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하늘로 올라가겠느냐 가 왜 그리스도를 모셔내리는 것이 되며, 그리스도를 모셔 올리려는 것이 되는지요?
"믿음에서 난 의" 와 "율법에서 난 의" 를 설명하면서 나온 말씀인데, 괄호안이 있음으로 더 헤매고 있어서요. 너무 지식이 없어서 욕심같아선 사실 강해해 주시면 좋을것 같은데요.
2010-02-26 18:23:55 | 이정순
자신은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어느 부분이, 왜 이해가 안 되는지를 알려주셔야 다른 분들이 답변하기가 쉬울 겁니다. 막연히 성경구절만 제시하면, 다른 분들은 질문자의 의도를 모르기 때문에 이 구절과 연관된 모든 내용들에 대해 강해 설교를 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됩니다. 참고로, 신명기 30장을 함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10-02-26 18:00:39 | 김문수
롬10:6,누가 하늘로 올라가겠느냐=그리스도를 위에서부터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 누가 깊음 속으로 내려 가겠느냐= 그리스도를 다시 죽은 자들로부터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너무 어려워요.쉽게 이야기를 풀어 주세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45:15 자유게시판에서 복사 됨]
2010-02-26 15:52:37 | 이정순
감사합니다. 앞 뒤 문장을 더 자세하게 읽어야 하는 것을.. 앞으로도 지도해 주세요.
2010-01-24 07:05:35 | 이정순
우리는 성경 본문 내에서 충분히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은 룻기 3:9에 먼저 나옵니다. 그러므로 룻기 3:16을 읽으실 때, 그 앞에 있는 룻기 3:9과 함께 읽으시면 쉽게 이해가 될 겁니다.
그가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매 그녀가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그러므로 당신의 옷자락으로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당신은 가까운 친족이니이다, 하매(룻 3:9)
And he said, Who art thou? And she answered, I am Ruth thine handmaid: spread therefore thy skirt over thine handmaid; for thou art a near kinsman.
9절에서 보아스가 룻에게 "너는 누구냐?"라고 물을 때, 룻은 "당신은 가까운 친족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룻의 이 말은 "보아스 당신은 우리의 상속재산을 회복시킬 책임이 있는 자이고, 나는 당신의 도움으로 엘리멜렉의 상속재산을 회복하고 그의 씨가 끊어지지 않게 할 여인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16절에서 나오미가 룻에게 던지는 질문과 룻의 답변도 이와 동일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2010-01-23 22:05:28 | 김문수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1) 새벽에 한 여인이 갑자기 집으로 들어오므로 놀라서 '너는 누구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딸은 나이가 든 사람이 나이가 적은 사람을 부를 때 쓰는 말입니다(룻3:10 참조).
물론 아들도 내 아들이 아니라도 나이가 적은 사람을 가리킬 때 씁니다.
이것은 히브리, 그리스, 영어 권에서 동일합니다.
(2) 나오미가 룻인 것을 알고 그녀의 상태를 물을 수 있습니다.
즉 "아직도 너는 모압 여인 룻이냐? 아니면 보아스의 아내가 될 사람이냐? 네 신분은 이제 무엇이냐?"
나오미는 보아스가 그녀를 신부로 맞으려고 마음의 준비를 했는지 묻고 있습니다.
앞뒤 문맥상 후자가 더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2010-01-23 20:34:19 | 관리자
룻기 3:16절에 시어머니가 룻에게 내 딸아, 너는 누구냐? 라고 묻습니다. 이해가 잘 안돼서요. 설명 좀 해 주세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32:5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23 08:34:10 | 이정순
이기형
개역한글판은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발목 힘줄을 끊다를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네발짐승의 발목 힘줄 즉 오금줄은 뒷다리 오금 위의 뒤쪽 힘줄입니다. 이 힘줄 곧 오금줄을 끊으면 동물은 절름거리게 되어 일을 시킬 수도 전투에 이용할 수도 없게 됩니다. 야곱의 아들들인 시므온과 레위가 수소의 오금줄을 끊은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제멋대로 행동하였는지 알 수 있는데, 아마도 이 일은 세겜의 히위 사람들에게 복수할 때에 있었을 것입니다. (창세기 49:5, 6) 전시에 작전을 수행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적들의 말의 오금줄을 끊었는데, 여호수아도 여호와로부터 그렇게 하라는 특별한 지시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여호수아 11:6, 9; 사무엘하 8:3, 4; 역대기상 18:3, 4) 이것은 말을 전투에서 쓸 수 없게 만드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습니다. 이렇게 말을 무력화시킨 후에는 아마도 죽여서 병거와 함께 없애 버렸을 것입니다. 이처럼 적들의 말을 자신들의 것으로 삼아 전쟁에 사용하는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이스라엘 사람들은 보호받기 위해 여호와가 아니라 말에 의지하는 올무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신명기 17:16; 이사야 31:1, 3 비교해 보시면 도움이 되시겠지요.
2010-01-17 19:09:20 | 이기형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43&cate_name=%EC%B0%BD%EC%84%B8%EA%B8%B0
본 사이트에서 검색해 보시면 위 게시물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창 34:28-29에 의하면 그들은 양과 소와 나귀들을 빼앗았다고 하는데 "소의 발목 힘줄을 끊어서" 가축을 쓸모없게 만들 리가 없지요.
2010-01-17 17:51:25 | 김문수
(질문)창세기 49장 6절 말씀의 끝부분에 "그들이 분노 중에 사람을 죽이고 자기들의 의지대로 벽을 파내려 갔도다."라는 말씀이 있는데 벽을 파내려갔다는 말씀의 뜻이 의미하는 바를 잘 모르겠습니다. 반면에 개역에서는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라고 되어있는데 비교 설명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28:37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17 15:10:36 | 양경수
그렇게 보면 되겠네요. 샬롬.
2010-01-15 11:20:00 | 관리자
개역: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삼상 1:10)
흠정역: 한나가 혼이 괴로운 가운데 주께 기도하고 심히 통곡하며
개역: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삼상 1:15)
흠정역: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영이 슬픈 여자이니이다. 내가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아니하고 다만 주 앞에 내 혼을 쏟아 놓았을 뿐이오니
개역은 혼도 마음이라고 하고, 영도 마음이라고 번역하여 사람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킹제임스성경에서는 영(spirit)과 혼(soul)이 구별됩니다.
영은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부분입니다. 영도 슬픔을 느끼며(엡 4:30), 영은 번민하기도 하며(욥 7:11), 영은 괴로워하기도 하며(욥 21:4), 영은 기뻐하기도 합니다(눅 1:47). 지금 한나의 영은 슬퍼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버려두셨는가? (그 동안 그녀는 이 문제로 기도를 많이 해 왔을 겁니다.) 왜 하나님은 내 기도에 속히 응답하지 않으시는가?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녀의 영이 슬퍼했을 겁니다.
혼은 자기 자신을 의식합니다. 한나는 브닌나의 충동질 때문에 마음이 괴로웠고, 자기 자신의 신세를 돌아보니 한없이 처량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혼이 괴로움을 느꼈고(삼상 1:10), 그런 자신의 혼을 하나님 앞에서 쏟아놓은 겁니다(삼상 1:15).
2010-01-15 11:16:26 | 김문수
엘리가 그녀에게 이르되, 네가 어느 때까지 취하여 있으려느냐? 네게서 포도주를 치우라, 하매
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영이 슬픈 여자이니이다.
내가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아니하고 다만 {주} 앞에 내 혼을 쏟아 놓았을 뿐이오니
16 당신의 여종을 벨리알의 딸로 여기지 마소서.
내가 지금까지 많은 원망과 슬픔 속에서 말하였나이다, 하매
...............................................................................................................................................
한나는 영과 혼을 구별해서 말합니다.
영은 하나님을 향한 지각기관..즉, 안테나의 역할을 한다고 알고 있는데,
영이 슬프다고 하면 ,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마음이 슬픈 것이고,
혼을 쏟는다하면 영의 슬픔의 결과물인 자신의 마음 속의 한탄과 눈물을 쏟아낸다는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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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5 08:27:49 | 백화자
[14] 그가 성소가 될 것이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실족하게 하는 반석이 되며 예루살렘 거주민들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리니 [15]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걸려 넘어지고 쓰러지며 부서지고 올무에 걸려 붙잡히리라, 하시니라.(사 8:14-15)
[22]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이것은 주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시 118:22-23)
주님은 그 분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반석과 디딤돌이 되지만, 그 분을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걸림돌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날에는 그 분이 원수들을 쳐서 부숴뜨리는 돌이 되실 겁니다.
누구든지 그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부서지겠고 누구에게든지 그 돌이 떨어지면 그를 갈아서 가루로 만들리라, 하시니라.(눅 20:18)
그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산산조각 나서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쓸려갔으며 그것들의 자리가 없어졌고 그 형상을 친 돌은 큰 산이 되어 온 땅을 채웠나이다.(단 2:35)
2010-01-13 15:52:28 | 김문수
구약의 대언자들은 장차 올 메시아 예수님에 대해 그가 부인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는 걸리는 돌이 되어 많은 사람이 걸려 넘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백성의 마음을 우둔하게 하고 그들의 귀를 둔하게 하며 그들의 눈을 닫을지니 이것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기에" (사 6:10)
이스라엘은 고질적인 불순종의 반복으로 하나님의 침묵을 불러왔습니다. 그들이 돌이켜 회개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어차피 메시아를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예견되었습니다.
여느 민족들과는 다른 유대인들, 모든 민족들의 가장 오랜 역사보다 수 세기나 앞서 있는 역사를 가진 이 위대한 민족은 바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다시 일어선다는 것은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던 일이기도 하지만 또한 7년 환난 후의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과정, 즉 은혜의 시대를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은혜가 넘어가게 되고, 결국 그들을 통해 모든 민족이 구원의 기회와 은혜를 얻는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 즉 이 '아이'를 인정하지 않고 나중에서야 인정하는 과정을 통해서 말이지요.
성전을 사흘 만에...는 아시다시피 부활을 뜻하는 것입니다.^^
2010-01-13 12:04:34 | 김재욱
있는 그대로 믿으세요.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오신 그분으로 인해 실족하는 유대인들이 있고 일어나는 유대인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의 시점에서 이 외에 다른 것은 다 사적 해석입니다.
25절을 보세요.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38절도 보세요. 안나는 이스라엘의 구속을 기다렸어요. 모
두 100% 유대인들에 대한 것입니다. 눅1:32-33을 보면 예수님의 탄생 목적(1차 목적)이 나옵니다. 글자 그대로 믿으시면 됩니다.
여기에 어디 성전을 무너뜨렸다가 다시 짓는 내용이 있습니까?
영해를 하려 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패스터.
2010-01-13 10:20:53 | 관리자
누가복음 2 장 34 절..
...........이 아이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 하고
다시 일어나게 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제 해석으로는 성전을 무너뜨렸다가 사흘만에 다시 짓는다는 말씀과 같은 것인지..
쉬운 문장인데도 감이 안 잡히네요.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52:0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13 08:37:37 | 백화자
처녀와 영원한 동정녀
어제 KBS에서 방영한 다큐 프로그램 <인도전통 결혼식과 오남축제>를 시청했습니다. 방송 중 인도의 여신들을 그린 벽화가 화면에 잠시 나타났는데, 어린 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여신의 모습이 눈에 띄네요. 그 장면을 보다가 아내가 "저건 분명히 힌두교의 여신인데 왜 카톨릭의 마리아와 비슷한 모습일까?"라고 묻습니다. 히슬롭이 지은 <두 개의 바빌론>이라는 책에서 읽었던 전세계에 퍼져있는 여신숭배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부부간 대화가 이사야 7:14로까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탄절이 다가오면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설교를 자주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설교 중에서 자주 인용하는 말씀 중 하나가 이사야 7:14 말씀이지요. 그런데 수많은 현대 역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예수님께서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신 것을 부인합니다. 또한 로마카톨릭 역본들은 이 말씀을 변개하여 "한 처녀(a virgin)"를 그들의 용어인 "성모, 영원한 동정녀"(The virgin)로 바꾸어 놓고, 이를 마리아 숭배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흠정역: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한 표적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보라, 처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개역: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공동번역: 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젊은 여인"이라고 옮길 수도 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가톨릭역: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언자 이사야에게 분명히 "처녀"라는 단어를 사용하도록 하셨는데, 예수께서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신 것을 믿지 않는 인본주의 신학자들이나 원어성경주의자들은 히브리어 "알마"가 "젊은 여자"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며 "처녀" 대신 "젊은 여인"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젊은 여인을 영어로는 레이디(lady)라고도 부릅니다. 구글 검색창에 our lady 라는 단어를 입력해서 찾아보시면, 이것이 로마카톨릭에서 그들이 섬기는 "하늘의 여왕 성모 마리아"를 부르는 호칭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한글에서는 관사라는 것이 없어서 그냥 "처녀"라고 번역되었지만, virgin에 부정관사 a 를 붙이느냐 정관사 the 를 붙이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최근에 나오는 영어 역본들이 1611년 킹제임스 성경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KJV: Therefore the Lord himself shall give you a sign; Behold, a virgin shall conceive, and bear a son, and shall call his name Immanuel.(사 7:14)
NKJV: "Therefore the Lord Himself will give you a sign: Behold, the virgin shall conceive and bear a Son, and shall call His name Immanuel.
NIV: Therefore the Lord himself will give you a sign: The virgin will be with child and will give birth to a son, and will call him Immanuel.
NRSV: Therefore the Lord himself will give you a sign. Look, the young woman is with child and shall bear a son, and shall name him Immanuel.
현대 영어역본들은 KJV의 "a virgin"을 "The virgin"이나 "the young woman"으로 바꾸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아는 바와 같이 정관사 the 의 용법은 참 다양합니다. ① 앞서 나온 명사를 되풀이할 때 ② 서로 잘 알고 있는 사물을 가리킬 때 ③ 뒤에 수식어가 올 때 ④ 종류 전체를 대표할 때 ⑤ 유일한 것, 천체, 방향, 계절 등 ⑥ 최상급 ⑦ 서수 앞에서 ⑧ 계량 단위를 나타낼 때 등. 그런데 이사야 7:14 말씀의 앞부분에는 한 번도 처녀나 여인을 의미하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정관사 the 를 붙인 것은 여기서의 the 가 앞서 나온 어떤 명사를 한정하여 가리키는 "그, 그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a virgin은 한 처녀를 의미하지만, the virgin은 영원토록 처녀로 있는 존재, 영원한 동정녀를 의미합니다. 즉 이교도들이 숭배하는 동정녀 아스타르테, 세미라미스, 베스타, 다이아나, 키벨레 등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로마카톨릭 역본들에서는 그들이 하늘의 여왕으로 섬기고 있는 마리아에 대한 숭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이런 KJV의 "처녀"(a virgin)를 "영원한 동정녀"(The virgin)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역시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었고 구원자를 필요로 하는 존재였음을 보여줍니다.
내 영이 하나님 곧 내 구원자를 기뻐하였나니(눅 1:47)
마리아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한 처녀(a virgin)였지, "성모"(the virgin)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녀는 맏아들인 예수님 이외에도 여러 형제 자매를 낳았기 때문에 영원한 동정녀가 아닙니다(막 6:3).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세와 유다와 시몬의 형이 아니냐? 그의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그분으로 인해 실족하니라(막 6:3).
로마카톨릭에서는 마리아를 신격화시키고자 the virgin 이라고 하지만, 유일한 것을 나타내는 정관사 the 는 그런 유한한 인간에게는 쓸 수 없고, 요한복음 14:6 말씀과 같이 유일한 길, 유일한 진리, 유일한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만 사용됩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the way)이요 진리(the truth)요 생명(the life)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요 14:6).
2009-12-23 19:24:40 | 관리자
질문
성경강해(요한계시록, 창세기) 동영상으로 잘 경청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창세기 강해 26과를 공부하면서 제가 알고 있는 것 하고는 좀 상이해서 그런데요....
(창9:28-29)을 설명하면서 노아 사망후 2년 뒤에 아브라함이 출생했다고 하는데 제가 계산한바로는 40년간을 같이 생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서 아브라함이 노아할아버지께 영향을 많은 영향을 받아 믿음의 사람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위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노아의 나이를 기준으로 해서 그 후손들의 출생년도를 계산해 보겠습니다.
1. 노아의 홍수는 노아 600세에 일어난 사건입니다(창 7:6,11).
(창 7:6, 킹흠정) 땅 위에 물들의 홍수가 임할 때에 노아가 육백 세더라.
2. 아르박삿은 홍수 후 2년에 태어났습니다(창 11:10).
(창 11:10, 킹흠정) 셈의 세대들은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에 곧 홍수 뒤 이 년이 지났을 때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그러니까 노아 나이 602년일 때 태어난 것입니다.
그 후의 자손들의 출생년도를 노아 나이 OO세로 환산해 보겠습니다.일일이 적어서 덧셈식 쓰기 귀찮아서 엑셀파일로 시뮬레이션한 자료를 첨부합니다.
노아나이 기준
첫자녀출산
출생년도
아르박삿
602
35
살라
637
30
에벨
667
34
벨렉
701
30
르우
731
32
스룩
763
30
나훌
793
29
데라
822
70
데라 장남
892
데라사망
1027
=아브라함 나이
75
아브라함 출생
952
노아 사망
950
3. 데라는 노아 나이 822세에 태어났고 그가 장남을 낳은 것이 노아 나이 892세입니다.
여기서부터 주의하셔야 됩니다. 데라는 칠십세 이후부터 아브람, 나홀, 하란을 낳았는데 도대체 누구를 가장 먼저 낳았을까요?
(창 11:26, 킹흠정) 데라는 칠십 년을 살며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우리는 은연 중 아브라함이 장남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데라의 나이 70세에 태어난 사람을 아브라함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성경을 "장자권 계승의 역사"로 보는 소설가 김성일씨의 [성경과의 만남] 등의 책이 영향을 미친 바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 성경은 장남의 역사가 아니라, 두번째 사람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 에서와 야곱, 므낫세와 에브라임, 그리고 아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등에서 보는 바와 같습니다.
다시 원래 족보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데라의 가족은 갈대아우르에서 출발하여 가나안을 향해 가다가 하란에서 머물렀습니다. 데라는 하란에서 205세에 죽었습니다(창 11:32).
(창 11:32, 킹흠정) 데라의 생애는 이백오 년이었으며 데라가 하란에서 죽으니라.
데라의 출생년도는 노아 나이 822세인데 그가 205세까지 살았으므로, 데라가 죽은 해는 노아 나이 1027년(물론 이 시기라면 노아는 이미 죽었지만 노아력으로 계산하고 있음)이 됩니다. 데라가 죽고 나자 하란에 머물러 있던 아브라함이 가족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출발합니다(행 7:4).
(행 7:4, 킹흠정) 이에 그가 갈대아 사람들의 땅에서 나와 하란에 거하였고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그분께서 그를 거기에서 지금 너희가 거하고 있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 하란을 떠날 때의 나이가 75세입니다.
(창 12:4, 킹흠정) 이처럼 아브람이 주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떠나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자, 그럼 계산을 해 볼까요? 데라가 사망한 해 = 노아 나이 1027세(이미 죽었지만 노아력으로 하자면) = 아브라함의 나이 75세
아브라함이 태어난 해는 1027 - 75 = 노아 952세 되는 해
즉, 노아 나이 952세에 아브라함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노아가 950세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창 9:29, 킹흠정) 노아의 전 생애가 구백오십 년이었으며 그가 죽으니라.
그러니까 노아가 죽은 지 2년 뒤에 아브라함이 출생한 것이 맞습니다.더불어 데라가 첫 아들을 낳은 것은 노아 나이 892세이고, 아브라함을 낳은 것은 노아 나이 952세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아브라함이 장남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예수안에>출판사에서 발간한 [성경바로보기] 책 422쪽에 성경 연대기 표가 나옵니다.계산하기 귀찮은 분들은 그 도표를 참고로 하셔도 됩니다.
2009-12-23 19:10:54 | 관리자
전능자를 두려워하지 않는자는 누구인가? (욥 6:14)
(욥 6:14, 개역) 피곤한 자 곧 전능자 경외하는 일을 폐한 자를 그 벗이 불쌍히 여길 것이어늘
(욥 6:14, 킹흠정) 고난 받는 자를 그의 친구가 불쌍히 여길 것이로되 그가 전능자 두려워하기를 저버리는도다.
(욥 6:14, KJV) To him that is afflicted pity should be shewed from his friend; but he forsaketh the fear of the Almighty.
욥기 6:14을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욥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개역성경에 의하면,욥은 전능자 경외하는 일을 폐한 사람이었는데, 욥은 그런 자기의 모습(전능자 두려워하기를 저버린 모습)을 그의 벗이 불쌍히 여겨주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합니다. 이건 좀 이상하네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는 책망을 해야지 왜 불쌍히 여겨야 한다고 할까요? 그러나 킹제임스성경에 의하면, 욥은 고난을 받고 있었는데 그런 욥을 친구들이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친구들은 욥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으니 이것은 곧 그의 친구가 전능자 두려워하기를 저버린 것이라고 합니다.
등장인물들의 대결 구도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개역: (욥 = 피곤한 자 = 전능자 경외하는 일을 폐한 자) vs (그의 벗)킹제임스흠정역: (욥 = 고난 받는 자) vs (그의 친구 = 전능자 두려워하기를 저버리는 자)
욥기 6장은 데만사람 엘리바스의 말(욥기 4, 5장)에 대한 욥의 답변입니다.
(욥 4:1, 킹흠정) 그때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응답하여 이르되,(욥 6:1, 킹흠정) 그러나 욥이 응답하여 이르되,
따라서 욥기 6:14은 욥이 그의 친구 엘리바스에게 하는 말인데, 이 구절에서 "고난 받는 자"(개역에는 피곤한 자)는 욥이고, 그의 친구는 엘리바스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전능자 두려워하기를 저버린 자(개역, 전능자 경외하는 일을 폐한 자)는 누구일까요?
개역성경은 고난 받는 욥이 곧 전능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개역, 전능자 경외하는 일을 폐한 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개역의 주장과는 달리 욥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욥 1:1).
(욥 1:1, 킹흠정) 우스 땅에 욥이라는 이름의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완전하고 곧바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멀리하는 자더라.
하나님께서도 욥을 가리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라고 하셨고(욥 1:8, 2:3), 사탄도 욥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욥 1:9).
(욥 1:8, 킹흠정) 주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깊이 살펴보았느냐? 그와 같이 완전하고 곧바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멀리하는 자가 땅에 없느니라, 하시니라.
(욥 2:3, 킹흠정) 주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깊이 살펴보았느냐? 그와 같이 완전하고 곧바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멀리하는 자가 땅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움직여 그를 치게 하고 까닭 없이 그를 멸하게 하려 하였으되 그가 여전히 자기의 순전함을 굳게 지키고 있도다, 하시매
(욥 1:9, 킹흠정) 이에 사탄이 주께 응답하여 이르되,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나이까?
이런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는 "전능자 두려워하기를 저버린 자"가 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전능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누구일까요? 그것은 바로 욥의 고난을 보면서도 그를 불쌍히 여길 줄 모르는 그의 친구를 말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어떤 자인지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레 19:14, 킹흠정)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고 눈먼 자 앞에 걸림돌을 놓지 말며 오직 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나는 주니라.
(레 25:17, 킹흠정) 그런즉 너희는 서로를 학대하지 말고 오직 너희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니라.
(레 25:36, 킹흠정) 너는 그에게서 이자나 이득을 취하지 말며 오직 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네 형제가 너와 함께 살도록 하라.
(레 25:43, 킹흠정) 너는 그를 엄하게 다스리지 말고 오직 네 하나님을 두려워할지니라.
(신 8:6, 킹흠정) 그러므로 너는 주 네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켜 그분의 길로 걷고 그분을 두려워할지니라.
(잠 14:31, 킹흠정)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만드신 분을 모욕하되 그분을 존경하는 자는 가난한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위 말씀들에서 보는 것처럼, 약한 자를 괴롭히는 자, 이웃을 학대하는 자, 형제의 어려움을 악용하는 자, 종에게 인정을 베풀지 않고 엄하게 다루는 자, 주의 명령들에 불순종하는 자,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 이런 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입니다.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란, 주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자를 말합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의 어려운 처지를 보고서도 그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정죄하고 책망하며 그를 노리고 구덩이를 팠습니다(욥 6:25, 27).
(욥 6:25, 킹흠정) 바른 말들은 참으로 얼마나 위력이 있는가! 그런데 너희의 주장은 무엇을 책망하느냐?(욥 6:27, 킹흠정) 참으로 너희는 아버지 없는 자를 기죽게 만들며 너희 친구를 노리고 구덩이를 파는도다.
그래서 욥은 그들을 가리켜 "형편없는 위로자", "쓸모없는 의사들"이라고 했습니다.
(욥 16:2, 킹흠정) 그런 것들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형편없는 위로자로다.(욥 13:4, 킹흠정) 그러나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모없는 의사들이니라.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분명히 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욥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지 않고 그를 정죄한 그의 친구들은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욥기 6:14을 개역의 번역대로 읽다 보면, 우리는 욥의 세 친구들처럼 "욥이 전능자 경외하는 일을 폐한 자"라고 정죄하며, 그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게 됩니다. 하지만, 욥기 6:14은 욥이 자기 친구 엘리바스에게 하는 말로서, "내가 고난 받는 것을 보면 너희가 친구로서 마땅히 나를 불쌍히 여겨야 할텐데, 너희는 그렇게 하지 않으니 너희의 행동은 전능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행동이다"라고 항변하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개역과 같이 욥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로 몰아부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욥기 6:14에서 전능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욥이 아니라, 고난받는 욥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욥의 친구들을 말합니다.
2009-12-23 17:07:15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