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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이후 교회사에서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교회가 다수인 적이 있었습니까? 위선이 걷히면 소수의 근본주의자만 남게 되는 것은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성경의 원리이고 주님의 예언입니다. 예수님도 다수로부터 왕따 당하신 후 죽으셨고 모든 사도들이 몽땅 왕따였습니다. Keep bible도 왕따입니다. 예수님 닮은 믿음은 반드시 왕따여야 합니다. 왕따들이여, Go! Go!하라 어디로? 왕따 예수께로...
2012-02-02 14:27:58 | 이광국
맞습니다. 양쪽 귀에 도달하는 소리의 강도, 시간, 위상의 차이로 소리가 들려 오는 위치를 구분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시간을 예로 들어 보면, 두 귀에 각각 도달하는 소리가 약 10만분의 1초의 차이가 나는 경우까지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정면에서 나는 소리와 그곳으로부터 약 1.5도의 위치에서 나는 소리를 구분해 낼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과학적 발견으로부터 얻게되는 설계에 관한 새로운 지식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솜씨에 감탄하며 더욱 그 분을 좋아하게 됩니다~^^
2012-02-02 13:47:57 | 김정훈
어느 종교의 위세가 불어나든 그것이 개신교는 아닐 것 같아요. 앞으로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신교 특히, 성경대로 믿는 근본주의 개신교가 종교계의 왕따가 될 것 같습니다.(실로 세상의 종교와는 다르죠) 저희는 최대한 복음의 씨앗을 뿌리면서, 주님 오시기만을 기다릴 수 밖에요..
2012-02-02 12:29:39 | 박주영
2007년도 인구센서스 종교인구 자료에 의하면 전국 인구 4704만명중에 2497만명(53.1%)이 종교인이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 불교는 1072만명(전제종교인구의 43%), 개신교가 816만명(34.5%), 천주교가 514만명(20.6%),유교가 10만명(0.4%)순이며 기타 종교가 13만명(0.5%)라고 합니다. 특이한 점이 전년도에 비해서 여기서 불교는 2.7%감소하고, 개신교는 4.3%감소한 반면에 천주교는 7.5%증가하였다는 점입니다. 즉, 불교/개신교에서 대거 천주교로 개종했다는 사실이죠....(전체 종교인구는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는 가정입니다.) 개신교에서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위선적/도덕적/금전적인 부분에 실망감을 갖는 많은 성도들이 천주교로 돌아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며,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리스도인으로써 평상시 바른 성경을 통한 그리스도인의 바른 삶의 자세를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도 다문화 가정을 통해 이슬람이 점점 늘어나는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2012-02-02 09:51:13 | 김학준
오늘 아침 다음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01/2012020102438.html?news_Head2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야겠습니다.   샬롬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5:2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01 23:11:34 | 관리자
언제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문제를 듣기도 전에 대답하는 자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요, 수치니라(잠18:13).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사람마다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진노하는 것도 더디 하라(약1:19). 듣기에 대한 바른 태도를 보여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탈무드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두 개의 귀를 주시고, 한 개의 입을 주신 이유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로 많이 하라는 뜻이다"라고 가르칩니다. 과학에서는 두 개의 귀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기 때문에 소리가 나는 방향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리 몸에 이런 신비한 면들이 있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놀랍습니다.
2012-02-01 16:34:00 | 김문수
'환난기'를 제목만으로 검색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받은 구원이라는 것은 따로 없고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써 구원받습니다. 단지 시기와 신분이 다를 뿐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약교회 성도이고 그들은 휴거되지 못했다가 뒤늦게 믿고 적그리스도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자들입니다.
2012-01-31 19:30:39 | 관리자
네~ 저의 책을 애독해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시간에 관계 없이 유익한 글들은 이곳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 질 수 있도록 일부 발췌하여 소개할 기회를 갖을 예정입니다. 물론 필요하다면 어떤 부분은 새로운 발견이 있을 경우 그 내용을 update 하여 소개할 것이구요~
2012-01-30 23:11:25 | 김정훈
네, 그 말씀은 물론 백번 맞는 말씀이지만, 진화론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믿는 자들도 현혹하여 바른 믿음에서 벗어나게 하는 이때에 올바르고 정확한 과학지식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의 영광을 들어 내고 성경의 기록이 얼마나 과학적으로도 하등 모순이 없는 사실인 것인가를 널리 알리는 일 또한 중요합니다. 그것은 올바른 성경적 세계관의 정립에도 중요하고요.. 믿음은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이 귀하지만, 증거를 통해서 더욱 견고해집니다!
2012-01-30 23:08:07 | 김정훈
[이브의배꼽 아담의 갈비뼈]에서 반딧불이야기 앞에 실렸네요. 3년전 읽었지만, 다시 읽어도 재밌구나싶어 책장에서 꺼냈어요 박사님. 이렇게 친절하게 또 열심으로 창조의 신비를 과학으로- 믿음에 지식을 지식에 넓이와 깊이를 더해 주시느라 수고하시네요 강건하세요 박사님~~
2012-01-30 21:02:47 | 최양순
감사합니다~ 우리가 지식이 부족하여 미처 하나님의 크신 뜻을 깨닫지 못하고 의심할 때가 있지만, 역시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일 뿐만 아니라, 섬세하게 배려하시며 기다리시는 멋진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2012-01-30 11:40:23 | 김정훈
그랬군요.. 과거에 생화학적 지식이 부족하던 다윈의 시대에도 눈은 워낙 그 구조가 복잡하고 정교하여 다윈 자신도 자연발생만으로 그 존재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을 느끼고 매우 고민을 하였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오늘날 과학이 발전하여 보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눈의 구조와 기능이 더 복잡하고 정교함을 알게 되어, 이것이 저절로 생겨 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한갖 괘변에 불과할 뿐입니다!
2012-01-30 11:36:59 | 김정훈
귀가 이렇게 복잡한데... EBS에서 최재천교수가 눈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겼고 발생과정에서 잘못된 발생으로 인해 망막 박리가 잘 일어난다고? 이분 강의를 들으면 억장이 무너짐니다. 강의를 경청하며 메모하는 분들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구요.
2012-01-30 11:06:04 | 허광무
어떻게 하다보니 들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결과의 산물이라는 사실이 너무 놀랍고 신기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귀로 정작 들어야 할 것들에 귀를 기울이며 살기를 원합니다.
2012-01-30 09:08:22 | 조양교
오래 전에 한국에서도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던 미국의 TV 프로그램 가운데, “특수 공작원 소머즈” 라는 프로가 있었다. 사고로 잃게 된 오른 팔과 두 다리 그리고 한쪽 귀를 인공전자기관으로 대체하여 정상인과는 다른 초능력을 갖게 된 한 여성 특수공작원의 이야기였다. “소머즈”에 있어서 특히 인기 있었던 것은 초능력적인 전자 인공 귀였는데, 멀리서 들려 오는 아주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그런 귀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 과학은 아직 소머즈 같은 초능력은 아니지만,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사람의 귀에 인공 달팽이관을 이식하여 청력을 회복하여 줄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렀으니 이런 식으로 기술이 계속 발전해 간다면 실제로 공상과학 속에나 나오던 ‘소머즈의 귀’를 보게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귀를 통해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우리에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는 사실에 얼마만큼 고마움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귓속을 들여다보면 그 세밀한 솜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귀에 부딪힌 소리는 먼저 외이도-우리가 귀지를 팔 때, 귀 후비개로 지나면서 건드리게 되는 부분으로 대략 2.5 cm 길이에 7 mm의 직경을 갖는다-라고 부르는 좁은 통로를 지나면서, 그 통로의 끝에 연결된 마치 펼쳐진 우산 모양으로 생긴 얇은 고막을 진동 시킨다. 이때 만들어진 진동은 고막에 연결된 세 개의 작은 이소골을 차례로 통과 하면서 그 귀에 들어온 소리의 강도를 증폭시키는데, 이소골이 들어 있는 이 부분을 중이라고 하며, 대략 우리가 보통 커피에 넣어 먹는 각설탕만한 크기의 공간에 해당한다. 중이 속의 이소골은 그 구조와 배치가 소리를 증폭시키기에 매우 적절하게 놓여 있어 우리의 귀에 들어온 소리를 거의 잃어버림 없이 들을 수 있도록 해준다. 이제 이소골을 통과한 소리는 마지막으로 대략 완두콩만한 크기의 달팽이관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달팽이관 속에는 약 눈물 한 방울에 해당하는 부피의 액체가 들어 있어, 고막에서부터 이소골을 통해 전해져온 소리의 진동은 이제 이 달팽이관 속 액체에 작은 물결을 일으키게 된다. 이 액체 위에는 얇은 막이 하나 떠 있는데, 물결이 움직일 때마다 이 막이 같이 움직이면서 거기에 붙어 있는 미세한 머리카락 모양의 신경세포들이 이 막을 통해 전해지는 물결의 높낮이를 감지하게 되고, 그것을 전기적 신호로 바꾸어 뇌에 전달하게 되면 비로소 우리가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한 방울의 적은 액체 속에서 생겨나는 물결의 파고를 가지고 우리가 느끼는 수많은 소리의 신비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사람의 귀는 보통 20에서 20,000 Hz 사이의 주파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참고로 이야기 하면, 피아노의 소리는 27.5에서 4,186 Hz의 소리를 내며, TV를 켜고 소리를 가장 낮게 줄여 놓았을 때 나는 지지직거리는 소리는 16,000 Hz에 해당 한다), 그 중에서도 약 2,500 Hz 부근의 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다. 그것은 앞서 이야기한 외이도의 구조가 이 주파수 부근의 소리를 가장 잘 증폭해주도록 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 주파수 부근의 소리는 자그마치 우리의 고막이 불과 1억 분의 1cm 즉, 수소 원자의 두께에 해당하는 길이만큼만 움직임으로도 소리를 전달 할 수 있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 보라! 수소 원자의 직경에 해당하는 길이만큼의 고막의 미세한 움직임이 달팽이관 속의 눈물 한 방울만한 액체에 파고를 일으키고, 그 물결의 높낮이를 머리털 같은 신경세포가 감지하여 전기 신호를 일으키고 그것을 뇌에 전달하여 마침내 소리를 듣게 하는 과정을 말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설계를 통하지 않고 우연히 생겨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겠는가?   우리들은 아주 어릴 적 엄마의 자궁 속에 있을 때부터 우리 주변의 소리에 익숙해 와서 듣지 못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솔직히 잘 모르고 살고 있다. 그래서 청각을 잃어버린 세상을 상상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쉽지 않은데, 마치 TV의 벙어리 화면을 보는 답답한 기분은 아닐까? 사실 소리는 우리에게 많은 신비감을 주며, 또 상상을 자극한다. 음악이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보라. 사랑하는 사람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음성을 떠 올려 보라. 소리의 세계는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이지만, 우리를 또 다른 존재의 차원으로 인도한다. 보이지도 않고, 들을 수도 없으며, 말조차 할 수 없었던 삼중고의 유명한 헬렌켈러는 만약에 한 가지를 골라서 회복할 수 있게 된다면 자신이 겪고 있는 삼중고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놀랍게도 소리를 듣고 싶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과연 듣는다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새롭게 한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과연 몇 번이나, 우리에게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청각이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했었던가?   성경에서는 소리에 대하여 어떤 말씀을 하시는가? 요한복음은 처음에 말씀이 있었는데,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요 1:1).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말씀으로 ‘이르심으로’ 천지를 지으시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그의 길을 예비한 침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다 (마 3:3). 예수님이 침례자 요한에게 침례를 받을 때에 하늘로부터 음성이 있으며 성령이 임하셨다 (마 3:16-17). 마가의 다락방에 오순절 성령이 임할 때에도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었으며 (행 2:2), 사울이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를 만나 회심할 때에도 하늘에서는 음성이 있었다 (행 9:3-4). 이제 요한계시록에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벌어 질 때에도 하늘에는 큰 음성이 있어 축제의 소리가 하늘에 자자하게 될 것이다 (계 19:1-8). 이와 같이 성경은 매우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우리에게 소리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놀라운 청각을 가지고 우리는 어떤 소리를 들을 것인가? 세상에는 수많은 다양한 소리가 있어 저마다 자기 소리를 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하신다. 그것도 아주 고요한 작은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왕상 19:12) 그 분의 음성에 우리가 귀 기울이기를 원하신다. 그야말로 우리의 고막을 수소 원자 두께 만큼, 눈꼽의 눈꼽만큼 움직이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귀를 열어 그 분의 생명의 말씀을 주시고 싶은 것이다. 태초부터 계시어 우리를 창조하신 그 말씀이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시며, 너희는 내 음성에 순종하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렘 7:23)라고 말씀 하신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그 귀를 진리로부터 돌이켜 꾸며낸 이야기들로 돌아서니 (딤후 4:4), 주님께서는 이 순간에도 교회에 거듭하여 말씀 하신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마 13:9),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계 2-3장). 아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5:2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1-29 19:21:56 | 김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