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창세기 1장 1절의 의미는 무엇인가요?대답: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1:1)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이라면 성경의 다른 부분을 믿는 데 전혀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이 한 구절은 사람이 만든 여러 가지 그릇된 이론을 산산조각 냅니다. 하나님이 계시므로 무신론은 존재할 수 없고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은 전혀 다른 차원에 있으므로 범신론도 존재할 수 없으며 유일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므로 다신론도 무효하고 하나님이 온 우주를 창조하셨으므로 물건이나 천체를 숭배하는 유물론도 무효하며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으므로 진화론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2009-05-07 13:59:35 | 관리자
아담은 얼마나 오래 전에 살았던 사람입니까?
* 다음은 헨리 모리스 박사의 "Bible has the answer"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답변 : 성경의 연대를 기록한 창세기 5장과 11장에 따르면, 아담은 지금부터 단지 몇천 년 전에 창조되었으며 분명히 인류 역사상 첫 번째 사람(남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17:26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모든 민속을 한 피에서 만드사 온 지면에 거하게 하시고"라고 말하고 있으며 고린도전서 15:45은 "첫 사람(남자) 아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도 친히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인용하시면서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은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시고"라고 말씀하셨음니다(마19:4). 성경에 따르면 아담은 원래 죄가 없었고 완전한 환경에서 살았지만(창1:31)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저주를 가져왔습니다(창3:11). 그 이후로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함께 탄식하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롬8:22).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는 진화론이 가르치는 역사는 원숭이와 인간의 공통 조상이 지금부터 약 6천만 년 전에 생겨났고 또한 현대인은 약 백만 년 전에 출현했다고 주장합니다. 진화론적 인류학자들은 요즈음 인류의 계보에 대해 서로 여러 가지 주장들을 펴고 있는데 독자께서 필히 아셔야 할 사실은 인간의 진화를 증명하기 위해 꼭 필요한 "중간 화석"이라는 것이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인간과 원숭이의 공통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이른바 진화론적 가정에 기반을 준 "가상적 공통 조상"에 대한 화석의 증거란 실제로 하나도 없습니다.
인구 통계에 대한 연구는 성경의 연대가 진화론적 연대보다 훨씬 더 현실적임을 보여 줍니다. 인류의 인구는 최초의 첫 부부로부터 시작했음이 틀림없는데, 문제는 그 첫 부부가 지금부터 4300년 전(어셔의 성경 연대기에 따른 대홍수의 때)의 노아 부부였느냐, 아니면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이른 바 백만 년 전에 생긴 최초의 부부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세계 인구 증가율은 매년 2%가 넘으며 현재의 인구는 50억이 넘습니다. 하지만 지난 4,300년간에 걸쳐 현재의 세계 인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구의 평균 증가율이 매년 o.5% 정도여야 합니다. 이것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한 사람 당 평균 수명을 40년으로 잡고 한 가족 당 부부와 2.5명의 자녀가 있었다고 가정하여 계산할 때 현재의 인구가 생성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노아 이후로부터 현재까지의 기간, 즉 4,300년 정도뿐이 안 걸린다는 사실입니다. 이 숫자는 어림잡아 볼 때 매우 합당한 수치이며 성경의 연대가 모든 면에서 매우 실제적임을 보여 줍니다.
반면에 인구가 이런 증가율로 백 만년 동안 계속해서 증가했다면 현재의 인구는 온 우주에 빽빽이 들어차고도 남을 정도로 많아야만 합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류의 역사가 백만 년 되었다는 진화론의 주장은 매우 불합리한 것인 반면에 성경의 연대는 매우 합당하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이 모든 것은 간단한 계산에 의해 쉽게 증명될 수 있습니다.
설혹 어떤 기적 등에 의해 중간에 인구 증가율이 감소되어 백만 년 후의 현재 인구인 50억을 만들어 내었다 하더라도 이 사실은 여전히 3조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기간에 살다가 죽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사람의 화석을 찾는 일은 매우 쉬운 일이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화석을 찾는 일이 그처럼 어렵다는 것은 얼른 보아도 너무 이상한 것 아닙니까? 진화론의 이론대로 하자면, 사람의 유해는 어디에서나 발견되어야만 하는데도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은 선사 시대의 6천만∼7천만 년 동안 사람으로 진화하고 있었다고 그들이 추정하는, 이른 바 원숭이/사람들의 경우에도 더 더욱 맞아 떨어져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화석은 하나도 없으니 참으로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실 이 원숭이/사람에 관해 지금까지 발견된 것은 널리 홑어진 한 줌의 뼈조각에 불과하며, 인간의 진화에 대한 전문가로 자처하는 여러 사람들이 이런 것을 가지고 불확실한 진화 사슬의 여러 가지 중간 고리로 제멋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진화론은 반성경적, 반기독교적일 뿐만 아니라 전혀 비과학적이고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지난 한 세기 동안 무신론, 불가지론, 사회주의, 파시즘, 그 밖의 다른 거짓되고 위험한 철학들의 기반이 되는 유사 과학적 근거로 효과적으로 이용되어 왔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중하는 사람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확증하신 바 아담에 관한 기사의 역사적 정확성을 거부하고 진화론적 철학자들의 자기 잇속만 차리는 추측들을 찬성할 이유가 조금도 없습니다.
2009-05-07 13:58:52 | 관리자
이 세상은 언제 시작되었습니까?
* 다음은 헨리 모리스 박사의 "Bible has the answer"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답변 : 성경에 따르면, 엿새 동안에 주님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들었습니다(출20:11).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돌판에 기록하신 것이므로(출31:18) 사람이 이런 사실을 의심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입니다. 또 "날들"(days)이란 단어도 결코 "시대들"(ages)로 해석될 수 없습니다. "날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민"은 구약에서 약 700번 이상이나 사용되었지만 예외 없이 언제나 문자적인 하루를 의미하며 이 사실은 구약의 용어 색인을 참조해 봄으로써 누구든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주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엿새"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사실 일관성 있게 이런 주장을 펴는 물질주의자들은 물질이 영원하며 태양계는 50억년 전에 형성되었고 지구상의 생명체는 10억년 전에 시작되었으며 현대인은 지금부터 백만년 전에 진화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이같이 엄청난 시간은 진화론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현대의 정치적·지성적 체제들이 선택한 대로, 사람들이 특별한 창조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거절하려 한다면 진화론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구의 나이나 혹은 지구가 얼마동안에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느냐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일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과학이란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과정들을 직접적으로 관찰하고 가설들을 세운 뒤 실험적으로 그것들을 입증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태양계의 기원이나 인간의 진화 또는 지질 시대에 일어난 생명의 발전 과정을 실험적으로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이와 같은 주제들에 관해 추측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참된 과학의 영역밖에 있는 문제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기록을 제외한 나머지 역사의 기록들은 대개 지금부터 4천년 전쯤까지만 거슬러 올라갑니다. 따라서 그 이전에 일어난 사건들은 역사적 기술이나 과학적 반복으로 입증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믿음으로,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믿음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 안에 둘 수도 있고 현대 진화론자들의 균일론적 추정법 안에 둘 수도 있습니다.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은 이것이 영적으로 결정할 문제이지 결코 과학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경은 만물의 창조가 수십억년 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몇 천년 전에 이루어졌다고 분명히 가르칩니다. 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이 필요로 하는 엄청나게 긴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소위 "균일론"(uniformitarianism)을 사용하며, 이것에 기초를 두고 지구의 전체 역사를 현재 일어나고 있는 과정과 및 현재 그 과정이 일어나고 있는 비율로 설명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추정 - 이것은 순전히 추정일 뿐이지 증명하기는 불가능함 - 에도 그들이 주장하는 이른 바 지구의 정통 진화 역사에 관해 의심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지표면의 암석과 자연지리학적 양상들, 예를 들어 산들이 형성되는데 필요한 조산 작용 및 지각 운동, 엄청난 화산지대, 대륙 빙하운동의 증거, 충적 계곡들과 고원 지대에 있는 굉장히 두터운 침전물 등과 같은 것은 현재는 거의 이런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현 시대의 이 땅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그 어떤 현상보다도 훨씬 더 강한 특징을 지닌 지구물리학적 현상을 필요로 했을 것입니다.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이 엄청난 시간을 증명하는 데 사용되는 방사능연대 측정법조차도 논리적인 근거로 볼 때 큰 취약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5만년 동안 일어난 사건의 연대를 측정하는데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은 적어도 12가지 정도의, 증명할 수 없는 추정들을 수반합니다. 이 추정들 중 하나는 지구 전체를 두고 볼 때 방사성 탄소가 자연계의 탄소와 평형 상태에 도달해 있으며 이 방사성 탄소는 현재 전세계에서 붕괴되고 있는 양만큼 대기의 상층부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측정해본 결과 그와 같은 평형 상태는 아직 도달되지 않았으며, 실제로 현재의 비평형 상태는 대기 자체가 형성되는 데 기껏해야 6,000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음을 보여줄 따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른바 "탄소 측정"에 의해 추정된 연대나 기간을 크게 감소시켜 생각해야만 합니다
또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포타슘-아르곤 측정법 역시 많은 추정과 불확실성을 수반합니다. 사실, 이 방법은 기껏해야 우라늄-납 측정법만큼만 신뢰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 방법을 보정하기 위해서 우라늄-납 측정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우라늄 측정 방법도 역시 수많은 추정들을 수반합니다! 예를 들어, 방사능에 의해 생긴 납이 외부의 과정에 의해 우라늄 광물계에 추가될 수 있다는 것, 또 우라늄은 그와 같은 광물계에서 쉽게 걸러질 수 있다는 것 등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가정은 한결같이 그런 광물계가 지닌 것으로 추정되는 이른 바 "눈으로 드러나는 표면적 시간"을 "실제의 시간"보다 엄청나게 더 큰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지구물리학적 과정이 선사 시대의 시간을 측정하는데 있어서 타당한 수단이 되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1)모(母) 산물과 자(子) 산물의 상대적인 양을 붕괴 과정이 시작되는 순간에 계 안에서 측정해야만 한다.(하지만 진화론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이것이 수백만년 전에 일어났으므로 지금 측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2) 모 산물을 자 산물로 변환시키는 붕괴 과정에서 그 붕괴 비율은 항상 불변이다.(하지만 자연계에는 불변하는 과정이나 비율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특히 지구 자기의 역전 현상, 우주로부터 가끔씩 들어오는 강력한 우주선 등을 감안할 때 특히 더 그러합니다). (3) 조사를 위해 사용하는 계는 처음 형성된 이후부터 외부의 활동에 의해 변경되지 않은 채 지질학적 역사의 모든 변천 과정에서 완전히 "닫힌 계"의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한다(하지만 자연에는 완전히 "닫힌 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특히 지질학적 계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만약 어떤 이가 자신의 진화론적 신앙을 이와 같은 균일론 옹호자들의 추정에 두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본인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리 믿는 것이 결코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연대기를 믿는 믿음보다 더 "과학적"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아야만 할 것입니다.
2009-05-07 13:57:50 | 관리자
노아의 대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어떻게 그리 오래 살 수 있었습니까?
* 다음은 헨리 모리스 박사의 "Bible has the answer"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답변 : 창세기를 기록한 사람은 참으로 놀랍고 믿기 어려울 정도 기록들을 모두 정직하게 그리고 단순하게 처음 장들에 기록했습니다. 성경 비평가들의 주장대로 만약 창세기가 유대인의 역사 속에서 나중에 기록되었다면 그것을 기록한 사람은 분명히 어떤 설명을 넣는다든지 혹은 적어도 자기가 묘사하는 현상들의 유일무이한 성격에 대해 경탄의 표현이라도 끼워 넣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냉정한 역사가나 신문 기자처럼 창세기의 기사를 가장 단순하고도 정직하게 기록했으며, 나중 세대들이 보기에 거의 믿을 수 없는 것 사건들을 정당화하거나 설명하려는 시도를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 5장에는 대홍수 이전의 조상들의 계보를 첫 사람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 기록한, 간단한 연대기 족보 목록이 나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족장의 계보에 포함되는 아들이 태어날 때 그 아버지의 나이가 각 사람별로 기록되어 있고 또 각 사람이 죽을 때의 나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각 사람의 수명이 수백 년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이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은 매우 단조롭고 흥미 없는 것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아담은 930년을 살았고 므두셀라는 969년을 살았으며, 죽음을 보지 않고 365세에 하늘로 올라간 에녹을 제외하고 대홍수 이전의 아홉 조상들의 평균 연령은 912년이었습니다. 이같이 놀라운 사실들을 그처럼 평범한 방법으로 보고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원래의 기자가 그 사실들을 기록할 때는 그런 일들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고 매우 흔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처음 장(章)들에 나온 기사들은 분명히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의 진술이었을 것이며, 이것은 원래의 석판 등에 기록되어 족장들의 계보를 따라 죽 전해져 내려오다가 마침내 모세의 수중에 들어갔고 그는 이것들을 모아 성령님의 인도 하에서 창세기로 편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거기에 있는 조상들의 나이가 햇수로 주어진 것이 아니고 실제로는 달수로 주어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 조상들의 아들이 태어날 때 각 조상의 연령을 보면 마할랄렐과 에녹의 경우는 65세이며 노아의 경우는 500세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65개월 된 사람이 아이를 낳을 수 없으므로 이런 주장은 틀린 것이며, 거기에 기록된 수치가 연수로 되어 있음이 더 확실해집니다. 이것에 대한 또 다른 증거는 대홍수 이후부터 사람의 수명이 노아의 950년으로부터(창세기 11 장에 기록된 대로) 데라의 205년까지 줄게 되고 결국 모세 당시에는 70년에 이르게 되어(시90:10 참조) 서서히 불규칙적으로 감소했다는 사실입니다.
노아의 대홍수 때에 사람의 주변 환경에 굉장한 영향을 미침으로써 노화와 죽음의 공격을 점차적으로 가속화시키는 어떤 심각한 일이 발생했음이 틀림없습니다. 비록 우리가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하더라도, 과학과 성경은 적어도 그럴듯하게 보이는, 아주 흥미 있는 것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도 죽음의 원인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이 왜 수백 년을 살 수 없는지를 설명해 주는 어떤 필연적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사람은 원래 죽지 않는 존재로 창조되었으며, 죽음은 오직 사람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으로 온 것입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현대의 장수학(노화 현상 연구)에 의해 밝혀진 주목할 만한 사실은 단지 나이가 들기 때문에 사람이 죽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나이를 먹게 되면 질병에 잘 걸리게 되고 동시에 신체 기관의 활동 능률이 감소하기 때문에 결국 신체 구조의 어떤 특별한 면이 완전히 망가지므로 죽음이 오게되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이런 일은 빠르든 늦든 간에 개개인 모두에게 일어나며 결국 모든 사람에게 닥치는 일이 됩니다.
따라서 장수를 가져오는 근본 인자는 노화 과정의 비율과 그 비율에 영향을 미치는 주변 환경의 영향들입니다. 노화에 관한 이론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좋은 증거를 확보하고 있는 이론은 신체 돌연변이 이론입니다. 신체 돌연변이란 신체 세포의 구조 내에서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마구잡이 변화입니다. 대부분의 돌연변이가 다 해롭기 때문에 여러 기관과 조직의 세포들 속에서 일어나는 이런 돌연변이들이 점차적으로 쌓이게 되면 결국 신체의 능률이 손상되고 이로 인해 결국 한 가지 이상의 신체 기관이 완전히 망가질 것입니다.
현재 여러 가지 환경 인자들이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아마도 태양과 및 기타 다른 근원으로부터 오는 유해 복사선일 것입니다. 생식 세포는 신체의 다른 세포보다 훨씬 더 보호를 받긴 하지만 아무튼 복사선은 이 생식 세포 안에서도 역시 유전적 돌연변이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해로운 이 유전적 돌연변이는 자녀들에게 전달되어 그들뿐만 아니라 그 모든 자손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신체적 돌연변이는 개인의 노화와 사망의 원인이 되고, 유전적 돌연변이는 종(種)의 노화와 사망의 원인이 되며 이 두 현상 모두 우리 주변 환경 내에 있는 복사선이 그 일차적인 원인이라고 보는 것은 타당합니다. 물론 다른 인자들도 이 일에 관련되어 있지만 아마도 이것이 가장 보편적인 원인인 것 같습니다.
대홍수 이전에는 "궁창 위의 물"이 있었는데(창1:7) 이 기록은 아마도 대기의 상층부에 엄청난 양의 물이 보이지 않는 수증기의 형태로 있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물로 인해 훌륭한 "온실 효과"가 생기게 되어 전세계의 기후가 온화했을 뿐만 아니라 이 수증기 층은 외계로부터 지구로 들어오는 치명적인 방복선을 잘 걸러주는 여과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이 "궁창 위의 물"은 나중에 응축되어 지구에 떨어짐으로써 대홍수를 가져온 물의 근원들 중 하나가 되었고, 이 후로는 위에서 언급한 역할을 더 이상 충분히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대기에 남아 있는 약 4 센티미터 가량의 수증기는 지구 위의 모든 생명을 적어도 현재 형태로 유지시킬 만큼 온실 효과를 내고 있고 또 복사선 여과기의 역할을 잘 하고 있습니다. 홍수 후에 엄청나게 변화된 기후와 두꺼운 수증기 층이 없어진 지구는 대홍수의 격변 때에 살아남은 극소수의 생존자들에게 어쩔수 없이 부과된 근친 결혼과 더불어 사람의 수명과 생존력을 떨어뜨리는 일에 기여를 했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우리는 대홍수 이전의 조상들과 그들의 수명이 매우 긴 것을 기록한 성경의 합당성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2009-05-07 13:47:04 | 관리자
가인은 어디서 아내를 얻었습니까?
* 다음은 헨리 모리스 박사의 "Bible has the answer"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답변 : 이 질문은 성경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온갖 질문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것입니다. 물론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도 이처럼 모순처럼 보이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잘 알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가인은 아담과 하와의 장남(창4:1)이며 아벨은 차남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창4:2).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을 죽인 후(창 4:8)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벌을 내리사 그의 가정과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떠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뒤에 가인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까봐 두려워했다는 것과 그의 아내와 동침했다는 것 그리고 도시를 세웠다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창4:14, 17). 가인의 후손들과 그들이 이룩한, 노아의 대홍수 이전의 문명에 대해서는 창세기 4:17∼24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물론 회의론자들은 당시에 아담, 하와, 가인만 살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들 외의 다른 사람들이 생겨났을까 의심합니다. 하지만 아담이 "첫 사람"이요(고린 15:45), 하와가 "모든 산 자의 어머니"(창3:20)라고 성경이 분명히 가르치기 때문에 "아담 이전의 인류"들이 그들 근처에 살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같이 비평을 하는 진짜 이유는 그들이 가지고있는 진화론적 사고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한 남자와 한 여자를 특별히 창조하심으로써 인류를 시작하셨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고 대신에 사람은 서서히 진화되고 있는 영장류의 한 집단으로 대략 1∼ 2백만년 전에 현재의 사람으로서의 특성을 획득하게 되었다고 믿으려 합니다. 그러나 처음에 사람을 창조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요1:1∼1, 골1:16∼17등) 그들의 주장과는 전혀 다르게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 사람을 만드신 이가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시고"(마19:4). 그러므로 인류의 처음 조상인 아담과 하와의 창조는 이 땅에 시간이 들어오는 순간인 "처음에" 이루어진 것이며 결코 인류 이전의 동물 집단이 수 백만 년 동안 진화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대로 사람은 처음에 "선하게" 창조되었으며 죄를 짓지만 않았다면 영원히 살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습니다"(롬5:12).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큰 저주가 임하여 부패와 사망이 세상에 들어온 이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 백 년 동안 살면서 큰 식구들을 거느렸음에 틀림없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930년이나 되는 아담의 생애에 "아들과 딸들"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며(창5:4), 이 사실은 창세기 5장의 족보에 나오는 대홍수 이전의 조상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죽기 전에 하늘로 취해감을 받은 에녹을 제외하고 이 조상들의 평균 수명은 912년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그처럼 장수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서 나중에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어쨌든지 그 기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때 대홍수 이전의 세상에 사람들이 매우 많이 살았음이 분명합니다. 가족 크기, 평균 수명 등으로 대강 어림 잡아 보아도 가인이 죽기 전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을 쉽사리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언제 자기 동생을 죽였고, 아내를 맞이했으며, 도시를 세웠는지에 대해 성경이 정확히 말하고 있지 많으므로 이같은 성경 기록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습니다. 때문에 창세기의 저자는 이것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처음의 첫 세대에서는 인류가 인구를 증가시키기 위해 아담과 하와의 자녀들이 서로 결혼해야만 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아담과 하와로부터 온 인류가 생겨나려면 이 외의 다른 가능성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중 세대에 있어서는 남매간의 결혼이 유전적으로 위험한 것으로 판명되고 "근친상간"으로 규정되어 금지 되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성경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다른 법조문도 근친간의 결혼은 금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과학적 이유는 이 같은 결혼을 통해서 태어난 자녀들이 기형아가 되거나 병약하거나 저능아가 될 가능성이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확률에 대한 유전학적 근거는 이처럼 해로운 특성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양쪽 부모가 다 가지고 있을 경우, 그것을 물려받은 그들의 자식들한테서 실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주요한 것은 아담과 하와의 유전 체계에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인이나 아담의 다른 아들들이 자기 누이와 결혼했다 해서 유전적인 이상이 생겨날 수가 없습니다. 사실 근친간의 결혼이 유전적으로 해롭게 되어 인류의 피 속에 유전적 변이가 축적되기 시작한 것은 여러 세대가 지난 후였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그 기록에 있어서나 모든 과학적 사실에 있어서나 항상 틀림이 없습니다.
2009-05-07 13:45:44 | 관리자
하루의 길이가 정말로 중요합니까?
다음은 헨리 모리스 박사의 "Bible has the answer"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대답 : 성경을 펴고 창세기 1장을 읽은 뒤에 그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전 우주와 그 안에 속한 모든 것을 엿새 동안의 평범한 날(24 시간)에 창조하셨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교회 안에서 유행하고 있는 관점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이러한 "날들"(days)이 수천 년, 수백만 년, 심지어는 수십억 년의 기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날들이 과연 얼마만큼의 기간이었는지를 안다는 것이 실로 중요한 것일까요? 이 날들이 평범한 날(하루)인지 혹은 긴 시간의 주기였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요?
"하루"는 무엇을 말하는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하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욤"(yom)입니다. "욤"은 보통 24시간의 하루나 24시간의 하루 가운데 낮(즉, 밤과 구별되는 개념으로서의 낮)을 의미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때때로 "재판관들의 시대에"(In the time of the Judges) 혹은 "주의 날에"(In the day of the Lord) 등에서와 같이 정해지지 않은 시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히브리말로 기록된 구약성경에서는 "욤"이라는 단어가 단 한번도 "주기"(period) 즉, 특정한 시작점과 끝점을 갖는 유한한 길이의 시간 간격을 의미한 적이 없습니다. 히브리어에서 긴 시간의 주기를 의미하는 단어는 "올람"(olam)입니다. 더욱이 "욤"이라는 단어가 무한한 시간의 의미로 사용될 때에는 문맥 자체가 명확하여 그것이 "하루"라는 문자적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창세기에 기록된 "하루"라는 단어가 상징적으로 쓰인 것이며, 따라서 그것을 문자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중요한 점은 성경에서 한 단어가 처음으로 쓰일 때는 결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사실 어떤 단어든지 처음에 문자적 의미로 쓰인 뒤에야 비로소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문"(door)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문"이라는 단어가 입구를 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말씀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문"이라는 단어의 문자적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의미로서 이 단어를 상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실제로 문이라는 것도 이해하게 됩니다. 처음에 "문"이라는 단어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이른 바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 한, 상징적 의미로는 사용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루"라는 단어도 창세기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을 때 결코 상징적인 의미로는 쓰일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또한 하나님께서는 "하루"라는 단어를 설명하시며 이 단어를 처음 쓰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원하시는 뜻대로 정의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매우 오래 전에 죽은 창세기의 저자는 "하루"라는 단어가 처음 쓰일 때 아주 조심스럽게 그것을 정의해 놓았던 것입니다.
창세기 1장 4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부리시니라."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성경에 사용된 용어들은 매우 신중하게 정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하루"(day)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을 때 그것은 "밤"(night)이라고도 하는 "어두움"(the darkness)과 구별되어 "빛"(the light)으로 정의되어 사용되었습니다.
한편 창세기 1장 5절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그 저녁과 아침이 첫째 날이니라." 이 구절은 이 외의 다른 닷새 동안의 하루하루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사용되었고, 이를 통해 우리는 그 때에 낮들과 밤들 즉 밝은 때와 어두운 때가 명확하게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낮과 태양
그러면 태양이 없었는데 어떻게 낮과 밤이 있었을까요? 무엇보다 우리가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태양이 넷째 날에 이르러서야 창조되었음을 창세기 1장이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 빛을 창조하셨다고 창세기 1장 3절은 가르쳐주고 있으며, "저녁과 아침"이라는 구절은 빛과 어두움의 반복적인 주기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빛은 실제로 존재했고 그 빛은 한 방향으로부터 와서 자전하는 지구 위에 빛을 비추었으며 그로 인해 낮과 밤의 일정한 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빛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 창세기 1장 14∼19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넷째 날에 태양의 창조가 있었습니다.
태양은 태양이 생기기 전에 이미 존재했던 낮을 주관하기 위해 창조되었으며, 그 이후의 낮은 이전의 낮과 똑같았습니다. 단지 지구는 새로운 광체 혹은 광원(光源)을 갖게 된 것입니다. 태양이 만들어지기 전에 있었던 낮, 즉 창조의 처음 사흘 동안의 낮은, 태양이 창조된 이후의 낮과 같은 낮이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여러 세대를 통해서 세계 도처의 많은 사람들이 태양을 생명의 근원으로 숭배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아셨고 그래서 일부러 넷째 날까지 태양의 창조를 연기하셨을지도 모릅니다. 태양을 숭배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현대 과학자들도 태양이 지구보다 먼저 탄생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지구와 빛을 먼저 만드셨고, 넷째 날에 태양을 만드셨으며 그날 이후로는 그것이 빛을 내는 도구로서 낮을 주관케 하셨음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창세기의 "날들"을 평범한 날들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지구가 수십억 년이 되었음을 증명했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의 말을 신봉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지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알아 낼 수 있는 절대적 연대 측정법은 없습니다. 반면에 우리에게는 약 6,000년 전에 지구가 생성되었음을 믿게 해 주는 확실한 증거들이 많이 있습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하루 - 영어로는 'day'이며 사실 'day'라는 단어는 '날'도 되고 '낮'도 됨 - 가 수백만 년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잘 생각해 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과연 밤(the night)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필이면 왜 엿새 동안에?
하나님은 무한한 분이십니다. 이 말은 곧 그분께서 무한한 힘, 무한한 지식, 무한한 지혜를 가지셨음을 말합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시작하시며 단번에 원하시던 모든 것을 만드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시간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온 우주와 지구와 그 속에 속한 모든 것을 만드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의문을 가져야 할 것은 도대체 왜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시기 위하여 엿새 동안이나 일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엿새라는 기간이 모든 것을 만드실 수 있는 무한한 하나님께 매우 특별한 기간이었다는 점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출애굽기 20장 11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은 십계명을 기록하고 있으며,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손가락"으로 이 명령들을 돌판에 기록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출애굽기에서 다음의 구절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분께서 시내산 위에서 모세와 대화하는 것을 마치시고 증거판 두 개를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 판이요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쓰신 것이더라."(출 31:18)
출애굽기 20장 9절에 있는 네 번 째 계명은 우리가 엿새 동안 일하고 하루를 쉬어야만 한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이 명령에 대한 정당성은 1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엿새 동안에 주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주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이 구절은 창세기 1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 즉 한 주 동안에 행하신 그분의 창조에 대한 직접적인 근거가 됩니다. 창세기 1장의 "하루"라는 단어의 뜻이 무엇이든지 간에 계속해서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여기에서도 같은 의미를 가져야만 합니다. 만일 창세기에 기록 된 "하루"라는 단어가 긴 시간을 뜻한다고 주장하려면 출애굽기에 쓰여있는 "하루"라는 단어 역시 유한한 길이의 시간이 아니라 무한하거나 혹은 정의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것을 입증해야만 합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출애굽기 20장 9∼11절을 다시 해석해 본다면, "여섯 번의 무한한 시간 동안에 일하고, 일곱 번 째 무한한 시간 동안에 안식하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주지 않습니다.
창세기에서의 하루하루를 평상시의 하루하루로 받아들인다면, 하나님께서 평범한 24시간의 하루하루를 통해 엿새동안 일하시고 하루를 안식하신 것이야말로 우리 사람들이 따라야 할 모범, 즉 우리가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지키고 있는 바 "7일 = 1주(週)"의 형태를 보여 주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루는 결코 한 시대가 될 수 없다
우리는 결코 창세기에 적혀있는 날들(days)을 오랜 시간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많은 모순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 26절∼28절은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여섯째 날에 만드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담은 창조된 뒤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에 계속해서 살았으며, 창세기 5장 5절은 아담이 930세의 나이로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아직도 일곱 번째 날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2장 2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에 그 창조하시는 일로부터 "안식하셨기" 때문입니다. "안식하신다"라는 현재형이 아니고 "안식하셨다"라는 과거형으로 기록된 것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하루하루가 백만년씩이라면 이 구절의 해석에 큰 문제가 생깁니다. 참으로 그 하루하루가 단지 천년씩이라 하더라도 아담의 수명에 대해서는 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루는 천년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베드로후서 3장 8절을 언급하며 주장을 굽히려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 사실에 대하여 무지하지 말라." 창세기에 기록된 "날들"(days)이 천년씩이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추론의 근거로서 이 구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들이 주장하는 논리는 상당히 잘못된 것입니다. 시편 90편 4절로 돌아가면 그와 비슷한 구절이 있습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음이니이다."
베드로후서 3장과 시편 90편의 전체 문맥은 하나님이 우주 전체의 자연적인 진행 과정과 시간에 의해 제한을 받지 않는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도 창조하셨으므로 시간의 영역 밖에 계시며, 이런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시간에 의해 구속받지 않는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들을 이용하여 창세기에 기록된 바 창조 때의 하루하루가 천년씩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는 하루가 단지 천년과 같고 천년이 단지 하루 같다는 사실이며, 그 앞 뒤 문맥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의 영역 밖에 계시므로 이 구절은 창세기에서의 창조 기간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더욱이 베드로후서 3장 8절에서 "하루"는 "천년"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즉,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여기의 "하루"라는 단어는 "천년"이라는 단어와 확연히 구별될 수 있는 문자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라는 단어가 문자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결코 "천년"과 대비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 베드로를 통해 주신 메시지의 요지는 사람이나 "자연"이 아주 긴 시간에 걸쳐 성취할 수 있는 것을 하나님은 아주 짧은 순간에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자들이 사람을 탄생시키기 위해 수백만 년을 필요로 하는 무작위적인 "자연 과정"을 증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 있는 일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처럼 진화론에 근거한 수백만 년의 역사를 믿고 있으며, 이런 믿음에다 성경을 첨가시키고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해 수백만 년을 필요로 하셨다고 말하는데 이는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진화론이 매우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반하여, 베드로후서 3장 8절은 하나님께서 결코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짧은 시간에도 자신의 일을 하실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날과 해
창세기 1장 1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계절과 낮과 해를 표시하는 표적이 되게 하라." 여기서 쓰인 "날들"(days)이라는 단어가 실제의 평범한 하루가 아니라면, 같은 구절에 쓰여있는 "해들"(years)이라는 단어는 아무 뜻도 갖지 못하게 됩니다.
하루와 계약
이제 눈을 돌려 예레미야 33장 25∼26절 말씀을 읽어보기 바랍니다. "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낮과 밤과 더불어 맺은 나의 계약이 서지 아니할 수 있다든지 천지의 규례가 정한대로 되지 아니할 수 있다 할진대 내가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려서 다시는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 된 자로 하여금 돌아오게 하고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이 말씀을 통해 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그분 자신께서 낮과 밤과 더불어 깨뜨릴 수 없는 계약을 맺으셨으며, 그 계약은 왕좌에 앉기로 약속된 분(그리스도)을 포함하는 다윗의 후손들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낮과 밤과 더불어 맺은 계약은 창세기 1장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낮과 밤이 존재하도록 했고 그것들이 무엇을 뜻하는 가를 정의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 창세기 1장보다 명확하게 낮과 밤의 기원을 말해주는 곳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은 낮과 밤과 맺으신 그 계약이 시작된 곳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있으라"고 명령하셨을 때 낮과 밤과 맺으신 그 계약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즉, 당신이 창세기 1장에 있는 하루하루를 문자 그대로 평범한 엿새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예레미야를 통해 내려주신 하나님의 이 약속은 아무런 근거도 없게 되며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시는 분이 되고 맙니다.
하루의 길이가 정말 중요한가?
결론적으로, 이제 우리는 "창세기에서 말하는 하루하루를 평범한 하루하루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혹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정말로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그 대답은 "매우 중요하다"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으로 다가가는 일에서 기초가 됩니다. 예를 들어, 이것을 평상시 하루하루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날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해야하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마땅히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가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런 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한다면,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창세기의 다른 부분도 같은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하나님께서 흙으로 아담을 만드셨다는 기사를 읽을 수 있는데,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만일 성경이 기록된 그대로를 의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반드시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완전한 사실로 믿어야만 합니다. 여기서 '문자 그대로 믿으라'는 말은 사람의 사적 해석을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창세기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상징적으로 해석하거나 둘 중 하나를 취해야만 합니다. 성경을 공부할 때 앞귀 문맥으로 보아 본문 자체가 분명히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면 문자적 의미 그대로 믿어야만 합니다. 만일 본문이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을 때는 앞 뒤 문맥이 그 부분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거나 다른 참고 서적으로부터 그 정확한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누가 다가 와서 "창세기에 나오는 날 즉 그 때의 하루하루가 무엇을 말하는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 날들을 실제의 평범한 날들로 믿는 사람을 비난해야 한단 말인가요?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창세기에 나오는 날들을 평상시의 하루하루로 믿는 사람이야말로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날들의 참뜻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누가 잘못되었다고 나무랄 수가 없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을 믿는 지질학자들이 주장하는 바 '매우 오래 된 우주 역사'를 증명하려 하기 때문에 "하루"라는 평범한 단어를 자꾸 다른 의미로 바꾸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같이 상상을 통해 만들어진 시대는, 진화론이 보여주고자 하는 시대 즉 화석들이 죽음과 투쟁을 통해 보여 주고자 하는 시대와 같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주 오래되었으나 답변을 할 수 없는 문제 즉 '아담 이전에도 죽음과 투쟁이 있었다'는 문제에 또 봉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창세기에서 가르쳐주는 진리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 기록된 날들을 평범한 날들로 받아들인다면, 창세기에 기록된 나머지 부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엿새 동안에 주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주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2009-05-07 13:44:37 | 관리자
창세기에 기록된 6일 간의 창조는 지질학적 연대와 일치합니까?
* 다음은 헨리 모리스 박사의 "Bible has the answer"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대답 : 이미 확립된 역사 지질학의 체계에 따르자면 이 지구의 역사는 여러 개의 지질학적 연대로 나뉘어집니다. 대부분의 지질학자들은 지금부터 약 오십억년 전에 지구가 현재와 같은 구조로 진화되었다고 추정합니다. 원시 바다 속에 있던 매우 복잡한 화학 물질들이 대기 중에 있던 전기적 힘의 작용에 의해 약 삼십억년 전쯤에 스스로 재생할 수 있는 기능을 획득했다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또한 그들은 이 단세포 생명체들이 오랫동안 존재하다가 약 십억에서 이십억년 전쯤에 후생(後生) 생물체들로 진화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또한 지금부터 약 십억년 전쯤에 캄브리아기가 시작된 이후로 이 땅에서 갖가지 생명체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이것은 지각의 침전암 속에 매장되어 보존된 여러 유기체의 화석들에 의해 입증된다고 추측합니다. 또한 그들의 추측에 따르면, 오르도비시아기에 최초의 척추 동물이 출현했고, 실루리아기와 데본기에 어류가 번성하기 시작했으며, 페르모-석탄기에 양서류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시간이 흘러 약 이억 년 전에는 거대한 공룡들이 살던 중생대가 시작됐습니다. 이 시대는 약 일억년 전 백악기가 끝나갈 무렵에 공룡들이 설명할 수도 없이 갑작스럽게 멸종함으로써 끝이 났습니다. 그 다음은 포유류와 조류 시대인 제3시기였습니다. 사람과 원숭이의 공통 조상으로 추측되는 유인원은 아마도 칠천만년 전에 나타났습니다. 한편 모든 면에서 현대인과 같은 모습의 사람은 약 백만년 전쯤에 출현한 것으로 그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사람들이 상상력을 동원하여 만들어낸 이같이 매우 주목할 만한 개념과는 대조적으로 성경이 계시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단지 수 천년 전에 온 우주를 6일 동안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의 역사 기록이 기껏해야 6000년 정도뿐이 안되었는데 진화론자들은 몇 십억년을 논하니 참으로 놀랄만한 상상력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특히 지난 150년 동안에 많은 기독교 학자들은 지성 있는 인본주의 학들이 세워 놓은 진화론 체재로부터 조롱을 받지 않으면서도 성경의 완전성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질학자들이 규정해 놓은 지구 역사의 골격에 맞추어 창세기를 재해석하려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이와 같은 도구들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날-시대 이론"(day-ago)이며 이 이론에 의거하여 많은 사람들이 창조의 6일 동안의 "하루"를 지질학적 연대의 "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이론에는 너무나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이 이론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조차도 이것을 단지 도피구 정도로 생각하거나 또는 창세기에 있는 역사 기록을 드러내 놓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일시적으로 막아보려는 수단으로 생각해왔습니다. 그 이유는 진화론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놔두면 결국 성경 전체의 역사적 신빙성이 큰 타격을 입기 때문이었습니다.
"날"에 해당하는 히브리말은 "욤"인데 이 단어는 문맥상 분명한 경우에 한해서만 막연한 기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가끔씩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에서는 거의 대부분 이 단어가 문자적 하루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단어는 만 하루의 태양일 즉 24 시간의 하루를 뜻하든지 태양일의 하루 중 낮시간을 뜻하든지 둘 중 하나로만 쓰였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 단어를 처음으로 창세기 1장 5절에서 사용하시며 다음과 같이 친히 정의를 내려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빛(light)을 낮(day)이라 부르시고 어두움(darkness)을 밤(night)이라 부르시니라. 그 저녁과 아침이 첫째 날(day)이니라." 따라서 이 구절을 문맥에서 보면 낮(day)은 낮과 밤이 연속될 때의 낮을 의미하며 또는 빛과 어두움이 연속될 때 빛 부분을 의미합니다.
또, 이 단어의 복수형인 히브리말 "야민"은 구약 성경에서 무려 7백 번 이상 사용되었는데도 이 경우에도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항상 문자적인 "날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하신 돌판의 십계명에 있는 말씀도 이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거기에서 그분께서는 이 단어를 사용하사 다음과 같이 아주 명백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엿새 동안에(in six days) 주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출 20: 11).
"날-시대 이론"은 비성경적일뿐만 아니라 이 이론 자체가 타협하고자 하는 지질학자들의 주장과도 크게 일치하지 않습니다. 비록 "날들"을 "시대들"로 해석할 수 있다 하더라도 창조의 날들에 이루어진 창조의 순서 및 사건들과 지구와 지구의 발전에 관한 표준 지질 역사간에는 20 가지가 넘는 중대한 모순들이 있습니다. 몇 가지를 예로 든다면 성경은 지구가 별들보다 먼저 존재했으며, 지구가 처음에 물로 덮여 있었으며, 과일 나무들이 어류보다 먼저 나타났으며, 처음 창조된 동물은 고래였으며 조류가 곤충보다 먼저 창조되었으며, 남자가 여자보다 먼저 창조되었음을 가르치는데 이런 것들은 사실 역사 지질학자들과 고생물학자들이 노골적으로 반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날-시대 이론"에서 가장 심각한 오류는 신학적인 것입니다. 지난 50억 년의 역사 즉 아무런 목적도 없이 생긴 변화와 변이, 수많은 부적격자와 멸종, 잔인한 생존경쟁, 강자의 보존과 약자의 멸절, 온갖 자연 재난, 만연하는 질병, 무질서와 부패, 죽음 등으로 점철된 이런 부정적인 역사에 대해 사랑과 자비와 질서와 지혜와 목적의 하나님이 다 책임을 져야한다고 이 이론은 가르칩니다. 이 이론이 이런 엉뚱한 것을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창조의 6일이 끝난 뒤에 하나님이 친히 창조하신 모든 것을 보시고 매우 좋았다고 선언하셨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성경은 현재 모든 피조물과 함께 이 세상이 "신음하며 고통하는 것"은 사람의 죄와 이로 인한 하나님의 저주 때문이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롬 8:22). "그러므로 한 사람을 통해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롬 5:12). "하나님은 혼동의 창시자가 아니시요"(고전 14:13) .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사람의 창조와 구원이었다면 사람이 출현하기 수 천만 년 전에 공룡들이 오랫동안 이 세상을 지배하다가 멸종된 사건에는 과연 어떤 목적이 있었겠습니까? 병자를 고쳐주고 이기심을 버리고 남에게 나누어주며 오른 뺨을 때릴 때에 왼뺨도 돌려대며 자기를 희생하는 기독교의 윤리는 부적격자를 파멸시키고 남을 공격하며 자기만을 보존하는 진화론의 윤리와 정반대가 됩니다. 사실 이런 것들은 "날-시대 이론"이나 혹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진화론의 신앙에 꿰어 맞추려고 애쓰는 다른 모든 이론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성경적, 과학적, 신학적 오류들 가운데 일부에 불과합니다.
2009-05-07 13:43:10 | 관리자
간극 이론을 통해 화석학자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지질학의 오래된 연대들을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요?
* 다음은 헨리 모리스 박사의 "Bible has the answer"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대답 : 역사 지질학자들은 지구가 약 오십억년 전에 생겼다고 생각하는데 반하여 성경은 "엿새 동안에 주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었다"고 말합니다.(출 20: 11). 더욱이 창세기 5장과 11장의 연대기적 자료들을 살펴보면 이 모든 일이 겨우 수 천년 전에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명백한 차이점은 성경적 기독교와 현대 진화론 사이에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싸움 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됨에 틀림이 없습니다.
지구가 육천년 이상 되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방도는 전혀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 기간에 대해서만 실제로 기록된 역사를 갖고 있을 뿐입니다. 과학이 말 그대로 과학이 되려면 필연적으로 실험적 관찰과 측정을 수반해야 합니다. 그런데 옛날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또는 일어나지 않았는지를 기록하려고 그 자리에 있었던 "관찰자"는 지금 아무도 없습니다. 과거의 지질학적 연대를 측정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물리학적 과정들은 증명할 수도 없으며 실제로 이치에 맞지도 않는 가정들을 많이 필요로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에 기반을 두고 추측해야만 한다는 압력이 지난 한 세기 동안 너무 강했기 때문에 심지어 많은 성경학자들도 진화론자들이 추정하는 지질학적 연대에 맞추는 방법으로 창세기를 재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 결과 두 종류의 이론이 나오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지질학적 연대를 창조의 6일 "동안'에 두되 그 때의 하루를 한 시대로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은 "날/시대 이론"이라 할 수 있으며 다음에 자세히 설명하고자 합니다. 한편 다른 하나는 지질학적 연대를 창조의 6일 전에 두는 것인데,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원래의 지구가 있었는데 대격변에 의해 파괴되었고 그래서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의 6일"은 실제로 "재창조의 6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두 번째 이론은 "간격 이론"이라 불리며 진실한 성경 교사들의 큰 옹호를 받으며 근본주의자들의 마음속에 굳게 자리를 잡아왔습니다. 하지만 이 이론은 실제로 수많은 심각한 오류를 수반합니다. 지질학적 연대는 단순히 광범위한 화석 기록을 무시함으로써 처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론은 그렇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처럼 추측해서 연대를 세우는 것은 지구와 및 사람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진화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주장과 필연적으로 관련을 갖게 마련입니다. 사실 화석 기록은 진화론자들이 보여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최상의 증거이며 사실상 무시할만한 크기로 진화가 이루어질 수 있음 - 즉 종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종 안에서 변이가 생기는 것 -을 보여 줄 수 있는 유일한 증거입니다. 더욱이 지질학적 연대는 특히 지각에 있는 침전암의 화석 내용물을 통해 인식하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질학적 연대의 명칭들 자체가 이것을 보여 주는데 "고생대"는 "고대 생명 시대"를, "중생대"는 "중간 생명 시대"를, "신생대"는 "최근의 생명 시대"를 가리킵니다.
이와 같이 진화론자들이 만든 지질학적 연대를 수용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진화론의 모든 주장을 받아들임을 의미합니다. 침전암에 보존된 대부분의 화석들은 현 세상에도 분명히 그 친척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재창조"라는 개념은 예전에 오랜 시대에 걸쳐 발전되어 오던 동물과 식물이 결국은 아담의 창조 이전에 있었던 대격변으로 인해 멸종하거나 완전히 사라졌고 그래서 창조주께서는 이러한 동일한 동물과 식물의 대다수를 6일 만에 재창조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이론은 "아담 이전에 사람이 존재했다"는 개념을 필연적으로 수반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형태를 지닌 많은 화석들의 연대가 성경의 연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보다 엄청나게 오래된 것으로 진화론자들이 추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진화론자들은 사람이 약 100만년 전에 출현했다고 하는데 이 간격 이론 역시 아담이 아닌 다른 종류의 인간이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 전에 있었음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간격 이론은 실제로 진화론 문제를 직면하여 풀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창세기1장 1절과 1장 2절 사이에다 어떤 상상적인 시간의 간격을 만들고 그 안에 이 문제를 집어넣어 묵살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시 세상에서 오랜 시대에 걸쳐 느릿느릿 진화가 일어나게 하신 다음 그것을 파괴하시고는 그 뒤에 또 자신이 파괴시킨 동일한 형태의 동식물을 재창조하기 위해 특별한 창조의 방법을 사용하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매우 심각한 문제에 대해 간격 이론은 전혀 해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최근의 지질학 역사를 보아도 그처럼 온 세계에 걸쳐 대격변이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지질학적 증거가 없습니다. 간격 이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종종 그런 대격변을 빙하기와 동일시하지만 이런 빙하기는 온 세계에 걸쳐 일어난 대격변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큰 얼음들은 중위도 지역까지만 퍼졌고 따라서 빙하기 이전의 모든 생명체를 파멸시키지 못했음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담 이전에 온 세계를 덮은 대격변이 있었음을 보여 주는 성경적 증거도 없습니다. 문맥에서 떨어진 몇몇 본문들이 간격 이론에 맞도록 해석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상상에 의존하는 원시 창조와 아담 이전에 존재했던 대격변 즉 가설에 근거한 대격변이 어떠한 것인가를 직접적이고도 명백하게 보여주는 구절은 성경에서 결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많은 성경 교사들이 신학적으로 이 이론을 주장하고 있으며 온 우주의 근본 역사를 설명하며 이 문제에 대해 그처럼 쉽게 대답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성경 말씀에서 이에 대해 명확히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이 이론이 지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아마도 이 세상의 죄악을 만든 장본인으로 하나님을 꼽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이 암시하는 바는 그분께서 원시 세상에서 적어도 삼십억년 이상이나 자신의 알 수 없는 어떤 목적들을 성취하기 위해 투쟁, 폭력, 부패, 사망의 방법을 온 세계에 적용하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이론이 성취하고자 하고자 하는 바는 현존하는 화석들과 지질학적 연대들의 증거를 창세기 1장 2절 앞에 두고 무시하려는 것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탄이 하늘에서 하나님께 범죄했고(사14:12-15, 겔 28:11-17)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그를 땅으로 쫓아내심으로써 아담 이전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대격변의 때에 이 지구를 파괴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늘에서 사탄이 범죄한 것은 그런 범죄가 있기 전의 지질학적 시대에 이 세상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존재한 고통과 사망의 모습을 어떤 식으로도 결코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 땅에 고통과 사망과 혼란을 야기한 것에 대해 홀로 책임을 져야 하는 분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사실 신학적으로 흔돈만 생깁니다! 사실 성경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6일간의 창조 끝에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보시니, 보라, 매우 좋았더라. 그 저녁과 아침이 여섯째 날이니라."(창 1:31) 여기에 나오는 모든 것에는 지구 전체와 그 안의 모든 것과 하늘들도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창 1:16, 2:2 등을 참조바람). 또한 사람이 범죄하기 전까지는 사망이 이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롬 5:12, 고전 15:21).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늘에서 사탄의 반역도 그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있는 모든 것도 "매우 좋았다"고 성경이 선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구에 있는 큰 묘지 즉 전 세계에 걸쳐 발견되는 딱딱한 침전물내의 화석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진짜 해답은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아주 오랜 시대에 걸쳐 발생한 자연계의 균일한 과정들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또한 간격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추측하는 바와 같이 6일 동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 전에 대격변이 일어났다는 상상 속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직 이에 대한 해답은 창세기 6장부터 9장 사이에 묘사되어 있는 범세계적 재난 즉 실제로 일어난 노아의 대홍수 기록을 자세히 공부함으로써 찾아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대홍수는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도 입증되며 전 세계의 여러 민족 및 부족의 초기 기록에서도 잘 입증됩니다.
2009-05-07 13:41:13 | 관리자
진화론은 열역학 제2법칙과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까?
* 다음은 헨리 모리스 박사의 "Bible has the answer"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대답 : 진화론자들을 대적하기 위해 창조론자들이 효과적으로 사용해온 반론들 가운데 하나는 우주 및 현존하는 유기체 세계의 발전에 대한 진화론의 가설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곧 열역학 제2법칙과 모순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자기들의 주장에 모순이 없으며, 진화론과 열역학 제2법칙이 둘 다 사실일 수 있다고 논박하곤 합니다. 이제 우리는 두 명의 진화론 선두주자가 내리는 두 가지 개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현존하는 진화론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헉슬리 경(Sir Julian Huxley) 은 다음과 같이 진화를 정의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진화란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과정으로 방향성을 띠고 있으며 또 본질적으로 비가역 과정 즉 되돌릴 수 없는 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변이가 증가하게 되고 그 결과 고도로 발달한 조직체가 증가하고 그 산물들이 생겨난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지식은 참으로 우리로 하여금 모든 실체가 진화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견해를 받아들이게 하고 있으며 사실 진화야말로 스스로 변화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진화론자들은 진화를 모든 실체의 원인으로 여깁니다. 미립자는 원자로 진화하고. 원자는 분자로, 분자는 세계들과 별들과 은하수들로 진화하며, 무기체는 생명체로 진화하고 이것은 더욱 복잡한 식물과 동물로, 결국 사람으로 진화하여 이제는 사람이 미래의 모든 진화를 지성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열역학 제2법칙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프린스턴 대학교의 저명한 생화학자 블럼(Harold Blum)은 이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열역학 제2법칙의 결과들 가운데 하나는 모든 실제 과정이 비가역적인 방향으로 즉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만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정은 엔트로피라 하는 어떤 양의 변화를 수반한다......모든 실제 과정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진행한다. 엔트로피는 또한 어떤 계의 무질서도를 나타내는데 계의 무질서가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엔트로피도 증가한다."
따라서 헉슬리의 말대로 한다면, 진화는 온 우주에 적용되는 법칙으로 모든 과정으로 하여금 "질서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만 가게 하는 법칙입니다. 즉 생명이 없는 흙덩이에서 생명이 있는 아메바로 옮겨가며, 질서가 낮은 아메바에서 질서가 높은 사람으로 옮겨간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블럼의 말대로 한다면, 엔트로피 법칙은 온 우주에 적용되는 법칙으로 모든 과정이 "무질서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만 가게 하는 법칙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주장하는 바는 서로 정반대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둘 중의 하나는 틀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열역학 제2법칙은 모든 과정을 지배하는 근본 원칙으로 어디에서나 인정받고 있으며, 실험을 통해 수없이 입증되었으며, 우리의 모든 경험과 일치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확실한 법칙이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과학의 법칙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바로 이것이 그런 법칙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헉슬리의 주장이 틀린 것이며 따라서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에 따른 철학이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이와 같은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아주 그럴 듯한 두 가지 방도를 제시할 것입니다. 그 중 하나는 엔트로피 법칙의 보편성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지식에 한계가 있고 이 광대한 우주의 아주 적은 부분만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열역학 제2법칙이 시간과 공간의 모든 곳에 다 적용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경험적인 측정만으로는 결코 온 우주에 적용되는 확실한 법칙을 확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반론은 물론 철학적으로는 타당합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나 언제나 엔트로피 법칙을 과학적으로 실험해 보면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항상 옳은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비록 온 우주의 총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있다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엔트로피를 과학적으로 시험해 보면 우주의 어떤 부분에서든지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있다고 우리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한편 온 우주에 진화가 일어나려면 적어도 온 우주 대부분의 질서도가 반드시 증가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과학 실험에 의해서도 이에 대한 정량적인 확증을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진화론자들이 이런 딜레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또 다른 길은 열역학 제2법칙이 다른 계와는 아무 것도 주고받지 않는 소위 "고립 계"라 하는 특별한 계에만 적용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열린 계"안에서는 질서가 증가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기는 자라서 어른이 되고, 두 마리의 동물은 번성하여 수많은 자손을 이루며, 사람이 얻는 지식은 엄청나게 축적됩니다. 심지어 무기체 영역에서도 간단한 원소들이 자연적으로 결합되어 복잡한 혼합물을 형성하며, 분자들은 복잡하면서도 아름다움을 지닌 수정으로 변합니다.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바는 이 모든 것이 열린 계들이며 이것들의 조직을 증가하는 것은 이것들 밖에 있는 어떤 근원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구 자체는 하나의 열린 계로서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끊임없이 받고 있는데 바로 이런 에너지가 진화적 과정과 이 과정이 수반하는 이른 바 계속해서 질서가 증가하는 것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동력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진화론자들은 지적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와 동일한 논법을 태양계 전체와 우주의 어떤 유한한 부분에도 다 적용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열역학 제2법칙은 오직 고립된 계에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지구와 같은 열린 계 안에서 진화가 일어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하는 바의 핵심입니다. 사실 이것은 진화와 엔트로피를 조화시키기 위해 블럼이 사용하는 계략이기도 합니다.
물론, 창조론자들은 이것이 철학적으로는 가능할 지 모르지만 실제의 모든 과학적 측정 결과와는 여전히 상반된다고 대답합니다. 열역학 제2법칙을 공식적으로는 "이상적인 고립 계"라는 조건하에서 정의해야 하는 게 사실이긴 합니다. 그러나 이 법칙은 언제나 열린 계에 대해서만 실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연 속에는 참으로 100% 고립된 계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어디서 실험을 하든 이 법칙은 항상 옳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역학 제2법칙은 고립 계든 열린 계든 그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어떠한 기계나 과정도 100%의 효율을 발휘할 수 없으며 영구운동 기계를 제작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또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모든 것이 결국에는 닳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심지어 얼마 동안 질서의 증가를 보이는 계들조차도 결국에 가서는 부패의 법칙 앞에 무릎을 꿇고 맙니다. 완전해 보이는 수정도 결국은 분해되며, 어른은 결국 사망하며, 종은 결국 멸종되며, 심지어 위대한 문명들조차 외부의 침략이나 기근 또는 핵전쟁 등으로 인해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겉에서 보아 질서와 복잡성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기껏해야 국부적이고 일시적으로만 그런 것입니다. 또한 이런 일이 발생하면서 그 계는 주위 환경으로부터 일시적으로 에너지를 얻지만 반드시 그 환경에 더 큰 무질서를 안겨주고야 맙니다. 그래서 계와 주변을 포함한 전체의 무질서는 항상 증가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국부적으로 그리고 일시적으로 질서가 증가하는 것도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떤 복잡한 과정이 이부에서 그 계에게 주어질 때에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식물은 광합성이라는 놀라운 과정을 통해 태양의 에너지를 활용하고 이로써 자라납니다. 동물과 사람은 혈액 순환, 소화, 호흡, 그 밖의 복잡한 여러 과정을 통해 자라납니다. 그리고 식물과 동물의 생명은 나름대로의 종을 유지하기 위해 유전 체계의 복잡하고도 미묘한 부호화 작업과 본을 뜨는 구조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므로 진화론에 기반을 둔 모든 과정에 포함되어 있는 가정 즉 질서가 한없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은 잠시나마 성공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하더라도 위에서 언급한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놀랍고 복잡한 메커니즘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수 천 명의 과학자들이 수 백 만 달러의 연구비를 써가면서 백 년 이상 열심히 연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진화의 메커니즘은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상상 속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열역학 제2법칙과 완전히 일치하는 가운데 활동하고 있는 돌연변이라는 무질서화 메커니즘과 자연계의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보존의 법칙 즉 자연 선택이라는 메커니즘을 진화의 유기적 단계를 지지하는데 필요한 메커니즘으로 제안하는 것은 참으로 애처로운 일입니다. 또한 이것은 자연에서나 성경에서 분하게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에 관한 분명하고도 만족스런 증거를 피해 기를 쓰고 달아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필사적인 조치입니다.
그러므로 실제가 아닌 형이상학적인 추측을 통해 열역학 제2법칙을 거부하며 진화를 변호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뿐만 아니라 확실한 과학적 증거들조차도 다 진화를 반대합니다.
2009-05-07 13:38:28 | 관리자
기원이라 하는 모세의 첫 번째 책: 창세기
The First Book of Moses Called GENESIS
기록자: 모세, 기록 시기: 주전 1450년경, 성격: 역사, 기간: 약 2,315년(어셔의 연대기)
수신자: 이집트 탈출 이후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과 온 인류(롬15:4; 고전10:11)
이름: 유대인들은 이 책을 ‘처음에’(In The Beginning)라고 불렀다. Genesis는 창세기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책명 ‘게네시스’에서 나와 라틴어를 거쳐 영어로 정착된 이름으로 ‘기원’을 뜻한다. 따라서 창세기는 사람과 온 우주의 시작을 보여 주는 책이다.
주제: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 죄가 들어온 땅을 회복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아담, 아벨,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등을 써서 여러 방법으로 일하시는 것
목적: 사람을 구속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을 온 인류에게 보여 주는 것(3:15, 21; 22:8; 마20:28; 요1:29; 갈4:4-5)
내용: 창세기는 창조주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것의 기원을 보여 주는 책으로 온 우주 만물의 창조, 사람의 창조, 가정의 형성, 죄의 기원, 사람의 타락, 희생 예물을 통해 하나님과 잠정적으로 관계가 회복되는 것과 여자의 씨인 메시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최종적으로 회복될 것에 대한 예언, 노아의 대홍수, 민족들의 발전, 이스라엘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시작, 족장 시대 믿음의 사람들에 관한 기사, 요셉을 통한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진출 등을 담고 있다. 창세기는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특별히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것과 그 뒤 죄가 은밀히 들어와 온 세상에 파멸과 죽음을 가져온 것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비극적 결과를 보여 준다. 창세기는 사람이 죽는 이유와 만물이 쇠퇴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가르쳐 주므로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기초가 된다. 그래서 창세기는 곧장 신약으로 연결되어 창세기의 말씀들이 신약성경의 17권의 책 속에서 60여 차례 인용되고 있다. 창세기는 생명으로 시작해서(1:20-28) 사망으로 끝난다(50:26). 창세기는 50장, 1,533절, 38,267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1장(창조), 12장(아브라함을 부르심)
핵심 절: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1:1)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이라면 성경의 다른 부분을 믿는 데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 한 구절은 사람이 만든 여러 가지 그릇된 이론을 산산조각 낸다. 하나님이 계시므로 무신론은 존재할 수 없고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은 전혀 다른 차원에 있으므로 범신론도 존재할 수 없으며 유일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므로 다신론도 무효하고 하나님이 온 우주를 창조하셨으므로 물건이나 천체를 숭배하는 유물론도 무효하며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으므로 진화론도 성립되지 않는다.
핵심 단어: 처음(시작), 핵심 구: “처음에”(1:1)
창세기의 그리스도: 1. 여자의 씨(3:15; 마1:18-25; 갈4:4), 2. 아브라함의 씨(12:1-2; 갈3:29), 3. 우리의 화평이신 실로(49:10; 요16:33; 롬5:1), 4. 이스라엘의 돌이신 목자(49:24; 요10:11), 영적 교훈: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라.”(눅1:37; 요15:5)
2009-05-07 13:36:18 | 관리자
창조의 신비
2009-05-06 16:09:04 | 관리자
창조의 날들
2009-05-06 16:03:46 | 관리자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대비
2009-05-06 16:01:42 | 관리자
신약성경목록 2
2009-05-06 16:00:19 | 관리자
신약성경목록 1
2009-05-06 15:59:19 | 관리자
구약성경목록 3
2009-05-06 15:50:54 | 관리자
구약성경목록 2
2009-05-06 15:50:05 | 관리자
구약성경목록 1
2009-05-06 15:49:00 | 관리자
계시록 연대기
2009-05-06 15:47:13 | 관리자
창조부터 그리스도까지의 연대
2009-05-06 15:45:13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