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선 중간쯤에 송내역이 있지 않나요...
이벤트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오늘은 정말 뜻깊은 날입니다.
하드커버와 박사성경까지 나와 400주년 기념판이 무사히 마무리되었으니 하나님께 크게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정 목사님과 많은 분들, 정말 고생 많으셨고요... 흠정역이 한국 크리스천의 표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1-09-18 23:09:16 | 김재욱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설교와 설교자'는 읽는 내내 책 내용의 90% 이상을 빨간색으로
줄을 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명저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강단은 우주의 운명이 결정되는
곳이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목사님의 귀한 글처럼 세상의 서고 쓰러짐은 교회에
달려 있고 교회의 서고 쓰러짐은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사용하시는 목자(목사)에게 달려
있습니다.
주위를 보면 부실한 설교를 매주 즐겨(?) 들으며 영적 식중독에 신음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그로 말미암아 세상을 회복시키는 참된 목사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보내주시길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2011-09-18 21:22:17 | 김대용
철도의 날과 우리 교회 이벤트가 마주쳤네요..ㅋㅋ
지난 명절에 못 느꼈던 즐거움이 음식준비를 하며 충만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알게 된 형제 자매들을 만나는 이 주일에 특별한 음식으로 대접할 것을
생각하며 마음이 분주하고 설레는 것은 우리 자매님들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지요.
올해는 이 기분을 연장해서 우리도 추수감사절에 먹곤하는 칠면조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기대하고 있는데 김문수형제님...많이 잡숫고 오세요..메뉴와 요리법도 익혀 오시고요...^^
다소 흥미없는 철도에 관한 글이었는데 댓글로 마음은 들뜨게 하였네요...ㅎ.ㅎ
2011-09-18 08:29:08 | 정혜미
열차 이야기가 나오면 꼭 두 가지가 떠오릅니다. 하나는 처음 교회 가서 멋모르고 따라 불렀던 "나는 구원열차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라는 노래였고, 다른 하나는 "은하철도 999"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찾으려고 은하철도 999를 타고 모험을 하는 이야기까지는 재미있었는데 거의 마지막에 가서 그 영원한 생명이라는게 인간의 장기를 죄다 기계 부속으로 바꾼 인조 육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그 황당함이란... 그걸 만든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영원한 생명 하면 떠오르는게 인조 인간이나 뱀파이어밖에 없나 봅니다.
다들 추석 명절 잘 보내셨지요? 여긴 추석은 그냥 넘어갔고, 다가올 추수감사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1-09-18 01:22:54 | 김문수
요즘은 철도 '철'자만 들어도 형제님 모습이 떠오릅니다.ㅎㅎㅎ
내일이 철도의 날이군요. 맞춰 런칭이벤트까지....저도 무척 기쁩니다.
지난 추석이 명절같지않아 좀 아쉬웠는데 제 마음에 어느덧 주일이 명절이요, 내일은 정말 잔치날로 다가옵니다. 마음이 참 떨리네요. 샬롬 ^^
2011-09-17 23:38:51 | 이청원
아.. 감사합니다. 오래전에 읽은 책인데.. 다시 좀 읽어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저도 패드에 넣어 종종 읽어야겠네요.^^
2011-09-17 22:02:49 | 박종철
철도의 상징은 뭐니뭐니해도 산업화의 주역이던 증기 기관차이다.우리말의 경우 기차(汽車)라는 한자어부터가 증기라는 뉘앙스를 잔뜩 담고 있는 단어이며, 칙칙폭폭 역시 증기 기관차에서 유래된 의성어이다.철도 건널목 표지판은 연기를 모락모락 내는 증기 기관차의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이다.증기 기관차가 달리면서 연기를 온 천지에다 뿌려대는 모습을 보면, “기차 화통 삶아먹었나?”란 말의 의미를 확실하게 이해하게 된다.
오늘날의 철도 차량 중에 저렇게 연기를 뿜으면서 칙칙폭폭 하면서 달리는 녀석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기억 속에 각인된 철도의 첫 구현체인 증기 기관차에 대한 인상은 너무나 뿌리 깊다. 마치, 플로피 디스크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도 3.5인치 디스켓 아이콘은 ‘저장’ 아이콘으로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리학에는 열역학이라는 분야가 있으며, 열역학이라는 관점에 따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는 궁극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열로 바뀐다.하지만 반대로 열을 에너지로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며, 모든 열을 에너지로 바꾸지는 못한다. 그 일을 하는 물건을 통상 기관 내지 엔진이라고 부른다.
그 기관 중 증기 기관은 외연 기관이라고 불린다.증기 기관은 연료를 태워서 물 같은 다른 매개체를 끓여 증기를 만들고, 그 증기의 힘으로 피스톤이나 터빈을 움직인다. 연소가 동력을 만드는 곳과는 별개의 장소인 보일러에서 행해진다는 점에서 ‘외’(external)라는 말이 붙은 것이다.밥솥 내지 냄비에서나 나오는 그 연약한 수증기가 평소보다 10수 배로 압축만 하면 집채만 한 무거운 열차를 움직이게도 한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요즘이야 기관차형 열차에는 기관차 뒤에 발전차가 편성되어 있다. 객실 내부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증기 기관차 시절에는 발전차가 아니라 석탄을 실은 별도의 화차가 한 량 필요했다. ^^;; 기관사 밑에서 일하는 조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삽으로 석탄을 아궁이에다 열심히 퍼 넣어야 했다. ㅎㄷㄷㄷ;;그리고 증기 기관차를 굴리기 위해서는 역에는 급수탑이 필요했다. 수원, 영천 등 몇몇 역에 있던 급수탑이 지금은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보존되어 있기도 하다.
오늘날의 철도 차량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당시 증기 기관차의 특징 중 하나는 바퀴 크기가 큼직했다는 점이다. 옛날에는 앞바퀴가 유난히도 큼직한 자전거가 존재하기도 했던 것과 따지고 보면 비슷한 맥락이다. 또한, 증기 기관차는 꼭 둥근 원통형이고 색깔은 새까맸다. 어차피 매연 묻어서 시꺼멓게 되는 걸 가리려고 검은색을 의도적으로 선택한 듯.또한 증기 기관차는 20세기 중반에 세상에 컬러 사진이 보편화할 무렵엔 모두 은퇴했기 때문에, 최소한 연기를 뿜으면서 달리는 모습을 컬러 사진으로 보기는 쉽지 않은 물건이기도 하다. 특히 정지 사진이 아닌 컬러 동영상은 더욱 찾기 힘들 것이다.
증기 기관은 오늘날의 내연 기관에 비해서야 구조가 간단해서 만들기 쉽고, 저속에서도 비교적(언제까지나 '비교적!') 토크가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마차보다야 월등히 더 뛰어난 수송력으로 물류 혁명을 달성한 건 사실임. 그리고 무슨 방법을 써서든 물을 끓게만 만들면 됐으니 옥탄가가 크지 않은 저가의 저질 연료를 써도 괜찮은 점 역시 장점이었다.
그때 증기 기관차에는 별도의 변속기라는 게 없었다. 외연 기관은 태생적으로 연소 따로, 구동 따로인데 어차피 바퀴의 부하가 엔진에 바로 걸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냥 석탄 열나게 많이 때면 빨리 가고, 적게 때면 느려졌다. 수증기가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유체/유압 변속기 역할을 자연스럽게 했다.변속기가 없기 때문에 그 대신 기관차의 바퀴 크기 자체가 동력비를 조절하는 역할을 했으며, 바퀴마다 크기가 들쑥날쑥이기도 했다. 여객용 기관차는 속도를 중요시해서 바퀴가 유난히 크고, 화물용 기관차는 견인력을 중요시해서 작은 바퀴 여러 개였던 식.
나름 증기 기관도 발전을 거듭하여 처음 발명되었을 때보다 더욱 출력이 향상되고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으나, 전반적으로 볼 때 이런 동력을 쓰는 열차는 매우 비효율적이고 문제가 많았다.증기 기관 자체가 물리학적으로 볼 때 태생적으로 미치도록 열효율이 저조하고 열차를 굴리기에는 출력이 부족했다. 가감속이 쥐약이고 고속화 역시 곤란했다.
또한 증기 기관은 보일러가 필요하고 물탱크에 석탄까지 있어야 하다 보니, 구조는 단순하지만 덩치가 커지는 게 불가피했고 소형화하기가 곤란했다. 증기 기관이 자동차의 동력원으로는 프랑스의 퀴뇨 이후로 일찌감치 실패하고 그나마 철길이라든가 증기선으로 살 길을 찾은 게 바로 이 때문이다.그러나 비열이 큰 물이 끓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석탄 같은 고체 연료는 취급하기가 번거로워서 여전히 큰 골칫거리였다. 시동 시간이 굉장히 길고, 차를 세우거나 움직이게 하는 게 고역이었다는 뜻. 연탄재 치우는 것만 해도 얼마나 귀찮은데 다량의 석탄재 처리는 어떻게?
요즘 일부 국가에서는 관광용으로 일부러 증기 기관차를 굴리는 곳이 있는데, 걔네들은 석탄 대신 더 깨끗하고 취급하기 더 쉬운 연료인 석유나 가스로 물을 끓인다. 200년 전의 증기 기관차를 100% 그대로 재연한 건 아니라는 뜻. 사실, 증기 기관이 발명되고 실용화한 시기 자체가 영국의 산업 혁명과 맥을 같이하며, 오늘날처럼 대량의 석유를 값싸게 전세계에 공급하는 인프라가 갖춰지기 전이었다.
18세기에 제임스 와트 같은 선구자에 의해 발명되어 인류의 동력원으로 활동한 증기 기관은, 19세기 중후반이 되어서야 내연 기관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최소한 교통수단에서는 완전히 은퇴하게 됐다. 오늘날 증기 기관은 발전소의 증기 터빈 같은 곳에서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오늘날은 내연 기관으로도 모자라서 아예 전기 철도가 각광을 받고 있지만 말이다.
결론:
- 내일은 9월 18일, 철도의 날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개통한 날짜(1899년 9월 18일)에서 유래됐습니다.
- 철도의 날에 딱 맞춰 흠정역 400주년 기념판 런칭 이벤트가 열리는 것을 저는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3:0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9-17 21:24:48 | 김용묵
감사합니다. 읽으면서 여러가지로 생각했던 문제점들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주의 몸된 모든 교회에서 참된 진리의 말씀이 설교를 통하여 전파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2011-09-17 15:41:00 | 함치선
한번 읽고는 버리는 책이 있는가 하면 평생토록 두고두고 읽어야 할 책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 후자의 책들은 스캔 회사에 보내 스캔해서 컴퓨터에 두고 또 패드에 넣고 늘 가지고 다니면서 읽습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책 '설교와 설교자'는 후자의 책입니다.
목회와 설교에 무기력감을 느낄 때 읽으면 힘을 주는 책입니다.
그분의 열정이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듣는 이들을 시원하게 해 주는 설교자가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성도일 때는 설교가 지루해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로서 예배당에 앉아 설교를 들어보니
정말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설교가 너무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느 교회는 매일 구원만 설교합니다.
어떤 구절이든 읽으면 다 구원으로 끌고갑니다. 그러니 지루하고 또 종종 성경이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 교회 목사들은 성경 한 구절 읽고 다른 이야기 하다 끝냅니다.
어느 목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 구절만 인용합니다.
그리고는 그것이 성경적인 설교로 착각합니다.
어느 교회는 설교와 성경 공부를 구분하지 못하고 설교 시간에 성경을 가르칩니다.
Preaching(설교)과 Teaching의 구분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100명이 앉아 있다고 할 때 헛된 설교로 1시간을 보내면 100시간을 허비하는 것입니다.
대형 교회처럼 한번에 2-3만 명이 앉으면 2-3만 시간이 허비되는 것입니다.
목사의 경우 한번 예배당으로 내려와 다른 사람의 설교를 듣거나
집에서 차에서 자기의 설교를 들어보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서고 쓰러짐은 목사에게 달려 있습니다.
특히 목사의 설교에 달려 있습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책의 1장(설교라야만 한다)을 올립니다.
성도들도 그냥 읽으면 힘이 솟아날 것입니다.
참고로 복있는 사람이라는 출판사에서 낸 책을 추천합니다.
많이 구매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설교에 소망을 둡시다.
좋은 목사들을 이 나라에 보내달라고 주님께 기도합시다.
샬롬.
2011-09-17 11:48:31 | 관리자
매우 좋은 책입니다. 역사를 알 때 내 교리의 역사성을 알게 되죠. 고맙습니다.
2011-09-14 16:43:50 | 김재근
주님이 다시 오실 징조인 듯 합니다..
2011-09-11 21:39:08 | 소범준
종교와 복음의 의미를 분명하게 잘 설명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2011-09-10 21:26:06 | 김형찬
어이구 통곡할 일이네요... 배려... 예산 배정까지? 어디까지 가려나요.
2011-09-09 15:10:49 | 허광무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안을 보니.. 참 답답함을 느낍니다.
이젠 학생이 동성애적 성적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상담을 해도 함부로 바로잡으려 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격려하고 용기를 내라고 응원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제2장 1절 6조 학생은...........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병력, 징계,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② 학생은 특정 집단이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에 기초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누설하는 행위나 모욕, 괴롭힘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진다.
4절 제13조 ① 학생은 ..........., 성적지향ㆍ성정체성 등의 개인 정보를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7절 ② 교육감, 학교의 설립자·경영자 및 학교의 장은 .....성소수자 학생......,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사유로 권리 실현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배려하는 데에 우선적으로 예산 등의 자원을 배정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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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례안의 의도는 명확한 것 같네요. 동성애를 포함한 성적 소수자,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항목에 저촉되는 모든 사안에 대해 인정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죠.
바로잡아야 할 것을 괜찮다고 말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지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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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9 10:20:20 | 박종철
잘 읽었습니다. 다음에도 좋은 글 기대합니다.
2011-09-08 18:03:46 | 류인선
침례회 출판사에서 아주 좋은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책의 제목은 '침례교 신학 논쟁: 침묵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월터 셔든이고 역자는 김용복과 김태식입니다.
제1장침례교의 기원 논쟁: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침례교인들의 입장제2장선교 논쟁: 이방인 선교에 대한 침례교인들의 입장제3장흑인 논쟁: 노예제도와 인종 차별에 대한 침례교인들의 입장제4장교단 논쟁 : 교회에 대한 침례교인들의 입장제5장신학 논쟁 : 교리에 대한 침례교인들의 입장제6장창세기 논쟁: 성경에 대한 침례교인들의 입장제7장근본주의 대 온건주의 논쟁최근 남침례교 총회의 교권 투쟁
결론: 침례교 논쟁을 통해 배운 교훈들
저는 그리스도인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침례 교인(Baptist)입니다.
침례교는 장로교나 감리교 등과 달리 인간 창시자도 없고 교리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습니다.
그래서 침례교 안에는 칼빈주의자도 있고 세대주의자도 있습니다(물론 후자가 대부분임).
침례교는 획일적이지 않고 모두가 자기 양심에 따라 성경 말씀을 믿는 것을 지고의 선으로 여깁니다.
이러다 보니 이단 교리나 극단적 교리도 가끔씩 나옵니다(국내에서도 과거에 극단적인 교리들을 편 교회들의 상당수가 침례교회였음. 김기동의 베레아 등).
이번에 소개하는 책은 침례교회가 형성되면서 생긴 여러 가지 갈등에 대한 것입니다.
침례교인들이 이렇게 솔직하게 자기들 내부의 중요 갈등들을 다루는 것은 다른 데서는 찾아보기 힘든,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바로 여기에 희망이 있다고 믿습니다.
어떤 면에서 치부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솔직 담백하게 다루는 모습이 바로 성도들의 바른 자세라고 믿습니다.
랜드마키즘(Landmarkism,지계석주의)
침례교인들 중에는 랜드마키즘(지계석주의 혹은 지계표주의)이라는 특정 교리를 고수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랜드마크는 성경에서 지계표로 번역됨). 이것은 한 마디로 "침례교회만, 그것도 미국식 독립침례교회만 교회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장로교나 감리교 등은 실제로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왕국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 때부터 이미 교회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우리는 오순절 날에 교회가 형성되었다고 믿습니다).
더 극단적인 이들은 침례자 요한(John the Baptist)이 침례교회의 창시자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또한 장로교, 감리교 등의 개신교회는 천주교회에서 갈라져나온 창녀라고 주장합니다(지금은 고인이 된 잭 하일스 목사 등의 주장).
또한 예수님의 몸인 교회 즉 전 우주적인 교회를 무시하고 땅에 있는 지역 교회만 교회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지역 교회를 통해서만 이루어져 한다고 주장합니다(성경 번역 및 출판, 신학교, 대안 학교, 문서 사역 등 거의 모든 일).
이런 구조 속에서 믿음 생활을 하다 보니
이런 교회의 성도들은 극단적인 성격을 띠게 되고 매우 배타적이 됩니다.
'우리 교회만 바른 교회'라는 착각 속에 빠져서 교만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같이 믿음 생활하다가 무슨 이유로든 그 교회를 떠나는 사람을 향해 '구원받지 못한 자'라는 비난을 합니다.
국내에도 구원파라는 침례 교파의 경우 공공연히 자기들만 주님께 붙은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교회를 떠나면 자동으로 구원 받지 못한 자가 됩니다.
이러다 보니 교회에서 심한 갈등이 형성됩니다.
교회에 남느냐, 떠나느냐로 큰 갈등이 빚어집니다.
미국의 경우 이보다 좀 더 극단적인 자들은 Baptist bride라고 불립니다.
이들은 자기들만 예수님의 신부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들만 휴거가 되겠지요.
그러므로 다른 데서 성경적인 침례를 받았어도 그 교회의 회원이 되려면 반드시 그 교회에서 다시 침례를 받아야만 합니다.
또한 이런 교회에서는 많은 경우 목사가 심한 독재를 합니다.
은밀하게 독재하는 목사도 있고 드러내놓고 독재하는 목사도 있습니다.
물론 후자가 더 많지만 이렇든 저렇든 독재는 주 예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잘못된 교회관 즉 랜드마키즘에서 비롯됩니다.
랜드마키즘의 에러는 다음의 글에 자세히 쉽게 설명되어 있으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랜드마키즘의 에러
http://www.middletownbiblechurch.org/lochurch/landmark.htm
이번에 소개하는 이 책의 4장은 이 문제의 배경을 잘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도 미국의 남부 지방에는 랜드마키즘 교리가 상당히 강합니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한국에 파송되어 온 독립침례교회의 미국 선교사들은 대부분 이 교리를 강하게 가르쳐 왔습니다.
이러다 보니 초창기 침례교회, 구원파 교회 그리고 최근에 형성된 근본주의 독립침례교회들 중에 몇몇 교회가 이 교리를 강하게 지지합니다.
이것은 개인 양심의 문제이므로 제가 잘잘못을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교리로 인해 많은 사람의 영혼이 피폐하게 되므로 경고를 줄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므로 4장을 PDF 파일로 올립니다.
1장도 대단히 중요하므로 꼭 이 책을 요단출판사에서 구입해서 보기 바랍니다.
교회도 실수합니다.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책을 보면서 우리 교회는 지금 어떤 실수를 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았습니다.
"우리만 교회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교회에 다니면 빨리 그런 교회를 떠나야 합니다.
목사와 성도들이 "우리 교회는 무엇이 부족한가?"를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교회가 바른 교회입니다.
교회는 부족합니다.
죄 투성이들이 모인 곳입니다.
교회에서 대리 만족을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성도 여러분이 다 걸어 다니는 교회요,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성전입니다.
부디 이 책을 통해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 바랍니다.
부탁합니다.
샬롬.
2011-09-08 13:49:08 | 관리자
크리스천에게 전도(?)하기 좋은 내용이군요.^^
종교가 판치는 세상에서 늘 지금처럼 바른 교리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1-09-08 11:19:10 | 김재욱
사람들이 만약 나에게 종교와 복음의 차이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거침없이 이렇게 대답해 줄 것이다.
"종교는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애초에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종교 행위를 하는
그 사람 자신이 수없이 속습니다.
왜냐고요? 종교란 그것이 곧 사람 자신이 만든 것이므로
오직 종교 행위를 하는
자신의 입맛을 맞추어 주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 자신은
자신 속의 깊은 곳에 사는 자신의 영혼의 눈이
점점 멀어가든지 아니든지 상관없이 계속 그 행위를 하게 되는 겁니다..(벧전2:19b)
종교 행위를 하면 할 수록
사람 자신의 본연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겁니다.
마치 문둥병이 발생할 때 환자가 병의 진행을 몸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그 병이 온 몸을 잠식해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이 세상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길을 택하고 있다는 겁니다.(마7:13)
사람들은 오직 자기 눈에 편해 보이는 것만 찾기 때문입니다.
이 종교란 것은 이 땅위에 살아 숨쉬는 이 동안만 만족을 줄 뿐입니다.(고후4:18)
그런데 사람의 행위는 언제나 변하기 때문에
그 기준을 다 맞추지 못합니다.(벧전1:18)
결국 종교를 택하는 자에게는 불지옥만이 기다릴 뿐입니다.(사5:14; 계21:8)"
"그러나 복음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은 점차적으로 한 사람이 스스로 거짓말에 속고 있었다는 것을
늘 상기시켜 줍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될때마다 그의 영혼은 점차적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이르겠지요.
하지만 그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이 오히려 행복한 일입니다.(욥5:18)
사람 자신이
결코 자기 자신의 기준조차 만족시킬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거기에서 돌이켜 나오는 것이 복음의 출발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다는 아닙니다.
그 사람을 부끄럽게 했던 모든 추악한 모습들을
가려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해집니다.
왜냐하면 사람 자신은
본래적으로 자기 자신조차도 만족시킬 수 없는,
가지고 있는 의조차도 더러운 누더기일 뿐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사64:6)
따라서 유일한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기준조차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겁니다.(롬3:10, 23)
이런 사람이란 존재를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이 문제의 해결책을 마련해 두셨습니다.(요19:30)
이 해결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요1:14)
하나님 자신이 우리 인간과 같은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요1:14)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놀라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낮아지사(빌2:8)
하나님을 마음과 생각으로부터 거부하고(시10:4; 14:1)
모든 불법과 죄들 가운데서 죽어가고 있던(엡2:1-2) 우리를 위해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귀한 피를 흘려주사 죽으셨으며
묻히시고, 성경 기록대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고전15:3-4)
이것이 복음의 핵심인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은 사람의 행위와 행실에 기초를 두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행하신 공로에 기초를 둡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은 자기를 자랑할 수 없게 합니다.(고전1:29)"
그리고 이에 덧붙인다면...
"따라서 여러분은 지금 이 복음의 복을 누리실지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고후6:2)
바로 지금 말입니다.(히3:13)
여러분이 직접 그 진실을 확실하게 대면하게 될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잠27:1)
그게 1초 뒤가 되었든, 1분 뒤가 되었든, 1시간 뒤가 되었든, 1일 후가 되었든,
1개월 뒤가 되었든, 1년 뒤가 되었든....
여러분의 숨이 언제 끊어질지는 여러분 자신도 모릅니다.(약4:14; 히9:27)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진정으로, 진심으로 하나님의 방법을 찾고 신뢰하시며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그 존재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이켜 나오시길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여러분 자신의 영원한 구원자로 믿고 받아들이시고
오직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마9:13; 롬10:9-10)
그 순간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로(엡2:8-9)
하늘나라 행의 영원한 티켓, 즉 영존하는 생명을 받으신 것입니다.(요3:16; 5:24)
여러분을 지옥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시길 바랍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로다.(롬1:16)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시느니라.(롬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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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7 20:13:26 | 소범준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표준어가-예전과 마찬가지로- 합리적으로 바뀐 것도 있고, 원래의 뜻을 알수 없도록 변형되어 가는 것도 있군요.(예 : 묏자리=산에 있는 자리, 장소 = 산소의 우리말 등)
2011-09-01 22:02:34 | 류인선
안녕하세요?
21세기 인본주의 시대에는 창조와 진화 문제가 기독교 믿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진화론에 세뇌 당한 것은 아닙니까?' 라는 제목의 만화 전도지를 조그만 책자로 만들었습니다.
이번에 그것을 다시 소책자 형태로 만들어 아이패드, 갤럭시탭 등에서 넘기면서 볼 수 있게 했습니다.
한기만 형제님이 영어 책자를 스캔 받아서 한글 타이핑 작업 해 주었고
신실한 한 형제님이 전체적인 레이아웃 작업을 했습니다.
두 분의 도움으로 멋 있는 작품이 나왔습니다.
PDF 파일은 마음대로 배포해도 되며 여러 종류의 기독교 포털과 블로그 등에도 올리기 바랍니다.
한국 창조과학회 등에도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는 것이 힘입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샬롬.
정동수
2011-09-01 15:43:31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