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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의 북부 도시 단에서 5-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 신약시대의 땅 지도 참조(39). 이곳은 헤르몬 산의 남서 부분이 훌레 호수 위의 평야와 만나는 고원 지대에 있었다. 사분영주 빌립은 높고 두껍게 성벽을 쌓았고 카이사르 티베리우스를 기념하기 위해 가이사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곳은 팔레스타인의 가이사랴와 구분하기 위해 빌립보라는 명칭을 더 붙였는데 우리 주님은 변화산에 이르기 전에 이곳을 지나가셨다(마16:13-28; 막8:27-38; 눅9:18-27). 변화 참조.  
2009-04-22 19:10:43 | 관리자
  욥바와 두로 사이에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도시. 신약시대의 땅 지도 참조(39). 이곳은 보통 ‘팔레스타인의 가이사랴’로 불렸지만 한때는 ‘스트라토의 탑’이라는 이름의 조그만 마을이었다. 그러나 헤롯 대왕이 이곳을 재건하고 장식하고 여러 개의 웅장한 건물을 지어 아우구스투스를 기념하기 위해 가이사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기에는 주로 그리스 사람들이 살았고 황제를 기념하기 위하여 5년에 한 번씩 경기 대회가 열렸다. 이곳은 헤롯 대왕과 헤롯 아그립바 1세의 통치 때에 유대의 수도였으며 유대가 로마의 통치를 받았으므로 로마 권력의 핵심부였다. 여기에서는 그리스, 로마, 유대 사람들 사이에 소동이 자주 일어나서 한 번은 20,000명이 죽은 적도 있었다. 복음 전도자 빌립의 집이 여기 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행8:40; 21:8) 백부장 고넬료도 여기에 있었다(행10:1-48; 11:1-18). 여기에서 헤롯 아그립바는 하나님의 천사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행12:20-23). 사도 바울도 이곳을 몇 차례 방문했으며(행9:30; 18:22; 21:8, 16) 여기서 벨릭스 총독 앞에 섰고(행23:23; 24:1-27) 2년 동안 옥에 갇혔으며 그 후에 베스도와 아그립바 앞에 섰다. 마지막으로 그는 여기에서 출발하여 로마로 갔다(행25:26; 27:1). 사도 바울의 로마 이송 지도 참조(44).  
2009-04-22 19:10:00 | 관리자
  주후 27-36년 사이의 유대인들의 대제사장. 그는 사두개인이었으며 그리스도의 원수였다. 나사로의 부활 이후에 제사장들과 그의 무리들은 그의 집에 모여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따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주님을 죽이려는 계획을 짰다. 이런 와중에 그는 민족의 정치적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죽일 것을 제안했다(요11:47-54). 물론 그는 무의식중에 이 말을 했지만 이것은 지옥으로 향하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예언의 말씀이었다. 이런 음모로 인하여 그리스도는 결국 그들의 손에 넘어갔고(마26:1-5; 막14:1; 눅22:2) 그분은 그 전의 대제사장 안나스 앞으로 끌려갔으며 그는 자기의 사위로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 그분을 보냈다. 안나스 참조. 가야바는 먼저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그분을 심문하고 조롱하고 모욕하고 정죄한 뒤에 처형하기 위해 빌라도에게 데리고 갔다(마26:57-68; 막14:53-72; 눅22:54-71; 요18:13-27). 가야바와 그의 친구들은 그리스도를 죽인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분의 추종자들을 박해했으나(행4:1-6; 5:17, 33) 그분의 승천 이후 몇 년이 지나서 빌라도는 권력을 잃게 되었고 가야바도 로마 총독 비텔리우스에 의해 대제사장 직분을 잃게 되었다. 구약성경의 발람과 마찬가지로 그는 빛을 거부하고 권력과 특권을 남용하며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을 하고 이교도의 삶을 살다가 무서운 죽음을 맞게 되었다.  
2009-04-22 19:09:04 | 관리자
  에벳의 아들(삿9:26-41). 그는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후손으로 추정된다(창34:2-6). 그는 아비멜렉을 대적하면서 세겜 사람들과 연합하여 그들을 부추기고 싸우게 했으나 패배를 당하였다.  
2009-04-22 19:08:27 | 관리자
  에브라임의 작은 산. 이곳은 여호수아의 무덤이 있던 곳이며 이곳의 북쪽에 딤낫세라가 있었다(수24:30). 가아스의 시내 혹은 계곡은 이 산의 기슭에 있었을 것이다(삼하23:30; 대상11:32).  
2009-04-22 19:06:22 | 관리자
  열두 명의 소 대언자 중 하나. 그의 삶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그는 예레미야와 동시대에 살았으며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처음 공격하기 바로 전인 주전 610년경에 대언하였다(왕하24:1).
2009-04-22 19:03:12 | 관리자
  세겜의 아버지. 레위와 시므온은 세겜이 자기 누이 디나를 겁탈하자 그와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창34:2-26). 야곱은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땅을 사서 거기에 제단을 쌓았고(창33:19) 후에 요셉은 그 땅에 묻혔다(수24:32).  
2009-04-22 19:02:39 | 관리자
  시리아의 유명한 도시. 하맛은 예루살렘과 다마스커스처럼 고대로부터 중요한 도시였다. 이곳은 창10:18에서 가나안 족속들의 거처로 나오며 그 이후에도 넓은 의미에서 가나안의 북방 경계로 자주 언급된다(민13:21; 수13:5; 삿3:3). 다윗의 시대에 하맛의 도이 왕은 그의 동맹자였다(삼하8:9-10).  
2009-04-22 19:01:39 | 관리자
  페르시아 왕의 총애를 받던 인물. 그는 유대인 모르드개에게 복수하기 위해 왕국에서 유대인들을 멸절시키려는 음모를 꾸몄으나 하나님의 섭리로 그의 계획은 에스더에 의해 저지를 당하고 그는 왕의 진노를 받아 교수대에서 처형되었다. 그는 아각 사람이라 불리는데 아각이 아말렉 왕들의 흔한 이름이므로 유대인들은 그가 미디안 족속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그가 유대인들을 미워한 이유는 명백해진다. 그의 이야기는 파멸에 앞서 교만이 있다는 것과 하나님의 섭리가 모든 것을 인도하며 그분의 백성은 위험 중에서도 안전하고 그분의 원수들은 반드시 멸망당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아말렉, 아각 참조.  
2009-04-22 19:01:07 | 관리자
  I. 데라의 맏아들. 그는 아브라함의 형제이며 롯과 밀가와 이스가의 아버지이다. 그는 자기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죽었다(창11:26-31). II. 메소포타미아의 북서쪽에 있던 고대 도시. 신약성경은 이곳을 Charran이라고 부른다. 아브라함의 이동 지도 참조(13). 아브라함은 갈대아의 우르를 떠난 뒤 자기 아버지 데라가 죽을 때까지 여기에 거하였고 야곱은 에서를 피해 여기로 도망하였다(창11:31-32; 12:5; 24:1-67; 27:43; 28:10; 29:4). 히스기야 시대에 하란은 아시리아 사람들에 의해 폐허가 되었다(왕하19:12; 사37:12).  
2009-04-22 18:58:53 | 관리자
  소바와 그 주변 지역을 다스리고 유프라테스에까지 힘을 쓴 시리아의 강력한 왕(왕상11:23). 그는 세 번이나 패하고 결국 다윗에 의해 권력을 잃었다(삼하8:3-4; 10:6-14, 16-19; 대상18:3; 19:6).  
2009-04-22 18:54:21 | 관리자
  I. 모압의 평야에서 미디안 사람들을 격파한 에돔의 통치자(창36:35; 대상1:30). II. 대상1:51에 나오는 에돔의 두 번째 통치자. III. 다윗이 에돔을 정복하자 이집트로 도망한 에돔의 왕족(삼하8:14). 그는 거기에서 파라오의 영접을 받고 왕비의 여동생과 결혼하였으며 다윗과 요압이 죽은 뒤에 에돔에 돌아와 솔로몬의 멍에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였다(왕상11:14-22).  
2009-04-22 18:53:21 | 관리자
  므깃도 골짜기의 한 장소. 여기에서 선한 요시야 왕은 파라오느고와의 싸우다가 중상을 입고 돌아와서 죽었으며(왕하23:29; 대하35:20-25) 이로 인한 애곡이 굉장히 컸다(슥12:11).  
2009-04-22 18:52:45 | 관리자
  신구약성경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진 왕국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는 것이며(엡1:6; 12; 14) 그래서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왕국에 대한 개념으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을 때 동방에서 온 지혜자들이 “유대인들의 왕으로 오신 이가 어디 계시냐?”라고 물었으며(마2:2) 그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도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선포하셨다(마4:17). 또 그분께서 돌아가실 때 십자가 위의 명패에도 ‘이 사람은 유대인들의 왕 예수’라는 글이 붙었다(마27:37). 교회와 왕국 선도 참조(85). 예수님은 일차적으로 유대인들의 왕으로 즉 그들의 메시아로 오셔서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메시아 왕국을 그들에게 제시하셨으나 배척당하시고 결국 그들의 왕으로 돌아가시면서 새로운 언약 즉 신약을 여셨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왕국을 잘 이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예수님은 사역의 시작부터 하나님의 왕국의 복음을 선포하였으며(막1:1, 14)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다. 이런 구절에서 사용된 그리스어 ‘바실레이아’는 왕국이며 예수님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문자 그대로 실제로 땅에 임하게 하사 그분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는 왕국 즉 ‘하늘의 왕국’을 제시하셨다(마4:17). 하늘의 왕국은 대언자 다니엘을 통하여 이미 오래 전에 예언된 왕국으로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세우시는 왕국이다. “이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한 왕국을 세우시리니 그것은 결코 멸망하지 아니하리이다”(단2:44). 예수님은 바로 이 왕국을 유대인들에게 제시하시고 침례자 요한의 사역과 각종 기적과 이적과 표적을 통해 자신이 메시아임을 보여 주셨으나 그들은 의도적으로 그것을 거부했고(마23:37-39) 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전달되었다(롬11:30-31). 한편 예수님의 재림 전에 선포될 복음도 천국 복음이 아니고 왕국의 복음이다(마24:14).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 곧 그는 구원을 받으리라. 왕국의 이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증언되기 위해 온 세상에 선포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3-14). 복음 참조. 여기서 ‘끝까지 견디는 자’는 목숨을 내걸고 주님께 헌신하는 자가 아니라 세상이 끝나는 때까지 견디는 자를 말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1차적으로 유대인들 가운데 믿음으로 7년 환난기를 통과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그들은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이른 뒤에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이 성취될 때에 구원받는 자들이다(롬11:26). 그래서 7년 환난기에는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다.”는 왕국의 복음이 전 세계에 퍼지고 그 이후에 우리 주님께서 하늘로부터 강림하셔서 이 땅에 천년왕국을 세우신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신실한 성도들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예루살렘의 구속을 바랐고(눅2:30-34; 38) 그래서 처음부터 그들에게는 왕국의 도래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구속이 사라진 것으로 생각하고 실망에 잠겼으나(눅24:21) 그분의 부활 소식을 듣고는 그분이 승천하기 전에 무엇보다 먼저 왕국의 회복에 대해 물었다. “주여, 주께서 이때에 그 왕국을 이스라엘에게 다시 회복시켜 주고자 하시나이까?”(행1:6) 이때에 그분께서는 왕국의 회복이 하나님의 권능 안에 있으므로 그들은 나가서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셨고(행1:7) 이에 그들은 왕국의 회복을 바라며 복음을 선포하였고 특히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강하게 권면했다(행3:19-26). 복음의 초기에는 이렇게 왕국의 회복과 관련해서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이 선포되었으며 이방인들의 구원은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나서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이루어졌다. 스데반의 순교는 유대인들의 회개가 거의 불가능함을 보여 준 사건이며 유대인 중심의 복음 사역에서 이방인 중심의 사역으로 바뀌는 전환점이 되었고 결국 유대인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주후 70-71년에 로마의 티투스가 예루살렘과 성전을 훼파시키고 유대인들을 추방하여 왕국의 회복은 이방인들 중심의 교회 시대 이후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물론 구약의 대언자들이 말하고 예수님이 초림 때에 세우려 했던 하늘의 왕국은 그분의 재림 이후에 천년왕국에서 문자 그대로 위엄 있게 이루어질 것이다. 천년왕국 참조. 기존의 우리말 성경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모든 성경에서 왕국으로 번역된 kingdom은 성경에 342회 나오며 이것은 원래 왕권(kingship)을 의미했으나 후에는 주로 왕이 다스리는 통치 체제 즉 왕국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런 중요한 단어를 ‘나라’나 ‘천국’ 등으로 일관성 없게 번역하면 성경의 핵심 주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인본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구절을 악용하여 천국이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고 주장한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개역성경 눅17:20). 문맥을 볼 때 “너희 안에 있다.”의 ‘너희’는 예수님께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저주하신 바리새인들이다. 예수님은 결코 바리새인들 안에 천국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기존의 우리말 성경의 ‘나라’는 원래 왕국이다. 왕국이 성립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왕이 있어야 하며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질문을 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내가 왕으로 너희 가운데 와서 거하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렀다고 말씀하신다. 결론적으로 ‘왕국’을 ‘천국’ 혹은 ‘나라’로 바꾸는 것은 성경 전체의 핵심 주제를 완전히 가려 성도들의 성경 이해를 가로막는 심각한 폐해를 낳으며 그 결과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이스라엘 대체신학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하나님의 왕국 참조. 끝으로 역사를 통한 세상 왕국의 변천은 다니엘서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이방인들의 때 참조.  
2009-04-22 18:52:13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