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Philosophy): 지혜를 사랑하는 것. 신약성경에서 철학은 헛되이 또 사악하게 사람의 논리를 세우는 것을 뜻하며 그래서 복음의 진리를 거스르는 것, 이 세상의 지혜, 거짓으로 과학이라 불리는 것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고전1:18-27; 딤전6:20). 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철학으로 인해 스스로를 파멸시키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였다(골2:8). 철학은 또한 교묘하게 사람의 고귀한 기능인 논리를 비틀어서 하나님을 대적하게 한다는 점에서 사람의 마음이 타락했음을 보여 주는 슬픈 증거 중 하나이다. 사실 사람의 가장 고귀한 지성마저도 종종 하나님의 복음의 진리를 가리며 사람의 이성의 범위와 활동력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척도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교만과 반역과 어리석음의 척도가 되었다(마11:25; 고전2:14; 3:18-20).
아테네에서 에피쿠루스와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은 바울의 설교에 제동을 걸었고 그래서 그는 자신의 서신서에서 이 세상의 헛된 지혜 즉 이교도들의 철학이 우리 주 예수님의 지혜를 대적함을 보였으며 또한 이러한 참된 진리가 뛰어난 말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권능과 성도들의 마음에서 확증을 주시는 성령님의 사역에 근거하므로 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인다고 말하였다. 물론 하나님의 복음은 사람을 부추기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유죄이며 따라서 구원자를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보여 주므로 세상의 철학은 복음을 대적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 철학자들 사이에 스토아, 에피쿠루스, 아카데미 등의 학파가 있었듯이 유대인들 사이에는 에세네, 바리새, 사두개파가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스토아 학파와, 사두개인들은 에피쿠루스 학파와, 그리고 에세네파는 아카데미 학파와 비슷하였다. 바리새인들은 교만하고 헛되며 자랑하기를 좋아하였고 사두개인들은 혼의 불멸과 영의 존재를 부인하고 미래에 대한 것을 전혀 걱정하거나 생각하지 않았다. 에세네파는 좀 더 중도적인 입장에서 단순하게 또 경건하게 철학적 사고를 하였다.
초대 교회 당시 사도 바울이 교회에게 준 경고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성의 교만은 무신론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오고 계시에 순종하는 것을 거부하며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것을 거절한다. 그러나 참된 지혜는 겸손하고 온유하여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왕국을 믿고 받아들인다.
2009-05-07 16:55:28 | 관리자
사도들의 행적: 사도행전
THE ACTS of the APOSTLES
기록자: 누가, 기록 시기: 주후 65년경, 성격: 역사, 기간: 약33년, 수신자: 일차적으로는 데오빌로이며 실제적으로는 모든 신자
이름: 이 책의 이름은 사도들의 행적을 담은 글을 뜻하지만 실제로는 사도 베드로(1-12장)와 바울의 행적(13-28장)을 담고 있다.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3회 언급되며 야고보는 순교로 인해 언급되고 이들 외의 다른 사도들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 이 책은 사람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성령님을 통한 예수님의 행적을 계속해서 보여 준다.
주제: 그리스도께서 승천 이후에 성도들을 통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일하고 가르치신 것
목적: 은혜의 경륜 시대에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과 권능을 보여 주는 것
내용: 사도행전은 성령님의 강림과 유대인들 가운데 기독교가 확고히 세워진 것(1-7장), 사마리아와 땅의 맨 끝 지역까지 복음이 선포되어 이방인들의 교회가 세워진 것(8-28장)을 기록하며 동시에 이 일을 위해 사도들과 초대 교회 성도들이 당한 핍박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인내와 용기 등을 보여 준다. 복음서에는 그리스도의 삶에서 드러난 그분의 생명이 제시되어 있고 사도행전에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그분의 생명이 제시되어 있다. 행1:10-11은 요21:21-23에 언급된 그리스도의 재림의 진리를 확증한다. 사도행전은 28장, 1,007절, 24,250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2장(성령님의 강림), 핵심 절: “오직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임하신 후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또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이 되리라.”(1:8), 핵심 단어: 증인, 핵심 구: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1:4; 눅24:49)
사도행전의 그리스도: 승천하신 주님(1:10-11), 영적 교훈: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
2009-05-07 16:54:44 | 관리자
질문 : 예수님의 몸은 부서졌는데 어떻게 뼈는 부서지지 않았습니까?
답변 : 고린도전서에는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도 전해 준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님께서 배반당하신 바로 그 밤에 빵을 집으사 감사를 드리신 뒤에 그것을 떼시고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찢긴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라, 하시고"(고전11:23-24)
또한 요한복음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들이 이루어진 것은, 그의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 기록을 성취하려 함이더라."(요19:36)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몸이 찢기고 부서졌는데 뼈는 그대로 있다니요.
우리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이십니다. 유월절 어린양에 대한 규례는 구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유월절 어린양에 관한 규례가 이러하니라...한 집에서 그것을 먹되 그 고기를 조금이라도 집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 말고 너희는 그 뼈를 꺾지 말지니라."(출12:43-46
"둘째 달 십사일 해 질 때에 그들이 유월절을 지켜서 유월절 어린양을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과 함께 먹을 것이요, 그것을 아침까지 조금도 남겨 두지 말며 그것의 뼈를 하나도 꺾지 말고 유월절의 모든 규례에 따라 그것을 지킬 것이니라."(민9:11,12)
또한 시편 34편에는 예수님에 대한 대언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 그의 모든 뼈를 지키시매 그것들 가운데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였도다."(시34:20)
이런 말씀들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의 몸은 찢기고 부서졌으나 뼈는 부러지지 않았습니다.
시편22편에 보니까 그분의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위골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처를 입으면 당연히 위골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고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심장은 밀초같이 되어 내장 한가운데서 녹았나이다."(시22:14)
구약은 신약의 예표이며 따라서 우리 주 예수님은 문자 그대로 구약의 대언의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성경의 단어 하나 하나가 참으로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flesh)과 뼈(bone)를 다루므로 살과 뼈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하고 마치겠습니다.
창세기 37:27에는 요셉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영어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Come, and let us sell him to the Ishmeelites, and let not our hand be upon him; for he is our brother and our flesh. And his brethren were content."
여기에 나오는 flesh를 말씀보존학회의 한글킹제임스 성경은 골육으로 즉 "bone and flesh"로 번역했는데 이것은 bone을 첨가한 것입니다.
"오라, 그를 이스므엘인들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형제요, 우리의 골육이라. 하니, 그의 형제들이 동의하였더라."(한글킹제임스 성경)
이에 반해 킹제임스 흠정역은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오라, 우리가 그를 이스마엘 족속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살붙이이니라, 하니 그의 형제들이 만족해하더라."(킹제임스 흠정역)
또한 그의 형제들은 이 말에 동의한 것이 아니라 만족해한 것입니다(content). 이렇게 자꾸 오역 및 첨가를 하면 어떻게 될까요? 부디 그들이 바른 태도로 제대로 고치기를 바랄 뿐입니다.
성경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자꾸 탐구하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더 좋은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2009-05-07 16:54:04 | 관리자
질문 : 하늘에 올라간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요.
대답 :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가지 아니하였느니라."(요3:13)
구약시대의 엘리야와 에녹은 하늘에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은 자신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왕하 2장 1절에 보면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에 올라갔으며 창 5장 24절, 히 11장 5절 등을 보면 에녹 역시 들려서 하늘로 올라간 것처럼 표현 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두 사람이 하늘로 올려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천국에(하늘에) 올라간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에서 "올라간다"로 쓰인 단어는 "ascend"이며 이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 두 사람은 스스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하늘로 들려서 올라갔습니다. 수동태로 표현되었음에 주의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부활 후 40일이 지나 승천하실 때에 하늘로 스스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눅24:51은 원래 수동태로 그분께서 올려져서 하늘로 들어가셨다고 말하며 행1:9은 그분께서 위로 들려 올라가셨다고 말합니다. 여기도 둘 다 수동태로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스스로 하늘에 오르실 수 없단 말인가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날 아침에 스스로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대지 말라. 내가 아직 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다만 내 형제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요20:17)
여기서 올라간다는 스스로 올라가는 것을 말하는 ascend입니다.
결론적으로 요3:13을 믿지 못하는 인본주의자들은 사본에서 이 구절을 삭제했고 그 결과 개역 성경 같은데는 이 구절이 없는 것입니다(The Book of Bible Problem by G. D. Bouw, Ph.D.).
2009-05-07 16:53:24 | 관리자
질문: 요21:15절에서 우리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는데 이것들이 맞습니까? 이 사람들이 맞습니까?
대답: 둘 다 가능하지만 이것들이 문맥에 더 맞습니다.
개역성경은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로 되어 있습니다. 영어로는 "Lovest thout me more than these?" 입니다.
유명한 주석들도 둘 다를 지지하므로 these를 이것들로 해도 되고 이 사람들로 해도 됩니다. 다만 앞뒤 문맥으로 보아 베드로가 세상을 따라가며 행하려 하던 모든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묻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더욱이 자신의 다른 제자들 앞에서 그들을 베드로와 비교하면서 주님께서 그들을 무안하게 만들거나 이로써 베드로를 교만하게 만들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these를 이것들로 번역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사람들로 해도 오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009-05-07 16:52:44 | 관리자
성도 요한이 전한 복음: 요한복음
The Gospel According to ST. JOHN
기록자: 요한, 기록 시기: 주후 90년경, 성격: 역사와 교리, 기간: 영원 전 과거부터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나타나심까지, 수신자: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20:31). 요한은 이 복음서를 통해 그 당시 유행하던 플라톤 사상 즉 앞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이 내려와 모든 것을 확실하게 할 것이라는 사상을 논박하였다. 그는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으며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모든 생각이 들어 있으므로 그분의 말을 듣는 자는 곧 하나님의 말을 듣는 것이다. 그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 주었다.
이름: 이 책의 이름은 이 책을 기록한 사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를 뜻하는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제자이며(13:23; 20:2) 신약성경은 무려 35회나 그의 이름을 말한다. 그는 주후 50년경의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했고 그 뒤 소아시아에 감독으로 가서 대부분 에베소에 머물렀고 밧모 섬에 유배되어 계시록을 기록하였다.
주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목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들이 구원받는 것을 보여 주는 것
내용: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출생 전 존재, 출생 후의 삶, 사역, 죽음, 부활 그리고 부활 후의 나타나심 등을 기록한다. 요한복음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과 같은 공관복음이 아니다. 공관복음은 주로 역사적 사건을 기록했으나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의 증언과 가르침의 영적 교훈을 해석했다. 그리스도는 죄로 인한 어린양이시며(1:29), 목마른 자를 위한 생수이시고(4:14), 배고픈 자를 위한 빵이시며(6:35), 어둠에 있는 자들을 위한 빛이시고(8:12),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인도하는 문이시며(10:9), 길 잃은 자들을 위한 선한 목자이시고(10:11), 영광으로 향하는 길이시며(14:6) 영적 성장을 위한 참 포도나무이시다(15:1). 이 모든 것은 사람의 영적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것이다. 요한복음은 21장, 879절, 19,099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1장(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심)핵심 절: “이것들을 기록함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믿고 그분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1) 핵심 단어: 아버지(100회 이상), 믿다(98회 이상), 영원한 생명(35회), 핵심 구: “믿는 자는”(3:18, 36)
요한복음의 그리스도: 하나님의 독생자(1:14, 18), 영적 교훈: “누구든지 그분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는다.”
2009-05-07 16:52:04 | 관리자
누가복음 17장 21절의 뜻은 무엇입니까?왕국의 이해가 부족하므로 인본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구절을 악용하여 천국이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고 주장하며 인본주의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개역: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
그런데 여기의 너희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느냐고 예수님께 질문한 바리새인들이 아닌가? 그러면 예수님께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저주까지 하신 바리새인들 안에 - 혹은 그들의 마음 속에 - 하나님의 나라가 있단 말인가? 여기 나오는 나라 역시 왕국이다. 이것을 왕국으로 번역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으며 그 결과 자연적으로 문맥에 전혀 맞지 않는 영적 해석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왕국이 성립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왕이 있어야 한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질문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내가 왕으로 너희 가운데 와서 거하므로 하나님의 통치가 이미 그들에게 이르렀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왕국’(kingdom)을 ‘천국’(heaven) 혹은 ‘나라’(country)로 바꾸는 것은 성경 전체의 핵심 주제를 완전히 가려 성도들의 성경 이해를 가로막는 심각한 폐해를 낳는다.
2009-05-07 16:51:23 | 관리자
질문: 예수님의 승천 장소는 어디입니까?
대답 : 성경은 예수님의 승천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을 축복하시더라. 그분께서 그들을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위로 올라가 하늘로 들어가시니라.”(눅24:50, 51)
“이것들을 말씀하신 뒤에 그분께서 그들이 보는 동안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이 그분을 받아들여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더라. 그분께서 올라가실 때에 그들이 똑바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보라, 흰 옷 입은 두 남자가 그들 곁에 서며 또 그들이 이르되,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바라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니라. 그때에 그들이 올리벳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안식일에도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더라.”(행1:9-12)
예수님은 어디에서 들려 하늘로 올라가셨습니까? 베다니입니까? 올리브산입니까? 두 군데 모두 맞습니다. 왜냐하면 베다니는 올리브산(혹은 올리벳산)의 동쪽 경사진 곳에 위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행1:11에 기록된 대로 올리브 산에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 날에 [재림 때에] 그분의 발이 예루살렘 앞 동쪽에 있는 올리브 산 위에 설 것이요, 올리브 산이 거기의 한가운데서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지므로 심히 큰 골짜기가 생길 것이며 그 산의 반은 북쪽으로, 그 산의 반은 남쪽으로 이동하리라."(슥14:4)
이 구절들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곧 여호와 하나님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스가랴서에서 내려오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며 사도행전에서 내려오시는 분은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The Book of Bible Problem by G. D. Bouw, Ph.D.).
2009-05-07 16:50:39 | 관리자
성도 누가가 전한 복음: 누가복음
The Gospel According to ST. LUKE
기록자: 누가, 기록 시기: 주후 65년경, 성격: 역사, 기간: 약 34년, 수신자: 데오빌로와 그리스 사람들. 누가는 완전한 사람을 추구하는 그리스 사람들을 향해 완전한 사람으로 죄인들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제시하였다.
이름: 이 책의 이름은 이 책을 기록한 성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빛’을 뜻하는 누가는 의사였으며(골4:14) 고등 교육을 받아 문화를 잘 이해한 사람이다. 그는 삶의 후반부를 바울과 함께 했다.
주제: 그리스도의 진리
목적: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이며 세상의 구원자임을 보여 주는 것
내용: 누가복음의 첫 네 절은 이 복음서의 내용을 요약해서 보여 준다. 누가복음은 마태복음과 내용이 비슷하지만 연대기적으로 정리되어 있고 또 그리스도의 출생 이전의 사건들을 포함한다. 누가복음은 마태복음과는 달리 다윗과 아담에까지 이르는 마리아의 계보를 보여 주며 또 그리스도의 기도의 삶(3:21; 5:12-16), 가난한 자들의 배려(6:20-25; 12:16-21), 여인들의 위치를 높이는 것(1:24-58; 2:1-7, 36-38, 46-52), 음악(1-2장) 등도 담고 있다.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통해 예수님의 탄생부터 초대 교회의 설립에 이르는 역사를 잘 정리해서 보여 준다. 누가복음은 24장, 1,151절, 25,944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15장(잃어버렸다가 찾은 것)핵심 절: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느니라.”(19:10)핵심 단어: 찾아서 구원하다, 핵심 구: “사람의 아들”
누가복음의 그리스도: 사람의 아들(19:10), 영적 교훈: “그분은 죄인들의 친구이다.”
2009-05-07 16:50:03 | 관리자
성도 마가가 전한 복음: 마가복음
The Gospel According to ST. MARK
기록자: 마가, 기록 시기: 주후 60년경, 성격: 역사, 기간: 3년 반, 수신자: 군단, 백부장 등의 라틴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방인들 특히 핍박 중에 있던 로마 교회의 성도들이 마가복음의 수신자였을 것이다. 로마 사람들이 메시아의 도래를 기대하지 않았으므로 마가는 메시아의 계보를 생략한다. 또한 그는 구약성경의 여러 예언을 생략하고 이방인 독자들을 위하여 요르단이 강이라는 것과(1:5) 올리브 산이 성전 맞은편에 있다는 것(13:3) 등을 설명한다.
이름: 이 책의 이름은 이 책을 기록한 성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망치’를 뜻하는 마가는 마리아의 아들이며(행12:12) 바나바의 생질이고 베드로의 믿음의 아들이다(벧전5:13). 그는 복음서에서는 언급되지 않으며 사도행전에 8회 언급된다.
주제: 주 하나님의 종의 사역
목적: 나사렛 예수님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아버지의 뜻을 완전히 이루었음을 보여 주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도 그분처럼 섬겨야 함을 보여 주는 것
내용: 마가복음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언급하고는 곧바로 그분의 지상 사역을 기술하며 주로 그분의 일을 많이 말한다. 특히 마가는 하나님이 세상을 위하여 보내신 종으로서의 예수님의 행적과 수난 기록을 중점적으로 강조하며 구약의 인용이나 유대 풍습에 대한 묘사보다는 침례자 요한의 사역부터 주님의 사역의 끝부분까지를 간략하지만 매우 힘 있게 전달한다. 기록의 단순함과 평범함 때문에 마가복음은 ‘세상에서 가장 짧고 명쾌하며 놀랍고 동시에 가장 만족스런 역사 기록’이라는 평을 받는다. 마가복음은 16장, 678절, 15,171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10장(그리스도의 사역의 목적), 핵심 절: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기며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느니라.”(10:45), 핵심 단어: 곧장(42회), 핵심 구: “곧 그분께서”(1:20)
마가복음의 그리스도: 하나님의 의로운 종(사53:11), 영적 교훈: “그분의 놀라운 사역이 그분을 증명한다.”
2009-05-07 16:48:22 | 관리자
질문 :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말씀하셨습니까? 군중들에게 말씀하셨습니까?
대답 : 마태복음 3장 17절과 마가복음 1장 11절은 예수님께서 침례자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신 대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라,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있어 이르시되,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마3:17)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막1:11)
마태는 분명히 아버지께서 군중들에게 말씀하심을 기록한 반면에 마가와 누가는(눅3:22)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말씀하심을 기록합니다. 성경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이런 것을 발견하고는 즐거워하며 이런 모순이 어디 있느냐고 지적합니다. 그러면 성경이 잘못되었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실제로 아버지께서는 예수님과 군중에게 다 말씀하셨습니다.
오순절에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인 유대인들에게 말했을 때 그곳에 있던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다 자기들이 태어난 곳의 언어로 듣게 됨을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이 각각 유대말로 이야기했지만 모든 사람들이 각각 자기 고향의 말로 들었습니다. (행2:8). 물론 이것은 기적이었지만 사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런 일이 흔히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1인칭으로 이야기하시다가 갑자기 2, 3인칭으로 이야기하십니다(예:시81편).
예수님의 침례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은 것을 말씀하셨을 때에 예수님은 마가와 누가가 기록한 대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으며 동시에 군중들은 마태가 기록한 것처럼 자기들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성경에는 모순이 없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The Book of Bible Problem by G. D. Bouw, Ph.D.)
2009-05-07 16:47:27 | 관리자
질문 : 판단을 해야 합니까? 하지 말아야 합니까?
대답 : 참으로 어려운 질문인 것 같지만 성경을 보면 답이 너무 명백합니다.
"너희가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판단하지 말라. 너희가 무슨 판단으로 판단하든 그것대로 판단을 받고 너희가 무슨 척도로 재든 그것대로 너희가 다시 평가를 받으리라."(마7:1-2)
"오직 영에 속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전2:15)
"또한 밖에 있는 자들을 판단하는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안에 있는 자들은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느냐?"(고전5:12)
"성도들이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너희가 지극히 작은 문제들을 판단하는 것도 감당하지 못하겠느냐?"(고전6:2)
마태복음 7장을 따르면 판단을 해서는 안될 것 같고 롬14:13 등을 따르면 모든 일을 판단해야 할 것 같고 좀 어려워 보이지 않습니까? 물론 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은 마태복음 7장을 인용하면서 절대로 "주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판단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 교인들은 판단 공포병에 걸려 있으며 그 결과 지금은 교회 내에 판단 부재 현상이 극에 달해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당하면 항상 성경의 문맥을 보아야 합니다. 마태 복음의 구절은 판단하지 말라고 하면서 곧바로 "이는 너희가 판단하는 그 판단으로 너희가 판단을 받을 것이요,"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믿는 사람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함을 보여 주십니다. 즉 남을 판단하는 문제가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판단은 영적인 일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판단을 말합니다. 즉 우리가 사람의 의견이나 기준에 따라 판단하면 실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뒤 문맥을 보기 바랍니다. 명백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판단하면 실수를 범할 수 없습니다. 판단할 필요가 없을 때에 우리가 판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판단할 때에는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나중에 판단을 받기 때문입니다(고전3:10-16).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죄하시는 것을 우리가 정죄하거나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하면 우리는 항상 바르게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틀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부정한 일이 있을 때에 이를 판단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크리스천의 의무인 것입니다. 불법과 불의를 보고도 가만히 있으면 어찌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목사나 집사나 다 같은 주의 자녀입니다. 계급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판단으로 판단해야 할 때에는 의롭게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 종" 운운하는 것은 신약 시대에 결코 맞지 않습니다. 신약시대에는 믿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 종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너희는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2:20)
"그러나 너희가 그분에게서 받은 기름부음이 너희 속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 기름부음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며 또 그것이 진리요 거짓이 아닌즉 그것이 너희를 가르친 대로 너희가 그분 안에 거할지니라."(요일2:27)
이 구절들에서 "너희"는 목사만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합니까?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말이고 고린도전서 등은 사도 바울의 말이니 이렇게 대치되는 구절이 나오면 예수님의 말씀에 더 권위를 두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에 베레아 귀신파가 있습니다. 복음서는 성경이고 그 외는 성서라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성경은 성서보다 더 권위가 있다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절대적으로 틀린 말입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모든 성경 기록은 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똑 같은 권위를 지닙니다. 사도 바울의 말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기록한 것입니다.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 기록의 대언 중 어떤 것도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아니하였나니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벧후1:20-21)
우리 사람이 해야할 일은 앞뒤 문맥을 잘 살펴보고 제대로 해석해서 적용하며 그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다음의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2:15)
공부해야 합니다. 연구해야 합니다. 성경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샬롬.
2009-05-07 16:46:40 | 관리자
질문 :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가 왜 다릅니까?
대답 :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식으로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게 하옵시며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날 우리에게 우리의 일용(日用)할 빵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용서하는 것같이 우리의 빚을 용서하옵시며 우리를 인도하사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우리를 악에서 건지시옵소서. 왕국과 권능과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옵나이다. 아멘."(마6:9-13)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말하기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게 하옵시며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날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옵시며 우리를 인도하사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라."(눅11:2-4)
분명히 위의 두 기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처럼 차이가 생긴 이유는 주님께서 이 두 가지 샘플 기도를 주신 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샘플 기도는 산상수훈의 일부분으로서 제자들은 그것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누가복음의 샘플 기도는 제자들의 요청에 따라 주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분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시다가 그치시매 그분의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준 것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소서, 하니"(눅11:1)
이 두 기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마지막 부분에 있습니다. 마태는 "왕국과 권능과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옵나이다. 아멘."이라는 구절을 포함시켰으나 누가는 이 부분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이처럼 차이가 생긴 이유는 마태와 누가의 복음서가 서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주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기록했으며 누가는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기록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주님의 왕국이 있으며 이것은 마태복음에서만 발견되는 "하늘의 왕국"(kingdom of heaven)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왕국은 모든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다섯 개 서신서에서 발견됩니다. 마태복음의 하늘의 왕국은 궁극적으로 정치적 왕국이지만(마11:12) 하나님의 왕국은 영적인 왕국입니다.
"침례자 요한의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하늘의 왕국은 폭력을 당하며 폭력배들이 강제로 그것을 빼앗느니라."(마11:12)
또한 하늘의 왕국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속한 것으로(마8:11) 유대인들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왕국은 유대인들을 주대상으로 해서 기록된 마태복음에만 나오며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기록된 누가복음 등에는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이 "왕국과 권능과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옵나이다. 아멘."이라는 구절을 뺀 것은 하나님께서 1000년 동안 이방인들이 주축인 교회와 함께 하늘의 왕국을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계20:4). 그러므로 이 두 기도의 차이는 복음서의 대상을 살펴봄으로써 쉽게 해결됩니다.
끝으로 위의 샘플 기도와 관련하여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미국의 침례교회는 소위 주기도문으로 알려진 위의 샘플 기도를 외우지 않으나 한국의 교회들은 대부분 이 기도를 외웁니다. 미국 교인들은 왜 주님이 가르쳐 주신 샘플 기도를 외우지 않을까요?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용서하는 것같이 우리의 빚을 용서하옵시며"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옵시며"
위의 구절과 달리 십자가 사건 이후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입니다. 우리가 다른 형제의 빚 혹은 죄를 용서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기도 안에 들어 있는 이 구절은 구약 시대 즉 의로움을 기반으로 하는 세대에 합당한 기도입니다. 십자가 전까지는 여전히 구약시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의(righteousness)를 요구하셨고 그들은 거기에 부응해야 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아,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오직 주 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분의 모든 길로 걷고 그분을 사랑하며 또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섬기며"(신10:12)
그러나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은혜의 세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삼으셨나니 여기에 사랑이 있느니라."(요일4:10)
간단히 말해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샘플 기도에 위의 구절 같이 원칙상 십자가 이후에 적용되지 않는 구절이 있으므로 외우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이것을 주문 외우듯이 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도를 주신 목적은 주문처럼 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이 주어진 다음의 배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교도들과 같이 헛된 말을 되풀이하지 말라. 그들은 자기들이 말을 많이 하여야 아버지께서 들으실 줄로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이교도들과 같이 되지 말라. 너희가 너희 아버지께 구하기 전에 그분께서 너희에게 필요한 것들을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식으로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게 하옵시며"(마6:7-9)
따라서 위의 샘플 기도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마땅히 구할 것을 요점 정리해 준 것으로 우리가 이것을 주문 외우듯이 외우면 예수님의 의도가 퇴색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 기도의 중간 대목 즉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용서하는 것같이 우리의 빚을 용서하옵시며"는 이 세대에 맞지 않으므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2009-05-07 16:45:56 | 관리자
질문 : 십자가 위의 명패
대답 : 사복음서의 명패는 하나도 같지 않습니다.
"그분의 머리 위에 이 사람은 유대인들의 왕 예수라고 쓴 죄명을 붙였더라."(마27:37)
"그분의 죄명을 적은 글은 유대인들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막15:26)
"그분 위에는 그리스어와 라틴어와 히브리어로 이 사람은 유대인들의 왕이라 쓴 글도 있더라."(눅23:38)
"빌라도가 명패(名牌)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거기의 글은 유대인들의 왕 나사렛 예수라 하더라."(요19:19)
그러므로 이것은 모순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각 복음서는 명패의 일부분을 기록한 것이며 명패의 전체 문구는 다음과 같았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유대인들의 왕 나사렛 예수"(The Book of Bible Problem by G. D. Bouw, Ph.D.).
2009-05-07 16:45:13 | 관리자
질문 : 식초인가요, 포도즙인가요?
대답 : "그들이 쓸개를 섞은 식초를 그분께 주어 마시게 하였더니 그분께서 그것을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마27:34)
"그들이 몰약(沒藥)을 섞은 포도즙을 그분께 주어 마시게 하였으나 그분께서 그것을 받지 아니하시더라."(막15:23)
식초인가요, 포도즙인가요? 쓸개인가요, 몰약인가요?
구약 성경은 분명하게 그분께서 식초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또한 쓸개즙을 나의 먹을 것으로 주며 f내가 목마를 때에 내게 식초를 주어 마시게 하였나이다(시69:21).
한편 식초의 재료로는 포도즙이나 독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포도즙과 독주로부터 자기를 구별하고 포도즙의 식초나 독주의 식초를 마시지 말며 어떤 포도즙도 마시지 말고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라(민6:3).
둘째로 쓸개라 번역된 'gall'이라는 단어는 실제적인 쓸개일 때도 있지만 매우 쓴 것을 뜻할 때도 있습니다. 몰약은 아주 쓰며 포도즙에 섞을 수 있으므로 몰약은 쓸개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드린 혼합물은 진통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것을 맛보시고는 마시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마26:29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 포도나무 열매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왕국에서 너희와 함께 새롭게 마시는 그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26:29)
만일 이것을 마셨더라면 그분 스스로 자신의 말을 깨뜨리게 되며 그러면 그분의 희생이 허사가 될 것입니다(The Book of Bible Problem by G. D. Bouw, Ph.D.).
2009-05-07 16:44:23 | 관리자
질문: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마태복음 23장 24절은 “너희 눈먼 안내자들아, 너희가 모기에는 긴장하고 낙타는 삼키는도다.”로 되어 있는데 개역성경이나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로 되어 있습니다. 개역성경은 사본이 다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같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성경들이 왜 이처럼 다릅니까? 대답: 한글 킹제임스 성경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대로 번역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영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Ye blind guides, which strain at a gnat, and swallow a camel.여기서 우리는 영어 본문이 ‘strain at’으로 되어 있지 ‘strain out’으로 되어 있지 않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원문에는 ‘strain’만 있고 ‘at’이나 ‘out’은 없으며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말이 되게 하기 위하여 ‘at’을 넣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영어로 “저것을 봐라.”하면 “Look at it.”입니다. ‘at’은 무엇을 본다고 할 때 쓰이는 단어이며 여기서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바리새인들이 모기(율법의 작은 것)를 보고는 긴장하고 낙타(율법의 중대한 것)는 꿀꺽 삼키고도 모르는 체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매튜 헨리의 주석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전에는 다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본문 비평 등에 영향을 받은 반즈 등이 지은 주석에 ‘strain out’이 맞는다고 하면서 모든 현대 신학자들이 킹제임스 성경이 틀린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그래서 모든 현대 역본들은 한결같이 ‘strain out’ 즉 “모기는 걸러내고”로 번역하고 있습니다.이런 추세에 대해 말씀보존학회의 후원자인 럭크맨 박사는 매우 신랄하게 현대 학자들을 비난하며 ‘모기에는 긴장하고’ 즉 ‘strain at’이 맞음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럭크맨 박사를 최고 스승으로 모시는 말씀보존학회에서 어떻게 이런 일을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결코 바른 번역이 아니며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을 우롱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모기에는 긴장하고 낙타는 삼키는 사람들입니다.
2009-05-07 16:42:45 | 관리자
질문: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마태복음 11장 14절은 “만일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려 할진대 와야 할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로 되어 있는데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너희가 그 사실을 받을 의향만 있으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개역성경은 아예 뜻을 모르니까 ‘그것을’을 뺐습니다. 여기의 ‘그것’은 무엇이며 같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성경들이 왜 이처럼 다릅니까?대답: 여기의 그것은 12절에 나오는 하늘의 왕국입니다.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여기서 그 왕국을 ‘그 사실’로 번역하여 오역한 것입니다. 영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12 And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suffereth violence, and the violent take it by force. 13 For all the prophets and the law prophesied until John. 14 And if ye will receive it, this is Elias, which was for to come.문제는 14절의 ‘it’이 무어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제자들에게 침례자 요한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라기 4장 5절에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왕국이 임할 때에 엘리야가 오리라는 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의 ‘it’은 무엇입니까? ‘it’은 대명사니까 그 위의 구절들을 보면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13절에는 ‘it’이 될 것이 없고 12절에 가니 ‘it’이 나오는데 그 ‘it’은 하늘의 왕국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문맥을 따라 있는 그대로 보기 바랍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너희 유대인들이 그 왕국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말라기서의 예언이 이루어지고 그러면 침례자 요한이 곧 오기로 한 엘리야가 된다.”는 점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런 중요한 구절을 의역하여 ‘그 사실’이라고 하면 말이 안 됩니다.번역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의역을 하거나 대명사를 풀어서 써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말이 다르므로 어쩔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에도 조심해서 잘 처리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여기처럼 문제가 생깁니다. 물론 말씀보존학회의 후원자 럭크맨 박사도 이런 번역을 보면 아마 대노할 것입니다.끝으로 개역성경과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kingdom of heaven’을 ‘천국’으로 번역했는데 이것은 대단한 오역입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할 때의 천국은 ‘heaven’이며 ‘kingdom of heaven’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은 천국 즉 하늘 왕국(heavenly kingdom)입니다. 그런데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딤후4:18에 유일하게 나오는 ‘heavenly kingdom’을 ‘하늘나라’로 번역하여 마태복음의 천국과 같은 곳으로 처리했습니다. 그러면 마태복음의 천국과 바울이 말하는 하늘나라가 같은 곳이 됩니다. 그렇게 신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특히 천년왕국의 도래를 강조하는 말씀보존학회는 성경에서 왕국을 다 빼 버렸습니다.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kingdom of heaven’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는 왕국입니다. 결코 성도들이 죽어서 가는 천국 즉 하늘나라가 아닙니다. 물론 “천국이라 적고 그렇게 이야기하면 되지 않습니까?”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사람을 가리켜 위선자라고 합니다. 속 다르고 겉 다른 사람이 위선자요, 주님으로부터 가장 큰 저주를 받은 자가 위선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 적어서 주 예수님의 왕국 복음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다음의 주기도문을 보시면 하늘의 왕국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왕국임을 아이들도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식으로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게 하옵시며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날 우리에게 우리의 일용할 빵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용서하는 것같이 우리의 빚을 용서하옵시며 우리를 인도하사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우리를 구하옵소서. 왕국과 권능과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옵나이다. 아멘(마6:9-13).
2009-05-07 16:41:21 | 관리자
질문: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마태복음 1장 1절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시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에 대한 책이라.”로 되어 있는데 혹시 순서를 바꾸어 “다윗의 자손이시요,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에 대한 책이라.”로 번역해야 하지 않습니까?대답: 둘 다 가능하지만 마태복음 1장의 내용이 전자를 지지하므로 전자를 택한 것입니다. 영어 원문은 “The book of the generation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을 먼저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마태복음이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왕 되시는 예수님에 대해 기술한 복음서이기 때문에 왕인 다윗이 먼저 나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머릿속에 이미 신학이 프로그램 되어 있기 때문에 나옵니다.여기서 예수 그리스도, 다윗의 자손, 아브라함의 자손은 동격입니다. 물론 영어와 원어에서는 다윗이 먼저 나오지만 그 앞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음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동격이 나열되어 있는 경우 어떻게 중간에 들어 있는 다윗의 자손을 맨 앞으로 내서 번역할 수 있습니까? 영어나 그리스어에서 한 인물을 동격으로 나열하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으며 이 경우 우리말에서는 앞에서부터 번역하든지 혹은 뒤에서부터 번역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앞에서부터 번역할 수 없으므로 뒤부터 번역한 것입니다.
그리고 문맥 역시 이런 번역을 지지합니다. 2절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부터 시작되는 유대인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까? 다윗은 아브라함 다음에 중간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문맥에서 본 계보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주 대상으로 한 복음서이기에 성도 마태는 유대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부터 기록하고 있으며 따라서 1절도 자연스럽게 지금처럼 번역되어야 합니다.한 성경에 두 가지 번역을 다 담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한 가지만 적어야 하므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서는 앞뒤 문맥을 살펴보고 전체 책의 요점을 머리에 둔 채 적합하게 번역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마1:1을 논하실 때도 오역이라 하지 말고 이역이라 하기 바랍니다.참고로 어떤 이들은 이렇게 묻습니다.왜 거기 나오는 ‘son’을 아들로 번역해서 ‘아브라함의 아들, 다윗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영어 사전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듯이 영어 단어 ‘son’은 아들도 되고 자손도 됩니다. 이 중 문맥에 맞게 자손을 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 ‘son’을 아들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이해하는 데 문제가 생기고 문화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daughter’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때는 딸이고 어떤 때는 손녀입니다. 이것을 무조건 아들, 딸로 하면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혼동을 가져다줍니다. 물론 그 당시 유대 사람들, 그리스 사람들도 이런 경우는 자손으로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구절의 ‘son’을 자손으로 한 것은 영어나 원어나 우리말 모두에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아주 적합한 번역입니다. 오히려 이것을 아들로 번역하면 우리말에서 오역이 될 소지나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큽니다. 굳이 아들로 하기 원하면 영어 성경을 보시기 바라며 영어에는 ‘son’으로 되어 있어 둘 다 해석이 가능하다고 하기 바랍니다.
2009-05-07 16:39:28 | 관리자
질문: 고래는 포유동물인데 어떻게 ‘물고기’(fish) 즉 어류가 될 수 있습니까? 고래를 물고기라고 말하는 킹제임스 성경은 잘못되지 않았습니까? 대답: 먼저 대언자 요나와 관련해서 고래와 물고기가 나오는 두 구절을 살펴보도록 합시다.이제 주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시매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더라(욘1:17).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중심부에 있으리라(마12:40).성경에 따르면 전적으로 물에 사는 피조물은 다 물고기 즉 ‘fish’로 되어 있습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 ‘fish’를 찾아보면 그 첫 번째 의미가 바로 성경이 정의하는 바와 똑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과학을 잘못 적용하기 때문에 물고기 즉 ‘fish’는 바늘 달린 어류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fish’를 ‘어류’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채 20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진화론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용례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30년 정도 된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고래를 ‘fish’로 즉 ‘물고기’로 부른 것은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요나와 관련해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나가 고래 뱃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고 말합니다. 과연 이런 주장이 맞는 것일까요? 마태복음 12장에서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구할 때에 그분께서는 40절 말씀처럼 요나의 표적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표적은 문맥으로 보아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킵니다. 요나가 죽었다가 부활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예를 들어가면서 자신의 부활 표적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정말로 요나가 죽었을까요? 물론입니다. 요나서 2장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이르되, 내가 내 고난으로 인하여 주께 부르짖었더니 그분께서 내 말을 들으셨고 내가 지옥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목소리를 들으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으로, 바다들 한가운데로 던지셨으므로 넘치는 큰물이 나를 에워쌌고 주의 큰 물결과 파도가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눈앞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거룩한 전을 바라보리이다, 하였나이다. 물들이 나를 에워싸되 혼까지 에워쌌으며 깊음이 나를 둘러막고 해초가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내가 산들의 밑바닥까지 내려갔으며 땅이 자기 빗장들과 함께 영원히 내 곁에 있었사오나, 오 주 내 하나님이여, 주께서 내 생명을 썩음에서 끌어올리셨나이다(욘2:2-6).
2009-05-07 16:38:23 | 관리자
마태복음 23장 2-7절의 율법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2)
551. 양털과 무명실을 함께 섞어서 잔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신 22:11).
552. 결혼의 성립에 대한 규정(신 22:13)
553. 아내에게 그녀가 처녀가 아니었다고 하는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난 경우에 관한 규정
(신 22:14-18)
554. 아내에게 그녀가 처녀가 아니었다고 거짓 누명을 씌운 사람은 평생 그 여자와 함께 살아야
한다(신 22:19).
555. 성 안에서 한 남자와 다른 사람에게 약혼한 여자가 성관계를 가졌을 때에는 둘 다 돌로
쳐죽여야 한다(신 22:24).
556. 그러나 성 밖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남자만 돌로 쳐죽여야 한다(신 22:26).
557.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욕보인 남자는 그녀의 아버지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신 22;29).
558. 그리고 그는 그녀와 결혼해야 하되, 그 여자와 이혼해서는 안 된다(신 22:29).
559. 신낭이 터졌거나 신(腎)을 베인 사람은 주의 총회 회원이 될 수 없다(신 23:1).
560. 사생아는 주의 총회 회원이 될 수 없다(신 23:2).
561. 유대인은 암몬 사람이나 모압 사람과는 영원히 결혼할 수 없다(신 23:3).
562.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과는 평화 관계를 가지려고 해서는 안 된다(신 23:6).
563.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신 23:7a).
564. 이집트 사람도 미워해서는 안 된다(신 23:7b).
565. 제의적으로 부정한 사람은 진(陳)에 들어갈 수 없다(신 23:10, 11).
566. 화장실은 진 밖에 만들어야 한다(신 23:12).
567. 군인은 무기와 더불어 삽을 항상 같이 가지고 다녀야 한다(신 23:13).
568. 도망온 종을 되돌려 보내서는 안 된다(신 23:15).
569. 그리고 그들을 압제해서도 안 된다(신 23:16).
570. 이스라엘 자손은 창녀나 남창이 되어서는 안 된다(신 23:17).
572. 동족에게서 이자를 취해서는 안 된다(신 23:20).
573. 이방인에게는 이자를 받을 수 있다(신 23:21).
574. 하나님에게 서원한 것은 지체함이 없이 지켜야 한다(신 23:21).
575.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신 23:23).
576.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가서 먹을 만큼 실컷 따먹는 것은 괜찮다(신 23:24a).
577. 그러나 그릇에 담아 가면 안 된다(신 23;24b).
578. 이웃의 밭에 들어가서 이삭을 손으로 잘라먹는 것은 괜찮지만, 곡식에 낫을 대면
안 된다(신 23:25).
579. 이혼 증서에 대한 규정(신 24:1 이하)
580. 이혼한 아내를 다시 아내로 맞아들여서는 안 된다(신 24:4).
581. 새신랑은 1년동안 집을 떠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신 24:5a).
582. 그리고 그 기간 동안에는 그는 모든 의무로부터 자유하다(신 24:5b).
583. 맷돌을 저당 잡아서는 안 된다(신 24:6).
584. 악성 피부병의 조짐이 보이면, 그것을 무시하지 말라(신 24:8).
585. 담보물을 잡으려고 집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신 24:10).
586. 담보물은 그날로 되돌려 주어야 한다(신 24:12).
587. 담보물을 그것을 잡힌 사람이 필요한 때에 즉시로 돌려주어야 한다(신 24:13).
588. 품꾼에게는 그날로 품삯을 지불해야 한다(신 24:15).
589. 혈연 관계가 있는 사람의 증언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신 24:16).
590. 외국 사람과 고아에게 억울하게 재판해서는 안 된다(신 24:17).
591. 과부의 옷을 저당 잡아서는 안 된다(신 24:17).
592. 밭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잊어버리고 거두어들이지 않은 단을 다시 가서 취하여 와서는
안 된다(신 24:19).
593. 그것은 올리브 나무의 열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신 24:20).
594. 형벌로 매를 맞을 경우에는 재판관은 매 맞을 사람을 자기 앞에 엎드리게 하고 죄의 정도에
따라 매를 때리게 해야 한다(신 25:2).
595. 그러나 40대 이상 때려서는 안 된다(신 25:3).
596. 곡식을 밟으면서 타작하는 소의 입에 망을 씌워서는 안 된다(신 25:4).
597. 남편이 아들이 없이 죽은 경우, 그의 아내는 다른 사람과 재혼해서는 안 된다(신 25:5a).
598. 죽은 남편의 형제가 그녀와 결혼을 해야 한다(신 25:5b).
599. 죽은 형을 대신해서 형수와 결혼하기를 거절하는 사람에 대한 규정(신 25:7-10)
600. 음낭을 잡는 자를 보고도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신 25:11).
601. 그에게는 동정심을 보여서는 안 된다(신 25:12)
602. 집에 크고 작은 두개의 되를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신 25:14).
603. "아말렉 사람이 너희에게 한 일을 기억하라"(신 25:17).
604.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라(신 25:18).
605. 그리고 절대로 그들이 한 일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신 25:18).
606. 햇곡식을 예물로 바칠 때 드리는 고백(신 26:5-10)
607. 가난한 자들을 위한 십일조를 드린 것에 대한 고백(신 26:12-15)
608. 십일조를 애곡하는 날에 먹어서는 안 된다(신 26:14a).
609. 그리고 제의적으로 부정한 상태에서 먹어서도 안 된다(신 26:14b).
610. 또한 그것을 죽은 자를 위해 사용해서도 안 된다(신 26:14c).
611. 하나님의 길을 따라 걸으라(신 26:17).
612. 안식년 장막절에 모든 이스라엘 회중을 다 모아야 한다(신 31:12-13).
613. 토라(율법)를 써서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신 31:19).
2009-05-07 16:36:17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