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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w Bible(1537) 이후에 The Great Bible(1539)이 등장하는데 이 성경은 영국 최초로 공적으로 인정받은 성경으로 약 20년간 사용되었습니다. 크기가 16.5 * 13 인치(41.91 * 33.02 cm)로서 크기가 제법 크고(great), 가격도 비싸서 일반인들은 손에 넣기가 어려웠습니다. 교회나 학교에 주로 비치했는데 사람들이 이걸 훔쳐가지 못하도록 쇠사슬로 묶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름으로 Chained Bible 이라고도 불립니다. Geneva Bible(1560)은 최초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서 직접 번역한 완전한(66권 다 들어있는) 영어 성경이었습니다. 프로테스탄트들이 번역했는데 난외주에 들어간 해설에는 칼빈주의 사상이 많이 반영되었습니다. 이 성경은 아주 잘 팔린(널리 보급된) 성경이었는데, 가격도 싸고, 크기도 콤팩트한 싸이즈라 휴대가 편하고, 읽기 쉬운 활자체를 사용하여 가독성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난외주에는 교황이나 제도권 교회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 들어있었고, 왕권신수설을 반대했기 때문에(왕도 하나님의 말씀 아래 복종해야 함) 영국 국교회에서는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Bishop's Bible(1568)은 청교도들의 제네바 성경에 대한 대안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이 Matthew Parker에게 번역을 명하여 8명의 번역위원들이 번역했습니다. 이것은 처음으로 공식적인 번역 위원회를 통해 번역된 성경입니다.
2012-01-30 15:15:43 | 김문수
이제는 한국에서 개혁주의 중에도 근본적 신앙의 개혁주의 성도들은 소수로 명맥만이 유지되는 실정입니다. 그 형제들도 개혁주의가 자랑하는 꽃봉오리인 청교도(Puritan)와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킹 제임스 성경이 얼마나 땔 수 없는 밀접한 관계인가를 깊이 깨달아 알기 바랍니다. 귀한 글에 감사합니다.
2012-01-30 10:20:40 | 김대용
감사합니다. 한번 찾아 보았습니다. (욥 13:15, 킹흠정) 그분께서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분을 신뢰할 것이요, 오직 나는 그분 앞에서 내 자신의 길들을 유지하리라. (욥 13:15, 개정)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마 21:28, 킹흠정) 그러나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첫째에게 가서 이르되, 아들아, 오늘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마 21:29, 킹흠정) 그가 응답하여 이르되, 가지 아니하겠나이다, 하고는 그 뒤에 뜻을 돌이켜서 갔고 (마 21:30, 킹흠정) 그가 둘째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매 그가 응답하여 이르되, 아버지여, 가겠나이다, 하고는 가지 아니하였느니라. (마 21:28, 개정)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마 21:29, 개정)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마 21:30, 개정)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계 22:14, 킹흠정) 그분의 명령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것은 그들이 생명나무에 이르는 권리를 소유하게 하며 그 문들을 지나 그 도시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로다. (계 22:14, 개정)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2012-01-30 09:36:47 | 허광무
3. 피의 메리   1539년에 크고 아름다운 그레이트 성경까지 나온 뒤에야 영국은 확실히 개신교 국가로 탈바꿈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헨리 8세가 죽은 후 개신교 계열의 에드워드 6세(병으로 요절)와 그 후의 9일천하 레이디 제인 그레이(지못미..;;)가 제대로 권력 승계를 못 하면서 메리 1세가 역사를 다시 뒤로 되돌려 놓았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비운의 9일천하 여왕인 제인 그레이는 삶이 정말 기구했다. 왕위에 앉을 마음이 없었고 사실은 “너 여왕 됐어”란 말에 너무 충격을 받아 졸도를 할 정도였던 여인도 아니고 소녀였다.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의 등쌀에 떠밀려 정략 결혼을 하고, 조국의 개신교 노선을 이어 나갈 여왕 자리에까지 여차여차 올랐지만 백성들의 의식은 거기에 미치지 못했던 모양.   결국 골수 가톨릭 신자인 메리 1세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메리가 혈통이 더 가깝기도 했고 말이다. 메리 1세는 제인 당사자가 권력욕이 있는 인물이 아닌 것을 알았지만, 제인의 부모가 정치적으로 너무 위험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살려 두기도 곤란했다. 그래서 절충안으로 제인더러 가톨릭으로 개종하면 살려 주겠다는 카드를 제안하였으나, 그녀는 이를 거절했다. 이 때문에 그녀는 결국 20살도 못 된 고등학생 나이에 처형 당했다. 그땐 단두대 같은 것도 없었고, 사형 방식은 그냥 도끼로 목을 치는 것이었다..;;     제인 그레이는 라틴· 히브리 등 5개 국어를 구사할 정도로 똑똑했고,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외모도 아주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냥 귀족하고만 결혼해서 학자나 교사로 평범하게 살았을 사람인데 저렇게 정치· 종교적 희생양으로 전락하여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다만 겨우 고등학생 나이 때도 자기 신앙을 목숨과도 바꾸지 않았을 정도로 독실한 개신교 크리스천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역사 자료에 따르면, 그녀는 최후의 순간에 시편 51편을 외웠으며, 집행을 앞두고 눈이 가려진 뒤엔 “어, 형틀이 어디 있지?” 하면서 당황하며 자신이 목을 내밀 곳을 손을 더듬어 찾았다고 한다. 이 장면은 주변 사람들의 애처로움을 더욱 자아냈으며, 이것이 그림으로 남아 전해진다.   이런 사연을 거쳐 왕위에 오른 메리 1세는 잘 알다시피 피의 메리(Bloody Mary)라고 불릴 정도로 성공회를 포함해 개신교를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선왕이 구축해 놓은 영국 내의 종교 개혁 인프라를 모조리 망가뜨렸다. 그래서인지 메리 1세는 초상화를 봐도 좀 표독스러운 모습의 못생긴 여자로 그려져 있고, 특히 이원복 교수의 <먼 나라 이웃 나라>에서는 네로에 필적하는 싸이코 폭군으로 묘사되었다.     그때 화형 당한 크리스천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무리 적게 잡아도 300여 명이라고 전해지는데, 이 숫자만 보면 그래도 1000단위도 아니고 생각보다는 적은 규모인 것 같다. 프랑스 대혁명이나 공산당 숙청 수준은 아닌 듯. 하지만 메리 여왕이 사람만 죽인 게 아니라 성경까지 죄다 불태우라고 지시했다는 것에 주목하는 세속 역사가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종교 문제를 빼면 메리는 사회· 정치적으로는 그렇게 악한 군주가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그 분야에까지 막장이었으면 진작에 짤렸겠지;; 또한 메리 역시 여왕에 오르기까지 개인사나 가정사는 불운한 편이었으며, 왕위에 오른 후에도 지병으로 인해 자녀 한 명 못 낳고 중년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피의 메리라고 불리는 이 메리 1세를 제임스 왕의 어머니인 메리 스튜어트와 혼동하지 말기 바란다. 둘은 이름이 같고 가톨릭 신자인 것까지도 일치하지만, 통치 영역부터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로 서로 다르다. 잉글랜드의 메리는 자식을 전혀 못 남긴 채 병으로 죽었지만, 스코틀랜드의 메리는 처형당했다.)   이렇게 영국에서 갑자기 개신교 박해가 시작되자, 영국에 있던 종교 개혁 성향의 학자들은 죄다 외국으로 피신했다. 이들은 스위스에서 피신해 있는 동안 지금까지 구축된 원어 자료를 집대성하여 더욱 좋은 성경을 만들어 냈는데, 이것이 제네바 성경이다. 예정론과 개신교 교황이라는 오명 때문에 종교 개혁자들 중에서는 비교적 좋지 않은 평판을 갖고 있는 존 칼빈이 그래도 이때는 영국의 종교 개혁자들을 잘 보호해 준 공로를 세웠다.   제네바 성경은 처음으로 66권 전서를 모두 원어에서 번역했으며, 오늘날과 같은 장· 절 구분이 처음으로 생겼다. 그리고 무슨 스터디 성경처럼 온갖 난외주가 첨가되어 성경의 각 구절마다 편찬자들이 생각하는 해설과 강해가 성경 본문의 양보다도 많이 들어갔다.   4. 킹 제임스 성경 -- 종교 개혁 성경의 종결자   메리에 이어 엘리자베스 1세 시대가 되면서 영국은 다시 개신교 노선으로 돌아갔다. 이 시절에 영국 내부의 종교 대립은 가히 오늘날 우리나라의 좌우 이념 대립에 맞먹는 수준이었으며, 반가톨릭 진영에서는 진짜 반공 교육 수준으로 교황을 험담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가 아니라 “나는 교황이 싫어요” 급이었으며, 교황이 성경에서 예언된 적그리스도 바로 그놈이라고 대놓고 가르쳤다.   예전에 헨리 8세에 이어 왕위를 잠시 이었던 에드워드 6세 왕은 어릴 때부터 궁정 교육을 어떻게 받았는지, 초등학생 나이인 겨우 11살 때 “교황은 레알 마귀 자식이며, 나쁜 놈이요 적그리스도요 가증스러운 독재자”라고 썼을 정도니까.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이승복 어린이 수준이지 않은가? “교황을 죽입시다 교황은 나의 원수”   그도 그럴 것이 영국은 정치적으로도 가톨릭과 앙금이 생길 대로 생긴 게 사실이다. 또, 과거의 역대 교황들이 자신을 예수님 급으로 신성시하면서 “교황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같은 안하무인 신성모독을 저지른 것을 보면, 어차피 그들은 북한 김일성· 김정일이 하는 짓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긴 했다.   제네바 성경은 재야(?) 종교 개혁자들이 사용해 온 좋은 성경이긴 했으나 외국에서 자기네끼리 제작된 사역(私譯)이었으며, 엘리자베스 시절엔 국교회 내부에서 또 그레이트 성경의 개정판 격인 비숍 성경이라는 걸 만들어 썼다. 가톨릭-개신교뿐만이 아니라 같은 영국의 개신교 노선 내부에서도 성공회와 청교도 사이의 갈등이 깊어진 게 이 시기이다. 가톨릭으로부터의 박해가 없어진 뒤엔 영국 교회가 또 대립과 반목으로 인해 분열될 위기에 처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거 이후, 후임인 제임스 1세 왕은 청교도와 성공회를 중재하는 차원에서, 이제 다시는 성경을 또 만들 필요가 없게끔 완벽한 성경을 만들기로 승인을 내려 준다. 그래서 킹 제임스 성경이 드디어 1611년에 나왔다. 장과 절 구분, 100% 원어 번역, 청교도와 성공회 모두 OK, 국내 인쇄 등 예전 성경들이 차츰차츰 확보한 좋은 속성을 모조리 물려받았다.   이 책이 세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으며, 킹 제임스 이후 영국에서는 먼 훗날, 1881년에 부패한 웨스트코트· 호르트 본문에 기반한 RSV가 나오기 전까지는 또 새로운 성경이 나오지 않았다. 새로운 역본이 나올 필요가 이제는 없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성공회와 청교도 사이의 대립 구도로 인해, KJV가 번역될 때는 성경 번역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엄청난 검증 시스템이 도입되었으며, 이것 덕분에 KJV는 전무후무한 고품질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위기가 기회로 승화된 것이다.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종교 개혁을 거꾸러뜨릴 목적으로, 바티칸의 일종의 비밀 결사대인 예수회라는 무지막지한 조직이 결성되었다. 이들은 KJV에 앞서 듀에이 레임스라는 판타지 짝퉁 성경을 만든 바 있으며, 엘리자베스 다음으로 영국에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 왕이 즉위하자 용병을 고용하여 화약 폭발로 제임스 1세 왕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기도 했다. 그러나 이 음모는 기적적으로 사전 발각되어 미수에 그쳤다.   세속 역사가들은 인류가 기독교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 휴머니즘을 추구하면서 교황의 권위가 약화되고 르네상스 시대가 찾아왔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본인의 시각에서는 성경이 널리 보급되고 복음이 전파되면서 교황의 권위가 약화되고 세상이 암흑에서 빛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바티칸 교황이 역사적으로 인류의 발전을 가로막고 엄청난 해악을 끼쳤다는 것에는 본인 역시 세속 역사가의 시각과 100% 일치한다만, 그것이 기독교라고 싸잡아 분류되는 것에는 본인은 동의할 수 없다.   유럽 국가들 중 영국만이 종교사가 저렇게 특이한지, 왜 영국만 국가 교회가 존재하며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있어 왔는지? 왜 영어 성경만 여러 계보가 존재해 왔는지? 더 나아가 하필 킹 제임스 성경이 세계에 퍼져 나간 최종 권위 성경이 되었는지에 대해 KJV 신자라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나도 역사를 잘은 모르지만 내 신앙의 정체성과 뿌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내력은 공부해 두려 한다.   오늘날 인도에 불교가 없으며 예루살렘에 기독교가 없는 것처럼, 영국도 이제 성공회의 노선은 천주교 쪽으로 다시 거의 기울었고 사람들은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 잘 모른다. 발간 400주년을 맞이한 작년에 반짝 조명 정도나 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야만인 바이킹들이나 뛰놀던 섬나라 영국이 세계를 호령하는 제국이 되었으며,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이 전반적으로 중세 암흑기를 벗어나 식민지 개척을 할 정도로 강대국이 된 것에 성경과 복음이 기여한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6:3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1-29 22:49:39 | 김용묵
미국 오레곤 포틀랜드에 있는 그랜뷰침례교회에서 한국인 회중을 섬기고 있는 최요셉(종우) 목사입니다.한글 KJV와 한글 개역 성경을 비교하면서 읽다가 Keepbible에서 소개하지 않은 개역성경 오류를 추가로 발견하고 연락드립니다. 욥기 13:15은 완전 오역이고, 마태복음 21:28~30의 두 아들 비유에서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의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2:14도 잘못번역되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바른 성경을 한국 땅에 소개하고 전파하는 일에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어렵더라도 힘내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6:3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1-29 15:26:41 | 최종우
제가 이 글을 쓰면서 참고했던 교회사 자료와 동일한 source를 이미 다 공부해서 아시는 듯합니다. ^^ 말씀하신 대로 커버데일뿐만이 아니라 존 로저스도 틴데일의 친구였습니다. 또한, 성경 순서도 그렇게 되는 게 맞습니다. 하편은 곧바로 그레이트 성경으로 시작합니다. 그 뒤 제네바· 비숍 성경을 다룬 뒤에 킹 제임스에서 끝이 날 예정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교회사 공부를 덩달아 하게 되는 프로젝트를 개인적으로 진행한 게 있었습니다. 제가 맡은 부분은 이제 다 끝내고 넘겼으니, 최종 결과물이 공개될 날만 남았지요. 그게 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저는 언론 엠바고(?)를 지켜야 할 입장입니다만, 그걸 하면서 개인적으로 동기 부여를 받고 공부가 된 것을 제 스타일로 글로 정리해서 올렸습니다. 지난번의 천주교 글도 그걸 하면서 작성되었습니다. ^^
2012-01-27 15:54:47 | 김용묵
1. 동로마 제국의 멸망 476년에 로마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되었다가, 1453년 5월 29일에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투르크에게 함락되면서 동로마 제국이 멸망합니다.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육지 쪽은 3중으로 된 성벽이 가로 막고 있어서 난공불락의 요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골든혼 바다 입구에 1km나 되는 쇠사슬을 걸어서 적군의 함선이 내해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두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 술탄 메메드 2세는 다소 무식한(?) 방법을 써서 밤중에 배를 산으로 끌고 가서 쇠사슬 너머로 배를 넘겨버립니다. 병사들은 배를 운반할 대형 수레를 나무로 짜고 쇠바퀴를 단 다음, 그 장비를 바다에 정박해 있는 배 밑바닥에 부착하고 밧줄로 배와 함께 단단히 고정한 다음에 육지로 끌어올린 거지요. 요즘 식으로 말하면 바퀴 달린 배, 수륙양용 장갑차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일단 술탄의 배가 내해에 들어온 다음에는 근처에 접근해 오는 지원 선단, 물자수송선을 죄다 침몰시키고, 대포로 성벽을 부수는 공성전을 펼쳤습니다. 그 유명한 우르반의 대포가 여기서 등장합니다. 포탄 한 발의 무게가 609kg, 포신 8.2 미터, 포 하나 당 하루에 7발 밖에 쓸 수가 없지만 위력은 상당했답니다. 포를 이동하는데 700명의 병사가 동원되고, 소 15쌍이 끌어야 한다니 얼마나 육중한 무기인지 짐작이 갑니다. 위 이야기는 그냥 지나간 역사 이야기 정도로만 알아두시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그리스 크리스천들은 서방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이 때 그들이 하나님께서 보존해주신 말씀이라고 믿고 있던 그리스어 필사본들도 갖고 갔습니다. 그래서 동로마 제국의 멸망은 유럽에 복음이 전파되고, 보존된 사본을 통해 성경이 번역되는데 크게 기여를 합니다. 2. 영어 성경들 영어 성경이 나오기 전에도 앵글로색슨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위클리프 성경은 최초의 완전한(66권이 다 들어있다는 뜻임) 영어 성경이지만 라틴 벌게이트역에서 번역했고, 필사본입니다. 틴데일 성경은 최초의 인쇄된 영어 성경으로, 신약 전체와 구약 일부만 번역한 것입니다. 틴데일은 에라스무스 2판, 3판과 루터 성경을 기초로 번역 작업을 했습니다. 커버데일 성경은 최초로 영어로 인쇄된 완전한(66권) 성경입니다. 매튜 성경은 틴데일 성경을 개정한 것입니다. 존 로저스는 틴데일의 친구입니다. 커버데일 성경이 왕의 지시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영국에서 최초로 공적으로 인정받은 성경은 The Great Bible 입니다. 하편에는 아마 The Great Bible, Geneva Bible, Bishop's Bible 이야기와 KJB 번역 이야기도 나오겠군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런데 올해 상반기 안에 무슨 일이 있나요? 혹시 성경 프로그램이라도 제작 중이신지?
2012-01-27 14:05:04 | 김문수
1. 유럽의 중세 암흑기 천 년이라는 시간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장구한 시간이다. 성경에는 앞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공의로 1000년 동안 다스릴 것이라는 예언이 있다. 한편, 한국사에서는 신라가 AD 900년대까지 거의 1000년 가까이 존속하여, 도읍인 경주 역시 ‘천년고도’(千年古都)라고 불린다. 본인이 경주 출신이다만, 그 작은 도시가 천년고도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교회사가 시작되었으나 진리의 빛이 꺼졌던 중세 암흑기가 거의 1000년에 가까이 계속되었다고 여겨진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나중에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고 신대륙이 발견되고 종교 개혁이 일어나고, 유럽이 본격적으로 동양을 과학 기술로 압도하기 그 전에! 그 사이 기간에 대해서 나만 아무 정보가 없는 걸까? 그 사이에 있었던 굵직한 사건이라고는 진짜 십자군 전쟁 정도밖에 생각이 안 난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 전쟁과 잔다르크는 1400년대 사건이니, 중세 중에서는 그나마 나중인 편이고. 그 기간 동안 어느 샌가 교황이 유럽을 모조리 장악했으며 성경은 금서가 되었고 종교 재판과 마녀 사냥이 횡행했다. 어떻게 해서 교황이 저런 국제적인 종교 괴물로 등극할 수 있었는지 그 메커니즘을 잘 모르겠다. 교회사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라도 여기에 대한 지식이 보충되어야 할 것 같다. (아 하긴, 우리나라만 해도 이단 교주들이 얼마나 돈 잘 버는지를 생각해 보면, 교황이 종교 장사로 큰 대박을 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은 했겠다.) 어렸을 때 즐겨 읽었던 유레카 학습 만화 세계 역사 시리즈를 다시 펼쳐 보았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알고 있는 게 잘못된 게 아니었다. 제6권에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부터 서로마 제국의 멸망까지 나오는데, 제8권은 곧바로 메디치 가문이 어떻고 미켈란젤로, 르네상스, 콜럼버스, 루터 따위가 나온다. 시간 차이가 장난이 아닌데 중간에 그야말로 엄청난 skip을 한 것이다. (제7권은 칭기즈 칸과 오스만 튀르크 제국 같은 아시아 편이고 유럽 얘기가 아님.) 더 정확히는 6권의 뒷부분에 ‘중세 유럽’이 특집 형태로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 짚고 넘어가 있었다. 세심하게 여러 에피소드를 편성하고 스토리가 있는 만화를 넣은 게 아니라, 글과 벽화 소개 위주로 백화사전식으로 “그냥 이런 게 있었다. 끗”이었던 것이다. 중세는 정말 긴 기간이었는데도 이때의 유럽 역사는 이렇다 할 위인이나 큰 변화가 그다지 없었고 사료도 부족하고... 세속 역사가들로부터도 가히 흑역사로 취급받는다는 걸 이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시기는 판타지 게임이나 영화들의 주 배경이 되기도 하고.. 이 글에서는 유럽이 중세 암흑기를 벗어나 근대로 나아가는 시기에 있었던 일을 영국의 교회사 위주로 요약해 보겠다.중세에 교황의 권위를 거부하고 성경을 읽고 침례를 행하던 크리스천들은 알비겐시스, 왈덴시스처럼 지역이나 모임 리더의 이름을 딴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며 숨어 지내던 소수의 무리들이었다. 루터가 이신칭의를 주장하기 전부터 이 사람들은 ‘믿음을 통해 은혜로 받는 구원’ 정도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 고려· 조선시대 사람들은 그럼 아무 기회도 없이 다 지옥 갔냐”라고 기독교에 트집을 잡는 분들이 많은 줄로 안다. 허나 내가 보기에는, 중세엔 서양도 복음에 대한 접근성이 동양하고 별 차이 없었을 것 같다. 그쪽에서는 어차피 교황이 성경을 다 빼앗아 불태우고 수많은 사람들을 거짓 교리로 지옥으로 보내 주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동양엔 왈덴시스 같은 집단이 없었던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종교 재판소도 없지 않았는가? -_-;;; 피장파장이다. 도미니크 구즈만(천주교에서 성 도미니크라고 부르는 그 사람)이라는 수도승이 그런 크리스천들과 교리 논쟁(오늘날로 치면, 종교갤에서의 키배)을 종종 벌였으나, 그들을 도무지 이길 수 없었다. 가톨릭은 교리도 완전히 잘못됐을 뿐만 아니라 그 기원부터가 로마 제국 시절에 세상 권력과 결탁하여 순교자들의 피를 부르며 시작되었다고 조목조목 반박하는데, 당할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말로 곱게 회유가 안 되는 반동분자들을 적당히 꼬투리 씌워 조지기 위해 도미니크 수도회가 만들어 낸 게 종교 재판소의 원조이다. 서기 1223년, 교황 그레고리 9세에 의해 드디어 정식 공표된 종교 재판은 마녀도 아니고, 이슬람 같은 완전히 다른 이교도도 아니라 전적으로 크리스천들을 죽이고 그들 재산을 빼앗기 위해 제정된 것이었다. 나머지 목적은 2순위, 3순위일 뿐이다. 2. 헨리 8세 이후 영국의 성경 번역의 역사 그러다가 존 위클리프라는 영국 사람이 처음으로 14세기에 처음으로 영어 성경이라는 걸 만들었다. 열악한 당대 상황 때문에 비록 본문이 부패한 천주교 라틴 벌게이트 기반이었지만, 영어 철자법도 아직 정립해 있지 않던 시절에 원어가 아닌 영어 성경이 나온 것만 해도 어디냐. 그 위상이 가히 영국의 개역성경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구한말에 나온 한글 개역성경도 부패한 본문 기반 + 맞춤법 비정립 시기! 1881년 RSV 할 때의 그 개역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위클리프는 성경을 번역한 덕분에 천주교로부터 극심한 미움을 받았으며, 나중에 죽고 나서 40년 가까이 지나서야 무덤에서 시신이 다시 꺼내어져 목이 잘렸다.;;; 쉽게 말해서 오늘날 국어에서 욕설로 쓰이는 육시(戮屍)를 실제로 당했다는 뜻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영국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겪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오래 된 영국 왕으로 헨리 8세 아니면 기껏해야 7세 정도까지만 기억을 할 것이다. 이 헨리 8세는 원래는 당시 유럽의 여느 군주들이 그랬듯이 막강한 교황의 권세 앞에서 깨갱 하고 있었다. 친가톨릭이었고 딱히 소신 있는 종교 개혁자 성향도 아니었다. 그랬는데 부인을 6명이나 둔 호색한이었던 그는 치정 문제로 인해, 더 정확히는 ‘아라곤의 캐서린’이라고 불리는 왕비와의 이혼을 교황의 승인 없이 추진하려다 보니 교황과 결별· 단절을 선언하게 되었다. 그리고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수장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바티칸은 이 소식에 당연히 발칵 뒤집혔으며, 헨리 8세에게 험담과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천주교는 이 사람을 루터만큼이나 몸서리치게 미워하며 나쁘게 말한다. 비록 헨리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똘끼를 선한 방향으로 이끄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영국이 천주교의 손아귀에서 정치적으로 벗어날 징조가 보이던 15~16세기엔 천주교에는 악재, 기독교에는 호재가 연달아 터졌다. 에라스무스라는 학자가 바른 성경 계보인 공인 본문을 처음으로 유럽에 소개하였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에는 동로마 비잔틴 제국의 멸망이라는 당대 정세도 기여를 했다. 이때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시작으로 종교 개혁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공인 본문을 기반으로 신약 성경을 최초로 독일어로 번역했다. 마침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활판 인쇄술로 책을 값싸게 많이 찍어 보급할 수 있게 된 것도 지금으로 치면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에 필적하는 정보화 혁명이었다. 그리고 영국에는 윌리엄 틴데일이라는 참으로 위대한 믿음의 선배가 등장하여 그 독일어 성경을 다시 영어로 번역한 영어 성경을 만들었다(신약+모세오경+알파. 아직 전서를 만들지는 못함). 바른 원문 계보에서 번역된 최초의 영어 성경이다.틴데일은 “누구나 성경을 휴대하고 읽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 소 몰고 밭 가는 촌뜨기 아이라도 교황보다 성경을 많이 알게 만들어 놓겠다”라는 도발적인 공언까지 했는데, 이는 시대를 너무 앞서가는 발상이었고, 그런 열성 때문에 그는 결국은 나중에 순교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교수형과 화형을 순차적으로, 혹은 동시에 당하면서 죽었으며, 죽기 전에 “주여, 우리나라 왕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라고 크게 외쳤다. 아직 영국은 친가톨릭과 친개신교 노선이 오락가락하는 중이었고, 영국의 고위 관료나 성직자 중에는 친가톨릭 성향에 틴데일을 미워하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헨리 8세 왕이 틴데일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틴데일의 기도는 그가 죽은 지 6개월 남짓한 시간 만에 응답되어, 헨리 8세는 틴데일의 친구인 마일스 커버데일이라는 사람으로 하여금 영국 성공회가 공식 사용할 영어 성경을 만들게 했다. 커버데일은 사역(私譯)이던 틴데일의 번역물을 십분 활용하여 1535년, 커버데일 성경을 만들었다. 왕이 승인하고(公譯) 성경 66권이 모두 번역된 최초의 영어 성경이 바로 이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는 존 로저스라는 사람이 매튜라는 가명을 써서 매튜 성경을 내었다. 이것은 잉글랜드라는 자국내에서 인쇄된 최초의 성경이라 한다. 틴데일과 커버데일 성경은 모두 영어 성경이지만, 각각 독일과 스위스에서 인쇄된 후 영국으로 밀반입되었기 때문이라고. 국가가 떳떳하게 대놓고 성경을 찍을 정도로 개신교 세력이 충분히 크지 못했던 걸로 보인다. - 며칠 뒤에 올라올 下에서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아마 킹제임스 흠정역의 부록에 실려 있는 성경 역사 글을 읽어 보신 분이라면 이 내용이 비교적 친숙할 것입니다.- 갑자기 제가 왜 이런 글을 올리는지는 몇 달 정도 뒤면(늦어도 올해 상반기 안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저의 세계사 지식의 무지로 인한 내용 실수 지적은 환영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6:3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1-27 10:50:11 | 김용묵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비록 세속적인 곳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다룬다는 것만으로도 참 놀랍군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호남 지역에도 부디 하나님의 말씀이 널리 널리 퍼지길 기도합니다. 샬롬~^^
2011-12-19 00:35:45 | 소범준
"구약과 신약을 포함하는 본 성경 전서는 제임스 폐하의 특별 명령에 따라 원어에서 번역하였으며 또한 이전 역본들을 부지런히 비교하고 수정하여 번역하였음" 즉, 텍스터스리셉투스'만' 본 것은 아님. 파피루스, 대문자 사본, 소문자 사본, 기도문 등의 99퍼센트가 공인본문 지지. 단 1퍼센트만이 웨스트코트/호르트 및 네슬레/알란드 본문 지지. 특히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아니한 사람이었고, 기독교의 기본적 교리인 그리스도 예수님의 속죄를 부인하였으며, 천주교 교리(연옥, 유아 세례 통한 구원 등)를 신봉하는 자들이었음.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롬1:17,갈3:11,히10:38 중) {주}의 말씀들(단어들)은 순수한 말씀들(단어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단어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단어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2011-12-17 21:56:49 | 박주영
안녕하세요?   성경지킴이(KeepBible) 사이트에 방문하는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잘 알고 계시듯이 올해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1611년에 발간된 지 4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이에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는 다음과 같이 400주년 기념판 성경을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습니다. (1) 한영대역관주성경: 검정 오픈, 검정 지퍼, 브라운 지퍼(2) 스터디바이블: 검정 오픈, 검정 지퍼, 브라운 지퍼(3) 큰글자 성경: 검정 오픈, 검정 지퍼, 브라운 지퍼(4) 작은 성경: 검정 지퍼, 브라운 지퍼, 블루 지퍼(5) 하드커버 성경: 검정 오픈 하드커버, 자주 오픈 하드커버(6) 박사성경: 검정 오픈 하드커버, 자주 오픈 하드커버 400주년 기념판 성경의 출간과 동시에 저희는 홍보/광고 후원회의 도움을 얻어 GoodTV라는 기독교 케이블 TV 방송과 생명의말씀사 온라인서점, 국민일보 등을 통해 광고와 홍보를 했습니다. 많이 홍보가 되었지만 아직도 힘이 미력하여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여전히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교회나 개인이 선물을 많이 하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올해에는 형제/자매님들께서 저희 출판사의 킹제임스 흠정역 400주년 기념판을 구입해서 선물하면 어떨까요?   이미 형제/자매님들은 가지고 계시더라도 출판사를 위해 몇 권 더 구입해서 기존의 개역성경을 쓰시는 분들에게 선물하면 성경을 받는 개인과 출판사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늘 많은 도움을 주시지만 올해는 성경 제작과 보급에 많은 지출이 있어서  저희 출판사의 형편이 많이 어려우므로 한 번 더 성경을 알리는 사역에 적극 동참해 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이것이 저희 출판사를 돕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출판사가 유지되어야 이 사이트도 좋은 기사를 제공하면서 잘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올해에는 400주년 기념판을 구매해서 기존의 개역성경(개정판)을 보시는 분들에게 나누어주시고 사랑을 베풀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샬롬.   출판사 그리스도 예수안에 대표 정동수 드림   (*) 몇 개의 파일을 첨부하니 주변 분들에게 적극적으로 나누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원하시는 때에 자발적으로 킹제임스 성경 사역을 돕기 원하시는 분께서는 다음의 계좌로 재정 지원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은행 1005-401-906939, 정동수(그리스도 예수안에), 이 계좌는 사이트 메인 화면 왼쪽 하단의 후원 안내에도 있습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서와 같이 자유로운 행로를 가져 영광스럽게 되고"(살후3:1)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19:58 공지사항에서 복사 됨]
2011-12-06 14:32:03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