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반가운 소식이네요. 이제 볼티모어를 떠나려고 집을 정리하는데 떠날 즈음이 되니
좋은 소식이 들려서 마음이 든든하지요.이곳에 있으며 아예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다보니
막상 이곳의 교민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구요. 그러나 제가 말을 하다보면
왠지 더욱 사이는 멀어지는 것 같아 차라리 조용히 있고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랐는데
기회는 저절로 오지 않는군요. 전에 김문수형제님이 표현했듯이 우리는 예수님의 변호자가 아니라 증인이라고 하셨는데 그런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요.
아님 저에게 주어진 임무가 아닐지도 모르고요.
그래서인지 형제님의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그곳에 저희를 아는 분들도 더러 있어요.
지휘하는 자매와 원집사님(권사님 ?)...
우리가 전하는 것보다 형제님이 전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네요.
언제 박준호형제님과 함께 이번에는 꼭 만나요.^*^
베델교회에도 씨가 떨어졌으니 좋은 결실이 있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2010-05-12 12:45:14 | 정혜미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많이 수고하시네요. 저 역시 대부분의 교인들이 개역을 가지고 있기에 낭독은 개역으로 하고, 본문 강해할 때에는 흠정역을 사용하여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그렇게 번역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하나씩 풀어서 설명합니다.
왜 개역의 번역이 이렇게 되었을까에 대해 이해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기회가 되면 성경 번역의 역사에 대해서, 사본의 계열에 대해서 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료실에 이미 음성/영상 자료들이 있으며, PPT/PDF 파일도 등록되어 있습니다.
2010-05-12 11:22:43 | 김문수
이 형제님!
반갑습니다.
지혜롭게 하실 줄 압니다.
좋은 열매가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0-05-12 10:56:07 | 관리자
와~ 참 반가운 이야기군요.
크고 작은 노력들이 모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리라 믿습니다.
들으시는 분들이 납득을 해 주시니 참 다행이네요~.
좀더 본격화되면 태클(?)이 들어올 수 있으니 지혜롭게 잘 전하시길 기대합니다.^^
2010-05-12 10:42:33 | 김재욱
저는 장로교회에 출석하기 때문에 공공예배 시에는 개역성경을 가지고 가지만 집에서는 늘 흠정역으로 묵상을 해왔습니다. 벌써 꽤 오래 되었네요. 이런 식으로 두 개의 성경책을 가지고 따로따로 사용해 온지 벌써 몇 년이 되었으니까요.몇 주 전에는 흠정역 한영대역 관주 성경을 다섯 권 주문해서 교회 도서관에 비치해 놓고 성경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소개하면서 한 권씩 구입하도록 했습니다만 아직까지는 그저 미미한 수준입니다. 그저 틈나는대로 기회되는대로 소개하면서 선물로도 드리고 구입하도록 하기도 할 계획입니다.며칠 전에는 제가 흠정역으로 빌립보서를 묵상하면서 1:9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기에 주일날 교회의 소그룹 모임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공공예배를 위해서 개역성경을 가지고 갔는데 빌 1:9 말씀을 개역성경으로 읽었다가 적쟎이 당황했습니다. 개역성경에는 그 내용이 완전히 반대로 번역이 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흠정역 성경: 내가 이것을 기도하노니 곧 너희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판단에서 더욱더 풍성해지고개역성경: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개역성경을 따르면 지식과 총명으로 사랑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밖에는 이해할 수가 없지요. 그러나 사실 사도 바울이 하려는 말씀은 지식과 모든 판단/분별 등에 사랑이 넘쳐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해야 사랑을 풍성하게 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기 위한 말씀이 아닌데도 개역성경은 전혀 엉뚱하게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그래서 소그룹 모임에서 제가 나누려던 내용을 일단 뒤로 미루고 개역성경의 번역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는 것부터 설명을 해야 했는데 이런 경우에 참으로 난감합니다. 아직까지는 개역성경을 훨씬 더 신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개역성경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설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저는 다행히도 항상 영한대역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NASV 라도 영어로 보여주면서 개역성경이 잘못 번역된 것이라고 설명해 주고나서야 제가 원래 나누려던 내용을 나눌 수가 있었습니다.어떤 분은 개역성경에 이렇게 오역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어 버리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왜 그런지 이해시키기가 쉽지는 않지요...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기회가 되는대로 이렇게 명백하게 오역임이 드러나는 구절들을 통해서 설명을 해주면 서서히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끼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 아주 쉽게 받아들이기도 하고요.그래서 처음 다섯 권은 다 나갔습니다 - 한 권이 남았는데 제가 이번 주일에 어느 집사님에게 선물로 드리려고 하거든요. 그리고 일주일 후쯤에 다섯 권을 다시 구입해서 도서관에 비치해 놓고 한 사람씩 소개해서 구입하도록 권면하든지 아니면 선물로도 드리려고 합니다.그래서 흠정역을 소지한 사람들 위주로 성경공부반을 만들고 흠정역으로 성경공부하는 그날을 꿈꾸고 있기도 합니다... 그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면서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날이 빨리 오겠지요. 샬롬~~[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24:1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12 10:30:26 | 이재연
해 아래서 하는 일은 바람을 잡는 일인가? (전 1:14)
개역: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 1:14)
흠정역: 내가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을 보았노니,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
KJV: I have seen all the works that are done under the sun; and, behold, all is vanity and vexation of spirit.
전도서 1:14의 바람(개역), 영(흠정역)은 모두 히브리어 "루아흐"를 번역한 것입니다. 루아흐라는 단어에는 바람, 숨, 영 등과 같이 여러가지 뜻이 있기 때문에 어느 번역이 옳은지를 가리기 위해 원어 성경을 살펴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 본문의 전후 문맥을 통해서 해 아래서 사람들이 행하는 일이 바람을 잡는 일인지, 영을 괴롭게 하는 일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표현은 전도서 1:14을 포함하여 전도서에 모두 9번 등장합니다.
(1) 전도서 1:14
이 구절의 바로 앞에 나오는 13절을 살펴보면, 하늘 아래에서 이루어진 일이 하나님께서 주신 쓰라린 해산의 고통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일들이 고통, 괴로움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둡시다.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에 관하여 찾아보고 탐구하려고 내 마음을 쏟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이 쓰라린 해산의 고통을 주사 그것으로 단련 받게 하셨느니라(전 1:13).
(2) 전도서 1:17
전도서 1:17에도 지혜를 찾는 일, 미친 것과 어리석은 것을 알기 위해 마음을 쓴 일이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다음에 나오는 18절에서는 그렇게 지혜와 지식을 늘리는 것이 슬픔을 늘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전 1:18). 즉, 영을 괴롭게 하는 것(바람을 잡으려는 것)이 고통, 괴로움 뿐만 아니라 슬픈 일이라고 합니다.
또 내가 지혜를 알기 위해, 미친 것과 어리석은 것도 알기 위해 내 마음을 주었으나 이것도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지혜가 많으면 근심도 많나니 지식을 늘리는 자는 슬픔을 늘리느니라(전 1:17-18).
(3) 전도서 2:11,17,26
전도서 2장 11절, 17절, 26절에서도 동일한 표현이 나옵니다. 그런데 2장 17절에서도 해 아래서 이룩한 일이 "내게 몹시 괴롭기 때문이라"고 자세한 설명을 달아놓았습니다. 이것은 그런 수고가 바람을 잡는 노력이라는 뜻이 아니라 영을 괴롭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11] 그때에 내가 내 손이 이룩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하여 행한 모든 수고를 바라보았는데,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요, 해 아래에는 아무 유익이 없었도다. [17] 그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으니 이는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므로 해 아래에서 이룩한 일이 내게 몹시 괴롭기 때문이라(전 2:11,17).
전도서 2:26은 그 앞에 나오는 22절과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22절에는 "자기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the vexation of his heart)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6절에서는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을 vexation of spirit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로 보아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일은 "바람을 잡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마음과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할 수 있습니다.
[22] 사람이 해 아래에서 수고하며 행한 자신의 모든 수고와 자기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으로부터 무엇을 얻으리요? [26] 하나님께서 자신의 눈앞에서 선한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기쁨을 주시거니와 죄인에게는 모으고 쌓는 해산의 고통을 주사 그가 하나님 앞에서 선한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이것도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전 2:22,26).
(4) 전도서 4:4,6,16
전도서 4장 4절, 6절, 16절에도 같은 표현이 나오는데, 4절과 6절에서는 "해산의 고통"이라는 표현이 함께 사용되어 있어 이것이 고통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내가 모든 해산의 고통과 모든 옳은 일을 다시 깊이 살펴보니 이것으로 인하여 사람이 자기 이웃에게 시기를 받는도다. 이것도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 [6] 한 손에 가득하고 평온한 것이 두 손에 가득하고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보다 더 나으니라. [16] 모든 백성의 끝이 없으며 심지어 그들 전에 있던 모든 자들의 끝도 없도다. 뒤에 오는 자들도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분명히 이것도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전 4:4,6,16).
(5) 전도서 6:9
전도서 6:9에서는 눈으로 보는 것이 욕망으로 인해 헤매는 것보다 낫기는 하지만, 결국 이것도 헛되다고 했습니다. 욕망으로 헤매는 것보다는 눈으로 보는 것이 조금 낫긴 하지만 결국은 별 차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욕망으로 인해 방황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곧 영을 괴롭게 하는 것과 의미가 통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욕망으로 인해 헤매는 것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전 6:9).
전도서에는 이처럼 "영을 괴롭게 하는 것"(개역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으로 번역함)이라는 표현이 아홉 번이나 나오는데, 그 구절들을 살펴본 바에 의하면 이 말씀은 사람이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일들이 "뜬구름 잡는 것과 같다"(우리말성경)라고 하며, 인생무상을 노래한 것이 아닙니다. 전후 구절들을 살펴본 결과, 사람이 하나님 없이 자기를 위해 수고하며 행하는 모든 일들은 인생에게 참다운 만족을 주지 못하고, 고통스럽고, 슬프고, 사람을 몹시 괴롭게 하고, 자기 마음을 괴롭게 하며, 욕망으로 인해 방황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즉 그런 수고는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영을 괴롭게 하는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원어로는 이 구절이 바람으로도, 영으로도 번역이 가능하겠지만,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이런 전도서 전체의 흐름을 읽고, 또한 그런 표현이 등장하는 각 구절들 속에서 그 말씀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고려하여 이를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고 옮겼는데, 이는 문맥의 흐름과 일치하는 적합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2010-05-11 20:28:17 | 관리자
영과 혼에 대한 개념적 이해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벧전 3:19절의 "영"은 타락한 천사들입니다. 사람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대상입니다. 여기서는 이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에게 있어 죽음 후에는 심판밖에 없으며 복음을 듣고 회개할 기회 자체가 전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여기서의 영을 사람으로 해석해서 죽은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얘기입니다.
그럼, 예수께서 타락한 천사들에게 선포하신 것은 무엇일까요?
불순종한 타락한 천사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나중에 불호수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복음은 아닐 것이고, "주님의 승리"를 타락한 천사들에게 당당하게 선포하신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04-27 18:42:14 | 김학준
지난 해 기독교계 화제거리 중 하나였던 장로교 모 교단과 이모 목사님의
분쟁의 중심에도 베드로전서 3장의 말씀이 논란거리가 되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모 목사님과 분쟁하였던 장로교 모 교단은 이권다툼 속에 부패한 자신들의 모습을
만천하에 홍보하는 모양이 되어버렸는데 중요한 건 한국기독교계에서 강해설교의 권위자요
얼마 안 남은 신실한 목사로서 여러 성도와 신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이모 목사님의 성경관이
바른 성경교리에서 많이 비뚤어 진 것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죠.
논란이 되었던 이모 목사님의 저서 (성숙○○)의 사도신경 해설부분을 보면 벧전3장19절을 인용하면서
'지옥에 예수그리스도의 영이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위에 지적하신대로
'복음전파'와 '선포'를 구분하지 못하고 영과 혼을 구분하지 못하는 잘못을 이런 저명한 목사님이 함으로
그를 따르던 교인과 신학생들의 교리가 흐려지고 잘못된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조금만 정신을 차려 보면 세상은 온통 원수 사탄이 만들어 놓은 지뢰밭 입니다. 가장 신실하고 순전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조차 변질되어 교인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지금 변질되지 않은 말씀과 교리를 수호하고 전파하는 여러분들의
사역이 얼마나 중대하며 소중한지요 그 수혜를 입은 저 자신 다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수고에 대한 상급은 오직 하나님의 왕국에서 받을 것을 믿습니다.(단12:3)
모두 힘내십시오! 감사합니다.
2010-04-27 17:36:15 | 김대용
영과 혼을 구분하지 못하면 이런 오류에 빠집니다.
벧전3:19에는 영들(spirits)이라고 했지, 혼들(souls)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2010-04-27 10:30:47 | 김문수
창세기 6장 전반부, 베드로후서 2장을 찬찬히 읽어보시고, 지옥 선도 찾아서
보시면 벧전3:19절의 "영"에 대한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2010-04-27 10:23:25 | 김학준
카톨릭 교리가 잘못된 것이고 성경이 옳습니다.
개역: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벧전3:19)
흠정역: 그분께서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는데
복음을 전한 것(유앙겔리조)이 아니라 선포(케륏소)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죽은 자들에게 복음을 들을 기회를 다시 준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옥에 있는 영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방적으로 선포하셨다는 것입니다.
2010-04-27 10:18:00 | 김문수
노아당시 불순종하던 자들이 감옥에 있는데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다고
되어있는데 잘 이해가 안되서요.
이구절을 카토릭에서 로사리오기도나 다른 행위를 열심히 하면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진다는 근거로 설명하던데요.
이 구절은 사도신경과 함께 설명하면 좋을 것입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5632
영어와 원어 그리고 카톨릭 교회의 사도신경에는 ‘He descended into hell’이 있지만 개신교 사도신경에는 이 부분이 삭제되어 없습니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그분께서 저승에 갔다고 버젓이 신성모독을 하고 있습니다. - 원조(元祖)들이 죄를 지은 후부터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는 천당 문이 닫혀 있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계명을 받들어 착하게 산 구약의 성조(聖祖 - 예컨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등)들은, 천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천당 문을 열 때까지 어떤 곳에서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곳을 고성소(古聖所)라 한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그의 육신은 땅에 묻히시고 그의 영혼은 고성소에 가시어 그때까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구약의 성인들을 위로하셨다.-
원래대로라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지옥에 다녀오셨다.”고 번역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말로 그대로 번역하면 카톨릭주의에서 주장하는 연옥 - 카톨릭 교리에서 연옥은 천국으로 가기에는 자격이 부족하지만 지옥으로 갈 정도의 큰 죄를 짓지 않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머무르는 곳이다. 영혼들은 연옥에서 보내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해 이승에서의 죄를 씻고 정화한다. 연옥이 정죄계(淨罪界, 깨끗함과 죄 사이의 경계)나 정화소(淨化所, 깨끗해지는 장소)로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화의 방법으로는 ‘정화하는 불(purgatorius ignis)’이 알려져 있는데, 이는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3장에 나오는 ‘심판의 날에 내려질 불’에 근거하고 있다(두산백과사전)- 과 림보 - 카톨릭 교회가 말하는 지옥의 변방: 지옥과 천국 사이에 있으며 그리스도교를 믿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착한 사람 또는 세례를 받지 못한 어린이·백치 등의 영혼이 머무는 곳을 가리킨다(네이버 영어 사전) - 등의 개념과 연관되기 때문에 아마도 개신교에서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고 교회의 교리에 따라 해석하려고 해서 생긴 문제입니다. 마태복음 12장 40절에 보면 예수님은 요나와 같이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중심부)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 27절에서 시편 16편 8-11절을 인용하며 “주께서 내 혼을 [예수님의 혼을] 지옥에 남겨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시리라.”고 말하면서 우리 주님 - 엄밀하게는 그분의 혼 - 이 지옥에 갔다가 부활했음을 보여 줍니다. 물론 우리말 성경은 이런 부분의 지옥을 모두 불교 용어인 ‘음부’라고 번역해서 바른 뜻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약속하신 대로 낙원에 즉 지하세계의 지옥 부분에 내려갔다가 올라오셨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에베소서 4장 8-1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8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포로로 잡힌 자들을 포로로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도다, 하시느니라. 9(이제 그분께서 올라가셨은즉 그것은 곧 그분께서 또한 먼저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내려가신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내려가신 그분께서 또한 모든 하늘들보다 훨씬 위로 올라가신 바로 그분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자,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사실을 천주교회에서 굳이 밝히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개신교회에서는 이것을 막으려고 할까요? 천주교회에는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관례가 있고 실제로 천주교인들은 땅에 있는 사람들이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들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천주교회는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사실과 벧전3:18-20을 묶고는 그분께서 죽은 자들에게 다시 복음을 선포하셨다고 주장합니다.
18…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가려 하심이라. 19그분께서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는데 20이 영들은 노아의 날들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곧 하나님께서 한 번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불순종하던 자들이라.
이 구절에 대해 논의하기 전에 먼저 과연 사람이 죽은 뒤에 또 다시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는지 여부를 살펴봅시다. 히브리서 9장 27절은 이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
성경은 명백하게 사람이 죽은 뒤에는 심판이 있고 다시는 구원의 기회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벧전3:19는 무엇을 뜻할까요?
먼저 ‘감옥에 있는 영들’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이 영들은 분명히 노아 시대에 불순종하던 자들입니다. 창세기 6장에는 노아 시대에 하나님께 불순종한 세 부류의 존재가 나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아들들’로 표현된 천사들입니다. 벧후2:4와 유6은 이 천사들이 자기들의 처음 신분을 버리고 죄를 지어 지옥에서 영존하는 사슬에 묶여 어둠 속에 거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둘째는 노아 당시에 죄를 지어 대홍수로 멸망 받은 모든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천사들과 사람들 사이에 태어난 하이브리드 거인 종족입니다(창6:4). 물론 이들도 대홍수에 휩쓸려 다 멸절되었습니다. 이 세 부류가 벧전3:19에 있는 ‘감옥에 있는 영들’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영은 가지고 있지만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영이라 불린 적이 없으므로 여기의 영들은 천사들과 그들이 낳은 하이브리드 거인 종족을 뜻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다시 복음을 선포해서 구원의 기회를 주셨을까요? 여기에서 ‘선포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복음을 선포하다는 의미의 ‘유앙겔리조’가 아니라 선언하셨다는 의미의 ‘케륏소’입니다. 그러므로 벧전3:19는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힘입어 그들에게 가셔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승리’와 ‘그들의 정죄’를 선언하셨음을 보여 줍니다.
사람에게는 죽음 이후에 심판 외에 다른 것이 없으며 복음을 듣고 회개할 기회는 결코 다시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절을 가지고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또 다시 선포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교도들의 비성경적인 믿음입니다.그런데 안타깝게도 최근 들어 개신교회 안에서도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도신경의 이 부분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이런 무의미한 논쟁을 보면서 뿌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합니다.
2010-04-27 09:30:06 | 이정순
홍승현 형제님, 김문수 형제님 감사합니다.
2010-04-22 03:32:22 | 한용희
너는 모든 육체의 살아 있는 것 중에서 "종류마다" 두 마리씩 방주로 데리고 들어와 너와 함께 살아남게 할지니 그것들은 수컷과 암컷이어야 하리라. 날짐승이 그것들의 "종류대로", 가축이 그것들의 "종류대로", 땅의 기는 모든 것이 그것들의 "종류대로" "종류마다" 두 마리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것들을 살아남게 하라(창6:19-20). 짐승과 기는 것과 날짐승과 또 땅에서 기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것들의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갔더라(창8:19)김** 형제님이 잘 설명해 주셨네요. 조금 덧붙이자면, 노아의 방주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짐승들이 "종류마다", "종류대로" 들어왔고, 홍수가 끝난 후에도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장에서 짐승들을 종류대로 창조하셨고, 그 창조하신 짐승들의 종류들을 방주를 통해 보존해 주셨습니다.
2010-04-19 14:04:42 | 김문수
두분의 질문과 대답에 참 은혜가 되네요. 저도 많은 은혜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2010-04-18 20:51:51 | 홍승현
김** 형제님 답글 감사합니다."모든" 이라는 글자에서 다 풀렸습니다.자세히 안보면 역시나 헤매는군요.저는 작품이랄 게 없습니다.얼마 전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위해 훈련이 필요하다 생각하여 그려 본 웹툰이 처음 그려 본 전부입니다.내용도 세상의 내용이라 별로 추천 할 만한 것도 아니고요. 단지 언젠가 성경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싶다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 일을 위해 맘껏 연습을 해두자는 게 현재 제 상황 인 것 같습니다.요즘의 기독교 만화라고 하는 걸 보면 성경이 말하는 내용이 아닌 것도 많고그동안 말하고 들어온게 있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는 내용도 많습니다.대다수의 컷 만화엔 예수님이 널 사랑한단다 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고요.(물론 틀린 내용은 아닙니다)그냥 모두들 그렇게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그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예를 들자면이브가 사과를 쥐고 있는 장면 같은 거. 제가 좀 까탈스럽나요? ^^특히 저는 창세기에 관심이 많고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젠가 능숙한 단계가 오면 이 시기의 일을 꼭 그리려고 합니다.다 늙어서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요.아,그리고 사도행전도 제가 관심을 두고있는 부분입니다.그래서 이곳에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머리가 둔한지 자꾸 잊어버리고 행동도 아는 것만큼 움직이진 않지만 어쨌건 제 목표는 늘 그랬습니다.형제님도 책을 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조만간 그 책 두권을 사서 한 권은 제 딸에게 한 권은 교회 도서관에 둘 예정입니다.모두들 감사합니다 ^^
2010-04-18 17:05:34 | 한용희
노아의 방주엔 현재 살아 남아있는 종류의 동물만 들어 간 걸까요?
아니면 성장하기 전의 작은 공룡까지 태웠다고 보는게 맞을까요?
제 생각엔 화석으로 남아 있는 동물들은 하나님의 의도로 탑승이 거부되어
멸종 됐다고 보는게 더 타당하지 않나 싶습니다.
노아 홍수 후 기후 조건이 맞지 않아 공룡들이 죽어갔다라고 하는 분도 있는데
홍수 뒤 죽을 존재들을 일부러 태우셨을 것 같지도 않고요.
하지만 혹시 다른 의견이 있는 분들이 계시면 알려주세요.
가벼운 질문이라고 했지만
사실 제가 나중에 창세기에 관한 만화를 그릴 생각이기 때문에 좀 더 정확히 하고 싶어서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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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8 01:59:33 | 한용희
참고로 저도 '성경지킴이' 사이트 알게 된 지 몇달 안되는 초보입니다.
이곳을 처음 알게 된 분들처럼 저도 궁금한 점도 많고(지금도 그렇지만)
질문하고 싶은 것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성경지킴이'나 '사랑침례교회'
사이트에 상당히 방대한 자료와 말씀들이 올라와 있고
제가 궁금해 했던 상당수의 답이 이미 제시되어 있었던 것을 새록새록 알게 됩니다.
궁금한 점은 본 사이트 검색기능을 이용하시면 많은 도움이 되실 겁니다.
처음 정동수 목사님의 설교와 글을 접하고 그 근거를 인터넷과 책들을 통해 찾아봤던
것도 이해를 더욱 깊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변질되지 않은 말씀과 바른 교리를 찾는 우리가 은사주의 등 잘못된 신앙태도와 교리를
내세우는 사람들보다 열심이 못하다면 하나님께서 너무 안타까워 하시리라 봅니다.
제 경험이 혹 같은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들께 도움이 될까 해서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04-18 00:06:33 | 김대용
신 형제님!
형제님의 글은 전혀 논란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여기에 글을 쓰는 분들이나 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하는 관리자 형제도 시간에 한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연구해 보고 연구한 것을 바탕으로 그 이후의 것들을 질문하면 훨씬 더 좋을 것이라고 제안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의문들은 이 사이트에서 이미 논의가 되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동수
2010-04-17 16:13:00 | 관리자
성경 공부할께요.
오해가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개역성경을 가지고 살던 사람들은 그렇게 배울 가능성이 높고, 또한 이 부분에 대해서 의문이 생겨서 글을 올린 것입니다.
관리자님,
제 글이 다소 논란이 많다면 삭제해주세요.
2010-04-17 13:57:57 | 신대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