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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래 자유게시판 1466번 글에 대한 답변으로 작성된 것이므로 같이 읽고 참조 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한 것이 그 후대에 오는 모든 사람에게도 똑 같이 적용이 되는 것일까요? 대답은 ‘그렇다’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담이 아닐진대 이거 좀 억울한 것 아닐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창세기 에덴동산으로 거슬러 올라가 먼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우선 아담의 범죄가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하지요. 그것은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은 것 즉, ‘불순종’입니다. 선악과가 필요한 이유 또한 바로 선악과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자인지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 이었습니다 (자유게시판 #1461 글 참조). 이제 하나님은 아담에게 처음 말씀하신 약속대로 죽음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창 2:17).   2. 아담이 범죄 하기 이전에 처음 창조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첫 번째 명령이 무엇이었나요? 그것은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고,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지배하는 것” 입니다 (창 1:28). 그런데 이제 아담이 죽어야 합니다. 아담이 다산하고 번성하여야 하는데 죽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놀랍게도 아담의 죄 값을 대신 치러 죽을 자를 정하시되 바로 자신의 독생자로 정하시고, 대신 아담은 계속 살리어 이 땅 위에 번성하게 하심으로 본래 계획하신 바를 이루려고 하셨습니다!   3. 그러나 그 분이 이 땅에 오시기까지는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하심의 시간표에 따라 많은 세대가 지나가며 ‘때’가 차야만 할 필요가 있었고, 그 분이 마침내 이 땅에 오시어 그 분의 ‘의’를 이루시기 까지는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이 땅에 들어온 ‘죄’의 결과인 ‘죽음’의 권세 아래 놓여 있을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4. 성경은 말하기를, "그분께서 사람들의 모든 민족들을 한 피(one blood)에서 만드셨다" (행 17:26)라고 합니다. 이 말은 곧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전부 아담의 피를 이어 받았음을 의미 합니다. 아담의 피를 이어 받았다는 말은 모든 사람들이 예외 없이 ‘죄인’이란 말이기도 합니다. 성경도 이를 다음과 같이 증거 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사람도 없으며 (롬 3:10)”,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 (롬 5:12)” 그러므로 아담 이후의 사람들은 모두 원칙적으로 본인이 죄를 많이 짓든지 적게 짓든지 혹은 (그러기는 거의 불가능 하지만) 아예 안 짓든지에 상관없이 모두 죄인이며 사망의 법 아래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바, 율법은 죄를 죄로 인정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율법이 없던 때에도 죄는 세상에 있었지만 죄로 인정되지는 않았습니다 (롬 5;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법과 같은 종류의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군림하였는데 (롬 5:14)” 라고 말합니다. 아담과 같은 종류의 죄를 짓지 아니하였고, 아직 율법이 없어 정죄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망이 군림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말씀은 우리가 자칫 오해 하듯이 우리가 살면서 짓는 죄, 즉 율법이 정죄하는 그 수많은 죄를 지어야만 사망의 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심지어 사람 이외의 다른 창조물조차도 썩음의 속박 가운데 놓여 있으며 (롬 8:21), 온 창조 세계가 지금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산고를 치르면서 (롬 8:22), 하나님의 아들들 즉, 구속함 받아 양자되는 우리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롬 8;19, 23). 창조물과 창조 세계가 우리처럼 율법이 정죄하는 죄를 질리가 만무한데 그들도 썩음의 속박과 고통 가운데 있는 것은 아담의 죄로 인하여 이 땅에 들어 온 ‘사망’의 권세 아래 모두가 같이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5. 이와 같이 아담 이후 모든 사람이 ‘사망’의 법 아래에 놓여 있었으나, 이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어 이 사망의 법을 ‘믿음의 법’으로 바꾸기로 하십니다. ‘믿음의 법’이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는 법이요, 차별이 없으며, 그 분의 피를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롬 3:21-28). 그러므로 이제 아담에게 내렸던 ‘사망’의 저주는 ‘영생’으로, ‘정죄’는 ‘의’로, 그리고 마침내 아담의 ‘불순종’은 ‘순종’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죄가 누구를 통해 들어왔었습니까? 한 사람 아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역전 드라마는 또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롬 5:17). 이것이 바로 “아담은 오셔야 할 분의 모형이니라 (롬 5:14)”라고 말씀하신 뜻입니다.   6. 그러면 아담 이후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의 사람들은 어떻게 ‘믿음의 법’을 따를 수 있을 까요? 가령 아브라함은 역시 아담의 자손으로 예외 없이 ‘사망의 법’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만,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롬 4:1-3). 그런가 하면 다윗은 “자기 불법들을 용서 받고 자기 죄들이 가려진 자들은 복이 있으며 주께서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라고 시편에서 노래한 바 있음을 바울이 알려 줍니다 (롬 4:6-8). 이 말씀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의 법’이 완성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사망의 법’ 아래 놓여있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믿음의 법’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행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우리에게 알려 주는 성경이 히브리서 11장의 내용입니다. 아벨도 노아도 아브라함도 모두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7. 다시 아담으로 돌아가 봅시다. 아담의 죄는 ‘불순종’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맞이하게 된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히시면서 (창 3:21), 이브의 씨가 장차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임을 예언 하셨습니다 (창 3:14-15).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을 주신 것이고, 이 소망을 믿는 자들을 의롭다 여기시려는 새로운 법을 만드신 것입니다. 아담과 아담의 후손들은 이 소망을 후대에 열심히 전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비록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들과 심지어는 모든 창조물까지도 이 ‘사망의 법’ 아래 놓여 종노릇하게 되었음에도, 한편으로는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이 소망의 믿음을 갖는 자를 의롭다 하시고 믿음의 조상들로 세워 나가신 것입니다. 결국 선악과에서 아담이 불순종하였지만, 아담 이후의 사람들은 선악과 대신 이 메시야 소망에 대한 믿음을 통해 여전히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을 갖게 된 것이 됨으로 여전히 선악과가 주고자 했던 의미는 지속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원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 완성된 ‘믿음의 법’ 아래서 여전히 동일하게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을 물으심으로 아담이나 우리나 모두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믿음의법’을 순종하여 의에 이를지, 아니면 아담이 선악과 앞에서 그랬듯이 오늘 우리 앞에 놓여진 ‘믿음의 법’에 또 다시 불순종하여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를지 (롬 6:16), 하나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2:47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09 21:16:55 | 김정훈
아담의 죄때문에 우리가 지옥을 가는 것은 아닙니다. 아담의 죄는 그의 행위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인지를 알면서 했기 때문에 죄로 드러난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지은 후에 아담에게 일어나는 모든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설명하시면서 창3:19절 "땅으로 돌아가기까지"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즉, 아담의 죄를 통해서 영적단절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육체적인 사망이 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의 후손인 우리는 이로 인해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게 되고 나중에 육체적인 사망이라는 운명을 반드시 겪게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연좌제라는 것이 없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로 말하건대 그가 잔인하게 학대하고 자기 형제를 폭력으로 노략하며 자기 백성 가운데서 선하지 아니한 일을 행하였으니, 보라, 심지어 그가 자기 불법 가운데서 죽으리라. 그럼에도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된 일이냐? 아들이 아버지의 불법을 담당하지 아니하느냐? 하는도다. 아들이 율법에 맞는 일과 옳은 일을 행하며 내 모든 법규를 지켜 행하였을진대 그는 반드시 살리라. 죄를 짓는 혼, 그 혼은 죽을지니라. 아들이 아버지의 불법을 담당하지 아니하며 아버지가 아들의 불법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로운 자의 의가 그 위에 임하고 사악한 자의 악이 그 위에 임하리로다(겔18:18-20)" 아담의 죄성을 타고 태어나는 인간은 태어난 이후에 계속 죄를 짓고 삽니다. (아이가 죄를 배우기 위해서 학교을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은 악한 행위에 본성적으로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고 살다가 주님께로 돌아 오면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지옥으로가는 둘째 사망이 관련이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둘째 사망으로 인해 지옥으로 가게 되지요. 그러므로 아담의 죄로 인해서 우리가 지옥을 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출생이후에 우리가 만드는 죄로 인해서 지옥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죄성으로 계속 죄를 짓고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므로 자동적으로 둘째사망에 처해지는 운명, 즉 태어난 이후의 삶이 계속 죄속에 거하면서 주님을 거부하게 되면 둘째사망으로 가는 것이구요. 그와 반대로 주님을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에 우리는 더 이상 육신에만 속해있는 죄인이 아니기때문에 둘째사망과는 아무런 상관없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죄와 우리가 짓는 죄는 구분이 되어야 합니다. 롬 5장은 태어난 이후에 죄성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계속 죄에 거하는 경우와 거듭나는 경우을 통해 우리의 나중 상태가 어떻게 차이가 나는 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보시면 이해가 되실 듯합니다.
2012-02-09 18:15:51 | 김학준
예전에 이런 설명을 들은 적이 있읍니다. (히 7:9) 또한 나는 십일조를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 안에서 십일조를 바쳤다고 말할 수 있나니 (히 7:10)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느니라. 이 귀절에서 유추하여, 레위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릴 때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십일조를 드렸듯이, 우리도 우리가 아담의 허리에 있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읍니다. 따라서, 아담이 불순종할 때 우리가 아담의 허리에 있었고, 우리도 불순종을 한 것 입니다. 사실 우리도 에덴 동산에 있으면, 아담과 똑같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읍니다. 양 한마리에 한 사람의 죄가 속죄됩니다. 이 원칙대로 하면, 우리 모두의 죄를 위하여 예수님이 피를 흘리신다면, 예수님은 수도 없이 죽어야 할 것 입니다. 따라서, 아담의 죄는 우리를 대표하는 것이고, 예수님이 아담의 죄를 대신 속죄함으로 우리 전체를 속죄함입니다. 제 설명이 도움이 되나요?
2012-02-09 15:31:39 | 홍승대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담으로부터 죄와 사망이 들어옴으로 그것이 후손들에게 유전?이 되는게 아닌가 싶네요..그리고 그 유전을 치료하려면 새로 태어나야(거듭남) 완치가 가능하구요...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면 시험들거같아요..;
2012-02-09 14:16:40 | 김광명
그런데, 롬5:1~21절의 말씀을 보면, 아담의 죄 때문에 단순한 육체적인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육체적인 죽음+혼에대한 심판(둘째 사망인 영원한 지옥형벌) (전 이렇게 생각하는데..) 또, 우리가 구원 받지 못하는 것도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은 사건 때문에 영향을 받아 그 해결책으로 예수님을 믿어야만 된다는 것으로 봤을때, 우리가 구원받아 야만 하는 존재 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이 한 사람의 불순종(아담의 사건)이 근본원인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2012-02-09 14:08:17 | 나창주
생명 자체인 아담의 피가 부패한 것이죠. 그러니 그의 허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부패된 피를 지니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죄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며, 그 피를 지니고 있으면 죄를 거부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마귀의 소유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데, 죄를 짓지 않는다면 지옥에 안 갑니다. 하나님은 그런 연대책임을 물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가 죽으면 지옥에 안 가지요. 단지 그 피로는 죄를 안 지을 수 없으므로 메시아를 보내 그분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게 하신 것입니다. 원죄, 자범죄 등의 용어가 있지만 원죄는 성경에 나오지 않으며 아담의 죄 때문에 육신이 죽고, 자기 죄 때문에 (구원 못 받으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2012-02-09 12:34:29 | 김재욱
이런 질문을 하는 제 자신이 이상한 것인지...의문이 들면서   그래도, 많은 분들의 감사한 댓글로 많은 깨달음을 얻기에 질문을 드려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아담의 죄를 모든 인류의 죄가 되도록 하셨나요?"   범죄한 것은 아담이었는데,, 아담의 잘못이 수천년을 지난 우리 아기,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인류에게도 동일한 죄의 몫이 지워졌는데....   왜 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만 죄의 댓가를 물으실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아담이 죄를 지었으니까요.)   왜 궂이 아담의 죄를,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다고 하여서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의 몫을 가지고 태어나야 하나요?   내 부모가 범죄를 저지른 강도라고 해서 자식까지 죄인이지는 않지 않나요...?   과연, 하나님의 무슨 뜻이 있는건가요? 아니면, 죄라른 것은 원래 유전이 될 수 밖에 없게끔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해 놓으신 것일까요? 아니면, 죄의 속성이 그런 것인가요?   좋은 답변 부탁드려 봅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3:3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09 11:23:41 | 나창주
감사합니다.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처음 된 자로서 나중되는 이가 내가 아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형제님 글이 용기와 위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든지 한 달란트라도 열심히 사용하도록 반드시 달란트를 주셨다는 사실이 은혜가 됩니다. 주님이 주신 달란트를 사용하여 일군 작은 일에 오히려 상을 주신다니 진정 은혜이네요. 감사합니다.
2012-02-08 10:21:02 | 김선희
세대주의 신학을 배우게 되면서 각 시대별로 최고의 계획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최악의 불순종으로 반응하는 인간의 모습을 더욱 확연히 발견합니다. 결국 천년왕국 마지막까지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드러내고 그 분의 구속이 아니었으면 안되었음을 여실히 드러내겠죠... 보잘거 없는 저에게도 구원을 베풀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 분의 공의가 드러나며 영원하고 완전한 그 날을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2012-02-07 22:42:33 | 오창재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 안의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필요하시다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주의 주인으로서 스스로 부족한 것이 없는 분이시지만, 우리와 같이 일 하기를 원하신다 (고전 3:9).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 칭하시고 그 분의 사역에 우리를 동참시키어 우리에게 면류관과 상까지 주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빌 3:14; 고전 9:24-27; 히 10:35). 그러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내를 본받아 구름같이 둘러싼 증인들 앞에서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고 있는 것이며 (히 12:1), 다만 이 모든 명령 받은 일을 행한 후에 그저 우리는 우리의 해야 할 의무를 다했다고 겸손히 고백할 뿐이다 (눅 17:10).   이러한 하나님의 같이 일하심과 맡김의 원리는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에서도 잘 나와 있다 (마 25:14-30).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이 5 달란트와 2 달란트 받은 종에게 열심히 일하여 이익을 남김에 대하여 칭찬을 하시되, 1 달란트를 받고 그저 땅에 묻어둔 종은 크게 나무라셨다. 그때 1 달란트 받은 종이 “당신은 엄한 사람이라 뿌리지 않은데서 거두고 흩뿌리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라고 말하였는데 (마 25:24), 가만히 음미해 보면 이 말은 자신의 주인 즉, 하나님의 능력을 칭송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그것만 믿고 오히려 자신의 일을 다 하지 않은 종이 되었기에 주인으로부터 꾸지람을 듣게 된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보통 신앙생활을 하면서 막연히 하나님을 높여 드려야 한다는 다소 충성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데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오히려 하나님께서 정말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자칫 놓치기도 한다. 하나님은 분명 능력이 많으시지만, 그렇다고 아무 때나 맘먹을 때 하면 되지 하는듯한 방관된 자세로 그저 멀리서 팔짱끼고 계신 그런 분이 아니라, 오히려 열심으로 일하시는 분이시다 (사 9:7). 더 나아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을 맡기시고 그 일을 완수하게 격려 하시며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뤄낸 성과들로 인하여 같이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상까지 주시며 세워 주시는 분이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달란트 비유에서 보듯이 할 수만 있다면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달란트에 맞는 사회의 각 분야에서 탁월함을 들어내는 것은 성경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렇게 하도록 권장해야 하고, 또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 될 것이다. 다니엘을 보라. 다윗을, 모세를, 바울을 보라. 그들은 모두 믿음의 본보기가 되는 사람들 이었지만, 동시에 세상 가운데 자신의 달란트를 들어낼 수 있는 분야에서도 모두 탁월함을 일군 사람들이었다. 물론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로 성공을 이룬 뒤 하나님의 도우심을 잊어버리거나 세상 유혹만을 쫒아간다면 세상에서의 그 성공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한갓 이생의 자랑거리에 지나지 않으며 시들어 없어질 들의 꽃에 다름없게 되고 말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달란트를 사용하는데 게을리 하거나 세상 가운데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되도록 간절히 간구하며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는 그 분 앞에서 어떤 존재로 서있는지 관심이 있을 수 있다. 흔히들 내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이나 또는 그 일로 이뤄낸 어떤 성과 따위는 하나님이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계시며 단지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 자체에 더 관심이 있는 것처럼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내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어쩌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존재를 따지기로 말 한다면, 우리의 구원 조차도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이뤄진 것이며 (롬 5:8), 성화를 위해 싸워 가는 과정에서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도 내 몸 안에 있는 죄의 법을 여전히 버거워 하는 존재일 뿐이다 (롬 7:13-25). 그런 ‘존재’인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은 같이 일하게 하시며, 그 과정에서 오히려 죄의 법을 이기는 힘을 얻게 하기도 하시며, 그 크신 능력을 갖고 계신 하나님에 비하면 정말 보잘 것 없는 ‘성과를 낸’ 우리들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시며, 그 작은 일을 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오히려 상을 주시며 칭찬하시겠다는 것이니.. 이것이야 말로 진정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3:57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07 21:58:03 | 김정훈
이 영화는 아바타나 다른 비성경적인 영화들 처럼 일반 교인들도 분별하거나 고개를 저을수 있는 내용과는 달리, 애들 영화,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는데 그게 뭐 잘못이냐? 갖다 맞출것을 맞춰라 라는 분들이 있듯이 유명한 "문제작" 보다 전연령대의 가격대 성능비가 뛰어난 사탄의 고효율 무기 인것 같습니다.
2012-02-06 18:10:17 | 이민혁
↑요런분 꼭있어요.ㅎㅎ 나형제님, 이 글도 참고 하셨음 좋겠어요. 실은 저도 영화'아바타'가 나왔을때 보고싶었는데 이글을 보고 어떤 확실한 분별력이 생기더라구요. ^^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2004 그래서 결론은 .....돈이 아깝겠다는 생각이.^^
2012-02-06 17:46:11 | 이청원
(나 1:2, 킹흠정) 『하나님은 질투하는 분이시며 주께서는 원수 갚는 분이시니라. 주께서는 보복하며 격노하는 분이시니 주께서는 자신의 대적들에게 보복하시고 자신의 원수들을 위해 진노를 간직하시는도다.』
2012-02-06 14:15:01 | 임종각