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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연대기: 역대기하 The Second Book of the CHRONICLES 기록자: 에스라, 기록 시기: 주전 450년경, 성격: 역사, 기간: 약 427년(어셔), 수신자: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이름: 역대기상 참조 주제: 솔로몬의 성전 건축부터 느부갓네살의 성전 파괴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향해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것 목적: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새 세대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징계하실 때나 복을 주실 때나 언제든지 긍휼을 베푸신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시119:75; 히12:6-13) 내용: 역대기하는 솔로몬이 다윗의 왕좌에 오른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책에서 북 왕국 이스라엘이 언급되는 곳은 왕국이 분열되고 북 왕국의 첫 번째 왕 여로보암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기록한 부분뿐이다. 나머지 부분은 유다가 바빌론의 포로가 될 때까지 유다 왕들에 관한 기사를 담고 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의 칙령이 떨어져서 유다가 회복되고 유대인들이 고향으로 되돌아와 성전을 건축한다는 암시가 들어 있다(스1:1-4 참조). 역대기하는 36장, 822절, 26,074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7장(하나님의 복을 얻기 위한 조건과 약속), 핵심 절: “너희가 만일 주와 함께하면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하시리라. 너희가 만일 그분을 구하면 그분을 만나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분을 버리면 그분께서도 너희를 버리시리라.”(15:2) 핵심 단어: 굳게 세우다, 핵심 구: “마음을 예비하고 하나님 즉 주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을 구하는 사람은”(30:19) 역대기하의 그리스도: 왕의 왕, 주의 주, 영적 교훈: “왕에게 존귀와 영예를 돌려라.”
2009-05-07 15:00:41 | 관리자
첫 번째 연대기: 역대기상 The First Book of the CHRONICLES 기록자: 에스라, 기록 시기: 주전 450년경, 성격: 역사, 기간: 약 41년, 수신자: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이름: 역대기는 역사적 사실들을 연대별로 기록한 글로서 히브리말로는 ‘그 시대의 말씀들’을 뜻하는 ‘디브레하야밈’이라 불렸다. Chronicles는 거룩한 역사 연대기를 뜻하는 라틴어 성경 제목 ‘크로니코룸 리베르’에서 유래되었다. 역대기상 ․ 하에는 이스라엘 자손과 관련된 사건들 가운데 특히 유다 왕국의 사건들이 일목요연하게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다. 원래 역대기상 ․ 하는 한 권이었으나 후에 현재와 같이 두 권으로 나뉘었다. 또 최초의 히브리어 정경 배열에서 역대기는 구약성경의 맨 끝에 위치하였다. 사무엘기상 참조. 주제: 아담부터 다윗의 등극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과 함께 이 땅을 통치한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긍휼, 성전 건축 준비와 성전 예배 목적: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새 세대에게 다윗과 그의 자손 즉 약속된 왕 메시아의 계보를 알려 주고 하나님의 거처인 성전 재건을 준비하게 하는 것 내용: 열왕기상 ․ 하는 유다와 이스라엘 두 왕국의 역사를 평행으로 보여 주지만 역대기상 ․ 하는 아담부터 시작하는 긴 족보와 함께 주로 남 왕국 유다의 사건들을 보여 준다. 특별히 역대기는 메시아가 유다 지파와 유다 왕국을 통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는 신학적 관점에서 기록되었다. 또 역대기상 ․ 하는 사무엘기상 ․ 하와 열왕기상 ․ 하의 사건들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는 주석서라 할 수 있다. 역대기상 ․ 하는 종교적이고 제사장과 성전 중심적이며 하나님께서 역사를 치리하신다는 관점에서 사건들을 기록한 반면에 사무엘기상 ․ 하와 열왕기상 ․ 하는 왕족의 입장에서 왕의 일들을 다루고 왕좌 중심적이며 사람이 역사를 이끌어가는 관점에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다른 역사서에 기록되지 않은 사건들이 역대기상 ․ 하에 기록되어 있다. 역대기상은 29장, 941절, 20,369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11장(다윗이 왕이 됨), 핵심 절: “레위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하나님의 궤를 나를 수 없나니 그들을 주께서 택하사 하나님의 궤를 나르고 영원토록 그분을 섬기게 하셨느니라”(15:2)핵심 단어: 통치하다, 핵심 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집을 건축하려고”(29:16) 역대기상의 그리스도: 왕의 왕, 주의 주, 영적 교훈: “왕가의 계보를 지켜라.”
2009-05-07 15:00:01 | 관리자
질문: 느부갓네살인가요, 느부갓레살인가요? 왜 킹제임스 성경은 동일 인물의 이름을 달리 표기합니까?  대답: 성경에서 느부갓네살이라는 이름은 왕하24:1에 처음으로 나오며 느부갓레살은 렘21:2에 처음으로 나옵니다. 여호야김 시대에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 동안 그의 종이 되었다가 그 뒤에 돌이켜 그를 배반하였더니(왕하24:1).바빌론 왕 느부갓레살이 우리를 치려고 전쟁을 일으키니 원하건대 우리를 위하여 주께 물으라. 주께서 자신의 모든 놀라운 일들에 따라 우리를 다루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 올라가리라, 하니라(렘21:2).킹제임스 성경을 보면 동일 인물에 대해 느부갓네살은 60회, 느부갓레살은 31회 나옵니다. 흥미 있는 것은 느부갓레살이 예레미야와 에스겔에만 나온다는 점입니다. 한편 느브갓네살은 열왕기하, 역대기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다니엘에 나오며 예레미야에도 10회나 나옵니다.    이 이름들은 바빌론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서 유다를 포로로 잡아간 인물의 이름입니다.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은 부주의하게 느브갓네살이라는 이름만을 사용하지만 영어 KJV 번역자들은 두 종류의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신실하게 히브리말을 보존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같은 사람에 대해 두 이름을 사용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핸슨 교수(James N. Hanson)가 가장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그분은 지난 몇 백 년간의 주석서들을 비교하고 각각의 이름이 나올 때의 문맥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뒤 그는 느부갓네살은 ‘고귀한 보호자’를, 느부갓레살은 ‘고귀한 종’을 뜻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다시 말해 느부갓레살은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수행하는 도구로 쓰일 때 사용되었고 느부갓네갈은 단순히 그의 역사적 행보를 기록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자세히 분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느부(Nebu) : 느보를 가리키며 바빌론의 태양신처럼 고귀한 존재를 나타냄.갓(chad) : 갈대아를 줄인 말로 바빌론의 제사장 계급을 뜻함.네(nez) : 보호자레(rez) : 종살(zar) : 왕(러시아의 짜르, 카이사르 등이 같은 어원임)   그런데 이상하게도 말씀보존학회 한글 킹제임스 성경에는 느부갓레살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들은 느부갓레살을 모두 느부갓네살로 번역하였습니다.    
2009-05-07 14:59:19 | 관리자
흔히 왕들에 관한 네 번째 책이라 하는 왕들에 관한 두 번째 책: 열왕기하 The Second Book of the KINGSCommonly Called, The Fourth Book of the Kings 기록자: 에스라 혹은 예레미야(전승), 기록 시기: 주전 550년경, 성격: 역사, 기간: 약 308년(아합의 죽음으로부터 여호야긴의 마지막 날까지), 수신자: 믿음의 위기를 맞은 이스라엘, 이름: 열왕기상 참조 주제: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의 배도의 절정과 이것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목적: 성도들에게 배도의 원인과 방법과 결과를 보여 주고 성령님의 인도를 통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속에서 걷도록 촉구하는 것내용: 열왕기하는 열왕기상에 이어서 분열 왕국의 왕들의 생애와 업적을 담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이 배도하여 하나님을 멀리하다가 바빌론과 아시리아의 포로가 되어 잡혀가는 일을 기록한다. 또한 엘리야의 승천, 엘리사의 사역 등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기간에는 여러 대언자가 출현하여 이스라엘의 배도를 책망하고 하나님께 돌아설 것을 촉구하였다. 아모스와 호세아는 이스라엘에서, 오바댜, 요엘, 이사야,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예레미야 등은 유다에서 활동했다. 열왕기상 ․ 하는 크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열왕기상에서는 다윗 왕의 시작이 있고 솔로몬의 영화가 있으며 순종의 복이 나오고 성전의 건축이 나오며 배도의 진보가 나오고 왕들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제대로 통치하지 못하는 것이 나오며 엘리야가 등장하고 주의 인내가 강조되어 나타난다. 반면에 열왕기하에서는 바빌론 왕이 멸망시키는 일이 나오고 여호야긴의 수치로 끝이 나며 불순종의 저주가 나오고 성전의 몰락이 나오며 배도의 결과가 나오고 통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가 나오며 엘리사가 등장하고 주께서 분명하게 죄를 징계하시는 것이 나온다. 열왕기하는 25장, 719절, 23,532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2장(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권능), 핵심 절: “그런즉 이제 알지니 곧 주께서 아합의 집에 관하여 말씀하신 주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10:10), 핵심 단어: 악하다, 핵심 구: “주의 말씀대로”(1:17), 열왕기하의 그리스도: 왕의 왕, 주의 주, 영적 교훈: “성령님의 권능이 엘리야에게 임한 것보다 두 배나 임하도록 기도하라.”(2:9)
2009-05-07 14:58:42 | 관리자
아하시야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딸 아달랴더라(왕하8:26).    아하시야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사십이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 역시 오므리의 딸 아달랴더라(대하 22: 2)   Two and twenty years old was Ahaziah when he began to reign; and he reigned one year in Jerusalem. And his mother’s name was Athaliah, the daughter of Omri king of Israel(2 Kings 8:26).    Forty and two years old was Ahaziah when he began to reign, and he reigned one year in Jerusalem. His mother’s name also was Athaliah the daughter of Omri(2 Chronicles 22:2).   유다 왕 아하시야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 나이는 얼마였을까요? 왕하 8장은 22세라고 말하고 대하 22장은 42세라고 합니다.   성경이 잘못된 것일까요? 분명히 모순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로 기록된 사본들은 한결같이 22세와 42세라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킹제임스 성경이나 개역성경의 문제가 아니라 히브리어 성경 자체의 문제로 보입니다.    실로 이것은 역본의 문제가 아니라 히브리어 사본 자체에 실수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또한 이것은 성경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성경의 오류라고 지적하는 성경의 가장 큰 난제 중 하나입니다.   고고한 학자들은 이에 대해 무어라고 말할까요? 예상했듯이 그들은 어김없이 여기서도 ‘사본 기록자의 실수’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칩니다. 그러면 우리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히브리어 성경에 오류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째 하나님의 성품과 잘 맞지 않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러나 우리 비블리시스트들은 항상 하나님께서 성경 본문의 모든 단어를 오류 없이 기록하시고 오류 없이 보존해 주셨음을 믿습니다. 아멘! 그러므로 이 전제 하에서 성경을 풀어 보면 성경이 이런 문제에 대해 답을 주지요.   구약 성경의 연대기를 공부할 때 우리는 다음에 주의해야 합니다.   (1) 왕들의 연대기에서 성경은 항상 한 해 전체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한 해의 일부는 대개 한 해로 표현됩니다. 또한 한 해의 일부는 실제로 두 번 계수될 때도 있습니다. 즉 물러나는 왕을 위해서 또 새로 즉위하는 왕을 위해서 말입니다. 여기 문제의 구절의 경우 이 당시에 이스라엘에는 세 명의 왕이 같은 해에 있었습니다. (a) 전쟁에 나간 아합 왕: 그는 곧 바로 죽었습니다. (b) 그의 아들 아하시야(그는 선왕과 함께 공동 왕 노릇을 했는데 영어로 이것은 co-Rex라 합니다. 그는 곧 격자창에서 떨어져 죽습니다. (c) 아합의 손자 여호람이 이 해에 왕이 되었습니다.   (2) 때때로 왕의 통치 기간은 그가 왕좌로 나간 때가 아니라 왕조가 시작된 때로부터 계수되곤 합니다. 여기에 대한 전형적인 예는 대하16:1에 있습니다. 바아사가 유다를 침공했을 때 아사의 통치 기간은 르호보암 하의 연합 왕국이 분열된 때로부터 계수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왕상16:8의 문제를 푸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역대기는 왕국의 기간을 기록하고 열왕기는 왕의 직무 기간을 기록합니다. 좀 이상하게 보이지만 성경에는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3) 또 어떤 때는 왕의 통치 기간이 그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때부터 시작되기도 하고 그가 실제로 왕이 된 때부터 시작되기도 합니다. 사실 많은 경우에는 이 두 일이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예수님은 분명히 유대인들의 왕으로 태어나셨지만(마2:2) 그분이 진짜 왕이 되는 것은 천년왕국에서 다윗의 왕좌에 앉을 때입니다. 여호야긴은 자기 아버지가 쫓겨난 후에 여덟 살에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대하36:9).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왕비로서 그를 대신해서 그가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통치했습니다(왕하24:8). 그리고 세 달 뒤에 왕인 그와 그의 어머니 역시 추방을 당했습니다(왕하24:12).   (4)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에서는 한 기간에 여러 왕이 통치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왕이 있는데도 그 왕을 대신해서 통치하는 왕이 있었고(이 경우는 영어로 pro-Rex라고 합니다) 또 어떤 때는 왕과 함께 공동으로 통치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이 경우는 영어로 co-Rex라고 합니다).   (5) 성경에서 ‘아들’은 종종 아버지의 연속되는 친아들이 아니라 손자나 후손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실제로 할아버지가 될 때도 있고(단5:2) 양아버지가 될 때도 있으며 먼 조상이 될 때도 있습니다(마1:1).   지금 우리가 여기서 살펴보는 구절들은 이 당시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린 왕들의 이름이 비슷해서 더 혼동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아하시야는 이스라엘에 하나, 유다에 하나가 있어서 총 두 명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A-A-J (아합-아하시야-여호람, Ahab-Ahaziah-Jehoram) 유다: J-J-A (여호사밧, 여호람, 아하시야, Jehoshaphat-Jehoram-Ahaziah)   마지막으로 기록을 살펴보면 아하시야는 또 다른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하시야(대하22:1), 여호아하스(대하21:17), 아사랴(대하22:6). 그러면 이제부터 비블리시스트들의 문제 해결 방법을 살펴봅시다. 이 문제의 해결 실마리는 신약성경에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계보가 나옵니다. 특히 1장 8절에는 문제의 구절 당시의 다윗의 계보가 나오는데 여기에 보면 참으로 이상한 것이 발견됩니다. 다음의 표를 보기 바랍니다.     마태복음의 그리스도의 계보에는 유다의 세 왕의 이름이 빠져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출20:5, 민14:18, 시109:13-15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그들의 통치에 문제가 있었기에 그들의 이름은 삭제되어 있습니다(대하22:2-4).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아하시야를 다윗의 씨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오므리의 후손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또한 그의 어머니인 아달랴의 혈통과 영향에 대해 강조합니다. 물론 그녀는 오므리의 손녀(혹은 딸)이었고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었습니다(왕하8:18).   이제 배경을 공부했으므로 두 가지 해결책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1. 해결책 #1   아하시야는 유다의 왕위에 오를 때에 22세였습니다(왕하8:26). 그는 실제로 여호람과 아달랴의 아들이었습니다. 아하시야는 병에 든 그의 아버지 여호람과 함께(대하21:18) 1년 동안 공동 왕(co-Rex)으로 통치했습니다(왕하9:29—이스라엘 왕 여호람의 제11년).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왕 여호람의 제12년, 왕하8:25)에 1년 동안 단독으로 왕이 되었습니다. 아하시야는 주전 887년경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여기서 42년을 빼면 주전 929년이 됩니다. 다시 말해 아하시야는 열왕기에 기록되어 있듯이 22세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역대기에서 그의 통치는 사악한 왕 오므리 왕조가 시작된 주전 929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계수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성령님께서는 다윗의 계보에서 이 사악한 자들을 제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경우 영어로 역대기하의 “Forty and two years”는 히브리 숙어로 “A son of forty two years” 즉 “42년의 아들”이 됩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 그때가 오므리의 왕조가 시작된 지 42년이 되는 해라는 뜻입니다.   2. 해결책 #2   저는 개인적으로 두 번째 것을 더 선호합니다. 이 경우 아하시야는 왕위에 오를 때에 대하22:2에 있는 대로 42세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40세에 죽은 여호람의 친아들이 아니라 양아들이었습니다. 물론 그의 어머니는 아달랴였지만 친아버지는 여호람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20년을 뒤로 돌아가 보면(아하시야가 22세였을 때, 왕하8:26) 그때는 주전907년경이었습니다(여호사밧 왕의 통치 제8년). 바로 그때에 여호사밧은 아합과 인척관계를 맺었습니다(대하18:1). 여호사밧은 자기의 통치 제3년에 유다에서 부흥을 일으켰고(대하17:7-9) 그 뒤에 그의 왕국은 번영하게 되었습니다(대하17:12). 그러므로 아합과의 인척관계는 그 이후에 이루어졌음이 분명합니다.   대하18장에서 우리는 아합과 여호사밧이 연합한 지 몇 년이 지난 뒤에 이 두 왕이 시리아를 치기 위해 공동 군사 작전을 펴는 것을 보게 됩니다(대하18:2). 그 두 왕은 함께 전쟁에 나갔고(대하18:28) 아합은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대하18:33-34). 그 싸움이 있기 전에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며 아합을 책망한 대언자 미가야는 사슬에 묶여 아몬에게로 쫓겨납니다. 거기에는 이제 겨우 한 살이던 요아스가 거하고 있었습니다(왕상22:26). 그런데 여기에 아주 중대한 대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하시야의 친아들인 요아스(대하22:11)가 ‘왕의 아들’(king's son)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아하시야가 이미 그때에 왕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만일 여호사밧과 아합이 맺은 인척관계의 일환으로 이 당시에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다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즉 아하시야는 22세에 유다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20년이 지나서 실제로 왕위에 올랐던 것입니다.   성경은 그들의 인척 관계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하21:2는 유다의 왕인 여호사밧을 가리켜 “이스라엘의 왕!”이라 부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유다의 단독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자기의 형제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여러 통치자들도 죽였습니다(대하21:4). 그들이 유다 왕조에 위협이 되지 않았다면 그가 그렇게 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아하시야는 이스라엘의 왕실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처지에 있었습니다(왕하22:6). 어쩌면 이 두 왕 즉 여호사밧과 아합은 70년 전에 쪼개진 왕국을 다시 하나로 합치려 했을지 모릅니다. 물론 서로의 동기는 달랐을 것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여호사밧이 죽은 뒤에 자기들의 씨를 유다 왕국에 심어놓으려 했었을 겁니다. 사실 이것은 그들의 딸인 아달랴의 아들인 아하시야를 그 일에 배정해 놓음으로 - 즉 왕으로 기름을 부음으로 - 일찌감치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시리아와의 전쟁에서 여호사밧을 죽이려는 아합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대하18:29, 31-33) 아하시야는 20년을 기다린 뒤에야 비로소 유다의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아하시야는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22세일 수도 있고 42세일 수도 있었습니다. 즉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때와 왕위에 실제로 오른 때가 달랐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아하시야의 친아버지는 누구일까요? 아합과 여호사밧의 인척관계는 사실 지저분한 것이 많고 또 복잡합니다.   (a) 여호람의 아들(대하22:1). 아하시야가 그의 아버지 여호람보다 두 살이 많으므로 그는 그의 양아들이었습니다. 즉 그의 어머니 아달랴가 여호람과 결혼할 때에 그는 법적으로 그의 (양)아들이 되었습니다.   (b) 아합의 집의 사위(왕하8:27). 이 관계는 그가 시비아와 결혼함으로써 이루어졌을 것입니다(대하24:1). 이 시비아는 아합의 딸이나 손녀였을 것입니다.   (c) 여호사밧의 아들(대하22:9). 대하22:9를 보면 아하시야는 여호사밧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죽을 때에 어느 정도 관용이 베풀어졌습니다. 이것을 볼 때 아마도 여호사밧은 그 당시의 관례를 따라(왕상3:1) 인척관계를 맺으면서 아합(혹은 오므리)의 딸인 아달랴를 아내로 맞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성경은 더 이상 자세한 것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전능자 하나님은 부정한 연합을 기뻐하지 않습니다(고전6:14-17). 그래서 주님은 여호람과 아사시야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요아스와 더불어 유다에 바알 숭배를 들여오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계보에서 삭제되어 있습니다. 아하시야가 죽었을 때에 하나님은 친히 왕가의 계보에서 아합의 집을 끊어버렸습니다(대하22:7-9).   이 두 가지 해결책 외에도 두 명의 아하시야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즉 왕하 8장과 대하 22장의 아하시야가 동명의 서로 다른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즉 여호람의 친아들 아하시야와 여호람보다 나이가 많은 양아들 아하시야 - 물론 아달랴의 아들임).   여러분과 저의 손에 있는 킹제임스 성경에는 오류가 없습니다. 만일 이런 대답으로도 만족이 되지 않으면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거기서 주님께서 밝히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불신자들의 말에 위협을 받거나 그것으로 인해 낙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롬3:4)  
2009-05-07 14:58:02 | 관리자
문제: 열왕기상 15장의 아바와 아비얌의 어머니(마태복음 1장의 세대 수 문제)    마태복음 1장 17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의 모든 세대가 열네 세대요, 다윗부터 바빌론으로 끌려갈 때까지 열네 세대요, 바빌론으로 끌려간 때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세대라. 표 1은 2절에서부터 16절까지 나온 이름들을 17절에 있는 세 구분에 따라 적은 것이다. 표 1에서 보듯이 첫 번째 구분과 세 번째 구분에는 14명의 이름이 있으나 두 번째 구분에는 15명의 이름이 있다. 왜 이런 차이를 보일까?   표 1 마태복음 1장의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의 세 구분 첫 번째 구분 두 번째 구분 세 번째 구분 1 아브라함 다윗 여고니야 2 이삭  솔로몬 스알디엘 3 야곱 르호보암 스룹바벨 4 유다 아비야 아비훗 5 베레스 아사 엘리아김 6 헤스론 여호사밧 아소르 7 람 요람 사독 8 아미나답 웃시야 아킴 9 나손 요담 엘리웃 10 살몬 아하스 엘르아살 11 보아스 히스기야 맛단 12 오벳 므낫세 야곱 13 이새 아몬 요셉 14 다윗 요시야 그리스도 15 여고니야 해결책: 왕상 15:1-2절과 15장 9-10절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왕의 제십팔년에 아비얌이 유다를 통치하고 예루살렘에서 삼 년 동안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살롬의 딸 마아가더라(15:1-2).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의 제이십년에 아사가 유다를 통치하고 예루살렘에서 사십일 년 동안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살롬의 딸 마아가더라(15:9-10). 여기서 보듯이 아비야(아비얌은 그리스말로 아비야이다)와 아사는 동일한 어머니의 아들이었다. 즉 아비야와 아사는 형제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두 세대가 아니라 한 세대이므로 표 1은 다음과 같이 변경될 수 있고 그러면 세 구분 모두 14세대를 갖게 된다.   표 2 마태복음 1장의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의 세 구분(수정됨) 첫 번째 구분 두 번째 구분 세 번째 구분 1 아브라함 다윗 여고니야 2 이삭  솔로몬 스알디엘 3 야곱 르호보암 스룹바벨 4 유다 아비야, 아사 아비훗 5 베레스 여호사밧 엘리아김 6 헤스론 요람 아소르 7 람 웃시야 사독 8 아미나답 요담 아킴 9 나손 아하스 엘리웃 10 살몬 히스기야 엘르아살 11 보아스 므낫세 맛단 12 오벳 아몬 야곱 13 이새 요시야 요셉 14 다윗 여고니야 그리스도 이렇게 하면 문제가 풀리는 것 같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것들이 있다. 마1:7은 아비야가 아사를 낳았다고 하지 않는가? Abija begat Asa(마1:7).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beget이다. beget은 강조하기 위한 be와 무엇을 얻는다는 뜻의 get이 결합된 말로서 ‘특별 관계를 맺다’는 뜻이다. 성경에는 남자가 남자를 낳는 것(beget)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실제로 남자는 남자를 낳을 수 없다. 이런 경우 어쩔 수 없이 우리말로 beget을 ‘낳다’로 번역했지만 실제의 뜻은 ‘특별 관계를 맺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아비야는 아사와 특별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 원래의 뜻이다. 독생자는 영어로 only begotten Son이다. 예수님은 원래부터 항상 아들로 존재해 왔으나 이 땅에 내려오셔서 하나님이 ‘이 땅에 주신 유일한 아들’로 그분과 특별 관계에 들어갔기에 ‘유일하게 낳은 아들’이라는 독생자로 불리게 된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을 실제로 낳은 것이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성육신 하실 때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아비야는 자기의 형제 아사를 왕으로 삼기 위해 특별한 관계를 맺어 그를 훈련시켰음에 틀임이 없다.   그러나 그래도 여전히 안 풀리는 문제가 있다. 왕상15:8에는 아사가 아비야의 아들로 되어 있지 않은가? 이 경우도 성경에서 말하는 아들(son)의 용례를 잘 보아야 한다. 성경에서 아들은 반드시 한 아버지의 육체적 아들이 될 필요가 없다.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만 성경에는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이 반드시 한 세대와 다음 세대를 가리키지 않는다. 왕상 15:3에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그(아비야)가 전에 자기 아버지가 자기 앞에서 행한바 자기 아버지의 모든 죄 가운데 걸었으며 그의 마음이 자기 조상(his father) 다윗의 마음처럼 주 자기 하나님께 대해 완전하지 아니하였으나 우리말 성경에는 자기 조상으로 번역되었으나 원어나 영어는 자기 아버지로 되어 있다. 물론 다윗은 아비야의 증조 할아버지이다. 따라서 이와 같이 복잡한 문제를 풀 때에는 항상 명백한 것을 중심으로 해서 명백하지 않은 것을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서 명백한 것은 아비야와 아사가 같은 어머니를 둔 형제라는 것이다. 그래야 마태복음의 세대 수도 해결될 수 있다. 이보다 덜 명확한 것은 아들(son)과  'beget'이라는 단어의 용례이다.   끝으로 다른 가능성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아비야의 어머니 마아가가 아들과의 근친상간을 통해 아사를 낳는 경우이다. 마아가가 사악한 여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것도 가능한 옵션이지만 과연 예수님의 계보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지 의문의 여지가 있다. 또 이 경우 아비야와 아사를 한 세대로 간주하여 마태복음의 세대 수 문제를 풀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하튼 아비야와 아사는 같은 어머니를 둔 같은 세대이다. 이로써 마태복음 1장의 세대 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2009-05-07 14:57:11 | 관리자
흔히 왕들에 관한 세 번째 책이라 하는 왕들에 관한 첫 번째 책: 열왕기상 The First Book of the KINGSCommonly Called, The Third Book of the Kings 기록자: 에스라 혹은 예레미야(전승), 기록 시기: 주전 550년경, 성격: 역사, 기간: 약 118년(다윗의 통치가 끝나는 시점부터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죽을 때까지) , 수신자: 믿음의 위기를 맞은 이스라엘 이름: 열왕기상 ․ 하라는 이름은 ‘왕들’을 뜻하는 히브리말 ‘멜라킴’에서 유래되었다. 히브리 성경에서 열왕기상 ․ 하는 한 권으로 되어 있으며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 왕들의 생애와 업적과 그 당시의 시대상을 담고 있다. 사무엘기상 참조. 주제: 하나님께서 대언자 엘리야의 시대까지 솔로몬과 분단 왕국의 왕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것 목적: 왕국의 흥망성쇠의 원인이 무엇인지 보여 주며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려 할 때 우리의 지혜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인도하사 복을 누리게 하심을 보여 주는 것 내용: 열왕기상에는 다윗의 죽음, 솔로몬의 등극과 통치와 우상숭배와 죽음, 그리고 르호보암 시대에 통일 왕국이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로 분열되는 것, 성전의 건립과 극도의 우상숭배, 대언자 엘리야와 사악한 왕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의 대결 등이 담겨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정치적 교훈이나 역사뿐만 아니라 영적 교훈을 깨달아야 한다. 이 책의 핵심은 출애굽기 20장(신명기 5장)에 기록된 십계명의 첫 번째 명령과 두 번째 명령의 준수에 따른 왕국과 왕들의 흥망성쇠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책은 하나님의 언약 민족인 이스라엘이 멸망을 당하는 근본 원인이 주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의 타락과 다른 신을 섬겨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한 데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금송아지 우상을 섬긴 일, 바알 예배에 극력 반대한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적이 자세히 기록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편 이 책은 마태가 기록한 메시아의 족보를 전달해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열왕기상은 22장, 816절, 24,524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22장(종교통합-아합과 여호사밧), 핵심 절: “오직 내가 온 왕국을 찢어 없애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11:13), 핵심 단어: 왕권, 핵심 구: “그의 아버지 다윗”(2:12) 열왕기상의 그리스도: 왕의 왕, 주의 주, 영적 교훈: “왕을 왕의 자리에 앉혀라.”
2009-05-07 14:56:25 | 관리자
질문: 삼하 6장에서 웃사는 왜 죽었습니까?   대답: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왕권을 확립한 후에 주님의 궤를 바알레 즉 기럇여아림에서 자신의 도시로 가져오려고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블레셋 사람들의 방법대로 궤를 수레에 실어서 나르려 했습니다(삼상6:10-15 참조). 원래 주님의 궤는 레위 사람들이 궤의 고리에 막대를 넣어 나르게 되어 있었지만 그들은 이번에 주님의 명령을 무시하고는 새로 수레를 만들어 자기 방법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수레를 몰던 소들이 비틀거리므로 궤가 떨어지려 하므로 웃사가 궤에 손을 대게 되었고 즉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다윗은 두려워서 즉시 궤를 다시 가져오지 못하고 석달 후에 가져옵니다. 그런데 문제를 깨달은 다윗은 이번에는 바르게 행합니다. 대상 15장 2절에는 "레위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주님의 궤를 나를 수 없다"는 말씀이 나오고 13절에는 처음의 사고의 이유가 나옵니다. "처음에는 너희가 그것을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찢으셨나니 이는 우리가 합당한 규례대로 그분을 찾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그래서 그는 이번에는 레위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이 궤를 메어 나르게 하였습니다. 물론 이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알게 됩니다.    사람이 자기 귀를 돌이켜 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조차 가증한 것이 되리로다(잠28:9)
2009-05-07 14:55:02 | 관리자
사무엘기하 15장 7절과 열왕기상 2장 11절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압살롬의 40년)     사무엘기하 15장 7절: 사십 년 뒤에 압살롬이 왕께 이르되, 내가 주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내가 가서 헤브론에서 내 서원을 갚게 하소서(킹제임스 성경).   열왕기상 2장 11절: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치한 날들이 사십 년이더라. 그가 헤브론에서 칠 년을 통치하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을 통치하였더라(킹제임스 성경).     여기의 문제를 살펴보고 이해하기 위해 먼저 문맥을 살펴봅시다. 삼하 15장은 압살롬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4-7절을 읽어 보기 바랍니다.   4 또 압살롬이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어 청원이나 사정이 있는 사람이 다 내게로 올 때에 그에게 정의를 베풀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5 어떤 사람이라도 그에게 가까이 와서 경의를 표하려 하면 그가 자기 손을 내밀어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니라. 6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온 이스라엘에게 압살롬이 이런 식으로 행하여 이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니라. 7 사십 년 뒤에 압살롬이 왕께 이르되, 내가 주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내가 가서 헤브론에서 내 서원을 갚게 하소서.       7절의 40년이 압살롬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는 데 걸린 시간이라면 압살롬의 나이는 40세가 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압살롬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으로 있을 때에 태어났습니다(삼하3:2-3). 다윗은 헤브론에서 7년 반을 통치했고(삼하2:11) 그의 통치 기간은 전부 40년입니다(삼하5:4). 이것은 다윗의 통치 기간에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으므로 그의 나이가 40세 이하여야만 함을 보여 줍니다.     이런 문제가 있으므로 한글개역성경을 비롯한 현대 역본들은 7절의 40년이 서기관들의 잘못으로 인한 오기(誤記)라고 말하며 따라서 4년이 맞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은 분명히 40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히브리 성경과 예수님이 틀렸다는 것이지요.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성경을 그대로 믿는 ‘비블리시스트’(Biblicist)로서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이런 문제는 사실 문맥을 바로 이해하면 곧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여기의 40년은 압살롬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는 데 걸린 시간도 아니고 그 당시 다윗의 나이도 아닙니다. 다윗은 30세에 통치하기 시작했고(삼하5:4) 그 후에 압살롬이 태어났으므로 다윗이 40세에 압살롬은 기껏해야 아홉 살 뿐이 안 되었습니다. 열 살짜리 아이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또한 압살롭에게는 이미 아이들이 있었습니다(삼하14:27). 어떤 이들은 여기의 40년이 다윗의 통치 기간 40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압살롬의 반역은 그의 통치 이후에 발생하는데 이러면 삼하16장 이후의 사건들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의 신실한 친구인 플로이드 존즈 박사는 다음과 같이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6절에 언급된 ‘압살롬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한 일’에 있습니다. 즉 압살롬은 다윗에게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여 그들이 다윗을 버리고 자기를 따르게 했습니다. 그러면 언제 다윗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들이 자기를 따르게 했습니까? 그 일은 그때로부터 40년 전 즉 다윗이 블레셋 사람 골리앗을 죽이고 계속해서 전쟁에서 승리했던 때에 일어났습니다(삼상18:5, 16, 30). 그러므로 여기의 40년은 서기관의 실수가 아닙니다. 이 40년을 이렇게 이해해야 다윗의 생애 연대기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비블리시스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나오면 의심하지 말고 믿음을 발휘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골리앗을 죽여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지 40년이 지나서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그에게서 도둑질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비블리시스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히브리 본문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 믿음으로 그 안에 보존된 단어들을 있는 그대로 믿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다 해결하지 못한 것은 죽어서 하나님이 깨끗이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패시키는 자들처럼 그 귀한 단어들에 가감을 하지 않습니다. 이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하늘의 위로가 있을 줄 확신합니다.  
2009-05-07 14:54:00 | 관리자
왕들에 관한 두 번째 책이라고도 하는 사무엘의 두 번째 책: 사무엘기하 The Second Book of SAMUELOtherwise Called, The Second Book of the Kings 기록자: 나단(전승) 등, 기록 시기: 주전 1070-1010년경, 성격: 역사, 기간: 약 38년(사울의 사망으로부터 다윗의 통치가 거의 끝나는 시점까지) , 수신자: 믿음의 위기를 맞은 이스라엘, 이름: 사무엘기상 참조 주제: 하나님께서 다윗의 통치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는 것 목적: 궁극적으로 이스라엘과 민족들을 다스리실 그리스도의 통치와 복을 보여 주는 것 내용: 사무엘기하에는 다윗의 통치의 시작과 그의 타락과 그것으로 인한 비참한 결과,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예전 상태로 회복되는 일, 그리고 그의 왕국의 후반부 상황 등이 담겨 있다. 사무엘기상이 엘리와 사울과 사무엘을 통해 사람의 실패를 부각시키는 반면에 사무엘기하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통치를 통해 질서를 회복시키고 왕정 정치를 정착시키는 것을 부각시킨다. 또한 이 책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정치적 중심지로(삼하5:6-12), 시온이 종교적 중심지로 확립되는 것을 보여 준다(삼하5:7; 6:1-17). 질서가 확립된 이후에 하나님은 다윗과 언약을 맺고 그의 계통에서 메시아 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예언하신다(7:8-17). 사무엘기하는 24장, 695절, 20,612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5장(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통치함)핵심 절: “다윗이 주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으신 것과 또 그분께서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자기의 왕국을 높이신 것을 깨달으니라.”(5:12), 핵심 단어: 왕, 핵심 구: “주 앞에”(6:17) 사무엘기하의 그리스도: 다윗의 주님(7:4-17), 영적 교훈: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부르라.”
2009-05-07 14:53:12 | 관리자
질문 : 사무엘기상 21장 5절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입니까?   대답 : 이 구절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 중 하나이며 또 개역성경, NIV, NASV와 심지어 한글 킹제임스 성경 등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과 전혀 다르게 번역하여 더더욱 뜻을 알기 어렵습니다. 먼저 이 구절을 보겠습니다.   "다윗이 제사장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내가 떠나온 이후로 우리가 이 사흘 동안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청년들의 그릇들이 거룩하며 참으로 이 날 그 빵이 그릇에서 거룩히 구별되었을지라도 지금은 보통 방식으로 있나이다, 하매(킹제임스 흠정역)   And David answered the priest, and said unto him, Of a truth women have been kept from us about these three days, since I came out, and the vessels of the young men are holy, and the bread is in a manner common, yea, though it were sanctified this day in the vessel.(KJV)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참으로 삼일 동안이나 부녀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나의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날 그들의 그릇이 성결치 아니하겠나이까 하매(한글개역) David replied, "Indeed women have been kept from us, as usual whenever I set out. The men's things are holy even on missions that are not holy. How much more so today!"(NIV)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진실로, 내가 길을 떠난 후로 우리가 이삼 일 동안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그 빵이 보통 빵이라도 청년들의 그릇이 거룩해야 하거늘, 하물며 오늘 그 그릇이  더 성결해야 하지 아니하겠나이까?(한글 킹제임스)   먼저 여기 나오는 보여 주는 빵 즉 'shewbread'는 화덕에서 구운 뒤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특별한 그릇에 담아 날랐습니다(출35:13). 물론 그 빵은 단지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전시하는 역할을 다 한 후에도 여전히 거룩한 것으로 여겨져서 일반 사람들은 먹을 수 없었습니다. 전시한 지 하루가 지나면 제사장은 그 빵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하루하루 먹을 것을 마련해 주심을 보여 주는 빵을 거룩한 그릇에 담아서 밖으로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 뒤 이 빵은 제사장과 그의 가족들이 먹었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당신이 가지고 나온 그 빵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 주는 증거물에서 이제는 사람을 먹여 살리는 음식이 된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사람들의 그릇에 그것을 넣어도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예로 들면서 다윗이 보여 주는 빵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바르게 이해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 안식일이 지나고 두 번째 안식일에 그분께서 곡식 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에 그분의 제자들이 곡식 이삭을 따서 손으로 비벼 먹으매 어떤 바리새인들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안식일에 행하면 율법에 어긋나는 일을 하느냐? 하매 예수님께서 응답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또 자기와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행한 이 일도 너희가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 보여 주는 빵 곧 제사장 외에는 먹으면 율법에 어긋나는 빵을 집어 먹고 또 자기와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었느니라, 하시고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主)니라, 하시니라."(눅6:1-5)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날 우리에게 우리의 일용할 빵 - daily bread -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사실 보여 주는 빵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40년 간 매일 허락하신 일용할 빵 즉 만나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며 동시에 지금도 그분께서 자신의 백성을 위해 일용할 양식을 예비해 주심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전시가 끝나서 밖으로 치워지면 이 빵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양식이 됩니다. 다윗은 바로 이 점을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먼저 그분께서 예비해 주신 것을 보고, 느끼고,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구절을 쉽게 풀이해 보겠습니다.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내가 떠나온 이후로 우리가 이 사흘 동안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 이 말은 곧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며 더러움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청년들의 그릇들이 거룩하니 - 여기의 그릇은 실제 그릇이 될 수도 있고 그들의 몸이 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그릇으로 보는 것이 더 맞습니다. 삼상9:7을 보면 유대인들이 빵을 그릇에 가지고 다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에 사울이 자기 종에게 이르되, 보라,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가져가겠느냐? 우리 그릇에 있는 빵을 다 썼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져갈 예물이 없도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느냐? 하매"(삼상9:7) 참으로 이 날 그 빵이 그릇에서 거룩히 구별되었을지라도 지금은 보통 방식으로 있나이다, 하매 - 다윗은 "비록 이 빵이 아침에 거룩한 그릇에 담겨 안으로 들어가 보여 주는 빵이 되었지만 지금은 보통 빵으로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양식이 아닙니까?"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이 구절에서는 holy와 common이라는 단어를 써서 하나님과 상관 있는 것은 holy로 그리고 사람과 상관 있는 것은 common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제사장에게 "이 빵이 보여 주는 거룩한 빵이었지만 지금은 보통 빵처럼 사람을 위한 양식이 아닙니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앞뒤 문맥과 보여 주는 빵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 구절을 보시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매튜 헨리, 제이미슨/파우셋/브라운 등의 주석이 KJV의 의미를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The bread is in a manner common-i.e., now that it is no longer standing on the Lord's table. It is eaten by the priests, and may also, in our circumstances, be eaten by us. Yea, though it were sanctified this day in the vessel-i.e., though the hallowed bread had been but newly placed on the vessel, the ritual ordinance would have to yield to the great law of necessity and mercy (see the notes at Matt 12:3; Mark 2:25; Luke 6:3).  (from Jamieson, Fausset, and Brown Commentary, Electronic Database.  Copyright (c) 1997 by Biblesoft). 문장이 조금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아도 바르게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갈 것입니다.
2009-05-07 14:47:46 | 관리자
왕들에 관한 첫 번째 책이라고도 하는 사무엘의 첫 번째 책: 사무엘기상 The First Book of SAMUELOtherwise Called, The First Book of the Kings 기록자: 사무엘 등, 기록 시기: 주전 1070-1010년경, 성격: 역사, 기간: 약 115년(어셔), 수신자: 믿음의 위기를 맞은 이스라엘 이름: 사무엘기상 ․ 하에 있는 사무엘이라는 명칭은 사무엘기상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중심인물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히브리말로 사무엘은 그의 어머니 한나가 이야기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들어 주셨다’를 뜻한다. 히브리 성경에서 사무엘기상 ․ 하는 한 권으로 ‘사무엘의 책들’이라 불렸으며 사무엘의 일생과 그 당시의 시대상을 담고 있다. 그러나 후에 이 둘은 라틴어 성경에서 ‘왕들에 관한 첫 번째 책과 두 번째 책’으로 불리게 되었고 그 결과 열왕기상 ․ 하는 ‘왕들에 관한 세 번째 책과 네 번째 책’으로 불리게 되었다. 주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다윗으로 말미암은 왕정 통치 제도를 확립하신 것 목적: 대언자, 제사장, 왕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그분 안에서 복을 누릴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것(창22:17) 내용: 사무엘기상은 재판관 시대에 이어 이스라엘 백성이 여전히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한 것을 보여 준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대언자와 재판관으로 부름 받은 것은 이스라엘 왕국의 발전에 중대한 전환점을 가져왔다. 사무엘은 신정 통치에서 왕정 통치로 넘어가는 시기 즉 이집트 탈출 사건에 버금가는 중요한 일이 벌어지는 위기의 시대에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서 사회와 종교의 통일이라는 막중한 사명을 띠고 있었다. 그는 또 대언자 직분의 기초를 확립하였으며 그것을 제사장직과 왕권의 수준까지 발전시켰다. 사무엘 시대 이후로 대언자들은 민족의 영적 생활을 지속시키고 백성을 각성시키며 하나님의 뜻을 통치자와 백성들에게 전달하였다. 사무엘기와 열왕기는 통일 왕국 및 분단 왕국의 혼돈 상태에 대한 완전한 역사를 보여 준다. 사무엘기상에는 사무엘의 출생과 엘리의 교육,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의 비극적 생애와 하나님의 마음에 든 다윗의 고난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사무엘기상은 31장, 810절, 25,061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8장(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함)핵심 절: “이에 사무엘이 왕국의 규범을 백성에게 말하고 책에 그것을 기록하여 주 앞에 두고 온 백성을 각각 자기 집으로 보내니라.”(10:25; 8:7-18 참조)핵심 단어: 왕과 왕국, 핵심 구: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나이다.”(3:9) 사무엘기상의 그리스도: 다윗의 씨(롬1:3-4), 영적 교훈: “하나님의 등불이 밝게 타도록 하라.”(3:3; 마5:14-16)
2009-05-07 14:36:36 | 관리자
룻 기 The Book of RUTH 기록자: 사무엘(탈무드), 기록 시기: 주전 1000년경, 성격: 역사, 기간: 약 10년(어셔), 수신자: 하나님의 보호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 이름: 룻기는 이 책의 여주인공 즉 남편이 죽은 뒤 과부가 된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모압 여인의 이름을 따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 룻은 다윗 왕(룻4:18-22)과 예수님(마1:1, 5)의 조상이므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Ruth는 히브리어 책명인 ‘루트’에서 유래되었다. 성경에서 룻기와 에스더기는 유일하게 여자의 이름을 딴 책이다. 주제: 메시아가 나올 가계를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자신의 백성의 삶에 간섭해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 목적: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오되 유대인만을 위한 것은 아님을 보여 주는 것(1:16; 요4:22) 내용: 재판관들의 시대에 이스라엘은 지파들 간의 쟁투와 이방 세력의 압제로 말미암아 종교적, 정치적, 도덕적으로 약화되어 있었다. 특별히 이집트 탈출 당시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한 백성들의 하나님께 대한 경배심은 우상숭배로 인해 약화되었다. 그러나 룻의 이야기는 재판관 시대의 일반적인 생활상과는 다른 측면을 보여 준다. 여기서 우리는 베들레헴 출신의 경건한 가정이 겪는 기쁨과 슬픔을 보며 또 사사기 18-20장에 드러난 극도의 배도와 불안 속에서도 보아스와 같이 여전히 주 하나님을 섬기며 경건한 삶을 이루는 사람을 본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게 된 이방 여인 룻은 그 당시 이스라엘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신앙과 충절을 보여 주었다. 룻은 자기의 첫 남편을 잃은 뒤에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고 보아스와 결혼하여 다윗 왕의 조상이 되었다. 이 기사를 통해 우리는 수천 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을 이루기 위해 사람에게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들을 움직여서 자신의 뜻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본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장차 유대인과 이방인의 메시아가 나올 민족을 세우게 하셨는데 바로 이 민족 가운데서 메시아가 나올 가족이 룻기 안에 기록되어 있다. 룻기는 4장, 85절, 2,578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1장(룻의 결심), 핵심 절: “주를 찬송할지로다. 그분께서 이 날 네게 친족이 없게 내버려 두지 아니하셨도다.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4:14) 핵심 단어: 친족(2:1), 핵심 구: “가까운 친척”(2:20) 룻기의 그리스도: 우리의 친족-구속자(2:1), 영적 교훈: “곡식을 수확하라.”(시126:6)
2009-05-07 14:35:43 | 관리자
단 자손이 그 새긴 형상을 세웠으며 므낫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아들들은 그 땅이 포로로 사로잡혀 가는 날까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니라(삿18:30). “And the children of Dan set up the graven image: and Jonathan, the son of Gershom, the son of Manasseh, he and his sons were priests to the tribe of Dan until the day of the captivity of the land.”(Judges 18:30)   여기의 문제는 므낫세(Manasseh)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위로 올라간 ‘눈’(Hebrew letter n)이라는 문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Vn 만일 위로 올라간 ‘눈’이 없다면 자음들은 ‘MSH’가 되며 이것은 모세를 뜻합니다. 히브리 성경에서 위로 올라간 자음은 무언가를 강조할 때 쓰입니다. 시80:14, 욥38:13, 15에는 ‘아인’이라는 글자가 위로 올라가 있습니다. 현대역본들도 이것들은 모두 제대로 번역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 역시 킹제임스 성경처럼 위로 올라간 ‘눈’을 살려서 ‘므낫세’로 번역해야 함이 맞습니다. 이 단어를 모세로 번역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가리켜 서기관들의 실수라고 말합니다. 원래 모세에게는 사악한 손자가 있었는데 모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서기관들이 위로 올라간 ‘눈’을 넣어 ‘모세’가 아니라 ‘므낫세’가 되게 했다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들로 인해 킹제임스 성경을 포함한 여러 성경은 이 단어를 ‘므낫세’라고 하고 개역성경을 포함한 최근의 성경들은 이 단어를 ‘모세’라고 합니다(다음의 표 참조).  모세(MOSES) 므낫세(MANASSEH) 1890 Darby Bible    Die Bibel (Martin Luther 1545, 1912) 1901 American Standard Version(한글개역성경) Young’s Literal Translation New International Version Jewish Publication Society of the OT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King James Version(흠정역) The New Living Translation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 New Century Version The New King James Version LXX Family A (Codex Alexandrinus) LXX Family B (Codex Vaticanus) 여기서 두 가지 짚고 넘어갈 확실한 사실이 있습니다. (1) 히브리 사본 중 어떤 것도 ‘모세’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비평 본문인 BHS도 ‘므낫세’로 되어 있습니다. (2) 단지 그리스어 70인역과 라틴 벌게이트 그리고 시리아 역본만 ‘모세’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습니다. 히브리 사본은 모두 ‘므낫세’를 지지하며 킹제임스 성경은 이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NIV, 개역성경 등의 현대역본들은 원어에서 번역된 고대 역본들에 근거해서 ‘모세’라 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NASB와 ASV의 차이입니다. NASB는 1900년대 초반에 나온 ASV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ASV는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만든 영어개역성경(ERV)의 미국 판입니다. ASV는 이 단어를 ‘모세’라고 했는데 최근판인 NASB는 이를 고쳐서 다시 ‘므낫세’로 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본의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글개역성경은 ASV를 근간으로 번역되었으므로 당연히 ‘모세’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모세’가 아니라 ‘므낫세’로 그대로 두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제 이름들을 살펴봅시다. 게르솜은 누구일까요? 그는 물론 모세와 상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는 적어도 3명의 게르솜이 나옵니다. (1) 모세의 맏아들(출2:22); (2) 레위의 아들(대상6:16; 15:7); 그리고 (3) 비느하스의 후손(스8:2). 그러면 므낫세는 어떤가요? 구약성경에는 적어도 네 명의 므낫세가 등장합니다. (1) 요셉의 맏아들(창41:51); (2) 히스기야의 아들(왕하20:21; 21:1-20); 그리고 (3) 타국인 아내를 버린 사람들(스10:30, 33). 그러므로 우리는 므낫세와 게르솜이 구약시대에 흔한 이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본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우리는 여기의 게르솜을 모세와 연결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대상26:24를 보면 모세의 손자는 요나단이 아니라 스브엘(‘오 하나님이여, 돌아오소서’라는 의미를 가짐)로 되어 있습니다. 스브엘은 보고를 맡아 감독한 사람인 반면에 요나단은 불순종한 단 지파의 배역한 제사장입니다. 이 단어를 ‘모세’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스블엘이 후에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요나단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아무 근거가 없는 내용이지요. 성경에서 단 지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가나안 땅에 관한 언약’을 깬 유일한 지파입니다(레25:23-34; 민36:7-9 참조). 단 지파는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영토를 팔거나 거기서 움직이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기들이 원하는 땅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레위 사람으로 율법 교사인 요나단은 그들의 악한 행위를 꾸짖지 않고 오히려 탐욕으로 인해 그들을 도왔습니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이 망할 때까지 지속된 우상 숭배의 단초를 제공했습니다(삿18:30-31). 그의 죄가 이처럼 심각하고 사악햇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위로 올라간 ‘눈’을 써서 이것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눈’이라는 글자는 그의 할아버지인 므낫세에게 붙여졌는데 아마도 이 그 이유는 므낫세가 레위 사람들의 도시를 떠나서 레위 사람들의 도시가 아닌 베들레헴유다로 이사한 장본인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베들레헴유다는 유다의 땅이었습니다(수21:9-16 참조). 그의 손자인 요나단은 레위 사람들의 도시가 아닌 바로 베들레헴유다에서 왔습니다(삿17:7, 9). 므낫세는 레위 사람들의 도시를 떠나서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땅에 관한 언약’을 어겼고 그의 손자인 요나단은 그의 악한 행위를 본받아 단 지파와 결합하여 이스라엘에 우상숭배를 도입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삿18:30에서 ‘므낫세’라는 말은 히브리 원본이 지지하는 확고한 단어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쓰시던 히브리어 성경도 ‘므낫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사상에 근거한 개역성경과 ASV 등이 이를 ‘모세’라고 잘못 번역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을 후에 깨달은 NASB는 급히 다시 ‘므낫세’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손 안에 들어 있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확실합니다. 틀린 데가 없습니다. 여기서 신실하게 번역한 것이 우리말 흠정역 성경입니다. 믿음에 확신을 갖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보존된 성경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009-05-07 14:34:49 | 관리자
질문: 사사기 5장 14절은 글 쓰는 자의 펜이 맞습니까, 대장의 지팡이가 맞습니까?대답: 이 문제는 진화론적 사고를 가진 번역자들이 고의로 저지른 실수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에 따라 글 쓰는 자의 펜이 맞습니다. 먼저 대상 성경 구절을 살펴봅시다.스불론에게서는 글 쓰는 자의 펜을 다루는 자들이 내려왔도다(삿5:14).1884년에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영국개역성경을 내면서 ‘글 쓰는 자의 펜’을 삭제하고 ‘대장군의 지팡이’로 대체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당시 발견된 고고학 자료인 ‘텔아르마나 서판’이 사사기 시대에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음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분명하게 모세와 여호수아가 성경의 일부를 기록했다고 말함에도 불구하고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이 부분에서 성경이 틀렸다고 자기들 마음대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 그 당시 사람들이 펜으로 글을 썼다는 고고학적 증거들이 나왔지만 현대 역본들은 여전히 이 구절을 제대로 적지 않고 있습니다. 한글개역성경은 ‘대장군의 지팡이’로 번역한 뒤 각주에 히브리말로는 ‘기록하는 자’라고 적고 있습니다. 히브리말이 ‘글 쓰는 자’로 되어 있으면 그대로 번역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모세 당시 사람들이 무식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피라미드를 보기 바랍니다. 현대 사람들이 그런 것을 지을 수 있습니까? 그런 것을 지으려면 계산을 하고 도면을 그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글을 쓸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고고학적 발견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2009-05-07 14:33:38 | 관리자
사 사 기 The Book of JUDGES   기록자: 사무엘(탈무드), 기록 시기: 주전 1100년경, 성격: 역사, 기간: 약 305년(어셔), 수신자: 하나님이 구출하신 이스라엘 백성 이름: 영어 성경 제목 ‘Judges’는 사사기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책명 ‘크리타이’에서 나온 말로서 ‘재판관들’을 뜻한다. 우리말의 사사기는 고대 중국의 재판관을 가리키는 사사(士師)에서 유래되었다. 히브리 성경에서 사사기는 여호수아의 죽음과 왕정이 시작되는 시기 사이에 이교도들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 지도자 혹은 구원자를 뜻하는 ‘쇼페팀’에서 유래되었다. 히브리 사람들의 재판관은 영어나 우리말의 재판관이 나타내는 의미보다 훨씬 더 넓은 의미를 포함한다. 고대 국가에서 이 말은 문관(文官)이나 국가의 수뇌를 묘사할 때 사용되곤 하였다. 사사기에서는 총 12명의 재판관이 나오며 아비멜렉은 스스로 권력을 빼앗아서 재판관 노릇을 한 사람이다. 주제: 하나님께서 추방하라고 명령하신 가나안 족속들을 이스라엘이 추방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들이 허리에 가시가 되어 이스라엘을 괴롭힐 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재판관들을 일으키고 그들을 구원하신 것 목적: 성도가 마땅히 누려야 할 복을 누리지 못할 때 그 이유가 무엇인지 보여 주며 그 상황을 극복하게 하고 다시 교제를 나누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주는 것 내용: 사사기는 여호수아와 그 당시 장로들의 죽음 이후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제공한다. 사사기에는 재판관들의 생애와 활동과 직무 등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여전히 신정 정치를 통해 왕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셨고 재판관들은 다음과 같은 때에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도구로 쓰였다. (1) 이스라엘이 원수들로부터 압제를 받아 극심한 고통을 당할 때; (2) 이스라엘의 권리와 자유를 유지시켜야 할 때; (3) 이스라엘 군대를 인도하여 적군을 치게 할 때; (4) 공의를 수행할 때. 재판관들은 왕들과는 달랐으며 그래서 그들의 직무는 지속되거나 다음 세대로 이양되지 않았다. 이 책은 타협과 더불어 시작되며 무정부 상태로 끝을 맺는다. 사사기는 21장, 618절, 18,976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2장(이스라엘의 배도의 시작), 핵심 절: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눈에 옳은 것을 행하였더라.”(21:25), 핵심 단어: 건져 내다 혹은 구출하다(28회), 핵심 구: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1:27; 29; 30; 31) 이 구절은 이스라엘이 자기의 원수들을 약속의 땅에서 완전히 추방하지 않음으로 인해 부분적인 승리가 임한 것을 보여 준다. 사사기의 그리스도: 1. 우리의 구출자(3:9), 영적 교훈: “우리의 경계를 주의해서 살펴보라.”
2009-05-07 14:32:49 | 관리자
여호수아기 The Book of JOSHUA   기록자: 여호수아, 기록 시기: 주전 1430년경, 성격: 역사, 기간: 약 26년, 수신자: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 이름: 영어 성경 제목 ‘Joshua’는 히브리말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를 뜻한다. 주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곳을 정복하고 지파 별로 배분하는 것 목적: 우리의 여호수아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복의 장소로 인도하시고 승리하게 하시며 궁극적으로 자신 안에서 하늘에 있는 복을 누리게 하시는 것을 보여 주는 것 내용: 여호수아기는 모세오경에서 시작된 이스라엘의 역사를 계속해서 기록하며 족장들과의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열두 지파를 약속의 땅에 정착시킴으로 생겨난 신정 국가를 보여 준다(11:23; 21:43-45). 모세의 죽음 이후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인도할 책임을 맡았다.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국가가 정착되고 가나안 정복이 이루어져서 지파 별로 땅을 배분하는 일은 친히 자신의 백성을 구출하셔서 오래 전에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 즉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잘 보여 준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광야에서 그들이 불평하고 감사하지 아니하고 믿지 않는 과정 속에서도 지속된다. 또한 여호수아기에서는 가나안 족속들에 대한 엄중한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이 잘 드러난다. 이 책에서 입증되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 중 하나는 하나님의 구원이다. ‘예수’의 히브리말 즉 ‘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를 뜻하며 따라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소유하게 된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은 투쟁과 승리와 복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체험을 보여 준다(엡1:3; 2:6; 6:12). 그러므로 여호수아기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에베소서와 신약 성도들과의 관계와 비슷하다. 이런 차원에서 가나안은 천국의 예표가 아니라 원수의 권능을 무찌르고 승리의 삶을 사는 현장의 예표로 이해될 수 있다. 여호수아기는 24장, 658절, 18,858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1장(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을 주심), 핵심 절: “주께서 이스라엘의 집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이루어지니라.”(21:45), 핵심 단어: 소유하라, 핵심 구: “하나님의 신실하심”(1:3; 21:45) 여호수아기의 그리스도: 구원의 대장(5:14; 히2:10), 영적 교훈: “네 소유물을 소유하라.”
2009-05-07 14:32:02 | 관리자
반복의 율법이라 하는 모세의 다섯 번째 책: 신명기 The Fifth Book of Moses Called DEUTERONOMY   기록자: 모세, 기록 시기: 주전 1450년경, 성격: 역사, 율법, 기간: 약 40년, 수신자: 이집트 탈출 이후 광야 생활을 하면서 태어난 새 세대의 이스라엘 백성 이름: 유대인들은 이 책을 ‘말씀들’(The Words)이라고 불렀다. Deuteronomy는 신명기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책명 ‘듀테로노미온’에서 나와 라틴어를 거쳐 영어로 정착된 이름으로 ‘두 번째 율법’을 뜻한다. 이것은 결코 유대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두 번째 율법을 받았음을 뜻하지 않고 다만 시내 산에서 모세가 받은 율법이 여기서 다시 한 번 검토되고 거기에 대한 주석이 주어짐을 뜻한다. 한글 성경의 ‘신명기’는 ‘명령들을 자세히 설명한 책’이라는 뜻으로 신명기의 내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제: 광야에서 하나님의 역사와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회고, 새 땅에서의 이스라엘을 안내하기 위한 교훈,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예언 목적: 신자의 믿음의 시련 과정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신실하지 못함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 주며 동시에 현 세대에서의 삶의 원리와 미래의 소망을 알려 주는 것 내용: 신명기는 시내 산에서 처음에 주어진 율법을 직접 듣지 못한 새 세대의 출현과 이들이 한 번도 밟아 보지 못한 가나안이라는 새 땅의 정복과 유랑 생활에서 정착 생활로 바뀌면서 이들이 지켜야 할 새 의무의 필요 등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영감으로 주신 말씀이다. 여기에서 모세는 새 세대에게 과거에 시내 산에서 받은 율법을 다시 한 번 복습시키고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서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복을 누리려면 어떤 조건 하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를 자세히 보여 준다. 잠시 후에 그들을 떠날 모세는 그들의 안녕과 복지를 진지하게 갈구하면서 잠시 남은 시간을 이용하여 그들의 마음 판에 하나님의 율법을 새겨 주려고 노력하는데 바로 이 율법이야말로 그들이 지켜야 할 순종의 잣대요 또 행복의 열쇠였다. 그래서 모세는 구세대의 불순종을 그들에게 상기시키고 가나안에서 그들이 불순종하게 될 때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미리 경고를 주며 특히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예언의 말씀들을 준다. 예수님은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여 마귀의 궤계를 격퇴시키셨고(마4:1-11) 또 율법을 한 마디로 요약하셨다(마22:37). 신약성경의 27권 책 중에서 17권이 신명기를 인용하고 있다. 신명기는 34장, 958절, 28,461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29장(팔레스타인 언약), 핵심 절: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6:5), 핵심 단어: 1. 순종, 2. 기억, 핵심 구: “지켜 행하라.”(12:1) 신명기의 그리스도: 대언자(18:15-19; 행3:22-23; 7:37), 영적 교훈: “멈추어 서서 기억하라.”
2009-05-07 14:31:21 | 관리자
백성의 수라 하는 모세의 네 번째 책: 민수기 The Fourth Book of Moses Called NUMBERS   기록자: 모세, 기록 시기: 주전 1450년경, 성격: 역사, 기간: 약 39년(어셔), 수신자: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체험하고 가나안에 정착할 두 번째 세대의 이스라엘 이름: Numbers는 수(數)를 뜻하는 그리스어 책명 ‘아리스모이’에서 나와 라틴어 ‘누메리’를 거쳐 영어로 정착된 이름으로 ‘많은 종류의 수를 보여 주는 책’을 뜻한다. 그 이유는 이 책이 여러 종류의 수 - 예를 들어 이스라엘 지파의 통계(1:20-46), 레위의 몇몇 가족의 수(3:14-51), 이스라엘 족장의 통계(26:5-51), 행사 때에 바친 희생 제물의 수(28:1-29:23), 미디안 사람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의 수(31:32, 52) 등 - 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한글 성경의 민수기라는 이름은 이 책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 조사에 근거를 둔 이름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책은 히브리 성경의 이름인 ‘광야에서’가 의미하듯이 인구 조사가 핵심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광야의 여정을 지나간 것이 핵심이다. 주제: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과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 목적: 사람이 믿음을 통해 시험의 장소에서 복의 장소로 들어가도록 하나님께서 성도의 인생 여정을 인도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 내용: 역사적으로 볼 때 민수기는 출애굽기가 끝나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민수기는 가데스바네아에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광야에서 방황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특별히 민수기는 이전의 모세의 세 책과 더불어 신자의 경험을 완벽한 그림으로 보여 준다. 창세기는 창조와 타락을, 출애굽기는 구속을, 레위기는 경배와 교제를, 그리고 민수기는 섬김의 여정을 보여 준다. 민수기는 시내 광야에서의 마지막 19일부터(1:1; 10:11) 이집트 탈출 뒤 40년이 되는 해에 요르단 동쪽 모압 평지에 도착할 때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22:1; 26:3; 33-36:13). 민수기에는 몇 장에 걸쳐 인구 조사가 기록되어 있지만(1-4장, 26장) 책의 대부분은 율법과 규례와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경험을 다루고 있다. 두 번에 걸쳐 시행된 인구 조사는 큰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첫 번째 조사는 광야 생활을 준비하며 시내 산에서 이루어졌고 두 번째 것은 약 40년 후에 약속의 땅에 들어갈 준비를 하면서 요르단 강 근처에서 이루어졌다. 이 두 차례의 인구 조사가 민수기를 양분한다. 1-21장은 첫 번째 인구 조사를 시작으로 해서 광야 시대를 다루고 있고 26-36장은 새로운 세대에 대한 인구 조사를 시작으로 해서 가나안에 들어가기 몇  달 전까지의 역사를 말해 준다. 이 둘을 나누는 거짓 대언자 발람의 이야기는 문학적으로 또 예언적으로 큰 중요성을 지닌다. 민수기는 36장, 1,288절, 32,902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14장(가데스바네아에서의 불신), 핵심 절: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의 손 밑에서 자기들의 군대와 함께 이집트 땅에서 나오던 때의 여정이 이러하니라.”(33:1), 핵심 단어: 여정, 핵심 구: “여정이 이러하니라.”(33:1) 민수기의 그리스도: 1. 반석(20:11; 고전10:4), 2. 별 - 통치자(24:17; 계22:16), 3. 홀 - 치리자(24:17; 딤전6:14-15), 영적 교훈: “하나님의 은혜로 서 있을 곳에 서 있으라.”
2009-05-07 14:30:38 | 관리자
  이스라엘의 헌물 제도 이름 성경 구절 내용 의미 번제 헌물 (태우는 헌물)       레1; 레6:8-13       수소, 숫양, 숫염소, 수컷 집비둘기 혹은 산비둘기(제물은 모두 흠 없는 수컷이어야 하고 바치는 사람의 재정 능력에 따라 헌물이 정해짐) 자원해서 드림. 죄로 인한 화해와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복종을 의미함.     음식 헌물 (소제 헌물)     레2; 레6:14-23     고운 밀가루, 빵이나 과자(기름과 소금으로 만든 음식으로서 반드시 누룩이 없어야 하고 유향을 더하기도 함) 자원해서 드림. 첫 열매로 인한 감사     화평 헌물 (화목제):  감사 헌물, 서원 헌물, 자원 헌물 포함   레3; 레7:11-36; 레22:17-30; 레27     흠 없는 짐승(암수에 상관없고 바치는 사람의 재정 능력에 따라 헌물이 정해짐)       자원해서 드림. 하나님과의 교제를 의미함. (1) 특별한 복에 대한 감사 (2) 서원에 대한 표현 (3) 일 년에 세 차례 모이는 명절에 감사를 표시하는 것 죄 헌물 (속죄제)           레4:1-5:13; 레6:24-30; 레12:6-8         흠 없는 짐승(수컷이나 암컷) 제사장, 회중: 어린 수소 치리자: 숫염소 새끼 일반인: 암 염소 새끼나 어린양; 가난한 사람: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매우 가난한 사람: 밀가루 십분의 일 에바 필수적으로 드림. 무의식적으로 죄를 지은 자가 바치거나 부정한 자가 정결하게 되기 위하여 바침.       범법 헌물 (속건제)       레5:14-6:7; 레7:1-6; 레14:12-18     흠 없는 숫양         필수적으로 드림.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했거나 거룩한 것을 더럽게 한 사람이 바침. 나병 환자들도 정력하게 되기 위해 바침. 거제 헌물 (들어 올리는 헌물)     출29:27-28; 레7:12-14, 32; 민6:20; 민15:19-21; 겔 48:8-12 화평 헌물 중 하나 오른쪽 어깨       원래 이것은 주께 드린 것의 일부를 제사장이 들어 올림으로써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보여 주는 데서 유래됨. 요제 헌물 (흔드는 헌물)     출 29:24,26 레7:30; 레8:27, 29 민6:20; 8:11 제사장을 거룩히 구별하는 숫양의 가슴     원래 이것은 희생물의 가슴을 주 앞에서 흔들어 일단 주께 바친 헌물을 제사장에게 주는 데서 유래됨.  주님을 기쁘게 하는 음료 헌물(전제)은 날마다 혹은 안식일이나 월삭, 명절 등에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과 함께 누구나 드릴 수 있었다(민15:1-10; 28:14; 29:6).
2009-05-07 14:29:40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