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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처음부터 읽고자 하여 책을 폈을 때 제일 먼저 대하는 말씀이 창세기다. 그런데 현대의 진화론적 사고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부딪히는 부분이 또한 창세기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 부분이 사실(fact)로 믿어지면 이어지는 성경의 다른 모든 말씀을 사실로 받아들이는데 있어 큰 어려움이 없다.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그 분이 온 우주만물을 만드셨음을 믿는 자라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모든 이적을 받아들이는 것이 또한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창세기가 기록된바 그대로 믿겨지느냐 하는 것은 올바르고 흔들림 없는 신앙의 기초가 되는 아주 중요한 질문이 될 수 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주와 지구 안의 모든 생물과, 그리고 인간을 어떤 순서와 과정으로 창조하시는지 창세기 1장과 2장의 기록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하나님께서는 1장 1절의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으로 모든 우주에 필요한 구성 물질 즉, 공간(하늘)과 시간(처음에), 그리고 땅(물질)을 창조하셨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여기서 사용된 창조하다의 히브리어 동사   ‘bara’는 무에서 유의 창조를 가리키는 특별한 단어로서 이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임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 지구는 아직 형태가 없고 비어 있는 상태로 있었는데, 성령 하나님께서 물 위에서 움직이시며 그 모습을 만드셨다 (2절). 이때 ‘움직이다’로 표현된 히브리어 ‘rachaph’는 예레미야 23장 9절에서는 ‘떨리며’로, 신명기 32장 11절에서는 ‘너풀거리며’라는 뜻으로 사용된 단어이다. 과학적 식견이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마치 어떤 에너지가 전이 되는 것과 같은 현상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흥미로운 표현이다. 상상해 보라. 마치 닭이 병아리를 품듯이 성령 하나님께서 지구를 품고 그 안에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힘을 넣으시며 지구를 빚고 있는 장엄한 창조의 모습을!   이제 하나님께서는 빛을 창조하시는데, 이 빛은 단순히 오늘날 우리가 보는 태양 빛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성질로서의 빛 그 자체를 말한다.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은 물론이고 전자기 스펙트럼 상에 존재하는 모든 보이지 않는 영역의 빛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그 빛은 우주의 일정 공간을 차지하며 지구를 향하여 비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 부분 빛이 닿지 않는 공간에는 어둠이 같이 존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 빛을 중심으로 지구를 한 바퀴 자전시키심으로, 빛이 오는 방향에 따라 자연스럽게 저녁이 되며 아침을 오게 하시고, 지구에는 첫째 날이 오게 된다(5절). 이 부분에서 우리가 한 가지 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은, 여기서 창조된 빛은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하나님 자신에게서 나오는 빛을 의미하는 그런 뜻이 전혀 아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하나님 자신이 피조물이 되는 우스꽝스런 결과를 낳고 말기 때문이다. 또한 넷째 날 나오게 될 태양이 없는데 어떻게 지구에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냐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저녁과 아침은 어떤 형태이든 빛을 향하여 지구가 한 바퀴 스스로 도는 자전을 하면 생기는 것이지 반드시 태양이 있어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나중에 넷째 날 이후 태양이 생길 때 지구는 이제 태양 주위로 도는 공전을 하게 될 것이다.   둘째 날은 궁창을 만드시고, 물을 둘로 나눠 궁창 위의 물과 그 아래의 물로 나누시었다(6-8절). 여기서 궁창 위의 물은 당시 지구의 환경과 훗날 이어지는 노아의 홍수 사건을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셋째 날에는 드디어 육지가 드러나면서 식물이 만들어진다(9-13절). 이때 하나님께서는 씨앗을 땅에 뿌리어 오랜 기간 식물이 자라게 하시지 아니하시고, 말씀으로 곧바로 이미 다 자란 식물이 땅에서 나오게 하셨다 (11-12절). 식물은 본래 광합성을 할 때 태양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만, 이때 창조된 식물은 이미 잎사귀가 무성한 장성한 식물로서 이미 그 잎사귀 안에 일정 기간 살아가는데 필요한 충분한 양의 에너지가 저장되어 있었을 것이며, 또한 첫째 날 만들어진 보다 근원적인 빛이 이미 지구를 비추고 있으므로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라는 측면에서도 굳이 태양이 없어도 살아가는데 있어 하등의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어차피 바로 다음 날 태양을 또 만드시고, 그 태양으로 하여금 지구를 비추는 역할을 담당하게 하시기 때문에 이제 식물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태양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한편, 진화론자들은 과일 맺는 나무의 출현을 바다의 많은 생물들이 나타나고 수백만 년이 지난 뒤라고 생각하는데, 성경은 분명히 식물이 먼저라고 말함으로 진화론과는 전혀 어울릴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   이어서 하나님은 흥미롭게도 넷째 날에 가서야 비로소 태양과 달과 별을 만드시는데(14-19절), 태양에서 지구가 떨어져 나왔다는 식의 진화론적 사고와는 정반대의 순서로 창조를 하시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족속들은 한결 가치 태양을 하나의 신으로 숭배하였던 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 태양을 하나의 피조물로써 넷째 날 만드신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제 지구를 비추는 빛의 역할은 태양과 달 그리고 별들이 맡아서 하게 된다.   다섯째 날이 이르러 하늘의 새들과 물속의 생물들을 창조하시는데(20-23절), 여기에서 다시 한 번 ‘bara’라는 특별 동사를 사용하신다. 히브리어에는 보통 ‘만들다(make)’혹은 ‘짓다(form)’로 번역되는 ‘asah’와 ‘yatsar’라는 동사가 따로 존재한다. 이들 단어는 ‘bara’와는 달리 이미 만들어진 어떤 것을 가지고 다만 형태와 조직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다시 ‘bara’라는 동사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이제까지의 식물을 포함한 다른 피조물에는 없는 무언가를 새롭게 동물을 창조하실 때 넣어 주셨음을 의미한다. 20절에 보면 성경에서 처음으로 ‘생명(life)’이란 단어가 나오는 것을 보게 되는데, 히브리어 ‘nephesh’를 번역한 말로서, 보통 우리가 ‘혼(soul)’ 또는 ‘의식(consciousness)’이라고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식물은 비록 ‘몸(body)’은 동물처럼 흙의 요소를 비슷하게 갖고 있지만, 성경적 기준으로 볼 때는 ‘혼’이 존재하지 않는 구별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여섯째 날이 이르자, 하나님께서는 땅 위의 모든 생물과 사람을 만드신다 (24-31절). 앞서 20-23절에서 동물을 만드실 때 ‘bara’가 사용되었다고 하였는데, 25절에서는 ‘asah’즉, ‘만드시니라(made)’를 사용하신다. 왜 그럴까? 앞에서 물과 공중에 거하는 동물들을 만드실 때 ‘nephesh’를 만드셨기 때문에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거주지만 다른) 같은 종류의 동물을 만드실 때에‘asah’가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bara’가 다시 한 번 (27절), 그리고 ‘asah’와 함께 (26절) 동시에 사용 된다. 여기서 ‘asah’가 사용되었다는 말은 이미 다른 피조물에게도 존재하는 것 즉, 사람의 몸과 혼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27절에 사용된 ‘bara’는 그럼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제까지의 피조물에는 없고, 오직 사람에게만 주신 근본적인 새로운 것,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은 더 많은 논의를 요구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루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이러한 창조의 과정을 통해서 새삼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중요한 진리는,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세밀하게 우리 사람을 위하여 공간과 그 안에 있어야 할 것들을 미리 채우시고 이제 그것들을 다스릴 사람을 창조하시되, 그 어떤 피조물에게도 없는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을 오직 사람에게만 주셨다는 놀랍고도 감격스러운 사실이다. 할렐루야!   이제 창세기 2장으로 넘어 가보자. 창세기 1장은 창조의 과정을 연대기적인 방법으로 기술하고, 그 결론을 2장 3절에 이르러서 일단락을 짓고 있다. 그러면, 그 뒤에 이어지는 2장의 내용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들은 2장에 나오는 창조의 내용은 1장과 서로 다른 창조의 기사를 후대에 와서 편집하여 합쳐 놓은 것이며, 일부 내용 중에는 1장의 내용과 서로 모순되는 내용이 나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같은 주장은 소위 ‘문서설’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데, ‘문서설’이란 그 이론 자체에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성경의 영감성을 부인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옴을 인하여 사실 신앙생활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이론이다.   여기서 창세기 2장 4절이 뒤에 이어지는 창세기 2장 전체의 해석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구약학 교수를 지낸 Edward J. Young박사는 이 구절을 단호하게 표제문으로 본다. 다시 말하면, 4절은 앞서 1장의 창조의 내용에 대한 종결문이 아니라, 새로운 문단을 여는 표제문으로 봐야 옳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4절에서 사용된   ‘the generations’- 참고로, 영어 성경에는 4절에 위치한 이 단어가 우리말로 번역될 때는 어순에 따라 5절 중간에 ‘생성 세대’라는 말로 번역되어 위치하고 있다 - 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톨레돗(toledoth)’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이 단어가 창세기에서만 총 열한 번에 걸쳐 사용되고 있으며, 그 때마다 새로운 문단을 시작할 뿐만 아니라 앞서 기술한 어떤 주제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이고 자세한 설명으로 범위를 좁혀 가며 기술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2장 4절에서도 이 구절이 사용됨으로써 앞서 1장에서 기술한 창조의 내용을 이제 보다 자세하게 그 중의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하려고 한다는 게 자명해 진다. 결국, 창세기 2장은 1장의내용을 보완하며 동시에 에덴동산으로 창조의 시선을 모아간다. 이는 또한 뒤에 3장에 나오는 에덴동산에서의 인류의 타락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3장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창세기 2장에서 1장의 내용과 모순되어 보인다고 흔히들 지적하는 부분은 2장 18-19절이다. 창세기 1장에 보면, 동물이 먼저 창조되었고(1:21-25), 그 후에 사람이 지은바 된 것으로(1:26-27) 기록되어 있는데, 2장에서는 그 순서가 바뀌어 마치 동물이 사람보다 나중에 창조 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기록이 있음으로 (2:18-19), 이 부분에 대한 분명한 해석상의 정리가 있어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 말한 것처럼, 창세기 2장의 성격이 1장의 많은 창조 내용 중에서 특히 사람의 창조와 에덴동산의 환경을 1장에 대하여 보완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진다면, 그 안에 기록된 창조의 순서와 내용 또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런 배경 없이 단지 2장 19절만 따로 떼어서 읽게 된다면, 마치 아담이 먼저 있고 그리고 아담 앞에서 하나님이 동물을 만들어 나오게 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맥을 잘 보면, 이미 하나님께서는 1장에서 피조물의 창조 순서를 연대기적으로 기술하였고, 여기서는 특별한 목적 즉, 18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아담을 위하여 합당한 조력자를 만들기 위함이었음이 밝히 드러나 있다. 결국 이미 만들어진 동물들 중에서 일부를 아담에게로 데리고 나오시어 이름을 짓게 하시는데, 20절에 보니까 “그러나 아담을 위해서는 그를 위한 합당한 조력자를 찾지 못하였더라.”라고 말씀하심을 보아 동물들로는 아담의 진정한 조력자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하여 말하심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여자 - 즉, 이브 -의 필요성이 강조되며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대로 아담을 잠재우시어 여자를 창조하시게 된다. 이때 우리가 주목하여 보아야 할 점은,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 중의 하나를 취하시어 이브를 창조 하시지만 (몸과 혼), 창세기 1장 27절의 기록처럼, 이브에게도 아담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을 독립적으로 주신 사실이다. 1장 27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창조하다에 히브리어 ‘bara’가 사용 됨)   그러면 2장 19절에서 아담 앞으로 나온 동물들은 어떤 종류인지 알아보자. 창세기 1장에서 창조된 모든 종류의 동물 가운데서, 단지 모든 가축, 공중의 날짐승, 그리고 들의 모든 짐승(every beast of the field) 만이 아담에게 나왔음을 알 수 있다 (2:20). 물에 사는 동물은 다 빠져 있고, 기어 다니는 동물과 땅의 짐승(beast of the earth) 또한 빠져 있다. 여기서 특별히 들(field)이란 단어는 인간의 노력이 개입되어 형성되어질 땅을 의미한다고 보여 지고, 따라서 ‘들의 모든 짐승’이란 보다 넓은 의미로서의 ‘땅의 짐승’과는 달리 아담이 앞으로 농사와 목축을 하며 살아가면서 자주 만나게 될 동물들을 의미한다고 여겨진다. 결국 아담에게 나온 동물은 한 마디로 이미 하나님이 지으신 수많은 동물들 가운데 아담과 근거리에서 마주치게 될 동물들이었다고 보는 것이 적당한 이해가 될 것이다.   자, 이제 끝으로 하나만 더 생각을 같이 해보기로 하자. 하나님께서는 왜 하필이면 6일간에 걸쳐서 창조를 하셨을까? 그 분은 본래 전능하시어서 단 하루 만에도 천지를 지으실 수 있는 분이 아닌가?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제 7일 째 되는 날 친히 안식을 하심으로(2:1-3), 우리도 하나님처럼 6일 동안 힘써 일하고 7일에는 안식하여 하나님을 기억하는 날을 갖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출20:8-11).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진리임에 틀림이 없다. 진화론적 사고에 익숙하여 창조의 각 하루를 수백만 년의 긴 연대로 인식하는 혹자들에게는 6일 창조의 내용이 상당히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가령, 하루가 수백만 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면, 셋째 날 만들어진 식물이 여섯째 날 즉, 수백만 혹은 수천만 년 뒤에 출현하게 되는 곤충의 도움 없이 어떻게 꽃가루 수분을 할 수 있었겠는가? 6일의 노동 후 7일째 안식의 개념은 또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하나님께서 수천만 년을 안식하셨어야만 된다는 결론이 아닌가? 성경은 창조의 기록에 있어서 분명하고 단호하다. 창세기 1장은 창조의 순서를 6일 간에 걸쳐 명시하고 2장에서는 초점을 에덴동산으로 모아 3장에서 타락된 존재로서의 우리의 실체를 밝힐 준비를 한다. 창세기 1-2장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고는 인간이 상상하여 쓸 수 있는 종류의 글이 아니다. 여기에 성경의 위대함이 있다. 아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02:3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3-20 15:44:11 | 김정훈
경험에 우선하는 지식이 없다고 머리로 이해되는 것이 다 안다고만 할 수 없는것이 그것을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것들이 많지요 우리가 일부러 어려움을 겪을 필요는 없지만 어려움을 당하거나 김형욱 형제님처럼 억울한 일을 겪는것이 꼭 나쁜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움을 통해 이웃의 처지나 어려움이 무엇인지 그때 깨닫게 되는것들이 참 많기 때문이지요 오늘 다시한번 가족을 생각하고 이웃을 돌아보게 되는 귀한 글 감사합니다.
2012-03-20 10:38:34 | 송재근
김형욱 형제님의 글에 깊이 동감합니다. 세상 살다보면 힘들며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게 되지요. 그렇지만 예수님을 생각하면 견딜만 하며 일어설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창조물에게 조롱받고 죽으심을 당했는데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저의 억울함은 억울함이 아니더군요. 저도 최근에 용서해야할 일이 생겼는데 억울하다는 생각에 갇혀서 직장 후배를 용서 못하고 있는데, 이제는 용서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저도 늘 가지고 있어요. 언제나 참고 기다리는 아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려 합니다. 오늘부터....
2012-03-20 08:37:39 | 양희석
억울 - 아무 잘못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거나 하여 분하고 답답함   제 아내가 저에게 시집와서 억울한 일이 참 많았었습니다.  그 억울한 일들을 저에게 애기했었는데 저는 그냥 '참아라'. 혹은 '그래서 나보고 뭐 어쩌라고?' 하고 넘겼습니다. 아마도 저의 그러한 행동이 제 아내의 억울함을 더 크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미안합니다.)   저는 살면서 그다지 억울하다는 감정/생각을 해본적이 많진 않은 것 같습니다. 예전에 고등학교때, 친구가 장난치는 바람에 제가 혼이 난적이 있었죠. 그때도 억울하긴 했었는데... 회사에서 승진에 누락(누락된적이 있었나?)되어도 뭐 그다지... 빨리 승진하고 싶은생각도 없었으니까요. ㅎㅎ (뭐 세상이 그런거지 하고 넘긴것 같기도 하고요)   억울하다... 는 감정을 정확히 깨닫은 건 작년입니다. 갑작스럽게 장인어른/장모님과 같이 살게되다보니 차가 비좁더군요. 그래서 차를 좀더 큰차로 바꾸려는데, 마음이 급하다보니 덜컥 꼼곰히 살펴보지도 않고 중고차를 사버렸습니다. 중고차 딜러만 믿고요. 그런데 중도차 딜러는 제가 파는 차만 꼼꼼히 살폈을뿐, 자신이 파는 차는 저만큼도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덜컥 중고차를 사니, 담배를 피웠는지, 차를 오래타면 가슴이 아프고. 냄새나고 문짝은 한달만에 고장나고... 이것 저것 살피니 한마디로 바가지를 쓴 겁니다.   속상하더군요. 억울합디다. 차를 탈때마다 억울한 감정이 치솟으며 내가 참 호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제 잘못인데요.   이때 제 아내의 억울함이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었습니다. 저는 제 잘못으로 중고차 잘못 산것도 억울한데, 잘못도 없이 부당한 대접을 받았던 아내의 심정이 얼마나 억울했을까?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더군요. 참 미안합니다. 제가 무심하게 그냥 저 편하자고 억울함을 알아주지도 않고 살펴주지도 않은 제가 참 미웠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가에 달려 돌아가신것을 생각할때, 저라면 참 억울했을것 같습니다. 잘못도 없이 십자가에 매달려 대신 죽어야 했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범죄자중의 하나가 "우리는 우리가 행한일에 합당한 보응을 받으니 참으로 공정하게 정죄를 받거니와"....했듯이 잘못에 합당한 보응은 오히려 마음이 편하지요. 마치 죄를 짓고 도망치는것보다 죄값을 치르니 마음이 편하다고 했던 어떤 사람의 말처럼.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하신 말씀처럼 억울해 하지 않은신듯 합니다. 오히려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해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멸시하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하여 우리의 죄들(과거의 죄, 앞으로 행할 죄들)을 완전히 제거하여 주심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심을 믿습니다.   세상에 억울한 일이 많을 겁니다.   억울하게 식당같은곳에서 대접받거나, 억울하게 선생님깨 혼나거나, 상사에게 혼나거나. 억울하게 내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내가 책임져야 하거나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억울하게 시부모에게 당하거나 억울하게 내가 쓴 글이 오해를 받거나 곡해되거나 억울하게 비판받거나 억울하게 소명할 기회조차도 받지 못하고 당하거나   억울하게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거나 억울한 모함을 받거나  등등 얼마나 억울한 일이 많겠습니까?   혹여 여기 자유게시판에 쓰는 글들이 논쟁이 되고, 이건 아니었는데 하는 마음과  혹은 소소한 의견차이로 시각차이로 마음이 상하거나 등등해서 억울한 감정이 들 때   바로 그런때에 예수님을 생각해보면 억울함을 조금은 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억울함을 하나님께 호소하여 위로받고, 감사함으로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나오길 생각해봅니다. 부당한 대우를 무조건 참으라는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잘못된 건 잘못되었다고 지적해야할때도 있지요. 그리스도인은 아마도 이 세상이 그나마 덜 부패하도록 하는 세상의 소금일겁니다.   어리석은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서 그에게 대답하지 말라. 너도 그와 같을까 염려하노라. 어리석은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서 그에게 대답하라.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염려하노라.     P.S 만약 제가 중고차 살때의 억울함을 못 느꼈다면, 아마도 지금도 제 아내의 억울한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감사합니다. 저에게 억울함이라는 감정을 좀 더 이해하게 해주신 사건을 통해서 조금이나 제 아내를 이해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아주 조금 이나마 알게 됨을.  그리고 제 아내가 이 글을 본다면 (아마도 볼겁니다) 제가 참 미안했었고, 지금도 미안해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02:3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3-20 07:59:09 | 김형욱
좋은 글로써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희에게 깨어 있고,준비하며,분별할 수 있도록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성경 말씀을 차근 차근 짚어가며 설명을 해주셔서 이해가 쉽게 되었습니다. 형제님의 글을 통해서 평소에 연구하며,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정리하고 계신 분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또한 믿음을 세우기 위한 의문을 제기하며 형제를 위해 고민하심 은 분명 달란트일 것입니다. 샬롬!
2012-03-19 08:33:42 | 양희석
또 댓글을 달아봅니다. 김정훈 형제님 안녕하세요! 니므롯의 후예 2부를 중간부터 끝날때 까지 들었습니다. 녹화는 없고 교사들을 위해서 토요일날 다시 한번 세미나를 준비해 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주말도 참석하기 어려울 것 같아 잠시 김준회형제님이 주일학교 설교를 할때 들었습니다. 들어보니 유익하고 좋은 세미나였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수고하심에 댓글을 통해 감사를 드립니다. 약 2년 전에 이러한 내용들을 접하고는 저도 많은 충격과 변화들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베리칩에 대해서는 666, 짐승의 표로 나름 확신하고는 그것을 알리려는 움직임을 가졌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베리칩을 경고하는 그런 프린트물을 5천장 인쇄를 했고 집집마다 문에다 붙였습니다. 약 1천장 정도를 집집마다 붙이고 다녔습니다. 내심 속으로는 기도했죠 이 전단지 보고 돌이키는 사람이 한 명 이라도 있어지기를요, 혹 믿지 않던 자가 휴거 이후에라도 이 전단지의 내용이 기억나서 더듬어 주께로 돌아오는 일이 있기를 바라면서요.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자랑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나름 주님을 향한 열정이 저에게도 있다보니 사비 써 가면서도 다리품 팔면서도 후회는 없었습니다. 집에 있는 칼라 레이져 프린터도 이때 장만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왜 하냐하면요 위 글을 읽고 제 사견을 나누어 보려고 이와 관련된 제 과거 이야기를 먼저 글로 옮긴 것입니다. 이 일들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는 때에 사랑침례교회와 정동수 목사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제가 KJV, 킹제임스흠정역성경 그리고 바른 교리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되면서 사실 또한 번의 큰 변화와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장로교회에 출석하면서 그림자정부, 세상의 역사들이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에 의해 조작되어지고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때는 참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말세지말이라는 사실이 피부로 와닷았을 때는 머리카락이 쭈삣쭈삣 서곤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 이슈를 또 접하게 되니 어퍼컷을 한대 맞은 황당함에 어이없는 웃음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길이 이리도 머냐? 진실의 끝은 어디인가? 등등을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다 정리가 되었습니다만 그때는 혼란에 혼란 그 자체였었습니다. 머리속에서 뒤죽박죽 되어있던 진실, 사실이라는 것들이 조금씩 정립이 되어가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것들을 이해하게 된 배경에는 킹제임스흠정역성경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이 되었고 성경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100% 믿는 믿음안에서 비로써 정립이 되었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베리칩에 한해서는 저는 생각을 유보하고 있습니다. 사실, 현재 베리칩에 대한 정보와 기능, 용도를 보면 정말 짐승의 표로 불릴 만큼 놀라운 것임에는 맞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분명 그렇게 보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만 보아도 휴거의 때가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가 생각이 들 정도 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보는 견해는 두 가지 입니다. 이 부분을 문자적 해석만으로 분석하는 것과 문자적해석과 시대적 상황을 함께 해석하여 이해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며 이 두가지 견해에는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저는 나름 생각 끝에 문자적 해석만을 적용하여 베리칩에 대한 생각을 정하였습니다. 그렇다고하여 베리칩을 이마나, 손에 삽입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도 형제님과 같은 생각을 가졌드랬습니다. 뭐라 말하기가 좀 어려운데 형제님이 헤아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이것이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는 판단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 우림과둠밈, 그밖의 휴거사이트, 종말론 사이트들 대부분이 이 RFID, 베리칩을 형제님이 제시한 견해대로 보고 있고 어떤 곳은 오버하는 곳도 있고 하지만 기독교의 교리와 믿음의 길에 유익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힘이 분산되어 소모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치 1948년 이스라엘이 다시 탄생하기 전까지 많은 성경적 종말의 해석과 1948년 이스라엘이 국가로 탄생하고 나서 성경의 대언서들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짐승의 표에 대한 부분도 휴거 이후에 나타날 황당무개한 일들 가운데 하나로 적그리스도가 제시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사람들은 베리칩을 통해서 아마도 유비쿼터스 사회를 맛보고 경험을 해본터라 적그리스도가 제시하는 짐승의 표를 서스름 없이 받아 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 입니다. 참고로 아래와 같은 생각들도 해 보았습니다. 거인들의 후예들에 대해서 혹 생각해 보신적 있습니까? ^^ UFO에 대한 정보들도 짐승의 표와 연관지어 생각해 볼 필요도 있는 것 같구요!^^
2012-03-19 03:16:55 | 노영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속히 일어나야 할 것들을 자신의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그분께 주신 것이라. - 계1:1 - 너는 내가 이 날 네게 명령하는 말들 가운데 어떤 것에서든지 떠나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다른 신들을 따라가며 그들을 섬기지 말지니라. - 신28:14 - 주님께 귀한 글을 읽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주제의 글들을 몇번 접할때마다 좌우로 치우친 글을을 읽곤 했었는데, 김정훈 형제님께서 KJV과 Fact에 기반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알려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올바른 글 부탁드립니다. 평안하신 하루되십시오. 형제님을 위해 기도드릴께요. 샬롬~
2012-03-18 09:35:18 | 우영운
긴 글로 생각을 적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사랑침례교회에 대하여 칭찬 해주신 것에 대하여 저도 같은 지체로서 기쁜 마음으로 받고 싶고, 또 그런 칭찬이 누가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말씀 안에 거해야 겠다는 다짐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에 대한 칭찬은.. 말씀은 너무 감사하나, 그대로 받기에는 솔직히 많이 부담스럽고요, 그저 진실됨과 열심으로 같이 이곳을 통해서 받은 바 말씀의 은혜들을 나눠 가길 원합니다. 샬롬~
2012-03-18 07:44:10 | 김정훈
저는 종종 성경에 왜 그렇게 많은 부분에 재림과 심판의 때에 대한 자세한 일들이 기록되었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그리고 김정훈 형제님의 의견에 많은 부분 공감합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2012-03-17 23:03:38 | 박종철
저의 한 없이 부족한 글을 이렇듯 깊이 헤아려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장로교인으로서 몇 해 전 성경지킴이 사이트와 사랑침례교회 사이트를 통해 킹제임스 성경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성경에 대한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여러모로 아는 것이 없고 부족한 사람으로 항상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성경지킴이 사이트를 방문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사랑침례교회나 성경지킴이 사이트의 형제님들과 면식이 없습니다. 주제넘은 이야기일지 모르나 얼마 전부터 김정훈 형제님의 글을 접하며 믿음의 단순함과 명쾌함의 능력이 살아있고 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후에 많은 공부를 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런 믿음과 깨끗한 정신을 소유하셨다는 것에 더욱 감동했습니다. 앞으로도 형제님의 귀한 글을 접하게 되길 바랍니다. 주제넘은 이야기를 하는 김에 한 가지 더 덧붙여 말하고 싶네요. 물론 수적인 부흥이 교회의 모든 것을 절대 말해 주지 않습니다만, 일반교인들의 저항심을 많이 사는 독립침례교회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사랑침례교회가 이런 놀라운 부흥을 이루어 가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단순하고 명쾌한 살아있는 설교 때문이라 확신합니다. 저도 국내 여러 설교자의 설교를 들었지만, 오늘날 정동수 목사님의 설교와 같은 단순하고 명쾌한 말씀의 증언이 선포되는 강단은 참으로 희귀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보존해주신 말씀으로 믿는 우리가 칼빈주의자들보다 순전한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강단에서 그들보다 선명하고 단순한 살아있는 말씀이 선포되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그 어떤 교회라도 무기력하고 정체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사랑침례교회의 성장과 그 외 많은 독침교회와 성침교회들을 지켜보며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샘터에서 생수가 분출하듯 사랑침례교회의 강단에서 살아있는 단순한 진리가 역동적으로 선포되고 많은 목회후보생이 그 영상으로 귀한 공부를 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울러 성경지킴이 사이트에서도 김정훈 형제님과 같은 살아있는 믿음의 글들이 이전처럼 더욱 풍성하게 나누어지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2012-03-17 15:45:55 | 김대용
겸손함과 균형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형제님의 말씀에 십분 동감합니다. 이것은 말씀을 모르고 지나치게 현상을 과장하는 자들에게도 해당될뿐만 아니라, 말씀은 보되 총체적 관점에서 시대의 징조를 보지 못하여 그 말씀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놓치는 자들에게도 적용이 된다고 봅니다. 앞으로 더욱 겸손하고 균형 잡힌 태도로 세상의 움직임과 말씀의 실현을 지켜 보며 따라갈 필요가있다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2012-03-17 13:51:12 | 김정훈
"짐승의 표가 사람 몸속에 이식된다는 얘기는 그냥 추정일 뿐입니다. 성경에 없습니다." 이 말씀은 저에게 상당히 충격입니다. 정말 성경에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형제님께서 어떤 근거로 그렇게 판단하시는지 한번 정리된 글로 (가능하면 댓글 보다는 원글로) 올려 주시면 이 곳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2012-03-17 13:40:03 | 김정훈
문득 작년에 미국의 한 한인 교계가 베립칩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고 베리칩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의 표라는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성명을 발표했다는 기사가 생각납니다.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48935 과연 베리칩이 요한계시록의 짐승의 표라는 주장의 확실한 근거는 지금으로서는 어디에서도 가져올 수 없습니다. 이 부분에 집중하다가는 쉽게 과도한 길로 행할 위험성을 항상 조심해야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위 기사의 경우와 같이 목회자라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몸에 신상정보 탐지와 통제를 할 수 있는 생체칩을 이식함에 있어 조금의 거부감도 없이 교인들의 경계를 풀어버리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신중한 ‘베리칩 경계론’을 펴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으나 그것이 요한계시록의 짐승의 표가 거의 확실하다거나 하며 성급하게 주장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종말의 교리를 연구하며 현시대를 분별하는 것은 역시 우리에게 대단히 유익하지만 때로 겸손함과 균형감을 잃고 과도하게 치우칠 때는 오히려 해악이 크겠지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길 소망합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고 돌아보게 하는 본문과 댓글에 감사합니다.
2012-03-17 11:18:28 | 김대용
와~~ 형제님의 인기가 여기서 보이네요. 그동안 진리침례교회에서 여러가지 소책자를 많이 번역해 주셔서 저희 사랑침례교회 자매들이 그리고 많은 지체들이 그 책들을 읽고 은혜받고 있어요. 이렇게 교회가 서로 서로 교제하고 세워주고 협력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계속 이어졌음해요.. 그동안 형제님의 수고로 좋은 내용의 글을 읽게 해 주셔서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2012-03-17 10:38:51 | 오혜미
이우진 형제님 여기서 뵈우니 너무 반갑습니다. 알기쉽고 명쾌한 해석에 대해서도 감사 드립니다. 또한 킹제임스 흠정역을 내손에 들려 주시고 훌륭하신 분들의 성경해석 공부와 교제가 있게 해주신 주님께 늘 감사 드리며 찬양 드리기 원합니다.
2012-03-17 10:21:51 | 정구만
뉴스에 보면 미국과 관련해서 생체칩 얘기가 자주 나옵니다. 관련해서 계시록 13장의 짐승의 표가 사람 몸속에 이식된다는 것이 성경적 진실인양 이야기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짐승의 표가 사람 몸속에 이식된다’는 얘기는 그냥 추정일 뿐입니다. 성경에 없습니다.
2012-03-17 00:42:56 | 김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