. 제임스 로웰의 말로, “진실은 영원히 단두대에 있고 악은 영원히 왕좌에 있다.” 불행히도 진실(진리)을 말하는 사람들은 가장 잔인무도한 학대를 당하게 될 때가 많다. 그러니 현실에 눈을 뜨라. 용기를 내라. 당신이 진실 편에 섰음에도 아마 그 정당성은 조만간 혹은 당신의 평생 동안 입증되지 않을 것이다. 로웰의 말은 이렇게 끝난다. “그러나 그 단두대가 미래를 지배하며 흐릿한 미지의 세계 저편에 하나님이 그늘 속에 서서 자기 사람들을 지키신다.”   희생이 따를지라도 진리의 검을 두 손으로 꼭 붙들면 큰 상이 따른다. 진실(진리)은 죄책감과 수치심에 자유를 가져다준다. 진실(진리)은 만족감을 낳고 확신을 심어 주며 창의력을 자극하고 친밀함을 길러 주며 정직을 장려하고 용기를 불어넣으며 사람들을 해방시킨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하게 진실(진리)은 우리를 하나님 편에 서게 한다. 진실(진리)을 위한 모든 희생에 하나님이 후히 상 주신다는 약속이 우리에게 있다. 이생에서는 혹 아닐지라도 다음 생에서는 틀림없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33:3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23 00:40:25 | 관리자
하나님께서 만든 자연은 그분의 신비를 잘 보여 줍니다. 우리 집의 개(보스턴 테리어)를 보면 얼마나 창조의 신비가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잠시 시간을 내서 이 비디오를 한 번 보기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정동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48:2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21 05:26:19 | 관리자
샬롬~!! 목사님 말씀잘듣고 있는 청년입니다. 말씀을 듣다가 이런생각이 들어서 질문드립니다.   은사주의 은동 바로알기에서..베니힌이라든가 여라 오순절 은사운동주의에 대해서 저도 목사님말씀처럼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자웃음소리,장풍등등 저도 동의하는바입니다. 현재 한국교회에 이런문제점이 많이 있다고 한다는것입니다. 교회에서 쓰러지고 머 이런건 많이 볼수있죠.   이런 은사운동이 마귀적인것을 알고있습니다 제가 궁굼한것은.. 그런데 이런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고 회계하고 돌아오는 형제자매도 있을것입니다.   다른 이교도들도 또한 여러 중복적인 기도라던가(만트라) 이런경험으로 인해서 자기들의 신에게 다가가고 있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기독교에서 베니힌 목사 은사운동에서 회계하고 구원의 감격으로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있을것입니다.   또한 이단중에 이초석목사의 집회에서 회계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린사람도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불법을 행하는자라고 하시겠지요.   그럼 베니힌 목사님도 불법을 행하는자(이단)라 해야하나요?       제가왜 이런질문을 하냐면..   저또한 어려서 그런 체험을 경험했었습니다.   제가 어렷을때 부흥회 설교말씀듣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구원에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목사님께서 사람들을 나오라고 하시더니  쓰러트리고,또한 방언(반복해서 할렐루야를 빨리해라 이런식)을 시키는것이었지요   10여년전 당시에 경험이 생각나서 이렇게 목사님 설교말씀듣는중에 궁굼해서 글을 씁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고,혼돈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신걸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수있습니다.     각자각자의 주관적으로 느껴지는,확신받았던 그경험과 하나님을 아실것입니다.   한목사가 지나가면 성도들이 쭉넘어지고, 장풍을 하면 넘어지는 현상은 전 성령님의 역사라 생각지 않습니다.   이런사람들은 (그 마귀적인 상황)속에서 넘어지고 울부짖는 그 사람,    그상황속에서 구원에 확신이 드는 사람, 예수님을 영접한사람,결심한사람. 하나님을 만났다고하고, 하나님께로 눈물로 회계하고 돌아오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꼇다고 사람들에게 간증 하고,하나님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겠다고 결심을 한다면,   아니야 아니야  그상황과 경험은 모두 마귀은 장난이야 이렇게 얘기해아할까요?? 어떻게해야할까요?     두서없이 적었습니다. 자세한 답변부탁드릴께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26:4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20 11:18:56 | 허형규
요약하자면, (1) 저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을 때에 성령님께서도 우리속에 내주하시며, 그 이후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의 체험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2) 그런데 어떠분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믿고 난후 성령을 받는 사건을 들면서 예수님을 믿을때의 성령의 역사는 밖에서 하시는 역사이고, 성령님이 내주하게 되는 사건은 믿음과 별개로 그 이후에 있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과도기의 사건이므로 교리화 할 수는 없지않는가..라고 했더니 어떤 사건은 오순절성령강림후 20년이 지나서 발생한 사건이라며 과도기라고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하고요..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이 논란은 오래전부터 있는 것이더군요. 궁굼하여 문의드리오니 자세한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26:4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19 12:17:39 | 박진선
※ 요약   1월 17일 오전 예배 때 우리 교회 목사님으로부터 소개 받은 독립영화 <회복>(김종철 감독)을 그 날 저녁에 청년부 명의로 단체 관람을 했다. (뭐 그래 봤자 본인 포함해 총 5인이었지만..)   정말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은 내용이었으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이런 기독교 컨텐츠가 외국물 번역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정말 믿어지지 않으며 대단하고 자랑스럽다.일제 강점기 교회 수난사라든가 북한/조선족 지하 교회 이야기처럼 민족주의 정서(?)가 전혀 없이도 이렇게 감명 깊은 영상물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배웠다.이스라엘의 문자적 회복을 믿고 예수님의 전천년 재림을 사모하는 바이블 빌리버라면 누구라도 볼 가치가 있음을 본인의 이름을 걸고 추천하는 바이다.   이 정도의 감격은, 본인이 KJV 초창기에 읽은 바 있는 <에큐메니즘의 이상과 우상>(구영재 저) 이래로 처음인 것 같다. 이것도 번역서가 아닌 국내 저서라는 게 믿기 어려운 수준인 책인데, 그 책이 다루는 분야는 유럽의 종교 역사 내지 국제 정세인 반면, 저 영화는 이스라엘이라는 점이 차이이다.   ※ 첫인상   목사님께서 처음에 이 영화에 대해 언급하셨을 때 본인은,뭐 또 할리우드에서 쉰들러리스트라든가 아니면 비슷한 급의 시사/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왔나.. 유대인 관련 음모론은 다루나.. 그 정도로 짐작만 했을 뿐, 정보가 없었다.   제목이 '회복'이라고 하기에, 주찬양 선교단 극렬 매니아인 본인의 머리에 바로 뜨는 인덱싱 결과는, 그저 10집 앨범 <회복>뿐이었다.그런데 그런 게 아니고, 이 <회복>은 놀랍게도 국내에서 제작된 독립영화이다. 감독은 수십 회의 이스라엘 방문 경력을 지닌 이스라엘 전문가였다.관람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크리스천들이고 교회에서 추천을 받아서 보거나 아니면 아예 단체 관람을 하는 경우였다.할리우드 영화를 볼 때면 영화 상영 전에 거의 10~15분은 온갖 광고들이 나오는데 역시 독립 영화이다 보니 그런 게 전혀 없는 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본인은 예전엔 영화관의 내부 모습이 철도역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은 공항과 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상영 도중에 일부 사람들이 나가거나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것(정차역). 들어갈 때 사람이 표를 검사한다는 것, 처음에 비상시 대처 요령이 방송된다는 것 등이 공항 내지 비행기 여행과 매우 비슷하다. ^^ 역시 경험이 안목을 키우는 것 같다.   ※ 영화 내용   예수님을 믿는 어느 유대인 가정이 괴한으로부터 폭탄 테러를 당하는 얘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이런 짓은 90% 이상 이스라엘을 싫어하는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의 소행으로 치부하기 쉬운데 놀랍게도 그렇지 않았다.폭발 현장을 분석한 결과 이것은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군대를 전역한 사람의 소행으로 판명된 것이다.   잘 알다시피 이스라엘은 사방이 적국으로 둘러싸여 있다. 여자까지 군대로 징집해야 할 정도로 국방이 위태롭다.그런데 서로 그렇게도 사이가 나쁜 이스라엘과 인근 팔레스타인 국가들은 그래도 일말의 공통분모를 공유하는 게 있다. 바로 예수님을 안 믿으며, 기독교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유대인의 진정한 우군인 크리스천들에 대해서 온갖 나쁜 감정을 갖고 있고 오히려 적군과 그런 사이라니!마치 빌라도와 헤롯이 전에는 원수였다가 예수님으로 인해 친구가 되었듯이(눅 23:12), 이들 사이의 불의한 동맹은 적그리스도에게 낚여서 그를 메시야로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대다수의 불신자들이 천주교와 기독교를 분간할 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천주교니 개신교 나부랭이 따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그저 구교 신교 할 것 없이 자신들을 예수님을 죽인 민족이라고 정죄하고 괴롭히고, 십자가 내밀면서 못살게 군 코쟁이 원수일 뿐이다. 까놓고 말해 그들은 히틀러도 기독교의 교리대로 유대인들을 학살했다고 믿는다. 그러니 기독교 얼마나 싫어하겠는가?   이스라엘 내부에서 정통 유대교는 국교로 강제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그렇게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정통 율법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그들 중 일부가 그렇다는 거지, 이스라엘 내부에도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자유주의자 등 별별 사람들이 다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나라 법에 의해서 박해 내지 벌을 받는 건 아니다. 단지 왕따가 되고 그런 유대교 신봉자들로부터 사회적 배척을 받게 되는 것이다.배척하는 짓이 너무 오버이다 싶으면 이스라엘 경찰이 출동해서 제지도 하긴 하지만.. 그들도 이런 일에서는 좀 손 떼고 싶어한다.   배척을 어느 정도 받는가 하면, 마을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 얼굴을 사진 찍어 간 후 전단지를 마을에다 뿌린다. 이 사람은 요주의 인물이고 '당신들을 설득하여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불순분자이니 조심하라는 내용으로 말이다. 그리고 크리스천의 집 앞에서 농성도 하고, "2천 년 전에 죽은 사람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자", "당신네 종교 때문에 히틀러는 지금도 외롭지 않을 거다" 같은 폭언 악담도 한다.심지어는 교회 앞에서 죽치고 앉아 농성을 하거나 예배 진행을 못 하게 난동을 부리고, 예배당을 드나드는 사람에게 위압감을 주려고 1인 시위, 침묵 시위 별 걸 다 하더라. 그 중에 엄청 과격한 사람들은 아까처럼 폭탄 배달까지..   사람이 인간의 육신을 자극하는 종교 하나에 심취하면 저렇게 된다는 걸 느꼈다.새까만 정장과 모자에 긴 턱수염을 한 랍비 아저씨가 평소에는 그래도 일말의 멋이 있어 보였는데.. 저러는 모습을 보니까 싸이코처럼 보였다. -_-;;유대교 회당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는데, 거기는 오히려 천주교 성당과 분위기가 비슷해 보였다. 기도문 암송하고, 남녀 할 것 없이 머리에 면사포 뒤집어쓰고..   그들은 진짜로 예수님에 대해서는 그냥 2천 년 전에 죽은 사람 내지, 기존 유대교 체계에 반발하여 새로운 종교를 만든 이단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자기네 나름대로 메시야의 조건을 규정해 놓고 있는데, 지금까지 몇몇 랍비는 그 조건 중의 일부만을 충족한 경우가 있으나 완전한 메시야는 아직 안 왔다는 식이다.신약 성경도 내용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았다. 유대인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도구는 구약 성경뿐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독교와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유대교 환경에서, 그것도 2, 30년 전만 해도 전국에서 정말 몇백 명에 불과하던 "메시야닉 쥬" -- 예수님을 영접한 유대인 -- 가 지금은 1만 4천여 명 수준으로 불어났다고 한다. 로마서 11장 내용이 진짜 자기네 이야기라는 것을 아는 유대인의 인터뷰를 보게 될 줄이야! 이런 사람들의 영향으로 대환란 때 14만 4천 명의 유대인 환란 성도가 준비되지 않을까 싶다.   이들은 길거리에서 전도지 나눠 주고, 도로변에 현수막을 펼치면서 정말 과감하게 복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방해도 많이 받았다. 예수님의 승천 후, 복음은 지금까지 세계를 한 바퀴 돌고 나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온 거라 한다.유럽은 이제 교회에 노인들밖에 안 남았고 오히려 아시아에서 역선교를 해 온다. 동방의 예루살렘이라던 한국도 100년 전의 평양 대부흥은 이제 안드로메다로 갔고, 크리스천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러는 중에 정작 예수님을 배척했던 이스라엘이 꿈틀꿈틀 각성 중이다. 정말 이제 이방인 경륜은 끝이 얼마 안 남았다!   유대인의 실족과 실패만으로도 이방인들에게 얼마나 큰 유익을 끼쳤는데, 하물며 이들이 나서서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분으로부터 받은 복을 세상으로 나눈다면 세상은 얼마나 더 밝아지고 그들은 일등 선민 노릇을 하게 될까? (롬 11:12)메시야닉 쥬들은.. 자기 동족이 지금까지 이방인들로부터 당한 설움을 이제 자기들한테 똑같이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들을 미워하지 않으며 동족을 위해 기도한다. 그들은 자기를 박해하는 게 신명기 13장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는 신명기 13장이 아니라 신명기 18:15가 적용된다는 걸 증명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역시 유대인들은 지금도 표적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 민족인가 보다. 예수님을 좀 보여달라고 했더니 꿈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체험으로 표적을 보고 곧장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영화 중에 줄을 잇는다. 영화 앞부분에서 폭탄 테러를 당한 그 사람도 정말 기적적으로 치유를 받았다.물론 이들이 다 바르게 믿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영화에서 언급되지는 않지만, 예수 믿고 구원은 받았는데 아직 교리적으로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여전히 사도행전 15장처럼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예수님을 배출하였으나 수천 년을 예수님 없이 지내 온 이스라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새로운 흐름!모세오경을 골수로 암기하면서 자란 그들이 스스로 홍해가 갈라진 기적이나 여리고 성이 무너진 기적보다 더 대단한 일이라고 평가한다.유대인의 덕을 본 이방인 중 하나로서, 본인에게 큰 도전과 유익이 되는 다큐멘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국민 대다수가 영어 무진장 잘 한다는 건 엄청 부러웠다. 예수님이 어떻게 하나님이냐 하는 말싸움까지 유창한 영어로... =_=;;영화 중에는 예루살렘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내용이 계속 반복되는데, 원래 오리지널 구절은 이렇다. 예루살렘의 화평을 위하여 기도하라. 너를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시 122:6) 이상 이것으로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26:4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19 10:50:51 | 김용묵
흥미로운 영상입니다. 진화론의 거두인 도킨스가 진화의 증거를 묻는 질문에 한참을 고민합니다. 마지막에 뭐라고 하는것 같은데 영어 울렁증이 있는 저로서는 잘 모르겟구요 출처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하튼 진화론진영의 선두에 서 있는 도킨스 조차 즉각적으로 대답할 진화의 증거가 없다는 것이 참 흥미롭네요^^   http://tvpot.daum.net/my/ClipView.do?ownerid=gQ5ptBmBE1Q0&clipid=8205839&lu=v_title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26:4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18 06:28:45 | 박종철
인간과 매우 흡사한 얼굴을 한 새끼양이 터키에서 죽은 채로 태어났답니다. 비타민 A가 부족하면 이런 현상이 있을 수 있다는데..과연 비타민 A의 부족으로 이런 인간의 얼굴을 닮은 돌연변이가 태어날 수 있는건지... 짐 바브웨에서도 이런 유사한 일이 있었고.. 당시 관리는 인간과 암염소의 부적절한 관계로 태어났다는 얘기를 했다는데..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기괴한 생명체들.. 세계 어느 곳에선가는 진행되고 있을 인간복제의 실패작들은 아닐까요. 과거 노아시대와 마찬가지로 인간과 천사의 부적절한 관계로 인한 결과물들은 아닐까요 얼마전 지방중고등부 학생들에게 UFO와 천사에 관한 진실을 살짝 맛만 보여줬었는데.. 이런 기사를 보니 생각이 남달라지는군요.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all&arcid=0003186728&code=41191111&cp=nv1[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26:4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16 18:31:46 | 박종철
한국생명공학연구원(원장 이상기)은 15일 오후 3시, 연구원 내 자원동 앞 '실험동물 위령비'에서 연구목적으로 희생된 동물들을 위로하는 '실험동물 위령제'를 연다. 오늘 위령제에서는 실험동물들이 즐겨먹는 사료와 과일 등을 정성껏 제물로 차려 헌화와 분향할 예정이다.   이상기 연구원장은 "질병 치료와 예방을 위한 신약, 백신 등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직접 실험할 수 없기 때문에 실험동물을 통해 약효와 독성실험을 하고 있다"며 "명을 못다한 실험동물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위령제를 개최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연구원은 연간 마우스, 랫드, 토끼 등 3종 3만여마리를 실험용으로 사용하고 있다.(2005년 언제적 신문 기사) * * * * * * * *   명절에 조상 산소나 차례상 앞에서 꾸벅 절한다든가 (차라리 살아 계신 부모님 앞에서 큰절 올리는 건 영적으로 문제될 것 없습니다),기우제 지내고, 영화 촬영이라든가 선박 항해 같은 거사를 추진하기 전에 사람들이 한데 모여 돼지 머리 얹어다가 고사 지내는 것..   여기에 대해서 어지간한 크리스천들은 쉽게 판단을 내립니다.미신적이다, 그런 짓 전혀 할 필요 없다, 심지어는 우상숭배다 이런 식으로.   그렇다면, 저 동물 위령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인류의 질병 치료을 목적으로 신약 개발 실험용으로 죽어가는 동물들 말입니다.그거 연구하는 연구원들도, 비록 불신자이긴 하지만 일말의 동정심과 종교심은 있어서 연구소 뒤뜰에다 위령비도 세워 놓고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기도 한답니다.동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까지 쉽사리 미신, 우상숭배 따위로 치부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죠?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성경적으로는 저것도 앞서 든 예와 별 차이 없는 "쎄임쎄임"입니다.   생각을 해 보세요.무수히 많은 동물들이 제물로 바쳐져 피를 쏟으며 처참하게 죽어 나가던 구약 시대 유대교 성전 뒤뜰에, 하나님께서 동물 위령비 세워 놓으라고 지시한 적이 있었는지를..!   인간 때문에 동물이 불쌍하게 죽은 건 이미 아담과 이브 시절부터 있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 육체의 생명은 피, 죄사함을 위해 필요한 것은 피흘림 등등... 이 모든 성경 법칙을 시청각 교육으로 가르침과 동시에 아담 부부에게 가죽옷을 제공하기 위해 피흘려 죽은 동물이 원조입니다. 아마 그 동물도 양이었을 것입니다. (창 3:21)   동물이 안 죽었으면 사람 본인이 자기 죄 가운데에 죽어야만 했고, 죽어서 지옥 갔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제도가 잔인하네, 동물이 불쌍하네 하는 식의 투정을 부릴 자격조차 없습니다.   가족처럼 키우던 어린양을 제단에 올려서 목을 따고 피를 쏟아냄으로써, 인간이 지은 죄가 이렇게 뼈아프게 참혹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걸 유대인들은 매번 눈으로 봤습니다. 남은 부위를 불에다 새까맣게 태움으로써 죄의 대가로 영원한 형벌을 받는 장소인 지옥이 그런 곳임을 실감했습니다.   이걸 보고 잔인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데,사람이 진짜 피흘려 죽어 마땅한 걸 동물로 대신 감당하게 한 게 기독교의 전신인 유대교이지,정말 잔인한 건, 자기 자식 새끼--동물이 아닌 사람--를 인신공양으로 불에다 던지고, 처녀를 제물로 바치던 주변의 마귀 종교들이었습니다. (레 18:21, 왕하 16:3, 17:17 등)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동물들 포함)을 다스리라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미의 젖으로 그 새끼를 삶지 말라" (성경에 무려 세 번이나 나옵니다), "곡식을 밟고 있는 소의 입에 마개를 씌우지 말라" (역시 세 번) 처럼, 살아 있는 동물을 부려 쓸 때는 하나님도 인간에게 동물에 대한 배려와 보호를 명령하지만,   식용이나 헌물 등 잡아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어서 동물을 최소한도로 죽이는 것은 성경적으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개 잡아서 보신탕 해 먹든, 의학 연구용으로 동물 죽이든 예외가 아니며 해충 구제는 두말할 나위도 없죠. 동물과 사람 사이에 엄연히 차별을 두고 있는 성경 말씀이 놀랍지 않습니까?   동물 속죄 헌물에 대해서는 히브리서 9, 10장이 명쾌한 이론 설명을 해 줍니다. "동물 죽는 게 불쌍해서 위령비 세울 정도이면,예수 믿고 예수님의 죽으심이나 '주의 만찬'으로 꼬박꼬박 잘 기념하고, 죄나 짓지 말고 살아라."가 성경이 말하는 해답인 것입니다.   다만, 단순히 동물을 죽이는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종, 유전자 자체를 혼잡하게 하고 제멋대로 뒤섞고 망가뜨리는 시도는 어떤 형태로든 심판과 재앙으로 인간에게 되돌아올 것입니다.   ※ 짐작하셨겠지만, 저 밑에 김** 형제님의 <개념없는 인간=동물 토론회> 글에 대한 보충 설명 차원에서 제가 예전에 쓴 글을 소개합니다. ^^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26:4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15 22:01:39 | 김용묵
이 설문은 애초에 구원을 KJV 교회에서 받고 여기서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하신 분에게는 해당 사항 없습니다. 기성 교회를 다니다가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 알게 된 초창기 시절을 떠올려 보십시오.(없음) 말고, 내가 알던 구절과 KJV 구절이 이렇게 다르다는 걸 알게 됨으로써 가장 놀랐던 성구는 무엇이었습니까?   저의 경우는 그 유명한 요일 5:7이라든가, 딤전 3:16, 요 3:36도 아닙니다.저는 그 당시는(2001~02) 아직, 성경에 그런 유명 구절이 있는 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   제가 깜짝 놀라는 체험을 한 구절은 바로 마 5:22입니다.마태복음의 산상 설교는 비교적 유명한 구절인 데다 신약 성경을 마태복음부터 읽기 시작하면 비교적 금방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저도 나름 중학교 때부터 대략의 내용을 알고 있었습니다.자기 형제에게 화만 내도, 바보 멍텅구리라고만 불러도 공회에 끌려가고 불지옥에 심판을 받는다는데 얼마나 무서운 내용입니까? ‘어 그런데 예수님도 화를 내시지 않았나?’ 당연히 그렇게도 생각했습니다. 중학생의 지적 수준만으로도 말입니다.   그 당시는 뭐 어차피 주변에서는.. 성경 너무 많이 읽으면 이단 되고, 그런 건 신학자들이 공부하는 내용이니 너무 파고들 필요 없다, ‘없음’은 그냥 후대에 추가된 내용이고....어차피 각 교파마다 다 자기네 교리만 옳다고 하는데, 우리가 성경을 다 이해하고 해석해 내는 건 불가능이니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이런 식이었으니 제가 더 뭐 따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까닭 없이’가 저를 살려 줬습니다. 할렐루야! 저 말고 다른 분들의 간증을 들어 보면, ‘예수님 명령에 순종을 안 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떨어진다니!’(요 3:36), ‘이제 신령한 젖 먹으면서 구원에 이를 때까지 한참 자라야 되는구나!’(벧전 2:2)처럼..변개된 성경 때문에 생사람을 잡을 뻔하던 기가 막힌 사연이 엄청 많습니다.행 12:4 이스터 하나만 딱 보고는 무릎을 치고 ‘그럼 그렇지, 이게 진짜 정확하고 무오한 성경이구나!’ 바로 깨달았다는 간증도 들었습니다.   김문수 형제님께서 연재하는 글을 통해 조목조목 지적하시는 것처럼, 변개된 성경엔.. 정말 ‘정신줄을 놓은’ 번역 많습니다.바른 성경을 통해.. 구원은 받았으나 성경관에 막혀 지금까지 영적 성장이 지체된 사람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부디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묻습니다.여러분의 knockdown 성경 구절은 무엇입니까? 간증을 들어 보고 싶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11:2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12 00:33:50 | 김용묵
그리스도께서 세운 신약 교회의 정신은 무엇인가?   1. 율법 시스템(율법주의)에서 벗어나 영적인 자유로 섬기는 것2. 전 성도 제사장직, 모두가 형제이다.3. 물질적인 성전이 아니라 신자가 성전이 된다.4. 자발적인 헌금5. 말씀만으로 충분한 교회 이런 것이 확실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내 교회’에서 멀리 있다.교회인 것 같은데 교회가 아니다. 우리는 확실히 구원받았는가?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내 교회에 얼마나 가까이 근접해 있는가?
2010-01-11 17:57:18 | 관리자
듣자하니 오늘날에도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그 율법주의자들의 후예가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의 계명에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하는데 십계명 중에 왜 안식일만 빼느냐..예수님도 율법을 다 성취하러 오시지 않았느냐,그 법은 네 가까이에 있고 네가 능히 지킬 수 있다고 신명기에 명시돼 있는데 왜 자꾸 불가능하다는 쪽으로만 가느냐..이런 식으로 따지고 들면 참 할 말이 없습니다.   (일부만 예를 든 건데... 성경 구절들을 잇는 논리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힙니다. 걸려 넘어지는 사람이 충분히 생길 법도 합니다) 율법 조항이 "겉보기로 보기에" 얼마나 고차원적이고 좋은 법인지 그쪽으로만 접근하면 영락없이 율법주의로 빠지기 쉽습니다.   비유를 들자면 이렇습니다.제대하고 민간인 된 지가 언젠데 그렇게도 군인 행세하고 싶으면 혼자 그렇게 살면 됩니다.민간인이라도 군대식으로 살면 육신의 건강에 좋으면 좋지 나쁠 것 하나도 없습니다.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아주 규칙적으로 살면서 심신 단련하고.. 생필품도 아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치약 하나만 있으면 청소 다 하고.. ^^ 누가 부르면 관등성명 "병장 ○○○!"까지 해 주고..   그런다고 해서 국가에서 군인으로 알아 주는 건 아닌 게 문제일 뿐이죠.국가에서 현역 시절처럼 총기라도 지급해 주는 것도 아니고, 집 근처에 무슨 초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제 총까지 만들어서?? -_-)   더구나 남한테 이런 소리는 더욱 하지 말아야겠습니다.민간인 된 뒤라도 군기 빼지 말고 바르게 살아야 민간인 신분이 유지되지, 어영부영 굴었다간 다시 군대로 끌려간다거나..민간인이라도 아주 심한 중죄를 지으면 경찰이 아닌 헌병이 와서 잡아간다거나.. 군사 재판에 회부된다거나..그런 식으로 말입니다.   또 다른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죽을 병을 고쳐 준 의사가 너무 고마운 나머지 "환자 시절에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부과됐던 행동상의 각종 제약--이것저것 먹지 말고, 매일 무슨 약 반드시 먹고, 무슨 행동 하지 말고...--과 주의사항들을 앞으로도 모두 이행하면서 살겠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와는 또 반대로, 그런 것들을 이제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을... "앞으로 술 담배에 쩔어서 살아도 되고 진짜 내 마음대로 건강 따윈 내팽개치고 살아도 된다" 와 동급으로 알아듣는 것도 말귀를 못 알아들은 멍청한 짓이지요.   그리스도인과 율법의 관계도 바로 이런 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바람직하냐 안 하냐의 차원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신분의 차이이고 위상의 차이입니다. 완전히 차원이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이 아니라 아예 율법을 근본적으로 초월한 법 아래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 덧..이 글을 쓰고 나서 느끼는 건데,율법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자기 의'는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이 갖고 있는 '자기 의'하고 아주 비슷한 맥락인 것 같습니다."요즘 군대가 군대냐? 애들이 다 군기가 빠졌어. 내 때는 말이야.." 이런 식.. ㅡ,.ㅡ;;[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11:2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10 09:15:37 | 김용묵
요즘 목회를 하면서 장례식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입관 예배, 발인 예배, 하관 예배, 장례 예배, 추모 예배 등 죽은 사람을 보내기 위한 절차성 예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것들은 우리 조상들의 유교 혹은 불교 풍습을 그저 이름만 바꾼 것입니다.   "이런 것이 과연 기독교의 장례일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조만간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 이 문제를 다루어서 교회의 규칙을 세우려고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므로 장례예배가 아니라 장례식이라고 해서 한 번만 예식을 행하는 것이 죽은 자와 산 자들을 위해 필요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이러던 차에 전주 소망침례교회 목사인 김재근 형제가 글을 보내주었습니다. 좋은 내용이라 공유하고 싶어 올립니다. 좋은 의견이 있으면 답글도 주세요.   감사합니다.   죽음의 종교와 생명의 종교 기독교와 장례식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기독교식' 장례의식이라는 것이 참 어색합니다. 조문을 가게 되면 빈소에서 어떤 의식을 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신앙은 참으로 죽음의 의식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장례식의 종교의식이 실제 죽은 자를 위한다기 보다는 아직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하는 것이기에 '거창'할 수록 보기도 좋고 '위로'도 됩니다. 정말 죽음의 의식은 '죽은 자들'이 거행해야 제격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종교들은 죽음의 의식이 거창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잃어버린 인간의 눈으로만 보자면, 화려하고 거창한 의식속에서 조금이라도 위로를 얻을 것입니다.   49재를 거행하고 나니 이제 사랑하는 가족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종을 치고, 향을 피우고, 물을 뿌리고, 목탁을 두드리고, 경을 외우고..... 그렇지만 기독교에는 죽음의 의식이 없습니다. 사실 기독교식 장례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은 '생명의 종교'이기 때문이죠. 우리 주님은 생명이십니다. 그분이 장례식과 대면하면 언제나 죽은 자들이 살아났습니다. 생명이신 분께서 죽음의 의식을 가르치실리는 만무합니다. 기독교식 장례식을 말하자면, 죽음 앞에 슬퍼하고, 가족을 위로하고, 시신을 장사지내는 일입니다. 시퍼렇게 살아 계신 생명이신 분을 믿고 신뢰하는 신자들은 세상이 만들고 세상이 거기서 이득을 취하고 거짓 위로를 만들고 있는 '죽음의 의식'에 압도당하거나   종노릇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생명이신 분께서 속히 오셔서 아직도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죽음'에게 죽음으로 응징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11:2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09 14:37:05 | 관리자
  어제 밤 아이와 함께 요한복음 마지막 장을 읽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타나서 베드로와 함께 물고기도 잡고, 물고기를 구워먹기도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전 가끔 설명을 해 줍니다.   길게 하면 신경질 내니까(신경질 내는 이유 - 성경읽기를 빨리 마치기를 원하는데, 엄마가 설명을 하니까 길어짐.) 짧게 하지요.   "얘, 이건 부활체에 대한 거야." 부활체에 대한 설명을 하기도 전에    "알아요." 얼른 튀어나오는 아이의 말. 설명 필요없다는 얘기이지요.ㅋㅋ.       그런데, 우리 아이가 자기의 읽을 부분을 읽고 나서는   "잠깐..엄마, 예수님은 왜 제자들 옆에 계속 붙어계시지 도대체 어디를 가시는거예요?"   저의 대답..."글쎄..만나야하는 사람들이 많을터이니.. 이곳 저곳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았을까?"   "중요한 시기인데, 제자들 옆에만 계속 계셔야하지 않나요?"   아이는 그 때가 중요한 시기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저도 궁금하네요. 도대체 제자들 옆에 계시면서 자꾸 가르치셔야지 어디를 다니셨는지..   저의 상상으로는  이 사람, 저 사람 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하려 다니시지 않았을까..상상하는데..     혹, 아시는 분 , 또는 이 부분을 생각해 보신 분... 댓글 좀 부탁합니데이..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5 12:03:4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08 13:05:07 | 백화자
20세기에 인간이 이뤄낸 위대한 과학 성과 중 하나는 원자력에 대한 지식이다.학생들이 무려 고등학교나 대학 학부 수준에서 배우는 물리 교재에 chapter가 하나 추가될 정도로, 종전의 고전 역학과는 차원이 다른 지식이 추가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인간은 예전에는 미처 상상도 할 수 없던 어마어마한 동력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원자력 발전은 태양에 전혀 근간을 두지 않고 에너지를 얻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20세기 이후에 시작된 찬란한 전기 문명은, 교류 전기의 실용화와 더불어 원자력 발전도 큰 일조를 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원자력은 이내 핵무기라는 것을 만들었고, 국제 사회 정세를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바꿔 놓기도 했다. 예전에는 마음에 안 들면 애들처럼 서로 주먹으로나 툭탁거리고 싸우던 것이, 이제는 총을 손에 쥔 거나 마찬가지가 됐다는 소리이다.   현재까지 인류 역사상 자국민이 사는 도시에 핵무기를 맞아 본 나라는, 잘 알다시피 전세계에서 일본이 유일하다. 그것도 두 번이나 맞았다. 2차 세계대전의 말기에 유럽에 독일, 이탈리아는 다 항복하고 히틀러마저 제거됐는데 아직 일본만 유일하게 개기고 있어서 저랬다. '무시무시한 폭탄'을 맞고서야 정신을 차린 일본은 왕이 직접 서면으로 연합국에 항복하고, 자기 식민지들에 대한 권리도 일체 포기한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이 정말 극적으로 끝나고, 우리나라도 일제로부터 해방된다. 아마 우리나라가 이렇게 당했으면 미국하고는 완전 철천지원수가 됐을 것이다. 방사선 피폭은 대물림까지 된다. 그 데미지의 레벨이 6 25 때 무슨 노근리 학살 같은 거하고 비교가 되나?   잘 알다시피 원폭은 1945년 8월 6일에 히로시마 상공에 먼저 떨어졌다. 의역 좀 하면 '귀여운 꼬마애'뻘 되는 길이 약 3미터, 무게 약 4톤쯤 되는 Little Boy 폭탄이 어지간한 여객기 고도와 비슷한 9.5km 상공에서 전투기로부터 투하되었다. 타이머를 걸었는지 뭐 어떻게 activate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폭탄은 한참을 추락하다가 약 550m 상공에서 그대로 펑 터졌다. 수류탄도 그렇고 폭발물은 약간 공중에서 터져야 사방팔방으로 가장 큰 파괴력이 나오는 법. 이 원폭도 일종의 공중 폭발을 일으켰다.   곧바로 눈을 보호하기 위해 가글을 착용한 당시의 전투기 승무원들은 정말 경악할 만한 광경을 목격하게 됐을 것이다.이것은 보어, 페르미, 천재 컴퓨터 과학자인 폰 노이만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당대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일본 본토 지형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폭탄을 어디에서 투하하고 터뜨려야 가장 큰 피해가 나오는지까지 계산하여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그 첫 실험 대상으로 일본이 선택된 것이다.   눈을 상하게 할 정도의 엄청난 섬광이 비쳤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마어마한 불기둥과 무시무시한 후폭풍. 하늘이 어두워지고 그저 도미노처럼 힘없이 주저앉는 건물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순간.아마 핵실험 촬영 같은 것도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zoom 무지막지하게 당겨서, 과장 좀 보태면 천체 활동 관측하듯이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히로시마 시는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다. 죽은 사람 시체 사진을 보니까 거의 유대인 홀로코스트 내지 관동 대지진 학살 사진 수준이었다. 물론 그 며칠 전에 미국에서는 원폭 투하를 예고하고 어서 대피하라는 경고 전단지를 살포하긴 했었다고 한다.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고방식이 "설마? 뭐 좀 위력이 큰 폭탄 떨어져 봤자, 늘 하던 대로 방공호로 대피하면 되겠지" 수준이었으며, 결국 원폭에 고스란히 당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예화는 기독교에서 복음 전할 때 자주 인용, 등장하기도 한다.)   나는 일본에 대해 완전 몸서리치게 증오하거나 딱히 피해 의식이 있지는 않다. 원폭 맞아서 도시 전체가 저렇게 개떡이 되고 만 것은, "꼬시다 쌤통이다 메롱"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정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봐도 정말 일본이 자기네가 심은 대로 거둔 것이다.   우리한테 한 짓이 얼마인데! 특히 잊어서는 안 되는 그들의 죄악 중 하나는, 관동 대지진 때 민심이 흉흉해지니까 조선인들을 폭도로 몰아서 수천, 수만 명을 다 학살하고, 그걸 일본 경찰과 정부 당국은 일부러 묵인까지 해 준 사실이다. 독립 운동 항일 투쟁을 하던 사람도 아니고 멀쩡한 민간인을! 사태가 수습된 뒤에도 이 학살극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을 진 쪽은 일본에 아무도 없었다.   외모가 비슷하니까 일부러 한국인이 발음하기 힘든 일본어 단어를 발음까지 시켜서 사람을 죽였으며, 그러다 심지어 몇몇 자국인도 오인 살해 당했다고 한다. 성경에서 사사기 12장 5~6절을 읽어볼 것. 오히려 조선인을 단원으로 고용하고 있는 야쿠자 같은 조직에서 조직원의 목숨이 위태로우니 애써 숨겨 줬을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 저런 죄값쯤은 좀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원폭 피해자 중에서도 조선인이 일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자기가 저지른 죄에 대한 언급이나 진정한 반성과 사죄는 싹 회피하고, 오로지 핵폭탄을 맞아 자기네가 불쌍한 피해자인 것만 부각시키면서 동정을 호소하고 있으니, 경계해야 할 점이 아닐 수 없다. "다시는 이런 실수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일본 문화 특유의 뱅뱅 돌려 말하는 모호한 표현인데..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실수라고 생각하는 걸까?   '귀여운 꼬마애'를 실은 전투기를 조종한 사람은 폴 티베츠라는 베테랑 공군 조종사이다. 당시 3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대령이던 그는 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는 데 일조한 영웅으로 미국 내에서 추앙 받았으며, 나중에 원스타 준장으로까지 진급한 후 전역했다. 그리고 천수를 누리며 굉장히 오래 살다 2007년에 작고했다.그는 2002년이던가 미디어를 통해, 당시의 원폭 투하는 그저 명령에만 따른 것일 뿐 딱히 개인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회고했다.   사흘 뒤 나가사키 상공에 투하된 원폭은 원판보다 더 뚱뚱하고 위력도 좀더 강해진 것이었다. 하지만 평지인 히로시마와는 달리 나가사키는 지형의 기복이 큰 편이어서 히로시마 만한 데미지는 나지 않았다.   핵무기까지 가미된 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세계 지성인들의 세계관, 인간관은 정말 큰 변화를 겪게 되었음이 틀림없다. 아마 성선설에 대한 믿음이 크게 흔들리게 됐을 것이고, 이런 과학 기술로 이런 규모의 전쟁이 앞으로 더 터졌다간 진짜 지구가 멸망할 거라는 경각심을 갖게 됐을 것이다. 그러니 국가 위의 다른 중재 조직이라도 만들어서 세계 열강이 또다시 이런 끔찍한 전쟁에 도미노처럼 휘말리는 것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유명무실하던 국제 연맹도 없애고 국제 연합이라는 조직이 새로 생겼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세상에 전쟁이 없어지지는 않고 있다. 사악한 자에겐 결코 평화가 없다고 말하는 주님의 이사야서 말씀을 기억하자.   어쩌면 6 25 전쟁이 장기화되었다면, 냉전이고 나발이고 없이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10년이 채 안 지나서 한반도에서 거의 세계 대전급의 피터지는 싸움이 또 벌어졌을지도 모르며, 최악의 경우 핵무기가 또 동원되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맥아더 장군을 욕하고 비판하는 진영이 이런 점을 주로 들추곤 한다. 하지만 이런 진영은 그 불행의 근본 원인 제공자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언급이 없고, 저런 식의 주장을 하는 의도가 매우 불순한지라 본인은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불순하다.)   사실 6 25도 1951년 하반기 이후부터는 38선 인근에서의 지겨운 엎치락뒷치락 소모전 위주였기 때문에, 미국도 필요 이상으로 소련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도 않았으며 어지간해서는 승산 없는 이 전쟁에서 적당히 손 떼고 싶었을 것이다. 이승만, 맥아더 같은 짝짜꿍이 맞는 꼴통(?)들만이 오로지 북진 통일을 고집했던 것이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박정희 정권은 70년대 말에 우리나라도 전투기와 핵무기를 제외한 모든 무기를 국산화했다고 선언했다. 이는 박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국방 과학 연구소 연구원들이 헌신적으로 노력한 덕분이었다.   그는 더 나아가, 우리가 북한과 일본, 미국을 상대로 당당히 큰소리 치려면 우리도 핵무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정희가 부하의 총에 맞아 비명에 가지 않았다면, 그리고 이휘소 박사 같은 사람이 그렇게 허무하게 가지 않았다면 한국의 역사가 또 바뀔 수 있었을까? 얘기를 더 하자면 정치성 논쟁이 되므로 이 자리에서는 생략하겠다. (그런데 정작 이휘소 당사자는 오히려 유신 독재와 핵무기 개발을 강력 반대했던 걸로 유명하다. 김진명 씨의 소설에 나오는 설정은 허구이다 ^^)   아무쪼록 이 바닥으로 글을 쓰면서 또 느낀 것은, 역시 아는 것이 힘이고 냉혹한 세상에서는 힘이 최고라는 것. 어차피 강자와 약자가 둘 다 시편 20:7 말씀을 모르거나 안 믿는 상황이라면 말이다."무기를 만드는 자는 지배자가 되고 방패를 만들지 않는 자는 노예가 된다는 진리"는 돌도끼로 전쟁을 할 때부터 미사일로 전쟁을 할 때까지 인류문명이 만들어 놓은 진리이다. 과거에 우리나라가 힘이 없어서 일제에 주권을 빼앗기지 않았던가.   우리나라 국민들이, 일본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이 부족해서 양국의 국력 차이가 그 정도이고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게 절대 아니다. 일본에 있는 동급의 저질 찌질이들하고 같이 댓글 논쟁, 사이트 DDOS 공격이나 주고받으면서 그게 애국인 줄로 착각하지는 말아야 한다.일본으로부터 받아낼 건 비용 대 효율 최대로 받아내고, 말 없이, 모방을 통해 창조를 해 내고, 실력을 쌓고 기술을 개발하고 국부를 창출하는 것이 일본을 가장 수준 높게 이기는 것이다. 일본을 그런 방법으로 이기려고 애썼던 옛날 지도자의 공도 과와 더불어 객관적으로 인정과 평가를 받아야 하지 않나 싶다.   덧. 1. 이 글의 전반적인 논조로부터 느껴졌겠지만, 본인은 원자력 발전 찬성이고, 핵무기 개발도 그렇게 반대 안 한다. 남이 만들면 우리도 해야 된다 주의에 가깝다. -_-;; 그깟 인본주의적인 반핵 반전 운동 한다고 해서 세계 평화가 유지될 거라고 믿지 않는다.   2. 예전에 김문수 형제님의 글에서 무척 재미있는 견해를 본 적이 있고 본인 역시 이에 공감한다.'북녘'에 대해서 은근히 별로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던 것... 정말로 반공 교육의 영향인 것 100% 맞다. 통렬한 지적이다. ^^;; 본인은 비록 국민 교육 헌장 세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초등학교 때 반공 웅변 대회, <용감한 탈출>-_- 같은 Exodus를 연상시키는 반공 도서 정도는 접했다.   그 후 21세기가 돼서 셋째 하늘이 정말로 우주에서 북극이 향하는 그 방향의 '북쪽'에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약간의 culture shock을 경험했다. 진짜다. 어렸을 때의 세뇌는 이래서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세뇌되려면 좋은 것에 세뇌돼야 한다. 신명기에 나오는 율법 교육처럼 말이다.김 형제님의 글에 대해서 한번 댓글을 달려고 했는데 갑자기 웬 트롤이 출현해서 분위기가 영 흐려지면서, 미처 반응을 못 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11:2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08 09:59:51 | 김용묵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이 지옥에 엄청 많이 간다!"   지난 2003년엔.. 극심한 생활고를 비관한 나머지 세 자녀부터 먼저 떨어뜨린 뒤 자기도 투신 자살한 한 주부의 이야기가 전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최소한 어린애는 그나마 하늘로 갔으니 다행이겠지만, 그렇게 죽은 여인은 지금 어디에 있겠습니까?과연 하나님의 판결이 불공정· 가혹· 불의한 걸까요?크리스천들은 이 사실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묵상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부와 권력을 마음껏 누렸던 사람들, 떵떵거고 살면서 나쁜짓 실컷 했던 사람들, 혹은 대중들로부터 아주 좋은 평판 받고 존경 받았던 유명인사나 종교인이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에 지옥 간다고 말하기는 차라리 아주 쉽습니다. 그런 것을 대조하여 복음 전하는 만화 전도지 부류도 넘쳐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것만큼이나.. 정말 안쓰럽고 안타깝고 불쌍한 사람들도 고생은 고생대로 하다가 지옥 엄청 많이 갑니다.아니 어쩌면,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지옥 가도 싸 보이는 사람이 지옥 가는 것보다 저런 경우가 훨씬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후자가 표본 크기부터가 전자보다 압도적으로 더 크니까요.   특히 안타까운 게 뭔지 아세요?차라리 대놓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개독안티 부류도 아니고,"그래 나는 평생 나쁜 짓 너무 많이 했는데.. 지옥에 좀 가도 싸지""나 같은 사람은 예수 믿을 자격이 부족해" / "좀 나중에 믿을게"   같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자포자기형입니다. 너무 착해서 구원도 못 받는 타입.너무 죄에 쩔어서 산 나머지, 죄의 결과 때문에 괴로움과 비참한 고통은 실컷 당할 대로 다 당하고도, 죄를 죄라고 보는 감각이 무더져 버린 것입니다.   그 마음 상태야말로 그가 과거에 평생 지은 죄를 합한 것보다 더 큰 죄라는 걸 일깨워 줘야 합니다. 정말로 예수님도 못 믿을 정도로 너무 착하고 겸손한 건지... 아니면 그 말 속에.. "그냥 난 그래도 일말의 죄를 즐기며 살래"가 몰래 숨어 있는지는 사람의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이 판단하십니다.   마약 내지 연탄 가스에 중독되어 전신이 마비되고 죽어가고 있는데도, 뇌 조직이 녹을 때 너무 쾌감이 느껴지니까 "난 이 상태가 좋아" 이러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당신은 지금 중독 상태이고 죽어가고 있으니, 이곳에서 당장 나가서 맑은 산소 공급을 받고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걸 알리는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들이 지옥에 굉장히 많이 간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인이 복음 전파에 소홀해서는 안 되고 자극을 받아야 하는 강력한 이유 중 하나임을 지난번 이은희 자매님의 간증글을 읽으면서 느꼈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11:2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06 21:05:44 | 김용묵
새롭게 디자인된 팜플렛을 파일로 첨부했습니다(2010년 2월 10일).     예수 그리스도의 ‘내 교회’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I will build my church, 마16:18)는 웅대한 선언과 함께 예수님께서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교회라는 유기체를 세우셨다. 미래형으로 기록된 이 획기적인 선언 속에는 교회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교회의 소유주가 예수님 바로 그분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그러면 교회란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예배당을 교회로 알고 있지만 사실 교회 곧 ‘에클레시아’(ekklesia)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을 뜻한다. 즉, 구원받아 천국 백성이 된 성도들 자체가 교회이다. 구약의 이스라엘과 달리 신약 교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구원받은 성도라면 누구나 다 제사장이 된다는 것이다(벧전2:5,9). 그러나 주후 1세기가 지나가기도 전에 구약의 제사장 계급 체제로 돌아가 성도들 위에 군림하려는 무리가 교회 안에 생기기 시작했고 이들은 예수님의 신약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했다(계2:15). 그 이후의 교회 역사는 창조주시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기독교’(Christianity)와 창조물인 교회를 따르는 ‘교회교’(Churchianity) 사이의 심한 갈등과 반목의 역사이다. 즉 교회 역사는 ‘국가교회’(State church)인 ‘교회교’가 ‘자유교회’(Free church)인 ‘기독교’를 심히 핍박하고 박해해 온 역사이다.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참된 교회와 바른 교회사에 근거하여 ‘성도들의 피 흘린 발자취’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있을 말세의 배도가 바로 교회라 불리는 곳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큰 오해 많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천주교에서 나온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천주교가 아니라 유대교에서 시작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포함하여 구약 성도들, 열두 사도들, 첫 순교자 스데반, 첫 선교사 바울 등 대부분의 초대 교회 성도들은 천주교인이 아니라 유대인이었으며 성경의 대부분이 유대인에 의해 기록되었다. 천주교에서 초대 교황이라고 주장하는 베드로 역시 유대인이었다. 사실 베드로나 바울은 천주교를 알지도 못했다. 신약의 복음 또한 로마에서 시작되지 않았고 예루살렘에서 시작되고 확산되어 땅 끝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처럼 참 교회는 시작부터 천주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가 천주교에서 나왔다는 거짓말을 믿게 된 이유는 단 한 가지 때문이다. 그것은 곧 기독교회사가 필립 샤프 같은 자유주의자 즉 천주교의 영향을 받은 교회사가들에 의해 철저히 왜곡되었고 이처럼 ‘왜곡된 교회사’ 즉 엄밀한 의미에서 천주교회사를 ‘천주교에서 나왔으나 천주교와 같은 뿌리를 갖고 있는 프로테스탄트들’이 자기들의 교회와 신학교에서 여과 없이 가르쳐 왔기 때문이다.   고귀한 무리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시민으로 국가의 법에 순응하였으나 카이사르(가이사)가 자기를 주 하나님으로 선언하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카이사르는 자기를 신이라 부르면서 자기에게 경배와 희생을 드릴 것을 요구했으나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단호히 거부하였고 이에 따라 그들에 대한 무서운 핍박이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도덕이나 가치관뿐 아니라 심지어 황제의 법도 주 하나님의 법에 우선할 수 없다고 믿었고 결국 자기를 신으로 선언한 황제의 눈 밖에 나게 되었다. 한편 카이사르는 기독교와 바빌론 신비 종교를 혼합해서 자신을 우두머리로 하는 국가교회인 천주교를 구축하기 시작했고 많은 교인들이 천주교라는 배도의 넓은 길을 따라갔다. 한편 이것을 거부하는 참 성도들은 맹렬한 핍박을 받으며 맹수들의 밥이 되면서도 결코 국가교회의 일원이 되려 하지 않았다. 이런 고귀한 무리들은 자기 속에 영원토록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로 신앙 양심을 따라 국가교회가 아닌 자유교회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냐, 카이사르냐? 주후 313년, 대음모자 콘스탄틴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기독교를 로마의 국가 종교로 공인했다. 그 이후로 이 타락한 국가교회는 이교도들의 풍습에 근거한 마리아 숭배, 성인 숭배, 각종 우상 숭배, 제사장 체계, 교황, 추기경, 교부, 연옥, 면죄부, 유아 세례 등 도저히 그리스도인들이 용납할 수 없는 가증한 것들을 강제로 교회에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국가교회는 자기들의 범주 안에 거하려 하지 않는 자유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여 참 성도들을 화형이나 수장 등 각종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시켰다. 이단이란 말은 참으로 무서운 말이다. 중세암흑시대에 천주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 받으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피 흘린 발자취 예루살렘 교회에서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교회는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로 퍼져나가 1세기 후반에는 그 당시의 온 세상에 퍼지게 되었다. 또 국가교회의 모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짊어지고 도시를 떠나 산지에서 계곡에서 유랑하며 꾸준히 순례의 행보를 이어갔다. 주후 2세기에는 처음으로 소아시아에서 몬타니스트들이 사도 교회의 순수성을 외치면서 믿는 성도만이 교회의 회원이 됨을 주장했으며, 스스로 믿음을 고백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에게 베푸는 유아세례는 전적으로 비성경적임을 선언하고 재침례를 행했다. 주후 3세기에는 전 로마제국에서 노바티안들이 일어났다. 이들 역시 유아세례의 죄악을 폭로하며 교회의 순수성을 외쳤다. 이들은 그 순수성으로 인해 후에 ‘순수한 자들’이라는 뜻을 지닌 카타리들이 되었다. 그 뒤 4세기 초에는 아프리카에서 도나티스트들이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외치며 일어났다. 또한 7세기경에는 타우루스 산지에서 폴리시안들이 초대 자유교회의 맥을 이으며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선교하기 시작했는데 이들 역시 구원받은 성도들만의 침례와 그런 성도들만의 교회 회원권을 주장했다. 그 뒤 자유교회는 12세기경의 왈덴시스들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들은 알프스 계곡에서 바른 성경을 붙들고 오직 성경만이 최종 권위임을 외치면서 천주교회와 분리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불가리아와 보스니아에서는 보고밀이라는 이름의 자유교회가 천주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받으면서 급속히 퍼지기 시작했다. 한편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는 폴리시안의 뒤를 이은 알비겐시스들이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들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프로테스탄트/개신교 주후 1517년 천주교회의 사제였던 마틴 루터는 교황과 천주교회에 대항하며 ‘항거자’ 즉 프로테스탄트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신약성경의 자유교회에서 출발하지 않았기에 천주교회에서 완전히 분리되는 것보다는 그 안에 남아 있으면서 개혁을 이루고자 했다. 그 결과 루터교회는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핵심 교리를 제외하고는 천주교회의 악습과 전통을 거의 그대로 물려받아 생명이 없는 국가교회로 전락하고 말았고 결국 1998년 6월에는 다시 천주교회와 하나가 되기로 공식적으로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장로교회의 아버지 칼빈 역시 유아세례 등의 악습을 타파하지 못하고 제네바에서 국가교회를 구축하면서 재침례교도 같은 자유교회 무리들을 핍박하였다. 천주교회에서 나온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들은 교회가 다스리는 세상이 곧 그리스도의 왕국이라는 천주교회의 신념을 그대로 수용하여 한결같이 무천년주의나 후천년주의를 따랐고 성경 말씀 준수 측면에서 자유교회와 큰 차이를 보였다.   근대 자유교회 한편 종교개혁 시대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교회는 재침례성도, 메노나이트 등의 이름으로 온 유럽에 등장하여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회중 통치를 가르치며 믿는 자들만의 교회 회원권, 전 성도 제사장 직분, 국가와 교회의 분리, 양심의 자유 등을 외치기 시작했고 급기야 이민의 물결을 따라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17, 18세기 영국과 미국에서는 자유교회의 전통을 이어 받은 침례교인들(Baptists)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고 존 번연, 찰스 스펄전, 윌리엄 캐리, 아도니람 저드슨 같은 걸출한 인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도 처음에는 국가교회를 형성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침례교인들이 이것을 강력히 반대했고 결국 이들로 인해 국가와 교회의 분리,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이 헌법에 명시되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누구든지 양심에 따라 종교를 택할 수 있게 되었고 수많은 영혼들이 국가교회의 탄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현대 국가들의 대부분이 미국 헌법을 기초로 하여 이러한 자유들을 허락하게 되어 결국 전 세계 시민들이 자유교회의 투쟁으로 인한 인권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말세의 배도 지금 온 세상은 정치와 경제와 종교의 통합을 원하고 있다. 정치는 UN 주도 하에, 경제는 WTO 등을 통해 이미 통합이 시작되었으며, 종교는 1960년대의 제2차 바티칸 공회 이후 천주교회의 주도 하에 급속도로 통합되고 있다. 그 결과 WCC, NCC, 오순절은사주의, 뉴에이지 운동, 록음악, NIV, Living Bible 등의 타락한 성경, ECT(복음주의자와 천주교도의 연합) 등이 모두 천주교회의 통제를 받으며 기독교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제 머지않아 천주교회가 주축이 된 사상 최대의 국가교회가 우리 앞에 출현하여 다시 한 번 성도들을 핍박하게 될 것이다. 이 같은 말세의 배도에 대하여는 이미 사도 바울이 자신의 서신서들에 여러 차례 기록해 놓았다! ‘어떻게 루터로부터 출발한 프로테스탄트 루터교회가 천주교회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해 할 필요가 없다. 뿌리를 성경에 두지 않으면 누구나 배도의 길로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여! 당신은 지금 어느 길에 서 있는가? 배도한 교회와 철저히 분리된 사람들이 성경을 따라 피를 흘리며 남겨 준 발자취를 따를 때에만 배도의 거센 물결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과거 이스라엘에서는 아합 왕의 극심한 우상 숭배 속에서도 칠천 명의 남은 자들이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믿음을 지켰다. 당신도 그런 남은 자 중에 있는가? 성경대로 믿는 자가 구원을 받고 후에 주님께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크기를 보지 말고 내가 속한 무리가 순결한 자들인가 살펴보기 바란다. 부디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내가 과연 맹목적으로 ‘교회교’의 전통을 따르고 있지는 않은가 점검하기 바란다. 사랑하는 성도여! 지금 당신은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신 그분의 ‘내 교회’에 속해 있는가?     참고문헌 「천주교는 기독교와 완전히 다릅니다」「천주교의 유래」 「성경 바로 보기」「마틴로이드존스의 천주교 사상 평가」「오순절 은사운동 바로 알기」 「킹제임스 성경의 역사」「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출판사 그리스도 예수안에)   ‘성경 지킴이’ 그리스도 예수안에032-872-1184, www.KeepBible.com ‘진리를 선포하는’ 사랑침례교회032-664-1611, www.cbck.org
2010-01-04 12:48:59 | 관리자
오늘 아침에 어느 분이 다음의 글을 올려 달라고 부탁해서 올립니다. 글의 저자는 현재 의사라고 합니다. 내용이 너무나 성경적이고  합당하여 올리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손기철 장로의 치유집회에 대하여  손기철 장로의 책은 읽어본 일이 없습니다만 그가 진행하는 치유집회의 동영상이 갓피플 메인화면에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손장로가 행하는 설교의 내용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만 이 글에서는 치유 부분에만 집중해 보려 합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곳에서 정말로 치유가 일어나고 있는지 커다란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1. 신유는 오늘날도 일어나는가? 손기철 장로의 치유 행위를 분석하기에 앞서 보다 근본적인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습니다. 바로 신유(faith healing)가 오늘날도 일어나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답하기 전에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신유의 은사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과 “오늘날에도 신유가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은 전혀 다른 내용을 묻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풀어 설명하면 “하나님이 지금도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셔서 어떤 사람의 병을 직접적으로 낫게 하시는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내용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별 어려움 없이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며 성경에서도 그 근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약 5:16). 하지만 첫 번째 질문은 대답이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사도 시대와 마찬가지로 병자에게 병 낫기를 명할 수 있고, 그 결과 실제로 병의 치료가 일어나며,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언제 하나님이 병고침을 행하실지 정확하게 예측하여 얘기해 줄 수 있는 그런 은사를 가진 사람이 여전히 존재하는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이와 같이 전혀 다른 내용을 묻는 질문임에도 ! 불구하고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날 신유 은사의 지속 여부에 의문을 제기하면 다음 순간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의 가능성, 더 나아가 성경에 기록된 각종 이적의 사실성까지 의심하는 사람이라는 부당한 비난을 받게 됩니다. 저는 첫 번째 오늘날에도 신유의 은사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아니다”라고 대답하며, 두 번째 오늘날에도 신유가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에는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입니다. 첫 번째 입장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이 입장에 대해 이미 많은 책들이 출판되어 있기 때문이며, 이 문제에 저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오늘 다룰 내용과는 큰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문제, “오늘날에도 신유가 일어나는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부연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첫째, 신유라는 용어는 대단히 부적절한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이 용어는 하나님의 이적적 병고침이 마치 우리의 믿음 여부, 혹은 믿음의 강도에 달려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실제로 오늘날의 자칭 신유 은사자들은 병고침이라는 결과가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고 얼마나 능력 있는 사역자를 만나느냐에 달려있는 듯이 가르칩니다. 성도가 병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약 5:14), 그가 병에서 회복될 것인지, 그 병을 가지고 살아가며 연단을 받을 것인지(고후 12:8-9), 아니면 죽음을 통해 주님과 함께 거하는 복을 누릴 것인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신유라는 말 대신 로이드 존스가 사용한 이적치유 (miraculous healing)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이적치유 사건은 일반적인 생각보다 훨씬 적은 빈도로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것이 제가 이 글에서 힘주어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2. 이적치유의 진실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나에게 이적적인 치유가 일어났어요”라는 간증을 들었을 때 그 말의 진실성을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말은 그 간증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의 말에는 진정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진정을 담아 말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가 실제로 그 질병이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정말로 치료가 되었는지 판단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프랭클린 페인 주니어라는 의사이자 기독교 의료윤리 연구가가 이 문제를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의료의 성경적 접근>, 한국누가회출판부). 로이드 존스 목사도 그의 책 <의학과 치유> (생명의 말씀사)에서 이 문제를 언급합니다. 이 내용들을 제가 조금 변형해 인용하며 설명해 보겠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이적치유 사건을 간증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에게 정말로 그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게 만드는 몇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 세상에는 심인성질병 (psychosomatic illness)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심인성질병이란 환자는 증상을 호소하지만 신체에 실재적인 이상은 발견되지 않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만성적인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서 아무리 CT나 MRI 등을 찍어보아도 디스크나 골절은 발견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꾀병과 다릅니다. 꾀병은 실제로는 증상이 없으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심인성질병은 환자 자신은 실제로 증상을 느낍니다. 심인성질병의 증상은 매우 다양해서 가벼운 통증 호소로부터 신체 일부의 마비증세까지 폭넓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카리스마 넘치는 의사가 당신은 나았다는 암시를 강하게 줄 때 극적인 반응을 보이며 씻은 듯이 낫는 것도 특징입니다. 같은 일이 이적치유집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많은 사람이 신뢰하는 이적치유자의 한 마디에 몇 년을 알아오던 증상이 씻은듯이 사라지는 경험.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신체적 질병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환자와 의사 사이에는 심각한 의사소통 장애가 흔히 존재한다는 점입니다.환자와 의사 사이의 의사소통은 많은 의사들의 고민거리입니다. 의료현장에서 의사가 설명하는 내용이 환자에게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의사측의 원인도 있지만 자기 몸의 질병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환자가 선택적으로 듣는다는 사실도 매우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 나온 신유은사 간증집에 기도로 녹내장을 치유받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과에 가서 안압을 측정해 보고 녹내장을 진단 받았으나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다음날 가서 다시 검사했더니 녹내장이 씻은듯이 나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의사의 상식으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처음 보는 환자를 당장 녹내장으로 진단했다는 것도 이상하고 또 다음날 당장 완치를 선언했다는 것은 더 이상합니다. 아마도 첫날에 의사는 “안압이 높으시네요. 녹내장일 가능성이 있으니 검사를 해 보아야겠습니다.”라고 했을 것이고, 둘째 날에는 “오늘은 안압이 정상으로 나오셨네요”라고만 했을 것입니다. 이 의사는 녹내장이라고 진단한 적도 없고, 녹내장의 치유를 선언한 적은 더더욱 없는데 환자는 두 가지를 다 경험했다고 믿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경우는 암입? 求? 의사 입에서 ‘암’이라는 단어가 나오기만 한 것으로도 환자는 자기가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이적치유 집회에 다녀오면 엄청난 간증거리가 생기게 됩니다.   셋째는 그 유명한 위약효과(placebo effect)입니다. 가짜 약을 먹은 사람도 그것이 약이라고 믿으면 실제로 질병이 낫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잇습니다.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잠을 못자던 환자에게 매우 값비싸고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 진통제를 처방해주겠다고 말하고 진지한 자세로 생리식염수(소금간한 맹물입니다) 10cc를 링거액에 섞어주면 거짓말같이 통증이 사라지고 잠도 잘 자는 현상은 거의 모든 의사가 경험하는 일입니다. 위약효과는 너무나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약이 개발되어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밀가루로 만든 가짜 약을 먹은 사람들과 대조해 보아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이적치유 은사자의 강력한 암시는 가장 좋은 위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넷째, 질병의 자연사를 모르면 오해가 발생합니다. 어떤 병을 치료하지 않고 그냥 방치했을 때 어떤 경과를 밟는지 관찰한 것이 질병의 자연사(natural course)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는 것이 감기의 자연사라면 평생을 두고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는 것은 아토피, 류머티스 관절염 등의 만성질환의 자연사입니다. 질병의 자연사를 아는 것은 치료 효과를 판정하는데 필수적인 전제조건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예를 두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심한 감기로 개인병원을 찾아 일주일 치 약을 먹었으나 차도가 없는 사람이 참다 못해 대학병원을 방문합니다. 대학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먹자 거짓말같이 독한 감기가 떨어지고 이 사람은 대학병원의 교수가 역시 용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번에도 비슷한 증상의 심한 감기가 발생하자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용한 교수를 찾아가기로 마음 먹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번에 받아온 약은 효과가 없습니다. 일 주일 내내 고생하고서야 감기가 떨어져 나갑니다. 첫 번째 경우에 대학교수가 용한 의사로 인정받은 이유는 단지 환자가 감기에 걸린 지 일 주일이 지난 후에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 흔한 예는 아이들의 아토피입니다. 몇 년 동안 고생하? ?아토피가 이름 모를 풀을 다려먹고 씻은듯이 낫습니다. 하도 신기해 주변의 다른 집에도 추천해 주었는데 이번에는 효과가 그다지 신통치 않습니다. 왜일까요? 아토피는 수 개월~수 년을 주기로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는 자연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호전되려는 찰나 우연히 먹게 된 풀뿌리가 치료의 주인공으로 오인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아토피가 발생할 것입니다. 의학에는 우연을 감별하기 위한 연구방법론이 많이 개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적치유에서는 이런 효과를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다섯째, 검사의 특성 및 한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오해가 발생합니다. 질병을 진단하기 위해 행하는 검사에는 선별검사(screening test)와 확진을 위한 검사가 있습니다. 선별검사란 많은 사람들 가운데 특정 질병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가려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검사입니다. 선별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는 것은 그 질병에 걸렸을 확률이 다른 사람보다 높으므로 확진을 위한 검사를 시행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지 그 자체가 질병을 확진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CT나 MRI 촬영은 대표적인 선별검사입니다. CT/MRI에서 폐에 종양으로 의심되는 덩어리(종괴)가 발견되었을 때 조직검사로 확진되기 전까지는 말 그대로 ‘의심’ 단계이지 폐암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자 그 종괴가 없어졌다면 애초에 폐암이 아닌 폐렴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신유 간증들이 선별검사만 받은 상태에서 확진을 받은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섯째, 불가항력적 오진이 존재합니다. 현재로서 암을 진단하는 가장 확실하고 믿을만한 방법은 조직검사입니다. 극소수의 경우이긴 하지만 조직검사까지 시행하고도 심한 염증과 암을 확실하게 구별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장 흔한 것이 위궤양과 위암의 구분입니다. 둘 다 위벽에 움푹 파인 구덩이가 만들어집니다. 내시경을 통해 모양을 보는 것만으로는 둘의 구분이 안 되기 때문에 조직검사를 하여 확실히 구분하는데 아주 드물게 조직검사를 하여도 진단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대학병원급에서는 일 년에 몇 차례 나타납니다. 이런 경우는 검사를 반복하며 환자를 계속 관찰하며 조심스럽게 판정합니다. 하지만 경험 없는 병리학자가 이런 예를 접했을 때는 성급하게 위암으로 진단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평신도 성경공부 교사로 유명한 어떤 분의 간증을 읽어보니 중국에서 위암으로 진단 받고 이적치유를 경험한 내용이 나옵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분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일곱째, 통계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해가 생깁니다. 어떤 사람이 암에 걸렸을 때 병기(1기, 2기, 3기, 4기)가 결정되면 의사는 지금까지 알려진 5년 생존율을 말해 줄 수 있습니다. 4기(말기)의 5년 생존율이 20%인 암에 걸린 환자를 가정해 봅시다. 이 사람이 5년 후에도 살아 있을 확률이 20%라는 말이며 바꾸어 말하면 이 암의 말기 상태에서 발견된 환자 5명 중 4명은 5년 안에 사망한다는 말입니다. 10명의 그리스도인이 이 암의 말기 상태에서 치유집회를 찾았습니다. 치유 은사자는 그들이 모두 나았다고 선언했고 5년 후에 보니 그 중 2명은 실제로 살아있습니다. 이 두 명이 정말로 이적치유를 경험한 것일까요? 이 치유집회가 정말로 효력을 발휘한 것일까요? 환자수가 100명으로 늘어난다면 어떻겠습니까? 예를 들어 23명이 살아있고 97명이 사망하였다면 치료효과를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검증하는 것이 통계학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들어본 기억이 나십니까? 95% 유의수준에서 치유집회를 가든 안 가든 생존율은 똑같다는 귀무가설을 기각하기 위해서는, 즉 p값이 0.05보다 작게 나오기 위해서는 몇 사람이 생존해야 하는 것일까요? (조금 사잇길로 빠진 이야기지만, 이런 통계학적 검증을 거치! 지 않은 모든 치료행위는 그 주체가 의사이든 한의사이든 관계없이 사이비 의료행위입니다. 태반주사니, 봉침이니 아무리 이론적으로 그럴듯하게 떠들어도 그 효과가 통계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습니다. 이런 얘기하면 개원가의 의사들은 의대교수가 자기들의 어려움을 모른다고 볼 맨 소리를 합니다. 마치 신학자들이 알파코스의 신학적 오류를 지적하자 일선 목회자들이 교회성장을 위한 전도프로그램일 뿐인데 뭘 그리 시비냐고 투덜대는 것과 똑 같은 양상입니다.) 여덟째, 치유 간증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적지 않은 수의 경우 진단이 의사가 아닌 환자 자신이나 치유자에 의해 붙여진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간증 전체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게 됩니다. 최근에 타드 벤틀리라는 사람이 집회를 하자 주변 지역에서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군요. 인터넷에서 그 간증들을 찾아 읽어 보십시오. 제가 본 증례들은 객관적으로 사망이 증명된 경우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이적치유의 진실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정확한 진단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치료 효과의 검증이 필수적입니다. 치유집회에 참석하기 전에 그가 확실히 병이 있었음을 증명해주는 확진검사 결과(조직검사)가 있어야 하고, 집회 후에도 그에 준하는 검사를 시행해 병이 사라졌음을 환자의 증언에 의해서가 아닌 객관적인 방법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3. 손기철 장로 사례에 대한 분석 위에서 설명한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 2008년 7월 11일에 www.godpeople.com 메인 화면에 올라온 치유집회 동영상을 대상으로 손기철 장로의 사례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이 날 집회 동영상에서 손장로가 치유했다고 선언한 질병 혹은 상태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축농증 2) 갈비뼈 이상 3) 눈꺼풀 내려옴4) 어깨결림 5) 오른다리 마비 6) 영안을 열어줌7) 회한의 날이 끝나고 독수리 날개 치듯…8) 간경변 9) 자녀의 아토피 10) 등이 굽어진 사람11) 각기병 12) 악몽 13) 밤눈 어두움14) 위궤양 15) 담즙 이상 16) 왼쪽 폐 이상17) 고환이 부은 사람 18) 생리통 19) 오른쪽 골반 휜 사람20) 흑암의 세력에 묶인 자 21) 오른 엄지 발가락 발톱의 문제22) 왼쪽 대장 폴립 23) 4살 남자 아이 팔과 목의 아토피24) 심근경색 25) 악성 림프종 26) 골절 참석자들은 다음의 질병이 나았다고 간증하였습니다.27) 혹(?,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음) 28) 갑상샘의 1.8cm의 혹이 사라짐29) 성대결절 (성악가) 30) 기립성 저혈압 손기철 장로는 매 집회 때마다 성령님이 자신에게 직접 말씀하신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오늘 집회에서 OOO 명이 치유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기 오른쪽에 OO 환자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적어도 손장로의 진단에는 오류가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의사로서 위의 목록을 보고 있노라면 의심스러운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가장 좋은 확인 방법은 위의 환자들 중 몇 사람을 추적해 확진 검사를 해 보는 것이겠지만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항목들은 진실일 가능성이 극히 낮아 보이는 것들도 있음이 사실입니다. 하나씩 설명해 보겠습니다. 1) 축농증축농증은 손장로 집회의 단골 메뉴입니다. 제가 본 것만 벌써 세 번째 사례입니다. 왜 축농증이 자주 언급될까요? 환자가 현재 느끼는 뚜렷한 증상이 존재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치료 여부를 판단할 만한 뚜렷한 변화도 없는 만성질환이기 때문입니다. 주관적으로 나는 이제 나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그렇지 않음을 증명할 증상이 없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한 가지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짐작하건대 손장로 집회 도중 축농증이 치유되었다고 손 들고 나온 사람들은 코가 뻥 뚫리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간단히 실험해 봅시다. 콧구멍을 한 쪽씩 번갈아 막고 숨을 쉬어 보십시오. 평소엔 느끼지 못했지만 한 쪽 코는 막혀있지 않습니까? 30분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한 번 해보면 이번에는 아까와 반대편 코가 막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코 속 혈관의 팽창과 수축에 의해 일어나는 정상적인 생리현상입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양 콧구멍을 번갈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이 변화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열정적인 집회로 인해 눈물 콧물 범벅이 되고 양쪽 코가 모두 막혀버린 상? 꼬【??한 쪽 콧구멍이 열리는 순간이 평소보다 더 과장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자신을 축농증 환자라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은 이 순간을 축농증이 치유되는 순간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2) 갈비뼈 이상진단이 환자 자신과 치유자에 의해 붙여진 경우입니다. 3) 눈꺼풀 내려옴안검하수(ptosis)라 부르는 현상입니다. 제가 병이라 하지 않고 현상이라고 한 이유는 눈꺼풀이 내려오는 것 자체는 나이 들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간혹 암 등의 심각한 질병이 신경을 침범하여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손장로가 치유했다는 것은 이 중 어느 경우일까요? 단순히 노화 현상을 역전시킨 것이라면 치유집회가 아니라 성형집회일 것이고, 암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꺼풀이 문제가 아니라 암 치료를 선언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4) 어깨 결림어깨가 불편해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도 여러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 관절에 이상이 생겨 움직임이 제한된 사람도 있고, 관절에는 무리가 없는데 주변 근육이나 인대의 통증 때문에 실제 움직일 수 있는 범위보다 작은 범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후자는 사실 ‘무서워서’ 못 움직이는 경우입니다. 이 사람들은 치유자가 확신을 주며 움직이라고 하면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습니다. 5) 오른 다리 마비하지가 마비된 경우 실제로 심한 디스크나 종양 때문에 척추 신경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지만 팔 다리의 마비가 심인성 질환의 대표적인 증상인 것도 사실입니다. 이럴 경우 치유집회에서 증상이 사라질 확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특히 양쪽 다리가 아니라 한 쪽 다리가 마비된 경우 심인성 질환일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6)~7)은 질병이 아니니 지나가겠습니다. 8) 간경변간경변을 진단하거나 치료 효과를 판정하기 위해서는 초음파와 조직검사를 시행해야 합니다. 이 집회에서 나았다고 선언한 사람들은 반드시 병원에 가서 확인해야 합니다. 간경변 역시 환자 자신이 느끼는 증상의 변화가 거의 없는 병이기에 치유 은사자들의 단골 메뉴로 등장합니다. 9) 자녀의 아토피위에서 말했듯이 아토피는 언젠가는 저절로 좋아지는 병입니다. 오늘 이 집회의 참석자 중 자녀에게 아토피가 있는 사람들은 100% 효과가 나타납니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나중에 다시 나빠지면 부모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날 설교의 주제가 바로 이것 아닙니까?) 10) 등이 굽어진 사람가까이서 잡은 화면이 아니기에 이분의 정확한 상태는 모르겠습니다만 흔히 이야기하는 꼽추 수준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분별할 수 있습니다. 우선 진단이 환자와 치유자에 의해 붙여졌고, 설사 척추 측만증이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치유 여부는 방사선 사진을 찍어본 후에야 판정할 수 있습니다. 11) 각기병교과서에는 비타민 B 부족에 의해 생기는 병으로 항상 등장합니다만 우리나라 현역 의사 중 이병에 걸린 환자를 경험해 본 이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날에 혹시 각기병이 생긴다면 만성 알코올 중독자 정도에서 간혹 발생할 것입니다. 그런데 비타민 보충이라는 가장 확실한 치료법이 있는 각기병을 왜 치유집회에 나와서 치료 받으려 하는 것일까요? 혹시 각기병으로 인해 생겨난 마비 증상이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는 후유증을 남긴 경우라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12) 악몽 &#8211; 지나가겠습니다.. 13) 밤눈 어두움 (야맹증)각기병과 더불어 교과서에 비타민 A 결핍에 의한 질환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11)에서와 마찬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손장로가 각기병과 야맹증을 동시에 언급한 것으로 보아 오늘 치유 받을 질환의 목록을 성령님이 불러주셨을 가능성 보다는 의학책을 뒤적이다 눈에 뜨이는 진단을 죽 적어왔을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4) 위궤양위내시경을 해보기 전에는 진단도 치유 판정도 불가능합니다. 속쓰림 증상의 존재여부로는 아무 것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속이 쓰린 이유는 궤양으로 인해 상처가 난 상태에서 위산이 과다분비되는 것인데, 위산의 분비량은 심리상태에 크게 영향 받기 때문입니다. 15) 담즙 이상진단이 환자 자신에 의해 붙여진 경우입니다. ‘담즙 이상’이란 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16) 왼쪽 폐 이상진단이 치유자와 환자 자신에 의해 붙여진 경우입니다. 17) 고환이 부은 사람‘부었다’라는 말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이 날 집회에 모인 남성의 대부분이 자신의 고환이 부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음낭수종’을 말한 것이라면 이것 역시 확실한 치료법이 있는데 왜 치유집회에 왔는지 궁금합니다. 18) 생리통평소 생리통이 있으나 이 날 생리를 하지 않던 여성들은 어떻게 치유를 판단합니까? 다음 생리일에 다시 통증이 발생하면 이 또한 자기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게 된 것이지 않습니까? 19) 오른쪽 골반 휜 사람저는 이게 무슨 병인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이런 병도 있나 싶습니다. 평소 자세가 틀어진 것을 말한 것이라면 치유집회 와서 기도하기 전에 생활 속에서 바른 자세를 취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 아니겠습니까? 20) 흑암의 세력… -그냥 지나갑니다. 21) 오른 엄지 발가락 발톱의 문제‘문제’라는 것이 엄지 발톱의 무좀인지, 살을 파고드는 발톱인지, 사고로 절단된 발톱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떨어져 나간 발톱이 순식간에 다시 자라난 경우라면 이적치유로 인정할 만 합니다만 그게 그렇게 심각한 질환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22) 왼쪽 대장 폴립이것처럼 치유 효과 판정이 명쾌한 경우도 없을 것입니다. 치유를 선언 받은 환자는 당장 병원에 가 대장 내시경을 다시 한 번 해야 합니다. 최근에 보였던 폴립이 사라져 버렸다면 이적치유입니다. 하지만 오늘 손기철 장로의 설교 내용으로 볼 때 폴립이 그냥 그대로 있다면 환자의 믿음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3) 남자아이 아토피 &#8211; 9)와 같은 내용입니다. 24) 심근경색집회 장소까지 스스로 오신 것으로 보아 당장 생명의 위협이 있는 단계는 지나고 후유증으로 심장 기능이 저하된 환자일 것입니다. 이 또한 환자가 자각하는 증상이 없고, 치유 여부를 판정할 뚜렷한 변화도 없는 상태입니다. 치유를 확인하려면 병원에 가서 심장 초음파를 비롯해 여러 검사를 해 보아야 합니다. 25) 악성 림프종통계의 문제를 말씀드렸습니다. 악성 림프종은 진행된 정도에 따라, 그리고 조직학적 종류에 따라 생존율이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그 생존율보다 통계학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만큼 더 많은 사람이 5년 후에도 생존해 있어야 합니다. 26) 골절오늘 나오신 환자가 석고붕대를 얼마 동안 감고 있었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습니다. 하루 전에 확실한 골절이 일어났던 환자가 오늘 동영상처럼 걷는다면 이적치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한두 달 전에 일어났던 골절이라든지, 완전한 골절이 아니라 그냥 금이 간 정도였다면 아무 의미 없는 사례입니다. 27) 혹? &#8211; 잘 듣지 못해 지나가겠습니다. 28) 갑상샘의 혹갑상샘의 1.8cm 혹을 어떻게 진단 받았을까요? 초음파 검사를 했을 것입니다. 갑상샘이라는 장기는 두꺼운 캡슐에 싸여 있기 때문에 혹이 만들어져도 어지간한 크기가 되기 까지는 밖에서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습니다. 1.8cm 크기라면 아직 손으로 만져봐서 판단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닙니다. 진단을 초음파로 받았다면 치유 판정도 초음파로 해야 합니다. 29) 성대결절본인은 성대결절이 사라졌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을 하는 목소리가 왜 그리도 허스키하신 것일까요? 30) 기립성 저혈압누워 있다 일어났을 때 혈압이 떨어지는 병입니다. 체위의 변화에 혈압 조절 기능이 더디게 따라가는 상태이지요. 오늘 나오신 할아버지가 집회장소에서 누워 계셨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랜 시간 앉아 계시는 동안 몸은 이미 적응을 끝마쳤을 것입니다. 누워 있다 일어나는 것과, 의자에 앉아 있다 일어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동영상에 포함된 것은 아니지만 제 머리속에 강하게 남아있는 장면이 있는데 5월 2일자 갓피플 메인 화면에 올라온 동영상 중에 나오는 휠체어에 앉은 사람들이 걷는 장면입니다. 그 동영상에는 네 사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성큼성큼 걸어나온 사람. 이 사람은 애초에 못 걷는 사람이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증거는 없습니다만 한 번 직접 보십시오). 두 번째 부축 받아 나온 사람. 이 사람은 아마도 중풍의 후유증으로 팔, 다리의 마비가 온 사람인 듯 합니다. 양편에서 부축하여 억지로 걸어가는 것처럼 하였습니다만 이 사람이 정말 치유되어 걸은 것일까요? 동영상을 다시 보십시오. 그의 오른 팔이 어떤 상태인지. 치유가 일어났다면 다리야 체중을 지탱할 만큼 완전히 힘이 돌아오지 않았을 수 있다 하더라도 팔이 그렇게 축 늘어져 있을 수는 없습니다. 세 번째 사람도 비슷한 경우인 듯 하지만 자세히 보여주지 않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네 번째 사람은 아마도 태어나면서부터 뇌성마비를 앓아온 환자 같습니다. 이 사람도 억지로 일으켜 세우지만 걷게 하는 모습은 끝까지 보여주지 않고 편집하였더군요. 더 보여주었더라면 장애? ?인권단체에 학대로 고발해도 될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두 번째와 네 번째 사람은 전혀 치유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박수 치며 할렐루야를 외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동영상만 보고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손기철 장로가 훨씬 불리한 입장에 서 있습니다. 스스로 이 일이 성령님이 가르쳐 주신 것이라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단 하나의 예라도 거짓임이 입증되면 전체 사역이 무너지게 됩니다. 간증하러 나왔던 환자들이 제가 지적한 자료들이 포함된 의사의 진단서를 제출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리라 생각하지만 이런 일이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가톨릭에는 프랑스의 루르드라는 지역이 소위 ‘성모발현’과 이적치유로 유명합니다. 루르드 치유기적은 워낙 역사가 장구한 예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어난 치유 사건에 대해 의학적으로 분석한 논문들도 몇 개가 존재합니다. 이곳에서 치유를 경험했다는 환자들을 추적하여 검사한 것이지요. 그 결과는 참으로 처참합니다. 손장로의 치유집회에 대해 이런 검증을 시도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3. 보다 근본적인 질문 : 왜 치유 받으려 하는가? 다음 글이 이 문제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는 쉽게 무시해 버리지만 사실상 건강과 질병의 메커니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매우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범주 속에 나는 “신앙”을 포함시키고자 합니다. 내가 말하는 신앙이란 모든 종류의 신앙을 의미합니다. 만일 이 견해가 옳다면 그 어떤 종류의 신앙도 이러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 기독교적인 신앙 뿐만 아니라 카리스마적인 신앙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신앙, 심리학적인 요소, 강한 감정, 충격, 악령의 역사 등 수많은 요소들이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   진실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참된 기적들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기도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적을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또한 그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이적이란 부분적으로는 인간의 일반적인 영성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달려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달려 있습니다.   환자들은 가능한 한 빨리 질병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 하나님 뿐만 아니라 그 어느 곳에라도 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온전함”에 대해서는 좀처럼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들의 주된 관심은 질병의 증상이나 그에 따른 즉각적인 무기력감으로부터 벗어나서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다시금 사회에서 그들의 지위를 되찾는 데 있습니다.” (로이드 존스, 의학과 치유)   로이드 존스 목사는 자신이 임종하기 전 이 말의 진실성을 스스로 입증하였습니다. 대장암 말기로 더 이상 희망이 없어 항암치료를 중단한 후 치유를 위한 기도를 하는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지 말라. 내가 영광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   손장로의 치유 집회에 매달리는 많은 환자들이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09:0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04 12:17:31 | 관리자
구원받은 성도에게 하나님은 나의 구원자이기도 하고 아버지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며, 어떤 면모가 가장 부각되어 보이는가?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 의지를 존중한다. “넌 이제부터 내 것이니, 닥치고 찌그러져서 내 말만 듣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 안 그랬다간 뒈지는 줄 알아라”가 절대 아니다. 하나님이 그저 이런 분인 줄로 알고 하나님에 대해서 쓴 뿌리를 품었던 사람이 바로 창세기의 이브, 그리고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다.     “주인이여, 당신은 엄한 사람이라 뿌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내가 알았으므로” (마 25:24)   하나님은 한편으로는 두렵고 엄격하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자신과 대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사랑하신다.우리를 자상하게 대하신다. 시스템 구조적으로 안 할 수가 없어서, 의무적으로, 안 하면 벌 받을까봐 무서워서 행하는 게 아니라, 정녕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나의 모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자발적으로 성경대로 살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심히 담대하여 네게 합당한 일을 명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사랑으로 인해 네게 간청하노라. (몬 8-9a)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으며 또한 내가 말하는 것 이상으로 네가 행할 줄을 아노라. (몬 21)   빌레몬서를 읽어보면 바울의 필체에서 하나님의 저런 성품을 한결 엿볼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성품을 잘 이용하여 ‘효율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는 뻘짓을 안 하고 높은 기도 응답률을 달성하면, 정말 하나님도 기쁘고 나도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일석이조이다. “아브람의 잃어버린 13년”(창 16:16-17:1) 같은 일이 우리에겐 없어야 된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상에 눈이 멀어서 살아야 한다. 그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겨냥해야 하는 대상이며, 욕심이나 교만이 절대 아니다. “저 형제는 어떻게 해서 저런 상황에서 감사가 나올 수 있을까? 어째서 기도 응답률이 높을까? 저 사람은 평소에 성경 읽기와 기도 생활을 어떻게 진행할까?” 이런 것을 벤치마킹하고 경쟁하는 것은 아무리 지나쳐도 나쁘지 않으며, 모두에게 유익이 될 뿐이다. 이런 것에 제법 능숙해지고 나면 기도도 하나님의 입장에서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동족을 멸망시켜 버리면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게 됩니다.” (모세. 출 32:11-13)  “내가 한없이 불쌍하고 가련해지면 하나님께서 그 성품상 내게 긍휼을 안 베푸실 수가 없을 것이다” (다윗. 삼하 16:12)  “내가 연보를 받아서 기쁜 게 아니라, 너희가 내게 연보를 함으로써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보상이 쌓일 걸 생각하니 기쁘다” (바울. 빌 4:17)   이런 게 바로 수준 높은 기도이다.특히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놀고(play) 재롱을 부릴 줄 알았고(삼하 6:21), 징계를 받을 때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직접 떨어지길 원했다(삼하 24:14). 흔히 하나님과 친밀했던 인물로 아브라함이나 모세 같은 인물만 거론되지만 사실 다윗도 얼마나 하나님과 친밀했는지, 하나님과 마음과 일치하는 자라는 평(행 13:22)이 결코 빈말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과의 외교 테크닉이 능수능란해지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담대한 믿음이 동반된 집요한 간구는 물론이고 심지어 엉뚱한 돌발행동으로 인해 하나님을 놀래거나 감격스럽게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신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50명의 의인 조건을 10명으로 줄인 아브라함, 백부장의 믿음의 답변,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킨 모세, 누가복음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 천장을 뜯어서 마비병 환자를 예수님 곁으로 내려다놓은 친구들처럼, 성경에서도 그 좋은 예들을 찾을 수 있다. 당연히... 돌발 행동도 평소에 늘 하나님의 교제가 친밀하고 그분의 뜻과 사고방식이 일치가 돼 있는 사람이 해야 먹히지,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던 부류가 육신적인 기도 제목을 놓고 ‘뗑깡’을 부려 봤자 그런 식으로는 기도 응답은 어림도 없는 일일 것이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외교 수완을 생각해 본다. 그의 국내 통치 행적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여러 엇갈린 평가가 존재하며, 공과 과가 공존한다. 하지만 그는 외교 하나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탁월한 정치가였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6 25 당시, 남북이 분단된 채로 그냥 휴전해 버리고 적당히 전쟁을 끝내려던 강대국에 대항하여 감행한 반공 포로 석방은, 영국의 처칠조차 “저 영감쟁이가 노망이 들었다”고 빈정댔을 정도였다.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한미 연합 수색대를 만들어야 하는데 미국 대사관이 국군을 믿을 수 없다며 요청을 거부하자, 그는 차를 돌진시켜 주한 미국 대사 사무실에다 꼬라박겠다고 을러댄 끝에 요구사항을 관철시켰다. ( http://www.carlife.net/bbs/board.php?bo_table=information&wr_id=3651 )   그 외에도 이 사람은 워낙 머리 좋고 고집불통이었던지라, 전해지는 무용담(?)이 수도 없이 많다. 이 때문에 미국 정치인들마저 이승만 앞에서는 쩔쩔맸으며, 미국 내부에서는 골칫거리인 그를 몰래 축출할 음모마저 나돌았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지금과는 비교도 못 할 정도로 국력이 약하고 위태롭던 그 시절에도 이승만은 미국으로부터 정말 많은 국익과 외교성과를 얻어 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미국 대통령, 나중엔 맥아더 장군이 아니면 콧방귀도 안 뀌었던 놀라운 콧대의 한국인이다. 40년을 미국에서 독립 운동 하면서도, “우리나라는 독립할 것이고 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사람이다. 미국 시민권 따윈 없어도 된다”고 불편하게 살며 버텼던 사람이다. 갈 5:1을 영적으로 적용하여, 우리 민족이 앞으로 다시는 어느 방면에서는 다른 민족으로부터 속박의 멍에를 메어서는 안 됨을 염원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하나님과 저런 식으로 지낼 수 있을까? 물론 미국이 하나님과 같을 수야 없으며, 무모한 배째라 행동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계산적인 거래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런 식으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훗날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 사람이다. 천년왕국 때 최하 10개 도시를 다스릴 사람이다. 그러니 이런 세상적인 타협 따위는 할 필요 없다”처럼...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건전한 영적 귀족 의식(교만이 아닌)도 좋고, 우리가 하나님과 너무나 친밀한 나머지 그분을 믿고서, 세상에서 받은 시험에 대해 가끔은 저렇게 과감한 배짱을 행사하는 것도 신앙생활에서 좋은 추억으로 남을 거라 생각한다. 단, 육신에서 나온 욱하는 행동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이다.   또한 성경은 실제로 신앙생활을 그런 상거래에다 비유하기도 한다. 어떤 일을 벌이기 전에 비용을 따지고 수지가 맞을지 생각을 해야 한다. 사복음서 중에 이런 분위기를 가장 잘 읽을 수 있는 책이 단연 누가복음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몸과 머리 중에서 특히 머리를 나의 영적 유익을 위해 최대한 지혜롭게 동원해 보자. (발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역이용하여 잔머리를 굴렸고, 그 대가로 신약 성경에서까지 두고두고 악인의 대명사로 불리게 됐음도 기억하라) 하나님의 성품과 신앙생활의 본질을 가끔은 이런 방면에서 묵상하는 것도 나의 신앙을 더욱 성숙하게 하고, 능동적이며 다이나믹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거라 생각한다. ^^   * * * * *keepbible 가족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09:0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02 10:52:45 | 김용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