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서 베리칩이 계13의 그 표라고 속이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그건 신6:8과 대조되는 표현으로 쓰인 것입니다.
2011-08-13 18:54:13 | 손인욱
저도 반갑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1-08-13 15:25:01 | 김재욱
성철이 죽기전에 남긴 글.
생평기광 남녀군 - 일평생 남녀무리를 속여 미치게 했으니
미천과업 과수미 - 그 죄업이 하늘에 미쳐 수미신보다 더 크다
활염아비 한만단 - 산채로 불의 아비지옥으로 떨어지니 한이 만갈래나된다
일륜토홍 괘벽산 - 한덩이 붉은 해가 푸른 산에 걸렸구나
2011-08-13 10:02:20 | 허광무
▶미국의 저명한 작가 - "토마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믿음을 거스르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던 그가 마지막 순간 남긴 말...
"오 하나님! 어떤 일을 행했길래 이렇게 큰 고통을 받아야합니까?""제발 내 곁에 있어 주시오. 어린 아이라도 내 곁에 머물게 해 주시오""홀로 있다는 것은 지옥이기 때문이오""마귀에게 대리인이 있다면 내가 바로 그였을 것이오"
`▶프랑스 여류작가 - "롤랑드"(Madame Rolland 1866~1944)
"오 자유! 너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죄들이 범해졌는지..."
▶무신론자 - 프랜시스 뉴돈
"나는 영원히 정죄받았구나! 하나님이 나의 원수가 되었으니 누가 나를 구원하리요?"
"아! 지옥과 저주의 견딜수없는 고통을 나는 받게 되었노라!"
▶영국의 대법관 - "토마스 스코트 경"(Sir Thomas Scott 1535 – 30 December 1594)
"나는 이 순간까지 하나님도 없고, 지옥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둘 다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전능자의 공정한 심판에 의해 멸망을 받을수 밖에 없구나!"
▶18세기 프랑스의 작가, 대표적 계몽사상가 - "볼테르"(Voltaire 1694~1778)
그는 프랑스의 유명한 이교도작가로서 기독교를 방해하고 분쇄하기 위해 펜을 사용했다.
"나는 하나님과 인간에게 버림받았소!"
"만일 당신이 내게 여섯 달동안 살 수 있게 해 준다면 당신에게 내 소유의 절반을 주겠소."
"나는 지옥으로 갈거요. 오 예수 그리스도여!"
▶독일 문학가 - "괴테"(Johann W. von Goethe 1749~1832)
그는 세익스피어의 영향을 받았으며 파우스트, 진리와 허구 등을 집필했다.
그는 마지막 숨을 내쉬면서 한가지를 요청했다
"빛이 더 들어오도록 창문을 열라." (천국에 가지 못하는 사람은 어두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함)
▶무신론자 - "윌리엄 포프"(William Pope 영국, 1797년 사망)
교황을 의미하는 성을 타고 났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였으며
모든 종교적인 것들을 비웃은 그가 했던 일은 성경을 마루바닥에 차고다니거나 찢는것이었다.
그의 임종자리에 있었던 친구들은 그가 죽으면서 부르짖는 모습은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고 한다.
"나는 회개하지 않네. 아니 회개할 수 없다네. 하나님은 나를 저주할 것일세!"
"나는 은혜의 날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안다네""자네들은 영원히 저주받을 사람을 보고있네. 오! 영원! 영원! 내게는 지옥밖에 없다네. 오라 영원한 고통이여!""나는 하나님이 만든 모든것을 증오했네. 내가 증오하지 않은것은 마귀뿐이라네. 그와 함께 있기 바라네""지옥에 있기를 갈망하네. 자네들은 보지 못하는가? 그를 보지 못하는가? 나를 위해 그가 오고 있는것을..."
▶이교도 케이(Kay) 마지막에 이렇게 부르짖었다..
"지옥, 지옥, 지옥"
* 참고서적 : 죽음 앞에서 남긴 마지막 말 (허버트 로켜, 생명의말씀사)[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0:4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8-12 23:35:02 | 최홍진
임재영 형제님,
초면인 것 같아서 우선 인사드립니다. 반갑습니다.
본문의 핵심 내용이, 우리말의 특성상 직역이 되기가 아주 어려운 부분이어서 최대한 영어 원어에 가깝게 번역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형제님께서 잘 분석하시고 정리하셔서 주님의 은혜와 긍휼을 다시 생각나게 하시니,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성경을 깊이 그리고 넓게 묵상하고 연구를 하다보면, KJV가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고자 하는 그분의 뜻과 마음, 그리고 진리 등을 바르게 알 수 있도록 해 주는데, 하나님의 말씀의 깊이와 넓이를 두루뭉술하게 알고서 그것으로 만족하는 이들에게는 하늘의 보화가 그렇게 밖에 주어지지 않으니, '찾는 자가 찾을 것이라'는 말씀이 당연히 적용되고 있네요.
한국 사람들이 바르고 정확한 성경, KJV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으며 그것들에 합당하게 삶을 영위하는 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2011-08-12 17:32:30 | 신대준
임 형제님!
이제 시작하셨네요.
좋은 글로 많은 분들을 위로해 주세요.
샬롬
정동수 드림
2011-08-12 15:48:06 | 관리자
마태복음 4장(누가복음 4장, 마가복음 1장)에는 주 예수님께서 친히 시험을 받으시는 사건이 나옵니다. 주님께서 시험을 받으신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첫 째는 주님께서 메시아로 오신 분이심을 증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앞의 3장에서 주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자,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로 공표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있어 이르시되,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따라서 마귀는 그분을 메시아의 길에서 실족시키고자 주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두 번째 는 히브리서 2:18과 4:15에서 밝히고 있듯이 연약함을 갖고 있는 믿는 이들을 시험에서 능히 구조하시는 구주(救主)가 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께서 친히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구조하실 수 있느니라"(히 2:18)
"우리에게 계시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히 4:15)
따라서 마귀의 목적은 시험을 통하여 주 예수님으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험을 이기지 못한 자는 다른 이를 시험에서 능히 구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 공관복음서에 기술된 기사를 살펴볼 때, 주님은 40일 낮과 밤을 금식하시며 온갖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주변에 야생 짐승들 외에는 아무도 없는 황량한 벌판에서 주님은 우리와 똑같은 살과 피를 가진 인성 안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이 받으신 시험은 어떠한 시험이며 얼마나 많은 시험을 받으셨을까요? 히브리서 4:15는 이 시험의 범주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in all points tempted like as we are)"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40일 동안의 시험에서 우리와 똑같은 연약함을 갖고 온갖 시험을 다 받으셨습니다. 곧, 죄의 본성을 입고 태어난 자들이 연약함 가운데 받게 될 모든 시험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겪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받는 시험 가운데 주님이 몸소 겪지 않은 시험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이 살과 피를 가지셨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연약함의 감정을 우리와 똑같이 느끼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긍휼이 많은 대제사장이 되시는 이유는 우리와 똑같은 영과 혼과 몸으로 시험을 받으셨고 그 시험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왜 KJV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가?"에 대한 믿음의 증거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히브리서 4:15에 대한 역본들의 차이를 보겠습니다.
KJV : For we have not an high priest which cannot be touched with the feeling of our infirmities; but was in all points tempted like as we are, yet without sin.
RSV : For we have not a high priest who is unable to sy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one who in every respect has been tempted as we are, yet without sin.
NIV : For we do not have a high priest who is unable to sy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we have one who has been tempted in every way, just as we are-- yet was without sin.
NASB : For we do not have a high priest who cannot sy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One who has been tempted in all things as {we are, yet} without sin.
NKJB : For we do not have a High Priest who cannot sy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was in all points tempted as we are, yet without sin.
KJV과 현대 역본 사이의 차이점은 "몸소 느끼다"라는 부분에 있습니다. KJV는 이 부분을 "be touched with the feeling of"로 번역한데 비하여, New KJV를 포함한 모든 현대역본들은 한결같이 "sympathize with"로 번역하고 있습니다.(헬라어 원어는 "sumpatheo"로서 "with"+"passion"의 합성어임). 영어로 "sympathize"는 "공감하다", "위로하다", "동정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KJV가 왜"sympathize with"로 번역하지 않고 "be touched with the feeling of"로 번역하였는지를 살펴보면, 왜 KJV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먼저 그분께서 인성 안에서 갖고 계신 연약함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을 때 우리와 동일하게 인간의 모든 연약함을 가지셨습니다. 주님은 때로는 굶주리셨고, 목마르셨으며, 여행길에 지치셨으며, 시험을 당하셨습니다(눅 4:2). 때로는 분노를 나타내셨으며,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셨으며(눅 7:34),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또한 잠을 주무셨으며, 기도를 하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때로는 슬퍼하시고, 때로는 아파하시고, 때로는 기뻐하시고, 때로는 즐거워하시며, 죄인들 가운데서 그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시고 그들과 같이 잡수시고 그들의 연약함의 감정을 세밀히 느끼시고 그들의 어리석음과 약함과 어둠에 갇힌 모습을 불쌍히 바라보셨습니다. 그러나 비록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이 인성을 입고 살과 피에 참여하시면서 우리와 동일한 연약함의 감정을 가지셨지만, 그분은 본성에서 우리와 다른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분께서는 죄를 짓지 아니하시고, 입에 교활함도 없으시며"(벧전 2:22).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을 제거하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알거니와 그분 안에는 죄가 없느니라"요일 3:5)
잘 아시다시피 우리 주님께서는 본성 안에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같이 연약함을 가지셨지만, 시험이 올 때 죄의 본성이 반응을 하여 그 시험에 굴복하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비록 우리와 같은 연약함을 가지셨지만 그분 안에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주님은 시험에 대하여 내부에서 반응하여 죄를 범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본성적으로 외부에서 오는 시험만 겪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be touched with the feeling of" 라고 번역하는 것이 주님의 본성과 주님이 어떻게 시험을 받으셨는지를 나타내는 바른 번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역본들처럼 "sumpatheo"를 "공감하다(sympathize)"로 번역하는 것은 우리 주님을 마치 우리의 연약함의 모든 감정을 하나하나 시험을 받는 가운데 직접 몸으로 체험하신 분이 아니라, 동정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바라만 보시는 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혹 누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연인이나 자녀가 심한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다면, 차라리 자신이 대신 고통을 당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안타까운 마음도 실제로 동일한 질병으로 아파보지 않았다면, 그 환자의 아픔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가 없으며, 그 환자와 고통에서 하나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현대 역본은 주님을 단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거나 공감하시는 분으로 만들어서 주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시험을 보다 객관적인 사실로 약화시켰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인성과 그분의 죄 없으심을 보여주는 더 정확한 번역은 우리와 똑같은 연약함 가운데 외적으로 시험을 받으신 분으로 묘사하는 "touched with the feeling of" 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외면한 채 섬김만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며, 친히 인성 안에서 우리와 동일한 연약함으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힘들고 약하고 어려울 때 팔짱을 끼고 불쌍한 마음으로 바라만 보시는 분이 아니라, 이 땅에 계실 때 우리와 똑같은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셨기 때문에 어떠한 시험에서도 우리에게 피할 길을 주시며 우리를 능히 구원해 주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오늘날 믿는 이는 시험이 임할 때, 그 시험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같이 인성을 입으시고 2000년 전에 겪으시고 승리하신 시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40일 동안 광야에서 신약의 믿는 이가 겪어야 할 모든 시험에 대한 피할 길을 이미 예비해 두셨습니다. 주님은 얼마나 자상한 분이신가요! 그분의 사랑은 얼마나 큰지요! 그분은 참으로 긍휼이 많고 신실하신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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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2 15:17:36 | 임재영
저는 복음전도자가 될 것인데 keepbible에서 제가 필요로 하는 학자 역할을 해줘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2011-08-10 14:59:12 | 오창재
천국 지옥 간증은 성경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해도 들으실 필요 없습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5195#c_ 참고하세요..
마귀들은 고문을 당해도 시원찮은데 누굴 고문하겠습니까만, 성경에서 말씀하지 않은 것에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지요. 그리스도인과 관계 없는 장소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욥기 1장 7절에는 "주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서 오느냐? 하시니 사탄이 주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에서 여기저기 다니고 또 그 안에서 위아래로 거닐다가 오나이다, 하매"라고 했으니 지옥에 마귀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지옥의 권세도 주님의 것입니다.
"나는 살아 있는 자라. 전에 죽었으나, 보라, 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아멘. 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 (계1:18)
책이 있습니다. 구입해서 읽으시거나 다음 공지사항에서 다운로드 받아 컴퓨터나 스마트기기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158
2011-08-10 10:13:24 | 김재욱
지옥이 마귀와 그의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장소라는 건 알지만, 불신자들이 죽어 간 지옥에도 혹시 그들을 고문하는 마귀가 있지는 않지요? 범죄한 천사들을 묶어 놓은 타타루스는 알지만.
지옥의 한자풀이를 보니까 개와 마귀가 지키는 옥이라는 뜻이라던데, 성경말씀을 아무리 보아도 현재 지옥에 마귀가 있다는 말은 없어서요.
천국과 지옥을 갔다 왔다는 간증을 보니까 - 지옥사자들이 불신자들을 고문하고 있다는 - 이런 내용이 있던데, 이것도 비성경적인 내용이면 무시하면 되죠?[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35:0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3 15:56:19 질문과 답변에서 이동 됨]
2011-08-09 20:16:55 | 김현석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사람한테 예의를 갖춘다고 "수고하세요~" 하는 것도 원래는 안 되는 것인데 많이들 쓰더군요. 이상한 존대법을 보니, 딸을 시집 보내면서 존댓말을 쓰라고 가르쳤더니 시아버지한테 "아버님 대갈님에 검불님이 붙으셔서 개님이 멍멍 짖으십니다" 했다는 옛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국어를 잘해야 말씀도 잘 이해하는 건데 언어가 많이 흐트러진 세상인 것 같습니다. 차가 밀리고 길이 막히는 건데, 거꾸로 길이 밀리고 차가 막힌다고 말하기도 하지요. 길이 차 때문에 밀리고 차가 갈 길이 막힌다는 의미로 쓰는 거지만그 자체는 틀린 말입니다. "고객님, 2천원이세요" 하는 것도 2천원이 당신이 부담하셔야 할 금액이라는 의미로 쓰는 것이겠지만 틀린 말이지요.
흔히 쓰는 "%"를 2프로 3프로 하지만 프로(프로티지?)는 전혀 없는 말인데, 사전에도 엉터리로 설명돼 있는 말이라고 합니다. 퍼센트라고 해야 맞지만 2프로 부족할 때라는 음료도 나오고 하면서 거의 회귀불능 상태가 되었지요. 하긴 인간의 언어란 오류와 잘못된 외래어 표기에서도 새로운 단어가 등재되기도 하는 법이니 어쩌면 인간의 언어의 한계가 이런 식으로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말씀의 불변성이란 도무지 설명이 불가능한 기적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2011-08-06 14:18:00 | 김재욱
남 자매님!
읽고 또 읽어도 좋아요.
눈물이 납니다.
석탄같이 검은 자를 깨끗하게 해 주는 말씀의 위력에 감사합니다.
샬롬.
2011-08-06 13:40:35 | 관리자
이국 땅에서 접하는 믿음의 글들이 제 말라가는 영에 단비가 되는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읽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글이었습니다. 자매님 감사합니다
2011-08-06 13:38:57 | 윤대원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2011-08-06 12:23:26 | 류인선
어제 자동차 정비업소에 들렸다가 오는 길에 모 교회 목사 부인과 딸이 차 수리를 맡기고 나갔다가 버스를 놓쳤다며 다시 들어오길래, 댁이 어디시냐고 물었더니(집하고는 완전히 반대방향이지만) 가는 길에 태워다 드리겠다고 했더니,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나오시는데, "저분이 모셔다 준대요." 하더군요.
2011-08-06 12:12:39 | 류인선
존대어가 이상해진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어른 텔레비젼 프로는 볼수 있어도 예배는 어렵게 생각하는 '어른들의 편견을 버려야겠습니다.
어른 예배 ,어린이 예배 자체가 성경에 없는 용어가 아니겠습니까? 텔레비젼 안보기 켐페인을 벌이면 좋겠습니다.
2011-08-06 11:08:43 | 정혜미
이 글을 읽고 좀 놀랐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11-08-06 09:50:01 | 김학준
신앙생활에서 선한 행위가 "입력값"인지 "결과물"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해가 여기서 출발하는 것인 많은 것 같습니다.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2011-08-06 09:46:10 | 김학준
The Wicker Basket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을 자매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던 "little house on the prarie"에서 보는 그런 집의 그림입니다.
이런 집에서는 겨울에 난로에 집어넣을 석탄 (혹은 갈탄)을 사용하여 난방을 하는데
그런것을 담는 잔 나무가지로 만든 바구니를 wicker basket이라고 부릅니다.
The story is told of an old man who lived on a farm in the mountains of eastern Kentucky with his young grandson.
이것은 동부 켄터키 산속에서 농장을 하며 그의 손자와 같이 살고 있는 한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ach morning, Grandpa was up early sitting at the kitchen table reading from his old worn-out Bible. His grandson who wanted to be just like him tried to imitate him in any way he could.
매일 아침, 할아버지는 일찍 일어나 식탁에 앉아 그의 낡아떨어진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의 손자는 할아버지를 너무 닮고 싶어 그가 하는 모든 것을 가능한 따라 하려고 했습니다.
One day the grandson asked, 'Papa, I try to read the Bible just like you but I don't understand it, and what I do understand I forget as soon as I close the book. What good does reading the Bible do?'
어느날 손자가 "할아버지처럼 성경을 읽으려고 노력하는데 이해가 안 됩니다. 그리고 내가 이해한 것을 책을 덮자마자 바로 잊어버립니다. 그러니 성경을 읽는 게 뭐에 좋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The Grandfather quietly turned from putting coal in the stove and said, 'Take this old wicker coal basket down to the river and bring back a basket of water.'
할아버지는 난로에 석탄을 넣다가 조용히 돌아보면서 "이 낡은 석탄 바구니를 강으로 가져가서 물을 담아가지고 오너라" 고 말했습니다.
The boy did as he was told, even though all the water leaked out before he could get back to the house.
아이는 집으로 오기전에 모든 물이 이미 새어버렸지만 그대로 했습니다.
The grandfather laughed and said, 'You will have to move a little faster next time,' and sent him back to the river with the basket to try again.
할아버지는 웃으시며 " 너 다음에는조금 더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시고 다시 해 보라고 아이를 강으로 보냈습니다.This time the boy ran faster, but again the old wicker basket was empty before he returned home. Out of breath, he told his grandfather that it was 'impossible to carry water in a basket,' and he went to get a bucket instead.
이번에는 아이가 더 빨리 뛰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집에 오기전에 바구니는 비어버렸습니다. 숨이 차서 그는 할아버지에게 '이 바구니에 물을 담아오기는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했고 대신 물통을 가지러 갔습니다.
The old man said, 'I don't want a bucket of water; I want a basket of water. You can do this. You're just not trying hard enough,' and he went out the door to watch the boy try again.
할아버지는 "나는 물통의 물을 원하는 게 아니고 바구니의 물을 원한다"라고 하셨습니다. "너는 할 수 있어. 네가 최선을 하고 있지 않구나". 그리고 그는 아이가 다시 시도하는 것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씁니다.
At this point, the boy knew it was impossible, but he wanted to show his grandfather that even if he ran as fast as he could, the water would leak out before he got far at all. The boy scooped the water and ran hard, but when he reached his grandfather the basket was again empty. Out of breath, he said, 'See Papa, it's useless!'
이쯤에서 아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아무리 빨리 뛰어도 물은 금방 새어버린다는 것을 자기 할아버지에게 보여 주기 원했습니다. 허리를 굽혀 물을 담고 열심히 달렸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에게 왔을때는 그의 바구니는 비어 있습니다. 숨이 차서 그는 "할아버지, 소용없잖아요!"라고 했습니다.
'So you think it is useless?' the old man said. 'Look at the basket.'할아버지가 '쓸데없다고 생각하니?'하고 물으며 바구니를 쳐다보라고 합니다.
The boy looked at the basket and for the first time he realized that the basket looked different. Instead of a dirty old wicker coal basket, it was clean.아이는 바구니를 쳐다보았고 처음으로 달라보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더러운 석탄바구니였는데 지금은 깨끗해졌습니다.
'Son, that's what happens when you read the Bible. You might not understand or remember everything, but when you read it, it will change you from the inside out.' '아들아, 그것이 성경을 읽을때 일어나는 일과 같다. 네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 할 수 있으나 네가 그것을 읽을때 그것이 너를 뒤집어 바꾸어 놓는단다'
Moral of the wicker basket story: 이 이야기의 교훈
Take time to read a portion of God's word each day;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정해진 분량만큼 읽도록 시간을 냅시다It will affect you for good even if you don't retain a word.
한 단어도 간직할 수 없을지라도 당신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입니다. Thought for Today: 오늘을 위한 생각
God's Love is like the ocean, you can see its beginningsbut not its end.
하나님의 사랑은 바다와 같아서 우리가 시작부분만 볼 수 있지 끝을 볼 수 없습니다. I really like this story because I don't retain things too well anymore...age may have something to do with it but I figure my brain just gets overloaded!
God isn't concerned about my brain anyway;He's more concerned about my soul.
나는 이제 더 이상 어떤 것도 기억할 수 없기때문에 이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나이가 먹으니 어쩔 수가 없나봅니다.
아마 나의 뇌가 너무 많은 것으로 과부하에 걸렸는지도요!
어쨌든 하나님은 나의 뇌에 대한 것보다
다만 나의 혼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십니다.
2011-08-06 09:35:05 | 관리자
특히 백화점 점원들이 이상한 존대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들을때 마다 이상하더라구요. 이제 부터는 그런 존대어가 어디 있냐고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2011-08-06 07:37:13 | 허광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