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는 화학 원소로서의 특성을 잃지 않는 범위에서 도달할 수 있는 물질의 기본적인 최소 입자를 말하는데 각각의 원자는 전기적으로 완전하게 균형을 유지한다. 양 전하를 띤 양성자의 숫자와 음 전하를 띤 전자의 숫자가 같기 때문이다.
원자에서 가장 놀라운 기적은 핵에서 발견되는 핵력이라는 응집력이다. 원자의 핵에서 우리는 자연의 법칙을 위배하는 놀라운 현상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야 말로 창조의 기적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기초 물리에서 배우듯이 같은 전하를 띤 입자들이 서로 가까이 있으면 서로가 서로를 밀어낸다. 그런데 원자의 핵에서 창조주께서는 전혀 다른 법으로 이 같은 현상을 억제하고 계신다. 다시 말해 같은 전하를 가진 양성자들이 핵에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알 수 없는 신비의 엄청난 응집력에 의해 굳게 결합되어 있다. 이것은 원자에 대한 가장 신비한 사실 중 하나로서 ‘우주의 근본적인 신비’라 불린다. 만일 이런 현상이 없다면 온 세상 만물은 다 해체될 수밖에 없다.
온 우주를 지탱하는 시멘트 같은 힘은 중력이다. 원자를 함께 모으는 것은 전자기적인 견인력이다. 그러나 원자의 핵을 다 같이 모으는 힘은 현존하는 물질 세상의 경험과 지식을 모두 무시하는 신비의 힘이다. 이 힘은 지금까지 사람이 이해한 다른 모든 힘과 다르므로 제대로 그것을 묘사할 방법이 없다(Robert E. Marshak, "PIONS", American Scientific Magazine).
창조주의 큰 손에 의해 마치 큰 스프링처럼 둘둘 말려 압축되어 있는 이 엄청난 에너지는 보통 핵 에너지라 불리며 이 에너지는 위력이 대단해서 원자 폭탄 하나가 수천 톤의 TNT에 해당하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전자 현미경으로 겨우 관찰할 수 있는 이 작은 원자에 이 같은 신비가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과연 모든 것이 우연히 생겼다는 진화론의 우화를 믿을 수 있을까?
누구라도 원자의 핵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 안에 엄청난 지적 설계가 들어 있고 창조주의 놀라운 힘이 들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처음에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무에서 유로 창조하신 분이시다(창1:1). 바로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자신의 권능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떠받들고 있기에(히1:3) 원소들이 붕괴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처음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듯이 주님의 날이 임하면 원소들이 뜨거운 열에 녹으며 그 안에 있는 일들도 불타서 만물이 해체될 것이다(벧후3:10-11). 우리 주님은 자신의 재림 약속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디지 아니하시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벧후3:9). 창조주의 참으심의 끝이 이르기 전에 오늘 주님의 부르심에 응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이다.
2015-01-15 10:38:50 | 관리자
안녕하세요?
킹제임스 성경을 읽다가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들의 딸들 문제로 실족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001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1749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3274
미국에서 상당히 유명한 성경 교사 중 하나인 미슬러의 동영상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의견에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라는 점에서는 확실합니다.
노아의 날들: 네피림들의 귀환 1 (Chuck Missler)
http://www.youtube.com/watch?v=XNFwqB_SgyE
노아의 날들: 네피림들의 귀환 2 (Chuck Missler)
http://www.youtube.com/watch?v=ilgrkoqDScg
샬롬
패스터
2015-01-10 15:34:06 | 관리자
목사 후보생 혹은 바른 목회를 꿈꾸는 목사에게
다음 글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qt&write_id=717
2015-01-10 15:08:18 | 관리자
드보라와 여자 목사
신약성경은 논쟁의 여지 없이 한 지역 교회의 목사와 집사는 남자만 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딤전3:2, 12).
그 이유는 딤전 2장에 있듯이 창조 질서와 여자의 범법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교회에서는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권위를 행사해서는 안 됨을 명확하게 보여 줍니다.
오직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딤전2:12).
이 성경 기록은 결코 여자들이 말을 해서는 안 됨을 뜻하지 않습니다.
여자들이 교회에서 남자들 위에 군림하여 권위를 행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을 절대로 남자와 여자의 우열을 가리는 차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남자와 여자는 똑같이 존귀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가르침을 지켜 행하고 교회를 운영할 때 모두가 평안하고 기쁨이 넘치며 교회 안의 질서가 견고하게 유지됩니다.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지식이 넘쳐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우리가 기억하고 지켜야 할 바른 교리입니다.
이런 교리에도 불구하고 여자 목사/집사/장로를 세워도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근거로 제시하는 인물이 바로 드보라입니다.
드보라는 사사기 4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여대언자이자 재판관(사사)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가끔 하나님의 말씀(직통 계시)을 전달하는 여자 대언자들이 있었습니다. 미리암(출15:20), 드보라(삿4:4), 훌다(왕하22:14), 안나(눅2:36) 등이 이에 속합니다. 또한 신약시대에도 초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완성되기 전에는 대언자들이 있었고 유일하게 이름이 기록된 여자들로는 복음 전도자 빌립의 두 딸이 대언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행21:8-9). 같은 맥락에서 고린도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대언하는 자매들이 있었습니다(고전11:5).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들은 신구약 성경 전체가 주어지기 전에 하나님의 직통 계시를 대신 전한 대언자들이며 지금 이 시대에는 이런 대언자가 남자든 여자든 없습니다.
또한, 여자 대언자들이 여럿 있었고 드보라도 그중의 하나이므로 드보라만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드보라가 주목을 받는 것은 그녀가 이스라엘에서 유일한 여자 재판관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사(재판관) 시대에 재판관은 거의 왕이나 다름없는 권위를 가졌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과거 신정 정치하의 이스라엘은 남자들 중심의 사회였고 그래서 여자와 아이들은 심지어 사람의 수에도 들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여인 드보라가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는 것은 실로 대단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사사 시대 이후 왕정 시대가 열렸지만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에서는 공식적으로 여왕이 통치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물론 아달랴가 잠시 유다를 통치하였으나 그것은 왕권을 찬탈한 것이었으며 아무도 그녀를 왕으로 여기지 않았고 그녀는 곧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이스라엘의 문화를 이해할 때 드보라라는 여인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드보라 당시(전반적으로 사사들의 시대 전체에 걸쳐)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심히 타락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여 배분한 이후 세월이 흘러 그의 세대 사람들이 생을 마치고 죽자 이스라엘은 곧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음행의 길로 갔습니다.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모든 날 동안과 여호수아보다 더 오래 산 장로들 곧 {주}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그분의 모든 큰일을 본 자들이 사는 모든 날 동안 {주}를 섬겼더라(삿2:7).
사사기 4장에 보면 가나안의 왕 야빈과 그의 군대 대장 시스라가 이스라엘을 침공해 오고 바로 이때에 드보라가 재판관으로 등장합니다.
바빌론 포로 생활하기 바로 전의 유다의 상태도 이때와 비슷하였습니다. 이렇게 극심하게 타락한 시대에 마땅히 들고 일어나 부패한 사회를 정화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코흘리개 아이처럼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남자들을 꾸짖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이들과 여인들을 사용하십니다.
이사야서 3장을 봅시다.
1 보라, [주] 곧 만군의 {주}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로부터 의지하는 것과 의뢰하는 것 즉 모든 의지하는 빵과 모든 의지하는 물과 2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대언자와 분별 있는 자와 원로와 3 오십인 대장과 존귀한 자와 조언자와 솜씨 좋은 장인과 달변의 연설가를 제거하시느니라. 4 내가 아이들을 주어 그들의 통치자가 되게 하며 아기들이 그들을 다스리게 하리니 12 ¶ 내 백성으로 말하건대 아이들이 그들을 학대하며 여자들이 그들을 다스리는도다. 오 내 백성아, 너를 인도하는 자들이 너로 하여금 잘못하게 하며 네 행로들의 길을 무너뜨리느니라.
1-3절은 이런 악한 때에 하나님께서 능력있는 남자들을 제거하심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때에는 4절과 12절에 있듯이 아이들과 여인들이 나라를 다스리며 남자들을 조롱합니다.
바로 이런 일이 드보라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사사기 4장 6-9절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남자들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6 그녀(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게데스납달리에서 불러 그에게 이르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셨느냐? 말씀하시기를, 가서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중에서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다가가라. 7 내가 야빈의 군대 대장 시스라와 그의 병거와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주리라, 하셨느니라. 8 바락이 그녀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가지 아니하겠노라, 하매 9 그녀가 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여정이 네게 명예가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주}께서 시스라를 한 여인의 손에 파실 것이기 때문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그 당시 바락이라는 남자가 가장 강하였음에도 그는 마치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처럼 드보라의 치마폭에서 움직입니다.
바로 이런 시대에 여자 재판관이 등장하여 나라를 구하며 영적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남자들에게 경종을 울렸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영국 같은 나라에 여왕이 있고 우리나라는 지금 여자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이것도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드보라 이야기는 신정 정치하의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됩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직접 자신의 뜻대로 재판관을 세우셨습니다. 영국 등은 왕위가 계승되는 시스템입니다. 한국, 독일 등은 백성이 지도자를 직접 선출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러므로 드보라의 경우를 확대해서 이방인 세상 정부에 적용하고는 그 나라의 영적 상태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드보라의 사례를 들어 여자 목사도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떨까요?
이것 역시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교회의 두 직무 수행자인 목사나 집사는 반드시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규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감독은 반드시 책망 받을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며(딤전3: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을 잘 다스릴지니라(딤전3:12).
여기의 감독은 지역 교회를 감독하는 목사를 말합니다.
이런 원칙에 따라 침례 성도들은 결코 여자 목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미국의 침례교회들이 실행하고 있는 원칙입니다. 이것은 인권의 문제가 아니고 창조 질서의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어떤 여인이 목사가 되기를 원해 실제로 목사가 되어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다루거나 참견할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서 자기의 모든 행적을 일일이 회계 보고할 때가 있고 그때에 우리 모두가 답변해야 합니다. 여자로서 목사의 직무를 담당했던 본인이나 그런 여자 목사가 목회하는 지역교회에 출석했던 성도들이나 모두 각자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개별적으로 회계 보고를 하게 될 것입니다.
11 기록된바,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굴복하고 모든 혀가 [하나님]에게 자백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였느니라. 12 그러므로 이와 같이 우리 각 사람이 자신에 관하여 [하나님]께 회계 보고를 하리라(롬14:11-12).
우리가 반드시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고후5:10).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여자가 지역교회를 이끄는 목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명백한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남자와 여자의 우열을 가리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인간의 사상과 지식이 넘쳐나는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한 성경의 가르침과 하나님께서 정하신 창조의 질서를 잘 지킬 때 교회가 평안하고 질서정연하게 운영되며 우리 모두에게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을 지키지 않을 때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마땅히 그에 대한 회계 보고를 해야 함과 더불어 이 땅에서도 그에 따른 부작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역교회가 성경에 기록된 바른 교리대로 운영되지 않았을 때 어떠한 악한 일들이 일어나는지는 한국 땅에서 오랫동안 믿음 생활을 하신 분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여자 목사를 만나더라도 한 사람으로서 그를 존중하며 은혜롭게 대하기 바랍니다. 상대방이 굳이 묻지도 않는데 이런 문제를 꺼내 이야깃거리로 삼는 것은 지혜로운 행동이 아닙니다. 다만 누가 물으면 은혜롭게 부드러운 태도로 바른 교리를 알려 주십시오.
샬롬
패스터
2015-01-07 11:13:0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예수님의 탄생일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은 이 기사를 보기 바랍니다.
다음 기사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5774
샬롬
2014-12-20 10:16:54 | 관리자
성경의 모든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꿰어 맞추는 무리한 추측을 하는 것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 라는 말씀만이 우리의 푯대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수년 전 모세의 홍해 기적도 강풍 때문이라는 주장과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에서 물 위를 걷는 성경의 기사가 물위를 걸은 것이 아니라 얼음 위를 걸은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본 적도 있습니다.
참고
모세 :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00923153006
물위 : http://www.chosun.com/culture/news/200604/200604050086.html
과학은 인간이 학습하고 연구해온 불완전한 도구일 뿐 성경의 모든 현상을 과학으로 대치 시켜 설명하려는 것은 인간의 교만이라고 생각 됩니다.
2014-12-01 09:48:07 | 허광무
목사님~귀한 글 고맙습니다!
2014-11-30 23:03:21 | 위정복
가장 먼저, '과학(Science)'에 대한 정의 부터 집고 넘어가야 할 듯합니다.
과학은 사실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질서를 여러번의 실험적인 관찰이나 조사, 그러한 현상을 규명하는 논리적인 방법들이나 행위, 그리고 이러한 행위들의 통해 얻어진 지식등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과학의 정의를 먼저 확인하고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바라보면,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극히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저 꽃씨를 심으면 꽃이 되는 것을 관찰과 소위'과학'적인 실험을 통해서 그렇게 된다고 주장을 하는게 바로 '과학'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와 초자연적인 것들 모두를 우리의 스케일의 '과학'으로 모든 것들을 짜맞추려한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또 다른 진화론과 같은 믿음의 '종교'에 지나지 않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4-11-30 08:50:39 | 조민수
우리 Bible Believer들은 올바른 말씀 King James 성경의
창세기 1장 1절 말씀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부터
요한계시록 22장 21절의 끝 말씀 “아멘”까지를 믿는 자들입니다.
세상의 불신자들과 믿음에 약한 자들이 억지로 견강부회하여 예수님의 탄생을 설명하려는
그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4:16~17)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그런즉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히11:3)
성경말씀을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우주만물을 운행하시며, 우주만물을 잡고 계시기때문에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인데 이것을 믿지 않으니 이상한 이론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잡고 계신 것을 놓으시면 우주만물은 해체되어 흩어져버리게 되겠지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찬양합니다.
귀하고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4-11-30 07:51:28 | 홍성인
저도 이 동영상을 보고 나름대로 성경과 비교해가며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보기에 주님의 탄생과 합치시키고 싶은 유혹을 받기에 충분히 흥미로운 현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과 맞지 않거나 신뢰하기 어려운 부분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① 교부 터툴리안과 클레멘토의 진술에 의지해서, 주님의 탄생시점을 BC 6년 5월14일로 보고 있었읍니다. --> 이 진술 자체의 신빙성도 의문이지만, 눅3:1과 눅3:23을 보면 티베리우스 황제 제15년(AD28년)에 주님이 30세 즈음이라고 기록한 성경기록과도 확연히 차이가 나는 년도입니다.
② 마2:2의 ‘주님의 별’을 목성으로 보는 것도 문제입니다. -->오히려 금성으로 본다면 계22:16을 참고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제우스(쥬피트-목성)를 주님과 연결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③ 마2:9은 별의 인도 기록임에도, 천문학적인 현상에 무리하게 맞추다 보니, 성경기록의 문자적 의미와 너무 동떨어진 해석을 한다는 점입니다.
창조과학회와 김명현 교수님의 많은 연구와 활동은 성경을 구체적인 사실로서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익한 내용이 많아서 저는 개인적으로 호의와 존경을 갖고서 계속 발전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다만 이 동영상과 같이 비판의 여지를 많이 포함하는 것들은 오히려 창조과학회의 다른 유익한 내용들까지 의문을 갖게 하는 빌미가 될까 우려됩니다.
2014-11-30 07:40:56 | 임원섭
두 가지 관점에서 보게 됩니다.
1. 구성원 중에서 열심은 있으나 능력이 부족한 자가 자신의 능력과 주어진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경우에 그 집단은 매우 힘든 경우에 직면하게 될 것 입니다.
2. 같은 편인 거 같지만 내부의 누룩일 수 있다고 봅니다.
2014-11-30 07:06:06 | 차대식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믿는 믿음,
그것 하나로 충분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2014-11-30 02:04:08 | 정진철
성경기록은 진리 그자체이므로 그 어떤 것으로 부터 역으로 검증받을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들의 흔한 오류가 나름대로 근사치의 답을 정해놓고 답을 지지해 줄수 있는 것들을 찾아 다니다가 합당한 것이 나타나면 마치 새로운 사실을 반견한 냥 발표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베들레햄의 별에 대한 컴퓨터 자료도 동방의 지혜자들이 상당한 기간을 두고 여행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목성과 토성의 공전주기가 일치하면서 어린 예수님위를 비취었다고 보기에는 헛점투성이의 끼워맞춘듯한 가공된 자료로 보입니다.
나름대로 성경을 증명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그 일로 인해 성경기록을 불신하는 자리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과학적인 영역에 대해 창조과학으로는 검증될 수 없으므로 과학의 한계안에서 성경기록을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성경신자로서 과학자들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분별해야 할 지를 깨우쳐주는 좋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2014-11-30 01:52:33 | 조양교
좋은 글을 균형감있게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자들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경을 대할 때 성경이 말하고, 표현하고 있는 것들을 가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표현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제 아무리 과학이라는 지적능력으로 새로운 것들을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성경이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것들을 억지로 연관짓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만약 과학이라는 지식으로 성경보다 더 자세하게 입증해내려고 시도를 한다면 그것은 과학이 곧 하나님보다 위에 있는 종교가 될 수 있음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그분들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행하려고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도 모르게 과학으로 하나님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자만심은 충분히 그러한 소지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도구로 활용되어지고 있고 또 앞으로도 충분히 활용되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지적 우월성'이라는 늪에 빠져 '지적 신비주의'를 창출해냄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거짓 된 분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되어 집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경을 대할 때 말씀이 가라고 하면 가고 말씀이 멈추라면 멈출 수 있는 절제와 균형감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자신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분은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대하는 자세를 한 번 더 묵상하고, 뒤돌아 보는 기회를 갖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4-11-30 01:34:30 | 김상진
예수님을 믿으면서 성경 신자라는 단어 만큼 영예로운 호칭이 있을 까 생각해 봅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나는 성경대로 믿는다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은 신앙생활에 큰 자유함을 가져다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이 아닌 여러가지 글을 따라 본인 신앙이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지요.
전문가적인 지식을 배경으로 성경의 사실을 입증하려는 글을 대하고 의문속에 묻힌 성경속의 궁금증이 확 풀린듯이 다가오는 것은 어떤 경우에는 유익하지만, 때로 커다란 유혹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입증되는 것은 확실히 믿어지지만 입증되지 않는 것은 의문속에 묻어두며 의심의 여지를 남겨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신자는 입증 여부와 아무런 상관 없이 기록된 말씀 그대로 믿을 따름입니다.
성경을 옹호하고자 한다는 나름 전문가라고 하는 분의 견해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성경 신자로서 위와 같은 글로 지적할 수 있는 자세는 부러울 따름입니다.
다시한번, 성경에 확고한 바탕을 둔 신앙을 갖고자 마음을 가다듬어 봅니다
2014-11-30 00:48:03 | 한재석
차분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글입니다.
성경이 정확히 알려주지 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것도 문제지만 몰라도 되는 것을 알려고 할 때 무리수를 둘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성경은 과학적인 책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며, 과학으로는 알 수 없는 신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학보다 훨씬 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창조과학은 지엽적인 도구임을 알고, 주객을 전도시키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2014-11-30 00:17:01 | 김재욱
1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그것으로 장로들이 좋은 평판을 얻었느니라.
3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그런즉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믿음을 명료하게 정의하는 저 위대한 히브리서 11장의 말씀은 믿음이 바로 눈에 보이지 않으나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들의 실체이며 증거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경의 진리를 가끔 과학적 방법으로 논증하고 사람들이 모르는 전문 지식으로 밝혀 보려는 시도가 꼭 다 나쁜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그것을 업으로 삼고 자꾸 중독되어 쫓아다니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체질을 약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러한 자세로는 성경이 말하는 믿음을 소유할 수도 큰 믿음으로 성장할 수도 없습니다.
꼭 과학적 지식에 대한 중독현상만 문제는 아닙니다. 성경을 성경대로 믿는다고 하고 누구보다 확실한 성경 신자라고 하면서도 세상의 권세와 학위와 명성 등 눈에 보이는 것에 티가 안 나게 은근하지만, 너무나 명확하게 압도되는 사람들을 가끔 봅니다. 사실 이런 분들은 어떤 면에서는 일반 교회 성도들보다 더 세속적입니다. 또 대부분 자신을 잘 위장하기에 오랜 세월 함께 있어도 구분해 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이런 모습을 접할 때마다 저는 작은 좌절을 경험합니다.
좋아 보이고 남 보기에 그럴듯해 보여 누군가에게 비난받을 일 없이 품에 안고 있어도 되지만 결국 나에게 영적으로 큰 해악을 끼치는 것들이 우리 주위에는 널려있습니다.
왜, 무엇을 위해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자세를 다시금 돌아보게 해 주시는 귀한 글에 감사합니다.
2014-11-29 23:52:28 | 김대용
유한한 인간의 능력으로 무한하고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를 인간이 만들어낸 과학으로 증명하려는 시도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학은 선한의도로 진리를 변호하는 2차적인 역할에 족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본분을 잃고 주님보다 인간의 지혜,지식을 자랑하는 도구로,자신의 밥벌이 도구로 ,교묘한 악의 도구로 변질됨을 보게됩니다.
어느 불신자와 최근에 대화를 했는데,그분말이 "기독교는 왜 라는 질문에 왜 자신이 이해할수 있게 끔 설명을 하지 않냐?그래서 나는 기독교을 혐오한다"라고 하더군요.
그런분께 아무리 설명을 한듯, 무슨소용이 있을까요? 이미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기애로 가득차있는 그런사람에게 과연 참 진리인신 예수님이 직접 눈앞에 나타난다 한들 ,그 악한마음이 조금이라도 선해질까요?
성경신자가 과학을 어떤태도로 대해야 할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되는 귀한 글 감사합니다 .
성경신자에게 주의 말씀이 완벽한 기준이요 모든 판단의 잣대가 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돼겠습니다.
2014-11-29 23:52:06 | 오광일
성경은 아마도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에나 온전히 다 이해할 수 있을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성경을 과학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에 교만이 섞이면 안되겠지요. 가끔은 과학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과학자체의 한계를 먼저 인정하는 모습이 과학으로 성경의 사건들을 해석하는것보다 나을듯합니다.
과학으론 절대로 창세기1장1절을 상상조차 할 수 없으니까요...
창세기 1: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아멘.
감사합니다.
2014-11-29 23:41:16 | 김형욱
다음의 글도 함께 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일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058
2014-11-29 12:56:37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