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5장 22절의 믿음
갈라디아서 5장 22절은 성령님의 열매 9가지를 나열하면서,
성령 안에 거하는 자가 맺는 내적 품성과 성품의 특징들을 보여준다.
그중 하나가 킹제임스 성경(KJV)에는 분명하게 **“faith” (믿음)**이라고 되어 있으나,
현대역본들(NKJV, NIV, 개역 등)은 이를 **“faithfulness” (충성, 신실함)**으로 바꾸었다.
이것은 단순한 단어 선택의 차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구원,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중대한 의미의 왜곡을 발생시킨다.
갈라디아서 5:22 – KJV vs. 현대역본 비교
KJV: “But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longsuffering, gentleness, goodness, faith...”
NKJV/개역/NIV: “…faithfulness” / “충성” / “신실함”
헬라어 원어 분석
사용된 단어: πίστις (pistis, Strong’s #4102)
의미:
믿음, 신뢰, 확신, 확고한 신념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의존과 신뢰
성령 안에서 오는 하나님과의 관계적 확신
반면, **faithfulness(충성/신실함)**은 헬라어로 **πιστός (pistos, Strong’s #4103)**인데,
이 단어는 갈라디아서 5:22에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πιστός (pistos)**의 의미:
신실한, 충직한, 맡은 바를 성실히 수행하는
직무적 책임감이나 인간의 도덕적 신뢰성에 더 가까운 의미
왜 현대역본의 번역 “faithfulness”는 문제인가?
사람의 행위 중심적 의미로 전환된다
→ "신실하다", "충성스럽다"는 것은 누군가의 눈에 믿을 만하게 보이는 것으로,
외적 태도나 성격적 성실함에 초점이 있다.
구원 신학을 희석시킨다
→ 성령의 열매 중 "믿음"이 하나님과의 내면적 신뢰 관계를 의미하는 것에서,
종교적 직무 수행이나 사람 앞의 신실함으로 바뀌게 된다.
불신자도 ‘충성스러울 수 있다’
→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더라도, 종교적 체계나 단체에는 충성할 수 있다.
→ 예: 불신자도 종교적으로 "faithful to the church"는 가능하다.
→ 하지만 성령의 열매는 본질적으로 믿음(신뢰, 확신, 내면의 신적 관계)이어야만 한다.
왜 “faith (믿음)”이 옳은가? – KJV의 신학적 정확성
성령의 열매는 인간의 노력으로 생기는 덕목이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내면의 변화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의 결과이다.
→ “믿음”은 성령님이 마음 안에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다.
믿음은 구원에 있어 결정적 요소이며, 성령의 역사와 직결된다
→ 갈 3:14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 믿음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생기는 열매이며, 그 자체가 거듭남의 증거다.
성령의 열매로서의 믿음은, 단순히 구원의 출발점이 아닌
성도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자라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열매다.
→ 히 11장: 믿음은 계속해서 성도 삶의 중심이며, 행동의 원천이다.
교리적 차이 요약
항목KJV (Faith)NKJV, 개역 (Faithfulness)
헬라어πίστις (pistis, 믿음)πιστός (pistos, 충성, 신실함)
의미하나님에 대한 신뢰, 내면의 확신외적 충직함, 인간의 성실함
신학 중심하나님과의 관계 중심인간의 태도 중심
구원의 표현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 생김종교적 충성처럼 오해 가능
결론
갈라디아서 5:22의 “믿음”은 단순히 어떤 대상에 충성하는 인간적 특성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내면의 확신이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헬라어 πίστις의 본래 의미를 충실히 살려
**“faith (믿음)”**으로 번역함으로써, 성령의 열매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맺히는 내적 변화임을 강조한다.
반면, NKJV, 개역, NIV 등은 이를 “faithfulness(충성)”로 번역하여
성령의 열매를 마치 인간의 행위나 성품 차원으로 축소시키는 심각한 신학적 왜곡을 초래한다.
믿음은 단지 덕목이 아니라,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자 안에서 반드시 맺히는
살아 있는 신뢰와 확신의 열매다.
이 진리는 오직 킹제임스 성경이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
2025-05-23 08:45:52 | 관리자
히브리서 3장 18절, 불순종 혹은 불신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성경의 핵심 교리를 왜곡하는 방식 중 하나는,
**“믿음 + 순종(행위)”**을 구원의 조건처럼 은근히 가르치는 것이다.
현대 역본들(NKJV, NIV, 개역, 천주교 성경 등)은 이를 위해 **불신(unbelief)**이라는 분명한 단어를
**“불순종(disobedience)”**이라는 모호하고 일반적인 단어로 바꾸는 경우가 많다.
이런 번역은 단순한 표현의 차이가 아니라, 구원 교리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왜곡이 된다.
대표 본문 비교 – 히브리서 중심
특히 히브리서에 나타난 ἀπείθεια(apeitheia, 불신)의 번역 차이를 보면, 그 왜곡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히브리서 3장 18절에서 킹제임스 성경(KJV)은 “to them that believed not(믿지 아니한 자들)”로 번역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불신자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다는 명확한 진술이다. 하지만 개역성경이나 NKJV 등은 이 구절을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로 번역함으로써, 그들의 문제를 믿음이 아니라 행위의 부족으로 돌려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또한 히브리서 4장 6절에서 KJV는 “because of unbelief(불신 때문에)”라고 하여, 그들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원인을 분명하게 ‘믿지 않음’으로 지적하고 있다. 반면 개역과 NKJV는 이 구절을 “순종하지 아니함으로”라고 번역하여, 순종, 즉 행위의 결핍을 원인으로 제시한다.
히브리서 4장 11절에서도 같은 왜곡이 반복된다. KJV는 “example of unbelief(불신의 본)”이라고 하여, 불신을 따르지 않도록 경고하지만, 현대역본들은 “불순종의 본”으로 바꾸어 불신이라는 구체적 죄의 개념을 희석시킨다.
이와 동일한 현상은 로마서 11장 32절에서도 나타난다. KJV는 “them all in unbelief(그들을 모두 불신 안에 가두셨으니)”라고 번역하여, 인간의 근본 문제가 불신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NKJV와 개역성경은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 번역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인간을 순종하지 않는 자로 보셨다는, 보다 모호하고 비신학적인 뉘앙스를 전달한다.
이와 같이 KJV는 모든 해당 본문에서 ‘불신(unbelief)’ 또는 ‘믿지 아니함’이라는 명확하고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상태와 심각성을 분명히 드러낸다. 반면, 현대역본들은 그 죄를 “불순종”이라는 행위 중심적 개념으로 바꾸어
신학적으로 믿음 + 행위의 교리에 가까운 인상을 주고 있으며,
이는 복음의 핵심—**“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진리를 심각하게 흐리게 한다.
헬라어 원어 분석 – ἀπείθεια (apeitheia, Strong’s #543)
뜻: “의도적으로 설득을 거부함, 완고함, 고의적 불신”
어원:
α (부정어) + πείθω (peithō, 설득하다)
→ “설득을 받지 않음 = 믿지 않음 = 고의적 불신”
신약 전체에서 이 단어는 믿지 않으려는 고의적 태도를 강조한다.
영어 단어로는 "unbelief", 또는 더 정확히는 **"willful unbelief"**가 핵심 의미
따라서 **“disobedience(불순종)”**는 문자적·어원적으로 부정확한 번역이다.
"Disobedience"로 번역했을 때 생기는 신학적 왜곡
**불순종(disobedience)**은 행위 중심 개념
→ "행동을 따르지 않는 것", 즉 율법을 안 지키는 것으로 이해됨
이로 인해 ‘믿음 + 행위’의 논리 구조가 암시됨
→ "믿을 뿐만 아니라 순종해야 구원이다"는 교리적 함정에 빠짐
로마 가톨릭과 일부 개신교의 오류 반복
→ 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반드시 순종(성례전, 선행 등)을 더해야 한다는
로마 가톨릭의 이신행의론(信+行)이 뒷받침될 수 있는 해석 여지가 생김
"Unbelief"의 우월성 – KJV의 정확한 신학적 의미
"unbelief"는 믿음의 정확한 반의어이며 구원의 본질을 직격한다
→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KJV는 모든 관련 구절에서 일관되게 “unbelief” 또는 “believed not”으로 번역
→ 구원을 방해하는 가장 핵심적 죄는 불신임을 명확히 함
신자에게는 경고, 불신자에게는 회개의 촉구로 작용
→ 불신은 단순히 실수나 무지의 문제가 아니라 고의적 반항임을 분명히 경고
예시: 히브리서 3장 18절–19절
KJV:
“...to them that believed not. So we see that they could not enter in because of unbelief.”
개역/NKJV: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 불순종으로 못 들어갔다.”
KJV는 그들의 불신을 지적하고 있음
→ 신약 신학의 핵심: 믿음이 없으면 구원 없음 (요 3:18, 히 11:6)
반면 현대역본은 순종의 부족을 강조하여,
→ 구원은 믿음 + 행위처럼 들리게 만듦
→ 이는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강하게 반박한 이단적 사상
결론
**ἀπείθεια (apeitheia)**는 단순한 "불순종"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믿지 않으려는 완고한 불신”**을 뜻한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이 단어를 일관되게 "unbelief", "believed not" 등으로
정확하고 강력하게 번역하여,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복음의 핵심을 흔들림 없이 지킨다.
반면, **현대역본(NKJV, 개역, NIB 등)**은 이를 “불순종”으로 둔갑시켜
믿음에 행위를 끼워 넣는 교리적 오류를 정당화할 여지를 만든다.
복음은 "오직 믿음으로"이며,
그 믿음의 반대는 "불신"이지 "불순종"이 아니다.
이 진리는 킹제임스 성경만이 명확하게, 흔들림 없이 지켜 준다.
2025-05-23 08:42:26 | 관리자
에베소서 4장 22절의 부패한
에베소서 4장 22절은 성도의 삶의 변화, 즉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회심 후의 생활 변화를 다루는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이 구절의 핵심은 “옛 사람(the old man)”이 어떤 상태인가를 정의하는 데 있으며,
여기서 킹제임스 성경(KJV)과 현대역본들(NKJV, NIV, 개역 등) 사이에는
단어 해석의 차이로 인해 신학적 의미까지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에베소서 4:22 – 킹제임스 성경 (KJV)
“That ye put off concerning the former conversation the old man, which is corrupt according to the deceitful lusts.”
“이전 행실에 관한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
그 옛 사람은 속이는 욕망들에 따라 이미 부패한 자니라.”
KJV는 헬라어 원형을 따라 "is corrupt" – 현재 완료 상태로 번역함
→ 옛 사람은 이미 부패한 자이며, 그 상태가 지속되고 있음
이 번역은 옛 사람의 본질적 상태가 ‘완전히 부패한 존재’임을 전제한다.
→ 따라서 성도는 그것을 즉시 벗어 버려야 할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현대역본 (NKJV, NIV, 개역 등)
NKJV: “the old man which grows corrupt according to the deceitful lusts.”
NIV: “your old self, which is being corrupted…”
개역: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문제점:
“grows corrupt”, “being corrupted”, “썩어져 가는” → 점진적 부패
→ 이 표현은 옛 사람이 현재 진행형으로 부패 중이라는 의미를 주어
→ 아직 “완전히 부패한 것은 아니며, 부분적으로 괜찮을 수도 있다”는 신학적 착각을 줄 수 있음
부패의 정도가 상대적인 것으로 오해될 여지
→ 어떤 사람은 “나는 아직 부패되지 않았어. 그냥 나쁜 습관 정도지.”라고 생각할 수 있음
→ 이는 옛 사람의 죄된 본성을 본질적으로 부인하는 해석이다
헬라어 원어 분석
φθειρόμενον (phtheiromenon): 헬라어 현재 수동 분사
기본 동사: φθείρω (phtheirō) – 망치다, 파괴하다, 썩게 하다, 부패시키다
문맥상 현재 수동 분사는 단순히 “지금 썩어가는 중”이라는 의미보다,
“이미 부패되어 그 상태에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문법적으로도 가능하며,
특히 성경 문체에서는 현재 시제를 “본질적 상태”로 표현할 때가 많다.
이와 같은 예는 성경 전체에서 자주 나타남:
요 3:18 “믿지 아니하는 자는 이미 정죄를 받은 것이니” – 헬라어 현재시제 사용
요 15:6 “가지가 말라 버리면” – 본질적 상태 표현
즉, 헬라어 현재형을 단순히 진행형으로만 이해하면 의미를 축소하게 되고,
KJV처럼 **“본질적 상태로서의 부패”**로 해석하는 것이 신학적·문맥적으로 옳다.
신학적 적용
옛 사람은 애초부터 죄로 부패된 존재이며, 변화나 개선의 대상이 아니다
– 롬 6:6 “우리의 옛 사람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 갈 2: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 옛 사람은 제거, 벗어야 할 대상이지, 다듬어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성화는 ‘썩어져 가는 것’을 천천히 고치는 게 아니라, 이미 죽은 옛 사람을 ‘벗는’ 것에서 시작한다
→ KJV는 이 진리를 명확하게 보여 줌
→ 현대역본은 점진적 변화 개념을 집어넣어, 신자의 정체성과 분리의 시급성을 희석시킴
결론
에베소서 4:22의 핵심은 옛 사람의 상태가 어떤지를 밝히는 것이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원어 문법과 신학적 문맥을 따라
**"which is corrupt" (이미 부패한 옛 사람)**으로 정확히 번역하여,
옛 사람은 벗어야 마땅한, 구제 불능의 상태임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반면, **현대역본들(NKJV, 개역 등)은 “썩어져 가는” 또는 “grows corrupt”**로 번역하여
신자의 결단과 구별된 정체성을 흐리게 하고, 죄의 본질을 완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옛 사람은 “변화 중”인 존재가 아니라,
“죽어야 할, 이미 부패한 존재”다.
이 진리는 오직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바르게 전달된다.
2025-05-23 08:36:36 | 관리자
사도행전 19장 2절 오역
사도행전 19장 2절은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하여 요한의 제자들을 만났을 때 나눈 대화의 일부분으로,
성령님의 내주와 성령세례의 시점에 대한 매우 중요한 진술을 담고 있다.
이 구절은 단순한 시제 차이가 아니라, 신학적 해석, 역사적 사건의 순서, 성령론의 핵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이 구절을 정확한 원어 의미와 역사적 문맥에 근거해 번역했으며,
**현대역본(NKJV, NIV, 개역 등)**은 시제와 문맥을 무시한 오역을 하고 있다.
사도행전 19:2 – 킹제임스 성경 (KJV)
“Have ye received the Holy Ghost since ye believed?”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
이 번역은 믿음 이후에 성령님을 받았는가라는 질문이며,
이는 바울이 그들의 현재 상태를 묻는 실질적이고 정확한 질문이다.
현대역본 (NKJV, NIV, 개역 등)
NKJV: “Did you receive the Holy Spirit when you believed?”
개역: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 번역은 성령을 믿는 순간에 자동적으로 받았는지를 묻는 구조로 되어 있다.
즉, 이미 그들이 신약적 믿음을 가졌다는 전제를 깔고, 그 순간 성령이 임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문제점:
역사적 문맥과 완전히 모순된다.
원어 문법 분석을 무시했다.
신학적 오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헬라어 원문 분석
Εἰ Πνεῦμα Ἅγιον ἐλάβετε πιστεύσαντες;
πιστεύσαντες: aorist participle (단회적 과거 분사), "너희가 믿은 후에"
문법적으로는 "믿은 시점 이후에 무언가가 일어났는가"를 묻는 문장 구조이다.
따라서 가장 올바른 번역은 **“너희가 믿은 후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이며,
이는 KJV가 **“since ye believed”**로 정확하게 반영한 것이다.
역사적·신학적 문맥 분석
이들은 ‘요한의 침례’만 알고 있었던 자들이다 (행 19:3).
→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듣지도, 오순절 이후 성령을 받지도 못했다.
요한의 침례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오순절 이전에 행해졌고,
성령의 내주와 세례는 예수님의 승천 후 오순절에 주어졌다 (요 7:39, 행 2:1-4).
바울은 그들에게 이미 믿음이 있었음을 인정하되,
그 믿음이 복음 완성 이전의 믿음임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믿은 후로 성령을 받았는가?”**라고 질문한 것이다.
반면, NKJV 식으로 **“믿을 때 성령 받았느냐?”**라고 묻는다면,
바울은 그들이 이미 예수님을 믿고 복음으로 구원받은 상태라고 잘못 전제한 것이 되며,
이후 그들에게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고 침례까지 주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충돌하게 된다 (행 19:4–5).
결론
사도행전 19장 2절은 바울이 요한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믿은 후로 성령을 받은 적이 있느냐?”**라고 묻는 본문이다.
**헬라어 원문(πιστεύσαντες)**은 단순한 “믿을 때”가 아니라, “믿은 이후로”라는 의미의 과거 분사로 사용되었으며,
문법적으로나 문맥적으로도 “since ye believed”가 정확한 번역이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이 구절을 원어와 역사, 신학적 맥락에 따라
정확하게 번역하여 바울의 의도와 사도행전의 진행 흐름을 충실히 반영한다.
반면, NKJV, NIV, 개역 등의 현대역본은 이 시제를 무시하고 신학적으로 모순된 구조를 형성하여,
본문 이해를 어렵게 하고 성령론과 구원론의 혼동을 초래한다.
이 구절은 또다시 킹제임스 성경만이 원어의 정확성과 신학적 정합성을 지키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본문이다.
2025-05-23 08:33:32 | 관리자
요한복음 14장 16절의 위로자
요한복음 14장 16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구절로,
성령님의 역할과 본질을 가장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핵심 본문이다.
이 구절에서 **킹제임스 성경(KJV)**은 성령님을 **“Comforter” (위로자)**라고 정확히 번역하였으나,
**현대역본들(NKJV, ESV, 개역, 개정 등)**은 이를 “Helper” (도우는 자) 또는 **“보혜사”**라는
애매하고 모호한 용어로 바꾸어 성령님의 본래 의미와 사역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요한복음 14:16 – 킹제임스 성경 (KJV)
“And I will pray the Father, and he shall give you another Comforter, that he may abide with you for ever.”
“내가 아버지께 기도하겠고 그분께서 너희에게 다른 위로자를 주시리니, 그분께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거하시리라.”
이 구절의 핵심 단어는 헬라어 **παράκλητος (paraklētos, Strong’s #3875)**이다.
KJV는 이를 정확히 **“Comforter” (위로자)**로 번역했다.
단어 분석 – παράκλητος (paraklētos)
어원 구성: παρά (para, 곁에) + καλέω (kaleō, 부르다)
문자적 의미: “곁으로 부름받은 자”, 즉 격려하고 위로하고 돕기 위해 가까이 오신 분
실제 의미: 위로자, 격려자, 권면자, 상담자, 조언자
사용 예:
요한복음 14:16, 14:26, 15:26, 16:7 – 성령님을 가리킬 때 사용
요한일서 2:1 – 예수님을 가리킬 때 사용: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paraklētos)**가 계시니…”
즉, paraklētos는 단순히 “돕는 자”가 아니라,
정서적·영적 위로와 격려, 보호, 상담, 중보를 포함하는 고귀한 역할을 의미한다.
현대역본 (NKJV, ESV, 개역개정 등)
NKJV / ESV: “...another Helper.”
개역 / 개역개정: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문제점:
**“Helper” (도우는 자)**는 너무 일반적이고 기능적인 번역이다.
→ 누군가를 도울 수는 있으나, 위로하거나 격려하지 않을 수도 있다.
→ 성령님의 깊고 인격적인 사역을 기능적 보조자로 격하시킨다.
**“보혜사”**는 의미가 불분명한 음역어(소리만 가져온 단어)
→ 대부분의 성도들이 “보혜사”가 무슨 뜻인지 모름
→ 본문의 본래 의미 전달에 완전히 실패
신학적 함의 약화
– 예수님은 “또 다른 위로자(another Comforter)”라고 하심으로써,
자신이 첫 번째 위로자이며, 성령님이 그 역할을 이어 수행하심을 밝히셨다.
– “Helper”로 번역하면 예수님의 사역과의 연속성이 사라진다.
성령님의 사역과 “Comforter”의 중요성
영적 위로자
– 고난받는 성도를 위로함 (롬 15:13, 고후 1:3–4)
– 진리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격려하심 (요 16:13)
중보자, 대언자 역할
–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중보하심 (롬 8:26–27)
– 죄에 대해 책망하시고 바른 길로 권면하심 (요 16:8)
예수님의 대리 사역자
– 예수님이 떠나신 후, 그와 같은 역할을 이어받은 “또 다른 위로자”
– 예수님의 존재와 은혜를 지속적이고 내주적으로 경험하게 하시는 분
Comforter는 단순히 돕는 것이 아니라, 위로와 진리 안에서의 확신, 친밀한 동행, 용기를 불어넣는 사역자라는 것을 강조한다.
결론
요한복음 14장 16절에서 사용된 **παράκλητος (paraklētos)**는
단순한 돕는 자가 아니라, 위로자, 상담자, 중보자, 권면자의 깊은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이를 **“Comforter” (위로자)**로 정확히 번역하여,
성령님의 인격적·영적 사역을 가장 온전하게 전달한다.
반면, NKJV, 개역, NIV 등의 현대역본은 “Helper”, “보혜사” 등의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여
성령님의 신적 역할과 예수님의 사역과의 연결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성령님은 단순히 도우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곁에 계시며 위로하고, 진리 가운데 인도하고, 확신과 담대함을 주시는
"Comforter", 곧 하나님 자신의 인격적 임재이시다.
이 진리는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서만 가장 분명하고 바르게 전해진다.
2025-05-23 08:32:26 | 관리자
디모데후서 2장 15절 연구하라
디모데후서 2장 15절은 성경 교사이자 일꾼으로 부름받은 디모데에게 주는 바울의 중요한 권면으로,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일꾼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자세를 명시하고 있다.
이 구절의 번역에서 **킹제임스 성경(KJV)**은 핵심 단어를 **“Study” (공부하라, 연구하라)**로 번역했으며,
반면 **현대역본들(NKJV, NIV, 개역 등)**은 이를 **“Be diligent” (힘쓰라, 부지런히 하라)**로
보다 일반적이고 모호한 표현으로 바꾸어 중요한 성경적 명령을 흐리게 했다.
1.디모데후서 2:15 – 킹제임스 성경 (KJV)
“Study to shew thyself approved unto God, a workman that needeth not to be ashamed, rightly dividing the word of truth.”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너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여기서 “Study”라는 단어는 단순한 노력이나 종교적 활동이 아니라,
말씀을 올바르게 나누기 위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공부하라는 명령이다.
2.현대역본 (NKJV, ESV, 개역성경 등)
NKJV: “Be diligent to present yourself approved to God…”
개역: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Be diligent” 또는 “힘쓰라”는 표현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뜻이 모호함
→ ‘어떤 방향으로 힘쓰라는 것인가?’가 불명확하다.
→ 독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석하게 되어 권면의 구체성이 사라진다.
행위 중심의 해석으로 흐르기 쉬움
→ 예: 봉사, 헌금, 기도, 예배 출석 등 종교적 열심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 바울이 강조한 것은 **“말씀을 연구함으로써 진리를 올바르게 나누는 능력”**이다.
3.헬라어 원어 분석 – σπουδάζω (spoudazō, Strong’s #4704)
기본 의미: “열심히 하다, 간절히 노력하다, 집중적으로 행하다”
문맥상 사용: 단순한 부지런함이 아니라 특정한 목적을 위해 집중하는 태도
4.고대 문헌 및 성경 사용례:
에베소서 4:3 – “성령께서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간절함, 긴급성)
갈라디아서 2:10 – “가난한 자들을 기억해 줄것을 원하였는데 바로 그것은 나 역시 열심히 행하던 일이니라”
→ 특정 사명을 위해 정신적 집중과 행위의 구체성이 함께 나타나는 단어
KJV는 이 단어를 “Study”라고 번역하여, 그 맥락을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연구하여 올바르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구체적 실천으로 정확히 전달한다.
5.신학적·영적 중요성
“Study”는 지적 헌신과 영적 책임을 동시에 요구
– 단순한 열심이 아니라 진리의 정확한 전달을 위한 연구자적 자세
– 디모데는 교사로서 말씀을 잘못 나누지 않기 위해 반드시 공부해야 했다.
마귀는 우리가 종교적 활동에는 열심 내길 바라지만, 말씀 공부에는 관심 없게 만들려 한다
– 미사, 예식, 반복 기도에는 열심이 있어도
– 말씀 자체를 연구하지 않으면 진리를 분별하지 못한다.
성경은 공부 없이 이해되지 않는다
– 베드로후서 3:16: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들이 있어…”
– 성경은 공부하지 않으면 왜곡하거나 잘못 적용하기 쉽다.
결론
디모데후서 2장 15절에서 사용된 헬라어 **σπουδάζω(spoudazō)**는
단순히 “부지런하라”는 뜻이 아니라, 정신을 집중하여 진리를 연구하고 실천하라는 뜻이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이를 정확히 **“Study” (연구하라)**로 번역하여,
성경 교사와 모든 신자가 가져야 할 말씀에 대한 지적 헌신과 집중적 탐구의 자세를 강조한다.
반면, 현대역본들은 이를 “부지런하라, 힘쓰라”로 번역하여,
그 의미를 모호하고 일반적인 종교적 태도로 희석시켜 버렸다.
말씀을 바로 나누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열심이 아니라, 킹제임스 성경이 명령하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삶"이 반드시 필요하다.
2025-05-22 21:20:15 | 관리자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의 명확한 번역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은 성도에게 주어지는 짧지만 강력한 권면의 말씀으로,
**“악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제공한다.
이 구절에서 **킹제임스 성경(KJV)**과 **현대역본들(NKJV, NIV, 개역 등)**은
단어 선택의 차이로 인해 적용 범위와 교리적 깊이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1.데살로니가전서 5:22 – 킹제임스 성경 (KJV)
“Abstain from all appearance of evil.”
“모든 모양의 악을 삼가라.”
여기서 핵심 단어는 **“appearance”**이며,
원어 헬라어는 **εἶδος (eidos, Strong’s #1491)**이다.
단어 분석 – εἶδος (eidos)
뜻: “외형, 모습, 눈에 보이는 것, 외관, 외적인 형태”
용례:
누가복음 3:22 –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eidos)**로 그분 위에 내려오시니”
요한복음 5:37 – “그분의 음성을 듣지도 못했고 모양도 보지 못했노라”
이 단어는 본질이 아닌 ‘겉으로 보이는 형태’, 즉 **‘모양’ 또는 ‘외양’**을 의미한다.
따라서 **‘appearance of evil’**은 악처럼 보이는 것, 즉 **“악하게 보일 수 있는 외형이나 행위”**를 가리킨다.
2.현대역본들 (NKJV, NIV, 개역 등)
NKJV/NIV: “Abstain from every form of evil.”
개역: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이들 번역은 “모양(appearance)”이라는 시각적, 외형적 개념을 제거하고,
“형태(form)” 또는 “종류(kind)”로 바꾸어
→ “모든 종류의 악을 삼가라”는 뜻으로 제한함.
3.문제점:
적용 범위가 축소됨:
→ KJV: “악처럼 보이는 것도 삼가라” (ex: 간증 손상 방지)
→ NKJV: “실제 악한 것만 삼가라” (보이는 외형은 중요하지 않음)
성도의 간증과 정결한 생활에 대한 교훈 약:
→ 현대역본은 행위의 본질에만 집중하지만,
→ KJV는 행위가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가까지 포함
4.신학적·실천적 적용
KJV의 번역 "all appearance of evil"은 다음과 같은 실제적 경고를 포함한다:
내가 하는 일이 비록 죄가 아닐지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악하게 보일 수 있다면 삼가야 한다.
예: 바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자주 출입하면,
실제 목적은 선하더라도 외부 사람에게는 악하게 보일 수 있음.
성도의 간증은 외부인이 보기에 명백하게 거룩하고 정결해야 함
→ 이는 바울이 고린도후서 8:21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주 앞에서뿐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정직하게 하려 함이라”와 일치함.
타인의 양심을 해치지 말라는 로마서 14장 원리와도 맞닿아 있음.
결론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에서 사용된 헬라어 **εἶδος (eidos)**는
**“외형, 외모, 겉으로 보이는 모양”**을 뜻하며,
**킹제임스 성경(KJV)**은 이를 **“appearance of evil”**로 정확히 번역함.
KJV의 번역은 단순히 악한 행위를 삼가라는 수준을 넘어,
악하게 보일 수 있는 모든 행위나 상황도 삼가야 한다는 고차원의 교훈을 제공한다.
반면, NKJV, NIV, 개역성경 등은 이를 단순히 “모든 종류의 악”으로 번역하여,
성도의 간증, 주변의 인식, 거룩한 외적 표시에 대한 성경적 균형을 놓치고 있다.
이 구절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달하고
성도의 삶의 정결함을 지키는 데에 있어서
킹제임스 성경이 가장 신실하고 정확한 번역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 준다.
2025-05-22 21:16:49 | 관리자
이사야 53장 9절 오역 문제
이사야 53장 9절은 메시아의 고난과 죽음을 예언하는 중심 구절 중 하나로,
예수 그리스도의 장사(葬事)와 관련된 정확한 묘사를 담고 있다.
이 구절에서 킹제임스 성경(KJV)과 현대역본들(NKJV, NIV 등) 사이에는
주어가 누구인가, 그리고 행위의 의도가 누구에게 있었는가에 대해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이는 단순한 번역 차이가 아니라 예수님의 수동적 죽음 vs. 능동적 순종이라는
신학적 주제를 결정짓는 중요한 해석 차이다.
1.이사야 53:9 – 킹제임스 성경 (KJV)
"And he made his grave with the wicked, and with the rich in his death..."
“그는 자기 무덤이 사악한 자들과 함께 있도록 하였으며, 죽어서는 부자와 함께하였으니...”
여기서 주어는 “그(he)”, 즉 메시아이신 예수님 자신이다.
**“he made his grave”**는 그분 스스로 자기 무덤을 그렇게 정하셨다는 능동적 표현이다.
이 구조는 예수님께서 자발적으로 사악한 자들의 길과 죽음에 동참하셨으며,
그 죽음 후에는 부자 요셉의 무덤에 묻히시는 데까지 모두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 일임을 강조한다.
즉, 예수님의 죽음은 타인에 의해 강제로 당한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이 스스로 내려오신 선택이며, 장사 방식조차 섭리 가운데 정하신 순종이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2.현대역본들 (NKJV, NIV, 개역 등)
NKJV: “And they made His grave with the wicked—But with the rich at His death…”
개역: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되었으며 그 죽음에 있어서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여기서 주어는 “그들(They)” 혹은 수동태 표현, 즉
예수님의 무덤이 다른 사람들(로마 병정, 유대 지도자들 등)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방향이다.
3.문제점:
예수님의 능동적 순종과 자기 헌신을 제거
→ 예수님을 고난의 수동적 희생양처럼 표현하게 됨.
예언의 섭리성과 정밀함이 약화됨
→ 실제로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죽으셨으나
(두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에 달리심),
부자 요셉의 새 무덤에 묻히신 것이
하나님의 예언적 섭리의 성취라는 측면이 약해진다.
4.히브리어 문법 오해
→ 원어 히브리어에서도 주어는 “그(he)”이며, 동사 **"וַיִּתֵּן (vayyitén)”**은 히필형으로
**능동적인 “그가 주었다, 두었다”**는 의미이다.
→ 즉, 그가 자기 무덤을 정하셨다는 의미가 문법적으로도 옳다.
5.히브리어 원어 분석
וַיִּתֵּן קִבְרוֹ אֶת־רְשָׁעִים (vayyitén qivro et resha‘im)
→ “그는 자기 무덤을 사악한 자들과 함께 주셨다 / 두셨다”
동사 “natan (נתן)”의 히필형 (causative)
→ “자신이 그렇게 하게 했다”, “그가 두었다, 정했다”는 능동적 의미
따라서 KJV의 번역 “He made his grave with the wicked”는 히브리어 문법상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6.신학적·예언적 중요성
예수님의 자발적 순종 강조
– “아버지여, 내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겠나이다”라는
누가복음 22:42의 겟세마네 기도와 일치
– “내가 내 생명을 스스로 내어주노라” (요 10:18)라는 자기 희생과도 연결
7.예언의 섬세한 성취 강조
– 죄인들과 함께 죽고, 부자의 무덤에 장사된 사건
(마 27:57–60, 요 19:38–42)은 이사야의 이 예언을 정확히 이루신 것
8.현대역본의 신학적 희석
– 주어를 바꾸거나 수동적 해석을 하면
→ 예수님의 주권적 희생과 예언의 정밀한 성취가 흐려짐
결론
이사야 53:9에서 히브리어 본문은 명백하게 예수님이 자신의 무덤이 사악한 자들과 함께 있게 하셨다고 말한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이 구조를 **"He made his grave with the wicked"**로
정확하고 신학적으로도 깊이 있게 번역하고 있다.
반면 NKJV, NIV, 개역 등 현대역본들은 주어를 바꾸거나 수동화함으로써,
예수님의 능동적 순종과 섭리적 예언 성취를 약화시켰다.
이 구절은 또한 예언된 메시아가 고난과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섬세한 묘사 중 하나이며,
그 의미는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서만 온전히 보존되고 전달된다.
2025-05-22 21:12:47 | 관리자
아가서 1장 4절 오역 문제
아가서 1장 4절은 술람미 여인이 사랑하는 자(솔로몬)와의 관계를 찬미하며, 다른 사람들 또한 그를 어떻게 보는지를 묘사하는 장면이다.
이 구절에서 **“그들이 당신을 사랑하나이다”**는 진술 앞에 나오는 히브리어 단어는 해석의 핵심이며,
**킹제임스 성경(KJV)**과 **현대역본들(NIV, 개역 등)**은 이 단어의 품사와 용법에 대한 이해 차이로 인해 다른 번역을 보여준다.
1. 아가서 1:4 – 킹제임스 성경 (KJV)
“… the upright love thee.”
“… 올바른 자들이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여기서 “the upright”는 명사로 번역되었으며,
히브리어 원어는 **מֵישָׁרִים (meysharim, Strong’s #4339)**이다.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복수형 명사이며,
뜻은 **“올바른 자들, 정직한 자들, 바르게 걷는 자들”**이다.
따라서 KJV는 이 단어를 문법적으로도, 의미적으로도 정확하게 **“the upright (명사)”**로 번역하였고,
→ 그 결과 “**의로운 자들(다른 이들)**도 그(사랑하는 자)를 사랑한다”는 진술이 된다.
2.현대역본 (NIV, 개역 등)
NIV: “We rejoice and delight in you; we will praise your love more than wine.
How right they are to adore you!”
개역: “우리가 너를 기억함이 포도주보다 즐거움이라
사람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함이니라.”
현대역본들은 **מֵישָׁרִים (meysharim)**을 부사적 의미로 해석하여,
“올바르게”, “당연하게”, “마땅하게” 등으로 번역한다.
3.문제점:
문법상 오류 가능성:
– 이 단어는 문맥상 명사 복수형이며,
– 구약 전체에서 부사로 사용된 사례는 희박하다.
– 성경 히브리어에서 부사적 용법이 필요할 경우 일반적으로 다른 형태나 전치사 구조를 사용한다.
의미의 흐림:
– “마땅하게 사랑한다”는 해석은 누가 사랑하는지 주체가 모호해지며,
– 이 구절의 중심 흐름인 공동체 전체가 왕(사랑하는 자)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약화된다.
4.원어 분석 – מֵישָׁרִים (meysharim, Strong’s #4339)
형태: 복수형 명사
어근: יָשָׁר (yashar) – “곧다, 정직하다, 바르다”
의미: “정직함, 곧음, 올바른 자들”
5.사용 예시:
– 시편 112:2: “정직한 자들의 세대는 복이 있으리로다.” (yesharim 사용)
– 잠언 2:7: “그는 정직한 자들을 위하여 지혜를 예비하시며…”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의로운 자들 혹은 곧은 성품을 가진 자들이라는 집단적 주체를 가리킨다.
6.문맥적 흐름
아가서 1장 4절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찬양이다:
“우리가 너를 기뻐하며 즐거워하리이다.”
→ 공동체의 환영
“우리가 네 사랑을 포도주보다 더 기억하리이다.”
→ 그 사랑의 고귀함
“올바른 자들이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KJV)
→ 다른 많은 올바른 자들이 솔로몬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객관적 인정
이 구조는 단지 개인의 사랑만이 아니라, 왕(사랑하는 자)의 고귀함과 인격을 다른 이들도 인정하며 사랑함을 보여주는 문맥상 자연스러운 진술이다.
결론
아가서 1장 4절의 히브리어 단어 **מֵישָׁרִים (meysharim)**은 명사 복수형이며,
“올바른 자들”, “정직한 자들”을 의미한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이 단어를 정확히 명사로 인식하여 **“the upright love thee”**라고 번역함으로써,
문법적으로도 정확하고 문맥적으로도 조화로운 해석을 제공한다.
반면, NIV, 개역 등 현대역본은 이를 부사로 오해하거나 의역함으로써,
의미를 약화시키고, 공동체적 고백이 가진 힘을 떨어뜨린다.
이 구절 역시 원어와 문맥을 정확히 반영한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가장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2025-05-22 21:05:53 | 관리자
전도서 5장 20절 오역 문제
전도서 5장 20절은 사람이 하나님께 받은 삶의 몫 속에서 기쁨을 누리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구절이다.
이 구절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시는가에 있으며,
**킹제임스 성경(KJV)**과 현대역본들(NIV, 개역 등) 사이에 번역상의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1.전도서 5:20 – 킹제임스 성경 (KJV)
“For he shall not much remember the days of his life; because God answereth him in the joy of his heart.”
“그는 자기 삶의 날들을 많이 기억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이 기뻐하는 것으로 그에게 응답하시기 때문이니라.”
이 구절의 핵심 단어는 **"answereth"**이며,
히브리어 **עָנָה (anah, Strong’s #6031)**는 **“응답하다, 대답하다”**는 뜻이다.
이 동사는 구약 전체에서 300회 이상 사용되며,
대부분 기도나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묘사할 때 쓰인다.
KJV는 이 단어의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의미인 **“응답하다”**를 그대로 번역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사람의 삶과 감정에 실제적으로 반응하신다는 성경적 관점을 유지한다.
2.현대역본 (NIV, 개역성경 등)
NIV: “...because God keeps them occupied with gladness of heart.”
개역: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쁨을 주사 그가 자기의 생애를 깊이 생각하지 않게 하심이니라”
문제점:
NIV 등은 **anah를 “keep occupied” 즉, “계속 바쁘게 하다”**로 번역함
→ 이는 본래 의미에서 상당히 벗어난 의역적 해석이다.
개역성경은 “기쁨을 주사”라고 번역하며 ‘응답하다’의 능동적 반응성을 제거
→ 하나님께서 사람의 기쁨을 내면적 상태나 분위기로 던져주는 것처럼 흐려진다.
결국,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응답적 관계’가 번역에서 사라짐
3.히브리어 원어 분석 – ענה (anah, Strong’s #6031)
뜻: to answer, to respond, to reply
동사 형태: Qal, Niphal, Hiphil 등 다양하게 사용되나,
이 구절에서는 하나님이 주체이며 사람에게 응답하는 문맥(Qal 또는 Hiphil)
4. 구약 사용 예시:
시편 20:1: “환난 날에 {주}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창세기 18:27: “내가 주께 대답하여 이르되...”
→ 항상 '응답'의 의미가 지속적으로 유지됨
따라서 이 단어를 “바쁘게 하다”로 해석하는 것은 의미를 과도하게 재해석한 왜곡된 번역이다.
5. 문맥적 이해
이 구절의 앞부분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수고와 몫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복을 말하고 있다 (전도서 5:18–19).
따라서 20절의 요지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마음의 기쁨 안에서 ‘응답하시고 반응하심’**으로 인해
그 사람은 삶의 고달픔과 날들을 지나치게 돌아보지 않게 되는 은혜를 입는다.
즉, 하나님이 그의 기쁨에 참여하시고 실제로 반응하시는 관계적 신앙이 강조되어야 한다.
결론
전도서 5장 20절은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사람에게 ‘응답하신다’는 깊은 교리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히브리어 **anah (answer)**의 원뜻을 **정확히 살려서 "God answereth him"**이라고 번역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적 반응을 충실히 표현한다.
반면, NIV, 개역성경 등은 “그를 바쁘게 하신다”는 식의 의역으로 하나님의 응답 개념을 흐리게 하고,
사람의 심리적 상태로 축소하여 본문의 깊은 의미를 훼손한다.
이 구절 역시 원문에 충실한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보존하고 있다는 또 하나의 분명한 증거가 된다.
2025-05-22 21:00:55 | 관리자
고린도후서 2장 17절의 오역
고린도후서 2장 17절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다루는 태도에 대해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패시키는 자들에 대한 경고를 포함한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KJV)**과 **현대역본들(NKJV, NIV, 개역 등)**은 이 구절의 번역에서 의미 차이가 크며,
그 중심에 있는 그리스어 단어의 본래 의미와 사본 선택이 번역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1. 킹제임스 성경 (KJV)
"For we are not as many, which corrupt the word of God..."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패시키는 많은 사람들 같지 아니하고...”
여기서 핵심 단어는 **“corrupt”**인데, 헬라어 **καπηλεύοντες (kapēleuontes)**는 원래
**"이익을 위해 속이거나 물건을 희석시키는 상인"**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당시 작은 포도주 장사꾼들이 물을 타서 포도주를 부정하게 파는 행위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바울은 이 단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사적 이익이나 변개를 통해 속이거나 희석시키는 자들"**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2. 현대역본 (NKJV, NIV, 개역성경 등)
NKJV: “For we are not, as so many, peddling the word of God...”
개역: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NIV: “Unlike so many, we do not peddle the word of God for profit...”
문제점:
**“peddle”**은 단지 “소규모로 판매하다”는 의미로 오해될 수 있음.
→ 부정한 행위의 뉘앙스를 대폭 약화시킴.
→ 본래 “부패시키다”는 의미가 흐려짐.
**“혼잡하게 하다”**라는 표현(개역성경)은
→ 그리스어 원어의 뜻과 완전히 무관한 표현이며,
→ 의미를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만들어 본문 경고의 날을 무디게 함.
3. 원어 분석 – καπηλεύω (kapēleuō, Strong’s #2585)
의미: “이익을 위해 물건을 희석하거나 조작하여 파는 것”
어원: 고대의 포도주 장사꾼들이 물을 타서 포도주를 희석시키거나 속이는 행위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고후 2:17 단 한 번만 등장하며,
그 맥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익을 위해 희석, 변개, 왜곡하는 것”**을 지칭함
바울은 정당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지 않고,
말씀을 장사 수단이나 사익 도구로 전락시키는 자들을 고발하고 있다.
4. 신학적·현대적 적용
이 구절은 단지 말씀을 잘못 전하는 자들뿐 아니라,
성경을 왜곡·편집·가감하여 판매하거나 새로운 판권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모든 자들에 대한 경고이다.
특히 오늘날 현대 성경 역본들이 매년 새로운 번역본을 만들어 내며,
말씀을 희석하거나 본문을 삭제하고, 판권으로 장사를 하는 행태는
바로 이 말씀에 나오는 **“부패시킨 자들”**과 다를 바 없다.
킹제임스 성경은 말씀 자체에 대한 경외와 보존의 태도를 가지고
**원어 의미를 그대로 “corrupt (부패시키다)”**로 번역함으로써
바울의 경고를 강하고 정확하게 전달한다.
결론
고린도후서 2장 17절의 중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패시키는 자들에 대한 경고”**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그리스어 καπηλεύω의 본래 의미를 정확히 반영하여
**"corrupt the word of God" (하나님의 말씀을 부패시키다)**로 강하게 표현함.
반면, NKJV, NIV, 개역 등 현대역본은 이 경고를 “혼잡하게 하다”, “팔아먹다” 등으로 축소하거나 흐림으로써,
말씀을 조작하는 자들에 대한 성경의 강력한 경고를 희석시키고 있다.
이 구절은 오늘날의 말씀 산업, 성경 번역 출판 사업의 상업화,
그리고 본문 변개 문제에 대해 예언적 경고를 주는 본문이며,
그 의미는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서만 온전히 드러난다.
2025-05-22 20:57:04 | 관리자
사무엘기하 5장 21절의 오역 문제
사무엘기하 5장 21절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친 후, 그들이 버리고 간 **우상들(형상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언급하는 구절이다. 이 본문은 신명기 7장 5절과 25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명령—즉 이방 신들의 형상은 반드시 불태우라는 율법—을 배경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KJV)**과 현대역본들(NKJV, NIV, 개역 등) 사이에는 결정적인 번역 차이가 있으며,
이는 단순한 언어적 문제를 넘어서 본문의 신학적 의미와 다윗의 순종 여부까지 영향을 미친다.
1. 킹제임스 성경 (KJV)
"And there they left their images, and David and his men burned them."
“거기서 그들이 자기들의 형상들을 버렸으므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것들을 불태우니라.”
여기서 **“burned them”**은 히브리어 동사 שָׂרַף (saraph), 즉 **“불태우다, 소각하다”**라는 명확한 의미를 가진 단어다.
이는 모세 율법, 특히 신명기 7장 5절, 25절의 명령과 정확히 일치한다:
신 7:5: “그들의 형상들을 불로 태울지니라.”
신 7:25: “그들의 신들의 형상들은 불로 태우며 너는 그것들을 취하지 말라… 그것은 {주} 네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니라.”
즉, KJV는 다윗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형상들을 불살랐음을 분명히 증언한다.
2. 현대역본들 (NKJV, NIV, 개역성경 등)
NKJV: “David and his men carried them away.”
NIV: “David and his men carried them off.”
개역: “다윗과 그 사람들이 그것들을 치우니라.”
이 번역들은 히브리어 **שָׂרַף(saraph)**를 아예 무시하거나, 다른 단어—예: **נָשָׂא (nasa, "to lift, carry away")**와 혼동한 듯한 표현으로 **"치우다, 가져가다"**로 번역한다.
이로 인해 다음과 같은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신명기 7장 25절과의 충돌
→ 하나님은 우상을 가져가서 보관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말고 불태우라고 명령하셨다.
→ 만일 다윗이 **“가져갔다(carry away)”**면,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이 된다.
다윗의 신앙과 경건에 대한 왜곡
→ 다윗은 하나님 앞에 정결하고 율법에 순종하는 자로서 알려져 있으며,
→ 우상을 취하거나 간직해 올무에 빠지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3. 본문적 신뢰도 약화
→ 헬라어 LXX(칠십인역)나 사해 사본, 혹은 일부 중세 후기 마소라 사본들에서
“불태웠다”가 “치웠다”로 바뀐 흔적이 있지만, 이는 히브리어 원문 오류가 아니라 필사적 변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4. 사본 증거
Textus Receptus 기반의 킹제임스 성경은 **봄베르그판 마소라 본문(1525)**을 따라
**“burned them (שָׂרְפוּם)”**이라는 정확한 동사를 보존하고 있다.
반면 **비평 본문(BHS)**이나 NKJV에서 참조한 일부 후기 사본들은
단어를 “운반하다” 혹은 “치우다”로 완화하거나 축소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문맥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보건대,
**불태우는 것(saraph)**만이 신 7:25의 명령과 일치하며, 다윗의 순종과 경건함을 유지하는 해석이다.
결론
사무엘기하 5장 21절은 하나님의 명백한 율법인 신명기 7장 25절과 연결된 본문이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블레셋의 우상을 불태웠다고 하여,
성경 간의 일관성과 다윗의 신앙적 순종을 정확하게 보존하고 있다.
반면, NKJV, NIV, 개역 등 현대역본들은 “치웠다” 또는 “가져갔다”고 번역함으로써,
본문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다윗을 율법에 불순종한 자처럼 왜곡하고 있다.
이 역시 번역의 문제이기보다 사본 선택과 해석의 문제이며,
정확한 본문과 신학적 적합성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킹제임스 성경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이다.
2025-05-22 20:53:05 | 관리자
고린도전서 16장 2절의 오역 문제
고린도전서 16장 2절은 사도 바울이 헌금에 대한 지침을 주는 말씀으로, 각 성도가 자기 소득에 따라 미리 준비해 두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구절의 번역은 사본 해석과 번역 철학에 따라 크게 달라지며, 하나님이 번창하게 하시는 것인가, 사람이 스스로 번창한 것인가에 대한 신학적 차이까지 생긴다.
이러한 차이는 그리스어 원어의 문법적 구조와 사본 해석에 대한 정확성에 기인하며, **킹제임스 성경(KJV)**은 이 구절을 정확하고 신학적으로도 일관되게 번역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6:2 –킹제임스흠정역(KJV)
“Upon the first day of the week let every one of you lay by him in store, as God hath prospered him, that there be no gatherings when I come.”
“주의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번창하게 해 주신 대로 자기 곁에 모아두어, 내가 갈 때에 모으는 일이 없게하라.”
여기서 핵심 구절은 "as God hath prospered him" 이다.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요소를 포함한다:
누가 번창하게 하시는가? → 하나님
헌금은 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행해져야 함
현대역본 (개역, NIV 등)
개역성경: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익을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NIV: “On the first day of every week, each one of you should set aside a sum of money in keeping with his income…”
이 번역들에서는 “하나님이 번창하게 하신 것”이라는 주어가 제거되어 있고,
단지 사람이 스스로 번창했거나 소득을 올렸다는 의미로 축소된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에 따른 헌금이라는 본문 구조가
→ 사람 중심의 수입에 따른 계산적 헌금으로 바뀌어 버린다.
헬라어 원문 분석
원문 구절: ὅ τι ἐὰν εὐοδῶται
→ 여기서 핵심 단어: εὐοδόω (euodoo, Strong’s #2137)
→ 의미: “번창하게 되다, 형통하게 되다”
Zodhiates, NT Word Study에 따르면: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수동태로만 사용되며,
그 의미는 항상 **‘하나님에 의해 번창하게 된다’**는 것이다.”
→ 자신이 번창시킨다는 의미로 쓰인 예는 없다.
고전 16:2의 문법적 구조는 수동태이며,
"as he is prospered" → **"as God has prospered him"**으로 해석해야 자연스럽다.
즉, 바울의 의도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번창하게 하신 만큼 헌금하라”는 것으로,
이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자발적 반응이다.
“lay by him”의 번역 문제
KJV는 또 다른 핵심 요소인 **“lay by him” (παρ᾽ἑαυτῷ)**도 충실히 번역했다.
→ 의미: 개인적으로, 자기가 미리 준비하여 따로 떼어 놓는 것
→ 개역성경 등은 이 표현조차 번역하지 않음으로써,
헌금의 준비성과 주간적 실행 원칙이 희미해짐
결론
고린도전서 16장 2절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번영에 대한 자발적 감사 헌금을 강조하는 구절이며, 헬라어 "euodoo"는 수동태로만 사용되어, 그 번영은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한다.
킹제임스 성경(KJV):
**정확한 문법 구조에 따라 “as God hath prospered him”**이라고 번역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과 성도의 반응이라는 신학적 균형을 보존한다.
현대역본들(NKJV, NIV, 개역 등):
하나님의 역할을 제거하거나 흐리게 하여,
헌금을 단순한 수입의 일부로 계산하는 인간 중심적 의미로 축소시킨다.
이 구절 역시 올바른 본문 보존과 신학적 해석의 기준은 킹제임스 성경에 있다.
잘못된 번역은 교리의 혼동으로 이어지므로, 사본 선택과 번역 철학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2025-05-22 20:49:35 | 관리자
히브리서 2장 16절 오역 문제
히브리서 2장 16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본질과 구속의 범위를 다루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 구절이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어떤 존재의 본성을 취하셨는지를 분명히 밝혀 주며,
사본 선택과 번역 철학에 따라 **킹제임스 성경(KJV)**과 현대역본(NKJV, NIV, 개역성경 등) 사이에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대표적인 본문이다.
1. 킹제임스 성경 (KJV)
“For verily he took not on him the nature of angels; but he took on him the seed of Abraham.”
“진실로 그분께서는 자기 위에 천사들의 본성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자기 위에 아브라함의 씨를 취하셨도다.”
이 번역은 헬라어 **ἐπιλαμβάνεται (epilambanetai)**의 본래 의미를 충실히 반영한다.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붙잡다, 취하다, 자기 것으로 삼다”**라는 뜻이며,
여기서는 예수님께서 천사들의 본성을 취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씨 즉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다는 성육신의 핵심 교리를 말한다.
2. 현대역본 (NKJV, NIV, 개역성경 등)
NKJV: “For indeed He does not give aid to angels, but He does give aid to the seed of Abraham.”
개역: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이 번역들은 ἐπιλαμβάνεται를 **“돕다(give aid)”**로 바꾸어 해석했는데,
이는 단어의 직역 의미를 흐리는 해석적 번역이다.
헬라어 ἐπιλαμβάνομαι는 주로 **“붙잡다, 취하다, 자기 것으로 삼다”**는 의미로 사용되며,
히브리서 문맥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본성을 입으셨다는 성육신 교리를 지지한다.
반면, **“도움을 준다”**는 해석은 전혀 다른 그리스어 동사(예: βοηθέω, boētheō)에 해당된다.
즉, NKJV, 개역, NIV 등은 이 단어를 본래 의미와 다르게 번역함으로써,
예수님의 성육신 교리를 흐리게 하고 “도움의 대상”이라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버린다.
3. 사본적 근거와 본문 전통
킹제임스 성경은 Textus Receptus를 따르며,
그 원문에서는 ἐπιλαμβάνεται가 **문법적 맥락상 ‘붙잡다, 취하다’**로 쓰인 것이 분명하다.
헬라어 문법과 구조상, **“붙잡다”**는 동작의 주체가 직접적으로 대상에 개입함을 의미하며,
이는 예수님께서 천사가 아닌 인간(아브라함의 씨)의 본성을 친히 입으셨다는 점을 강조하는 구절로 해석되어야 한다.
소수 사본 계열을 따르지 않고, 본문의 헬라어 자체를 기준으로 해석할 경우에도
‘돕다’라는 의미는 부자연스럽고 해석적 과잉 해석에 가까운 왜곡이다.
4. 신학적 중요성
성육신의 본질에 대한 직접적 선언
예수님은 천사와 같은 영적 존재의 본성을 취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육신을 입은 인간으로 오셨다.
이 구절은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교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5. 인간 구속의 범위 명시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의 씨를 취하셨다”**는 표현은
단지 유대 민족성의 강조가 아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 된 자들(갈 3:29)**에게 구원이 적용된다는 뜻이다.
6. 천사에 대한 구속이 아니라는 점 강조
예수님은 천사들을 구속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 인간의 본성을 친히 취하시고 죽으심으로써 구속하셨다.
이 점이 흐려지면, 성육신의 교리가 추상적 도움 제공 수준으로 격하되며,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본질적으로 왜곡될 위험이 있다.
결론
히브리서 2장 16절은 예수님의 성육신 교리와 구속 대상의 명확성을 설명하는 핵심 구절이다.
**킹제임스 성경은 헬라어 원문 의미에 충실하게 "그분께서 천사의 본성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아브라함의 씨를 취하셨도다"**라고 정확히 번역한다.
반면, 현대역본들(NKJV, NIV, 개역 등)은 “도와주다”는 식으로 본래 의미를 왜곡하여,
예수님의 인격적 성육신을 ‘구제 행위’로 축소시키는 해석 오류를 범하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의 바른 이해와 교리적 일치를 위해서는,
정확하게 보존된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2025-05-22 20:45:26 | 관리자
마태복음 12장 40절 고래
마태복음 12장 40절은 예수님께서 요나의 사건을 인용하시며, 자신의 죽음과 부활의 예표로 삼으신 중요한 말씀이다. 이 구절에서 킹제임스 성경(KJV)은 **“고래(whale)”**라고 정확히 번역하고 있지만, 현대역본(NIV, 개역성경 등)들은 이를 **“큰 물고기(great fish)”**로 번역하고 있다. 이 번역 차이는 단순한 어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본문의 원어, 그리스어 단어의 구분, 번역 신뢰성, 그리고 예수님의 정확한 말씀 보존 여부와 관련된 중대한 성경적·언어학적 문제이다.
1. 마태복음 12:40 – KJV vs. 현대역본
킹제임스 성경 (KJV)
“For as Jonas was three days and three nights in the whale’s belly, so shall the Son of man be three days and three nights in the heart of the earth.”
“요나가 사흘 낮과 사흘 밤을 고래 배 속에 있었던 것 같이 그렇게 사람의 아들도...”
KJV는 이 구절에서 헬라어 단어 **κήτους (ketous)**를 정확히 **"whale" (고래)**로 번역했다.
‘ketos’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고래류의 거대한 바다 짐승'을 의미하는 명확한 단어로, 일반 물고기와는 구별되는 표현이다.
현대역본 (NIV, NASB, 개역성경 등)
“as Jonah was three days and three nights in the belly of a huge fish...”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여기서 "great fish" 또는 **“큰 물고기”**로 번역됨으로써,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정확한 단어의 의미가 약화된다.
이는 단지 단어 선택이 아니라, 예수님의 언어 선택의 존중 여부, 즉 성경 무오성과 직역 충실성에 관련된 사안이다.
헬라어 원문 분석
고래(whale): κήτος (ketos) – 마 12:40
고대 그리스 문헌에서 ketos는 고래류나 바다 괴수 같은 거대한 해양 생물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이는 물고기를 뜻하는 단어와 명확히 구별됨.
물고기(fish): ἰχθύς (ichthus) – 마 7:10, 17:27
일반적인 작은 물고기를 지칭하는 단어로, 신약 성경 전체에서 널리 사용됨.
예수님께서도 여러 경우에 이 단어를 사용하셨으며, 필요시 정확히 구분하셨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2:40에서 굳이 'ichthus'가 아닌 'ketos'를 사용하신 것은 의도적인 선택이다.
즉, 이는 요나가 단순한 물고기가 아니라 ‘거대한 해양 생물’에 삼켜졌음을 정확히 드러내기 위한 표현이다.
3.사본 전통과 번역 차이
킹제임스 성경(KJV):
헬라어 Textus Receptus에 기초함.
‘ketos’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whale”**로 번역.
예수님의 언어 선택과 원문 충실성 보존.
현대역본들 (NIV, NASB, 개역성경 등):
비평본문(NA/BHS 기반)을 따름.
‘ketos’를 모호하게 “great fish”, “큰 물고기” 등으로 번역,
이는 단어의 역사적 의미를 약화시키고,
예수님의 의도된 표현을 축소하는 결과를 초래.
4.신학적·해석학적 중요성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예표로서의 요나의 사건은 **정확한 시간(3일 3밤)**과 함께 장소가 중요하다.
“고래”는 단순한 생물학적 분류가 아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 기적을 통해 일어난 구속적 사건의 실제성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요나 사건을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으로 말씀하셨으며,
거기에 등장하는 생물도 실제 있었던 특정한 해양 생물임을 전제로 하신 것이다.
따라서 이를 “물고기”로 축소하거나 바꾸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불필요한 해석적 왜곡으로 이어진다.
결론
마태복음 12장 40절은 예수님의 부활의 예표로서 요나 사건을 인용한 가장 중요한 말씀 중 하나이며,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헬라어로 명확히 “ketos(고래)”를 사용하셨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이 단어를 충실하게 **“whale(고래)”**로 번역하여,
예수님의 의도와 원문 의미를 보존하고 있다.
반면, 개역성경과 NIV 등 현대역본들은 “great fish, 큰 물고기”로 번역하여
그 의미를 축소시켰고, 예수님의 말씀 선택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했다.
이 역시 사본 선택과 번역 철학의 차이에서 기인하며,
성경의 무오성과 보존에 대한 올바른 입장은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유지된다.
2025-05-22 20:42:00 | 관리자
창세기 49장 6절 명백한 오역
창세기 49장 6절은 야곱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열두 아들들을 축복(또는 책망)하는 장면 중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경고이다.
이 구절의 핵심은 그들이 자기들의 분노와 의지대로 무엇을 행했는가에 대한 묘사인데, 킹제임스 성경(KJV)과 개역성경 및 현대 역본들(NIV, NKJV 등) 사이에는 현저한 번역 차이가 있으며, 이는 단지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히브리어 사본을 본문으로 삼았는가에 따른 차이, 즉 사본 문제이다.
1. 킹제임스 성경 (KJV)
“… and in their selfwill they digged down a wall.”
“... 자기들의 의지대로 벽을 파 내려갔기 때문이라.”
여기서 “벽을 파다(digged down a wall)”라는 표현은 레위와 시므온이 세겜 사건에서 폭력적으로 행동한 것, 즉 성읍의 성벽을 무너뜨리고 사람들을 학살한 행위를 묘사한다.
이 번역은 1525년 봄베르그판 마소라 본문(Bomberg Rabbinic Bible)을 따르고 있으며, 히브리어 "שור" (shur) – ‘벽(wall)’을 의미한다.
또한 구약 시대 대부분의 유대 주석가들(예: 라시(Rashi), 김히(Kimhi)) 등도 ‘벽’으로 해석한다.
2. 현대 역본 (개역, NIV 등)
“And in their selfwill they hamstrung an ox.”
“자기들의 의지대로 소의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여기서 “소의 힘줄을 끊다”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שור’를 ‘소(ox)’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모음 부호를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벽’(שׁוּר, shur) 또는 ‘소’(שׁוֹר, shor)로 나뉜다.
현대 역본들이 따르는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투트가르텐시아(BHS)는 모음 부호를 ‘shor’(소)로 표기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번역도 소의 힘줄을 끊다(hamstrung an ox)로 나온다.
3. 사본 및 본문 전통의 차이
킹제임스 성경 (KJV)
본문: 1525년 다니엘 봄베르그의 마소라 본문
모음: שׁוּר (shur) = ‘벽’
구약 당시 대부분의 라비 전통, 유대 주석, 타르굼(아람어역), 시리아어 페쉬타 역본도 이 해석을 따름.
개역성경, NIV, NKJV 등 현대 역본들
본문: BHS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1967/77)
모음: שׁוֹר (shor) = ‘소’
또한 칠십인역(LXX), 벌게이트(Vulgate) 등 헬라어 및 라틴어 번역본을 병행 고려
그러나 이들 본문은 종종 히브리어 본문의 문맥과 대조된다.
4. 신학적 문제
“소의 힘줄을 끊다”라는 표현은 성경 전체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 모호한 문장이며, 문맥상 세겜 사건의 폭력적 성읍 공격과 어울리지 않는다.
반면, “벽을 파 내려갔다”라는 표현은 당시 성읍을 파괴하거나 약탈할 때 전형적인 행동이다.
5. 논리성과 문맥적 일치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에 대해 매우 강한 비판을 하며, 그들이 “자기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자기들의 의지대로 벽을 허물었다”라고 말한다.
이는 창세기 34장의 세겜 학살 사건과 정확히 일치하며, 이 사건에서는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사람들을 속여 무력하게 만든 후 성읍을 공격하여 남자들을 도륙하고 약탈하였다.
→ “벽을 무너뜨렸다”라는 표현은 문맥적·역사적·전투적 정황에 부합한다.
→ 반면 “소의 힘줄을 끊었다”라는 표현은 도덕적 분노의 맥락과 맞지 않으며, 시므온과 레위의 폭력성을 묘사하기에는 모호하고 비논리적인 문장이 된다.
6. 결론
창세기 49장 6절에서 킹제임스 성경은 올바른 마소라 본문(봄베르그판)을 따라 "벽을 파 내려갔다"고 정확히 번역하며, 이는 문맥적·역사적·논리적 흐름과 완벽히 일치한다.
반면, 개역성경, NIV 등 현대 역본은 변개된 BHS 마소라 본문과 외경적 전통(칠십인역, 벌게이트)에 따라 "소의 힘줄을 끊었다"라고 번역함으로써, 본문 해석을 왜곡하고 있다.
이 사례는 킹제임스 성경이 왜 오늘날에도 정확하고 신실한 성경으로 보존되어야 하는지를 명백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며, 사본 선택이 어떻게 신학과 해석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드러낸다.
2025-05-22 20:38:15 | 관리자
이사야 9장 3절 중요 단어 삭제
이사야 9장 3절은 이스라엘의 상태에 대한 묘사로,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민족은 번성했으나 기쁨은 더하지 않으셨다는 강조된 대조를 담고 있다. 이 구절은 히브리어 원문(마소라 본문)에도 분명히 **부정어 "לא" (로, not)**가 들어 있어야만 문맥상 일관성과 논리성이 유지된다.
1. 킹제임스 성경 (KJV)
“Thou hast multiplied the nation, and not increased the joy…”
*“주께서 민족을 번성하게 하시되 기쁨을 더하지는 아니하셨나이다.”
이 구조는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민족의 수는 늘리셨지만,
기쁨은 더하시지 않았다는 절제된 은혜의 묘사이다.
이 구절은 회개 전 상태의 이스라엘, 즉 형식은 늘었으나 실속은 없던 영적 공허함을 드러낸다.
이 대조가 있어야 이어지는 구절에서의 **메시아 예언(6절)**이 필요성과 희망의 배경으로 연결된다.
2. 개역성경 및 현대역본의 문제
예: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KRV 및 NIV 등: You have multiplied the nation and increased its joy.)
이처럼 부정어 “not”이 완전히 삭제되어
마치 기쁨까지 풍성하게 하신 긍정적 결과처럼 왜곡되며,
문맥상 앞뒤 흐름이 맞지 않게 된다.
즉, 1–5절까지 어둠, 고통, 눌림이 중심이었던 이사야의 문맥에서
**"즐거움을 주셨다"**는 진술이 끼어들면 전체 흐름이 부자연스럽다.
3. 사본적 증거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Masoretic Text)**에는
**"לא" (로, NOT)**라는 부정어가 분명하게 포함되어 있음
→ בִּלְתִּי הִרְבִּיתָ לָּהּ הַשִּׂמְחָה ("but not increased joy")
이는 고대 유대 전통, Targum, 페쉬타(Peshitta, 시리아어 역본) 등에서도 확인되며,
대부분의 히브리어 권위 사본들과 주석가들(예: 케일 & 델리치)도 동일한 구조를 지지한다.
반면, 현대 역본들이 따르는 일부 **그리스어 번역본(LXX)**과 소수 영어 번역들은
"not"을 생략하거나 부정 구문을 긍정문으로 전환시킴 → 이는 본문의 대조 구조를 무너뜨림
결론
이사야 9장 3절의 핵심은
**“민족은 늘렸지만, 기쁨은 늘리지 않으셨다”**는 하나님의 은혜의 제한과 훈련의 필요성에 있다.
킹제임스 성경은 마소라 본문을 충실히 반영하여 "not"이라는 부정어를 보존함으로써
문맥의 흐름과 메시아 예언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개역성경과 NIV 등 현대 역본들은 소수 본문 또는 번역상의 단순화로 인해,
부정어를 삭제함으로써 논리적, 신학적 연결을 왜곡하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도 정확한 말씀 보존은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유지되며,
그에 따라 올바른 신학적 해석이 가능하다.
2025-05-22 20:33:05 | 관리자
마가복음 2장 21절 중요 부분 삭제
마가복음 2장 21절은 예수님께서 새로운 복음과 옛 율법 체계를 대비하시며,
그 두 체계를 섞어서는 안 된다는 진리를 비유로 설명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에서 핵심은 **“그것을 메운 새 조각”**이라는 표현이다.
이 말이 포함되어야만, 비유의 논리적 연결과 파괴의 원인이 명확히 드러난다.
그러나 천주교 소수 사본을 따르는 개역성경, NIV 등 현대역본들에서는 이 중요한 구절 일부가 생략되어 있다.
1. 킹제임스 성경 (흠정역)
막 2:21
“또한 아무도 새 옷감 조각을 낡은 옷에 대고 깁지 아니하나니,
그리하면 그것을 메운 새 조각이 낡은 옷을 당기어 그 찢어짐이 더 심하게 되느니라.”
이 구조에서 “그것을 메운 새 조각”(the new piece that filled it up)은 비유 전체의 핵심이다.
“그것”은 낡은 옷의 찢어진 부분을 말하며,
**“메운 새 조각”**은 그것을 덧대려고 한 새로운 천 조각이다.
이 말이 반드시 있어야, 무엇이 당기고, 왜 찢어짐이 더 심해지는지에 대한 설명이 논리적으로 완성된다.
2. 개역성경 및 현대역본(NIV 등)의 번역
개역성경: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NIV: “No one sews a patch of unshrunk cloth on an old garment.
Otherwise, the new piece will pull away from the old, making the tear worse.”
이 번역들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그것을 메운”이라는 표현이 생략됨
→ 비유의 논리가 자체적으로 왜 새 조각이 문제를 일으키는지 불명확해진다.
→ 독자는 단순히 “새 것이 낡은 것을 당긴다”는 결과만 듣고, 그 원인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놓치게 된다.
3. 비유의 구조적 긴밀성 파괴
원래 예수님의 비유는
"낡은 옷이 찢어져 있음 → 그것을 새 조각으로 메우려 함 → 결과적으로 더 찢어짐"
이라는 논리적 3단 구조인데,
중간 단계인 **“그것을 메운 새 조각”**이 사라지면서 비유의 흐름이 불완전해진다.
4. 사본적 증거
킹제임스 성경이 따르는 Textus Receptus 및 다수의 **비잔틴 사본(Majority Text)**은
“τὸ πλήρωμα αὐτῆς τὸ καινὸν”, 즉 **“그것을 메운 새 조각”**이라는 표현이 명확히 포함되어 있다.
이 표현은 헬라어 문장 구조상:
τὸ πλήρωμα – “메운 것”, “보충하는 것”
αὐτῆς – “그것의” (즉, 낡은 옷의 찢어진 부분)
τὸ καινὸν – “새로운 것” (새 조각)
즉, **“그 찢어진 것을 메우기 위한 새 조각”**이라는 명백한 구문이 들어 있다.
반면, Codex Vaticanus(B), Codex Sinaiticus(א) 등 알렉산드리아 계열 소수 사본에서는
이 중 “그것을 메운”(τὸ πλήρωμα αὐτῆς) 부분이 생략되어 있는 형태가 나타난다.
이로 인해 이후 역본들(NIV, 개역 등)은 이 중요한 중간 구문을 번역에서 제외한 것이다.
5. 신학적·교리적 중요성
이 비유는 단순한 바느질에 대한 교훈이 아니라,
새 언약(복음)과 옛 율법 체계(유대교 의식 체계)의 혼합을 금하는 강력한 비유이다.
“새 조각”은 예수님의 복음을 상징하고,
“낡은 옷”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고수하던 외식적인 율법 체계를 나타낸다.
복음은 낡은 율법 체계를 보완하거나 메우는 도구가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새 옷이다.
따라서 “그것을 메우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며,
“그것을 메운 새 조각”이 오히려 문제를 심화시킨다는 말이 정확히 있어야
비유의 비판적, 구별적 메시지가 온전히 전달된다.
결론
마가복음 2장 21절은 예수님께서 복음과 율법 체계를 구분하여 설명하신 결정적 비유다.
킹제임스 성경은 정확한 사본 기반 위에
“그것을 메운 새 조각”이라는 표현을 명확히 포함시켜
비유의 흐름과 논리, 그리고 교리적 교훈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
반면, 개역성경과 NIV 등은 알렉산드리아 소수 사본의 영향을 따라
중대한 표현을 삭제함으로써,
비유의 구조적 논리성과 교리적 깊이를 훼손하고 있다.
이 구절 역시 킹제임스 성경만이 온전한 의미를 유지하고 있으며,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바른 해석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2025-05-22 20:28:51 | 관리자
디모데전서 5장 16절 중요 부분 삭제
디모데전서 5장 16절은 교회 내에서 과부에 대한 돌봄 책임을 언급하는 구절로,
본문은 신약 교회의 남성과 여성 신자 모두에게 일정한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소수 사본을 따른 현대역본들과 개역성경은 이 구절에서 중요한 문법적 요소와 구조적 표현을 삭제하거나 축소하고 있다.
이로 인해 본문의 의미는 왜곡되고, 책임이 한쪽 성(여성)에게만 전가되는 잘못된 인상을 주게 된다.
1. 킹제임스 성경 (흠정역)
딤전 5:16
“만일 믿는 어떤 남자나 여자에게 과부들이 있거든, 그들이 저들을 구제하게 하고 교회가 짐을 지지 않게 하여 참된 과부들을 도울 수 있게 하라.”
(KJV: “If any man or woman that believeth have widows, let them relieve them, and let not the church be charged...”)
이 구절의 구조적 핵심은 다음과 같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과부를 돌보는 책임이 있다.
이 책임은 가정 차원에서의 구제를 의미한다.
그들(남자나 여자)이 과부들을 구제하게 하고, 교회는 그 책임에서 벗어나 참된 과부들만을 도우라는 명령이다.
2. 현대역본 및 개역성경의 번역 (소수 사본 기반)
예: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들이 있으면, 그녀는 그들을 도와야 하고…”
(NIV: "If any woman who is a believer has widows in her care, she should continue to help them..." 등)
문제점:
**“남자나 여자”**라는 공평한 책임 구조가 삭제되고,
오직 여성 신자에게만 과부 구제의 의무가 주어진 것처럼 번역되어 있음.
주어도 단수로 바뀌어 **“그녀는 도와야 한다”**로 축소됨 → 공동체적 책임이 개인 여성의 부담으로 전가됨
이러한 번역은 사도 바울이 말한 본래의 공동 책임 원칙과 사도적 명령의 균형을 훼손한다.
3. 사본적 증거
킹제임스 성경이 따르는 Textus Receptus와 다수 사본(Majority Text)에는
“ἄν πιστὸς ἢ πιστὴ”, 즉 **“믿는 남자나 믿는 여자”**라는 표현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은 “let them relieve them”, 즉 **“그들(남자든 여자든)이 과부들을 구제하게 하라”**는 명령형 복수 구조다.
반면, 소수 사본 계열, 특히 Codex Vaticanus, Codex Sinaiticus, 일부 라틴 역본에서는
“믿는 여자”(πιστὴ γυνή)만을 언급하는 형태로 축소되어 있으며,
복수 명령이 아니라 단수 주어 중심의 구조로 바뀌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본래 사도 바울이 교회 공동체에 남녀를 불문하고 책임을 지우던 방식에서
여성 중심의 일방적 책임 구조로 변질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4. 문화적 배경과 신학적 왜곡
플라톤적 사고가 지배하던 헬라 세계에서는 여성은 철저히 가사 책임 전담자, 혹은 공공 영역에서 배제된 존재로 여겨졌다.
초기 필경자들이 사본을 필사할 때, 이런 남성 중심 문화의 영향을 받아
본문을 여성 중심으로만 축소하거나 편집했을 가능성은 신중히 고려될 필요가 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성경의 공평한 교회 공동체 윤리가 훼손된다.
남자 신자의 책임성이 사라지고, 여성이 무조건 돌봄의 주체가 되는 왜곡이 발생한다.
현대 독자는 이 구절을 통해, 교회가 여성만을 통해 가정을 유지하고 돌보게 하려 했다는 오해를 가질 수 있다.
결론
디모데전서 5장 16절은 교회와 가정, 그리고 성도의 책임을 균형 있게 다룬 말씀이다.
킹제임스 성경은 **정확한 사본(Textus Receptus)**을 따라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과부에 대한 책임을 공정하게 부여하고 있으며,
본문 문법과 교회 윤리를 모두 충실히 보존하고 있다.
개역성경과 NIV 등 현대역본들은 소수 사본의 결함을 따라,
중요한 구조적 표현인 “남자나 여자”, “그들”을 삭제함으로써
본문의 의미를 왜곡하고, 교회 공동체의 신학적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 역시 킹제임스 성경을 기준으로 바르게 해석되어야 하며,
변개된 현대역본들은 신중하게 분별되어야 한다.
2025-05-22 20:23:14 | 관리자
요한계시록 15장 2절 중요 부분 삭제
요한계시록 15장 2절은 종말의 시기에 짐승을 이긴 자들이 유리 바다 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을 묘사하며, 그들이 어떤 대상을 이기고 승리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이 구절에서 킹제임스 성경은 짐승과 그의 형상, 그의 표, 그의 이름의 수 -즉 총 4가지 대상-을 정확히 열거하여 성도들이 무엇을 이겼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1.킹제임스 성경 (흠정역)
“또 내가 보니 불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는데, 짐승과 그의 형상과 그의 표와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승리한 자들이 하나님의 하프들을 가지고 유리 바다 위에 서서”
여기서 표현된 네 가지 대상은 계시록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종말의 핵심 적대 요소들이다:
짐승 – 적그리스도적 세계 권세
그의 형상 – 짐승을 대신하여 세워진 숭배 대상
그의 표(Mark) – 오른손이나 이마에 받는 표로, 짐승에게 속했음을 의미
그의 이름의 수(666) – 짐승의 정체성과 연결된 상징 수치
이 네 가지가 함께 제시됨으로써, 성도들의 신앙적 승리가 단지 도덕적 의미가 아닌, 구체적 종말의 영적 전쟁에서의 승리를 의미함이 드러난다.
개역성경 및 현대역본(NIV 등)의 문제점
개역: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
NIV: “those who had been victorious over the beast and its image and over the number of its name”
이들 현대 역본에서는 “그의 표”에 해당하는 내용이 누락되어 있다.
즉, **짐승의 표(mark of the beast)**라는 표현이 사라지고 셋만 열거된다:
짐승
그 형상(우상)
이름의 수(666)
그 결과, **계시록 전체에서 반복되는 구조(짐승, 형상, 표, 이름의 수)**가 이 구절에서 불완전하게 나타나며,
문맥상 일관성과 신학적 중요성이 약화된다.
2. 사본적 배경
킹제임스 성경이 근거하는 Textus Receptus 및 다수 비잔틴 사본(Majority Text)에는
“τοῦ θηρίου καὶ τῆς εἰκόνος αὐτοῦ καὶ τοῦ χαράγματος αὐτοῦ καὶ τοῦ ἀριθμοῦ τοῦ ὀνόματος αὐτοῦ”
즉, **“짐승과 그의 형상과 그의 표와 그의 이름의 수”**라는 표현이 명확히 들어 있다.
반면, 현대 역본들이 따르는 소수 사본, 특히 Codex Vaticanus(B), Codex Sinaiticus(א) 등에서는
**“그의 표”(τοῦ χαράγματος αὐτοῦ)**에 해당하는 문구가 누락된 형태로 존재하거나,
단순화된 목록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 발견된다.
이러한 생략은 소수 사본들에서 종종 나타나는 본문 간소화 경향을 보여주며,
결과적으로 계시록의 핵심적인 반복 구조를 왜곡한다.
3. 신학적 중요성
계시록의 반복적 경고 구조의 훼손
요한계시록은 13장, 14장, 16장, 19장에서 반복적으로 **“짐승과 그 형상과 그의 표와 그의 이름의 수”**를 묶어서 언급한다.
이는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종말에 나타날 악한 체계의 완전한 구성을 지적하는 구조이다.
“그의 표”의 삭제는 종말의 실질적 위협을 흐리게 한다
짐승의 표는 계시록 13장에서 사람들이 매매를 하기 위해 반드시 받아야 하는 통제 수단으로 제시된다.
이 표를 거부하는 자는 목숨의 위협을 받지만,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들은 이 표를 받지 않는다.
그의 표를 이겼다는 진술이 빠지면, 성도들의 믿음의 승리가 무엇을 대상으로 하는지 불분명해진다.
4. 실제적 적용과 경계의 약화
성도들에게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는 요한계시록의 중심 주제 중 하나다.
그의 표를 이긴 자들에 대한 언급이 사라지면, 이 경고의 실제적 적용도 무력화된다.
결론
요한계시록 15장 2절에서 **“그의 표”**는 삭제되어서는 안 되는 결정적인 요소이다.
Textus Receptus 및 다수 사본은 네 가지 요소 전체를 보존하고 있으며,
킹제임스 성경은 이를 충실하게 전달하여 성도의 종말론적 승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한 것인지를 분명히 제시한다.
반면, 개역성경과 NIV를 포함한 현대역본들은 소수 사본의 불완전한 본문을 따라,
“그의 표”를 삭제함으로써 계시록 전체의 구조와 메시지를 훼손하고 있다.
따라서 종말에 대한 경고와 성도의 승리를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본문을 보존한 킹제임스 성경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2025-05-22 20:16:22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