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취임식때 당선된 대통령들이 손을 얹고 맹세하는 성경책은 바로
프리메이슨 성경이란 점도 큰 문제 아닐까요
프리메이슨의 모태는 이집트 신비주의 종교가 그 모태로 알고 있습니다
2012-03-16 21:05:53 | 이종문
예 반갑습니다. ^^
2012-03-16 20:58:10 | 이우진
* 참고로 이 글은 본래 <자유게시판> #1531의 글에 달린 댓글 및 답 글의 형식으로 쓰여 졌던 것인데, 내용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독립된 하나의 글로 정리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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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그 유명한 ‘짐승의 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나옵니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에게 그들의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수를 가진 자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더라. (계 13:16-17)”
여기서 모든 사람들에게 ‘표’를 받게 하는 ‘그’는 큰 이적들을 행하며 (계 13:13), 짐승을 위하여 형상을 만들고 (13:14), 그 형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들을 다 죽이게 하는 자로서 (13:15), 결국 그의 정체는 ‘거짓 대언자’인 것으로 밝혀지게 됩니다 (19:20).
그런데 그 거짓 대언자가 사람들로 하여금 짐승의 형상을 향하여 경배하도록 옭아매는 수단으로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짐승의 표’인데, 이것을 받지 않으면 매매를 할 수 없게 됨으로 (13:17), 사람들은 생존을 위하여 표 받는 것을 쉽게 거부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렇다면, 짐승의 표는 언제 이 땅에 출현하고, 거짓 대언자에 의하여 사용되어 지게 되는 것일까요?
우선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짐승의 표는 어느 날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짐승의 표가 상징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기술'을 요구하는 하나의 발명품이고,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지 기술의 발전과 함께 미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시 앞에서 기술한 요한계시록의 말씀으로 돌아가 봅시다.
“그가 모든 자 ... 에게 그들의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 (계 13:16)”
잘 읽어 보면 이 말씀은 단지 짐승이 나타난 이후에 그가 - 즉, 거짓 대언자가 - 짐승의 표를 받게 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가 받게 하는 그 표가 언제 만들어 졌는지 혹은 그 이전에라도 사용되고 있었는지 등에 대하여는 딱히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것처럼 이 ‘표’라는 것이 어떤 '기술'을 요구하는 하나의 발명품이라고 본다면, 짐승이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활동하기 이전일지라도, 그의 길을 예비하는 다른 악의 세력들에 의하여 장차 짐승의 표의 기능을 하게 될 어떤 ‘표’를 미리 기술적으로 완성 시켜 놓고, 이것을 사람들에게 미리 받게 함으로 (가령 표를 받으면 얻게 될 각종 건강 및 보안 등의 편리성 등을 강조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표’에 친숙하도록 해 놓은 뒤에, 어느 날 비로소 ‘때’가 이르렀을 때에 거짓 대언자가 이제 그 동일한 표를 성경이 말하는 '짐승의 표'로서의 의미로 사람들에게 받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이 딱히 그렇다 안 그렇다고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만일 누군가가 위의 성경 구절을 읽고 짐승의 표는 아무래도 짐승 혹은 거짓 대언자의 출현 이후에 나오는 것일 뿐이라고 여기고, 따라서 환난 전 휴거를 이룰 성도들에게는 전혀 표를 받을 일도 없는 것이라고 여기게 된다면, 그것은 잘못하면 큰 오해를 낳을 수도 있기에 주의가 요망 됩니다. 이 부분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성경에 보니 빌라도가 다음과 같이 행함이 나옵니다.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주고, 예수님은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넘겨주니라.” (마 27:26)
자, 십자가는 도대체 언제부터 사형 도구로 사용되게 되었을까요? 누군가가 이 말씀을 읽고, “저는 십자가가 빌라도의 출현 이전에도 이미 사람들이 지고 가도록 사용되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빌라도가 죄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십자가를 미리 지고 다니게 하다가, 예수님을 처형하려는 그 때에 가서 예수님도 그것을 지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하지 않고, 단지 빌라도가 나타난 이후에야 비로소 예수님께 십자가를 지게 한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면, 누구라도 그것이 사실과는 다른 설명이라는 것을 쉽게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역사적 지식을 통해 십자가 형벌이 언제부터 출현하였는지를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십자가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가정하여 봅시다. 그러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성경에 보니까, 빌라도의 출현이후부터 십자가가 나오게 되니, 따라서 그 이전에는 십자가에 달려 사형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오해를 낳을 수도 있게 되겠지요. 바로 이와 같습니다. 빌라도가 이미 존재하는 보편적인 의미로서의 십자가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사형시키는 도구로 사용함으로, 그 십자가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가 될 수 있듯이, 거짓 대언자 또한 이미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널리 퍼져 있는 ‘표’를 짐승을 경배하도록 하는데 필요한 수단으로 쓰게 됨으로 그것이 ‘짐승의 표’라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 받도록 할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계시록으로 가서 13장 16-17절 말씀을 한 번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합시다. 16절의 표를 받게 한다는 말씀은 곧 바로 17절의 표 없는 자는 곧 매매를 못하게 된다는 말씀과 이어지면서 결국 이 뜻은, “짐승의 표란 그것 없이는 매매를 못하게 하는 표”라는 의미로 강조되어 나타납니다. 더욱이 영문 KJV 성경에는 16절과 17절 사이에 콜론 (:) 문장부호를 둠으로써, 이 두 구절의 의미가 떨어지지 않고 서로 연속적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음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주목해 봐야 할 점은, 결국 거짓 대언자에 의해서 주어지는 이 16절의 표는 매매통제 수단으로 이용되기 위하여 특별히 그가 권력을 행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받게 하도록 한다는 뜻을 의미할 뿐, 이 표가 그 전에도 유사한 목적 혹은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었던지 안 되었던 지의 여부에 대하여는 성경이 따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은 단지 거짓 대언자가 짐승의 표를 받게 하여 매매를 못하게 하는 통제 수단으로 사용할 것임을 말해 줄 뿐, 그 표가 반드시 짐승 혹은 거짓 대언자의 출현 이후에만 나오고 사용된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다시 말해 표의 출현과 그 표가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사용되는 시점은 (비록 그것이 다른 목적일지라도) 짐승 혹은 거짓 대언자의 출현 보다 더 이전일 수도 있음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표’와 연결된 구원의 문제를 떠나서라도, 장차 ‘때’가 이르렀을 때에 짐승의 표로 사용될 어떤 형태의 ‘표’를, 휴거가 일어나기 이전일지라도 휴거로 들림 받을 성도들 또한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음을 유념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때는 경배를 요구하기 전이므로 ‘표’를 받아도 믿음을 통해 이루게 될 구원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않을 수 있고, 경배를 요구하기 이전에 휴거가 먼저 일어난다면 결국 그 표는 구원과는 상관없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생활 침해와 개인의 자유의사를 통제 또는 간섭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알고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생각해야 할 일은, 우리 가운데는 환난을 겪고 늦게 구원 받을 성도들이 또한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일지 모르는 그들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가슴에 품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일 것이며, 그렇지 않고 환난 전에 휴거될 성도라 할지라도, 깨어 준비하며 더욱 자신을 돌아보아 여분의 기름을 채워 준비된 신부로 기다리고 있으려면, 이런 시대를 정확히 읽는 지식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이 종말의 시대에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우리가 늘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함은 성도라면 너무나도 당연하고 필요한 태도이겠지만, 요한 계시록 같은 말씀을 통해 사탄이 말세에 행할 일을 미리 알고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는 일은 매우 유익하고 또 중요합니다. 지금은 거센 배도의 물결이 일고 있는 때입니다! 적이 얼마나 간교한지 그 움직임을 알고 있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어도 뱀의 간교함 앞에 여지없이 무너진 이브와 아담이 결코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모든 성경의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 또한 비록 심판주로 다시 오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우리의 주목을 끌도록 강조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성경의 그 어느 책보다도 사탄의 마지막 될 일과, 짐승의 표, 환난 등에 대하여도 자세히 기록하고 있음 또한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말세에 되어질 일들을 우리에게 소상히 알림으로 성도들로 하여금 깨어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따라서 특별히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에는 그동안 감추어져 있던 짐승의 모습이 확연히 눈앞에 드러남을 주목하여, 시대의 물결을 따라 미혹되지 않고 굳건하게 믿음 승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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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6 19:38:11 | 김정훈
이우진 형제님 반갑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샬롬! *^^*
2012-03-16 13:51:34 | 송재근
목사님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이곳에 꾸준히 와서 여러 좋은 글들을 읽었습니다.
자주 좋은 글을 올릴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방문하여 많이 배우고 가겠습니다.
2012-03-16 13:47:51 | 이우진
쉽지 않은 논쟁을 하셔야겠군요.
그래도 동생분의 마음이 열린 것 같아 다행입니다.
자매님이 뿌리신 것을 언젠가 거둘 때가 꼭 올 것입니다.
2012-03-16 13:46:02 | 이우진
영어 KJB는 100%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항상 옳습니다.
이우진 형제님!
첫 등장에 감사합니다.
자주 좋은 글들 써 주세요.
샬롬.
정동수
2012-03-16 12:15:31 | 관리자
답변 감사합니다..저도 어제밤에 형제님글 보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어로 번역하셨으면 바로바로 이해하도록 하셨을 것인데 히브리어 문법적 성까지 다따져 보라고 설마 그러셨을까?...도움주셔서 감사합니다.
2012-03-16 11:08:18 | 전성실
형제님의 답글에 감사드립니다...어제 아무 답글도 안올라 오길래 정안되면 성경전체를 찿아서 words와 그뒤의 them으로 된 문장들을 다 찿아 분석해 보려고 했습니다....제 남동생과 성경문제들에 대해 증명,논증,답변중입니다...일년정도 불화가 되다가 최근 동생이 이멜로 우리노력해 보쟈고 제안이 와서 정성껏 최대한 성실히 답변중입니다....동생은 제가 다시 개역성경으로 돌아오고 이전신앙생활이 되기를 바라며 사랑하는 누나이기에 포기할수 없는 문제라고 하고 저도 사랑하는 남동생이므로 남동생이 KJV을 받아들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우리는 서로 사랑하기때문에 포기할수 없는 것이고 서로를 방치할수 없는 것이기에....서로서로 기도하고 있습니다...물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남매모두에게 유익하게 하실것을 믿습니다...제 남동생은 목회시작한지 20년이상이고..히브리어15년공부한 이력이 있고 저는 KJV을 믿은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아기(?)입니다...주께 기도드립니다....주님 받드시 도와주셔서 제남동생도 KJV을 받아들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KJV을 잘 가르치는 더욱 좋은 사역자가 되게해 주십시요....
수신되는 멜마다 정성께 최선을 다해 신학원에서 배운내용들과 자료들을 수집해서 답변했습니다...제남동생도 이전처럼 막연한 선입견이 아니라 더욱진지하게 귀기울이고 사랑침례교회 설교도 들어보고 공인 본문,안디옥사본계열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이쪽의 교회사에도 관심을 보이면서 열심히 탐구중입니다....그러나 20년 넘게 몸담아온 기존의 입장이라 저도 많이 힘이 듭니다....이제 시편12편에 대해 ...우리는 긴 논쟁이 될듯합니다....저도 동생에게 도움이 될 것을 준비해야 하기에 문제가 되는 문법이나..용례나..모든 변수에 대해 준비해야 하고 동생도 누나에게 도움이 되겠다고 노력중에 있습니다.....
KJV은 항상 옳습니다.---동의합니다.
2012-03-16 10:43:45 | 전성실
안녕하세요 진리침례교회 이우진 형제입니다.
이곳에 쓰는 첫 글이 답글이 되었네요.
글이 길어질거 같아 답글로 달지 않고 따로 글을 올리는 점 양해해 주세요.
부족한 지식이지만 제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답변을 해 보겠습니다.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는 점이 있으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7절의 “그것들(them)”은 6절의 “주의 말씀들”이 맞습니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울뿐더러 유일한 해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인 성경을 보존하시는 것을 믿지 않는 학자들은 7절의 “그것들”이 5절의 “가난한 자들”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5절에 나온 그 누구도 그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주신대로 지금까지 보존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심지어 NIV의 경우 7절의 “그것들(them)”을 “우리들(us)”라고 바꾸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보존하시는 것이 말씀들이 아니라 사람인 것처럼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히브리어 원문도 1인칭 복수대명사(us)로 되어 있는 것은 없습니다.
모두 “그것들(them)”이라고 3인칭 복수대명사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7절의 “그것들”은 결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떠한 사람도 다윗의 세대로부터 지금까지 보존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7절).
학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무너뜨리기 위해 어떤 히브리 원문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주장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학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방법 중 하나가 히브리어(혹은 그리스어) 문법을 들먹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법을 통한 설명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7절의 그것들이 남성복수이고 6절의 말씀들이 여성복수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말씀들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학자들의 주장일 뿐입니다.
대부분 그렇게 받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 시편 12:6-7에서는 예외적으로 받았다고 보면 그만입니다.
히브리어 단어의 성이 절대적인 게 아닙니다.
예를 들면, 욥기 31:11에서는 “이것은(for this)”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히브리어에서는 남성 단수입니다.
그러나 10절의 “아내”는 여성 단수입니다.
11절의 “이것은”은 9절과 10절의 이야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9절에서는 여성 단수인 여인에 대한 이야기이며 10절에서도 여성 단수인 아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11절에서는 9절과 10절의 이야기를 남성 단수로 받고 있습니다.
즉, 욥기 31:11에서도 성의 불일치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에는 기본적으로 성이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경우에 따라서는 성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학자들이 문법을 들먹이며 반드시 그렇다고 하는 말에 너무 무게를 두지 마세요.
특히 킹제임스성경이 어떤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면 학자들이 뭐라고 하든 그것은 틀린 주장입니다.
중요한 것은 문맥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시편 12편은 말(word)에 대한 것입니다.
2절- 입술, 말하다
3절- 입술, 말하다, 혀
4절- 혀
6절- 말씀들
인간의 말은 악하고 헛된 반면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주께서 보존하셨기 때문에)는 것이 시편 12편의 내용입니다.
문법이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학자들은 모든 정보를 다 제공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을 말할 뿐입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성경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보존하신다고 하신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기로 마음먹은 사람을 설득할 방법은 없습니다.
“또한 그들이 자기 지식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롬 1:28)
킹제임스성경은 항상 옳습니다.
부족한 지식이지만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혹시 잘못된 점이 있으면 지적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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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6 00:59:40 | 이우진
맞습니다. 두려움을 갖기 보다는 이런 지식들로 나를 더욱 돌아 보게 되고 바른 말씀과 교리로 자신을 더욱 바로 세우게 되지요.
2012-03-15 20:37:19 | 김정훈
성경은 단지 적그리스도가 나타난 이후에 짐승의 표를 받게 한다고 말할 뿐입니다.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이전일지라도, 그를 예비하는 다른 악의 세력에 의하여 장차 적그리스도에 의해 짐승의 표로 사용되어질 표를 미리 받게 하고 (편리성을 강조하면서) 비로소 때가 이르렀을 때에 적그리스도가 이제 그 동일한 표를 성경이 말하는 '짐승의 표'로서의 의미로 사람들에게 받게 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짐승의 표로 사용될 표의 최초 출현 시점에 대하여 딱히 기술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계시록 13:16의 말씀만으로 그 이전 상황에는 표 집어넣는 일이 없다고 말하기에는 근거가 약합니다. 즉, 그렇게 되지 아니할 수도, 그렇게 될 수도, 둘 다 가능한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성경에 보니 빌라도가 다음과 같이 행함이 나옵니다.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주고, 예수님은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넘겨주니라.” (마 27:26)
누군가가 이 말씀을 근거로, “저는 십자가가 빌라도의 출현 이전에도 이미 사람들이 지고 가도록 사용되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빌라도가 죄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십자가를 미리 지고 다니게 하다가, 예수님을 처형하려는 그 때에 가서 예수님도 그것을 지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하지 않고, 단지 빌라도가 나타난 이후에야 비로소 예수님께 십자가를 지게 한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면, 누구라도 그것이 사실과는 다른 설명이라는 것을 쉽게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의 지식이 십자가 형벌이 언제부터 출현하였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십자가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가정하여 봅시다. 그러면 성경에 보니까, 빌라도의 출현이후부터 십자가가 나오게 되니, 따라서 그 이전에는 십자가에 달려 사형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오해를 낳을 수도 있게 되겠지요. 바로 이와 같습니다. 빌라도가 이미 존재하는 보편적인 십자가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사형시키는 도구로 사용함으로, 그 십자가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가 될 수 있듯이, 적그리스도 또한 이미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널리 퍼져 있는 ‘표’를 자신에게 경배하도록 사람들을 옥죄는 수단으로 쓰게 됨으로 그것이 ‘짐승의 표’라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 받을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계시록으로 가서 13:16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합시다. 16절의 표를 받게 한다는 말은 곧 바로 17절 말씀과 이어지면서 표 없는 자는 매매를 못하게 된다는 뜻으로 연결됩니다. 더욱이 영문 KJV 성경에는 16절과 17절 사이에 콜론 (:) 문장부호를 둠으로써, 이 두 구절의 의미가 서로 연속적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음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말씀을 통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적그리스도가 받게 하는 '짐승의 표'란.. 매매통제 수단과 연결되는 ‘표’란 뜻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 봐야 할 점은, 결국 적그리스도에 의해서 주어지는 이 16절의 표는 매매통제 수단으로 이용되기 위하여 특별히 그가 권력을 행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받게 하도록 한다는 뜻을 의미할 뿐, 이 표가 그 전에도 유사한 목적 혹은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었던지 안 되었던지의 여부에 대하여는 성경이 따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전에 달았던 답글에서도 썼듯이 짐승의 표라는 것이 갑자기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이것은 적그리스도가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기술적으로 완료가 되어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친숙한 도구로 인식이 되거나 실제로 사용되고 있어야, 나중에 비로소 적그리스도가 이 표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옭아매기가 수월해 질 것이라는 것은 정황적으로 볼 때 그리 어렵지 않게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은 단지 적그리스도가 이 표 - 즉, 짐승의 표 - 를 받게 하여 매매를 못하게 하는 통제 수단으로 사용할 것임을 말해 줄 뿐, 그 표가 반드시 적그리스도의 출현한 후에만 나오고 사용된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다시 말해 표의 출현과 그 표가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사용되는 시점은 (비록 그것이 다른 목적일지라도) 적그리스도의 출현 보다 더 이전일 수도 있음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 더 언급하면, 환난을 겪고 늦게 구원 받을 성도들이 누구일지 실제로 결과를 보기 전에는 우리는 정확히 모릅니다. 우리는 따라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들을 가슴에 품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일 것이며, 그렇지 않고 환난 전에 휴거될 성도라 할지라도 깨어 준비하며 더욱 자신을 돌아보아 여분의 기름을 채워 준비하는 신부로 기다리게 하려면, 이런 시대를 정확히 읽는 지식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이 종말의 시대에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샬롬.
2012-03-15 20:18:45 | 김정훈
전 아무리 봐도 이상하지 않은데요.
7절의 첫번째 Them은 6절의 첫번째 주어. 즉 말씀이고,
7절의 두번째 Them은 6절의 두번째 주어, 즉 "은 Silver" 즉 "주의 말씀"이네요.
전 성경(KJV)를 만나고 시간이 지난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제 딸아이에게 무슨 말을 할때, 딸아이가 이해할수 있는 말로 하려고 노력했죠.
딸아이가 어릴땐 어린애가 이해할수 있는 언어로. 점점 커가면서 그 나이에 맞는 언어를 쓰려고 노력하죠.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최대한 낮추셔서 우리 인간이 이해할수 있도록....
성경을 주시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 물론 그래도 이해못하는 것이 너무 너무 많지만)
상식적으로도 당연히 킹제임스의 해석이 자연스럽지 않나요?
그리고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킹제임스성경을 만났을때 저의 감정변화는...
분노->감사->안타까움->포기....
1. 분노 ( 아니 이렇게 쉽고 이해가 되는 성경을 개역성경은 왜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놨지? 도대체 왜? )
2. 감사 ( 저에게도 킹제임스 성경을 허락해주심을 )
3. 안타까움 ( 킹제임스성경을 주변사람들에게 전할 때 시큰둥할때...)
4. 포기(?) - 존귀함중에 거할찌라도 깨닫지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구나.. 어쩔수 없는것아닌가....
이렇게 감정변화가 생기더군요.... 뭐 그랬다고요...그냥....
2012-03-15 19:57:44 | 김형욱
kjv today의 설명입니다.저도 이렇게 이해했는데요...(히브리어원어에 기준하여 해석하는 기존입장은 6절words는 여성복수이므로 7절them이 받을수 없다고 해요...제가 호기심차원이 아니고요 진진하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kjv today의 설명입니다
Verses 6 and 7 form Hebrew poetic parallels. Consider the parallelism:
6.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as silver tried in a furnace of earth, purified seven times.
7. Thou shalt keep them, O LORD, thou shalt preserve them [him] from this generation for ever.
The first "them" (plural) in verse 7 directly refers to the first subject in verse 6, which is the "words" (plural). The second "them" (masculine singular in Hebrew) in verse 7 directly refers to the second subject in verse 6, which is "silver" (masculine singular). "Silver" is a simile of "the words of the LORD."
2012-03-15 16:07:19 | 전성실
짐승의 표가 사람을 통제하는 기술의 일종이라면 그 기반 기술은 지금도 개발되고 있을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아래 견해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때 짐승의 표를 받은 자에게 경배를 요구할 것이겠지만, 짐승의 표는 그 이전에도 이미 사람들에게 주입되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적그리스도가 짐승의 표를 미리 받게 하고 그때 가서 경배를 요구할 것이라고 하지 않고, 적그리스도가 나타난 이후에 짐승의 표를 받게 한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에게 그들의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계13:16)
이런 것들에 대한 탐구가 시대의 흐름을 읽는 데에는 분명히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알고 대비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마지막 날에 정체를 드러낼 적그리스도를 만날 일도, 짐승의 표를 받으라는 말을 들을 기회도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마지막 날의 환난을 겪을 환난기 성도들에게는 그런 내용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네요.
2012-03-15 15:17:13 | 김문수
미안하지만, 저는 위에 김문수 형제님의 댓글에 전부 다 공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밑에 올린 저의 답글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형제님이 말씀하신, "바른 성경과 교리 안에서 오늘날의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분별하는 것은 성도가 자신의 삶의 태도를 돌아보고 하루하루를 값지게 살아가는 동력을 제공하기에 유익합니다."는 말에 백번 공감합니다!
2012-03-15 14:40:30 | 김정훈
짐승의 표는 어느 날 하루 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짐승의 표가 상징이 아니라면, 그것은 '기술'을 요구하는 발명품이고,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적그리스도 또한 미리 태어나 준비되고 있다가 때가 차면 그 본색을 들어낼 것이 자명합니다. 그때 짐승의 표를 받은 자에게 경배를 요구할 것이겠지만, 짐승의 표는 그 이전에도 이미 사람들에게 주입되어질 수 있습니다. 가령 건강 관리와 매매의 편리성 등을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게 미리 보급을 시켜 놓고 때를 기다리게 할 수 있지요.
따라서 구원의 문제를 떠나서라도 장차 가까운 미래에 짐승의 표로 사용될 어떤 표를 휴거 이전일지라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음을 유념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때는 경배를 요구하기 전이므로 표를 받아도 구원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않을 수 있고, 경배를 요구하기 이전에 휴거가 먼저 된다면 결국 그 표는 구원과는 상관 없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생활 침해와 개인의 자유의사를 통제 또는 간섭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알고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요한계시록이 비록 심판주로 다시 오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우리의 주목을 끌도록 강조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성경의 그 어느 책 보다도 적그리스도와 짐승의 표, 환난 등에 대하여도 자세히 기록하고 있음 또한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말세에 되어질 일들을 우리에게 소상히 알림으로 성도들로 하여금 깨어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 할 준비를 하도록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 주목해야 함은 비단 요한계시록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를 통하여 당연히 그리해야 마땅할 성도의 본분이요 자세이겠지만, 특별히 계시록을 읽을 때에는 그동안 감추어져 있던 적그리스도의 모습이 확연히 눈앞에 드러남을 주목하여 미혹되지 않고 믿음 승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만 바라 보고 살아야 함은 유익한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성도의 자세이어야 하지만, 요한 계시록 같은 말씀을 통해 적그리스도가 말세에 행할 일을 미리 알고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는 일은 매우 유익하고 또 중요합니다. 지금은 거센 배도의 물결이 일고 있는 때입니다! 적이 얼마나 간교한지 그 움직임을 알고 있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어도 뱀의 간교함 앞에 여지 없이 무너진 이브와 아담이 결코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베리칩에 관한 문제는 나중에 때가 되면 따로 글을 올릴 생각이라 여기서는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2012-03-15 14:25:36 | 김정훈
안녕하세요 ...시편12편 7절에 대한것으로 큰 걸림돌에 직면했습니다.도움을 요청하고자 글을 올립니다.
저는 시편7절의 them의 선행사가 바로 앞 6절의 words로 이해하고 있습니다.그런데요...
<문법적 논쟁에서 일단 진행된 내용입니다.>
첫째 -영어적 문법은 7절의 them이 가르키는 선행사가 6절의 words도 될수 있고 5절의 the poor이나 the needy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이건 뭐 논쟁으로 어찌해볼 만합니다.
문제는 히브리어 문법에서는 7절의 them이 6절의 words를 받을수 없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에는 단어마다 문법적인 성이 있다고 합니다...7절의 them은 남성복수이고 6절의 words는 여성복수라는 겁니다. 따라서 7절에 지키시는 것은 사람들이지 말씀들이 될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6절의 words의 히브리어 문법적인 성에 대해 설명해 주실수 있으신분 부탁드립니다...
또한 6절의 silver의 히브리어 문법적인 성도 알고 계신분은 설명좀 부탁드립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KJV>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자의 학대받는 것과 궁핍한 자의 탄식하는 것으로 인하여 이제 내가 일어나 그를 향해 우쭐대는 자로부터 그를 떼 내어 안전하게 두리라, 하시는도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개역>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여호와여 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하시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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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5 14:14:30 | 전성실
이런글들을 읽을수 있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12-03-14 23:33:23 | 안석
그렇기 때문에, 신화를 대할 때에는 "자료의 신빙성", "논리적 개연성", "성경을 통해 바르게 재구성 된 역사"의 틀 안에서 평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겠지요. 비록 그것이 "추정" 일지라도, 그래야만 보다 "역사적 실제"에 가까운 "추정"을 낳을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작업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당연히 누구나 다 알 수 없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생각을 남 앞에 내어 놓는 이런 대화가 필요했던 것이고, 그럼으로 우리는 보다 "실제에 가까운 역사"로 접근해 가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아무튼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판단되고, 앞으로도 좋은 댓글 많이 달아 주십시오~^^
2012-03-14 17:07:54 | 김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