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이 우주 안의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필요하시다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주의 주인으로서 스스로 부족한 것이 없는 분이시지만, 우리와 같이 일 하기를 원하신다 (고전 3:9).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 칭하시고 그 분의 사역에 우리를 동참시키어 우리에게 면류관과 상까지 주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빌 3:14; 고전 9:24-27; 히 10:35). 그러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내를 본받아 구름같이 둘러싼 증인들 앞에서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고 있는 것이며 (히 12:1), 다만 이 모든 명령 받은 일을 행한 후에 그저 우리는 우리의 해야 할 의무를 다했다고 겸손히 고백할 뿐이다 (눅 17:10).
이러한 하나님의 같이 일하심과 맡김의 원리는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에서도 잘 나와 있다 (마 25:14-30).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이 5 달란트와 2 달란트 받은 종에게 열심히 일하여 이익을 남김에 대하여 칭찬을 하시되, 1 달란트를 받고 그저 땅에 묻어둔 종은 크게 나무라셨다. 그때 1 달란트 받은 종이 “당신은 엄한 사람이라 뿌리지 않은데서 거두고 흩뿌리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라고 말하였는데 (마 25:24), 가만히 음미해 보면 이 말은 자신의 주인 즉, 하나님의 능력을 칭송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그것만 믿고 오히려 자신의 일을 다 하지 않은 종이 되었기에 주인으로부터 꾸지람을 듣게 된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보통 신앙생활을 하면서 막연히 하나님을 높여 드려야 한다는 다소 충성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데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오히려 하나님께서 정말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자칫 놓치기도 한다. 하나님은 분명 능력이 많으시지만, 그렇다고 아무 때나 맘먹을 때 하면 되지 하는듯한 방관된 자세로 그저 멀리서 팔짱끼고 계신 그런 분이 아니라, 오히려 열심으로 일하시는 분이시다 (사 9:7). 더 나아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을 맡기시고 그 일을 완수하게 격려 하시며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뤄낸 성과들로 인하여 같이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상까지 주시며 세워 주시는 분이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달란트 비유에서 보듯이 할 수만 있다면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달란트에 맞는 사회의 각 분야에서 탁월함을 들어내는 것은 성경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렇게 하도록 권장해야 하고, 또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 될 것이다. 다니엘을 보라. 다윗을, 모세를, 바울을 보라. 그들은 모두 믿음의 본보기가 되는 사람들 이었지만, 동시에 세상 가운데 자신의 달란트를 들어낼 수 있는 분야에서도 모두 탁월함을 일군 사람들이었다. 물론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로 성공을 이룬 뒤 하나님의 도우심을 잊어버리거나 세상 유혹만을 쫒아간다면 세상에서의 그 성공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한갓 이생의 자랑거리에 지나지 않으며 시들어 없어질 들의 꽃에 다름없게 되고 말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달란트를 사용하는데 게을리 하거나 세상 가운데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되도록 간절히 간구하며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는 그 분 앞에서 어떤 존재로 서있는지 관심이 있을 수 있다. 흔히들 내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이나 또는 그 일로 이뤄낸 어떤 성과 따위는 하나님이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계시며 단지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 자체에 더 관심이 있는 것처럼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내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어쩌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존재를 따지기로 말 한다면, 우리의 구원 조차도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이뤄진 것이며 (롬 5:8), 성화를 위해 싸워 가는 과정에서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도 내 몸 안에 있는 죄의 법을 여전히 버거워 하는 존재일 뿐이다 (롬 7:13-25). 그런 ‘존재’인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은 같이 일하게 하시며, 그 과정에서 오히려 죄의 법을 이기는 힘을 얻게 하기도 하시며, 그 크신 능력을 갖고 계신 하나님에 비하면 정말 보잘 것 없는 ‘성과를 낸’ 우리들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시며, 그 작은 일을 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오히려 상을 주시며 칭찬하시겠다는 것이니.. 이것이야 말로 진정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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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7 21:58:03 | 김정훈
애들 보는 애니메이션이 거의 다 그렇습니다. 에큐메니컬 아니면 외계인이죠. 사실 여부와 전혀 관계없이,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아이들을세뇌하고 있습니다.
2012-02-07 20:25:15 | 류인선
이 영화는 아바타나 다른 비성경적인 영화들 처럼 일반 교인들도 분별하거나 고개를 저을수 있는 내용과는 달리, 애들 영화,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는데 그게 뭐 잘못이냐? 갖다 맞출것을 맞춰라 라는 분들이 있듯이 유명한 "문제작" 보다 전연령대의 가격대 성능비가 뛰어난 사탄의 고효율 무기 인것 같습니다.
2012-02-06 18:10:17 | 이민혁
할인해서 조조나 아니면 동영상파일이 나오면 괜찮을거 같네요. 영화는 배부른자들을 더욱 배부르게 해주는거 같습니다. 저도 조조+할인으로 보았습니다.
2012-02-06 17:57:47 | 이민혁
이런 내용의 글을 영화 리뷰 게시판에 올린다면 말그대로 미친놈 취급할뿐 이기에, 저에게 킵바이블은 세상과의 전쟁중에 귀한 쉼터입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2-02-06 17:55:56 | 이민혁
제가 가족들 보기에도 부족해서 제 심정을 이해하지 못함을 시인합니다.
다른분들께 위로와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2-06 17:54:06 | 이민혁
↑요런분 꼭있어요.ㅎㅎ 나형제님, 이 글도 참고 하셨음 좋겠어요. 실은 저도 영화'아바타'가 나왔을때 보고싶었는데 이글을 보고 어떤 확실한 분별력이 생기더라구요. ^^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2004
그래서 결론은 .....돈이 아깝겠다는 생각이.^^
2012-02-06 17:46:11 | 이청원
(나 1:2, 킹흠정) 『하나님은 질투하는 분이시며 주께서는 원수 갚는 분이시니라. 주께서는 보복하며 격노하는 분이시니 주께서는 자신의 대적들에게 보복하시고 자신의 원수들을 위해 진노를 간직하시는도다.』
2012-02-06 14:15:01 | 임종각
궁금해서 한번 보고 싶은 충동이...^^;;
2012-02-06 14:10:55 | 나창주
요즘 같은 시대에 대중문화예술은 장르를 불문하고 사탄의 손아귀에 쥐어진 가장 날카로운
창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형제님처럼 바르고 예리한 분별력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2012-02-06 12:11:03 | 김대용
그런 영화였군요. 정말 볼 것이 없는 세상이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힘내시고요...
형제님 글이 안타깝지만 오히려 많은 분들께 위로가 되리라 믿습니다.
2012-02-06 11:14:20 | 김재욱
저번주말에 누나의 생일이었습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요즘은 12세등급 실사영화도 욕이 난무하고, 정말 애들보기 민망한 장면도 너무 많아서
초등학생인 조카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애니메이션 해피피트2를 보았습니다.
전 이 영화를 보며, 정동수목사님의 UFO실체와 아귀가 딱 딱 맞아감을 두려움속에서 느꼈습니다.
어찌 이런 어린애들이 보는 것에 이런 내용들이 함축적으로 다 들어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니
가족영화로 애와 어른이 다 볼수있고, 이런 내용을 어릴적부터 본 아이들이 나중에 중장년층이 되면
평화의 세계단일화에 박수갈채를 보낼 교육을 받고있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교리 게시판에 있는 UFO실체 글을 보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그것을 꼭 읽고 세상을 보는것이
도움이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영화 내용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 이 영화는 눈 요기거리와 노래로 사람을 감성적으로 이끕니다.
해피피트2는 펭귄을 의인화한 영화입니다.(저는 이런영화가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한 지역에 잘 살던 펭귄(인간)들이 자연의 힘(재해)에 고립되어 꼼짝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잠시 나와있던 에릭과 친구들 아빠는 그들을 구해내기 위해
다른 지역(나라)의 펭귄(인간)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곳의 펭귄들의 우상인 마이티 스벤(펭귄이 아닌 다른 종)은 펭귄이면서 하늘을 날수 있습니다.
(펭귄들은 같은 종족인줄 알고있었습니다. 나중에 하나가 됩니다.)
스벤이 이끌고 온 다른 펭귄(인간)들은 열심히 도움을 주는데
이전에 스벤과 그의 심복 A(이름을 잊었습니다.)가 만났었던 인간(외계인)에게 말이통하지 않지만
바디랭귀지로 도움을 요청하여 그들의 기술(고도의 기술)로 고립 되었던 펭귄(인간)들을
금새 구출(혹은 구원)하려 합니다.(공교롭게도 영화내에서 인간들을 외계인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다시한번 자연의 힘에 인간(외계인)들은 구출작전을 중단하고, 그곳을 빠져 나가 버립니다.
(UFO실체에서 언급된 외계인이 우리와 기술을 나누다가 전쟁하여, 이젠 그 기술을 얻을수 없는 내용과 일치)
다시 죽음의 기로에 선 펭귄(인간)들은 다른 종인 바다코끼리(다른 나라 인간)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들도 도움을 주게 됩니다.
이영화는 중간 중간에 진화론을 언급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된다! 된다고 믿으면(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신들의 힘으로 노력하면) 불가능한 무엇이든지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며 시청하는 애와 어른들에게 주입시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종인 수많은 새우 종들이 함께 힘을 합하게 됩니다.
각 지역의 펭귄들과 그들의 우상인 마이티 스벤(위대한 스벤, 다른 종) 그리고 바다코끼리, 수많은 새우들이
자신들의 힘으론 절대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을 자신들의 의와 행동으로 다른 종족(세계 각 나라)과
평화롭게 하나가 되어(세계단일화,종교단일화) 열심을 내어 일을하니
인간이 인간을 죽음 앞에서 구원해 버립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들의 우상이었던 위대한 스벤은 원래 펭귄(인간)이 아님을 실토하며, 펭귄 암컷(인간 여자)와 결혼하게 되는 내용으로 이어집니다.(당연히 교미를 하여 아이를 낳겠지요. 버림받은 천사들, 유전자조작.. 거인들 다른 외계종)
이것을 보고 마음이 요동하여, 어머니(교회 권사)께 이런 저런 말씀을 했더니 "너 정말 왜그러니","도끼눈을 뜨며 저를 피하십니다."
더구나 누나와 조카는 그걸 보고 두번이나 감동하여 울었다고 합니다.
정말 미칠노릇입니다. (교회 다니지요..)
어찌 이런것을 보고 우나 싶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감동하여 울거나 울뻔한 세상사람들이 많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제 누나는 교회를 다녔지만, 세상 것을 좋아하며, 즐기지만 삶이 고통스럽던 차에 최근에 다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분별력이 없고 또한 그것을 분별할 생각조차 없습니다.
(이 것을 말하는 것은 왠만큼 믿음생활했다는 교인들에게 꼭하고 싶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
제가 KJV, 킹흠정을 알게 되었을때는 수개월동안 이것이 붙잡아도 될것인지 확인을 거듭했습니다.
다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되는 "하나님 말씀" 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확신을하며 한글화 된 KJV 번역본 중에서는 가장 좋은 흠정역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KJV1611이 최종권위=변개되지 않은 하나뿐인 성경책임을 믿습니다.
정동수목사님 계열이 극도로 세대주의적이고 한킹계열과 좀 다를뿐이지 인정하지 않는 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 여러분들이 하는 말은 자신이 정말 확인하며, 시험을 거듭하여 증명해본 것입니까?? 여러분들을 보면 남들이 하는말 또는 어디서 보거나 줏어들은 말을 읊을뿐이지 직접 확인하지 않음이 우리 눈에는 얼마나 미련해 보이는지 아십니까??"
그럴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지요? 아니면 두개의 가면을 번갈아 가며 사용하십니까??
이곳에 와서 자신들이 취할 것만 취하고, 버리는 당신들이 세상속의 교인들과 뭐가 다릅니까?
여기 조금, 저기 조금 발 담그면 더 따뜻할까요? 이도 저도 아닌게 될 뿐입니다.
[계 3:15]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그런즉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므로 내가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리니
각종 헐리웃영화를 보며 항상 비성경적이고, 이단적인 내용들을 매번 빠짐없이 접합니다.
주님오실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제 어릴적보다 더욱 가깝게 느끼며 바른말씀을 붙잡아야 함을 알게됩니다.
벧전 4:7 오직 모든 것의 끝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
저는 정말 부족하고 못난놈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련한 저에겐 "바른" 하나님 말씀이 꼭 필요 합니다.
무조건 적인 신뢰와 믿음을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 바칩니다.
주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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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6 08:18:36 | 이민혁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전지한 하나님께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의 구속을 창세 전에 이미 계획을 해 놓으셨죠. 그 사건(선악과 따먹게 된 사건)을 유도한 것은 뱀이고요.
2012-02-05 22:32:29 | 박주영
더러운 영의 인도를 받기 때문에 더러운 줄 모르겠지요? 아마, 구원 받기 전에 내 영도 저랬을 것입니다.
{시51:10]오 [하나님]이여, 내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속에 올바른 영을 새롭게 하소서.
2012-02-05 19:37:30 | 이광국
아멘~~~~
2012-02-05 19:34:55 | 허광무
斗의 원형 글자가 사람(勹)이 등에 칼(刂)을 꽂고 있는 모습이라면, 斗자의 의미를 '무언가 튀어 나왔거나 남 다른 구조로 눈에 띄는 것'으로 풀어 본 저의 해석도 설득력이 없지는 않겠군요.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창세기 한자' 해석 방법으로 한자어 본래의 감추어진 의미를 흥미 있게 풀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2012-02-05 17:14:22 | 김정훈
형제님 글의 다른 의견이 아니라
그야말로 “즐거운 상상”이 되시라고 덧글을 썼습니다.
고대사회가 科자에 學자를 붙여서 科學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하드라도
‘Science’는 아니였을 테지만
‘學校’의 ‘學’자와 ‘校’자가 神政일치 시대의 청동기문자인 점을 감안하면,
학교는 교육의 한 분류로 神 즉 하나님의 생명나무를 가르쳤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잃어 버린 정치사회가 윤리도덕을 가르치듯이…
‘창세기한자’에서 ‘科’와 ‘課’ ‘課題’와 ‘科程’을 해석하는 목적은
선악과 사건의 본질이 생명나무를 먹지 못한 것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이고
시험이 아니라 과제였다는 점을 설명할 때 인용합니다.
課題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頁머리 혈)을 바르게(是옳을 시) 하도록(題제목 제)
말씀(言-하나님)이 과일 나무(果)의 임무를(課) 3. 매기다 4. 부과하다(賦課)입니다.
아무쪼록, 과학이(Science)
하나님이 심은 나무를 헤아려서(科)
생명나무를 먹고 영생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법을
배우고(學) 증거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추신: 科에 사용된 斗의 원형 글자는 사람(勹)이 등에 칼(刂)을 꽂고 있는 모습입니다.
2012-02-05 10:30:11 | 이광국
이 글은 아래 자유게시판 1458번의 댓글로 달았던 글을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새로운 독립글로 다시 올리는 것임을 밝혀 둡니다.
선악과는 과연 왜 있어야 했을까요? 그리고 선악과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하나님의 계획이셨을까요? 이런 질문들은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적어도 한번쯤은 고민해 보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저의 생각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여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1. 선악과는 꼭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음을 보여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로봇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하나님 또한 그 분의 피조물인 우리 인간들이 그 분을 의지적으로 순종함으로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보여 주기를 원하셨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으셨을 때 하나님만이 우리를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소위 '짝사랑'의 존재로 지으시기 보다는 우리도 그 분의 형상대로 지은 바된 존재 답게 그 분을 우리의 의지로 '사랑'하길 원하시지 않으셨을까요? 2. 선악과가 있는데 그것을 먹지 말라는 말씀을 우리가 지켰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단절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성육신은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좋았더라' 하셨던 그 말씀 그대로 그 자체가 이미 천국입니다. 천지창조가 삼위일체 하나님이 합력하여 만드신 것처럼 에덴동산에서 우리는 삼위 하나님과 함께 거했을 것입니다. 3. 선악과가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것을 먹었다면, 그 일로 우리는 하나님과 단절이 되고 그것은 곧 바로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 경우 우리의 영원한 죽음을 막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이 죄인된 모습으로 성육신 하시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제정하신 그 방법에 참여하는 자에게 이제는 양아들 자격을 주시어 (엡 1:5) 우리를 다시 살리시는 것이구요. 안타깝게도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4.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선악과의 존재 자체는 오히려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갖고 스스로 선택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경륜과 사랑의 표현이며, 이것에 대하여 '순종'으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지 못함은 우리의 잘못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없었어도 우리는 여전히 예수님과 에덴동산에서 함께 거닐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위의 2번의 경우에 해당). 따라서 이번 글의 서두에서 질문한 "선악과 사건이 있어야지만 예수를 믿을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분명 "아니다"입니다. 선악과 사건 이전에 우리는 이미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이 우리의 믿음에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5. 마찬가지로 또 다른 질문으로 "그렇다면 선악과 사건은 예수님을 믿어야만 양아들이 될수 있게끔한 하나님의 방법이었다고 볼 수는 없을까요?" 라고 물을 수 있을 겁니다. 선악과 사건이 저질러진 이상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만 양아들이 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일의 순서를 잘 따져 보시면, 선악과 사건은 "예수님을 믿어야만 양아들이 되도록 만드신" 하나님의 방법, 그 방법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지 선악과 사건 그 자체가 우리를 양자 삼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여 지지요. 6.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선악과 사건을 계획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선악과 사건은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었고 그것의 결과로 인하여 비로소 구속을 계획하심이 맞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5:2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05 02:42:43 | 김정훈
‘科學’의 ‘科’자를 '창세기 한자' 방식으로 생각해 보니 참 흥미롭군요.. 말씀하신 내용을 토대로 저는 조금 다르게 해석해 보았습니다. '斗'는 헤아리다란 의미도 있지만, 무언가 튀어 나왔거나 남 다른 구조로 눈에 띄는 것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科’는 결국 '하나님이 심은 나무 가운데 무언가 남달리 두드러진 것'을 말하며 결국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科人’의 뜻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사람의 결합으로 보다 자연스럽게 '죄인'의 뜻을 품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科學’이라는 용어는 서양에서 온 개념으로 라틴어 'scientia (앎)'이 그 어원이고, 과학이 앞서 발달 하였던 독일에서는 'wissenschaft'라고 불렸는데 그 의미는 '체계적인 지식'이란 뜻입니다. 이것을 일본에 들어 올 때 그들이 달리 부를 말이 없어 ‘科學’이라는 약간은 모호한 말로 바꿔 불렀는데, ‘科’자는 우리가 오늘날 학과를 분류할 때 무슨 무슨 ‘科’ (예를 들면 數學科 [수학과], 心理學科 [심리학과] 등등)로 나누는 것처럼 무언가를 분류할 때 쓰이는 말이기에 서양의 과학의 특징인 분석적인 방법을 염두에 두고 이리 부른 것으로 이해합니다.
결국 ‘科學’이라는 용어는 동양에는 이전까지 없었던 전혀 새로운 개념을 표현하는 말로서 일본이 서양문물을 받아 들이기 시작한 때에 새로이 생겨난 말이고, 따라서 창세기적 해석으로 접근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한자의기원에 대한 창세기적 해석은 한자 형성 초창기에 생겨난 일부 한자들에 한하여 매우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해 주고는 있으나, 그 후에도 엄청나게 많은 새로운 한자들이 생겨졌기에 현재 사용되는 모든 한자들이 '창세기적 해석'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科學’이라는 단어를 창세기 한자 방식으로 해석하여 “하나님이 심은 나무 혹은 더 나아가 하나님 자신을 가르친 학문”이라고 해석한 방식은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 일으킬 수 있어 즐거웠고, 차라리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과학'이라는 말의 진짜 본래 뜻이 정말로 '하나님을 제대로 가르치는 학문'이었으면 좋겠다는 즐거운 상상도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2012-02-05 01:16:25 | 김정훈
아멘 입니다.
이런 글을 올려도 될까요?
‘科學’에서 ‘科’자는 기원 전부터 사용된 글자인데
‘창세기한자’ 방식으로 글자 모양을 해석하면
‘하나님이 심은(丿) 나무를(木= 禾) 헤아리다(헤아릴 두斗)가 됩니다.
‘여기에 사람 인(人)자를 붙인 ‘科人’은
“하나님이 심은 나무를 헤아려 봤드니 사람은 죄인이드라”로 해석할 수 있겠는데
‘科人’의 사전 해석은 정확히 ‘죄인’입니다.
‘科學’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을 가르친 학문”에서 비롯된 단어가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생명나무를(禾) 먹어야(口) 하나님과 화목(和-화목할 화)을 이룰 수 있다’는 것도
가르쳤을 것입니다.
2012-02-04 22:00:35 | 이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