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 사람들이 사마리아에 도입한 우상(왕하17:31).
2009-04-22 12:31:57 | 관리자
초기의 하나님의 계단은 반드시 다듬지 않은 돌로 만들었다(출20:25).
솔로몬의 성전에는 다듬은 돌이 쓰였다(왕상5:17; 6:36; 7:12).
2009-04-22 12:31:26 | 관리자
솔로몬이 유프라테스 강을 향한 시리아 사막에 세운 도시(왕상9:18; 대하8:4).
2009-04-22 12:30:48 | 관리자
사도 유다의 이름(마10:3).
2009-04-22 12:29:58 | 관리자
모세와 아론을 대적한 고라의 무리에 들어가 반역한 사람(민16:1-50).
2009-04-22 12:29:24 | 관리자
동방에서 짐을 나르는 데 사용된 짐승. 성경에 나오는 아라비아 낙타는 혹이 하나이고 중앙아시아의 낙타는 두 개이다.
낙타가 잘 먹으면 혹이 기름으로 인해 부풀어 오르고 먹지 못할 때에는 거기서 영양분이 빠져 나가 줄어든다. 낙타는 대개 무릎을 꿇고 짐을 싣는데 크기에 따라 200-500킬로그램의 짐을 실었고 시간당 4킬로미터의 속도로 여행했다.
성경 시대에는 낙타처럼 무거운 짐을 싣고 험한 길을 걸으며 좋지 못한 식물을 먹은 짐승이 없었다. 사막을 오가는 카라반들은 낙타가 없이는 움직일 수 없었고(창37:25) 그래서 낙타의 수는 한 사람의 부의 척도가 되었다. 욥은 3,000마리를, 미디안 족속들은 바다의 모래 같이 많은 수의 낙타를 가지고 있었다(삿7:12; 대상5:21; 욥1:3). 리브가는 낙타를 타고 이삭에게 갔으며(창24:64)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에게 이것들을 가져갔고 하사엘도 낙타에 선물을 가득 실어서 엘리사에게 갔으며(왕상10:2; 왕하8:9) 낙타들은 심지어 전쟁에서도 사용되었다(삼상30:17). 히브리 사람들은 낙타를 부정한 것으로 생각했으나(레11:4) 아랍 사람들은 낙타의 젖을 귀중히 여기고 주요한 음식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아랍 사람들에게는 낙타보다 중요한 짐승은 없었다.
사람들은 낙타의 가죽으로 큰 물 부대를 만들고 자루, 신발, 끈 등을 만들었으며 낙타의 똥은 말려서 땔감으로 사용하였고 낙타털은 엮어서 고급 옷을 만드는 데 사용하기도 하고 목자들이 입는 거친 옷을 만드는 데도 사용했다. 침례자 요한도 이 옷을 입었는데 이것은 부드러운 옷이 아니었다(마11:8).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마19:24)는 말씀은 불가능을 보여 준다. 또한 “너희가 모기에는 긴장하고 낙타는 삼킨다.”(마23:24)는 말씀은 바리새인들의 위선 즉 작은 일에는 신경을 쓰지만 큰 것은 대충 넘기는 그들의 위선적 행위를 표현한 것이다.
2009-04-22 12:26:45 | 관리자
이에 상응하는 그리스말은 나무가 많은 동산이나 공원을 뜻하며 히브리말 ‘간’도 비슷한 뜻을 갖는다(느2:8; 전2:5; 아4:13). 에덴 참조. 예수님의 부활 이후의 신약 성도들은 죽어서 곧장 셋째 하늘 즉 천국으로 가지만(빌1:23; 고후5:8) 구약 성도들은 죽어서 곧장 천국으로 가지 않았으며 ‘스올’이라 불린 지하 세계에서 큰 구렁텅이(혹은 무저갱)를 사이에 두고 불꽃이 있는 부분으로부터 격리되어 ‘아브라함의 품’이라 불리는 낙원에 거하면서 거기서 위로를 받았다(눅16:19-31). 그 이유는 더 좋은 것을 받은 신약 성도들이 없이는 그들이 완전하게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히11:40). 실제로 아브라함은 죽어서 천국으로 가지 않고 자기 백성에게로 갔다(창25:8).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회개하는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고 말씀하시고 아브라함의 품에서 사흘 동안 머물다가 부활하셨다(시16:10; 행2:26-27).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이 낙원은 셋째 하늘로 옮겨졌다(엡4:8-10). 성경의 하늘늘 선도 참조(80). 우리 주님은 셋째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낙원에 있던 구약 성도들을 모두 하늘로 데리고 가셨다(마27:51-53). 따라서 히11:8의 아브라함은 이제 히12:22-24의 셋째 하늘에 있으며 사도 바울은 이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고후12:2-4). 사도행전 14장에는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쓰기 14년 전에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었다가 다시 깬 것이 기록되어 있다. 이때에 그는 셋째 하늘 곧 낙원에 끌려 올라갔다. 계21:2를 보면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 있는데 계22:2를 보면 한때 땅에 존재한 에덴동산 안에 있던 생명나무가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 안에 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죽으신 뒤 강도를 만난 곳 즉 땅 아래 부분에 있었던 낙원이 이제는 그곳의 모든 거주자들과 함께 셋째 하늘 즉 천국으로 옮겨졌음을 보여 준다.
2009-04-22 12:25:38 | 관리자
열두 명의 소 대언자 중 하나. 나훔의 생애에 대해서는 그가 단지 갈릴리의 엘고스 출신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는 니느웨의 멸망에 대하여 대언하였다.
2009-04-22 12:24:57 | 관리자
I. 스룩의 아들, 데라의 아버지(창11:22-25; 눅3:34).II.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과 하란의 형제.
그는 갈대아의 우르에서 자기 조카인 밀가와 결혼하였고(창11:26, 29) 그 뒤 하란으로 거주지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창24:10; 27:43). 그에게는 열두 아들이 있었고 그 중에 하나는 리브가의 아버지 브두엘이었다(창22:20-24).
2009-04-22 12:24:20 | 관리자
I. 암몬 족속의 왕. 그는 라못길르앗을 에워싸다가 사울에 의해 패배를 당하였다(삼상11:1-15). 그나 혹은 같은 이름을 가진 그의 아들은 다윗과 좋은 관계를 가졌다(삼하10:2).II. 다윗의 이복누이인 스루야와 아비가일의 아버지(삼하17:25; 대상2:13-16). 어떤 이들은 나하스가 이새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2009-04-22 12:23:32 | 관리자
주님은 모세에게 은을 쳐서 두 개의 나팔을 만들어 백성을 소집하고 경고를 주는 데 사용하라고 하셨다(민10:2).
또한 그들은 민간력의 1월과 안식년의 1월과 희년의 시작에 나팔을 불었다(레23:24; 25:9-10; 민29:1). 나팔절은 종교력의 7월 즉 민간력의 1월 1일에 지켰으며 나팔을 붊으로 새 해를 알리는 날이었다(레23:24; 민29:1).
이 날은 엄숙한 날로 노동을 금하였고 이 날에는 매일 그리고 매달 드리는 헌물 외에 민족을 위하여 소와 숫양과 염소와 일곱 마리 어린양을 번제 헌물로 주님께 드렸다(민28:11-15).
2009-04-22 12:22:42 | 관리자
이집트의 유명한 강. 이것은 중앙 아프리카에서 사막을 거쳐 지중해의 삼각주로 흐르는 길이가 5700킬로미터에 이르는 큰 강이다. 이집트 제국 지도 참조(14).
나일 강은 이디오피아에서 나오는 청 나일과 빅토리아 호수에서 나오는 백 나일에서 물을 받는데 우기에는 백 나일이 청 나일보다 배나 많은 양의 물을 공급한다. 이때에 넘치는 물로 인해 북부 지방의 삼각주에는 농사짓기에 좋은 표토가 공급된다. 그러므로 물의 양이 적은 해에는 반드시 기근이 생겼다. 현재는 아스완 댐이 있어서 물의 양을 조절하고 있다.
나일 강은 이집트 사람들에게 필수불가결한 것이었으므로 이집트 사람들은 그 강을 하피 신이라 불렀다. 물론 이 강은 이집트의 중요한 운송 수단이었다. 파라오의 꿈에 나오는 강이 바로 나일 강이다(창41:1-36). 후에 파라오는 이스라엘 자손의 남자 아이들을 나일 강에 던져 죽이라고 명령했다(출1:22). 모세는 파라오의 딸에 의해 나일 강에서 구출받았고(출2:1-5) 80년 뒤에 다시 이집트로 와서 나일 강의 물을 피로 만들었다(출4:9; 7:17-21; 시78:44). 나일 강으로 인한 번영은 대언자들의 글에서도 나타난다(사23:10; 렘46:7-8). 이집트의 심판은 종종 나일 강이 마르는 것으로 묘사된다(겔29:10; 30:12; 슥10:11). 히브리 사람들은 유프라테스와 나일 강을 바다라 부르기도 하였다(사19:5; 나3:8).
나일 강은 물고기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였다(민11:5; 비교 사19:8). 이집트와 시홀 참조.
2009-04-22 12:21:52 | 관리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부의 아들을 다시 살리신 갈릴리의 조그만 마을(눅7:11-17).
2009-04-22 12:20:48 | 관리자
사무엘의 거주지. 여기에는 대언자들을 기르는 학교가 있었다(삼상19:18-24; 20:1).
이곳은 라마의 외곽으로 생각되며 그곳에서 사무엘과 함께 피신하던 다윗은 사울의 추격을 받았다.
2009-04-22 12:20:13 | 관리자
엘리멜렉의 아내. 그녀는 룻의 시어머니였다. 룻 참조.
2009-04-22 12:19:39 | 관리자
이스라엘 왕 요람 시대에 시리아 다마스커스의 왕이던 벤하닷에게 속한 존경받는 장군. 그는 나병으로 고생하였으나 엘리사의 말에 따라 요르단에서 일곱 번 씻음으로 기적적으로 고침을 받았다(레14:7; 왕하5:1-27; 눅4:27).
그는 부귀와 재물과 명예가 소용이 없으며 의원들도 자기 병을 고칠 수 없음을 알았고 이에 자신의 교만을 버리고 아주 간단한 처방을 받아 완전하게 고침을 받았다. 그는 병을 고친 후에 대언자뿐만 아니라 대언자의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렸다. 또한 그는 주 하나님만이 유일하고 진실한 하나님임을 보여 주는 증거들을 내놓았고 집에 갈 때에 주님을 위한 제단을 만드는 데 쓰려고 흙을 조금 가져갔다(출20:24).
그의 주군 벤하닷이 림몬의 신전에서 종교 의식을 행할 때에 그가 어떻게 해야 할지 엘리사에게 물었으나 엘리사는 정확한 답변을 주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어쩔 수 없이 우상에게 경의를 표하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두려워함으로 삶을 보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09-04-22 12:18:59 | 관리자
우리 주님의 조상 중 한 사람(마1:4; 눅3:32).
그는 광야에서 유랑할 때 유다 지파의 우두머리였고(민1:7; 2:3; 7:12) 아론은 나손의 누이 엘리세바를 아내로 취하였다
(출6:23; 룻 4:20; 대상2:10).
2009-04-22 12:17:25 | 관리자
고대 히브리 율법 하에서 알코올이 들어 있는 음료나 모든 종류의 포도 생산물을 섭취하지 않기로 서원한 남자와 여자. 그들은 머리를 자르지 않았고 죽은 사람을 만지지 않았으며 혹시 자기들 앞에서 우연히 사람이 죽으면 자기들이 지금까지 거룩히 구별한 것을 무효로 하고 다시 시작하였다. 이 같이 나사르 사람이 되리라는 언약은 여드레나 한 달이나 혹은 평생토록 지속되었다. 나사르 사람의 서원이 끝나는 때에 당사자는 여러 가지 예물을 가지고 성전에 왔고 제사장은 그 사람의 머리를 자르고 태웠으며 그 후에 그 사람은 자유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민6:1-27; 암2:11-12). 영원히 나사르 사람이 되는 경우에는 대개 사무엘의 경우처럼 부모가 출생 때부터 나사르 사람으로 키우겠다는 약정을 하였다(삼상1:11). 그들은 이런 상태로 평생을 지내며 포도즙도 마시지 않고 머리를 자르지도 않았다. 삼손과 침례자 요한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삿13:4-5; 눅1:15; 7:33).
나사르 사람의 서원에서 풀려날 때 바치는 예물이 대단히 많았으므로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나사르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대신 경비를 대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적대하고 시기하는 유대인들의 적개심을 잠재우기 위하여 이 관례를 수행하였다. 그래서 그는 나사르 사람의 서약이 끝나는 크리스천 유대인 네 명을 취해 그들의 예물 경비를 대었고 그들과 함께 관습의 절차와 성전에서의 정결례 등을 행하였다(행21:20-26). 한편 행18:18에도 이것과 관련이 있는 듯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2009-04-22 12:16:37 | 관리자
I. 그리스도의 친구이자 제자. 그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비였으며 예루살렘 근방의 베다니에 살았다. 우리 주님은 그들에게 큰 관심을 보였고 그래서 나사로가 아플 때에 그가 아프다는 소식이 주님께 왔다. 우리 주님은 그가 무덤에 누운 지 나흘이 되었을 때에 베다니에 가셔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외침으로 그를 살리셨다. 이 기적으로 인하여 여러 사람이 그리스도께로 모여들었고 이에 그분의 원수들은 그와 더불어 그분도 죽이려 하였다(요11:1-57; 12:1-11).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사랑을 베풀고 그를 위해 우시며 죽음을 물리쳐 주는 분임을 보여 준다. 그분은 생명의 통치자요 사망과 무덤을 이긴 분이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선포하시는 그분을 친구로 둔 사람들은 이런 면에서 행복하다(요11:25).
II. 지옥의 참상을 보여 준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이야기에서 부자의 대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거지(눅16:19-31). 그는 비록 이 세상에서 고통 받고 가난했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며 향락에 빠진 그 부자는 인정을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알지 못한 죄인이었다. 이 이야기는 이 세상에서의 삶과 하나님 앞에서의 심판 결과가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 준다. 하나님은 속 중심을 보신다. 이 이야기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의 인물이 나오는 실화이며 부자의 이름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옥 참조.
2009-04-22 12:15:49 | 관리자
그리스도의 호칭 중 하나(마21:11; 행2:22; 4:10).
시22:7-8과 사53:2에는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거절당하는 것이 예언되어 있으며 나사렛 사람이라는 수치의 호칭은 이 같은 예언이 사실임을 보여 준다(마2:23; 행24:5). 사실 나사렛은 팔레스타인의 멸시받는 장소에 있던 조그만 마을이었다. 갈릴리와 나사렛 참조.
2009-04-22 12:14:57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