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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김재근목사님이 "KJB:The Book That Changed the World"라는 DVD를 보내주셔서 이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3번 정도 본 것같습니다. 그 중 한장면에서 사회자가 교회에서 킹제임스 성경을 낭독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교회에서 낭독되는 동안에 하나님 말씀의 울림(Echo)이 너무나 위엄이 있었고 엄숙하게 느껴져서 참 멋있었습니다. 앞으로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가 이런 "울림"역할을 하는 출판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11-07-12 19:11:28 | 김학준
안녕하세요?   대한민국에서 성경을 출간하는 출판사가 여럿 있는데 생명의 말씀사는 이제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를 대표 출판사 중의 하나로 인정했습니다.   http://www.lifebook.co.kr/final/bible/bible_company01.asp?c_code=0005222 (왼쪽 중간 쯤에 대표 출판사 명단이 나옵니다).   그 동안 말씀보존학회로 인해 킹제임스 이단 누명을 썼지만  그것을 벗기 위해 10년 동안 낮은 자세로 조금씩 조금씩 진리를 알린 결과 이제 경쟁사들도 인정하는 출판사가 되었습니다.   올해에는 400주년 기념판을 냅니다. 예전처럼 한영대역, 스터디, 큰글자와 함께 작은 성경(115mm*165mm)도 검정, 자주, 파랑색 지퍼로 출간하여 어린이들과 청년들의 요구에 부응하려고 합니다. 큰글자도 지난 번보다 책 사이즈를 크게 하여 스터디 성경 사이즈로 만들어서 정말 진하고 보기 좋게 했습니다. 기대해도 됩니다.   9월 초에 좋은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같이 힘써 주신 여러분에게 감사합니다.   http://www.lifebook.co.kr/final/bible/bible_company01.asp?c_code=0005222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30:3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7-12 16:31:09 | 관리자
이렇게 설명했는데도 사이트의 취지에 반하는 본글이나 덧글로 논쟁을 유발하여 성도들을 혼란으로 이끄는 경우 임의로 삭제합니다. 의문이 있으면 webmaster@KeepBible.com으로 글을 보내기 바랍니다. 정동수
2011-07-08 15:45:58 | 관리자
성경의 완전성: 무오성과 충분성   요즘 KeepBible 사이트에서 성경의 완전성(Perfectness) 혹은 킹제임스 성경의 완전성에 대한 논란이 있어 정리를 하려고 합니다. 사실 이것은 요즘 일어난 특별한 문제가 아니고 킹제임스 성경을 접하는 모든 사람들이 처음에 흔히 겪는 일입니다. 이때에 어떤 사상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경관이 평생 고정되므로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슈가 사이트에 올라오면서 ‘완전성’이라는 말로 인해 혼동 속에 빠진 성도들이 있어 이에 대한 정의도 내리면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과 우리말 흠정역 성경 그리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오기 전에는 완전한 성경이 어디 있었는가?” 등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KeepBible 사이트의 존재 목적   먼저 글을 전개하기 전에 KeepBible 사이트의 정체성에 대해 밝히는 것이 필요합니다.   KeepBible 사이트는 1611년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최종적인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리는 곳입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최종 목표 혹은 궁극적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그 성경을 우리말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안착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번역/교정에 참여한 분들은 “나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전서의 본문을 확정하며 이 성경을 지키고 보급하고 확산시키며 정착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 서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확고히 보존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알리거나 보존하는 일 자체가 우리의 최종 과업은 아닙니다. 성경 출간도 마찬가집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보급하는 것은 어느 면에서 우리와 상관이 없습니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다 하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민족에게 보급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와 KeepBible 사이트 그리고 번역/교정에 참여한 분들의 최종 목표입니다.   완전성이란?   우리는 다 성경을 최종 권위로 여기므로 ‘완전하다’(perfect)는 말 역시 성경에서 용례를 찾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완전하다’(perfect)는 말은 성경에서 여러 용례로 쓰입니다. 신구약 통틀어 ‘perfect’는 총 99회 나오고 ‘perfection’은 총 11회 나옵니다. 누군가가 지적했듯이 성경에는 ‘첫 번째 언급의 법칙’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단어가 성경에서 처음 나올 때 그 문맥에서 그 단어의 뜻이 곧 그 단어의 정확한 뜻임을 말합니다.   ‘perfect’는 성경에서 창세기 6장 9절에 가장 먼저 언급됩니다.   “노아의 세대들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그의 세대들 가운데서 완전한 자더라. 그가 하나님과 함께 걸었더라.”   여기에 보면 노아가 완전한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가 하나님처럼 무오한 사람이었을까요?   욥기 1장 1절 또한 욥을 가리켜 “그 사람은 완전하고 곧바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멀리하는 자더라.”라고 말합니다. 신약으로 넘어와서 마태복음 5장 48절은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고 말합니다. 이런 구절들이 과연 우리 사람이 하나님처럼 무오함을 보여 줍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히브리서 5장 8-9절은 “그분께서 순종하기를 배우사 완전하게 되셨으므로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창시자가 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전에 죄나 허물이 있는 분이었을까요? 그분은 무오한 분이신데 왜 성경은 그분이 완전하게 되셨다고 기록할까요?   성경에서 ‘완전하다’는 말은 ‘모든 것을 구비하여 제 기능을 발휘한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말씀은 예수님도 구원자가 되기 위해 고난까지 당하심으로 구원자로서의 임무를 다 수행하셨다는 뜻입니다. 즉 고난이 없었으면 구원자가 되실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성경 내에서 어떤 것 혹은 어떤 사람을 완전하다고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문맥입니다. 그 문맥이 그 사람이 말한 완전성에 대한 정의를 보여 줍니다.   성경의 완전성   이제 성경과 관련된 완전성을 보여 주는 구절을 살펴봅시다. 성경이 최종 권위요, 내장 사전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성경의 완전성’에 대해 성경이 무어라 말하는지 분명히 확신을 가지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굳이 영어로 기록하지 않아도 뜻을 알 수 있으므로 영어는 생략했습니다.   제가 더 이상 설명하기 전에 먼저 이 두 구절이 성경의 완전성에 대해 무어라고 말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자필원본이나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이 완전할까요? 성경의 완전성이 모든 민족의 모든 말로 주어질 가능성은 없을까요?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는 절대적인 완전성 즉 무오성을 말합니다. 물론 이것은 자필원본에만 적용되는 말입니다. 영감이 원어의 단어들에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이후에 이어지는 말씀은 자필원본에만 적용될까요? 아닙니다! 그 이후의 말씀은 원어와 영어 및 모든 민족들의 언어로 번역된 ‘바른 성경’에 적용될 수 있는 실제적인 완전성을 말합니다. 즉 그 이후의 구절이 말하는 완전성은 성경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게 하는 완전성입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말로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질 수 있을까요?   전자의 의미에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후자의 의미에서는 가능합니다.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불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을 완전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성경과 관련된 완전성은 최소한 이 두 가지로 나누어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과거의 성도들 - 물론 다 다른 말을 쓰는 사람들입니다 - 은 번역된 모든 성경 - 물론 다 바른 성경을 뜻합니다 - 에 대해서 ‘infallible’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inerrant’(무오)라는 말은 자필 원본의 단어들에만 적용된다고 믿었습니다. 원어에서 다른 말로 번역이 되면 어떤 번역본이든 그 번역본에 대해 ‘inerrant’라는 말을 붙이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확실하여 무너뜨릴 수 없다’ 혹은 ‘어떤 것에 의해서도 넘어질 수 없다’는 뜻을 가진 ‘infallible’이라는 말은 성경과 관련해서 무엇을 뜻합니까? 딤후3:16-17의 앞부분은 ‘inerrant’의 완전성이고 뒷부분은 ‘infallible’의 완전성입니다. 즉 역본에 적용되는 완전성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모든 민족에게 그들의 언어로 완전한 말씀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어느 분이 “성경이 완전하다!”고 말할 때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그분이 그런 말을 하는지 문맥으로 잘 판단해야 합니다. ‘infallible’ 차원의 완전성인가, ‘inerrant’ 차원의 완전성인가가 구분이 안 되면 서로 평행선을 달리며 극한 논쟁으로 치닫게 됩니다. 또한 극단적인 주장을 펴게 되면 자기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말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질 수 있는가?   이제 근본적인 이 문제에 대해 답하려고 합니다.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성경의 완전성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자필원본의 완전성   이것은 ‘절대적인 완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내신 ‘말씀들’(words) - 이후로 이것은 항상 단어들을 뜻함 - 은 절대적으로 완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최종권위라고 부릅니다. 우리 진영에서 이것을 안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리라 믿습니다. 굳이 이것을 영어로 표현하자면 ‘Inerrancy’가 될 것입니다. 즉 이것은 무오성입니다.   (2) 번역본의 완전성   원어의 말씀들을 번역해서 서로 다른 말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말씀들을 이해하고 그 말씀들을 통해 구원받는 것이 사람 편에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알 수 있듯이 원어와 번역에 사용되는 수용 언어는 형식/구조의 차이가 있어서 원어를 100% 완벽하게 수용하여 ‘일 대 일’로 모든 단어가 일치하게 번역해 낼 수 있는 언어는 세상에 그리 많지 않습니다(그리할 수 있는 언어 중 하나가 영어임). 그러므로 바르게 보존된 마소라 히브리어 본문(소수의 아람어 포함)과 그리스어 공인 본문을 수용 언어의 한계 안에서 정확하게 번역하면 이론상으로 그 번역 성경 역시 완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시 이것을 굳이 영어로 표현하자면 ‘Infallibility’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성경의 역할에 대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과연 이것은 자필원본이나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만 국한되는 말씀일까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원어나 영어만 사용하기를 원할까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고 완전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바른 본문에서 바르게 번역된 성경은 한 민족의 언어의 틀 안에서 자필원본의 완전성이 ‘전달된’(transmitted) 완전한 성경입니다(이후로는 이것을 번역본의 완전성이라고 할 것임). 여기에는 추호의 이론(異論)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것은 결코 번역본에 대해 ‘무오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른 본문에서 바른 사상을 가지고 바르게 번역된 성경이 있으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구원을 받고 그 뜻대로 행하는 데 있어서 완전한 도구를 갖게 됩니다. 완전한 성경이 없는데 어떻게 사람이 완전하게 될 수 있습니까? 너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을 완전하게 하는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 밖에 없다.”고 주장하면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번역본의 완전성을 잘못 이해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번역본의 완전성은 무엇을 뜻할까요?   ‘번역본의 완전성’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원어들이 주는 ‘절대적인 완전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른 본문을 바르게 번역할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충분성(Sufficiency)이요, 온전성(Wholeness)이요, 성실성(Integrity)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이 성경 서문에 기록한 ‘독자들에게 주는 글’에서 우리는 아주 좋은 예를 발견하게 됩니다. “We never thought from the beginning, that we should need to make a new Translation, nor yet to make of a bad one a good one, … but to make a good one better, or out of many good ones, one principal good one, … ; that hath been our endeavor, that our mark.” “처음부터 우리는 새로운 번역을 만들어야 한다거나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만들려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는 좋은 것을 더 좋게 혹은 여러 개의 좋은 것들 중에서 최고로(혹은 으뜸가는) 좋은 것을 만들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노력한 것이었고 우리의 목표였습니다.”   잘 알다시피 영국에서는 1524-1534년에 틴데일의 성경이 나온 이후로 커버데일 성경, 매튜 성경, 크랜머 성경, 제네바 성경 등의 여러 성경이 나왔고 비슷한 시기에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에서는 루터 성경, 디오다티 성경, 발레라 성경, 올리베땅 성경 등이 나왔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은 성경 서두에서 “이 성경전서는 원어에서 번역하였으며 또한 이전 역본들을 부지런히 비교하고 수정하여 번역하였다.”고 기록합니다.   번역 성경에 관하여 우리는 이들의 자세와 태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영어 성경의 경우 틴데일 이전에는 부패된 라틴어 성경을 번역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위클리프 성경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당시에는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당시에 그리스어(원어)에 대한 연구나 문헌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어 성경이 대중에게 알려지고 그리스어 신약성경 본문이 만들어진 것은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 세력인 오스만터키에 의해 함락된 이후부터였습니다. 그 이후에야 비로소 그리스어에 대한 눈이 열리기 시작하여 드디어 에라스무스, 베자, 스테파누스 등이 그리스어 신약성경 본문을 만들었고 위에 언급한 모든 성경들은 이런 바른 본문 - 공인 본문 - 에서 바르게 번역된 성경들이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이런 성경들을 ‘나쁜 것’(bad one)이라고 하지 않고 다 ‘좋은 것’(good one)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만든 킹제임스 성경은 ‘이런 좋은 것들’을 ‘더 좋게 만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혹은 가장 으뜸가는 ‘좋은 성경’을 만드는 것이 자기들의 목표라고 했습니다. 실로 그것이 이루어져서 킹제임스 성경의 출간 이전에는 많은 종류의 영어 역본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왔지만 출간 이후에는 번역하는 일이 삽시간에 중단되었습니다. 영어권에서는 그 이후로 더 이상 주목할 만한 성경 번역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번역본의 완전성 - 무오성이 아님 - 을 볼 수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틴데일 성경을 비롯해서 루터 성경 등 이전에 나온 바른 역본들을 다 ‘좋은 성경’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부지런히 살펴보고 교정하였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말하는 번역본의 충분성과 온전성과 성실성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즉 바른 사본에서 바르게 번역된 이 모든 성경들은 한 민족의 언어의 틀 안에서 딤후3:16-17의 말씀을 이루기에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성경’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당시 각 나라의 대부분 성도들은 그 성경을 붙잡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완전한 성경’으로 믿으며 그 빛 가운데 살다가 갔습니다.   (3)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완전성   영어 킹제임스 성경도 번역본이므로 이런 면에서 볼 때 일차적으로 이 성경의 완전성 역시 번역본으로서의 충분성과 온전성과 성실성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이제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고 인쇄술의 도래로 인해 온 인류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에게 적용될 수 있는 공통의 보편적 잣대를 주시기 원했고 바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1611년에 ‘가장 으뜸가는 좋은 성경’으로 온 인류에게 킹제임스 성경을 주셨습니다.   잘 알다시피 원어를 안다고 해서 성경을 바로 번역하고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원어와 ‘일 대 일 대응’을 할 수 있는 보편적 언어인 영어로 원어의 모든 단어를 완벽하게, 명확하게 알려주는 역본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번역본임에도 불구하고 자필원본이 갖는 절대적 완전성을 확보했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없었다면 지금의 믿음의 교리 및 신학 체계를 세우는 것과 모든 현대 역본들을 번역하는 것이 실로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역본임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완전성 즉 무오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습니다. 즉 그것이 자필원본과 동일한 최종권위라고 분명하게 믿습니다.   그러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절대적인 완전성은 어떻게 입증이 될까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지 않았습니다. 역자들이 이 성경을 만들고는 “이것은 절대적인 성경입니다.”라고 주장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권력자도 “이것만 옳으니 모든 교회에서 이것을 사용하라”고 압력을 넣지도 않았습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처럼 나무는 그것의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1611년 발간 이후로 한 번도 수정되지 않은 킹제임스 성경, 바로 이 성경이 배출한 열매들을 보면서 우리는 자신의 말씀들을 순수하게 보존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짐을 보아왔습니다.   (4) 우리말 번역본의 완전성   자, 그러면 우리말로 번역된 성경은 어떨까요? 바른 본문에서 바르게 번역된 성경들은 모두 ‘좋은 성경’이라고 할 수 있지만 불행히 과거에 우리나라에는 그런 성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흠정역 성경을 번역하였고 이것이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바른 성경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런 확신이 없으면 딤후3:16-17은 공허한 말씀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한 번도 이 성경이 오류가 없이 완벽하다고 무오성을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정신 나간 사람들이나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다만 바른 번역자들이 최선을 다해 바른 본문을 바르게 번역하였으므로 이 흠정역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위해 보존해 주신 성경으로서 ‘번역본의 완전성’을 확보했다고 믿을 뿐입니다. 즉 흠정역 성경이 딤후3:16-17을 이룰 수 있는 차원의 완전성, 충분성, 온전성 혹은 성실성을 확보했다고 믿습니다. 이런 확신이 없다면 어떻게 이 성경을 가지고 바른 구원, 바른 교리, 바른 교회를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이것은 최종적으로 그 성경의 열매들에 의해 판단이 날 것입니다. 우리가 주장한다고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렇다고 믿고 그것에서 선포하고 가르치고 전할 뿐입니다.   우리말로 번역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경우 2000년도에 초판이 나온 이후로 네 번 교정되었고 2011년 9월경에는 5판으로 ‘400주년 기념판’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지난번의 네 판은 나쁜 성경일까요? 그것들은 번역본이라는 측면에서 완전성을 확보하지 못한 성경일까요? 아닙니다. 번역본의 측면에서 지난 네 판들은 모두 좋은 성경이며 새로운 판이 나올 때까지는 번역본의 완전성을 확보한 채 여러 성도들에게 빛을 주었던 성경들입니다. 이것은 영어 성경의 변천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판은 틴데일 성경, 2판은 그것을 보완한 커버데일 성경, 3판은 그것을 더 보완한 제네바 성경 등으로 비교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6-17세기에 올바른 역본들이 쏟아져 나오자 천주교회는 프로테스탄트들이 성경을 자주 교정한다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에서 천주교회의 이런 비난을 잠재우면서 성경 교정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습니다. 즉 원본을 주신 하나님 편에서는 완전성의 문제가 영원히 고정되었지만 역본을 사용해야 하는 사람 편에서는 ‘바르고 좋은 성경’을 ‘계속해서 더 좋게’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킹제임스 성경이었습니다. 물론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성경을 최종권위로 만들 줄은 꿈에도 모르고 이 세상을 위해 할 일을 하고 묵묵히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견지하는 태도입니다. 번역자들은 묵묵히 최선을 다해 자기 세대를 섬기고 가야 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이들은 자기들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하면 한 번에 완벽하게 우리말 역본을 낼 수 있다는 담대한 주장을 펴서 순진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참으로 멋있고 맞는 말 같지만 번역 성경의 역사는 이런 주장을 추풍낙엽처럼 세차게 날려버립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한 나라 말로 바른 성경이 주어진 상태에서 궁극적으로 ‘가장 으뜸가는 역본’이 나오는 일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 역본이 나올 때까지 각 단계에서의 성경은 번역본의 완전성을 확보한 성경들입니다. 번역자들과 교정자들은 겸손한 자세로 어떻게 하든지 모든 노력을 경주하여 좀 더 좋은 역본을 내야 합니다. 성도들 역시 이러한 과정을 기억하고 이해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 모든 과정의 끝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때에 정하십니다.   (5) 먼저 믿고 확신을 갖게 된 사람들의 태도   그러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과 우리말 흠정역 성경의 관계를 이해한 성도들은 이제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야 할까요? 우리말로 번역된 바른 성경을 가지고 어떻게 강단에서 외쳐야 할까요?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이 최종 권위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보는 성경은 절대적인 완전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말 성경은 참조만 하고 가능하면 늘 영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것은 불완전합니다.”   비록 이렇게 말은 안 하지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실제로는 이렇게 행하는 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일은 틈만 나면 우리말 성경을 뜯어고치는 데서 발견됩니다.   특히 공적인 위치에 있는 분들은 “이 번역은 사실 옳지 않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누가 이분의 주장을 입증해 줄까요?   스스럼없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과 사귀는 사람들의 다수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게 되면 스스로 ‘성경 교정자’가 됩니다. 먼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의 완전성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가 영어 성경을 다 아는 것처럼 하면서 우리말 성경을 교정하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주변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따라갑니다. 그러나 과연 그에게 영어 성경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있을까요? 그를 따른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바른 신앙의 성장이 일어나며, 그런 자세가 성경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자라게 할까요?   이들은 대개 강단에서 원어를 들먹이며 “원어에서는 뜻이 이런데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되어 참으로 아쉽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가장 미워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은 자기들이 이 시간 이 나라에서 영어를 가지고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우리말 성경이 필요합니다. 사실 상 한국 사람들 중에서 영어에 능통한 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킹제임스 성경을 영어판이 아닌 한글 번역본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한글로 번역된 바로 그 성경을 통해서 구원을 받고 교리를 배우고 바르게 자라갑니다. 심지어 영어 성경을 자랑하는 그 소수 역시 영어 성경만을 가지고 믿음 생활을 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른 본문에서 바르게 번역된 우리말 성경을 들고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담대히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외칠 때 비로소 우리는 바른 본문에서 나온 번역본의 완전성, 충분성, 온전성, 성실성을 믿는 것입니다.   틴데일은 죽기 전에 자기 친구 프리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타나게 될 그 날에 하나님께서 증언해 주시기를 바라노니 나는 결코 내 양심을 거슬러 하나님의 말씀의 단 한 음절도 바꾸지 않았으며, 땅 위에 있는 모든 것 즉 명예와 쾌락과 재산을 내게 준다 해도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틴데일이 자기가 번역한 성경을 들고는 “이것은 불완전합니다. 앞으로 완전한 것이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기다립시다.”라고 외쳤을까요? 마르틴 루터는 어땠을까요? 그는 자기가 번역한 성경이 번역본으로서의 완전성을 갖추었다고 믿었고 그래서 그 성경을 들고 “이 성경이 사람을 구원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담대히 외쳤습니다. 그 결과 그의 믿음은 프로테스탄트 개혁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 중의 하나가 바로 그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 - 영어 성경이 아니라 - 을 통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흠정역 성경을 번역/교정하는 일을 주관한 저도 비록 미천한 사람이지만 번역의 정신만큼은 틴데일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한 단어라도 사적인 욕구를 위해 왜곡되게 번역하면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칠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를 비롯해서 이 일에 동참한 이들은 자신의 믿음과 생각을 내려놓고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정확하게 옮기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을 잃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번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완전성만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더러 극단적인 이들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 원어를 교정할 수 있다.”는 망언도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것이 바로 마귀의 교활한 전략임을 모릅니다. 겉으로 표현은 안 해도 속으로는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이들의 극단적인 ‘영어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발언을 통해 우리말 성경에 대한 믿음이 파괴되고 있지 않습니까? 과연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좋아하실까요?   마귀는 좋은 것으로 좋은 것을 가로막습니다. 우리나라의 예를 봅시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킹제임스 성경이 킹제임스 성경을 가로막는 통탄할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엉터리 번역, 비이성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는 무리들이 자신들의 성경만이 최종권위요, 자신들이 세운 교회만이 한국에서 최초의 신약교회라고 외쳐대니 이성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킹제임스 성경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이단으로 보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 최종 권위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비이성적으로 과도하게 이야기하게 되면 말하는 사람도 모르는 사이에 결국 우리말로 번역된 성경에 대한 확신을 파괴시키는 일이 슬며시 발생합니다. 그것이 자꾸 쌓이면 결국 우리말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붕괴됩니다.  또한 이들은 무조건 원어를 멸시합니다. 이것은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원어에서 영어 성경이 나왔습니다. 역순이 아닙니다. 영어 이상으로 원어를 공부해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스스로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자기가 못한다고 하려고 하는 사람까지 멸시하면 안 됩니다. 물론 원어를 주장하는 사람들 중의 많은 이들이 성경을 뜯어 고치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원어의 잘못이 아니고 그 사람이나 그를 교육하는 사람의 잘못입니다. 그러므로 새롭게 젊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가능하면 원어도 많이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야 반대편에 속한 자들도 실력으로 바르게 인도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사람은 원어 지식을 성경을 교정하는 데 쓰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쓸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최종적인 권위가 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일일이 설명해 줘도 귀를 꽉 막고는 들으려 하지 않거나 전혀 못 알아듣고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 최종 권위이다. 오류가 없다. 나머지는 다 불완전하다.”고 외치면 그것은 성도들에게 큰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아직 흠정역을 사용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흠정역을 선택하는 일에 방해를 줍니다. 그 결과 이 중대한 시점에서 성경 번역 및 보급 사역에 막대한 지장을 가져오니 부디 이런 주장을 합리적으로 균형 있게 하기 바랍니다.   결 론   어떤 사람이 성경의 완전성을 이야기할 때 그분의 말이나 글의 앞뒤를 잘 살펴보기 바랍니다. 이것은 단지 성경의 완전성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바르게 읽고 해석하려면 문맥에서 바르게 읽고 보아야 합니다. 이 훈련이 되어야 하나님의 좋은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다면 그것을 우리말로 바르게/신실하게 번역한 성경을 들고 “이것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영어 성경을 들고 다니며 영어 구절을 읽고 그것으로 설교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함일 것입니다.   이것은 영감에도 적용이 됩니다. 영감은 분명히 원어들에만 주어졌습니다(딤후3:16). 그러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들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주신 그 말씀입니다.”라고 외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에는 원본에서 ‘전달된 영감’이 100% 들어 있습니다. 영감이 들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죽은 성경입니다. 그러면 우리말 흠정역 성경은 어떨까요? 우리 역시 이것을 들고 “이것은 하나님의 영감이 들어 있는 말씀입니다.”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역시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기초하여 그것으로부터 바르게 번역되어 번역본으로서의 완전성을 확보했기에 원본에 주어진 하나님의 영감이 전달되어 살아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딤후3:16-17은 허구가 되고 맙니다. 물론 이것이 최종권위로서의 ‘완전성’(Inerrancy)을 뜻하는 것이 아님은 다시 강조하지 않아도 오해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성경의 완전성이나 무오성 혹은 영감 등을 이야기할 때 문맥을 잘 살펴보고 판단하기 바랍니다. 진실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번역본의 완전성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나오기 전에 나온 바른 성경들 즉 크리스천 믿음의 선조들이 사용했던 바른 역본들 역시 모두 번역본의 완전성을 확보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바른 본문을 들고 바른 믿음과 올바른 방법으로 바르게 번역하면 그 성경은 그 민족에게 그들의 언어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즉 번역의 차원에서 충분성과 온전성과 성실성과 확실성을 모두 겸비한 완전한 성경입니다. 어떻게 불완전하다고 믿는 성경을 들고 목회를 하고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 보존 약속을 믿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우리는 어떤 번역본을 통해 유익을 얻은 사람들의 인격의 열매로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습니다. 영어를 잘 알지 못하는 이 땅의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접한 후에 믿음에서 어떤 영적 진보와 유익을 얻었는지는 KeepBible 사이트나 그 외의 다른 유익한 사이트의 간증을 통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부디 이 글의 취지를 잘 이해하여 형제들 간에 불필요한 오해를 하거나 사이버 공간에서의 공격은 하지 말기 바랍니다. 이 글은 결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존해 주신 영어킹제임스 성경의 가치와 권위를 훼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한글로 번역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절대적인 완전성(Inerrancy) 즉 무오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들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완전하고 순수하게 보존되어 있고,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그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부터 충실하게 번역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 글의 취지를 바로 이해했으면 2010년 5월에 흠정역 성경과 관련해서 여러 형제들이 동의한 ‘우리의 결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나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KJB 1611, 이하 킹제임스 성경)이 믿음과 실행의 최종 권위임을 믿는다.2. 나는 킹제임스 성경이 시제, 단복수, 능동태, 수동태, 주어, 목적어, 전치사, 관사, 대소문자 표기, 문장 어순, 이탤릭체 심지어 콤마와 물음표에 이르기까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3. 나는 킹제임스 성경만이 한글 성경 번역 시 유일한 기준이며 최종 잣대임을 믿는다.4. 나는 하나님의 말씀들(words)이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완벽하게 보존되었음을 믿는다.5. 나는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단어들(words)이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단어에 대한 유일하고도 올바르며 최종적인 정의임을 믿는다.6. 나는 우리말과 번역자들의 한계로 인해 우리말로 완벽한 성경을 낸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전서가 우리말로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7. 나는 하나님께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전서를 통해 지난 10년간 한국어를 사용하는 개인과 교회에 큰 은혜를 베푸셨고 앞으로도 그리하실 줄로 믿는다.   부디 자필원본 혹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절대적 완전성과 수용 언어의 한계 안에서 이루어진 번역 성경의 완전성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우리말 성경에 대한 확신을 갖기 바랍니다. 이 글을 통해 성경의 완전성에 대한 의문점들이 해소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지키려는 믿음의 지체들 간에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일이 널리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부 언   글을 맺고 나서 여전히 우려 사항이 있어 추가하려고 합니다.   (1) 이 글을 읽고 “출판사 그리스도 예수안에 사람들도 결국 타락해서 무슨 학회 사람들처럼 스스로 최종권위를 주장하는가보다.”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까 우려됩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그런 사람들과 함께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처럼 과격하게 극단적인 주장을 편 적도 없습니다. 이 사이트에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글에서도 우리는 자필원본 및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절대적 완전성과 번역본의 완전성을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2) 영어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내가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우리말 성경에 대한 확신을 깨뜨리는가, 세우는가?” 이것을 늘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우리말 성경에 대한 확신’을 깨뜨리는 발언을 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KeepBible 사이트에서도 성경 번역에 의견이나 이견이 있으면 가능한 한 사이트에 올리지 말고 webmaster@KeepBible.com으로 문의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혹시라도 우리말 성경에 대한 확신을 깨뜨리는 논쟁으로 번지지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남을 세우는 사람이 주님의 사람입니다. 특히 믿음이 약한 지체를 세우는 사람이 하나님의 큰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우리말 성경의 확신과 관련된 논쟁의 소지가 있는 글은 회원들의 오해를 줄이고 본 사이트 운영 목적을 바로 세우기 위해 임의로 삭제합니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서 글을 써 주기 바라며 우리의 취지를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이 글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정동수 형제의 개인적인 글로서 번역의 철학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2011-07-08 15:43:59 | 관리자
범준 형제님의 글을 읽으니 맘이 찡 해집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나를 내려 놓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도록 서로 노력해요. 마지막 구절 " 모든 긍휼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드립니다"에 범준 형제의 진심이 담겨 있음을 느낍니다.
2011-07-08 09:00:12 | 양희석
저는 킹제임스 성경을 알게 된 때부터 최종 권위를 바로 킹제임스 성경 (더 자세히는 영어 KJV-AV 1611)에 두었지만, 그 최종 권위의 이유를 성경적으로 제시할 마땅한 근거가 보이지 않아서 자꾸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느라 솔직히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자꾸 흔들리고 요동치는 마음을 내 힘대로 붙잡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되면서 이런 모습은 헛된 것이라고 판단하게 되었고, 며칠 전에 성경책이 펼쳐져 있었는데 잠언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더 자세히 눈을 들여다 보았더니 제 눈이 잠언 25장 19절 말씀에 유독 많이 고정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잠25:19 말씀을 소개합니다~!!   "고난의 때에 신실하지 아니한 자를 신뢰하는 것은 부러진 이와 관절에서 빠진 발 같으니라."(잠25:19)   "Confidence in an unfaithful man in time of trouble is like a broken tooth, and a foot out of joint."(Prov. 25:19)   저는 위 말씀을 보고 깜짝 놀랐으며, 마음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믿을만한 사람을 찾아서 그와 함께하는 것이 중요할진대, 성경 문제에서도 믿을만한 성경을 찾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가.. 그리고 지금 이 말씀을 만난 이후에 생각하기를, 부러진 이와 관절에서 빠진 발 같이 올바르게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성경들이 얼마나 많은가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만난 이후로 킹제임스 성경이 나의 모든 면에서의 최종 권위임을 확실하게 다지게 되었습니다. 비록 최종 권위라고 하여도 여전히 그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말씀들이 많은 어리석은 면은 있다고 솔직하게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흠정역 성경을 대할 때 유독 이 성경만큼은 확실하구나, 말을 이리저리 돌리지 않는구나, 내가 믿지 못해도 이 성경은 이렇게 신실하구나, 하고 놀라는 성경이 바로 이 성경이라는 점에서 저는 이제 확실하게 - 그 이전의 믿음보다 - 나의 믿음, 생활, 행동, 그리고 나 자신을 넘어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최종 권위이자 표준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잠25:19 말씀을 확실하게 지지해주는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그 중 한 구절만 언급해 보겠습니다.   "지혜로운 자들과 함께 걷는 자는 지혜로우려니와 어리석은 자들과 사귀는 자는 멸망을 당하리로다."(잠13:20)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일도 이러할진대, 우리의 신앙을 판가름하는 성경의 문제에 있어서도 이 말씀이 일맥상통하지 않을까요?   지금 이 시대는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로서 성경이란 이름을 달고 태어나는 책들이 많이 나오는 시대인데, 과연 무엇이 이런 수많은 성경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성경을 판가름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은 바로 우리 손에 쥐어진 1611 KJV 흠정역 성경 속에 충분히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내가 계략과 지식에서 심히 뛰어난 것들을 네게 기록함은 너로 하여금 진리의 말씀들의 확실함을 알게 하며 또 너에게 사람을 보내는 자들에게 진리의 말씀들로 답변하게 하려 함이 아니겠느냐?"(잠22:21, 22)   언제 올지 모르는 좀도둑처럼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는(마24:43, 44; 벧후3:10a) 이 시대에 성경 문제에 눈을 뜨지 못했던 우리 한반도 땅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섭리로 올바르게 보존해 주신(시12:6, 7; 사40:8; 마5:18; 24:35) 1611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갖게 됨이 저에게는 너무나 행복한 나날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제 저의 고민은 일차적으로 흠정역 성경에 있는 대로 나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올바르게 고쳐 나가는 것이고, 이것을 넘어서, 나만 이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고, 성경적인 복음과 이 성경을 전하는 것이 제일 큰 고민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믿음을 진술할 수 있게 해 주신 성령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아울러서 우리에게 킹제임스 흠정역 1611 성경이 올수 있게 은혜를 허락해 주신 모든 긍휼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31:5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7-08 00:05:29 | 소범준
박옥수 목사 측에서 1년전쯤 킹제임스 흠정역을 100여권 정도 사갔던적이 있었습니다. 자기네 목사들에게 나눠 주면서 평가하라고 해서 얻은 결론이 이경우군요 이사건을 통해 분명히 깨달은 점은 잘못된 교리나 이상한 신학을 주장하는 (이단포함) 무리들은 아무리 진리를 알려주어도 절대로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리석은 짓을 하는 어리석은 무리들일 뿐입니다. 어리석은 짓 분별력과 이해력 등이 결여된 것. 이것은 지혜와 명철에 대립되는 개념이며 지혜 있는 자의 반대가 어리석은 자이다(잠1:7; 13:16; 14:1; 17:24; 21:20; 24:7). 잠언은 어리석은 자의 어리석음을 일목요연하게 보여 준다: 그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1:7); 지식을 미워한다(1:22); 분노를 당장에 나타낸다(12:16); 교만하다(14:3); 아버지의 훈계를 업신여긴다(15:5); 어머니를 멸시한다(15:20); 문제를 다 듣기도 전에 대답한다(18:13); 참견한다(20:3); 스스로를 높인다(30:32).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자이다(시14:1; 53:1). 한편 압살롬의 누이 다말은 암논이 자기를 겁탈하려는 것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했다(삼하13:12).
2011-07-07 08:41:57 | 송재근
개역성경과 킹제임스 흠정역 관련 박옥수목사(구원파)의 설교 내용입니다(퍼옴). 주요부분은 15분 40초부터 시작됩니다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올립니다.   극히 일부지만  한 개인 목회자의 편협되고 단순무지한 폄하된 목소리를  많은 성도들이 그저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우를 범할까 걱정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성경말씀 그대로 빼지도 더하지도 않은 온전한 말씀을 영원히 보존하여 주시겠다던 약속대로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성경이 번역되어 나오기까지의 숱한 과정과 시간을 그리 쉽게 평가절하 할 수 있나요?   이제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도 오랜 기간 힘든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고 드디어 우리 두손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가질 수 있는 복을 주셨습니다.   분별있는 성도들과 목회자 그리고 지혜로운 분들은 마음과 귀를 쫑긋 세우고 사심이 아닌 객관적이고 냉철한 모습을 찾았으면 합니다.   이제껏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너무 오랜 시간 노력하고 고생하신 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도 부족할 텐데 이들의 일을 논쟁거리로 몰려고 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33:3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7-06 12:24:31 | 김영익
갑자기 왜 KJV-1611에 대한 글을 올리게 되었는지 궁금하게 생각했는데,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사실을 다시 쓰게된 동기가 한글 번역 성경이 바르지 않음을 나타내려고 쓴 것인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영어 성경이 아무리 완벽해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흠정역이 있음으로 인해 우리가 바른 말씀을 가지게 됨을 큰 축복으로 생각하고 읽고 있습니다. 올해 KJV 400주년 기념판이 나오지만 첫판부터 한글에 대한 교정이 주로 이어졌고 이제 기념판을 내면서 더욱 더 완벽하게 하려고 정동수 목사님과 여러 형제들이 애를 썼습니다. 특별히 이런 시기에 여기에 대한 격려가 전혀 없고, 영어성경만 온전하고 번역 성경은 온전하지 못하다는 태도는 흠정역을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가해져 왔습니다. 말씀보존학회에서 성경을 먼저 번역했지만 바르지 않은 태도로 인하여 많은 피해를 한글 성경에 주었던 일을 우리는 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글들로 인해 현재 킵바이블에 와서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하는 분들에게 얼마나 실족거리가 되는지 생각하신다면 이제 더 이상 여기에 대해 글을 올리지 않는 게 현명할 것입니다. 이 말씀만이 저희의 인도자가 되어야 하는데, 목사님이라는 분이 한글 성경에 대해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음에 정말 안타까운 맘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저는 한국인에게는 흠정역 성경이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온전하고 정확하고 정직한 성경이라고 믿습니다.
2011-07-04 10:17:32 | 남윤수
왜 오직 킹제임스 성경(KJV-AV1611)인가?   지구상의 어떤 성경 원본보다 월등한 킹제임스 성경! “영어 킹제임스성경(KJV)은 히브리어 그리스어 성경에서 번역된 성경이기 때문에 영어 킹제임스성경(KJV)보다 원어인 히브리어 성경과 그리스어 성경이 더 낫고, 원천 언어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알아야만 성경을 바르게 알 수 있다.”   이 주장은 한편 옳고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교묘한 속임수입니다. 작은 누룩 하나가 온 덩어리를 뜨게 합니다. 킹제임스성경(KJV)은 현재 있는 어떤 그리스어 사본이나, 발견되지도 않은 최초의 원본(original autographs)보다 뛰어나고 월등하게 낫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소위 이름이 알려진 성경학자, 또는 박사라는 사람들에 의해 평가 절하되고 무시당합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누리는 지위와 이익이 위협을 받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지위가 낮은 자들(men of low degree)은 헛되며 지위가 높은 자들(men of high degree)은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그들을 다 더해도 허무보다 가볍도다.(시62:9) * low degree와 high degree는 석사 학위 또는 박사 학위를 말함.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두 학위도 없고 가난한 어부들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유명하고 명성이 있고 학벌, 재력, 권력을 가진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을 버려두고 왜? 어째서? 뱃사람 중에서도 가장 하층 계급인 가난하고 학위도, 재력도, 권력도 없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셨을까요? 높은 학위와 재력과 권력이 있어야 성경 기록을 알고 믿을 수 있고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입니다. 높은 학위와 재력과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word)보다 자신들의 이익과 자기 자랑이 먼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성경 기록을 기록된 그대로 어린 아이처럼 믿는 사람들이 더 올바르고 지혜롭고 인정을 받습니다.(마18:4, 19:14. 마10:14-15. 눅18:16-17) 그러나 높은 학위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만이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고 착취합니다. 성경 기록에 의하면 유명하고 명성 있는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을 대적하였음을 잊지 마십시오.(창6:4과 민16:2을 확인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학위도, 재력도, 권력도 없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셨음을 잊지 마십시오. 유명하고 높은 학위를 가지고 재력이 있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역사는 반복됩니다! (History repeats itself.)   1. 존재하는 최초의 원본들은 없다! 최초의 원본들에 관해서 현존하는 어떤 사람도 원본을 보거나 작은 원본조각도 찾은 적이 없습니다! 찾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는 최초의 원본이 지금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킹제임스성경(KJV)보다 월등하고 낫다면 어떤 면에서 또 어떻게 해서 월등하고 낫다는 것입니까? 지구상에 살고 있는 어떤 학자와 박사도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본들이 킹제임스성경(KJV)의 본문보다 더 월등하고 낫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원본을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단어들(words)을 영원토록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뿐입니다.   주의 말씀들(words)은 순수한 말씀들(words)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시12:6-7)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words)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24:35)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원본을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단어들(words)을 보존하고 지키시겠다”고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성경학자, 박사라는 사람들은 앵무새처럼 “최초의 원본과 원어”타령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도 보거나 만지지도 못한 “최초의 원본” 운운하는 것이 옳습니까? 자신의 단어(word)를 보존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현재 보존하여 우리에게 주신 주어진 킹제임스성경(KJV)을 보고 확인하는 것이 옳습니까?   2. 킹제임스성경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성경보다 훨씬 읽기 쉽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사본들은 정확하고 읽기 쉬운가? 모든 필사본 분석가들에 의하면, "사본들"은 단어와 단어사이의 공백 없이 대문자로 되어 있고, 괄호나 문장부호도 없으며, 단어와 단어들을 구분할 수 있는 어떤 표기도 없이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BUTTHEMENOFSODOMWEREWICKEDANDSINERSBEFORETHELORDEXCEEDINGLY",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이런 식입니다. 그러나 영어 킹제임스 성경본문에는 대문자와 소문자의 구분이 있고, 괄호와 문장 부호도 있고, 단어와 단어들이 구분되고, 단수, 복수와 시제와 인칭까지 정확하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어느 것이 읽기 쉽고 확실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NIV, CEB, NEB등 새로 출간되는 성경들은 자신들의 성경이 "월등"한 성경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근거로 “우리(NIV, CEB, NEB의 번역자들)는 원본과 같은 원어에서 번역했다”고 외칩니다! 단어와 단어사이의 공백도 없이 대문자로 되었고, 괄호나 문장부호도 없고, 단어들을 구분을 지을 만한 어떤 표기도 없는 성경에서 어떻게 월등하게 번역할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 하나 쉽고 확실하게 표기된 것이 없는 “소위 원어와 원본들”이 읽기 쉽다고 억지 주장을 합니다.   단어와 단어의 구분, 대문자와 소문자, 단수와 복수, 시제, 인칭까지 모든 것을 확실하게 표기한 “영어 킹제임스 성경”본문보다 “월등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지금 이 시대에 있는 모든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사본들이 영어 킹제임스성경보다 정확하고 읽기 쉽다고 입증할 수 있는 학자나 박사는 전혀 없습니다!   3. 킹제임스성경에는 장과 절이 구분되어 있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 성경에는 장과 절의 구분이 없습니다!   모든 필사본 분석가들에 의하면,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원본들에는 장과 절의 구분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킹제임스성경에는 장과 절의 구분이 있습니다. 장과 절의 구분이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구절을 찾는 일이 매우 어렵습니다. 또 성경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속이는 어떤 잘못된 주장을 하더라도 올바른 것을 찾아 제시하고 바로 잡는 일도 매우 어렵게 됩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거나 바른 것을 제시하기에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하므로 잘못된 주장이 활개를 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킹제임스성경처럼 장과 절이 구분되어 있으면 잘못된 주장을 즉시 성경 기록으로 찾아 보여 줄 수 있고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에는 장과 절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원본들은 장과 절의 구분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원본들이 더 우월하고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4. 킹제임스성경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단어로 보존된 말씀(Word)를 영어 단어로 정의를 내려놓은 성경이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의 특징은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단어라고 할지라도 문맥에 따라 서로 다른 다양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 시대를 알고 그 시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문맥에서 그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습니다. 1611년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한 번역자들은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를 모국어처럼 생활 언어로 사용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된 성경의 단어들을 문맥에 따라서 바른 의미의 영어 단어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은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로 보존하신 하나님의 단어들을 정확한 영어 단어로 정의를 내려서 킹제임스성경에 옮겨 기록해 둘 수 있었습니다. 처음 기록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단어에서 영어 단어로 옮기는 과정이야 말로 하나님의 섭리하심과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은 인류역사상 왕의 명령에 의해서 번역된 유일무이한 성경입니다. 유대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맡겨졌다고 하셨는데, 명령을 내린 왕도 유대인 이름을 가진 왕이었습니다. [*James는 야고보라는 유대인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성경을 기록하셨을 때부터 영어로 옮기시는 과정은 물론 지금 현재까지 졸지 않으시고 자신의 단어를 보존하고 계십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번역된 이후에 그 어떤 사람도 성경에 기록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단어의 의미를 문맥에 따라 올바른 의미로 정의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현대의 학자들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사전에서 자기 생각에 따라 선택한 의미로 번역할 뿐입니다. 만약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사전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정하려 한다면 ASV, RSV, NIV, NEB, CEB..를 틀린 성경이라고 판정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사전에는 배교한 성경들이 선택한 단어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원천 언어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성경의 단어들을 영어 단어로 정의를 내려놓은 유일한 성경입니다!   5. 킹제임스성경은 하나님께서 옮기신 성경이다! 사람들은 영어 킹제임스성경은 번역본에 불과하기 때문에 원천 언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보다는 열등하다고 주장합니다. 한편 매우 합리적인 주장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손길로, 하나님의 섭리로 옮기셨다면 얼마든지 원천 언어보다 더 나을 수 있습니다. 번역 성경이라서 열등한 성경인지 아니면 번역 성경이라서 오히려 원천 언어 성경보다 더 나은 성경이 되는지, 성경 기록 스스로의 판결을 보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코이네 그리스어로 기록된 신약 성경은 모두 번역 성경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이 번역 성경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영어 킹제임스성경이 번역 성경이기에 열등하다는 주장은 이미 불합리한 주장이라는 것이 입증됩니다. 구약 성경 창세기에서도 요셉은 형들과 대화를 할 때 이집트어를 사용했으나 히브리어로 번역되어 기록되었습니다.   더욱 확실한 것은 번역(translate)이라는 단어에 대한 성경 기록의 정의입니다. 성경에서 translate, 즉 번역, 또는 옮김이라는 단어는 사무엘하3:10, 골로새서1:13, 히브리서11:5의 세 구절에서 다섯 번 언급됩니다.   첫 번째는 왕국을 사울의 집으로부터 다윗의 보좌로 옮기셨습니다(translate).(삼하3:10)   그 맹세는 곧 왕국을 사울의 집으로부터 옮기고(translate)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과 유다 위에 다윗의 왕좌를 세우는 것이라, 하매 (삼하3:10).   사울은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사울의 외모를 보고 왕으로 선택한 인물입니다. 이렇게 선택된 사울의 왕국은 사울 한 명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왕이며, 다윗의 왕국은 영원한 왕국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의 왕국을 영원한 다윗의 왕국으로 옮기셨습니다(translate). 사울의 왕국과 영원한 다윗의 왕국을 비교하는 것은 하늘나라와 지옥을 비교하는 것과 같습니다.   두 번째는 죄인이었던 우리를 어둠의 권능에서 건져 내셔서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신(translated) 것입니다.(골1:13)   그분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능에서 건져 내사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셨으니(translated) (골1:13) 지옥에 가야 마땅한 죄인들을 어둠의 권 능에서 건져 내사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신(translated) 것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불경스러움과 같습니다.   세 번째는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옮김(translated)을 받은 것입니다.(히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옮겨졌으니(translated)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translated) 그들이 찾지 못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translation) 전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라는 증언을 가졌느니라. (히11:5).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에 의해 옮겨진(translated) 후 5000년이 지나도록 낙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번역(translate)"의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옮기신다(translate)면 옮기기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온 우주와 모든 창조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1611년에 유대인 이름을 가진 왕의 명령에 의해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보존하신 자신의 단어를 영어 단어로 섭리 가운데 옮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길로 섭리 가운데 옮기신 영어 단어들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단어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확하고 확실합니다.   누구든지 읽을 수 있고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영어 단어로 자신의 단어를 옮겨 보존하시는 것이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것일까요?   6. "마지막 때"의 전 세계적인 언어는 영어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 즉 마지막 때, 즉 두 번째 오심, 재림(the Second Advent)에 대해서는 두 배 이상 더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창 3, 14, 24, 46, 49장, 출 15장, 신 21, 28-32장, 수 1-7장, 판 5장, 삼상 17-18장, 삼하 22장, 왕상 1-9장, 사 2장, 11:1-12, 9장, 65-66장 etc)  만일 하나님께서 앞으로 다가올 대환란 때에 유대인 복음전도자들(계 7장, 바울, 요나, 예레미야는 그 모형입니다!)을 사용하여 온 세상에 전파하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전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성경 기록이 초림보다 마지막 때에 대해서 두 배 이상을 다루었듯이 마지막 때에 사용할 언어는 마지막 시대의 세계 중심 언어인 영어가 두 배 이상 더 중요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국가들이 모국어를 제외하고 두 번째 언어를 선택한다면 킹제임스성경에 보존된 "영어"를 선택할 것은 재론의 여지없이 확실합니다.   성경 기록의 언어가 그 시대의 중심 언어였듯이 마지막 시대의 세계 중심 언어가 영어가 될 것을 모르셨고, 자신의 단어를 영어로 옮겨 보존하시고 사용하실 수 없다고 믿어야 옳을까요?   7. 킹제임스성경은 시적 아름다움과 운율이 있는 성경이다! 그리스어나 라틴어는 시적이지도 않고, 리듬을 가진 언어도 아닙니다. 독일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태리어나 프랑스어가 리듬을 지닌 언어이긴 하지만 지금껏 킹제임스성경과 같은 시적이고 리듬을 지닌 성경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시적인 킹제임스성경은 "성경을 암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사람들은 노래 가사를 리듬이 없는 "무운시"(無韻詩)보다 더 잘 암기합니다.   킹제임스성경은 암기하는 것에서도 리듬이 없는 그리스어 본문을 훨씬 초월합니다. 또 킹제임스성경이 시적 아름다움과 리듬을 지닌 것은 전문 문법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 전문 문법학자들의 글들과 게일 리플링거(Gail Riplinger)의 "킹제임스 성경의 언어"(the Language of the King James Bible, AV 출판사, 1998)라는 책을 읽어 보십시오. 왕의 영어와 그 완벽함, 또 시적 운율이 문장과 절들뿐만 아니라, 단어들 사이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킹제임스성경은 시적 아름다움과 리듬을 지닌 성경입니다.  그리스어나 라틴어는 시적이지도 않고, 리듬을 가진 언어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나 라틴어 사본들이 어떤 점에서 더 월등하다는 것일까요?   8. 킹제임스성경에는 역사의 배열순서가 있다!  히브리어 성경의 마지막 책은 역대기하입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주신 히브리어 성경의 배열순서는 그들에게 적절합니다. 그러나 킹제임스성경의 구약성경 배열순서는 히브리어 성경과 다르게 역대기하가 중간에 배열되어 있고 말라기서가 마지막에 배열되어 있습니다. 왜 히브리어 성경과 배열순서가 다를까요?   킹제임스성경에서는 역대기하에서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가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A.D. 70년 타이투스(Titus)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되는 것과 일치합니다. 그 다음 책인 에스라서에서는 팔레스타인 땅으로의 회복이 언급되는데 이것은 A.D. 1917년 발포어 선언과 일치합니다. 예루살렘의 재건(주후 1948년과 일치함)도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책인 에스더서에서는 이방인 신부를 버리고 그녀 대신 유대인 신부를 맞이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교회 시대에서 대환란으로의 전환 과정과 일치합니다. 그 다음 책인 욥기는 대환란은 예고합니다. 욥기는 42장이며 한 장이 1개월을 예표합니다.(계 11-13장). 그 다음 책인 시편 2편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다윗의 보좌에 앉으신 메시야와 그분과 함께 도래한 천년왕국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히브리어 성경 순서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무엇인가를 놓쳤으나 킹제임스성경의 배열 순서에서는 역사의 배열 순서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구약 히브리어 성경들이 모두 기록된 후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자(행 7장),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순서(배열)를 바꾸셨고, 히브리어 성경의 순서를 마지막 시대를 장식할 킹제임스성경의 배열 순서로 바꾸셨던 것입니다!     그 외에의 것들은 요약 정리합니다.   1. 킹제임스성경은 판권이 없는 유일한 성경입니다. 그러나 현대 역본들은 모두 판권이 있습니다.   2. 킹제임스성경은 400년 동안 좋은 열매를 맺어왔고 맺고 있고 앞으로도 맺을 것입니다.   3. 킹제임스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던 유일한 교회인 필라델피아교회 시대에 번역되었습니다. 새로운 현대 역본들은 사람들의 권리만 주장하는 라오디케아교회 시대가 시작되면서 등장했습니다.   4.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그들의 작업에 있어 정직했습니다. 번역상의 이유 때문에 어떤 단어들을 덧붙여야하였을 때, 번역자들은 덧붙여진 단어들을 이탤릭체로 표기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그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새로운 번역본들은 아무 표기 없이 덧붙이고 삭제하였습니다.   5. 모든 새로운 번역본들은 자신의 성경들을 오직 킹제임스 성경에만 비교하고 있습니다. 결코 새로운 번역본과 새로운 역본과는 비교하지 않습니다. 오직 킹제임스성경이라는 한 권의 책에 대항해서 한 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탄이 만일 사탄을 내쫓으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왕국이 서겠느냐?(마12:26).   6.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은 자신들이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제임스 왕에게 바치는 글과 NASV서문을 비교해 보라.]   7. 5,300개가 넘는 사본 증거들 중에서 95%가 킹제임스성경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역본들은 나머지 5%의 사본들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 사본들은 대부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성경에는 단지 두 개의 계열이 있을 뿐입니다. 알렉산드리아 계열과 안디옥 계열입니다.)   8. 아무도 킹 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9. 이 지구상에 있는 그 어떤 새로운 번역본도 KJV 만큼 그리스도를 높이지는 못합니다. 수많은 부분에서 새로운 잘못된 번역본들은 그리스도의 신성, 주님의 피로 인한 속죄, 부활, 믿음을 통해 은혜로 받는 구원, 주님의 재림 등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결론  사람의 생각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못 박아 두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원본을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고, 다만 “자신의 단어(word)를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단어와 단어사이의 공백도 없고 대문자로 되었고, 괄호나 문장부호도 없고, 단어들을 구분을 지을 만한 어떤 표기도 없는 “소위 원어와 원본들”이 읽기 쉽다는 주장은 사실을 왜곡한 거짓말입니다.   당신 손에 장과 절이 구분되어 있고, 단어와 단어의 구분, 단수와 복수, 시제, 인칭까지 모든 것을 확실하게 표기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있습니다.   혼란을 조장할 수 있는 다양한 의미의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단어를 이 시대 공용어인 영어 단어로 정의를 내려놓은 유일한 성경이 당신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옮기신다(translate)면 옮기기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듯이 킹 제임스 성경은 하나님께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보존하시던 자신의 단어를 영어 단어로 옮겨 보존하신 무오하고 유일한 성경입니다.   초림에 대한 언급보다 재림에 대한 언급이 두 배나 더 많듯이 킹제임스성경은 원천언어인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성경보다 두 배 이상 더 확실하고 쉽습니다.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나 라틴어 성경은 시적 운율이 없지만, 영어로 된 킹제임스성경은 시적 아름다움과 리듬을 지닌 유일한 성경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의 배열순서는 역사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킹제임스성경 만큼 많고 좋은 열매를 맺은 성경은 지구상에 없고 아무도 킹제임스성경에서 단 하나의 오류도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킹제임스성경 만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성경은 전혀 없습니다.   A.D.1611년 왕의 명령에 의해서 킹제임스성경으로 옮기시기 전까지는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단어로 성경 기록들을 보존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세 언어는 죽은 언어입니다! 성경에서 이 세 가지 언어가 함께 등장하는 곳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입니다. 바로 십자가 위에 예수님의 명패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기록되었습니다.(눅23:38, 요19:20)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한 이 세 가지 언어가 죽은 언어가 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지나친 억측일까요? 우연한 것일 뿐이라고 믿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일까요?   존재하지도 않고 상상 속에나 있는 "최초의 원본들"을 가지고 거룩한 성경을 고치려고 시도하고 속이고 지배하고 착취하려고 하는 성경학자들과 박사들에게 속지 마십시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기록하셨던 성경 기록들을 A.D.1611년 영어로 옮겨 보존하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라면 설명될 수 없는 기적! 그 자체입니다!   오류가 없는 완벽한 킹제임스성경! 하나님의 섭리로 보존하신 유일한 킹제임스성경! 누구든지 쉽게 읽고 확인할 수 있는 무오한 성경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 손에 들려져 있다는 사실은 가장 큰 축복입니다! 오류 없고 완전한 KJV-AV1611을 주신 하나님께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  Keep Bible을 찾는 모든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다운로드를 받으셔서 마음대로 배포하시고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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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9 21:42:53 | 홍성율
혹 형제자매님들께서 다툼으로 오해하실 염려가 되기에 "KJV에서 번역된 한글성경에 대해서"에 달아둔 댓글을 이곳에도 달아 둡니다. 김문수 형제님께서 저의 글이 정제된 표현-(곱고 순한 표현?)이 아니어서 감정적으로 보셨을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저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KJV-AV1611의 최종권위에 해를 입힐 만한 글을 공개적인 곳에 썼다면 그 사람이 저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을지라도 역시 더 강하게 질책했을 겁니다. 만약 제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제가 KJV의 최종권위에 해를 입힐 만한 글을 썼다고 해서 누군가가 제게 더한 질책을 했다면 원인을 제공한 저 자신을 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일깨워 준 지체에게 고맙게 생각하며 받아들이고 감사하겠습니다. KJV는 제게는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이고 그분의 최종권위에 도전할 생각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형제님도 저도 흠정역 교정위원으로 바른 번역을 위해 온 힘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KJV가 번역 성경임으로 모든 번역 성경들도 완전한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글을 올리신 것은 흠정역 교정위원으로서 의도하시지 않으셨을지라도 KJV의 최종권위를 희석하시는 것입니다. 마침 김재근형제님이 흠정역 교정위원들의 “성경에 대한 믿음 진술”을 올려두셨네요. 오직 KJV만이 완벽한 유일한 기준이라고 형제님도 저도 확실하게 서명했던 것이기도 하구요. 일단 이 문제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를 통해서 모든 번역 성경이 KJV와 동일한 권위를 갖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리는 목적은 이뤘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한 것은 제가 영원을 함께 할 형제님을 미워할 이유도 없고, 미워할 권한도 없고, 또 적으로 대해야 할 의도도 전혀 없습니다. 형제님도 저도 KJV를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로 믿으시기에 KJV에 대한 사랑이 원인이었음으로 여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제까지 좋은 글로 많은 사람들을 세워 주신 수고를 주님께서 잊지 않으실 겁니다. 앞으로 더 유익하고 더 좋은 글로 널리 도움을 베푸시는 형제님이 되십시오. 저는 인터넷 접속을 거의 하지 않기에 온라인에서 뵙기는 쉽지 않습니다.
2011-06-29 20:29:00 | 홍성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