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칼빈이 요일 5;7절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우리도 이렇게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것은 아닙니다
종교개혁가들과 청교도들은 한결같이 KJV 성경과 공인분문을 전수한 성경들을 사용했고 삼위일체의 강력한 말씀인 요일 5:7절이 있어야 문맥또한 자연스럽습니다.
2016-04-17 22:24:00 | 김종설
안녕하세요.
요일 5:7절은 일명 "요한의 콤마" 로 알려졌으며. 거의 대부분 현대 역본에는 없습니다.
KJV 성경과 T.R. 본문을 비방하는 프린스턴대 비평 신학 박사 "메츠거"(Metzger)와 비평신학자들은 요일 5:7이 성경에 없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비평신학 박사 "메츠거"는 누구인가?
하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칼빈은 칼빈의 주석서에서 T.R. 공인 본문을 지지하며 요한 일서 5:7절이 성경에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저는 칼빈이 이렇게 믿었다고 우리도 이렇게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것은 아닙니다
종교개혁가들과 청교도들은 한결같이 KJV 성경과 공인분문을 전수한 성경들을 사용했고 삼위일체의 강력한 말씀인 요일 5:7절이 성경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것입니다.
""But as even the Greek copies do not agree, I dare not assert any thing on the subject.
Since, however, the passage flows better when this clause is added, and as I see that it is found in the best and most approved copies, I am inclined to receive it as the true reading. ""
(그리스어 필사본들도 어떤것들은 서로 일치하지 않지만 이 구절이 성경에 있어야 하는지 없어야 하는지나는 왈가왈부하지 않겠다.
그 이유는 요일 5;7절이 성경에 있어야 문맥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또한 공인된 최고의 우수한 사본들(the best and most approved copies) 이 이 구절을 담고 있다. 나는 이 구절이 있어야 참 하나님 말씀이라고 받아들이고 믿는다.)
http://biblehub.com/commentaries/calvin/1_john/5.htm(칼빈 영어 주석)
요일 5:7절이 왜 성경에 있어야 하는가?
이황로 목사님의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 을 인용해 봅니다.
예수님의 신성은 하늘에서 왔다.
(고전 15:47, 킹흠정) 첫째 사람은 땅에서 나서 땅에 속하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로부터 나신 [주]시니라.(고전 15:47, 개정)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전 15:47, 가톨릭) 첫 인간은 땅에서 나와 흙으로 된 사람입니다. 둘째 인간은 하늘에서 왔습니다.
(고전 15:47, 신세계 ***증인)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며 흙으로 만들어졌고,+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왔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아주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다.
(현대 역본들은 "주님"(Lord) 생략)
누가 “하늘에서 오신 주님이신가?” 오직 하나님만이 하늘에서 오신 주님이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다.
KJV의 이문은 다음과 같은 필사본의 증거들의 지지를 받아서 “주님”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있다.
대문자 필사본(Uncials): 코덱스 알렉산드리아 (주후 400년경), K, P. (역주: 사본 이름들). 소문자 필사본(Minuscules): 81, 104, 181, 326, 330, 436, 451, 614, 629, 1241, 1739, 1877, 1881, 1962, 1984, 1985, 2127, 2492, 2495. 모든 성구집: 모두 고전 15:47을 포함하고 있다. 고대역본들: 시리아 페쉬타(주후 170), 시리아 팔레스타인역 (주후 420), 고딕역(주후 341), 시리아 할크 렌시스역 (주후 616), 아르메니안역(주후 400).
초기 저자들: 오리겐, 바실, 크리소스톰, 맥시머스, 세릴, 유탈리우스, 데오도레트, 코스마스, 다마스커스 의 요한.
또한, 교리적으로 볼 때 어느 누구도 하늘로부터 온 자가 없는데, 이는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며 (딤전 6:16), 모든 사람은 땅으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예수님의 인성조 차도 땅으로부터 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성은 하늘로부터 왔다.
(요 3:13, 킹흠정) 하늘로부터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가지 아니하였느니라.(요 3:13, 개정)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 3:13, 가톨릭)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외에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요 3:13, 신세계 ***증인)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습니다.
질문 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는데 어찌하여 동시에 하늘에 계실 수가 있다 는 말인가?
(현대 역본들은 "하늘에 있는" 이 부분을 생략)
답변: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동시에 두 곳에 계실 수 있고, 따라서 요한 3:13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 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부패한 바티칸사본과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에 나온 NIV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증명구절을 삭제하고 있다.
(요일 5:7, 킹흠정)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요일 5:8, 킹흠정) 땅에 증언하는 셋이 있으니 영과 물과 피라. 또 이 셋은 하나로 일치하느니라.
(요일 5:7, 개역)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요일 5:8, 개역)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개역본엔 "하늘에", "땅에" 이런 단어들도 생략되어 있으므로 하늘과 <-- > 땅에서의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의 신비함을 감추고 있다.(저의 주해입니다.)
(계속해서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를 인용)
요한일서 5:7, 8절은 모든 현대역본들에서 삭제되어 있다. 이것은 “유명한 삼위일체 증명원문”이라고 불리운다. 현대주의자들은 이 구절이 성경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대부분의 그리스어 필사본에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7세기 이전의 오직 6개 그리스어 필사본에서 7, 8절을 삭제하고 있다. (9세기 이전에는 14 필사본).
배경: 에라스무스는 1516에 출판된 그리스어 신약성경 제 1 판에서 이것을 삭제했는데, 당시 라틴 벌게이트에는 나오지만 그리스어 필사본에서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나오는 원성을 잠재우기 위해 만일 이 부분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어 필사본이 하나만 발견되더라도 복구하겠다고 동의했다.
그리스어 필사본인 코덱스 61과 629가 제시되자 그는 1522년에 그의 성경에 포함시켰다. 이 필사본들이 15세기와 16세기라는 후대의 것이라 사람들은 이 이문들이 부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이라 답하는가?
i) 초기 교회의 저술가들:
-사이프리안, 주후 200-258년. “주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셨는데 또 아버지와 아드님과 성령님에 대하여 기록되기를, ‘이 셋은 하나이니라,’고 되어 있다.” 만일 사이프리안이 요한일서 5:7을 자신의 성경에서 주후 200-258년에 인용하고 있다면 이것은 합당한 이문(역주: 異問 혹은 독본讀本이라고도 하며 비평학에서 사로 상이점을 보이는 해당 문구를 말함: reading)구절이다.
그의 성경은 이 구절을 포함하고 있는 더 오래된 성경에서 필사된 것이다. 사이프리안은 요한이 요한일서를 기록한 지 100년 뒤에 살았다. 사이프리안은 점검해보려고 원본필사본에 접근했었을 수도 있다.
-프리스킬리안(Priscillian), 주후 350년. 스페인 감독은 요일 5:7을 인용하고 있다.
-이다시우스 클라루스(Idacius Clarus), 주후 360년, 프리스킬리안을 반박하며 이 구절을 인용하고 있 다. -바리마둠(Varimadum), 주후 380년. -카시오도루스(Cassiodorus), 주후 485년 -카시안(Cassian), 주후 435년. -빅터 비타(Victor Vita), 주후 489년. -제롬(Jerome), 주후 450년. -풀젠티우스(Fulgentius), 주후 533년. -Ps. 비질리우스(Vigilius), 주후 484년. -안스버트(Ansbert), 주후 660년.
ii) 초기 성경번역본들: 구 시리아역, 주후 170 구 라틴역, 주후 200,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이탈리아역, 4, 5세기. 이탈리아역, 7세기의 모나센시스. 이탈리아역, 9세기의 스페쿠룸. 라틴 불게이트역, 4, 5세기.
iii) 그리스어 소문자 필사본들: UBS(연합성서공회) 그리스어 신약성경, p. 824; 요한일서 5:7, 8에 관한 논쟁의 역사, p. 268. (역주: 아래 번호들은 소문자필사본의 고유번호임)
-221, 10세기. (이문異文). -636, 15세기. (여백란). -88, 12세기. (여백란). -61, 16세기. (코덱스 몬트포티아누스) -629, 14세기. (오토바니아누스). -918, 16세기. (에스코리알 필사본). -429, 14세기. (여백란). -2318, (부카레스트 필사본).
iv) 초기 자료들: 리버 아폴로제티쿠스, 주후 350년. 카르타지 회의, 주후 415년. v) 그리스어 문법이 이 구절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NIV는 7, 8절에서 문법성을 불일치시켰다.
질문 1: NIV가 요한의 콤마를 삭제하는 것이 옳다면, 7절에서 나오는 그리스어 남성 정관사 hoi [marturountes (ο. μαρτυρο.ντε. 남성복수 분사)=하늘에 증언하는 ....]가 왜 8절에 나오는 세 개의 그리스어의 중성(성 령, 물, 피)과 불일치하고 있는가? (역주: 즉, 두 단어들이 성[性: gender]이 서로 일치가 되어야 하는데 맞고 있지 않다는 뜻).
(성)령, 물, 피는 그리스어에서 모두 중성명사로 중성 정관사를 취하는데, 그렇다면, 7절에 나오는 정관사는 당연히 중성이 나와야 한다. (그러니까, 아예 7절 자체가 없다면). 하지만 7, 8절에 모두 정관사가 모두 (복수) 남성으로 나타난다. 왜 그런가?
질문 2: 7절과 8절에서 각각 남성 정관사 hoi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변: 그것은 요한의 콤마에서 나오는데 아버지와 말씀이 두 남성명사이기 때문이다. 이 두 명사와 연관되어 정관사의 성이 강력하게 지배하므로 뒤에 나오는 정관사들이 남성으로 나타난다.
이렇듯, 요한의 콤마가 그리스 성경원문에 포함되어야 하기에 그렇게 문제가 해결된다. 그러므로, NIV나 NWT는 요한의 콤마를 삭제함으로 그리스어 문법상의 문제를 가지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본 대로 7절의 남성 정관사가 뒤에 나오는 8절의 세 개의 중성명사들(성령, 물, 피)과 일치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질문 3: 그렇다면 어찌하여 요한의 콤마가 어떤 그리스 필사본에는 없는데, 라틴 필사본에는 있게 되었는가? 첫째로, 7절과 8절의 비슷한 어구들로 끝나니, 필사자가 7절에서 정신산만해 있다가, 8절을 필사하면서 그만 요한의 콤마를 우연히 누락시켰을 수도 있다. 이런 종류의 필사오류는 계속해서 필사하며 일어날 수 있다.
둘째로, 주후 220-270경에 그때는 그리스 크리스챤들 중에 아직 아리안 이단교리가 일어나지 않았는데, 사벨리아니즘(사벨리안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동일한 분으로 여기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에, 하나님 아버지도 죽으셨다고 가르쳤다. 요한의 콤마에서 “이 세 분 은 하나이시니라”는 말씀이 사벨리안의 이단교리,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은 동일한 분이라고 하는 것을 지지하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논쟁 중에 위에 언급한 대로 요한의 콤마가 누락 된 그리스 필사본이 우연히 발견되었을 때, 오히려 소위 정통파 사람들이 7절이 훼손된 것이 참 된 필사본이라고 쉽게 간주했을 수 있다. 그리스어를 구사했던 동방에서는 사벨리안주의 논쟁이 가장 격렬하게 벌어졌으므로, 요한의 콤마는 만장일치로 거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와 스페인 같은 곳의 라틴 필사본들은 사벨리안주의 영향이 그렇게 크지 않았으므로 요한의 콤마가 유지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원인이 라틴 필사본에서 요한의 콤마가 강하게 제시되어 있고 오늘날에도 우리는 그것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 이유다.
자료: “KJV Defended,” E. F. Hills, p. 204-208. (역주: 이 책은 keepbible.com에서 번역하여 출간되었음)
2016-04-17 10:36:11 | 김종설
귀한 글 감사합니다.
현대 역본들의 카톨릭 편향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8
2016-04-16 11:52:08 | 관리자
허 형제님!
참으로 귀한 글을 올려 주시니 대단히 감사합니다.
다음을 보시면 헨리 모리스 박사님의 주석 성경이 있습니다. 물론 킹제임스 성경이지요.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4&write_id=92
샬롬
패스터
2016-04-16 11:47:37 | 관리자
허 형제님!
이토록 중요한 글을 올려 주시니 대단히 감사합니다.
다음을 보시면 헨리 모리스 박사님의 주석 성경이 있습니다. 물론 킹제임스 성경이지요.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4&write_id=92
샬롬
패스터
2016-04-16 11:44:33 | 관리자
그분의 아들의 이름 (His Son's Name)
Henry M. Morris
"하늘에 오르신 분이 누구냐 혹은 내려가신 분이 누구냐? 바람을 자기 주먹 안에 모으신 분이 누구냐? 물을 옷에 싸신 분이 누구냐? 땅의 모든 끝을 굳게 세우신 분이 누구냐? 그분의 이름이 무엇이며 그분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네가 말할 수 있느냐?" (잠언 30:4).
어떤 가정생활에 있어서도 독생자의 이름을 짓는 일은 언제나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 흥미진진한 이름짓기 가운데서도 선지자 아굴(Agur)(잠언 30:1)이 특별히 깊은 관심을 가지고 알고 싶어하던 이름은 물과 바람과 그리고 땅의 모든 끝을 정하신 바로 그 우주창조의 주재자의 아들의 이름이었다.
실제로는 그도 어쩌면 하나님이 아들을 가졌다는 것을 처음 알고 상당히 놀랬을는지 모른다. 이스라엘의 선지자였던 그로서는 모세의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는 물론, 신명기 6:4에 담긴 위대한 단정의 말씀,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를 여러 번 인용하였을 것이기에 하는 추측이다. 어떻게 창조의 하나님이 아들을 가진다는 말씀인가? 하고.
하나님께서 아굴을 시켜 솔로몬 왕의 잠언 중 매혹적으로 독특한 제 30장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것말고는 그에 관해서는 전혀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였던 지혜로운 사람인 것은 분명하였다. 그리고 아마 솔로몬이 잘 알고 신임하였던 사람인 것 같다. 그는 다윗과도 아는 사이였었던 것 같다. 최소한 다윗의 시편(詩片)들에 친숙하였던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다윗이 노래한 시편 2장에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의미심장한 언급이 있다. '…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이 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 내가 이교도들을 네게 상속물로 주고 땅의 맨 끝 지역들을 네게 소유로 주리라.' (시편 2:7, 8).
아굴도 다윗의 미래의 후손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에 관해서 아마 다윗이나 솔로몬한테서 들었던 것 같다. '그는 내 이름을 위해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왕국의 왕좌를 영원토록 굳게 세우리라.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 ' (사무엘하 7:13, 14; 또한 역대상 17:13). 이 수수께끼 같은 예언은 부분적으로는 솔로몬을 지칭하는 것 같으나, 그 영원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솔로몬을 넘어 다윗의 보다 더 위대한 후손으로서 어떻게든 하나님의 아들이 되실 분을 지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실상 신약(히브리서 1:5)의 관점에서 조망해 보고 우리는 이제야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특정한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이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아굴이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을 물었던 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또한 그는 모세의 책에서 이미 하나님을 일컫는 여러 이름들에 - 특히 '하나님 (Elohim)'과 '주님(여호와)' 그리고 '주님(Adonai)' - 틀림없이 친숙하였으면서도 새삼 창조주의 이름을 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아들의 아버지로서 그의 또 다른 이름이 있어야만 했다. '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아굴은 물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 (The Name of the Father)
비록 아굴의 특정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구약성경 안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새 이름은 '아버지'보다 더 아래격인 호칭은 있을 수 없다. 비록 '아버지' 라는 단어 (히브리어로 아브(ab))가 구약성경에 500번이 넘게 보이지만, 저자들 중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아브 (또는 아바(abba), 아브와 동일한 뜻의 아람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를 때때로 이스라엘의 아버지라고 (예컨대, 예레미아 3:19에서 미래의 왕국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하시면서) 하셨다. 언젠가 한 번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지으시고 노예로부터 건지셨기 때문에 그는 그들의 아브가 되신다는 것을 환기시킨 적이 있다 (신명기 32:6). 그러나 구약성경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 예가 있다면 - 위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언급을 제외하고 (사무엘하 7:14; 역대상 17:13) - 이것이 아마도 아굴이 자기 생전에 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예이었을 것이다.
그런 다음 하나님의 아들은 드디어 이 세상에 나타나시자, 상황은 온전히 변하고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 그는 당신의 재판과 십자가형이 집행되기 바로 전날 밤에 그는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아버지여 … 세상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 거룩하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키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 오 의로우신 아버지여, …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밝히 드러내었고 또 드러내리니 … '(요한복음 17:1, 6, 11, 25, 26) 하셨다. 그 이름은 명백히 '우리 아버지'였다. 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 주실 때, 특별히 기도 서두를 '우리 아버지'로 시작할 것을 일러 주셨다. (마태복음 6:9).
'아버지' (희랍어로는 pater)라는 단어가 신약성경에서는 약 500번 보이는데, 인간의 아버지들은 물론 하나님을 지칭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사도들 모두가 빈번히 사용하였다. 한 번은 긴급한 상황에서 주 예수는 당신의 아버지에게 기도를 드릴 때, '아바 아버지여(Abba, Father)' (마가복음 14:36)하고 불렀다. 이 기도는 그의 체포가 있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있었다. 비록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에게 '아바' 라고 불렀던 사람은 없었지만, 그리스도는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이것은 삼위일체 神格의 제일 깊숙한 자리에 앉아 계실 당신의 아버지를 부르는데 더없이 친밀한 호칭임에 틀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하나님의 권속으로 받아들여진 우리들까지도 - 상황이 허락할 때면 - 우리들의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를 똑같이 그 경이로운 호칭으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너희는 다시 두려움에 이르는 속박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 삼으시는 영을 받았느니라. 그분을 힘입어 우리가,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르짖느니라.' (로마서 8:15). '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영을 너희 마음속에 보내사,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르짖게 하셨느니라.' (갈라디아서 4:6).
아마 이것으로서 세상 끝까지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새 이름에 관한 아굴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것 같다. 이제는 아굴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은 무어라 불러야 합니까?'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이 라 불려지게 될 것이다 (His Name Shall Be Called Wonderful) (사 9:7, 킹흠정)
하나님은 또 한 사람의 선지자에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려서 보내셨던 때가 솔로몬과 아굴이 세상을 떠나고 근근 300년이 지난 후였다. 그 때에 하나님이 놀라운 선지자 이사야를 시켜 저 두 가지 위대한 예언을 보내주셨던 것이다. 그 예언이라면 우리 크리스천들이 성탄절 때마다 두고두고 낭송하는 말씀이다. 즉,
'…처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14).
'임마누엘'은 물론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의미하기에 그것은 곧 태어날 처녀의 아들은 다름 아닌 인간으로 육화하신 하나님 자신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 다음 얼마 후에 하나님은 이 아들의 이름에 관해서 놀라운 예언을 보내주셨다.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를 기억하라] 그의 어깨에는 정권이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이, 조언자, 강하신 하나님, 영존하는 아버지, 평화의 통치자라 할 것이기 때문이라. (이사야 9:6).
얼마나 경이로운 이름인가! 하지만 이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임마누엘!'이라고 불리는 이름을 가진 분에게 이 이름들처럼 합당한 이름들이 더 있을 수 있을까!? 이 분이야말로 약속되기를 유다의 처녀의 몸에서 태어날 사람이면서도 또한 하나님, 인간의 몸으로 육화하신 하나님, 우리를 닮은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실 하나님이시다! 이 어찌 경이롭다 하지 않으리오.
그의 이름을 '놀라우신 이(기묘자) (the Wonderful)' 라는 것이 조금도 이상할 리 없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에 '기적적'이라는 뜻이 있다. 기적적인 개념과 처녀 몸에서의 탄생을 빼고서는 하나님이 인간으로 결코 육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인간의 죄의 본성을 물려받았을 것이기에 유일하게 거룩한 하나님이 될 수 없었으리라. 그의 이름은 진정 '놀라우신 이'가 당연하다.
하지만 이 이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는 또한 인류의 위대한 모사로서 타락한 인간성을 되찾아주는 하나님의 사랑의 본성을 완벽하게 전해줄 수 있는 분임이 틀림없다. 인간-하나님이신 그가 마침내 이 땅에 오셨을 때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지만 무한히 지혜로운 뜻을 담아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말씀하셨다. 심지어 하나님의 적들까지도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도 이 사람처럼 말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요한복음 7:46)하고 탄복하였던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그 예언의 뜻은 실질적으로 그 두 단어 - '놀라우신 이(기묘자) (Wonderful)'와 '조언자(모사) (Councillor)' - 를 합쳐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해석도 또한 맞는다. 그는 인생살이에서 필요한 모든 주제들에 대한 '놀라우신(기적적인) 조언자' 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있었기에, 어떤 문제에 대한 자문을 구해도 그는 결코 외면하든가 얼버무리지 않았다. 그분이야말로 하늘이 보내주신 가장 놀라우신 참 상담자였기에, 모든 주제에 대해 완벽하게 말씀해 주셨던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이 '강하신 하나님' 임을 또한 주목하여야 한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로 인해서 그가 神格 중에서 (삼위일체 가운데서) 두 번째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육화 이전의 '그는 하나님과 동등하였다' (빌립보서 2:6). 심지어 그는 스스로 해(害) 받음을 허락하신 다음에도 그는 죽음 그 자체를 정복하였기에 '…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이 내게 주어졌느니라' (마태복음 28:18) 라고 선언할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또한 '영존하는 아버지' - 또는 수많은 권위자들이 번역한 바를 따르면 '영원의 하나님' 이기도 하다. 그는 공간과 물질은 물론 시간의 창조자다.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고…'(골로새서 1:16), 그리고 '…만들어진 것 중에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더라' (요한복음 1:3). 그리고 비록 그가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었지만, 그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한복음 10:30) 라고 선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또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만 할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평화의 통치자 (The Prince of Peace)'의 자격이다. 비록 그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는 또한 인간이다. 그러므로 그만이 유일하게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이를 중재할 수 있는' 성공적인 참 중재자(중보)가 될 수 있다 (디모데전서 2:5).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며....' (고린도후서 5:19) 세계에 참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는 '… 십자가의 피를 통해 화평을 이루사…' (골로새서 1:20). 그러므로 '그는 위대한 화평케 하는 자' 이시다 (마태복음 5:9).
이 다중차원의 이름들이 어찌도 영광스러운지요!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인간이신 바로 이 분에 관해서 언급하면서, 예레미아 선지자는 '…그의 이름 곧 그를 일컬을 이름은 이것이니 곧 주 우리의 의라' (예레미아 23:6) 라고 하였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성별과 구속이 되셨으니' (고린도전서 1:30). 하나님 아버지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5:21).
이름을 예수라 하라 (Thou Shalt Call His Name Jesus)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예언의 내용이 이루어질 시간이 마침내 다가오고 있을 때, 하나님은 마리아라는 천사 같은 유다의 처녀와 약혼 중에 있던 어느 소박한 목수한테 가브리엘 (Gabriel)천사를 보내셨다. 이 두 약혼자들은 천년 전에 살았던 다윗 왕의 후손들이었다. 천사는 요셉에게 마리아가 비록 임신 중이지만 여전히 청순한 처녀이고, 이사야의 위대한 예언의 말씀을 이룰 사명을 부여받았노라고 알렸다.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하니라'(마태복음 1:21).
이 때보다도 먼저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보내져서 비슷한 말씀을 '보라, 네가 네 태에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리라' (누가복음 1:31) 라고 전했다. 그런 다음 그는 '…그런즉 또한 네게서 태어날 그 거룩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리라'(누가복음 1:35) 라고 놀라운 진술을 부언하였다.
'예수 (Jesus)' 라는 이름은 이사야와 예레미아가 예언하였던 고매한 이름보다는 훨씬 단순한 이름 같이 보인다. 유대인들 중에서 이미 그 이름 - 여호수아, 이사야, 호세아, 예수아 (Joshua, Isaiah, Hosea, Jeshua) - 로 알려진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 이름들은 모두 다 바로 그 이름의 변형이다. 그러나 그 이름은 이 모든 이름들을 포용한다는 것을 안다면 놀랍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이 이름이 단순히 '여호와께서 구원하시리라' 또는 '우리의 구주 여호와' 라는 뜻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은 하늘에 계시는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부여한 인간의 이름이다. 그리고 그 이름은 타락한 세상과 죄에 빠져 용서와 화평과 영생을 소망하는 남자와 여자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그의 총체적 전도사역을 내포한다.
아직도 남은 이름들이 더 있다. 신약성경에서는 그의 이름이 신약의 최초의 장에 언급되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님이 태어나시니라.' (마태복음 1:16). 이를 보면 그는 예수라고 불렸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라고도 불렸다.
즉, 그는 바로 그 '그리스도 (the Christ)'로서 이스라엘이 장구한 세월 기다리던 '메시아(Messiah)' 임을 알 수 있다. 이 두 이름은 실질적인 직함으로서, 희랍어와 히브리어로서는 각각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뜻한다. 육신을 입은 그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당신의 영원한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았던 것이다. 우리의 영원하신 선지자이신 그는 '육신이 된 하나님의 말씀' (요한복음 1:1, 14) 이 되어 우리들에게 '아버지와 아버지의 뜻을 세세무궁토록 선언하신다' (요한복음 1:18). 우리의 위대하신 대제사장 되신 그는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심을 보건대 그분은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느니라' (히브리서 7:25). 마침내 '그분께는 그분의 옷과 넓적다리에 왕들의 왕, 주들의 주라고 기록된 한 이름이 있느니라' (요한계시록 19:16). 그리고 그가 우리의 영원하신 왕으로서 돌아오실 때 '…그분께서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로다' (요한계시록 11:15).
이와 같이 하여 그의 인간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런데 아직은 또 다른 이름이 하나 있다 - 말하자면, 세례명이라 할까 - 그 이름은 그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 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 그것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13) 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이신 예수일 뿐만 아니라, 주님 (Lord)이시다. 그의 부활이 있은 후, 베드로 사도는 유대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그 동일한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로 삼으셨느니라' (사도행전 2:36) 하였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 그의 온전한 이름은 언필칭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도 그에게 봉사하고 그를 존경하려면 앞에 언급된 여러 가지 경이로운 이름들을 다 사용하여도 좋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His Name Is Called the Word of God)
그런데 그가 다시 오시는 날, 그를 명예롭게 받들어야 하는 이름이 또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이 창조하시고, 또 당신의 보혈로 되찾은 이 세상으로 언젠가는 권세와 영광 속에 다시 돌아오실 것이다. 사도 요한은 그의 개선하시는 모습을 예언적인 환상으로 볼 수 있는 은혜를 허락 받았었다. 그 때 그는 주님이 앞으로 오실 세상에서 불릴 경이로운 이름 세 가지를 들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요한계시록 19:11). 그는 지금도 우리들의 '충성된 대제사장'(히브리서 2:17) 되시고, '미쁘신 조물주' (베드로전서 4:19)가 되시며, 그리고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요한계시록 3;14) 이다. 그의 영원한 이름 중의 하나는 충성되고 참되신 이 이시다.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 장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포함되었다. 즉, '…이 말씀들은 신실하고 참되도다…'(요한계시록 22:6), 그것은 그 말을 하시는 분이 영원히 신실하시고 참되신 이이시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우리는 '…그분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요한계시록 19:13)의 말씀을 알고 있다. 그는 '태초의 창조하시는 이름' (요한복음 1:1-3)이었다.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한복음 1:14)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가 원수를 이기고 우리 지구에 개선하실 때 다 이루심을 나타내는 장엄한 승리의 말씀이다.
그러고도 마지막 남은 이름이 있으니, 그것은 그가 '왕들의 왕, 주들의 주'(요한계시록 19:16)가 되심이다. 그 위대한 날에 전 우주는 하나님이 그에게 모든 이름들 위에 있는 이름을 주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그분에게 주사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과 땅 아래 있는 것들의 모든 무릎이 예수라는 이름에 굴복하게 하시고 또 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라고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2:9-11).
아굴이여, 여기 그대에게 줄 대답이 있소. '그의 아들의 이름 (His Son's name)'은 믿을 수 없을 만치 위대하여, 그 이름을 다 일컫는 데는 필설이 부족할 것이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 (Wonderful)' 말고도 우리가 그의 말씀 속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아름다운 이름들이며, 또한 틀림없이 영원의 시간 중에서 더 많은 이름들을 가지게 될 것임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가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고 일러준 그의 인간의 이름을 특별히 사랑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Lord Jesus Christ)' 이시다. 그리고 그 많은 그의 이름들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받고 네 집이 받으리라..'(사도행전 16:31).
하나님의 책을 마치는 데는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의 아들이 하신 이 아름다운 말씀으로 마감하는 것이 적절하였으리라.
'이것들을 증언하신 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 하시는도다. 아멘.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요한계시록 22:20, 21).
Henry M. Mor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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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CR URL : http://www.icr.org/bible/tracts/hissonsname.html번역자 : IT사역위원회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40
킹제임스흠정역 교정본 입니다.
2016-04-15 17:41:31 | 허광무
성경의 무오성에 대하여 창조과학회에 올라온글.
성경 구절은 개역성경으로 기재된 부분을 킹제임스흠정역으로 대체하였습니다.원본의 영문 Henry M. Morris 박사님은 킹제임스성경을 보시는 분 입니다.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 (The Bible and Jesus Christ)
Henry M. Morris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들은 행하지 아니하느냐?” (누가복음 6:46)
모든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독생자로 믿고 그를 구주로, 그리고 주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위임한 위대한 사역에 헌신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 (마태복음 28:19, 20).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분이 명령(분부)하신 '모든 것'을 그가 가르쳐 주신대로 모든 족속들에게 가르쳐야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권위자이신 까닭은 그분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1:16).
그분이 가르쳐주신 모든 진리 중에서 두 가지 근본적인 교의(doctrines)가 있어서, 나머지 모든 교의들이 이에 의존합니다. 그 하나는 성경의 말씀이 갖는 글자 그대로의 무오성 (verbal inerrancy of Scripture) 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태초에 하나님이 이루신 특별한 창조(special creation)입니다.
문제는 이 무오설의 진리를 믿는 많은 크리스천들도 그 창조 교의의 뜻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그 창조 교의의 뜻에 대한 그 권위를 수용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서,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께서 성경에 관해서 어떻게 가르쳤는가를, 그런 다음 창조에 관해서는 어떻게 가르쳤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분이 이 땅(지구)에 계시는 동안, 그에게는 구약성경만 있었을 것임은 물론입니다. 복음서의 기록자들은 그분이 성경의 말씀들을 하나님에게서 오는 오류 없는 말씀으로서 수용하셨다는 것을 명백하게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자주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고 또 참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 말씀들이 참이고, 또 권위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컨대, 결혼과 이혼이라는 중요한 문제에 관한 질문을 받고 그는 최초의 남편과 아내에 대한 창세기의 설명을 인용하는 것만으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주셨습니다.
”…처음에 그들을 만드신 분께서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런 까닭에 남자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하신 것을 너희가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그들이 더 이상 둘이 아니요, 한 육체이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마태복음 19:4-6).
여기서 주님은 창세기 1:27과 2:24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두 말씀은 최초의 남자와 여자의 창조에 대해 상호보완적인 설명으로서, 주님은 그 설명들을 진리로 그리고 서로 양립하는 것으로 수용하시고, 모든 미래의 결혼에 대한 신성한 모범으로 설정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실 때, 그분은 성경 말씀들 가운데서 적절한 구절을 인용하시는 것만으로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마태복음 4: 4,7,10, 사탄의 질문에 각각 신명기 8:3, 6:16; 10:20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그는 ”기록되었으되…” 하고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으로 만사가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성경을 성령의 감동에 의한 말씀으로 글자 그대로 수용하였습니다. 그냥 생각으로만 받아들였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번은 유대인들이 그분이 ”스스로를 하나님이라” 자칭한다고 하여 그분을 돌로 치려고 하였을 때, 그분은 시편 82장 6절의 말씀으로 스스로를 변호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너희 율법에,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라, 하였노라, 하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자들을 그분께서 신들이라 하셨으며 또 성경 기록은 깨뜨리지 못할진대 아버지께서 거룩히 구별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인 내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그에게, 네가 신성모독한다, 하느냐?” (요한복음 10:34-36).
그분의 주장은 전적으로 시편 82:6에 있는 한 단어, 즉 '신들'(gods) 이라는 단어에 근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성경을 성령의 감동으로 쓰인 말씀으로 믿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마태복음 5장 18절의 말씀입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마침내 다 성취되리라.”
라고 기록된 말씀입니다. '일점(one jot)' 이란 것은 히브리어 알파벳 중에서 가장 작은 글자이고, '일획(one tittle)' 이란 것은 두 개의 유사한 모양을 한 글자들 사이를 변별하는데 흔히 사용되었던 작은 표시였습니다. 구약성경 안에 있는 성령 감동의 말씀들 가운데서도 이보다 더 강렬한 표현방법을 쓴 진술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진술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모든 진실한 크리스천들은 그의 본을 따라 성경의 권위를 높이는 안목을 견지하여야 하겠습니다.
신약성경에 관한 한, 그분은 당신의 말씀들이 정확하게 보전될 것임을 우리들에게 확실히 하였습니다.
”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가복음 13:31).
사실상 신약의 모든 말씀은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 (요한복음 16:13).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너희가 그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14:26).
신약성경의 마지막 장에서, 예수님은 다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 (요한계시록 22:18, 19).
그냥 관념만이 아니고 '이 책의 말씀'이 강조되고 있는 점을 주목하여야 합니다. 혹시라도 어느 누가 이 경고의 말씀이 그리스도한테서 온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생길까 저어함인지, 그 다음 절이 이렇게 밝혀줍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 하시는도다. 아멘.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20).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절대무오의 말씀이란 것을 믿고, 또 그렇게 가르치셨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따라서 그분을 믿고 또 좇기를 소망하는 우리는 마땅히 그분이 행하시던 바와 같이 성경의 절대무오성을 믿고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던 그분의 선지자들은 물론 그분의 모든 사도들이 그렇게 행하였습니다. 우리도 마땅히 그렇게 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경이 성령의 감동(inspiration)으로 쓰였다는 점과 성경의 무오성(infallibility)과 권위(authority)를 믿어야 하는 데는, 이것 말고도 물론 다른 이유들이 많습니다. 성경의 저자들 (모세, 이사야, 바울 등등)은 모두 한결 같이 그런 권위를 가지고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성경 안에는 이루어진 예언의 말씀들이라면 수백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놀랄만한 과학적 통찰도 또한 수없이 많습니다. 성경의 역사기록들은 알려진 세속사의 모든 사실들과 일치하고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성경에 담긴 독특하고 강력한 구원의 메시지는 최소한 1500 년이라는 긴 세월을 통하여 40 여명이 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쓰여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모든 부분이 빠짐없이 일치되고 일관된다는 것은 성령의 감동에 의해 쓰여진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넓고 넓은 온 세계에서 이와 같은 책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증거보다도 더 위대한 증거는 그리스도(삼위일체 신격에서 두 번째 인격)께서 성경 속의 모든 말씀에 담긴 오류 없는 권위를 인정하고 그렇게 가르쳤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창세기의 역사성을, 특히 창조를 설명하면서 가르치셨다는 것을 앞에서 이미 살펴본바 있습니다 (마태복음 19:3-8 참조). 예수님은 또한 의인 아벨의 살해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그리하여 의로운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마태복음 23:35) 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역시 노아 시대의 세계적 규모의 대홍수가 있었다는 역사적 진실성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노아의 날들에 이루어진 것 같이 사람의 아들의 날들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로 들어가던 날까지 그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7:26, 27).
이 사건이 어떤 특정 지역에 한정되었을는지 모른다는 관념을 그는 이 사건을 그의 재림과 비교하는 것으로써 부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쓸어버릴 때까지 알지 못하였나니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24:39). 그리스도께서 전 지구적 대홍수(global flood)로 믿으셨던 것이 사실인 이상, 오늘날의 '점진적 창조주의자들(progressive creationists)'도 자신들이 옹호하는 '국지적 홍수(local flood)' 개념을 재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주님은 아브라함의 생존시에 있었던 소돔과 고모라의 파괴적 대재앙의 역사성도 가르치셨습니다 (누가복음17:29).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권속들에게 기적같이 내리신 만나 (요한복음 6:32), 불타는 수풀 속에서 모세에게 보여주셨던 사건(누가복음 20:37),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사건 (요한복음 3:14), 독특한 솔로몬의 지혜 (마태복음 12:42),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요나의 경험 (마태복음 12:40), 다니엘의 놀라운 예언들 (마태복음 24:15), 그리고 구약성경에 기록된 도저히 '믿기 어려운' 그 모든 말씀들을 낱낱이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수백만 년 전이 아니고) 최근에 이루어진 창조 때부터 있었던 사실도 가르쳤습니다!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니” (마가복음 10:6).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그곳에 계셨던)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이미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창조로부터 46 억년 후에 지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때 그곳에 있지도 않았던) 현대의 많은 과학자들이 우리들에게 억지로 이 오래된 연대를 믿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분은 최근 창조의 진실성을 이렇게 암시하셨습니다.
”이로써 창세로부터 흘린 모든 대언자들의 피를 이 세대에게 요구하리니” (누가복음 11:50).
즉,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창세 그 순간부터 유혈의 수난을 받고 있다는 말씀은, 창세 이후 46 억년이 지난 후로부터 그랬었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다가오는 ”..그 날들에 고난이 있으리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創初) 세계가 시작된 때부터 이때까지 그런 고난이 없었고 이후에도 없으리라.” (마가복음 13:19) 라고 말씀하실 때, 그는 창조 이래로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권속들 위에 자질구레한 환난이 많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 중에서 단 한 자라도 그 진실성에 의문을 품는 크리스천들에게, 또는 몇몇 현행 과학적 주장들과 보조를 맞추려고 성경을 억지로 풀어보려는 (베드로후서 3:16) 크리스천들에게, 또한 성경의 어느 부분이라도 사사로이 풀어보려는 (베드로후서 1:20) 크리스천들에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즉, 그들은 과연 주님 앞에서 그러는 이유를 설명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우리 각 사람이 자신에 관하여 하나님께 회계 보고를 하리라.” (로마서 14:12)
라고 하신 로마서의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날이 왔을 때, 그리스도가 믿고 가르치셨던 것을 믿고 가르쳤다고 회계보고(직고)할 수 있는 입장이 최선이 아닐까요? 창세에 관한 역사적인 기록에 관한 문제라면 우리는 그가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종교지도자들을 반박할 때 하신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들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요한복음 5:47).
그분은 ”성경 기록은 깨뜨리지 못할진대” (요한복음 10:35)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성경을 폐하려 애쓸 것입니다. 새시대주의자들 (New Ager)과 신비주의자들도 성경을 폐하려 들는지 모릅니다. 세속주의자들이나 쾌락주의자들도 성경을 폐하려 할 것입니다. 온갖 형태의 회의론자들과 심지어 타협적인 크리스천들까지도 성경을 폐하려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을 폐할 수 없습니다! (The Scripture cannot be broken! )
* Dr. Morris 는 ICR의 창시자이며 명예회장입니다.
출처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66&series_id=A0004&orderby_1=editdate%20desc&page=1
원본 : www.icr.org/i/pdf/btg/btg-125.pdf
2016-04-15 12:13:00 | 허광무
악한 자들의 배후에는 역시 카톨릭과 마귀가 있군요.
너의 마법에 세상 모든 민족이 속았도다...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강한 미혹을 받아 거짓말을 믿는 자도 '속은 자들' 중 하나겠지요.
큰 힘을 보태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6-04-14 23:51:52 | 김재욱
** Bruce M. Metzger(메쯔거) 비평신학자에 대해서는 여기 객관적인 평가 자료들을 참고 하세요
메쯔거는 성경 불신자요, 로마 카톨릭과 긴밀하게 교제하며 에큐메니즘(종교다원주의) 사상을 퍼트리는데 크게 일조를 했던 인물 입니다.
http://www.biblefortoday.org/articles/metzger.htm
http://prophets-see-all.tripod.com/46648.htm
2016-04-14 18:32:48 | 김종설
눈과 귀를 성경말씀에 고정시키고 세상과 사람들의 말과 글을 잘 분별하고 무엇이
올바른가를 판단하는 것, 이것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형제님. 올바른 분별력을 가질수 있는 좋은 자료들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16-04-14 11:48:04 | 김영익
분별해야될 좋은글 감사합니다.
2016-04-14 10:57:08 | 최재영
태평양 너머에 이렇게나 든든한 지원군이 있어 정말 든든합니다.^^
현대 역본들을 탄생시키고 또 그것이 권위를 얻도록 만든 유명한 신학자들의
학식과 명성에 무조건 압도당하는 것은 자칫 영적 수렁에 빠지는 패착일 수 있습니다.
자신과 가족의 영적 안위는 자기 스스로가 지켜야지요. 하나님께서는 학식에서
유명 신학자들에게 훨씬 뒤지는 우리 모두에게 충분히 그들에게 압도당하지 않을
분별력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아낌없이 사용하여 나와 가족의 영적 안위를 지키는
지혜로운 우리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귀한 글에 감사합니다.
2016-04-14 10:21:15 | 김대용
좋은 글 감사합니다. 뿌리가 악하니 그 열매도 부패한 것이 나올 수 밖에 없네요.
KJB를 공격하는 비평신학 자료들의 근본이 카톨릭 교황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작품들임을 잘 알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6-04-14 08:46:51 | 장용철
안녕하세요?
(Aland)알란드 헬라어 신약 본문과(text) 연합성서공회 UBS 헬라어 신약 본문(text)은 거의 쌍둥이입니다. 모두 모체가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수정 비평 본문(critical text)이기 때문입니다.
(United Bible Societies)연합성서공회 헬라어 신약본문 주 편집자에는 개신교의 Bruce M. Metzger (메쯔거) 와 같은 비평신학자들뿐만 아니라 교황이 될 뻔 했던 예수회 출신 카톨릭 추기경 Carlo M. Martini(마르티니) 가 주 편집자로 활동했습니다
예수회 출신 추기경 Carlo M. martini (마르티니) 는 누구인가?
교황이 될뻔했던 말티니는 카톨릭 교황청 신학자이며 UBS 연합성서공회의 편집자들과 함께 Aland (알란드) 신약 헬라 성경 본문과 UBS 신약 헬라어 성경 본문 등의 주 편집자 (editor)로 일했습니다.
Martini(말티니는) 진화론을 믿었으며 동성애를 옹호하였고
카톨릭 이단 교리들과 종교다원주의 이단 교리들을 현대역본들에 편입시키는데 일조를 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회 추기경 마르티니(Martini) 와 함께 UBS 헬라어성경
편집에 참여했던 메쯔거 혹은 메츠거 (Metzger) 박사는
프린스턴 신학대 교수를 지냈으며 20세기 가장 유명한 비평신학자라고하는데요.
메쯔거 (Metzger) 역시 카톨릭 교황의 하수인이며
카톨릭과 개신교의 종교일치를 위해 에큐메니컬 사상을 성경에 편입하고 말씀을 훼손하는 인물입니다.
이 사진은 메쯔거 (Metzger)가 카톨릭 교황을 만나 자신이 번역한 에큐메니컬 영어 성경(NRSV) 을 전달하는 장면이며 메쯔거 (Metzger) 는 본인의 저서 " Reminiscences of an Octogenarian " 에는
교황을 만난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T.R. 공인 본문 신약성경과 KJV 를 공격하는 비평신학 자료들은 사진 보시는것처럼 카톨릭 교황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작품들 입니다.
Nesle- Aland 신약 헬라어 주 편집자 Aland (알란드)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교황청은 1960년 6월 "종교일치 사무국" 을 설치하고 공식적인 종교 일치 운동을 시작하였는데요. 교황청 종교일치 위원회는 Pontifical Council for Promoting Christian Unity (PCPCU) 1968년도에 카톨릭과 개신교 두 종파가 "종교일치" 하기 위해서 카톨릭과 연합성서공회(UBS)가 "1968년도 성경 번역 원칙" 에 서로 동의하는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The Secretariat for Promoting Christian Unity and the United Bible Societies are pleased to present to all concerned a revised version of the 1968 “Guiding Principles for Interconfessional Cooperation in Translating the Bible”
JOHANNES Cardinal WILLEBRANDSPresident,Secretariat for Promoting Christian Unity Lord DONALD COGGANHonorary President,United Bibles SocietiesPIERRE DUPREYSecretaryULRICH FICKGeneral Secretary
자료 출처 : http://www.vatican.va/roman_curia/pontifical_councils/chrstuni/general-docs/rc_pc_chrstuni_doc_19871116_guidelines-bible_en.html
위에 링크를 들어가 보시면 로마 카톨릭의 종교통합 사무국에서 "종교일치" 를 하기 위해서 연합성서공회(UBS) 와 결의한 것을 확인하실 수가 있습니다.
이들은 로마 카톨릭의 성경 본문 (critical text) 를 등급 "A" 로 정하고
초대교회와 마틴루터와 제네바 성경, 킹제임스 성경 등등 초대교화와 종교개혁의 "공인본문" (T.R) 을 하등급 "C" 로 등급을 정하였습니다.
""(1) The Greek New Testament text employs the rating A for those texts in which the reading printed in the Greek text is quite secure. B indicates there is some minor doubt and C indicates that there is considerable doubt. For further explanation of this rating see the Introduction to The Greek New Testament. ""
오늘날 현대 역본들의 번역 기준은 "A 등급 카톨릭 본문" 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종교일치 하기 위해서 연합성서공회(UBS) 와 로마 카톨릭이 공식으로 인정하고 결의하였다는 <사실> 입니다.
연합성서공회(UBS) 와 카톨릭 교황 프란치스코의 만남
https://youtu.be/NXcJ6_l45_c
연합성서공회(UBS) 에 투입된 카톨릭 추기경들
사진 자료 출처 : UBS(연합성서공회)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unitedbiblesocieties.org/united-bible-societies-greatly-encouraged-by-popes-commitment-to-family-issues/
위 사진을 보시다시피 개신교의 유명한 비평신학자로 알려진 Aland(알란드), Metzger(메쯔거) 등은 카톨릭과 함께 종교일치 운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분들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오직 유일한 구원자이시다는 성경의 진리를 떠나 에큐메니컬 운동에 기꺼이 동참한 인물들입니다.
최근 부산에서 열렸던 WCC 총회에도 카톨릭 신학자들이 참석하였고 교황청 종교일치 사무국 자료에 의하면 카톨릭 신학자들 12명이 WCC 에서 "faith and order" (믿음의 진술문) 을 작성하는데 일조를 하였습니다.
""At the same time, the Pontifical Council also aims to develop dialogue and collaboration with the other Churches and World Communions. Since its creation, it has also established a cordial cooperation with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WCC), whose headquarters are in Geneva. From 1968, twelve Catholic theologians have been members of the "Faith and Order" Commission, the theological department of the WCC.""
자료 출처 : http://www.vatican.va/roman_curia/pontifical_councils/chrstuni/documents/rc_pc_chrstuni_pro_20051996_chrstuni_pro_en.html
T.R. 공인본문과 KJV 를 비평하는 자료들은 대부분 이런 종교일치 운동하는
에큐메니컬 신학자들이 만든 것들이며 카톨릭 교황청의 "1968 성경 번역 원칙"에 의한 것들이며 신빈성이 전혀 없는 것들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우리에게 보존된 성경을 주지 않았습니다.
성경 기록들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불완전한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불완전한 사람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충분히 성경의 보존을 완벽하게 가능케 하십니다.
(렘 32:17, 킹흠정) 아, [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주의 크신 권능과 뻗은 팔로 하늘과 땅을 만드셨사오니 주께는 너무 어려운 일이 없나이다.(렘 32:27, 킹흠정) 보라, 나는 {주}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니라.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느냐?
하나님께는 너무 어려운일이 하나도 없으십니다
감사합니다.
** Bruce M. Metzger(메쯔거) 비평신학자에 대해서는 여기 객관적인 평가 자료들을 참고 하세요
메쯔거는 성경 불신자요, 로마 카톨릭과 긴밀하게 교제하며 에큐메니즘(종교다원주의) 사상을 퍼트리는데 크게 일조를 했던 인물 입니다.
http://www.biblefortoday.org/articles/metzger.htm
http://prophets-see-all.tripod.com/46648.htm
2016-04-14 07:08:03 | 김종설
*킹제임스 성경은 안식교와 무슨 관련이 있나요?(특별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gXpC6eNU2_4
2016-04-13 21:35:51 | 관리자
감사합니다.
성경에서 중요한 말씀들이 반복된다는건
https://youtu.be/hlVLfIvCg_U
대니얼 형제의 동영상을 보고 확실히 알았답니다. 이 형제님께 감사드려야하죠
이런 귀한 형제님들이 더 많았으면 좋게습니다 ^^
2016-04-13 21:07:51 | 김종설
현재 성경들의 근간이 되는 두 개의 사본 중 소수 사본을 뿌리로 하는 성경들의 번역은 제각각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틀렸다는 점에서 하나임을 여실히 보여주네요.
잘못된 성경으로 인해 이단 교리가 만들어지니 이단들은 그러한 성경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성경에서 중요한 말씀들이 반복되는 이유를 명확하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셨네요.ㅎ
올려 주시는 글들에서 형제님의 위트가 느껴질 때 진중한 가운데서도 미소가 지어지네요.
귀한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6-04-13 04:35:59 | 김상희
온전히 보존된 하나님의 바른 말씀인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 대한 확신은 물론이요.
바른 말씀이기에 널리 알려야하는 당연한 이유 외에 특별히 세계의 이슬람화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킹제임스 흠정역의 전파가 시급함을 알려주는 글이네요.
이미 유럽의 이슬람화에 대한 심각성과 미국을 비롯해 우리나라가 이슬람들에게 타겟이 되고 있음은 여러가지 자료들을 통해서도 알려지고 있는데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물론이요 이번에 출간한 '이슬람 바로알기' 책자를 지인들로부터 시작해서 널리 알리도록 우리 모두 힘써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6-04-13 03:51:48 | 김상희
요즘 정동수 목사와 흠정역 사역과 보급에 대하여 교계 언론에 비방의 글을 올린 것을 오늘 보았습니다.글을 보니 여러 오해도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런 글을 실어 놓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요즘 이슬람에 관련된 사역을 하면서 이시기에 흠정역을 한국에 허락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 되었습니다.현재 전국에 이슬람 성원이 15개 있고 기도 처소는 3,000개로 파악됩니다.성원은 군대로 말하면 사단이고 기도 처소는 소대입니다. 제가 사는 인천 도화동에도 인천 이슬람 성원이 들어와 있습니다.저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이슬람 성원이 있는 그 앞을 걸어 다녔고 지금은 우리 막내가 학교를 갈 때 그곳을 지나갑니다.
최근에 <이슬람 바로알기>를 발간해주셔셔 무척 감사드립니다.제가 볼 때 흠정역을 사용해서 이슬람을 대처해야 할 일이 무척 많아질 것입니다.대학가에는 많은 이슬람 유학생이 들어와 있습니다.이들은 이슬람 선교사로 들어와 있습니다.한국에서 기독교 여성과 결혼해서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정치계에 진출해서 최종적으로 한국을 이슬람국가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 지역교회 목사가 있다면 무척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우리의 딸들이 어느 날 이슬람과 결혼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차라리 대학생이 안 되는 것이 좋았다고 후회하는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졸업한 대학에 한 번 가 보십시요.캠퍼스에 많은 유학생이 있을 것입니다.이슬람 기도 처소도 있습니다.캠퍼스에서 사역하는 선교단체 사역자들에게 흠정역 성경을 전달해 주십시오.흠정역을 사용하는 모든 분은 이슬람을 향한 애정을 갖고 그들을 선교해야 합니다.
신학대학에도 이슬람이 들어와 있습니다.혹시 여러분 집근처에도 기도 처소가 있는지 살펴보십시오.여러분 친척 중 이슬람 국가에서 온 며느리나 사위는 없나요?여러분 고향은요.지금은 마지막 때입니다.마지막 때 흠정역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알아야 합니다.
2016-04-13 00:26:05 | 김다니엘
적절한 그림이 있으니 더 이해가 잘 되겠네요.
귀한 글에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6-04-12 23:18:45 | 김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