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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어리석은 것을 조금 용납하라. 내가 철도를 대신하여 아직도 할 말이 있음을 그대에게 보이겠노라. (고후 11:1, 욥 36:2)   내가 철도를 한 5년만 더 일찍 알았으면 학창 시절에 지리와 물리 공부를 훨씬 더 열심히 했을 것이고, 지금의 국어 정보학 대신 아예 그쪽으로 진로를 선택했지 싶다. 하지만, 그 경우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태어나진 못했을 것이고 본인의 인생과 우리나라의 역사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예수님의 복음이야 인간이 만든 다른 종교와는 레벨이 근본적으로 다른 절대적인 진리이니까 차치하고,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관점에서 나의 종교는 철도이다. 그것도 은사주의 성향이 굉장히 강한 종교이다.나의 종교는 죄, 심판, 지옥 같은 부정적인 이념을 논하지 않는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교통수단이 철도밖에 없다는 과격하고 극단적인 주장을 하지 않으며, 반대로 버스와 철도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지지한다. 이 얼마나 건전하고 좋은 종교인가?   잘못된 은사주의 집회에 가서 '날랄랄따따따' 방언을 하러 애쓰고 사기극인 병고침 받느라 노심초사하지 말라.진짜 은사주의가 뭔지 몰라서 저런 데에 빠진다.철도 성령을 받으면 영어와 일본어 열차 안내방송 방언이 터진다.철도 성령을 받으면 국토 사랑 정신이 생기고, 우리나라 역사와 지리를 보는 눈이 바뀐다. 전철 노선도와 간선 철도, 그리고 우리나라 주요 고속도로와 국도 노선까지 저절로 달달 외우게 된다.우리 애가 철도에 미치더니 사회와 과학, 그리고 예체능 중엔 음악 점수가 급상승했다는 얘기가 나올 것이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저 온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 죽으신 게 아니라 정말 '나의 죄'로 인해 죽으신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철도 성령을 받으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풍미한 철도 차량과 노선, 역사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나의 개인적인 감정과 애증을 담고 표현하는 대상이 될 것이다.   난 이따금씩 식사 전 기도는 빼먹어도, 열차 타기 전에는 “이 땅에 이런 철도와 새마을호 같은 열차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기도 드리는 게 습관이 됐다.이 정도면, 킹 제임스 성경이 세상을 바꿔 놓은 책이라면, Looking for you라는 음악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음악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자, 지금까지 한 얘기는 고차원적인 반어법과 역설이 섞여 있으니 알아서 분별해서 받아들이시고..;;어쨌든 이 철도 덕분에 본인은 철도 말고 주변의 교통수단에 대한 관심도 집요하게 늘었다.'철도'와 비교했을 때 기계 메커니즘부터 시작해 엔진 소리와 승차감에 이르기까지,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 분석하기 위해서이다. 이 글에서는 특별히 중장거리 교통수단으로서 철도와 비교되곤 하는 비행기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본인은, 달리는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면 바퀴에 작용하는 원심력과 관성 등으로 손쉽게 설명할 수 있으며 느낌으로 완전히 이해도 한다.쇠로 만들어진 집채 만한 선박이 물에 뜰 수 있는 이유 역시 부력으로 설명 가능하며 본인은 그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 그건 어디서나 예상과 측정과 재연이 가능한 과학일 뿐, 물 위를 걸은 예수님의 기적(마 14:25-27) 같은 현상은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기가 어떻게 하늘에 뜨는지는... 머리로 공식은 알고 있으나, 그 자연 현상을 100% 직관적으로 이해는 못 하겠다. 어렵다. 하긴, 이건 18~19세기까지만 해도 저명한 물리학자들조차도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던 것이다. 비행기의 발명은 참으로 인류의 어마어마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A4 용지를 한 장 준비해서 직사각형의 네 변 중 짧은(21cm짜리) 변을 이루는 두 꼭짓점을 손으로 잡고 입가로 가져간다. 잡고 있지 않은 맞은편 두 꼭짓점은 아래로 축 늘어질 것이다.이 상태로 종이의 윗부분(아랫부분 말고)을 힘껏 훅~ 불어서 바람을 만들면...;; 놀랍게도 늘어졌던 종이가 벌떡 위로 펴질 뿐만 아니라 더욱 위로 올라가려 하면서 펄럭거리기까지 할 것이다.   종이의 아랫부분을 훅 불면, 아래로 쳐져 있던 종이가 바람을 직접 받아서 위로 펴지는 게 이해가 되겠다만, 종이가 닿지 않는 윗부분에 바람이 부는데 왜 아래의 종이가 붕 뜨게 될까?? 바로 이것이 오늘날 고정익 항공기가 하늘로 뜨는 이론적 배경이라고 한다. 부력(buoyancy)을 설명하는 게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라면, 양력(lift)을 설명하는 건 베르누이의 원리이다.   호스에서 시간당 같은 양의 물이 흘러나오는데 호스 끝부분을 눌러 좁히면 물이 더 빠르고 세차게 나오는 것, 빠르게 통과하는 열차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곁의 사람까지 열차 쪽으로 빨려 들어가서 인명 사고가 나는 것과 정확히 같은 이치이다.   비행기의 날개는 폼으로 있는 게 아니라 주변 공기의 흐름을 교묘하게 바꿔 압력차를 만듦으로써, 아까 저 종이와 같은 양력을 만들어서 비행기를 띄우기 위해 존재한다. 날개 표면이 이물질로 인해 조금만 울퉁불퉁해지기만 해도, 생성되는 양력이 크게 떨어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잘 이해는 안 되지만, 뭔가.. 냉장고와 에어컨의 동작 원리만큼이나 신기하다.   그런데 공기의 흐름부터 만들어야 이로부터 양력이고 자시고가 생길 것이므로, 이를 위해서는 비행기 자체가 무진장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비행기의 엔진이 하는 일이다. 비행기의 엔진은 공기를 뒤로 뿜음으로써 추력을 만들지, 자동차의 엔진처럼 피스톤을 회전시켜 바퀴를 굴리는 방식은 아니다.   이 메커니즘 때문에 고정익 항공기는 이륙을 위해 긴 활주로가 필요하며, 반대로 사뿐히 내려앉기 위해서도 활주로가 필요하다. 자동차의 고급 옵션 중 하나인 터보차저(turbocharger)라든가 ABS 브레이크는 원래는 이런 항공기에서 쓰이던 기술이 자동차에도 덩달아 도입된 걸로 잘 알려져 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주변의 컨테이너나 소형 승용차마저 팬에 빨려들어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괴력으로 주변 공기를 빨아들인다. 그래서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웽~’하는 엔진 내지 팬 소리보다도 ‘쿠르르릉!’하는 박진감 넘치는 바람 가르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이다. 군사 시설 중에서도 비행장만은 그 특성상 지하화해서 덮을 수 없고, 규모도 워낙 크다 보니, 위성 사진으로 노출되는 게 불가피하다.   그럼, 고정익 항공기 말고 다른 비행체는 어떨까?   1. 헬리콥터   가벼운 바람개비를 빠르게 돌려 놓고 손에서 떼면, 이것도 잠시나마 하늘에 살짝 떴다가 떨어지는 걸 알 수 있다. 고정익 항공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발상으로 만들어진 이런 부류의 회전익 항공기는 비록 수송력과 경제성은 크게 떨어지지만, 한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초고속 이동을 해야만 양력이 유지된다는 한계에 매여 있지 않다. 그래서 긴 활주로 없이도 손쉽게 이· 착륙을 할 수 있으며, 공중에서 3차원 여섯 방향으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공중에서 정지해 있을 수도 있다.   헬리콥터의 로터는 개념상 날개이지 프로펠러가 아니다. 회전익 항공기라는 개념은 수백 년 전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상상을 했을 정도이지만, 이것이 실제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로터를 그 정도로 빠르게 회전시킬 수 있는 가벼우면서도 출력이 굉장히 좋은 고성능 엔진이 먼저 발명되어야만 했다.   2. 비행선   물에 적용되는 배, 아니 어찌 보면 잠수함의 원리를 공기에다가 접목-_-한 것이다. 비행체의 밀도가 공기보다도 가벼워지도록 어마어마하게 큰 부피의 수소나 헬륨을 적재한다. 고도 조절은 잠수함이 심도를 조절하는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하며, 엔진은 방향과 속도 조절용으로만 쓴다.   비행선은 매우 저렴한 동력비로 하늘에 조용하고 우아하게 뜰 수가 있고 심지어 엔진이 꺼져도 곧바로 추락하지는 않으나..... 역시 수송력이 열악하고 주행 속도가 매우 느리며(빨라 봤자 100~150km/h대. 자동차급밖에 안 됨), 비행 고도도 오늘날의 항공기보다 훨씬 낮은 데다가 덩치까지 엄청 크다 보니 보안에도 매우 취약한 게 흠이다.     비행선은 양력이 아니라 부력으로 뜨기 때문에 날개는 없다.그런데, 공기보다 밀도를 낮추기 위해 비행선이 얼마나 덩치가 커야 했냐 하면.. 위의 그림과 같은 정도이다. 우주에서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를 집어넣었는데도! (그림은 과거 독일의 수소 비행선 힌덴부르크 호, 보잉 747, 그리고 여객선 타이타닉 호) 그래 봤자 저 비행선의 승객 정원은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와 비슷한 겨우 100여 명 안팎으로, 무려 450명 가까이나 탈 수 있는 747의 1/4 수준도 안 됐다.   3. 로켓   다른 항공기들은 하늘로 떠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게 목적인 반면, 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하늘 위로 최대한 높이 뜨는 것 자체만이 목적이다. 유체고 양력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오로지 작용· 반작용의 법칙만을 이용해서 나아가므로, 날개도 필요 없고 오히려 유체의 저항이 없는 진공이 유리할 것이다. 연료 소모가 매우 심하고 유인 로켓의 승무원은 발사 직후에 어마어마한 압력에 짓눌려야 하지만, 지구의 육중한 중력 가속도를 뚫고 수백 km 이상의 고도로 우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것만이 현실적으로 유일한 방법이다.   지구 중력의 탈출 속도는 초속 11.2km가량 된다. 지표면에서 이 정도 속도로 공을 던지면 지구로 되돌아오지 않을 경지에 이른다는 뜻. 하지만 이 속도는 음속의 무려 40배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공기와의 저항과 마찰, 그리고 엔진 기술의 한계 때문에 지표면에서 결코 낼 수 없는 속도이다. 성층권에서 겨우 마하 2.x 정도로 비행한 콩코드만 해도 소닉 붐 같은 충격파에, 공기 마찰 때문에 열받아서 수백 도로 벌겋게 달아오른 기체의 유지 보수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로켓은 그 탈출 속도보다는 당연히 훨씬 느리게 뜬다. 하지만 발사 후에도 연료 배기 가스를 뿜어서 동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그 밑천으로 지구 대기권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4. 끝으로, 새들   비행기를 연구하고 설계한 사람들이 새의 날갯짓을 매우 세밀히 관찰하고 벤치마킹 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 공중의 날짐승들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일러 주리라.” (욥 12:7b) 새들은 인간이 만든 비행기처럼 주변 공기를 다 빨아들이지도 않으며, 헬리콥터처럼 날개에 이물질이 닿는다고 해서 바로 박살이 나지도 않는다. 항공계의 영원한 골칫거리인 조류 충돌(bird strike)이나 연료 폭발 같은 건 더욱 없다. 새의 놀라운 비행 원리에 대해, 이런 거야말로 진화의 산물로 점진적으로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으며 지적 설계와 창조의 증거라고 연구하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응당 일리가 있는 말이다. 사람이 만든 날개와 하나님이 만든 날개의 차이이다.   ..   증기 기관은 아직 효율이 낮고 성능에 비해 너무 크고 무거웠기 때문에, 자동차나 배는 굴려도 비행기를 띄울 수는 없었다.터보 프롭이든 터보 팬이든 램 제트든, 비행기의 엔진은 내연 기관의 원리가 확립되면서 발명될 수 있었다.   비행기가 쓰는 항공유는 휘발유와 등유 중에서 등유에 가까운 정도의 연료이다. 비행기의 엔진은 공기라는 가벼운 유체의 흐름을 교란하는 게 목적이니 터빈에 의한 빠른 회전력이 필요할 뿐, 자동차 엔진처럼 큰 무게 부하가 직접적으로 걸리는 건 없으므로 특별히 저속 회전에서 토크가 큰 출력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통수단들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경유· 중유급의 연료가 쓰이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겠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동력 비행에 성공했다고 알려진 미국의 라이트(Wright) 형제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고 한다.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39   그리고 해로(seaway)라는 것을 발견한 매튜 머리도 시 8:8에서 연구의 영감을 얻은 크리스천이었다.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798오늘날은 해로도 모자라서 비행기의 순항 고도에도 기류라는 게 있어서 이를 잘 타면 연료를 아끼고 효율적인 비행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것처럼, 철도를 개척한 선구자 중에 혹시 크리스천 과학자· 엔지니어가 있진 않았는지(리처드 트레비식, 제임스 와트?) 난 정말 궁금하다.그리고 혹시 성경에서 좌측통행이나 우측통행에 대한 언급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성전· 성막이나 천년왕국 때의 관습에 대한 묘사에서 힌트가 될 만한 정보가 있을지?   오늘날 세계의 대세는 우측통행이나, 영국이 대영제국 시절에 영어와 표준궤 철도와 더불어 전세계에 퍼뜨린 것은 좌측통행이다. 여객기는 승객 탑승구가 진행 방향 기준 왼쪽에 달려 있으며, 전세계의 공항들도 그 기준으로 건설되어 있다. 이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사람의 사진을 아무거나 찾아보기 바란다. 이는 과거에 선박의 관행을 물려받은 것이다.   승객이 왼쪽으로 타니 화물은 오른쪽으로 싣고, 비행기의 시동을 걸 때도 오른쪽 엔진부터 켜는 게 항공업계의 관행이다. 이는 과거에 프로펠러기 시절에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 언제부턴가 생긴 불문율이나, 오늘날 같은 제트기 시대엔 큰 의미는 없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0: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25 14:58:31 | 김용묵
구원에 대한 영원한 보장과 관련된 구절들   거듭난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아 새롭게 태어난 다음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들은 그가 죄로부터 혼이 영원히 구원받았다는 것, 몸 안에 죽은 것과 같은 상태에 있던 영이 성령님에 의해 거듭났다는 것, 그리고 육체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지옥형벌을 받지 않고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결코 사라지거나 취소될 수 없는 보장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던 죄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어 죄사함을 받고 회심하고 거듭났다면 그의 몸 안에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영께서 거하시게 되며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오게 것입니다. 구원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이후의 행위로 인하여 절대로 중도에 취소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므로 그분의 약속을 지키십니다.   (갈 2:16)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되는 줄 알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것은 우리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자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6:37)『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10:27-30)『<27>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 <29> 그들을 내게 주신 내 아버지는 모든 것보다 크시매 아무도 내 아버지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느니라. <30>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시니라.』   (로마서 8:35,38-39)『<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으리요? 환난이나 곤경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벌거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창조물이라도 능히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하리라.』   (히브리서 13:5)『너희의 행실을 탐욕이 없게 하고 너희가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7:25)『그러므로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심을 보건대 그분은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1:6)『너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것 바로 그것을 확신하노라.』   (히브리서 10:12-14)『<12> 오직 이 사람은 죄들로 인해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뒤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사 <13> 그 이후부터 자기 원수들이 자기 발받침이 될 때까지 기다리시느니라. <14> 그분께서는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의 헌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1:7-9)『<7> 이로써 너희가 어떤 선물에서도 뒤쳐지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나니 <8> 그분께서 또한 너희를 끝까지 견고하게 하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너희가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시리라. <9> 너희를 부르사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신실하시도다.』   (고린도전서 5:1,5)『<1> 너희 가운데 음행이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알려졌는데 그런 음행은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거론되지 않는 것으로 곧 누가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는 것이라. <5> 그런 자를 사탄에게 넘겨주어 육체를 멸하게 하려 하였으니 이것은 영이 주 예수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에베소서 4:30)『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에베소서 1:13-14)『<13>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들은 뒤에 그분을 신뢰하였고 너희가 믿은 뒤에 또한 그분 안에서 약속의 저 거룩하신 영으로 봉인되었느니라. <14> 이 영께서는 값 주고 사신 그 소유물이 구속을 받기까지 우리의 상속 유업의 보증이 되사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시느니라.』   (엡 2:8,9) 『<8>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11:28-29)『<28> 복음에 관하여는 그들이 너희로 인해 원수 된 자들이지만 선택에 대하여는 그들이 조상들로 인해 사랑받는 자들이니 <29> 하나님의 선물들과 부르심에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느니라.』   (디모데후서 2:13)『우리가 믿지 아니하여도 그분은 항상 신실하시니 자신을 부인할 수 없느니라.』   (민수기 23:19)『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는도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은즉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시리요? 그분께서 이르셨은즉 그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시리요?』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1-11-14 17:41:2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23 01:21:12 | 이충현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이곳에 글을 쓰게 되어 먼저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서울 용산에 사는 1979년 11월 16일 생 서른 셋 청년이고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를 믿고 구원을 받았으며 사랑침례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어제 저녁에 어떤 사이트에서 채팅으로 나눈 대화입니다. 얘기로만 듣던 여호와의 증인과 갑자기 처음 맞닥뜨리게 된 와중에 바른 말씀의 위력을 새삼 실감한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화면을 그대로 올렸습니다. 저 분이 저 많은 자료들을 어디서 미리 준비해놓고 빨리 복사해서 가져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는 성경에 쓰여 있는 단 한 구절을 소개했을 뿐입니다.             한글 흠정역의 존재를 모를 듯싶어 영어 킹제임스를 찾아보라 하였고, 더 길게 얘기를 나누지 못하고 흠정역 성경을 소개해주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아쉽습니다. 진심으로 저 분이 마음에 의심을 가지고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어 잘못된 길에서 돌아오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대한민국에 더 많이 알려져서 개역성경을 밀어내고 보편적이고 대표적인 한국어 성경이 되어 이단교리들이 발을 못 붙이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저도 한 주간 세상 속의 바쁜 일상 속에서 세상일에 치여 살다가 이 땅에 바른 성경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것을 공부하고 알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순간순간 잊고 지내게 됩니다만 이 일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느끼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칼보다도 날카롭고 단단한 명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내가 필요할 때 사용할 줄 모른다면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앞으로도 평소에 부지런히 검술을 익히고 닦아서 언젠가 또 만나게 될 갑작스런 싸움에서 칼도 못 빼는 일은 없도록 열심히 성경을 읽고 연구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0: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22 18:10:05 | 유준호
본 싸이트를 통해 많은 성경적 진리를 깨우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여기가 질의응답코너가 아님을 알고는 있지만 달리 질문할 데가 없어서 글을 올립니다. 미련하다 엉뚱하다 생각하지 마시고 불쌍히 여겨, 토를 달거나 참고 할 만한 글이나 싸이트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하려니 그저 믿으라고만 할 수가 없어서요...! 첫째는 창세기에 나오는 한 날이 현재의 하루와는 다른데, 저녘과 아침이 됨(한 날)을 어떻게 설명해야 되는지? 둘째는 주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오셨음에도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에 매달아 돌아가시게           하여 왕국이 잠정적으로 연기되었는데,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메시아 왕국을 받아들였다면 예수님의 구속사역은           어떻게 되는거예요. 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해야 되는지? 셋째는 다니엘의 70이레의 마지막 1이레가 69이레와 연속되지 않고 교회시대 후 마지막 7년 환난기에 도래한다는 간격을 봉우리나 계곡 이런것 말고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는지?   SOU5004@PARAN.COM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1:5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18 11:35:05 | 김인수
국민일보에 킹제임스흠정역성경이 광고되어 참 기쁜데 즐겁지 않은 이야기를 올리려니 마음 좀 그렇네요! 한편으로는 이런 소망없는 세상에 한줄기 빛이이라도 비출수 있는 킹제임스흠정역성경을 알리고 읽도록 권하는 것은 바른 믿음의 여정을 걷고 있는 우리들의 소망이 아닐까 생각해 보며 글을 올립니다.     중국에서 10월 13일(지난주 목요일)에 일어났던 사건을 다룬 기사 입니다.      시장 안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지나던 트럭이 어린 아이를 발견하고도 귀찮은 듯 그냥 치고 천천히 시장통을 빠져나간다. 뒤이어 사람들이 지나지만 치여서 쓰러진 아이에겐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러다 다른 트럭이 다가온다. 이 트럭도 쓰러진 아이를 바퀴로 깔고는 그냥 지난다. 사람들은 쓰러진 아이를 힐끔 볼 뿐 그냥 피해간다.이런 상황은 7분간 계속됐다. 그동안 아이를 지나친 사람만 18명이다. 이 아이는 엄마에게 발견돼 병원에 긴급 후송될 때까지 7분 동안 차에 치이고,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됐다.중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15일 중국 HITVS가 당시 현장(광둥성 포산시)에 있던 폐쇄회로 TV(CCTV) 화면을 입수해 보도했다.13일 찍힌 이 CCTV 영상에는 시장 내 골목에서 어린 여자 아이가 부모를 찾는 듯 혼자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담겨있다. 이 때 정면에서 시속 20㎞정도로 달려오던 흰색 승합차가 아이가 앞에 있는 것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아이를 치었다. 운전자는 잠시 멈칫하는 듯 했으나 이내 서서히 차를 전진시켰다. 그리곤 그대로 현장에서 사라졌다.    충격적인 장면은 계속된다. 아이가 의식을 잃은 채 피를 흘리며 길에 쓰러졌지만 지나는 사람들이 힐끔 쳐다보고는 지나치는 것이다. 사고 이후 무려 18명의 보행자가 쓰러져있는 아이의 곁을 지나갔지만 그저 쳐다만 보고 아이를 피해갈 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한 트럭은 오히려 아이를 다시 한번 밟고 지나갔다.한 여성이 다가와 아이를 쳐다보더니 길가로 옮겼다. 옮기는 도중 아이는 축 늘어진 채 미동 조차 없었다. 후속 조치는 없었다. 잠시 후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달려와 아이를 안고 어디론가 사라졌다.현재 아이는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병원측은 이미 뇌사판정을 내렸다. 아이의 아버지인 왕모씨는 눈물을 쏟으며 무책임한 시민들의 반응에 울분을 토했다. 이 아이는 겨우 두살배기였다.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자 왕양을 치고 달아났던 운전기사 2명은 공안에 자수를 했다.실제로 중국인들은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다 자칫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놓일까 두려워한다. `남의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비에관센스(別管閑事)`가 중국에선 일반적인 풍조로 통한다고 합니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1.10.17 09:27에 올라온 기사를 보면서 마음이 아프고 분노와 슬플이 느껴졌습니다.  저도 위의 두살베기 여자아이와 같은 두살배기 아들을 키우고 있어서 그런지 이 기사를 읽는데 마음이 참 많이 아팠습니다.        중국에서 일어난 사건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이런 사건들은 참으로 슬프고 비통한 이야기인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북한에서도 굶주림과 질병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도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본능적인 행동들을 보이는 동영상들이 떠올라 참 슬펐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존귀히 여기고 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사건들은 너무도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같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패륜과 참담한 사건들이 일어나 우리를 슬픔과 분노에 치를 떨게 하지만 매스컴에 보도되지 않은 사건들 또한 얼마나 많겠습니까?      내게 이런 억울한 일들이 생기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도하는 것으로 선을 그을 지도 모르겠지만 주님은 전 세게에서 일어나는 이런 비인간적인 일들과 이런 악한일을 저지르는 사람들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생각해 봅니다. 참으로 소망없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을 독생자로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위 말씀처럼 주님은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죽어 주셨습니다. 사람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 신뢰가 무너졌을때 오는 배신감과 모욕을 죽는 순간까지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뿐입니까? 하나님의 죄에 대한 공의까지 어린양의 속재물로써 감당해야 했으니 주님의 마음을 정말 헤아리기가 어려울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고 계시겠죠?     2000년 전에 예수님이 값비싼 댓가를 치루어 주셨는데 사람들의 모양은 여전히 소망없는 모습들입니다.     사랑의 반대말이 무관심이라고 들었습니다.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관심을 가지고 서로 돌아보고 위로하는 믿음의 실천이 우리에게 있어지기를 바래봅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0: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18 04:23:59 | 노영기
   노아 홍수 이야기를 조화롭고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강추 합니다.   "창세기 대홍수로 세상은 이렇게 달라졌다!"지구의 역사와 대홍수의 증거를 찾기 위해 지질학의 성지 그랜드캐니언을 탐사하는 영화배우 엄지원.지층과 화석을 통해 드러나는 엄청난 진실!진화론의 패러다임에서 단지 신화로 여겨졌던 노아 홍수의 기록은 단 한 줄도 빠짐없이 정확한 과학적 사실로 밝혀지는데창조와 심판의 흔적 그랜드캐니언을 통해진리로 자유를 누리고 신앙을 한층 업그레이드하세요!   http://www.cgntv.net/CGN_Player/player.htm?pid=3031&vno=22[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5:2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15 20:45:13 | 허광무
고린도 전서 14장34절 -너희의 여자들은 교회안에서 잠잠할지니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허락되지 아니하였고 또 율법도 말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순종하도록 명령을 받았느니라  35절-만일 여자가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들이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니라   디모데전서 2장 11절 -여자는 전적으로 복종하며 조용히 배울지니라 12절- 오직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   요즘 이말씀이 어느 범위까지 해야되고 어느것은 하지 말아야 되는지 무척 고심이 됩니다. 성경말씀에 헷갈리는 것이 많고 궁금해서 여쭤보려고 해도 혹시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을 행하는 것은 아닌지, 이런걸 목사님들에게 물어보는거 자체가 문제가 되는것인지.... 집에서는 남편이 잘못해도 잘못을 지적하는것도 안되는 것인지...   하나님의 말씀에 제자신을 일치시키며 살아야 됨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여자들에 대한 위치나 행동들이 참 난감합니다.(제가 해야 될것과 하지말아야 될것들)  성경대로 믿는 교회에서는 자매님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한가지 더요 디모데 전서 2장 15절-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맑은 정신으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 가운데 거하면 그녀가 해산함으로 구원를 받으리라 - (----애를 낳은 여자들은 어떤 속박으로 부터 벗어난다는 뜻인가요?)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6:3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12 10:08:09 | 전성실
한달정도를 혼자 고민하고 그병행구절을 읽고 다시 덮고 또읽고 다시덮고....인터넷을 검색해도 그런답변이 없어서 그냥방치하고.... 언제가는 주님께서 알려 주시겠지 ...했습니다. 혹시나 해서 별기대없이 여기에 글을 올렸는데 이렇게 답변이 즉각적으로 그것도 여러가지관점으로, 많은분들이 글을 올려 주셔서 너무 놀랬습니다.... (제가 그동안 무슨생각을 했냐면 ..아 ..인정할것은 인정해야지 이건 사본상의 오류인데 kjv신자들이 고집을 부리고 맹신을 하는것일수도 있구나..아니야 그래도 이유는 있을것인데...혼자서 오류냐 절대진리냐를 여러번 생각해 봤습니다.또 무척 괴로웠고 이틀정도 밥맛도 잃었습니다.......)   지금은 머리가 무척 맑아졌습니다. 아니 이렇게 쉬운걸 왜 그런 고지식한 틀에 갇혀 있었나 싶네요 여러 답변에 감사드립니다.제가 다시 이해한 것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성경의 용례에 ..유다and예루살렘처럼 and라는것이 포함의 의미가 있다는것, 그래서 기병칠백명과 보병이만명은 총이만명이 될수 있다는것 2.사무엘기, 역대기, 열왕기가 병행구절이 거의 내용이 비슷해도 기록자의 관점에 따라 보는 방향과 중점내용이 다를수 있다는것 3.그래서 기록자가 사무엘하 8장은 각팀의 대표를 계수하고 역대상 18장은 전체를 계수할수 있다는것 4. 실제 전투에서 기병과 보병이 두역활을 다해낼수 있는것이라 말을 타면 기병이요 말을 잃으면 보병이 될수 있다는것 5. 또 실제 전투의 어느시점에서 봤느냐에 따라 전투전에는 7천이 말위에 있을수 있고  전투의 마지막시점에는 7백이 말위에 있었을 수도 있다는것 이것외에도 더 답변이 많이 나올수 있을것 같네요. 제가  그숫자 7백과 ,7천만 너무 심하게 사로 잡혀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 장로교에 다니고 있는데요. 제가 처음에 성경을 일독해야지 하고 시작했을때 ...사람이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 고민이 많아서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성경에서 모르는것, 이해 안가는것,잘믿어지지 않는것을 잘 알려 주시고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했어요 뭔가 잘 모르겠느것을 계속생각해 보고 다시 읽어보고 좀 기다리고 있으면 어디서든 답변이 있고 이해할수 있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이번에도 그런 믿음이 한편으로 있었어요 . 좀 참고  기다리면 주님께서 알려 주실거라고요....성경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답변을 위해 수고해 주신 여러분모두에게도 감사드립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6:3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10 15:34:18 | 전성실
1. 강산도 빼어났다 배달의 나라 / 긴 역사 오랜 전통 지녀 온 겨레거룩한 세종대왕 한글 펴시니 / 새 세상 밝혀 주는 해가 돋았네한글은 우리의 자랑 문화의 터전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2. 볼수록 아름다운 스물 넉 자는 그 속에 모든 이치 갖추어 있고누구나 쉬 배우며 쓰기 편하니 세계의 글자 중에 으뜸이도다한글은 우리의 자랑 민주의 근본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3. 한 겨레 한 맘으로 한데 뭉치어 힘차게 일어나는 건설의 일꾼바른 길 환한 길로 달려 나가자 / 희망이 앞에 있다 한글 나라에한글은 우리 자랑 생활의 무기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이 노래는 제목이 그냥 <한글 노래>이다.즉, 한글날과 관계가 있다기보다는 한글 자체에 대한 찬가라는 점에서, 제헌절 노래나 삼일절 노래, 6· 25 노래 등과는 위상이 좀 다르다. 한글 노래는 언제 들어도, 눈물이 나올 정도로 참 감동적이다. 몇 학년인지도 가물가물한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동요 테이프에서 이 노래를 들은 것을, 본인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사 장조인 것, 여자 어린이 독창인 것, 그리고 구간별 반주의 코드(chord)까지 말이다. 잘 알다시피, 이 노랫말을 지은 분은 외솔 최현배 박사(1894-1970)이다. 많고 많은 국어학자 중에 그분 정도로 한글을 진정 사랑한 분만이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수준의 역동적인 가사를 쓸 수 있었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1절은 한글 창제의 감격을 묘사했다.외솔의 동지이자 조선어 학회 사건 당시의 fellowprisoner (롬 16:7, 골 4:10, 몬 23)이었던 석인 정태진 선생이 1949년 <한글날을 맞이하여>라고 발표한 논설을 보면 비슷한 표현을 볼 수 있다.   “과연 그 날이야말로 우리 배달민족이 길고 긴 어두움에서 새로운 빛을 보던 날이었고, 그 날이야말로 과연 우리 민족이 오래오래 죽음의 길을 걷던 발길을 돌려서 영원의 삶의 길로 나아오던 바로 그 날이었던 것입니다.”   영생의 길.. 가히 종교적인 수준의 찬사인걸? (단, 너무 기쁨에 겨웠는지, 글 중엔 한글과 우리말을 그렇게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은 표현도 좀 나오며, 6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기엔 다소 구태의연한 권면도 없지는 않음) 내 신앙관과 짬뽕을 하자면, 그야말로 성경에 나오는 의의 태양(말 4:2) 같은 심상이다.주찬양 선교단 7집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의 2번 트랙 <빛>을 BGM으로 깔면 적절할 것 같다.   2절은 한글의 우수성이 묘사되어 있다.외솔의 저서 <한글갈>에 있는 문장을 보면, 노래 가사는 저서의 요약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한글은 그 짜임이 가장 과학스럽고 그 자형이 정연하고 아름다우며, 그 글자 수가 약소하고도 그 소리가 풍부하며, 그 학습이 쉽고도 그 응용이 광대하여 글자로서의 모든 이상적인 조건을 거의 다 갖추었다 할 만하니, 이 글자를 지어낸 세종대왕 한 사람 당대의 밝은 슬기가 능히 천고만인의 슬기를 초월하였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 글자를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찬탄을 금치 못하게 하니 이는 고금이 다름없고 안팎이 한가지이다.”   한글을 ‘민주의 근본’이라고 칭한 것도 단어를 아무렇게나 선택한 게 아니다. 외솔의 평소 지론이 담겼다.배우기 쉽고 편리한 글자로 문맹을 퇴치하고 국민들을 똑똑하게 만들어야만 민주주의도 실현된다는 그분의 철학은, 유고작인 <한글만 쓰기의 주장>을 읽어 보면 더욱 실감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3절로 가자.전통적인 기독교 찬송가를 보면, 앞부분은 예수님이나 크리스천의 삶에 대해서 노래하다가도 마지막 절은 재림, 천국, 내세 같은 거시적인 주제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코레일의 사가 Oh Glory Korail도 보라. 마지막 절은 한국 철도가 대륙을 넘어 세계로 뻗어간다고 스케일이 확 커지지 않던가?   그런 맥락에서 한글 노래의 마지막 3절은, 한글을 통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가 1980년대에 한글 문화권에 대해서 글을 썼듯이 말이다.   물론 21세기가 된 지금, 현실은 시궁창이다. 굉장히 시궁창이다.외국어는 범람하고 국어 문법은 갈수록 잡-_-탕이 돼 간다.그리고 미래가 안 보이는 경제 불황과 영적 배도와 타락, 그리고 막장으로 치닫는 사회 시스템 앞에서는... 한글이고 나발이고 답이 없다. -_-나도 솔직한 심정으로는 한글 문화권 나부랭이 따위를 바라느니(교리적으로 다분히 후천년주의적이기도 하다ㅋㅋㅋ), 차라리 하늘나라를 바라고 말겠다.   허나, 그래도 한국보다 더 못 사는 나라들로부터 이민자는 꾸준히 유입되고 있고,생업을 위해서든 한류 열풍 때문이든, 오늘날은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도 비록 진짜 메이저급 언어의 학습자에 비할 바는 못 되더라도 은근히 ‘많다’.신토불이니,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이다” 식의 구태의연한 드립을 동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에 끼인 우리나라가 우리만의 개성을 내세워서 세계에 얼굴을 내밀려면 미우나 고우나 한글을 들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한글이 ‘생활의 무기’란다. 최현배 박사는 공병우 한글 세벌식 타자기의 가치를 알았고, 문자를 다루는 기술을 기계화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던 사람이다. 그랬기 때문에 ‘무기’라는 단어를 썼다. 자, 이 정도로 풀이하니 한글 노래의 가사가 정말 외솔스럽다는 게 와 닿으시는지?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 주시경 선생은 그 옛날에 불모지이던 국어학의 기초를 닦고 한글 맞춤법의 근간을 마련해 놓았다.최현배 박사를 비롯한 조선어 학회의 학자들은 언어학의 결정체인 국어사전을 만들었다.공병우 박사는 기계와 사람의 편의성을 기가 막히게 조화시킨 전대미문의 한글 타자기를 발명했다.그리고 훗날 아래아한글을 만들어 낸 프로그래머들도 있고.. 본인은 그 ‘한글탑’ 위에다가 벽돌 한 장 정도 올려놓은 수준은 되면 좋겠다.(연세 대학교는 문과 대학 강의동의 이름이 '외솔관'이고, 캠퍼스 안엔 연세 한글탑이 있다.)   9월 18일 철도의 날과 10월 9일 한글날은 딱 3주 간격이며, 둘은 같은 요일이다.고로 올해는 철도의 날과 한글날이 모두 일요일이다.이 사실을 발견하고는 본인, 무릎을 쳤다.철도와 성경이 만나듯, 철도와 한글 쪽도 이렇게 만날 필요가 있다. ㅋㅋㅋㅋ[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5:2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08 22:30:48 | 김용묵
한달전부터 여러번 읽어도 도무지 설명할수가 없습니다. 정말 사본상의 오류인가요?   1)사무엘하 8장 3~4절과 역대상 18장 3~4절입니다.   사무엘하 8장 3~4절.....그에게서 병거 천대와 기병 칠백명과 보병 이만명을  빼앗고 모든 병거의 말은 다리의 힘줄을  끊되 다만 그것들 중에서 백대의 병거에 쓸것만 남겼더라    역대상 18장 3~4절.....그에게서 병거 천대와 기병 칠천명과 보병 이만명을  빼앗고 또 모든 병거의 말은 다리의 힘줄을  끊되 다만 그것들 중에서 백대만 남겼더라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6:3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08 01:21:37 | 전성실
'진화론에 세뇌당한 것은 아닙니까?"에 이어 '같은 종류의 두 사람'이라는 제목의 만화 전도지를 올립니다. 패드 등에 넣어서 보고 알려주어도 좋을 것입니다. 작업을 해 주신 한기만 형제님과 신실한 한 형제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2011-10-07 15:13:08 | 관리자
요즘 전 세계적으로 칼빈주의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혁신학 혹은 개혁주의 청교도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칼빈주의가 널리 파급되고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칼빈주의는 비성경적인 교리입니다. 저는 존 맥아더, 존 파이퍼, 마틴 로이드존스, 국내의 많은 장로교 목사님들이 좋은 분들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추종하는 칼빈주의는 성경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성경대로 보면 칼빈주의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창시자 어거스틴에서 출발한 이교도들의 믿음 체계입니다. 어거스틴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으로 봐야 합니다. 천주교회를 위해 연옥 교리를 만들고 교회가 다스리는 지상 왕국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만들어 중세 천주교 암흑 시대를 열어 준 장본인이 바로 어거스틴입니다.   그런데 칼빈은 어거스틴의 토대 위에 그의 신정정치 교리를 수립하였습니다.   다음의 PDF 파일은 클라우드가 칼빈주의의 확산을 경계하면서 쓴 기사입니다. 5-6쪽에 보면 전 세계적인 칼빈주의 확산의 이유가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1. 근본주의 교회들 안에서 거의 회개 없이 구원을 가르치는 추세로 인한 반작용 2. 칼빈주의의 인기 있는 목사들에 의한 파급 3. 칼빈주의의 이단적 요소에 대한 무지 4. 말세에 프로테스탄트들이 자기들의 모교회인 천주교회로 회귀하려는 배도 현상 등   성경대로 믿는 성도들은  결코 비성경적인 칼빈주의의 덫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저는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설교와 설교자라는 책을 대단히 좋아합니다. 구구절절 옳습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그분의 마음과 열정을 대단히 존경합니다. 김남준 목사님의 글도 많이 읽고 좋아 합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청교도 신학은 수용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15-17 세기에 이 땅에 신정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성경과 칼빈주의는 맞지 않습니다.   한국 땅에도 청교도 개혁신학이라는 기치 아래 칼빈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보면서 우려가 되어 간단하게 글을 썼습니다.   샬롬   (*) ReformedDangers라는 PDF 파일은  http://www.middletownbiblechurch.org/ 에서 다운받은 것입니다. 이 사이트로 가서 Doctrine 부분에서 The Dangers of REFORMED THEOLOGY를 보면 자세한 기사들이 더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1-10-06 13:59:11 | 관리자
올해 7월 말에 한 포털 회사에서 해킹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 회사에 가입했던 사람들의 이름, 전화번호, 주소와 암호화된 주민등록번호가 유출이 되었습니다. 이 암호화된 것이 풀리느냐 안 풀리느냐에 대해서 논란이 많았는데요. 저 역시 회원이었던지라 제 정보 역시 노략질 당했습니다.   오늘은 이 컴퓨터 보안과 성경에 대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1.   컴퓨터 공학에는 여러 가지 영역이 있습니다. 프로그래밍 언어, 컴퓨터 그래픽, 음성 인식, 패턴 인식, 컴퓨터 비전 등등...   이 중에 한 분야가 보안입니다. 다른 분야와 이 보안이라는 분야가 다른 점은 "보안은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생겨난 분야"라는 것입니다. 위에 적은 여러 분야들은 컴퓨터를 활용하는데 없으면 안 되는 분야이지만, 보안은 나쁜 사람이 한 명도 없으면 없어도 됩니다.   그런데 나쁜 사람이 지구 상에 한 명도 없으려면, 마귀가 없어져야 하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는 보안은 필요하고 매우 중요합니다.   몇 안 되는 나쁜 사람들 때문에 그 나쁜 사람들로부터 좋은 사람들을 지키려다 보니 보안에 시간을 쏟아야합니다.     2.   그러나 이것을 알라.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경점에 올 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자기 집이 뚫리지 않게 하였으리라. (마 24 : 43)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르니 정신 차리고 있으라는 말씀을 "도둑이 자기 집 어디로 뚫고 올 지 모르니 정신 차리고 있으라"는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컴퓨터에 있는 정보를 훔치러 오는 도둑들도 언제 올 지 모르니 항상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마귀도 우리의 상급을 못 받게 방해하러 언제 올 지 모르니 항상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겪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벧전 5 : 7-8)     3.   마귀는 가장 약한 곳을 뚫고 옵니다. 마귀가 인류를 처음 넘어뜨릴 적에도 아담의 가장 약한 부분을 뚫고 왔습니다.   이브는 하나님 말씀을 직접 듣지 못했습니다. 아담을 통해 들었습니다. 3장에서 뱀과 대화할 적에 '만지지도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봐서, 확실히 알고 있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귀는 약한 믿음을 가진 이브를 먼저 공략했고, 그 약한 부분을 통해서 강한 아담까지 넘어뜨렸습니다.   보안 공부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약한 고리만큼 강하다."   둥근 고리 10개를 묶어 놓았습니다. 9개는 무척 강하지만, 하나는 사람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끊어진다고 합시다. 결과적으로 그 열 개 고리의 강도는 사람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끊어질만큼 강하다가 됩니다. 다른 고리가 아무리 강해도 가장 약한 고리만큼 강합니다.   마귀가 뚫고 올 곳이 없는지 자기 자신을 항상 조심해야겠습니다.   악의 모든 모양을 삼가라.(살전 5 : 22)   그런데 이 모든 부분을 막는다는 것이 심하게 어렵습니다.   분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영을 다스리는 자는 도시를 취하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 : 32)   자기 마음을 다스리기가 참 어렵기 때문입니다.     4.   그런데 이 보안 문제는 만드는 사람이 프로그램을 얼마나 못 만들었기 때문에 생길까요? 프로그램은 아래 보시는 것처럼 글로 작성이 됩니다.     이런 글에서 몇 줄이 잘못되어야 이런 큰 문제가 생길까요?   차이야 많지만, 한 두 줄인 경우도 많습니다. 3000만 줄 정도 잘 작성해 놓고, 두 줄 정도 이상하게 작성하면, 해커들은 그 이상한 두 줄을 통해서 헤집고 들어 옵니다.   개역 성경을 보다 보면 이런 한 두 줄이 조금씩 보입니다. 이런 한 두 줄을 이용해서 마귀는 계속 침투를 하고, 많은 기독교도들이 계속 당하고 있는 세태가 참 안타깝습니다.     5.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 : 23)   뭔가를 지킨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창과 방패의 싸움에서는 창이 매우 유리합니다. 창에게는 작은 구멍 하나만 있으면 되지만, 방패에게는 작은 구멍 하나도 있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마귀에게는 우리 각각에게서 작은 구멍 하나만 찾아서 공격하면 되지만, 우리 각각은 죄가 될 모든 구멍을 막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들 곧 포도나무를 망치는 작은 여우들을 붙잡으라. 우리의 포도나무에 연한 포도들이 있느니라.(아 2 : 15)   우리가 막아야 할 것은 큰 여우가 아닙니다. 작은 여우입니다.   이렇게 약한 우리이지만, 우리에게 이런 보안 위협으로부터 지켜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싸울 날에 대비하여 말을 예비해도 안전은 {주}로부터 오느니라.(잠 21:31)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5 : 57)[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8:0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01 13:03:29 | 허국현
펌 요즘 세태를 풍자하는 재미있는 유머 입니다.       웃기지만 슬픈 유머     아들은 사춘기가 되면 남남이 되고 , 군대에 가면 손님이 되고, 장가를 가면 사돈이 된다.   아들을 낳으면 1촌, 대학가면 4촌,군대 다녀오면 8촌, 장가가면 사돈의 8촌, 애를 낳으면 동포, 이민가면 해외동포.   딸 둘에 아들 하나 금메달, 딸만 둘이면 은메달, 딸 하나 아들 하나 동메달, 아들 둘이면 목메달.!!   장가간 아들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며느리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딸은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 자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나면 아들은 큰 도둑, 며느리는 좀 도둑, 딸은 예쁜 도둑, 사위는 강도.   남편과의 사랑은 운명적인 사랑, 아들과의 사랑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손자와의 사랑은 짝사랑, 며느리와의 사랑은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랑, 딸과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   남편을 집에 두면 근심 덩어리, 데리고 나가면 짐 덩어리, 마주 앉으면 웬 수 덩어리, 혼자 내 보내면 사고 덩어리, 며느리에게 맡기면 구박 덩어리.   내 아들, 잘난 아들은 국가의 아들이고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이고, 빚진 아들은 내 아들이다.   미친 여자, 며느리를 딸로 착각하는 여자 사위를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 며느리 남편을 아직도 아들로 여기는 여자.   아들에게, 재물을 안 주면 맞아죽고, 반만 주면 쫄려죽고, 다 주면 굶어죽는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5:2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9-30 13:55:25 | 허광무
지금 전 세계가 무상 파동에 휩싸이고 있습니다.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도 공짜 때문에 큰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특히 오바마는 사회주의에 가까운 정책을 펴서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미국인들에 의해질타를 받고 있습니다. 말세의 징조 중 하나는 심각한 양극화와 사회주의의 무상 체제의 급부상입니다.양극화 현상 속에서 빈곤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결국 적그리스도의 '문제 해결' 구호에 넘어가미끼를 따먹을 것입니다. 성경은 무자비한 자본주의는 반대합니다.하지만 성경은 신약시대에 민주주의 자유시장 경제 체제를 지지합니다.이 원칙 하에서 서로를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다음은 미국의 어느 분이 보내 주신 글입니다.남윤수 자매님이 번역해 주셨습니다. 특히 다섯 째 문장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정책을 추진하던 유럽의 복지 국가들의 대부분이 결국 이 정책으로 인해 쇠약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는 말세의 징조이므로 사람이 못 바꿉니다. 다만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징조가 말세의 징조임을 아는 것이 필요하여 글을 올립니다.     ------------------------------------------- 여기 다섯 개의 문장들은 사실입니다.워싱턴의 관료들(오바마 행정부)은 그런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당신은 그것들을 믿습니까?그렇다면 다른 분들께 보냅시다. 이것들은 아마 당신이 이제까지 읽을 것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문장들일 것입니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이것을 알지 못합니다. 1. 당신은 부자들을 부유함 속에서 빼내려는 것을 입법화함으로써 가난한 자들을 부유함 속으로 집어넣는 것을 입법화 할 수는 없습니다. 2. 한 사람이 일하지 않고 받은 것, 그것을 위해 다른 한 사람은 대가도 없이 일을 해야 합니다. 3. 정부는 다른 누군가에게서 먼저 얻어내지 않고서는 누구에게든 아무것도 줄 수 없습니다. 4. 당신은 부유함을 나누어서 부를 증대시킬 수는 없습니다. 5. 인구의 절반이, 인구의 다른 절반이 자기들을 돌보아 줄 것이기 때문에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한다면그리고 그 다른 절반이 누군가가 자기들이 일한 것을 취할 거라는 생각에 일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면그것은 곧 그 국가의 종말이 시작되는 징조입니다. These Important 5 Sentences Are True.Washington Bureaucrats Do Not Believe Them.Do YOU Believe Them?If So, Pass Them On. These are possibly the 5 best sentences you'll ever read: Unfortunately, most voters don't know this.  1. You cannot legislate the poor into prosperity, by legislating the wealthy out of prosperity. 2. What one person receives without working for, another person must work for without receiving. 3. The government cannot give to anybody anything that the government does not first take from somebody else. 4. You cannot multiply wealth by dividing it. 5. When half of the people get the idea that they do not have to work because the other half is going to take care of them; and when the other half gets the idea that it does no good to work, because somebody else is going to get what they work for, that is the beginning of the end of any nation.[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8:0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9-29 09:56:04 | 관리자
민수기 22장 20절 질문(민22:20)   항상 이 사이트를 통하여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자유게시판에 수준높은 글이 항상 올라와서  이렇게 질적으로 떨어지는 질문의 글로 공간을 채우는게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알고자하여 이렇게 질문드립니다.     민수기 22:20 밤에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오사 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오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할지니라, 하시니      21절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나귀에 안장을 얹고 모압의 통지자들과 함께 가니라      민수기 22절 그가 간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분노가 불같이 타올라 주의 천사가 대적이 되어 그를 치려고 길에 서니라..     2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일어나 함께 가라" 하고 말씀하셨다고 하시는데 왜 22절을 보면 그가 간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분노가 타올랐을까요?    하나님께서 먼저 그들과 가지말라는 말씀을 12절에 하셨습니다 12절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지니 이는 그들이 복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왜 20절에 다시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리고 왜 분노가 타올랐을까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1-11-14 17:50:08 자유게시판에서 복사 됨]
2011-09-28 00:33:10 | 이탁재
건전한 정신과 양심을 가진 대부분의 크리스찬이라면 다들 아시는 내용이지만, 기사 내용이 한국 교회의 상당수가 교회 건물을 세우고자 하는 행태와 관련하여 나름대로 잘 지적한 부분들이 있어서 글을 그대로 링크하여 올립니다.   지금 이 시대의 참 성전이 무엇인지, 그리고 과연 신약 교회에 걸맞는 모임 장소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면 좋을 듯 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3:0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9-20 21:50:53 | 신대준
철도의 상징은 뭐니뭐니해도 산업화의 주역이던 증기 기관차이다.우리말의 경우 기차(汽車)라는 한자어부터가 증기라는 뉘앙스를 잔뜩 담고 있는 단어이며, 칙칙폭폭 역시 증기 기관차에서 유래된 의성어이다.철도 건널목 표지판은 연기를 모락모락 내는 증기 기관차의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이다.증기 기관차가 달리면서 연기를 온 천지에다 뿌려대는 모습을 보면, “기차 화통 삶아먹었나?”란 말의 의미를 확실하게 이해하게 된다.   오늘날의 철도 차량 중에 저렇게 연기를 뿜으면서 칙칙폭폭 하면서 달리는 녀석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기억 속에 각인된 철도의 첫 구현체인 증기 기관차에 대한 인상은 너무나 뿌리 깊다. 마치, 플로피 디스크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도 3.5인치 디스켓 아이콘은 ‘저장’ 아이콘으로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리학에는 열역학이라는 분야가 있으며, 열역학이라는 관점에 따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는 궁극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열로 바뀐다.하지만 반대로 열을 에너지로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며, 모든 열을 에너지로 바꾸지는 못한다. 그 일을 하는 물건을 통상 기관 내지 엔진이라고 부른다.   그 기관 중 증기 기관은 외연 기관이라고 불린다.증기 기관은 연료를 태워서 물 같은 다른 매개체를 끓여 증기를 만들고, 그 증기의 힘으로 피스톤이나 터빈을 움직인다. 연소가 동력을 만드는 곳과는 별개의 장소인 보일러에서 행해진다는 점에서 ‘외’(external)라는 말이 붙은 것이다.밥솥 내지 냄비에서나 나오는 그 연약한 수증기가 평소보다 10수 배로 압축만 하면 집채만 한 무거운 열차를 움직이게도 한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요즘이야 기관차형 열차에는 기관차 뒤에 발전차가 편성되어 있다. 객실 내부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증기 기관차 시절에는 발전차가 아니라 석탄을 실은 별도의 화차가 한 량 필요했다. ^^;; 기관사 밑에서 일하는 조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삽으로 석탄을 아궁이에다 열심히 퍼 넣어야 했다. ㅎㄷㄷㄷ;;그리고 증기 기관차를 굴리기 위해서는 역에는 급수탑이 필요했다. 수원, 영천 등 몇몇 역에 있던 급수탑이 지금은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보존되어 있기도 하다.   오늘날의 철도 차량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당시 증기 기관차의 특징 중 하나는 바퀴 크기가 큼직했다는 점이다. 옛날에는 앞바퀴가 유난히도 큼직한 자전거가 존재하기도 했던 것과 따지고 보면 비슷한 맥락이다. 또한, 증기 기관차는 꼭 둥근 원통형이고 색깔은 새까맸다. 어차피 매연 묻어서 시꺼멓게 되는 걸 가리려고 검은색을 의도적으로 선택한 듯.또한 증기 기관차는 20세기 중반에 세상에 컬러 사진이 보편화할 무렵엔 모두 은퇴했기 때문에, 최소한 연기를 뿜으면서 달리는 모습을 컬러 사진으로 보기는 쉽지 않은 물건이기도 하다. 특히 정지 사진이 아닌 컬러 동영상은 더욱 찾기 힘들 것이다.   증기 기관은 오늘날의 내연 기관에 비해서야 구조가 간단해서 만들기 쉽고, 저속에서도 비교적(언제까지나 '비교적!') 토크가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마차보다야 월등히 더 뛰어난 수송력으로 물류 혁명을 달성한 건 사실임. 그리고 무슨 방법을 써서든 물을 끓게만 만들면 됐으니 옥탄가가 크지 않은 저가의 저질 연료를 써도 괜찮은 점 역시 장점이었다.   그때 증기 기관차에는 별도의 변속기라는 게 없었다. 외연 기관은 태생적으로 연소 따로, 구동 따로인데 어차피 바퀴의 부하가 엔진에 바로 걸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냥 석탄 열나게 많이 때면 빨리 가고, 적게 때면 느려졌다. 수증기가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유체/유압 변속기 역할을 자연스럽게 했다.변속기가 없기 때문에 그 대신 기관차의 바퀴 크기 자체가 동력비를 조절하는 역할을 했으며, 바퀴마다 크기가 들쑥날쑥이기도 했다. 여객용 기관차는 속도를 중요시해서 바퀴가 유난히 크고, 화물용 기관차는 견인력을 중요시해서 작은 바퀴 여러 개였던 식.   나름 증기 기관도 발전을 거듭하여 처음 발명되었을 때보다 더욱 출력이 향상되고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으나, 전반적으로 볼 때 이런 동력을 쓰는 열차는 매우 비효율적이고 문제가 많았다.증기 기관 자체가 물리학적으로 볼 때 태생적으로 미치도록 열효율이 저조하고 열차를 굴리기에는 출력이 부족했다. 가감속이 쥐약이고 고속화 역시 곤란했다.   또한 증기 기관은 보일러가 필요하고 물탱크에 석탄까지 있어야 하다 보니, 구조는 단순하지만 덩치가 커지는 게 불가피했고 소형화하기가 곤란했다. 증기 기관이 자동차의 동력원으로는 프랑스의 퀴뇨 이후로 일찌감치 실패하고 그나마 철길이라든가 증기선으로 살 길을 찾은 게 바로 이 때문이다.그러나 비열이 큰 물이 끓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석탄 같은 고체 연료는 취급하기가 번거로워서 여전히 큰 골칫거리였다. 시동 시간이 굉장히 길고, 차를 세우거나 움직이게 하는 게 고역이었다는 뜻. 연탄재 치우는 것만 해도 얼마나 귀찮은데 다량의 석탄재 처리는 어떻게?   요즘 일부 국가에서는 관광용으로 일부러 증기 기관차를 굴리는 곳이 있는데, 걔네들은 석탄 대신 더 깨끗하고 취급하기 더 쉬운 연료인 석유나 가스로 물을 끓인다. 200년 전의 증기 기관차를 100% 그대로 재연한 건 아니라는 뜻. 사실, 증기 기관이 발명되고 실용화한 시기 자체가 영국의 산업 혁명과 맥을 같이하며, 오늘날처럼 대량의 석유를 값싸게 전세계에 공급하는 인프라가 갖춰지기 전이었다.   18세기에 제임스 와트 같은 선구자에 의해 발명되어 인류의 동력원으로 활동한 증기 기관은, 19세기 중후반이 되어서야 내연 기관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최소한 교통수단에서는 완전히 은퇴하게 됐다. 오늘날 증기 기관은 발전소의 증기 터빈 같은 곳에서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오늘날은 내연 기관으로도 모자라서 아예 전기 철도가 각광을 받고 있지만 말이다.   결론:   - 내일은 9월 18일, 철도의 날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개통한 날짜(1899년 9월 18일)에서 유래됐습니다. - 철도의 날에 딱 맞춰 흠정역 400주년 기념판 런칭 이벤트가 열리는 것을 저는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3:0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9-17 21:24:48 | 김용묵
한번 읽고는 버리는 책이 있는가 하면 평생토록 두고두고 읽어야 할 책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 후자의 책들은 스캔 회사에 보내 스캔해서 컴퓨터에 두고 또 패드에 넣고 늘 가지고 다니면서 읽습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책 '설교와 설교자'는 후자의 책입니다. 목회와 설교에 무기력감을 느낄 때 읽으면 힘을 주는 책입니다. 그분의 열정이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듣는 이들을 시원하게 해 주는 설교자가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성도일 때는 설교가 지루해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로서 예배당에 앉아 설교를 들어보니  정말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설교가 너무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느 교회는 매일 구원만 설교합니다. 어떤 구절이든 읽으면 다 구원으로 끌고갑니다. 그러니 지루하고 또 종종 성경이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 교회 목사들은 성경 한 구절 읽고 다른 이야기 하다 끝냅니다. 어느 목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 구절만 인용합니다. 그리고는 그것이 성경적인 설교로 착각합니다. 어느 교회는 설교와 성경 공부를 구분하지 못하고 설교 시간에 성경을 가르칩니다. Preaching(설교)과 Teaching의 구분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100명이 앉아 있다고 할 때 헛된 설교로 1시간을 보내면 100시간을 허비하는 것입니다. 대형 교회처럼 한번에 2-3만 명이 앉으면 2-3만 시간이 허비되는 것입니다.   목사의 경우 한번 예배당으로 내려와 다른 사람의 설교를 듣거나 집에서 차에서 자기의 설교를 들어보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서고 쓰러짐은 목사에게 달려 있습니다. 특히 목사의 설교에 달려 있습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책의 1장(설교라야만 한다)을 올립니다.   성도들도 그냥 읽으면 힘이 솟아날 것입니다.   참고로 복있는 사람이라는 출판사에서 낸 책을 추천합니다. 많이 구매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설교에 소망을 둡시다. 좋은 목사들을 이 나라에 보내달라고 주님께 기도합시다.   샬롬.
2011-09-17 11:48:31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