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댓글을 달아봅니다.
김정훈 형제님 안녕하세요!
니므롯의 후예 2부를 중간부터 끝날때 까지 들었습니다. 녹화는 없고 교사들을 위해서 토요일날 다시 한번 세미나를 준비해 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주말도 참석하기 어려울 것 같아 잠시 김준회형제님이 주일학교 설교를 할때 들었습니다.
들어보니 유익하고 좋은 세미나였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수고하심에 댓글을 통해 감사를 드립니다.
약 2년 전에 이러한 내용들을 접하고는 저도 많은 충격과 변화들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베리칩에 대해서는 666, 짐승의 표로 나름 확신하고는 그것을 알리려는 움직임을 가졌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베리칩을 경고하는 그런 프린트물을 5천장 인쇄를 했고 집집마다 문에다 붙였습니다. 약 1천장 정도를 집집마다 붙이고 다녔습니다. 내심 속으로는 기도했죠 이 전단지 보고 돌이키는 사람이 한 명 이라도 있어지기를요, 혹 믿지 않던 자가 휴거 이후에라도 이 전단지의 내용이 기억나서 더듬어 주께로 돌아오는 일이 있기를 바라면서요.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자랑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나름 주님을 향한 열정이 저에게도 있다보니 사비 써 가면서도 다리품 팔면서도 후회는 없었습니다. 집에 있는 칼라 레이져 프린터도 이때 장만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왜 하냐하면요 위 글을 읽고 제 사견을 나누어 보려고 이와 관련된 제 과거 이야기를 먼저 글로 옮긴 것입니다.
이 일들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는 때에 사랑침례교회와 정동수 목사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제가 KJV, 킹제임스흠정역성경 그리고 바른 교리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되면서 사실 또한 번의 큰 변화와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장로교회에 출석하면서 그림자정부, 세상의 역사들이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에 의해 조작되어지고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때는 참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말세지말이라는 사실이 피부로 와닷았을 때는 머리카락이 쭈삣쭈삣 서곤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 이슈를 또 접하게 되니 어퍼컷을 한대 맞은 황당함에 어이없는 웃음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길이 이리도 머냐? 진실의 끝은 어디인가? 등등을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다 정리가 되었습니다만 그때는 혼란에 혼란 그 자체였었습니다. 머리속에서 뒤죽박죽 되어있던 진실, 사실이라는 것들이 조금씩 정립이 되어가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것들을 이해하게 된 배경에는 킹제임스흠정역성경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이 되었고 성경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100% 믿는 믿음안에서 비로써 정립이 되었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베리칩에 한해서는 저는 생각을 유보하고 있습니다.
사실, 현재 베리칩에 대한 정보와 기능, 용도를 보면 정말 짐승의 표로 불릴 만큼 놀라운 것임에는 맞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분명 그렇게 보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만 보아도 휴거의 때가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가 생각이 들 정도 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보는 견해는 두 가지 입니다. 이 부분을 문자적 해석만으로 분석하는 것과 문자적해석과 시대적 상황을 함께 해석하여 이해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며 이 두가지 견해에는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저는 나름 생각 끝에 문자적 해석만을 적용하여 베리칩에 대한 생각을 정하였습니다.
그렇다고하여 베리칩을 이마나, 손에 삽입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도 형제님과 같은 생각을 가졌드랬습니다.
뭐라 말하기가 좀 어려운데 형제님이 헤아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이것이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는 판단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 우림과둠밈, 그밖의 휴거사이트, 종말론 사이트들 대부분이 이 RFID, 베리칩을 형제님이 제시한 견해대로 보고 있고 어떤 곳은 오버하는 곳도 있고 하지만 기독교의 교리와 믿음의 길에 유익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힘이 분산되어 소모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치 1948년 이스라엘이 다시 탄생하기 전까지 많은 성경적 종말의 해석과 1948년 이스라엘이 국가로 탄생하고 나서 성경의 대언서들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짐승의 표에 대한 부분도 휴거 이후에 나타날 황당무개한 일들 가운데 하나로 적그리스도가 제시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사람들은 베리칩을 통해서 아마도 유비쿼터스 사회를 맛보고 경험을 해본터라 적그리스도가 제시하는 짐승의 표를 서스름 없이 받아 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 입니다.
참고로 아래와 같은 생각들도 해 보았습니다.
거인들의 후예들에 대해서 혹 생각해 보신적 있습니까? ^^ UFO에 대한 정보들도 짐승의 표와 연관지어 생각해 볼 필요도 있는 것 같구요!^^
2012-03-19 03:16:55 | 노영기
격려의 답글에 감사 드립니다~
2012-03-18 18:43:38 | 김정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속히 일어나야 할 것들을 자신의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그분께 주신 것이라. - 계1:1 -
너는 내가 이 날 네게 명령하는 말들 가운데 어떤 것에서든지 떠나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다른 신들을 따라가며 그들을 섬기지 말지니라. - 신28:14 -
주님께 귀한 글을 읽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주제의 글들을 몇번 접할때마다 좌우로 치우친 글을을 읽곤 했었는데, 김정훈 형제님께서 KJV과 Fact에 기반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알려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올바른 글 부탁드립니다.
평안하신 하루되십시오.
형제님을 위해 기도드릴께요. 샬롬~
2012-03-18 09:35:18 | 우영운
감사합니다.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랍니다~
2012-03-18 07:45:14 | 김정훈
긴 글로 생각을 적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사랑침례교회에 대하여 칭찬 해주신 것에 대하여 저도 같은 지체로서 기쁜 마음으로 받고 싶고, 또 그런 칭찬이 누가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말씀 안에 거해야 겠다는 다짐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에 대한 칭찬은.. 말씀은 너무 감사하나, 그대로 받기에는 솔직히 많이 부담스럽고요, 그저 진실됨과 열심으로 같이 이곳을 통해서 받은 바 말씀의 은혜들을 나눠 가길 원합니다. 샬롬~
2012-03-18 07:44:10 | 김정훈
저는 종종 성경에 왜 그렇게 많은 부분에 재림과 심판의 때에 대한 자세한 일들이 기록되었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그리고 김정훈 형제님의 의견에 많은 부분 공감합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2012-03-17 23:03:38 | 박종철
성경에 없는 것을 증명하기란 쉽지 않죠. 성경에 있다는 주장을 반박할 수는 있을 겁니다. 개인메일이나 메신저로 연락하시죠. givesup@hanafos.com / kjbbc1996@hotmail.com
2012-03-17 16:59:17 | 김재근
저의 한 없이 부족한 글을 이렇듯 깊이 헤아려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장로교인으로서 몇 해 전 성경지킴이 사이트와 사랑침례교회 사이트를
통해 킹제임스 성경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성경에 대한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여러모로 아는 것이 없고 부족한
사람으로 항상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성경지킴이 사이트를 방문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사랑침례교회나 성경지킴이 사이트의 형제님들과 면식이
없습니다. 주제넘은 이야기일지 모르나 얼마 전부터 김정훈 형제님의
글을 접하며 믿음의 단순함과 명쾌함의 능력이 살아있고 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후에 많은 공부를 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런 믿음과 깨끗한
정신을 소유하셨다는 것에 더욱 감동했습니다. 앞으로도 형제님의
귀한 글을 접하게 되길 바랍니다.
주제넘은 이야기를 하는 김에 한 가지 더 덧붙여 말하고 싶네요.
물론 수적인 부흥이 교회의 모든 것을 절대 말해 주지 않습니다만,
일반교인들의 저항심을 많이 사는 독립침례교회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사랑침례교회가 이런 놀라운 부흥을 이루어 가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단순하고 명쾌한 살아있는 설교 때문이라
확신합니다. 저도 국내 여러 설교자의 설교를 들었지만, 오늘날
정동수 목사님의 설교와 같은 단순하고 명쾌한 말씀의 증언이 선포되는
강단은 참으로 희귀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보존해주신 말씀으로 믿는
우리가 칼빈주의자들보다 순전한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강단에서
그들보다 선명하고 단순한 살아있는 말씀이 선포되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그 어떤 교회라도 무기력하고 정체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사랑침례교회의 성장과 그 외 많은 독침교회와 성침교회들을
지켜보며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샘터에서 생수가 분출하듯 사랑침례교회의
강단에서 살아있는 단순한 진리가 역동적으로 선포되고 많은 목회후보생이
그 영상으로 귀한 공부를 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울러 성경지킴이
사이트에서도 김정훈 형제님과 같은 살아있는 믿음의 글들이 이전처럼
더욱 풍성하게 나누어지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2012-03-17 15:45:55 | 김대용
겸손함과 균형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형제님의 말씀에 십분 동감합니다. 이것은 말씀을 모르고 지나치게 현상을 과장하는 자들에게도 해당될뿐만 아니라, 말씀은 보되 총체적 관점에서 시대의 징조를 보지 못하여 그 말씀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놓치는 자들에게도 적용이 된다고 봅니다. 앞으로 더욱 겸손하고 균형 잡힌 태도로 세상의 움직임과 말씀의 실현을 지켜 보며 따라갈 필요가있다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2012-03-17 13:51:12 | 김정훈
"짐승의 표가 사람 몸속에 이식된다는 얘기는 그냥 추정일 뿐입니다. 성경에 없습니다." 이 말씀은 저에게 상당히 충격입니다. 정말 성경에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형제님께서 어떤 근거로 그렇게 판단하시는지 한번 정리된 글로 (가능하면 댓글 보다는 원글로) 올려 주시면 이 곳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2012-03-17 13:40:03 | 김정훈
문득 작년에 미국의 한 한인 교계가 베립칩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고 베리칩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의 표라는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성명을
발표했다는 기사가 생각납니다.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48935
과연 베리칩이 요한계시록의 짐승의 표라는 주장의 확실한 근거는 지금으로서는
어디에서도 가져올 수 없습니다. 이 부분에 집중하다가는 쉽게 과도한 길로
행할 위험성을 항상 조심해야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위 기사의 경우와 같이
목회자라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몸에 신상정보 탐지와
통제를 할 수 있는 생체칩을 이식함에 있어 조금의 거부감도 없이 교인들의
경계를 풀어버리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신중한
‘베리칩 경계론’을 펴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으나 그것이 요한계시록의 짐승의
표가 거의 확실하다거나 하며 성급하게 주장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종말의 교리를 연구하며 현시대를 분별하는 것은 역시 우리에게 대단히
유익하지만 때로 겸손함과 균형감을 잃고 과도하게 치우칠 때는 오히려
해악이 크겠지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길 소망합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고 돌아보게 하는 본문과 댓글에 감사합니다.
2012-03-17 11:18:28 | 김대용
뉴스에 보면 미국과 관련해서 생체칩 얘기가 자주 나옵니다. 관련해서 계시록 13장의 짐승의 표가 사람 몸속에 이식된다는 것이 성경적 진실인양 이야기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짐승의 표가 사람 몸속에 이식된다’는 얘기는 그냥 추정일 뿐입니다. 성경에 없습니다.
2012-03-17 00:42:56 | 김재근
미국 대통령 취임식때 당선된 대통령들이 손을 얹고 맹세하는 성경책은 바로
프리메이슨 성경이란 점도 큰 문제 아닐까요
프리메이슨의 모태는 이집트 신비주의 종교가 그 모태로 알고 있습니다
2012-03-16 21:05:53 | 이종문
* 참고로 이 글은 본래 <자유게시판> #1531의 글에 달린 댓글 및 답 글의 형식으로 쓰여 졌던 것인데, 내용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독립된 하나의 글로 정리하여 올립니다.
***********************************************************************************************************
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그 유명한 ‘짐승의 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나옵니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에게 그들의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수를 가진 자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더라. (계 13:16-17)”
여기서 모든 사람들에게 ‘표’를 받게 하는 ‘그’는 큰 이적들을 행하며 (계 13:13), 짐승을 위하여 형상을 만들고 (13:14), 그 형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들을 다 죽이게 하는 자로서 (13:15), 결국 그의 정체는 ‘거짓 대언자’인 것으로 밝혀지게 됩니다 (19:20).
그런데 그 거짓 대언자가 사람들로 하여금 짐승의 형상을 향하여 경배하도록 옭아매는 수단으로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짐승의 표’인데, 이것을 받지 않으면 매매를 할 수 없게 됨으로 (13:17), 사람들은 생존을 위하여 표 받는 것을 쉽게 거부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렇다면, 짐승의 표는 언제 이 땅에 출현하고, 거짓 대언자에 의하여 사용되어 지게 되는 것일까요?
우선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짐승의 표는 어느 날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짐승의 표가 상징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기술'을 요구하는 하나의 발명품이고,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지 기술의 발전과 함께 미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시 앞에서 기술한 요한계시록의 말씀으로 돌아가 봅시다.
“그가 모든 자 ... 에게 그들의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 (계 13:16)”
잘 읽어 보면 이 말씀은 단지 짐승이 나타난 이후에 그가 - 즉, 거짓 대언자가 - 짐승의 표를 받게 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가 받게 하는 그 표가 언제 만들어 졌는지 혹은 그 이전에라도 사용되고 있었는지 등에 대하여는 딱히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것처럼 이 ‘표’라는 것이 어떤 '기술'을 요구하는 하나의 발명품이라고 본다면, 짐승이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활동하기 이전일지라도, 그의 길을 예비하는 다른 악의 세력들에 의하여 장차 짐승의 표의 기능을 하게 될 어떤 ‘표’를 미리 기술적으로 완성 시켜 놓고, 이것을 사람들에게 미리 받게 함으로 (가령 표를 받으면 얻게 될 각종 건강 및 보안 등의 편리성 등을 강조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표’에 친숙하도록 해 놓은 뒤에, 어느 날 비로소 ‘때’가 이르렀을 때에 거짓 대언자가 이제 그 동일한 표를 성경이 말하는 '짐승의 표'로서의 의미로 사람들에게 받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이 딱히 그렇다 안 그렇다고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만일 누군가가 위의 성경 구절을 읽고 짐승의 표는 아무래도 짐승 혹은 거짓 대언자의 출현 이후에 나오는 것일 뿐이라고 여기고, 따라서 환난 전 휴거를 이룰 성도들에게는 전혀 표를 받을 일도 없는 것이라고 여기게 된다면, 그것은 잘못하면 큰 오해를 낳을 수도 있기에 주의가 요망 됩니다. 이 부분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성경에 보니 빌라도가 다음과 같이 행함이 나옵니다.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주고, 예수님은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넘겨주니라.” (마 27:26)
자, 십자가는 도대체 언제부터 사형 도구로 사용되게 되었을까요? 누군가가 이 말씀을 읽고, “저는 십자가가 빌라도의 출현 이전에도 이미 사람들이 지고 가도록 사용되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빌라도가 죄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십자가를 미리 지고 다니게 하다가, 예수님을 처형하려는 그 때에 가서 예수님도 그것을 지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하지 않고, 단지 빌라도가 나타난 이후에야 비로소 예수님께 십자가를 지게 한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면, 누구라도 그것이 사실과는 다른 설명이라는 것을 쉽게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역사적 지식을 통해 십자가 형벌이 언제부터 출현하였는지를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십자가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가정하여 봅시다. 그러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성경에 보니까, 빌라도의 출현이후부터 십자가가 나오게 되니, 따라서 그 이전에는 십자가에 달려 사형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오해를 낳을 수도 있게 되겠지요. 바로 이와 같습니다. 빌라도가 이미 존재하는 보편적인 의미로서의 십자가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사형시키는 도구로 사용함으로, 그 십자가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가 될 수 있듯이, 거짓 대언자 또한 이미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널리 퍼져 있는 ‘표’를 짐승을 경배하도록 하는데 필요한 수단으로 쓰게 됨으로 그것이 ‘짐승의 표’라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 받도록 할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계시록으로 가서 13장 16-17절 말씀을 한 번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합시다. 16절의 표를 받게 한다는 말씀은 곧 바로 17절의 표 없는 자는 곧 매매를 못하게 된다는 말씀과 이어지면서 결국 이 뜻은, “짐승의 표란 그것 없이는 매매를 못하게 하는 표”라는 의미로 강조되어 나타납니다. 더욱이 영문 KJV 성경에는 16절과 17절 사이에 콜론 (:) 문장부호를 둠으로써, 이 두 구절의 의미가 떨어지지 않고 서로 연속적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음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주목해 봐야 할 점은, 결국 거짓 대언자에 의해서 주어지는 이 16절의 표는 매매통제 수단으로 이용되기 위하여 특별히 그가 권력을 행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받게 하도록 한다는 뜻을 의미할 뿐, 이 표가 그 전에도 유사한 목적 혹은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었던지 안 되었던 지의 여부에 대하여는 성경이 따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은 단지 거짓 대언자가 짐승의 표를 받게 하여 매매를 못하게 하는 통제 수단으로 사용할 것임을 말해 줄 뿐, 그 표가 반드시 짐승 혹은 거짓 대언자의 출현 이후에만 나오고 사용된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다시 말해 표의 출현과 그 표가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사용되는 시점은 (비록 그것이 다른 목적일지라도) 짐승 혹은 거짓 대언자의 출현 보다 더 이전일 수도 있음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표’와 연결된 구원의 문제를 떠나서라도, 장차 ‘때’가 이르렀을 때에 짐승의 표로 사용될 어떤 형태의 ‘표’를, 휴거가 일어나기 이전일지라도 휴거로 들림 받을 성도들 또한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음을 유념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때는 경배를 요구하기 전이므로 ‘표’를 받아도 믿음을 통해 이루게 될 구원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않을 수 있고, 경배를 요구하기 이전에 휴거가 먼저 일어난다면 결국 그 표는 구원과는 상관없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생활 침해와 개인의 자유의사를 통제 또는 간섭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알고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생각해야 할 일은, 우리 가운데는 환난을 겪고 늦게 구원 받을 성도들이 또한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일지 모르는 그들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가슴에 품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일 것이며, 그렇지 않고 환난 전에 휴거될 성도라 할지라도, 깨어 준비하며 더욱 자신을 돌아보아 여분의 기름을 채워 준비된 신부로 기다리고 있으려면, 이런 시대를 정확히 읽는 지식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이 종말의 시대에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우리가 늘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함은 성도라면 너무나도 당연하고 필요한 태도이겠지만, 요한 계시록 같은 말씀을 통해 사탄이 말세에 행할 일을 미리 알고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는 일은 매우 유익하고 또 중요합니다. 지금은 거센 배도의 물결이 일고 있는 때입니다! 적이 얼마나 간교한지 그 움직임을 알고 있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어도 뱀의 간교함 앞에 여지없이 무너진 이브와 아담이 결코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모든 성경의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 또한 비록 심판주로 다시 오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우리의 주목을 끌도록 강조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성경의 그 어느 책보다도 사탄의 마지막 될 일과, 짐승의 표, 환난 등에 대하여도 자세히 기록하고 있음 또한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말세에 되어질 일들을 우리에게 소상히 알림으로 성도들로 하여금 깨어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따라서 특별히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에는 그동안 감추어져 있던 짐승의 모습이 확연히 눈앞에 드러남을 주목하여, 시대의 물결을 따라 미혹되지 않고 굳건하게 믿음 승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02:3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3-16 19:38:11 | 김정훈
맞습니다. 두려움을 갖기 보다는 이런 지식들로 나를 더욱 돌아 보게 되고 바른 말씀과 교리로 자신을 더욱 바로 세우게 되지요.
2012-03-15 20:37:19 | 김정훈
성경은 단지 적그리스도가 나타난 이후에 짐승의 표를 받게 한다고 말할 뿐입니다.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이전일지라도, 그를 예비하는 다른 악의 세력에 의하여 장차 적그리스도에 의해 짐승의 표로 사용되어질 표를 미리 받게 하고 (편리성을 강조하면서) 비로소 때가 이르렀을 때에 적그리스도가 이제 그 동일한 표를 성경이 말하는 '짐승의 표'로서의 의미로 사람들에게 받게 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짐승의 표로 사용될 표의 최초 출현 시점에 대하여 딱히 기술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계시록 13:16의 말씀만으로 그 이전 상황에는 표 집어넣는 일이 없다고 말하기에는 근거가 약합니다. 즉, 그렇게 되지 아니할 수도, 그렇게 될 수도, 둘 다 가능한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성경에 보니 빌라도가 다음과 같이 행함이 나옵니다.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주고, 예수님은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넘겨주니라.” (마 27:26)
누군가가 이 말씀을 근거로, “저는 십자가가 빌라도의 출현 이전에도 이미 사람들이 지고 가도록 사용되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빌라도가 죄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십자가를 미리 지고 다니게 하다가, 예수님을 처형하려는 그 때에 가서 예수님도 그것을 지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하지 않고, 단지 빌라도가 나타난 이후에야 비로소 예수님께 십자가를 지게 한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면, 누구라도 그것이 사실과는 다른 설명이라는 것을 쉽게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의 지식이 십자가 형벌이 언제부터 출현하였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십자가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가정하여 봅시다. 그러면 성경에 보니까, 빌라도의 출현이후부터 십자가가 나오게 되니, 따라서 그 이전에는 십자가에 달려 사형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오해를 낳을 수도 있게 되겠지요. 바로 이와 같습니다. 빌라도가 이미 존재하는 보편적인 십자가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사형시키는 도구로 사용함으로, 그 십자가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가 될 수 있듯이, 적그리스도 또한 이미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널리 퍼져 있는 ‘표’를 자신에게 경배하도록 사람들을 옥죄는 수단으로 쓰게 됨으로 그것이 ‘짐승의 표’라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 받을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계시록으로 가서 13:16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합시다. 16절의 표를 받게 한다는 말은 곧 바로 17절 말씀과 이어지면서 표 없는 자는 매매를 못하게 된다는 뜻으로 연결됩니다. 더욱이 영문 KJV 성경에는 16절과 17절 사이에 콜론 (:) 문장부호를 둠으로써, 이 두 구절의 의미가 서로 연속적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음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말씀을 통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적그리스도가 받게 하는 '짐승의 표'란.. 매매통제 수단과 연결되는 ‘표’란 뜻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 봐야 할 점은, 결국 적그리스도에 의해서 주어지는 이 16절의 표는 매매통제 수단으로 이용되기 위하여 특별히 그가 권력을 행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받게 하도록 한다는 뜻을 의미할 뿐, 이 표가 그 전에도 유사한 목적 혹은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었던지 안 되었던지의 여부에 대하여는 성경이 따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전에 달았던 답글에서도 썼듯이 짐승의 표라는 것이 갑자기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이것은 적그리스도가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기술적으로 완료가 되어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친숙한 도구로 인식이 되거나 실제로 사용되고 있어야, 나중에 비로소 적그리스도가 이 표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옭아매기가 수월해 질 것이라는 것은 정황적으로 볼 때 그리 어렵지 않게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은 단지 적그리스도가 이 표 - 즉, 짐승의 표 - 를 받게 하여 매매를 못하게 하는 통제 수단으로 사용할 것임을 말해 줄 뿐, 그 표가 반드시 적그리스도의 출현한 후에만 나오고 사용된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다시 말해 표의 출현과 그 표가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사용되는 시점은 (비록 그것이 다른 목적일지라도) 적그리스도의 출현 보다 더 이전일 수도 있음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 더 언급하면, 환난을 겪고 늦게 구원 받을 성도들이 누구일지 실제로 결과를 보기 전에는 우리는 정확히 모릅니다. 우리는 따라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들을 가슴에 품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일 것이며, 그렇지 않고 환난 전에 휴거될 성도라 할지라도 깨어 준비하며 더욱 자신을 돌아보아 여분의 기름을 채워 준비하는 신부로 기다리게 하려면, 이런 시대를 정확히 읽는 지식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이 종말의 시대에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샬롬.
2012-03-15 20:18:45 | 김정훈
짐승의 표가 사람을 통제하는 기술의 일종이라면 그 기반 기술은 지금도 개발되고 있을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아래 견해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때 짐승의 표를 받은 자에게 경배를 요구할 것이겠지만, 짐승의 표는 그 이전에도 이미 사람들에게 주입되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적그리스도가 짐승의 표를 미리 받게 하고 그때 가서 경배를 요구할 것이라고 하지 않고, 적그리스도가 나타난 이후에 짐승의 표를 받게 한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에게 그들의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계13:16)
이런 것들에 대한 탐구가 시대의 흐름을 읽는 데에는 분명히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알고 대비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마지막 날에 정체를 드러낼 적그리스도를 만날 일도, 짐승의 표를 받으라는 말을 들을 기회도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마지막 날의 환난을 겪을 환난기 성도들에게는 그런 내용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네요.
2012-03-15 15:17:13 | 김문수
미안하지만, 저는 위에 김문수 형제님의 댓글에 전부 다 공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밑에 올린 저의 답글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형제님이 말씀하신, "바른 성경과 교리 안에서 오늘날의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분별하는 것은 성도가 자신의 삶의 태도를 돌아보고 하루하루를 값지게 살아가는 동력을 제공하기에 유익합니다."는 말에 백번 공감합니다!
2012-03-15 14:40:30 | 김정훈
짐승의 표는 어느 날 하루 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짐승의 표가 상징이 아니라면, 그것은 '기술'을 요구하는 발명품이고,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적그리스도 또한 미리 태어나 준비되고 있다가 때가 차면 그 본색을 들어낼 것이 자명합니다. 그때 짐승의 표를 받은 자에게 경배를 요구할 것이겠지만, 짐승의 표는 그 이전에도 이미 사람들에게 주입되어질 수 있습니다. 가령 건강 관리와 매매의 편리성 등을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게 미리 보급을 시켜 놓고 때를 기다리게 할 수 있지요.
따라서 구원의 문제를 떠나서라도 장차 가까운 미래에 짐승의 표로 사용될 어떤 표를 휴거 이전일지라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음을 유념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때는 경배를 요구하기 전이므로 표를 받아도 구원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않을 수 있고, 경배를 요구하기 이전에 휴거가 먼저 된다면 결국 그 표는 구원과는 상관 없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생활 침해와 개인의 자유의사를 통제 또는 간섭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알고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요한계시록이 비록 심판주로 다시 오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우리의 주목을 끌도록 강조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성경의 그 어느 책 보다도 적그리스도와 짐승의 표, 환난 등에 대하여도 자세히 기록하고 있음 또한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말세에 되어질 일들을 우리에게 소상히 알림으로 성도들로 하여금 깨어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 할 준비를 하도록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 주목해야 함은 비단 요한계시록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를 통하여 당연히 그리해야 마땅할 성도의 본분이요 자세이겠지만, 특별히 계시록을 읽을 때에는 그동안 감추어져 있던 적그리스도의 모습이 확연히 눈앞에 드러남을 주목하여 미혹되지 않고 믿음 승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만 바라 보고 살아야 함은 유익한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성도의 자세이어야 하지만, 요한 계시록 같은 말씀을 통해 적그리스도가 말세에 행할 일을 미리 알고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는 일은 매우 유익하고 또 중요합니다. 지금은 거센 배도의 물결이 일고 있는 때입니다! 적이 얼마나 간교한지 그 움직임을 알고 있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어도 뱀의 간교함 앞에 여지 없이 무너진 이브와 아담이 결코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베리칩에 관한 문제는 나중에 때가 되면 따로 글을 올릴 생각이라 여기서는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2012-03-15 14:25:36 | 김정훈
이런글들을 읽을수 있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12-03-14 23:33:23 | 안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