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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약6508개
  I. 시므온 지파에 속한 므홀랏 사람. 그는 사울의 딸 메랍과 결혼한 아드리엘의 아버지였다(삼상18:19; 삼하21:8). II. 길르앗 출신의 노인. 그는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요르단 강을 건너 피난할 때 많은 양식과 침상과 필수품을 가져와 왕과 왕의 신하들을 도왔다(삼하17:27; 19:32). 다윗이 돌아갈 때에 그는 요르단까지 함께 갔으나 나이로 인해 예루살렘으로 가서 영광을 누리는 것은 사양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겨 바르실래의 가족에게 친절을 베풀고 그들을 왕실의 가족들로 만들라고 말했다(왕상2:7). III. 위에서 언급된 바르실래의 딸과 결혼한 제사장(스2:61; 느7:63).  
2009-04-22 14:21:48 | 관리자
  I. 네리야의 아들. 그는 유다의 명문 집안 아들이었으며 예레미야 대언자의 신실한 친구였다. 주전 605년경에 그는 예레미야의 입에서 나온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백성과 통치자들에게 낭독해 주었다. 그런데 통치자들이 이것을 가지고 여호야김 왕에게 갔으나 그는 그 책을 불살라 버렸고 이에 바룩은 한 번 더 예레미야의 입에서 말씀들을 받아 적었다(렘36:1-32). 그는 자기 형제 스라야와 함께 바빌론으로 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예레미야가 바빌론을 존중히 여기라고 말했기 때문일 것이다(렘51:59-64). 후에 그는 예레미야와 함께 핍박을 공유하며 옥에 갇히고 반역하는 유대인들과 함께 강제로 이집트로 가게 되었다(렘43:1-13). II. 느헤미야의 친구 중 하나(느3:20; 10:6; 11:5).  
2009-04-22 14:20:19 | 관리자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주로 남서풍이 불었으며(눅12:54) 고대에는 북풍이 자주 일기도 하였는데(욥37:9) 이것은 좋은 날씨를 예고하며 따라서 북풍이 비를 몰아낸다는 잠25:23을 지지한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바람은 열매를 말리는 데 쓰인 바람과(창41:6; 겔17:10; 19:12) 큰 위력을 가진 바람(시48:7; 겔27:26; 욘4:8) 등인데 후자는 주로 뜨겁고 메마른 여름에 남동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돌풍을 의미한다. 이 바람은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므로 열기가 대단하고 그래서 모든 것을 마르게 하였다. 유로클루돈 참조.  
2009-04-22 14:19:22 | 관리자
  팔레스타인 남쪽에 있는 큰 사막 지대(창14:6). 이곳은 엘아라바 계곡 즉 사해에서 아카바 만으로 내려가는 계곡의 서쪽에 있었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38년 동안 유랑하던 광야 지역 근처에 있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사흘 정도 가면 시내 산이 있으며(민10:12, 33; 12:16) 이곳의 북쪽에는 가데스와 신이 있다(민13:3, 21, 27). 여기에서 하갈과 이스마엘이 거하였고(창21:14, 21) 다윗과 하닷이 잠시 머물렀다(삼상25:1; 왕상11:18).  
2009-04-22 14:18:43 | 관리자
  아비노암의 아들. 그는 납달리 지파에 속한 게데스 출신이다. 하나님께서는 여대언자 드보라를 이용하여 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서 구출하셨다. 그는 여대언자와 함께 가서 10,000명을 모아 다볼 산에 주둔시켰는데 이것은 적군이 900대의 철 병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삿4:3).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전쟁에서 싸우셨고 드보라와 바락은 이것을 찬양했으며(삿5:1-31) 후에 바락은 믿음의 영웅들의 명단에 들어갔다(히11:32).  
2009-04-22 14:18:12 | 관리자
  그리스도 당시의 유명한 강도. 그는 폭동과 살인으로 감옥에 갇혔다. 그 당시에는 로마의 총독이 유월절에 유대인들이 원하는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관례가 있었으며 이에 따라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려 했으나 유대인들은 대신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요구하였다(마27:16-26).  
2009-04-22 14:17:41 | 관리자
  디매오의 아들. 그는 눈먼 사람이었으나 주님께서 여리고 길에서 그에게 시력을 주셨다(마20:29-34; 막10:46-52; 눅18:35-43). 마태는 두 명의 눈먼 사람이 고침을 받았다고 기록하지만 마가와 누가는 단지 바디매오만 언급한다. 한편 아버지의 이름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는 그 지역에서 잘 알려진 사람의 아들이었던 것 같다. 그의 강건한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불쌍히 여기는 심정을 담은 이 이야기는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그분께 나아갈 것을 촉구한다.  
2009-04-22 14:15:07 | 관리자
  고대 이집트의 세 부분 중 하나(사11:11; 렘 44:1, 15; 겔29:14; 30:14). 이곳은 이집트 남부를 뜻하며 에스겔은 이곳을 이집트와 구분하고 있다. 이곳은 원래 이집트 사람들이 거하던 곳으로 이곳의 거주민들은 미스라임의 후손인 바스루심이다(창10:14).  
2009-04-22 14:14:42 | 관리자
  열두 사도 중 하나(마10:3; 막3:18; 눅6:14; 행1:13). 그는 주로 빌립과 함께 언급되며 요한이 나다나엘이라고 부른 사람과 동일 인물로 보인다(요1:45-51). 요21:2에도 그의 이름이 나오는데 아마도 나다나엘이 그의 실제 이름이었을 것이고 ‘돌매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돌로매는 성이었을 것이다. 사도, 나다나엘 참조.  
2009-04-22 14:14:11 | 관리자
  바대는 메데(페르시아)의 동부에 있던 한 지방으로 추정되며 이곳 사람들은 싸움과 말 타는 일에 능숙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순절 날에 유대인들과 개종자들이 이 지역에서 예루살렘에 왔다(행2:9).  
2009-04-22 14:13:37 | 관리자
  소아시아의 해양 도시. 이곳은 원래 아폴로의 신탁으로 유명하였으며 바울은 빌립보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면서 여기서 페니키아로 가는 배를 찾아 탔다(행21:1).
2009-04-22 14:11:14 | 관리자
  히브리 사람들은 물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바다라 불렀다(욥14:11). 그래서 디베랴 호수나 나일 강 혹은 유프라테스 강도 바다라 불렸다(사11:15; 18:2; 21:1; 렘51:36, 42). 성경에 나오는 주요 바다는 다음과 같다. I. 대해. 이것은 서쪽의 지중해를 뜻하며 그래서 지중해를 의미하는 히브리말은 종종 서쪽을 뜻한다. 지중해는 매우 커서 조수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으나 종종 폭풍에 의해 요동하였다. 봄에는 대개 바람이 남동쪽과 남서쪽에서 불며 다른 때에는 북동쪽과 북서쪽에서 분다. II. 홍해(출10:19; 13:18; 시106:7, 9, 22). 이 말은 홍해와 팔레스타인 사이에 놓인 에돔에서 유래되었다. 홍해의 동쪽과 북동쪽에는 아라비아가 있고 남쪽과 남서쪽에는 아비시니아와 이집트가 있다. 시내 반도 지도 참조(48). 홍해의 길이와 평균 너비는 각각 2,250킬로미터와 240킬로미터이고 깊이는 540미터이다. 홍해는 북쪽 끝에서 수에즈 만과 아카바 만으로 나뉘며 이 두 만 사이에 시내 산 반도가 놓여 있다. 이스라엘 자손은 이집트에서 나오면서 기적적으로 수에즈의 남쪽에 있는 서쪽 만을 건넌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그 뒤 여러 해 동안 이 반도의 사막에서 유랑하다가 동쪽 만의 끝부분인 에시온게벨에 이르렀다. 슥10:11에는 홍해와 나일 강이 모두 언급된 것 같다. III. 사해 혹은 염해(창14:3). 이곳은 평야의 바다(신3:17) 혹은 동쪽 바다, 앞 바다(겔47:18; 욜2:20; 슥14:8)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곳은 팔레스타인의 남동쪽에 있으며 북쪽에서는 요르단에서 그리고 동쪽에서는 아르논과 다른 조그만 강에서 물을 받는다. 사해 지도 참조(52). 사해 바다는 길이와 평균 너비가 각각 64킬로미터와 14킬로미터이며 높이가 350-450미터나 되는 석회암 절벽 사이에 들어 있다. 한 마디로 이곳은 황폐한 곳이며 물은 맑지만 아주 짜고 쓰고 물의 밀도는 온 세상 물의 밀도보다 20-25% 정도 크므로 누구나 둥둥 떠서 수영을 잘 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물고기가 살 수 없지만 겔47:8-10을 보면 천년왕국 때에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생명의 물로 인하여 이곳에 물고기가 살게 되고 주변 지역은 비옥한 땅이 된다. 사해와 그 주변 지역과 관련된 기사는 창13:10; 신29:23; 마10:15; 11:22-24; 벧후2:4-9; 유7에서 볼 수 있다. IV. 갈릴리 혹은 디베랴 바다. 이것은 게네사렛 혹은 긴네렛 호수를 뜻한다(민34:11). 갈릴리 바다 지도 참조(52). 요르단 강이 북쪽에서 나와 이것을 통과해서 남쪽으로 흘러가며 이 호수의 길이와 너비는 각각 21킬로미터와 10킬로미터이고 깊이는 50미터이다. 이 호수에는 가끔씩 폭풍이나 회오리바람이 불며 이것은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사건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바다는 우리 주님의 사역과 깊은 관련이 있어서 모든 성도들이 잘 기억한다. 우리 주님은 종종 이 바다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안식하셨고 여기를 건너 이동하곤 하셨다. 또한 그분께서는 말씀으로 이곳을 잔잔하게 하시고 기적과 가르침으로 이곳의 해안이 영원히 기억되게 하셨다. 물론 여기에서 그분의 제자들 중의 몇 사람이 부름을 받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다(마4:18; 14:22; 눅8:22; 요21:1).     솔로몬이 성전을 위해 만든 놋 바다는 직경이 4.5미터가 넘는 원형 기구로서 성전 뜰의 한가운데에 놓여 2,000-3,000바스(42,000-63,000리터)의 물을 담았다(왕상7:26-대하4:5). 이 바다는 놋으로 만든 열두 마리 소 위에 놓였으며 그 당시 세상에 존재하던 놋 그릇 중에 가장 큰 것으로 평가된다. 제사장들은 이 안의 물을 여러 용도로 씻는 데 사용하였으며(대하4:6)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항상 성결해야 함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된다.    
2009-04-22 14:10:45 | 관리자
  재물을 신뢰하는 자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눅18:25). 이것은 팔레스타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큰 짐승과 사람이 늘 대하는 작은 구멍을 대비시킨 것으로 오직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는 자에게만 이런 불가능한 일이 가능한 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 준다.  
2009-04-22 14:09:30 | 관리자
  요세라는 이름을 가진 그리스도인. 그는 사도 바울의 동반자로서 원래 레위 사람이고 키프러스 출신으로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행4:36-37). 바울이 주후 38년경 회심한 지 3년 후에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에 바나바는 그를 다른 사도들에게 소개시켰다(행9:26-27). 그로부터 5년 후에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에서의 복음의 진전 소식을 듣고 바나바를 보내었는데 그는 거기서 큰 기쁨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의 이적들을 보게 되었다(행11:20-24). 그 후에 그는 다소로 가서 바울을 찾아 안디옥으로 데리고 오고 함께 2년을 지내면서 많은 사람을 회심시켰다. 그들은 주후 45년경에 안디옥 교회에서 구제물을 모아 예루살렘 교회에게 전달하고 다시 요한 마가를 데리고 안디옥으로 돌아왔다(행11:28-30; 12:25). 그들이 안디옥에 있을 때에 성령님께서 그들을 따로 분리하여 이방인들 가운데 새로이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키프러스와 소아시아의 여러 도시를 방문하고 3년 뒤에 안디옥으로 되돌아왔다(행13:2-14).   주후 50년경에 그들은 시리아 지역의 교회들의 요청에 의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제기한 율법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서 사도들과 장로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이들로부터 좋은 판결을 듣고 그 소식과 함께 유다와 실라를 데리고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한편 안디옥에서 바나바는 베드로로 말미암아 위선에 빠져서 바울로부터 면전에서 책망을 들었다(갈2:11-14).   그들은 2차 선교 여행을 떠나려 하면서 바나바의 생질 마가 문제로 격렬하게 다툰 뒤에 서로 갈라져서 바울은 실라와 함께 아시아로,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키프러스로 떠났다(행15:36-41). 그 이후에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한편 바나바 서신이라 불리는 글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위조문서로 평가되고 있다. 바나바라는 이름은 초대 교회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이름이었다. 사실 자기의 전 재산을 바칠 때에 그는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바쳤으며 이것은 그의 수고와 헌신을 통해 잘 드러난다. 그는 참으로 이름이 의미하듯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가져다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2009-04-22 14:08:11 | 관리자
  그리스 북쪽의 큰 나라로 올림푸스라는 유명한 산이 여기 있었는데 이곳은 이교도들의 신화에서 신들이 거하는 처소로 유명한 곳이다. 이 지역은 깃딤의 후손들이 차지한 것으로 보이지만(창10:4) 이곳의 초기 역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마케도니아 왕국은 필립 왕과 그의 아들 알렉산더 대제에 의해 영화의 절정에 이르기 400여 년 전에 이미 존재하였다. 알렉산더는 그리스와 마케도니아를 연합하고 아시아의 서부와 남부를 정복하였는데 그의 세력은 이미 단8:3-8에 한 개의 뿔을 가진 숫염소로 표현되었다. 흥미롭게도 고대의 마케도니아 동전은 염소가 그 나라의 상징이었음을 보여 준다. 알렉산더의 죽음 이후에 마케도니아는 세력을 잃고 마침내 주전 168년에 로마에 의해 정복되었다. 그 뒤에 로마는 주전 142년에 그리스와 마케도니아를 두 개의 큰 지방 즉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로 분리하였다(롬15:26; 고후9:2). 그리스 참조.   신약성경에 나오는 마케도니아는 후자의 마케도니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며 여기 속한 도시로는 암비볼리, 아폴로니아, 베레아, 빌립보, 데살로니가 등이 있다. 이 지역은 아주 빨리 주후 55년경에 복음을 받아들였고 바울은 꿈에 환상을 통해 여기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는 말씀을 들었다(행16:9; 20:1).  
2009-04-22 14:06:54 | 관리자
  유다 마카비는 셀레우코스 왕 안티오쿠스 4세인 에피파네스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을 지킨 유대인 유격대 지도자이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유대인들에게 그리스 종교를 강요하자 이에 반항하여 산으로 올라갔던 제사장 마타티아스의 아들인 유다는 아버지가 죽은 뒤 반란군을 이끌면서 전쟁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순식간에 셀레우코스의 4개 군단을 격퇴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되찾았으며 유대인들에게 헬레니즘을 강요하는 것을 막고 유대인들의 종교를 보존했다. 그래서 지금도 유대인들은 빛의 축제인 하누카가 되면 그때의 일을 기린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성전, 봉헌 참조. 그는 주전 164년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죽은 뒤에도 유다 민족이 종교와 정치에서 자유롭기를 원했기에 전쟁을 계속했다. 2년 뒤 그가 살해되자 그의 동생 요나단이 셀레우코스 군대와의 타협을 거부하면서 그들 내부의 불화를 이용해 유대를 외부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고자 노력했지만 주전 143-142년경 적의 함정에 빠져 죽음을 당했다. 그 뒤 마카비 형제 중 막내인 시몬이 그를 이어 반란을 이끌었고 주전 142년 마침내 유대인의 종교적, 정치적 독립을 성취하였다. 이후 유대의 왕과 대제사장은 마카비가(家)가 세습하게 되었다. 예루살렘 참조.  
2009-04-22 14:06:06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