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도 어떤 분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 번역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답을 해 달라고 해서 간단히 글을 올립니다.
성경 번역에는 두 가지 기법이 사용됩니다. 하나는 ‘형식적 일치’(Formal equivalence) 기법이고 다른 하나는 ‘동적 일치’(Dynamic equivalence) 기법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저명한 성경 사본 학자인 웨이트 박사님께서 잘 설명해 주셨으므로 일단 그 글을 소개하려 합니다. 그런데 그 글이 상세해서 조금 길므로 오늘은 먼저 결론을 말씀드린 뒤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성경 번역 기법 결론: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위에서 보셨듯이 킹제임스 성경은 형식적 일치(Formal equivalence)를 이룬 성경입니다. 이것을 미국 사람들은 ‘단어 대 단어 번역’(Word for word translation)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더 풀어 쓰자면 킹제임스 영어 성경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본과 주어, 목적어, 단수, 복수, 수동태, 능동태, 시제, 심지어 문장의 도치 등이 같습니다. 이것은 성경 사본 학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다음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성경 변증 학자 중의 한 사람인 로데스 박사님(Dr. Ron Rhodes)의 글입니다.
http://www1.cbn.com/churchandministry/the-story-behind-the-king-james-version
여기서 그분은 글의 첫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611년에 처음 발간된 킹제임스 역본은 단어 대 단어(형식적 일치) 번역본이다.
The King James Version (KJV) is a word-for-word (formal equivalence) translation that was first published in A.D. 1611.
여기서 이분이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 번역을 '형식적 일치'라고 한 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로데스 박사님은 공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지 않는 분입니다. 다만 공인으로서 정직하게 사실을 기술하였습니다.
로데스 박사님이 얼마나 유명한가 알아보려면 아마존에서 그분의 이름(Ron Rhodes)을 쳐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분이 지은 수십 권의 베스트셀러 책들이 나올 것입니다.
http://www.amazon.com/Ron-Rhodes/e/B001HCZ24O/ref=sr_ntt_srch_lnk_1?qid=1459489113&sr=8-1
이래도 믿지 못하는 독자들이 있기에 위키 백과를 소개합니다. 위키 백과에는 아예 'Dynamic_and_formal_equivalence' 항목이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Dynamic_and_formal_equivalence
여기로 들어가면
1)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들,
2) 형식적 일치와 동적 일치를 같이 사용한 성경들,
3) 동적 일치로 의역된 성경들,
4) 완전 의역 성경들의 리스트가 나옵니다.
먼저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들 리스트에는 킹제임스 성경이 있습니다.
둘째로 형식적 일치와 동적 일치를 같이 사용한 성경들 리스트에는 NASB와 NIV가 있습니다.
셋째로 의역 성경들 리스트에는 귯뉴스 바이블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완전 의역 성경들 즉 저자가 쓰고 싶은 대로 쓴 성경들(?)의 리스트에는 리빙 바이블과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Message)가 있습니다. 사실 메시지는 성경이 아니라 MSG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5
구체적으로 성경 사본학과 학식의 깊이에 대해 알기 원하면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83
구체적 증거 자료
다음은 웨이트 박사님의 책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그리스도예수안에 발행) 책에서 발췌했습니다(78-90쪽).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2
-------- 인용 시작 ---------
B. 번역 기법의 우수성
1.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문자적 일치’(Verbal equivalence) 곧 ‘형식적 일치’(Formal equivalence) 번역 기법을 채택하였다.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 기법이 우수한 까닭은 번역자들이 소위 ‘문자적 일치’ 혹은 ‘형식적 일치’라 불리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대 역본들의 이른바 ‘동적 일치’(Dynamic equivalence) 방법을 채택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가지고 ‘말씀의 그 순수한 젖을 사모하여 그것으로 자라가길’ 원하신다. 이것은 우리와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의 공통된 믿음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들이 필요하다. 나는 부록 A에 이 ‘하나님의 말씀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몇몇 구절들을 실었다. 한 번 유심히 읽어 보기 바란다. 성경을 번역할 때도 사람의 말들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들’(단어들)이 필요하다.
설교자나 교사가 도움을 줄지는 몰라도 우리가 첫째로 필요로 하는 것은 순수한 말씀의 젖이다. 우리는 그것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랄 것이다. 베드로는 “은혜 안에서 자라고 우리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서 자라라.”고 말한다(벧후3:18). 영적 성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할 때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들을 알고 붙들고 믿고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고 양식으로 삼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이로써 우리는 자라나고 성장하며 증언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다.
이제 킹제임스 역본을 제외한 다른 번역본들(NIV, NASB, NKJV 등)의 문제점 특히 번역상의 문제점을 살펴보겠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문자적 일치, 형식적 일치 번역 기법을 거부했다. 대신 그들은 번역에 있어 동적 일치 방법을 도용하였다. ‘동적’(Dynamic)이란 단어는 ‘변하다’ ‘움직이다’는 뜻을 내포한다.
현대 역본 번역자들은 일종의 관용적 표현을 사용하여 히브리어를 영어로 번역했다. 관용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들이 히브리어 혹은 그리스어의 단어들을 영어로 일대일로 대응하는 방식(의미가 잘 통하는 경우에도)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본래 있는 내용에 더하거나 본래 있는 내용을 바꾸거나 빼버리는 방식으로 말을 맞추었다. 그들은 이런 일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것은 다른 말로 ‘의역’(Paraphrase)이라고도 하는데 시중에 나와 있는 ‘리빙 바이블’은 의역에 관한 한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2.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동적 일치 번역 방식을 거부하였다.
나는 동적 일치 기법이 본질적으로 마귀에 속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채택한 문자적 일치, 형식적 일치 방법은 그리스어나 히브리어 단어를 가능한 한 그대로 살려 영어로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문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어에는 동사가 있고 형용사, 전치사, 분사 등이 있다. 히브리어 문장을 구조와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영어로 옮길 수 있다면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그렇게 했다. 가령 동사가 있으면 그것을 명사나 다른 품사로 바꾸지 않고 동사로 옮겼다.
영어에는 ‘변형 생성 문법’(Transformational Grammar)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모든 것이 바뀌는 문법을 말한다. 바로 여기에서 소위 동적 일치라 불리는 기법이 나왔다. 동적 일치가 적용되면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원래 단어의 모습을 잃게 된다.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 기법의 우수성은 역자들이 이런 동적 일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들(단어들)을 고스란히 가져오는 문자적 혹은 형식적 일치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a. 동적 일치는 마귀의 것이다.
동적 일치라는 주제를 살펴보자. 우리가 동적 일치를 마귀의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믿기로 그것의 근원이 사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매우 분명한 방법으로 말씀을 보여 주시고 믿게 하신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every word) 중요하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마4:4) 우리는 그 말씀들 즉 그 단어들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동적 일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믿지 않는다. 나는 다시 한 번 이 책 뒷부분에 있는 부록 A를 참고하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의 말씀들이 얼마나 중요한가 보여 주는 구절들을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b. 동적 일치의 연대기
사탄이 시작한 동적 일치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살펴보자. 동적 일치는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시작한 것이다. 창세기 3장 1절을 보면 사탄은 뱀을 통해 이브와 아담을 차례로 넘어뜨리려 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하면서 소위 동적 일치 방법을 사용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대충 의역해서 이브와 아담에게 제시한 것이다.
(b.1) 마귀의 삭제 법칙
동적 일치의 첫째 법칙은 삭제 법칙이다. 즉, 하나님을 말씀에서 빼는 것이다.
창세기 3장 1절 : 이제 뱀은 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들의 어떤 짐승보다 더 간교하더라. 그가 여자에게 이르되,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니
뱀을 통해 사탄은 이브에게 물었다. “그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 말을 있는 그대로 본다면 그것은 곧 “너희가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았느냐?”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의 다른 부분을 빼버렸다. 창세기 2장 16-1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
자, 여기까진 좋다. 사탄은 이 부분까지 인용했다. 그러나 이후 17절의 말씀이 이어진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16절과 17절을 다 말씀하셨다. 하지만 사탄은 3장 1절에서 말씀을 이런 식으로 인용했다. “자, 너희가 모든 나무에서 먹을 수 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냐?”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탄은 뭔가를 빼버렸다. 즉, 17절을 삭제하고 말한 것이다. 동적 일치가 마귀적인 것은 그것이 하나님을 말씀을 삭제하고 없애버리는 마귀의 방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록 B에 지난 1992년까지 612년 동안 존재했던 영어 성경전서들과 신약성경전서들의 목록을 실었다. 거기에는 영어 성경전서 135권과 영어 신약성경전서 293권이 올라와 있다. 합치면 총 428권이 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에게 더 이상의 영어 성경전서 혹은 영어 신약성경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428권이면 차고도 넘치지 않는가? 이 책에서 우리는 현재 근본주의자들과 복음주의자들이 주로 보는 역본들을 중심으로 내용을 진행하되 다른 역본들도 언급할 것이다.
우리는 우선 NASB, NIV, 그리고 NKJV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역본들은 모두 의역본들이다. 나는 여러 가지 실례를 통해 그 실체를 규명해 보이겠다. 우리에게는 NKJV와 원문(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을 컴퓨터로 비교 분석하여 출력한 자료가 있다. 거기에 보면 편집자들이 의역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고 빼고 변개한 곳만 2,000군데가 넘는다[B.F.T. #1442]. NASB도 똑같이 분석해 보았는데 이것에는 4,000군데가 넘었다.
NIV는 어떨까? NIV에는 이것들 중 가장 많은 6,653군데의 첨가, 삭제, 변개가 이루어졌다[B.F.T. #1749‐P]. 이 방법은 사탄 자신이 에덴동산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방법이다. 우리가 이것을 마귀의 것이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도 자신의 말씀을 함부로 바꾸길 원치 않으신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첨삭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하나님께서 그런 권한을 주신 일이 없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말씀하시면 우리는 그것을 정확히 따라야 하며 좌로나 우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
(b.2) 마귀의 변개 법칙
둘째 법칙은 변개 법칙 곧 하나님을 말씀을 바꾸는 것이다. 삭제도 바꾸는 것이긴 하지만 여기서 변개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삭제하지 않고 그분의 말씀들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창세기 3장 4절에는 이런 변개의 사례가 분명히 나타나 있다. 이 경우 변개는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의 것을 만들었다. 창세기 3장 4절을 읽어 보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창세기 2장 17절에서 하나님은 이같이 말씀하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변개된 내용이 보이는가?
본래 하나님의 말씀을 보자. 불순종의 형벌은 죽음 곧 육적 죽음과 영적 죽음이었다. 이 죽음은 불순종의 결과였다. 첫 사람을 죽인 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아니었다. 그것은 불순종이었다.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은 것이 바로 불순종이다. 그러나 창세기 3장 4절에서 마귀는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너희가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창2:17).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한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말씀하신 것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동적 일치이다. 동적 일치는 말씀을 뺄 뿐 아니라 말씀을 말씀이 아닌 것으로 바꾼다. 이것은 마귀의 것이다.
(b.3) 마귀의 첨가 법칙
마지막으로 우리가 동적 일치 방법을 마귀의 것이라고 하는 셋째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 5절에서 뱀은 이브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하니라.
자, 이것이 첨가의 예이다. 과연 하나님께서 그들이 눈이 열릴 것에 관한 말씀하신 적이 있는가? 창세기 2장 17절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하나님은 단지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을 뿐이다. 창세기 3장 2‐3절을 보자.여자가 뱀에게 이르되, 우리가 동산의 나무들의 열매는 먹어도 되나 동산의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에 관하여는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그것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염려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매 [자, 이젠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그것을 만지지도 말라.”는 말을 첨가했다.]
위에서 언급된 삭제, 변개, 첨가는 동적 일치 번역 기법의 핵심이다. 그것의 본질은 옮기는 것이 아니라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의역에 불과하다.
c. 동적 일치의 역사
동적 일치의 현대사는 니다(Eugene Nida)와 함께 시작되었다. 니다는 위클리프 성경 번역회, 미국 성서 공회, 연합 성서 공회에서 일했던 사람이며 동적 일치 방법을 전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시킨 장본인이다. 니다가 동적 일치라는 독약을 소개한 이후로 이 방법을 채택한 역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변개된 역본이 되었다. 그는 성경 변개의 전문가이다. 여기서 변개는 동적 일치를 말한다. 나라와 언어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거나 바꾸는 것은 근본적으로 마귀의 일이다.
심지어 성경을 믿는다는 근본주의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번역하지 않고 대신 이 동적 일치를 수용했다. 다음은 니다와 또 동적 일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책들이다.
(1) 1947년, 「성경 번역」(Bible Translation), 니다 저, 런던의 연합성서공회출간
(2) 1950년, 니다는 ‘번역 또는 의역’이라는 글을 ‘성경 역자’(The Bible Translator)지에 실음
(3) 1952년, 「성경 해석의 새로운 방법론」(A New Methodology in Biblical Exegesis),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출간
(4) 1955년, 「성경 번역 문제」(Problems in Translating the Scriptures),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출간
(5) 1959년, 「성경 번역의 예를 통해 본 번역의 원칙」(Principles of Translating As Exemplified by Bible Translating),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출간
(6) 1960년, 「메시지와 미션」(Message and Mission), 니다 저, Harper Brothers 출간
(7) 1961년, 「번역자들을 위한 새로운 도움」(New Help for Translators),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간. 이 책은 도움은커녕 훼방과 치욕을 가져오는 책이다.
(8) 1964년, 「번역을 위한 과학」(Toward a Science for Translating), 니다 저, 네덜란드에 있는 E. J. Brill사 출간
(9) 1966년, 「성경 번역자들의 수용 언어 본문 사용」(The Bible Translator's Use of Receptor Language Texts),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출간
(10) 1969년, 「번역의 이론과 실행」(Theory and Practice of Translation), 니다 저, 네덜란드에서 출간
(11) 1966년, 「현대인을 위한 복음」(Good News for Modern Man) 출판 (또는 「Today's English Version – 의역 성서 중 하나). 이것은 동적 일치 번역 기법을 적용한 대표적 변개 역본 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현대인을 위한 복음」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피’ - 그리스어로는 ‘haima’ - 를 전체 103번 중 36번 빼버렸는데 그중 16번은 그리스도의 피를 가리킨다. 그들은 동적 일치를 통해 그리스도의 ‘피’를 빼고 대신 ‘죽음’ 혹은 ‘희생’ 등의 단어를 넣었다. 그러나 그리스어 ‘haima’는 분명히 ‘피를 뜻한다. 다른 해석의 여지는 없다. 베드로전서 1장 18-19절을 보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너희의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구속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썩을 것들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Today's English Version」은 이것을 그저 ‘값비싼 희생’(Costly sacrifice)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피’를 빼고 ‘희생’이란 단어를 넣었다. 오늘날 유명한 모 성경 해설가[존 맥아더]도 같은 것을 주장한다. 즉, 피는 단지 죽음을 뜻하는 것이므로 그렇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피가 본질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 말은 곧 우리가 구원 받고 깨끗하게 된 것이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피와 존 맥아더의 이단 교리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정보는 B.F.T Brochure #5에 나와 있으며 현재 여기의 리스트에는 150개가 넘는 책자들이 있다.]
(12) 1975년, 나이로비에 있는 WCC(세계 교회 협의회) 역시 동적 일치 방법을 채택했다. WCC는 배도한 단체로 공산주의자들과 현대주의자들과 이단들이 득실대는 곳이다. 지금도 그들은 아프리카와 다른 지역에서 살인, 약탈, 고문을 자행하는 테러리스트들을 돕고 있다. 이런 WCC가 동적 일치를 번역의 방법으로 받아들였다. 이로써 WCC는 사탄의 계보를 이었다. 또한 니다와 연합성서공회 그리고 미국성서공회의 계보를 이었다.
(13) 1978년, 신국제역(NIV)이 출시되었는데 이것 역시 동일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들이 자랑스럽게 내놓은 이 역본은 마귀의 동적 일치 방법이 낳은 또 하나의 산물이었다.
(14) 1983년, 세계 복음주의 침례교 연합[ABWE]이 「말씀으로」(By the Word)를 출판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선교사들 중 몇몇은 이 위원회 소속일 것이다. 출간 당시 ABWE 본부는 뉴저지 주, 체리힐 근처에 위치해 우리와 가까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일 년 내에 펜실베이니아로 옮겨갈 예정이라고 한다. 「말씀으로」는 실버네일(Lynn Silvernale)이 쓴 책이며 다른 말로 「성경 번역의 우선순위와 방법」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녀는 니다를 수없이 언급했다. 그런데 니다는 성경의 무오성을 믿지 않는 배도자이다. 그녀는 이러한 글을 남겼다.
나는 번역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 읽기 시작했다. 거기서 나는 번역 양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마다 나름대로의 분류 방법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비크맨(John Beekman)의 분류가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는 번역 특히 성경 번역에 있어 두 가지 기본적인 접근 방법을 제시했다. 하나는 문자적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관용적 접근이었다. 이것은 다시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양식으로 세분된다: 엄격한 문자적 번역, 한정적 문자적 번역, 관용적 번역, 그리고 자유 번역. [실버네일의 책, 13쪽]
실버네일의 문제는 번역 기법론에 관한 책들을 잘못 선택한 데 있다. 비크맨과 캘로우(John Callow)는 「하나님의 말씀 번역」(Translating the Word of God)이란 책을 쓴 사람들이다. 이들은 전 세계에 동적 일치 번역 기법을 알리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오늘날 근본주의 진영의 성경을 믿는 선교 단체들은 자신들의 선교 지역에 보급할 성경을 번역할 때 이 마귀적인 동적 일치 방법을 사용한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실버네일과 ABWE는 공히 관용적 번역 기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하는 동적 일치 방법을 선호하며 사용한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어떤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실버네일은 이 일을 33쪽에 언급해 놓았다.
번역 일을 시작한 지 [그녀는 방글라데시에 있으면서 벵골 성경을 번역했다] 몇 해가 지날 무렵이었다. 당시 우리 안에는 상당한 거리낌이 있었다. 성경의 여러 부분을 조정하면서도 [그녀가 말하고 있는 ‘조정’은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을 빼고 더하고 바꾸는 일을 말한다.] 마음 한 편으로는 끊임없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본문을 너무 자유롭게 번역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들이 벌이고 있는 일로 인해 양심이 움직인 것이다.] 내 동료는 특별히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의 경고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실버네일의 책, 33‐34쪽]
성경에는 동적 일치 접근법에 대한 저주가 직접적으로 나와 있다. 이어서 실버네일은 말했다.
그때 우리는 벵골 성경의 충실한 번역을 위해서는 그것에 맞는 조정 [즉, 첨가, 삭제, 변경] 양식을 선택한 뒤 일관성 있게 적용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괄호의 말은 저자의 것임] [실버네일의 책, 34쪽]
이처럼 늘 내용을 조정하는데 어찌 충실한 번역이 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빼고 하나님을 말씀을 변경한다면 충실한 번역이 나올 수 없다.
결국 우리는 그러한 조정 양식들을 담은 31개의 원칙을 목록으로 만들었다. 이 원칙들은 우리 지역 협회 전체의 인가를 받았고 이로써 공중 앞에 널리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실버네일의 책]
그래서 그들은 방글라데시 현장의 모든 ABWE 선교사들로부터 이 모든 조정 사항들을 인정받았고 이로써 그들은 자기들의 양심의 고소에서 벗어났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자기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번역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자, 수십억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고 빼고 바꿀 것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여전히 죄(罪)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다루지 않는다. 이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그녀는 죄(罪)에 대한 동의를 구하려고 그토록 애썼던 것이다.
d. 동적 일치의 역사 요약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시작했고 니다(Eugene Nida)가 계승했던 이 동적 일치 ‘바이러스’는 급기야 1983년 급물살을 타게 된다. 배도한 WCC 내에서 얼마간 활동하던 이 바이러스가 소위 [거룩함의] 분리를 외치는 근본주의 진영에도 침투한 것이다. 불과 몇 달 전 우리는 ‘Bible International’에서 나온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그들이 동적 일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Bible International’은 오하이오 주 소재 근본주의 선교 기관 중 하나인 침례교 중간 선교회(Baptist Mid-Missions)의 지부이다. 나는 여러 해 동안 그곳의 전직 회장 중 한 사람을 알고 있었다. 사실 그는 오하이오 주 베레아에서 있었던 나의 목사 임직식 때 심의위원회의 일원이었다.
우리는 BIBLE FOR TODAY의 뉴스 보고서에서 ‘Bible International’에서 사용하는 동적 일치의 문제를 담은 두 편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변개에 대한 여러 통의 질의서가 이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침례교 중간 선교회는 내게 이 두 가지 보고서를 주문해 왔다. 나는 내 뉴스 보고서에 그것들을 올려놓고 사람들이 읽어 보도록 했다. 결국 침례교 중간 선교회가 사람을 보내어 이것을 수령해 갔다. 나는 부디 그들이 내용을 읽고 동적 일치로 인해 생긴 잘못들을 수정하기를 바란다. 현재 기독교 진영은 동적 일치가 만연한 상태이다. 이미 그것은 두 곳의 침례교 근본주의 선교회에 침투해 들어갔다.
동적 일치는 더 이상 배도한 진영(신복음주의, 현대주의 등)의 전유물이 아니다. 근본주의, 분리주의 진영도 예외가 아니며 오히려 이곳에서 더 위험하고 마귀적이며 치명적이다. 다를 것이 없다. 진실은 진실이고 오류는 오류다. 마땅히 더 잘 알고 있어야 할 사람들이 마귀의 방법으로 소위 ‘번역’이라는 일을 하고 있으니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뿐이다.
(d.1) 동적 일치대로 한다면 어떤 본문을 쓰든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동적 일치와 본문의 관계를 알아보자. 앞서 밝혔듯이 킹제임스 성경은 가장 정확하고 바른 구약성경 히브리어 본문과 신약성경 그리스어 본문을 사용한다. 가장 좋은 본문이라도 원문의 단어나 형식이 고스란히 영어로 옮겨질 때 의미가 있다. 즉 문자적 일치, 형식적 일치의 형태로 번역될 때 좋은 본문이 살아나는 것이다.
하지만 동적 일치 방법을 사용해서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 일단 동적 일치에서는 본문상의 단어나 본문 간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언제든지 원할 때 바꿀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입맛에 맞게 더할 수도 있고 뺄 수도 있으며 바꿀 수도 있다. 그러할진대 본문의 종류가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본문이 정확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번역자가 누구면 어떠하겠으며 그의 자질을 따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들을 더하고 빼고 바꾸는 데 무슨 학위나 교육이 필요하겠는가? 사탄이 그렇게 했으니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동적 일치 방법으로 번역하는데 누가 올바른 본문에 신경 쓰겠으며 올바른 번역자를 구하겠는가? 그저 마음대로 바꾸는 일만 남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현대 역본들의 현실이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현실이다. 그들에게는 마소라 본문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다고 시리아 역본이나 ‘70인역’, 라틴 벌게이트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가정과 추측만 있으면 된다. 본문은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입맛에 맞는 대로 사용하면 된다. 자, 보시다시피 동적 일치 문제는 우리가 앞서 논의했던 본문 문제보다 더 심각하다. 우리가 킹제임스 성경을 표준으로 삼는 이유는 킹제임스 성경이 우수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그것이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본문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일은 역자들이 동적 일치 방법을 거부했기에 가능했다.
(d.2) 여러 역본에 대한 4년간의 검증
나는 근본주의 진영에서 사용되는 여러 역본들을 4년 이상 검토하고 비교해 보았다. 연구의 목적은 이 역본들이 킹제임스 성경 및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과 얼마나 다른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d.2-1) 1611년 KJB 분석
첫 해는 1611년에 출간된 킹제임스 성경 - 넬슨 출판사가 재출간한 초판 킹제임스 성경 - 을 가지고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킹제임스 역본과 비교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 25쪽 분량의 보고서가 완성되었다[B.F.T. #1294]. 이 보고서에는 초판과 현재 판 사이에는 종종 철자나 구두법의 차이가 있지만 바뀐 곳은 오직 421군데뿐이며 그것도 모두 소리(귀로 듣는 차이)와 관련된 차이뿐임이 명시되어 있다. 바뀐 곳은 모두가 사소한 내용들이다. 원한다면 이 내용을 요약한 소책자를 구할 수 있다[B.F.T. #1495].
(d.2-2) NKJV 분석
다음은 NKJV와 KJV를 카세트로 들으며 비교해 보았다. 테이프에 녹음된 성경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상당히 유용한 자료이다[B.F.T. #777/1‐43]. 일단 차이점이 발견되면 해당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본문을 찾아보고 어느 번역이 더 본문에 가까운지 확인해 보았다. 물론 킹제임스 성경이 원문에 가장 충실했다. 그래서 나는 전보다 더 킹제임스 성경을 신뢰하게 되었다. 이 연구에 대한 보고서는 95페이지(큰 페이지)의 컴퓨터 출력물로 남아 있다[B.F.T. #1442]. 이 보고서에는 2,000군데가 넘는 동적 일치의 사례들(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이루어진 첨가, 삭제, 변경)이 올라와 있다. 이 보고서의 요약판 역시 소책자 형태로 나와 있다[B.F.T. #1465]. 또한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의 변개에 관한 설명을 곁들인 카세트 녹음본(2시간짜리 9개)도 있다[B.F.T. #1367/1‐9].
(d.2-3) NASB 분석
이듬해 나는 NASB를 킹제임스 성경과 비교한 다음 KJB의 근간인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과도 비교해 보았다. NASB도 앞서 NKJV에 대해 한 것처럼 그렇게 진행했다. 이번에도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에 가장 충실한 번역은 킹제임스 성경이었다. 차이가 나는 부분을 확인한 결과 본문과 동떨어진 쪽은 NASB였다. 연구 결과는 187쪽짜리 컴퓨터 출력물로 남아 있다[B.F.T. #1494‐P]. 이 보고서에는 4,000군데가 넘는 동적 일치의 사례들(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이루어진 첨가, 삭제, 변경)이 명시되어 있다. 이것의 요약판 역시 소책자로 구할 수 있으며[B.F.T. #1518]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의 변개에 관한 설명을 곁들인 카세트 녹음본(2시간짜리 11개)도 있다[B.F.T. #1494/1‐11].
(d.2-4) NIV 분석
이후 2년 8개월 동안 같은 식으로 NIV를 분석했다. 킹제임스 성경과 비교 후 차이점을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과 대조해 보았다. 이 보고서 역시 컴퓨터 출력물로 남아 있다[B.F.T. #1749‐P]. NIV는 온통 의역과 동적 일치 방법으로 가득했고 그 분량은 일일이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 찾아보자면 몇 년은 더 걸렸을 것이다. 보고서에는 6,653군데가 넘는 동적 일치의 사례들(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이루어진 첨가, 삭제, 변경)이 소개되어 있다. 차이점을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과 비교했을 때에도 역시 킹제임스 성경이 항상 정확했다.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의 변개에 관한 설명을 곁들인 카세트 녹음본(2시간짜리 16개)이 있는데 여기에는 4,600개의 사례가 수록되어 있다[B.F.T. #1749/1‐16]. 이것의 제목은 ‘NIV의 결함들’이다[B.F.T. #2054].
(d.3) 일반 사람들은 새 역본들의 위험성을 실감하지 못한다.
성경 역본들을 원문과 직접 비교해 보지 못한 일반 사람들은 어느 역본이 바른지 알지 못한다. 그저 차이가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NIV가 말하는 게 다르고, KJV가 말하는 게 다르다. 히브리어도 모르고 그리스어도 모르는데(대부분 그렇다) 아는 언어 즉 영어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킹제임스 성경을 표준으로 삼으라. 그리스어, 히브리어 원문이 이 역본에 고스란히 번역되어 있다.
킹제임스 성경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사전을 찾아보라. 아니면 영국의 ‘트리니테리언 성경공회’가 간행한 소책자를 참고해도 좋다[B.F.T. #1060]. 이 소책자에는 일반 사람들에게 생소한 618개의 단어가 간략한 의미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물론 좋은 사전 한 권을 가지고도 이 단어들의 뜻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가령 ‘Habergon’은 방패 혹은 쇠사슬 갑옷을 뜻하며 ‘Ouches’는 주머니 또는 행낭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그런 영어 단어들이 정확한 히브리어, 그리스어 번역이라는 점이다.
초반부에 언급한 대로 우리는 1611년 이후로 의미가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는 단어들의 정의를 담은 킹제임스 성경을 준비해 왔다. 그리고 BIBLE FOR TODAY는 이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제목은 「The Defined King James Bible」이다. 이것은 12포인트의 큰 활자로 인쇄되었다. 싱가포르의 토우(S. H. Tow) 박사는 이 성경 4,000권을 구입해서 세계 여러 곳에 배포했다. 원하는 사람은 전화로 주문 가능하다.
(d.4) 앞으로 연합성서공회는 오로지 동적 일치 기반의 의역 성경만을 출간할 것이다.
연합성서공회(United Bibel Society, UBS)는 더 이상 성경전서(창세기‐계시록)를 출간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의역본 및 관용 번역본만을 출간할 것이며 그것도 성경전서가 아닌 쪽 성경만을 내놓을 것이다. 1962년 연합성서공회는 성경 선집(쪽 성경) 또는 소책자 3.5권당 성경 한 권을 출판했고, 1969년에는 18.5권당 성경 한 권을, 1974년에는 쪽 성경 33권당 한 권의 성경전서를 출간했다. 선집이나 쪽 성경에 비해 성경전서 발행 횟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성경전서를 출판하는 경우는 성경 출판 자금이 어디서 들어왔을 때뿐이다.
성경공회는 늘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 그나마 있는 자금은 성경 선집을 출판할 때나 쓰인다. 이 내용은 BIBLE FOR TODAY에서 출간된 「성경의 미래」(The Future of the Bible)’에서 확인할 수 있다[B.F.T. #1246]. 성경의 미래는 어떤가? 연합성서공회가 연루되어 있는 한 성경의 미래는 없다. 이것이 우리가 킹제임스 성경을 더 붙들어야 하는 이유이며 킹제임스 성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이유이다.
(d.5) ‘동적 일치’에 대한 간략한 정의
동적 일치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자. 동적 일치의 개념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이 ‘동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1b. Of or pertaining to dynamics; active; opposed to static; Pertaining to change or process(1b. 역학적인; 동적인; 정적의 반대; 변화하는) [웹스터 사전, Webster’s New Collegiate Dictionary, 1949년, 257쪽]
다시 말해 ‘동적’이란 말은 ‘움직이는’을 뜻한다. 동적 일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길 원하는 사람들이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도 이와 같은 이론에 바탕을 둔다. 즉, 운동(movement), 변화(change), 역동(dynamics)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바꾸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기 원치 않는다. 있는 그대로 간직하기 원한다. 나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Thus saith the Lord)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말씀을 주셨고 우리는 그것을 믿고 거기에 붙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변화를 가하거나 다른 것으로 바꿔서는 안 된다. 나는 부록 A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이 그 어떤 인간의 사상이나 관념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성경 구절을 제시하였다.
‘동적’(dynamic)이라는 단어에서 ‘역학’(dynamics)이라는 용어가 나왔다. ‘역학’의 정의를 웹스터 사전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That branch of mechanics treating of MOTION of bodies(kinematics) and the action of forces in producing or CHANGING their motion(kinetics). 2. The MOVING MORAL, as well as physical, forces, or any kind, of the laws relating to them
1. 물체의 움직임이나 그 움직임을 일어나게 하거나 바꾸게 하는 힘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 2. 움직이는 어떤 것 ‐ 물리적인 힘, 윤리, 법
모든 동적인 과정은 변하는 과정이고 진화하는 과정이며 사탄이 에덴동산에서 만들어 낸 과정이다. 힘이든 물이든 무엇이든 그것은 움직이는 것이다 – 강물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하염없는 은혜, 흐르는 강물같이 넘치네!”라고 찬송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흐른다’, ‘움직인다’, ‘유동적이다’라는 식의 개념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고정된 어떤 것이어야 하며 이로써 우리는 그 위에 확고히 설 수 있다. 우리 하나님은 ‘바위’(a Rock) 곧 거대한 바위산과 같으시다. 산은 움직이지도 흔들리지도 요동하지도 않는다. 우리 주님은 우리 삶의 기초가 되신다.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전3:11).
이제 관련 단어인 ‘일치’ 혹은 ‘동등함’(equivalence)에 대해 웹스터 사전을 살펴보자
State of being equivalent, equality of worth, meaning, or force: 가치나 의미나 힘에 있어 같은 혹은 동등한 상태
여기서 ‘equivalent’(같은, 동등한, 일치하는)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obs. Equal in force or authority. 2. Alike in significance. 3. Equal in value, esp. for exchange. 4. Virtually or in effect identical; tantamount; as, his remark was equivalent to an insult
1. 사어(死語). 힘이나 권위에 있어 같은 2. 의미나 비중이 같은 3. 가치 특히 교환 가치가 같은 4. 내용상으로 혹은 결과적으로 같은
어떤 면에서 ‘equivalent’는 좋은 용어이다. 하지만 위의 정의 중 ‘내용상으로 혹은 결과적으로 같은’이란 부분은 어떤 범위를 한정짓기 어려운 의미이다. 이런 의미라면 나는 ‘동등’(equivalent)이란 개념을 선호할 수 없다. 나는 실제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원한다. 왜 동등한 것 혹은 일치하는 것이 필요한가? 독자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서 이제는 영어로 된 하나님의 말씀을 원하지 않는가? 나도 그렇다. 나는 단지 어떤 동등한 것, 일치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진짜를 원한다. 킹제임스 성경이 우리에게 바로 그 진짜를 보여 준다. 그것은 바른 본문, 우수한 번역자, 우수한 팀 작업, 우수한 번역 기법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렇게 단어들의 정의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idiom’(숙어, 관용어법) 혹은 ‘idiomatic’(관용적인, 관용어법을 사용한)이란 용어이다. 이 용어들은 번역이나 역본에 대해 말할 때 동적 일치와 유사한 의미의 단어로 쓰인다.
‘관용적인 번역’(idiomatic translation)에서 ‘관용어’(idiom)란 이런 뜻을 지닌다(웹스터 사전).
1. The language peculiar to a people(a tongue)’, or to a district, community, or class(a dialect). 2. The Structural form peculiar to any language. 3. An expression in the usage of a language, that is peculiar to itself either in grammatical construction or in having a meaning which cannot be derived as a whole from the conjoined meanings of its elements(as, the more the merrier)
1. 특정 민족 혹은 지역이나 단체 및 계급 고유의 언어 2. 특정 언어 고유의 구조 3. 일반적인 문법 구성이나 각 단어의 단순한 결합에서 나올 수 없는 뜻을 가진 독특한 언어 표현, 가령 다다익선 같은 표현]
여기서 우리의 초점은 바로 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 그리스어에 있는 고유한 표현 곧 관용어이다. 원어를 알고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말씀의 정확도에 훼손을 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이 ‘관용어들’은 결코 번역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킹제임스 성경은 이런 관용적이고 동적인 일치가 아닌 ‘문자적, 형식적 일치’를 기반으로 번역되어 우리 손에 있다. 그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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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론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위에서 보셨듯이 킹제임스 성경은 형식적 일치(Formal equivalence)를 이룬 성경입니다. 이것을 미국 사람들은 ‘단어 대 단어 번역’(Word for word translation)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더 풀어 쓰자면 킹제임스 영어 성경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본과 주어, 목적어, 단수, 복수, 수동태, 능동태, 시제, 심지어 문장의 도치 등이 같습니다. 이것은 성경 사본 학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다음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성경 변증 학자 중의 한 사람인 로데스 박사님(Dr. Ron Rhodes)의 글입니다.
http://www1.cbn.com/churchandministry/the-story-behind-the-king-james-version
여기서 그분은 글의 첫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611년에 처음 발간된 킹제임스 역본은 단어 대 단어(형식적 일치) 번역본이다.
The King James Version (KJV) is a word-for-word (formal equivalence) translation that was first published in A.D. 1611.
여기서 이분이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 번역을 '형식적 일치'라고 한 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로데스 박사님은 공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지 않는 분입니다. 다만 공인으로서 정직하게 사실을 기술하였습니다.
로데스 박사님이 얼마나 유명한가 알아보려면 아마존에서 그분의 이름(Ron Rhodes)을 쳐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분이 지은 수십 권의 베스트셀러 책들이 나올 것입니다.
http://www.amazon.com/Ron-Rhodes/e/B001HCZ24O/ref=sr_ntt_srch_lnk_1?qid=1459489113&sr=8-1
이래도 믿지 못하는 독자들이 있기에 위키 백과를 소개합니다. 위키 백과에는 아예 Dynamic_and_formal_equivalence 항목이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Dynamic_and_formal_equivalence
여기로 들어가면
1)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들
2) 형식적 일치와 동적 일치를 같이 사용한 성경들
3) 동적 일치로 의역된 성경들
4) 완전 의역 성경들의 리스트가 나옵니다.
먼저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들 리스트에는 킹제임스 성경이 있습니다. 둘째로 형식적 일치와 동적 일치를 같이 사용한 성경들 리스트에는 NASB와 NIV가 있습니다. 셋째로 의역 성경들 리스트에는 귯뉴스 바이블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완전 의역 성경들 즉 저자가 쓰고 싶은 대로 쓴 성경들(?)의 리스트에는 리빙 바이블과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Message)가 있습니다. 사실 메시지는 성경이 아니라 MSG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5
형식적 일치의 중요성을 보려면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24
구체적으로 성경 사본학과 학식의 깊이에 대해 알기 원하면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83
존귀하신 창조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의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위로자 성령님의 큰 평안이 임할 줄로 확신합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Heaven and earth shall pass away, but my words shall not pass away.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as] silver tried in a furnace of earth, purified seven times. Thou shalt keep them, O LORD, thou shalt preserve them from this generation for ever.
2016-04-01 15:07:09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킹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된 그리스어 공인본문(Textus Receptus, TR)과 개역성경, NIV 등의 근간인 천주교 소수 본문(수정 본문 혹은 비평 본문)의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고 싶다고 해서 글을 씁니다.
아마도 이분은 흠정역 성경 부록이나 팸플릿에 들어 있는 표 데이터를 보고 ‘정말 이 정도일까’ 하고 의아히 여겨 질문하신 것 같습니다.
먼저 데이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다음은 웨이트 박사님의 책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그리스도예수안에 발행) 책에서 발췌했습니다(37-40쪽).
-------- 인용 시작 ---------
7.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수용 본문(TR)의 5,600군데 이상을 바꾸었다.
나(웨이트 박사)는 그리스어 신약성경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1984년 8월 2일까지 앞서 말했던 스크리브너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가지고 내가 직접 세어 본 결과 수용 본문과 웨스트코트/호르트의 비평 본문 사이에 5,604군데의 차이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5,604개의 변화 중 1,952개는 빠진 것(35%)이고 467개는 더해진 것(8%)이며 3,185개는 바뀐 것(57%)이었다. 여기에는 이렇게 변개와 관련된 5,604군데 말고도 4,366개의 단어가 더 포함되어 있어 총 9,970개의 그리스어 단어가 이 과정에 연루되어 있다. 이 숫자를 647쪽의 스크리브너의 그리스어 본문을 기준으로 나누어 본다면 페이지 당 평균 15.4개의 단어가 수용 본문에서 변경된 셈이다.
무어맨(Dr. Jack Moorman) 박사는 수용 본문의 단어들을 세어서 총 140,521개라고 보고했는데 이것을 기준으로 보면 이런 변화들은 전체 단어의 7%이며 이것들을 모두 모아 놓으면 그리스어 신약성경 45.9쪽을 만들 수 있다. 나는 이것을 표로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표의 제목을 두 그리스어 신약성경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터’로 했다.
[신약 성경 그리스어 본문 전쟁터: <그리스어 「공인본문」과 「수정본문」 비교> ]
-------- 인용 끝 ---------
위의 작업은 1800년대 말에 만들어진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비평 본문을 비교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질문하신 분에게 답하기 위해 킹제임스 성경과 일치하는 스크리브너의 공인본문과 소수 본문의 대표인 네슬레-알란드(Nestle-Aland, 독일 식으로 네스틀레-알란트, 한국에서는 네슬 알란트 혹은 네슬 알랑으로 부름)의 26, 27판을 비교한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몇 년 전에 28판이 나왔으나 내용은 대동소이함). 네슬레-알란드 판은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비평 본문의 뒤를 이어 1898년부터 110년 이상 판을 무려 28번이나 바꾸며 나온 소수 본문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판이 나올 겁니다. 이들은 이렇게 인간의 학식과 능력과 노력으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복원 혹은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글을 보시면 국내에도 사정이 동일함을 알 수 있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6
이 두 본문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22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8
영국 런던에서 사역하시는 무어맨 박사님은 수용 본문(TR)과 네슬레-알란드 본문의 모든 단어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비교하고 다 세어 보았습니다. 그 결과 네슬레-알란드 본문의 단어가 수용 본문보다 무려 2,886개나 부족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은 웨스트코트‐호르트 본문이 삭제한 단어보다 934개가 더 많음을 뜻합니다. 삭제된 2,886개의 그리스어 단어들을 영어 단어로 환산하면 베드로전후서와 맞먹는 분량이 됩니다.
무어맨 박사님의 이 연구는 최종적으로 2002년에 <8,000개의 차이>(8,000 Differences)라는 제목의 책(524쪽)으로 출판되었습니다.
http://www.amazon.com/Differences-Between-Greek-Modern-Versions/dp/1568480547/ref=sr_1_1?s=books&ie=UTF8&qid=1459413487&sr=1-1&keywords=8000+differences
무어맨 박사님의 치열한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보여 드리기 위해 마태복음이 시작되는 1쪽과 계시록 마지막 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사본학을 거론하며 무언가 중대한 사실을 주장하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객관적인 데이터는 제시해야 합니다. 혹은 기존에 발표된 이런 위대한 학자의 자료보다 더 많거나 신빙성 있는 데이터를 들고나와야 무언가 다른 주장을 해 볼 자격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저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들 몇 개를 수집하여 사이트에 올리거나 책을 내는 일로는 역사의 진실을 가릴 수 없습니다.
성경 사본 학자들은 자신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는 보통 사람들에게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 진리를 알려 주기 위해 무어맨 박사님은 수많은 시간을 들여 두 본문을 비교하고 분석하는 엄청난 수고를 마다치 않았으며 이 모든 것을 정리하여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무어맨 박사님은 성경 사본학과 직접 관련된 수십 권의 책을 쓴 저명한 학자입니다. 아마존에서 Jack Moorman을 검색하면 모두 볼 수 있습니다.
http://www.amazon.com/s/ref=nb_sb_noss_2?url=search-alias%3Daps&field-keywords=jack+moorman
저희가 출간한 <박사성경>은 이 8,000개 차이의 많은 부분을 킹제임스 흠정역 신약 성경 본문에 표기하였습니다. 이것 역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1
잠언 30장 5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순수하며(Every word of God [is] pure:)
우리 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4:4).
But he answered and said, It is written, Man shall not live by bread alone, but by every word that proceedeth out of the mouth of God.
여기의 ‘말씀’(word)은 말 그대로 ‘단어’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순수한 모든 단어가 없다면 성경의 말씀들은 다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맙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글쎄요, 이러나저러나 결국 마찬가지 아닌가요? 뭐 교리가 바뀐 것도 아닌데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단어들이 바뀌면 교리가 바뀝니다. 이에 대해서는 간단히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맨 밑에 있는 PDF 자료를 내려받아 보기 바람).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79
자, 여기 공인 본문(TR)을 가지고 만든 영어 성경이 있고 네슬레-알란드 26-28판을 가지고 만든 성경이 있습니다. 두 성경이 같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수학에는 이런 정리가 있습니다.
"어떤 한 개와 비교해서 같은 것들은 서로 같다."
따라서 서로 다른 본문에서 나온 두 개의 역본은 서로 같을 수 없습니다.
네슬레-알란드 본문을 아무리 잘 번역한다 하더라도 – 그것이 무슨 성경이든 – 그것과 무려 5,600군데 이상 (그리스어 단어로는 무려 10,000개 이상) - 차이가 나는 공인 본문에서 나온 킹제임스 성경이 과연 같을 수 있을까요? 웨이트 박사님의 말대로 NIV나 NASB는 정상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의 기초가 되는 그리스어 본문이 진리를 떠나 모든 면에서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것들은 기초가 잘못되었습니다(웨이트의 같은 책에서).
참고로 ‘Bible For Today’의 웨이트 박사님은 명문 미시간 대학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공부하였고 댈러스 신학교에서 신약 그리스 문학으로 석사를, 성경 강해학으로 신학 박사를, 명문인 퍼듀 대학에서 스피치로 철학박사(Ph.D.)를 받았으며, 수십 년간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가르치신 분입니다. 이 정도의 학력이면 원어에 얼마나 능통할지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교단을 초월해 한국의 신학자들도 종종 논문과 기고문 등에서 이분의 의견을 인용할 정도로 저명한 분입니다. 현재 85세가 넘는 고령이지만 지금도 독립침례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http://biblefortoday.org/
이분은 원어 학자이므로 늘 원어를 언급하지만 영어로는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이 신뢰할 수 있는 성경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저서 <Defending the King James Bible>은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을 보여 줍니다. http://www.amazon.com/Defending-King-James-Bible-Waite/dp/1568480121
이 책은 우리 출판사에서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누구나 PDF 파일을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2 저는 웨이트 박사님과 그분의 교회에서 독립침례교회 목사로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안수 받을 때 믿음을 고백한 대로 신실하게 킹제임스 성경만이 바른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가르치는 일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위의 책 부록에 실린 웨이트 박사님의 간증입니다(198-200쪽). 하나님 앞에서 바른 양심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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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번역’과 관련된 이런 종류의 사역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때가 언제인가?
답변: 먼저 말해 둘 것은 번역 관련 사역이 내 사역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내 사역의 일부이다. 우리, 즉 BIBLE FOR TODAY는 본문 논쟁, 킹제임스 성경의 우수성, 성경 보존 및 영감 등의 주제와 관련하여 900개 이상의 책자와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매년 추가로 많은 타이틀이 더해지고 있음). 이것은 총 2,300개의 자료 중 약 4분의 1에 해당한다. 이 주제에 대한 우리의 자세와 신념은 확고하다. 나는 1971년 6월 「킹제임스 성경 옹호」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해당 주제에 대한 내 연구의 첫째 산물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일을 시작한 지도 어언 35년이 되었다.
누군가 이 사역을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필요해서!”라고 대답하고 싶다. 영어로 쓰인 가장 위대한 성경인 킹제임스 성경을 변호하는 일에 나서고 있는 사람이 극히 적은 현실에서 그냥 이대로 앉아 전투에 패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간 수많은 잘못이 저질러졌다.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기 전까지 나는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본문으로 교육받았고 다른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BIBLE FOR TODAY라 명명된 사역을 시작한 것은 1965년의 일이다.
나의 배경과 BIBLE FOR TODAY의 배경을 다룬 소책자가 있다[B.F.T. #168]. 내가 매사추세츠 주, 뉴튼의 믿음침례교회에서 목사로 섬기고 있을 때 우리는 하나의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때 라디오 방송 하나를 하고 있었는데 그 이름이 BIBLE FOR TODAY였다. 이 사역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을 가지고(1965년, 성경은 물론 킹제임스 성경이다) 오늘날의 여러 이슈 – 낙태, 학교에 있는 여러 성경들, 공산주의, 구원 등 – 를 풀어가는 것이었다. BFT의 상징을 보면 왼쪽에는 어둠, 오른쪽에는 빛을 바탕으로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방패(믿음의 방패), 방패 위에 검(성령님의 검)이 놓여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빛과 어둠을 나누고 있다. 이것이 초기 사역의 모습이었다. 참고로 BIBLE FOR TODAY News Report는 1971년에 시작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1960년 NASB가 나왔을 때 의문은 이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 성경일까?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성경일까?” 그래서 우리는 NASB를 검토하고 연구했다. 그리고 NASB는 ‘오늘날 우리를 위한 성경’ 즉 ‘The Bible for today’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9년 뒤, 1969년에 NIV라는 또 다른 역본이 탄생했다. 이때도 질문은 동일했다. “이 성경이 ‘오늘날 우리를 위한 성경인가?” 물론 그즈음에 다른 여러 역본들 – 현대인을 위한 복음, ‘리빙 바이블’ 등 ‐ 이 쏟아져 나왔다. 부록 B에 이런 성경 출판의 역사가 자세히 나와 있다. 그러다가 1979년에 NKJV라는 이름을 가진 또 하나의 성경이 나왔다. 과연 이것이 ‘오늘날 우리를 위한 성경’일까? 이처럼 ‘성경’(Bibles)의 홍수 속에 살면서 증거와 사실을 확인하고 규명하는 일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이 일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성경이 오늘날 우리를 위한 성경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우리가 먼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성경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는 것이 왜 중요한가?”이다. 대답은 이렇다. 오늘날 교회에 발생하는 여러 교리적인 문제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성경학, 즉 성경과 교리의 연구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성경에 대한 믿음도 좋고 성경의 계시나 권위, 영감, 무오성에 대한 토론도 좋다. 하지만 가장 먼저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그 성경이 어디 있는가?”이다. 그 성경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당신이 말한 것이 죄인의 마음을 파고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발견하게 되리라는 확신을 할 수 있겠는가? 현재 자기 손에 있는 성경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이것 혹은 저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들이라 확신할 수 있겠는가?
내가 확신하건대, 20, 21세기 마귀의 가장 강력한 공격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들에 대한 공격이다. 이 공격은 에덴동산에서 마귀가 “그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냐?”라고 물으며 시작되었다. 이것은 마태복음 4장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탄의 시험으로 이어졌다. 이때 사탄은 성경 기록을 거짓으로 인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했으나 주님은 성경 기록으로 즉 “기록된바…”, “기록된바…”로 이것을 물리치셨다. 이것은 사탄의 공격 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성경 전쟁이 낳은 하나의 부작용일지 몰라도 오늘날 일부 크리스천들과 젊은이들, 믿지 않는 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그 성경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따라서 그 어떤 것도 믿을 필요가 없다. 내 주위에 있는 수많은 성경 중 내가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없다면 나는 그 어떤 것도 믿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들에 대한 확신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확신을 주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현재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우리가 내걸고 있는 슬로건은 이것이다.
우리는 성경에 대한 확신 곧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확신을 심고 있다.
이것은 킹제임스 성경이 바로 오늘날 우리를 위한 성경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킹제임스 성경을 쓰레기통에 내던져서는 안 된다. 킹제임스 성경은 잘못되지도, 시대에 뒤떨어지지도 않았다. 킹제임스 성경 같은 역본은 이제껏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일단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당시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사용했던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본문들은 현재 우리 손에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본문들이 전 세계 어떤 번역자에 의해서든 앞으로 다시 사용될 일은 없다.
내 말이 좀 막연히 들릴지 모르니 한 번 자세히 말해 보겠다. 현재 킹제임스 성경 번역에 사용되었던 본문을 번역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게 믿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성직 계급 체계에 속해 있는 사람들 즉, 대학, 신학교, 그리고 성경으로 돈벌이를 하는 출판사들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배교자들과 현대주의자들, 그리고 로마 카톨릭 주의의 추기경들이 후원하는 본문이 그리스어 신약성경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킹제임스 성경 역자와 같은 번역자를 다시 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거인들이라면 현대 번역자들은 소인국의 난쟁이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 성경의 번역 기법 곧 문자적, 형식적 방법은 이제 퇴물 취급을 받고 있다. 하지만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이 방법으로 번역했다. 오늘날에는 동적 일치 방법이 일반적인 번역 기법이다. 누누이 말했지만 동적 일치 방법은 넣고 빼고 바꿔서 만든 의역이다. 자, 어떤가? 킹제임스 성경 같은 성경을 다시 만들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겠는가? 내가 계속하여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확신을 심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나는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세인트 매리에 있는 1,000와트짜리 출력을 가진 - 그래도 주당 30분에 $13.5달러면 내가 들은 것 중 제일 싸다 -조그만 방송국인 WVVW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하나 맡고 있다. 굳이 거기서 한 이유는 그곳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국 담당자에게 편지를 쓰면서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이 방송국에선 의사의 자유가 보장됩니까?”였다. 그는 대답했다. “예, 얼마든지요. 다만 방송국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물론 나는 항상 내가 말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진다. 이렇게 성경 번역에 대한 이슈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 현재 30분짜리 주간 프로그램과 5분짜리 일간 프로그램이 편성되어 있다. 이 프로그램들은 15개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청취 가능하며 곧 위성을 통해 영국과 유럽, 캐나다, 그리고 남미까지 전송될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전화로, 글로 많은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 왔다. 두 프로그램의 주제는 모두 ‘전통 성경 본문을 지키는 것’이다.
나는 지금 뜨겁고 민감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내가 웨스트버지니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앨라배마, 노스캐롤라이나, 플로리다, 켄터키, 사우스캐롤라이나, 와이오밍, 그리고 메릴랜드 주에 있는 라디오 청취자들을 위해서만 이 일을 한 건 아니다. 나는 또한 나 자신을 위해서 이 일을 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 일로 인해 나는 일주일에 한 시간은 꼭 방송 테이프 녹음에 매달려야 했다. 그리고 녹음테이프를 우리 BIBLE FOR TODAY 독자들 - 현재 미국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 2,300명 정도 되며 우리 메일링 리스트에 등록되어 BIBLE FOR TODAY News Report를 구독하는 사람들 - 에게 배포했다. 그 결과 녹음테이프를 통해 독자들은 나의 방송 강연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특성상 나는 정해진 시간 동안 성경을 주제로 말할 수 있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한 달에 네 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 여기 논의된 내용을 따로 녹음해야 했을 것이다. 물론 나에게는 그럴 여력이 없다. 여러 번 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한 건 사실이지만 이 일 외에도 나에게는 다른 여러 가지 할 일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 손자들도 원한다면 방송 강연 테이프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테이프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해 줄 것이다.
-------- 인용 끝 ---------
독자들은 지금 이 순간 우리 손에 들린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확신을 가져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입에서 나온 모든 단어들을 보존해 주시겠다고 약속한 대로 이 성경이 그분의 모든 단어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을 마치며 「1611년 킹제임스 성경, 초기 개정 신화」(The King James Version of 1611, The Myth of Early Revisions)라는 책자를 저술하여 「킹제임스 성경」의 초기 수정판에 얽힌 신화 즉 꾸며 낸 이야기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폭로한 리건 박사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20
-------- 인용 시작 ---------
여러분은 이제 확신을 가져도 된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손에 있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결코 ‘개정된 것’이 아니라 ‘정화된 것’이다.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이 성경이 우리를 위해 ‘영어로 보존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의 정확성에 대한 권위는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의 초판 인쇄본에 있지도 않고 제임스 1세의 인품에 놓여 있지도 않으며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 문학의 뛰어난 업적에 있지도 않고 심지어 그리스어 「공인본문」에 있지도 않다. 영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KJV)이라는 절대 무오한 말씀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하신 약속과 그분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 시간에 그분의 말씀이 있다.
-------- 인용 끝 ---------
존귀하신 창조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의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위로자 성령님의 큰 평안이 임할 줄로 확신합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
Heaven and earth shall pass away, but my words shall not pass away.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as] silver tried in a furnace of earth, purified seven times. Thou shalt keep them, O LORD, thou shalt preserve them from this generation for ever.
2016-04-01 11:04:08 | 관리자
안녕하세요?
한마음 미션의 고정인 자매님께서 시간을 들여 귀중한 글을 번역해 주셔서 함께 나누기 위해 올립니다.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kjvtoday.com/home/language-of-the-kjv
http://www.kjvtoday.com에서는 영미권의 양식 있는 크리스천 지성인들이 언어적, 과학적, 역사적, 상식적 데이터를 가지고 차분하게 킹제임스 성경을 읽어야 할 이유들을 제시합니다.
샬롬
패스터
킹제임스 성경의 언어
킹제임스 성경은 현대 구어체로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킹제임스 성경의 독특한 언어를 단지 구식 언어로 일축해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 킹제임스 성경의 독특한 스타일은 대부분 번역의 대본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본문을 충실히 번역함으로써 생겨났기 때문이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God's Secretaries>의 저자 Adam Nicolson은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을 맡았던] 학자들은 성경의 언어를 자기들이 알고 있고, 집에서 사용하던 영어로 끌어내지 않았다. 킹제임스 성경의 단어들은 외국어가 영어로 번역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어가 외국어의 상태에 맞게 밀고 나아가는 형태이다”(211) 라고 말한다. 영어를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의 상태에 맞춰서 번역하는 형태는 원본의 의미와 스타일을 더 정확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다음 글은 킹제임스 성경이 어떻게 그런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단순한 고어가 아닌 단어들과 문법구조
2인칭 대명사 구별
많은 사람들이 킹제임스 성경이 고어를 사용한다고 여기는 첫 번째 이유는 아마도 ‘thee’와 ‘thou’ 때문일 것이다. 킹제임스 성경이 이러한 대명사를 사용하는 이유는 2인칭 단수 (thou, thee, thy, thine)와 2인칭 복수 (ye, you, your, yours)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도 이러한 구분을 한다.
성경을 자세하게 읽기 위해서는 이러한 구분이 반드시 필요하다. 갈라디아서 6장 1절, “형제들아, 만일 어떤 사람이 잘못에 빠지거든 영적인 너희는 온유의 영으로 그러한 자를 회복시키고 네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에 사용된 대명사를 세심히 살펴보면, 잘못에 빠진 사람을 회복 시키는 것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ye" which are spiritual(영적인 ‘너희’))의 의무이지만, 개개인은 자기 자신의 진실성(considering "thyself"(‘네 자신’을 살펴보아))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명사의 구별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으면 이 구절에서 주는 공동의 의무와 개인의 의무에 대한 귀중한 가르침을 발견할 수 없다. 대명사의 인칭 구별이 중요한 구절에는 다음이 있다: 출애굽기 4:15, 출애굽기 29:42, 사무엘하 7:23, 마태복음 26:64, 누가복음 22:31-32, 요한복음 3:7, 고린도전서 8:9-12, 디모데후서 4:22, 디도서 3:15, 빌레몬서 1:21-25 등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어, 그리고 중국어와 같은 많은 현대 언어들 역시 단수 2인칭 대명사와 복수 2인칭 대명사의 구별을 유지한다. 게다가, “thou”와 “ye”가 고어처럼 들릴지 몰라도, 그 단어들은 생소한 단어들이 아니다. 우리는 일상 대화에서 이러한 대명사들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 찬송(심지어 현대 찬양에서도)을 드리거나 교회에서 찬양을 할 때에는 여전히 그 단어들을 사용한다. “Be thou my vision”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찬송의 제목에서, “지금은 엘리야 때처럼” 찬양의 가사인 “Prepare ye the way of the Lord” (주의 길을 예비하라)에서 “thou” 와 “ye”를 사용하여 찬양한다. 캐나다 사람들은 하키 경기가 열릴 때마다 그들의 국가인 “오 캐나다”를 부르는데 그 곡의 1절에서 “thy”가 한 번, “thee”가 네 번이나 나온다. 이 곡은 1980년 7월 1일에 캐나다의 공식 국가로 지정되었으며, 캐나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 때문에 캐나다 어린이들이 “thy”와 “thee”를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thou”와 “ye”가 일상적 대화에서는 사용되지 않지만 노래와, 산문, 또는 성경에서 훌륭한 문법적, 운율적, 문체적 이유와 함께 계속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그 단어들이 구식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라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인용부호의 부재
킹제임스 성경은 인용부호(" ")를 사용하지 않는다.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는 것 역시 킹제임스 성경의 고어적 기능으로 여겨지지만,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문도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페이지는 성경에서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왜 유익한지에 대해 설명한다.
주어가 있는 명령문
명령문은 명령을 할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주를 찬양하라”라는 문장은 명령문이다. 요즘에는 명령문에서 주어가 종종 사용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너, 주를 찬양하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주어를 생략하는 것이 관례적이다. 만약 킹제임스 성경이 위와 같이 표현을 한다면, "Praise thou the LORD”(너는 주를 찬양하라) 또는 "Praise ye the LORD”(너희는 주를 찬양하라)와 같은 문장이 된다. 이러한 구조가 현대 독자들에게는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현대 문법 책들에서는 명령문의 주어가 항상 “you(너)”이기 때문에 주어를 따로 지칭할 필요가 없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규칙은 전적으로 정확한 것이 아니다. “you(너)”에는 단수인 “너”를 나타내는 “thou”와 복수인 “너희”를 나타내는 “ye” 두 가지 종류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구별은 중요할 수 있다.
시편 104편 35절의 “너는 주를 찬송하라.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를 예로 들어볼 수 있다. 이 구절에서 화자는 스스로(자기의 혼)에게 “Bless thou the LORD”(너는 주를 찬송하라)라고 말한다. 여기서 “thou”가 사용되었으므로 화자의 명령인 “찬송하라”는 화자 자신의 혼에게만 주는 명령이 된다. 하지만, 그 후에 화자는 다른 이들에게도 주는 명령인 “Praise ye the LORD”(너희는 주를 찬양하라)라고 이어 말한다. 이 구절에서 화자는 스스로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시작하여 다른 이들에게도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결론 짓는다. 명령문이 대상을 가리키지 않으면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알 수가 없다. 예를 들어, ESV에는 “Bless the LORD, O my soul! Praise the LORD!”라고 번역이 되어 있어 마치 화자가 자신의 혼에게 주를 찬양하라고 한 번 더 반복해서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개역개정도 마찬가지로 같은 구절을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라고 번역하였다(이해를 돕기 위해 개역개정 구절을 임의로 추가하였음). 킹제임스 성경의 화자는 명백하게 다른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며 시편을 마무리 짓는 반면, ESV의 화자는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추며 시편을 결론짓는 듯 하다. 그러므로, 명령문에서의 인칭대명사 사용은 문법적, 그리고 의미론적인 목적을 행한다.
호격(사람 등을 부를 때 사용하는 명사・대명사・형용사의 형태)의 사용
호격은 2인칭 대명사인 “you”를 사용하는 대신에 특정 개인을 식별하는 명사를 사용하여 그 사람을 지목하는 경우에 사용된다. 마태복음 6장 9절 말씀 “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이 좋은 예이다. 요즘 사람들은 “Our Father, who ARE in heaven”이라고 잘 말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Our Father, who IS in heaven”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킹제임스 성경의 이러한 특이성은 호격의 충실한 번역에 근거한다. 이것은 고어가 아니라 호격을 사용하는 그리스어를 충실히 번역한 결과이다. 즉 킹제임스 성경은 원어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보다 정확한 동의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사용되는 고어가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를 번역하는 데 있어 현대 역본들에서 발견되는 현대식 번역보다 더 정확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6장 73절에 나오는 "bewray”(비밀을 누설하다)라는 단어는 고어처럼 느껴진다. 전체 구절은 "And after a while came unto him they that stood by, and said to Peter, Surely thou also art one of them; for thy speech bewrayeth thee.”(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이다. 현대 역본 ESV에는 이 구절이 "After a little while the bystanders came up and said to Peter, "Certainly you too are one of them, for your accent betrays you."라고 번역되어 있다. "Bewray"라는 단어는 “betray”와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Bewray"는 "divulge”(비밀을 알려주다)와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조금 더 미묘한 단어이다(메리암 웹스터 사전). 그러므로 "bewray"의 전체적 의미는 “누설함으로써 배신하다”이다. 마태복음 26장 73절은 베드로가 갈릴리에서 했던 말이 그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드러냈고”, 그것으로 인해 예수님을 “배신한” (연루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마태복음 26장 73절에 사용된 그리스어는 킹제임스 성경과 ESV가 모두 “evident”(분명한)라고 번역한 갈라디아서 3장 11절에 나오는 단어, δηλον이다. 이 단어는 단순히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드러낸다는 뜻을 명확하게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킹제임스 성경의 “오래된” 단어를 접했을 때, 그 단어를 단순한 고어로 무시해 버리기 전에 그 고어가 더 정확한지 아닌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 유익하다.
법률용어의 사용
성경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증언) 혹은 “계약”이다. 이런 차원에서 성경은 법률문서이다. 성경 안의 몇몇 책들이 문자 그대로 법률문서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법률문서”라는 말은 “러브레터”와 같이 따뜻하고 가벼운 느낌(몇몇 사람들이 성경을 묘사하듯)을 암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와 더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는 그 사람과 더 의미 있는 법적 계약의 관계로 들어갈 확률이 크다. 결혼은 법적 계약이다. 가족의 재산 상속도 유언과 신탁을 통해 부여된다. 가벼운 사람은 언제든지 “러브레터”를 쓸 수 있지만, 진정한 사랑을 하는 자만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혼인 증명서나 자신의 자산을 수여하는 유언장을 발행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그저 “러브레터”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체결된 그분의 언약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thereof, thereby, therein, hereby, herein, whereof, whereby, wherein, wherefore(그것의, 그렇게 함으로써, 그 안에, 이것에 의하여, 여기에, ~하는, 그 점에서, 그러므로)와 같은 법적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 단어들은 성경이 참으로 두 가지 ”증거”의 집합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부수적으로 상기시켜 주는 정확한 법률 용어들이다. 이러한 단어들은 지금도 여전히 영미권의 거의 모든 법적 서류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결코 고어가 아니다.
영국식 단어와 숙어
일부 단어들과 숙어는 북미인들에게 고어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영국인들이나 영연방국가의 시민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것들이다. 북미 이외의 국가에도 그러한 영국의 단어들과 숙어를 이해하는 수백만의 독자들이 있다. 예를 들어, 베드로전서 3장 3절에 나오는 “plaiting”(땋은 것 혹은 엮은 것)이라는 단어는 북미인들에게는 낯설지 몰라도 영국인들에게는 친숙하다. 게다가, 일부 영국 단어들은 인기 있는 영국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북미인들에게도 익숙해질 가능성이 있다. 갈라디아서 3장 24절-25절에 나오는 “schoolmaster”(훈육 선생)를 예로 들어보면, 그 단어는 북미보다는 영국에서 훨씬 더 흔하게 쓰인다. 하지만, 해리포터 소설(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논쟁의 대상이기는 하지만)의 성공과 함께 “schoolmaster”는 북미 어린이들에게도 친숙한 단어로 자리 잡았다. 현대 역본 지지자들이 말하듯이 언어는 항상 유동적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오래된” 단어들도 인기 있는 소설이나 영화 한 편에서 사용됨으로써 다시 표준어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한 단어를 구식으로 치부해 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원어의 모호함 보존
킹제임스 성경은 사람을 지칭할 때에도 “which”(어떤)를 사용한다. 몇몇 비평가들은 이러한 용례를 문제로 간주한다. 하지만, 문맥에서 사물이 언급되는 것인지, 사람이 언급되는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을 경우에는 “who(누구)” 대신에 “which”를 사용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베드로전서 1:23절, “Being born again, not of corruptible seed, but of incorruptible, by the word of God, which liveth and abideth for ever.”(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에서 "which liveth and abideth for ever”(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부분은 “the word”(말씀)이나 “God”(하나님) 둘 중 하나를 지칭하는 것일 수 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한다는 것을 뜻하거나, 또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영원히 거하시는 것을 뜻할 수 있다. 그리스어 자체에 이러한 모호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도 그것을 명백하게 나타냈다.
전문용어로 보존된, 고어라고 추정되는 단어들
고어로 간주되는 일부 단어들은 실제로 특정 사람들에 의해 여전히 전문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로마서 1장 13절에 나오는 “let”(막혔도다)이 킹제임스 성경(여기에서 사용된 “let”은 “방해를 받은”이라는 뜻임)에 나와있는 고어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지만, “without let or hindrance”(사고 없이)라는 용어는 영국, 캐나다, 호주, 남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이스라엘의 여권 노트에서 사용된다. 그러므로 국경수비대, 변호사, 그리고 정책 입안자와 같이 이민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교육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without let or hindrance”(사고 없이)라는 용어에 익숙하다. 이러한 사실은 “let”이 고어이기 보다는 “전문용어”라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테니스를 할 줄 알거나 경기를 보는 사람은 테니스 공이 네트에 닿거나 스침으로 플레이 진행이 방해되었을 때 “let”이 선언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let”과 같은 단어는 오늘날에는 흔하지 않을지 몰라도 완전히 쓸모가 없는 단어가 결코 아니다.
시적 특징
구식인 것처럼 여겨지는 일부 문장구조는 사실 시적 효과를 위해 그렇게 구성된 것이다. 사무엘상 30장 31절의 "...all the places where David himself and his men were wont to haunt”(또 다윗 자신과 그의 사람들이 자주 가던 모든 곳에 보내었더라) 구문은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wont to haunt"는 운이 맞기 때문에 NASB의 “accustomed to go” 구문보다 더 시적이다. 또한, 유다서 1장 8절, "despise dominion”(통치권을 멸시하며)도 “최신식”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 구문이다. ESV에는 "reject authority"라고 나와있지만, "despise dominion”은 두운법을 사용한 구문이다. 사실상 1장 8절의 전체 구절, "...these filthy dreamers defile the flesh, despise dominion, and speak evil of dignities”(이 추악한 꿈꾸는 자들도 육체를 더럽히고 통치권을 멸시하며 위엄 있는 자들을 비방하는도다)는 초성 알파벳 D가 5번 반복되는 두운법을 사용한 구절이다. 이것은 킹제임스 성경이 보여 주는 최상의 시적 표현이다. 알파벳 D는 입 안에서 공기의 흐름을 막았다가 터뜨려 소리를 내는 자음인 파열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가 비난의 말을 기관총처럼 내뱉는 유다서 1장 8절에는 이보다 더 적합한 자음이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운율과 두운이 성경에서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시적 표현은 말씀을 암기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실제로 고어인 것들
고어적 스펠링과 형태
킹제임스 성경에는 “spake”와 “shew”같이 고어적 스펠링과 형태를 가진 단어들이 있다. 이러한 단어들은 특별히 문법적으로나 의미적으로 기능을 하지 않기 때문에 텍스트의 의미를 왜곡시키지 않으면서 현대에서 사용되는 단어들로 대체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단어들은 현대에 사용되는 같은 의미의 단어들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문맥에서 누구라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친숙한 고어들
일부 단어들은 고어적인 느낌을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진 단어들이다. 그러한 단어들은 일반적으로 독자들이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thou”는 고어처럼 들릴지 몰라도 그 뜻은 일반적인 독자들에게 알려져 있다. 킹제임스 성경을 습관적으로 읽고 나면, 이 고어가 다른 현대 단어들처럼 자연스럽게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thou” (단수 2인칭 대명사)와 “ye” (복수 2인칭 대명사)와 같은 단어들은 이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단어들보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에게 훨씬 더 친밀감을 준다. 기독교인이 현대 역본 대신에 킹제임스 성경을 읽으면,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배우지 않고서도 단수와 복수의 2인칭 대명사의 문법적 구분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얼마나 기쁘고 놀라운 일인가!
생소하지만 문맥에 의해 식별될 수 있는 고어들
킹제임스 성경에 나와 있는 많은 고어들은 문맥에 의해 식별될 수 있다. 사사기 3장 21절에서 22절이 좋은 예이다. “And Ehud put forth his left hand, and took the dagger from his right thigh, and thrust it into his belly: And the haft also went in after the blade; and the fat closed upon the blade, so that he could not draw the dagger out of his belly;”(에훗이 자기의 왼손을 내밀어 자기의 오른쪽 넓적다리에서 칼을 빼서 그의 배를 찌르매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갔고 기름이 칼날에 엉기므로 그가 칼을 그의 배에서 빼지 못하였으며…) 이 구절에서 “haft”는 고어이다. 하지만, 문맥을 통해 그 단어가 칼날의 반대편에 있는 검의 한 부분임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이러한 고어들은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고, 신학적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은 구절들에 자주 등장한다.
문맥에 의해 식별될 수 없는 생소한 고어들
이제 문맥에 의해서 식별될 수 없는 고어들만 남아있다. 그러한 고어들은 이해를 하는 데에 문제가 된다. 하지만, 그러한 단어들은 생각하는 것만큼 킹제임스 성경에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에 쓰인 낯선 고어들은 “listeth”(마음대로)(요3:8)과 “wist”(알지)(요5:13)이다. “Lust”와 연관된 “to list”는 “to desire”(열망하다)라는 뜻이며, “wise”와 연관된 “to wist”는 “to know”(알다)라는 의미이다. 성경에는 이 두 단어들보다 더 많은 고어들을 담고 있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문맥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심지어 생소한 고어들도 다시 친숙한 단어가 될 수 있다. 돼지 독감이 발발하기 전에는 북미의 많은 어린이들이 “swine”(돼지)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NIV와 ESV는 “swine” 대신에 “pigs”를 사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돼지 독감에 대한 과대 광고들로 인해 “swine”이라는 단어와 그 단어의 뜻을 모르는 아이들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문맥에서 의미를 찾기 힘든 낯선 고어들도 다른 단어들로 대체하기 보다는 뜻을 학습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2016-03-09 18:33:17 | 관리자
왜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을 읽는가?
---------------------(*) 이 글은 다음 기사를 한마음 미션의 고정인 자매님이 번역한 것이다.
http://www.kjvtoday.com/home/Features-of-the-KJV
http://www.kjvtoday.com에서는 양식 있는 크리스천들이 언어적, 과학적, 역사적, 상식적 데이터를 가지고 차분하게 킹제임스 성경을 읽어야 할 이유들을 제시한다.
◾English Standard Version (ESV)◾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HCSB)◾King James Version (KJV)◾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B)◾New International Version (NIV)◾New King James Version (NKJV)◾New Living Translation (NLT)◾New Revised Standard Version (NRSV)◾Today's New International Version (T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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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제임스 성경은 거의 400년이라는 기간에 개신교(침례교 포함)의 표준 성경으로 의심 없이 수용되어 왔다. 1611년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새로운 역본들이 나오긴 했지만, 그중 단 한 개도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개신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수용되지 않았다. 그 후 20세기 중반부터 새 역본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1952년에 신약과 구약이 다 출판된 RSV는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최초의 만만치 않은 경쟁 대상이었다. 그 이후로 NASB, 리빙 바이블, NIV, NKJV, 그리고 점차적으로 수십 개의 역본들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쏟아져 나왔다.
20세기 중반에 나온 역본들의 대부분은 21세기에 들어 대중성을 잃었고, 판매 수량으로 봤을 때 오늘날 가장 인기가 많은 역본은 2011년에 업데이트 된 NIV와 ESV, 그리고 NLT이다. 새로운 역본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이 시대 속에서 많은 크리스천들은 킹제임스 성경을 현재와는 상관이 없는 지나간 시대의 유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새로운 역본들이 나왔다가 사라지는 가운데 킹제임스 성경은 세월의 시험을 견디어 내며 그럴 만한 이유와 함께 건실한 독자층을 꾸준히 형성해 왔다. 이 기사는 킹제임스 성경의 뛰어난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A. 교리
1. 입증할 수 있는 오류가 없는 성경
James R. White의 <The King James Only Controversy: Can You Trust the Modern Translations?>나, D. A. Carson의 <The King James Version Debate: A Plea for Realism>과 같은 책들은 킹제임스 성경에 문법 및 원문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책들의 목표는 ‘킹제임스 유일주의’ 즉 크리스천들은 반드시 킹제임스 성경만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반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들의 저자들은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 및 원문 선택을 평가하는 면에 있어서 중립적이지 않다. James R. White는 NASB의 자문 위원이었으며 D. A. Carson은 NLT의 번역자였다. 이들이 제안했듯이 번역 및 원문 선택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의견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구절은 합리적인 대안 이론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다. 이 웹사이트는 킹제임스 성경에 있다고 그들이 주장하는 150개의 오류를 반박하며 킹제임스 성경이 명백히 무오함을 보여 준다.
2. 더 완전하고 교리적으로 우수한 원문 NKJV와 마찬가지로 킹제임스 성경의 신약은 다양한 비잔틴 계열의 신약 사본을 따르는 공인본문에 기반을 둔다. NASB, NIV, ESV, HCSB와 같은 인기 있는 역본들은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을 따르는 ‘네슬레-알란드’ 판(즉 ‘NA 27 과 UBS 4 본문)에 기초를 두고 있다. 알렉산드리아 사본을 기반으로 하는 역본들은 많은 수의 중요한 단어들과 구절들을 생략하거나 그 말씀들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한다. 이러한 단어들과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마가복음의 결말(마가복음 16장 9-20절), 간음한 여인에 관한 말씀(요한복음 8장 1-11절), 주기도문의 결론(마태복음 6장 13절), 베데스다 연못에 내려온 천사에 관한 말씀(요한복음 5장 4절) 에티오피아 내시의 믿음 고백(사도행전 8장 37절), 그리고 마태복음 12장 47절, 마태복음 17장 21절, 마태복음 18장 11절, 마태복음 21장 44절, 마태복음 23장 14절, 마가복음 7장 16절, 마가복음 9장 44절과 46절, 마가복음 11장 26절, 마가복음 15장 28절, 누가복음 17장 36절, 누가복음 22장 43절, 누가복음 22장 44절, 누가복음 23장 17절, 사도행전 15장 34절, 사도행전 24장 7절, 사도행전 28장 29절, 로마서 16장 24절, 요한일서 5장 7절 등.
알렉산드리아 본문 지지자들도 킹제임스 성경의 모체인 공인본문이 교리적으로 더 우수하다고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웹사이트의 메인 페이지에는 공인본문을 옹호하는 페이지로 연결되는 링크가 있다.
B. 정확성
1. 직역킹제임스 성경은 본질적으로 직역된 성경이다. NIV와 NLT 같은 많은 새 역본들은 미국성서공회의 Eugene Nida에 의해 대중화된 ‘동적 일치’라 불리는 번역 원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동적 일치의 번역 원칙을 따를 경우 번역자들은 번역이 아니라 해석을 하게 된다(이들은 성경의 단어 하나 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뜻만 통하면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동적 일치 원칙을 적용한 역본을 읽는 독자들은 결국 실제 성경 본문이 아니라 학자의 해석을 읽게 된다. NKJV, NASB, 그리고 ESV 또한 본질적으로 직역된 성경들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ESV 번역 위원회의 회원인 Leland Ryken이 쓴 훌륭한 서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온라인 소책자는 다음에 있다.http://www.gnpcb.org/assets/products/excerpts/1581347308.1.pdf
2. 사람의 단수와 복수 구별 킹제임스 성경은 2인칭 단수와 2인칭 복수를 구별하기 위해 ‘thou’, ‘ye’, 그리고 동사의 어미변화를 사용한다(다음 참조). http://www.kjvtoday.com/home/language-guide
‘Thou, thee, thy’는 2인칭의 단수를 나타내며 ‘ye, you, your’는 복수를 나타낸다. 스페인어 (“tú” and “vosotros”), 독일어 (“du” and “ihr”), 중국어 ("你" and "你們")와 같은 현대어 역시 2인칭에 대해 여전히 이러한 구분법을 유지한다. 2인칭에 대한 이런 구별이 없이 모두 ‘you, you, your’를 사용할 경우 독자들은 출애굽기 4장 15절, 출애굽기 29장 42절, 사무엘기하 7장 23절, 마태복음 26장 64절, 누가복음 22 장 31-32절, 요한복음 3장 7절, 고린도전서 8장 9-12절, 디모데후서 4장 22절, 디도서 3장 15절, 빌레몬서 21-25절 같은 구절에서 개인이 언급되고 있는지 혹은 여러 명의 복수 그룹이 언급되고 있는지 구분할 수가 없다.
3. 이탤릭체의 사용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원어에는 없지만 본문의 뜻을 바르게 전달하기 위해 추가된 단어들을 이탤릭체로 표시했다. NIV, ESV, TNIV와 같은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은 추가된 단어들을 이탤릭체로 표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시편 16편 2절이 “Thou art my Lord: my goodness extendeth not to thee” (extendeth가 이탤릭체로 쓰여 있음. “주는 나의 주시니이다. 나의 선함이 주께는 미치지 못하오나”)라고 번역 되어 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 구절의 뒷부분이 ‘my goodness’, ‘not’, 그리고 ‘to thee’ (나의 선함, 주께, 못하오나)라는 세 단어로만 쓰여 있다.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문장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extendeth’ (미치지)를 첨가하고 그것을 이탤릭체로 표기함으로써 그 단어가 첨가되었음을 표시하였다. <옥스퍼드 주석 NRSV>의 주석은 시편 16편 2절의 히브리어가 불확실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여러 성경 역본들은 같은 방법으로 이 구절을 번역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은 번역자들이 추가한 단어들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탤릭체를 사용하지 않았다. NASB와 NKJV도 추가 단어를 표시하기 위해 이탤릭체를 사용한 성경이다.
4.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은 성경 인용부호 (“ ”)는 구술된 말씀을 표기한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은 어떠한 구절에도 인용부호를 쓰지 않는다. 인용부호를 쓰지 않는 것이 왜 좋을까? 킹제임스 성경이 인용부호를 쓰지 않는 이유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문도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서술자가 이야기를 한 것인지 아니면 등장인물이 이야기를 한 것인지 번역자들이 직접 추측해야만 하는 구절들이 많이 있다. 인용부호를 어디에 넣느냐에 따라 때때로 오해가 생길 수도 있고 독자들이 본문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될 수도 있다.
C. 스타일
1. 중복문(重複文)의 사용 (종속절을 하나 이상 가진 중문) 킹제임스 성경은 그리스어에 흔히 나타나는 복합 문장을 거의 나누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리스어 성경과 킹제임스 성경에서 로마서 1장 1-7절과 히브리서 1장 1-4절은 각각 한 문장으로 쓰여 있다. 반면에 현대 역본들 중에서 직역을 했다고 하는 NASB와 ESV조차 이런 문장을 여러 개의 문장으로 나누어 놓았다. 복합 문장은 아이디어들 간의 관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저자의 사고 과정을 더 분명하게 나타낸다.
2. 히브리어 특유의 표현(Hebraisms)킹제임스 성경은 사전적이고 통어법에 따른 히브리 어법을 그대로 지킨다(William Rosenau의 <Hebraisms in the Authorized Version of the Bible> 참조).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은 독자들이 성경을 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경의 히브리적 느낌을 희석시킨다. 킹제임스 성경에 표현된 언어의 특수성은 히브리어를 충실히 모방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히브리어의 선행 직접 목적격을 사용한 표현들 (“God saw the light, that it was good” 창세기 1장 4절)과 히브리어의 이중전치사 (“Abram went up out of Egypt” 창세기 13장 1절)는 본질적으로 직역의 취지로 번역된 NASB나 ESV와 같은 역본들에서조차 완전히 삭제되었다. <Learn New Testament Greek>의 3판 저자이자, 널리 호평을 받는 그리스어 교사인 John Dobson은 자신의 학생들에게 히브리어가 그리스어 신약 성경에 미친 영향을 주목하라고 권한다. 그는 분명하게 동적 번역 형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을 선호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킹제임스 성경이 현대 역본들의 일반적인 번역보다 더 밀접하게 히브리어 스타일을 따른다”는 것을 인정한다(305).
3. 그리스어 구조와 스타일과의 일치 킹제임스 성경은 신약에서 다른 역본들보다 그리스어의 어순을 더 밀접하게 따른다. 마태복음 17장 19절의 “Then came the disciples to Jesus.”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동사가 주어보다 앞서 나오는 이 구절의 문법은 영어를 사용하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킹제임스 성경의 어순은 그리스어의 어순(“τοτε προσελθοντες οι μαθηται τω ιησου”)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그리스어의 정확한 스타일과 구조를 따르는 것은 그리스어로 강조하고자 했던 것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준다.
킹제임스 성경의 또 다른 특징은 역사적 현재 시제의 사용이다. 킹제임스 성경은 종종 마태복음 3장 13절, “Then cometh Jesus from Galilee to Jordan unto John” (그때에 예수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르단으로 요한에게 오사)과 같이 과거의 일을 묘사할 때 현재 시제를 사용한다. 그 이유는 킹제임스 성경이 현재형으로 쓰인 그리스어 본문을 충실하게 번역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어 기록자들은 과거의 일에 중요성을 부여할 때 역사적 현재 시제를 사용했다. 역사적 현재 시제는 과거의 이야기가 더 선명하게 들리도록 하는 효과를 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 역본들은 역사적 현재 시제를 단순 과거형으로 번역하려는 경향이 있다.
4. 시적 표현 성경은 매우 시적인 책이다.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그리고 아가서는 성경에 나오는 명확한 시집들이다. 하지만, 심지어 구약의 대언서들과 요한계시록도 형상화, 유사성, 과장법 및 직유법 등의 시적 기능들로 가득하다. <The Five Books of Moses>의 저자인 Everett Fox는 모세오경의 책들도 시적 기능이 풍부하다고 말하며, 모세오경이 서양 독자들에게는 종종 간과되는 ‘말로 표현되는’ 시적 내용들로 가득하다고 주장한다. 사실, 유대인들은 몇 세기에 걸쳐 ‘캔틸레이션 표시’(cantillation marks) 즉 시를 노래로 표현할 때 사용하는 표시들을 사용하여 토라 즉 모세오경의 율법을 노래했다. 신약에서는 우화, 유사성, 팔복의 비유, 바울의 은유, 베드로의 종말에 대한 발언, 요한의 어둠과 빛을 나란히 두어 비교하는 병치(juxtaposition) 같은 시적 기능들이 발견된다. 킹제임스 성경과 같이 진정으로 시적 번역을 추구한 역본들이야말로 성경의 시적 표현을 정당하게 다루는 역본들이다.
D. 배경
1.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 왕에 의해 승인되다킹제임스 성경을 공인한 제임스 왕은 변명의 여지없이 성경의 무오성, 절대적인 확실성, 그리고 충분성의 교리 (오직 성경)를 옹호했던 성경 신자 크리스천이었다. 성경의 무오성에 관하여 그는 “성경 말씀을 대할 때에는 정화되고 순결한 귀로 대하라.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모호한 부분들은 오직 너의 무능함을 힐책하며 겸손하게 흠모하라.” (Book I:13, Basilicon Doron) 라고 말했다. 성경의 절대적 확실성에 관하여는 “성경 말씀 전체는 명령과 금지, 이 두 가지만을 담고 있다. 명령은 지키고 그에 반대되는 것들은 삼가라. 명령과 금지 두 가지 모두에 순종하라.” (Book I:7, Basilicon Doron)라고 하였다. 또한, 성경의 충분성에 대해서는 “성경 자체가 성경을 가장 완벽하게 해석해 준다. 그러므로 성경에 쓰여 있지 않은 것들을 구하기 위해 호기심을 가지고 알아내려고 하지 말라. 네가 알기를 원하시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릇된 추정으로 이어진다. 이는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그분께서 생각하시는 것들은 친히 성경에 계시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Book I:13-14, Basilicon Doron). 크리스천 왕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여 출판하게 된 것은 윌리엄 틴데일이 1536년 공개 처형을 당하면서 “하나님이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라고 부르짖었던 그의 최후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David Daniell의 <The Bible in English: Its History and Influence. New Haven>: Yale UP, 2003 at 156).
2. 근대주의의 편견에서 벗어나다 킹제임스 성경은 자유주의 신학, 진화론, 정치적 정당성, 그리고 종교통합주의 운동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신학적/사회적 견해를 만족시키기 위한 맞춤형 역본들이 출판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NIV는 성경이 성 중립적인 입장을 나타내기 원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출판되었다. 그 결과는 시편 1장 3절, 요한계시록 22장 18절 등에서 문제가 되는 부정확한 번역으로 나타났다 (Vern S. Poythress 와 Wayne A. Grudem의 <The TNIV and the Gender Neutral Controversy>). 물론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도 그 시대의 남성들이었고, 그들의 문화 역시 ‘중립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제임스 1세 시대의 영국 기독교 군주 문화는 신을 부정하는 현대 민주주의보다 훨씬 더 성경의 이상적인 민족인 ‘주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민족’(시33:12)에 더 가까웠다. 믿음과 실행에 관한 모든 면에서 성경의 무오성과 성경의 충분성에 대한 번역자들의 헌신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제임스 왕 자신도 “이 지식으로 이끄는 유일한 방법은 그분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그것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진정으로 기도하는 것이다.”라고 서술했다 (Book I:6, Basilicon Doron).
3. 2차적 저작물에 관한 법률에 영향 받지 않은 킹제임스 성경 현대 역본 출판사들은 개정 작품 (예: 새 역본)을 출판할 때 저작권을 주장하기 위해 법률상 상당한 개정을 해야 한다. “저작권을 취득하기 위해서 2차적 저작물은 ‘새로운 저작물’로 여겨지기 위해 원본과 충분히 달라야 하거나, 상당한 양의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기존에 존재하는 작품에 사소한 변경을 하거나 소량의 내용만 추가하는 것은 새 버전으로서 저작권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Copyright Registration for Derivative Works (Circular 14)).
이 법은 각각의 새로운 버전이 이전 버전과 ‘충분히 다른 면’을 갖추고 있기를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법을 지키는 현대 역본들을 읽을 때 독자들은 자신이 읽고 있는 단어들이 가장 정확한 단어들인지, 아니면 저작권 취득을 위한 역본의 자질을 갖추기 위해 대체로 사용된 덜 정확한 내용을 읽고 있는 것인지 추측해야 한다.
킹제임스 성경은 이 법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독자들이 킹제임스 성경을 읽을 때에는 번역자들 스스로가 그들이 선택한 단어들이 가장 정확한 단어들임을 진정으로 믿었기 때문에 그 단어들을 사용했다는 것을 확신해도 된다.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을 위해서 15가지의 규칙이 주어졌는데, 그것들 중 일부는 개선할 필요가 없는 기존 번역들을 번역자들이 그대로 유지하도록 분명하게 허용했다. 첫 번째 규칙은 번역자들이 비숍 성경(Bishop Bible)을 따르도록 권고하되 원어 텍스트가 비숍 성경과 다른 경우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였다. 열네 번째 규칙은 다른 좋은 역본이 원어와 더 잘 일치하는 것으로 여겨지면 그 번역을 따를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망가진 게 아니라면 고치지 말라.”와 같은 태도는 변화를 위해서 변화를 요구하는 오늘날의 2차적 저작물 관련 법률 아래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4.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에 능통했던 번역자들 킹제임스 성경은 틴데일과 위클리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전의 영어 성경에 나타난 학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은 믿음과 기록된 말씀에 있어서 경건한 경쟁자였다. 47명의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히브리어 및/또는 그리스어에 능통했을 뿐만 아니라 동족 언어인 아람어, 갈대아어, 시리아어, 그리고 아랍어에도 능통했다 (Alexander McClure의 <Translators Revived>). 엘리자베스 1세 시대와 제임스 1세 시대의 학자들은 젊을 때에 문법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 학교들은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그리고 영어 공부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스어에 능숙한 많은 현대학자들이 라틴어에는 능숙하지 못하다. 사실 라틴어는 개신교 학교에서 성직자들(신부나 목사 등)이 주로 사용하는 교회의 언어 – 즉 일반 사람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언어 - 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원문과 번역의 변형을 해명 해 줄 많은 자원들은 천 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제작된 라틴어 주석과 저작물에서 발견된다.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번역자들은 라틴어에 능숙했다.
5. 영어에 능통했던 번역자들 성경을 공부하는 많은 학생들이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적절한 번역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번역은 원문의 언어와 번역 대상어 모두에 대한 전문 지식을 수반한다.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은 대부분의 현대 번역자들보다 영어를 더 잘 이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킹제임스 성경의 비평가인 월러스(Daniel Wallace)는 다음과 같은 솔직한 발언을 했다. “킹제임스 성경이 많은 오류를 갖고 있는 만큼 그 성경의 번역은 종종 많은 현대 역본들보다 그리스어 완료 시제를 더 우수하게 번역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킹제임스 성경은 영어의 황금 시대였던 셰익스피어 시대에 출간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 (RSV, NASB)은 에베소서 2장 8절을 “For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라고 번역한 반면, 킹제임스 성경은 “For by grace are ye saved”라고 번역했다. 킹제임스 성경의 완곡어법 완료 형태 – ‘ye are saved’가 아니라 도치를 사용하여 ‘are ye save’로 한 것, 또 ‘구원받아 오고 있다’가 아니라 ‘이미 구원받았다’ - 는 한번 얻은 구원을 강하게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현대 번역자들만큼 그리스어를 잘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고 치더라도 영어만큼은 그들이 훨씬 더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에베소서 2장 8절을 영어 완료 시제(‘you have been saved’가 아니라 ‘ye are saved’)로 번역 하는 경우 구원받은 이후로 생긴 상태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Daniel Wallace의 <Greek Grammar Beyond the Basics>, p. 575).
E. 유산
1. 초기 근대 영어 인칭에 따른 동사의 어미변화 (이것은 사실 기능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를 제외하면 킹제임스 성경에 쓰인 모든 단어들은 현대 출판물에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 (Laurence M. Vance의 <Archaic Words and the Authorized Version>). 게다가, NIV조차 킹제임스 성경보다 더 어려운 단어들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 구절들을 비교해 보자. 에스라 9장 5절에서 KJV가 ‘heaviness’(근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반면, NIV는 ‘abasement’(근심)을 사용했다. 이사야 24장 23절에서 NIV는 ‘abashed’(수치를 당하고)를, KJV는 ‘confounded’(당황할 것이며)를 사용하고, 에스겔 40장 18절에서 NIV는 ‘abutted’(좌우편인데)를, KJV는 ‘over against’(맞은편으로)를 사용한다. NIV는 역대기하 15장 14절에서 ‘acclamation’ (소리)을, KJV는 ‘voice’(소리)를 사용한다. NIV는 이사야 13장 8절에서 ‘aghast’ (무서워하고)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KJV는 ‘amazed’(놀라며)를 사용한다. Laurence M. Vance는 NIV가 킹제임스 성경보다 더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는 220개의 예시들을 제공한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단어는 마가복음 4장 37절에서 사용된 NIV의 ‘squal’l (광풍)과 KJV의 ‘storm’(폭풍)이다. 인칭에 따른 동사의 어미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킹제임스 성경이 NIV보다 읽기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무엇이 더 어려운지 결론을 내리기 전에 먼저 꼼꼼하게 킹제임스 성경을 읽어 봐야 한다. 이를 위해 아래의 링크들을 확인해 보길 권한다.
Understanding the Language of the King James Versionhttp://www.kjvtoday.com/home/language-of-the-kjv
많은 사람들이 킹제임스 성경은 그저 오래된 역본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지만, 킹제임스 성경에는 오래된 요소들보다 언어적으로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담겨다.
A Beginner's Guide to the Language of the King James Versionhttp://www.kjvtoday.com/home/language-guide
이 링크는 초보자들이 킹제임스 성경의 문법과 어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2. 정제되고 단련된 말씀
킹제임스 성경은 400년 동안 신중하게 교정되어 왔다. 현재의 버전은 인쇄 상의 모둔 오류를 수정한 신뢰할 만한 버전이다.
3. 성경의 인기도 인기도는 무언가의 가치를 평가하는 성경적인 척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제임스 성경이 여전히 인기 있는 역본들 중 하나임에 주목해야 한다. 2011년 2월 CBA 판매량에 의하면,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는 NIV를 제외하고는, NKJV, ESV, NASB, 그리고 NLT보다 킹제임스 성경이 더 인기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일부가 주장하듯이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크리스천들은 구닥다리의 ‘소수’가 아니다.
2016-01-22 12:23:29 | 관리자
안녕하세요?
5분만 공부하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인칭에 관한 문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참조하세요.
http://ultrafree.org/articles/A%20Five-Minute%20Complete%20Guide%20to%20King%20James%20Grammar.pdf
http://www.scripturetruth.org/biblebackground/strangewords/kjvgrammar.html
샬롬
패스터
2015-12-16 10:22:25 | 관리자
안녕하세요?
킹제임스 성경을 읽다 보면 어떤 부분에 괄호가 나옵니다.이런 괄호는 킹제임스 성경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도 발견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주어진 원어 성경에는 콤마, 세미콜론, 물음표, 느낌표, 마침표, 이탤릭 체 글자 등이 없습니다. 이 모든 부호들은 역자들이 독자들에게 뜻을 잘 전달하기 위해 넣은 것입니다.
괄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들은 괄호 안의 내용은 원래 없었는데 역자들이 첨가한 것이 아닌가 궁금해 합니다.
아닙니다.
다른 성경은 몰라도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경우 괄호 안의 모든 단어는 원래 히브리어, 그리스어 성경에 있던 것입니다. 다만 역자들이 강조하며 정확히 뜻을 전달하기 위해 물음표, 느낌표처럼 넣은 것입니다.
예1, 요7:50(그들 중의 한 사람 곧 밤에 예수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Nicodemus saith unto them, (he that came to Jesus by night, being one of them,)
예2, 마6:32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혹은,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혹은, 우리가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나니)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 (For after all these things do the Gentiles seek:) for your heavenly Father knoweth that ye have need of all these things.
예3, 마24:15그런즉 대언자 다니엘을 통해 말씀하신바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너희가 보거든 (누구든지 읽는 자는 깨달을지어다.) When ye therefore shall see the abomination of desolation, spoken of by Daniel the prophet, stand in the holy place, (whoso readeth, let him understand:)
괄호를 치면, 예1처럼 괄호 안의 내용이 다음 구절을 수식하기도 하고, 예2처럼 괄호의 내용이 바로 전 구절의 내용을 반복해서 보여 주기도 하며, 예3처럼 괄호이 내용이 명확하게 독자에게 경고를 주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목적을 가지고 괄호가 사용되었습니다.
영어 KJB에는 223개, NASB에는 240개, ESV에는 269개의 괄호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킹제임스 성경을 읽다가 괄호를 접하면 역자들이 그것을 사용하여 무언가를 강조하고 있음에 유의하면 될 것입니다. 괄호는 물음표, 느낌표 등과 같이 문장을 명확히 하려는 목적으로 역자들에 의해 사용된 문장 부호입니다.
샬롬
패스터
2015-11-16 15:09:42 | 관리자
안녕하세요?
마가복음 16장 9-20절에 대한 시내 사본 조작 사진을 올리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ㅇ 개역/개역개정 성경의 마가복음 16장 9절을 보면 “어떤 사본에는 9-20절까지 없음”이라는 각주가 붙어 있다. 다른 설명에는 “9-20절 단락은 아주 오래된 사본들에는 빠져 있으며 이 부분은 2세기에 덧붙여졌음”이라고 되어 있다.
ㅇ 이 현상은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제외한 NIV, NASB 등 모든 현대 역본들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ㅇ 현대 역본들의 주장이 사실이고 따라서 마가복음 16장이 8절에서 끝난다면, 예수님의 무덤에 갔던 여인들은 떨며 놀라서 급히 도망하고 두려움에 잠겨 숨어 지낸 셈이 된다. 그러면 이게 과연 ‘복된 소식’ 즉 복음일까?
ㅇ 현존하는 그리스어 사본들 가운데 마가복음 16장을 포함하는 사본은 약 1,800개이고 이 중에서 1,797개가 9-20절을포함한다. 즉 현존하는 그리스 사본들의 99.8%인 절대다수가 마가복음 16장 9-20절을 포함한다. 이쯤 되면 심지어 세상 법정에서도 절대다수의 증거가 채택되어 마가복음의 마지막 12구절을 담은 성경이 바른 성경으로 인정될 것이다.
ㅇ 그런데 현대 역본 지지자들이 마가복음 16장 9-20절이 원래 없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바로 위의 사진에 있는 시내 사본이다. 이 사진에 보면, 마가복음 16장 9-20절은 분명히 원래 사본에 있었는데 누군가가 그것들을 지우고 그 위에 무언가를 기록하였다. 이런 엉터리 자료를 가지고 온 세상 모든 성도들에게서 마가복음 16장 9-20절을 빼앗아가려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마귀의 앞잡이가 아닌가?
(이 사진은 영어 Google에 가서 ‘Sinaiticus Mark 16’이라고 치면 이미지 섹션에서 누구라도 즉시 쉽게 찾을 수 있다).
샬롬
2015-08-08 14:05:38 | 관리자
안녕하세요?
미국 뉴저지 중앙침례교회의 이황로 목사님께서 킹제임스 성경 관련 참고 문헌 목록을 여러 목사님들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독자들을 위해 공개하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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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목사님들께,
성경론에서 총체적 축자영감과 섭리보존에 대하여 많은 분들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입장과 믿음도 있습니다.
여러 목사님들과 교제하면서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서 참고문헌을 부탁하시곤 하였습니다.
더 많은 책들과 자료들이 있지만 여기 보내드리는 것은 단지 제가 소유하고 있는 자료들입니다. 더 좋은 책들, 또 반대입장에 있는 책들도 물론 있으니, 그 판단과 선택은 각자 목사님들께서 하시고 시간 절약을 위해서 몇 가지 서적과 웹사이트를 찾아보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목사님께서 아시는 좋은 책자들과 정보들도 소개해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명품 가방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은 명품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명품이 아닌데 짝퉁 가방을 가지고 있으면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이슈는 이제 단지 손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해서 태양이 없는 것이 아닌 것처럼 목회자 각자 시간과 마음을 내어서 그 반대 입장에 분명히 서든가 아니면 과연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한 가지로 기록하게 하시고, 오늘날까지도 보존하셨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확실한 답을 제시해야 합니다.
하여튼 시간이 걸리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여 보내드립니다.
새해에 건강하시고 사역에 두루 열매가 맺히는 귀한 목사님들이 되시도록 기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이황로 올림. Hwangro Lee, Pastor Central Baptist Church 201.981.1967.900 Madison Ave, Paterson, NJ 07501. Sunday Service557 Blvd., Hasbrouck Hts, NJ 07604. Evening Serviceswww.centralkbc.com
2015-02-12 12:48:3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지난 몇 달 동안 종종 주변의 몇몇 형제/자매님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갑자기 이상한 이메일을 받았다고 하며 혹시 제가 그것에 대해 아느냐고 묻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메일의 제목은 ‘킹제임스 성경에 관한 불편한 진실’로 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비방 글들의 링크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이메일을 무차별 살포하는 분은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특히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 대해 매우 분개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적어 놓은 비방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미 지난 400년 동안 영어 세상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던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허무맹랑한 이야기일지라도 막상 이런 이야기를 처음 접하면 당혹스러워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아 오늘은 그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올리려고 합니다.
그 글을 적은 분인지 아니면 그분의 추종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얼마 전에는 자정이 넘은 시각에 동일한 글을 킵바이블 사이트에 올렸기에 관리자 형제가 즉시 삭제하였습니다. 관리자들이 신경을 쓰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는 야심한 시간을 이용해 짧은 순간 게재되었던 글임에도 그 글을 읽고 놀란 마음에 어찌 된 일이냐고 질문의 메일을 보낸 형제님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수천 군데 심각한 오류가 있어서 많은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현대 역본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시비를 걸지 않으면서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그 저의가 상당히 의심스럽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뿐인 귀중한 인생을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하는 데 허비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에 오늘은 매우 안타까운 심정으로 글을 씁니다.
이들이 차라리 현대/자유주의자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아예 틀렸고 인간 저자들이 임의대로 쓴 기록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면 차라리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께서 원어로 성경을 보존해 주셨다고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온 시간과 에너지를 오직 킹제임스 성경을 공격하는 데만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메일과 카톡 등을 통해 ‘킹제임스 성경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글을 무차별적으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이들의 헛된 주장에 넘어가서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보존해주신 성경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거나 잃어버리는 연약한 지체들이 있어 오늘은 어쩔 수 없이 간단히 글을 씁니다.
이들은 한동안 원어를 가지고 사람들을 선동하더니 요즘 들어서는 주로 킹제임스 성경의 난외주와 대소문자를 가지고 성도들을 홀리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성경의 원어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는 한 단어가 여러 개의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번역자는 앞뒤 문맥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그 여러 개 뜻 가운데서 가장 합당한 하나를 정해 성경을 번역하게 됩니다.
또한 성경에 쓰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는 원래 대소문자 구별이 없습니다. 위클리프 이후 킹제임스 성경에 이르기까지 약 230년 동안 영어 성경의 번역자들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어에서 같은 영(그리스어의 경우 프뉴마)이라도 하나님의 영으로 확실히 판단되는 데는 대문자 Spirit으로, 하나님의 영이나 혹은 다른 영으로 두어도 문제가 없는 데는 소문자 spirit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문맥에 따라 독자가 판단해서 이해하면 됩니다.
오늘은 이런 사람들이 사용하는 난외주와 대소문자 비방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려 합니다.
1. 난외주
과거에 영어 성경이 나올 때에는 번역하면서 특정 단어나 절에 대해 번역자들 간에 만장일치로 깔끔하게 의견이 통일되지 않는 경우 난외주에 소수의 의견을 표기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난외주가 가장 많았던 성경은 킹제임스 성경 바로 전에 나온 제네바 성경이었습니다. 제네바 성경 안에는 칼빈의 개혁주의(장로교) 사상이 너무 많이 들어갔기에 제임스 왕은 성경을 새로 번역하라고 명령하면서 특별히 난외주를 최소화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11년에 출간된 킹제임스 성경을 보면 평균 한 페이지에 5-6개 정도의 난외주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정확하게 판단해서 알아야 할 것은 난외주란 소수의 다른 견해가 있었다는 정황을 정직하게 알리는 것이 목적일 뿐 난외주 자체가 본문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20세기 최고의 본문 비평 학자로 알려진 에드워드 F. 힐즈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번역자들이 킹제임스 성경에 첨가한 난외주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수고를 섭리[돌보심]로 인도하셨음을 보여 준다. 스크리브너(1884)는 외경이 포함된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에 8,422개의 난외주가 있었다고 말한다. 스크리브너는 구약성경의 난외주들 가운데 4,111개는 히브리어나 아람어 원문에 좀 더 문자적인 의미를 제공해 주며 2,156개는 달리 번역할 수 있는 예들이고 67개는 이문들이라고 말한다. 또한 신약성경의 난외주들 가운데 112개는 그리스어의 문자적 번역을 제공해 주며 582개는 달리 번역할 수 있는 예들이고 37개는 이문들이다. 이러한 난외주들은 번역자들이 그들의 사고 과정 속에서, 모든 가능성을 가늠하면서 자기들이 보기에 가장 최상의 것으로 보이는 번역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섭리로 인도를 받았음을 보여 준다. <킹제임스 성경 변호 213쪽>
<킹제임스 성경 변호 무료 PDF>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3&page=5
이분은 곧 번역자들은 자신들의 부족함과 연약함으로 인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다 살펴보았음을 난외주에 표기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겸손함을 보시고 섭리 즉 돌보심으로 그들이 본문의 단어들 - 난외주가 아니라 - 을 선택하는 것을 인도해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들의 겸손함에 대해 힐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난외주들이 보여 주듯이,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자신들의 작품인 그 성경을 완전한 것 혹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고 다만 그 성경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들을 신뢰할 만하게 재현한 것으로 여겼으며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도 그것을 그렇게 추천했다. (214쪽)
그리고 힐즈는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주는 글>의 마지막을 소개합니다.
"우리가 이미 서문의 분량을 초과하지 않았다면 다른 많은 것들을 온유한 독자인 당신에게 경고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더 확실히 세울 수 있는 하나님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영에게 당신을 맡기는 일만 남았다. 그분은 우리의 눈에서 비늘을, 우리의 마음에서 베일을 벗기신다. 또 우리가 자신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우리의 지혜를 열어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넓히시며 참으로 우리의 성정을 고치신다. 그 결과 우리는 금과 은보다 더 그것[말씀]을 사랑할 수 있으며 참으로 끝까지 그것을 사랑할 수 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 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분께서 우리 앞에 자신의 말씀을 놓으실 때에 그것을 읽는 것, 그분께서 자신의 손을 뻗으시고 부르실 때에 ‘오 하나님이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는 당신의 뜻을 행하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 [바로] 그것은 복된 일이며 우리를 결국 영존하는 복으로 인도할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알고 그분을 섬기도록 주님께서 돌보심과 내적 의식으로 우리 안에서 일하실 것을 구한다. 이로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우리는 그분께 인정을 받을 것이다. 성령님과 더불어 그분께 모든 찬양과 감사가 있기를 원한다. 아멘."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주는 글>
난외주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1611년 초판 발행 이후에 킹제임스 성경이 정착되면서 난외주들은 성경 자체에서 곧 사라졌다는 겁니다.
외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경은 구약과 신약 사이의 역사를 보여 주는 역사서로 부록으로 추가되었습니다. 카톨릭 교회를 가장 크게 미워하던 사람들이 만든 제네바 성경에도 외경이 들어 있었지만 후에는 난외주와 함께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외경이나 난외주에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것은 킹제임스 성경 본문이지 난외주나 외경이 아닙니다.
바로 그 성경 본문이 온 세상에 퍼져나가 거기 담긴 복음을 듣고 확신하는 사람을 구원시키고 성화시키는 일을 하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시고 사용하시는 것은 킹제임스 성경의 본문입니다.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준 글’이나 ‘제임스 왕에게 바친 헌정문’이나 난외주나 외경이나 금박 표지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철저하게 인간들의 산물일 뿐입니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요한계시록 22장 21절까지의 본문!
하나님은 바로 이 성경 본문을 영감으로 주시고 섭리로 보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1611년의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순수한 이 본문을 정확하게 일대일 대응이 되게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로 번역하여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보존하였습니다.
바로 그 킹제임스 성경 본문을 사용해서 지난 400여 년 동안 복음이 선포되고 성경의 모든 교리가 확립되었습니다. 난외주나 외경 심지어 원본이 아닙니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이 반포된 지 400년이 이미 지난 이 시점에서 난외주가 본문보다 옳다고 주장하며 교묘하게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또 그들의 말에 속아 넘어가는 분들이 있기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6 이러한 부류 중에 슬그머니 집으로 들어가 미련한 여자들을 포로로 사로잡는 자들이 있는데 이런 여자들은 죄들로 눌려 있고 여러 가지 욕심에 이끌려 7 항상 배우나 결코 진리를 아는 데 이르지 못하느니라. 8 그런데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이들도 진리를 거역하나니 이들은 마음이 부패한 자들이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받은 자들이니라. 9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하리니 이는 저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난 것 같이 그들의 어리석음도 모든 사람에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라(딤후3:6-9).
항상 배우나 결코 진리를 아는 데 이르지 못하는 자들이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결국은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터인데 그때 가서 후회하면 너무 늦을지도 모릅니다.
이들의 수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이들은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 복사본(팩시밀리)을 하나 구한 뒤 거기에 기록된 난외주만 열심히 찾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마음에 흡족하며 이슈를 만들 만한 단어가 나오면 손뼉을 치면서 킹제임스 성경이 틀리고 난외주가 맞는다고 소리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성경의 본문이 틀렸다고 주장하며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 과연 성경 신자일까요?
이런 예 중 유명한 것이 바로 이사야서 14장 12절의 루시퍼입니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은 분명히 에스겔서 28장의 ‘타락한 그룹’이 루시퍼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난외주에는 ‘daystar’ 즉 샛별(계명성)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접할 때는 “과거에 이 단어를 샛별로 본 사람들도 있었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그 이상의 가치를 두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봐라, 루시퍼가 아니라 샛별이 맞다”고 주장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단 한 번도 ‘샛별’을 본문으로 인정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1611년 이후로 지금까지 산 사람들의 수를 생각해 볼 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적어도 100억 권 정도 인쇄되지 않았을까 추정해 봅니다. 그 100억 권에 무어라 되어 있습니까? 루시퍼지요.
바로 이 본문을 가지고 1611년 이후의 모든 신학교가 세워지고 신학 서적들이 저술되었습니다. 즉 교리가 세워졌습니다. 이런 역사적 증거와 현실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1611년 킹제임스 성경 본문에 기록된 루시퍼가 아니라 난외주의 샛별이 맞는다고 주장하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일까요? 과연 성경의 하나님께서 그렇게 모호하게 일하신 적이 있습니까?
대부분의 신약 성경 사본들은 공개적으로 여러 대륙의 거의 모든 성도들 가운데서 보급되었습니다. 반면에 모든 현대 역본들의 모체가 되는 천주교회의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은 아무도 보지 못하게 바티칸 도서관과 동방 정교회 수도원에 고이 간직되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예수님 승천 후 1850년이 지난 시점에 이 둘이 공개되면서 이것들이 참으로 진실한 사본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그 이전의 1850년 동안 성도들은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도 없이 믿음 생활을 했단 말인가요?
성경을 보존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시12:6-7) 부인하는 현대 역본 역자들의 이런 주장과 난외주를 가지고 본문을 대체하려는 사람들의 시도는 거의 동일한 것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자신의 순수한 본문이 보편적으로 자신의 백성들 가운데서 보급되고 유통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의 난외주, 외경 그리고 천주교 소수 사본 등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2. 대문자/소문자 spirit/Spirit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몇 구절에서는 Spirit/spirit이 여전히 통일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1:12(ACTS 11:12). “And the spirit bade me go with them, nothing doubting. Moreover these six brethren accompanied me, and we entered into the man’s house.”여기의 소문자 spirit은 1611년과 1769년 판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11:28(ACTS 11:28). “And there stood up one of them named Agabus, and signified by the spirit that there should be great dearth throughout all the world: which came to pass in the days of Claudius Caesar.” 여기의 소문자 spirit은 1611년, 1638년 그리고 1769년 판에 있습니다.
요일 5:8(1 JOHN 5:8). “And there are three that bear witness in earth,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se three agree in one.”
1611년 판에는 대문자 Spirit으로 되어 있지만 동시에 그다음에 나오는 Water와 Blood도 대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1638년과 1769년 판에는 이것이 소문자 spirit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영(spirit)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 spirit/Spirit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적 존재(a spirit being), 사람의 영, 성령님, 정신 등
2. 성경에서는 소문자 spirit이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사례들이 있다(출31:3; 욥27:3; 고전2:12).
3. 소문자 spirit은 성령님의 일을 묘사할 때도 쓰인다. 예를 들어 동일한 말씀이 요엘서 2장 28에는 소문자로(pour out my spirit), 사도행전 2장 17절에는 대문자로(pour out of my Spirit) 표기되어 있다.
그러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여러 판에서 행11:12, 행11:28, 요일5:8에 소문자 spirit이 쓰인 것은 앞뒤 문맥으로 살펴볼 때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이런 부분에서 누군가가 대문자 Spirit이 쓰여야 합당하다고 주장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영이 하는 일은 다시 태어난 사람의 영과 하나님의 영의 공동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이런 구절들에서 spirit/Spirit이 통일되어 있지 않으므로 킹제임스 성경은 오류가 없는 최종 권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스 단어 프뉴마는 대문자 소문자 구별이 없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프뉴마를 있는 그대로 ‘스피릿’(대문자든 소문자든)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원어의 영감/보존에도 문제가 없으며 번역되면서도 보존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영어 성경의 역자들은 영어 단어 스피릿에 그리스 단어에 없는 대소문자의 구별이 있으므로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신실하게 대소문자 spirit/Spirit을 구분해 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 인쇄술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식자공이 일일이 모든 단어의 알파벳(성경 전체를 보면 수십만 개 혹은 수백만 개)을 찾아서 조판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 조판공들은 대소문자 spirit/Spirit에서 실수를 하였습니다.
조판공의 이런 실수 예는 여럿 있습니다.
이 중에 유명한 것은 사악한 성경(Wicked Bible)으로 알려진 1631년 판입니다. 이 판에서는 출20:14 말씀 즉 “너는 간음하지 말라”가 “너는 간음하라”로 되어 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Wicked_Bible
즉 “Thou shalt not commit adultery”라고 조판해야 하는데 꼼꼼함을 요하는 작업 때문에 몸이 매우 피곤했던 식자공은 그만 여기서 중간의 ‘not’을 넣지 못했고 결국 그 성경은 “너는 간음하라”라고 명령하는 ‘사악한 성경’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성경의 대부분은 즉시 회수되어 폐기되었고 몇 개만 희귀본으로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초판의 이런 실수 등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keepbible.com/KJB2/View/2Vl
그래도 spirit/Spirit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분들은 리플링거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http://www.ourkjv.com/KJB.pdf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 구절에서는 spirit/Spirit에서 선택의 자유를 독자들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앞뒤 문맥을 보고 독자가 결정하면 될 일이지 성경의 보존이나 최종권위의 문제가 아닙니다.
끝으로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 성경에서 스펠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1611년의 초판을 참고하려 합니다.
그러나 1611년 초판에는 식자공의 이런 실수가 여럿 있습니다.
그러므로 1611년 초판이 최종적인 권위가 아닙니다.
위에서 언급한 요일5:8의 경우 1611년 초판에는 대문자 Spirit으로 되어 있고 동시에 그다음에 나오는 Water와 Blood도 대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Water와 Blood도 신성을 가진 존재일까요?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로마체가 쓰이지 않았고 고딕체가 쓰였습니다. 고딕체의 경우 이런 사례에서는 종종 같은 구절에서 몇 단어를 연거푸 대문자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독일어의 영향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요일5:8에서 반드시 대문자 Spirit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그다음의 Water와 Blood도 대문자로 써야 합니다. 그러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결론을 드립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서너 군데는 spirit/Spirit이 통일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영감/보존/번역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 역자들은 최선을 다해 신실하게 번역하였으나 식자공의 실수로 이런 데가 있습니다. 이런 식자 문제들은 역자들이 살아 있던 시대에 대부분 곧바로 교정되었으나 역자들이 죽은 이후에도 처리되지 않은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서너 군데의 spirit/Spirit이 이 경우입니다.
그래서 철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옥스퍼드 판과 케임브리지 판이 나왔고 지금 존재하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둘 중의 하나를 쓰고 있습니다. 다만 토마스 넬슨 출판사 판은 자기들 마음대로 킹제임스 성경의 여러 단어를 임의로 수정하였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판들의 역사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리플링거의 글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ourkjv.com/KJB.pdf
(*) 참고로 리플링거의 글은 매우 훌륭하지만 100% 옳지는 않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안내해 드린 것입니다.
저희가 처음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초판을 낼 때에는 영어 성경 파일 자체를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특히 이탤릭체를 살린 파일을 찾기는 더더욱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미국 Bible For Today의 웨이트 박사님이 주신 영어 파일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여러 소스를 알게 되었고 2011년에 400주년 기념판을 출간할 때에는 Pure Cambridge Text로 알려진 영어 본문을 사용하였습니다.
www.bibleprotector.com
물론 앞으로도 저희는 영어 본문의 경우 Pure Cambridge Text를 사용할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번역의 초기 세대들이 어쩔 수 없이 함께 감당해야 하는 짐입니다. “왜 처음부터 pure text를 쓰지 않았느냐?”고 질책해도 소용이 없고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소모적 논쟁만 불거지게 됩니다.
영어 성경도 1611년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나오기까지 약 230년의 담금질 과정을 겪었습니다. 이런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혹시 본문, 번역 등에 의문이 있으면 대안과 함께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이메일을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이메일의 내용은 제안이어야지 독단적인 주장은 수용할 수 없습니다. 본문 난외주, 대소문자, 외경, 이역 등을 가지고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확신을 깨뜨리려는 사람들을 조심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강한 확신 속에 킹제임스 성경 신자들의 어리석음과 답답함(자기들이 보기에)을 깨뜨리기 위해 ‘킹제임스 성경의 불편한 진실’ 같은 글을 쓰는 분들은 부디 앞으로는 그 귀중한 시간을 올바른 데 투자해서 ‘개역(개정판) 성경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글을 써서 수백만 성도들을 살리는 데 매진하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값진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보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제발 눈을 열어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많은 오류로 인해 고생하며 종교 시스템의 포로가 되어있는 신자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20여 년의 역사를 통해 킹제임스 성경 사역이 거의 다 완성된 시점에 뒷북을 치며 나타나 이미 킹제임스 성경의 한국어 번역사(史)가 증명한 일에 시비를 거는 것은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못할 일입니다. 더욱이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모여 예배를 드릴 때에는 우리가 펴낸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쓰고 있다니 이 얼마나 기막힌 아이러니입니까?
세상에는 다 때와 순서가 있습니다.
수많은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건설된 고속도로가 자기 마음에 안 드니 내가 바로 옆에 새롭게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는 사람은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이미 건설된 고속도로에 결함이 있다면 지혜를 모아 보수하고 다듬어 더 완성도 높은 도로가 되도록 하면 됩니다. 이렇게 이미 놓인 고속도로를 마음껏 이용해 상품을 나르고 이동하며 사업을 일구는 사람이 굳이 바로 옆에 길을 다시 만들겠다는 어리석은 고집쟁이를 한참이나 앞서가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금은 킹제임스 성경을 새로 번역할 때가 아니라 함께 지혜를 모아 이미 나와 굳건히 자리 잡은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잘 다듬고 최선을 다해 복음을 선포해서 죽어가는 혼들을 구원해야 할 때입니다.
성경을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2015년에도 우리 주 예수님의 큰 평강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영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개정 신화>에서 저자인 리건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http://keepbible.com/KJB2/View/2Vl
여러분은 이제 확신을 가져도 된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손에 있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결코 ‘개정된 것’이 아니라 ‘정화된 것’이다.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이 성경이 우리를 위해 ‘영어로 보존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의 정확성에 대한 권위는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의 초판 인쇄본에 있지도 않고 제임스 1세의 인품에 놓여 있지도 않으며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 문학의 뛰어난 업적에 있지도 않고 심지어 그리스어 「공인본문」에 있지도 않다. 영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KJV)이라는 절대 무오한 말씀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하신 약속과 그분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 시간에 그분의 말씀이 있다.
‘킹제임스 성경의 불편한 진실’ 같은 글로 혹세무민하는 동일한 사람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 다음에 있으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1. 원어를 과도하게 의지하면 안 되는 이유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9
2.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 이야기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464
3. 딱정벌레 이야기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1985
4. 스크리브너의 TR 이야기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22
5. 영감과 보존: 원본, 사본, 역본의 관계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7
2015-01-07 18:08:10 | 관리자
안녕하세요?
이번에 뉴저지 중앙침례교회의 이황로 목사님께서 번역하신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가 흰돌 출판사에 의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호주의 Keith Piper 목사님이 지은 <NIV & Its Omissions>를 번역한 것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71
아마 NIV에 대해서는 가장 잘 평가한 책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이황로 목사님의 글이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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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목사님들과 동역자 여러분께,
섬기시는 교회와 사역에 우리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최근에 키이쓰 파이퍼의 "NIV & Its Omissions"의 번역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미 좋은 책들과 자료 사이트들이 있어서 또 새로운 책을 소개할 필요가 있나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주제를 연구하고 어떤 결론을 내리고 확신을 하려면, 적어도 5년 내지는 7년이 걸립니다. 그리고 적어도 20-30권의 책을 읽어야 흠정역이나 한글개역에 대한 견해와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전체 이슈를 간략히 요약하여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면 인용된 책들을 더 공부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바쁘신 목회생활 하다보면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목사님들과 사역자 여러분께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또한 자신의 믿음이나 입장을 변호하고 더 나아가 강하게 확신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분들이 자신이 막연히 알고 있는 것들, 신학교에서도 보고 들은 것들, 자존심과 무지, 교만 등으로 흠정역 또는 한글개역(개정)을 지지하기도 합니다. 물론 목회/사역자로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믿든 연구와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 이슈에 대하여 잘 모르면서 흠정역이나 한글개역을 주장하면 무리라는 것이 제 소견일 뿐입니다. 저도 양쪽 진영의 신학교들을 다 졸업했고, 아직도 양쪽 진영에 훌륭하시고 존경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하지만 이 이슈는 이제는 더 이상 피해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제 견해와 믿음은 이렇습니다.
1. 성경의 총체적인 축자영감, 섭리 보존.2.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이 완전한 말씀이 존재한다. (98%의 신학교가 이렇게 믿지 않음)3. 개역성경(개정개역)의 복음 구절로도 구원받는다. (심지어 천주교, 여호와의 증인, 구약구절만으로도).4. 개역성경(개정개역)의 85%는 흠정역과 차이가 없고 그 부분은 진실한 하나님 말씀이다.5. 개역성경(개정개역)의 7%는 사본 자체의 문제가 있으므로 불완전하며 오류이다.6. 개역성경(개정개역)의 그 나머지는 번역자체의 오류들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개신교에서도 인정).7. 개역성경(개정개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격하시키고 주요 교리들을 약화시킨다.8. 한글 흠정역은 어떤 단어나 문체가 독자의 기호에 맞지 않을 수 있고 Keepbible.com의 어떤 특정한 믿음이 독자와 다를 수 있지만 정확성 면에서는 한글 성경으로 최고이다.9. 개역성경(개정개역)을 쓰는 교회들의 믿음은 예정론, 교회론, 세대주의, 종말론, 성령론 등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10. 세례나 침례 문제, 여집사 문제, 은사주의, 성경적 분리 등은 성경 문제와 비교해볼 때 아무 것도 아니다. 11. 교리에 못지않게 우리의 믿음과 인격과 언행, 교회질서, 목회자의 성경적 권위도 매우 중요하다.12. 오래 전에 성서침례교회들이 한국에서 구원 복음으로 도전하고 바로 잡아 준 것처럼, 이제는 성서/독립침례교회들이 "바른 성경"이 무엇인지 개신교회들에게 소개하고 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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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저의 졸역인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라는 책이 흰돌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일일히 찾아뵙고 인사도 드리며 책을 소개하여 드리면 좋겠는데, 한국에서 나온지라,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번역 판권은 이기석 선교사님이라는 분이 가지고 계시고, 원저자 Keith Piper라는 분은 호주에서 사역하시는 독립침례교회 복음전도자이며 다른 좋은 책들을 쓰신 분이기도 합니다. 출판은 독립침례교회 계통에서 하고자 했지만, 판권을 가지신 분께서 일반 개신교회들 목회자, 신학자들이 봐야 된다고 하는 비젼과 부담을 우선으로 가지셔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양이 방대해서 마지막 교정을 보지 못한 부분이 있어 나중에 그 오자, 탈자, 개신교적 용어 등은 따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추천을 하신 분은 정성구 박사이시며, 총신과 대신의 총장을 지내신 분이고 TR을 믿는 장로교 학자이십니다. 감수/출판을 하신 분 중의 한 분은 장로교회에 많이 알려진 이광복 목사님이시고, 설교학과 종말론에 모두 20만 명 이상에게 세미나를 하신 분이고 지금도 그렇게 하는 분입니다. 종말론은 우리하고는 달리 역사적 전천년설을 믿는 분입니다. 장로교 목사님으로서는 모험과 압박을 감수하시고 이번 일을 추진하셨습니다. 다른 감수자이신 위의 이기석 선교사님과 이광복 목사님은 서로 친구이십니다.
한국에서 원하시는 분들은 흰돌 출판 www.hindol.com 에서 온라인으로 구입하실 수 있고, 아마 22,500원이며 무료배송으로 알고 있습니다.
http://book.hindol.com/prd/detail_cate.php?main_cat_seq=101&ctg_seq=102&prod_seq=489
킹제임스 성경 이슈를 한 책으로 통달 할 수 있고,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아마 반박을 하려든지 찬성을 하려고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제일 빨리 결론에 도달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원저자가 비교한 것들을 일일이 개역성경과도 비교해서 다 찾아 넣고 역주를 달고, 사전까지 다느라고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일반책의 5배 이상 고충).
우리 하나님께서, 교제하는 목사님들과 가정과 사역 위에 은혜와 긍휼하심과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소종 이황로 올림
Hwangro Lee, Pastor Central Baptist Church 201.981.1967.900 Madison Ave, Paterson, NJ 07501.557 Blvd., Hasbrouck Hts, NJ 07604.e-mail: hwangrolee@yahoo.comwww.centralkbc.com
2014-12-03 16:53:12 | 관리자
질문: 최고의 사본들이 요즘 나오는 새 역본들을 뒷받침한다고 하는데요?
답변: 아닙니다. 최고의 사본들은 오히려 「킹제임스 성경」을 뒷받침해 줍니다.
요즘 나오는 새 역본들은 5,000개가 넘는 신약성경 필사본 중 단지 다섯 개 정도에 의해서만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물론 「킹제임스 성경」 비평 학자들은 이 필사본들이 「흠정역 성경」 역자들이 사용한 필사본들보다 낫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것들 중 가장 유명한 두 가지 즉 전적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자산인 ‘바티칸 사본’(Vaticanus)과 ‘시내 사본’(Sinaiticus)은 실수투성이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시내 사본’은 10명이나 되는 다른 작가들에 의해 정정되고 변경되었습니다. ‘바티칸 사본’에서는 매우 조잡한 솜씨의 증거가 발견됩니다. 단어들(Words)과 절(Phrase) 전체가 연달아 두 번 반복되거나 완전히 삭제되어 있습니다. ‘바티칸 사본’ 전체는 펜을 들고 글자마다 수정을 가한 어떤 인물 혹은 인물들에 의해 훼손되었고 또한 그런 인물들의 정체를 규명하기조차 매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두 사본 모두 성경에서는 볼 수 없는 책들 즉 성령님께서 영감으로 주시지 않은 비성경적인 책들인 외경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런 실수들을 잔뜩 갖고 있지만 이 신뢰할 수 없는 필사본들의 재질은 매우 우수합니다. 그 사본들은 질 좋은 동물 가죽 즉 벨럼으로 만들어졌으며 훌륭하게 제본되어 있습니다. 그 사본들의 본문은 전혀 가치가 없지만 그 외양은 실로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책표지로 그 책을 판단할 수 없다.”라는 속담을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그 표지들은 매우 아름다우나 그 본문들은 비난받을 만합니다.
그러나 이같이 잘 알려진 개악(改惡)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신미국표준역」(NASB)이나 「신국제역」(NIV) 같은 많은 새 역본들의 기반이 되었고 그 결과 이런 역본들은 오류투성이로 신뢰할 수 없는 산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킹제임스 성경」에 의해 대표되는 필사본들은 최고의 질을 가진 본문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최고의 사본들이 바로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사용한 사본들임을 알게 됩니다.
2014-12-02 13:31:02 | 관리자
질문: 1611년 이래로 「킹제임스 성경」도 줄곧 개정되어 오지 않았습니까?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5>
대답: 그렇지 않습니다. 개정이 아니라 몇 차례의 교정이 있어 왔을 뿐입니다.
1611년에 탄생된 「흠정역 성경」의 권위를 심하게 흔들려는 비평가들의 최후 배수진 가운데 하나는 소위 개정(改正)이라는 것으로 시비를 삼아 장난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대적들 곧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신자들이 역사적 사실과 사본학적 증거와 성령님께서 이루신 명백한 증거들을 들이대며 자기들의 빈약한 주장을 뒤엎어 버리자 궁극적인 패배를 맛보지 않으려고 그럴 듯해 보이는 이 요새로 도피합니다. 일단 이 요새 안에 들어서면 그들은 자기들의 대적들에 대해 자신 만만해 하고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십니까? 1611년 판입니까, 1629년 판입니까? 아니면 1769년 판입니까?
이 같은 공격에 대해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신자들이 충격을 받고 잠시 어리둥절해하면 그들은 이 혼란한 틈을 타서 재빨리 도망쳐 버립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자기들의 성안에 들어가 성문을 걸어 닫는 순간 그들은 자기들의 요새가 리건(David F. Reagan) 박사라는 사람에 의해 이미 조직적으로 파괴되어 완전히 허물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리건 박사는 미국 테네시 주 낙스빌에 있는 트리니티 침례교회의 목사입니다. 그는 「1611년 킹제임스 성경, 초기 개정 신화」(THE KING JAMES VERSION OF 1611, THE MYTH OF EARLY REVISIONS)라는 책자를 저술하여 「킹제임스 성경」의 초기 수정판에 얽힌 신화 즉 꾸며낸 이야기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폭로했습니다. 다시 말해 리건 박사는 「흠정역 성경」 비평가들의 마지막 피난처를 파괴시키는 일을 훌륭히 수행해 냈습니다. 이에 필자는 그가 발견한 것을 보다 개선시키려 애써야 할 이유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으므로 그의 허가를 얻어 그의 소책자 전편을 여기에 소개하려 합니다.
영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개정 신화(리건)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20
2014-12-02 13:24:56 | 관리자
질문: 킹제임스 성경의 사도행전 12장 4절에 나오는 ‘이스터’ 즉 ‘부활절’은 ‘파스카’라는 단어를 오역한 것이므로 다른 역본들과 같이 ‘유월절’로 번역해야 옳지 않을까요?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2>
대답: 그렇지 않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사도행전 12장 4절의 ‘파스카’를 ‘부활절’로 번역한 것은 정확한 것입니다. 다음의 글이 그것을 잘 설명해 줄 것입니다.
사도행전 12장 4절에서 ‘이스터’(Easter) 즉 ‘부활절’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파스카’(Pascha)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29번 나옵니다. 그중 28번은 주 하나님께서 이집트(애굽)를 지나시며 이집트의 처음 난 모든 것들을 죽이시고(출 12:12) 이스라엘 민족을 400년 간의 종살이로부터 자유하게 하신 날 밤과 연관되어 ‘유월절’(Passover)로 번역되었습니다.
“완전한 성경이 있다.”라는 생각에 반대하는 많은 이들도 ‘Pascha’를 이렇게 번역해 왔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께서 권위를 부여하신 「흠정역 성경」에서 ‘이스터’라 번역된 단어를 발견하고는 「흠정역 성경」도 완전하지 않다는 증거를 포착했노라고 상상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이들을 위해 참으로 좋은 소식이 있는데 그것은 이 문제에서도 그들이 또 틀렸다는 사실입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이스터’는 고대 이교도들의 ‘아스타르테’(Astarte) 축제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이것은 ‘이쉬타르’(Ishtar)로도 알려져 있고 ‘이스터’(Easter)로도 발음됩니다. 이 축제는 항상 4월 하순경에 개최되었는데 사실 초기의 ‘이스터’ 축제는 겨울철이 지난 뒤 땅이 다시 부활하는 것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축제에는 다산과 번식을 기념하는 의식도 수반되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음란 잡지인 「플레이보이」의 상징인 토끼와 달걀 등이 ‘이스터’ 축제일의 상징물로 쓰였는데 그것은 이것들이 번식력 즉 다산으로 매우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이스터’ 축제의 주인공은 여신 ‘아스타르테’였습니다. 이 여신은 성경에서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 렘 7:18; 44:17-25)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담무스(Tammuz, 겔 8:14)의 어미이자 또한 그의 아내였습니다! 이 가증한 축제 의식은 ‘이스터’ 아침에 동틀 녘에 행해지곤 했습니다(겔 8:13-16). 예레미야서와 에스겔서의 기록에서 우리는 이교도들의 ‘이스터’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도 없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문제 제기
유대인들의 유월절은 4월 중순(14일)에 개최되었고 이교도들의 축제였던 ‘이스터’는 같은 달에 좀 더 늦게 개최되었는데 그렇다면 사도행전 12장 4절에서 헤롯이 유대인들의 ‘유월절’이 아닌 이교도들의 ‘이스터’를 언급하고 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만일 헤롯이 구체적으로 유월절을 언급했다면 ‘Pascha’를 ‘이스터’ 즉 ‘이교도들의 부활절’로 번역한 「킹제임스 성경」은 틀렸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정말로 이교도들의 축제 절기인 ‘이스터’를 언급했다면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은 오늘날 인쇄되고 있는 성경 중에서 이 부분을 가장 정확히 번역한 유일한 성경이기에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4절에 있는 ‘이스터’(Easter)에 관한 혼란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우리는 모든 문제에서 우리의 최종 권위가 되는 성경으로부터 조언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이 수수께끼의 자물쇠를 풀 수 있는 열쇠는 4절에서 발견되지 않고 3절에서 발견됩니다.
또 그가 유대인들이 그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았으므로 더 나아가 베드로도 잡으려 하였는데 (그때는 무교절 기간이더라.)
우리가 찾고자 하는 답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무교절과 유월절의 관계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베드로가 ‘무교절 기간’(days of unleavened bread)에 붙잡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행 12:3).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첫째 유월절로부터 조사를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이 절기는 주님께서 이집트의 처음 난 모든 것을 치셨던 밤에 시작되었습니다. 그 날 밤 이스라엘 민족은 양을 죽여서 좌우 문기둥과 인방에 그 피를 바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출 12:4-5). 자, 이제 성경이 첫 유월절과 무교절 즉 ‘누룩 없는 빵을 먹는 기간의 날들’에 대해 무어라 말하는지 살펴봅시다(출 12:13-18).
13 그 피가 너희가 거하는 집 위에 있어 너희를 위해 표가 되게 할지니라.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내가 이집트 땅을 칠 때에 그 재앙이 너희 위에 임하여 너희를 멸하지 아니하리라.
14 이 날은 너희에게 기념일이 될지니 너희가 이 날을 너희 대대로 주를 위한 명절로 지키고 규례에 따라 그것을 영원토록 명절로 지킬지니라.
15 너희는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을 것이요, 첫째 날에 너희 집에서 누룩을 제거할지니 누구든지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누룩 있는 빵을 먹는 혼은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16 첫째 날에 거룩한 집회가 있으며 일곱째 날에도 너희에게 거룩한 집회가 있으리니 이 두 날에는 각 사람이 먹는 일 외에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너희 중에서 오직 그 일만 할지니라.
17 너희는 무교절을 지킬지니 이는 바로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왔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대대로 이 날을 지키되 규례에 따라 영원토록 지킬지니라.
18 첫째 달 곧 그 달 십사일 저녁부터 그 달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누룩 없는 빵을 먹을 것이요,
출애굽기 12장 13절에서 우리는 유월절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유래를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양의 피가 문에 표시되어 있는 모든 집을 ‘넘어가시리라’(pass over)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여기에 나오는 ‘Passover’는 ‘넘어감’을 의미하며 따라서 ‘유월절’은 ‘넘어간 날’입니다. 우리는 유월절 이후에(출 12:13-14) 유대인들이 7일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함을 보게 됩니다. 이 기간은 ‘누룩 없는 빵을 먹는 날들’이며 그래서 무교절이라 부릅니다! 18절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무교절을 준수해야 하는 기간이 4월 14일부터 21일까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1)
이 종교적인 절기들은 민수기 28장 16-18절에 더욱더 명백히 언급되고 있습니다.
첫째 달 십사일은 주의 유월절이며 또 이 달 십오일은 명절이니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을 것이며 첫째 날에는 거룩한 집회로 모일 것이요, 너희는 그 날에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16절에서 우리는 유월절이 그 달의 14일만을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날 아침 즉 15일부터는 ‘누룩 없는 빵을 먹는 날들’ 즉 무교절이 시작됩니다(신 16:1-8).
1 아빕 월을 준수하여 주 네 하나님께 유월절을 지키라. 아빕 월에 주 네 하나님께서 밤에 너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셨느니라.
2 그러므로 너는 양과 염소 떼나 소 떼에서 취하여 주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곳에서 주 네 하나님께 유월절 희생물을 드리되
3 그것과 아울러 누룩 있는 빵을 먹지 말고 이레 동안은 누룩 없는 빵 곧 고난의 빵을 그것과 아울러 먹을지니라. 이는 네가 이집트 땅에서 급히 나왔기 때문이니 이로써 네 평생 동안 네가 이집트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4 이레 동안에는 네 모든 지경 내에서 누룩 있는 빵이 보이지 않게 할 것이요, 또 첫째 날 저녁때에 네가 희생물로 드린 고기 중 조금이라도 온 밤이 지나도록 남겨 두어 아침까지 이르게 하지 말며
5 또 유월절 희생물을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주시는 모든 성문 안에서 드리지 말고
6 오직 주 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곳에서 네가 이집트에서 나오던 때 곧 저녁에 해 질 때에 거기서 드리며
7 주 네 하나님께서 택하실 곳에서 그것을 구워 먹고 아침에 돌이켜서 네 장막으로 갈 것이니라.
8 너는 엿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고 일곱째 날에는 주 네 하나님께 엄숙한 집회로 모이며 그 날에 아무 일도 하지 말지니라.
1절의 아빕 월은 지금의 태양력으로 4월인데 원래는 히브리 민간력으로 7월이었지만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기 위해 종교력의 1월로 삼은 달입니다(출 12:2). 위의 신명기 구절에서 우리는 유월절 양이 그 첫날밤에 희생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신 16:1). 동틀 녘(겔 8:13-16)이 아니고 해질 때(신 16:6)에 유월절을 기념했다는 것은 주목할 가치가 있는 사실입니다. 역대기하 8장 13절에서 우리는 무교절이 연중 유대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3대 절기 중 하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명령에 따라 날마다 정한 비율로 안식일과 월삭과 한 해에 세 번 지키는 엄숙한 명절들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장막절에 드렸더라.
유월절은 항상 무교절 전에 있었습니다. 역대기하 30장에서 보면 정월에 유월절을 지킬 수 없었던 유대인들은 이월에 지키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날짜는 항상 같았습니다.
그때에 둘째 달 십사일에 유월절 어린양을 잡으니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며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고 번제 헌물을 가지고 주의 집에 이르러 … 예루살렘에 있던 이스라엘 자손이 크게 즐거워하며 이레 동안 무교절을 지켰고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은 날마다 주를 찬양하며 큰 소리 나는 악기로 주께 노래하였고 (대하 30:15, 21) 포로로 사로잡혀 갔던 자들의 자손이 첫째 달 십사일에 유월절을 지켰으니 … 이레 동안 기쁘게 무교절을 지켰으니 이는 주께서 그들을 기쁘게 하시고 또 아시리아 왕의 마음을 그들에게로 돌리사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집의 공사를 할 때에 그들의 손을 강하게 하셨기 때문이더라. (스 6:19, 22)
이 문제에 대해 성경이 말씀하는 바를 조사한 결과 사건의 순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첫째, 4월 14일에 양을 잡습니다. 이것이 유월절입니다. 14일 이후에 행하는 그 어떤 사건도 유월절이라 불리지 않습니다.
둘째, 4월 15일 아침부터 무교절로 알려진 기간 즉 ‘누룩 없는 빵을 먹는 날들’이 시작됩니다.따라서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유월절이 언급될 때마다 이 명절이 4월 14일 저녁에 ― 결코 한 주간 내내가 아님 ― 먹어야 하는 음식 즉 유월절 어린양과 관련된 명절임에 주의해야 합니다. ‘누룩 없는 빵을 먹는 날들’ 즉 무교절 ‘기간’(days)이 유월절(day)로 언급된 적은 결코 없습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주님의 천사가 하룻밤 동안에 이집트를 넘어갔지 결코 잇따라서 7일 밤 동안 넘어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자! 이제 사도행전 12장 3-4절을 봅시다.
또 그가 유대인들이 그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았으므로 더 나아가 베드로도 잡으려 하였는데 (그때는 무교절 기간이더라.) 그가 베드로를 붙잡아 감옥에 가두고 군사가 넷씩인 네 소대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으니 이것은 이스터가 지난 뒤에 그를 백성에게로 끌어내려 함이더라.
3절에서 우리는 베드로가 무교절 기간(4월 15-21일 사이)에 체포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때는 무교절 기간이더라.”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그때는 이미 유월절(4월 14일)이 지난 뒤였습니다. 헤롯이 이 구절에서 유대인의 절기인 유월절을 언급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음 번 유월절은 일 년 후에야 오기 때문입니다! 즉 그는 1년 동안 베드로를 감옥에 넣어 두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며칠 있으면 이교도들의 축제 성일인 ‘이스터’가 오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헤롯은 ‘하늘의 여왕’을 숭배하던 이교도 로마인이었습니다. 그는 순수한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유대인들의 명절인 유월절을 지킬 까닭이 없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가 유대인들을 화나게 할까 봐 유월절이 끝나길 기다렸을 것이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생각에는 두 가지 큰 오류가 있습니다.
첫째, 베드로는 더 이상 유대인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유대교와 절교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헤롯의 행동에 화를 낼 까닭이 없었습니다.
둘째, 헤롯이 유대인들이 종교적 축제일에 사람을 죽이는 것을 원치 않으리라고 생각했으므로 유월절이 지나기를 기다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미 유월절 기간 중에 예수님을 죽인 바 있습니다(마 26:17-19, 47). 그들은 또한 헤롯이 야고보를 죽인 것을 보고 흥분했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대중들은 종교적 축제 기간 중에 ― 축제 이후에가 아니라 ― 얼마든지 난폭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로마인으로서 헤롯의 위치를 생각해 보아야만 하며 또한 헤롯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날을 기념하는 일로 매우 유명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마 14:6-11). 사실 마태복음 14장에서 우리는 헤롯이 자기의 생일 축하 기간 중에 하나님의 사람을 기꺼이 죽이려 했음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12장에서 헤롯이 유월절이 이미 지난 뒤인 무교절 기간에 베드로를 체포했음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누룩 없는 빵을 먹는 날들’ 즉 무교절 기간은 4월 21일에 끝났을 것이고 그 즉시 이교도 헤롯이 지키던 이교도들의 축제 즉 ‘이스터’가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헤롯은 ‘이스터’까지 기다리기 원했기 때문에 베드로를 무교절 기간 중에 죽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유대인(마 26:17-47)이나 로마인(마 14:6-11)이나 다 종교적 축제 기간 중에 사람을 죽이려고 했으므로, 헤롯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축제 기간 중에 ‘베드로를 죽이는 즐거움’을 갖지 못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대신에 그는 자기 자신이 지키던 이교도의 축제일인 ‘이스터’까지 기다려서 흥분된 분위기 속에서 베드로가 죽는 것을 보려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성령 충만한 우리의 성경 즉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이 ‘파스카’를 ‘이스터’ 즉 ‘이교도들의 부활절’로 바르게 번역한 것이 하나님의 큰 섭리였음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확실하게 유대인들의 유월절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실로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다른 모든 성경에서 사도행전 12장의 ‘이스터’를 ‘유월절’로 바꾼 것은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며 동시에 그 당시 상황의 진실을 흐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2014-12-02 13:08:43 | 관리자
개역성경, NIV, 공동 번역, 새 번역, 현대인의 성경, 여호와의 증인 성경, NASB 등은 한결같이 ‘9-20절은 없음’이라고 각주 표시를 했다.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 이 구절을 온전히 담고 있다.
과연 16장의 마지막 12구절(9-20절)은 원래 성경에 없는 것인가?신학자들의 주장대로 후대에 누가 이 부분을 첨가한 것인가?
마가복음 16장 1 안식일이 지났을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그분께 기름을 바르려고 이미 향품을 사 두었더라. 2 주의 첫날 매우 이른 아침 곧 해 돋을 때에 그들이 돌무덤에 가며 3 자기들끼리 이르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돌무덤 입구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고 4 바라볼 때에 돌이 이미 굴려져 있음을 보았으니 이는 그 돌이 심히 컸기 때문이더라. 5 그들이 돌무덤에 들어가 긴 흰옷을 입은 한 청년이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놀라매 6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님을 찾는구나. 그분은 일어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그들이 그분을 두었던 곳을 보라. 7 그러나 너희 길로 가서 그분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그분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그분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그분을 볼 것이라고 고하라, 하니라. 8 그들이 떨며 놀라서 급히 나와 돌무덤에서 도망하고 두려워서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9 ¶ 이제 예수님께서 주의 첫날에 일찍 일어나신 뒤에 전에 친히 몸속에서 일곱 마귀를 내쫓아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시니라. 10 그녀가 가서 그분과 함께하던 사람들이 애곡하며 슬피 울고 있을 때에 그들에게 고하였는데 11 그들은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과 그녀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2 ¶ 그 뒤에 그들 중의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그분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라. 13 그들이 가서 남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고하되 그들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14 ¶ 그 뒤에 열한 제자가 음식 앞에 앉았을 때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것과 마음이 강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그분께서 일어나신 뒤에 그분을 본 자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더라. 15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16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으려니와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내 이름으로 그들이 마귀들을 내쫓으며 새 언어들로 말하며 18 뱀들을 집어 올리며 어떤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들이 나으리라, 하시더라. 19 ¶ 이렇게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뒤에 하늘로 올려져서 영접을 받으시고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시니라. 20 그들이 나아가서 모든 곳에서 복음을 선포하매 [주]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며 따르는 표적들로 말씀을 확증해 주시니라. 아멘. 문맥을 살펴보자.
1-8절: 1절의 여인들이 예수님의 몸을 찾으러 갔다가 그분을 발견하지 못함, 천사의 말을 듣고 두려워서 말도 못함(8).9-11절: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고 그녀가 사람들에게 부활 소식을 전함12-13절: 역시 부활 소식14-18절: 믿지 아니함을 책망하시고 복음 선포 사명을 주심19절: 승천20절: 제자들의 행적
막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복음은 기쁜 소식, 복된 소식: 그러므로 1장부터 16장까지는 복된 소식을 가져다주시는 예수님의 행적유대인들의 예수님 거부, 십자가 처형, 죽어서 무덤에 들어감
만일 8절이 끝이면 결코 복된 소식이 아니다.부활과 승천과 복음의 위임과 실행이 있어야 복음이다.
9절 전에 무슨 일이 있는가? 여인들이 무서워서 떨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복음인가?
9-20절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 복음의 핵심인 부활과 승천과 복음의 위임과 실행이 있다.이것이 빠지면 복음이 아니다.
그런데 유명 신학교, 목사 모두 9-20은 원래 없어야 한다고 한다.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지식인에 끼지 못한다.
사본들의 증거
마가복음을 포함하는 사본은 약 1,500개, 그중 2개만 없고 다 12구절을 포함한다.
사본들의 99.9%가 12구절을 포함한다.
삭제한 대표 사본은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이다.
위의 사진은 클라우드 선교사가 대영 박물관에서 시내 사본을 찍은 것이다.시내 사본은 12구절이 들어갈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고 지운 흔적이 있다.
즉 원래 12구절이 있는데 누군가가 임의로 지운 것이다. 우리의 랜드마크인 성경을 변개시키려는 자들이 있다: 마귀와 그의 추종자들과 학자, 목사들
하나님은 한 책을 쓰셨으나 마귀의 술수로 인해 거짓이 첨가된 성경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랜드마크(지계표)인 킹제임스 성경을 지켜야 한다.
네 조상들이 세워 놓은 옛 지계표를 옮기지 말라(잠22:28).
끝으로 성경 사본학과 학식의 깊이를 알려면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83
2014-11-15 14:40:35 | 관리자
안녕하세요?
70인역 비평 자료를 올립니다.
http://keepbible.com/KJB2/View/2Rt?stype=snc&keyword=70%EC%9D%B8%EC%97%AD
영어로 되어 있지만 필요한 분들이 있을 줄 알아 올립니다.
샬롬
2014-04-12 21:54:1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공지한 대로 <왜 킹제임스 성경인가?>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45
이 소책자는 김재근 목사님과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홍보 위원회를 결성하여
매달 모으는 돈으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홍보 위원회에서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개역성경분석> 책자(10,000부 이상)와 <킹제임스 성경 팸플릿>(20,000장 이상)을 만들어 주셔서 지금까지 아주 유용하게 홍보와 광고용으로 잘 사용해 왔습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0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30
이번에 <왜 킹제임스 성경인가?> 소책자를 내면서
홍보 위원회의 김재근 목사님과 여러 형제/자매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혹시 <왜 킹제임스 성경인가?> 소책자가 필요한 분들은 order@KeepBible.com으로 주문해 주시면 보내겠습니다.
이메일 주문만 받습니다.
10부 이상 받아서 주변 분들에게 나누어 주실 분들만
성함, 주소, 핸드폰 번호를 명기하여 이메일로 신청하기 바랍니다.
<개역성경분석> 소책자나 성경 팸플릿이 필요하면 같이 주문하셔도 됩니다.
(국내 주문만 배송하며 배송비는 무료입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4-03-14 15:42:13 | 관리자
많은 이들이 왜 성경 신자들은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이 바른 성경이라고 주장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성경 보존과 관련된 여러 가지 복잡한 주제들에 관해 논해야 하므로 우리는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최대한 명쾌하고 단순하게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네 조상들이 세워 놓은 옛 지계표를 옮기지 말라(잠22:28).
이 말씀에서 지계표(landmark)란 측량사가 사용하는 용어로서 보통은 땅의 경계를 표시하는 어떤 물건을 뜻한다. 지계표 즉 랜드마크는 멀리서 보고 위치 파악에 도움이 될 만한 대형 건물 같은 것을 말하기도 하고 어떤 지역을 대표하거나 구별하게 하는 표시를 뜻하기도 하며 항해자를 위해 사용되는 육상 경계를 가리키기도 한다. 측량에서 랜드마크는 대단히 중요하므로 마음대로 랜드마크를 치우거나 변경하는 것은 여러 지역에서 불법이다.기독교는 그 자체에 권위를 부여하고 믿음과 실행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한 가지 문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성경전서(The Holy Bible)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행하는 모든 것의 절대적이고도 최종적인 기초가 성경이므로 우리는 반드시 성경이라는 이 랜드마크가 확실한지 혹은 변경되지는 않았는지 늘 신경 써야 한다.지난 2,000여 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복음이 선포되며 성경을 믿는 모든 교회들이 거의 모든 지역에서 항상 공통적으로 수용해 온 그리스어 본문과 히브리어 본문, 그리고 이것들에서 번역된 역본들만을 사용해 왔다. 이런 본문은 과거의 거의 모든 교회가 받아들였기에 보통 수용 본문(Received Text)이라 불리기도 하며 또 공통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의 공인(共認) 본문이라 불리기도 한다. 지난 20세기 동안 성경 신자들은 자기들 시대에 존재하던 그리스어/히브리어 사본들을 모았는데 이것들의 99%는 거의 모든 면에서 서로 일치한다. 이처럼 절대다수를 이루는 다수 사본들이 바로 이 공인 본문의 기초가 되었다.1604년에 영국의 제임스 왕(제임스 1세)은 햄튼 코트 회의에서 제네바 성경, 비숍 성경 등 기존 성경들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보통 사람들의 손에 공통 성경을 들려주어야 한다는 여러 사람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새로운 성경을 번역해서 출간할 것을 허락하였고, 그 결과로 1611년 5월 2일에 태어난 것이 바로 왕의 권위를 부여받은 킹제임스 성경이다. 제임스 왕은 영국 교회에서 50여 명의 당대 최고의 그리스어/히브리어 학자들을 선정하여 번역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들은 사도 시대부터 그 당시까지 성경대로 믿는 모든 성도들이 거의 모든 곳에서 공통적으로 수용하여 사용해 온 그리스어/히브리어 사본들과 거기에서 이미 번역된 여러 역본들을 부지런히 비교하고 검토하여 새로운 성경을 번역하였다. 이들이 만들어 낸 킹제임스 성경은 1611년에 반포된 이후로 지난 400년 동안 영어를 사용하는 모든 지역에서 가장 많이 인쇄되고 가장 많이 읽히며 가장 널리 보급된 보편적 성경이 되었다. 물론 킹제임스 성경의 출간 이전에도 공인 본문에 근거하여 번역된 여러 종류의 영어 성경이 존재하였고 또 성경 출간 빈도도 높았지만 킹제임스 성경의 출간 이후로는 그밖에 다른 영어 성경의 번역 자체가 모두 자연스레 중단되었다. 킹제임스 성경을 읽은 독자들 사이에서 “이 성경은 왕의 권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성경이다.”라는 확신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광고나 홍보도 없이 하나님께서 승인해 주신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권위역 성경>(Authorized Version)으로 온 세상에 자유로운 행로를 가지며 뻗어 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고 오대양 육대주를 복음화시켰으며 그 이후에 나온 여러 나라의 수많은 성경 번역의 기초가 되었고 대부분의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교리들의 근간이 되었다.성경의 내용 번역은 물론 신학 용어 번역에 있어 만인이 수긍할 수 있는 기본 역본이 없다면 상당한 혼돈과 분파를 초래할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킹제임스 역본이라는 걸출한 역본이 있어서 1611년 이래 수백 년 동안 성경 역본과 신학의 기본 용어를 제공하는, 만인이 수긍하고 공인하는 기본 자료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여 왔는바 이 점에 있어서 킹제임스 역본의 공헌은 잊히지 아니할 것이다. 상술하면 킹제임스 역본은 영어는 물론 세계 각 나라 언어로 성경이 번역될 때 참고가 되는 제1의 통일자료로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영어의 세계적 발흥과 아울러 킹제임스 역본의 내적 우수성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이다(톰슨대역 한영성경, 기독지혜사, 부록 1, pp.4, 1989).사실 현시대에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성경 전쟁의 실체는 다수 본문만을 수용해 온 기독교와 소수 본문만을 고집해 온 천주교의 대립이다.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의 대적자 마귀가 있다면 마귀는 당연히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키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서고 쓰러짐은 성경책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 보존의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시키려는 마귀의 집요한 공격이 세상의 창건 이후로 늘 존재해 왔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예수님의 지상 사역 이후로 신약성경의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선포되면서 그에 비례해 말씀을 변개시키려는 마귀의 시도 또한 점점 더 강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마귀의 공략은 주로 역사 속에서 천주교회로 알려진 바빌론 음녀 교회를 통해 실현되어 왔다.사도 시대 이후로 마귀는 오리겐, 유세비우스, 제롬 등의 부패한 서기관들을 이용하여 행위 구원과 마리아 숭배를 가르치는 천주교 교리에 적합하도록 부단히 성경 본문을 변개시켜 왔다. 주후 500년경부터 약 천 년 동안 왕권마저 능가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는 1517년에 마르틴 루터라는 수도승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무엇보다도 그가 공인 본문을 근거로 번역한 독일어 성경에 힘입어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면서 교황의 천주교를 초토화시켰다. 1534년 영국에서는 헨리 8세가 수장령을 통해 천주교를 몰아내고 영국 국교회를 국가의 종교로 세움에 따라 천주교는 힘을 잃게 되었다. 또한 1588년에는 당시 세상을 지배하던 천주교 국가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 해군에 의해 대패하였고, 엘리자베스 여왕 이후로 영국은 온 세상에 세력을 확장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세상을 통치하게 되었다. 보통 사람들의 손에 성경이 주어지면 천주교의 무지와 미신과 맹신이 다 드러나므로 교황과 그의 추종자들은 중세 암흑시대에 성경을 금서(禁書)로 만들어 보통 사람들이 볼 수 없게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라스무스, 틴데일, 루터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보통 사람들의 손에 성경이라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영적 무기를 들려주셨다.특별히 성경은 1450년경에 발명된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를 통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전 유럽에 보급되었다. 이처럼 보통 사람들의 손에 성경을 들려주려는 하나님의 섭리와 이에 순응하며 목숨을 내걸고 일을 수행한 신실한 성도들 노력의 금자탑이요 결정체가 바로 1611년에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의 공통어인 영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킹제임스 성경이다. 종교개혁에 이어 루터의 독일어 성경, 디오다티의 이탈리아어 성경, 올리베땅의 프랑스어 성경, 레이나/발레라의 스페인어 성경, 그리고 영어 킹제임스 성경 등이 유럽 대부분 국가의 보통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면서 천주교 안에 팽배한 미신의 정체가 드러나자 로마 카톨릭 교회는 거의 회복되지 못할 정도의 치명타를 입게 되었다. 이에 천주교회는 잃어버린 세력을 회복하기 위해 1540년에 로욜라를 중심으로 하는 예수회(Jesuit)를 형성하여 반종교개혁 운동을 시작하였는데 지난 500년 동안 예수회는 유럽에서 ‘예수 없는 예수회’라 불릴 정도로 악한 일을 많이 하여 심지어 세속 역사가들에게까지 손가락질받기도 했다. 또한 천주교회는 성경 본문에 관하여는 본문 비평(Textual criticism)이라는 도구를 개발하고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포장하여 프로테스탄트 신학교에 집어넣기 시작하였다.잘 알다시피 인쇄술의 발명 이전에는 사람들이 일일이 성경을 손으로 써서 사본들을 만들어야 했으므로 사람들의 손으로 필사된 사본들을 만드는 작업에는 필사자들의 피로 누적 등으로 인해 실수가 나올 수 있었다. 본문을 확정하는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현존하는 사본들을 살펴보고 그런 사본들 사이의 차이를 발견한 뒤 잘못 표기된 단어나 첨가 혹은 삭제된 단어가 있으면 서로 의견을 모아 정확한 독본이 무엇인지를 결정한다. 에라스무스나 베자 혹은 스테파누스와 엘지버 형제들 같은 이들은 선한 의도로 다수 사본에 대한 확신을 가진 채 이런 작업을 수행하여 천주교를 제외한 모든 교회가 1,500년 동안 공통적으로 수용한 공인 본문을 만들어 냈다. 그러므로 사본들을 비교하여 정확한 본문을 만드는 기초 작업은 선한 일이며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그런데 본문 확정 작업이 직업주의에 오염된 학자들의 손에 넘어가 본문 비평이라는 학문이 될 때에는 큰 문제가 생긴다. 이런 본문 비평가들의 가장 큰 문제는 역사 속에서 소실된 성경 본문을 자기들의 힘으로 복원할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음이다. 본문 비평 학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본문을 섭리로써 보존해 주심을 믿지 않으며, 본인들의 노력으로 인간들의 창작물에 불과한 다른 고대 문학 작품을 비평하듯이 성경 본문을 비평하려 한다. 다음은 한국의 유명 본문 비평 학자의 말이다.새로운 사본들의 지속적인 발견과 본문 비평이라는 학문의 발전으로 점점 더 고대의 훌륭한 본문을 회복하는 길이 열리고 있다. 성서의 본문이 변한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성서의 본문이 변하기에 우리는 성서를 우상화하지 않는다. 성서를 하나님으로 삼지 않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성서 자체가 하나님이 아니라 성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모습이 계시된다는 것이다. 또한 성서의 본문이 변하기에 성서가 살아 움직여 우리에게 늘 새로운 말씀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죽은 텍스트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텍스트이다. 성서는 가지고 다니면서 받들어 모셔야 할 책이 아니라, 읽고, 명상하고,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책이다(<신약성서, 우리에게 오기까지>(대한기독교서회, 민경식 지음, 176쪽)).성경 신자들의 눈에 이런 글을 쓴 사람은 불신자와 비이성적인 사람으로 보이지만 세상 사람들이나 세상과 타협하는 대부분의 교회는 이런 사람을 위대한 신학자로 추앙한다. 현재 많은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본문 비평은 실은 천주교회가 종교개혁을 무력화하려는 목적으로 도입한 도구로서 학문의 상아탑이라는 미명하에 기독교 안에서 대단히 큰 성공을 거두었다.천주교회의 본문 비평에는 내재된 원칙이 있다. 그것은 곧 후대 사본들에는 필사자들의 실수가 축적될 가능성이 크므로 오래된 사본일수록 성경의 원문에 가깝다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본문 비평가들은 후대의 사본들이 아무리 많아도 상대적으로 수가 훨씬 적은 오래된 사본에 더 많은 신뢰와 권위를 준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그들이 가장 신뢰하는 사본은 바티칸 도서관에 보존된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산 동방 정교회 수도원에 보존된 ‘시내 사본’이다. 이것들은 주후 4세기경에 필사된 것으로 여겨진다.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초기 교회들이 천주교회의 바티칸 사본이나 시내 사본 같은 소수 사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거의 모든 곳에서 공인 본문 사본만을 사용하였고 그 사본이 닳아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면 조심스레 그것을 필사하고 불태워버렸다. 이런 이유로 초기 교회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던 오래된 사본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워낙 많은 교회들이 이런 사본들만을 사용하였으므로 이런 계통의 사본들은 현존하는 사본들의 99%를 차지할 정도이며 유럽과 아프리카, 팔레스타인 등의 기독교가 전파된 거의 모든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된다.반면에 대음모자 콘스탄틴 황제의 꼭두각시였던 유세비우스가 황제의 명령을 받아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바티칸 사본이나 시내 사본 등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채 바티칸 도서관과 시내 수도원에 고이 간직되어 왔다. 또한 초기 교회 성도들은 재정이 넉넉하지 않아 값싼 파피루스에 대부분의 사본들을 필사하였기에 이것들을 오래 보존하기 어려웠으나 바티칸 사본 등은 벨럼이라는 가죽에 필사되어 장기간 보존될 수 있었다. 개역성경이나 현대 역본들의 각주에는 종종 “더 좋은 사본 혹은 더 신뢰할 만한 사본 혹은 더 오래된 사본에는 이 구절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언급되는 ‘더 좋은 사본’, ‘더 신뢰할 만한 사본’, ‘더 오래된 사본’은 한결같이 천주교회의 소수 사본을 가리킨다.학문이라는 가면을 쓰고 신학교로 들어온 본문 비평은 19세기 후반에 절정을 이루었고, 영국에서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웨스트코트(B. F. Westcott)와 호르트(F. A. Hort) 박사에 의해 널리 파급되었다. 이들은 천주교 사상과 이교주의, 그리고 독일의 이성주의에 물든 자들로서 다윈의 진화론을 찬양하고 마리아 숭배를 옹호하며 유령 길드 같은 심령술 단체를 만들어 자유주의 이교도 신학을 전파하였다. 이들은 쎄이어(J. H. Thayer)와 스미스(V. Smith) 같은 유니테리언 이단들과 함께 영국 성경 개정 위원회를 조직한 뒤 킹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된 공인 본문을 교묘하게 비평하면서 자기들만의 독특한 이론으로 수정 본문을 만들고 여기에 근거하여 1881년에 <영국개역성경>(English Revised Version, ESV)을 출간하였다. 이들이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을 근거로 공인 본문을 개정하여 만든 부패한 본문은 보통 ‘비평 본문’ 혹은 ‘수정 본문’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마귀의 사주를 받은 이 케임브리지 학자들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국개역성경>은 빛을 보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고, 그것의 미국 판인 <미국표준역>(American Standard Version, ASV) 역시 1901년에 출간되었으나 성도들에게서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사라져버렸다.그런데 한국의 개역성경은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이론이 신학문으로 추앙받던 시기에 부패한 ASV를 주요 원천으로 해서 번역되었기에 이런 불신 학자들의 잘못된 사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즉 최근에 킹제임스 성경이 번역/출간되기 전까지 한국에서는 복음이 전파된 이래로 공인 본문에서 번역된 성경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바로 이것이 한국 성경들의 근본적인 문제이다.비록 ESV, ASV 등이 실패하였지만 천주교의 영향을 받은 신학자들이 뿌려놓은 성경 의심 사상은 그 이후로 신학문이라는 미명하에 줄기차게 프로테스탄트 신학교들로 파고들어가 지금은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신학교가 천주교회가 만든 ‘비평 본문’을 성경 원어 강좌의 본문으로 채택하여 가르치고 있다. 또한 이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학교나 학계에서 설 곳이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거의 모든 원어 학자들이 한목소리로 천주교의 소수 본문을 옹호하고 있다.한편 1611년에 출간된 킹제임스 성경은 마귀의 이러한 거센 공격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영국과 미국이 지배하는 영어 세상에서 ‘유일한 성경전서’(The Holy Bible)로 자리를 굳혀 왔다. 이에 마귀는 본문 비평과 학자들의 힘만으로는 성경 전쟁에서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는 이 세상 미디어를 지배하는 언론 재벌 머독(R. Murdoch)이 소유한 존더밴(Zondervan)이라는 출판사를 이용하여 1970년경부터 <신국제역>(New International Version, NIV)이라는 사역(私譯) 성경을 만들어 냈다. 머독은 하퍼 콜린스라는 세속 출판사를 운영하며 <사탄경>(Satanic Bible)을 출간하고 있고 최근에는 토마스 넬슨 출판사를 매수하여 뉴킹제임스 역본(NKJV)을 출간하고 있다(이름에는 킹제임스가 들어가지만 이것 역시 부패된 성경임). 그는 상업적 이윤 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경제인이다. 그러므로 그는 성경 사업으로 이득을 취하기 위해 수많은 광고와 함께 대규모 신학교의 교수들을 집필진으로 활용해 NIV를 홍보하면서 성경 시장을 서서히 잠식해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 결과 40년이 지난 지금은 현대 역본들이 미국 성경 시장의 50% 정도를 잠식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세상 교회는 배도의 길을 걸을 것이고 마귀가 장악한 천주교회는 계속 득세하여 사람들을 유혹할 것이므로 부패된 현대 역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한 자들을 계속해서 낚아챌 것이다. 그러므로 말세의 배도하는 때에 천주교와 또 천주교를 배경으로 하는 현대 역본들의 세력을 꺾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시해 놓으신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므로 거의 일어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말세에는 천주교가 주도하는 이런 대규모 배도가 당연히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아무리 마귀가 날뛰고 성경을 변개시켜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영원한 구원을 흐릿하게 하며 재림과 휴거와 천국의 소망을 불투명하게 만들어도 성경 신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확고하게 믿음을 지킬 수 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공중에서 강림하셔서 우리를 하늘로 끌어올리실 때까지 하나님께서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로 완전하게 보존해 주신 성경이 지금 우리 손에 있기 때문이다.성경 전쟁에서 한국은 미국/영국과 조금 상황이 다르다. 미국/영국은 약 400년 동안 완전한 성경이 독주하다가 19세기 말부터 마귀의 현대 역본들이 출간되면서 야금야금 그 세력을 갉아먹는 상황에 놓여 있다. 반면에 한국은 처음부터 천주교 사본에 근거한 개역성경이 독보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겨우 몇 년 전부터 킹제임스 성경이 번역/출간되어 이제 막 성경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또한 한국에는 성경만을 믿음과 실행의 절대적 근거로 삼으려는 성도들이 상당히 많다. 이런 성도들이 성경 전쟁의 본질을 이해하고 전쟁에 뛰어들게 되면 개역성경이 가져다준 ‘한국적 기독교’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킹제임스 성경에 의한 ‘성경적 기독교’가 세워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이런 진리를 먼저 깨달은 성도들이 최선을 다해 바른 성경을 한국의 성도들에게 알려 이 땅에 바른 교회가 세워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위에서 성경의 역사를 살펴보았으므로 이제는 왜 우리가 킹제임스 성경만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이라고 믿는지 몇 가지 이유를 기술하고자 한다.
1.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입에서 나온 모든 단어들을 보존해 주시겠다고 친히 약속하셨다.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는도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은즉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시리요? 그분께서 이르셨은즉 그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시리요?(민23:19)하나님은 우리 같은 연약한 창조물이 아니시다. 그분은 친히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는 분이시며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분이시다. 이 하나님이 성경 말씀에 대해 무어라고 하셨는가?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단어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단어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사람은 빵으로만 살 수 없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단어]이 있어야 살 수 있다고 하셨다.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4:4).지금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의 모든 단어가 이 땅에 존재하기 때문이다.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들을 확실히 보존해 주시기 위하여 성경을 마무리하시면서 성경 변개자들을 엄중히 심판하시겠다고 경고까지 주셨다.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계22:18-19). 이처럼 성경 변개자들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오늘날 완전하게 보존된 성경이 만국 공통어로 보존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계시록 22장의 말씀처럼 현대 역본들을 지지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변개를 옹호하는 목사들과 학자들은 엄중한 심판의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다.우리는 하나님의 권능과 말씀 보존의 약속에 따라 이 땅에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담은 완전한 성경이 적어도 한 권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자, 이제 여러분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개역성경과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들고 비교해 보기 바란다. 또한 영어 킹제임스 성경과 NIV, NASB, NKJV, 리빙 바이블, 메시지 등을 비교해 보기 바란다. 일단 개역성경(개역개정)을 포함한 현대 역본들은 신약성경에서만 적어도 13구절을 완전히 삭제하고 이를 ‘없음’으로 표기해 놓았다(이 책자의 뒤표지 참조). 정직한 독자라면 ‘없음’이 없는 성경과 ‘없음’이 있는 성경들을 비교한 뒤 그것들이 다 같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190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몇 구절이 빠지거나 단어가 삭제되거나 첨가되어도 기독교의 근본 교리에는 변함이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들과 목사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글 다음에 나오는 성경 분석을 읽어보면 누구라도 그들의 이런 주장이 거짓임을 금세 알 수 있다. 또한 지금 우리는 교리의 변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입에서 나온 모든 단어들을 지금 이 시간까지 보존할 수 있는 분이신지 묻고 있는 것이다. 그분에게 이런 능력이 없다면 어떻게 그분께서 무에서 유로 온 우주와 그 안의 모든 것을 6일 동안 창조하실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죽어 땅속에 묻혀 썩어서 몸의 모든 원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 어떻게 예수님께서 공중에서 강림하실 때에 수없이 많은 성도들 몸의 원소들을 다 모아서 그들을 일으켜 세우실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께는 부활이나 창조보다는 말씀 보존이 훨씬 더 쉬운 일이 아닌가?성도로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본인이 가지고 있는 성경이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인지 아닌지 반드시 검증해 보아야 한다. 자신의 내면에 쌓인 편견을 버리고 양심적으로 검증하면 할수록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이 하나님의 모든 단어를 담고 있고 그 외의 다른 역본들은 부실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있으면 어린아이라도 그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이 문제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이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며 평생을 연구해야 하는 일도 아니다. 모든 편견을 내려놓고 단 몇 시간만 투자하면 누구라도 성경의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2. 킹제임스 성경은 왕의 명령에 따라 왕의 권위로 만들어진 유일한 성경이다.이런 사실이 완전한 성경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의아해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현대 역본들은 여러 교파의 다양한 신학적 배경과 이권을 가진 자들을 편집위원으로 두고 있다. 그러므로 위원들은 당연히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의 신학과 배경에 맞게, 또한 출판업자의 의도에 맞게 본문을 번역하려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의도하신 원래 뜻이 아니라 집필자들의 의견이 반영된 번역이 최종 산물로 나올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킹제임스 성경에는 ‘음행’(fornication)이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나오며 성도들이 음행을 피해야 한다고 경고한다(갈5:19; 엡5:3 등). 그런데 NASB 등의 현대 역본들은 이것을 ‘부도덕’(immorality)으로 바꾸어 버렸다. 부도덕과 음행은 완전히 다른 말이다. 킹제임스 성경은 동성애 하는 자들을 ‘sodomites’ 즉 소돔 성에서 동성애 하던 자들이라고 분명히 부르지만 NKJV 등의 현대 역본들은 이것을 ‘비뚤어진 자들’(perverted persons)로 애매모호하게 바꾸어 버렸다(왕상14:24 등).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번역하면 동성애나 음행이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이 시대에서는 활발한 성경 판매를 기대할 수 없으므로 저들은 의도적으로 이렇게 단어들을 바꾸어 버렸다. NIV의 편집자 중 하나인 몰렌코트 박사는 자신이 여성 동성애자임을 온 세상에 스스럼없이 밝히고 있으며 하나님은 여성들끼리 혹은 남성들끼리 순수하게 사랑하는 것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그러나 킹제임스 성경은 왕의 명령에 의해 만들어졌으므로 번역자들이 사사로운 감정이나 신학을 번역 과정에서 집어넣을 수 없었다. 더욱이 번역하는 내용을 번역자들끼리 서로 돌아가며 수십 번 일일이 검토하였으므로 사적인 번역이 생길 가능성도 없었다. 또한 제임스 왕 자신이 그리스어와 히브리어에 능통하였으므로 종종 번역을 검토하였다. 그러므로 사사로운 감정으로 본인들의 특정 신학이나 사상을 본문에 집어넣는 일은 불가능하였다. 그들은 단지 연약한 도구로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있는 그대로 번역하여 보통 사람들에게 전달하려 하였을 뿐이다.킹제임스 성경이 출간되기 전인 1560년에 스위스의 제네바에서는 칼빈의 추종자들이 제네바 성경이라는 프로테스탄트 성경을 만들었다. 제네바 성경 역시 공인 본문에서 번역되었지만 칼빈의 신정정치 개념을 여기 저기 집어넣어 결국 사적인 성경이 되고 말았다. 신앙의 자유를 찾기 위해 1590년경부터 미국에 넘어간 청교도들이 가져간 성경이 바로 제네바 성경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칼빈주의라는 비성경적인 사적 해석이 들어간 제네바 성경에 복을 주시지 않았고 오히려 미국에서는 그 이후에 들어온 킹제임스 성경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으면서 모든 미국 사람들의 헌법과 정신세계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런 면에서 왕의 명령에 의해 교리적 편견 없이 번역된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로 보존된 성경임을 역사가 보여 준다.제임스 왕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합병하여 초대 영국의 왕이 된 사람이다. 그에게는 여러 가지 치적이 많지만 그는 역사 속에서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인물로 남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딴 성경을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 남겨 주셨고, 그 결과 그는 세상의 어떤 왕보다도 사람들에 의해 많이 이름이 불리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제임스는 야고보라는 유대인들의 이름을 영어로 표현한 것이다. 야고보는 야곱을 나타내는데 이 야곱은 곧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은 곧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성경’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이보다 더 좋은 이름이 어디에 있을까?3. 킹제임스 성경은 지난 400년 동안 단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는 성경이다.이것은 실로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요즘과 같은 컴퓨터 시대에 워드프로세서로 작성되는 현대 역본들 안에는 많은 실수들이 있어서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판이 바뀌곤 한다. NIV, NASB, NKJV, 리빙 바이블 등 현대 역본들이 모두 다 이런 같은 과정을 겪었고 개역성경도 수십 차례의 변화를 겼었으며 심지어 최근에 나온 개역개정판도 나오자마자 수차례 판이 바뀌고 있다. 킹제임스 성경은 철자법 변화를 반영한 것을 제외하고는 지난 400년 동안 단 한 번도 개정되지 않고 거친 세파를 이겨내며 지금까지 완전한 본문을 전달하고 있다. 이런 성경이 역사 속에서 단 하나라도 있었단 말인가?4. 모든 현대 역본들은 하나같이 다 킹제임스 성경만을 반대한다.영어권에서는 NIV, NASB, NKJV, 리빙 바이블, 메시지 등 수백 종류의 역본들이 있다. 이런 역본들은 늘 “본 성경은 킹제임스 성경보다 좋다.”는 광고와 함께 출간된다. 어떤 현대 역본도 킹제임스 성경 이외의 다른 성경을 비교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킹제임스 성경을 공략하는 것이 그런 역본들의 가장 큰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성경 표지의 이름은 달라도 그 역본들이 다 천주교 사본에서 나온 사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황은 가만히 보좌에 앉아 성경 전쟁을 관람하면서 조금 보수적인 사람들에게는 NASB를, 킹제임스 성경의 냄새가 나는 성경을 원하는 자들에게는 NKJV를, 젊은이들에게는 NIV를, 아이들에게는 리빙 바이블을, 성경을 소설처럼 읽기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바이블을,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의역성경인 앰플리파이드 바이블(Amplified Bible)을 던져 주고 있다. 이들이 무슨 성경을 보든지, 그것이 킹제임스 성경이 아닌 현대 역본이기만 하면, 마귀나 교황이나 천주교에게는 모두가 남는 장사이다. 번역의 형식과 표현, 겉표지가 다를 뿐 내용은 다 같기 때문이다.5. 킹제임스 성경은 형식적 일치를 이룬 정직한 성경이다.많은 학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사상들을 전달해 주신다고 믿으며 또 그렇게 가르친다. 우리는 이것을 사상 영감이라고 말하며 이런 것을 믿는 분들은 성경 보존이란 사실 사상의 보존이며 따라서 번역은 사상만 전달되도록 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사용하는 번역 기법은 니다(Eugene Nida)에 의해 파급된 의역이다. 이들은 대충 뜻만 알아듣게 전달하면 임무를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경의 대표적인 예가 리빙 바이블과 메시지이다. 또한 NIV도 절반은 의역이다. 마가복음 14장 5절에 보면 한 여인이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그분께 부었다. 그 향유의 가치를 그리스어 원문은 ‘300 데나리온’이라고 했는데 NIV는 ‘1년 치 봉급’이라고 했다. 이들은 NIV의 이런 의역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1 데나리온이 하루 품삯이면 1년에서 안식일과 절기를 빼면 300 데나리온 정도 번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NIV의 번역이 현대인들에게 의미가 훨씬 더 분명하게 전달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입에서는 ‘1년 치 봉급’이 아니라 ‘300 데나리온’이라는 단어들이 나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하거나 빼거나 수정하지 않고 정확하게 ‘300 데나리온’이라고 번역한 뒤 그 뜻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성경은 무작정 쉽게 술술 읽을 수 있는 소설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단어들을 담은 책이다. 그러므로 그런 단어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성경이 아니다.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상들이 아닌 단어들에 숨을 불어넣어 주셨다는 축자 영감에 기초하여 번역되었고, 수용 언어인 영어가 허락하는 한 원어의 단어와 영어의 단어가 서로 일치되며 문장의 형태까지도 일치되도록 번역되어 원문의 형식까지 그대로 보존된 성경이다. 원어에서 수용 언어로 성경이 번역될 때는 부가적인 단어들이 불가피하게 첨가되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외국 문서를 번역해 보면 누구라도 이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번역을 위해 자기들이 첨가한 단어들에 대해서는 이탤릭체로 표시하였다. 그러므로 성경 독자들은 어떤 것이 원어 성경에 있던 단어이며 어떤 것이 번역자들이 첨가한 것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이처럼 킹제임스 성경은 형식적 일치 기법에 따라 번역되었으므로 독자는 원어 성경이 없어도 원어와 똑같은 형식을 유지하며 축자적으로 번역된 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단어들을 그대로 읽고, 그것들을 원어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 하나님의 말씀들로 받아들일 수 있다.그러나 모든 현대 역본들은 첨가된 단어들을 이탤릭체로 구분하지 않았고 많은 경우 의역되었으므로 독자들은 이런 역본의 단어들이 실제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인지 확인할 수 없다.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은 이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단지 어감이나 읽힘성을 향상시키려고 많은 구절을 짧게 축약하고 의역했기 때문에 이런 성경을 읽는 독자들은 하나님 말씀의 본래 뜻을 알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한국 성도들에게는 바른 신학이 없다. 그러나 우리말로 번역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축자 번역의 원칙에 따라 우리말이 허용하는 최대한도 내에서 성실하게 직역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을 있는 그대로 담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기존 성경들과 비교해 보면 하나님께서 실제로 무어라고 말씀하셨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6. 킹제임스 성경만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성경은 없다.마귀는 예수님의 출현을 막기 위해 온갖 꾀를 썼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가 충만히 찼을 때에 구약성경에 예언된 여자의 씨로서 유대 땅에 탄생하셨다. 그분의 출생 이후에 마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분을 죽이려 하였으나 다 실패하였고,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뒤 장사되었다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시자 계략을 바꾸어 신약성경에서 그분의 신성을 축소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래서 신약성경에서 마귀가 가장 크게 변개시킨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며 그 결과 현대 역본들은 킹제임스 성경에 비해 예수님의 신성을 심각하게 약화시키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성경 중에서 킹제임스 성경만큼 예수님을 존중히 여기는 성경은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유일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이 성경에 큰 복을 주셨다. 다음 표가 보여 주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구절들을 몇 개만 비교해 보면 어린아이라도 쉽게 이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이런 역사적 사실들에 근거하여 우리는 완전히 보존된 하나님의 성경이 지금 우리 손에 있음을 확신하며 그 성경이 바로 킹제임스 성경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누가 완전한 성경을 보여 달라고 말하면 거리낌 없이 자신 있게 이 성경을 보여 줄 수 있다. 이런 확신 없이 믿음 생활하는 것은 드넓은 우주에서 갈 곳을 모른 채 홀로 떠도는 별똥별과 같고 망망대해를 나침반과 지도 없이 떠도는 배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로그스던 박사의 회개의 고백이 글을 마치면서 우리는 NASB를 만든 로그스던 박사(Dr. Frank Logsdon)의 회개의 고백을 소개하려 한다. 로그스던 박사는 시카고 무디 교회에서 2년간 목회를 한 훌륭한 목사요, 성경학자였다. 그는 자기 친구인 사업가 록크맨의 권유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생각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1901년 판 ASV를 살려 NASB로 만드는 작업을 하였다. 그는 여러 학자들을 찾아다니며 번역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였고 번역이 완성된 뒤 직접 서문을 쓰기도 하였다.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는 자기기 만든 작품인 NASB가 실제로 마귀가 교회를 파괴하는 무기임을 늦게나마 깨닫고 NASB와 관련된 자기의 행적을 회개하는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였다.
http://www.youtube.com/watch?v=wZBeIr1wKGY
하나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이제 나는 신미국표준역(NASB)과 관련된 모든 것으로부터 손을 떼려 한다. 사실 나는 하나님께 큰 죄를 지었다. 우리는 NASB라는 잘못된 성경의 기초를 놓았다. 사실 나는 이 역본의 형식을 결정했고, 번역자들 중 몇몇과 이야기도 나누었으며, 그들과 함께 앉아 일했고 서문을 썼다. 참으로 나는 하나님께 큰 죄를 지었다. 지금 나는 이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NASB는 잘못된 것이며, 잘못되어도 매우 많이 잘못된 것이다. 아,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이 역본이 발간된 뒤에 여러 가지 질문들이 쏟아져 들어오자 나는 참으로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처럼 그런 질문들을 하는 이들을 비웃곤 했다. 그런데 언젠가 그런 질문들에 대해 답을 하려고 노력하던 중에 나는 NASB가 매우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이 같은 질문과 비평들을 무시할 수 없으며 반박할 수도 없다. NASB 안에서 삭제된 내용은 참으로 나를 두렵게 했다…… 그런데 그런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라 너무나 많았다. 과연 우리는 성경을 이같이 변개시킨 일에 사탄의 속임수와 개입이 있었음을 의심해 봐야만 하지 않겠는가?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뒤에 나는 곧바로 NASB를 출간한 록크맨 재단의 설립자이자 내 절친한 친구인 록크맨에게 편지를 써서 내가 지금 NASB와 관련된 모든 것과의 관계를 끊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든 NASB는 참으로 내게 큰 슬픔을 가져다주었고, 큰 혼란에 빠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더욱더 복잡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제 나는 NASB와 관련된 그 어느 것도 원하지 않는다. 처음에 내가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부패된 그리스어 본문에 속아 넘어가는 듯했으나 지금은 다시 원상 복귀해서 참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있듯이,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훌륭한 지도자들이 이 같은 마귀의 속임수에 걸려 넘어지지 않은 채 굳게 말씀을 지키고 있다. 사실 심히 변개된 그 본문에 눈을 돌리는 것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마귀의 속임수에 걸려 결국에는 넘어지고 만다. 이제 나는 무디 성경 학교의 학장인 조지 스위팅 박사에게도 진실을 이야기하려 한다.이제 독자께서는 권위역본 킹제임스 성경이야말로 절대적으로 옳은 성경이라고 말해도 된다. 과연 얼마나 옳을까? 100% 옳다. 이제 나는 하나님의 영께서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을 인도하셨음을 확신한다. 세상의 다른 모든 이가 당신과 의견을 달리한다 해도 이제 당신은 스스로 서야만 한다.NKJV를 포함한 모든 현대 역본들은 영지주의 이단인 오리겐이 편집한 ‘부패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본문’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계22:18-19의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수천 개의 단어를 변개하였다. 계시록은 말세 교회의 예표인 라오디게아 교회를 보여 주는데 이 교회는 자유주의 교회이고 음탕한 교회이다(계3:14-22). 궁극적으로 이 배도한 교회는 유혹을 받아 속아 넘어가서 계시록 17장에 나오는 저 음녀, 즉 자주색 옷을 입고 성도들의 피에 취한 채 짐승 위에 타고 있는 로마 카톨릭 체제와 하나로 엮이게 된다. 이런 혼합 체제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순수한 말씀을 천주교회의 부패한 말씀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은 지금 우리 눈앞에서 현저하게 일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진실을 보여 주면 오히려 화를 내는 수많은 이들을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역사를 살펴보면 천주교회의 일원인 히틀러가 천주교회를 심히 사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제국과 천주교회를 연합시키려 하였고 이 일을 쉽게 이루려고 멀러 주교(Bishop Ludwig Muller)를 시켜 죄나 은혜 같은 단어들을 제거한 독일어 성경을 만들게 하였다. 이 성경의 그리스도는 사람의 영혼과 영원한 생명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이 땅에서 히틀러와 함께 최상의 삶을 누리는 것만 가르쳐 주었다. 성경 변개의 목적은 바로 이것이다. 처음부터 마귀는 “그래, 하나님이 정말로 그렇게 말씀하시더냐?”라고 이브에게 물으면서(창3:1) 의심의 씨앗을 사람의 마음에 뿌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부패시키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살짝 의심을 불어넣은 뒤 그는 새로운 계시를 담아, 먹기에 좋게 보이는 말들을 도입하여 사람을 멸망으로 집어넣었다. 그 이후로 이런 유형의 마귀의 계략은 변하지 않았고 지금도 마귀는 새로 발견된 사본들을 근거로 번역했다는 새로운 역본들을 수백 개나 만들어 여전히 사람들을 멸망 속으로 집어넣고 있다. 단언하건대 새로운 계시는 없다. 하나님은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지난 400년간 자신의 모든 말씀들(words)을 보존하셨다.- NASB 편집위원 로그스던 박사(Dr. Frank Logsdon)
이런 이유들로 인해 우리는 옛날부터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천주교회의 모진 핍박을 받으면서도 굳게 세워 놓은 킹제임스 성경이라는 저 랜드마크를 그대로 붙들고 있으며,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 자손들에게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 랜드마크를 물려줄 것이다.네 조상들이 세워 놓은 옛 지계표를 옮기지 말라(잠22:28).
2014-03-11 11:56:41 | 관리자
Candle의 용례
킹제임스 성경에 보면 candle이 단수로 16번, 복수로 1번, candlestick이 단수로 41번, 복수로 12번 나옵니다.
현대 영한사전에 가서 candle을 찾아보면 첫째 뜻이 양초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20세기 영한사전을 가지고 KJV를 번역한 이들 - 말씀보존학회- 의 성경에는
이 단어들이 초, 촛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Oxford 사전에 가서 보면 candle의 첫째 뜻이 다음과 같습니다.
candle: A source of artificial light, 인위적인 빛의 근원
이런 뜻이므로 candle은 등잔, 초 등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는 candle이 어떤 뜻일까요?
이것은 앞뒤 문맥에 의해 결정됩니다.
성막의 candlestick은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또 빛을 내는 등잔대와 그것의 비품과 등잔들과 등잔 기름과(출35:14)The candlestick also for the light, and his furniture, and his lamps, with the oil for the light
여기에 보면 분명하게 candlestick에는 기름이 사용되었습니다(출35:8 참조).
스가랴서 11장에는 이것이 더욱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11 그때에 내가 응답하여 그에게 이르되, 그 등잔대(candlestick)의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이 두 올리브나무는 무엇이니이까? 하고 12 또 내가 다시 응답하여 그에게 이르되, 두 금관을 통해 자기들 밖으로 금 기름(oil)을 비우는 이 두 올리브나무 가지는 무엇이니이까? 하니(슥4:11-12)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candle은 초가 아니라 등잔이며 candlestick은 촛대가 아니라 등잔대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2&write_id=1354
https://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163
또 rump는 엉덩이인데 왜 흠정역은 꼬리라고 했느냐고 묻는 분이 있습니다.
역시 20세기 영한사전으로 번역된 KJV 성경의 영향을 받아 이런 질문이 나온 것입니다.
20세기 사전에는 rump의 1차 뜻이 엉덩이입니다.
그러나 Oxford 사전에는 1차 뜻이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rump: That part of the body (of an animal or bird) from which the tail springs; †the tail; hence by extension, the hind-quarters, posteriors, buttocks.
그러므로 rump는 흠정역처럼 엉덩이가 아니라 꼬리 혹은 꼬리가 달린 부분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꼬리를 좋아하는 것처럼 유대 사람들도 양꼬리를 최고의 음식으로 여겼습니다.
영어 KJB의 17세기 영어를 20/21세기 영한사전으로 번역하면 종종 뜻이 다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어의 뜻을 편견 없이 연대별로 기록해 놓은 옥스퍼드 영어 사전을 참조하는 것이 성경 번역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옥스퍼드 사전도 축소판이나 현대판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원판 그대로를 하드카피로 사려면 대단히 비싸기도 하고 20여권을 서재에 두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것은 DVD를 사서 컴퓨터에 설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안의 방대한 자료를 언제나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한번 구매하면 평생 쓰므로 투자하는 것이 좋습니다.
http://www.amazon.com/English-Dictionary-Edition-Version-Windows/dp/0199563837
성경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PC Study Bible 중 최상위 버전을 하나 사 두면 평생 단 맛을 빼먹을 수 있습니다.
http://www.amazon.com/PC-Study-Bible-Version-Professional/dp/1565145127/ref=sr_1_6?ie=UTF8&qid=1392181765&sr=8-6&keywords=pc+study+bible
이런 일에는 투자가 매우 중요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
2014-02-12 14:08:5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떤 때는 성경을 읽기보다 낭독을 듣는 것이 유익할 때가 있습니다.
영어의 경우 알렉산더 스커비(Alexander Scourby)의 킹제임스 성경 낭독이 가장 유명합니다. 아이들도 들으면 좋습니다.
http://www.audio-bible.com/bible/
이것을 소박한 성경 영상과 함께 담은 DVD도 있습니다.
http://www.amazon.com/Holy-Bible-Complete-narrated-Alexander/dp/B000OPP9Y8
홈스쿨링하는 아이들의 경우에도 매우 유용할 것입니다.
아마 유튜브에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2013-12-06 18:39:00 | 관리자
원어 성경을 읽으며 단어를 찾거나 공부를 하다보면 스트롱 코드( Strong Code)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단어마다 매겨진 번호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스트롱 코드라 불리는 단어 번호표입니다.
다음은 공인본문 신약성경 마태복음 1장 1절입니다.
여기서 각 원어 단어에 붙은 번호가 바로 스트롱 코드입니다.
19세기 말 미국의 신학자이던 제임스 스트롱(James Strong 1822 – 1894)은 성경 연구의 편의를 위해서 구약과 신약의 원어 어근 단어마다 번호를 붙여놓고 어느 성경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100여 명의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뽑아서 색인 사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총 히브리어 어근 단어(root word) 8674개와 그리스어 어근 단어 5523개를
KJV 성경을 기초로 해서 사용된 예를 찾아보기로 편찬해 놓은 책이
Strong's Concordance(스트롱의 콩코던스)입니다.
예를 들어 아벨(Abel)이라는 명사를 찾기 원하면 다음 그림에서 보듯이 처음부투 끝가지 성경에 나오는 아벨이이 다 나열 되어 있습니다(오른쪽 컬럼 중간 아벨 항목).
http://www.amazon.com/Strongs-Exhautive-Concordance-Super-Series/dp/0785250565/ref=sr_1_2?ie=UTF8&qid=1382515498&sr=8-2&keywords=strong%27s+concordance
보시면 알지만 1920쪽이나 되는 이 책 안에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거의 모든 단어들이 번호로 목록화되어 들어 있습니다.
20년 전에는 이렇게 두꺼운 책을 가지고 성경을 성경으로 푸는 연구를 하였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에 스트롱 코드가 들어 있어서 이런 책이 필요치 않습니다.
자세한 것은 위키피디아를 보기 바랍니다.
http://en.wikipedia.org/wiki/Strong's_Concordance
제임스 스트롱 (James Strong 1822 – 1894)은 미국 감리교 목사요, 성경학자였지만 킹제임스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만든 원어 연구 도구를 좋은 방향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현대 역본 역자들의 전철을 밟기 쉽습니다.
2013-10-23 17:04:08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