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 블러그에 가시거든 항상 이스라엘 사태에 주의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역사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일어납니다.
샬롬
패스터
2015-04-17 09:24:23 | 관리자
신념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녜요.
진리가 사람을 살리는 것이에요.
스스로 있는 자에겐 신념 따윈 없어요.
나는 나고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라는
종잡을 수 없는 그분 자존의 사실 그 자체가
그냥
진리이기에
하나님 그분의 창조물로서
아니 새로운 창조물로서
우린
혼란일 수 없는
하나님과 창조자 그분의 섭리로 보존해 주신 말씀들을 진리로 믿어야 산다는 것 밖에.
하여 이 구절들은 서로 소모하다가 다 패배자가 되는
혼돈에 빠지라고 주신 말씀이 아녜요.
어언 지식 쌓기의 시간을 다 마쳤노라고 하는
시간 많은 자들의 우쭐케 하는 신념을 은어처럼 세워주기 위함도 아녜요.
다만
이 구절들은
하나님은 창조자요 그분 입술 아래 지칭되고 질서 된 모든 것들
그래요 시간마저도
바람마저도 그분의 창조물이라는 것을 환히 드러내지요.
우리
화평의 창시자 앞에서
이 구절들을 다시 낭독해 보아요.
우리
해석하여 뱉은 밀어의 말들이 말씀보다 더 훌륭하였었다는 그 신념을
진리로 심판하실 심판자 앞에서
큰 음향으로 틀어놔 보아요.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
그래요 이제
우리 사람의 신념에 배반을 주고
하나님의 진리를 믿어요.
낭독하였고 들었고 믿고 있나요?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던 형체가 없고 공허하였던
땅이
깊음의 표면 위에 있었던 깊음의 표면에 있었던
어둠이
그저
창조세계와 그 안의 모든 것들이 잘 기거하고 거처로 삼을
단 한 번 창조된
최초 골자요 토대였다는 것을
더 이상도 아닌 골자요 토대인 것을.
ㅁㅁ시편 146 : 6(kjb) 그분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셨으며 영원히 진리를 지키시고
ㅁㅁ욥기 38 : 4(kjb)
내가 땅의 기초들을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게 명철이 있거든 밝히 고하라.
2015-04-16 17:11:02 | 나서일
잘 정리해주셨네요~
입다의 딸에 대해서 오해하고 계신분들이 보면 쉽게 이해 할 수 있겠어요!
아울러 저도 누군가에게 이 내용을 설명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면 형제님의 글을 보여줌으로 대신할 수 있겠어요~~^^
2015-04-16 14:15:28 | 김상진
평안하신지요?
이미 듣고 계신 성경 오디오는 흠정역 성경으로 제작된 MP3 성경 오디오로 신약 성경 및 잠언만이 있습니다.
물론 400주년 기념판 출간 이전에 제작되어 400주년 기념판의 성경 오디오는 아닙니다.
*MP3 성경 오디오(오디오 성경), 지도와 선도, 에스라 성경 사전, 박사 성경 웹하드 탑재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98
현재로써는 새롭게 신구약 성경 오디오를 녹음할 계획은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참조해 주십시요.
감사합니다.
2015-04-15 14:19:36 | 김대용
안녕하세요.
흠정역 성경으로부터 주의 크신 긍휼을 얻은 형제입니다.
흠정역을 읽기 시작한 지는 올해로 11년 정도 되었습니다.
여쭙고 싶은 것은, 흠정역 신약 MP3파일도 메일 출퇴근 길에 듣고 있긴 합니다만,
성경을 읽지 못하는 노약자, 병인, 장애인 등을 위해서도 흠정역 구약 음성 MP3가 제작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앞으로 제작 계획이나 제작 일정이 있으신지 알고 싶습니다.
2015-04-15 13:40:01 | 최형준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 2주 동안 사이트에서 전혀 뜻하지 않게 형제들 간에 논쟁이 일어나 의아하게 여기는 분들이 있어 배경을 잠시 설명하고자 합니다.
현재 저희 교회에는 자발적으로 성경 암송반이 형성되어 주일 오전에 모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임의 성도들이 제게 와서, 요즘 저와 뜻하지 않게 논쟁을 벌이는 형제님의 책(성경 암송, 기도 관련)을 두세 권 제본해서 제게 주면서 읽어도 좋으냐고 문의하기에 굳이 내게 묻지 않아도 되니 자율적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외부의 몇몇 형제님들이, ‘재창조’를 주장하는 분들이 세를 모으면서 재창조가 되게 성경을 다시 내야 한다고 주장하니 이에 대해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언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일단 아무 반응을 하지 않기로 하고 그저 잠잠히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평소 신문 기사와 자료 검색 등의 용도 외에는 인터넷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 일을 하다 보니 다른 교회, 다른 사람의 사이트, 블러그 등을 볼 시간의 여유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외국에 계시는 어떤 분들이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주장의 연결 링크 하나를 보내 주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처음으로 이 일을 강하게 추진하는 분이 바로 성경 암송 반에서 만들어 보고 있는 책의 저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미 2014년 말에 그분에게 이메일을 써서 그런 일이 있다고 하니 자제해 주면 좋겠다고 정중하게 부탁하였는데 그때 그분은 분명하게 자신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안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또한 외부 성도들이, 심지어 우리 교회에도 그분의 주장에 동조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고 알려주어 그때야 비로소 제가 모르는 사이에 이 주장이 널리 퍼져나간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님은 어쨌든 흠정역 성경으로 사역하는 형제들 가운데 한 분이기에 중대한 사안이 아니라면 반응을 자제하고 잠잠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중요 교리에서 흠정역 성경이 틀렸다고 공개적으로 반복해서 지적하고 가르치니 저로서는 도저히 그냥 묵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곤혹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반박하는 글을 쓰게 되었고 결국 그 형제님과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던, 원치 않는 논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지난 2주간 제가 사이트에 올린 글들은 구체적으로 어느 누군가를 지목해 반박하는 글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재창조와 간극 이론 자체를 반박하는 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교리를 믿는 분들 중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며 많은 분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바로 그 형제님이기에 저절로 논란이 조금 커졌습니다.
사실 저는 그 형제님을 개인적으로는 잘 알지 못하며, 다만 말씀보존학회에 있으면서 럭크맨의 영향을 받아 재창조를 주장한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물론 본인은 누군가의 영향이 아니라 킹제임스 영어성경을 그대로 본 결과 그렇게 깨닫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그 형제님이 10여 년 전쯤에는 제게 ‘1913년 웹스터 사전’을 보여 주며 ‘다시 채우다’가 맞는다고 주장하기에 제가 ‘1828년 웹스터 사전’과 ‘옥스퍼드 사전’을 보여 주며 아니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별 무리가 없이 그렇게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논쟁이 진행되자 그분께서 자신의 SNS에 글을 올리며 자신의 의견에 찬동하는 분들과 함께 저를 가리켜 ‘문맹자’, ‘속임수를 쓰는 사람’, ‘의도적으로 성경을 변개하는 사람’ ‘사악한....’ 등으로 부르며 과격한 인신공격을 했다고 합니다. 입다에 관한 논란에서는 반드시 저를 지칭한 것은 아니겠지만 반대 입장에 있는 이들을 배교자라고도 표현했다고 합니다.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어떤 형제님이 그런 악의적 표현이 들어 있는 그 형제와 동조하는 형제들의 글을 캡처하여 보내주었습니다. 그 캡처 자료를 보내 준 형제는 다른 의도는 없고 다만 사안이 이 정도니 일단 당사자인 제가 꼭 알아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형제가 보내 준 자료의 내용은 저로서는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쩔 수 없이 더는 그분과 교제할 수 없겠다는 취지의 간단한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사실 저희 교회에서는 그 형제님에게 지난 몇 년간 소액의 선교 헌금을 매달 보내드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교제 중단을 요청한 가장 큰 이유는 저희 교회 성도들이 이런 상황을 알게 되면 어떻게 이런 반대 입장에 있는 분을 계속 지원할 수 있는가에 대해 도저히 해명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그 형제님을 평소에 뒷조사한 적이 없으며 그저 그런 자료가 왔기에 증거를 제시한 것이고 그것도 제가 받은 원본 그대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자료를 받은 그분은 재반박하는 글에서 정작 본인이 저를 모욕한 부분은 다 빼고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편집해서 올렸다고 합니다. 제가 보낸 증거자료에는 그분과 교제하는 분들이 흠정역 성경의 주 번역자인 저를 두고 ‘사악한 변개자’, ‘문맹자’ 등으로 표현한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어쩔 수 없이 교제 중단을 하게 된 이유입니다.
그런데 교제 중단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낸 이후 제가 보낸 메일에 대해 그분은 아래와 같이 심한 모욕을 담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무려 열 살 가까이 어린 형제로부터 이런 이메일을 받고 저와 제 아내는 큰 충격과 당혹감에 빠졌고 특히 제 아이들을 생각하며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매우 힘들었습니다.
“형제님이 성경 번역을 했다는 한 가지 일 빼고는 아무것도 아닌 자임을 아셔야 합니다. 아울러 독한 시기심, 쓴 뿌리, 질투를 버리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어리고 신앙 연륜도 없는 분이 성경 번역이란 큰일을 하셔서 늘 안쓰러웠습니다.형제님이 많이 성장하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최소한 형제님이 정죄하는 말보회의 이** 형제보다는 낫도록 말입니다.”
이런 내용과 함께 그분은 심지어 저를 교황에까지 비유했습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어쨌든 이렇게까지 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악하게 비쳐진 것에 대해 일단 반성을 하고 앞으로 더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저는 이번 사안이 단순히 그 형제님과 저 둘만의 일이 아니며 흠정역 성경을 사용하는 모든 성도들이 연관된 일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 일을 공적인 현안으로 판단하고 대응하는 글을 킵바이블 사이트에 올리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번 논쟁을 갈무리하는 이 글을 올리는 것에 대해서 몇 날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혹여 이 글로 인해 또 어떤 반박이 나올지 알 수 없지만 사건의 전개 과정을 투명하게 알리고 제가 해결할 것은 해결하고 반성할 것을 반성하며 바르게 처신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글을 올립니다.
끝으로 제 주변에는 비록 저와 다르게 재창조를 믿지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통해 진리를 전하는 귀한 목사님들이 여러분 계십니다. 사실 그분들이 지금까지 흠정역 사역을 지지해 주시고 함께해 주셨음을 저는 한시도 잊지 않고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개 그분들은 재창조를 하나의 다른 견해로 보고 각자의 교회 성도들에게 온유하게 설명해 주시는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흠정역 성경 1판이 나온 이래로 지난 15년 동안 이 문제로 서로 얼굴을 붉히거나 교제를 중단한 적은 없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소망합니다.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히지만, 이번 논쟁은 목회 사역자인 저 자신에 대한 공격을 한참이나 넘어서 흠정역 성경이 오역된 성경이라는 치명적인 주장을 공개적으로 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대응하게 된 일입니다. 가뜩이나 성경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심약한 지체들이 검증되지도 않은 글에 노출되어 불안해하는 것을 도저히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기에 이처럼 대응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흠정역 성경이 출간된 이후에 맺은 선한 열매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흠정역 성경은 출간 당시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한국말로 번역된 킹제임스 성경으로서는 이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압도적으로 판매되고 많이 읽히는 성경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흠정역 성경이 오역 논란으로 신인도가 급격히 추락하게 된다면 그것은 적어도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심지어 영어 킹제임스 성경 자체의 권위와 신인도 추락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를 비롯한 킹제임스 성경으로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며 목회 사역을 감당해 온 많은 국내외 선량한 목사님들은 결코 이런 결과를 원치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며칠 전 킵바이블 사이트에 제가 올린 ‘럭크맨의 극단적 세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글은 말씀보존학회 자체를 공격하거나 과거에 그곳과 잠깐이라도 관계를 맺었던 분들 그리고 피터 럭크맨을 좋은 성경 교사로 인정하고 따르는 분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위함이 절대 아닙니다. 말씀보존학회도 나름대로 킹제임스 성경 확산에 일조하였고 그 안에는 언행이 과격하지 않은 선한 분들도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럭크맨 일변도의 급격한 세대주의 교리 확산과 무분별한 인신공격과 비난/비방 등이 킹제임스 성경을 쓰는 성도들의 표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쓰게 되었습니다. 특히 ‘믿음+행위’로 구원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럭크맨의 교리는 이단 교리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672
럭크맨은 희대의 천재요 대단히 훌륭한 성경 교사임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과격하고 급진적인 점까지 과거처럼 본받는 일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진리가 전파되는 사역에까지 큰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하기에 부득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점 또한 부디 너그럽게 헤아려 주십시오.
끝으로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다른 사람이나 교회에 영향을 미쳐 그들의 해석/믿음의 자유를 꺾은 적이 없습니다(사실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저희 교회는 지금까지 몇몇 교회를 지원했고 지원하고 있지만 한 번도 그분들 교회에 사소한 것이라도 영향을 미친 적이 없습니다. 또한 저희 교회 성도들에게도 어떤 저자의 무슨 책이든 자유롭게 판단하여 읽어도 된다고 해 왔고, 도서관에 300여 권의 책을 사다 놓고 읽게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럭크맨, 낙스, 라킨, 위어스비, 존 맥아더, 핑크 외에도 여러 개신교 목사님들의 저서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희 교회가 추구하는 것은 영혼의 자유입니다. 저는 같은 교제권에 있는 두 교회가 출간하는 낙스의 책들도 거의 대부분 출간되는 즉시 수십 권(어떤 경우 수백 권)씩 가져다가 성도들이 구매해서 읽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혹시 제가 다른 사람의 영혼의 자유를 가로막은 것으로 비쳐진 점이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저도 한 지역 교회의 목사이므로 제가 믿고 옳다고 확신하는 바를 저희 교회에서는 담대하게 가르칠 수 있지 않습니까? 또한 흠정역 성경이 재창조 등을 수용하지 않아 틀렸다고 하는 분들이 있기에 그 성경을 출간하는 사람으로 당연히 거기에 반박할 수는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저의 가르침을 수용하느냐 거부하느냐 하는 것은 성도 개개인의 몫이지 제 몫은 아닙니다.
앞으로 저는 늘 해오고 있듯이 책들을 정비해서 출간하고 설교 및 강해 등을 준비하며 한 지역 교회의 목회자로 지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이 흠정역 성경이 틀렸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을 알게 되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흠정역 성경을 변호하는 글을 쓸 것입니다. 또한 ‘입다의 딸’ 등에 관한 성경 해석의 경우 어떤 분의 해석이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다루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해석이 우리 교회 성도들을 혼동 속으로 밀어 넣는 것으로 드러나면 어쩔 수 없이 제 공간에서 목사로서 저의 견해를 밝힐 것입니다.
이번의 논쟁을 통해 어찌 되었든지 저 자신의 무능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주어지는 대로 저 자신을 살피고 혹시라도 무언가 합당치 않은 교리를 고집하고 가르쳐서 저희 교회 및 교회 밖의 성도들의 영혼의 자유를 가로막은 점이 있다면 고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누구나 예상하듯이 세상의 마지막 때에 관한 여러 징조가 더욱 뚜렷해질수록 앞으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영적 싸움 또한 갈수록 치열해 질 겁니다. 이러한 때에 킹제임스 성경의 진리들이 우리 모두의 선한 언행을 통해 널리 전달되기를 원합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성경 신자요 동시에 한국 사람인 우리 모두가 영적 전쟁터의 최전방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성도답게 처신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인 킹제임스 성경을 전하고 사람들을 살리는 일에 힘을 합하여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우리에게 맡겨진 거룩한 일 즉 은혜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신실하게 감당하게 되기만을 간절히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패스터 정동수
------------ 참고 링크(재창조 반박 글 모음) -------------- 정상적으로 창세기 1장과 2장 읽기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892
럭크맨의 극단적 세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672
창조인가요, 재창조인가요?(간극 이론, 갭 이론)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Nz 재창조 간극 이론 사실인가, 허구인가?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2 스코필드 성경의 창세기 재해석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0 히11:3에서 말하는 '세상들'이란?http://www.keepbible.com/Cmn1/View/42t 재창조론에 관한 7가지 의문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1 And’를 살려 창세기 1장 읽기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H 왜 둘째날에는 '좋았더라'가 없을까?http://www.keepbible.com/Cmn1/View/42u 누가 화석더미를 말했는가?http://keepbible.com/Cmn1/View/43L#c_14090 제가 알아본 replenish의 뜻http://www.keepbible.com/Cmn1/View/43G 작금의 논쟁 배경 설명
http://www.keepbible.com/Cmn2/View/4CW
나쁜 평판과 좋은 평판을 동시에 들으면서
http://www.keepbible.com/Study5/View/3Zr
'replenish’의 진실과 성경의 창조 정리(재창조 반박 글 모음)
http://keepbible.com/Cmn2/View/4CX?page=2
2015-04-15 13:35:52 | 관리자
나의 처녀 됨으로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 입다의 딸 )
자기의 처녀 됨으로 인하여 애곡하고. ( 상대편 )
그녀가 남자를 알지 아니하니라. ( 제 3자 )
문맥이 강조하는 바가 처녀로 살다 죽은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굳이 사람을 짐승의 번재처럼 각을 뜨고 불을 살라 하나님께 드렸다고 해석하는건 도져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번제의 방법
헌제자가 제물이 될 짐승을 끌고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나아온다.
헌제자의 손을 제물의 머리 위에 얹고 안수한다.
헌제자가 제물을 잡아 피를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장은 그 피를 번제단 사면에 뿌린다.
헌제자가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뜬다.
제사장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 그리고 물로 씻은 내장과 정강이를 단 위에서 불 사른다.
이러한 방법은 양과 염소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비둘기의 경우는 달라서 제사장 혼자서 머리를 비틀어 끊고 단 위에 불사르며 피는 단 곁에 흘리고 멱통과 창자 등은 재 버리는 곳에 버리고 몸은 쪼개어 단 위에서 불살랐다.
각을 뜬다는 것은
도살한 네발짐승의 목에서 대가리, 네 다리 등을 따로따로 잘라내다. 한마디로 육시를 한다는 것.
자기 외동 딸을 이렇게?
2015-04-15 10:25:01 | 허광무
삿11:29 동의하며, 공감합니다.
참 예리하십니다.
2015-04-15 09:03:44 | 나서일
전체적인 흐름과 정확한 의미를 무시한 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단어에 집착하다 보면
자칫 하나님의 성품까지도 오해할 수 있는 불경을
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명쾌한 글 앞으로도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5-04-15 08:56:36 | 김영식
홍승대 형제님, "우리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성경 기록을 바꾸든가, 우리의 생각을 바꾸든가." 말씀에 아멘입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보존해 주신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성경신자로서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겠지요.
그리고 잘못된 성경해석이 미치는 폐단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홍승대형제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5-04-15 08:55:38 | 한원규
분석적으로 난해 구절들을 잘 설명해 주심으로 인해
큰 도움 되었습니다.
더불어 여지없이
킹 제임스 성경의 진리 전달의 명료한 위대성이
읽는 이들로 하여 또 한 번 각인시키네요.^^
2015-04-15 08:47:28 | 나서일
홍형제님!
주옥같은 글이군요. 잘 읽고 갑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2015-04-14 23:33:40 | 차대식
(삿11:29 그때에 {주}의 [영]께서 입다에게 임하셨으므로)
상식적으로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셔서 몰렉의 가증한 인신제사를 서원하고 행한다는 것은
어느누구라도 상상할수 없는 일일것입니다.
명료하게 풀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성경기록을 있는 그대로 읽어내려가면 문제될것이 없지요.
2015-04-14 23:13:08 | 김영익
같은 성경, 같은 글자와 내용을 읽어도 이해가 어려웠는데
넓게 깊게 이해하시어 소화하기 쉽게 나누어주시니 감사합니다.
2015-04-14 22:34:31 | 김형욱
형제님의 글을 읽으며 다시금 성경은 전체 문맥을 넓게 보며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힘써야 함과
더불어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시공간만 다를 뿐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들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함을 깨달아 알았습니다.
바쁘신 가운데에도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중요한 논점에 관한
귀한 깨달음을 나누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5-04-14 19:48:38 | 김대용
오늘은 성경 기록대로 입다의 딸에 관련된 사사기 11장을 읽어 볼까 합니다.
이미 킵바이블에 여러 차례 언급되어 있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깨달음을 허락하신 대로 부족하지만 소박한 제 의견을 여러분과 나누어 보려 합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5801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094
(삿 11: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떠나 평안히 돌아올 때에 무엇이든 내 집 문에서 나와 나를 맞이하는 것은 확실히 {주}의 것이 되리니 내가 그것을 번제 헌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삿 11:34) ¶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작은북을 잡고 춤추며 나아와 그를 맞이하였는데 그녀는 그의 유일한 아이로 그녀 외에는 그에게 아들딸이 없었더라.
(삿 11:37) 그녀가 또 자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게 이 일을 행하시되 곧 나를 두 달 동안 홀로 있게 하소서. 내가 내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나의 처녀 생활로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매
(삿 11:38)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 동안 보내니 그녀가 자기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자기의 처녀 생활로 인하여 애곡하고
(삿 11:39) 두 달이 지난 뒤에 자기 아버지에게 돌아오니라. 그가 자기가 서원한 대로 그녀에게 행하니 그녀가 남자를 알지 아니하니라. 그것이 이스라엘 안에서 풍습이 되어
(삿 11: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일 년에 나흘씩 애곡하였더라.
위의 성경 기록을 다시 한 번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입다는 무엇이든지 자신을 맞이하는 것을 번제 헌물로 드리겠다고 서원합니다.
(2) 그런데, 그를 맞이한 것은 그의 무남독녀입니다.
(3) 딸은 아버지에게 서원한 것을 자신에게 행하라고 합니다.
(4) 그런데 이때 뜬금없이 입다의 딸은 ‘virginity’로 인하여 애곡하겠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지금 자신의 배를 가르고 각을 떠서 태워 죽이겠다고, 즉 번제 헌물로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하는데 자신이 목숨을 내 놓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본인은 시집가지 못하는 것이 슬퍼서 애곡합니다. 대단히 이상하죠? 저 같으면, 그동안 못 먹어 본 산해진미를 마음껏 먹는다든가, 여행을 실컷 한다든가, 아니면 정말로 죽기 전에 가서 남자를 안다든가 등등을 하겠습니다.
자~! 성경 기록대로 virginity로 인하여 애곡한다는 것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virginity에 즉 ‘처녀로 지내는 것’에 문제의 핵심이 있는 것을 파악해야 합니다.
(5) 그녀는 두 달 뒤에 아버지에게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남자를 알지 아니 하였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삿 11:38) And he said, Go.
And he sent her away for two months:
and she went with her companions,
and bewailed her virginity upon the mountains.
(삿 11:39) And it came to pass at the end of two months, that she returned unto her father, who did with her according to his vow which he had vowed:
and she knew no man.
And it was a custom in Israel,
(삿 11:40) That the daughters of Israel went yearly to lament the daughter of Jephthah the Gileadite four days
in a year.
누군가는(?) And는 시간 순서를 나타낸다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모든 것이 And에 맞추어 시간 순서대로 되어 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실제로 38절, 39절에 보면 모든 것이 일의 순서대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입다가 딸에게 자신의 서원을 실행했고, 그 결과 그 딸은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뒤에 입다의 딸이 애곡한 것처럼 그것이 이스라엘 안에서 풍습이 되어 이스라엘 딸들이 매년 나흘씩 애곡합니다.
일의 순서를 다시 표로 작성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31절
첫째로 입다는 자신을 맞이하는 것을 번제 헌물로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
34절
그의 딸이 입다를 맞이했습니다.
38절
그의 딸이 산에 올라가 자신의 virginity로 인하여 애곡했습니다.
39절
입다가 딸에게 자신의 서원을 실행했습니다.
39절
딸이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습니다.
39절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풍습이 되었습니다.
분명 입다는 자신의 서원(번제 헌물로 드리는 것)을 실행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그의 딸이 재가 된 것도 아니고, 죽었다는 기록도 성경에 나오지 않고, 단지 딸이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다고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경이 입다의 딸이 처녀였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다고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처녀인 것은 단지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의 상태를 나타내지만,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행위의 주체가 적극적으로 남자와 동침하지 않았다는 것을 표시합니다.
즉, 이 말은 입다의 딸이 처녀로 죽은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음, 즉 남자와 동침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음을 명확히 보여 줍니다. 죽은 사람은 처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knew’를(즉 동침을) 할 수는 없습니다. ‘Knew’는 동사입니다. 상태의 ‘was’가 아닙니다.
만약에 입다의 딸이 처녀로서 죽었음을 표시하려면, “그녀는 처녀였다(she was virgin)” 또는 “그녀는 처녀였었다(she had been virgin.)”라고 표현하는 것이 전체 문맥상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형보다 한 단계 앞선 과거완료형을 써서 죽기 전의 입다의 딸의 상태를 알려주는 것이 맞습니다. 이러면, 논란의 소지도 없이 입다가 자기 딸을 짐승처럼 불태워 죽였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녀가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다(she knew no man)”고 말합니다.
바로 이 기록이 입다의 딸이 결코 죽지 않았음을 명백히 알려줍니다.
이제 우리는 위의 성경 기록이 우리의 상식과 모순됨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번제 헌물로 드리면, 당연히 죽여서 태우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성경 기록은 “그녀가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며 죽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구체적인 행동을 하였음을 우리에게 더없이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성경 기록을 바꾸든가, 우리의 생각을 바꾸든가 말입니다.
사람을 번제 헌물로(조금 더 정확하게는 ‘번제 헌물을 대신하여’, for burnt offering, ‘as burnt offering’이 아님), 바친다는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람을 죽여서 태우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태워 오직 주님께 바치는 번제 헌물처럼
(2) 사람의 전 생애를 주님께 바치는 것이며
(3) 여자인 경우는 남자를 알지 않고 처녀로 주님이 정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가졌던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사사기 11장을 성경 기록대로 읽는 방법입니다.
이것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성경이 읽히나요? 앞 문장인 ‘번제 헌물로’에 너무 집착하시지 말고, 39절 뒤 문장도 같이 읽어 주세요. 37절에서 39절까지 전체문맥이 계속해서 viginity를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보통 난해 구절로 분류하는 성경 기록일수록 앞뒤 문맥을 넓게 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단한 지식과 지능이 없어도 편견 없이 차분하게 성경을 읽으면 누구라도 단순하고 명쾌한 진리를 능히 깨달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의 소박한 나눔이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2015-04-14 18:28:34 | 홍승대
안녕하세요?
질문 전에 늘 우측 상단의 구글 검색으로 찾아보시면 거의 다 답이 있습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781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2&write_id=1132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2&write_id=263
이것이 우리가 믿는 바입니다.
달리 믿는 것은 각 사람의 자유입니다.
샬롬
패스터
2015-04-14 17:23:23 | 관리자
샬롬..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킵바이블을 통해 큰 유익을 얻고 있는 형제입니다..
다른 주석을 찾아봐도 마땅한 의문이 해결되지 않기에 부득불 아시는 분들이 계실까 하고 여쭤보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다가 불현듯 의문이 생기게 되었는데요..
딤전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두 배나 존경할 자로 여기되 특별히 말씀과 교리로 수고하는 자들에게 그리할지니라.
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1. 디모데전서는 말그대로 1차적으로는 디모데에게 쓴 서신이고,
2. 디모데가 편지를 수신할 당시에는 아마도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었을 것입니다..
3. 그런데 감독인 디모데에게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존경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으로 보아 에베소 교회에는
감독인 디모데 이외에 다수의 장로들과 특히 이 장로들 중에 말씀과 교리로 수고하는 장로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현재 장로교 체계 (목사, 다수의 장로, 집사) 가 오히려 성경에 나와있는 교회의 직분체계와 가깝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서요..
감사합니다..
2015-04-14 15:37:55 | 유해용
안녕하세요?
봄날의 좋은 소식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언행이 덕스러운 성도들의 모임이 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
2015-04-13 18:50:1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제 저는 솔로몬의 배은망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살펴보았습니다.
성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입니다.지혜와 능력이 많아도 자신을 의지하면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성경은 잘 보여 줍니다. 그래서 성경의 메시지는 매우 단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처럼 다 안다고 하면서 호언장담하고 남을 무시하면 결국 패망에 이릅니다.
이번 주에는 왕상1-11장을 읽으면서 솔로몬을 잘 살펴보기 바랍니다.
인터넷은 참으로 좋은 도구입니다. 그런데 잘못 이용하면 패망에 이르기 쉽습니다.
지식의 교만을 드러내며 남을 비하하고 쓸데없는 논쟁을 일삼는 사이트에 들어가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좋은 사이트를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신문, 검색을 빼고는 인터넷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1주일에 한두 번 ‘이 세대가 가기 전에’라는 블러그에 들어가 세상의 변화를 보는 것입니다.
http://blog.naver.com/esedae/
이 블러그는 일반 교회 목사님이 운영하는 것인데 전 세계의 마귀 숭배 추세를 매우 잘 보여 줍니다. 어떤 때는 너무 과한 면도 있지만 성도들이 거를 것은 거르고 가끔씩 보면 좋은 내용이 많습니다. 특히 세상 욕심이 불현듯 일어나거나 교만한 맘이 생기거나 남을 비하하려는 맘이 생기면 거기의 뉴스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재림의 징조를 보면 그런 악들을 버리고 제대로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동으로 들 것입니다. 저도 어제 지난주의 글들을 보고는 더욱더 바르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전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귀한 정보를 매주 업데이트 해 주는 블러그는 거의 없습니다.
다만 여기에 푹 빠져 매일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이야기만 하고 다닐까 봐 내심 큰 염려가 됩니다.
그러나 현명한 킵바이블 독자들 중에는 그런 분들이 없을 줄로 믿고 소개하니 가끔씩 보면서 경각심을 갖기 바랍니다.
주님의 큰 평안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
2015-04-13 16:57:30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