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검색
  • 전체게시글 검색

검색결과

  • 사이트검색
검색결과 약866개
안녕하세요?   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그것은 썩는 것 가운데서 뿌려지고 썩지 않는 것 가운데서 일으켜지며 수치 가운데서 뿌려지고 영광 가운데서 일으켜지며 연약함 가운데서 뿌려지고 권능 가운데서 일으켜지며(고전15:42-43) So also is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It is sown in corruption; it is raised in incorruption:   여기의 그것은 몸을 말합니다.   샬롬
2023-06-27 10:51:28 | 관리자
안녕하세요?   그런즉 이와 같이 그것은 원하는 자에게서 나지도 아니하고 달리는 자에게서 나지도 아니하며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롬9:16). So then it is not of him that willeth, nor of him that runneth, but of God that sheweth mercy   여기의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샬롬
2023-06-27 10:48:29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 주여, 우리 불법들이 우리를 대적하여 증언할지라도 주께서는 주의 이름을 위해 그것을 행하소서. 우리의 타락이 많으며 우리가 주께 죄를 지었나이다(렘14:7).   O LORD, though our iniquities testify against us, do thou it for thy name's sake: for our backslidings are many; we have sinned against thee.   여기의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것, 청원하는 것' 즉 하나님이 비를 내려주시는 것을 뜻합니다.   샬롬
2023-06-27 10:45:52 | 관리자
안녕하세요? 요즘 한 분이 히3:14절의 시제 문제에 대해 물어서 잠시 글을 드립니다. 개역: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흠정역: 이는 우리가 우리의 확신의 시작을 끝까지 확고히 붙들고 있으면 우리가 그리스도께 참여한 자들이 되었기 때문이니라. 개역은 끝까지 붙들고 있으면 구원받는 자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흠정역은 이미 참여한 자들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영어 KJV와 NIV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KJV: For we are made partakers of Christ, if we hold the beginning of our confidence stedfast unto the end; NIV: We have come to share in Christ if we hold firmly till the end the confidence we had at first. 슈퍼바이블의 원전 분해(그리스어 분석 사전)을 보면 영어 KJV의 ‘are made’는 완료형 동사입니다. 즉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NIV 등도 모두 완료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NASB는 have become이라고 NIV보다 더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NASB: For we have become partakers of Christ, if we hold fast the beginning of our assurance firm until the end,  그러므로 흠정역의 번역이 당연히 맞습니다. 그러면 신학적으로 이 두 번역은 어떤 차이를 가져올까요? 개역의 번역은 우리의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끝까지 버텨서 끝까지 가야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이것은 천주교의 믿음 + 행위 구원 교리(과정 신학)를 지지합니다. 반면에 그리스어 원어나 KJB는 지금 우리가 지키고 있다면 이미 우리의 구원은 끝이 났다는 것을 뜻합니다.  바로 위에 있는 히3:6은 흠정역이 올바름을 확인해 줍니다. 흠정역: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집을 다스리는 아들로서 신실하셨으니 우리가 확신과 소망의 기쁨을 끝까지 굳게 붙들면 우리가 그분의 집이니라(히3:6)   But Christ as a son over his own house; whose house are we, if we hold fast the confidence and the rejoicing of the hope firm unto the end.   우리는 이미 그분의 집입니다. 즉 우리의 구원은 끝이 났습니다. 이것을 집이 될 것이라고 하거나 되고 있다고 하면 성경의 구원관에 큰 혼란이 생깁니다. 한편 말씀보존학회도 흠정역과 비슷하게 번역하였지만 이미 끝난 것이 아니라 진행되고 있다고 번역하였습니다. 한글킹: 이는 우리가 처음의 확신을 끝까지 확고하게 붙들면 그리스도께 참여한 자가 되기 때문이라. 이렇게 된 데는 are made가 완료형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현재형으로 번역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면 천주교의 과정 신학 구원이 생기게 됩니다. 1611년 KJV는 이미 완료되어 이루어진 것을 are made, am come 등으로 표현합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을 보기 바랍니다. 흠정역: 내가 율법이나 대언자들의 글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나는 폐하러 오지 아니하고 성취하러 왔노라. KJV: Think not that I am come to destroy the law, or the prophets: I am not come to destroy, but to fulfil. 이런 부분을 현재형으로 생각해서 “...페하러 오고 있는 줄로 생각하지 말라”로 번역하면 안 됩니다. 여기의 am come도 그리스어 단어 분석 사전을 보면 당연히 완료형입니다. 무엇이 옳은지는 여러분이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샬롬
2023-04-10 10:54:45 | 관리자
안녕하세요? 요즘 일반 교회에 다니는 분께서 킹제임스 성경을 읽으면서 잠21:12의 번역이 역본들마다 왜 서로 다르냐고 묻기에 잠시 답을 드립니다.    개역: 의로우신 자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환난에 던지시느니라 흠정역: 의로운 사람은 사악한 자(단수)의 집을 지혜롭게 깊이 살피나 하나님께서는 사악한 자들(복수)의 사악함으로 인해 그들을 거꾸러뜨리시느니라. 개역은 의로우신 자를 하나님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면에 흠정역은 앞부분은 사람, 뒷부분은 하나님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원어의 문제가 아니라 번역의 문제입니다. 영어 KJV와 NIV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KJV: The righteous man wisely considereth the house of the wicked: but God overthroweth the wicked for their wickedness. NIV: The Righteous One takes note of the house of the wicked and brings the wicked to ruin. 영어 KJV는 앞부분은 사람, 뒷부분은 하나님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면에 NIV는 The Righteous One을 하나님으로 보고 앞과 뒤 전체를 하나님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런 문제 역시 이전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주석을 보면 좋습니다. https://biblehub.com/commentaries/proverbs/21-12.htm KJV는 앞부분에서 man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하나님은 아닙니다. 의로운 사람은 악한 자들의 조속한 멸망 등을 유심히 보고 판단하면서 살고 하나님은 그들을 멸절시킨다는 뜻입니다. 대개 Gill 그리고 그 위의 Poole 등의 주석은 성경을 자기 뜻대로 고치지 않고 해석하려고 합니다. 이들은 성경 변개가 이루어지기 전인 약 300년 전에 살던 분들이니 이분들의 주석을 참조하시면 많은 경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문제가 생길까요? 영어 KJV를 보면 man과 God이 이탤릭체로 되어 있습니다. 즉 이 두 단어는 히브리 성경 본문에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에 능통했던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히브리 문장의 구조를 파악하여 man, God이 있어야만 뜻이 통함을 보고 이 단어들을 넣은 뒤 이탤릭체로 정직하게 표기하였습니다. 한편 말씀보존학회도 흠정역과 비슷하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단수와 복수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한글킹: 의로운 사람은 악인들(복수)의 집을 현명하게 숙고하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함을 인하여 악인들(복수)을 넘어뜨리시느니라. 무엇이 옳은지는 여러분이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샬롬
2023-04-10 10:30:5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요즘 일반 교회에 다니는 분께서 킹제임스 성경을 읽으면서 잠16:1의 번역이 역본들마다 왜 서로 다르냐고 묻기에 잠시 답을 드립니다.    개역: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흠정역: 사람이 마음으로 예비하는 것과 혀로 대답하는 것은 주로부터 오느니라. 개역은 앞부분은 사람이 하고 뒷부분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흠정역은 둘 다가 주님으로 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원어의 문제가 아니라 번역의 문제입니다. 영어 KJV와 NIV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KJV: The preparations of the heart in man, and the answer of the tongue, is from the LORD. NIV: To man belong the plans of the heart, but from the LORD comes the reply of the tongue. 영어 KJV는 둘 다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되어 있고 NIV는 개역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영어 주석들이 들어 있는 Biblehub로 가서 Benson, Gill 등의 주석을 보면 킹제임스 성경대로 둘 다가 주님으로부터 온다고 보는 것이 맞음을 알 수 있습니다. Benson: The preparations of the heart in man, &c. — As we read this verse, it teacheth us a great truth, that we are not sufficient of ourselves to think, or speak, any thing of ourselves, that is wise and good, but all our sufficiency is of God, who is with the heart and with the mouth, and works in us both to will and to do, Php 2:13; Psalm 10:17. But most read it otherwise, namely, thus: The preparation of the heart is in man, he may contrive this and the other; but the answer of the tongue — Not only the delivering of   이 구절은 우리에게 다음을 가르쳐 준다: 우리 사람은 심지어 지혜롭거나 좋은 것 등을 스스로 생각하거나 말하기도 어려운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의 완전함 혹은 충분함은 하나님에게서 온다. 빌2:13을 보라. “자신의 선한 기쁨에 따라 너희 안에서 일하사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우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그대로 번역하였습니다. 한편 말씀보존학회는 개역처럼 번역하였습니다. 한글킹: 사람이 마음으로 준비하여도 그 혀의 대답은 주께로부터 나느니라. 무엇이 옳은지는 여러분이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샬롬
2023-04-10 10:04:11 | 관리자
안녕하세요,  한 분이 다음과 같은 것을 문의하였기에 간단히 답을 드립니다. ---------- 저는 최근 킹제임스흠정역 읽기에 열심인 학생입니다. 킹제임스 흠정역이 원전에 충실한 번역이라고 해서 원전은 못 읽으니 킹제임스 흠정역을 읽으면서 원전을 읽는 듯한 경험을 하고 있답니다. 간혹 무슨 뜻인지 의아할 때는 히브리어 원전을 검색해 보고 있는데요, 그러다가 히브리어랑 다른 뜻을 가진 단어들을 몇 개 찾고 왜 이렇게 번역된 건지 궁금한 점이 생겨서 문의를 드리게 됐습니다. 에스겔 16장 38절에는 "또 내가 혼인을 깨고 피를 흘리는 여자들을 심판하는 것같이 너를 심판하여 격노와 질투 속에서 네게 피를 주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혼인'은 히브리어 원전에서 '나아프'라고 되어 있더라구요, 나아프는 간음이란 뜻을 갖는 단어인데 왜 킹제임스 흠정역에서는 ‘혼인을 깨다’라고 번역이 된 건지 궁금합니다. KJV에서 'break wedlock'이라고 번역되어 있어서 '혼인을 깨다'라고 한 것 같은데 다른 부분에서는 나아프를 간음이라고 번역했더라구요. 왜 여기에서는 ‘혼인을 깨다’로 번역된 건지 궁금합니다.   다른 주석도 찾아 읽어 보고 다른 성경들도 읽어 봤는데 대부분 간음이라고 번역되어 있더라고요. 너무 궁금합니다. 꼭 좀 답변 부탁드립니다. 답변 ---------- 안녕하세요? 말씀하신 대로 그 단어는 히브리어 스트롱 번호 5003이고 나아프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이 단어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본 어근;‘간음을 범하다’; 상징적으로 ‘배교하다’: -간음자(여자), 간음을 범하다, 혼인이 파기된 여자들(복수) 이 단어는 31회 사용되었으며 대다수가 ‘간음하다’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유의할 것이 있습니다.   단순히 간음했다고 하면 혼인이 깨진 것이 아닙니다. 간음하면서도 얼마든지 혼인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혼인이 깨졌다는 것은 간음 등의 이유로 이혼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에스겔 대언자가 말하는 유다의 상태는 이미 간음을 수도 없이 범해 ‘혼인이 깨진 상태’에 있으므로 KJV는 이 단어를 ‘혼인을 깨다’(break wedlock)로 바르게 번역하였습니다. 항상 KJV는 옳고 다른 성경들은 거기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냥 기계적으로만 번역하면 안 됩니다.  모든 히브리/그리스 단어에는 몇 가지 뜻이 있고 그중에서 가장 합당한 것을 찾아 번역해야 합니다. 그 점에서 KJV는 완벽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02-02 13:31:57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영어와 원어의 차이 그리고 이로 인한 단수 복수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며칠 전에 외국에 사시는 한 분이 디도서 1장 1절 번역에 대해 질문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의 믿음에 따라, 하나님의 성품을 따르는 진리를 인정함에 따라   Paul, a servant of God, and an apostle of Jesus Christ, according to the faith of God's elect, and the acknowledging of the truth which is after godliness;   질문의 핵심은 the faith of God's elect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습니다.   God’s elect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단수)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복수)이냐?   이분은 James Knox 목사님의 설교를 듣곤 하며 최근에는 그분이 소개한 다른 미국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는데 이분은 the faith of God's elect의 elect가 단수이며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고 하면서 그분의 설교가 맞는 것 같다고 하며 질문하였습니다.   즉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갈2:20과 매칭이 되게).   사실 영어로는 elect라는 단어가 단수인지 복수인지 구분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어 공인 본문을 사용하는 슈퍼바이블에 가서 원어 분해를 보았습니다.   elect: 1588  ejklektov"   eklektos  {ek-lek-tos'} 1586에서 유래;‘뽑힌’, (함축적으로)‘마음에 드는’, 택함을 받은, 선출된 <막 13:20>형. chosen; 남성 복수   즉 elect라는 말은 남성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택하신 자들이 되어야 맞습니다.   이런 데가 히브리서 12장 23절에도 있습니다.   총회와 하늘에 기록된 처음 난 자들의 교회와 모든 것의 [심판자] 되시는 [하나님]과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들과   To the general assembly and church of the firstborn, which are written in heaven, and to God the Judge of all, and to the spirits of just men made perfect,   저 역시 킹제임스 성경을 지지하는 어떤 목사님이 이 구절의 the firstborn을 처음난 자들(복수)이 아니라 처음난 자(단수)로 보아야 하며 처음난 자 혹은 처음난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역시 슈퍼바이블의 공인 본문을 가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firsrborn: 4416  prwtotovko"   prototokos  {pro-tot-ok'-os} 4413과 5088의 대체어에서 유래; 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먼저 태어남’(일반적으로 먕사로서), 처음난 <롬 8:29; 골 1:15>형. firstborn; 남성 복수   이 단어 역시 남성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2011년 400주년 기념판과 2021년 마제스티 에디션은 단복수에 관한 이런 점에서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마제스티 에디션에서는 영어로 볼 때 단수 복수가 애매모호한 단어들을 모두 원어로 가서 확인하여 원어가 단수면 단수, 복수면 복수로 표기하였습니다.   영어는 원어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단수 복수를 구분하기 어렵다고 해도 영어 번역은 완벽합니다. 그렇게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나 미국 독자들이 영어만 가지고 단복수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강해를 하면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을 가지고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2011년 400주년 기념판: 그런즉 자녀들은 살과 피에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의 일부를 취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Forasmuch then as the children are partakers of flesh and blood, he also himself likewise took part of the same; that through death he might destroy him that had the power of death, that is, the devil;   여기에는 살과 피가 나옵니다. 그런데 영어 중간에 the same이 나옵니다. 이것을 400주년 기념판에서는 ‘같은 것’이라고 단수로 번역하였습니다.      원어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the same: 846  aujtov"   autos {ow-tos'} 불변사 au<아무>【아마 일정한 ‘방향없는’바람의 개념으로  109의 어간과 유사】(‘뒤편’)에서 유래;(재귀대명사)‘자신’, 3인칭(홀로 혹은 1438과 합성어로)으로 사용, 역시 기타 인칭(본래적 의미로는 인칭대명사와 함께)으로 사용, 848과 비교 <마 3:11;눅 3:23;행 10:26>대. self, him, it, her, the same; a)강조적 용법  ;자신(self) b)인칭대명사의 3인칭 ;그, 그녀, 그것c)한정적인 용법 ;동일한, 바로 그 (the same), 중성 복수   즉 여기의 the same은 중성 복수로서 살과 피 두 개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복수로 표현하였습니다.   마제스티 에디션: 그런즉 자녀들은 살과 피에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친히 같은 것들에 참여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베드로전서 3장 18절도 마찬가지입니다.   400주년: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로운 자(단수)로서 불의한 자(단수)를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가려 하심이라.   For Christ also hath once suffered for sins, the just for the unjust, that he might bring us to God, being put to death in the flesh, but quickened by the Spirit:   영어로만 보면 the just, the unjust가 단수인지 복수인지 구분하기 어렵지만 원어로는 분명하게 전자는 남성 단수, 후자는 남성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제스티 에디션에서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마제스티: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해 한 번 고난받으사 의로운 자(단수)로서 불의한 자들(복수)을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령에 의해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 데려가려 하심이라.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보다는 ‘성령에 의해’가 더 뜻이 명확해서 그렇게 고쳤습니다.   이번 마제스티 에디션에서는 이런 식으로 the에 형용사가 붙어 있는 명사들을(시편 잠언 등 시가서에 매우 많음, the wise, the rich, the poor, the wicked 등등) 일일이 확인하여 가능한 한 단수와 복수를 구분해서 표현하였습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우리가 보기에 영어로 단수와 복수 구분이 어려워도 영어 번역은 완벽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어만 보고 번역하거나 설교하다 보면 단수와 복수로 인한 혼동이 생길 수 있으므로 원어의 도움을 받아야 이런 부분을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가능하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마제스티 에디션은 가능한 한 단수 복수를 명확하게 표기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가 풍성히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3-01-23 09:52:02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 대해 잠시 설명하려고 합니다. 여기에는 '설득하다'는 말이 나오므로 앞뒤 문맥상 왜 이 말이 나오는지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사실 얼핏 보면 왜 이런 말이 나오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내가 지금 사람들을 설득하느냐, 하나님을 설득하느냐? 혹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를 구하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For do I now persuade men, or God? or do I seek to please men? for if I yet pleased men, I should not be the servant of Christ. 갈라디아서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복음에 율법주의를 가미하여 복음을 변개하려는 '갈라디아 교회의 침입자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1-12절 요약 1. 1-5절 요약 나 바울은 너희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가서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을 선포하였고 너희가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을 선포하였는데 너희는 다 이 복음의 메시지를 수용하였다. 2. 6절 그런데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하나님]을 너희가 이렇게 속히 떠나 다른 복음으로 옮겨 가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긴다. 3. 7절  그것은 다른 참 복음이 아니며 다만 너희를 어지럽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 하는 어떤 자들이 있다.  Which is not another; but there be some that trouble you, and would pervert the gospel of Christ. [너희 안에 침입한 자들은 자기들이 전하는 것이 내가 전한 것과 같다고 너희가 믿기를 원하지만 그들이 전하는 것은 내가 전한 복음과는 다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고 있다.] 여기서 영어 another의 의미를 설명하려 한다. 나는 200개의 찬송이 들어 있는 찬송가를 가지고 있다(A 찬송가). 내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찬송가를 하나 내게 가져오라고 부탁하니 그 사람이 150개의 찬송이 들어 있는 찬송가를 내게 가져왔다(B 찬송가). 이 두 개는 다 찬송가이지만 같은 찬송가는 아니다.  영어에서 another로 표현되는 그리스어는 2개가 있다. 1. 하나는 완전히 다른 것을 말한다. 위에 있는 예처럼 찬송가는 찬송가인데 A와 B는 완전히 다른 찬송가이다. 혹은 그 사람이 잡지책을 가져 왔으면 그것 역시 완전히 다른 것이다.  2. 그런데 옆에 있는 사람이 자기가 소유한 찬송가 즉 200개의 찬송이 들어 있는 찬송가 다시 말해 내가 가진 것과 동일한 내용과 표지가 있는 찬송가를 내게 가져 왔다면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다른 찬송가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모든 면에서 동일한 찬송가이다. 이럴 때 쓰이는 another는 내 것이 아니므로 분명히 다르지만 내 것과 비교해서 모든 면에서 완전히 같은 것을 뜻한다. 바울은 여기서 침입자들이 전하는 복음은 자기가 전하는 것 즉 참 복음과는 동일하지 않은 다른 복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것은 다른 [참 복음]이 아니다. 개역성경은 이것을 ‘다른 복음은 없나니’라고 번역하였는데 사실 이것은 오역이다. 부가 설명: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은 참 복음이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의 침입자들이 주장하는 '믿음+행위'로 구원받는다는 것도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구원을 가져다준다고 하므로 복음이라 불릴 수 있지만 바울이 전하는 참 복음과 같은 복음은 아니다. 그래서 그것은 '다른(another) 참 복음'이 아니다. 4. 8-9절  이제 나는 이 침입자들로 인해 마음이 편치 않으며 그래서 두 번이나 강력하게 이들에 대해 경고하려 한다.  나 바울은 내가 전하는 메시지가 100% 진실임을 알고 있고 그래서 사람이든 천사든 그것을 단 한 글자라도 바꾸면 안 된다. 그래서 8-9절에서 나는 2번이나 연거푸 그런 일을 하는 자에게 저주가 있기를 바람을 기술하였다.  8 하지만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다른 어떤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한 것같이 그렇게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가 받아들인 것 외에 다른 어떤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5. 10절 자, 그러면 내가 지금 왜 이렇게 확신 있게 말하는지 그 이유를 말하겠다.  내가 지금 사람들을 설득하느냐, 하나님을 설득하느냐? 혹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를 구하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10). For do I now persuade men, or God? or do I seek to please men? for if I yet pleased men, I should not be the servant of Christ. 영어를 보면 10절 맨 앞에 for가 있다. 그러므로 10절은 앞에서 말한 것에 대한 이유이다. 즉 우리는 그 이유를 앞에서 찾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여기에 사용된 ‘설득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1) 내가 사람들을 설득하려(persuade) 하고 있느냐?   (2) 내가 하나님을 설득하려 하고 있느냐?  (3) 혹은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please) 하고 있느냐?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아니다’이다. 이제 이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먼저 ‘설득하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설득하다: 상대편이 이쪽 편의 이야기를 따르도록 여러 가지로 깨우쳐 말하다(표준국어대사전). 예를 들어 어떤 직원이 월급을 올려달라고 사장에게 이야기해서 월급 인상을 받으려면 세세히 이유를 밝혀 그를 설득해야 한다. 그래서 직원이 모든 물가가 올랐고 자기의 판매 실적 혹은 회사에서의 성적이 좋다는 증거를 가지고 가서 월급을 올려달라고 하면 사장이 그 말에 설득되어 월급을 올려 줄 것이다. 이것이 설득하다의 의미이다. 10절에는 갑자기 ‘설득하다’가 나오지만 바울이 무엇을 설득하는지 그 내용이 주어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 ‘설득하다’가 쓰인 용례를 살펴보고 갈1:10도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고린도후서 5장 10-11절을 보겠다. 이는 우리가 반드시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라.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서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고후5:10).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공포를 알고 있기에 사람들을 설득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밝히 드러났고 또 너희 양심에도 밝히 드러났음을 나는 또한 확신하노라(고후5:11). 고후5:11절에도 무엇에 관해 사람들을 설득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지만 우리는 바로 앞 구절인 10절 즉 하나님의 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는 말씀을 통해 바울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1. 우리가 주의 공포를 알고 있기에 [거룩하게, 의롭게 살아서 하나님의 공포의 심판을 피해야 한다고] 사람들을 설득하지만 마찬가지로 갈1:10의 ‘설득하다’도 앞에 나오는 어떤 내용과 연결되어야만 한다. 그러면 바울이 설득하려는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8-9절에 있는 대로 “내가 전하는 복음 이외의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다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복음을 믿으라고 사람들과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10절은 다음과 같이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1. [내가 전하는 복음 이외의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다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믿으라고] 내가 지금 사람들을 설득하느냐?  대답: 아니다. 나는 그것을 믿으라고 사람들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  2. 혹은 하나님을 설득하느냐?  대답: 아니다. 나는 그것을 믿으라고 하나님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  즉 바울은 [자기가 전하는 복음 이외의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다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믿으라고] 사람들을 설득할 필요도 없고 하나님을 설득할 필요도 없다. 사람들을 설득한다고 하면 그것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시도이다. 그래서 다음이 나온다. 3. 혹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를 구하느냐?  대답: 아니다. 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를 구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6. 11-12절 그러면서 11-12절이 나오는데 그 핵심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너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이 메시지를 내게 주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내가 자의로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확실히 알리노니 내가 선포한 복음은 사람을 따라 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그것을 사람에게서 받지도 아니하고 배우지도 아니하였으며 다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해 주어졌느니라(11-12절). ‘설득하다’를 다른 성경들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개역) 혹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랴?’(말보) 혹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고’(바른, 공동) 등으로 번역했지만 이런 말들은 다 의역에 지나지 않는다. 영어 persuade someone은 항상 무엇을 하라고 ‘누구를 설득하다’의 뜻이다. 그리스 말도 동일하다. 영어 KJB 성경에 나오는 persuade someone은 다 이런 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번역하고 앞에 있는 ‘무엇을 하라고‘를 문맥에 맞게 생각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 another에 대한 설명 참조 그리스어에도 두 단어가 있다. 알로스(7절)와 헤테로스(6절)가 있는데, 보통 전자는 같은 종류의 다른 것, 후자는 전혀 다른 것을 말한다. https://maranathamedia.com/article/view/is-allos-another-of-the-same-heteros
2022-08-17 15:56:39 | 관리자
왜 말씀보존학회는 개역개정판을 마귀의 성경이라고 하면서 개역성경처럼 무덤을 음부라 하는가?   2022년 4월 8일 크리스천 투데이는 <개역개정판 성경은 ‘마귀의 성경’?>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킹제임스성경 신봉’ OOOO학회 행사 소개글 논란   ‘킹제임스’ 성경을 신봉하는 OOOO학회에서 개역개정판 성경을 ‘마귀의 성경’으로 표현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들은 4월 8-9일 이틀간 수도권 모처에서 ‘내가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믿는 이유’라는 주제로 단기 연수를 진행하는데, 행사 소개 글에서 “마귀의 성경인 개역개정판과 흠정역에 대한 특강이 준비되어 있다”며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틀리며, 무엇이 옳은지 확인하시는 시간이 되시길 바란다”고 공지했다.   이틀간의 연수에서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무오한 성경 △하나님의 섭리 속에 한 권으로 모아진 성경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보존된 성경 △개역개정판의 변개된 실상 등을 강의한다고 한다.   해당 연수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개역개정판 성경에 대해 “저도 그것을 통해 구원을 받았지만, (잘못된 번역으로) 그 구원을 의심케 하는 구절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귀의 성경’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자신이 쓴 것이 아니라면서도, 그것을 부정하거나 비판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대단히 심각하고 두려운 주제이기에 신문사에 물어보았다. 기자는 이 문자 메시지를 보낸 장본인과 10여 분 통화를 했다고 하였다.   구체적인 것을 조금 더 물으니 이렇게 말해 주었다.   기자: “말씀보존학회가 개역개정판을 비판하지 않느냐? 마귀의 성경이라고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이유가 있나?”    상대방: “제가 직접 마귀의 성경이라고 표현한 적은 없다. 다른 분 글을 통해서 그런 표현이 나간 것으로 안다.”   기자: “개역개정판을 보고 있는 분들이 훨씬 많은데 이분들이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건가요?”   상대방: “잘못되었죠. 그러나 그분들을 마귀의 지식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저도 구원은 개역성경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다입니다. 그것으로는 영적 성장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 구원에 대해서는 걸고 넘어지면 안 된다. 저도 개역성경으로 구원받았습니다.” “마귀의 성경이라고 할 때는 구원을 못 받는다는 것이 아니다.”    기자 “그러면 마귀의 성경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나요? 그러면 그 구원은 마귀의 구원인가요?”    상대방: “마귀의 구원은 아닙니다.”    이런 식의 대화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이상한 대화가 아닌가? 그 사람은 자신이 마귀의 성경이라 부른 성경으로 구원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구원은 마귀의 구원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 그들은 왜 자기에게 구원을 가져다준 성경을 마귀의 성경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나와 내 부모님, 우리 교회 거의 모든 성도들이 다 개역성경으로구원받았다.   따라서 개역개정판(개역) 성경을 마귀의 성경이라는 말은 난센스요, 신성모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이런 말은 올바른 성경 보급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가 있다.   개역성경 혹은 개역개정판을 이렇게 싫어하는 말보회는 이상하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할 때 너무나 명백한 단어를 영어 킹제임스 성경대로 번역하지 않고 개역성경대로 번역한다.   오늘은 한 가지만 이야기하겠다.   영어 단어 grave를 보자.   영한사전에서 이 단어의 뜻은 무덤이다.  중고등학교 다니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무덤은 죽은 사람의 몸이 가는 곳이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찾아보니 grave는 성경 전체에서 단수로 67회, 복수로 21회, 총 88회가 나온다.   따라서 영어 KJV를 번역했으면 무덤이 정확히 88회 나와야 한다. 그런데 “한글킹제임스” 는 grave 88회 중 31번을 “음부 陰府” 로 번역했다.  고전15:55을 보자.   KJV: O death, where is thy sting? O grave, where is thy victory?   흠정역: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말보회 한글킹제임스: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음부야!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개역개정: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삼상2:6을 보자.    KJV: The LORD killeth, and maketh alive: he bringeth down to the grave, and bringeth up.   흠정역: 주께서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무덤으로 끌어내리기도 하시고 끌어올리기도 하시는도다.   말보회 한글 킹제임스: 주께서는 죽이기도 하시며, 살리기도 하시고, 음부로 끌어 내리기도 하시며, 끌어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개역개정: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말보회 한글킹제임스 성경에는 자그마치 31번이나 음부가 나온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음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음부: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 저승, 불교 용어 무덤은 죽은 몸이 가는 곳이다. 혼이 가는 데가 아니다. 더욱이 음부 같은 샤머니즘 불교 용어는 성경에 쓰면 안 된다.   여하튼 말보회 한글킹제임스 성경은 무덤도 아니고, 지옥도 아니고, 낙원도 아닌 또 다른 장소 “음부”가 있다고 가르친다. 한 분이 지적한 것처럼 여기의 “음부”는 개역성경을 답습한 것이고 현재 개정개역의 “스올” 과도 비슷하다. 개역(눅16:23) 저가(부자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말보회 한글킹제임스 성경이 grave를 음부라고 번역한 것은 옳은 번역이 아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말보회가 이런 것들을 잘 교정해서 영어 성경에 있는 대로 출간하기 바란다.   샬롬
2022-04-19 16:29:16 | 관리자
come과 go에 대하여 오늘은 어떤 분이 왜 come을 '오다'로 번역하지 않은 데가 있느냐고 해서 잠시 글을 씁니다. 우리는 중고등학교 다닐 때 come은 오다, go는 가다로 배웠습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우리와 조금 달리 씁니다. 내가 여기 있고 상대방이 저기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내가 너한테 갈게” 이 경우 영어로는 “I will come to you”라고 씁니다. 영한사전에도 1번 용례에 아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① 《~/+⊡/+to do/+⊡+⊡/+doing》 오다; (상대방에게 또는 상대방이 가는 쪽으로) 가다. ★ come, go는 각기 ‘오다’, ‘가다’라는 우리말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음 ┈┈• I’m coming in a minute. 지금 곧 가겠다《네가 있는 곳에》 • John! Supper is ready!─Yes, (I’m) coming. 존, 저녁 준비 다 됐다─네, 곧 갑니다. 계시록 16장 15절을 보면 영어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Behold, I come as a thief. Blessed is he that watcheth, and keepeth his garments, lest he walk naked, and they see his shame. 여기에 come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기존 성경들은 대가 ‘내가 오리라’로 번역되었습니다. 개역개정: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말보회 한글 킹제임스: 보라, 내가 도둑같이 오리니     그러나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은 가리라도 되어 있습니다.   보라, 내가 도둑같이 가리니 깨어 있어 자기 옷을 지킴으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그들에게 자기 수치를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계22:20도 비슷합니다. He which testifieth these things saith, Surely I come quickly. Amen. Even so, come, Lord Jesus. 개역개정: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말보회 한글 킹제임스: 이런 일들을 증거하신 분이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내가 속히 오리라." 하시니라. "아멘. 그러하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이것들을 증언하시는 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속히 가리라, 하시는도다. 아멘.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 예수님께서 ‘내가 속히 간다’고 하시니까 우리는 ‘어서 속히 오세요’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이 맞는 번역입니다. 카톨릭 성경, 쉬운 성경도 그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쉬운: 이 모든 것을 증언하신 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렇다, 내가 속히 가겠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가 풍성히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2-04-15 17:56:2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 분이 말씀보존학회 한글 킹제임스 성경에 정직하지 않게 번역된 곳들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그 이유를 묻기에 답을 적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현대 역본들은 정직하다 혹은 정직함을 다른 말로 바꾸었습니다.    이것은 NIV 같은 영어 성경이나 개역성경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1. 사도행전 6장 3절 흠정역: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는 너희 가운데서 정직하다는 평판이 있고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사람을 골라내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KJV: Wherefore, brethren, look ye out among you seven men of honest report, full of the Holy Ghost and wisdom, whom we may appoint over this business. NIV:  Brothers, choose seven men from among you who are known(알려진 자들) to be full of the Spirit and wisdom. We will turn this responsibility over to them 개역개정: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그런데 이상하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것으로 알려진 한글 킹제임스 성경도 정직함을 훌륭함으로 바꾸었습니다. 한글 킹제임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로 충만하여 훌륭한 평판을 듣는 일곱 사람을 찾아서 택하여 이 일을 맡기고 2.  로마서 13장 13절 흠정역: 낮에 하듯이 우리가 정직하게 걷고 흥청거리거나 술 취하지 말며 침실에서의 문란함과 방탕에 빠지지 말고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자. KJV: Let us walk honestly, as in the day; not in rioting and drunkenness, not in chambering and wantonness, not in strife and envying. NIV: Let us behave decently(단정히), as in the daytime, not in orgies and drunkenness, not in sexual immorality and debauchery, not in dissension and jealousy. 개역개정: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한글 킹제임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흥청거리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방탕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데살로니가전서 4장 12절도 개역과 한글 킹제임스는 정직하게 걷고 대신 “단정히 행하고”로 번역하였습니다.   '행하다'는 말은 이제 그만 써야 합니다. 행하다는 무슨 일을 행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걷다'(walk)가 맞는 말입니다. 3. 고린도후서 4장 2절 흠정역: 오히려 정직하지 못한 숨겨진 일들을 버리고 간교하게 걷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속임수로 다루지 아니하고 도리어 진리를 드러냄으로 하나님의 눈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우리 자신을 추천하노라. KJV: But have renounced the hidden things of dishonesty, not walking in craftiness, nor handling the word of God deceitfully; but by manifestation of the truth commending ourselves to every man's conscience in the sight of God. NIV: Rather, we have renounced secret and shameful(수치스러운) ways; we do not use deception, nor do we distort the word of God. On the contrary, by setting forth the truth plainly we commend ourselves to every man's conscience in the sight of God. 개역개정: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한글 킹제임스: 오히려 감추어진 수치스러운 일들을 버리고, 교활함 가운데서 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으로 꾸미지 아니하며,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우리 스스로를 각 사람의 양심에 추천하노라. 4. 베드로전서 2장 12절 흠정역:  이방인들 가운데서 너희 행실을 정직하게 하라.  KJV: Having your conversation honest among the Gentiles:  NIV: Live such good(선하게 혹은 바르게) lives among the pagans  개역: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한글 킹제임스:   너희가 이방인들 가운데 행실을 바르게 하여  위의 몇 예를 보면 한글 킹제임스 성경이 개역성경이나 NIV와 거의 비슷하게 번역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심지어 귀신이 있다고 말합니다. 국립 국어연구원의 표준 대사전은 귀신을 ‘사람이 죽은 뒤에 남는다는 넋’으로 정의합니다. 이것은 샤머니즘 용어이며 성경은 귀신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곧바로 천국에 가든지 지옥에 갑니다. 사도행전 19장 13절,  흠정역: 그때에 떠돌아다니는 유대인들 중의 어떤 자들 곧 마귀를 내쫓는 자들이 악한 영들이 들린 자들을 향해 스스로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을 하며 이르되, 바울이 선포하는 예수님을 의지하여 우리가 너희에게 엄히 명하노라, 하더라. 한글 킹제임스: 또 돌아다니며 귀신을 쫓아내 주는 어떤 유대인들이 악령들린 사람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서 말하기를 "우리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로 너희에게 엄명하노라."고 하였더라.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유령도 이야기합니다. 국립 국어연구원의 표준 대사전은 유령을 ‘죽은 사람의 혼령’으로 정의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유령은 없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6절, 마가복음 6장 49절 흠정역: 그분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제자들이 보고 불안해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영이다, 하며 두려워서 소리 질렀으나 한글 킹제임스: 제자들이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그를 보고 불안하여 말하기를 "유령이다!"라고 하며 무서워 소리지르더라.   개역개정: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했다는 한글 킹제임스 성경이 왜 이런지는 잘 모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런 구절들의 번역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앞으로 말씀보존학회가 이런 것들을 잘 고쳐서 바르게 수정된 판을 내면 좋겠습니다.   샬롬   참고로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다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글 킹제임스 성경
2022-04-07 17:09:14 | 관리자
안녕하세요?   아침에 한 분이 잠언 29장 21절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어서 간단히 답을 드립니다.   킹제임스 성경과 개역성경(NIV)의 표현이 달라서 의미에 혼동이 있는 것 같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자기 종을 아이 때부터 자상하게 키우는 자는 마침내 그를 자기 아들같이 되게 하리라. KJV: He that delicately bringeth up his servant from a child shall have him become his son at the length. 개역: 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그가 나중에는 자식인 체하리라 NIV:  If a man pampers his servant from youth, he will bring grief in the end.   이 구절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1. 개역이나 NIV처럼 이렇게 키우면 종이 방자하게 되어 나중에는 자기가 종이라는 것을 잊게 됩니다. 개역이나 NIV는 이렇게 읽히도록 크게 의역을 하였습니다. 2. 한편 잠17:2처럼 읽힐 수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종은 수치를 끼치는 아들을 다스리며 형제들 가운데서 상속재산 몫을 받으리라. 대다수 주석가들은 1을 선호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2-03-30 16:33:04 | 관리자
라암셋과 라메셋   모세오경에는 라암셋과 라메셋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둘은 같은 곳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다른 곳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위키백과 라암셋 출1:11 그런 까닭으로 저들이 작업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주어 그들을 괴롭게 하였으므로 그들이 파라오를 위해 국고 도시인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였더라. Therefore they did set over them taskmasters to afflict them with their burdens. And they built for Pharaoh treasure cities, Pithom and Raamses. 라메셋(창47:11; 출12:37; 민33;3, 5) 창47:11 요셉이 파라오가 명령한 대로 자기 아버지와 형제들을 정착시키고 이집트 땅에서 그들에게 소유를 주되 그 땅의 가장 좋은 곳인 라메셋 땅에서 주었으며 And Joseph placed his father and his brethren, and gave them a possession in the land of Egypt, in the best of the land, in the land of Rameses, as Pharaoh had commanded.   기존 개역성경 등은 둘을 다 라암셋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히브리말이 다르므로 일단 둘을 달리 표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샬롬        
2022-01-20 11:12:42 | 관리자
한 분이 성경을 읽으면서 동일인의 이름이 왜 다르냐고 하면서 역대기상 6장의 게르손과 게르솜에 대해 언급해 주셨습니다. 역대기상 6장 1절: '레위의 아들들은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요' 1절에는 '게르손' 이라고 되어 있는데 역대기상 6장 16절, 17절, 20절에는 '게르솜'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16절 레위의 아들들은 게르솜과 고핫과 므라리요, 17절 게르솜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곧 립니와 시므이요, 20절 게르솜에게서 난 자들은 곧 그의 아들 립니와 그의 아들 야핫과 그의 아들 심마와 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판에서는 모두가 게르손으로 통일되어 있는데 왜 흠정역에는 게르손과 게르솜으로 표기되어 있을까요??   성경에는 동일인이 이렇게 두 개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사례가 꽤 많습니다.   느부갓네살, 느부갓레살   킹제임스 성경을 보면 동일 인물이 느부갓네살로 60회, 느부갓레살로 31회 나옵니다.    느부갓네살, 느부갓레살   그런데 이상하게도 말씀보존학회 한글 킹제임스 성경에는 느부갓레살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들은 느부갓레살을 모두 느부갓네살로 번역하였습니다.   딜갓빌네셀(3회, 대상5:6; 5:26; 대하28:20), 디글랏빌레셀(3회, 왕하15:29; 16:7; 16:10)   대상 5:6 그의 아들 브에라인데 아시리아 왕 딜갓빌네셀이 그를 포로로 사로잡아 갔더라. 그는 르우벤 족속의 통치자였더라. 왕하 15:29 이스라엘 왕 베가의 시대에 아시리아 왕 디글랏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점령하고 그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아시리아로 데리고 가니라. 같은 사람의 이름이 게르손도 되고 게르솜도 됩니다. 같은 사람의 이름이 느부갓네살도 되고 느부갓레살도 됩니다. 같은 사람의 이름이 딜갓빌네셀도 되고 디글랏빌레셀도 됩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런 것들은 오탈자가 아닙니다.   이렇게 그대로 번역해야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이 살아납니다.   샬롬
2022-01-19 16:45:42 | 관리자
말씀보존학회는 왜 자꾸 이상하게 번역하는가?   2021년을 마감하는 시점에 여러 사람들이 카톡을 통해 카드 사진을 보내옵니다. 어떤 분이 최근에 살후3:16 말씀이 담긴 카드를 보내왔습니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살후3:16) 주님께서 때마다 일마다 우리에게 화평을 주실 것을 바라는 내용입니다. ‘때마다 일마다’ 얼마나 멋있는 말입니까? 그런데 실제로 이 구절은 그렇게 변역될 수 없습니다. Now the Lord of peace himself give you peace always by all means. The Lord be with you all. 이제 화평의 주께서 친히 모든 방법으로 항상 너희에게 화평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너희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모든 방법으로(by all means), 항상(always)이 맞는 번역입니다.    개역성경은 참으로 청산유수같이 매끈하게 흘러가지만 번역 자체가 제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후반부 즉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는 사람이 감히 주님에게 모든 사람과 함께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대체 이런 번역이 어디에 있을 수 있습니까? 이것은 기원문으로 ‘주께서 너희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로 해야 맞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말씀보존학회 한글 킹제임스 성경도 앞부분은 개역성경과 거의 동일합니다. ‘모든 일에’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화평의 주께서 친히 너희에게 항상 모든 일에 화평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너희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바라노라. 알아보니 이들의 번역은 NIV의 번역과 거의 일치합니다. Now may the Lord of peace himself give you peace at all times and in every way. The Lord be with all of you. 여기에는 in every way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킹제임스 성경에는 없는 말입니다. 왜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한다고 하면서 킹제임스 성경대로 하지 않고 NIV 비슷하게 했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이와 비슷한 것이 살전5:1에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선한 것을 굳게 붙들라. Prove all things; hold fast that which is good. 킹제임스 마제스티 판은 영어 본문을 그대로 번역하였습니다. 달리 번역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이렇게 말고는 번역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이상하게 번역을 하였습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범사에 헤아리다는 말이 이해가 됩니까? 두루뭉술하게 해 놓았습니다. 영어 hold fast는 굳게 붙잡으라는 말이지 취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번역이 말씀보존학회 한글 킹제임스 성경에서 발견됩니다.   말씀보존학회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개역성경과 동일하게 번역하였습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아니 이게 무슨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것인가요?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사람이 보면 누구라도 이런 번역은 나올 수 없음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생명을 주는 양식이므로 반드시 정직하게 신실하게 번역해야 합니다.
2022-01-05 14:41:23 | 관리자
뿔 달린 모세(출34:29)와 뱀을 밟는 마리아(창3:15)   얼마 전 함재봉 교수님이 오셔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배경을 설명하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유 중 하나가 당시 카톨릭 교회가 쓰던 제롬(히에로니무스)의 라틴 벌게이트 성경에 오역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함 교수님이 예를 든 것이 출애굽기 34장 29절이었습니다.   모세가 그 두 증언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왔는데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그분과 말하는 동안 자기 얼굴 피부가 빛나던 것을 알지 못하였더라.   And it came to pass, when Moses came down from mount Sinai with the two tables of testimony in Moses' hand, when he came down from the mount, that Moses wist not that the skin of his face shone while he talked with him.   킹제임스 성경에는 모세의 얼굴 피부가 빛이 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롬의 라틴어 성경에는 빛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카란(스트롱 번호 7160)이 뿔이 달리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무려 1000년 이상의 중세암흑시대에 대다수 사람들은 당연히 모세의 머리에 뿔이 달린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려 주려고 함 교수님은 미켈란젤로의 모세상 그림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그림에는 정말로 모세의 머리에 두 뿔이 달려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을까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출간 시기에 출간된 카톨릭 교회의 성경은 두에 랭스 성경입니다.   여기에도 모세의 머리에 뿔이 달린 것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Douay-Rheims: And when Moses came down from the mount Sinai, he held the two tables of the testimony, and he knew not that his face was horned from the conversation of the Lord.   두에 랭스 출34:29   이것은 역사적으로 너무나 유명한 오류라 위키 백과에도 항목이 따로 들어 있습니다.   모세 뿔 위키 백과   창세기 3장 15절은 여자의 씨 메시아에 대한 에언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개심을 두리니 그 씨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it shall bruise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여기서 보듯이 그 씨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카톨릭 두에-랭스 성경은 ‘네 씨’를 여자로 바꾸었습니다. 즉 그녀의 씨가 아니라 그녀를 밴 여인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입니다.   Douay-Rheims: I will put enmities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thy seed and her seed: she shall crush thy head, and thou shalt lie in wait for her heel.   그 씨를 왜 여자로 바꾸었는지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카톨릭 교회는 그 여자 즉 예수님의 마리아가 뱀의 머리를 부술 것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무염시태 위키백과   이런 것들을 교리로 만들기 위해 성경을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중세 카톨릭 교회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카톨릭 교회가 전해 주는 현대 역본들을 피해야 합니다.    모든 교리적 오류는 다 카톨릭 교회에서 나온 바타칸 사본과 시내 사본에서 나옵니다.   Did The Catholic Church Give Us The Bible?   눈이 있고 귀가 있는 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너희는 그녀에게서 나와 그녀의 죄들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고 그녀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18:4, 렘51:45).   샬롬
2021-12-25 17:18:13 | 관리자
갓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군대이다(창30:11) 야곱의 열두 아들 중 하나는 갓(Gad)입니다.   갓은 레아의 하녀인 실바가 야곱에게 낳은 아들입니다.   갓이 출생하자 레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레아가 이르되, 군대가 오는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KJV: And Leah said, A troop cometh: and she called his name Gad.   그런데 개역성경/개정개역/공동번역/바른 성경 등은 이렇게 말합니다.   개역: 레아가 가로되 복되도다 하고 그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창30:11)   NIV: Then Leah said, "What good fortune!" So she named him Gad.   킹제임스 성경은 갓이라는 이름의 뜻이 군대라고 말합니다(스트롱 번호 1410).   영어 KJV의 a troop(군대)는 히브리어로 갓입니다(스트롱 번호 1410).   반면에 개역성경을 포함한 현대역본들은 갓의 뜻이 ‘복이 있다’(행운이다)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어 사전을 보면 누구라도 갓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갓은 킹제임스 성경대로 1차적인  뜻이 군대입니다.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은 열두 아들에게 축복하며 갓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갓(스트롱 번호 1410)은 군대(스트롱 번호 1416)가 그를 이길 것이나 끝에는 그가 이기리라(창49:19).    스트롱 번호 1416은 1413에서, 1413은 1410에서 유래합니다. 그래서 1410, 1413, 1416 모두 군대를 뜻합니다. 다른 뜻이 없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개역성경도 어쩔 수 없이 스트롱 번호 1413을 군대로 번역하였습니다.   개역: 갓은 군대의 박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창49:19)   이런 구절들에서 보듯이 갓에는 복이나 행운의 뜻이 없습니다.   현대 역본 역자들은 이사야서 65장 11절에 근거해서 갓이 복 혹은 행운의 뜻을 가진다고 추측하는 것 같습니다.   킹제임스 마제스티    그러나 너희는 주를 버리는 자들이요, 나의 거룩한 산을 잊고 그 군대를 위해 상을 차리며 그 수대로 그 군대에게 음료 헌물을 제공하는 자들이니라.     KJV: But ye are they that forsake the LORD, that forget my holy mountain, that prepare a table for that troop, and that furnish the drink offering unto that number.   여기서 그 군대로 번역된 히브리말의 스트롱 번호는 1408입니다. 그러므로 이 단어 역시 군대의 뜻을 갖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개역성경은 이것을 갓이라고 음역하고 난하주에 ‘운수신’이라는 설명을 달아놓았습니다.   개역: 오직 나 여호와를 버리며 나의 성산을 잊고 갓에게 상을 베풀어 놓으며 므니에게 섞은 술을 가득히 붓는 너희여(사65:11)   그리고 역시 음역된 므니는 ‘운명 신’이라고 설명을 붙였습니다.   공동번역은 아예 그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야훼를 저버렸고 나의 거룩한 산은 알은체도 않으면서 행운의 신에게는 제사 상을 차려 올렸고 운명의 여신에게는 제주를 부어 바쳤다.   이사야 65장 11절은 유다 백성이 갓과 므니라는 운수의 신과 운명의 신을 섬겼다는 뜻이 아닙니다.   매튜 헨리, 존 길 등의 주석은 1차적으로 유다 백성이 섬기던 우상들이 군대처럼 많았고 그들의 많은 수에 따라 그들이 그 우상들에게 음료 헌물을 부었음을 말합니다.   매튜 헨리 주석: They prepared a table for that troop of deities which the heathen worship and poured out drink-offerings to that numberless number of them; for those that thought one God too little never thought scores and hundreds sufficient, but were still adding to the number of them.   그러면서 렘2:28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네가 너를 위해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냐? 네가 고난을 당할 때에 그들이 너를 구원할 수 있거든 일어나게 할지니라. 오 유다야, 네 신들이 네 도시들 수만큼이나 되는도다.   따라서 킹제임스 성경이 유다 백성이 그 군대를 위해 상을 차리고 그 군대의 수대로 음료 헌물을 제공하였다고 번역한 것은 올바른 일입니다.   사65:11의 끝을 므니(스트롱 번호 4507)가 아니라 그 수로 번역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밑의 12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 수를 세어 칼에 넘기리니 너희가 다 머리를 숙이고 살육을 당하리라. 이는 내가 부를 때에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며 내가 말할 때에 너희가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내 눈앞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한 것을 택하였기 때문이니라.   여기서 수를 센다는 말은 number이고 이것은 스트롱 번호는 4487입니다. 원어 사전을 가서 보면 스트롱 번호 4507이 스트롱 번호 4487에서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트롱 번호 4487의 뜻은 수 혹은 수를 세다입니다. 그러므로 사65:11의 끝에 있는 '그 수'는 정확한 번역입니다.   그들이 수많은 우상들을 섬기자 하나님은 유다 백성의 수를 세어 그들을 멸하시겠다고 합니다.   존 길의 주석을 보면 이것이 명확하게 들어 있습니다.   There is an elegancy in the expression, alluding to Meni, that number, they furnished a drink offering for, or trusted in; and since they did, God would number them, or appoint a number of them to the sword;   그런데 이상하게 개역성경은 여기서 number를 빼 버렸습니다.   내가 너희를 칼에 붙일 것인즉 다 구푸리고 살륙을 당하리니   말씀보존학회 한글 킹제임스 성경 역시 칼로 나눈다고 이상하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칼로 나누리니 너희 모두가 살륙자에게 굴복하리라.    number라는 동사에 '나누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일입니다(물론 사전에도 없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실 갓이 처음 등장하는 창세기 말씀을 문맥적으로 살펴보면 갓의 뜻이 군대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29장을 보면 레아는 네 아들을 낳고 더는 낳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30장에서 라헬의 하녀 빌하가 단과 납달리를 낳자 자기도 자기의 하녀 실바를 야곱에게 주고 그 결과 갓을 얻게 되었습니다. 라헬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레아는 갓의 출생을 보고 ‘군대가 오는도다!’라고 외치며 자기의 소망을 말했던 것입니다.   신명기 33장 20-21절에는 갓에 대한 모세의 축복이 있습니다. 여기서도 모세는 군대 같은 갓이 크게 될 것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또 갓은 주의 정의와 공의를 집행하는 자로 묘사되는데 우리가 잘 알다시피 많은 경우 군대가 이런 일을 합니다. 그래서 갓은 군대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 갓에 관하여는 그가 이르되, 갓을 크게 하시는 분을 찬송할지어다. 그가 사자같이 거하며 정수리와 팔을 찢는도다. 21 그가 자기를 위해 첫 부분을 예비하였으니 이는 그가 입법자의 몫 안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라. 그가 백성의 우두머리들과 함께 와서 주의 정의를 집행하였고 이스라엘과 함께 그분의 판단들의 공의를 집행하였도다, 하니라.   이런 것들을 통해 우리는 1611년 영어 성경 번역자들이 히브리말과 그리스말을 문맥에 맞게 갓의 뜻을 군대로 거짓 없이 신실하게 번역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17-18 세기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는 자들이 등장하여 이런 식으로 원어를 음역하거나 오역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를 가리고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반즈 등의 좋은 주석가들도 이런 부분에서 이런 움직임에 넘어간 것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존 길, 매튜 헨리 등 현대 학자들에 의해 거의 오염되지 않은 분들의 주석이 옳은 경우가 참으로 많음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항상 옳습니다. 확신을 가지셔도 됩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안을 기원합니다.   샬롬
2021-12-25 16:33:38 | 관리자
구속하다, 대속하다, 속량하다, 무르다의 의미(redeem)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와 파라오에게 10가지 재앙을 내리셨고 마지막 재앙은 이집트 땅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기 집 문에 어린양의 피를 바름으로써 파멸시키는 천사의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민수기(Numbers)는 여러 종류의 수를 우리에게 이야기해 줍니다.   앞부분에는 구출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수(지파별로), 레위 사람들의 수 등이 있습니다.    이집트 탈출 사건 당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맏아들은 총 22,273명이었습니다.   난 지 한 달 이상 된 자들로서 그들 중에서 계수된 자들 가운데 처음 난 모든 남자들이 이름들 수대로 이만 이천이백칠십삼 명이더라(민3:43).   이들에 대해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처음 난 모든 자 대신 레위 사람들을 취하고 그들의 가축 대신 레위 사람들의 가축을 취하라. 레위 사람들은 내 것이 되리니 나는 주니라(민3:45).   이렇게 해서 레위 사람들은 마땅히 죽어야 할 이스라엘의 맏아들들을 대신하여 영원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당시 레위 사람들의 수를 세니 총 22,000명이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주의 명령대로 계수하되 레위 사람들 중에서 두루 그들의 가족별로 계수한 모든 자 곧 난 지 한 달 이상 된 모든 남자들이 이만 이천 명이더라(민3:39).   맏아들들이 레위 사람들보다 273명 더 많았지만 그들을 대신할 레위 사람들이 더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나머지 273명을 대속하기 위해(redeem) 사람당 오 세겔의 돈을 받았습니다. 즉 나머지 273명은 돈으로 대신 무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처음 난 자들이 레위 사람들보다 이백칠십삼 명 더 많으므로 그들을 대속하기 위해 너는 머릿수대로 오 세겔씩 취하되 성소의 세겔대로 그것들을 취할지니 (일 세겔은 이십 게라니라.)(민3:46-47)   그 결과 1365세겔(273명 X 5세겔)의 돈이 모였습니다.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난 자들에게서 받은 돈이 성소의 세겔대로 천삼백육십오 세겔이더라(민3:50).   주님은 이 돈을 제사장들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라고 하십니다(민3:51).   민수기의 이 부분을 보면 ‘대속하다’는 말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영어로 이 말은 redeem입니다.    이 말은 원래 ‘무르다’를 뜻합니다.   무르다: 사거나 바꾼 물건을 원래 임자에게 도로 주고 돈이나 물건을 되찾다.   원래 이스라엘의 맏아들들은 그날 죽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살려주셨고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들을 무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무엇을 무르려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맏아들들의 경우 레위 사람들과 돈으로 대가를 치렀습니다.   우리도 죄의 시장에 팔린 몸입니다. 이런 우리를 무르려면 역시 대가를 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를 흘려 우리를 물러 주셨습니다.   이런 일을 표현할 때 쓰는 영어 단어가 redeem입니다.   redeem은 대개 킹제임스 마제스티 성경에서 구속하다로 번역되었습니다.   구속하다: 기독교 용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인류의 죄를 대속(代贖)하여 구원하다.   민수기의 이 부분 같은 경우 구속하다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으므로 대속하다를 사용하였습니다.   한편 노예로 팔린 사람을 친족 등이 돈을 주고 사서 풀어 주는 경우에는 같은 말 redeem을 속량하다로 번역하였습니다.   속량하다: 몸값을 받고 노비의 신분을 풀어 주어서 양민이 되게 하다. ≒속신하다   그의 삼촌이나 삼촌의 아들이 그를 속량하거나 그의 가족 중에서 그에게 가까운 친족은 누구든지 그를 속량할 것이요, 또는 그가 능력이 있으면 자기를 속량하되(레25:49)   물건의 경우 redeem은 무르다로 번역됩니다.   룻기 4장 4-5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4절의 무르다는 redeem입니다.   4 내가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거주민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말하여 네게 알려 주려고 생각하였노라. 네가 그것을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내가 알게 하라. 너 외에는 그것을 무를 자가 없으며 너 다음은 나니라,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그것을 무르리라, 하니 5 그때에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는 죽은 자의 아내인 모압 여인 룻에게서도 반드시 그것을 사서 그 죽은 자의 상속 재산을 위하여 그의 이름을 일으켜야 할지니라, 하니라.   에베소서 5장 15절에는 묘한 표현이 있습니다.   시간을 되찾으라. 날들이 악하니라.   Redeeming the time, because the days are evil.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간을 redeeem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참으로 번역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그러나 원래 redeem의 의미가 다른 사람(존재)의 소유가 된 것을 값을 주고 다시 사는 것이므로 이런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마제스티 에디션은 되찾으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에서 세 가지 호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1. 구원자(Saviour): 죄들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분 2. 구출자(Deliverer): 위기 등에서 우리는 구출하는 분 3. 구속자(Redeemer): 값을 치르고 죄의 노예인 우리를 무르는 분   구속자는 욥기 19장 25 등에 나옵니다.   내 구속자(redeemer)께서 살아 계시며 마지막 날에 그분께서 땅 위에 서실 것을 내가 아노라.   이런 말들의 의미를 잘 알고 성경을 읽으면 성경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샬롬
2021-12-25 14:43:53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