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자손이 급히 이집트를 떠나는 것을 묘사한 출12:34에는 “백성이 반죽을 발효시키기도 전에 반죽과 반죽 그릇을 가져다가 옷에 묶어 어깨에 멨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의 그릇은 조그만 나무 그릇이나 둘둘 말 수 있는 원형 가죽 그릇을 뜻한다. 지금도 아랍 사람들은 두 종류를 사용한다.
2009-04-26 23:29:52 | 관리자
이것은 보통 반유대주의라 불리며 주로 인종적, 종교적 이유에서 유대인을 배척하고 멸절시키려는 사상이다.
마귀는 메시아가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으로 온다는 사실로 인해 고대로부터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유대인을 핍박했다. 그래서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은 팔레스타인을 제외한, 유대인이 정착한 모든 지역에서 언제나 존재해 왔다. 로마 시대에는 주로 종교적 차이가 반유대주의의 근거였다. 이교도들은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과 우상숭배 거부를 이해하지 못했다. 중세 암흑시대에는 로마에 뿌리를 둔 천주교회가 유대인을 가리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라고 가르치며 1000년 이상 반유대주의의 씨를 뿌렸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중세에 이런 저런 이유로 천주교도들과 이교도들 그리고 심지어 프로테스탄트들에 의해 큰 핍박을 받았다. 19세기부터는 민족주의로 인해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에서 반유대주의가 발전해서 유대인들은 주거의 자유를 제한 받았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히틀러 당시 반유대주의는 독일에서 맹위를 떨쳤고 범세계적인 반유대주의운동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결과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희생되었다.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 이후에는 아랍 사람들의 반유대주의가 발동하여 수차례 전쟁이 발생하고 많은 유대인이 죽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선민이며 유대인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결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다(롬11:29). 유대인을 축복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고 유대인을 저주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창12:3). 최근에는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유대인 제거 신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런 것은 다 천주교에서 주장하는 이론 즉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가설에서 나온 산물이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경륜주의 즉 세대주의 신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고 있다. 경륜 참조. 그러나 유대인들이 극심하게 배척을 당하는 때가 바로 주님의 재림이 있을 때이다. 말세에 유대인들은 세상 사람들을 떨게 만드는 잔이 되고 그들이 지기에 무거운 돌이 될 것이다(슥12:2-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화평을 구하는 사람, 교회, 나라, 민족에게 복을 주신다(시122:6).
2009-04-26 23:29:23 | 관리자
굳은 바위.
2009-04-26 23:28:39 | 관리자
우리 주님은 유대인들이 어떤 구절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기도하는 것을 이교도들이 하는 것과 같다고 하시며 엄격히 꾸짖으셨다(마6:7). 그런데 천주교인들은 아직도 주기도문을 헛되이 반복하고 수도 없이 아베마리아를 반복하고 있다. 그들은 기도를 자꾸 반복하면 그 안의 효과가 크다고 느끼는데 이런 헛된 반복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일이다(잠28:9). 물론 하나님은 한 혼이 소원을 두고 간절하게 반복해서 간구하는 것을 기뻐하시며(창18:1-33; 마26:44; 눅18:13) 특히 입술이 아니라 마음을 중히 여기신다. 따라서 이득을 얻으려고 반복해서 헛되이 똑같은 구절을 외우는 것은 오히려 그의 죄를 늘릴 뿐이다. 기도 참조.
2009-04-26 23:28:05 | 관리자
습기가 있는 들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쌍떡잎식물.
이것의 높이는 60-100센티미터이고 줄기는 단면이 사각형이며 표면에 털이 있다. 잎 표면에는 기름샘이 있어 여기서 기름을 분비한다. 박하는 대체로 온난한 기후에 알맞은 작물로서 멘톨의 함유량이 많은데 멘톨은 약용하거나 향료로 쓴다. 율법을 지키려 애쓰던 바리새인들은 박하의 십일조를 드렸다(마23:23). 십일조 참조.
2009-04-26 23:27:34 | 관리자
베냐민의 마을.
이곳은 예루살렘 근처에, 요르단으로 가는 길에 있었으며 다윗의 역사에서 몇 차례 언급되었다(삼하3:16; 16:5; 17:18).
2009-04-26 23:27:01 | 관리자
시84:6에 나오는 골짜기.
이런 이름을 가진 골짜기가 실제로 있었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예루살렘에서 떨어진 곳에 있던 시편 기자는 성전에서 주님께 경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그곳에 이르는 길들을 사랑했다. 비록 그들이 험하고 힘든 길을 가면서 눈물의 골짜기를 지난다 해도 거기에 가는 것이 그들의 행복이요 기쁨이므로 그들에게는 그런 곳이 이른 비를 맞아 촉촉하게 젖은 복의 땅과 다름없었다.
2009-04-26 23:26:31 | 관리자
모압의 신전이 있던 장소. 여기서 모압의 왕은 아시리아 사람들을 대적하려고 헛되이 간구하였다(사15:2).
2009-04-26 01:01:20 | 관리자
이방인들의 유명한 사도.
그는 원래 히브리말로 사울이었으며 행13:13에서 처음으로 로마 이름인 바울로 나온다. 아마도 이렇게 이름을 바꾼 것은 그 당시 이방 땅에 살던 유대인들의 관습이었으며 어쩌면 그의 친구이자 처음에 개종한 서기오 바울 총독을 기념하기 위해 그 이름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행13:7). 그는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출생하여 자기 아버지로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물려받았다. 그의 부모는 베냐민 지파에 속하였으며 그를 히브리 사람 중의 히브리 사람으로 양육하였다(빌3:5). 그 당시 다소는 학문과 문화로 유명하였으며 바울은 여기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 뒤 그는 합당한 나이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당시 최고의 학자라 불리는 가말리엘의 지도하에 교육을 받았다. 예수님의 사역 기간에 그가 예루살렘에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그는 다소로 돌아가서 유대인들의 관례에 따라 장막 만드는 일을 한 것 같다(행18:3; 20:34; 살후3:8).
그 뒤 그는 30세쯤에 예루살렘에서 많은 사람을 이끌게 되었다. 그는 가말리엘에게 교훈을 받고 율법을 알게 되어 바리새파의 엄격한 제자가 되고 열렬한 유대교 수호자가 되었으며 동시에 기독교를 박해하는 사람이 되었다(행8:3; 26:9-11). 그는 기적적으로 회심하였고 그 이후에는 그리스도가 그에게 전부가 되었다(행9:22, 26).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다마스커스 도상에서 그에게 나타나셨고(행26:15; 고전15:8) 그는 그분에게 자기의 온 마음과 혼과 힘을 주었다. 그래서 그는 살든지 죽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었으며 자기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호하고 전파하는 일을 하며 특히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일을 하였다. 그는 기독교 정신이 순수하고 고상하며 그 안에서의 경배와 그로 인한 영향력이 실제로 강하고 분명함을 알게 되었으며 그래서 유대교의 의식과 예식과 경배를 반대하고 이로 인해 자기 동포로부터 심한 고통과 핍박을 받았다. 그들의 고소로 인해 그는 가이사랴에서 약 2년 동안 옥살이를 하고 그 뒤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갔다. 그 이후의 재판 결과 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초대 교회 성도들은 그가 2년 뒤 옥에서 풀려났다가 다시 로마로 가서 옥에 갇혔고 결국 네로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전한다.
바울은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알려진 학문을 다 배웠고 그리스 문학에도 익숙하였는데 이것은 그가 그리스말을 능숙하게 사용하고 그리스 철학자들과 변론하며 그리스 시인들의 시를 인용한 것 등에서 잘 드러난다(행17:28; 고전15:33; 딛1:12). 그러나 그리스 교육이 그를 지배하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그리스도 신앙의 영적 본질과 전 세계적인 우주관 등이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 물론 그러한 신앙은 신실하게 그것을 고백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과 성격을 다 순화시키고 고상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온 인류를 위한 구속의 사랑을 직접 느꼈다(갈1:12).
대부분의 사도들과 교사들은 유대교와 의식과 예식과 교리 등을 굳게 붙들었고 그런 교리 안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기독교를 자기들이 간직한 토양 위에 접붙이려 한 것으로 보인다. 즉 그들에게는 유대교가 기독교라는 ‘새로 접붙여진 가지’를 지탱하는 그루터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울은 이 같은 좁은 견해에서 벗어나 기독교가 전 우주적인 신앙 체계임을 처음으로 보인 듯하다. 다른 이들은 기독교를 새로 접한 그들에게 모세의 율법 준수 등을 부여하려 하였지만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벽을 무너뜨리고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보여 주었다(엡2:11-22). 그의 모든 수고는 이것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 그는 위선 태도를 보이는 베드로를 서슴지 않고 책망하였다. 그가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와 로마에서 근 5년 동안 옥살이를 한 것도 결국 이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바울 사도는 세 차례나 선교 여행을 하였으며 그 대부분을 걸어서 다녔고 그 내용은 사도행전 13-28장과 고후11:23-29에 기록되어 있다. 사도 바울의 1, 2, 3 차 선교 여행 지도 참조(42, 43). 그가 여행한 지역과 개종시킨 사람과 세운 교회와 참고 이겨 낸 고난과 노력과 수고와 행한 기적과 기독교를 변호하고 알리기 위해 기록한 편지들과 그가 받은 계시와 그가 이룩한 선한 일과 순교자의 죽음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비범한 사람이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바울의 성격은 그가 기록한 서신서들에 잘 드러나 있다. 이 편지들에서 우리는 열정적인 한 사람을 변화시켜 후에 있을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이 되게 만든 힘 즉 사람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보게 된다. 그래서 그는 두려움이 없이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하면서도 남을 배려하고 예의를 지키며 자신을 희생하였다. 그는 신약성경에서 로마서에서 히브리서에 이르기까지 모두 14편의 서신서를 기록하였고 이 안에서 기독교의 원리와 본질을 설명하였다.
2009-04-26 01:00:49 | 관리자
엘루마 참조.
2009-04-26 00:59:59 | 관리자
압살롬이 자기의 양떼를 치던 곳(삼하13:23).
이곳은 에브라임에 가까웠으며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13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2009-04-26 00:59:38 | 관리자
고대 이집트의 마을.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기 전에 이곳을 마주보고 또 이곳 앞에서 진을 쳤다(출14:2; 민33:7).
2009-04-26 00:58:47 | 관리자
마12:24에 나오는 이 이름은 에그론 사람들이 섬긴 우상 신 바알세붑에서 유래하였는데 이것은 ‘파리들의 주’ 혹은 ‘파리 신’이라는 뜻이다. 그는 그 지역에 많았던 모기와 파리들로부터 사람들을 지켜 주는 자였다(왕하1:2-3, 16). 그것은 어떤 때에 바알세불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똥 신을 뜻한다. 유대인들은 사탄이 우상숭배 오염의 창시자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그를 부른 것 같다.
2009-04-26 00:58:22 | 관리자
터져 나온 곳. 이 이름은 다윗과 블레셋 사람들 사이의 싸움을 묘사하기 위해 다윗이 사용한 이름이다(삼하5:20; 대상14:11; 사28:21). 이곳은 예루살렘 남서부에서 멀지 않은 르바임 골짜기에 있었으며 짧게 브라심이라 불리기도 한다.
2009-04-26 00:57:52 | 관리자
요르단 너머 르우벤의 지역 안에 있던 도시(민32:38).
이곳은 또한 벳므온 혹은 벳바알므온이라 불리기도 하였다(렘48:23; 수13:17).
2009-04-26 00:57:24 | 관리자
유다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갈 당시의 암몬 족속의 왕.
그는 그 당시 유다 총독인 그달리야를 암살하려 하였다(렘40:14; 41:1-10).
2009-04-26 00:56:55 | 관리자
갓의 고을(수19:44).
이곳은 벳호론에서 멀지 않았다. 이곳이 솔로몬이 다시 지은 바알랏인지는 확실하지 않다(왕상9:18; 대하8:6).
2009-04-26 00:56:12 | 관리자
시므온의 고을(수15:29; 19:3). 이곳은 또한 빌하로 불리기도 했다(대상4:29).
2009-04-26 00:55:41 | 관리자
헤르몬 산 기슭의 레바논 골짜기의 도시.
이곳은 가나안을 정복하면서 여호수아가 전쟁을 벌인 최북단 도시이다(수11:17; 12:7; 13:5).
2009-04-26 00:55:15 | 관리자
I. 구약성경에서 이것은 페니키아 사람들 특히 두로 사람들의 우상을 가리킨다.
바알 숭배는 아스다롯 숭배와 함께 히브리 사람들에게 특별히 사마리아에서 엄숙한 의식과 함께 도입되었다(삿6:25-32; 왕하10:18, 28). 아스다롯 참조. 바알의 복수인 바알들(Baalim)은 바알의 형상들을 의미했다(삿2:11; 10:10). 엣바알, 여룹바알, 한니발 같은 이름들을 통해 바알 숭배가 페니키아와 카르타고 지역에 널리 퍼졌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바빌론 사람들은 이것을 벨이라 불렀다(사46:1; 렘50:2; 51:44). 바빌론의 바알 숭배는 유명한 바벨탑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탑의 꼭대기 방은 별을 관측하고 그 기록들을 담아 둔 곳이었다.
동방의 점성술에서 바알 숭배는 곧 천체 숭배를 뜻하였으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바알이 태양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이것을 행운의 신 주피터라 불렀다. 그래서 주피터는 비너스와 함께 사람의 행운을 주관하는 존재로 받아들여졌고 따라서 그 관계가 바알과 아스다롯의 관계와 같은 것으로 이해되었다.
바알의 형상들과 전들은 대개 높은 곳에 있었다. 므낫세는 예루살렘 성전의 두 뜰에 하늘의 군대 특히 아스다롯을 위한 제단들을 세웠다(왕하21:5-7). 예레미야는 지붕에서 바알에게 경배를 드린 유대인들에게 경고를 주었으며(렘32:29) 요시야는 아하스가 자기의 궁전의 난간에 세운 이런 제단들을 파괴시켰다(왕하23:12). 또 고대 사람들은 종종 인신 제물을 바알에게 드리기도 했다. 예레미야는 바알의 산당들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불로 태워 바알에게 번제 헌물로 드린 유다와 예루살렘의 거주민들을 책망하였다(렘19:5). 몰렉 참조.
이스라엘 자손은 바알을 섬기는 일에 잘 빠졌다(민25:3; 삿2:13-14; 3:7). 사무엘 시대에 그들은 우상들을 제거했으며(삼상7:4) 이 일은 다윗과 솔로몬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아합의 통치 때에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인 이세벨로 말미암아 바알 숭배가 다시 크게 성행하였다(왕상16:31). 다른 단어들과 결합될 때 바알은 다른 거짓 신을 나타낸다. 바알베릿(Baal-Berith)은 ‘언약의 주’를 뜻하며 세겜 사람들의 신이었고(삿8:33; 9:4), 바알브올(Baal-Peor)은 ‘브올의 주’를 뜻하며 모압 족속의 우상이었으며(민25:3-5; 호9:10), 바알세붑(Baal-Zebub)은 ‘파리들의 주’를 뜻하며 에그론의 블레셋 사람들의 신이었다. 바알세붑 참조.
II. 바알이라는 말은 우상과 관계없이 여러 장소의 복합어로 사용되었다.
2009-04-26 00:54:39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